제 나름으로 아끼는 비경을 찾아온 사람들이, 자기네만 잠시 재미있자고 멋대로 균형을 깨뜨리고 돌이킬 수 없게 그 비경을 오손하는 존재가 있다면 혀를 차고 손가락질을 하지 않겠는가. 손가락질이며 눈총이라는 게 무슨 힘이 있겠는가마는 거듭되다보면 만인의 지탄(彈)이악몽으로 나타날 수는 있다. 그래서 잠을 못 자 험한 길을 오가다 사고를 당하거나 건강을 잃어서 같은 짓을 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곳이 어디라고 말할 수 없다. 특정한 어느 한 곳이라고 할 수도 없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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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 입구에서 잡목들이 서로 뒤엉켜 만들어내는 어지러운 직선과 곡선에서 자연의 고상한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건조물은 시각적으로 정돈되지 않으면 불편하지만, 자연의 자연스러움에는 인간의 능력으로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차원의 정밀한 계산이 들어 있을 것같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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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칸트가 생각한, 도덕과 자유의 연관 관계를 발견할 수있다.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도덕법을 지켜, 의무감에 따라 행동한다는 뜻이다. 도덕법은 정언명령인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여겨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이루어진다. 정언명령에 따른 행동만이 자유로운 행동이다. 가언명령에 따른 행동은 외부에 주어진 이익이나 목적을 의식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내 의지는 내가 아닌 외부 힘에 의해, 내가 놓인 환경의 필요에 의해, 어쩌다 생긴 내 바람과 욕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율적으로 행동할 때,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할 때만이 본성과 환경의 명령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한 법칙은 특정한 바람이나 욕구에 구애받지 않는다. 따라서 칸트가 말하는 자유와 도덕의 개념은 서로 연결된다. 자유롭게 행동하기, 즉 자율적으로 행동하기란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즉 정언명령에 따라 행동하기와 똑같은 하나의 개념이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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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큰 행사를 하고 나면, 꼭 기록과 그림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의궤(儀軌)" 라고 하는데, 의궤를 통하여 결혼식, 궁중잔치, 왕의 행차 등조선시대 왕실에서 거행했던 행사의 생생한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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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외삼촌의 회상에 의하면 "하도 어려서 눈이 파랗고,
귀때기가 발갛고 여린 학생복 차림의 새신랑" 인 나의 아버지가 부른 노래가 바로 <봄의 교향악>이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 청라언덕과 같은내 맘에 /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 모든 슬픔이사라진다 / 더운 백사장에 밀려 들오는/ 저녁조수 위에 흰 새 될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 저녁조수와같은 내 맘에 흰 새 같은 내 동무야/네가 내게서 떠돌 때에는 / 모든슬픔이 사라진다"
외갓집이 있던 마을 서쪽 뒤편에는 청라언덕은 아니지만 자그마한 산이 하나 있었다. 열아홉 아니면 스무 살인 내 아버지는 그 산을 향해서서 손을 모으고 노래를 불렀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진다고, 네가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고, 무슨 트집을 잡을까 싶어서 일거수일투족을 노려보고 있던 동네 총각들, 어린 신부의 오빠와누나를 시집보내기 싫어서 치마를 붙들고 있던 남동생에게 그 노래는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노래가 되었다. - P56

교련 수업, 검열, 행군, 복장검사, 교련복, 매일 오후 다섯시 ‘국기하강식‘ 에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부동자세로 서 있었던 것. 마찬가지로 극장에서 일어서서 부동자세를 취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속 비난. ‘박통‘ 이라는 상스럽고 불온하며 불안한 단어. 텔레비전 방영 시각이 되기 직전에 나오던 군가. 유신헌법 반대 시위 때문에 휴교령이 내리자 집에 내려온 형에게 압수당한, 영영 돌려받지 못한 무협지, 어느 날 갑자기 어니언스가 ‘양파들‘ 이 되고 바니걸스가 ‘토끼소녀‘가 되었던 일. 가는 곳마다 붙어 있는 그의 글씨. 없는 데가 없는, 언제 찍었는지 변하지도 않는 그의 사진, 혼분식운동 같은 수많은 운동, 금지곡 같은 수많은 금지, 장발단속 같은 수많은 단속, 음반카 메마다 붙어 다니던 박정희 작사 작곡인 〈나의 조국〉 같은 건전가요. 시바스 리갈과 <그때 그 사람>.
박정희가 직접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며 한 일이든 아니든, 사실이든 소문이든 나는 이런 ‘별일 아닌 것들‘ 때문에 박정희를 좋아할 수없다. 독재나 탄압, 정경유착, 지역갈등, 무차별개발 같은 큰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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