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 상태에서 힐데가르트는 자신의 환영에 대해 신을 향한 경외심과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가꾸어가는 데 도움을 받았다. 대다수 사람들에게는환영이 하찮고 꺼림칙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생리적인 현상일 수도있겠지만,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지고한 황홀감에서 나오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예를 우리는 도스토옙스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간질 증세가 있던 그는 황홀감에서 나오는 아우라를 자주경험하곤 했다. 그에게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경험이었다.
- P285

지적장애인인 마틴이 이렇듯 정열적으로 바흐에 몰두하는 것은 신기한 일인 동시에 감동적이기도 했다. 바흐는 대단히 지적인 반면 마틴은 모자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번은 ‘칸타타‘ 카세트를, 또 한번은 마그니피카드 카세트를 가지고 그를 방문했다. 그때처음으로 나는 마틴이 비록 지능은 낮지만 바흐의 복잡한 기교를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는 음악적 지성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능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바흐는 그를 위해서 존재했고, 바흐야말로 그의생명이었다.
- P317

 이같은 ‘도상성‘과 관련하여 과학적 정신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유사한 사례가 있다. 멘델레예프라는 사람은 원소의 성질을 주기율순으로 카드에 써서 언제나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그 내용에 익숙해지자 원소들의 성질이 낮잋은 얼굴처럼 보였다. 모든 원소의 성질을 도상적으로 관상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주기율순으로 늘어놓은 모든 원소표를 앞에 두고 우주의 얼굴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이 같은 과학자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도상적‘이며, 자연의 삼라만상이 인간의 얼굴 또는 하나의 광경으로 보이게 된다. 물론 음악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광경 및 마음속의 환영은 ‘현상적‘인 것으로 충만해 있다. 그런데도 ‘물리‘와 밀접하게 관련이있다. 즉 심령의 세계로부터 물리적인 세계로의 환원이 가능하며, 거기서 이러한 과학의 이차적 외면적인 작용이 성립된다. 이에 대해 니체는
"철학자는 우주에 내재한 교향곡의 메아리를 자기 내부에서 들은 뒤,이를 관념의 모습으로 뒤바꾸어 다시금 외부세계로 투사하려는 사람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 P341

자폐증 환자들은 사물을 일반화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혹은 일반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들의 세계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물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의 우주에 사는 것이 아니라 윌리엄 제임스가 말한 ‘다중 우주‘ 즉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정확하고, 엄청나게 열정적인 개체들로 이루어진 우주에 살고 있다. 그것은 ‘일반화‘ 혹은 과학적인 사고방식과는 완전히 정반대에 있는 마음의 상태이다.  - P376

성공의 비밀은 좀더 특별한 곳에 있다. 모츠기는 이 지능 낮은 예술가를 집으로 데려와서 함께 살기로 했다. 상대를 위해서 몸을 내던지는 헌신, 비밀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모츠기는 이렇게 말했다.
"야나무라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서 내가 한 일은, 그의 영혼을 내 영혼으로 여기는 일이었다. 교사는 아름답고 순수한 뒤처진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정제된 세계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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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왜 주드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지 않았는지, 왜 주드에게 그럴때 어떤 기분인지 말해보라고 하지 않았는지, 왜 본능이 시키는대로 감히 행동하지 못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그냥 옆에 앉아 다리를 문질러주고, 멋대로 어긋나는 신경말단을 주물러 가라앉히려 해보지 않았을까. 대신 그는 여기 욕실에 숨어 바쁜 체하고 있다. 가장 소중한 친구 하나가 바로 저기 지저분한 소파에 철저히 홀로 앉아 산 자들의 땅으로 돌아오기위한, 의식을 되찾기 위한 느리고 슬프고 고독한 여행을 하고있는데 말이다.
- P37

이런 평일 저녁의 지하철 여행에서 그가 또 좋아하는 것은 빛이었다. 지하철이 덜커덩거리며 다리를 건너가고 있으면, 빛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차량을 가득 채우고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피로를 씻어내고 그들이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의 얼굴,
미국을 정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젊은 시절의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그런 빛이 시럽처럼 차량 안으로 퍼져나가면서 깊게 팬 이마의 주름을 지우고, 희끗희끗한 머리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번쩍거리는 싸구려 옷감의 광택을 매끄럽고 은은하게어루만지는 광경을 지켜보곤 했다. 그러다 해가 서서히 넘어가고 열차가 무심하게 덜커덩거리며 멀어져가면, 세상은 다시 평소의 슬픈 모양과 색깔로, 사람들은 평소의 슬픈 얼굴로 돌아왔다. 마치 마법사가 지팡이로 건드리기라도 한 것처럼 잔인하고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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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로 본 아파트는 벽장은 하나뿐이었지만 유리 미닫이문을 열고 조그만 발코니로 나갈 수 있었다. 발코니에 나가니 10월인데도 티셔츠와 반바지만 입고 바깥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가 길 건너편에 보였다. 윌럼이 손을 들어 인사했지만, 남자는 인사하지 않았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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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필드는 언제나 이러한 관점에서 의식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신발작은 의식의 흐름(혹은 의식된 현실) 가운데 일부분을 포착해서 경련을 통해 그것을 재생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C부인의 사례에서 특히 감동적인 것은, 간질을 통해 일어난 <회상>이 그녀의 의식에도 없었던 것을 꺼내어 경련을 통해 완전한 기억으로 되살렸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통해서 그녀는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거나 아니면 어떤 억압으로 인해 의식에 새겨질 수도 없었던 지극히 어린 시절의 경험을 되살릴 수 있었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생리학적으로는 문이 닫혔을지라도, 환자의 경험 그 자체는 잊혀진 것이 아니라 강력하고도 영속적인 인상으로 남아 치유 효과를 지닌 의미 있는 경험으로 느껴진 것이라고 가정해야만 한다. 뇌졸중에서 회복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발작이 일어나서 행복했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행복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자세한 부분까지 낱낱이 떠올릴 수는 없지만 분명히있었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나는 어느 모로 보나 만족스럽고 완전한 존재가 되었답니다."
- P245

"바가완디 양,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죽어가고 있어요. 전 고향으로 가고 있어요. 제가 왔던 곳으로돌아가는 거예요. 어쩌면 이런 게 귀향일지도 모르죠."
한 주가 지나자 바가완디는 이제 더이상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자기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눈을감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행복한 미소를 연하게 띠고 있었다. 한직원이 말했다.
"바가완디 양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곧 거기에 도착할거예요."
사흘 후, 그녀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인도로 가는 여행을 이제 막 끝냈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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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소설을 부치고 나면 나도 이 바빌로니아를 떠날 것이다. 비엔나 여행에서처럼 그곳에도 미미나 유디트같은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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