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을 둘러보니 누이들과 엄마와 모자란 남동생이 보였다. 푹 꺼진 마루와 낡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엌에서는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고, 카펫에서는 흙먼지가 밟히고, 옷엔 곰팡이가 피었다. 이런공간을 지워버리고 싶은 심정, 이런 사람들을 지워버리고 싶은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 P153

어제는 길버트 그레이프 평생 최고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한 시간쯤 혼자 즐거워했다. 터커한테 "세계 최고의 거구, 보니!"
라고 쓴 커다란 간판을 그리게 해서 이 근방 최고의 놀라운 가족을알리는 그 광고판을 13번 고속도로와 35번 국도에 몇 킬로미터마다하나씩 내건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레이프를 만나세요" "춤추는 어니" "엘렌 그레이프, 맛이 참 좋아요" 같은 표지판도 붙여야지. 에이미 누나는 매점에서 팝콘과 레모네이드를 팔고, 어니가 의자에 앉아있으면 사람들이 어느 쪽이 플라스틱 눈인지 맞히면 어떨까. 제니스누나는 꼼꼼하게 구성한 우리 집 투어의 가이드가 되어 곳곳에 엄힌 일화들을 들려주되, 스튜어디스 유니폼을 입고 스튜어디스 같은미소를 지으며 스튜어디스의 동작을 곁들인다. 지하실에 아빠 인형을 매달아놓을 수도 있다. 래리 형은 거기 얼어붙은 듯이 서서 아빠를 올려다보며 그날의 순간을 재연한다.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우리엄마를 만나는 순서다. 사람들은 미리 엄마의 예상 체중을 적어낸다.
내가 엄마를 깨우면 엄마는 힘겹게 일어나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체중계에 올라간다. 디지털 체중계에 엄마의 몸무게가 찍혀 나온다. 근사치를 적어낸 사람에게 소정의 상품을 준다.
짧은 투어지만, 가족 사업으로서의 잠재력은 그 무엇에도 뒤지지 않는다. 골골거리는 마을 경제도 살아날것이다. 도처에서 우리를 보기 위해 차를 몰고 찾아올 테니까.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일하면서 지나온 날들을 찬미하고 그것을 온 세상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끝내주는 아이디어였다. 어니한테 얘기해줬더니 무척 좋아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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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를 데리고 마을 어귀에 나와 기다리는 일은 연례행사가 됐다.
어니가 지금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이유는 조금 있으면, 몇 시간 후가 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오늘 안으로, 트럭과 트레일러와 캠핑카가 이곳 아이오와주 엔도라로 줄지어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트럭에 문어발, 저 트럭에 파란색과 빨간색 자동차를 매단회전놀이기구, 또 다른 트럭 두 대에는 대관람차를 나눠 싣고, 게임기계들도 줄줄이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어니에게 무엇보다 중요한건 회전목마의 말들이 온다는 사실이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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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때, 리스페너드 스트리트에 서 있을 때는 이런 걸몰랐어. 그때 우린 그냥 서서 그 붉은 벽돌 건물을 올려다보고있었고, 난 주드 때문에 두려워해야 할 필요 없는 척하고 있었고, 그는 그런 척하는 나를 봐주고 있었지. 주드가 저지를 수 있었던 그 모든 위험한 일들, 내 가슴을 찢어놓을 수도 있었던 그온갖 방법들은 이야깃거리인 과거 속에 있었고, 우리 뒤에 놓인시간은 무서웠지만 우리 앞에 놓인 시간은 그렇지 않았어.
옥상에서 뛰어내렸다고?" 난 주드 말을 되풀이했어. "도대체 그런 짓을 왜 했는데?"
"긴 이야기예요." 그는 심지어 싱긋 웃으며 말했어. "이야기해드릴게요."
"그러렴." 난 말했어.
그리고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어.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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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덟 살이 되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윌럼은 자기가 유명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상상했던 것보다 덜 혼란스러웠다. 어떤 면에서 그는 늘 자신을 일종의 유명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와 제이비 이야기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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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려고 애쓰면서 그는 왜 자기가 잭슨에게 빠졌는지 생각했다. 이유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기억하기가 부끄럽기 때문이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걸, 자기 인생에 같히지 않았다는 걸, 나쁜 결정들일지언정 스스로 내릴 수 있고, 내릴 거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잭슨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나이쯤 되면 아마 만날 친구들은 이미 다 만났다. 친구들의 친구들도 만났다. 인생은 점점 더 작아졌다. 잭슨은 멍청하고 풋내기에다 잔인했고, 그가 높이 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가치가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걸 알았다. 그리고 그게 바로 계속 그와 어울린 이유였다. 친구들을 당황시키려고, 친구들의 기대에 묶여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멍청하고, 멍청하고, 또 멍청한 짓이었다. 오만이었다. 그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도 그 뿐이었다. - P402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많은 세월이지나도, 루크의 미소 짓는 얼굴이 순식간에 마법처럼 떠오르곤했다. 그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있던 시절, 그가 너무 순진하고 너무 외롭고 너무 애정이 그리운 어린아이여서 아무것도 모른 채 유혹당하던 시절의 루크를 생각했다. 그는 온실로달려가고 있었다, 문을 열고 있었다, 꽃들의 온기와 향기가 그를 망토처럼 둘러쌌다. 그건 그가 그토록 소박하게 행복했던,
복잡할 것 전혀 없는 기쁨을 알았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우리꼬마 미남이 왔구나!" 루크는 외쳤다. "아, 주드 - 널 보니 너무 행복하다."
- P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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