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선택학파는 공공선택이론이 다음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정부는 만성적인 예산 적자에 시달리는가? 왜 특수 이익 집단들special interest groups 이 번성하는가? 왜 매번 대통령 선거 때마나 나오는 공약과 달리 정부 부서들은 축소되지 않고 계속해서 비대해져만 가는가? 그리고 왜 정부 규제안들은 소비자보다는 기업가를 더 보호해주는가?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정치를 좋은 정책을 제안하고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성가시고, 이해불가능하고, 비경제적인 존재 정도로 여긴다. 때로는 그것을 불필요한 존재로 간주하기도 한다. 반면, 공공선택학과 경제학자들은 정치를 경제학의 도구를 이용해 연구 분석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 다시 말해, 그들은 정치를 일종의 경제적 행위로 간주한다. 경제학자들은 정치를보면서 자포자기가 되거나 불쾌감을 표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관료들과 입법자들이 왜 좋은 정책을 무시하거나 채택하지 않는지 물어야한다. 정치도 넓게 보면 비즈니스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 P486
공공선택학파의 주요 논지는 매우 간단하다. 즉, 사업가가 이기적이라면, 정부의 관료들 역시 ‘정치적 사업가들political entrepreneur‘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서로 추구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사업가들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정치적 사업가들은 무엇을 가장 극대화하고 싶어 할까? 그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권력과 능력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경제학자들은 지난 200년 동안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고, 그것에 기초해 모델을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정부의 행동에 대해서도 인간의 행동에 대해 했던 것처럼 똑같이 연구하고 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P489
인위적인 가격 지지 정책은 국가 정치에 암을 유발할 수있다. 이런 문제는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이미 만성화된 문제다. 어떤 하나의 동기에서 똘똘 뭉친 이익 집단들은 국가 차원의 경제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른 결과에서 사소한 몫을 가져가는 개별 소비자들의 이해관계는 철저히 짓밟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개별 소비자들은 이득은커녕 국가적 효율성과 소득의 하락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본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분명한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개 특수 이익 집단들은 공공의 복리에서 아주적은 몫만을 챙겨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몫이 하나로 뭉치면 무시 못할 크기이지만. - P493
뉴욕 시티와 보스턴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시에 이용할 수 있는 택시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두 도시는 택시 면허 발급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것이 택시 운전사들의 소득은 올려줄지 몰라도시민들의 불편은 가중시킨다. 시당국은 시민들의 불편은 무시한 채 택시 운전사들의 불평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선택학파는 이것을 비판하기 위해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문제에 접근하지 않는다. 대신 맨커 올슨과 그의 동료들은 이해관계로똘똘 뭉쳐 있는 집단들이 세력화되어 있지 않는 일반 대중보다 왜 훨씬 더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지 가르친다. 올슨은 자신의 주장에 광범위한 역사 법칙을 끌어들임으로써 논쟁의 지형을 넓혀 나갔다. 그는 안정된 사회일수록 특수한 이해관계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회는 상대적으로 새롭게 안정을 이룬 사회보다 더 느리게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머리들은 번식에 번식을 거듭해 곳곳에서 국가의 피를 빨아 먹는다. 만약 이것을 방치하면, 어느 순간에는극단적인 혁명이나 전쟁이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있다. 왜냐하면 특수 이익 집단들이 자신들의 목을 스스로 조를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P494
왜 정부는 많은 산업들을 규제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즉, 이런 산업들은 독점이거나 과점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이들 독과점의 부당한 착취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답이 함축하는 것은 이런 산업들이 규제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미국 태생의 경제학자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티글러의주도 아래 공공선택학파 경제학자들은 이 문제에 또 다른 가능한 해답하나를 추가했다. 산업들 또는 기업들은 규제가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위험에서 자신들을 보호해주기 때문에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규제를 위해 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포획 이론capture theory of regulation‘이라 부르는데, 규제를 당하는 대상이 규제자들을 사로잡는 꼴이기 때문이다. - P496
그렇다면 규제를 받는 산업들이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들, 특히 정부를 포획하는 데 성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 다룬 합리적 무시, 즉 특수 이익 집단의 역설을 떠올려보자. 기업들은 정부나 정부 산하 기관들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학계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실제로 경제학자들은 경제 잡지나 법률 잡지에 자신들의전문 연구 성과를 게재함으로써 어떤 기업을 간접 대변하기도 한다. 정보의 우위나 전문성에 의존하는 것이다. 규제 당국은 종종 기업들의 이런 전략에 속아 넘어가 그들의 설득이나 로비에 넘어간다. 더구나 국민들은 이런 일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보다 좀 더 냉소적인 설명도 있다. 규제하는 자들이 규제받는 자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있는 경우가 있다. 정부 산하의 각종 기관과 위원회의 소속 위원들은대다수가 민간 부문 출신들로 임기가 끝나면 다시 민간 부문으로 되돌아간다. 눈살을 찌푸리는 것보다 친구가 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상부상조하는 길이다. - P498
관료들의이기심이 표출되는 방식은 기업가들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기업가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한다. 물론 정부 관료들은 아마 뇌물을 제외하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변수들, 예를 들어, 봉급, 수당, 권력, 위신, 퇴직연금 등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관료들은 어떻게 이것들을 극대화할수 있을까? 각종 예산을 늘리고 부서의 크기를 늘리면 된다. 니스커넨은 정부 부서들과 산하 기관들을 예산을 많이 받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조직들로 묘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조직들의 규모는 업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비대해질 수 있다. 이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납세자들의 지갑에서 나온다. 돈, 즉 배당되는 예산이 더 크다는 것은 관료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관료들은 비용을 줄이는데 별다른 동기를 갖지 않는다. 뭔가 허술해 보이는관료주의가 관료들을 까다로운 존재로 만든다. - P500
뷰캐넌은 예산 적자가 경제에 타격을 주기는 하지만, 그 고통은 간접적이고 분산적이라고 대답한다. 반면 균형 예산 또는 흑자 예산에 따른고통은 직접적이다. 왜 그럴까? 흑자 예산에 따른 직접적인 고통을 예산 적자에 따른 간접적인 고통과 비교해보자. 만일 우리가 균형 예산에서 시작해 흑자 예산을 달성하고 싶어 한다면, 우리는 (1) 세금을 더 많이 내거나 (2) 정부 지출을 삭감해야 한다. 이런 두 가지 전략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고통을 안겨준다. 세금을 높이게 되면 민간 소비는 줄어들수밖에 없다. 한편, 정부가 지출을 삭감하면 시행 중인 각종 민생 정책들은 중단되거나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경기가 호황을 보인다고 해도 그혜택은 바로 나타나기보다는 늦게 나타난다. 그리고 세금을 높이거나정부 지출을 줄임으로써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혜택이돌아갈 뿐이다. 그럼, 적자 예산일 경우를 예상해보자. 우리는 세금을 낮추거나 정부지출을 늘려 적자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납세자들과 적자 예산에 따른 수혜자들은 얼굴에 희색을 띨 것이다. 적자예산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더 많은 돈을 지출할 수 있도록 한다. 즉, 적자 예산은 경제를 위축시키지만, 그에 따른 효과는 간접적이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흑자 예산과 적자 예산의 경우에 각각 어떤 영향을 받을지 자문해봐야 한다‘ - P504
「왜 정치적 이기심은 공익에서 벗어나는가? 정부가 규제, 보조금 관세, 각종 인허가를 통해 소규모 정부 지출 microtransactions을 늘려나감에 따라 정부나 국민 모두에게 이에 필요한 정보 비용 information cost (일종의 기회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정부의 공공 지출과정책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시민들은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들에게 이런 투자는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들여야 하는 정보비용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국민 100명에게 100만 달러를 지원하는 정부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자.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철수가 하루 종일 이 프로그램의 뒷조사를 하러 다닌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이 프로그램을 반대하든 지지하든각자가 지불해야 하는 세금은 정말 눈곱만큼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프로그램의 뒷조사를 하는 데 개인적으로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사정이 이렇다고 한다면, 앞서 언급한 합리적 무시가 더 속편한 처사일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규모나 정부 지출 증대 경향은 정치인들의 행동이 국민들의 알권리에서 계속해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관료들은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런 행동은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다. - P534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은 복잡한 세계에서는 그 기능을 상실한다. 미국 태생의 경제학자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우가 지적했던 것처럼, 어떤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시장에서 어떤 한 상품을 구매하는 것과 다르다. 경제학자들은 시장 질서를 그대로 반영하는논리적인 정치 체제를 고안할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들이 특정 후보에 투표하는 것은 전자레인지 같은 특정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패키지 상품을 구입하는 것과 같다. 보통은 유권자가 뽑은 후보가 유권자가 원하는 정책을 입안하거나시행하지만,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사실, 유권자는 자신이 무엇을 얻을지 확신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슈퍼마켓 선반과 복주머니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 P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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