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선택학파는 공공선택이론이 다음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정부는 만성적인 예산 적자에 시달리는가? 왜 특수 이익 집단들special interest groups 이 번성하는가? 왜 매번 대통령 선거 때마나 나오는 공약과 달리 정부 부서들은 축소되지 않고 계속해서 비대해져만 가는가? 그리고 왜 정부 규제안들은 소비자보다는 기업가를 더 보호해주는가?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정치를 좋은 정책을 제안하고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성가시고, 이해불가능하고, 비경제적인 존재 정도로 여긴다. 때로는 그것을 불필요한 존재로 간주하기도 한다. 반면, 공공선택학과 경제학자들은 정치를 경제학의 도구를 이용해 연구 분석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 다시 말해, 그들은 정치를 일종의 경제적 행위로 간주한다. 경제학자들은 정치를보면서 자포자기가 되거나 불쾌감을 표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관료들과 입법자들이 왜 좋은 정책을 무시하거나 채택하지 않는지 물어야한다. 정치도 넓게 보면 비즈니스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 P486

 공공선택학파의 주요 논지는 매우 간단하다. 즉, 사업가가 이기적이라면, 정부의 관료들 역시 ‘정치적 사업가들political entrepreneur‘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서로 추구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사업가들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정치적 사업가들은 무엇을 가장 극대화하고 싶어 할까? 그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권력과 능력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경제학자들은 지난 200년 동안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고, 그것에 기초해 모델을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정부의 행동에 대해서도 인간의 행동에 대해 했던 것처럼 똑같이 연구하고 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P489

인위적인 가격 지지 정책은 국가 정치에 암을 유발할 수있다.
이런 문제는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이미 만성화된 문제다. 어떤 하나의 동기에서 똘똘 뭉친 이익 집단들은 국가 차원의 경제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른 결과에서 사소한 몫을 가져가는 개별 소비자들의 이해관계는 철저히 짓밟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개별 소비자들은 이득은커녕 국가적 효율성과 소득의 하락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본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분명한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개 특수 이익 집단들은 공공의 복리에서 아주적은 몫만을 챙겨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몫이 하나로 뭉치면 무시 못할 크기이지만. - P493

뉴욕 시티와 보스턴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시에 이용할 수 있는 택시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두 도시는 택시 면허 발급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것이 택시 운전사들의 소득은 올려줄지 몰라도시민들의 불편은 가중시킨다. 시당국은 시민들의 불편은 무시한 채 택시 운전사들의 불평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선택학파는 이것을 비판하기 위해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문제에 접근하지 않는다. 대신 맨커 올슨과 그의 동료들은 이해관계로똘똘 뭉쳐 있는 집단들이 세력화되어 있지 않는 일반 대중보다 왜 훨씬 더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지 가르친다.
올슨은 자신의 주장에 광범위한 역사 법칙을 끌어들임으로써 논쟁의 지형을 넓혀 나갔다. 그는 안정된 사회일수록 특수한 이해관계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회는 상대적으로 새롭게 안정을 이룬 사회보다 더 느리게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머리들은 번식에 번식을 거듭해 곳곳에서 국가의 피를 빨아 먹는다. 만약 이것을 방치하면, 어느 순간에는극단적인 혁명이나 전쟁이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있다. 왜냐하면 특수 이익 집단들이 자신들의 목을 스스로 조를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P494

왜 정부는 많은 산업들을 규제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즉, 이런 산업들은 독점이거나 과점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이들 독과점의 부당한 착취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답이 함축하는 것은 이런 산업들이 규제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미국 태생의 경제학자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티글러의주도 아래 공공선택학파 경제학자들은 이 문제에 또 다른 가능한 해답하나를 추가했다. 산업들 또는 기업들은 규제가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위험에서 자신들을 보호해주기 때문에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규제를 위해 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포획 이론capture theory of regulation‘이라 부르는데, 규제를 당하는 대상이 규제자들을 사로잡는 꼴이기 때문이다. - P496

그렇다면 규제를 받는 산업들이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들, 특히 정부를 포획하는 데 성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 다룬 합리적 무시, 즉 특수 이익 집단의 역설을 떠올려보자. 기업들은 정부나 정부 산하 기관들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학계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실제로 경제학자들은 경제 잡지나 법률 잡지에 자신들의전문 연구 성과를 게재함으로써 어떤 기업을 간접 대변하기도 한다. 정보의 우위나 전문성에 의존하는 것이다. 규제 당국은 종종 기업들의 이런 전략에 속아 넘어가 그들의 설득이나 로비에 넘어간다. 더구나 국민들은 이런 일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보다 좀 더 냉소적인 설명도 있다. 규제하는 자들이 규제받는 자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있는 경우가 있다. 정부 산하의 각종 기관과 위원회의 소속 위원들은대다수가 민간 부문 출신들로 임기가 끝나면 다시 민간 부문으로 되돌아간다. 눈살을 찌푸리는 것보다 친구가 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상부상조하는 길이다.  - P498

관료들의이기심이 표출되는 방식은 기업가들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기업가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한다. 물론 정부 관료들은 아마 뇌물을 제외하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변수들, 예를 들어, 봉급, 수당, 권력, 위신, 퇴직연금 등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관료들은 어떻게 이것들을 극대화할수 있을까? 각종 예산을 늘리고 부서의 크기를 늘리면 된다. 니스커넨은 정부 부서들과 산하 기관들을 예산을 많이 받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조직들로 묘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조직들의 규모는 업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비대해질 수 있다. 이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납세자들의 지갑에서 나온다. 돈, 즉 배당되는 예산이 더 크다는 것은 관료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관료들은 비용을 줄이는데 별다른 동기를 갖지 않는다. 뭔가 허술해 보이는관료주의가 관료들을 까다로운 존재로 만든다. - P500

뷰캐넌은 예산 적자가 경제에 타격을 주기는 하지만, 그 고통은 간접적이고 분산적이라고 대답한다. 반면 균형 예산 또는 흑자 예산에 따른고통은 직접적이다. 왜 그럴까? 흑자 예산에 따른 직접적인 고통을 예산 적자에 따른 간접적인 고통과 비교해보자. 만일 우리가 균형 예산에서 시작해 흑자 예산을 달성하고 싶어 한다면, 우리는 (1) 세금을 더 많이 내거나 (2) 정부 지출을 삭감해야 한다. 이런 두 가지 전략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고통을 안겨준다. 세금을 높이게 되면 민간 소비는 줄어들수밖에 없다. 한편, 정부가 지출을 삭감하면 시행 중인 각종 민생 정책들은 중단되거나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경기가 호황을 보인다고 해도 그혜택은 바로 나타나기보다는 늦게 나타난다. 그리고 세금을 높이거나정부 지출을 줄임으로써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혜택이돌아갈 뿐이다.
그럼, 적자 예산일 경우를 예상해보자. 우리는 세금을 낮추거나 정부지출을 늘려 적자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납세자들과 적자 예산에 따른 수혜자들은 얼굴에 희색을 띨 것이다. 적자예산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더 많은 돈을 지출할 수 있도록 한다. 즉,
적자 예산은 경제를 위축시키지만, 그에 따른 효과는 간접적이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흑자 예산과 적자 예산의 경우에 각각 어떤 영향을 받을지 자문해봐야 한다‘ - P504

「왜 정치적 이기심은 공익에서 벗어나는가? 정부가 규제, 보조금 관세, 각종 인허가를 통해 소규모 정부 지출 microtransactions을 늘려나감에 따라 정부나 국민 모두에게 이에 필요한 정보 비용 information cost (일종의 기회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정부의 공공 지출과정책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시민들은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들에게 이런 투자는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들여야 하는 정보비용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국민 100명에게 100만 달러를 지원하는 정부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자.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철수가 하루 종일 이 프로그램의 뒷조사를 하러 다닌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이 프로그램을 반대하든 지지하든각자가 지불해야 하는 세금은 정말 눈곱만큼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프로그램의 뒷조사를 하는 데 개인적으로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사정이 이렇다고 한다면, 앞서 언급한 합리적 무시가 더 속편한 처사일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규모나 정부 지출 증대 경향은 정치인들의 행동이 국민들의 알권리에서 계속해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관료들은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런 행동은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다. - P534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은 복잡한 세계에서는 그 기능을 상실한다.
미국 태생의 경제학자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우가 지적했던 것처럼, 어떤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시장에서 어떤 한 상품을 구매하는 것과 다르다. 경제학자들은 시장 질서를 그대로 반영하는논리적인 정치 체제를 고안할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들이 특정 후보에 투표하는 것은 전자레인지 같은 특정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패키지 상품을 구입하는 것과 같다. 보통은 유권자가 뽑은 후보가 유권자가 원하는 정책을 입안하거나시행하지만,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사실, 유권자는 자신이 무엇을 얻을지 확신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슈퍼마켓 선반과 복주머니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 P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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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와 내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는 매장 중앙부 잡지 테이블 쪽에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창문이 절반 넘게 보였다. 그래서 바깥세상을 볼 수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무직 노동자, 택시, 조깅하는 사람,
관광객, 거지 아저씨와 개, RPO 빌딩 아랫부분이 보였다. 우리가 좀 적응이 된 다음에는 매니저가 매장 앞쪽 쇼윈도 바로 뒤까지 가도록 허락해 줘서 RPO 빌딩이 얼마나 높은지 보았다. 딱 적당한 시각에 그 자리에 가면 해가 우리 빌딩이있는 쪽에서 RPO 빌딩이 있는 쪽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 P11

내가 쇼윈도에 가고 싶어 한 데는 햇빛이나 선택받을 가능성과 무관한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아야겠다. 대부분의 에이에프나 로사와 다르게 나는 늘 바깥세상을 아주 세세하게 보고 싶었다. 그래서 셔터가 올라가고, 바깥쪽 인도와 나 사이에 유리 한 장밖에 없어서지금까지는 가장자리나 귀퉁이밖에 못 봤던 수없이 많은 것들을 가까이에서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자, 나는 순간 너무 들떠서 해와 해의 인자함조차 잊을 정도였다. - P19

그런데 계속 창밖을 관찰하다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에이에프들이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걱정하는 거라고. 우리가 새 모델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제 자기 에이에프를처분하고 우리 같은 신형으로 교체할 때가 됐다고 생각할까봐 걱정하는 거였다. 그래서 부자연스럽게 걸음을 재촉하고일부러 우리 쪽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하는 거였다. 우리 창문에서 에이에프를 거의 볼 수 없는 까닭도 그래서였다. 어쩌면 RPO 빌딩 뒤쪽 도로에는 에이에프가 바글거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에이에프들이 우리 가게 앞을 지나가는 경로말고 다른 길로 가려고 온갖 애를 쓰는 듯했다. 자기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창으로 다가가는 일만은 막고 싶기 때문이었다. - P31

 아이가 택시와 같은 속도로 걷고 있었기 때문에 택시 사이를 통해 아이를 계속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틈이 더 벌어져서 아이가 실은 에이에프와 같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소년 에이에프였는데 세 걸음 뒤에서 아이를 따라가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소년 에이에프가 우연히 뒤처진 게 아님을 알았다. 아이가 늘 이런 식으로 걸으라고, 자기가 앞에 갈 테니 몇 걸음 뒤에 따라오라고 했고 소년 에이에프는 지시를 받아들인 거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 소년 에이에프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걸 알 텐데도, 나는 소년 에이에프의 걸음걸이에서 고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집을 찾았는데 나의 아이가 나를 원치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 궁금했다. 이 둘을 보기전에는 에이에프가 자기를 멸시하고 싫어하는 아이와 같이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그때 앞쪽 택시가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늦추고 뒤쪽 택시가 바짝 붙어서는 바람에 더는 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오지 않을까 싶어 계속 지켜보았는데, 횡단보도위 인파 속에는 없었고 건너편 인도는 택시들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 P33

"엄마 이상해 보이지. 저렇게 빤히 보고 있으니. 내가 네가마음에 든다고 말해서 그래. 내가 너 아니면 안 된다고 했더니 저렇게 뜯어보는 거야. 미안" 나는 지난번처럼 언뜻 슬픔의 기색을 본 것 같았다. 조시가 물었다. "너 올 거지? 만약에 엄마가 된다고 하면?"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조시는 여전히 확신이없는 표정이었다.
"네가 원하지 않는데 오는 건 싫어. 그러면 불공평하니까.
나는 네가 오면 정말 좋겠지만 네가 조시, 나는 싫어, 하고말하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엄마한테 안 된다고 말할게. 하지만 너도 오고 싶지? 응?"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이번에는 조시도 안심하는것 같았다.
"정말 잘됐다." 얼굴에 웃음이 다시 돌아왔다. "너도 좋아할 거야. 네가 좋아할 수 있도록 할게." 조시가 다시 뒤를 돌아보더니 이번에는 신이 난 듯이 외쳤다. "엄마! 얘도 오고싶대!" - P43

그런데 뭔가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오전 동안에 B3 셋이 오래된 에이에프들로부터아주 조금씩 멀어졌다. 옆으로 한 발을 살짝 움직일 때도있었고, 아니면 창밖에 있는 무언가를 구경하러 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 매니저가 정해 준 자리에서 조금 비켜서기도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고 나자 새로 온 B3들이 오래된 에이에프들에게서 일부러 떨어져 선다는 사실이 의심의 여지없이 명백해졌다. 손님들이 왔을 때 자기들이 다른 그룹에속한다는 걸 보여 주려는 의도였다. 처음에는 믿고 싶지 않았다. 에이에프가, 그것도 매니저가 엄선한 에이에프가 이런식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오래된 에이에프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보니까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오래된 에이에프들은 자기들이 애써 무언가를 설명해 주려 할 때 B3들이 서로 슬쩍 눈짓과 신호를주고받는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새로운 B3 시리즈는 여러 가지 점이 개선되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에이에프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있을까? 로사가 곁에 있었다면 내가 본 것을 로사에게 이야기했겠지만, 그때 로사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 P60

"그래?" 잠시 또 침묵이 흐르더니 어머니가 말했다. "마지막 질문이야. 우리 딸이 걷는 모습에서 어떤 걸 알아차렸니?"
"왼쪽 고관절이 조금 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오른쪽 어깨도 통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어서 급작스럽게 움직여 불필요한 충격을 가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걷습니
다."
어머니는 곰곰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래, 클라라. 아주 잘 아는 것 같으니까, 조시의 걸음걸이를그대로 따라 해 볼 수 있겠어? 해 줄 수 있겠니? 지금? 우리 딸이 걷는 것처럼?"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매니저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리는 게 보였다. 그러나 매니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대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보일 듯 말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걷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조시뿐 아니라 에이에프들까지 모두 집중해서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아치문을 지나 바닥 위에 뻗은 해의 무늬 위로 발을 디뎠다. 그러고는 중앙부에 있는 B3들과 유리 진열대 방향을 향해 걸었다. 나는 내가 본 조시의 걸음걸이를 최대한 되살리려고 애를 썼다. 처음에, 내가 로사와 창가에 있을 때 택시에서 내려 걸어오던 모습, 그리고 나흘 뒤에 어머니가 어깨에서 손을 뗐을 때 창문으로 다가오던 모습, 그리고 방금 안도감과 행복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향해 서둘러 걸어오던 모습유리 진열대에 다다라 나는 그 주위로 돌았다. 진열대 옆에 서 있는 소년 B3에게 부딪히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도 조시 걸음걸이의 특징을 잃지 않으려고 신경 썼다.
그러나 방향을 돌려 돌아오면서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 표정의 무언가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계속 나를 찬찬히 보고있었지만 시선의 초점이 내가 아니라 내 뒤쪽 어딘가에 맞춰져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마치 유리창이고 그 너머 멀리무언가를 보듯이. 나는 유리 진열대 옆에 한쪽 발꿈치를 뗀채로 멈춰 섰고 가게 안에는 기이한 정적이 흘렀다. 그때 매니저가 말했다.
"보셨다시피 클라라는 관찰력이 아주 뛰어나요. 이런 아이는 본 적이 없어요."
"엄마" 조시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제발, 엄마."
"좋아. 이 애로 할게요."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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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마가렛 대처 Margaret Thatcher 수상과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중앙은행을 압박해 무리한 통화정책을 폈다. 화폐 공급량을 줄이고 금리 상승은 무시했다. 약발은 바로먹혔다. 1980년에 12퍼센트 이상이었던 것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1982년에 4퍼센트 아래로 눈에 띄게 떨어졌다. 처음에 경제학자들은 화폐가 그렇게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곧바로 프리드먼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됐다. 바로 심각한 경기 침체가 뒤따랐던 것이다. 먼저 통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생산량과 물가에 같이 영향을 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물가에만 영향을 미칠 뿐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10퍼센트까지 치솟았고, 1983년에야 겨우 진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가 어떤 경제 정책을 시행할 경우, 무엇보다 주의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을 미리 예측하고 해야 하는것이다. 레이건 행정부처럼 인플레이션 하나를 잡기 위해 무작정 통화정책을 펴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 P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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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은 아름답다. 우리는 원래의 길을 1.5킬로미터가 넘게연장했다. 우리를 위한, 와이라를 위한 새로운 정글, 케이지와 러너의 북쪽에 있는 이곳은 어쩌면 와이라가 탈출했을 때 와봤던 곳일지 모른다. 우리와는 함께 오지 않았던, 결코 그런 적 없었던 곳.
다음 날, 나는 와이라 앞에서, 돌프는 뒤에서 로프를 달고 걷는다. 방향을 틀어서, 새롭고 낯설고 불확실한 파라다이스 고속도로길목으로 접어들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와이라의 눈이 흐려지는 것을 보고 잠깐 망설인다. 표정에서 두려움이 어른거린다. 혼란. 나머지는 흥분과 불신, 완고함도 잠깐 스치지만 일순간일 뿐이고, 다른 무언가에 자리를 내어준다. 그 무언가는 나의 배 속을 꽉 채우고 내게 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바로, 믿음. 우리 사이에서 수없이 부서지고 형성되었던 믿음. 와이라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춘다. 그러고는 함께 걷는다. 아르릉도 그르렁도 없다. 말없이 걷는 와이라, 경외심에 휩싸인 와이라뿐이다.
반 바퀴 돌았을까. 일광에 젖은 나무에 이른다. 오솔길의 우측 경사면 위로 쓰러진, 거대하고 오래된 나무. 와이라가 불쑥 나무로 뛰어올라 잽싸게 달려가는 바람에 돌프가 나동그라질 뻔한다. 나는 몰래 미소를 짓는다. 와이라와 마찬가지로 긴장감은 이미 녹아내렸다. 와이라는 몸에 힘을 쭉 빼고 나무 위에 엎드려 발을 달랑거린다. 휘둥그레진 두 눈은 아름답게 빛나는 하늘의 조각들로 향한다.  - P317

"사랑해." 갈라지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해본다.
햇살 아래로 굽은 와이라의 목이 금빛을 머금는다. 우리는 하늘 한 조각을 가로질러 높이 날아오르는 독수리를 함께 바라본다. 소리 내 말하기까지 이토록 오래 걸렸다니, 믿기지 않는다. 와이라가 나를 바라보고 꼬리를 부드럽게 흔들며 호응한다. 네가 날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 오래전부터. 그러고는 볼을 양발에 기대고 나를 응시한다. 경이로 가득한 눈빛. 왜 그러느냐는 듯한 눈빛. 독수리가 저 멀리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 P318

나와 와이라……. 우리의 관계는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다. 서로를 믿는 법을 배우고 그 믿음을 부서뜨리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도 부서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 덕분에 난 더욱 강해졌다. 그럴 때마다 와이라를 좀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이 관계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앞으로 또 이런 관계가 형성되리라고 감히 바랄 수 없을 것 같다. - P343

떠난다고 해서 실패는 아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을 하기로 선택한다면 말이다. 다행히도 나는 선택할 수 있다. 특권이 남긴 선물이다. 와이라는 선택조차도 할 수 없다. 그러니나는 결코 부서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에 의문을 품기로 선택했다. 결혼 그리고 성공의 의미.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자본주의,
종차별주의를 비롯한 ‘주의‘들. 이러한 파멸을 떠받치는 것들. 나를 나 자신과 나의 욕망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만든 모든 것들. 수많은 사람을, 수많은 집을, 수많은 동물을 다치게 한 모든 것들. 그것들에 의문을 품고 맞서 싸우기로 선택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어떻게 와이라의 얼굴을 다시 볼 수가 있겠는가? - P351

"와이라는…" 찰리가 멈칫한다. 와이라가 눈 깜짝할 사이에 파투후 숲에서 뛰어나왔다. 그러고는 굉장히 빠르게 달린다. 무슨 일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만큼 순식간에 움직인다. 전과 다르게 달리고전과 다르게 보인다. 와이라는...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와이라는 로프에 묶이지 않은 채 달리고 있다. 로프는 물론이고 모퉁이에서 몸을 가로막는 철조망도 없다. 그저 달리고 있다. 와이라를 처을 보았을 때가 기억난다. 그 몸이 얼마나 짓눌린 것처럼 보였던지. 하지만 케이지 밖으로 나가 오솔길에 서면 놀랄 만큼 거대했다. 부풀어 오른 것 같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보다 천배는 더커진 것 같다. 입을 떡 벌리고 와이라를 바라본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꼼짝도 할 수 없다.
그때 찰리가 나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와이라가 우리를향해 전속력으로 뛰어오고 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커다태진 두 눈은 흥분으로 가득 찼다. 나의 심장이 아드레날린으로 고동친다. 로프에서 벗어난 퓨마가 우리를 향해 곧장 달려오고 있다. 그런데 몇 미터 앞에서 속도를 늦추더니 내 다리에 머리를 들이민다. 혹여나 뛰어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를 막을 작정으로 두팔을 내밀었다. 하지만 와이라는 그저 나를 핥기 시작한다. 나는 곧바로 앉는다. 와이라가 내 팔과 손을 핥으며 가슴에 몸을 기대온다. 그러더니 가르랑거린다. 평상시에 가르랑거릴 때에는 얼마 안 돼서 소리가 멎기 일쑤였다. 그리 좋지 않은 세상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이. 그런데 지금은, 계속해서 가르랑대고 있다.  - P429

나는 현기증을 느끼며 웃는다. 와이라는 차분해지더니햇살 아래서 잠이 든다. 우리 둘은 부러진 통나무에 앉는다. 이제야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누른다.
"올라, 로라?"
"네나."
"시, 토도 비엔(그래요, 괜찮아요)?"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네나의 음성에 불안과 긴장감이 팽팽하다. "케파소(어떻게 됐어요)?"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네나, 와이리타 에스타 엔라 누에바 하울라(와이라가 새 방사장 안에 있어요)."
"¿엔 세리오(정말이에요)?" 치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네나가 외친다.
"시(네)." 나는 끄덕인다.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다.
"아, 로라." 네나의 목소리가 나직하다. "에야 에스 펠리스(행복해 보여요)?"
"시" 안심과 놀라움, 자랑스러움과 믿기지 않음. 이 모든 감정이 아우성치는 통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을 지경이다. 나 자신의 말조차 가까스로 들린다. 와이라는 행복하다. 행복하다. "와이라 에스펠리스(와이라는 행복해요)." 그리고 우리 둘 다 울음을 터뜨린다. - P431

ONCA는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는 번성 중이다.
ONCA의 운영팀은 날마다 내게 깊은 인상을 준다. 나는 그들을 온마음을 다해 사랑한다. 내가 슬플 때마다 그들은 우리의 상상력이 충분히 드넓은 한 세상의 경계를 확장할 수 있음을 상기하도록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파르케에서 찾은 희망이기도 하다. 파르케는 그 시초가 된 볼리비아 자원봉사자들의 상상력과 용기와 의지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르케는 뾰족한 막대기와 칼 그리고 영웅 한 명이 아니라, 가방과 장바구니와 그릇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생각은 내 여정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 한 작가, 어슐러 K. 르 귄에게 빌린 것이다. 1986년에 발표한 선구적인 에세이<소설판 장바구니 이론 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에서 르 귄은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말한다. 영웅 한 명이 맞서야 하는 폭력에서 벗어나 협동과 발효, 협력과 연결로 나아가는 것. 나에게 파르케는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진 곳이다.
우리가 나란히 ‘발효‘되는 곳, 사람만이 아닌 동물들도, 그들이 무슨 종이든, 어떤 이야기를 지녔든, 어떤 방식으로 부서졌든, 집을 찾는곳. 우리 모두가 함께 출렁이며 중요한 연결을 만들어가는 곳. 변화를 몰고 오는 건 연결이니까. 그렇지 않은가? - P440

이제 깃털처럼 가벼워진 배낭을 맨다. 문밖을 나가기 전에마지막으로 방 안을 한참 바라본다. 바라건대 내년 이 무렵에도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건대 너무 늦지 않게 조금은 늪에 빠질 수 있기를. 그리고 바라건대, 정말로 바라건대 그때에도 정글이 암녹색으로 변하는 길목에서 와이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를. - P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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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통화사>는 지난 세기 동안 발생한 모든 심각한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통화 정책의 실패에 있다고 주장한다. 케인스나케인스주의자들이 말하는 유효 수요의 부족에서 오는 경기 침체나 인플레이션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경기 부양책인 정부지출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또한 흥미로운 것은, 프리드먼의 이런 주장으로 어부지리 이득을 얻은 집단이 있다. 그것은 기존에임금 인상 투쟁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노동조합이 면죄부를 받았다는 것이다. - P466

이처럼 화폐의 강력한 힘을 입증하고, 화폐수량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다음, 통화주의자들은 정부 지출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수 있다고 주장하는 케인스주의자들에게 일대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케인스라는 거인을 쓰러뜨리기 위해, 이제 그들은 케인스의 승수가 제로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통화주의자들은 케인스가 다음과 같은 중대한 질문을 교묘히 피해갔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재정 지출에 필요한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만일 화폐 공급이 일정하고, 정부가 돈을 지출한다면, 다른 사람이 쓸수 있는 돈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세상에 공짜free lunch 는 없다. 만일 연방 의회가 정부의 재정 지출 정책에 필요한 돈을 확보하기 위해세금 인상안을 통과한다면, 소비자의 수중에서는 세금이 인상된 만큼재화와 용역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이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만일 연방의회가 정부 보유 채권을 개인이나 은행 등 기관에 판매함으로써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을 줄인다면, 기업은 그만큼 투자에 필요한 돈을 빌릴 수 없게 된다. 금리가 오르면 투자는 위축된다. 정부 지출이 민간 지출을 저해한다. 케인스 이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승수는 이것을 간과하고 있다.
물론 케인스주의자들은 정부 지출이 갖는 이런 상쇄 효과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 분야는 그들의 주요 종목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이런 상쇄 효과가 정부 지출, 특히 경기 침체기에 그것의 효과를 완전히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사실 문제는 이런 상쇄 효과의 범위에 있다.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연방준비은행은 통화주의의 원칙에 기초해 계량경제학적 모델 하나를 내놓았다. 이 모델은연방 정부가 매년 10억 달러씩 정부 지출을 늘려간다고 할 경우, 첫해에 경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그 이후부터는 아예 아무런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데이터 리소스 모델 DataResources Model 이라 불리는 이 모델은 케인스주의에 더 가까운데, 첫해에 승수는 약 1.6이고, 이후부터 계속해서 떨어진다고 계산했다. 케인스주의 모델조차도 케인스가 자신의 사례, 즉 승수 효과를 너무 강조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 P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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