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 저널리즘/리얼리즘 -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 20여 년 기자 경력의 현직 사회부장이 들려주는 저널리즘의 생생한 속사정
김정훈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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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저널리즘 리얼리즘』에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이란 표제어를 수식하는 문구와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이라는 부제로 앞뒤로 달려 있어 무엇을 이야기하는 책인지 다소 헷갈리게 한다. 핵심어는 '저널리즘'이겠지만 '리얼리즘'이란 단어를 붙여 저널리즘과 리얼리즘의 관계를 먼저 풀어보려는 의도일 것으로 추정되기는 하지만 수식하는 문구 '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이란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을 한데 묶어 모호하게 한다. 기자 경력 20여 년의 현직 사회부장으로서 제목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는 저자 김정훈은 왜 혼란스러운 제목의 책을 썼을까? 자칫 제목만 보아서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언론과 분리될 수 없는 당신에게」란 제목의 〈서문〉을 여는 순간 '저널리즘'을 말하기 위한 책이라는 걸 이내 알아차릴 수 있다. "저널리즘을 내건 이 책이 당신에게 닿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많은 이가 저널리즘을 폄하하고, 특히 레거시 미디어*를 외면하는 요즘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사람들은 갈수록 뉴스를 믿지 않습니다. 뉴스를 만드는 기자는 조롱받기 일쑤이지요. 권력 놀음을 했던 흑역사가 있었으니, 언론의 침강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면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언론이 왜소해지는 현실에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전면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을 테니까요. 이미 우리 사회에 건전한 토론이 사라져 가고 있고, 민주주의도 힘을 잃어 갑니다. 이대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해 보면 끔찍합니다. 모두가 정의를 얘기하지만, 종국엔 그 모두가 정의롭지 않게 되는 세상 속에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생각을 하면 참담합니다."(p.9)


* 레거시(L egacy) 미디어 : 웹 기반의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에 견줘 전통적 미디어인 TV, 라디오, 신문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 레거시는 정보 시스템에서 낡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새로 제안하는 방식이나 기술을 부각하는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즉 레거시 미디어는 현재에도 여전히 사용되지만, 과거에 출시되었거나 개발된 오래된 대중매체를 지칭한다.(시사상식사전)


느닷없는 비상계엄령으로 전 국민을 불안과 공포를 몰아넣은 윤석열 정권은 탄핵되고, 파면되었다. 헌법에 정해진 절자대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여야는 바뀌고 비상계엄령을 옹호하거나 탄핵을 반대하던 당시 여당은 야당이 되었지만 아직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워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당내 분열로 소수당인 당력마저 한데 모으지 못하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계엄 6개월만에 완전히 뒤바뀐 정국이다. 

이 책은 현 정국의 틈에서 기존 언론의 한 언론인으로서 한 번쯤 성찰해볼 문제를 짚어내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이 언론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저자는 "사상 초유의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진 2024년과 2025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다 보면 다시 언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집필의 전제를 내세운다. 비정상이 이어질 때는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려내기 위해서는 합리적 판단 기준이 필요하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언론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책을 집필했다고 말한다.

지금은 비상계엄령의 여파로 생긴 혼란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듯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당장 닥친 민생 경제의 회복과 민주주의 회복력을 세계를 향해 외쳐 달라고 야당인 민주당에게 표를 몰아주어 민생을 꼭 챙겨 줄 것을 당부했다. 아직 20일도 안 된 새 정부가 소기의 성과를 내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모자란 탓에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저자의 언론 성찰은 뒤늦게라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독자로서는 판단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묻는다. 이제 ‘언론이 더 잘 하겠다’는 다짐만 있으면 될까요? 그리고 답한다. "언론에 대한 규탄과 이에 따른 성찰만으로는 미사여구로 치장된 장밋빛 청사진은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낡고 금이 간 그릇을 올바로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의 하나는 이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손쉬운 욕지거리만으로는 문제를 푸는 첫 단추도 꿸 수 없습니다.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지적으로는 변화를 일으킬 수도 없습니다. 잘 알게 되면 그때에서야 비로소 분명한 비판의 지점이 보일 것입니다. 알게 되면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습니다."(p.9~10)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는 말(서문)〉과 〈맺는 말〉을 제외하면 6장이다. 2장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 3장 〈밋밋한 현실 어딘가에 있나, 흰 까마귀〉, 4장 〈사실과 진실, 참과 거짓의 뫼비우스 띠〉, 5장 〈이해와 소통의 폭 넓히는 커뮤니케이션〉, 6장 〈알다가도 모를 한 길 사람 속을 향해〉, 7장 〈저널리즘 심폐소생, 정죄와 자조를 넘어〉 등이다. 2장에는 저자가 CBS의 기자로 입사해 20년 동안 근무하며 느낀 CBS 기자로서의 생활, 자신의 언론관, 우리 언론의 현실 등으로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기독교방송'이라는 종교 언론으로 시작했지만 방송 본연의 정도 보도를 위한 기본적 체계는 시작부터 잘 갖춰진 방송국이었다.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상업 방송처럼 기업의 압박을 받지 않는 정도 언론을 표방했고 이 기조를 잘 지켜냈다는 CBS 기자로서의 자긍심도 담겨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정부 측 지분이 있어 어떻게든 정권의 영향력 아래 놓이거나, 특정 기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해당 기업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거나, 경영권이 사주 일가 안에서만 대물림되거나 하는 모습을 띠는 게 일반적입니다. 각기, 기자들이 자유 의지를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지요."(p.29)

저자는 CBS 기자 경력 20여 년 동안 비교적 눈치 보지 않고, 압력도 적은 기자 본연의 자세를 지켜온 데에는 앞서 지적한 권려과 경영주, 광고주의 압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 가능했다는 자긍심을 자신의 CBS 기자 경력 동안 충분히 저널리스트로서의 긍지를 갖게 해주었다는 말을 놓치지 않는다. 이는 상대적으로 그런 배경의 언론사는 자사 이익이 먼저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도'를 걷기 어려웠다는 상황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3장에서는 '흰 까마귀'를 등장시켜 대한민국 언론 역사를 조망하고 역사의 분기점마다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현실을 지적해 낸다. 여기서 흰 까마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서 도출한 비유적 표현이다. "검은 까마귀 세 마리를 보았다고 해서 모든 까마귀가 다 검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흰 까마귀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우리는 모든 까마귀가 검은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다."라고 쓴 것을 인용하고 있다. 수많은 검은색 까마귀와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는 흰색 까마귀 속에서도, 세상에 흰 까마귀는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저자가 흰 까마귀를 인용한 것은 12·3 내란 사태 국면에도 충격적 깨우침에서 비롯된 비유다. 

저자는 12·3 비상계엄을 '느닷없는' '불시에' '예상치 못한' 계엄으로 본 것이다.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닌데 광주 5·18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계엄에 대한 비유적 표현을 쓴 것이다. 사실 12·3 비상계엄 당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설마' '갑자기?' '전쟁?' 등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는 것을 화면으로 지켜보면서도 믿지 않았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설마 가짜 뉴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 이 점에 있어 저자도 귀가하려고 운전하다가 동료로부터 '비상계엄'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독자도 TV를 보면서도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난다. 북한이 전쟁을 시작했나? 하는 두려움을 안은 채··· 저자도 너무나도 황당한 소식을 믿지 못해 휴대전화로 TV화면을 보았더니 믿기지 않은 사실이 눈앞에 펼쳐졌다고 밝힌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12·3 내란 사태는 저자에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그 모든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교훈을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흰 까마귀'로 비유한 표현이 등장한 이유다.

"결국 그는 권좌에서 끌어내려졌자만, 독재자 윤석열의 망동과 계엄 선포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세계관을 교정해야 할 정도의 충격을 남겼습니다. 사실 김민석, 김병주 의원 등이 사전에 계엄령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할 때만 해도 과격한 주장 정도로 흘려들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고쳐야 했다.


'비상계엄령'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은 '5·18 광주'다. 12·3 이전 마지막 비상계엄이기도 하고, 어느 때보다 선량한 시민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5·18은 신군부의 쿠데타를 정당화시키고 국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시민 학살'에 다름 아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광주 시민이나 호남 사람들, 심지어는 5·18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침묵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신군부를 비방하거나 희생된 아들 딸에 관한 이야기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서슬 퍼런 신군부가 계획대로 정권을 잡고 헌법을 고쳐 7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되며 국정을 장악했다. 그들 앞에서 광주 시민들은 죄인이었고, 언론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일부 떠드는 사람은 일부 국회의원의 발언을 통해 있었지만 그것도 면책 발언이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전두환 아래서는 말 그대로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광주에서조차 5·18에 관한 말은 활발하지 못했다.

저자는 노무현 정권 때인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문재인 정권 때인 2017년에는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돼 추가적인 진실 규명에 나섰을 때 계엄군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한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영, 이희성 등의 목소리가 아니라 광주 거리에서 총을 들었던, 시민들을 향해 실제 방아쇠를 당겼던 그 계엄군들의 목소리 말이다. 실제 게엄군의 목소리는 그때까지 듣기 어려웠기 때문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저자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상황이 가장 궁금했다고 털어놓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묘사되던 전남도청 앞 발포 상황을 가리킨다. 그때 현장에 있던 한 계엄군의 목소리를 여기에서 전한다.

"학생 시민들하고 대치하고 있는데, 시민들 쪽에서 화염병 하나가 날아오더라고. 그게 하필 장갑차 아래로 굴러 들어갔어. 근데 장갑차는 기름 탱크가 아래에 있단 말이야. 그래서 그 상황에 차가 터질까 봐 급히 장갑차를 후진했는데, 마침 뒤에서 졸고 있던 ○○○(장교)가 눈이 뒤집히면서 기관총을 빠바박 쏘더라고. 그렇게 발포된 거지."

그러나 장교가 하늘을 향해 기관총을 쐈는지 시민들을 향해 쐈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책에 기술하고 있다. 다만, 첨예한 대립 속 팽팽한 긴장감을 깨고 울리던 총성에 다른 총구에서도 연이어 불꽃이 튀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아직 현직에 있지만 이번 비상계엄령 이후 달라진 언론 환경에서 성찰하고 다짐해 다시 언론의 정론을 지키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올곧은 기자의 길을 걸어온 분으로서 기자라는 명함을 갖고 살아온 20여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언론계의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고자 노력한 모습으로 독자에게는 기대감을 준다. 또 이 문제를 동료들과 함께 공유하고 고민함으로써 올바른 기자상을 세우고, 언론사 측의 각성도 촉구하는 의미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 훌륭하지도 않고 혁혁한 성과와도 거리가 먼 저의 담백한 고백을 녹여, 언론계에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고민과 과제 등을 솔직히 적어 보았습니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낯선 언론 내부를 여실하고도 넉넉히 반영하려 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동료 기자들을 향한 제안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올바른 당위를 바로 세우고, 위기를 벗어날 돌파구를 함께 찾아보자는 요청입니다. 대중의 외면과 수익성 하락, 기술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각자도생하기보다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언론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책임은 우리 스스로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에 머리를 맞대고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책은 언론과 관계하는 업무 종사자들, 그리고 언론 지망생들을 위한 길라잡이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염두에 두고, 기자라는 직업인과 언론 현장을 가능한 한 생생히 묘사하려 노력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언론에 친숙함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제가 목표한 바는 거의 달성하는 셈입니다. 이 모두를 위해 취재와 보도의 원칙뿐만 아니라, 진짜와 가짜, 사실과 진실을 가리는 작업의 난해함, 주관적 인지 편향과 이로 인한 갈등, 미디어 및 기술의 환경 변화, 그리고 언론의 수익 모델 등을 두루 짚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독자, 기자, 지망생 등 언론과 떨어져 살 수 없는 모든 이들을 향한 언론의 자화상입니다. 이를 보고 기자와 언론을 이해해 주시고 따끔히 지적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가운데 다시 기대와 희망이 생겨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네요.

책은 앞선 현자(賢者)들의 다양한 글들을 종종 인용했습니다. 제 생각의 깊이가 도저히 그들을 따를 수 없는 탓입니다. 제가 탄복해 마지않던 그들의 지혜를, 독자 여러분과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언론 일반에 관한 글임에도 제 성장 과정과 제가 속한 언론사에 대한 이야기로 글문을 열겠습니다. 저널리즘을 두고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는데, 제가 가진 시각이 그 연원부터 더 잘 이해되기를 바라는 취지입니다."(p.10~11)


저자 : 김정훈


2003년 CBS에 입사한 뒤 정치부·사회부·경제부·산업부·뉴미디어팀 등에서 취재 보도를 이어왔다. 또 노동조합과 기획조정실을 거쳤고, 〈김현정의 뉴스쇼〉 팀에 파견돼 PD와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경험도 익혔다. 현재 보도국 사회부장으로, 저널리즘의 쇠락을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행정언론대학원(언론학 석사)

· 美 위스콘신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연구원

·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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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곳에 절대 천국은 없습니다
장대은 지음 / 퍼스트펭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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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 역사상 유명 인물들이 성경에 대해 극찬한 말들은 의외로 많다. 이 책 『도망친 곳에 절대 천국은 없습니다』를 펴낸 출판사 측은 레프 톨스토이, 임마누엘 칸트, 에이브러햄 링컨, 존 애덤스, 레이 달리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로 책 소개를 시작한다. 앞선 인사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성경을 자신의 삶 속 나침반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서양 문명은 사실 성경에 의해 새로 시작되었다고 봐도 틀림이 없을 듯하다. 오늘날 가장 선진 문명을 구가한 곳이 유럽 지역이다 보니 당연히 그들의 종교에 대해 맹신적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사실 그럴 만한 이유도 역사상으로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서양 문명의 원류는 그리스 문명이라고 배웠고, 사실 그렇게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 문명이 가장 먼저일까? 굳게 믿었던 그리스 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문학의 원형이라고 추켜 세웠던 그리스 신화의 전설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의해 상당 부분 깨졌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그리스 문명의 '신화'는 수메르의 점토판이 발견되면서 무너졌다. 수메르 문명은 기원전 4.000년경 이미 〈길가메시〉란 영웅에 관한 신화가 있었다. 20세기 들어 발견된 문명 발상지에서 발굴한 점토판의 문자는 그리스 문명보다 앞선 것으로 판독되었다. 〈길가메시〉는 우리가 배웠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보다 무려 1,000년을 앞당겼다.

그리스를 멸망시키고 유럽 전역을 통일한 로마 제국은 그리스 문명을 동경했다. 그리스인들의 앞선 문명, 학술 등 거의 모든 것을 그대로 가져와 로마식으로 바꿨다. 다만 제국의 틀을 만들어가기 위한 도로 확장, 법 정비 등은 완전히 새로 바꾸었다 할 정도로 정비했다. 혁명적이었다고 해도 괜찮을 듯싶다. 그리스처럼 로마 제국도 다신교 사회였다. 때문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번성하던 로마 제국은 정복된 이민족의 종교를 그대로 인정했다. 이를 테면 유대인들의 종교도 인정하고 탄압하지 않았다. 정복자의 아래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고 연명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자신들이 믿던 유일신을 믿고,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하는 교리에 따라 정복자 로마에게는 용서치 못할 반역의 무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세상을 떠돌아 다니며 살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신앙심은 대단했다. 무려 2,000년을 전 세계로 떠돌아다녔지만, 결코 유대인의 정체성은 숨기지 않았다.


《성경》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나뉜다. 굳이 교회나 성당을 다니지 않는 비종교인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또 이 구별은 예수의 탄생으로부터 갈린다. 예수는 당시 나사렛이라는 유대인 지역의 한 마을이다. 예수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핍박 받지는 않았으나 차츰 제자들을 비롯, 세가 강해지니 로마 정복자들에게는 위험 인물로 지목되었던 듯하다. 선동해 피정복자들의 '반 로마' 의식을 강화시킨다는 이유다. 예수는 결국 로마 제국으로부터 선량한 양민을 부추겨 반란을 꾀할 수 있는 위험인물로 재판에 넘겨지고 결국은 십자가형을 받는다. 그의 나이 33세였을 때의 일이다. 유대인 마을에서 일어난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할 로마인들에게 예수는 이내 잊혀졌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세상을 떠돌며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과 예수의 일생 등을 문자로 적어 널리 알린 것이 오늘날 『신약성서』로 불리우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경전 중 4세기 로마 가톨릭 교회가 집대성한 정경(正經). 보통 ‘신약(새로운 약속이라는 뜻)으로 약칭된다. 예수그리스도의 언행을 기록한 4권의 복음서(마태오·마르코·루가·요한의 복음서), 그 제자들의 전도행각에 관한 기록(사도행전), 여러 사도들의 편지글(서간서) 및 예언서(요한의 묵시록) 등 27서(書)로 구성되어 있다. 전부 그리스어로 쓰여 있다. 신약성서는 예수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 죄에 빠져 허덕이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로 약속하였다는 신앙으로 일관되어 있다. 모두가 1세기경에 쓰였는데, 최종적으로 오늘의 형태로 정경화(正經化)한 것은 397년의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였다. 하느님이 구약성서에서 약속한 인류 구원을 신약성서에서 성취하였다고 볼 수 있다.(두산백과)

구약성서(Old Testament)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함께 경전으로 인정하는 종교문서이지만, 헤브라이어로 쓰여진 24권의 책들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면서 39권으로 재편집한 것들이다. 사마리아인들은 구약성서 최초의 5권의 책, 즉 〈모세 5경〉만을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외경을 구약성서와 동등한 권위로 수용하였다고 한다. 구약의 제1부인 토라(Torah), 즉 모세 5경은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를 말한다. 모세의 저작으로 알려졌으나, 후대의 편집과정을 거쳐 BC 586년 바벨론 포로 이후 현재의 형태로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크리스찬도 아닌 비종교인인 독자가 《성경》을 이야기하다 보니 말이 장황해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서양의 유명 인물들은 그들의 세상이 오랫동안 기독교 문명이었다는 점은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사실 기독교 문명이 이처럼 발전한 것도 로마 제국의 영향이 크다. 로마 제국은 엄청난 영토와 정복지에서 약탈한 전리품과 세금 등으로 초호화 사치에 빠졌다. 그들의 건축 문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콜로세움 등 각종 건축물, 그들이 즐겨했던 각종 문화 시설에서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천년 제국은 없다는 말처럼 그들 제국의 영화는 4세기말부터 서서히 붕괴조짐을 보이다 결국 475년쯤 동·서 로마로 갈라지고 서로마 제국은 멸망한다. 이후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정한 동로마제국은 1,000년간 유지되다 이슬람 문명권의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완전히 역사에서 사라진다. 서로마 제국은 제각각 살 길을 찾아 여러 나라로 갈라지고 각각의 왕조가 들어선다. 이들은 모두 로마 문명에 익숙해 있지만 로마 멸망 후 마땅한 구심점이 없었다. 그러나 로마 멸망 전인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는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하여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끝내고 사실상 정식 종교로 공인했다. 또한 교회의 압류된 재산을 돌려 주고 이에 대한 국가의 보상을 정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또한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기독교의 발전에도 기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독교가 구심점이 되었다. 대제국이 붕괴되자 로마 이전으로 되돌아가기에는 각지의 어떤 나라도, 종족도 조그만 공동체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정복 전쟁을 시도할 마땅한 인물도 없었던 듯하다. 결국 기독교를 중심으로 교황을 추대하는 등 그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구심점이 된다. 이른바 성직자들로 구성된 교황청은 막강한 권력이 손에 쥐어진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도 서양인들이 만든 말인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오래지 않아 교황청은 부패한다. 성직자와 사제들이 일반 국가 관료들도 쉽게 하지 못할 부정과 부패로 타락한다. 심지어는 매춘업소도 운영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중동에서 이슬람 세력이 등장하고 발전하더니 결국 11세기 들어서는 양 세력간 전쟁으로 치닫는다. 200년에 걸친 십자군전쟁의 발발이다.


별 전과 없이 200년간 전쟁을 치르다 보니 교황청은 더욱 부패해진다. 전쟁을 하느라 돈을 탕진했고, 각 나라에서 각각 준비한 전쟁 자금도 바닥이 났으니 교황청 운영도 힘들었던 것 같다. 면벌부를 판매하는 해괴한 방법으로 돈을 챙기는 등 성직자들이 맞나 싶다. 서양의 각 나라들은 종교 혁명을 감행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수십 년 간은 흑사병 창궐로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받았다. 그러나 '신들의 나라'라는 중세는 다행히 인간 중심의 문화로 바뀌면서 차츰 안정을 찾는다.(르네상스) 각 나라끼리 전쟁을 치르년서도 서양 전체가 전쟁에 휩싸이지는 않는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덕분에 인문학과 예술이 발전하며 발전의 바퀴를 굴리기 시작한다. 18세기 식민지 미국이 독립전쟁을 통해 북아메리카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로 우뚝 섰고, 유럽은 산업혁명을 이끌어내며 식민지에서 수탈한 자원과 금·은으로 학문과 과학을 발달시킨다. 근대화된 서양은 이젠 지구상에 더 이상의 적은 없다고 판단했는지 모른다. 지구의 끝과 끝을 알아냈고, 자신들보다 우월한 문명은 없다는 점도 확인했을 것이다. 

이때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명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고, 학문 역시 가장 앞섰다고 판단하지만 뿌리 깊은 의식인지 기독교에서의 신과 성경 등의 가르침은 철저히 따랐다. 다음의 인물들은 모두 근대에 활동했던 분들이고 기독교 문명에 살았던 인사들이다.


“성경은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책이다.” - 레프 톨스토이

“성경은 모르는 자는 세계를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 임마누엘 칸트

“이 책이 없었다면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에이브러햄 링컨

“성경에는 전 세계의 도서관보다도 더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 존 애덤스

“나는 이 책을 통해 도덕적 가치관과 투자 철학의 기초를 세웠다.” - 레이 달리오



문학, 철학, 정치, 경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이들이 이토록 성경을 극찬한 이유는 명료하다. 인내, 자존, 용서, 회복, 공감, 결단 같은 삶의 핵심 요소를 인물의 이야기로 들려줌으로써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는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바벨탑 이야기는 진정한 소통의 중요성을, 모세와 형 아론의 이야기는 현명한 인간관계를 지켜낼 수 있는 혜안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눈을 신경 쓰느라 진짜 나의 삶을 놓치며 산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대로 사느라 정작 소중한 것을 챙기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 위한 답과 방식은 하나다. ‘스스로 삶의 목적지를 결정하고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것.’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덮이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자유로움과 기쁨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이 책 『도망친 곳에 절대 천국은 없습니다』의 저자 장대은은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란 제목의 〈서문〉에서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고, 방황하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 앞에 서서 좌절하기도 한다. 막막한 마음에 두려움도 느낀다."고 전제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지혜'라고 저자는 말한다. "지혜는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헤쳐나가기 위해 필요한 나침반과도 같다. 한 치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인생길 위애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언제 멈추고 돌아서야 할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p.5)

저자에 따르면 인류가 시작된 이후에 가장 많이 읽힌 글이 바로 성경이다. 성경은 지난 3,000년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글이다.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답을 찾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성경을 읽었다. 성경은 단순히 아름답고 비유적인 말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에게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가르침을 보여준다고 믿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정의와 공평, 정직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를 가르치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도망이 아닌 직면으로, 포기가 아닌 회복으로"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우리에게 늘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반대로 오래되어서 더 유효한 진리가 있다. 바로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과 통찰을 주는 성경 속 문장들이다. 톨스토이, 칸트, 마터 테레사, 마틴 루터 킹, 빅터 프랭클처럼 각 시대를 이끌었던 현자들은 물론이고 지금도 전 세계 수천만 독자들이 성경 속 문장으로 마음을 다잡고 온전한 스스로의 삶을 향해 당당히 뛰어들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은 절대자에 대한 믿음 너머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용기를 준다.” 그렇다. 진실된 믿음은 자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내면의 힘에 대한 존중이자 의지이며 진짜 삶에 뛰어드는 결단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 단단해질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변화될 수 있다.


"우리가 40대든 50대든 오늘이라는 시간은 새로운 시작을 꿈꾸기에 결코 늦은 때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도전에 대한 열정입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계속 일하더라도, 충분히 새로운 관점과 접근 방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난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고 우리만의 특별한 통찰력을 활용하여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젊음의 힘과 연륜의 지혜,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진 40대. 우리는 이 독특한 시간의 가치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p.218)


저자 : 장대은


1998년 이후 25년간 독서, 글쓰기, 질문법을 통해 인간의 변화와 성숙의 마스터 키 ‘트라비움의 사고역량’을 세워가기 위한 강의, 교재 편찬, 책 저술에 힘써왔다. 저서로는 《십진분류독서법》(청림출판), 《새벽에 읽는 유대인 인생특강》(비지니스북스), 《트라비움 일상수업》(평단), 《유대인의 글쓰기》(유노북스), 《어휘력사전》, 《아포리즘》(이상 프로비9), 《트라비움 다이어리》(큐티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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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철학서 - 철학적 사유를 넘어 삶의 방식과 태도를 알려주는 위대한 문장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노윤기 옮김 / 페이지2(page2)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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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황제의 철학서』라는 표제어만으로도 누구의 어떤 책인지 독자들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책이름은 『명상록』(Meditations)이고, 저자는 로마제국의 제16대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황제 철학자는 인류 역사상 한 명뿐이다. 전쟁과 역병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살아가며 아우렐리우스는 흔들리지 않는 이성적 태도로 로마제국을 이끌었고, 매 순간 스스로에게 깊이 있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가 남긴 질문과 답은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삶의 덕목과 태도에 대한 본질적 통찰을 전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은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명성을 남기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죽음 후에는 잊히길 바랐다. 하지만 그의 사색과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지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황제의 철학서』는 원문의 깊이와 사색을 고스란히 담아 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독자들에게 일상의 위기와 갈등 속에서 자신만의 평온과 중심을 지키는 실질적인 방법을 제공하며, 철학적 감동과 명료한 깨달음을 함께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우렐리우스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늘 권력 이상의 도덕적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다.

삶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과 갈등, 시련, 다른 이들의 평가, 갈수록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는 우리를 끊임없이 흔들어 놓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러한 혼돈을 피하려고 멀리 떠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저 눈을 감으면 충분하다고. “너의 요새가 되고 안식처가 되는 곳은 정념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이어야 한다. 그보다 강력하고 튼튼한 피난처는 어디에도 없다.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며, 이를 알고도 그곳을 피난처로 삼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이처럼 그는 혼란을 극복하는 열쇠는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견고히 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심지어 전쟁터의 위험 속에서도 자신만의 내적 안식처를 찾으며 “사람들이 물러나 앉을 장소는 자신의 영혼 외에는 없다.”고 기록했다. 외부의 소음과 혼란에 휩쓸리지 않고 내면의 고요와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임을 강조한다. 황제의 철학은 독자들이 삶의 소란과 혼돈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온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타인의 인정과 평가를 갈구하며 지쳐 간다. 불행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가치는 외부의 인정에 달려 있지 않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남은 생을 타인에 대한 생각이나 공상으로 낭비하지 마라.”고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깊이 바라보고 스스로의 기준을 세워 충실하게 살아갈 때 비로소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조용하고도 단단한 사람이 된다는 것. 

"인간은 자신의 생이 날마다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설사 오래 산다고 해도 지적인 능력이 얼마나 기능할지 알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만 한다. 지적인 능력은 일과 사업을 판단하고 깊이 사색하는 능력이며, 신성한 것과 세속의 일 모두에 관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중략) 너의 남은 생을 타인에 대한 생각이나 공상으로 낭비하지 마라. 그것이 공동선을 위한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이 더 나아지는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은 무엇을 도모하고 있는지를 고심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p.74, 3권 4장)

그는 또한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본래의 가치를 잃고 비루한 물건이 될까? 금과 상아와 진귀한 염료는 어떠한가? 흔히 보이는 꽃과 나무 같은 것들도 그러할까?”라며 외부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 것을 권한다. 자신의 기준이 확실하다면 타인의 판단이나 말에 흔들릴 이유가 없으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이 책은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초연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며, 각자가 자신만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스토아의 학도로서 로마 황제의 지위에 오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원래 노예였던 스토아의 철인 에픽테토스의 훈계를 명심하여 마음속까지 황제가 되지 않도록 항시 자신을 돌아보고, 로마에 있을 때나 게르만족을 치기 위해 진영에 나가 있을 때, 스스로를 경계하는 말을 그리스어로 꾸준히 기록하였다. 여기에는, 일체의 것이 끊임없이 생생유전(生生流轉)하고, 인생도 과객(過客)의 일시적 체재에 불과하여 우리를 지키고 인도하는 것은 오직 철학일 뿐, 그 철학이 인도하는 대로 자연의 본성에 알맞은 생활을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며 우리를 구제하는 길이라는 그의 신념을 끝없이 나타냈다.(두산백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던진 질문들은 특별히 이런 것들이다. 죽음은 무엇이고, 그 대척점으로서 삶은 무엇인가? 삶에서 필연은 무엇이고, 우연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학문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들은 누구라도 한번쯤 생각했을 혹은 생각함직한 것들이다. 이것들은 근본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이런 질문에 대한 깊은 사색과 성찰의 기록이다. 특히 전장에서 어떻게 이런 사유를 해냈을까를 생각하면 현인이자 철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대로 『명상록』은 사적인 일기, 즉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사적인 감상을 자신의 세계관, 즉 스토아철학의 기본틀 밑에서 표현하고 있는 일기이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은 자신과의 독백 형식이란 점에서 알 수 있다. 흔히 등장하는 2인칭 표현 '그대'는 물론 독자를 뜻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우렐리우스 자신이라고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명상록』은 애초에 책으로 계획되지도 않았다. 즉, 출판을 목적으로, 다시 말해 공중(公衆)에게 보여 줄 목적으로 씌어진 것이 아니다. '명상록'이라는 제목도 그리고 권수 및 절수의 표시도 아우렐리우스 사후 나중에 편집 과정에서 도입된 것이다.


이에 따라 『명상록』은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쓴 글이다. 따라서 글의 흐름은 비조직적이고 산발적이면서 단편적이다. 『명상록』은 철학 냄새는 물씬 풍기지만, 전형적인 철학 텍스트는 아니다. 철학 텍스트는 주로 논증적 또는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명상록』은 그렇지 않다. 일기는 논리적 구조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명상록』이 전쟁 막사에서 쓴 일기라고 보는 이유이다. 로마 황제 또는 그와 비슷한 신분의 사람이 게르만의 숲속 전쟁터에서 쓴 일기로는 『명상록』 외에도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가 전한다. 하지만 두 텍스트는 성격상 판이하게 다르다. 『갈리아 전기』는 전쟁과 정치이야기로만 점철되어 있다. 『갈리아 전기』는 일반 사회의 공중에게 카이사르 자신의 군사적·정치적 역량을 증명할 목적으로 씌어진 전쟁 기록물이다. 하지만 『명상록』은 전쟁터에서 씌어졌지만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깊은 성찰을 자기 자신과 나누는 일기이다.

이런 점에서 『명상록』은 영성적 문학 작품의 효시인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De imitatione Christi)』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유명해지자 『명상록』도 그제야 유명해지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다. 『명상록』은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파스칼(Blaise Pascal)3)의 『팡세(고백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책 맨 앞에 편집진이 썼을 법한 〈작품 소개〉에도 두 저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한다. 두 책 모두 절제라는 동일한 이상을 지향한다. 『그리스도를 본받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자신을 이겨 내야 하며, 자신보다 강해지는 것을 매일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욕망을 이겨 내는 곳에 진정한 마음의 평화가 깃든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무심하고 자기 주도적인 데 비해 기독교인들은 겸손하고 온유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현현과 개인적 체험을 중시하는, 다소 수동적인 신앙을 지녔다. 로만인들도 자신의 잘못을 엄정하게 고백하지만 기독교인도 로마인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하고 권고한다.


"앞서 말한 두 책 사이에는 한 가지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쓰인 책이라면, 『명상록』은 저자가 자기 자신을 향해 쓴 책이다. 전자에는 저자의 개인적인 삶이 전혀 묘사돼 있지 않으며, 독자들은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실천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p.23)

아우렐리우스는 일기처럼 전쟁터에서의 사유를 써내렸다. 살륙이 일상이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장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필에 열심인 황제가 쉽게 공감이 되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감성은 물론 냉정한 이성도 갖춘 철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주위와 우주까지 나아간 그의 사유는 마침내 "인생은 무엇인가?"에 이른다. 아우렐리우스에 따르면 인생은 하나의 연극이다. 연극의 무대는 이 우주 전체다. '나', 즉 자아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등장 인물이다. 한 사람의 인생사는 이미 신이 쓴 각본으로 씌어져 있다. 내가 삶의 과정에서 겪게 될 온갖 사건들은 각본에 의해 예고·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비극이라 부르는 사건은 이미 예고·결정된 것이기에 내가 절망할 필요도,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회적 직업과 역할로 인생을 살 것인지도 우주적 연출가인 신이 결정한다. 그것이 황제의 역할이든, 노예의 역할-예컨대, 에픽테토스이든, 전업 주부의 역할이든, 내게 맡겨진 역할과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배우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역할 이탈을 자제하면서 자기 역할을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충실히 소화하는 사람, 자기 자신을 주어진 배역에 완전히 일치시키는 연기를 보여 주는 사람이 좋은 배우이듯이, 신에 의해 주어진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완전히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의 인생이 '좋은' 인생, 즉 행복한 인생이다. 반대로 주어진 배역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불평불만을 하는 자는 나쁜 배우이다. 이런 사람은 연극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이다. 배우는 연출가에 의해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대해 불평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불평을 할 필요가 없다.


"누구도 탓하지 마라. 만일 네 힘으로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만일 할 수 없다면 불평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일은 반드시 어떤 목적을 갖고 행해져야 하기 때문이다."(p.217)


저자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공부에 열중했으며 뛰어난 자질을 나타내어 당시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아우렐리우스를 사랑했으며 그를 ‘가장 진실한 자(Verissus)’로 부르기도 했다. 아우렐리우스의 숙모 파우스티나와 그녀의 남편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는 아들이 없어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맞아들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고 이름 붙여 주고 그들의 후계자로 삼았다. 

138년 아우렐리우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의 양부(養父)인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이때부터 아우렐리우스는 미래의 황제로서 통치하는 법과 황제로서 해야 할 일들을 섹스투스, 루스티쿠스, 프론토 등에게 배운다. 139년 아우렐리우스는 피우스 황제의 후계자로 정해지고 황제의 딸 파우스티나와 약혼한다. 그 후 재무관과 집정관에 오르고 145년 24세 때 파우스티나와 결혼한다. 146년 장녀 안니아 카렐리아가 태어나고 이후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8명이 요절하고, 1남 4녀만이 남았다. 161년 40세 때 피우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가 뒤를 이어 즉위하고 의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이때부터 게르만족, 스키타이족 등 외적의 침략과 변방 야만족의 소란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페스트와 티베리스강의 범람으로 인한 기근 등으로 시련을 겪는다. 그러다 169년 공동 황제인 베루스가 죽고 게르마니아가 다시 공격해 오자 아우렐리우스는 다뉴브강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이때부터 이 책《명상록》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야만족과의 싸움과 카시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고 이 원정에서 아내 파우스티나를 잃는다. 그 후 북방의 전장에서 돌아오는 도중 페스트에 걸려 며칠 동안 앓다가 180년 3월 17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 노윤기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공기업에서 국제관계와 기업 홍보 업무를 보았으나 좋은 책을 읽고 소개하는 번역가의 업에 매료되어 바른번역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번역가가 되었다. 옮긴 책으로는 『군중의 망상』 『이 진리가 당신에게 닿기를』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옥스퍼드 튜토리얼』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 『남자의 미래』 『단순한 삶의 철학』 『커피의 모든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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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책 인문학 세계 고전
사사키 다케시 외 83명 지음, 윤철규 옮김 / 이다미디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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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1일 1책 인문학 세계 고전』을 읽기 전 문득 '고전'에 대한 의미에 대해 의문이 갔다. 무슨 책을 고전이라 할까? 수많은 책에 붙어 있는 '고전'은 무엇을 기준으로 정할까? 지금까지 읽은 '고전'이란 타이틀은 주로 '고전 문학'에서 주로 찾을 수 있다. 문학 작품 이외의 책, 이를 테면 정치·경제·사회에 관련된 인문학 서적은 무엇이라 할까? 생각하다 보니 단 한 번도 '고전'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적지 않은 고전을 읽어왔다. 학교에서 지정하거나 어느 단체에서 지정하거나 고전이란 책은 필독서처럼 받아들였다. 또 읽다보면 "이 책이 왜 고전으로 지정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저절로 해소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세계고전'은 단순히 범위만 넓혀 이른바 '양서'에 대한 지정일까? 얼핏 내용에 들어 있는 책들의 제목만 보아도 다 한 번 이상은 들어본 책들이다. 전부를 읽지는 못했어도, 몇 권은 또렷이 기억날 정도로 인상적이어서 이름이나 저자, 내용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들도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책이름이나 저자의 이름들은 보았던 게 거의 대부분이다. 

'고전'이란 서양에서 이름지어진 것이고,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예를 가리킨다. 근대의 서양고전학은 르네상스와 더불어 시작된다. 그리스 문학에 대해서는 이미 BC 3세기에, 당시 보존되고 있던 본문을 정리·분류한 알렉산드리아의 학자들의 업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학문의 연구는 새로 발견된 고전문학의 검토에 몰두하게 되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의 고전의 인쇄는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었으나, 이러한 고전 인쇄에 의하여, 고전 연구는 에라스뮈스 등이 창도한 인본주의적 교육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고 두산백과는 기술하고 있다.

이 경우 동양 고전은 해당되지 않을 듯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중국, 인도 등의 '고전'은 서양의 고전에 비해 수가 훨씬 적은 것 같다. 아마 고전이란 개념이 서양에서 이름지어져서 동양에 대해 다소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뿐만 아니라 각 나라별로도 '고전'의 수준으로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고전은 시대적으로 볼 때 20세기 중반까지 출판된 책들을 기준으로 하는 것 같다.


이 책 『1일 1책 인문학 세계 고전』은 2004년 초판이 출판된 이후 2015년 개정판을 출간하는 등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다. 이 책은 20년 만에 새로운 개정판이다. 그동안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는 모토 아래 너무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독자들의 지적이 있었던 터라 이번 개정판은 인문학 영역에만 집중하기로 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서양 고전의 인문학 버전으로 재출간하는 셈이다. 정치, 경제, 법 사상, 철학과 사상, 역사와 종교 등 전체 5장(章)으로 재분류해 인문학 영역의 대표적인 고전 61권을 수록했다. 인류 정신사의 골격을 이루는 명저의 다이제스트를 분야별, 시대별로 정리해 놓아 일독하는 것만으로도 인류 문명의 발달 과정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저자는 전 도쿄대학교 총장인 사사키 다케시를 비롯해 각 분야 최고의 교수 필진이 꼭 읽어야 할 서양 고전을 선정해 쉽고 정확한 해설로 정리했다. 여타 서적과는 달리 단순한 내용 요약에 그치지 않고, 저자의 저술 의도와 시사점, 시대 상황 등을 함께 설명함으로써 고전의 험한 산을 오르는 우리에게 충실한 가이드 역할을 해준다.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담소하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남겼다. 짧게는 몇십 년, 길게는 몇천 년 전에 살았던 위대한 현자들의 지식과 지혜를 집대성한 『1일 1책 인문학 세계고전』은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르침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많은 사람들이 고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① 고전은 왠지 어려울 것 같아서, ② 줄거리를 이미 다 알고 있어서, ③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여서’와 같은 이유로 읽기를 꺼린다. 사실 고전은 많게는 수천 년 전, 짧게는 수십 년 전에 쓰인 옛글이기 때문에 작품 안에 어떤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고전을 읽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다. 게다가 요즘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고전과 친해지기란 여간 쉽지 않다.


이 책의 카테고리를 5개 분야로 분류했다는 말은 앞서 언급한 대로다. 1장 〈정치〉, 2장 〈경제〉, 3장 〈법 사상〉, 4장 〈철학과 사상〉, 5장 〈역사와 종교〉 등이다. 독자의 눈에 띄는 책의 이름을 각 장마다 3~5개씩 짚어본다. 〈정치〉에서는 무엇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가장 앞에서 독자를 부른다. 「통치론」(존 로크), 「공산당 선언」(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국가와 혁명」(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고독한 군중」(데이비드 리스먼), 「후기 자본주의 정당성 연구」(위르겐 하버마스)가 보인다. 〈경제〉 분야에서는 「국부론」(애덤 스미스), 「정치경제학의 원리」(존 스튜어트 밀), 「자본론」(카를 마르크스),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이 눈에 띈다. 〈법 사상〉에서는 5개 장 가운데 가장 적은 8권이 수록돼 있지만 「법의 정신」(샤를 루이 드 세콩다 몽테스키외), 「로마 법의 정신」(루돌프 폰 예링) 등이 묵직한 언어로 법에 대한 논리를 펴고 있다.

4장 〈철학과 사상〉에는 「정신현상학」(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죽음에 이르는 병」(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 「역사와 계급의식」(죄르지 루카치), 「존재와 무」(장 폴 사르트르) 등 우리 일반 독자들도 많이 접했던 책이름과 저자들이 보인다. 마지막 〈역사와 종교〉에는 「갈리아 전기」(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리스도교의 자유에 대하여」(마르틴 루터), 「로마 제국 쇠망사」(에드워드 기번), 「역사의 연구」(아널드 토인비), 「제2차 세계대전」(윈스턴 처칠) 등이 낯익은 분들의 이름도 들어 있어 반갑다. 독자는 이미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지만 이 책의 절반은커녕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제대로 읽은 게 한 권도 없다는 편에 가깝다. 읽었어도 뚜렷한 목적의식도, 고전에 대한 개념도 안 된 상태에서 누군가 '좋은 책'이라고 소개하면 사 두고 조금 읽다가 만 것들이 많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책 읽는 사람이 드물 때라 책 읽는다는 건 편안한 직장, 정시에 퇴근 가능한 직장인 공무원이나 그에 준하는 직장 이외에는 보통 회사에서 7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별로 없어 바쁘다는 핑계는 책을 읽지 않은 것에 대한 매우 강력한 방어책이었을 때다.


이 책 『1일 1책 인문학 세계 고전』 차례를 들여다보다가 수록 목록에는 유난히 대학 다닐 때 금서였거나 지금은 잘 팔리지 않는다는 책의 이름이 많이 눈에 띈다. 독자는 산업화가 한창인 군부 독재 시절 대학에 다녔기 때문에 '공산주의'나 '마르크스'는 금기어였다. 당연히 그들의 책은 금서로 지정돼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힘들었다. 더욱이 독자는 데모에는 참여했지만 학생 운동권이 아니어서 금서를 굳이 읽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썼던 책도 금서로 지정되어 있는데, 공산주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마르크스의 책이라면 당연히 금서로 지정되었다. 불심검문에 걸려 가방 조사하다 그들이 말한 '불온서적'이 나온다면 매우 혹독한 곤욕을 치른다고 알려진 때였으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때 금서로 지정된 국내 도서로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이상 이영희) 등이 기억난다. 당시 대표적 진보학자인 한양대 교수 이영희는 몇 년 못 가 강제 해직되고, 다시 1980년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기도 했다.

이 책에는 공산주의 이론과 소련 공산당 건국 메이커들의 저서도 많이 눈에 띈다. 독자가 학교 다닐 때 읽지 못하고 접하지도 못했던 책들이라 더 눈에 쉽게 띄었다. 1장 〈정치〉에 『공산당 선언』, 『국가와 혁명』, 『영구혁명론』 등이다. 많은 독자들이 아다시피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블라드미르 레닌, 레온 트로츠키 등의 이름이 독자의 시선을 강하게 잡아 끈다. 이들 중 두 분은 2장 〈경제〉에서 다시 등장한다. 『자본론』의 마르크스와 『제국주의론』의 레닌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이론을 세워 확고히 했고, 실제 독일에서 혁명을 꾀하다 망명한다. 레닌은 골수 공산주의자로서 제정 러시아 말기 폭정과 부정부패로 붕괴 직전의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국내 사정의 악화(공산주의자들의 발호)로 전쟁에서 손을 떼고 본국으로 귀환했으나, 참전 용사들이 상당수 공산주의 혁명(10월 혁명)에 참여해 로마노프 왕조가 몰락하고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다. 레닌이 초대 지도자로 추대됐으며, 트로츠키는 혁명 주도 세력 3명 중 한 명이다. 그는 유대인 출신으로 나충 스탈린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 멕시코로 망명했다가 한때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애인이 된다. 그러나 암살로써 생을 마친다.


보통 저자가 〈서문〉을 쓰지만 2004년 초판이 출판되었기에 2025년 개정판에는 〈서문〉을 쓸 수가 없었던 듯하다. 대신 송자 전 연세대학교 총장의 〈추천사〉로 대신했다. 〈추천사〉에서 송자 전 총장은 "현대까지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책들은 그 시대의 현실을 명확히 규명하고, 그것을 토대로 인간이 가야 할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p.6) (중략) 이 책이 고전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에는 본질적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짧은 시간에 인류 정신사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쓰고 있다. 독자는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정치〉의 「공산당 선언」에 관심이 간다. 

10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요약문과 저자의 해설이 곁들여 비교적 쉽게 설명해 준다. 제목 바로 아래에 편집자 주(註)처럼 달린 한 문장이 있다. "구소련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국가들은 물론, 각국의 노동 운동에서 이론적인 지주의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현실적인 행동 지침서가 되기도 했다."(p.53)

책에 따르면 "한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공산당 선언』만큼 전 세계에 널리 읽히며 또한 현대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 정치적 문서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문서는 1959년까지 8개 국어로 출판되었다는 보고가 있는데, 사회주의 국가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존재 양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전체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제목으로, 계급 투쟁의 관점에서 역사를 되돌아보며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2대 계급이 역사 속에 등장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제1장의 첫 문장에는 이와 같은 유명하 구절이 적혀 있다. 실로 명쾌한 문장이다. 이 문장은 너무나 명쾌하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란 도대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인가. '계급 투쟁'이라는 말의 '계급'이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내용을 의미하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이같이 단정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이 책의 뒷 부분에 역자 윤철규는 〈옮긴이의 말〉에서 책 출간의 취지를 밝히고, 독자들에게 당부하는 글을 따로 적었다. "이 책에서 독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며 생각해 보기를 원하고 있는 것은, 첫째로 고전적인 지식이고, 둘째는 교양에 관한 점이이다. 지식과 교양은 깊이 관련되어 있지만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고전적 지식에 관한 내용부터 살펴보면, 이 책은 그 구성을 정치, 경제, 법 사상, 철학과 사상, 역사와 종교 등으로 구분해 오늘날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고 부르는 저술들에 대해 그 저술의 배경과 저자의 기본 생각 그리고 저술의 개략적인 내용 등을 꼼꼼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기원전의 저술들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 사회의 형성과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행사한 현대의 명저들도 고전으로파악하고 있어 고전의 영역을 폭넓게 제시하고 있다.(p.568)


저자 : 사사키 다케시


1942년 아키타현 출생. 도쿄대학교 법학부 졸업, 전 도쿄대학교 총장. 현대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유명한 사사키 다케시 교수는 1968년부터 조교수, 1978년 교수를 거쳐,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법학정치학 연구과장을 지냈다. 이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제27대 도쿄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이후 가쿠슈인 대학교를 거쳐 2022년부터 일본학사원 원장으로 재임중이다. 저서로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 『플라톤과 정치』, 『현대 미국의 보수주의』 등이 있다.


역자 : 윤철규(尹哲圭)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미술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일본 교토 붓쿄 佛敎 대학교와 도쿄 가쿠슈인 學習院 대학교에서 ‘17-18세기 일본 회화사’를 주제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주)서울옥션 대표이사와 부회장을 지내고 지금은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로 인터넷 사이트 ‘스마트K’를 운영하면서 한국 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 그림과 서양 명화: 같은 시대 다른 예술』, 『조선 시대 회화: 오늘 만나는 우리 옛 그림』, 『시를 담은 그림, 그림이 된 시: 조선 시대 시의도』, 『조선 회화를 빛낸 그림들』 등이 있으며, 그 외 『추사 김정희 연구: 청조문화 동전의 연구』(공역), 『이탈리아 그랜드 투어』, 『교양으로 읽어야 할 일본 지식』, 『천지가 다정하니 풍월은 끝이 없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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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권력, 미식 경제학 - 음식이 바꾼 부와 권력의 결정적 순간들
쑤친 지음, 김가경 옮김 / 이든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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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음식은 생명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모든 생명체에겐 필수적이다. 유사 이래 근현대에 들어오기 전까지 인류는 '음식 부족'이라는 커다란 적을 만났다. 특히 고대에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부유한 곳을 침략하거나 전쟁도 불사하는 등 생존 투쟁의 성격이 강할 지경이다. 과학 발전으로 먹거리가 풍부해지고, 또 먹거리 걱정이 없으니 문화 발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문명 발달에 기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책 『식탁 위의 권력, 미식 경제학』은 인류가 더 나은 음식을 먹기 위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저자 쑤친은 "음식은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고, 인간의 감정, 윤리, 사상, 정치, 경제까지 모두 녹아 있다고 말한다. 먹기 위해 인간은 두 발로 일어서고, 땅을 개척하고, 이동하고, 때로는 전쟁까지 불사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음식은 늘 그 중심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저자 쑤친은 깊이 있는 미식가이자 경제학 탐구자이다. 베이징대학교에서 금융학을 전공하고, 15년간 금융 투자 분야에서 활약하며 자산관리 규모 최대 1조 위안을 달성했다. 단순한 경제학자가 아니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단순한'이 아닌 이유로는 저자가 ‘동파육’이라는 음식의 유래가 된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미식가 소동파의 후손이라는 점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자신은 ‘한 끼의 위대함’을 아는 진정한 미식가라고도 밝힌다. 표제어 밑에 「음식이 바꾼 부와 권력의 결정적 순간들」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이 책은 음식과 식욕이 우리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바꿔 왔는지를 살펴본다.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 언제나 권력의 최우선에 음식이 있었다"는 문장은 집필 취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중국은 세계 1위의 '미식의 나라'라고 한다. 많은 인구와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음식의 종류는 물론 더 좋은 맛을 내는 방법,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먹음직한 요리 개발 등으로 '요리 1위 나라'로서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져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터다.

55만 년 전, 베이징 저우커우뎬(周口店)의 베이징 원인 한 무리가 사냥을 나갔다가 천둥과 번개로 인해 나무가 쪼개지면서 발생한 산불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제때 도망치지 못한 많은 동물이 불에 타 죽는 참혹한 상황이 벌어졌다. 바로 이때 인류의 식탐이 터지고 말았다. 동물들이 모두 도망가는 바람에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위기의 상황에 고심하던 배고픈 사냥꾼 무리는 벼락을 맞아 시커멓게 타버린 동물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지금껏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육류의 향에 매료되어 버렸다.(p.41)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이뤄져 있다. 1장 〈진화의 선택〉, 2장 〈수요와 공급의 힘〉, 3장 〈High risk High return〉, 4장 〈화폐 전쟁〉, 5장 〈은이 촉발한 디플레이션 위기〉, 6장 〈감자와 산업혁명〉 등이다. 「씹고 뜯고 맛보는 먹보 인류의 미식 여행」이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저자는 전국시대 고자(告子)는 '식욕과 성욕은 타고난 본성'이라는 단 한마디의 말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설명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식욕이 성욕 앞에 놓여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본디 '식욕'은 인간의 여러 욕망 중 억누를 수 없는 가장 강한 본능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서문〉에 따르면 태초에 '식량'을 구하기 위한 인간의 행위는 인류 진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식량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무의식적으로 인류가 일어서서 걷도록 만들었으며,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인류 최초 기술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음식을 더 많이 저장하려는 열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농업 혁명을 일으키게 했다. 최선을 다해 먹거리를 지켜내기 위하여 인간은 언어와 문자를 탄생시켰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재산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언 내고 심지어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저자는 공자의 말도 한마디 보탠다. "공자가 음식을 대할 때 미학적이고 정교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매일 먹는 끼니에도 정성을 다하는 삶의 태도를 표현한 것"(p.10)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의 제자 맹자는 "물고기도 내가 얻고자 하는 바이고, 곰 발바닥 또한 내가 얻고자 하는 바이지만,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없다면 물고기를 포기하고 곰 발 바닥을 취할 것이다.(魚,我所欲也 ; 熊掌, 亦我所欲也)"라고 했다. 이는 "생(生) 또한 내가 바라는 바이고, 의(義) 또한 내가 바라는 바지만, 두가지를 함게 얻을 수 없다면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할 것이다."라는 말로 '의'를 당시 귀한 식재료인 곰 발바닥에 비유해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요컨대 맹자는 어떤 상황에서는 자기 목숨보다 의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비유를 든 것 같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음식이 어떻게 인간을 ‘직립보행’으로 이끌었으며, 문명을 개척하고 세계의 산업을 발전시키고 시장을 움직이며, 역사를 바꾸었는지 때론 짜릿하게, 때론 달콤하게 풀어낸다. 맛있는 역사, 화끈한 지식, 감칠맛 나는 음식의 이야기를 인류 번영의 역사와 함께 다루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도 음식처럼 흥미롭고 맛있게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벼락과 천둥이 인류의 식탐에 불을 지피고, 후추 한 알이 무역 전쟁을 일으키며, 감자 한 덩이가 인류를 구조하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식탁 위를 종횡무진한다. 저자는 이런 흥미로운 사례들을 통해 우리를 맛있는 경제학의 세계로 안내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점을 주저없이 밝히고 있다. 음식과 경제의 절묘한 조합, 그리고 인류의 식욕이 만들어 낸 경제 흐름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한 장씩 읽어내려가면 된다. 경제의 시선으로 살핀 음식의 세계사를 담은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앞으로 식탁 위의 식자재들은 더 이상 평범한 하나의 재료가 아닌, 세계를 군림한 위대한 권력으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적 순간을 위대한 전쟁, 혁신적인 발명, 정치적 결정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 모든 순간에는 ‘먹보 인류’가 있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맛있는 음식을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열망이야말로 인류 역사를 움직인 숨은 원동력 중 하나라는 주장이다. 이 책을 펼치면 문화와 역사, 경제 논리가 촘촘하게 연결된 흥미로운 음식 이야기가 가득하다. 앞서 ‘먹보 인류’는 단순한 식탐자가 아닌, 때로는 문명을 발전시키고, 경제를 뒤흔들며, 심지어 전쟁까지 좌우했다. 인간이 수많은 동물 중에서 특별한 존재가 된 것 역시 더 맛있는 것을 찾아 끝없이 탐구하고, 이를 위해 무역로를 개척하고,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며, 때론 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먹고 마시는 것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우리의 생활방식과 사회 구조, 경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음식이 없었다면 대항해 시대도, 산업혁명도, 심지어 미국의 독립 전쟁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앞서 〈서문〉 제목으로 언급한 ‘먹보 인류’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켜 왔는지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음식 속에 얼마나 많은 역사와 경제 논리가 숨어 있는지 흥미롭게 제시한다.



경제학은 변화의 법칙을 설명하는 도구다. 이 책을 통해 음식과 경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깨닫고, 나아가 경제적 사고방식을 길러 더 현명한 선택을 하는 법까지 배워보자. 어쩌면 경제학과 미식사(美食史)를 함께 아우르는 이 책을 통해 지식 욕구는 물론 미식에 대한 영감도 얻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세계사를 뒤흔들었다면 쉽게 믿을 독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지구촌 일부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불평등한 지구촌이 되어 버렸지만, 예전에는 수확이 부족해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라 전쟁까지 불사한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지만, 다른 어떤 일이 인류 역사를 뒤흔들 만한 것이 있었는지 귀를 기울이면 이 책에 대한 믿음은 물론 세계 역사의 흐름을 먹거리가 주도했다는 사실도 이해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제1장에서 인류가 먹거리를 찾아 한없이 떠돌던 시기를 지나 약 1만 2,000년 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전 세계 인류의 숫자가 300만 명을 넘어선 때를 저자는 주목한다. 책에 따르면 원시적인 수렵과 채집 방식은 불어난 인구의 식량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더 빨리, 더 멀리 이동해야 하며 이주 빈도 역시 더 잦아야 했다. 그러나 거주지를 자주 이동하는 것은 힘들고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변화무쌍한 기후변동이나 이동 중 맹수의 출몰로 많은 사람이 길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적절한 거주지를 제때 찾을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또 먹거리가 충분한 지역을 오랫동안 찾지 못하면 한 무리의 부족이 단체로 굶어 죽는 일도 빈번했다. 간혹 인간과 자연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다면 당시의 고된 이주 과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먹고사는 문제에서 이주하는 것 외에 인류가 평온을 누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었을까? 당연히 방법을 찾았기에 현재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답은 '정착'이다.(p.50) 9,000년 전쯤 인류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주 생활로 고통받던 사람들은 갑자기이동을 멈추고 한곳에 정착하기로 한다. 육류와 식량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동물을 길들이고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후추 한 알이 위대한 지리적 발견을 촉진하고, 사탕수수가 노예제를 만들었으며, 감자가 산업혁명을 가속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심지어 두 강대국이 ‘대구’라는 생선을 두고 전쟁을 벌일 뻔했다는 사실도 있었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게 된 이유도, 문명을 이루고 국가를 형성한 이유도 보다 맛있는 음식을 누구보다 빨리 차지하기 위한 결과였다고 자자는 주장한다. 바로 식탁 위의 절대 권력인 음식이 어떤 위대한 힘으로 인류를 이끌었는지 그 고단하고 장대한 과정을 담은 미식 교양서로서 이 책은 충분하다는 게 독자의 판단이다. 우리가 흔히 지나쳤던 음식의 역사적·경제적 의미를 흥미롭게 풀어내며, 먹보 인류가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켜 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제2장 세 번째 글 「향신료 시장의 서막-‘먹보 인류’의 무서운 식욕」에서 유럽 최고의 사치품이 된 향신료 '후추'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에 따르면 유럽 귀족들은 후추를 다른 향신료와 적절히 배합하여 장기간 복용하면 남녀 관계에서 놀라운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사치와 정신적 공허함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유럽 남성들에게 이것은 회춘의 영약이었다. 향신료는 강력한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며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자신의 추종자로 사로잡았다. 당시 전염병이 창궐한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이 후추에 전염병을 예방하는 신기한 효능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전염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지연시키기 위해 향신료가 든 향료 상자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유행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혹세무민의 이상한 소문은 후추와 같은 향신료에 대한 유럽 수요를 더욱 자극했다. 수요 증가로 가격은 더욱 상승했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부자들은 맹목적으로 향신료를 비축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물건은 비쌀수록 소비자의 부와 지위를 과시할 수 잇다. 이것이 사치품과 희소품이 소유자에게 가져다주는 정신적 기쁨이며,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은 사치품의 오랜 논리이기도 하다.(p.91~92)



사람들은 언제나 더 맛있는 것을 찾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했으며, 그 과정에서 경제와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 한 조각에도 경제학적 논리가 숨어 있고, 이 책은 그 퍼즐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미식이 단순한 취향이 아닌 세상을 바꾸는 힘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을 펼치면 ‘먹보 인류’의 식욕이 써 내려온 격변의 세계사가 펼쳐진다.

무엇보다 유럽인들은 그토록 신봉하는 『성경』에 감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일부 사람은 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작물이 틀림없이 지옥에서 왔다고 믿게 되었다. 민간에서는 감자를 먹으면 매독, 돌연사, 성적 광기가 일어난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에 유럽인들은 오랫동안 감자를 거부해 왔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기아에 허덕인 페루인들을 구한 영웅 대접을 받던 감자가 유럽에서는 지옥에서 온 악마의 식물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감자의 생명은 끝이 난 것일까? 현재 전 세계인들이 감자를 섭취하고 있으니 이는 당연히 당연히 아닐 것이다. 이때 감자의 운명을 뒤집은 것은 바로 ‘전쟁’이었다.(p.244)

저자 : 쑤친(苏秦)

깊이 있는 미식가이자 경제학 탐구자. 베이징대학교에서 금융학을 전공하고, 15년간 금융 투자 분야에서 활약하며 자산관리 규모 최대 1조 위안을 달성했다. 그의 투자 분야는 디지털 뉴미디어 산업, 물류, 인공지능, 농업 등을 포함한다. 현재 퀀텀이코노미 금융경제연구원 원장으로, 7,500만 명이 참여한 금융·경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2010년에는 맥킨 글로벌 비즈니스 대회 우수상을 수상했다. 경제 지식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는 역사적 미식가 소동파의 후예로서, 이 책을 통해 음식과 경제의 흥미로운 연결고리를 풀어낸다. 우리가 먹는 것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지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주요 저서로 『초보 경제학』이 있다.

역자 : 김가경

덕성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북경어언문화대학에서 수학했다. 국방대학교 국방사업관리학 석사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대한민국 공군 소령으로 공군 본부에서 복무 중이다.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거침없이 빠져드는 역사 이야기 건축편』, 『사자는 쥐와 겨루지 않는다』,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100가지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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