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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물질을 만났을 때 - 융 분석심리학적 모래놀이치료의 두 가지 적용 : 개인과 사회
에바 패티스 조자 지음, 김재희 옮김 / 힐링윙즈 / 2024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책 『영혼이 물질을 만났을 때』는 아동(어린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모래놀이'가 제공되는 프로젝트를 다루고 있다. 이를 '표현 모래작업 프로젝트'라고 하는데 전쟁이나 내전, 난민, 기타 재해적 상황을 겪은 아동들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극심한 심리적 외상을 극복하고 정신의 자기조절능력이 강화되는 과정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에는 루마니아, 콜롬비아 등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개최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아동과 자원봉사 조력자 간의 만남, 아동들의 모래놀이 이야기, 상담사와 아동의 내적 흐름이 주를 이룬다. 저자 에바 패티스 조자는 국제융분석가(IAAP)이자 국제모래놀이치료사(ISST)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인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의 주제는 표현을 위한 자유롭고 보호된 공간이 제공되자마자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만들며, 자기를 조절하는 힘을 발휘하는 정신의 놀라운 능력과 결단력이다. 이는 불리한 경험으로 어려움을 겪는 개인(어린이와 성인)뿐만 아니라 삶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정신의 자기 조절 능력은 모래놀이치료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체험된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년에 걸쳐 개발한 두 가지 모래놀이 적용 방식을 소개한다. 이 두 가지 방식은 각기 다른 대상 집단을 위한 것이며, 동일한 기본 원리를 두 가지 다른 방향으로 확장한 것이다. 첫 번째 적용 방식은 운동감각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개별 치료 과정이다. 이 접근 방식에서 내담자는 모래와 물만 사용하도록 권장되며, 처음에는 언어적 설명과 시각적 상상을 배제하고, 모래를 만지는 손의 촉각적 인식에 집중하도록 안내받는다. 이 인식은 감각적 기억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아동기에 획득한 애착 모델(J. Bowlby)을 직접 인식하게 될 정도로 이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상징하는 신체 경험을 빠르게 하게 된다. 운동감각적 상상력이 일어나는 과정은 또한 내면의 새로운 감정 상태가 창조되는 순간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또 내담자가 촉각적 인식과 상징전(pre-symbolic) 및 상징적 표현에 참여하는 과정을 사례들과 함께 설명한다.
이와 함께 표현 모래작업이라고 부르는 두 번째 방식은 사회적 위기 상황에 처한 아동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이 응용 프로그램은 현재 8개국의 국제 융 분석가 팀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표현 모래작업은 그룹으로 이루어진다. 모래놀이의 핵심은 정신의 자기조절 경향의 활성화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성인 조력자와 아동 사이의 상호작용이 언어 전, 심지어 상징 전 수준에서 일어나는 경우, 치료적 개입이 얼마나 적게 필요한지와 정신신체 시스템의 자기조절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여러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이에 따라 책의 후반부에서 실제로 진행된 표현 모래작업 프로젝트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 프로젝트는 슈투트가르트의 융 연구소와 협력하여 독일에서 진행되었는데, 여기에는 IS의 극심한 잔학 행위의 피해자가 되어 독일로 피난 온 이라크의 야지디족 아동들과의 모래놀이가 포함돼 있다. 각 과정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더라도 아동의 정신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감동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국제분석심리학회가 5개 도시에서 표현 모래작업 프로젝트를 진행한 우크라이나의 아동들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전쟁 지역에 직접 위치한 도시들도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루마니아와 콜롬비아의 프로젝트 사례들도 기술된다.
이 책은 고통과 긴장이 희망, 회복, 애정으로 이어지는 드라마를 여러 편 보여 주는 셈이다. 독자들은 이 모든 회복에 감동과 감사를 느끼며 책장을 넘겨 갈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이 책은 힐링윙즈 심리상담연구소의 소장이자 역자 겸 발행인이기도 한 김재희의 노력에 힘입어 번역돼 우리 앞에 왔다. 역자는 「고통과 긴장이 회복과 애정으로 바뀌는 드라마」라는 제목의 〈서문〉을 통해 출간 취지를 밝히고 있다.
"나는 모래놀이세션을 제공할 때 피규어를 제공하지만, 간혹 모래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모래만 활용하는 내담자들이 있다. 그래서 이 모래만을 활용한 사례들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모래만을 먼저 활용해 볼 것을 내담자에게 직접 권하며 이에 대한 효과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기에 나의 궁금증을 해갈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도라칼프에게 직접 모래놀이를 받았던 경험, 전 세계 위기에 처한 아동들에게 제공되었던 모래놀이 프로젝트를 통한 상세한 사례들이 포함되어 있어, 동료 모래놀이치료사들에게 영감과 전문지식을 더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 책을 출간하기로 했다."(p.6)
역자는 치료 프로젝트가 제공하는 모래 속에서 표현한 모든 것들은 그들의 영혼의 모습임을 다시 생각했다고 털어놓는다. 이를 가능하게 한 모래의 부드러운 힘은 때로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모래는 생애 동안 경험한 것 중에 가장 부드러운 대상, 모성을 투사한다고 역자는 주장한다. 동시에 이 모성은 우리 정신의 한 측면이요, 우리 내면에 이미 본질로 존재하는 자원이라고 설명한다.
"모래놀이는 참으로 부드러운 모델이다. 모래의 촉감도 부드럽고, 치료사의 태도도 부드럽다. 내담자가 표현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조용히 교감한다. 그러면 우리 앞의 창조자는 유니콘과 페가수스가 하늘을 나는 판타지에서부터, 지옥과 괴물의 테마까지 무한하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야기들을 펼친다. 자원은 활성화되고 트라우마는 이 부드러움 속에서 어루만지며 성격의 통합과 자아의 적절한 강도를 획득해 나간다. 모래놀이치료사들은 이 과정 동안 촉진과 침묵의 균형을 지키면서 내담자의 무의식 여행에 온 마음으로 동행한다. 그리고 이 여행 동안 내담자에게 영향을 끼쳐온 개인의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깊숙하게 경험한다."(p.7)
이 책은 칼 구스타프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칼 융이 창안한 분석심리학은 의식과 무의식간 관계를 확립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로이트(Freud)로부터 무의식의 중요성에 대해 영향을 받은 융은 무의식의 개념을 확장하여 체계적 이론을 구축했다고 알고 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분석심리학은 인간 정신의 구조를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하며, 나아가 무의식을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으로 세분화한다. 먼저 의식은 자아(ego)에 의해 지배되는 부분으로, 인간이 자신을 외부에 표현하고 외부 현실을 인식하는 기능을 한다. 개인이 자신의 의식을 능동적으로 외적 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외향성으로 칭하며, 내적 주관적 세계로 향하는 성향을 내향성이라 한다. 융은 우리 모두가 두 가지 상반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지배적인 경향에 따라 우리의 성격 및 태도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의식이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감각과 직관으로 구성된 비합리적 차원, 그리고 외부 세계를 판단하는 방식은 사고와 감정으로 구성된 합리적 차원으로 나뉜다. 융은 심리적 태도와 의식의 기능을 조합하여 여덟 가지 심리적 유형을 정리하였는데, 성격 유형을 측정하는 데 많이 쓰이는 MBTI가 이에 기초하고 있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초된 것이라고 독자가 추정하는 이유는 저자 에바 패티스 조자가 쓴 〈머리말(서문)〉에서다. 바로 '무의식'이라는 단어에 집중하고,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어린이가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생겼거나, 사춘기 소녀가 자신의 피부에 상처를 내는 경우, 목적론적 관점은 이를 주어진 환경에서 최소한의 자기효능감, 자율성, 순간적 긴장 해소를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라고 볼 것이다. 손톱을 물어뜯는 것과 피를 흘리며 해방감을 느끼는 자해 증상은 무의식이 추구하는 목표(자율적으로 영향을 끼치려는)에 비추어 볼 때 완전히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아동 청소년의 내면에 생물학적 시계처럼 발달을 촉진하고 있는 정신 에너지와 이러한 진보를 방해하는 환경적 장애물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타협안이다. 증상은 단순한 시각적 표현 이상의 파장이 있다. 뜯긴 손톱이나 피부의 상처는 사람에게 신체적, 정서적 반응을 유발한다. 아이와 사춘기 소녀의 일상에 성장을 억제하는 자기 파괴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일정 수준의 자각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수 있도록 '알린다'. (중략) 정신의 자기조절 경향은 내면의 무의식적 이미지의 끊임없는 생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미지는 어른들에게는 밤의 꿈과 환상으로 도착하고, 아동은 자유롭고 상징적인 놀이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정신의 자기 조절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유일한 전제 조건은 두려움이 없는 맥락을 제공하는 것이다."(p.23~24)
저자는 "놀이는 유전적으로 내재된 신경계의 유희적 충동을 반영하지만, 이를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환경이 필요하다."는 판크셉의 증명으로 확인됐다고 인용하면서 학습이 놀이적인 맥락에서 가장 잘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는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를 인용해 모래놀이의 효용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치료 상황에서 우리가 정신의 자기 조절 능력을 가정하여 개입한다는 것은 상담사가 손상된 시스템을 복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오히려 우리는 매번 새로운 특정한 것을 향해 항상 노력하는 이 정신-신체 시스템 자체에 의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시스템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두 가지 방향, 즉 4발달(C.G. Jung에 따르면 개성화의 가장 넓은 개념)과 관계(인간은 사회적 존재)를 지향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당연히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인간의 필요는 상호의존적이며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 고려될 수 없다. 그러나 심리 치료 과정에서 이 두 가지 필요는 어떤 주어진 순서대로 발현되지 않는다. 우리 상담사는 자신의 내면과 충분히 안정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아동이나 성인이, 다른 사람에게 정서-신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는 발달적인 결함을 종종 마주친다. 그들은 아직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교류에 대한 욕구가 낮다. 치료 중에도 이들은 상담사와 친밀감이나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실 다른 사람의 존재 없이 분석을 받으며 증상이 완화되기를 원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자기에 대한 놀라움과 경이로움〉, 2장 〈안에서와 같이 밖에서도,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3장 〈모래놀이 개인 세션과 정신의 자기 조절 능력〉, 4장 〈표현 모래작업 프로젝트〉, 5장 〈콜롬비아 이주 아동을 위한 표현 모래작업 프로젝트〉, 6장 〈독일 난민 아동을 위한 표현 모래작업 프로젝트: ‘그룹은 변형이 일어나는 연금술 용기이다’〉, 7장 〈루마니아 보육원에서의 표현 모래작업 프로젝트〉, 8장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의 표현 모래작업 프로젝트〉 등이다.
1장은 「도라 칼프의 치료적 태도」「치료실에서 제삼자」「도구로서의 한계」「언어적 의사소통을 위한 절호의 순간」「운동감각적 상상」「신체로 구현되는 상징」「안내하는 방법」「사진 촬영에 대해서」 등 8개 소항목으로 나뉘어 설명되고 있다.
"다른 치료적 접근에 비해 유리한 모래놀이만의 뚜렷한 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담자들 대부분이 모래를 만진 후 몇 분 이내에 ‘자신에 대한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발견한다. 처음 모래를 접촉하는 순간 예상치 못했던 감각, 잊고 있던 마음의 상태, 시각적 이미지와 연관된 새로운 생각과 움직임이 유발된다. 때로는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특정 경로를 따라 움직이거나, 구멍을 만들고, 공간을 찾기도 하는데, 이는 “모래가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마치 손이 스스로 만든 것처럼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형태들을 만든다. “오, 정말 신기해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런 느낌은 정말 처음이에요!” “... 가 떠올라요” 내담자의 손은 모래의 일관성, 부드러움, 작은 접촉에도 반응하는 즉각성을 탐색하는 동안, 온갖 종류의 지각과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그것들이 내면에서 나온 것인지 외부에서 나온 것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그것들은 순환 과정이다. 내면과 외부 세계, 신체와 정신 사이,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정신과 물질 사이에 매우 미묘하면서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p.31~32)
마지막 8장은 우크라이나 아동들의 심리 실태와 상담의 방법을 계획하기 위해 동부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으로 향하는 저자와 동행한 심리학자 블라드의 모습을 비교적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2015년 이후 130만 명이 탈출한 지역이라고 하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지역적 분쟁을 계속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22년 2월 처음시작한 줄 알았는데 이전부터 국경에서의 분쟁이나 국지전은 많이 있었던 듯하다. 이 책은 전쟁 지역 아동들의 심리 상태나 트라우마 치료에 초점이 맞추어졌으나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고충이 얼마나 심할까 짐작하는 데도 비교적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오랫동안 소련(러시아)의 지배 아래 있다가 소련 붕괴로 많은 동유럽 국가처럼 민주주의로 재건하려 했던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러시아가 드디어 공식적으로 침공했다. 저자는 러시아 침공 이전 상황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함으로써 어린이들이 받고 있을 전쟁 트라우마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약 1년 동안 국제 언론은 우크라이나의 '잊혀진 전쟁'에 대해 보도했지만, 도네츠크과 루한스크 인민 공화국으로 새로 선언된 이 국경 지역에서 여전히 군인들이 매일 목숨을 잃고 있다.(p.245)
저자 : 에바 패티스 조자(Eva Pattis Zoja)
국제융분석가(IAAP)이자 국제모래놀이치료사(ISST)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인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국제 표현모래작업협회(IAES)를 설립하고 융 분석과 모래놀이 치료 교육을 제공하며 유럽,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 표현모래작업 프로젝트를 개최해왔다.
역자 : 김재희
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에서 사회사업(정신건강/상담)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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