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라는 세계 -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 것인가
켄 베인 지음, 오수원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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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공부라는 세계』의 표제어는 매우 단순하다. 단순하니만큼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독자 개개인의 해석도 다를 수 있다. 표제어만 보아서는 무슨 책인가에 대해 쉽게 판단이 되지 않는다. '공부의 세계'라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지 독자 역시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부제가 붙어 있다.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그러나 이것도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앞둔 준비생들에게 묻는다면 답변은 역시 시험을 대비한 공부가 될 것이다. 이처럼 '공부'가 우리 일상에서 쓰이는 데는 광범위하다. 국어사전은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으로 풀이하고 있다. 우리 일상에서 공부라는 단어는 학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학교나 책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달아가는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한자어 '공부(工夫)'는 무술 '쿵후(功夫)'와 같은 의미라고 한다. 아마 학문과 무술을 구분하기 위해 '工'과 '功'으로 구분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무언가를 배우고 익혀서 자신의 것으로 쌓아 올리는 일에는 같은 뜻 것 같다.

저자 켄 베인은 2013년 『최고의 공부』라는 제목으로 이 책을 출간했다. 이것이 한국어판으로 재출간되면서 『공부라는 세계』로 제목이 바뀌었다. 저자는 세계 최고의 교수법 전문가이자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 교수 등 ‘세계적 석학들이 인정한 멘토’다. 이 책은 그가 30년간 연구한 ‘최고의 공부’에 대한 내용을 집대성한 것이다. 스스로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 깊이 있는 배움을 쫓았던 100여 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자는 성적, 학벌, 상장, 합격 등 스펙을 위한 수단이 아닌 삶의 의미를 그려나갈 수 있게 돕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공부라고 말한다. 버지니아 및 워런 스톤 기금이 제정한 하버드대학교 출판부상을 받으며 탁월한 우수도서로도 인정받은 이 책은 12년 만의 재출간을 축하하며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한국어판 단독 서문을 함께 수록했다.

"모든 학생에게 의미 있는 책을 쓰고자 노력했습니다. 다양한 질문과 주제를 다루었지만, 특히 한국 사회와 학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 주제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이 궁금증은 첫 한국어판이 출간되고 몇 년이 지나 풀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서울의 한 주요 신문사 기자가 창의성과 그것을 기르는 방법을 주제로 특별 코너를 기획해 이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리고 창의성에 관한 질문은 이 인터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p.6~7)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성공이란 무엇인가〉, 2장 〈어떤 배움을 선택할 것인가〉, 3장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4장 〈어떻게 실패할 것인가〉, 5장 〈받아들일 것인가, 질문할 것인가〉, 6장 〈삶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7장 〈나는 무엇으로 세상과 연결되는가〉, 8장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등이다. 각 장의 제목만 보더라도 부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의미가 명확하게 보이는 듯하다. 배움과 공부란 삶을 위한 도구가 아닌 배움과 공부 자체가 우리 삶에 녹아들어가도록 해야 하는 결과물로서 작동된다는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 책은 '성공'과 '실패'를 함께 다루고 학습법(질문과 대답), 습관, '암기'와 '이해'에 대해서도 천착해 탐구한다. 당연히 성공보다 실패에서 얻는다는 격언에도 부합하고, 암기보다 이해하며, 이해를 위해서 어떻게 익힐 것인가 등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 씌어 있다. 이를 위해 '삶을 마주하는 태도',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분야',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독자들에게 스스로 질문하고 답변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1장에서는 '성공'에 대해서 쓰고 있다. 세부 항목 「성적이 아닌 배움을 쫓은 사람들」이란 글에서 저자는 인터뷰한 사람들(최고의 학생들)이 "정신의 역동적 힘을 개발하려 노력했다. 학문적 명예를 얻거나 그저 대학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자기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는 과제가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고 밝힌다. 저자는 학생 셰리 카프카와 베이커 교수의 교수법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셰리 카프카는 아칸소주 오자크에 있는 작은 마을 출신으로 '산간벽지의 작은 마을 공동체'에서 훗날 셰리를 미국 최고의 저명한 도시계획 설계자로 키울 만한 예술적 자양분을 찾을 수 없던 곳이다. 셰리의 집안은 형편이 넉넉지 못해 이사를 자주 다니며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사를 자주했다는 것은 전학을 자주 했다는 이야기로 읽힌다. 마지막 졸업할 무렵 졸업생이 다섯 명뿐이었으며, 졸업 전까지도 교사의 결원이 생겨도 충원할 필요도 없이 작은 시골 학교이다. 대학 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어려웠던 셰리는 글쓰기 대회에 나가 상금을 받아 1년치 등록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대학에 합격한 셰리는 머나먼 도시에서 새로운 모험에 들떴지만 이수해야 할 과목 목록도 미리 받아두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필요한 과목을 꼭 수강할 결심을 세웠다. 셰리는 '기막힌 행운'을 만나게 된다. 필수 예술 과목에서 아주 흥미진진한 강의를 발견한 것이다. '능력 통합'이라는 제목의 연극학과 강의였다. 


대학 강의를 처음 듣는 셰리로서는 교수가 누구인지, 학생은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생경한 모습과 마주한다. 곱슬머리의 남성이 들어오더니 무대 한 쪽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이 강의는 여러분의 창의력을 발견하기 위한 강의입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교수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 만남 이후 교수 폴 베이커는 셰리를 포함한 학생들을 새로운 배움의 세계로 이끌었다. 베이커 교수는 중요한 말을 한다. "어떤 학생들에게 성장은 기억력 증진에 불과합니다. 또 어떤 학생들에게 성장은 기계 장치의 작동 원리를 배우는 일일 뿐이죠. 모터를 조립하고, 파이프를 이어 붙이고, 여러 화학물질을 섞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 말입니다. 이 같은 성장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옛 방법에 능숙해지는 게 목표입니다. 또 어떤 학생들에게 성장이란 타인의 수준이 자기보다 얼마나 형편없는지 추정할 수 있는 숭배 체제 같은 어떤 '체계'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패거리'에 소속돼 지시를 내리고, 서로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고, 은밀한 내실에서 시가를 피우며 중요한 위원회에 소속되거나 하죠. 사이비 화가, 음악가, 배우, 예언가, 연설가, 정치인 같은 존재가 되는 겁니다. 여기저기 이름을 흘리고 다니면서 자신을 이런저런 지위로 포장하는 사람들 말입니다."(p.19)

책에 따르면 극소수의 학생들에게 성장은 '정신의 역동적 힘'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자신을 발견하는 것, 즉 자신이 누구이며 자기 자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성장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다. 베이커 교수는 인간 역사를 통틀어 신체나 삶의 경험을 똑같이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 두뇌와 똑같은 두뇌를 가진 사람은 없다. 나는 고유한 존재다. 나는 다른 누구도 볼 수 없는 견지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나만의 고유한 정신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먼저 자기 자신이 누군인지, 어떻게 활동하는지 파악해야만 한다." 베이커 교수는 저마다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누누이 역설했다. 저자는 최고의 학생들과의 인터뷰에서 얻은 결론을 토대로 자신의 저서에 반영했다고 한다. 이 책은 실제로 인터뷰 내용에서 그들이 받은 감동을 얼마나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게재하며 그 창의적인 학생들과 가르친 사람들의 교수법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적어나갈 것임을 미리 밝히고 있다. 저자는 첫 번째 장(章)은 이처럼 학생들과 교수들의 성공적인 만남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교수들의 교수법과 학생들이 배워 실천해 나가는 과정을 인터뷰를 통해 얻은 내용을 꼼꼼이 적고 있다. 


저자가 셰리의 이야기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은 이유는, 그녀가 베이커 교수의 '능력 통합' 강의를 수강했던 경험에 우리가 앞으로 되풀이해 만나게 될 주요 개념과 학습 접근법의 많은 부분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베이커 교수의 강의는 과학자, 음악가, 의사, 목수, 역사학자, 화가, 미용사, 문헌학자, 편집자, 정치인, 교사, 철학자, 작가, 디자이너, 공학자 등 창의적 분야에 종사하는 수백 명의 삶을 바꾸었다. 베이커 교수의 강의를 수강했던 '최고의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 분야와 관련이 없거나 멀찍이 떨어진 강의를 수강했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크게 바꾸었다. 또한 최고의 학생들은 정신의 역동적 힘을 개발하려 노력했다. 학문적 명예를 얻거나 그저 대학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자기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는 과제가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베이커 교수의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은 창의력에 관련된 새로운 언어도 배웠다. 그 언어는 우리가 시공간과 움직임, 소리, 실루엣을 통해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셰리와 다른 학생들은 이 강의를 통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어떤 과제에도 자기 의지로 투입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자질과 그 경험을 평가하는 능력을 얻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할수록 학생들의 자신감은 높아졌고, 타인의 특별한 자질과 성취도 높이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과학과 인문학, 예술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이 일군 역사를 공부했다.

출판사 측은 책에 내놓은 한 사례를 직접 들어가며 저자의 교수법을 소개한다. "여기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A는 시험에 나올 만한 것만 암기하고, 높은 성적만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B는 실패가 두려워 어려운 공부는 피하고, 언제나 ‘최대한’보다 ‘최소한’의 목표를 설정해 공부한다. 하지만 A가 깊이 파고드는 공부를 싫어하고, B의 이해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A와 B가 이 같은 공부 방식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공부가 그저 부와 명예를 쌓고, 성공하기 위한 또 다른 ‘수단’으로만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항상 새로운 배움을 추구하며 오늘 배운 것을 내 삶에 어떻게 연결하여 적용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고민하는 C도 있다. A와 B가 우수한 성적 대신 틀에 박힌 전문가로 성장해 나갈 때, C는 창의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설계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A와 B를 각각 ‘전략적 학습자’와 ‘피상적 학습자’로, C를 ‘심층적 학습자’로 분류했다." 


저자는 30년간 C와 같은 심층적 학습자들을 만나며 그들이 어떻게 자기 확신을 갖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성취를 이룰 수 있었는지 연구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그 비밀은 바로 어떤 배움을 선택할 것인지, 즉 배움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었다. 연구 결과, 전략적 학습자나 피상적 학습자와 달리 심층적 학습자는 모두 능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단단한 믿음에 기반한 성공과 궁극적인 행복을 쥐고 있었다. 그것이 ‘최고의 학생’과 ‘일반 학생’을 가르는 한 끗 차이였다.

이 책은 공부와 배움을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성적을 단기간에 급상승시켜 주는 공부법에 관한 책은 아니다. 난제와 도전을 즐겁게 마주하는 사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첫 번째 답’을 거부하는 사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사람, 인간의 유일무이한 존재 가치를 알고 존중하는 사람, 호기심 많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 등 성적이라는 나무보다 꿈이라는 숲을 이루어낸 사람들의 평생 공부에 대한 비밀을 집대성한 책이다. 

일례로 한국인 아버지를 둔 일라이자는 고등학생 때 최고의 성적으로 우수상을 받았고, AP 과정을 공부했으며, 반 차석으로 졸업했다. 성적에 대한 압박으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도 몰랐던 일라이자는 대학 진학 후 언니의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이후 일라이자는 자기 안에 남아 있던 전략적 학습법을 모두 벗어던질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배움에 ‘왜’라는 질문을 던질 줄 알고, 더 많은 공감과 자기 연민 능력을 갖게 된 일라이자는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들에 관한 연구의 선구자가 되었다.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더들리 허슈바크, 세계적인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프로테스,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올랐던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까지, 100여 명과의 인터뷰와 그에 더해진 저자의 명쾌한 분석과 통찰은 치열한 경쟁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공부란 무엇인지 생각할 거리를 던지며 다시 한번 질문한다.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왜 공부할 것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30년 동안 진정한 행복을 위한 공부, 원하는 삶을 사는 ‘성공적인 삶’을 위한 공부가 무엇인지 파헤친 연구 결과들을 나누어 담고 있다. 세계 최고의 교수법 전문가가 분석한, 학습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꿔줄 배움의 태도를 이 책에서 배울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수단’이 아닌 ‘목적’을 위한 공부를 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가장 슬기로운 지침서가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그들이 이룬 진보가 단순히 이러한 경험이나 대화에만 의존해 얻은 산물은 아니다. 그들이 부단히 노력한 것 또한 틀림없겠지만, 그럼에도 지식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그들 또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배움은 경험에서 오지 않는다. 배움은 경험을 성찰하는 데서 시작한다.(p.241)


저자 : 켄 베인(Ken Bain)


세계 최고의 교수법 전문가로서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세계 최고 석학들의 교수법을 공개해 화제가 된 EBS 다큐멘터리 〈최고의 교수〉에 출연하여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 피츠버그대학교 골드스타인 교수와 같은 최고의 교수 여덟 명을 직접 선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뉴욕대학교 부설 최고의교수법연구소, 노스웨스턴대학교 교수개발센터, 벤더빌트대학교 교수센터, 몽클레어주립대학교 대학학습연구소 등의 연구소장을 역임하며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미니파이퍼재단이 수여하는 우수교수진상, 올해의 교수상, 올해의 명예교수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해리트루먼도서관, 린든베인스존슨도서관, 포드재단, 국립인문재단, 국제연구협회에서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 그가 집필한 미국 최고 교수들의 교수법을 연구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미국 최고의 교수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는 교육과 사회를 주제로 한 뛰어난 연구서에 수여하는 버지니아&워런스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역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이자 University of the District of Columbia의 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역자 : 오수원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프랑켄슈타인』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정리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주인공 프랑켄슈타인이 아닌 이름 없는 존재인 ‘괴물’의 관점에서 소설을 다시 보면서 인간의 많은 모순과 문제의 면면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현재 파주출판도시에서 동료 번역가들과 ‘번역인’이라는 공동체를 꾸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인문, 과학, 정치, 역사,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영미권 양서를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문장의 일』, 『조의 아이들』, 『데이비드 흄』,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 『현대 과학·종교 논쟁』, 『포스트 캐피털리즘』,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실험 100』, 『쌍둥이 지구를 찾아서』, 『비』, 『잘 쉬는 기술』, 『뷰티풀 큐어』, 『우리는 이렇게 나이 들어간다』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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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오다
김민 지음 / 책짓는크론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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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맞서 평화, 정의, 애국 등 선(善)을 추구하는 한 소년의 성장을 담은 판타지 소설이다. 저자는 "마법처럼 찬란한 당신의 삶에 제비 날갯짓 같은 저주라도 닿을 수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능한 담백하게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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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오다
김민 지음 / 책짓는크론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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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클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신이 오다』는 주인공 ‘김신’이 마법을 접하고 이를 이용하여 친구들과 함께 지역 사회를 지키기 위해 나선다. 하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마법 부작용(?)으로 의식 불명에 빠지고, 다행히 한 마법 학교 선생의 도움으로 어렵게 살아나 운명에 이끌리듯 입학한다. 표제어 '신이 오다'에서 이름 신을 '신(信)', 신(神)', 신(新)', 신(臣)' 등으로도 해석 가능하지만 어느 것으로 독자들이 해석해도 상관없다. 전생이 조선시대 신하였다는 점, 지금은 새로 태어나 정식으로 마법을 전수받는다는 점에서 신(新)'과도 맞아 떨어진다. 또 소설 내용에서 등장하는 '단군신화'로서의 신(神)과도 맥락이 통한다. 여기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판타지 소설이란 점을 알아챘겠지만 소년 김신의 성장기를 다룬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김신은 마법 반, 무예 반 친구들과 마법을 수련하고 교제하며 점차 실력을 키워 나간다. 

김신이 찾아간 곳은 신흥마법학교(新興魔法學校)이다. 일제강점기 이회영 독립지사가 사재를 털어 형제들과 함께 세운 '신흥무관학교'를 연상케 한다. 신흥마법학교는 일제하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신영마법사회의 후신으로 생겨난 곳이다. 김신이 들어가 입학식을 했던 첫날 입학설명회에서 사회자가 신영 마법사회를 언급함으로써 전신의 실체가 드러난다. "저희 신흥마법학교는 신영 마법사회처럼 독립을 쟁취하고 국민들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 공격과 방어에 적합한 마법교육을 시행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사회자는 이날 설명회에서 마법학교에서 가르치는 오래전에는 마법 학문으로 인식했지만,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장되거나 필요없는 경우에는 교과목에서 제외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신흥에서는 연금술, 천문학, 점성술, 마법 약, 약초학 등은 가르치지 않는다고도 밝힌다. 이들 학문이 과학 기술이 발전한 지금 사회에서는 필요 없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마도 신흥 마법학교가 특별한 목적으로 특별한 임무를 완수하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설립되었다는 점을 저자 김민은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첫날 사회자를 통해 신흥마법학교의 정체성을 부각시킨 저자는 다시 사회자를 통해 신입생들에게 당부하는 세 가지를 정확하게 주지시킨다. "첫째, 자신을 믿고 스스로 독려하기를 바랍니다. 배움을 시작하는 단계이므로 부족한 게 당연합니다. 차근차근 정진하다 보면,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둘째, 어려움이 닥쳤을 때 낙심해서 중도에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일반 교과목을 함께 들어야 하므로 아주 힘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여러분이 의무교육 대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학우가 있고 먼저 배운 선배가 있으며, 길을 안내하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서로 의지하며 함께 합시다. 셋째, 배움에 이르러 정의로움을 잃지 않길 바랍니다. 자신이 갈고닦은 힘에 도취해서 교만하면 안 됩니다. 옳고 그름은 힘 크기와 상간없이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약자를 돕고 악을 멸하는 정의로운 마법사가 됩시다."(p.165)

이곳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주인공 김신은 흑마법사 와가타를 위협하는 존재로 성장하고, 긴장감을 느낀 와가타는 네즈미야를 시켜 총감독과 이진, 김신을 살해하려 한다. 이 대목부터는 한일 마법사들의 결전으로 이어진다. 흑마법사는 이에 마법사들은 도로 한복판에서, 학교와 마을에서, 신영 마법사회와 광화문 광장에서 흑마법사와 변절자들의 공격을 막아낸다. 하지만 더 큰 악을 끌어들이는 적은 아직 살아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이곳에서 교육받는 마법사들은 조선 왕조의 신하였던 천사 이왕, 주인공 김신(信) 그리고 마법사회의 모토인 자신(新)을 뜻하는 중의적 표현으로서, 무지와 무의를 극복하는 새로움과 선의 추구를 뜻한다고 강조한다. ‘신’이 후손을 돕기 위해, 악을 정화하기 위해 우리에게 오고 있다고 말한다. 무지를 떨치고 일어서는 새로운 깨달음과 힘을 주기 위해서….


이 소설 작품은 김신의 성장소설이기도 하지만 시공간을 뛰어넘는 소설 배경과 활약하는 마법사, 그리고 저자의 상상력에서의 스토리가 정교하게 잘 꿰맞히려는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저자의 집필 취지는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악과 마주한다. 내가 아니라면 가족이, 친지가, 사회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렇다. 광복 80주년이 되었음에도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가 우리의 건강과 생명, 역사와 영토, 존엄과 긍지를 여전히 위협하며 맹위를 떨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판타지 소설이지만 '악'에 맞서서 '선'을 추구하는 한 소년의 성장기로 읽힌다. 소설에 등장하는 마법은 “평범하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신념과 의지”를 상징하며, 선을 이루는 수단이자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나타낸다. 반대로 적으로 등장하는 흑마법은 우리의 생명과 안녕을 위협하는 악한 세력이 펼치는 저주를 상징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잔혹함을 통해 ‘우리가 그들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가, 얼마나 가벼이 여겼는가’를 느낄 수 있다. 

악에 맞선 소년과 마법사들의 고군분투로부터는 무지의 탈피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회, 또 우리의 얼을 지켜낼 수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우리의 역사에는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가까운 과거에 일제 강점기가 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아시아를 통틀어 그들이 지배하는 제국으로 만들려는 야욕을 품었다. 일본 군국주의는 한반도는 물론 중국을 넘어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 가까이 침략해 들어갔다. 특히 조선 왕조는 붕괴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지만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남다른 애국심은 오늘날 우리가 다시 국토를 회복하고 후손들이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는 받침돌이 되었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애국지사들의 헌신과 희생의 결과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하고 싶은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읽힌다.


허구를 곁들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여전히 소설 속 사연과 에피소드가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소설 속 주인공인 소년을 통해서 우리 미래 세대가 자신을 갈고닦음으로써 악에 대한 냉철한 분별력과 단호한 저항성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하는 저자의 마음이 오롯이 표현된다. 조선 왕조의 역사는 물론 대한민국의 역사마저 부정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의식에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독자에게는 이해된다. 많은 부분이 민족의식과 애국심, 또 미래 사회에 대한 기대 등이 부각되지만 모두가 일정 부분에서는 뜻 있는 자의 희생과 헌신이 있다. 그들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 일은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무엇을 위해 목숨과 가족을 헌신짝처럼 버렸는지를 곰곰 생각해보면 저자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세계화된 글로벌 시대에 갑자기 민족의식 고취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꺼내는 저자의 의도는 분명히 우리 후손이 영광된 나라에서 살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도 하나의 보탬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일본을 무조건 배척하지 않는다는 의미보다는 우리가 노력해서 부강한 나라 건설을 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저자는 판타지 마법사 등을 등장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또 폭력적인 부분도 굉장히 절제돼 있고, 배척하는 마음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눈 것은 명백한 사필귀정의 교훈적 의미도 포함한다. 시대에 따라 스스로를 다듬어 더욱 강하게 거듭나야 하는 게 세계 사회이다 보니 배움과 노력이 강조되는 것이라고 독자는 판단한다. 조금은 스토리나 구성이 싱거운 점이 있다. 그러나 저자의 깊은 의도를 더듬어 가다 보면 종교적 배려도 만날 수 있다. 실제 이 소설에서는 기독교 용어도 많이 인용되었다. 뒷 부분의 주(註)로 용어 해설을 따로 둘 정도로 많은 인용이 있다. 성장 소설이니만큼 청소년들의 흥미를 끌어내기 위한 '신조어' 사용도 서슴지 않았다. 신흥무관학교에서 실시하던 교육 과정과 노래 등을 인용한 것으로 저자의 의도는 더욱 뚜렷해진다.



"우리우리 배달나라에

우리우리 조상들이라

그네 가슴 끓던 피가 우리 핏줄에

좔좔좔 결치며 돈다"(p.508)


저자 : 김민


연구자가 천직이라고, 작가는 정년 후 노년에나 도전하리라 막연하게 기대했었다. 다닌 햇수만큼 정년이 남았을 무렵,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쳇바퀴 돌 듯 근근이 버티고 있는 모습이 싫었다. 남은 세월을 열정 없이 소모할 자신이 없었다. 퇴사 후 요리사로 도전했지만, 오너보다 나이 많은 초보자는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투자 공부라는 명목으로 사지도 않을 주식의 적정 가격을 분석하기 일쑤였다. 시간을 허비하긴 마찬가지. 삶이 원하는 얼굴로 상냥히 다가오지 않는다는 위기감과 밥벌이에 대한 절박함이 찾아왔다. 문득 노년에 할 거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하자고 마음먹었고, 대학 시절부터 쓴 시와 단편소설 습작 경험에 기대어 작가의 문을 두드렸다. 2023년 12월부터 꼬박 1년간 『신이 오다』를 집필했다. 앞으로도 평생 계속 쓰겠다고, 우리 삶과 사회에 대해서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본명은 김영민이다. 1976년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충북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부터 정부 출연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환경, 대체 수자원 분야 과학기술을 연구했다. 2019년 퇴사. 2020년 요리학교(Le Cordon Bleu 서울)에서 프랑스 요리 디플로마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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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영화 속 편지 이야기
임복희 지음 / 오디세이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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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엄혹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희�비극의 절정을 보여준 오페라 영화 12편을 살펴본다. 무대에서 펼쳐낸 오페라보다 세밀한 관찰력을 가진 필름의 눈으로 탐구한 오페라의 미적 탐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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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영화 속 편지 이야기
임복희 지음 / 오디세이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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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오페라(opera)는 'opus'(라틴어로 ‘작품’이라는 의미)의 복수형으로, 초기에는 오페라를 ‘fabola in musica’ ‘dramma in musica’ 또는 ‘dramma per musica(음악극)’라고 불렀다고 한다. 독자가 오페라에 대한 지식이 일천해 이 책 『오페라 영화 속 편지 이야기』를 읽기 전에 찾아본 『서양음악사』의 「오페라의 탄생」 부분에 대한 서술에 따른 것이다. 이후에 ‘opera in musica(음악작품)’로 불리다가, 오페라가 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페라는 일반 연극처럼 의상·무대장치·조명 등을 갖춘 무대극이다. 등장인물들은 노래와 연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주로 환상적이거나 복잡하고, 사랑·미움·질투·복수 같은 아주 격정적인 감정들이 표현된다. 오페라는 작곡가와 대본가의 공동 합작으로 만들어지며, 대본은 ‘리브레토(libretto)’(‘작은 책’이라는 의미)라고 부른다.

오페라의 탄생은 16세기 말 이탈리아의 문화적 상황과 상당히 관계가 깊다고 한다. 오페라가 이탈리아에서 탄생된 것이라고 독자에게는 읽힌다. 르네상스 운동의 중심지인 피렌체에 거주하고 있던 폴리치아노(Angelo Poliziano, 1454~1494)는 15세기 최고의 인문주의자로, 16세 때 이미 호메로스(기원전 8세기)의 〈일리아스(Ilias)〉를 라틴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기 시작했다. 메디치 가의 로렌초 공작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았던 폴리치아노는 공작의 궁정에 머물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시와 극을 썼다.

비단 폴리치아노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문인들은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아 고대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특히 극작가들은 고대 그리스 비극이야말로 자신들의 극음악이 모방해야 할 모델이라고 보아, 그리스 신화 속에서 많은 소재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리스 극에서 음악이 차지했던 역할에 대해서는 당시의 학자들 간에도 의견차이를 보여, 합창만이 노래로 불려졌다는 주장과, 극 전체의 가사들이 모두 노래로 불려졌다는 주장이 있었다. 극 전체가 노래되었다는 주장은 다수의 그리스 비극을 편집했던 피렌체의 학자인 메이의 견해이기도 했다. 메이의 연구 결과는 서신교환을 통해 카메라타 멤버들에게 전해졌고, 이것이 바로크 시대 모노디 양식의 태동과 오페라 탄생의 시발점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카메라타의 멤버들이었던 작곡가이자 가수인 페리와 카치니, 그리고 시인인 리누치니가 모노디 양식으로 된 음악극(dramma per musica)을 시도했다. 직접적인 결과는 최초의 오페라들이라고 할 수 있는 〈다프네(Dafne)〉와 〈에우리디케(Euridice)〉의 탄생이었다. 〈다프네〉는 갈릴레이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피렌체의 코르시 백작(Jacopo Corsi, 1561~1602)과 페리의 공동합작으로 작곡된 것이며, 이것은 극 전체에 음악이 붙여진 최초의 오페라로, 1598년에 코르시 백작의 궁정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에서 페리는 아폴론 역을 맡았다고 전해지는데, 불행히도 현재는 대본과 악보의 극히 일부분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현존하는 것으로 최초의 오페라는 역시 리누치니 대본에 페리와 카치니가 함께 음악을 붙였던 〈에우리디케〉이다. 〈에우리디케〉는 1600년 프랑스 왕 앙리 4세(1589~1610 재위)와 메디치 가의 마리의 결혼 축제행사에 상연되었다. 원래는 페리 혼자 맡아서 작곡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페리는 이 공연에 카치니의 제자들을 출연시켜야 했고, 카치니는 자신의 제자들이 맡은 역들은 자신이 작곡해야만 한다고 고집해 함께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다음해에 페리와 카치니는 각자 독자적으로 작곡한 〈에우리디케〉를 출판했다.

오페라의 탄생 이후 가장 중요한 첫 오페라는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의 〈오르페오〉이다. 〈오르페오〉는 몬테베르디가 만토바의 궁정에 고용되어 있던 당시, 공작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공연되었던 작품이다. 대본은 몬테베르디와 함께 만토바 궁정에 고용되어 있던 시인 스트리조(Alessandro Striggio, 1573~1630)가 쓴 것으로, 원래 오르페오(그리스 어로는 오르페우스) 신화는 비극적인 종말로 끝난다. 그러나 이 오페라가 축복받는 신부와 신랑을 위해 작곡된만큼 해피엔딩으로 끝나도록 각색되었다.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이후 해피엔딩은 거의 관습화되어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이처럼 초기 오페라 작곡가뿐만 아니라, 후대의 작곡가들도 그리스 신화인 오르페오의 소재를 매우 자주 사용했다. 어느 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17세기에만 해도 꽤 중요한 작곡가 중에서 이 신화를 오페라의 소재로 삼은 예는 스무 개가 넘는다고 한다. 작곡가들이 이 신화를 특별히 애호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오르페오는 음악의 신 아폴론의 아들이며, 아버지로부터 리라를 선물받았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연주기술과 음악성도 함께 물려받았다.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보면 이 신화와 음악과의 연관성을 바로 알 수 있다.


이 책 『오페라 영화 속 편지 이야기』의 저자 임복희는 오페라 애호가이자 영화칼럼니스트이다. 저자는 책의 〈서문〉을 통해 "유려한 아리아의 선율을 타고 배달된 오페라 영화 속 편지 이야기가 삶에서 예술이 필요한 순간 오페라의 새롭고 무한한 매혹적 면모를 발견해 이에 다가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집필 취지를 밝힌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오페라 영화 속 관련 역사적 사건 및 시대적 함의를 추적해 작품 내·외적 맥락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종합예술인 오페라의 놀라운 면모를 필름의 눈으로 응시한 12편의 오페라 영화 속 편지들이 스스로를 연기함으로써 스스로를 배달하며 비극에서는 치명적인 결말로, 희극에서는 웃음과 풍자로 서사를 이끌며 데리다의 우편엽서처럼 재구성되는 이야기를 담았다"(p.5)

저자가 선정한 오페라 영화는 오페라 극장 실황이 아닌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한 동시에 아리아의 선율을 타고 흐르는 ‘편지 장면’이 극의 전환이나 결말에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 필름들로 선정했다고 강조한다. 그 결과 셰익스피어, 뒤마 피스, 메리메, 푸시킨, 괴테, 사르두, 루터 롱, 보마르셰, 호프만스탈의 문학작품들이 베르디, 구노, 비제, 차이코프스키, 마스네, 푸치니, 모차르트, 로시니,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들로 재탄생한 후 클로드 다나, 프랑코 제피렐리, 바바라 스위트, 프란체스코 로시, 페터 바이글, 브누아 자코, 프리데릭 미테랑, 장 피에르 포넬, 괴츠 프리드리히, 오토 쉥크 감독의 필름들과 조우했다. 그리고 오페라 영화마다 세계적인 명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와 열연도 더해졌다.


맥베스의 편지쓰기와 맥베스 부인의 편지 읽기는 변증법적 공모과정을 보여주며 음모와 권력에의 욕망에 사로잡힌 두 인물을 결합해 비극의 절정으로 끌고가는 촉매가 된다. 베르디는 주된 모티브를 연속 내지 반복된 음악을 사용해 비극적 긴장감을 유지한다. 클로드 다나 감독은 11세기 스코트랜드에서 벌어진 권력을 향한 끝없는 탐욕이 빚어낸 비극적 파멸을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에 실어 시각적 효과를 한층 더한다.(p.31)



저자에 따르면 음악과 극이 결합된 오페라는 처음에는 ‘막간극(intermezzo)’에서 나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인 자코포 페리(Jacopo Peri, 1561-1633)의 〈다프네〉(Dafne, 1598)는 초기 오페라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신화와 목가적 요소를 결합한 이러한 막간극의 전형적 모습을 잘 보여준다. 르네상스 정신의 산물로 나온 오페라는 일정한 후원자를 전제로 이를 애호하는 귀족이나 학자들을 위해 공연이 이루어지다 17세기 오페라 극장 수가 늘어나면서 시민들의 삶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오페라는 그 형식은 화려한 무대장치로, 그 내용은 음악과 대사의 합일 등을 추구하며 발전했다. 앞서 독자가 언급한 대로 비슷한 설명이다. 17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 절정을 이룬 이탈리아 오페라는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전역으로 퍼지며 오페라 세리아, 오페라 부파, 오페라 코미크, 징슈필, 그랜드 오페라, 베르스모 오페라 등의 다양한 장르로 분화되었다.

이 책은 모두 12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극 8편(1부)과 희극 4편(2부) 등 모두 12편의 오페라 영화를 부(part) 구분없이 12장에 담았다. 책의 차례는 비극과 희극 필름 순으로 한 후, 각각은 오페라가 초연된 순으로 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1부는 비극 오페라 영화 8편으로 마녀들의 예언이 담긴 편지가 음모와 권력에의 탐욕에 사로잡힌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 두 인물을 비극의 절정으로 몰고가는 클로드 다나의 〈베르디의 맥베스〉(1987), 코르티잔인 비올레타의 이별 편지를 통해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시대적 인습을 고발하는 프랑코 제피렐리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1982), 로렌스 수사 편지의 배달사고로 ‘비운의 연인들(star-crossed lovers)’이 되어버린 바바라 스위트의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2002)이 담겼다. 


"시간에 억류된 운명의 편지가 가져온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구노의 감미로우면서 비장한 매혹적 선율에 체코의 츠비코프성에서의 올로케이션 촬영으로 현장감을 더한 바바라 스위트 감독의 섬세한 연출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한층 더 ‘비운의 연인들(star-crossed lovers)’로 만든다."


이어 위험하고 뜨거운 불가항력적 사랑과 질투에 눈이 먼 호세에게 전하는 미카엘라의 편지가 무력화되는 모습을 그리며 집시 카르멘의 무한한 자유에의 열정에 강렬함을 더한 프란체스코 로시의 〈비제의 카르멘〉(1984), 타치아나가 오네긴에게 보낸 격정적 연서, 그리고 그 이후 ‘엇갈린 사랑’이 가져온 오네긴의 후회와 절망을 한 편의 시처럼 그린 페터 바이글의 〈차이코프스키의 에브게니 오네긴〉(1988), 베르테르의 샤를로트를 향한 절절한 연모의 편지가 시적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페터 바이글의 〈마스네의 베르테르〉(1985)이 눈에 띈다. 

이와 함께 나폴레옹의 마렝고 전투가 일어난 사흘 후 단 하루 동안에 벌어진 예상 밖의 사건에 휘말린 카바라도시가 처형대에 서기 전 마지막 편지를 쓰며 비탄한 심정으로 아리아를 부르는 모습을 담은 브누아 자코의 〈푸치니의 토스카〉(2001), 핑커톤이 샤플레스에게 보낸 편지를 초초상에게 읽어주는 장면에 흐르는 자포니즘 속 ‘상상된 이국성’이 담긴 프리데릭 미테랑의 〈푸치니의 나비부인〉(1995)이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


음악평론가 조셉 커만은 핑커톤이 탄 배가 나가사키 항으로 점점 들어올 때 ‘어느 갠 날’ 아리아의 음악을 반복하는 2막 1장의 ‘편지의 이중창’ 장면에 대해 “효과를 치밀하게 계산한 반주 및 전조(轉調) 등으로 음악이 극의 스토리 전개의 원천을 만들어 가고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프리데릭 미테랑 감독은 고문서에서 발견된 1904년도 청일전쟁 당시 나가사키의 모습을 튀니지 해변에 거의 그대로 재현해 오페라 무대를 항구 너머 수평선 저 멀리까지 확장시키며 황금빛 선율로 흐르는 ‘자포니즘’ 속 ‘상상된 이국성’에 대한 극 중 몰입도를 극대화한다.(p.167~168)



2부는 희극 오페라 영화 4편으로 수잔나의 대필 편지가 대변하는 사회적 메시지와 그 서사적 파장을 다룬 장 피에르 포넬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1976), 로지나의 편지쓰기 제스처에 나타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에스프리(esprit)’를 담은 장 피에르 포넬의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1972), 팔스타프의 양다리 연애편지가 드러낸 가부장 사회의 부조리와 여성들의 연대를 그린 괴츠 프리드리히의 〈베르디의 팔스타프〉(1979), 즈덴카의 ‘침실 속임수(bed trick)’ 편지가 가져온 소동 이면의 20세기 초 빈 상류사회의 위선을 보여준 오토 쉥크의 〈슈트라우스의 아라벨라〉(1977)를 담았다. 또한 12편의 오페라마다 각 줄거리와 그 탄생 배경, 원작인 문학과의 비교 및 오페라 영화 속 역사적 사건과 시대적 함의를 다루어 파편으로 드러나 있거나 또는 전혀 드러나 있지 않은 작품의 내·외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로지나는 그녀의 인생과 재산을 제멋대로 좌우하는 의사 바르톨로에게 거의 감금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기지를 발휘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하는 당차고 매력적인 여성인 동시에 돈 많은 귀족이 자신을 농락하는 것을 경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하는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특히 이러한 로지나의 모습은 극 중 편지쓰기 행동을 통해 잘 드러난다. 로시니는 이를 기발하고 재미있는 음악으로 표현해 유쾌한 오페라 부파로 탄생시켰다. 장 피에르 포넬 감독은 출연진들이 펼치는 혼연일체의 절묘한 앙상블을 발랄하면서도 정교하게 표현한다.(p.204)


저자 : 임복희


이화여자대학교 학부에서 행정학과 및 법학과를 졸업했고,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및 박사학위(Ph. D. in Law)를, 미국 코네티컷로스쿨(University of Conneticut School of Law)에서 LL.M을 취득했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연세대학교 등에서 법과 인문학을 주제로 연구 및 강의하며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 거제시 입법평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오페라 애호가이자 영화칼럼니스트이다.

박사학위 논문은 「외국판결의 승인 및 집행법제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2011)이며, 최근 연구논문으로는 「한국 법원의 종교 성지공간에 대한 이해: 성지 공간을 둘러싼 종교 간 갈등에 관한 두 판례들을 중심으로」(종교문화비평, 통권 제44호, 2023) 등이 있다. 저서로는 『세상을 바꾼 영화 속 인권 이야기: 필름의 눈으로 읽는 법과 삶』(오디세이북스, 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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