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읽고 쓰다 - 독서인문교육을 말하다
이금희 외 지음 / 빨강머리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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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읽고, 쓰고, 말하다. 이 책을 통해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독서인문교육 전문가 10인의 생각에서 답을 찾는다. 21세기도 4분의 1이 지나가는데 우리의 교육은 과연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지 성찰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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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읽고 쓰다 - 독서인문교육을 말하다
이금희 외 지음 / 빨강머리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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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책은 문자 발명 이후 인류 문명 최고의 지식 전달 매체로 떠올랐다. 고대 중국은 대나무를 다듬어 쪼개고 윗 부분에 구멍을 뚫어 안쪽에 글자를 쓰고 둘둘 말아 일정량을 묶어 책이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한자 '책(冊)'은 죽간을 꿰어 놓은 모양을 본따 만들어졌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라는 식물 줄기의 껍질을 벗겨내고 속을 가늘게 찢은 뒤, 엮어 말려서 다시 매끄럽게 해 종이로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쓰는 종이라고 할 만한 얇고 질긴 종이는 AD 105년 후한의 채륜이 발명한 것으로 이후 제지법이 유럽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문자 이전 시대는 기록과 지식 이전 방법을 우리가 말하는 언어 이외에 방법이 없었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에서야 멀리 있는 사람과의 소통을 할 수 있었고, 시간을 초월해 후세에도 전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문명은 문자-책-종이의 발명으로 획기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공간을 뛰어 넘은 지식 전달은 물론 학자들이 시간을 초월해 연구를 계속하는 결정적 기여를 한 것들이다. 종이라는 개념은 2,000년이 가까워 오는 시점인 20세기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명되고 통신수단이 발전이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진전되면서 이젠 종이의 시대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형국이지만 아직까지는 '책' 하면 '종이'의 개념이 훨씬 크다. 문자, 종이, 책은 인류 문명을 불과 2,000년 만에 상상을 뛰어넘게 발전시켰다. 이에 '책'으로 통칭되는 매체는 '공부'와도 가장 밀접하게 관련어로 자리잡았다.

독자가 어렸을 때는 "공부 좀 해라"는 부모님의 말씀은 곧 "책 좀 봐라"는 말과 동의어였고, 책은 곧 공부였다. 걸을 때부터는 말을 먼저 배우지만 조금만 자라면 읽고 쓰는 법을 배운다. 이때부터는 공부다. 물론 부모님이 가르치는 것이다. 원래는 초등학교 때 입학해서 한글, 숫자와 셈법 등 기초적인 것을 배웠지만 요즘에는 한글 정도는 모두 유치원 가기 전에 마스터한다. 심지어는 영어 기초도 가르친다고 들은 적도 많다. 이른바 '조기 교육'인데 요즘은 너도나도 모두 조기 교육을 실시한다고 하는데 그 효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라는 평이 이미 확인되었다.

이 책 『공부를 읽고 쓰다』는 대구의 초·중·고에서 독서인문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전·현직 교사 10명이 의기투합해 책과 '진짜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 저자가 쓴 책의 내용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과정에서 각 교과목의 공부법을 빈틈 없이 촘촘히 나누어 집필했다. 이 책에는 독서인문교육이라는 카테고리에서 탄탄한 이론과 오랜 현장 경험으로 얻어낸 자신들의 비법을 알리고자 집필 분담에 의견을 모았다. 이들 저자는 '공부의 방법'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과목에 '책 읽기 쓰기'를 통한 방법을 담았다. 책을 읽고 있으면 모두 공부한 줄 알았던 지난 세기 학생을 둔 가정에서의 부모님들의 교육 열의는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러나 산업화 시기 우리 나라에는 기술 우선의 교육 방침이었고, 인문 교육은 '굶어죽는' 일로 여겨질 만큼 불균형 교육이었다. 실제로 공과대, 경영대 등은 '모셔갈' 정도로 취업도 잘 되었지만 인문계 대학 출신자들은 취업부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나마 영어 등 외국어 계열은 취업에 다소 유리했지만 국어는 산업사회에서는 도무지 쓸모있는 학문이 아니었다.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면서도 한편으론 취업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했다. 한때는 "대학 입시에서 '국어' 시험을 없애지 않는 데에 감사할 따름"이라는 자조적이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산업화와 민주화도 어느 정도 완성되고 국민들의 소득도 올라가면서 책 읽기와 글쓰기가 다시 쓸모 있는 공부가 됐다. 국어 교육이나 글쓰기도 많이 장려되는 분위기다. 이 책의 저자들도 대체로 학교에서 국문학과나 국어교육과 등 관련학과 출신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 학과 출신이 아니라면 나름대로 독서나 글쓰기를 하고 싶은 분들일 것이다. 이른바 작가 지망생? 이 같은 말을 하신 분들은 없지만, 이들 저자가 독서인문교육에 쏟는 열정과 노력을 보며 독자가 해본 생각이다. 남에게 가르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충분히 알아야 가르칠 수 있다는 겸허한 자세, 글쓰기 교육이 인성뿐만 아니라 학생의 공부에 미치는 영향을 가르치는 열정. 이들이 책에서 녹여낸 글에는 열정과 스스로의 노력이 땀방울처럼 송글송글 맺쳐 있다.

"미치도록 읽고 싶고, 말하고 싶고, 막 쓰고 싶게 만드는 노하우" 이들 저자가 책을 펴내면서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다. 물론 출판사의 소개글에 나온 말이라 이들 저자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미 오래전부터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고 있으면 불안하다. 공부와 책을 별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은 아무리 읽어도 누가 성적을 매겨주지 않기 때문일까? 수능에 반영되지 않아서일까? 요즘 학부모는 옛날과 다르다. 옛날에는 부모가 대학을 나온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적어도 대학 입학할 정도의 자녀가 있는 부모는 20세기까지는 부모 양측이 모두 대졸인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불과 20여년이 지났는데 이젠 양측 부모가 대졸이 아닌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물론 서울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만. 그런데도 책 읽기나 글쓰기가 대학 수능에 없는 과목이란 말을 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직접 점수를 반영하는 과목의 점수부터 올리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부모로선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점수를 잘 받으면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고, 명문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으니까. 

책은 아무리 많이 읽어본들 돈 많이 버는 직업과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지식 획득은 쉽고 간편해졌다. 모르는 게 있으면 누구나 자신의 핸드폰으로 검색 가능하다. 조선 역대 왕의 계보나 영단어 스펠링을 굳이 달달 외워가며 암기하고 살아갈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학교 교육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얼마나 잘 외웠는지,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점수를 매긴다. 학생들의 지능이 나날이 발달하고 아는 것이 많아지자 시험은 시험대로 나날이 유형을 바꾸면서 난이도도 높인다. 오직 공부의, 공부에 의한, 공부를 위한 공부가 되었다는 교육계 한쪽의 우려도 되새겨야 한다.

이들 저자는 출판사 측의 소개글처럼 "그런 공부를 했고, 그런 공부를 가르치던 교육자들"이다. 이들의 교육 방법은 지금까지의 초·중·고교에서 가르치던 암기 위주, 입시 대비에 치우치다 보니 전인 교육을 지향하는 공교육의 목적을 벗어난 '공부 기술자' 혹은 '고득점'만을 노린 교육으로 기울어졌다. 이에 이들 저자는 '반란'을 일으킨 셈이다. 교육자로서의 신념에 따라 책을 텍스트로 학생들의 지식과 지혜를 스스로 터득하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교육을 실천한 분들이다. 이 때문에 이들의 노력과 경험은 우리 학생들의 교육에 매우 유의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 『공부를 읽고 쓰다』에 참여한 전·현직 교육자들의 목소리는 한결 같다. "책 속에서 답을 찾고, 책으로 답하라"다. 책 읽기가 즐거워지는 교육, 미치도록 쓰고 싶도록 만드는 교육,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답을 찾아가는 교육 비법을 저자들이 아낌없이 방출한 이유다.

이 책 〈서문(들어가며〉에서 저자들은 공부의 의미에서 출발해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을 압축하고 있다. "'공부란 무엇일까요? 공부는 낯선 세계에 던지는 질문이고, 질문에 대한 탐구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공부는 읽고 말하고 쓰는 활동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교과도 다르고 가르치는 학생도 다르지만 '학생들이 함께 글을 읽고 말하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암기하도록 가르치기보다는 더 많이 관찰하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말하고 쓰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p.7)

이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책을 쓰다〉, 2부 〈책을 말하다〉, 3부 〈책을 읽다〉 등이다. 1부에는 중등에서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진행한 책쓰기 수업의 과정, 그 효과와 유의할 점을 소개하고, 동아리 책쓰기 수업에 꼭 필요한 라포 형성과 알 깨기, 주제 탐색 방법과 책쓰기로 바뀐 인생담을 실었다. 2부에서는 초등에서 함께 책을 읽고, 말하고, 쓰는 활동을 통해 책과 사랑에 빠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중등에서는 책 읽기와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학생들이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과학 수업, 토론학습의 구체적인 진행 방법과 토론을 통한 탐구 활동 지도 과정을 보여주는 사회 수업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3부에는 중등에서는 오랫동안 고전 읽기에 공들인 선생님이 인문 고전 읽기의 효과와 지도상 유의점 등을 사례를 기반으로 설명한다. 사서 선생님이 진행한 다양한 도서관 활용 독서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담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에는 10명의 전·현직 교사들의 독서인문교육의 방법과 경험 사례, 그리고 그들만의 노하우가 세심하게 다루어진다. 책을 읽다보면 오디오와 비디오가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학교가 보이고, 교실도 보인다. 교실 안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수다들이 들리고, 사각사각 글 쓰는 소리가 들리고, 토닥토닥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교육 현장의 사례와 모습을 일일이 교사들이 간추리고 다듬어 다른 교육 현장으로 확대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다. 10명의 저자가 각각 1장(章)씩 썼으며 3부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가 성적 중심의 수업이 아닌 읽고, 쓰고, 말하는 수업이 되기를 이들 저자는 말한다. 대구교육연수원의 '한 학기 한 권 읽기' 연수의 결과물임을 〈에필로그〉를 통해 저자들은 밝힌다. 최근 이슈가 되는 어휘력과 문해력은 많은 책을 읽거나 암기한다고 길러지는 게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엄청난 정보가 쏟아지는 사회에서 올바른 자료를 분별하는 눈과 그 자료를 이해해내는 머리를 훈련하는 일은 눈앞의 과제다. 이 오랜 숙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 그 공부 비법이 이 책 『공부를 읽고 쓰다』에 있다. 


저자 : 김묘연

대구과학고등학교 국어 교사. 책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좋아한다. 학생들이 삶을 쓰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냥 배가 부르다. 글쓰기가 가진 마력을 잘 알고 있기에 ‘알 깨는 책쓰기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2008년부터 책쓰기 지도 교사를 하면서 학생들의 책을 엮어 출판하였으며, 책쓰기 지도 강사로 활동하며 『오만방자한 책쓰기』, 『공부를 읽고 쓰다』(공저)를 저술했다. 우수 도서로 선정된 『소녀협주곡 18번』, 『꿈의 토핑 한 조각, 희망 소스 한 방울』, 『소년 소녀 두근두근』, 『동감』, 『고삐리의 어떤 하루』, 『마음을 그리다』, 『한국 동화의 중국 나들이』를 출판했으며, 『이과생이 풀어쓴 국어 문법』, 과학시집 『시이언스』, 『순수-수에 진심을 담다』와 같이 교과와 연계한 책쓰기 도서도 있다. 전자책 발행으로 『몸으로 읽기_나만의 ‘월든’찾기』, 『삶은시 한 젓가락』, 『과학고 아이들의 과학 칼럼』이 있으며, 『산소발자국을 따라서 지구 지키기』와 같은 환경 실천 도서 출간은 물론 학생들과 환경기금 마련 기부 활동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생명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myossaem@naver.com


저자 : 최순나

목련꽃의 겨울눈을 함께 관찰하며 자연의 위대함을 배우는 생태 교육, 삶이 있는 책쓰기 교육, 맨발로 걸으며 인성을 회복하는 맨발 걷기 교육을 실천하는 초등학교 교사이다. 반 아이들과 함께 엮은 책 『나 좀 내버려 둬』, 『강낭콩 꼬투리가 생겼어요』, 『우린 예쁜 별꽃이야』, 『벚꽃읽기』, 『맨발걷기』, 『가을찾기』, 『솜사탕 그 기억 따라』, 『1학년이 쓴 1학년 가이드북』이 있으며, 저서로 는 교단일기 『오늘 간식은 감꽃이야!』, 『아이들이 먼저 하고 싶어 하는 시와 그림책 수업』, 『내 아이의 첫 선생님 1, 2』, 『우리 글 쓸래요』 등이 있다.


저자 : 이인희(놀샘)

학생들이 교실에서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교실놀이와 8가지 보물을 찾아 떠나는 ‘놀샘 초등셀프리더십 보물찾기’를 만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랜드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학생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교사의 꿈을 포기하지 못해 다시 수능을 보고 교육대학교에 입학했다. 현재 학생들이 행복한 리더가 되도록 돕는 비전을 가진 초등학교 수석교사로 놀샘이라 불린다. 교실놀이, 보물찾기(초등셀프리더십), 놀이독서 등 다양한 주제로 전국의 초등학생, 교사, 학부모에게 강의하고 있으며, 교육대학교 강의 평가 1위, 아이스크림 연수원 연수 1위(2015년)를 했다. 지은 책으로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교실놀이』 『교실놀이, 수업에 행복을 더하다』 『보물찾기(셀프리더십 바인더)』 등이 있다.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꿈꾸는 초등학교 수석교사다. 놀이, 책, 리더십을 접목한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행복한 리더가 되는 비전을 품고 산다. 2019년 대한민국 스승상을 수상했고, KBS 다큐 세상에 출연했다. 아이스크림원격연수원에서 교실놀이, 그림책놀이 연수를 개설했으며,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겸임교수다. 그림책놀이수업, 교실놀이, 셀프리더십을 주제로 두산그룹, 몽골 울란바타르대학, 3P자기경영연구소, 전국 교육연수원 및 교육청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그림책 놀이수업의 기적》, 《교실놀이, 수업에 행복을 더하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나》 등이 있다.


저자 : 박정미 구암고등학교 수석 교사.

학생과 함께 사회 현상을 탐구하며 토론을 즐기는 사회과 교사다. 학생이 토론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길을 찾아 잘 걸어가도록 지도하는 게 바람이다. 그 힘을 키워주는 수업을 위해 함께 걸어가고 있다.

pjm4764@hanmail.net


저자 : 이상철 칠성고등학교 수석 교사.

산과 바다와 사람을 사랑하고, 인문학적 배움과 실천을 갈구하는 고등학교 윤리교사다. 타자를 통해서 자아를 성장시키는 교육 문화와 배움 중심 수업을 교실에서 꽃피우고 싶어한다.

hannuri75@hanmail.net


저자 : 임정미 대구팔공중학교 수석 교사.

책쓰기를 통해 자연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은 과학교사니다. 아이들과 함께 자연이 주는 지혜를 알아가는 수업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연을 읽고 쓸 수 있기를 소망한다.

bun310@naver.com


저자 : 박미진 왕선중학교 사서 교사.

도서관에서 책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을 즐긴다. 책읽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면서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 책과 책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학교도서관은 우리 모두를 품어내기에 충분하다고 소신을 피력한다.

bmjean@naver.com


저자 : 박홍진 (전) 다사고등학교 교장.

도서관은 학교의 심장이다. 사서 교사가 있어야 학교도서관이 산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다사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유롭게 책을 읽으며 살아가고 있다.

danggamnamu@naver.com


저자 : 이금희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중학교, 인문계고, 특성화고에서 삼십여 년 국어를 가르쳤다. 처음에는 학생과 친한 교사가 되고 싶었고 좀 시간이 흘러서는 잘 가르치는 선생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고 싶다. 학생은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창조하는 존재이며 채워가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그대로 온전하여 늘 꽃피는 존재다. 선생은 그것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면 된다. 격려하고 함께 있어주면 된다. 날마다 새로운 얼굴로 질문하면서 꽃피는 학생 옆에서 나도 함께 꽃피고 싶다.

저서: 『공부를 읽고 쓰다』(2023), 『이금희의 국어수업』(2019), 『원래 책 안 읽는 아이』(2019), 『오만방자한 책쓰기』(2015), 『욕망이 말하다』(2013), 『책쓰기 꿈꾸다』(2012). 학생 저자 엮음책: 『아틀리에』(2018), 『이 삶을 살아가며』(2019), 『낡은 책방의 내일』(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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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던 눈빛에 칼날이 보일 때
김진성 지음 / 델피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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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운전은 이제 '예비 살인'에 해당하는 행위로 간주될 정도로 법률도 변했다. 사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민족이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배웠고, 산업화 시대까지는 음주 및 음주 사고에 대해 무척 관대했다. 웬만하면 훈방 혹은 간단한 과태료 부과의 처벌을 받았다. 산업화 시대까지는 오직 일만 하는 직장인·노동자는 퇴근 후 으레 회사 근처에서 술 한잔씩 하며 피로도 풀고 스트레스도 잠재웠다. 그땐 그래도 자가 운전자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대부분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 등을 이용해 귀가했기 때문에 음주 사고가 비교적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지갑이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가장 첫 번째 유혹은 자동차였다. 이른바 '마이카 시대'라는 언론의 보도가 잇따를 정도로 승용차가 직장인들의 첫 번째 희망이었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한 학원이나 교습소가 떼돈을 벌 정도로 경제 성장의 과실을 챙기는 첫 번째 확인 물품이 자동차가 된 것이다. 그때는 운전학원이 모두 소화하지 못해 개인적으로 운전 교습을 해주는 뜨내기 강사들도 많았다. 독자가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운전 면허를 땄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주와 운전은 궁합이 맞지 않는다. 음주하면 두려움이 많이 사라진다. 술 마시고 운전하는 습관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렇게 우리를 길들여 갔다. 술 먹어도 다음날 출근을 하기 위해 차를 가지고 가야 한다는 논리가 같이 마신 사람들 사이에는 묵언의 합의가 된 셈이다. 더욱이 인명 사고가 아니라면, 음주운전 전과가 없을 경우 훈방 혹은 과태료였다. 음주 수치가 법이 정한 기준보다 높게 나올 경우지만. 사실 음주 측정기에 기록된 수치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늘 높다. 또 역과 사고를 냈을 경우 재판에 가더라도 사망 사고가 아니라면 초범의 경우 훈방이나 벌금 조치됐다. 재판정에서도 형량의 경감이 이뤄진다. 사망 사고만 아니라면 집행유예 혹은 벌금형이 대부분이었다. 형량 경감의 이유는 하나같이 과음으로 '심신미약' 상태라는 판결문에 적시된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음주운전 사고가 너무 잦은 것이 사회 문제로 부상됐다. 경찰의 음주 단속이 수시 혹은 정기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도 생각보다 쉽게 음주운전은 줄지 않았다. 요즘처럼 술 마시면 운전하지 않는다는 의식은 21세기 들어서야 생긴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언론도 음주운전 사고에 대해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것은 21세기 들어서였다. 음주운전이 가장 나쁘게 인식된 것은 죄 없는 피해자가 다치거나 사망할 경우 쉽게 보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음주 운전 사고는 한 가정을 파괴한다는 음주 운전 방지 캠페인이 벌어졌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마른 하늘에 날벼락일 수 있다. 이후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갈수록 커졌다. 음주운전이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례법'(윤창호법)도 생겼다. 음주운전을 하다 사람을 다치게 하면 현행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강화됐다. 또 음주운전의 면허정지 기준도 혈중알코올농도 0.05%에서 0.03% 이상으로, 면허취소 기준은 0.1%에서 0.08% 이상으로 크게 강화됐다. 보도에 따르면 이후 음주운전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음주운전의 어두운 그림자는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옛날 산업화 시대에는 사회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인명 사고 없는 사고 정도로는 훈방이나 과태료였지만 이제는 공인일 경우 더욱 처벌 수위가 높다. 음주운전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경찰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지난 5월 9일, 가수 김호중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음주 상태로 차량을 운전하다가 택시와 접촉사고를 일으킨 후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음주운전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후의 행동들이 추가적인 법적 문제로 이어지면서 집중 조명됐다. 사건 초기 김호중은 도주 후 매니저와 통화했고, 대신 자수하게 하여 조직적인 증거 인멸 시도를 했다고 검사는 지난 30일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했다고 보도에 난 적이 있다. 그의 거짓 진술과 증거 인멸 시도, 조직적 은폐가 드러나 무거운 형이 구형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소설 작품 『비틀거리던 눈빛에 칼날이 보일 때』는 음주운전과 관련한 신약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신약 개발의 윤리적 잣대를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주인공 유정인은 현재 법정 의무교육 강사를 빙자하여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며 신약 ‘알모사10’을 홍보하고 판매한다. 이 ‘알모사10’만 복용하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체내 알코올을 10분 만에 없애주는 약이다. 마치 떠돌이 약장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약이 개발되리라고는 독자들도 에상치 못했을 것이다. 소설의 등장인물들도 당연히 반신반의하며 광고 내용에 콧방귀를 뀌지만, 얼떨결에 ‘알모사10’의 효과를 본 사람이 생겨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만취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판매한 ‘알모사10’을 먹자 금세 혈중알콜농도 0%로 떨어져 천운으로 불시 음주 단속을 피했다는 정 사장의 경험담이 입소문을 탔다. ‘알모사10’의 영업소에는 전국 애주가들의 러브콜이 잇따른다. 마음껏 술을 마신 후에도 얼마든지 운전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들에게 면죄부가 생기며 당연히 ‘알모사10’의 판매는 급증한다. 

독자를 비롯한 일반 사람들은 믿지 않듯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 같은 '마법의 약'이 개발 가능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과연 ‘알모사10’은 첨단 과학 기술의 결정체일까? 그렇다면 ‘알모사10’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질문이 이 책의 전개 핵심이다. 제주도에서 발생한 참혹한 교통사고 현장을 보도하는 아나운스멘트로 시작된다. 

"어젯밤인 7월 24일. 제주시 애월읍에서 만취자가 운전하던 빨간 스포츠카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SUV와 정면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두 차량에 탑승했던 총 7명의 인원이 모두 숨졌는데 SUV에 탑승한 사람들은 생애 첫 여행을 떠나온 일가족이었습니다."(p.7)

빨간 스포츠카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SUV와 정면충돌한 이 사고로 두 차량에 탑승했던 7명이 모두 즉사한다. 특히 SUV에는 생애 첫 가족 여행을 떠난 일가족이 타고 있었으며, 사건 후에야 스포츠카의 운전자가 만취 상태였음이 밝혀진다. 이 소설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이고 빈번히 발생하는 음주 운전을 배경으로 단 한 번의 복용만으로 음주 운전 단속의 족쇄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해주는 신약 ‘알모사10’을 판매하는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탐구하는 새로운 범죄 스릴러다. 주인공 유정인은 왜 ’알모사10‘을 판매하는 것일까? 그는 어떤 인생의 궤적을 그리며 살아왔던 것일까? 이 작품을 끌어가는 주인공이 왜 ‘알모사10’을 판매하게 됐을까? 독자들의 궁금증은 신약 개발의 윤리적 의무에 맞추어 이야기는 전개된다. 단순한 범죄의 서사를 넘어, 독자들에게 신약 개발의 윤리성을 고민하게 하는 데 집필 의도가 담겨 있다고 독자에게는 읽힌다. 또한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분노를 적나라하게 부각시킴으로써 음주 운전의 폐해 역시 심각한 문제로 부상한다. 저자 김진성이 피해자의 시선에서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은 감정적 여운을 남길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이 작품의 저자 김진성은 이 작품을 출간하며, 전공인 화학공학과 소설의 접목을 시도해 소설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술을 마시든 좋아하지 않든 음주 폐해를 줄이려는 노력이 다각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신약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될 뿐 피해자와 공동 사회의 고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윤리적 문제를 저자는 제기한다. 돈이 가치 척도이자 삶의 목적인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고발성 폭로도 저자의 집필 의도에 포함되어 있으리라고 이해되는 대목이 곳곳에 나타난다. 이로써 흥미로운 소재인 신약 ‘알모사10’는 저자의 독창적인 소설적 시도로 읽힐 수 있다. 동시에 저자가 소설에서 창조해 낸 신약은 독자들에게 과학 기술 발전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재정립할 것을 함축하며 은근히 신약 개발에 대한 '윤리성'을 압박하고 있다. 음주 운전 약뿐일까?

이 작품은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2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사고 외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한 단란한 가정이 음주 운전의 피해로 산산조각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이 등장한다. 어렵게 고생하며 키운 아들이 대기업에 취직하자,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지인들에게 한 턱을 낸다. 이 자리에 아들이 잠시 들러 감사의 인사하려던 참에 한 주취자가 몬 자동차가 축하연이 벌어지는 식당을 들이받고, 이 사고로 아버지는 사망하게 된다. 아들이 울부짖으며 절규하지만 운전자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경찰이 출동해도 버틴다. 10분쯤 머뭇거리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 알코올 냄새를 풍기지만 음주 측정기에 나타난 알콜 혈중농도는 제로(0)다. '알모사 10'을 복용한 운전자는 음주운전 부분에서는 무죄가 된다. 이 사건으로 신약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약은 불티나게 팔린다. 약의 부작용을 알면서도 약을 판매하는 영업직원, 대기업에 입사한 아들의 돌변, 이를 파헤치는 형사의 심리 변화, 약을 판매하는 종교단체의 의도 등 복수와 원망이 뒤섞이며 사건이 전개된다. 음주 운전에 관한 각자의 상처들이 부딪히며 상황은 나락으로 빠져든다. 신약 '알모사 10'의 가격은 백만 원이 넘지만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짚어내고 있다. 

음주운전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벌써 수십 년이 되었지만, 특별법 등 각종 음주운전 폐해를 홍보하고 계도해도 눈에 띌 만한 효과가 없는 음주운전 단속. 아직도 느슨한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 등이 어우러지면서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신약 개발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피해자들의 시선에서 독자들에게 음주 운전 가해자에 대한 복수와 피해자에 대한 구원의 카타르시스를 주려는 저자의 의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나를 바라보는 여러분들의 눈빛은 매우 다릅니다. 극과 극으로 나뉘어 있죠. 그러나 나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날 어떻게 바라보든 나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을 지킨 거니까요.”(p.210)


저자 : 김진성


극작가 및 소설가. 서울의 한 대학에서 화학신소재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가릴 선, 들 거」로 2022년 우수과학문화상품 스토리 부분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그즈음부터 이야기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대부분 좋아하지만 「블랙 미러」 시리즈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이야기에는 열광한다.

인스타그램 주소 @cham.jin_2rule.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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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예찬 - 문학과 사회학의 대화
지그문트 바우만.리카르도 마체오 지음, 안규남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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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문학 예찬』은 유대계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한 세대 뒤인 이탈리아 문학 편집자로 유명한 리카르도 마체오가 주고 받은 편지를 근간으로 엮은 책이다. 이 책은 두 사람이 사회학과 문학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면서 관련된 문화를 분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자처럼 문학 이론이나 사회학 공부를 하지 않은 분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깊어지면서 은유와 심층적 지식이 자주 튀어 나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문학이나 사회학에 관련된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기가 어렵지만은 않다. 이유는 리카르도 마체오가 현대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질문으로 꺼내면 지그문트 바우만이 그에 답하는 서한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문학의 역할이나 사회학적 현상을 대하는 질문이 중심이 됐기에 응답자 역할을 하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상이 문학을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책의 표제어가 '문학 예찬'이 된 까닭이다. 다만 사회학자이자 세계적 석학인 지그문트 바우만이 쓴 편지 중에는 사회학의 역할과 문학과의 관계에 대해서 통찰력 있는 응답에 오늘날 문학의 위기라 일컬어지는 시기에 매우 의미 있는 문학의 미래를 제시하는 글이 자주 눈에 띈다. 이 책의 부제 「문학과 사회학의 대화」로 정한 이유일 것이다. 

인문적인 문학과 과학에 바탕을 둔 사회학이 매우 이질적인 분야로 여겨지는 가운데 현대에는 두 카테고리가 한데 묶여야 할 운명임을 슬며시 내비친다. 문학과 사회학은 비슷한 문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한데 묶일 수 없는 각각의 영역을 가진 분야로 독창적 분야로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현대로 접어드는 시기에 두 개의 분야를 한데 묶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깨달음이 양쪽 분야 모두에서 발아한다. 이로써 문학과 사회학은 매우 논쟁적인 문제가 된다. 많은 논평가들이 문학과 사회학을 근본적으로 다른 분야로 보았지만, 바우만과 마체오는 이 두 분야가 공통의 목적과 주제로 함께 묶여 있다고 주장한다. 즉 문학과 사회학은 연구 방법과 결과를 제시하는 방식에서는 차이가 많을지라도 결코 그 목적까지 상반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두 저자(이하 저자)는 오히려 그 차이점 때문에 서로 보완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는 것으로 본다.
소설가와 사회학자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기 세계를 탐구하고 각기 다른 유형의 '데이터'를 찾고 생산하지만, 그 생산물에는 공통된 기원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들은 의제·발견·메시지의 내용 등에서 서로에게 자양분을 주며 의존한다. 새로운 감각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와 소비의 물신주의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그들은 근본적인 실존적 질문을 다시 공적 의제로 가져온다. 문학과 사회학이 상대의 연구 결과에 주의를 기울이고 계속 대화하며 협력할 때, 비로소 인간 조건의 진실이 드러난다. 문학과 사회학은 함께해야만 전기와 역사, 개인과 사회의 복잡한 얽힘을 풀고 밝혀내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할 수 있다고 저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문학과 사회학이 사명과 사회적 영향뿐만 아니라 탐구 영역, 주제, 소재도 공유한다는 주장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주장이 옳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책을 펴낸다고 밝히고 있다. "문학과 사회학은 양자의 친족관계와 협력의 특징을 밝히려 시도할 때, '서로를 보완·보충하고 풍부하게 해준다. 문학과 사회학은 적대 관계는커녕(···) 경쟁 관계에도 있지 않다. 알건 모르건, 문학과 사회학은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그런 점에서 둘은 같은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에 따라 섣부른 판단이나 주입되거나 자신이 만들어낸 잘못된 생각들로 짜인 베일을 찢고 인간 조건의 수수께끼를 풀어내고자 하는 사회학자라면, 그리고 '시험관에서 태어나고 길러지는 호문쿨루스(homunculus)*의 오만하고 미심쩍은 '지식'으로 채워진 '진리'가 아니라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 실마리를 프란츠 카프카, 로베르트 무질, 조르주 페랙, 밀란 쿤데라, 미셸 우엘베크 같은 작가들에서 찾는 것이 가장 좋다"고 강조한다. 문학과 사회학은 서로에게 자양분을 제공하고 또한 둘은 서로의 인식의 범위와 한계를 밝히고, 서로가 저지르는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협력한다고 역설한다.

*호문쿨루스(homunculus) : 르네상스 시대의 연술사 파라켈수스의 저작에 나오는 아주 작은 인간. 시험관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며 모든 지식을 갖춘 상태로 태어난다.
저자는 자신들이 주고받은 편지가 주로 사회학적 관심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문학 이론을 펼쳐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문학 이론의 장구한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고 말한다. 저자가 다루고자 한 것은 예술과 인문사회과학 간의 생생한 다면적 관계 자체라고 단언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인간 조건에 대한 이 두 종류의 탐구가 공유하고 있는 목표, 서로에게 제공하는 자극, 서로 주고받는 것을 추적해 기록하기 위해 뜻을 함께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기쁨과 슬픔, 기대와 좌절 등 인간의 세계-내-존재 방식들을 추적해 기록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문학과 사회학이라는 두 종류의 문화적 생산물은 각각 자기 영토에 들어오려는 모든 신청자들에게 엄격한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각기 유일무이한 정체성과 영토적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하고 까다롭고 부담스러운 규정과 추방 조항을 성문화한다고 비판적 시선을 보인다. 규칙에의 순응이라는 기준에 따라 경계선 방책과 빗장을 엄청나게 높이 설치함으로써, 충분히 훈련되지 않았거나 계급 특권을 침식할 우려가 있는 신청자들은 아예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게오르그 루카치가 일찍이 1914년에 이러한 이원성을 멋진 표현으로 포착했다고 그의 문장을 인용한다. "예술은 항상 삶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한다. 형식의 창조는 불협화의 존재에 대한 가장 심원한 확인이다. (···) 그 존재가 완성된 형식 내에 있는 다른 장르들과는 대조적으로, 소설은 생성 과정에 있는 것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많은-아마도 대부분의-사회학적 연구는 완벽·최종·종결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루카치가 말하는 '다른 장르들'의 집단에 속한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또 사회학과 문학의 관계는 '형제나 자매간의 경쟁'에서 불 수 있는 온갖 특징들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모굪를 추구하면서 비교 가능한 상이한 유형의 결과들을 근거로 판단·평가·인정·불인정을 피할 수 없는 존재들 사이에 협력과 경쟁이 혼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임을 강조한다. 소설과 사회학은 동일한 호기심의 산물로 비슷한 인식적 목적을 갖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로써 소설가와 사회학자는 말하자면 공유주택에 산다고 비유한다.
이 책은 별도의 구분 없이 모두 12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각 장을 나눴다. 1장 「두 자매」, 2장 「문학을 통한 구원」, 3장 「진자와 칼비노의 비어 있는 증상」, 4장 「아버지 문제」, 5장 「문학과 공위기」, 6장 「블로그와 중개자의 소멸」, 7장 「우리 모두 자폐인이 되어 가는가?」, 8장 「21세기의 은유」, 9장 「트위터 문학의 위험성」, 10장 「마르고 습한」, 11장 「'일체화' 안에서의 건축」, 12장 「교육·문학·사회학」 등이다. 4장 「아버지 문제」는 마체오가 바우만에게 보낸 편지다. 마체오는 "오늘날 나약하거나 아이 같거나 부재한 아버지 안에 권위적인 존재로서의 아버지라는 옛 모델이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머리를 잡는다. 마체오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내용 중 '아버지'의 이미지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2판 〈서문〉의 내용을 교차 제시하며 아버지의 영향을 이야기한다. 강한 아버지, 책임감 있는 아버지로 듣고 보고 자랐는데 지금은 자식의 입장이 많이 변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자식은 모욕을 당하고도 가만있는 어머니는 거부하지 않지만, 모육을 당하고도 가만있는 아버지는 자식으로부터 "아버지답게 행동하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사랑이나 정의만이 아니라 완력이나 폭력도 사회관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자식은 "아버지가 공정과 사랑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강함의 측면에서도 자신과 가깝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전통은 패자로 간주되는 공정한 아버지보다 세상 사람들에게 승리한 불공정한 아버지를 선호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역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리어왕』에서 힘과 위신을 잃고 버림받은 아버지의 원형을 창조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p.89)

저자는 1968년 운동의 결과 중 하나는 아버지의 공격성 약화라고 지적한다. 68세대는 권위적인 아버지상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아버지는 지배적인 공격성을 버리고 다정하고 이해심 많은 친구로 자식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약한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강한' 아버지를 찾는 경향도 남아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권위는 민주화되었고, 아버지의 권력은 많은 측면에서 해체되었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잠재의식을 지배해 온 것이 몇 세대 만에 제거될 수는 없다. 아버지가 부재하고 새로운 질서로 전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구 사회는 적어도 잠재의식적으로는 여전히 가부장적 사회로 남아 있다."(luigi Zoja, 2 gesto, 2,000)
사회학(sociology)은 인간 사회와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인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가 창시했다. 콩트는 인간 사회도 자연세계처럼 자연과학적 방법과 동일하게 연구될 수 있다고 보고, 인간 사회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새로운 과학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사회학을 ‘사회 질서와 진보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명명했다. 콩트는 청년 시대에 생시몽의 비서였다. 그의 '실증주의 철학'은 현상의 표면적인 모습을 기술하는 것에 한정시키는 것을 '과학'이라 칭하기 때문에 자연과학이 축적한 대량의 데이터를 종합하는 데 노력했다. 그러나 그 입장은 결국, 주관적 관념론과 불가지론이 결합한 것으로, 그 종합도 정당한 것이라 할 수 없었다.

그의 견지는 자본주의를 인간역사의 정점으로 보고, 그 조화를 달성하는 길을 새로운 종교(인류교)의 선전에 있다고 해, 19세기 전반에 이미 고양된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노동계급의 운동, 이를 유지하는 사상에 대하여, 자본주의를 수호한 인물이다. 그의 사회학은 오늘날 마르크스와 루카치 등이 내세운 이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평가되고 있다. 후에 마르쿠제는 그의 저서 『이성과 혁명』에서 콩트가 헤겔을 파시스트 국가 건설에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한 것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문학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법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으로 마르크스주의 비평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들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와 독일의 사회주의자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논리에 이론상의 근거를 두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비평은 작가가 사고하고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는 경제적·계급적·이데올로기적 요소에 관심을 두는 한편, 그 결과물인 문학작품과 마르크스주의자가 그 시대의 사회적 현실로 보는 것과의 관련성에 특히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비평은 보통 전형적인 문학의 모방이론에 입각한다. 즉, 그것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고 불리는 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작가가 무엇을 모방해야 하는가를 말해 준다.(두산백과)

이 책의 번역자 안규남은 책 뒷 부분에서 〈옮긴이의 말〉을 통해 "바우만은 체험의 중요성을 역설하기에 그의 사회학적 작업에 문학과 예술이 중요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하다"고 말한다. 문학과 예술은 사회과학과 달리 대상의 진리를 그들의 실제 삶의 모습 속에서 포착하기 위해 개인이 주어진 상황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예리하고 구체적으로 표현·전달하기 때문이다. 바우만은 개인의 삶, 각자의 전기가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의 구조적 과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학·예술과 사회학은 서로 대화하고 협력해야 하는 형제 또는 쌍둥이라고까지 말한다고 밝히고 있다.
"근본적인 실존적 문제를 공적 의제로 만드는 것이 문학과 사회학의 공동 소명이다. 이런 문제를 찾아 제시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사회학은 일치한다. 즉 둘은 끊임없이 서로 보완하고 자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p.265) - 12장 「교육·문학·사회학」 중에서


저자 :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년 폴란드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가 소련군이 지휘하는 ‘폴란드의용군’에 가담해 바르샤바로 귀환했다. ‘폴란드사회과학원’에서 사회학을, 후일 바르샤바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54년에 바르샤바대학교 강사가 되었고,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활동했다. 1968년에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의 절정기에 교수직을 잃고 국적을 박탈당한 채 조국을 떠나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에서 잠시 가르치다 1971년에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영국에 정착했다. 1989년에 발표한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1990년에 정년퇴직 후 탈근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명성을 쌓았고, 2000년대에는 현대 사회의 유동성과 인간의 조건을 분석하는 ‘유동하는 현대Liquid Modernity’ 시리즈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1992년에 사회학 및 사회과학 부문 유럽 아말피상을, 1998년에는 아도르노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지금 유럽 사상을 대표하는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스투리아스상을 수상했다. 2016년에 최후의 서한집 『문학 예찬In Praise of Literature』을 내고, 2017년 1월에 타계했다. 주요 저서로 『액체 현대』 『리퀴드 러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레트로토피아』 등이 있다.


저자 : 리카르도 마체오

1955년 이탈리아 레체에서 태어났다. 볼로냐대학교 현대 외국어 및 문학과를 수석 졸업한 후 아스픽 모데나에서 상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에릭슨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지내다가 2014년 은퇴했다. 지그문트 바우만과 함께 『교육에 관하여』 『문학 예찬』 등을 썼다.


역자 : 안규남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칼 마르크스』 『간디 평전』 『민주주의의 불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위기의 국가』 『인간의 조건』 『평등은 없다』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으며, 『철학 대사전』 편찬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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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 - 나로 살아갈 용기를 주는 울프의 편지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신현 옮김 / 북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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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을 볼 때마다 우리 시인 박인환이 떠오른다. 그의 시 〈목마와 숙녀〉에 '버지니아 울프'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박인환은 우리나라 모더니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에서 언급되는 버지니아 울프를 동경했던 것 같다. 독자는 고등학교 시절 시인 박인환을 교과서를 통해 처음 알았고, 그의 시를 즐겨 읽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 후 폐허의 서울 명동에서 문우 등 예술인들과 교유하며 대한민국의 가장 비참했던 시절의 생활을 견뎌낸 시인이어서 기억이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그것보다는 그의 또 다른 시 〈세월이 가면〉은 곡까지 붙여 뒤에 한국인이 사랑하는 노래에 뽑힌 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중략)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하략) - 〈목마와 숙녀〉 일부


〈목마와 숙녀〉 싯구처럼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시인이 직접 밝히지 않는 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독자가 이해하기로는 숙녀와 버지니아 울프는 관련이 없다. 다만 시 발표 후에 문학평론가들이 싯구의 문맥상 다른 인물로 추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한 글을 읽은 적은 있다. 〈목마와 숙녀〉를 몇 번이고 읽어 보면 시의 분위기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나 작품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다만 모더니즘 시를 놓고 본다면 울프와 박인환은 같은 배를 탔다.

이 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는 버지니아 울프의 편지와 함께 3편의 에세이를 함께 묶었다. 편역자 박신현의 「자유, 우리 존재의 본질」이란 제목의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버지니아 울프는 많게는 하루에 여섯 통까지 편지를 보낼 정도로 편지 쓰기를 즐겼고 편지가 없다면 살 수 없을 거라고 고백했다. 그녀가 남긴 편지는 발견된 것들만 해도 4,000통 정도에 달한다. 편지에 대한 버지니아의 사랑은 이 섬세한 천재 작가의 영혼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었음을 뜻한다. 그녀로 하여금 편지를 쓰게 만드는 주요한 동기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다. 버지니아는 우정을 유지하고 회복하고 확장하기 위해서,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붙잡기 위해서, 그리고 뉴스와 가십을 주고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편지를 썼다. 

버지니아는 1882년 런던에서 태어나 제1,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어내고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계속되는 가운데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머리 위로 매일 적군(독일) 비행기가 공습을 위해 굉음을 내며 날아다녔던 공포가 일상화되었을 무렵이다. 이런 분위기는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왔던 버지니아의 정신질환을 재발가게 하고 끝내 그녀의 생을 앗아갔다.

이 책은 ‘자유가 우리 존재의 본질’이라고 말했던 그녀의 삶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96통의 편지를 직접 편역자 박신현이 직접 발췌해 엮고 번역했다. 버지니아가 연인 비타 색빌웨스트와 주고받은 편지 일부는 국내에 이미 알려진 바 있지만 그 외의 언니 바네사 벨, 남편 레너드 울프, 애정했던 에델 스미스, 소설가 캐서린 맨스필드와 같은 주변 예술가들, 독자들 등 다양한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국내에 소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편지는 작가가 되기 전인 1882년부터 1941년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유서까지 연대순으로 담았다.

이 책은 버지니아가 남긴 편지 96통을 연대순으로 엮어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에세이 3편은 〈부록〉으로 따로 실었다. 1부 〈자유(1882~1922년)〉, 2부 〈상상력(1923~1931년)〉, 3부 〈평화(1932~1941년)〉 등 시기에 따라 버지니아 울프가 갈망했던 키워드를 잡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부가 시작될 때마다 해당 시기에 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 설명에는 대부분 버지니아의 삶과 문학, 그리고 사랑과 평화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촘촘히 적혀 있어 그녀가 당시 시대를 얼마나 치열하고 외롭게 싸웠는지를 알 수 있게 기술됐다. 결혼하기 전 결혼에 관해 고민하고, 작가가 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자유로운 성 정체성을 고백하기도 한다. 또 소설에 대한 평가에 반응하고, 여성의 지위를 위해 투쟁하고, 런던의 평화를 소망하는 등 자신을 찾고, 자신에 대해 말하며, 나아가 세상의 변화를 꿈꿨던 인간 버지니아 울프가 편지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편지글인 만큼 수신인과 당시 상황에 관해 필요한 정보는 편역자 박신현이 각주로 섬세하게 실었고, 자유, 상상력, 평화에 관한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를 부록으로 담아 읽을거리를 더했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유란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진짜 나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이었다고 편역자는 말한다. 이를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상상력이 필요했고, 1, 2차 세계 대전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평화가 간절했다. 울프의 편지를 통해 독자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내면에 간직한 진실을 얼마나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 희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해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면 누구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울프의 말처럼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체적인 나로 살아갈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책의 맨 앞에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것, 바로 가까이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란 문장은 버지니아 울프의 내면 의식의 흐름을 무척 중요시 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버지니아는 진취적인 사상과 달리 우리에게 곱고 가지런한 머리를 한 옆얼굴로 더 많이 기억되는 듯하다.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외쳤고, 레너드 울프와 결혼한 후에도 자유로운 연애 감정을 즐겼으며, 자신의 다양한 성 정체성을 공공연하게 밝히기도 했다. 1부 〈자유〉에서 결혼하기 전 레너드 울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청혼에 대해 안 할 이유가 없으니 하긴 하겠지만 당신에게 성적인 느낌을 받지 못 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오늘날의 우리가 봐도 꽤 도전적이다. 이 편지(1912. 5. 12)는 자신의 감정을 숨김 없이,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는 내가 당신과 함께 있을 때 하루 종일 서로를 쫒아다니는 이런 감정들에도 불구하고 영구적이고 성장하는 어떤 감정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당신은 이것이 나를 당신과 결혼하도록 만들 것인지 알고 싶겠죠. (중략) 나는 때때로 생각합니다. 만약 당신과 결혼한다면, 나는 모든 걸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적인 측면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지 않을까? 며칠 전 내가 당신에게 잔인하게 말했듯이 나는 당신에게서 육체적인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내가 단지 돌멩이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었어요. 며칠 전에 당신이 내게 키스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당신이 나를 돌봐 주는 모습은 나를 압도할 정도입니다."(p.42~43) 

버지니아는 모두가 알다시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애쓰는 등 사회적 억압에 맞서 자신을 찾고, 글로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자기만의 방에 고요히 앉아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과 가감 없이 교류하고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여성 참정권 운동에도 참여했고 협동경제여성협회를 도왔고 좌파 운동에 앞장선 남편 레너드와 함께 계급 평등과 노동자들의 현실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나는 속물인가?)라는 글을 썼을 만큼 버지니아는 중상류층 여성으로서 자신의 내면화된 계급 의식을 의식하고 성찰했다고 편역자 박신현은 강조한다. 그녀의 편지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야기다. 

"버지니아는 한국의 기혼 여성들과 달리 두 하녀, 넬리와 로티가 함께 살며 가사 노동을 해 주는 가운데 자신의 사회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18년 동안 고용했던 요리사 넬리 박솔을 해고하게 된 힘든 과정을 생생히 기록하기도 한다. 버지니아는 언니에게 비타를 묘사하면서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귀족의 모습이 자신에게 얼마나 멋지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 설명하고 에델에게는 '왜 나는 신사 계급보다 노동자를 훨씬 더 꺼릴까요?'라고 묻는다. 하지만 버지니아는 블룸즈버리의 자유분방한 매력을 훨씬 더 좋아하지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공적인 정신을 지닌 종류의 사람들이 얼마나 가치 있고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p.377~378)

2부 〈상상력〉은 결혼 후 다양한 작품들을 창작하고 출간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데 ‘비난은 불쾌하고 찬사는 유쾌하지만’ 같은 솔직한 표현부터 책을 내고 나면 거기에 다들 한마디씩 하고 싶어 해서 피곤하다는 등의 인간적인 면모는 울프와 한 발 더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또한 언니, 연인 할 것 없이 공동 작업에 즐거워하는 모습은 울프가 얼마나 관계를 중시하고 또 일을 사랑했는지 엿볼 수 있다. 

3부 〈평화〉는 제2차 세계대전 상황의 런던이 배경이다. 1차 세계 대전에 이어 두 번째 거대한 전쟁을 맞이하게 된 울프를 비롯한 당대 사람들이 겪었을 불안감은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이 시기 편지에서 울프는 전쟁으로 조카를 잃은 슬픔, 자신이 처한 일촉즉발의 상황을 꽤 자세히 설명한다. 이런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울프가 선택한 죽음은 어쩌면 영원한 평화를 향한 간절함은 아니었을까.

버지니아의 편지는 그녀가 캐서린 맨스필스와 T. S. 엘리엇,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같은 동시대 작가뿐만 아니라 자크 라베라트와 로저 프라이 같은 화가나 미술 비평가, 그리고 여성 음악가 에델 스미스 등 다양한 장르의 에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함으로써 자신의 소설 창작에 얼마나 폭넓고 다채로운 예술적 감각을 부여할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버지니아가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였을 뿐만 아니라 남편 레너드와 함께 직접 호가스 출판사를 세워 운영함으로써 훌륭한 문학 작품들을 생산해 낸 출판인으로서 뛰어난 면모를 발휘했다는 점이다. 버지니아의 편지는 호가스 출판사가 대기업의 인수 제안을 거부하고 버지니아의 작품을 비롯해 그들이 원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택해서 출판할 수 있는 자유와 독립성을 지켜 낸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버지니아는 현실 세계에서 예술적 자립을 확보하고 모더니즘 문학의 흐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버지니아는 사랑과 성적 정체성에 있어 최대한 대담하고 솔직해지고자 했다. 그녀는 평생에 걸쳐 여러 남성과 사랑했고 또 여러 여성과 사랑했다. 물론 레너드와 맺은 부부로서의 결속과 사랑이 그녀의 삶에 매우 귀중했고, 비타 색빌웨스트와 나눈 육체적 경험이 세간에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사실 버지니아는 항상 누군가와 '연애 중'이었다고 편역자 박신현은 지적한다. 다만 육체적 탐닉이 아니라 이런 성적인 자극은 버지니아가 창작을 하는 데 있어 필요했다고 여겨진다는 것. 에델 스미스에게 보낸 편지(1930. 8.)에서 자신이 함께 춤을 추는 상대의 손을 잡은 채 '남성의 몸 또는 여성의 몸과 접촉하면서 절묘한 쾌락을 느끼며' 이렇게 끊임없이 자극받지 않는다면 자신이 『등대로』 같은 작품을 쓰고 싶게 만드는 뭔가를 얻을 수 없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주요한 점은 당신이 그걸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게 언어로는 건널 수 없는 만의 머나먼 저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는 거라고 믿어요. 오직 숨 막히는 고뇌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사실을요."(p.188)


저자 :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여성들의 적극적인 예술 활동 참여, 동성애자들의 권리, 전쟁 반대 등 빅토리아시대의 관행과 가치관을 공공연히 거부하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을 앓았다.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출항』, 『밤과 낮』, 『제이콥의 방』, 『댈러웨이 부인』, 『파도』,『현대소설론』 등과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속편 『3기니』 등이 있다. 1927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등대로』를 발표하며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올랜도』, 『물결』, 『세월』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왔던 울프는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신 질환의 재발을 우려하여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역자 : 박신현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석사 학위와 영어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캐런 바라드의 행위적 실재론과 신유물론을 바탕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작품을 분석한 논문 <행위적 실재론으로 본 울프의 포스트휴머니즘 미학>(2020), <버지니아 울프 소설에 구현된 기술미학과 환경미학>(2020), <회절과 얽힘의 텔레커뮤니케이션>(2021), <캐런 바라드의 육체의 윤리와 정치: 자기?만짐과 다가올?정의>(2022)를 발표한 바 있다. 단독 저서로 ≪공유, 관계적 존재의 사랑 방식≫(2021), 공저로 ≪신유물론: 몸과 물질의 행위성≫(2022)과 ≪생태, 몸, 예술≫(2020)이 있고, ≪강철혁명≫(2011)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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