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보고 그림으로 듣는 음악인류학 - 불교와 세계종교
윤소희 지음 / 민족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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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종교를 가지지 않아서인지 종교에 관한 책도 별로 읽은 기억이 없다. 다만 서양의 문학, 철학, 미술, 음악 등을 다룬 서적에는 기독교 신앙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접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불교 음악은 스님들이 염불하는 것을 제외하고 따로 귀 기울여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만 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실린 「승무」를 읽고서야 불교에서도 음악을 중요시하는구나 짐작했을 뿐이다. 불교 방송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불교 음악을 따로 들은 적이 없다. 우리 한민족이 음악을 즐긴다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들은 말이지만 독자는 스스로 음악 공부를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음악에는 문외한이다. 특히 최근(거의 20년이 넘었지만) K-팝이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퍼지고 나서야 "우리가 음악적 재능을 가졌다는 게 정말 맞나 보다" 싶었다. 

이 책 『소리로 보고 그림으로 듣는 음악인류학』(이하 『음악인류학』)은 불교 음악에 대한 저자 윤소희의 심층 고찰이다. 서양이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중심이듯 한국인은 오랜 세월 불교와 함께 해왔다. 불교의 교리나 경전의 내용이 사람의 삶과 만물의 이치를 밝혀 삶에 적용한 데 적절했기에 불교를 국교로 한반도 삼국시대에 승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전에는 유교(종교인지 정확히 모르지만)의 가르침을 받아 우리 삶에 적용했다고 알고 있다. 유교는 현실에 치중하는 학문으로, 동양 각국에 정치, 사회적으로 깊이 뿌리 내렸기에 국가의 이념은 유교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불교보다 먼저 유교의 가르침대로 살았을 것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유교는 공자의 학문을 후학들이 계승 발전시켜 주자학, 성리학 등으로 이름을 달리 했지만 뿌리는 공자로부터 유래된 것이라고 책을 통해 읽은 적이 있다. 문자를 중국에서 사용하는 한자를 빌려 그대로 우리가 사용하고, 우리 발음으로 고쳐 발음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는 불교가 전래(중국을 통해)되면서 한반도의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불교 국가였다. 불교는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때까지 국교로 인정됐으며 1,000년 이상을 한민족 정신의 뿌리를 단단하게 해주었다. 국가의 유지나 우리의 삶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한 것이다.

저자 윤소희는 이 책에서 한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음악을 좋아한다고 전제한다. 흥이 넘치고 떼창에 열광하는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서양음악을 뒤늦게 접하고 공부했지만 여러 악조건을 무릅쓰고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계속해서 나온 것도 우연히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세계 음악계를 압도하는 음악적 재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저자는 한국인의 유전적 DNA에 2,000년 우리 문화의 뿌리가 된 불교음악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음악과 사람, 종교와 문화를 이야기한다. 다양한 종교의 세계와 음악문화는 고대사에서 근현대사까지 아우르고 통섭하며 불교음악으로 귀결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저자 윤소희의 화제의 연재 칼럼 〈불교와 세계 종교〉를 묶어 다듬었다. 저자는 불교음악 작곡자이자 음악인류학자로 세계를 여행하며, 다른 문화권의 종교음악과 비견되는 한국의 음악을 폭넓게 탐색하고 있다. 저자의 통찰력과 위트가 엿보이는 목차 구성도 흥미롭다. 여러 나라의 종교와 음악을 경험하며 이해를 돕는 이미지와 직접 찍은 사진도 볼거리인데다, 이야기를 들려주듯 읽히는 구어체 문장에서도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범음성을 찾아서」란 제목의 〈서문(책을 내며)〉을 통해 저자는 "불교 경전에는 '붓다의 음성'에 대한 내용이 많다"고 전제한 뒤 "세계 어떤 종교에도 종조의 음성에 대해 이토록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저변에는 '음성행법'으로 범아일여의 경지에 들었던 고대 인도문화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불자들은 음악을 번거롭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음악, 체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 음악, 불안과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치유음악 등 신통한 묘력의 음악들이 있지만 불교음악의 꽃밭에 벌들은 왜 조용한 것일까. 통일신라 시대에 거사들이 유행처럼 들고 다니던 비파는 건달바의 악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고, 고려 시대 사찰의 악가무는 파계승을 놀리는 탈춤이 되었다. 그 사이 유럽은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고,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불교음악은 시대 흐름과 함께 다양한 음악으로 변모했다. 음악인류학의 관점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을 연구해 보니, 불교야말로 가장 '음악적인 종교'임을 알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불교는 미술, 기독교는 음악'이라고 평가할까? 여기에는 조선 시대 억불정책으로 숨죽여 살아온 훈습의 탓도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다른 종교의 예배당은 시내 중심에 위치한 반면, 한국 사찰은 산골에 피신해 있는 모양새다. 종교처에는 고요함도 있어야겠지만 신난 흥겨움도 있길 바란다. 미래 과학의 시대에는 '호모사피엔스'가 무상·무아의 연기설이 상식이 될 정도로 눈 밝은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앞으로 모든 종교는 스마트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기쁨과 환희의 꿀을 내뱉는 꽃이 되면 좋겠다. 종교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한편 법열의 꿀을 내어놓는 꽃들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저자 윤소희의 생각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세계 어느 민족보다 한국인은 음악을 좋아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칼럼 〈불교와 세계 종교〉를 연재하는 동안 지면의 한계로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사진 자료를 대폭 보완해 다른 문화권의 종교음악과 비견되는 우리의 음악을 폭넓게 탐색하고 있다. 

이 책은 2부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인도·중국·한국을 통섭하다〉와 2부 〈이슬람·기독교·불교를 통섭하다〉 등이다. 1부에는 1장 「인도의 음성행법과 붓다의 범음성」, 2장 「유교와 도교의 제사와 음악」, 3장 「중국음악에 유연성을 부여한 서역음악」, 4장 「속마음이 달랐던 조선의 악정(樂政)」, 5장 「한국인의 기질과 음악」이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전래되면서부터 우리의 불교 수용, 확장, 쇠퇴에 이르는 과정을 짚어내고 있다. 또 2부는 1장 「아라비아와 인도의 만남 수피 춤」, 2장 「인류 문명과 호모뮤지카」, 3장 「다르지만 통하는 기독교와 불교음악」, 4장 「같은 혈통 다른 나라, 한·일 풍속과 음악」, 5장 「소리를 보고 그림을 듣다」 등으로 나뉘어 불교음악을 전해준다.

책의 서두(1부 1장)에서는 세계 종교의 출현과 창시자의 음성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짚어낸다. 책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의 진화 단계에서 고등 종교의 출현 시기는 생활 양식, 정치와 학문, 문화와 예술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혁명기였다. 서기전 500년 전후 세계 각지에서 발현한 이들 종교의 공통점은 '말씀'이라는 도그마(dogma, 교리)가 있어 유교·기독교·불교와 같이 '가르치다'라는 의미의 '교(敎)'자가 붙는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로고스(logos)요, 그 존재 형식이 말씀이라, 기독교 성서에서 "태초에 말씀이 있으셨다"라고 하며, 그 말씀의 육화(肉化)가 예수의 탄생이었다.

특정 창시자가 없는 힌두교는 브라흐만의 존재 형식이 '말씀'이었고, 말씀을 읊는 사제들의 음성을 신성의 실체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복잡한 제사 의식을 위해서 고도의 훈련을 쌓았고, 우주의 궁극인 '범(梵, 브라흐만)'과 자신의 실체 '아(我, 아트만)'가 합일되는 범아일여를 추구하였다. 이를 위해 초자연계의 보이지 않는 힘과 신성에 나아가기 위한 공진 훈련이 사브다비드야(聲明)였다. 이러한 학습으로 음성에너지의 효력을 알게 된 사제들은 갖가지 진언으로 주술을 부리며 민중을 현혹하고 나아가 신의 대리자로서 절대적 권위를 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코살라 왕국의 석가모니가 나타나서 범(梵)도 아(我)도 없다고 하였으니 그야말로 수천 년간 쌓아온 힌두 사제들의 절대 아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핵염기 DNA과학이나 시공간의 양자역학도 없던 시절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의 결과일 뿐 아트만이 없으며 시공간 또한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설하였고, 그 이치를 처음으로 알아차린 다섯 비구가 있어 《초전법륜경》이 설해졌다. 이후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브라만이었던 범마유도 그를 찾아갔다.

석가의 탄생과 불교가 창시된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언급되고 있다. 이후 부처의 음성은 '말'과 함께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반인들은 정치나 비즈니스를 위해서 음성과 말씨를 조절하며 다듬지만, 붓다는 존재 자체의 울림이었으니 말하자면 '무의(無爲)의 공명'이었다. 불교의 각종 경전은 부처의 설법을 담은 것으로 세계 어떤 종교에서도 종조의 음성에 대해 이토록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경우는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붓다의 말슴 중 그 율조가 가장 유려한 것은 '가타(시)'이다. 가타는 '노래하다'는 산스끄리뜨 어근 '가우'의 명사형으로 법언 자체가 아름다운 음악이었던 데서 비롯된다. 가타를 모아 놓은 《법구경》은 붓다의 노래 모음집이라 할 만큼 운율이 아름답다. 그러므로 붓다의 말씀을 소리로 기록한 빠알리 경전을 외는 남방 스님들의 수행처에서는 수시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이러한 점에서는 석가모니는 출세간의 음유시인이자 인류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싱어(singer)이며, 범음성의 초대 어장(魚丈)이었다. 석가모니 붓다의 법언 율조가 중국에 들어와서는 찬탄의 기능이 강조돼어 '범패'로 불리게 되었다. (중략) 따라서 범패의 원음은 '붓다의 음성이요, 범패의 시작은 '붓다의 말씀'에서 비롯되었다. 역사가 흐르면서 범패의 '범'은 '신성하다, 청정하다'는 뜻으로도 통용되어 짓소리('짓는 소리'라는 뜻으로 가락이 길고 규모가 크며 장엄하다는 의미)를 '범음'이라 하고, 범패를 '범음범패'라고도 하였다. 여기에는 탈세속적, 성스러움, 여법함과 같은 의미들이 있다."(p.24~25)

저자의 학문적 음악탐구는 ‘붓다의 소리’에 방점이 있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앞서 이 책의 구성 자체가 '붓다의 소리는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부에서는 인도·중국·한국을 통섭하며, 각국의 문화와 종교, 음악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이슬람·기독교·불교 다양한 종교를 아우르고 분석하며 붓다의 소리를 찾아 나섰다고 기술한 바 있다. 불교계나 불교음악을 연구하는 사람들, 최소한 불교 신자들은 훨씬 더 깊은 지식을 요구할지 모르지만 일반 독자들은 불교가 우리의 춤과 노래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에 더 관심이 많고, 가무를 즐긴다는 말대로 우리 조상들의 가무와 불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갖는다. 당연히 연구자인 저자 윤소희의 순레길에는 '우리의 음악을 찾아서'라는 의식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도 1부 4장 「속마음이 달랐던 조선의 악정(樂政)」, 5장 「한국인의 기질과 음악」과 2부 4장 「같은 혈통 다른 나라, 한·일 풍속과 음악」, 5장 「소리를 보고 그림을 듣다」에서 깊고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 '코리안 떼창과 일본의 사찰 교훈극'이라는 항목에서 독자가 관심 가는 부분을 다뤘다.

2부 4장에 담긴 이 글은 "불교계에서는 공립 합창단의 종교 편향에 대해 불만이 많다"고 운을 뗀다.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지만 이 부분은 공론화된 부분인 것 같다. 이에 따르면 여론이 더욱 거세어 총무원 사회부에서 불교음악원 연구팀에게 이 문제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처음에 몇몇 프로그램들을 보니 그간 익혔던 베토벤·모차르트·헨델의 미사곡이나 레퀴엠들이 보였다. 예술곡인데 너무 과민한 것 아닌가 싶었으나 전국의 연중 프로그램을 조사해 보니 일반적인 연가(戀歌)와 외국어 제목들이 실제로는 성경 속 이야기나 라틴어 제목의 찬송가들이어서 기독교 음악에 편중됐다는 판단이 들었다.

주변의 몇몇 음악전문가와 학계의 의견을 들어보니 '기독교는 음악, 불교는 미술, 우리가 실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음악 인류학자로서 지구촌 인류문명과 음악의 면면을 연구해 온 바에 의하면, 불교는 으악 그 자체라고 할 만큼 음률의 종교이고, 경전 자체가 합송에 의해서 성립되었는데 이 무슨 소리인가. 부처님의 말씀 자체에 율이 있으므로 굳이 작곡가의 기술을 빌리지 않더라도 경전 자체가 음악이 되는 경구들이 많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할 말이 많다는 듯 많은 말을 쏟아낸다. "중국의 역장에는 반드시 범패사가 있었다. 경전 자체의 율조를 중시하는 것은 기독교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남방불교에서 일반 신도들이 함께 외는 자비송 '메따'는 세계적 명상음악이 되었다. 이러한 데에는 부처님의 설법어에 율조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석가모니 붓다를 '불교 최초의 유랑시인이자 싱어'로 표현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21세기 세계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K-팝에는 한국인들의 유별난 음악적 기질이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 로큰롤'이라 불릴 정도로 괴팍한 성격의 노엘 갤러거(1967~)가 한국인의 떼창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Crazy Korean'이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2006년 한국에서 공연을 하며 코리안 떼창을 보고는 그의 마음이 180도로 바뀌어 "한국인은 즐길 줄 안다"며 가는 곳마다 엄지척을 하였다고 설명한다. 또 미국의 3인조 인디밴드 'Fun'이 2013년에 안산밸리 록페스티벌에 참가해서 〈We are young〉을 부르다 한국인들의 떼창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설명한다. 그때의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2년 후에는 아예 〈Korean Song〉을 만들어 왔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당시 '···코리아'를 격하게 외치는 엔딩은 그야말로 류이스와 한국 팬들의 진심과 열정이 한데 어우러진 감동의 도가니였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만약 이 대목을 그냥 말로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한국인의 이러한 기질을 헤아릴 때라야 불교가 그들의 삶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국인의 떼창 에피소드는 원효 대사 때부터 이어진다. 원효의 〈무애가〉를 따라 '나무아미타불'을 노래하며 표주박 춤을 추던 신라인들부터, 이 민중의 춤이 일본으로 건너가 〈봉오도리〉가 되었단다. 이 봉오도리는 일본의 『불교음악사전』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비파’ 하면 떠오르는 불교의 이미지로 인하여 조선 후기에 사라진 반면 군자의 저음을 숭상한 유생들의 취향에 맞는 거문고가 득세하게 되었다. 앞서 중국음악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중국의 무겁고 경직된 음악을 말랑 젤리로 만든 서역 음악이었듯이 불교의 유연하고 자유분방한 감성을 우아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악기로 비파가 제격이었다. 그러나 억불이 당연지사였던 유생들이 공자의 금(琴)보다 더 무겁고 중후한 거문고로 영산회상을 탔다. 이렇듯 영산회상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거문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p.347) - 「허허 탕탕, 세상을 잊게 만드는 거문고」 중에서


저자 : 윤소희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음악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대우교수로 있으며 현재는 한국불교음악회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세계를 다니며 현지 조사를 통한 연구로 학문적 성과를 일궈가며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저서는 『국악 창작곡 분석』·『국악 창작의 흐름과 분석』· 『동아시아 불교의식과 음악』·『범패의 역사와 지역별 특징- 경제 · 영제 · 완제 어떻게 다른가』·『문명과 음악』·『문화 와 음악』·『세계 불교음악 순례』·『한·일 불교의례와 쇼묘』· 『한·중 불교의례와 범패』 등이 있다.

연구논문은 「팔리어 송경율조에 관한 연구」·『화엄경』 「입법계품」의 音과 字에 대한 고찰」·「범어범패의 율적 특징과 의례 기능」·「불교 의례활동과 사원경제」·「티벳 참 의례와 몸짓 만다라」·「보로부두르 주악도와 한국의 불교 악가무」·「향품범패의 장르적 규명과 실체」·「세종·세조 악보와 佛典·梵文의 관계」·「天台?明과 眞言?明에 관한 연구」·「천수다라니 범문원리와 한·중·일 율조 비교」·「삼국유사의 음악과 악기」 외 다수. <윤소희 카페>(http://cafe.daum.net/ysh3586)에서 좀 더 다양한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E-mail : ysh35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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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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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소모되기 전에 생각할 것들 - 불안, 허무, 자책에서 자유로워지는 빅터 프랭클 심리학
모로토미 요시히코 지음, 나지윤 옮김 / 유노책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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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인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1905~1997)'에 대해 독자가 아는 것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이하 『죽음의~』)를 쓴 의사라는 사실이다. 『죽음의~』는 독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독일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바로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 『마음이 소모되기 전에 생각할 것들』의 저자 모로토미 요시히코는 현재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로 '프랭클 심리학'의 권위 있는 학자이다. 저자는 몸 담고 있는 대학의 부속 상담센터에서 30년 이상 젊은이들의 인생을 상담하며, 쉽게 허무감을 느끼고 주저앉거나 절망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늘 고민했다. 그런 그가 내놓은 게 ‘빅터 프랭클 심리학’이었다고 출판사 측은 전한다. 저자는 자신의 전문 분야이기도 한 빅터 프랭클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하여, 마음이 완전히 소모되기 전에 생각하고 기억하면 좋을 빅터 프랭클의 절대 긍정의 철학을 이 책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주제에 다가서기 전에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의 내용이 무엇이고, 빅터 프랭클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물론 이 책 『마음이 소모되기 전에 생각할 것들』 역시 『죽음의~』의 내용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인용, 설명하기도 한다.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의사로서, 1944년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히틀러와 나치 정권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 만행으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다. 수용소에 끌려갈 때 기존에 연구하고 정립했던 이론을 쓴 원고를 코트에 숨겼지만, 결국 이 원고조차 잃고 말았다. 전쟁 중 수용소에 일시적으로 끌려갔다 풀어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2,000년 동안 유럽인의 '공공의 적'으로 생활했던 유전자화된 심리였을까. 그곳은 학살을 대기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알지 못했으니까 그닥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들어가서 하루도 지나지 않아 수용소 사람들은 이곳에서 살아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직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랭클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우슈비츠에서 만나고 직접 본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새로운 심리학설을 정립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론을 반드시 출간하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살아남아, 결국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라는 기적을 경험한다.
오늘날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라는 전 세계적인 스테디셀러의 저자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원서명은 『Man's Search for Meaning』인데, 이 제목에 빅터 프랭클이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바로 “어떤 순간에도 인생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살아갈 의미와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로고테라피(의미치료)’가 탄생한 것이다. 

저자 모로토미 요시히코는 『마음이 소모되기 전에 생각할 것들』의 「부서진 마음을 단단하게 이어붙이는 절대 긍정의 철학」이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인생이란 같은 일이 끝없이 반복될 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인생 자체가 무의미하게 다가온다고 전제한 뒤 "살아갈 의미가 있다"라고 여겨지는 경험은 그 어떤 것보다 생생한 울림을 준다고 자신의 과거 경험을 사례를 들며 밝힌다. 반대로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사명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갈 원동력이 된다고 주장한다. 누구든 살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공허해지고 삶 자체가 고역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저자 모로토미 요시히코는 프랭클의 책을 펼친다고 한다. 그의 책을 읽으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기운을 불어넣어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내 인생은 도대체 왜 이럴까?' '난 운이 나빠서 뭘 해도 행복해질 수 없어.' 등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저자의 말에 주목하고 명심할 것을 요청한다. "어떤 경우라도, 그 어떤 상황이라도 자기 안의 무언가를 바꾸면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돌이켜보면 모든 일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어났고, 모든 일은 내가 뭔가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일어났다고 생각하게 됩니다."(p.11)

저자는 이처럼 생각 하나만 바꿔도, 마음 하나만 바꿔 먹어도 사람의 인생이 행복으로 바뀌는 사례를 수도 없이 보았다고 독자들을 격려한다. 이 책을 통해 살아갈 의미를 잃고 허무함에 빠져 마음이 소모되는 독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를 기대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방법, 이것이야말로 프랭클이 말하는 절대 긍정의 철학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인생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저자는 현대인이 이러한 인생철학, 즉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왜곡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저마다 열심히 살고 있어도 진정한 행복이나 깊은 충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세상에는 운 좋은 인생도 있고 운 나쁜 인생도 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늘 좋은 일만 있는 인생도 없고 늘 나쁜 일만 있는 인생도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요컨대 사람의 행복이나 불행을 결정하는 건 그 사람이 가진 운이 아니라는 말이다. 행복이란 좋을 때든 나쁠 때든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인생철학이라고 부른다면 올바른 인생철학을 체득하고 실천하는지가 진정한 행복을 얻을 비결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먼저, 우리의 인생이 왜 허무한지, 왜 욕구를 채워도 공허한지 되짚고 인생철학의 의미와 바른 기준을 세우는 법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로는 프랭클 심리학을 바탕으로 하여 그가 제안한 마음을 다스리는 법, 긍정적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법을 제안한다. 프랭클 심리학이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 보다 쉽게 프랭클 심리학과 함께 이 책의 주제에도 쉽게 접근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① 꼭 인정받아야만 좋은 삶인지 고민해 본다. ② 왜 쉽게 허무해지고 마는 것인지 되짚어 본다. ③ 왜 어렵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나부터 탓하는 건지 진단해 본다. ④ 어떻게 하면 빅터 프랭클이 말한 대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이야기해 본다. ⑤ 빅터 프랭클이 제안한 삶에 보람을 느끼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창조 가치 실현법을 알려 준다. ⑥ 남들과 좀 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생각해야 할 체험 가치 실현법을 정리했다. ⑦ 나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보기 위해 생각해야 할 태도 가치 실현법을 이야기한다.
앞서 책의 주제에 다가가기 위해 열거한 7가지 항목은 이 책의 구성과 같다. 이 책이 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저자가 풀어 쓴 것이다. 위의 나열된 일곱 가지를 이해한다면 책의 목차에 적힌 대로 표기해 본다. 독자들이 비교해서 더 쉽게 이해되는 쪽으로 생각하면 각인하기에 훨씬 더 편리할 것이다.1장 「꼭 인정받아야만 좋은 삶일까?-프랭클이 말하는 ‘마음이 소모되는 이유’」 2장 「왜 쉽게 허무해지는 걸까?-프랭클이 알려 주는 ‘행복의 역설 깨닫기’」 3장 「왜 나부터 탓하는 걸까?-프랭클에게 배우는 ‘인생철학 바로잡기’」 4장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까?-프랭클이 소개하는 ‘스스로에게 질문 던지기’」 5장 「삶에 보람을 느끼기 위해 생각할 것-실전1: 창조 가치 실현하기」 6장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생각할 것-실전2: 체험 가치 실현하기」 7장 「운명을 긍정적으로 보기 위해 생각할 것-실전3: 태도 가치 실현하기」 등이다.

저자는 마음 먹기에 따라 행복과 불행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프롤로그〉에서 한 여성의 불의의 교통사고 이야기를 꺼낸다. 이에 따르면 한 여성이 미국 유학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살아나긴 했으나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때문에 해외에 단 한 번도 가 본 적 없고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어머니가 해외로 날아가 장애인이 된 딸을 돌보며 살게 되었다. 처음 두 사람은 가해자를 증오하며 불운한 운명을 저주했다. 동반 자살을 결심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게 된다. “언젠가 드라이브를 하다가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푸른 하늘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딸이 사고를 당하고 제가 미국에 오게 된 것은 모두 이 푸른 하늘을 보기 위한 시련이 아니었나 하고요.” 생각이 바뀌자 인생을 보는 눈도 바뀌게 되었다. 어려울 때 곁에 있어 준 지인들에게 감사하게 되고, 자신들이 받은 위로와 격려를 다른 어려운 사람에게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건 바로 ‘인생철학’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인생철학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바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라는 자신만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나는 살아생전 최대한 즐겁게 살고 싶다”라는 단순한 목표라도 인생철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2장의 「우리가 중독에 빠지는 이유」란 제목의 글이 우선 관심이 갔다. 사람들은 허무함이 불현듯 엄습하면 '누구나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기 마련이다'라며 별것 아닌 감정으로 치부하거나,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면 그런 감정은 사라질 거야'라며 평소보다 바쁘게 생활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마음속 허무함을 털어 낼 수 있을 거라 여기면서다. 이에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허무한 마음과 마주하는 일에 서툽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마음속 텅 빈 구멍을 메우기 위한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는 거지요.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OO중독'에 빠집니다. 쇼핑 중독, 도박 중독, 연애 중독, 자녀교육 중독 등등. 그중 가장 흔한 중독이라고 하면 단연 알코올 중독이 아닐까 싶네요."(p.57)

저자는 알코올 중독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공한다. '만일 당신이 2~3일에 한 번꼴로 술을 마신다면, 이미 가벼운 알코올 중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자는 알코올 중독뿐만 아니라 일 중독도 알코올 중독 못지않게 흔하다고 말한다. 가끔 견디기 힘들 만큼 허무함이 엄습하지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다고 딱히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그 결과 더욱 일에 매진하게 된다. 자기 삶이 가진 문제와 직면하면 왠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으니 어떻게든 외면하고 바쁘게 지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에 매진하는 게 최선이니까. 이런 저자의 지적에 딱 들어맞은 경우가 독자이다. 불행하게도 둘 다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회사나 동료들은 "의욕적이다" "프로네~"라는 말로 위로하지만 속마음은 씁쓸하다. 진심인지 인삿말인지 구분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중독이라는 생각에서는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중독이라는 말은 알코올 못지않게 입에 잘 올리지 못했으니까. 특히 산업화 시대 일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 일과 알코올이었으니까.

저자는 중독이란 견디기 힘든 허무함이 밀려와도 정면으로 마주하기 두려운 사람들은 끊임없이 강한 자극을 추구하고 도파민을 충족하면서 자기 감각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현대인이 'OO중독'에 빠지기 쉬운 이유라는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는 '살다 보면'이란 문구를 자주 사용한다. 독자는 무책임한 단어라고 생각해서 별로 사용하지 않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너무' 자주 사용한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도 이 말은 빠지지 않는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풍파가 생기고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p.229) 에필로그에서 접하는 저자의 '살다 보면'은 독자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한 상투적 문구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문구는 심리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케 한다. '살다 보면'에는 자신의 의지가 100% 들어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이 문구를 붙이면 묘하게도 설득력이 큰 말로 바뀌기도 한다. 바로 그런 순간, 프랭클의 말은 힘을 발휘한다. 절망에 빠지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진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는 힘, '이제 지쳤다. 모든 걸 내버리고 싶다'라는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조금만 더 살아보자'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프랭클의 호소를 저자가 독자들에게 대신한다.

"언제라도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 해야 할 일, 채워야 할 의미가 주어져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당신을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당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 그 무언가와 누군가는 당신에게 발견되고 실현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자."(p.230)

저자는 이런 생각을 자신의 전문 분야인 ‘빅터 프랭클 심리학’과 엮어 이 책 『마음이 소모되기 전에 생각할 것들』 안에 차근차근 풀어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빅터 프랭클은 자신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로 ‘자신만의 살아갈 의미를 찾은 것’을 꼽는다. 생명이 있는 한 의미 없는 인생이란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정하여 ‘목표지향적’으로 사는 삶 대신 ‘자신의 존재의 필요성’을 고민하도록 제안한다. 다시 말해, 프랭클 심리학의 핵심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저자 : 모로토미 요시히코(もろとみ よしひこ, 諸富 祥彦)


1963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츠쿠바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 미국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치바대학 교육학부 조교수를 거쳐, 현재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교육카운슬링학회 상임이사, ‘교사를 지원하는 협회’ 대표이며, 임상심리사, 상급학교 카운슬러 등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모든 아이는 의미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라는 메시지를 토대로, 다양한 고민을 안고 있는 부모들에게 35여 년 동안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해왔다. 《아이의 마음을 구하는 부모의 한마디》 《당신의 아이, 이대로 두면 큰일난다》 《학교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카운슬링 기법》 등 육아, 학교 교육, 카운슬링 및 심리요법과 관련하여 10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그 밖에도 빅터 프랭클 심리학 및 칼 로저스 심리학 전문가로서, 고독, 허무함, 삶의 의미 등을 키워드로 하는 현대인의 삶의 방식에 관해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였고, 《프랭클 심리학 입문-어떤 때에도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 등을 펴냈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 《남자아이 키울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여자아이 키울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외동아이 키울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등이 있다.


역자 : 나지윤


숙명여자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대학원에서 국제커뮤니케이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잡지사 기자로 일했으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해결하고 싶은 남자 공감 받고 싶은 여자』, 『당당하게 말하고 확실하게 설득하는 기술』, 『무시했더니 살만해졌다』, 『스트레스 한방에 날리기』,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말』,『너의 슬픔이 아름다워 나는 편지를 썼다』등 다수가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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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랜프 2 - 메시아의 수호자
사이먼 케이 지음 / 샘터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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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1권에서 외계 생명체의 침공을 받은 인류는 지구의 주인 자리를 침공자 홀랜프들에게 내주고 피지배 계급으로 전락한다. 또 인간 중에는 홀랜프 측에 붙어 그들에 기대어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고 생존하는 '페카터모리'들도 등장한다. 『홀랜프』는 외계 침공과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권력, 과학과 기술, 종교적 상징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다. 1권 〈거룩한 땅의 수호자〉에서 '홀랜프'의 침공을 받아 인간은 제대로 맞서기는커녕 힘의 부족을 느끼면서 끊임없이 추락한다. 그러나 이를 걱정하던 노과학자 '최 박사'가 평소 대응책으로 오랫동안 연구해온 '7인의 어빌리스'가 지구와 인류의 마지막 희망으로 맞서 싸운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며 싸우느냐, 아니면 홀랜프에게 복종하며 새로운 삶을 선택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이미 외계 침공자들에게 붙은 인간, 페카터모리들도 부지기수다. 저자는 이들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소설 구상 때부터 미리 예비해둔 사항일 것이다. 외계인이 침공할 때의 모습은 1권 '7장 3절 생명체'에서 자세히 언급된다. 

"갑자기 나타난 괴생물체들의 공격에 온 세상이 폐허가 되어간다. 인간들은 영문도 모른 채 괴생물체들에게 죽어간다. 하늘에서 비행하는 대형 괴생물체들은 인간들이 이제껏 지어온 건축물들을 공격하고 파괴한다. 대형 괴생물체 위에 탑승하고 있던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중형, 인간의 반 크기인 소형 괴생물체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들을 공격한다. 중형 괴생물체들은 한 손에 총과 비슷한 무기를 들고 알 수 없는 빛을 쏴대고 돌기가 나 있는 날카로운 팔로 사람들을 베어 죽인다. 괴생물체들은 흡사 해파리와 물곰을 섞어놓은 듯한 모양이다. 하늘에서 공격하며 날아다니는 괴생물체는 100미터 정도 되는 대형 괴생물체로서 마치 용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에 크고 길다. 그들이 입을 벌릴 때마다 빛이 나와 건물을 부수고 공군의 비행기가 공격해오면 공중전을 하면서 모든 인간의 기계를 파괴한다. (중략) 인간의 신체 크기와 비슷한 중형 괴생물체는 인간과 비슷한 머리 형태만 있을 뿐 입은 뻥긋거리며 팔에 붙어 있는 칼을 이용해 공격하고 다른 쪽 팔에는 빛이 나오는 총이 있어 사람들을 죽인다."(p.140~141, 1권)

『홀랜프』의 저자 사이먼 케이의 장면 묘사가 탁월하다. 영화 제작자로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케 하는 생생한 장면 묘사는 매우 인상적이다. 더욱이 상상 속 상황을 독자들의 머리에서 현실로 바꿔야 한다는 SF 세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데서 비롯된 듯하다. 독자들에게는 읽기만 해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로 치환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저자의 독창적인 상상력뿐만 아니라 기술적 이론도 오랫동안 외계 침공을 대비해온 사람처럼 차분하게 정리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물들의 심리 묘사도 뛰어나다. '어빌리스'라는 다소 익숙한 이름을 가진 추상적 묘사는 곧바로 '어벤저스'라는 영웅들과의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지면서 사전에 노력으로 획득한 '능력자'로서의 의미로 지구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뜻과도 상통한다.

『홀랜프』 2권 〈메시아의 수호자〉에서 인류를 해방할 7명의 아이들, 이들은 권력을 얻은 인간에게는 이단자가 될 수 있다. 반면 홀랜프에게 굴복하지 않고 그들이 만들어낸 도시 '파라다이스'를 벗어나 궁핍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구원자가 될 수 있다. '인류의 희망'이다. 메시아라는 존재를 빗대어 저자가 희망과 메시아가 역사 속에서 모순적었음을 주목하게 한다. 2권 〈메시아의 수호자〉는 '예언서'에 대한 대목으로 이어진다. "마구 갈겨쓴 글귀라고 생각하겠지. 자네는 분명 저런 글을 많이 봤을 거야. 홀랜프 침공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미친 소리였겠지만 침공이 일어난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말들이지. 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 동안 우리는 두 번이나 멸종의 위기에 처했어. 큰 혼란 속에서 우리는 살아남았다고. 2차 대전 후 최 박사의 예언서가 확실하다고 사람들은 평가했지. 이 예언서 덕분에 그나마 사람들은 이만큼 함께 생활할 수 있었고. '아이들'에 관련된 내용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만날 것이라는 내용. 이것이 다 그들 눈에는 실현되고 있는 진실이라고." 

서 집사는 김 중령이 알려주는 곳으로 책장을 넘겨본다. 거기에는 아이들과의 만남이 적혀 있다. 서 집사도 들었던 6년의 세월에 대한 내용이다. (중략) 아이들은 신이 아니야. 그런 희망적인 존재로는 가능할지 몰라.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신이라고 말해버리면 아이들조차 위험해. 저 홀랜프를 이기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란 말인가"(p19~21, 2권)

『홀랜프』에는 등장 인물들의 과격함도 분출된다.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인간 스스로의 성찰이기도 하다. 다 알면서도 이기심과 눈앞의 이익만을 취하다가 자멸한다는 내용 말이다. 선우필과 헤든의 대화 과정에서도 이 같은 인식이 드러난다. 

"인간들······ 자신들의 편의만 생각해서 배신하고, 이익을 위해 서로를 해치우고, 마음 맞는다는 핑계로 편을 만들어 약자를 괴롭히고. 그런 인간들은 이제 존재해서는 안 돼. 세상이 썩었어. 무법 천지가 되어버렸어.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의 삶이 속속들이 썩었어. 인간들 때문에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이 땅은 멸망해야 해. 인간은 멸종되어야 해. 다 죽여버려야 해. 다 몰살 시켜야 해."(p.160)

선우민이 예전에 했던 말 중에는 인간이 생물체를 지배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능력과 함께 '배려심'이 때문이라고 했다. 동물은 배려심이 없고 그저 본능에만 충실할 뿐이다. 바다의 고래도 먹기 위해 생물체를 입으로 흡입한다. 사자는 배가 고프면 약한 짐승을 잡아먹는다. 이기심은 생물의 본능이다. 하지만 인간만이 이기심을 인식하고 배려심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바로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배가 고파도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변해가는 세상에서 인간의 의식도 변해간다. 배려하는 마음은 점점 사라지다 결국 잃을 것이다. 그날이 인류가 멸종하는 날이다. 선우민은 늘 그렇게 배려심을 강조했다. 

이는 홀랜프 생물체가 파라다이스라는 장소를 만들어 인류를 지배한다 해도 배려심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이기심에 의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강한 힘으로 사람들을 억누르다가 자유를 주는 척 인간을 배려하는 행동은 배려심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은 선우민을 통해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최 박사가 심어둔 능력 '스위븐'은 꿈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꿈속에서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면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로써 미리 꿈에서 봤던 이미지를 기억해내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에게 스위븐은 과연 독이었을까, 약이었을까 질문을 할 수 있다.

이야기는 결국 아이들은 홀랜프가 이룩한 파라다이스로 향하고 스위븐에서 봤던 이미지를 기억하며 여왕이 있는 최상부로 이동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다. 선우필, 리브, 선우희만이 여왕의 뒷편의 암흑과 같은 공간으로 향한다. 그곳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아이들의 희생과 처절한 싸움은 치열하고 화려하기까지 하다. 저자의 세세한 묘사, SF적인 요소의 표현은 저자의 소설 구성 능력이 결합되며 빛을 발한다. 소설의 스토리를 더욱 판타스틱하게 해주는 요소 중 새로운 단어는 많은 부분 저자의 SF에 대한 관심과 오랜 영화 경험 등이 어우러져 주제와 소재로서 SF의 소설로서의 완벽에 가깝게 녹아들어 간다. 

책에서 제목이나 소제목으로 다루어진 SF적인 단어들을 열거하면 거의 끝없이 나열된다. 잠재력, 생물체, 죽음, 훈련, 편도체, 하늘의 도시, 배신, 전투, 꿈의 실현, 꿈의 능력, 잠입, 여왕, 만들어지는 전설, 3차 대전, 배려심, 연합 등 평범한 단어들로 모든 제목들이 이루어지면서 종교적 언어와 결합되면 SF적 용어로 변신하는 마술 같은 표현과 묘사가 가능해진다. 이 또한 저자의 묘사 능력일 것이다. 책에 이용된 종교적 단어들은 에덴동산, 신의 열매, 창조주, 생식세포, 신의 선물, 신의 시점, 성장, 메시아, 유혹, 만들어지는 전설, 신의 뜻대로 등이다. 종교와 과학은 흔히 정반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SF 소설에서는 흔히 두 분야가 결합되지 않는다면 이루어지지 않은 많은 일들이 있다. 종교와 과학의 이질감으로 원인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 작품은 두 분야가 잘 어울리면 과학은 실현되지 않은 종교적 꿈과 믿음의 실현을 이룰 수 있고, 반대로 종교는 과학과 융합된다면 신화마저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상상의 영역에 사실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이 소설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궁극적이고 완전한 목표는 영원히 산다거나 부자가 된다거나 건강하다거나 하는 그런 육체의 것이 아니야. 인간의 삶은 결국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을 깨닫는 과정이거든. 태어날 때 육체의 완성을 거쳐 정신적인 발전을 이루다가 결국 더럽게 썩어지는 육체는 버리고 정신과 영혼만 가져가는 거지. 그러니 진정으로 인간이 갖고 싶은 것은 결국 더러움에서 분리된 상태, 코데시(Kodesh), 즉 거룩하기 위함이야.”(p.9, 2권)

『홀랜프』는 많은 독자들의 눈을 끌어들일 만한 요소가 무척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나타난다. 이 소설이 매력적이고 생각할 소재가 충분하다고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종교와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철학, 생물학, 유전학, 물리학과 우리가 일반적으로 현재 접하는 많은 분야의 학문에 걸쳐 있다. 심지어는 전투 방법이나 훈련 방법 등 군사학적 요소도 끼어 있다. 외계인과의 전투에는 필요하지 않은 학문이야 없겠지만 설득력을 갖추려면 아무래도 풍부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더욱이 상상력을 현실화해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이 소설 작품은 저자의 각 분야에 학문이나 지식이 매우 다채롭다. 독자들에게는 인기를 끌 만한 충분한 까닭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특히 영화계에서의 경험은 어려운 문제를 쉽게 형상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이 소설이 그려내는 외계 생명체의 미래 기술은 우리의 평범한 상식을 뛰어넘어 전투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점에서 작품에 몰입하게 해준다. 이는 SF 소설을 좋아하는 기존 독자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줄 것 같다. 독창성이 탁월하고 청소년 세대의 미래 가능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 또한 그들이 인류, 지구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리라. 특히 저자는 사이먼 케이가 던지는 윤리적, 사회적 문제들은 단순한 오락적 SF 소설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특히 움스크린이라는 독자적 인공 자궁을 발견으로 과학에서의 윤리 문제로까지 발전시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단순한 외계인 침공으로 인류 멸망을 다루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인류의 파멸과 구원을 둘러싼 인간 자체의 본성과 추구하는 이상의 괴리 등의 철학적 문제로까지 포함시키는, 인간의 무한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력적이고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흡인력을 갖춘 소설이다.


“자네들에게는 꿈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네. 최 박사는 그 능력을 스위븐(Sweven)이라고 불렀지. 자네들에게 심어둔 능력이라고 말해주었네. 너희 일곱 명의 아이들이 꿈속에서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면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하지만 그 꿈을 너희들이 조종한다는 건 우리로서는 미지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같다네. 최 박사가 헛소리한다고 생각했을 뿐 실제로 그런 능력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지.”(p.136, 2권)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살려고 내뱉는 9호의 외침에 더 많은 초소형 홀랜프가 모인다. 이미 뉴컨밴드도 머리에서 떨어져나간 터라 그의 외침은 들리지도 않는다. 초소형 홀랜프들은 무지막지하게 9호의 등을 파헤친다. “껙껙” 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롭게 튀어나온 두 앞발로 계속해서 낫을 찍듯 그의 등을 파헤친다. 9호의 고통에 찬 소리가 멈추고 벽을 잡던 그의 몸뚱이가 땅으로 떨어진다. 다른 초소형 홀랜프들이 떼지어 다가와 그대로 그의 시체를 다 먹어버린다.(p.218, 2권)


그때 선우희 앞에 있는 좁은 문이 열린다. 그 안에서 강한 빛이 비치다가 다시 어두워진다. 순간 터져 나온 빛 때문에 눈이 부셔 앞이 안 보이던 리브는 다시 돌아온 시야에 통로 내부가 보인다. 통로는 마치 여자의 배 속처럼 생긴, 이전에 선우희를 품은 움스크린의 모양과 같은 구조다. 리브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흔든다.

“아니야. 안 돼…….”(p.299, 2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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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랜프 1 - 거룩한 땅의 수호자
사이먼 케이 지음 / 샘터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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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 나오는 SF 소설에는 저자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지만 때론 '음모론'의 하나로 풍문으로 들리는 소재가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 테면 '지구공동설(地球空洞說)'이 그것이다. 지구공동설을 다룬 일부 영상과 종교학대사전 등에 따르면 지동설이 승인된 18세기 이후에 나타난, 지구의 형태에 대한 이설이다. 지구 내부가 공동(空洞)으로, 거기에 생물의 거주도 가능하다는 설로, 대지를 핫 케이크처럼 평편하다고 생각하는 '지구평단설'과 함께 하는 기론(奇論)이다. 독자적인 과학적 논거(수평선이 반드시 호를 그리지는 않는다는 측량결과 등)를 제시하는 경우와, 고대의 공상적 우주관이나 성서의 가르침을 옹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등, 주장의 동기는 다양하다.

지구공동설의 발단은 1683년에 할리혜성이라는 이름을 남긴 할리가 제창한 설에 의한다고 하며, 그는 지구 내부에 각각 화성, 금성, 수성과 같은 크기의 내구(內球)가 있다고 주장하고, 그 지구 내 세계에 생물이 사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북극에 보이는 오로라는 지하광이 새어나온 것으로 추측했다. 1818년에는 미국의 군인 J.C. 신메스(1780~1829)가 남북 양극에 직경 수천 마일의 구멍이 뚫어져 있다고 주장, 그 내부에는 지하세계가 동심구상으로 존재하고, 지표의 바다는 극의 구멍에서 내부로 흘러간다고 주장했다. 이 〈심메스의 구멍〉을 확인하기 위한 탐정항해를 제안했는데 실현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또한 1870년에는 미국인 C.R. 티드(1839~1908)가 인류는 현재 이미 지곡의 뒤측에 살고 있으며, 태양이나 달은 지구공동의 내부에 떠있다는 설을 공표했다. 후에 그는 신봉자를 모아서 시카고에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설을 입증하기 위한 측량을 하였다. 이들 설은 레일리히 등이 신봉하는 샨바라 전설과 결부되어서 지저세계에 유토피아를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공동 내부 생명체는 파충류라는 추정도 나왔다.

또한 지평평단설은 판다멘탈리스트 사이에 뿌리깊게 지지되며, W.G. 볼리바가 조직한 가톨릭의 공동체 〈시온의 그리스도 사도교회〉에서는 지구의 중심에 북극이 있으며, 남극은 원판형의 지구의 외주라고 믿었는데 평단설의 중요한 근거는 지각적으로 대지가 평면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캐나다에는 〈평지협회(Flat Earth Society)〉가 있는데, '인간의 지각과 일치하는 지구관'의 부활을 지향해서 활동하고 있다.

이에 비해 '외계 침공설'에 가깝다. 외계 침공설이란 공식 명칭은 없지만 UFO(미확인비행물체) 발견 때부터 외계 침공설은 꾸준히 제기돼 온 음모론이다. 일부는 미·소 냉전 시대에 많이 발견돼 양측의 비밀 군사작전의 일환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계 침공설과 상관없이 외계 생명체의 존재설에 대해서는 현재까지의 우주과학·천체물리학에서는 이미 인정하고 있다. 이 책 『홀랜프』는 외계 생명체에 의한 지구 정복 이후의 세계를 그린 SF 소설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연출하는 사이먼 케이의 첫 장편소설이자 SF 소설이다. 20대부터 여러 단편영화를 만들며, 이야기의 감각을 익혀온 그는 단편영화 〈키라잇(Keylight)〉으로 뉴욕 시네마 영화제에 초청받아 수상했고, 이는 미국 아마존을 통해 개봉, 동명의 소설책으로도 출간됐다. 

미국에서 성장한 저자는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활성화된 SF 장르 문화를 직접 느끼고 경험해왔다. 이제 그가 마음속에서 키워온 SF 스토리를 그만의 생생한 시각적 감각을 담은 소설로 완성했다. 이 책 『홀랜프』는 지구를 침공한 정체불명의 외계 생물체에 맞서 싸우는 청소년들의 모험을 그린 이야기이다. 이에 따라 『홀랜프』는 암울한 인류의 묵시록이자 그 안에서 힘겹게 희망을 싹틔우는 청소년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외계 생명체의 식민지가 된 지구에서 그들은 인류를 구원할 전사들로 성장해간다. 그리고 그 계획은 외계인 침공 후 발견된 ‘예언서’에 모두 적혀 있었다. 등장 인물 중 한 명인 최 박사는 인류를 구원할 7인의 아이들을 키워온 인물로, 사실 예언서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이제 지구는 외계 생명체 홀랜프에게 복종하여 새로운 육체를 얻은 자들, 인류의 마지막 존엄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자들로 나뉘었다. 그리고 전쟁 중 태어난 새로운 인류도 존재한다. 이제 인류의 새 역사는 묵시록과 창세기의 경계에 서게 된다.

“그건 생물체가 가진 불변의 법칙이야. 강한 생물이 지배하는 것이 우주의 이치라고. 인간은 굳이 홀랜프가 아니어도 망했을 종이야. 다행히 홀랜프의 축복이 내려 우리를 이렇게 새로운 진화체로 만들어준 게 아니겠나?”

이 작품 『홀랜프』의 표제어로 쓰인 '홀랜프'는 외계 생명체다. 또 홀랜프에 맞서는 7인의 아이들은 '어빌리스'라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인간의 정신적 힘과 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최 박사가 설계한 뉴컨밴드를 통해 어빌리스는 물리적 힘으로 변환할 수 있다. 뉴컨밴드를 머리에 착용한 아이들은 이와 통신이 되는 멘사보드를 타고 공중을 날기도 하고, 뉴컨밴드 자체가 방패나 칼이 되어 홀팬프를 공격할 수 있다. 뉴컨밴드와 멘사보드 그리고 어빌리스로 작동되는 하이퍼 컴퓨터를 갖춘 아이들이 홀랜프에 맞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움스크린은 임부의 자궁을 본떠 만든 인공 자궁이다. 스크린의 형태이기에 태아의 성장을 그래도 볼 수 있다. 책의 '4장 4절 소속감'이란 항목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움스크린은 최 박사가 개발한 실험 프로젝트였다. 여자의 자궁을 복제해 스크린으로 옮겨 보이게 한 후, 여성이 임신했을 때 나오는 각종 성분들이 그 스크린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여자가 자신의 몸으로 임신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임신할 수 있는 첨단기술이다. 여성이 임신의 위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시에 더 많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수많은 반대 의견으로 정식 판매 허가가 나지 않았고 결국 프로젝트는 중지된 상태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p.60)

움스크린을 통해 태어난 선우희는 소설의 주인공인 선우필과 리브 사이에서 탄생한 아이다. 선우희는 인류 구원의 열쇠를 쥔 가장 중요한 인물로 성장해 간다. 

또 〈ACT 3〉 '10장 2절 능력'에서는 어빌리스와 뉴컨밴드, 멘사보드에 대한 설명도 서 집사의 입을 통해 민수에게 설명하는 장면도 나온다. “선우민 사범이 어빌리스를 발견했고 박사님은 뉴컨밴드와 멘사보드를 개발하셨지. 그리고 이 기계는 군용무기로 채택되었었다. 괴생물체들이 공격하기 전에 군에서 테스트하도록 한정적으로 만들어 보냈지만, 군에서 어빌리스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람에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였지.”

서 집사가 멘사보드를 타고 자유자재로 공중을 날아다닌다. 머리에 장착된 뉴컨밴드에서는 더 강렬한 빛이 나온다. 아이들이 멘사보드를 타고 훈련실의 공중을 날아다니는 서 집사를 신기한 듯 따라다닌다. 서 집사가 현란하게 멘사보드와 함께 공중에서 몇 번 돌더니 다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온다. 멘사보드에서 내린 그가 잠시 숨을 헐떡거리다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기를 여러 번 한다.

『홀랜프』는 1권 〈거룩한 땅의 수호자〉, 2권 〈메시아의 수호자〉 등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권 모두 「프롤로그」, 「ACT 1」, 「ACT 2」, 「ACT 3」,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1, 2권 동일한 구성이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제목 또한 같다. 프롤로의 제목은 '인간은 자기 뜻대로 계획하고······'이고, 에필로그의 제목도 '······신은 자기 뜻대로 실행한다'로 똑같다. 물론 내용은 다르다. 1권 〈거룩한 땅의 수호자〉의 프롤로그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관찰하던 인간의 시각으로 서술되고 있다. "어둡고 광활한 우주의 시선에서 푸른 바다색, 황토색 그리고 청록색이 한데 어우러진 지구가 천천히 돌고 있다. 그 지구 앞에 제법 큰 규모의 국제우주정거장이 있다. 이 정거장은 지구를 관찰하며 돌고 있다. 지구는 다른 별에 비해 보잘것없이 작지만 저런 둥근 사람 머리 같은 곳에 저렇게 다양한 색이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p.9)

저자의 서술은 지구 안의 인간이 우주 전체의 시각에서 본다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독자들에게 깨닫게 하도록 시각 조정을 하고 있는 듯하다. 우주비행사들의 대화가 뒷받침한다. "결국 인간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 살아갈 계획을 세워야 해.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 뇌부터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지."

저자의 서술은 이어진다. 수많은 행성의 존재를 알게 된 인류로서는 이제 지구를 벗어나 다른 행성을 지배하는 생물체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그가 지금 이곳에서 일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곳에 온 지 몇 달이 지났고, 지구에서의 추억이 떠오르고, 그곳에서의 생활이 그립다. 저자는 이어 "우주정거장에 정박해 있던 우주비행선들 위로 커다란 원형 비행물제의 그림자가 덮고 있다."(p.13)로 프롤로그를 마치면서 침공체가 나타났음을 암시한다.

이후 본격 장(章)으로 지구에서의 현재를 제3자 관찰자 시점으로 지구의 상황을 조명한다. 「ACT 1」에서 '1장 1절 에덴동산', '1장 2절 신의 열매'에서는 지구에서의 평범한 생활이 펼쳐진다. 출근길 묘사 모습, 학생들의 교내 생활, 음식과 웃고 떠드는 모습 등 우리가 현재 지구에서 사는 모습이 그려진다.

『홀랜프』는 인류가 외계 생명체의 지배를 받으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외계 생명체 홀랜프는 ‘파라다이스’라는 거대 도시를 살아남은 인류에게 제공한다. 여기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물자가 무상으로 제공된다. 그리고 홀랜프와 유사한 몸으로 변환한 새로운 인류인 '페카터모리'는 상위 계급으로 인정받는다. 결국 식민지에서 인간 사회의 계급은 더욱 심화된 결과를 낳는다.

이로 인해 인류를 해방할 7인의 아이들은 권력을 얻은 인간에게는 이단자가 되며, 파라다이스를 벗어나 궁핍하게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구원자가 될 운명이 된다. 저자는 메시아라는 존재가 이렇듯 역사에서 늘 모순적인 존재로서 비쳤음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종교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책의 구성 역시 종교의 경전을 따른다. 홀랜프와 페카터모리가 최상위, 차상위 계급에 속하고 인류는 하층 계급으로 몰락한다. 원래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은 아직 모습을 잃지 않고 있지만 인간들이 지배하던 시절과는 많이 다르다. 하층 계급으로 떨어진 인간들은 옛날 자신들이 지배하던 지구에서의 삶을 마치고 타 행성을 개발해 이주하든지 아니면 지배게층에 맞서 싸워 이겨야 할 운명에 처해진 상태다. 이에 아이들로 구성된 7인의 어빌리스 활약은 청소년들이다. 청소년들로 구성한 이유는 아마도 지구의 미래는 지금의 청소년과 어린이에게 달렸다는 복선이기도 하다. 『홀랜프』는 역사와 종교, 과학과 기술, 사회와 권력이라는 주제를 아이들의 성장기로 훌륭하게 펼쳐내고 있다.

“하늘의 도시에서는 보통의 사람들이 읽기 쉽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배포하였고 사람들은 그 책을 예언서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우리는 인류의 계획을 설명한 계획서로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지.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예언서라고 부르고 우리 나름대로 해석하기 시작했어. 박사님은 모호한 말을 자주 하셨기에 내용이 애매한 부분이 많아. 우리가 알아서 해석해야 했지. 하지만 모두가 공통으로 믿고 해석한 것이 있어. 바로 자네들과 관련된 부분이야.”(p.319)

갑자기 나타난 괴생물체들의 공격에 온 세상이 폐허가 되어간다. 인간들은 영문도 모른 채 괴생물체들에게 죽어간다. 하늘에서 비행하는 대형 괴생물체들은 인간들이 이제껏 지어온 건축물들을 공격하고 파괴한다. 대형 괴생물체 위에 탑승하고 있던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중형, 인간의 반 크기인 소형 괴생물체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들을 공격한다. 중형 괴생물체들은 한 손에 총과 비슷한 무기를 들고 알 수 없는 빛을 쏴대고 돌기가 나 있는 날카로운 팔로 사람들을 베어 죽인다. 괴생물체들은 흡사 해파리와 물곰을 섞어놓은 모양이다.(p.140)


“이전 것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났다. 난 나를 속박하던 모든 것에서 이제 자유로워졌다.”

페카터모리 알파가 사람의 머리를 던진다. 죽은 사람의 머리가 사내 앞으로 굴러온다. 입을 벌린 그 표정이 슬퍼 보인다. 울었는지 하얗게 뜬 눈 밑에 눈물이 말라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죽은 표정이다. 사내가 페카터모리 알파를 바라본다.

“인간이었을 때 나의 아버지다.”(p.330~331)


저자 : 사이먼 케이


1.5세대 한국계 미국인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연출하며 어릴 때부터 영화의 메카 할리우드에서 일했다. 20대부터 여러 단편영화를 촬영하며 쌓은 경험으로 만든 단편영화 [키라잇(Keylight)]이 뉴욕 시네마 영화제에 초청받아 수상하였다. 이 영화는 미국 아마존을 통해 개봉되었고 동명의 소설책도 출판되었다.

미국에서 활성화된 SF 장르 문화를 직접 경험하며 자란 저자는 이제 한국에도 반드시 있어야 할,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야 할 한국형 SF 소설을 개척해나가고자 한다. 《홀랜프》는 저자의 첫 장편소설로 지구를 침공한 정체불명의 외계 생물체에 맞서 싸우는 청소년들의 모험을 그린 이야기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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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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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집 『가연물(可燃物)』은 수수께끼가 있고, 독자들에게 단서가 제공되며, 반복되는 검증과 뜻밖의 결말로 마무리되는, 이른바 '경찰 소설'이란 일반적인 용어 대신 ‘경찰 미스터리’라는 특이한 형식으로 쓰였다. 탐정이 개입해 범죄를 규명하고 범인을 추적해 들어가는 추리소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사건(범죄)을 추적해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범죄 소설과 다를 바 없지만 경찰이 탐정을 대신하며 독자들과 함께 사건을 추적하고 풀어간다는 점에서 탐정 소설에 가깝다. 특히 저자는 독자들에게 사건 현장을 보여주고 수집한 단서 등을 공개하면서 경찰과의 수사 경쟁을 벌이게 된다. 담백하고 명백한 단서를 기반으로 범인을 추적하는 데서 '경찰 미스터리'라고 이름 붙인 듯하다. 독자들은 여느 추리 소설과는 다르게 주어진 단서에 따라 경찰처럼 범인을 추적하는 듯한 느낌을 소설에 몰입할 수 있어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저자 요네자와 호노부는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동경하며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으며, 대학 졸업 후에는 아르바이트로 소설을 쓰는 일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습작을 거듭하던 저자는 2001년 『빙과』란 소설로 제5회 가도카와 학원 소설 대상 '영 미스터리 & 호러 부문 장려상'을 수상하며 정식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일본 역사상 최초로 일본 미스터리 4대 랭킹을 모두 석권하고, 나오키상을 비롯해 무려 9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며 미스터리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 소설집 『가연물』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잡지 〈올 요미모노〉에 게재된 5편의 이야기를 묶어 출간했다. 이 소설집은 〈가쓰라 경부 시리즈〉로 '가쓰라' 경부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세밀하고 촘촘한 수사, 경험과 통찰력 있는 추리력이 돋보인다. '경부'는 우리나라에서 '총경'에 해당하며, 경찰서장급의 간부이다. 가쓰라는 화려함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하고도 묵직한 수사경찰의 면모를 보여준다. 현실적이란 이야기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모두 가쓰라 경부가 맡은 사건으로 연작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이 소설집은 "쓰레기 방화에서부터 토막 살인 사건까지 다루면서 저자 호노부가 다채로운 트릭과 깔끔한 결말까지 완벽하게 소설 속에 장치했다"고 평가한다

저자 호노부는 "경찰소설은 주로 경찰 조직이나 경찰관 개인을 그리는 소설을 지칭하지만 『가연물』은 명탐정이 중심인 소설이다. 다만 경찰관이 탐정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경찰 소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고 말한다. 경찰소설은 ‘경찰 조직, 경찰관의 묘사’가 중심이 되는데 비해, ‘경찰관이 탐정 역할을 하는 미스터리’인 이 작품을 나타내기 위해 '경찰 미스터리'라는 표현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이 소설집은 요네자와 호노부가 처음으로 도전하는 경찰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대도시와 인적이 뜸한 산악 지방이 공존하는 일본 군마현을 무대로 하고 있다. 군마현의 이러한 지형적 특성은 이야기 곳곳에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가연물』은 조직을 드러내기보다 경찰이 탐정으로 활약하는 작품집이며 따라서 ‘경찰 소설’이 아니라 ‘경찰 미스터리’라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수상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모두 5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소설집에는 연쇄 방화의 동기를 파헤친 표제작 「가연물」을 비롯해, 발견되지 않는 흉기를 찾는 「낭떠러지 밑」, 공통된 목격 증언의 위화감을 파고든 「졸음」, 눈에 띄는 장소에 유기된 토막 시신에 집중하는 「목숨 빚」, 인질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진짜인가」 등이 실려 있다.

수수께끼에 담백함과 공정함을 더하는 수사 인물은 군마 현경 수사1팀을 이끌고 있는 가쓰라 경부이다. 불필요한 것은 말하지 않고, 간부들은 거리를 두며, 부하들도 결코 좋은 상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뛰어난 수사 능력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사건과 관련 없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힘든 사건이 발생하면 사흘 동안 4시간 정도밖에 잠들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를 혹사하고, 두뇌 회전을 위해 달콤한 빵과 카페오레로 간단하게 식사한다. 용의자의 사소한 언동, 현장의 미묘한 위화감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증거와 숨겨진 동기를 기어코 발견해 낸다. 

특히 캐릭터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묘사 방식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지점이라고 한다. 직업이자 삶의 일부로서 한 걸음씩 사건 해결로 나아가는 경찰상을 보여준다. 우리가 묵직한 사건들을 쫓는 일선 형사의 집요함과 우직한 수사법을 보고 감탄하듯 사명감과 직업 정신 또한 뚜렷하다. 말 그대로 형사다운 형사이다.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성으로 인해 작품은 더욱 공정해지고, 독자는 더 과감하게 가쓰라 경부와 지혜를 겨룰 기회를 제공받는다. 모두 저자 요네자와 호노부가 소설의 구성 능력과 미스터리 소설의 특수한 표현 등이 두루 갖춰졌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출판사 측은 소개한다.

우리나라에 이번에 번역 출간된 이후 〈예스24〉와 가진 인터뷰에서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남겼다. 5편의 단편 모두가 ‘독자와의 경쟁’처럼 느껴져 인상적이었고, 미스터리 독자들이 정답을 맞히기에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단편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아마도 「진짜인가」의 정답률이 가장 낮을 겁니다. 다른 네 작품은 미스터리로서 명확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가령 「낭떠러지 밑」은 무엇이 흉기인지 맞히는 미스터리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그 선언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인가」만큼은 대체 무엇을 묻는 건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증언을 종합해서 숨은 질문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 질문에 올바르게 답해야 합니다. 사실 이렇게 질문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미스터리는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질문의 유무마저 숨기는 것은 미스터리로 공정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어떤 점이?'라는 질문은 재미있을 것 같아 「진짜인가」에 적용해 보았습니다."고 답했다.

또 미스터리 장르는 어디까지나 독자들에게 정답을 숨기는 것이 관례이자 기법인데 나름의 노하우가 있나요?란 질문에는 "누가 뭐라 해도 ‘대담함’입니다. 단서는 숨기지 말고 제시해야 합니다. 노골적일 만큼 당당하게 단서를 표현하면서, 그래도 여전히 독자가 '그랬구나! 알 수도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을 맛보게 하는 것이 훌륭한 본격 미스터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충분히 고민을 거듭해 최고의 진상을 마련해 둬야 합니다. 수수께끼가 너무 평이한 경우 독자의 정답률을 제어하려면 단서를 몰래 숨기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란 답변으로 소설 속 주인공 인물에 주목하기를 바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쓰라는 경찰관이라는 직업인이고, 그 개성은 기발하거나 특이한 면모가 아니라 업무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 가쓰라는 피해자 가족에 대한 배려로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동시에 정의를 위해 확실성을 중시하는 것도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요인이란 답변도 더하고 있다. 소설적인 효과를 노렸다기보다 현실과 접해 있는 인물상을 확립하려는 목적이 더 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답변하고 있다.

첫 번째 소설 「낭떠러지 밑」은 스키장 실종 사건을 그리고 있다. 정규 코스에서 벗어나 스노보드를 즐기러 간 네 명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은 수색을 시작한다. 과다 출혈로 죽은 채 발견된 시신. 범인은 함께 조난 중이었던 또 다른 남자일 수밖에 없지만, 흉기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눈이 쌓인 낭떠러지 밑에서 어떻게 흉기를 처분했을까? 

고개를 숙여 파일을 넘기며 현장 사진을 보았다. 낭떠러지 밑, 경사면에 기대어 있는 고토의 목에 난 생생한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그의 몸 절반을 물들이고 있었다.

"고토는 무엇으로 살해당했나?"

어쩌면 뭔가 근본적으로 착각하고 있는 걸까? 이것은 살인이 아니라 사고, 혹은 자살일 가능성은 없을까? 용의자는 정말 미즈노뿐인가? 놓친 것은 없는가······.

두 번째 작품 「졸음」에서는 강도치상 사건의 용의자를 확정했으나 결정적 증거가 없다. 수사관들이 계속 미행하던 중에 용의자가 접촉 사고를 당한다. 새벽 사고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줄줄이 목격자가 나타나고 모두 용의자가 신호를 어겼다고 주장한다. 가쓰라 경부는 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보통 목격 증언 수집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야 3시에 발생한 사고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네 건이나 되는 목격 증언이 쉽게 모인 기묘한 상황이 가쓰라는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 부자연스러움의 뒤에는 또 한 가지 중대한 위화감이 깔려 있었다. 일반적으로 여러 목격자의 증언이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중략) 인간의 관찰력과 기억력은 불확실하다. 때로는 엉터리가 되고, 때로는 정확해진다. 가쓰라는 두 사람의 목격자 증언이 일치한다고 의문을 품지는 않는다. 세 사람이 하는 말이 똑같다면 조금 의심한다. 그리고 네 사람이 완전히 똑같은 증언을 했다면, 무턱대고 믿을 수 없다.(p.117~118)

「목숨 빚」에서는 누군가 시체를 토막내 일부러 잘 보이는 곳에 방치한다. 군마현의 명산 하루나산 기스게 회랑 부근에서 토막 난 위팔이 발견된다. 해부 결과 톱의 흔적이 발견돼 가쓰라 팀이 수사를 맡는다. 차례차례 나타나는 다른 부위들. 범인은 왜 시체를 자르고,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운 산책로에 유기했을까?

그렇다, 시체는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누군지는 몰라도, 어째서 시체를 토막 냈을까?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면, 설령 모든 부위를 찾아내고 피의자를 알아내도 이 사건의 진상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가쓰라는 결국 모든 것은 이 ‘어째서’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감했다.(p.138)

표제작이자 네 번째 소설 「가연물」은 방화 사건을 다룬다. 군마현 오타시 곳곳에서 연속으로 가연성 쓰레기 방화 추정 사건이 발생한다. 다행히 화재 규모는 작지만, 12월이라는 계절상 언제든 큰 화재로 번질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가쓰라 팀이 수사를 시작하자마자 방화는 딱 멎는다. 감시를 들킨 걸까? 범행의 동기는 무엇일까?

가쓰라는 직감이란 차곡차곡 쌓인 관찰경이 경고를 보내는 신호라고 여겼다. 직감을 맹신하는 표적 수사는 최악이지만, 근거가 직감뿐이라는 이유로 의혹을 각하하는 것은 그 다음으로 나쁘다. 사토는 가쓰라 팀에서도 우수한 형사로, 그의 직감이 그렇다고 한다면 뭔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범인 판명을 의미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중략) 가쓰라는 사건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았다. 추궁하면 오노하라는 십중팔구 자백하리라. 하지만 가쓰라는 '십중팔구'로 도박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사는 어차피 사람의 소행, 완벽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딘가 운명적인 틈이 벌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머리카락 한 오라기의 차이라도 완벽에 다가설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p.205)

마지막 작품 「진짜인가」에서는 교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농성 사건이 발생한다. 특수부가 도착할 때까지 기본 수사만 도와주기로 하고 현장 파악에 나선 가쓰라 팀. 무사히 빠져나온 직원들의 증언으로 레스토랑 안에 남은 이들을 추정한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범인은 손에 총 같은 물체를 들고 있었는데.

가쓰라의 시선이 농성범에게 꽂혔다. 갈색으로 염색한 짧은 머리, 암갈색 터틀넥을 입고 있다. 얼굴밖에 보이지 않아 신장이나 체격은 알 수 없지만 뺨은 살이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그 얼굴은 흉악한 인상과 거리가 멀었다. 가쓰라의 눈에는 당혹감과 절망이 묻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농성범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들이 술렁거린 것은 아니었다. 그 손에 검은 권총 모양의 물체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무라가 중얼거렸다.

“……진짜인가?”(p.274)

저자 : 요네자와 호노부(よねざわ ほのぶ, 米澤 穗信)


1978년 기후 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요네자와는 중학교 시절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가가 되기 위해 집필 활동에 매진했고, 2001년, 『빙과』로 제5회 가도카와 학원 소설 대상 영 미스터리&호러 부문 장려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졸업 후에도 이 년간 기후의 서점에서 근무하며 작가와 겸업하다가 도쿄로 나오면서 전업 작가가 된다. 클로즈드 서클을 그린 신본격 미스터리 『인사이트 밀』로 제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 다섯 개의 리들 스토리로 이루어진 연작 단편집 『추상오단장』으로 제63회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 후보, 제10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에 올랐다. 2011년에는 판타지와 본격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부러진 용골』로 제6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였다.

상쾌하고 빠른 터치로 특히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미스터리계의 유망주로,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을 위시한 '소시민 시리즈', 『빙과』를 비롯한 '고전부 시리즈 등, 일상의 사건들을 주로 다룬 청춘 미스터리를 많이 발표했다. 요네자와 작품의 근간이 되는 ‘고전부’ 시리즈는 고등학생의 일상에 미스터리를 접목시켜 독특한 분위기의 청춘 소설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춘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청춘의 밝은 면만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는 어두운 면을 함께 그려 내 독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싸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에 블랙 유머 미스터리 단편집 『덧없는 양들의 축연』, 『개는 어디에』, 청춘 SF 미스터리 『보틀넥』, 『안녕 요정』, 『리커시블』, 『개는 어디에』, 『덧없는 양들의 축연』 등의 작품이 있다.


역자 : 김선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했다. 다양한 매체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했으며 특히 일본 미스터리 문학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소시민’ 시리즈, 『야경』, 『엠브리오 기담』, 『쌍두의 악마』,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진실의 10미터 앞』, 『왕과 서커스』, 『러시 라이프』,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손가락 없는 환상곡』, 『고백』, 『클라인의 항아리』, 『열쇠 없는 꿈을 꾸다』, 『종말의 바보』, 『이별까지 7일』, 『완전연애』, 『경관의 피』, 『흑사관 살인 사건』,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꿀벌과 천둥』, 『고백』, 『리버스』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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