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미스터리 문명 1 : 풀지 못한 문명 - 미스터리 대표 채널 <김반월의 미스터리>가 소개하는 초고대 문명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미스터리 문명 1
김반월의 미스터리 지음 / 북스고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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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때 인류 문명의 기원에 대해 배우는 과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때는 교과서에 실렸는지 아닌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교과서가 확실히 기억나는 이유는 아마 세계사 수업이 따로 있었고, 가장 앞 부분에 인류 문명의 기원이 나와서 첫 수업 때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입시에 작은 비중이지만 가끔 나온다고 선생님이 별도로 일러주셨던 것 같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그리스·황하 등 4개 지역이었다. '4대 문명'이라고 배웠다. 그 이전의 시대는 구석기·신석기 시대라고 언급되었을 뿐 '문명'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국어 시간에 문학의 원형이 고대 그리스의 신화 〈일리어드〉·〈오딧세이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배웠다. 지금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수메르 점토판이 발굴, 일부 해석됨으로써 〈길가메시〉가 최초의 문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교과서는 바뀌었는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생 인류의 조상은 '호모 사피엔스'로서 약 15만~25만년 전에 출현했다고 들은 바 있다. 300만~150만 년에 출현한 인류기원설은 원숭이에 가까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최초의 인류로 보는 것은 직립보행했다는 이유라고 한다. 이들은 지능도 낮은 데다 키마저 1m 안팎으로 추정한다. 문명을 이룰 수 있는 인간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인류 출현 등 인류기원설이 확실히 정립되어 있는데도 만일 인류의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인류 문명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4대 문명의 훨씬 전에도 고도의 지능을 가진 인간이 존재했다는 흔적이 지구에 남아 있다면? 심지어 현대 문명과 버금가는 기술력을 가졌다면? 그들은 대체 누구이고, 어떤 이유로 멸망했을까? 

이 책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미스터리 문명』(이하 『미스터리 문명』)은 이런 우리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스터리한 문명의 흔적을 찾아내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독자들 앞에 펼쳐낸다. 한 우주 비행사가 인도와 스리랑카 사이를 지나다 충격적인 물체를 발견한다. 50km에 달하는 거대 다리였는데, 연구 결과 연대가 무려 170만 년 전으로 밝혀진 것이다. 170만 년 전에 이미 인공다리가 존재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이 밖에도 20만 년 된 타일 바닥, 1,400만 년 된 자동차 바퀴 자국, 1억년 된 손가락 화석까지 믿을 수 없는 흔적들이 전 세계에서 속속히 발견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지구의 역사에 고도 문명의 인간이 정말 존재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현대 인류보다 더 뛰어난 찬란한 문명을 가꾸었을지도 모른다.

『미스터리 문명』은 ①, ②권 세트로 출간됐다. ①권은 「풀지 못한 문명」, ②권은 「잃어버린 문명」으로 부제를 달았다.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한 문명을 적절하게 구분했다. ①권 「풀지 못한 문명」에는 3개의 장(章)으로 나뉘었다. 1장 〈시대를 벗어난 기술〉, 2장 〈지구 리셋설〉, 3장 〈외계 문명의 흔적〉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2,000년 전 천체를 관측한 장치' 등 7개 소항목이 있고, 2장엔 '170만 년 된 초고대 인공다리' 등 15개 소항목이 있다. 3장은 '남극 심해 안테나' 등 7개의 소항목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저자 '김반월의 미스터리'는 독자들의 궁금증 해소와 실존의 증명을 위해 연구진들의 실제 조사 내용과 함께 초고대 문명의 증거 사진을 수록하였으며, 당대에 존재할 수 없는 기이한 유물과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뛰어난 기술들을 소개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 한 가지 의문점이 들지도 모른다. ‘인류 문명은 멸망과 탄생을 반복하는가?’ 이 책은 바로 그 의문점에 부합하는 풍부한 지식과 무한한 상상을 독자들에게 갖게 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①권 「풀지 못한 문명」에서 〈인간의 문명은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제목의 서문에서 "지구 리셋설이란 먼 옛날부터 인류 문명은 핵전쟁과 같은 이유로 멸망과 탄생을 계속해서 반복 중이며, 우리의 문명 또한 n번째 문명이라는 가설이다. 그리고 당시 수백 수천만 년 전에 존재했던 고도의 문명을 초고대 문명이라 칭한다. 허무맹랑한 소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로도 초고대 문명의 증거는 수도 없이 많고,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다."고 밝힌다.

저자는 또 '오파츠'에 대한 설명도 덧붙인다. 당대의 기술력으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유물, 시대를 초월한 유물을 일명 '오파츠'라 부른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오파츠의 개수만 해도 최소 수백 개에 달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지구의 나이로 생각을 거슬러 올라간다. 지구의 나이는 지구의 탄생이라는 의미다. 무려 46억 년 전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46억 년이라니 사실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다. 앞서 언급한 호모 사피엔스는 고작 20만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생 인류의 역사로 보자면 최초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발생한 시점은 고작 6,000년 전이다. 현생 인류의 역사가 굉장히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농경을 막 시작했던 신석기 시대부터 전기차를 타고 다니는 21세기 현재까지 고작 1만 년도 안 되는 시간이다.

지구 전체의 역사로 보면 인류의 역사는 정말 티끌만큼 작은 시간이다. 과연 우리 문명이 탄생하기 이전인 45억9,999만 년 동안의 지구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정말 우리가 지구 최초의 인류일까?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대 오파츠와 초고대 오파츠를 더불어 다양한 미스터리를 다룬다고 말한다. 1장에서는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해석할 수 없는 고대의 오파츠와 로스트 테크놀로지, 2장에서는 지구가 리셋되었다는 증거를 모아둔 지구 리셋설, 3장에서는 어쩌면 우리 곁에 있을지도 모르는 외계 문명을 다룬다. 

1장의 첫 번째 소항목으로 '2,000년 전 천체를 관측한 장치'에 대한 이야기다. 1900년 에게해를 항해 중이던 디미트리오스 콘도스 선장의 선박이 위기에 처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폭풍우는 콘도스 선장과 선원의 생명을 위협했고 그들은 결국 어쩔 수 없이 근처 안티키테라섬에 정박했다. 선박에 실린 식량마저 몽땅 폭풍우에 잃어버린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번갈아 가며 직접 바다에 들어가 식량을 구하게 된다. "이 섬의 바다 밑에 보석과 수많은 유물이 잔뜩 있습니다!" 바닷속에 뛰어든 선원이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내민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해저 유물이었다. 보고를 받은 그리스 왕국은 왕립 해군을 파견하여 해저 유물을 인양하기 시작했다. 1900년에 시작된 조사는 1901년까지 이어졌고, 약 2년 간의 조사 끝에 30개의 유물이 그리스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1902년 5월 고고학자 발레이오 스티스는 난파선의 추가 조사를 진행하던 중 독특한 유물을 하나 발견한다. 형태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부식이 진행된 하나의 청동 톱니바퀴였다. 표현에 적힌 그리스어 비문 외에는 용도와 제작연대를 알아볼 수 있는 어떠한 사료도 없었다. 그렇기에 스티스는 이 청동 톱니바퀴에 인양된 지역의 이름을 따 안티키테라 기계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스티스의 발견은 이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부식으로 형태만 고작 알아볼 정도였기 때문이다. 

70년이 흐른 1977년, 프랑스의 잠수부 자크 쿠스토가 꾸린 잠수팀이 안티키테라섬을 향했다. 이들은 난파선의 연대를 추정할 만한 중요한 단서를 많이 찾아냈다. 그중에서도 주화의 발견은 안티키테라의 난파선이 난파된 시기가 약 2,000년 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티키테라 기계 역시 2,000년 전에 제작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약 20여 년 전인 1951년 영국으로 돌아가 본다. 당시 예일대의 교수였던 데릭 솔라 프라이스는 안티키테라 기계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티키테라 기계의 외형이 매우 복잡했고 내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라이스 교수는 그의 동료 카라칼로스 교수와 함께 82개의 안티키테라 기계 조각을 엑스레이와 감마선을 통해 검사한다. 그후 작성된 2명의 교수의 논문은 놀라웠다. "안티키테라 장치는 세 가지 주요 다이얼로 구성되어 있다. 앞면의 다이얼에는 2개의 눈금 바늘과 25개이 톱니바퀴로 구성된 매우 복잡한 기계 장치다. 최초 발견 당시 외부가 나무 박스로 포장되어 있었기에 이 기계는 어떠한 장치의 부품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조심스레 이것을 아날로그식 천체 관측용 컴퓨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2021년 유니버시키 칼리지 런던 UCL 연구팀은 안티키테라 기계의 모든 조각을 복원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내 안티키테라 기계의 환정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p.16~17)

앞서 언급된 '170만 년 된 초고대 인공다리'의 실체에 접근해 본다. 2장 〈지구 리셋설〉의 첫 번째 소항목이다. 책에 따르면 모든 것은 1995년 한 우주 비행사가 촬영한 사진 한 장에서 비롯되었다. 공중에서 바라본 그 장면은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인도와 스리랑카 사이 바다를 가로지르는 50km에 달하는 거대한 다리 형상이 육안으로 확인된 것이다. 인도와 스리랑카 사이에 펼쳐진 거대한 다리 아담스 브릿지는 오랫동안 과학계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자연 현상일까, 인공 구조물일까? 

다리를 구성하는 암석들의 연대가 무려 17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170만 년 전이라면 호모 사피엔스 출현 이전이다. 지구에는 원시인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연구진들은 다양한 가설을 펼쳤다. "고대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했거나 인류 이전에 이미 초고대 문명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종교적인 해석이나 신화적 해석을 내놓았다. 인디애나 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충격적인 사실은 아담스 브릿지가 자연 현상이 아닌 인공 구조물일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이다. 발굴조사는 시간이 갈수록 놀라운 결과를 내놓았다. 유적지 지하에서 발견된 거대 구조물은 현대의 원자로 시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용도는 분명하지 않지만 상당한 기술력이 동원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그들은 이 신비의 문명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유적지 발굴이 계속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물들이 속속 드러났다. 정교한 기하학 문양의 석관, 금속 주조 도구, 천문 관측 기록들이 그것이다. "이 유물들을 보면 상당한 수준의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문학, 기하학, 금속 공학 등 여러 방면에서 발달했던 것 같아요." 연구진은 이 문명이 현재 인류 문명을 능가하는 수준의 과학 기수을 가지고 있었음을 실감했다. 그들의 지적 수준과 문화적 성취는 상상을 초월했다. "만약 이 문명이 지속되었다면 우리의 모습은 지금과 전혀 달랐을 겁니다.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발전한 모습이었겠죠."(p.71)


인류 문명의 탄생과 멸망이 반복되고 있다. ‘천동설’이 주류였던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며 우주의 중심을 바꾼 것처럼 누군가의 새로운 발견은 우리가 굳게 믿어 왔던 상식을 송두리째 바꾸곤 한다. 이 책 『미스터리 문명 1 : 풀지 못한 문명』에서 다루는 ‘지구 리셋설’은 우리의 상식을 크게 뒤엎는다는 면에서 현재의 지동설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고고학자 한 명이 1억 년 전의 공룡 화석에서 인간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이는 기존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발견으로 과학계에 어마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공룡과 인간이 공존했다고 말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믿지 못할 테지만, 이를 증명하는 흔적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흔적을 근거로 문명은 몇 번씩이나 리셋됐다는 ‘지구 리셋설’이라는 가설까지 만들어졌다. 『미스터리 문명 1: 풀지 못한 문명』에서는 그 증거가 되어 주는 흔적을 따라 초고대 문명의 존재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시대를 초월한 유물인 ‘오파츠(Out-Of-Place Artifacts)’가 수십~수백 건에 달한다고 한다. 


저자 : 김반월의 미스터리


밤하늘을 볼 때마다 무한한 호기심을 느끼는 ‘김반월의 미스터리’는 세상을 뒤흔드는 미지의 사건을 소개한다. 특히나 여전히 비밀스러운 인류 문명을 파헤치며 세상에 대한 의구심과 궁금증을 자아낸다. 유튜브 채널 <김반월의 미스터리>는 믿기 힘든 초자연 현상, 미제사건, 괴담을 다루는 대표적인 미스터리 스토리텔링 채널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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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나의 이단자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지음, 이관우 옮김 / 작가와비평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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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조아나의 이단자』를 읽으면서 독자는 유럽 문명의 근간에 기독교라는 종교가 짙게 배어 있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이 책은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소설 작품 2편을 묶었다. 표제작인 「조아나의 이단자」와 함께 「선로지기 틸」 등 두 편이 수록돼 있다. 「조아나의 이단자」는 하우프트만의 가장 성공적인 산문으로 인정받는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유럽에 가장 널리 퍼져 있던 가톨릭 신부가 어느 남매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딸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결과를 액자형 소설 구조로 풀어간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며 혼란하고 궁핍했던 시대에 독자층이 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작품집이다. 두 세계대전에서 모두 전쟁을 일으킨 측의 독일은 패전함으로써 사회·경제적 분위기가 매우 경직되고 어두웠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로서의 가톨릭 신부는 성직자로서 신과 인간 중 어느 쪽에 서야 하는지 갈등하고 고뇌하는 프란체스코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선로지기 틸」은 전쟁 이전에 발표된 작품으로 저자 하우프트만을 문학적으로 인정받게 한 첫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소설은 첫 번째 여인과의 결혼으로 낳은 사랑하는 아들이 둘째 부인에 의해 죽음에 이르자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마침내 정신이상자가 되어 살인을 저지르는 선로지기 틸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독일인(윈리원칙적이며 융통성 없는)인 하우프트만은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하층민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그들의 편에 서 왔기에 가난한 소시민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소설을 쓴 것은 자연스러운 맥락이었다고 당시 문학계는 평가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틸의 내면에 내재하고 있는 대립적이며 분열적인 성향을 부각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지식계급의 주인공을 다루어 온 전통적인 독일 노벨레(소설)의 틀을 깬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을 통해 하우프트만의 문학적 특성을 더욱 새롭고 깊이 있게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출판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또 인물과 환경을 지나칠 정도로 세밀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한 문장을 직접 접함으로써 독일 자연주의 문학이 가진 특별한 면모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은 솔직히 독자가 잘 몰랐던 작가이다. 더욱이 191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데도 이름이 다소 낯설었다. 더욱이 표제어에 있는 '이단자'란 단어 때문에 종교 소설 같은 느낌이어서 더 낯설었다. 유럽은 로마 제국 시대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이후 유럽 문명 내내 사회와 정치에까지 종교의 영향력이 컸다. 특히 우리가 잘 아는 십자군 전쟁을 200년 동안 치렀다. 뿐만 아니라 수장인 교황은 전쟁과 왕에 대한 영향력도 끼쳤다. 이슬람교의 오스만 제국이 대단한 위세를 떨칠 때는 유럽 많은 나라의 중심으로 맞서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조아나의 이단자」는 작은 마을의 가톨릭 신부가 겪는 종교적 갈등을 다뤘다. 이 책의 초판은 1918년에 출간됐고, 이후 1945년까지 100판이 출판됐다고 한다. 이 작품이 이렇게 인기를 끈 것은 섬세하고 관능적인 성애 묘사라고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 가톨릭의 종교적 위세가 대단했던 때이니만큼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성직자의 일탈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더 독일의 서민층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아닐까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치는 신앙의 세계와 세속, 정신과 감각, 현실과 신화 등 양립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작가적 역량이 탁월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가톨릭 신부의 일탈은 권위에 대한 반항이며 저항으로 읽힐 수 있고, 독일의 권위적이고 억압적 권력에의 저항 의식이 짙게 깔려 있었던 사회 분위기도 일조를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의 복합적 내면 심리와 그것의 결과를 치밀하고 유려하게 그려나가면서 공감 영역을 최대화해 깔끔하게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결혼과 순결에 있어 특별히 엄격한 가톨릭교의 신부가 알프스 고산목장에 은거하는 남매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딸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결과를 그린 이 작품은 소재의 희귀성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저자 하우프트만이 극단적 소재와 내용을 취한 데에는 육체와 성애에 대해 지나치게 적대적인 가톨릭교의 경직성과 완고함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하우프트만은 신부와 소녀의 합일을 통해 세로운 창조적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섰다고 묘사는 데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신부가 하느님을 버리면서까지 이룬 소녀와의 결합이야말로 모든 것을 뛰어넘는 창조적 사랑의 구현이며, 그럼으로써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저주받고 버림받은 삶에서 소녀를 진정으로 구원한 성직자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작품에 대해 이 책의 역자 이관우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 작품은 성직자가 신과 인간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서야 하는지에 대한 쉽게 풀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며 "신부와 소녀와의 사랑이 낳은 깊은 산 속에서 염소치기 목자로 사는 둘만의 은둔적 삶이 비루하기보다는 순수하고 고상하게 보이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역자는 또 1차 세계대전 발발 5년째에 발표된 이 작품은 자연, 사랑, 신화라는 테마를 통해 전쟁의 공포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자연이나 사랑을 통한 시간초월성의 체험은 사람을 문명의 시간에서 끌어내 신화 속으로 이끌었다. 비평가 만프레트 슈니히트는 하우프트만이 이 작품을 통해 대립을 주관적이고 유토피아적으로 중재하는 신비적이며 원초적인 세계인 '제2의 현실'을 개척했다고 평가한다. 신화와 현실을 한꺼번에 바라보는 것, 즉 신화적 형식과 자연주의적 형식의 특별한 병립은 이 작품의 매력과 문화적 가치를 높인다고 평가했다"고 전한다.

책에 따르면 좁은 성직의 세계를 떠나 자연과 사랑에서 시간의 초월을 체험하는 것은 신부 프란체스코가 문명의 시간을 벗어나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출발점이 된다. 그는 매혹적이 자연을 접하면서 내면에서 열정적인 사랑이 싹트는 것을 체험한다. 또한 그는 야성적인 자연 그대로의 아잉이자 근친상간으로 추방당한 고산지대 목자의 딸인 아가타에 대한 사랑을 통해 새로운 인간이 된다. 감정과 체험이 신화적 원형 속으로 흘러들어간 그는 낙원에서 지은 원죄에서 벗어나 아담과 이브를 통해 인간이 된다. 프란체스코와 아가타는 새로운 아담이며 새로운 이브로서 서로의 합일을 완수한다. 

"프란체스코는 더 이상 프란체스코가 아니었고, 막 하느님의 숨결에 의해 단 하나의 아담으로, 단 하나의 에덴동산의 주인으로 깨어난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를 빼고는 죄 없는 창조의 충만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별들이 천상의 음을 울리며 행복을 노래했다. 구름은 게걸스럽게 풀을 뜯어먹는 소들처럼 흥얼거렸고, 자색 과일들은 달콤한 황홀감과 맛있는 생기를 내뿜었으며, 나무둥치들은 향기로운 진액을 땀으로 흘렸고, 꽃들은 맛있는 향신료를 흩뿌렸다.(p.134)

이 과일 속에는 힘차게 뛰는 씨가 들어 잇어 경쾌하게 움직이는 맥동이 세차게 고동쳤다고 저자는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일을 먹을 때면 그것은 하늘에서 부여받은 자신의 풍요로움을 잃지 않으면서 점점 더 맛있고 정선된 기쁨을 선사했다고 덧붙인다. 즉 저자는 이 창조물과 다시 얻은 낙원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창조주 가까이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고 쓰고 있다. 하느님은 여기에서 자신의 작업을 끝내지도 그대로 놔두지도 않았고, 쉬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창조적인 손, 창조적인 정신, 창조적인 힘은 사라지지 않았고, 작품 속에서 창조적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낙원의 모든 부분과 사지 하나하나가 창조적인 상태로 머물고 있었다. 방금 도자공의 작업장에서 만들어져 나온 프란체스코-아담은 자신이 주변을 창조하는 자라고 느꼈다. 바깥세상적인 황홀함에 젖어 그는 하느님의 딸인 이브를 감지하고 바라보았다. 그녀를 형성했던 사랑은 여전히 그녀에게 달라붙어 있었고, 아버지가 그녀의 몸을 위해 사용했던 온갖 소재들 중 가장 훌륭한 소재는 아직도 어떤 흙먼지로도 더렵혀지지 않는 초지상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창조물 또한 몸을 떨고, 부풀어 오르고, 불꽃 같이 열렬한 천상의 창조력에 의해 빛을 내면서 아담과 한몸으로 융화되기를 재촉했다. 아담은 그녀와 함께 새로운 완성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다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아가타와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코와 아가타, 신부이자 좋은 집안 태생의 젊은이와 배척받고 멸시받는 양치기 아이는 손에 손을 맞잡고 밤중에 비밀통로를 따라 언덕을 기어오른 최초의 인간 커플이었다. 그들은 가장 깊숙한 은신처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영혼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황홀감을 느끼며 세속의 달콤한 기적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갔다.

그들은 감동했다. 그들은 은혜와 선택을 받았다고 느꼈고, 이런 느낌이 끝없는 행복과 섞여 진정으로 장엄하게 여겨졌다. 그들은 서로의 몸을 느꼈고, 입맞춤으로 결합되었지만 자신들이 향하고 있는 알 수 없는 운명을 느꼈다. 그것은 마지막 수수께끼였다. 그것은 하느님은 어째서 창조를 했으며, 어째서 세상에 죽음을 가져와 그것을 받아들이게 했느냐는 것이었다.

이후 이들은 움막으로 자리를 옮겨 정사를 나눈다. "그는 아가타의 벌린 입술 사이로 뿜어 나오는 유혹의 입김을 들이마셨다. 그는 소녀의 속눈썹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우 욕정의 눈물에, 뺨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에 연달아 입맞춤했다."(p.142~143) 이 대목까지가 아마 관능적 표현과 성애의 희열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가톨릭계의 반발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당시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독일 등 유럽의 상황이 이를 문제 삼을 한가한 형편이 아닐 수도 있었을지도, 혹은 세기말적 분위기에서 보자면 오히려 비유적 표현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평가했을지도 독자로서는 알 수 없지만.

「선로지기 틸」은 1888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이지만 하우프트만을 문학적으로 인정받게 한 첫 작품이라고 한다. 저자 자신도 "그것과 함께 나는 작가로서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밝혔다고 역자는 전한다. 이 작품은 첫 번째 여인과의 결혼으로 낳은 사랑하는 아들이 둘째 부인에 의해 죽음에 이르자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마침내 정신이상자가 되어 살인을 저지르는 선로지기 틸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한다. 틸의 근무지인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오더 사이에 있는 조그만 간수초소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선로지기 틸은 당직을 서거나 아파서 눕는 날을 빼고는 일요일마다 언제나 노이-치타우의 교회 안에 앉아있었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그가 아팠던 적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열차의 화차에서 떨어져 내린 석탄덩이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에 맞아 다리가 박살난 채 철길 옆 도랑에 내동댕이처졌다. 또 한 번은 쏜살같이 달려가던 급행열차에서 그의 가슴 한가운데로 날아든 포도주병 때문이었다. 이 두 가지 사고 외에는 어떤 것도 그가 시간이 날 때면 곧장 교회로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p.156)

하우프트만은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를 하층민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그들의 편에 서 왔기에 그가 가난한 소시민적인 선로지기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이 작품을 쓰게 된 것은 결코 새삼스런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 이관우는 설명한다. 

틸의 운명은 내면을 양분하고 있는 정신과 본능의 양극적 대립에 의해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틸이 내면의 양극성을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비극적 사태의 전개 과정은 틸, 첫 부인을 만나, 둘째 부인 레네 등 세 중심인물들 간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정확히 관찰할 수 있다. 첫 부인이 낳은 아들 토비아스 또한 결정적 역할을 한다.

몇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이 아이의 사체를 들고 돌아왔을 때 그들은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깜짝 놀라 계단을 타고 올라가 위층 거실로 들어갔는데, 그곳의 문 또한 활짝 열려 있었다. 

그들은 여러 차례 부인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 마침내 그들은 벽에 있는 성냥으로 불을 켰고, 번쩍이는 불빛이 끔찍스런 파괴의 모습을 드려내 주었다.

"살인이다! 살인!"

레네가 피투성이로 누워 있었는데, 두개골이 파괴되어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p.206)


저자 : 게르하트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슐레지엔의 바트잘츠브룬 출생하였다. C.하우프트만의 동생인 그는 어릴 때 경건한 종교적 환경에서 자라나 한때 조각을 공부하다가 후에 예나대학·베를린대학에서 생물학·철학을 공부하였다. A.홀츠, J.슐라프가 제창하는 ‘철저한 자연주의’의 영향하에 처녀희곡 『해뜨기 전』(1889)을 발표하고, 일약 자연주의 문학의 기수가 되었다. 이어 가정비극 『쓸쓸한 사람들』(1891)에서는 삼각관계로 고민하는 무력한 남편을 묘사하였고, 직공들의 반란을 다룬 군중극 『직조공들』(1892)로 극단에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걸작 희극 『비버 모피』(1893)를 비롯하여 『마부 헨셸』(1898) 등의 사실극이 발표되었다.

한편, 점차 상징적·낭만적 경향이 짙어져 몽환극 『한넬레의 승천』(1894), 서정미 넘치는 낭만적 상징극 『침종』(1896), 『그리고 피파는 춤춘다』(1906) 등을 거쳐 후년의 인형극 『축전극』(1913), 최후의 대작 『아트리덴 사부극』(1941∼1949)에 이르는 작품계열이 있다. 그 밖에 단편소설로는 에로스의 승리를 구가한 걸작 『소아나의 이단자』(1918), 장편으로는 종교적 사상체험을 담은 『기독광』(1910) 등이 있다. 서정시인 『틸 오일렌슈피겔』(1927)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 민족의 도의적인 분기를 일깨웠으며, 서정시집으로 『오색서』(1888) 등을 남겼다. 하우프트만은 자연주의에서 출발하였으며, 그 완성자인 동시에 그 초극자이기도 하다. 그는 독일문학에 공통된 관념적인 묘사를 피하고 하층민에서 영웅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인간과 생의 고뇌 그 자체를 사실적이면서도 구상적으로 부각시킨 점에서 독일로서는 독자적인 작가였다. 191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기독광』과 『소아나의 이교도』는 박찬기 번역으로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되었다.


역자 : 이관우


공주사범대학 독어교육과와 고려대학교대학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인츠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연구했으며, 독일 뮌헨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공주대학교 독어독문학과 학과장, 신문방송사 주간, 언어교육원장, 평생교육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공주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독일 단화의 이론과 실제』, 『독일문화의 이해』,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삶과 문학』, 『ARD 방송독일어』, 『독일의 역사와 문화』, 『시사독일어』, 『문학 속의 삶』, 번역서로는 『인류사를 이끈 운명의 순간들』(슈테판 츠바이크), 『붉은 고양이』(루이제 린저 외), 『괴테 자서전』(괴테), 『압록강은 흐른다』(이미륵), 『윤무』(아르투어 슈니츨러), 『톨레도의 유대여인』(프란츠 그릴파르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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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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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태양의 저주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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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6년. 지구 평균 기온 50도. 지구에서의 생존을 위한 인간들의 처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기후 재앙이 닥쳐 왔다. 세상은 지구 재앙이 현실로 닥쳐 마지막 상황에 이른 듯하다. 침묵만이 지구를 감싸고 있다. 마지막 남은 인간들은 태양의 저주를 피하려는 듯 지하로 숨어들었다. 이미 폐허가 된 2056년 지구의 처참한 모습에 독자들은 첫 페이지부터 디스토피아와 맞닥뜨린다. 이 소설 작품 『붉은 태양의 저주』는 기후 재앙에 노출돼 폐허화된 지구에서 얼마 남지 않은 인간들의 처절한 사투가 그려진다. 저자 김정금은 숨 막히는 살아남으려는 본성만 남은 인간 심리의 깊숙한 곳으로 시선을 들이댄다. 아직 한 가닥 남은 이성의 한쪽 끝을 잡고 절규하듯 살 만한 곳을 찾는 사람들의 인내심이나 투지도 서서히 꺼져가는 느낌이다.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지속되는 한반도 서울 한복판에는 좀비 바이러스까지 창궐한다. 지구에는 더 이상 쉴 곳도, 살 곳도 없다. 표제어대로 '태양의 저주'를 받은 인간들은 지하로 숨어들어 마지막 생존을 확인하는 숨을 깔딱이는 모습이다. 사람은커녕 식물도 살 수 없는 최후의 상황에서 인류애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할 상황이다. 이 끔찍한 상황은 예고된 지 수십 년을 논쟁만 하다 허송세월 한 인간에게 태양은 저주라도 내리듯 뜨겁게 지구를 달구고 있다. 

이미 봉쇄된 도시, 좀비떼로 가득 찬 서울, 그리고 절망에 휩싸인 사람들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섬뜩한 현실감을 준다.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재난 영화를 보는 듯한 긴박감 넘치는 서스펜스는 책장을 넘기는 손마저 멈추게 할 것 같다. SF 공포 소설 같은 현실감이 느껴질 정도로 저자 김정금은 노련한 표현력을 더해 가며 독자들의 손길을 붙잡는다. 이미 전작 『은하수의 저주』(판타지 로맨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범죄 미스터리), 『고잉홈』(역사 판타지) 등을 펴낸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SF 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오히려 작품 세계를 넓혀가면서 표현력도 확장된 느낌을 준다. 이번 작품은 기후 재앙과 좀비가 활보하는 한반도 서울의 근미래를 그리고 있다.
AI 개발자인 박기범은 뇌에 AI 칩을 삽입하는 수술을 하고 한 달만에 눈을 떴다. 그사이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11월 14일인데도 기온 50도의 서울, 이상기후로 발생한 기후 난민들,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버린 아내 영희, 봉쇄된 아파트, 기범이 사는 스마트 아파트 밖은 이미 고온건조해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 있다. 사람 뇌에 침투해 뇌 기능을 변형시켜 좀비를 만드는 바이러스도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이미 감염된 좀비들로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가득 찼고, 남은 사람은 봉쇄된 아파트 주민 몇몇 뿐. 그때 느닷없이 기범의 집에 방문한 아파트 보안 요원은 알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진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영희가 아닌 처음 보는 남자였다. 남자는 나를 보자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누, 누군데 남의 집에 마음대로, 아니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고 들어온 거예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명색이 첨단 보안 시스템 아파트인데 낯선 남자가 무단으로 침입하다니, 보안요원들은 대체 뭣들 하는 거지.

"아,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살아계셨군요."

남자가 턱을 문지르며 집안을 둘러봤다.

"살, 살아있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죽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뭐지, 눈이 부리부리한 이 남자는? 윤 박사가 보낸 사람인가. 

"아, 그게 저는 아파트 보안팀 직원입니다."(p.19)

책에 따르면 2036년 90억 명이었던 세계 인구가 불과 20년 만에 45억 명으로 줄었다. 절반 수준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망자 수가 전 세계 출생아 수를 빠르게 앞지르고 있다. 이제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이다. 어디서 기원한 바이러스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영구동토층이 녹은 곳에서 유출된, 수만 년 전에 묻힌 고대 바이러스와 병원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각 나라에서 모인 대표들이 UN에서 세계보건기구 회의에 참석했다. 한 참석자는 난민들에 의해 퍼져나간 바이러스가 유력하다고 주장한다. 일본 환경성 대신의 말도 나온다. "당장 내 나라 국민이 식량부족으로 죽어 나가는 와중에 난민까지 수용하는 바람에 많은 나라가 더는 버텨낼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임계점에 도달했다고요."

회의장은 각 나라별로 자국의 상황을 설명하며 바이러스의 출처를 밝혀야 할 자리에서 자국의 상황이 나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뾰족한 대안도 없고, 바이러스 원인은 안개속으로 묻혀간다. 이때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 눈썹을 들썩이며 발언한다. 

"미국이나 한국 등 기후 위기에 대응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여력이 있는 나라들은 해변도시 이주민을 자국의 타도시로 이주시켰지만, 많은 개발도상국은 이주민을 감당해 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선진국이 이들 개발도상국을 도와 난민을 수용해야 합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이 조금은 건설적인 발언을 하지만 사실 알맹이는 없는, 현상 설명에 불과하다.

"인류는 지금껏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며 지구 생태계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지금 지구에 닥친 재앙은 인류가 지구 생태계를 파괴한 대가입니다. 생태계를 파괴하며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킨 것도 모자라 이젠 우리, 인간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하지만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인류는 모두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극복하리라 믿습니다."(p.18)

AI 개발자 기범은 극한 상황 속에서 우연히 결성된 아파트 주민들과 부산으로 향하는 탈출을 감행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 희생, 연대 그리고 잔혹함까지 다채로운 인간 본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2056년 지구의 근미래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과학기술이나 바이러스 대책 등은 지금에서 뚜렷하게 발전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상태지만 행성 기지 건설도 아직 이루지 못했고, 그렇다고 기후 재앙을 줄이지도 못하는 등 진전을 보여주지 못해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다행스럽게 한국이나 미국 등 일부 국가만이 나름대로 꾸준한 노력으로 일시 대책을 실시하지만 그렇다고 몰려드는 이주민에는 별 대책이 없이 최선을 다해 막는 데 오히려 주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서 좀비들이 설치고 다녀도 막을 수도 없고, 이들을 모두 없앨 수도 없다. 모든 무력은 필요가 없고 또 사용해봐야 자신들에게 되돌아오는 많은 부담을 나서서 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개인별로 고도로 발달한 AI 등 일부 과학기술이 집약된 첨단 아파트 안에 칩거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미 2020년 대 사용했던 방법의 연장일 뿐이다.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선 순간,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통유리창으로 들어온 햇살에 새하얀 바닥 타일이 반짝였다. 현기증이 일었다. 잠시 후, 슬며시 눈을 떠보니 텅 빈 거실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거실과 마주한 주방으로 가서 컵에 물을 가득 따른 다음 거실 창가로 다가갔다. 폭설이 내린 것처럼 하나같이 새하얀 타일을 붙인 100층 넘는 아파트와 빌딩이 뜨거운 태양을 조금이나마 막아주었다. 그나저나 이상하다.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었다.(p.11)

난민을 막아내기 위해 소집된 대한민국의 국무회의에서는 이미 일어난 난민의 유입을 막지 못한 자책성 발언만 난무할 뿐 특별한 대책이 없이 공전한다. 국민안전처 장관이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하늘길과 바닷길만 막았어도 불법 입국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가정 하에 왜 난민 입국을 허용했느냐는 추궁에 국방부 장관의 "···우리도 언젠가는 난민이 될 테니까요."란 자조 섞인 푸념이 이어진다. 회의장인 상황실에는 다시금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회의를 주재하던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을 향해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완전 붕괴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질병관리청장의 발언이 이어지고 혼잣말처럼 되뇌인다. "하··· 대한민국이 지도에서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이 작품은 소설이지만 4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뜨거운 세상」, 2장 「출발 혹은 탈출」, 3장 「혼자가 아닌 함께」, 4장 「떠날 수 있을까?」 등이다. 2024년 현재를 기준으로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소설은 시작되지만 여전히 한반도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다. 미국은 자국민의 안전을 고려해 미군을 철수할 계획임을 알려온다. 2056년 북한은 인민들이 세계 문화를 접하면서 비밀리에 민주당을 설립하려고 하는 등 체제 전복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을 때여서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은 이를 반대하는 강력한 항의를 미국 국방장관에게 전한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의 상황에서 한국의 형편을 봐줄 처지가 되지 못한다고 거절한다. 양국의 정상과 안보 관계자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미군 철수 계획을 논의한다. 체제를 지키려는 세력이 주축이 된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위협이 존재하는 한 미군 철수를 찬성할 수 없는 한국과 미군 철수를 통보하고 사후 일을 협의하려는 미국 측의 만남은 협의할 내용이 이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형식상 만남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한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미 국방장관은 미국의 입장만을 간단하게 설명할 뿐이다. 

"···한국이 미군의 도움 없이는 자국을 지킬 수도, 존립할 수도 없을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라면, 오랜 동맹 관계를 고려해 미국 입국을 허가해 드리겠습니다. 이게 미국이 한국을 도울 유일한 방법입니다."(p.65~66) 

대한민국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미군 철수 계획을 돌려 세우려 했으나 이미 결정된 미국의 방침을 바꿀 힘은 없었다. 앞으로 상황은 더욱 세계의 상황이 악화될 것을 우려한 미국은 자국 안보상 조금도 물러설 뜻이 없었다. 어쩌면 그들 말대로 '내 코가 석 자'인 형국일지도 모른다. 미국 입국은 허가해 주겠다고 한 말은 마지막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말에 미국 대통령은 단호하게 한마디를 남긴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출생률 감소를 우려했던 우리의 경고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무너질 위험에 처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의 결심에 따라 서울의 사정이 계속 악화되거나 이를 노린 북한이 전쟁을 일으켜 쳐들어 온다면 막아낼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여전히 북한은 핵을 가진 나라이고, 대한민국은 미국의 핵우산에서 빠져야 할 상황이라면 서로 완전이 파괴하면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지속하다 결국 동시에 무너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 이런 사실은 모르지만 박기범은 아내가 미국으로 이미 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자신이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며 준비를 하고 있는 차에 보안요원이 찾아온다. 여행용 가방 등 준비하는 모습을 본 보안요원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디 가느냐는 질문과 함께 그는 갑자기 아내의 거처를 묻는다. "미국에 있습니다." 남의 사생활까지 캐묻는 듯한 주제 넘은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다음의 답변은 생략한다. 갑자기 보안요원은 뜬금없는 제안을 한다. "잘 됐네요. 저도 같이 갑시다." "네? 뭐, 뭐라고요? 제 아내에게 같이 가자고요?" "아뇨, 미국까지 함께 갑시다." "괜찮습니다. 저는 혼자가 편해서요. 미국에 가실 일이 있다면 잘 다녀오십시오."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보안요원은 쉽게 단념하지 않는다. 

갑자기 보안요원은 박기범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함께 가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아뇨, 저는 혼자 가겠습니다." 기범도 보안요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고집이 세시군요. 박사님으로 인해 아파트 입주민들이 위험에 처했습니다. 박사님이 주차장 문을 여는 바람에 좀비들이 아파트를 점령했다고요. 감시카메라로 지켜보다 셔터를 내리긴 했지만, 일부 좀비들이 빈집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그 후로 주민 오십여 명이 사망하셨고요."

이젠 협박이다. 무엇 때문에 함께 갈 것을 요구하는지 모르지만 내키지 않은 제안을 하다 먹히지 않자 이젠 협박으로 작전을 바꾼 셈일다. 불쾌하지만 결정해야 했다. 더욱이 현실적 약점을 파고들어오는 보안요원은 왜 기범과 동행하려는지 이유를 모르고서야 함께 가기에는 미심쩍고 내키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서 1장은 막을 내린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2056년 11월 26일로 돼 있다. 약 열이틀 간 벌어지는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소설 소재로 삼았다. 기후재앙과 좀비, 바이러스와 북한의 위협 등이 한데 묶여 흐트러질 뻔한 분위기를 저자 김정금은 한 곳으로 몰리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을 발휘한다. 독자들은 읽어가면서 차츰 느낄 수 있다. 스포를 염려해 사건의 흐름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 점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저자 : 김정금


어릴 적부터 소설가를 꿈꿔왔지만, 삶에 쫓겨 꿈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 속에서도 가슴속엔 언젠가 이룰 꿈을 품고 살았고, 그 꿈을 2021년 소설 『고잉홈』 출간으로 이뤘다. 그 후로 『은하수의 저주(드라마 계약 체결)』,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영화 계약 체결)』를 연이어 출간했다. 앞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로 세상과 함께할 것이다.

인스타그램 주소 @j_gold_writer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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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포기하라 - 힘들고 지쳐가는 나를 지키는 무행복의 역설
오영철 지음 / 새빛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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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후 가장 많이 쓰고 말한 단어는 무엇일까? 아마 '사랑'과 '행복'이 아닐까 싶다. 특히 서양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생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규정한 이래로 행복은 그야말로 인류가 추구한 삶의 최고의 가치가 아니었나 싶다. 누구도 직접 헤아려 본 적은 없지만 누구나 똑같은 최고 가치로 답변할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 행복이란 개념의 범주에도 시대에 따라 다르다. 건강을 포함할 수도 있고, 지적 충족을 함유하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돈, 권력, 성(性), 가족 등 다양한 개념이 늘 행복의 범주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인간이 추구한 행복은 수천 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고,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행복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공동 목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강한 나라의 사람들은 행복할 것 같고,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의 국민들은 행복을 느끼기 힘들다고 생각하기 쉽다. 과연 그럴까? 20세기 가장 불행한 나라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는 21세기인 현재 행복할까? 경제지표 상으로는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사람들은 도리어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대한민국 사람들은 말한다. 한마디로 에전에 비해 큰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경제적 부가 행복과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한 단면을 보여주는 증표일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2030 세대는 이미 '삼포세대'로 전락했다고 항변한다.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을 4060 세대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2030 세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국가별 행복지수도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가난한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행복지수가 더 높다. 

이 책 『행복을 포기하라』는 표제어의 단어처럼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해도 관계없다. 저자 오영철은 「삶의 무게를 좀 가볍게 하면 어떨까요?」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행복에 대한 강박증을 놓아버리고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행복이란 개념은 현대 사회에서도 삶의 최고 가치로 삼기 때문에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사람마저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처지를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자책하고 있다. 이로 인해 무엇이 더 나아져야 할지를 따져 묻지 않고 자신을 불행한 처지로 거리낌없이 말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세상 한 켠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거의 맹목적으로 집착했던 사람들이 거기에서 벗어나 삶의 만족감을 높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생이 고해라는 도그마를 거부하고, 삶을 하나의 게임으로 해석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들은 쫒기듯이 행복을 추구하는 대신 게임을 하듯이 산다고 말한다. 삶의 과정도 즐기고 그 결과도 즐기는 새로운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고 저자는 안내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산전수전 J'의 스토리도 그런 사례 중의 하나라고 강조한다.

"행복을 포기하라."

산전수전 J가 했던 이 말은 '무행복의 역설'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정반합이라는 말이다. 인생이 고해라는 정에 반발해 행복추구란 반이 나왔다면, 무행복의 역설은 제3의 결론인 합에 해당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무행복의 역설을 수용한 사람들은 더 이상 답답한 상식이나 묵직한 도그마에 구속되지 않는다. 이들은 색다른 방법론도 가볍게 받아들여 놀라운 결과들을 비교적 쉽게 이뤄낸다. 어떤 사람은 병원에서 포기한 말기암에서 예상치 않게 회복됐다고도 밝힌다. 또 어떤 사람은 경제적 자유를 얻거나 마음의 불안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저자가 말한 대로 행복을 포기하면 뭐가 좋을까? 무행복의 역설은 과연 어떤 효과가 있을까? 무엇보다 행복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심신이 가벼워진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무거운 짐을 놓아버리듯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그러면 역설적으로 불행들이 도리어 내게서 사라진다. 행복을 포기하면 불행 역시 없어지는 게 상대성 세상의 철칙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너무나 오랫동안 행복이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살아왔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규정한 이후에 다들 행복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변을 보면 지속적으로 행복한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며 자신을 들들 볶고 있다. 그에 따른 부작용은 저마다의 소중한 삶을 사정없이 망치고 있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도 비슷한 내용의 사례가 나와 있다. 코카콜라 전 회장 더글라스 대프트는 “인생을 일, 가족, 건강, 친구, 영혼 등 5개의 공을 던지고 받아야 하는 저글링으로 가정해 보자”고 말하며, "이 중 하나라도 떨어뜨린다면 상처 입고 깨져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마 행복을 위한 다섯 개의 공 중 일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가 실은 더 지키기 어려우며 위태로운 것임을 강조한 것 같다고 출판사 측은 지적한다. 다행히 사람의 마음은 납득만 하면 비교적 쉽게 변할 수 있다. 이 책 『행복을 포기하라』는 어렵거나 현학적이지 않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조곤조곤 들려주며 행복론에 치우쳤던 마음을 조금씩 유연하게 풀어준다. 부담 없이 쉽게 읽히지만, 읽고 나면 공감하게 되는 그 무엇이 있다. 쉽고 누구나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것, 이것이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이 책의 집필 취지나 기술 방법도 쉽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듯이 행복을 닮은 게 아닐까?

저자는 『행복을 포기하라』가 그냥 일독을 권하는 그런 책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넌지시 일러둔다. 행복에 관해 학문적이거나 어렵게 쓴다는 것은 행복에 다가가려면 그 방법을 알려다 삶을 다 보내게 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진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행복을 위해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불합리한 자기 자신은 물론 아끼고 사랑하는 그 누군가에게 딱 꼬집어 방법론을 알려주는 게 왠지 막막할 때, 이 책을 자신의 대리인처럼 슬쩍 전해주기를 희망한다. 그렇게만 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윈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조심스레 자신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 오영철은 30여 년 동안 KBS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많은 군상의 흥망성쇠를 관찰했다. 퇴직 즈음에는 KBS인재개발원 교수로 공사 안팎에서 여러 교육을 주도하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잘 나가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번아웃에 따른 내면의 갈등이 심해 긴 세월 직장생활과 마음공부를 병행했다고 전한다. 이 여정의 결론을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 바로 이 책 『행복을 포기하라』라고 밝힌다. 저자는 이 책의 집필 목적을 "행복을 좇으면서 자신을 더 힘들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행복을 좇는 것은 무지개를 쫓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행복을 포기하라는 다소 자극적인 주제의 책을 출간하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도 있었다”며 “지쳐가고 힘든 분들에게 이 책이 조그마한 자극과 힘이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인생 실전에서 중요한 건 이론이 아니라 내실 아닐까?”라는 주장도 한다. “삶의 무게를 더 무겁게 만드는 도그마에는 이제 반론을 제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눈앞에 이런 갈림길이 나타났다면 누구라도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 선택의 순간에는 먼저 시행착오를 겪었던 사람들의 기승전결이 요긴한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이정표를 보면서 자신의 시행착오를 줄이면 줄일수록, 삶의 무게는 그만큼 더 가벼워질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지만, 사람의 한평생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저자는 이런 세상에 책 속에 소개된 산전수전 J가 던진 메시지가 상당한 울림이 있다. 그건 산전수전 J가 자신에게 해준 말이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산전수전 J의 메시지에 마음으로 공감했기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J처럼 따뜻하게 이 책에서 이야기했을까? 그 점에 대해선 왠지 자신이 없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따뜻하지 않게 들린 부분이 있다면, 일장훈시나 지적질처럼 느껴진 부분이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저자의 내공 부족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산전수전 J의 진심은 가급적 최대치에 가깝게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자신의 반평생을 통해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체득한 그의 철학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을 갈망하면서도 도리어 불행으로 빠져드는 건 슬픈 아이러니이다. 차라리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불행을 막아준다면 그 역설은 소중한 내비게이션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내면에 이런 도구만 잘 장착하면 미로처럼 복잡한 인생길에서 헷갈리지 않고 여유롭게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게 인생 100킬로 행군“이라며 ”이 책이 그 장도에 오른 모든 이들에게 아주 조그마한 힘과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행복증후군의 희생자들〉, 2장 〈무지개 소년2의 허망한 착각〉, 3장 〈문제를 기회로 바꾸는 기술〉, 4장 〈무행복의 역설〉, 5장 〈10년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등이다. 각 장에는 8~10개 소항목으로 각 장의 주제를 뒷받침한다. 행복을 규정하는 모든 현학적인 말이나 철학적 사유의 결과 등에 치우치지 않고 지극히 현실적인 사례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컨대 5장 두 번째 소항목 「무소유를 넘어 무행복으로」에서 저자는 "무행복 컨셉은 무소유보다 더 진일보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행복하지 말고 불행해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적절한 수준의 행복에서 '만족'하라는 말이다. 불행하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의미이다. 요즘 핫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다. 외부에서 무소유를 실천한 사람들은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삶의 만족감이 도리어 높아졌다고 말한다. 내면에서 무행복을 수용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라고 저자는 질문한다. 

책에 따르면 JYP 대표 겸 가수인 박진영은 20대 시절 20억을 벌어 성공하는 게 꿈이었다. 요즘 시세로 치면 50억 정도 되는 금액이다. 그 돈을 벌어 은행에 넣으면 이자를 받아 평생 돈 걱정 없이 잘 살 것 같았다. 그는 엔터테인먼트 히사 JYP를 차려 일찌감치 20억 목표를 달성했을 땐 너무나 기뻤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쁨은 허무로 바뀌었다. 다시 다른 부자들의 코칭을 참조해 명예를 추구하고 그것도 얻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결국 존경받는 삶을 인생의 목표로 세운 뒤에야 마침내 단순하고 평온하게 살게 됐다고 말한다.

다들 인생이 목적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면, 행복해야 한다고 자신을 들들 볶는다면 이게 과연 맞는 걸까요? 70억이 넘는 지구상의 인구 가운데 지속적으로 행복했던 사람은 단 1명도 없는데도 행복이 정말 인생의 목적일까요? 이런 점만 관찰해도 이른바 행복론은 내면의 천동설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그걸 부정하면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중형을 선고받는 게 두려워 다들 행복론을 지지하는 척할 뿐입니다.(p.159~160)


이 책의 마지막 부록에는 행복론의 변천사를 소개하고 있다. ① 고대 행복론 어록 ② 중세 행복론 어록 ③ 근대 행복론 어록 ④ 20세기 행복론 어록 ⑤ 21세기 행복론 어록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는 저자가 독자에게 드리는 덤이기도 하다. 남들이 넘겨준 원석들에서 불순물을 잘 제거하면 자신만의 반짝이는 보석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예상하고, 독자들에게 읽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자신만의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은 실로 다양합니다. 고대에선 행복을 인생의 절대적인 목적인 것처럼 말했다면, 현대로 넘어올수록 행복은 원래부터 내 안에 갖춰져 있는 것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는 수많은 관점들 사이에서도 공통분모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이란 시간은 모든 것들을 받아들여 하나로 융합시키는 거대한 바다 같습니다.(p.214~215)


저자 : 오영철


KBS 기자로 입사해 데스크를 거치고 법무실장, 보도심의위원 등을 역임했다. 방송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또 중년부터 마음공부에 입문해 동서양의 여러 수련법을 직접 섭렵하면서 사람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했다. 이 시기의 내면취재 결과를 정리해 〈2막의 멘탈〉을 출간했다.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고대 법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및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교육의 가치를 중시해 고려대 언론대학원에서 겸직으로 다년간 미디어법 등을 강의했다. KBS를 정년퇴직한 이후에는 심리상담사(1급), 인성지도사(1급) 민간자격증을 취득하고 사람의 내면에 대한 연구와 저술, 상담과 강연 등에 주력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급부상한 4차산업 시대에 맞게 사람만이 가진 마음의 가치를 제대로 부각시키고, 마음활용법을 일상의 요긴한 도구로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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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 내일의 고전
김갑용 지음 / 소전서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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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제어 냉담(apathy)은 영어 사전적 풀이로는 '무관심'을 뜻한다. 국어 사전에는 ① 태도나 마음씨가 동정심 없이 차가움. ② 어떤 대상에 흥미나 관심을 보이지 않음. 으로 풀이돼 있다.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생활에서 "차갑고 냉담한 태도를 드러내다"는 사례로 쓸 수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감정의 부재를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냉담한 사람은 즐거움도 불쾌함도 경험하지 않는다. 냉담한 상태는 긴장이나 성마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권태와는 다르다. 냉담은 종종 정동 결핍이 심하고 오래 지속되거나 스트레스가 아주 심할 때 나타나는 최종적인 결과로 간주된다. 이것은 견딜 수 없는 유기(abandonment)의 감정이나 특히 전시(戰時)에 전멸의 위협에 대한 방어적 몸부림의 결과로 나타난다. 냉담한 개인은 대상 세계를 “포기”하는 분열성 성격으로 가정되기도 하지만, 분석작업에서는 무의식적 애착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이 사실은 방어적으로 부인되거나 부정된다.고 정신분석용어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이 책 『냉담』은 동정심과 죄의식 그리고 감정의 표현이 쇠약해진 한 남자가 거리에서 불명의 여자를 갑작스레 만나면서 벌어지는 내외부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려 분투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밀도 있는 문장과 다양한 소설 기법으로 나타내고 있다. 진실을 찾아가는 자신의 운명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알아채는 주인공의 모습은, 냉담하고 속물적인 공동체 안에서 삶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보기'가 된다. 저자 김갑용은 이 작품에서 지금까지 벼려 온 사고의 폭과 깊이를 발휘해 자신의 소설 경력 중 현재에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쓴 뒤,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려 한다. 

저자는 이 작품 뒷 부분에 「도래한 미래」라는 제목의 〈부록〉을 썼다. 이 글은 24페이지에 달한다. 〈작품 후기〉나 〈작가의 말〉로 보기에는 길다. 내용은 자작 해설로 추정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작품 구상 전후의 과정 및 작품 해설'로 기능하도록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자신의 '소설 쓰기'에 대한 배경과 취지에 대해 설명도 겸한다. 이 소설 작품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시작할 무렵, 거리에서 한 여자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한 남자의 내외부의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설을 쓰지 못하는 남자는 그에게 끝까지 필요한 영감을 주는 '그녀'를 절대적으로 쫓는다. 이 소설은 작가와 소설 그리고 배경이 되는 도서관이 가진 이미지의 일탈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이상한 쾌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출간 후 예스24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나타난 저자 김갑용의 답변을 중심으로 작품 해석의 몇 가지 단초를 찾을 수 있다. "2015년의 전염병 시기에 나는 오갈 데 없는 대학생이었다. 대학교 인근 지역의 감염자 발생으로 내려진 휴교령 때문에 텅 빈 캠퍼스 건물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숨어 지낸 적이 있었다. 그 며칠 동안 몹시 피폐해졌고 몇몇 극단적인 상상을 했다. 많은 사람이 전염병에 걸리고, 개인이 다수에게 쫓기고, 유폐되고, 격리 시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상상이다. 『냉담』의 구상 초안은 2019년에 거의 마무리되었다. 당연히 2020년의 전염병 시기는 반영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2020년에 이르러 지난 상상보다 더한 현실이 엄습하면서, 내가 쓰고자 했던 내용의 배경이 더는 현재 지점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전염병이 끝나더라도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마스크를 다시 벗게 되더라도 우리는 앞으로 마스크의 영향 아래서 살 일만 남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내 소설에 마스크를 씌워야만 했다."

그의 말대로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전염병이 심화되는 시기, 남자는 거리에서 만난 그녀와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는 언젠가 그녀와의 여행을 위해, 마스크를 쓴 날 사람들 사이에서 전쟁 같은 출퇴근을 견디고, 회사에서는 마스크 위에 떠오르는 동료들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견딘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가 사라진다. 더 이상 집에 들어갈 수 없게 된 남자는 밤엔 거리를 배회하고, 새벽엔 직장 건물 층계참에서 잠을 잔다. 그렇게 CCTV가 추적하지 못한 사각지대 속의 남자는 역학 조사관에게 지독한 추궁을 당하고, 행방불명되어 어느새 '사라진 고리'가 된 그녀를 결국 찾지 못한 채, 격리된다. 그의 머릿속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을 즈음, 남자는 한 도서관에 취직한다. 그런데 새롭고 낯선 그곳에서 남자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관내의 노동자들이 '그녀'라고 부르는 존재를 마주한 것이다. 그곳의 그녀는 거대했고, 중심에 있었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봐요, 어르신. 사람을 찾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 봐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은 말 한마디마다 싹싹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내 어깨를 두드리기까지 했다. 자기가 이 바닥을 잘 안다며, 그녀를 찾으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인은 내가 그녀에게 지불한 액수를 상기하기를 권했다. 아! 마침 내게는 탕진할 돈이 있었다. 인근의 편의점 ATM 기기에서 두어 번에 걸쳐 최대한도로 현금을 인출해 노인에게 건넸다. 빗방울이 툭툭 떨어졌다."(p.93)

소설 속에는 '소설이 사라진 미래의 마지막 도서관'이 나온다. 이 도서관은 『냉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저자가 상상해 왔던, 그러니까 저자의 머릿속 '바벨의 도서관' 같은 공간이었다. 저자는 미셸 푸코를 인용한다. 푸코는 "도서관이 헤테로피아(Heterotopia)적인 속성을 지닌다"고 말한 적 있다. "모든 시간, 모든 시대, 모든 형태와 모든 취향을 하나의 장소 안에 가두어 놓으려는 의지, 마치 이 공간 자체는 확실히 시간 바깥에 있을 수 있다는 듯 모든 시간의 공간을 구축하려는 발상"이 근대에 이르러 도서관에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냉담』의 '이곳 도서관'은 도서관의 이러한 속성이 노골적으로 불거진 공간이다. 먼 미래가 왜 내게 멀게 느껴지느냐면, 소설이 더는 쓰이지 않을 무렵이라는, 곧 도래할 테지만 현재의 내가 체감하기 힘든 전제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모든 소설이 도서관에 갇혀 있을 것이다. 도서관은 그야말로 소설의 공동묘지가 된다. 그렇게 소설이 옛 유물 신세로 전락한다면, 더는 쓰이지 않게 된 그 연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소설이라는 장르의 마지막을 상상하며 소설을 쓴다. 사람이 평생 죽음을 전제하며 살 듯이.

그에게 이곳 도서관은 새롭고 낯설었다. 더는 기시감이 없었다. 여느 도서관과는 달리 공공을 위하지 않고 한 개인만을 위하고 반영한 장소라는 특이적 정체성이 전염병으로 인한 무기한 휴관에 힘입어 여실히 드러났다. 내부가 한 사람의 의지와 의도만으로 축조된 공간으로 여겨지는 점을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사용이 아니라 보이기 위한 공간임을 이곳 도서관 사람들은 아주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보안 요원들은 도서관을 지키려고 이곳에 왔다기보다는 내부에서 벌어지는 무엇을 가리기 위해서 역할극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내부 구성원이 이곳에 도사리는 무엇을 숨긴다고 확실히 판단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 공간과 구성원들이 이면 없이 얄팍해 보인다는 것이었다.(p.171~172)

1부와 2부, 그리고 그사이와 뒤에 붙은 두 짧은 소설 속에서까지 '그녀'를 변주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 정체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켜 뒷모습만 남기고 사라지는 그녀를 끝까지 따라가게 한다. 그녀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촘촘히 구성된 세계, 즉 꿈속의 꿈, 소설 속의 소설로 중첩되고 이어진 복잡다기한 세계는 자신의 존재 의미와 진정한 진실을 찾아나서는 한 인간의 운명, 즉 영육의 죽음 위에 포개진다. 남자는 선(善)과 진정성이 결여된, 어쩔 수 없이 관습적이고 속물적인 공동체를 태생적으로 견딜 수 없다.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제도화된 가식의 세계에서 인간은 진심을 다하지 않는다. 수많은 예식과 인사치레가 불가피한 그곳에는 본능적으로 냉담이 깃들어 있다. 그들은 무관심하고, 동정심을 잃어버리고, 죄의식을 회피하고, 감정을 숨겨 자신을 보호한다. 남자는 그곳에서 빠져나와 진정성의 보증자가 되고자 한다.

남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끊임없이 진실을 찾으려는 '소설가'이다. 하지만 진실이 입 밖으로 새어나와 공기 중에 노출된 순간 그것은, 진실한 진실이 될 수 없다. 그때부터 가짜 진실을 감추기 위한 연기와 가면이 생성된다. 남자는 자신의 소설에 진실을 담을 수 없음에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한다. 진정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공동체'에 속한 다수의 사람들이 비밀하게 느끼지만 절대 드러내지 않는 그 부끄러움을, 남자는 그들의 몫까지 대신하여 느낀다.

소설가인 남자는 진실의 추구가 실패할 것임을 예감하면서도,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는 죄의식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이는 독자 앞에서 결백하고자 하고, 자신의 문학에게도 당당한 주인이 되고자 하는 소설가의 운명이다. 진정한 소설 쓰기는 결국 자신을 소각해 버림으로써 예술이 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결국 『냉담』의 작가는 남자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생존하기 위해 냉담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우리는 이 속물성을 벗어날 수 없다고, 어차피 삶의 끝은 죽음이라고 냉소하는 이 시대에 『냉담』은 이 익명의 남자를 '보기'로 보여 준다. 우리는 소설로서 이 냉담한 시기를 견뎌낼 수 있을까? 이 시대의 필연적인 숙명인 냉담의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냉담』을 통해 던지는 작가의 질문은 그것이 아닐까.

앞서 언급한 〈부록〉 「도래한 미래」의 서두는 "내가 의무 교육을 받던 새천년 전후 무렵에는 첨단 정보 통신 기술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토막글이 교과서나 여타 간행물에 흔했다. 분명 지면에 따라 글쓴이도 제각각 달랐을 텐데, 근미래를 사는 가상 인물의 하루로 첫 문단을 시작하는 점이나 주제, 논조, 미래상이 엇비슷해 나는 마치 한 사람 글을 반복하여 읽은 듯 하나의 인상만을 선명히 기억한다. 특히 첫 문단에 등장하는 가상 인물에 관해서는 굳이 옛날 지면을 뒤적이지 않아도 특유의 전형성을 깬다고 자신한다. 추측컨대 가상 인물은 이삼십 대 연령 중산층 독신이고 화이트칼라다. 이름은 저마다 달라도 당시 기준으로 세련되고 도회적인 인상을 주려다 보니 작위적인 느낌이 역력하다."(p.294)

저자는 지금 자신이 당시(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던 시기-이 글을 쓰고 마치던 시기)에 예견한 근미래 부근을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당시 첨단이던 정보 통신 기술들은 대부분 상용화되었고 핸드폰 없이는 제때 출근도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토막글 속 가상의 그처럼 사는 건 아니다. 그는 자기 육신 무게를 모르는 듯 생활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무게를 압도적으로 느낀다. 미래에는 없고 현재에 있는 나라는 육체, 그러니까 실체 말이다. 저자는 가상의 그 같은 윤택한 생활을 원한다는 사실은 당연하다고 밝힌다. 깡마른 육체를 중력으로 지탱하는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지긋지긋하다. 동시에 내가 짊어질 게 없다진다는 가능성에도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한창 유행했을 무렵, 머지않아 가상이 현실을 대체하리라는 매체들의 호들갑에 저자는 두려움을 넘어 숨 막힘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어릴 적 죽음을 떠올렸을 때 '나'라는 실체가 사라진다는 예감에 형용할 길 없이 막막했듯이.

저자의 비유는 극단적이기는커녕 지극히 걸맞다. 첨단 과학의 미래가 얼마나 빨리 다가오든 간에, 거기에 저자는 없다고 단정한다. 마치 죽음 뒤에 아무도 없듯이 도래한 미래에 '나'는 없을 것이다. 나의 현재가 지난날들의 미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앞 문장을 쓸 때 나는 건넛방에서 잠든 동거인이 기침하는 메마른 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근 몇 년간 동거인은 기침을 멈추지 못하였다. 이런 내용을 기술하는 저자는, 과거의 근미래에 해당하는 지금과는 다른 자아를 말하는 것 같다.

저자의 말 중에는 결정적 추인이 따른다. "여기 쓰인 동거인은 실제라기보다는 당시 내가 사로잡혔던, 동거인을 바라보는 관점이다."(p.312) 이 소설의 구성에 대해 앞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이 작품은 특이한 구성을 갖고 있다. 오롯이 한 권의 장편 소설이지만 마치 단편의 연속인 듯한 느낌으로 1, 2부로 나뉜 뒤 각 부를 또 19개의 제목을 붙였다. 이와 함께 19개의 글로 파편화된 이후에 각 부의 뒷 부분에 두 개의 별도의 글 「벽의 틈새」, 「도래한 미래」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인터뷰에 실린 내용을 여기에 인용한다. 

"나는 최대한 잘게 쪼개고 싶었다. 많은 소제목을 갖기를, 각 소제목에 할당된 내용의 끝마다 매번 새로운 충격이 나타나기를, 그 어떤 소설보다 클라이맥스가 많은 형식이기를 바랐다. 여기서 쇼팽의 녹턴이 실마리가 되었다. 쇼팽의 녹턴은 정규 번호가 붙은 열아홉 곡과 그 외 두 곡으로 분류된다. 한 연주자가 쇼팽의 전집을 녹음한다면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스물한 곡을 모두 녹음하거나, 정규 번호가 부여되지 않은 두 곡을 제외한 나머지 열아홉 곡만을 녹음하는 것이다. 재밌는 발상이 떠올랐다. 만약 장편소설에 본문 외의 부속 원고가 두 편 있는데, 이 두 편은 본문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책 내에서 아무 쓸모가 없어서도 안 된다. 동시에 본문과 함께 어우러져 한 권의 책을 이뤄야 한다."

저자는, 나아가 독자는 이 한 권의 책을 어떤 식으로 구분 짓게 될까? 본문과 부속 원고 두 편을 하나의 소설로 볼까, 아니면 한 편의 장편소설과 두 편의 단편소설로 분명히 구분 지어 바라볼까? 그리함으로써 『냉담』은 열아홉 개의 소제목을 가진 본문과 부속 원고 두 편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저자 : 김갑용


빈틈없는 구성과 마음 깊은 곳을 찌르는 심중한 문장들 사이로 인간 삶의 불완전성과 무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는 소설가. 1990년 대구에서 태어나 아산에서 자랐다. 10대 때부터 장편소설을 썼고, 201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슬픈 온대」가 당선되어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소설에 담는다는 불가능성에 도전하고 절망하는 이들이 주인공인 8편의 단편 소설집 『토성의 겨울』(2022)이 첫 책이다.

『냉담』은 그의 첫 장편소설로 동정심과 죄의식 그리고 감정의 표현이 쇠약해진 한 남자가 거리에서 불명의 여자를 갑작스레 만나면서 벌어지는 내외부의 변화를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은 겉으로는 공동체를 잠식해 가는 사회에 스민 냉담성에 관한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독자는 문학에 냉담한 이 시대를 견디는 소설가의 고귀한 분투를 같이 겪게 될 것이고, 결국 자신이 찾고자 하는 진정한 가치와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과정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끝내 말하지 못하는 진실>을 해방시킴으로써 그 진실을 독자로 하여금 마주하게 한다. 그 진실은 모두에게 유익할 리 없을 것이고, 누구에게나 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두 인물을 축으로 하는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다. 『냉담』이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간 한 사람을 다루었다면, 차기작에서는 두 사람의 이야기, 즉 이원적 관계에서터 출발하여 세상과 공동체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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