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말 지식 - 29년 교열전문기자의 지적인 생활을 위한 우리말 바로잡기
노경아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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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대한민국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온갖 이미지와 영상이 범람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글을 쓰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글을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SNS, 메신저, 이메일 등으로 오히려 글을 쓰는 도구는 훨씬 늘어났다고 할 수도 있다.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가 바뀐 것이다. 특히 '어르신 세대'로 지칭되는 중년층 이상은 문맹률 0% 세대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고유의 문자도 갖고 있다. '한글'이다. 그러나 한글 반포 60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문법은 아직 완전한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글을 반포한 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맞춤법, 띄어쓰기는 물론 우리 고유어는 오히려 줄어드는 상태다.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도 불리워질 만큼 우수성을 인정받았지만 역사만큼 완전히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다. 

이는 한글 반포 이후 정부나 글을 아는 사람들은 한자를 사용한 데 따른 것이다. 한글은 외부 활동에 제약이 있는 여성, 한자를 모르는 일반 양민이나 천민 등에서만 썼기 때문이다. 반포 시점부터 우리 문자를 사용했다면 고유어 확대는 물론 우리말 문법은 확립되었을 것이다. 한글은 24자의 자모음으로 이루어져 서양의 26자에 비해서도 적다. 쉽게 익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학을 마쳐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은 아직도 틀리는 사람이 많다. 사실 우리말을 제대로 배운 것은 100년도 안 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의 말과 글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박해를 피해 〈1933년의 한글맞춤법통일안〉이 처음으로 공표됐으며, 〈1988년 한글맞춤법〉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달라진 표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분철을 하며 기본 형태를 밝혀 적는다는 대원칙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글학회나 한글학자들의 말이다. 다만 사문화된 규정이라든가 미비한 규정, 언어 변화를 따르지 못한 규정, 일관되지 못한 처리 등에 대해서는 정비를 하였고 이에 따라 표기가 달라진 예가 일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전면 개정이라기보다 보완의 성격을 띤다. 이를 테면 종결형 어미 '-오'는 '요'로 소리나더라도 '오'로 적고 연결형에서 사용되는 '-이오'는 '이요'로 적기로 하여 구별하는 정도다. 또한 '새로와, 가까와'와 같이 적던 것을 발음의 변화를 인정해 '새로워, 가까워'로 적도록 했다. 부사에 '-이'가 붙어서 다시 부사가 되는 경우 그 원형을 밝혀 적기로 하여 '더우기, 일찌기'로 적던 것을 '더욱이, 일찍이'로 적도록 했다.



이 책 『어른을 위한 말 지식』에도 언급되지만 한자어에도 사이시옷을 적던 것을 곳간·셋방·숫자·찻간·툇간·횟수(p.161) 등 6개의 한자어에만 사이시옷을 붙이고 그밖의 한자어는 사이시옷을 적지 않도록 했다. 준말에 있어 '-지-않'을 '-잖-', '-하지-않-'을 '-찮-'으로 적도록 했고 '가하다, 흔하다, 생각하건대'의 준말을 '가ㅎ다, 흔ㅎ다, 생각ㅎ건대'로 표기하던 것을 '가타, 흔타, 생각컨대'처럼 적도록 바로 잡았다. 의문을 나타내는 어미 외에는 된소리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여 -껄, -ㄹ쑤록'과 같이 적던 것을 '-ㄹ걸, -ㄹ수록'으로 적도록 했으며 '-ㄹ께'도 '-ㄹ게'로 바꾸었다. 띄어쓰기에서는 성과 이름을 띄어쓰던 것을 붙여 쓰도록 바꾸었다.

맞춤법은 그렇다 치더라도 잃어버린 고유어가 너무나 많다는 게 안타깝다. 뒤늦게 깨닫고 다시 모아 표기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언어란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기 마련이다. 즉 발전한다는 의미다. 자주 쓰이는 말은 살아남지만 쓰이지 않는 말은 사장된다. 언어의 특성이 그렇기에 우리가 써오던 말을 잊지 않으려면 모아 사전 등으로 남겨야 하는데 이미 잃어버린 우리말이 너무 많아 이젠 그 작업을 하기에는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한글학자 등의 고달픈 노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문제는 우리말 우리글 쓰기는 가능하지만 우리 말과 글의 70% 이상이 한자의 독음을 통일한 것일 뿐 원래 우리가 사용하는 고유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점이다. 한자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말 쓰기, 우리글 쓰기는 구두선에 그칠 뿐이다. 

이 책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은 문자보다 대략 그만큼 쉽게 쓰고 쉽게 틀리는 우리말을, 29년간 언론사 교열기자를 지내며 기사 속 오류를 잡아내 온 노경아 저자가 생활 속 이야기와 함께 편안하게 바로잡기 위해 집필했다. 저자는 어문 규칙이나 문법적 설명으로는 도통 익히기 어려웠던 우리말을 재미있는 어원과 생생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여 쉽게 이해되고, 고운 우리말을 만나는 기쁨도 함께하도록 집필했다고 말한다. 늘 쓰는 말 중에 헷갈리는 단어들의 구분, 잘못 쓰는 한자어의 예, 고운 우리말 소개, 사이시옷과 띄어쓰기에 대한 생각까지, 막연하고 모호했던 우리말 지식이 보다 분명해지는 즐거운 경험이 펼쳐진다.



각 장의 도입부에 마련된 쉬운 듯 어려운 맞춤법 퀴즈는 독서의 즐거움을 더한다. 우리말의 최전선에서 29년의 시간을 쏟아온 저자의 지식과 통찰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써내려간 이 책은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어른’들을 깊고 넓은 교양의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다. 디지털 문화가 발전하면서 읽고 쓰는 양은 오히려 많아졌고, 정보의 편의성과 접근성은 높아졌다. 예전에 영어 공부하듯 사전을 뒤적이며 한글 사전을 찾는 일은 이제 직접 할 필요도 없다. 한글 맞춤법에 어긋날 경우 컴퓨터가 자동으로 인식하여 빨간 밑줄로 표식해 줘 더 주의를 기울이면 오탈자를 훨씬 쉽게 줄일 수 있도록 된 시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설적이게도 깊이 있게 사유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감정을 찾는 일에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최근 언론에서 청소년이 '심심한 사과'. '사흘' 등의 단어를 모르는 심각성에 대해 수차례 보도한 사실도 있었다.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일찍이 학생의 어휘력 저하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는 반응이라는 말을 꺼낸다. 교과서의 등장하는 어휘의 상당수를 이해하지 못하여 교과서를 읽지 못하고 학업 실패를 겪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안타까운 교실 모습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생들의 어휘력 저하 문제는 더 이상 촌극으로 넘길 수 없는 사태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학생의 어휘력 부족은 학생들의 기초 학력 부진과 직결되며, 유감스럽게도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학생의 어휘력 문제를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서는 안 되며, 이제 교육적인 개입과 노력을 보여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한 한글학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요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보도 탓인지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문해력이 뒤떨어지면 사실 공부 노력의 결과가 늘 미흡하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소통도 쉽지 않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독자가 몰라서 하는 말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문해력이 부족하다면 어휘력이 부족함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어휘력은 앞서 언급한 대로 한자어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면 어휘력 신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모두 4개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어원을 알면 더 재미있는 우리말〉, 2부 〈무엇이 맞을까? 아리송한 우리말〉, 3부 〈올바르게 쓰고 싶은 우리말〉, 4부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말〉 등이다. 책의 앞 부분 〈프롤로그(들어가며)〉에서 저자는 "공기처럼 익숙한 우리말, 그 익숙함에 소중함을 잊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 역시 동영상 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독서 문화가 사라진 탓이라고 말한다. 말과 글은 편안한 만큼 바르고 품위 있게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낱말의 뜻을 바르게 알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머릿속에 단어가 풍부해 '말밭'이 기름지면 소통하고 공감하는 힘도 커진다. 적절하고 풍부한 말로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드러내면 품격은 절로 높아진다. 반대로 사용하는 언어가 비루하고 경박하다면 가방끈이 아무리 길어도 지성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 책은 고운 우리말을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말의 바른 사용을 위해 어원도 살피고 있다. 말에는 역사와 문화뿐 아니라 쓰는 이의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가 어떤 말을 쓰고 있는지 늘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잘못 높인 말은 없는지 찾아보고, 올바른 표현도 정리한다. 저자는 표제어의 '어른'은 나이를 떠나 늘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이들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1995년 경향신문 교열기자로 언론 생활을 시작, 현재 한국일보 교열팀장을 지내며, 10년 이상 우리말 칼럼을 써왔다. 교열기자는 기자와 논설위원의 글을 분석하고 맞춤법, 일본어 잔재, 부적절하거나 맥락에 안 맞는 단어, 띄어쓰기, 사실과 다른 내용 등을 바로잡는 일을 한다. “신문사에서 가장 예민하고 철저하게 우리말을 감시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베테랑 교열전문기자의 내공을 담은 이 책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은 어문 규칙이나 문법적 설명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우리말을 어원과 생생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여 쉽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다. 각 장의 도입부에는 몸풀기 훈련으로 마련한 맞춤법 퀴즈가 있다. ‘추스르다’-‘추스리다’, ‘애시당초’-‘애당초’처럼 쉬운 듯 어려운 맞춤법 퀴즈는 우리말의 섬세한 감각을 일깨운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주제별로 고운 우리말을 모아 놓은 단어장도 수록했다. 이 책이 맞춤법, 어휘력, 문해력을 모두 아우르는 우리말 지식 백과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하고 추천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말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뜻은 다른데 발음이 같거나 비슷해 헷갈리는 단어들이 꽤 있다는 점이다. “감기 얼른 낳으세요”, “한약 다려 드립니다” 같은 오류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책은 ‘졸이다-조리다’, ‘낳다-낫다’, ‘매다-메다’처럼 늘 쓰는 말인데 발음이 같아 헷갈리는 단어들의 차이를 생활 속 이야기로 알기 쉽게 구분해준다. “운동화 끈은 매고, 배낭은 메라”는 저자의 한 마디면 복잡한 맞춤법이 단숨에 정리되듯이 말이다.

또한, 말의 어원이나 우리말을 둘러싼 역사와 문화를 통해 교양과 지식을 자연스럽게 쌓을 수 있다. ‘닭개장’을 ‘닭계장’으로 잘못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복달임의 역사를 짚으면 자연스레 바로잡게 된다. 또, ‘한 끗 차이’가 화투 놀이에서 온 말임을 안다면 ‘한 끝 차이’로 쓰는 일은 없을 거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무척 심한 더위’의 줄임말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무더위’ 역시 ‘물과 더위’가 어울린 말이며 습기 없는 마른 더위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처럼 이 책은 단순히 맞춤법 안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둘러싼 지식의 범위가 확장되는 즐거운 경험의 장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말에는 쓰는 이의 마음, 한 사회의 시대정신이 깃든다. 우리가 좀더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올바른 표현에 정성과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다. 이 책은 저질 드라마, 드잡이판 정치와 토론에 ‘막장’을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나 ‘장애인’을 친근하게 표현하기 위해 통용되었던 ‘장애우’가 잘못된 표현인 이유, ‘희귀질환관리법’이라는 명칭의 불편함과 같이 무심코 쓰는 말 중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표현들을 짚어본다. 반대로, 직위와 호칭을 표현할 때 잘못 높인 예를 찾아보고, 올바른 표현으로 바로잡는다.

이밖에도 ‘묘령의 할머니’, ‘유명세를 타다’, ‘자문을 구하다’처럼 기자들도 헷갈려 잘못 쓰는 한자어를 소개하고, 말과 글을 다루는 이들의 영원한 난제인 띄어쓰기, 사이시옷, 신조어, 사투리에 대해 지혜롭고 따뜻한 해법을 제시한다. 이 책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은 국어 문법 시간에 배웠던 어렵고 딱딱했던 우리말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기후 관련해 잘못 쓰이는 말로 ‘악천우’도 빼놓을 수 없어요. 악천후를 ‘비 우雨’가 들어간 ‘악천우’로 알고 쓰는 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악천후는 비뿐만이 아니라 눈이 올 수도, 우박이 쏟아질 수도, 바람이 매섭게 불어올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몹시 요란하고 나쁜 날씨를 표현한 말이죠. 나쁘다는 뜻의 ‘악惡’에 날씨를 의미하는 ‘천후天候’가 더해졌어요. 악천후보다 우리말 ‘거친 날씨’로 쉽게 말하는 게 좋겠습니다.(P.54)


머드러기는 과일, 채소, 생선 중에서 굵은 것을 뜻해요. 상품 가치가 제일 좋은 것이죠. 과수원 하는 친구네 가면 늘 듣는 소리가 있어요. “머드러기만 따! 굵고 실한 놈만!” 머드러기는 사투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표준어랍니다. 사람 중에도 머드러기가 있어요.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를 일컬어요. 군계일학群鷄一鶴, 백미白眉 등의 한자어를 대신할 수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이에요.(P.265)


질문 하나 할게요. “오늘은 짬뽕이 땡기네”와 “요즘 물을 안 마셨더니 얼굴이 땡겨”는 바른 문장일까요? 둘 다 “땡”이에요. 우리말에 ‘땡기다’는 없거든요. 짬뽕은 ‘당긴다’로, 얼굴은 ‘땅긴다’로 써야 해요. ‘땅기다’는 몹시 단단하고 팽팽하게 된다는 뜻으로 상처나 수술 부위 등 신체 부위와 어울려요. 내친김에 ‘댕기다’도 알아볼게요. ‘댕기다’는 불火과 관련이 있어요. 불이 옮아 붙는다는 뜻으로 “담배에 불을 댕기다”처럼 쓸 수 있어요. 논란의 불을 댕기기도 하고, 갈등의 불을 댕기기도 하죠.(P.277)


저자 : 노경아


현 한국일보 교열팀장. 1995년 경향신문에서 교열기자로 언론 생활을 시작해 29년째 기사 속 오류와 전쟁 중이다. 경제전문지 이투데이에서 우리말 칼럼 200여 편을 썼다. 지금은 한국일보에서 우리말 칼럼 ‘달곰한 우리말’을 연재하고 있다. 맞춤법 등 ‘법’ 중심의 딱딱한 글이 아닌, 살아가는 이야기에 우리말을 담아 편안하게 우리말을 익힐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은 그런 마음으로 쓴 첫 책이다. 늘 쓰는 말 중 헷갈리는 단어들의 차이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올바른 표현을 살피며, 예쁘고 고운 우리말을 소개한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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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베노 몽골 - 푸르러서 황홀한 12일간의 인문기행
유영봉 지음 / 작가와비평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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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부분 '몽골' 하면 '칭기즈칸'을 떠올린다. 칭키즈칸은 세계 제국 사상 가장 큰 지역을 지배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세계위인전집에도 '칭키즈칸'이나 '테무친'이 빠지지 않았다. 몽골의 유목민으로 시작해 중국은 물론 유럽의 일부까지 지배할 정도로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정복자이지만 자신이 황제로 앉은 중국에서 정치도 비교적 잘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중국은 농경을 중심으로 하는 나라여서 진시황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 한 이후 북방의 유목민을 오랑캐(야만족)이라 칭하고 침략을 대비해 만리장성을 쌓았던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만큼 경계했단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중국인들은 당시 그들을 흉노(匈奴-'시끄러운 종놈'이란 뜻)로 불렀다니 적잖이 침략했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아마 먹을 것(식량)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농경문화도 마찬가지지만 유목민도 기후에 따라 수확이 엄청난 차이가 날 터이니 말을 잘 타는 유목민으로서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소수 게릴라 식으로 중국의 북방 변경에 자주 들락거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 『센 베노 몽골』은 칭키즈칸의 후예들이 사는 현재 몽골의 여행기다. 저자 유영봉은 몽골을 열이틀 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점은 물론 몽골의 과거 역사와 우리나라와의 관계 등 많은 역사적 사실을 추가해 몽골 여행자들에게 좋은 지침서 역할을 하도록 이 책을 썼다. 인구 350만 명 안팎의 작은 국가지만 국토 면적은 대한민국(남한)의 15배 가까이 된다고 한다. 독자도 아직 못 가본 나라여서 이 책을 통해 부족한 지식도 챙기고 꼭 한 번 가볼 곳이라는 생각을 굳히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저자는 몽골을 가없이 펼쳐진 녹색의 정원, 무수히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의 나라라고 간단한 소개로부터 시작한다. 양·소·말·낙타·야크(5가지 가축)를 방목하며 떠도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유목민은 원래 한 곳에 정착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떠도는 사람들'이라 표현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지 않을까 싶다. 나라가 없어 떠돈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활 풍습이나 삶 자체가 가축을 길러 의·식·주 모든 것을 해결하기 때문에 초원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여 다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거지인 게르는 일종의 천막집으로 수시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간이식이다. 그것도 저자가 보기에는 푸른 초원의 하얀 점으로 박힌 보석처럼 빛난다고 표현한다.



사실 몽골의 대부분의 땅은 황량한 고비 사막이 차지하고 있다. 식량 재배를 할 곳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중동 지역의 베두인들도 마찬가지라서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저자가 보기에는 오히려 신비스러운 고비 사막이란 표현이 가능할 것 같다. 저자는 이곳을 여행하며 몽골은 초원과 별과 사막을 찾는 이 땅의 '어린 왕자'들이 일찌감치 최고의 여행지로 꼽았던 나라라고도 말한다. 그렇지만 몽골이 풍광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돌아보면 몽골은 한때 우리와 불가분의 나라였다. 몽골의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필수적으로 칭기즈칸과 원(元)나라와 맞닥뜨린다. 우리에게는 아픈 기억도 있다. 원의 부마국으로서의 격하된 고려 왕조의 역사를 들춰야 하기 때문에 좋은 기억은 아닐지라도 무관한 나라라고 잡아 뗄 필요는 없다. 현재의 상태에 이른 여러 가지 국제적 급물살에 휘둘린 몽골은 한때 사회주의 체제에 있기도 했고, 구 소련의 지배에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면 나오지만 중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인근 강국인 러시아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상태였다. 몽골에 관한 이해가 전제된다면 몽골은 우리와 비슷한 약소국의 설움을 뼛속까지 겪은 나라다. 

『센 베노 몽골』은 12일간의 여정 속에서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훑는 여행 에세이이자, 인문기행이다. 수도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테를지 국립공원·차강 소브라가·욜링암·고비 사막·옹기 사원·카라코롬·쳉헤르 온천·테르힐 차강 호수·홉스골·제2의 도시 에르떼네트까지 길 없는 길을 달리며 느낀 감상과 사유를 쉽게 풀어쓴 책이다. 이 책은 여행 중에 마주한 몽골인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하면서, 의식주를 중심으로 그네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풍습은 물론 속담과 관습 그리고 건국 신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설화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여행 때 필요한 작은 백과사전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몽골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보다는 직접 보고 느낀 현실적인 체험의 결과를 바탕으로 쓴 여행기여서 읽고 즐기는 데 충분한 가치를 품고 있는 책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몽골은 사실 칭기즈칸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나라다. 이 책 곳곳에서 몽골제국의 성립과 칭기즈칸의 일생을 다루는 한편, 몽골인이 우리나라에 남긴 자취를 돌아보고 있다. 1206년 몽골 부족 출신의 테무친은 몽골 초원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여 예케 몽골 울루스(Yeke Mongol Ulus)라고 하고, 칭기즈칸에 추대되었다. 이후 칭기즈칸은 탕구트, 오이라트 등 중앙아시아·서아시아 방면과 여진(금) 방면으로 원정을 단행하다가 1227년에 탕구트 원정 도중 사망했다. 칭기즈칸을 계승하여 1229년에 칸 자리에 오른 오고타이는 1331년부터 동·서 양 방면으로 원정을 단행했다. 몽골제국의 영토 확장은 이후 5대 칸 쿠빌라이 대에 남송을 정벌할 때까지 계속되어 그 영역은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범위까지 확장됐다.

유목 국가로서의 성격을 갖는 몽골제국은 피지배국과 사람들을 황실 구성원들에게 분봉(分封)하는 형태로 제국을 구성하고 운영했다. 국호인 '예케 몽골 울루스'에서 ‘울루스’는 민(民)을 가리키는 용어로, 점차 그 민들이 생활하는 땅의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즉, 예케 몽골 울루스 아래에는 분봉을 받은 황실 구성원들이 하위 울루스로 층차를 이루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러시아 방면의 주치 울루스, 중앙아시아 방면의 차가다이 울루스, 페르시아 방면의 훌레구 울루스가 있었고, 대칸이 직접 다스리는 칸 울루스가 있었다. 그 아래에는 다시 그 자제들에게 분봉된 하위 울루스들이 분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나라 간섭기에 고려에 퍼졌던 몽골의 영향인 몽고풍, 몽골에 시집간 고려의 여인들이 몽골에 퍼뜨린 고려양이 그것이다. 나아가 제주의 역사에 남은 목호(牧胡)의 난과 돌하르방 그리고 조랑말이 몽골의 유산이라는 점,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인 여몽연합군이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정벌에 나섰다가 일본에 ‘카미카제’라는 단어를 낳도록 하였다는 사실 등 우리가 이제껏 몰랐던 이야기들을 소개함으로써, 몽골에 관한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어서 더욱 흥미를 끈다.



저자에 따르면 몽골은 어디를 둘러봐도 고요하고 한가한 나라다. 도심을 벗어난 몽골 사람들은 광활한 초원 위에서 눈 뜨면 일어나고, 졸리면 잠을 잔다. 한낮에는 풀어놓은 가축을 위해 묵묵히 그 뒤치다꺼리로 하루해를 보낸다. 마두금 소리가 잔잔하게 풀밭을 덮고, 해금 소리가 밤하늘에 울리는 그 적막하고도 느긋한 풍경에 홀린 저자는 “어느 곳에서 어느 쪽을 돌아봐도 멋들어진 수채화요, 파스텔화”라고 감탄할 뿐이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대자연에 묻히고 싶은 사람이라면 몽골로 떠날 일이다. 적막에 묻혀 자신을 돌아보고, 신이 내린 거대한 정원을 거닐고 싶은 사람들에게 바로 이 책이 사막의 단비 같은 안내서이자, 선물로 남길 바란다.

이 책은 12일간의 일정을 쪼개 각 한 장(章)씩 차지해 모두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당 너른 집」이라는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한없이 너른 마당이라 울타리는 애당초 포기했으니, 가슴은 절로 훈훈해진다. 이곳에 깃들어 사는 식구들은 언제나 바쁠 일이 없다. 그저 느릿느릿 염소와 양 떼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어디 이들뿐이랴? 야크를 키우는 집에서는 야크를, 소를 키우는 집에서는 소 떼를 하릴없이 따라가면 된다. 어쩌다 사막을 만나면 낙타에 오르고, 바쁠 일이 생길 적엔 말을 타면 그만이다."고 썼다.

저자가 마당 좁은 집(대한민국) 사람이란 그런지 몽골 초원을 '너른 마당'으로 표현한 것일까, 재밌고도 적절한 표현이란 느낌이다. 인구는 적고 소리 크게 날 기계음도 들리지 않을 곳이니 어쩌면 '적막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마당 너른 몽골의 집들을 감싸고 있는 건 오로지 적막뿐이다"고 마치 우리의 옛날 농촌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 허전함이 외롭다 싶을 때면 마두금을 타야 옳고, 외로운 밤이 지겨울 때면 해금 연주로 밤하늘을 찢어야 마땅하다. 그리하면 뭇별들이 깜빡이며 발장단 맞춰 신명 돋우고, 소쇄한 바람 한 줄기가 언뜻언뜻 불어와 눅눅해진 마음을 뽀송뽀송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p.4~5)

저자의 몽골 풍경 찬가는 그치지 않는다. "한낮에는 푸른 풀밭이 펄럭이는 융단 되어 드넓은 하늘로 날아가고, 한밤에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곱다시 내려받는 보자기로 변하지 않던가?"



사막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더운 나라일 것 같지만 몽골은 추운 나라라고 저자는 첫날 느낀다. 수도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테를지국립공원까지 120km 이동하는 여정이다. "센 베노(안녕하세요)? 표제어로 쓰인 말이 인삿말인지 비로소 안다. 몽골은 일년 동안의 평군 온도는 섭씨 -3도이니 추운 곳이다. 뚜렷한 대륙성 기후로 강수량이 매우 적고, 기온 변화가 잦다. 일교차가 큰 것도 특징이다. 겨울은 맑지만 크게 추운데, 건조해서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여름은 따뜻하고 짧다. 한마디로 풍광은 좋지만 사람 살기에는 적당치 않은 기후와 기온의 나라인 듯싶다. 여행 첫날 여정에서 2시간 20분 간의 버스길에서 아마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도로 끝으로 야트막한 구릉과 지평선이 보였던 것 같다. 연두와 하늘빛으로만 꾸민 세상이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울까?란 저자의 표현이 우리나라에서 쉽게 보기 힘든 광경이었을 듯싶다.

몽골에서의 첫 식사를 여기에 적었다. 메뉴는 튀김만두와 양고기 수프였다. 책에 따르면 수프는 입에 맞았고, '호쇼르'라고 불리는 몽골식 튀김만두는 한국의 군만두와 크게 다름없었다. 크고 납작하게 반달 모양으로 빚은 다음, 튀겨낸 만두였다. 속을 가득 채운 양고기가 오히려 고소했는데, 한 사람당 두 개씩이면 넉넉했다. 몽골 맥주가 사이사이 오갔으니, 이 또한 우리네 입맛에 맞았다. 기분까지 상큼해졌다고 저자는 즐거운 식사를 기억한다. 참고로, 몽골식 찐만두에 대한 설명도 덧붙인다. 몽골식 찐만두는 '보쯔'라고 달리 부른다. 이 또한 우리네 찐만두와 아주 흡사한 모양과 크기를 지녔다. 재료는 호쇼르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몽골에서는 새해 풍습으로 집집마다 이 보쯔를 만드는데, 이때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복을 더 받는다고 여긴다. 물론 이 많은 보쯔는 나중까지 모두 먹어 치워야 한단다. 

첫날 일행이 묵기로 한 게르는 6동이었으니, 게르마다 3명씩 배정되었다. 게르를 직접 눈으로 본 일행이 신기해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계속 쏟아지는 비로 드디어 사달이 났다. 기온이 쑤욱 내려간 것은 그렇다 쳐도 두 동의 게르에서 비가 줄줄 새는 바람에 다른 게르로 옮기는 소동이 일어났다. 난로를 피우고 저녁 식사를 해야 하는데 게르와 조금 떨어진 식당에 예약해 놓은 '허르헉'을 가져와야 하는데 빗길이 워낙 미끄러워 갔던 차가 도중에 돌아왔다. 결국 지프를 한 대 따로 빌리는 등 허르헉을 가져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허르헉은 몽골의 전통 음식 가운데 하나다. 냄지를 채운 양고기에다 채소와 양파·감자 등을 넣은 다음, 간장·소금·식초 등을 첨가해서 만든 일종의 볶음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책을 저자는 '유람기(遊覽記)'라고 표현하고 있다. 유람이란 말은 '돌아다니며 구경함'이라는 뜻이다. 열이틀 간의 여정이라 짧지 않지만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데 그쳤기에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만일 어떤 목적이 있는 여행기라면 일부를 보기에도 일정이 짧았을 것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일 것이다. 몽골은 내륙국가이다. 바다와 인접한 곳이 없는 나라다. 대신 이곳에도 큰 호수가 많이 있는 것 같다. 여정의 마지막날 저자는 새벽 네 시경에 눈을 떴다. 게르 밖에서 동녘 하늘이 터지려고 하는 중이었다. 태양은 검게 늘어선 능선 뒤에 숨어서 아직 꾸물거리고 있었다. 오싹할 만큼 차가운 바람이 호수를 건너왔다. 그러나 졸음을 주체할 수 없기에 다시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한 시간쯤 자다 일어났을까? 그 사이 먼동이 터졌다. 둥근 해가 황금빛으로 먹구름을 비집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밝히며 떠올랐다. 덩달아 수면 위에 한 폭의 거대한 수채화가 어렸다. 단조로워서 더욱 광휘를 발하는 그 반추상을 어찌 필설로 다할까? 그래서 선잠 깬 물새들이 꾸욱, 꾹 거렸나 보다. 발길이 절로 수면에 다다랐다. 자신도 모르게 호수를 위한 세례가 필요했던가? 그 맑은 푸른 물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얼굴을 씻었다. 온몸이 짜르르했다. 섭씨 17도의 기온 때문인가? 물안개는 거의 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신성하고도 산뜻한 새 아침의 기운이 절로 느껴졌다. 물살은 먼 먼 옛 기억처럼 아른거렸다. 호수에 홀린 사람들 마음처럼 쉼 없이 흔들렸다. 몇 마리 갈매기가 아침 하늘을 갈랐다. 밝은 미소가 하늘을 넘치도록 채웠다. 

홉스골은 에메랄드의 물빛이 지겨워지는 날까지 실컷 살아보고픈 곳이다. 그 둘레를 찾아 하염없이 걷고 싶은 곳이다. 푸른 수면에 비친 또 다른 자아를 마주하고픈 곳이다. 물안개 자욱한 날이면 이 땅에서 만났다가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을 목 놓아 크게, 크게 차례로 불러 보고픈 곳이다. 보름밤이면 달님의 그림자를 하나씩 줍고, 그믐이면 삼등성들의 궤적을 좇고픈 곳이다.(p.240~241)


저자 : 유영봉(劉永奉)


중동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한국한문학 전공)를 취득하고, 현재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고려 문학의 탐색』, 『하늘이 내신 땅(상·하)』, 『당나라 시인을 만나다』, 『너도 내가 그립더냐』. 『천년 암자에 오르다』 등이 있다. 역서로는 『국역 무의자 시집』, 『완역 청구풍아(상·하)』, 『집현전 학자 여섯 사람이 안평대군에게 바친 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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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너무 낯선 나 - 정신건강의학이 포착하지 못한 복잡한 인간성에 대하여
레이첼 아비브 지음, 김유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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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내게 너무 낯선 나』는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거식증,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산후우울증, 경계선 인격 장애 등 정신질환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뉴요커〉 전속 기자이자 의료윤리, 정신의학, 사법 및 교육 등을 주제로 다양한 글을 기고하고 있는 저자 레이첼 아비브의 출판 데뷔작이다. 이 책은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화이팅어워드 논픽션 그랜트상을 수상한 바 있다. 거식증, 우울증에서부터 조현병, 경계선 인격 장애까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정신의학적 해석 방식의 한계에 부딪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현대 정신의학이 정신질환의 증상을 구분하는 방식과 평범한 공동체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 증상을 경험하는 방식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한 중년 남성이 경험한 만성적 외로움은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기도, 가정불화로 압박감을 느끼는 소녀의 식사 거부는 ‘거식증’으로 명명되기도 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외로움과 우울증, 식사 거부와 거식증이 과연 우리의 생각만큼 직선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개념일까? 저자가 의문을 제시하고 있는 대목이다. 

먼저 이 책 『내게 너무 낯선 나』는 이처럼 인간의 고유한 경험과 의학적 진단 사이에서 납작해지다 못해 ‘지워진’ 이야기들을 추적해 그 이야기들이 가능했던 본래의 모습들을 펼쳐 놓는다. 저자 레이첼 아비브가 직접 인터뷰하고 탐구, 복원한 이야기들은 평범하디 평범한 우리, 그리고 우리의 삶 속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레이첼 이야기」라는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거식증'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의 어렸을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찬찬히 적어가는 이야기는 자신의 주제를 진단으로서가 아닌, 철저히 인물-저마다 열망, 자아 성찰, 상심, 기지 그리고 희망을 갖고 있는-의 차원에서 탐구한다. 『공감 연습』의 저자 레슬리 제이미슨은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얼룩진 사회적 풍경 속에서도, 환자들의 내면에 귀기울이며 그들이 설명하는 이야기와 맞아떨어지지 않는 순간을 레이첼은 잡아낸다"는 지적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설득력을 갖는다.



외롭고 무관심하고 쓸쓸한 이 세계를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살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마흔한 살의 백인 남성 레이도 그러했다. 신장학 전문의이자 잘나가는 투석 회사의 CEO였던 그는 자신의 경영 과실로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우울과 강박에 사로잡힌다. 부모님이 이혼한 지 1년 정도가 지난 여섯 살짜리 소녀는 3일간 식음을 전폐한 끝에 의사로부터 식이 장애를 진단받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다름 아닌 저자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여섯 살의 레이첼은 음식과 몸에 대한 허무맹랑한 생각들을 키우며 거식증에 ‘채용’된 듯 보인다.

책에 따르면 거식증이라는 단어는 너무 강력해서 나는 이를 입에 담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 당시 발음 규칙을 익히고 있던 중이었으므로, 내게 모든 단어는 의미를 체화하고 있는 구체적인 실체처럼 느껴졌다. 나는 음식의 이름을 말하려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내게 그 이름을 말하는 것은 그것을 먹는 것과 똑같이 느껴졌지 때문이었다. "그런 단어들이 자기 앞에서 사용되면 레이첼은 귀를 막곤 했다"라고 심리학자는 기록했다. 나는 8(eight)이라는 숫자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 발음이 '먹었다(ate)'와 같았기 때문이다. 내 고집에 지친 간호사 하나는 나를 "이빨도 안 들어가는 쿠키" 같다고 했고, 당연하게도 그 말은 나를 속상하게 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이 여섯 살 소녀 때 거식증 환자로 입원까지 하고, 그 과정에서 환자인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반영되지 않은 채 무시되었는지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후 학교로 돌아온 소녀 레이첼은 여섯 살인데도 순수한 의지만으로도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이 가능해 보였다고 쓰고 있다. 만약 자신이 병원에 더 오래 있었거나 학교에 돌아왔는데 아이들이 차갑게 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 6주만에 퇴원한 레이첼은 거식증에 관한 많은 책을 읽고 나름대로 탐구한다.

거식증을 가까스로 피했다는 생각 때문에 저자는 정신질환의 초기 상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밝힌다. 정신질환의 초기 상태란, 뭔가 강렬하게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 같지만 아직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세상을 재구성할 정도까지는 가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고 친절한 설명도 덧붙인다.



흔히들 정신질환은 만성적이고 고치기 힘들며 삶을 송두리째 삼켜 버리는 힘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의 초기 상태에서 우리가 그 질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많은 부분이 과연 그것의 진행 과정을 얼마나 많이 결정하게 될까?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이야기에 스스로를 가둬 버리기도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p.41)

저자는 또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들의 정신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관련해 그 진실성을 평가하기 위해 '병식(病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정신의학 분야에서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하며 거의 마법적인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34년 〈영국 의료 심리학 저널〉에 실린 중요한 논문에서 정신과 의사인 오브리 루이스는 병식을 "자신에게 발생하고 있는 병리적 변화에 대한 환자의 올바른 태도"라고 정의했다고 안내한다. 이를 테면 '올바른 태도'를 가진 환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자신에게 갑자기 말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약을 복용하면 더 이상 듣지 않을 수 있는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있음을, 그러한 병적 증상에 시달리고 있음을 식별한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입원할 때마다 병식이 평가되는데, 이는 환자의 의지에 관계없이 계속해서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개념은 '올바른 태도'라는 것이 어떻게 문화나 인종, 민족성, 신앙에 의해 좌우되는지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저자의 합리적 주장이다. 연구에 따르면 유색인종의 경우 '병식이 부족하다'고 평ㄱ랍맏는 사례가 백인에 비해 더 많다.' 아마도 의사들이 유색인종의 표현 방식에 익숙하지 않거나, 아니면 이들이 의사의 말을 잘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병식이란 환자가 의사의 해석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지를 측정하는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이에 한 가지 사실을 덧붙인다. 50년 전 정신분석학이 정점을 찍은 시기에 병식은 일종의 '계시(epiphany)'와도 같은 것으로 설명되었다는 것이다. 즉 무의식적 욕망과 갈등이 환하게 의식되는 것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한 환자가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억압된 증오를 스스로 인식하고 그 금지된 감정이 자신의 인격을 형성해 왔음을 인정할 때, 그 환자는 '병식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1980년와 1990년대에 들어서 지배적 이론으로 부상한 생물의학적 질환 설명은 이러한 종류의 병식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올바른 태도'는 이제 새로운 인식에 좌우되었다는 것. 이때부터는 환자가 자신의 뇌에 생긴 문제 때문에 정신질환을 갖게 되었다고 이해할 때 비로소 병을 식별한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물의학적 접근 방법은 환자와 가족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의 도덕적 문제를 해결했고, 따라서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환자를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해 주리라는 기대를 받게 되었다. 1999년 미국 공중 보건부 장관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데카르트가 처음 제시한 정신과 육체라는 잘못된 이분법"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정신질환과 다른 질환 사이를 구별하는 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단언했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러한 생물의학적 프레임이 사회적 낙인 자체를 풀어 준 것 같지는 않다. 연구에 따르면 정신질환이 생물학적이거나 유전적 원인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질환이 환자의 나약한 성격 때문이라는 식으로 가혹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정신질환을 환자의 통제를 벗어나 있고 그들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위험방편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의학이라는 사고의 틀이 특히 질환이 진행되고 있는 시기나 위기가 닥친 시기에 지속적인 자아감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해석과 이해를 되려 막아 버릴 수도 있음을 나는 이 책의 제목 『내게 너무 낯선 나』(이 문구는 하바의 일기에서 가져왔다)를 통해 상기시키고자 한다. 「숨어 있는 자아」라는 논문에서 윌리엄 제임스는 "모든 과학의 이상은 자기 완결적이고 닫혀 있는 진리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학자들은 "분류되지 않은 잔여물"을 무시함으로써 그러한 목표를 이루게 된다. 이 잔여물이란 "이상적인 체계에 맞지 않는" 증상들과 경험들을 말한다. 

이 책은 그가 말한 '자기 완결적이고 닫혀 있는 진리의 체계' 그 '바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삶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펼쳐지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인간 경험의 바깥 가장자리, 다시 말해 '정신의 오지'라고 불릴 만한 곳에서 펼쳐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소통 불가능성을 극복하려고 했던 환자들의 이야긱와 그 세계를 번역하고자 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과연 그것이 나인가? 내가 아닌가? 나는 대체 무엇인가?〉, 2장 〈내게 닥친 고난은 나를 완전히 버리라는 신의 계시인가?〉, 3장 〈내 말을 좀 들어 주세요〉, 4장 〈의사는 내 마음을 읽었다. 나는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등이다. 1장은 우울증의 이야기이고, 2장은 조현병에 대한 사례 탐구로 설명되고 있다. 또 3장은 산후우울증, 그리고 4장은 조울증과 경계선 인격 장애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프롤로그〉는 자신의 거식증 진단과 치료 과정, 이후 정신질환이라 일컬어지는 병에 대한 접근 등을 대체적으로 다루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완벽한 타인이다'는 제목의 〈에필로그〉에서는 앞서 언급한 '하바의 거식증'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짓는다.

각 장에서 발췌된 문장들은 별도로 맨 앞에 따로 배치함으로써 병증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1장(레이의 이야기)의 경우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한다. 맨 앞으로 끌어낸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그의 강박적 후회는 어떤 '상실'에 다가가려는 방편이었다. 그 상실이란 바로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삶을 상실한 것을 의미했다. 레이는 자신이 실패했던 상황과 이유를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끝없이 반추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도달했고, 도달할 수 있었던 이상적 모습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다.

2장(바푸의 이야기) '조현병'에는 "저는 종교적 열정을 버릴 수가 없어요. 저 때문에 모든 가족이 혼란스러워합니다." 엄마가 조현병 진단을 받았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지만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조현병'이라는 낯선 진단명은 엄마의 경험을 이해하기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3장(나오미의 이야기)은 '산후우울증' 이야기다. "자신이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인생이 달라져요." 나오미는 자신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이 모든 일은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흑인 여성이 처한 은폐된 현실에 다름 아니며, 그 현실이 비로소 자신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들 문장은 장의 성격뿐만 아니라 병에 대한 인식의 범주나 의학적 분류 등이 아직도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로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된 4장은 '조울증 그리고 경계선 인격 장애'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낯선 사람의 삶에 갇혀 있었던 거예요." 한때 로라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로라는 자신의 질환에 맞게 스스로의 삶을 바꿨다. 하지만 자기 삶을 설명해 주고 인식적 명료함과 의학ㄹ적 치유를 동시에 제공해 주리라 약속했던 그 이야기가 실상은 텅 빈 강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배신감을 느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하바의 거식증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완벽한 타인이다"는 문장이 주는 섬뜩함에 하바는 살을 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으로 가는 방법이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하지만 "완전하고도 완벽한 행복의 상태"인 비쩍 마른 상태에 가까이 다가간 순간, 하바는 다시 자신이 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써 왔는지를 생각한다. "내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 버리고, 내게 의미 있는 모든 것은 다 희생당하는구나."


레이와 바푸, 나오미와 로라는 모두 제각각 자신의 질병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다. 그들이 쓰려는 언어가 그들을 설명하기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그들은 깊은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들의 심리적 경험을 서술했다. 또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감각이 진짜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고 싶어 했다. 자신이 신과 결혼했다고 믿든, 인종차별주의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믿든 관계없이 말이다.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권위자들에게 (바푸의 경우에는 영적 스승들에게, 나머지 경우에는 의사들에게) 알려 주려고 애썼다. 그들의 고통은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경험한 고통의 경로와 정체성은 모두 바뀌어 갔다.(p.327)


저자 : 레이첼 아비브(Rachel Aviv)


미시간주에서 나고 자랐다. 2004년 브라운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3년부터 《뉴요커》의 전속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의료윤리, 정신의학, 사법 및 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와 관련해 글을 기고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정신의학적 설명의 한계에 부딪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게 너무 낯선 나』. 데뷔작인 이 책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뿐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 《뉴요커》 《커커스》 《북포럼》 《NPR》 등 유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비평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화이팅어워드 논픽션 그랜트상을 수상했다. 이 책이 낯선 사람으로 환영받기를 바라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문처럼 상상되길 희망한다.


역자 : 김유경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M.C. 에셔 : 무한의 공간』 『그는 지도 밖에 산다』 『강조해야 할 것』 『성 정치학』 『별에서 온 아이』 『그렌델』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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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김태영 지음 / 담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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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전적 에세이는 인생을 잘 산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해준다. 삶은 나를 믿고 사랑하며 잘 극복해 나가는 것이고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되새기도록 해준다.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명쾌한 답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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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김태영 지음 / 담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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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는 중국 동포가 경상도 남자를 만나 20년 결혼 생활을 한 기록이자 한국 생활 적응기이기도 하다. 저자 김태영은 이른바 '조선족'으로, 스물네 살 꽃다운 나이에 한국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다른 대한민국의 한 일원으로써, 주부로써, 아이의 엄마로써 적응은 물론 삶을 스스로 이끌어간 성공 사례로서 자신의 결혼 생활을 담담히 쓰고 있다. 힘겨운 10대 시절을 뒤로 하고 20대에서 40대에 이르기까지, 국적이 다른 사람으로 한국에서 살면서 겪은 고생과 불편함, 편견과 선입관에 맞서는 이야기부터, 소녀에서 바로 아줌마로 급진하게 되면서 겪는 가치관의 혼란과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관한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펼쳐져 있다. 희망을 찾아 한국으로 온 저자는 동포로서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선 편견이 가장 힘들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결혼이 확정되고 남편과 함께 지방 어느 작은 도시에서 시어머니를 처음 만나던 날의 에피소드가 쉽지 않은 결혼 생활을 예고하는 듯하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서 삼 남매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찍 철이 든 우리는 공부를 이어가는 대신 각자의 생계를 책임지기로 했다.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로 인해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운이 좋았다.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내가 안쓰러웠던 외할머니는 여기저기 부탁해 한국 기업에 취업시켜 주셨다. 당시 중국에는 제대로 된 노동법이 없어 미성년자가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나는 미성년 때 일을 시작해 성인이 되었다. 한국 기업에 다니면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일상을 살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날을 보내다가 문득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곳이 한국이었다. 2003년 8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나의 이민 생활이 시작되었다.”


도착했다는 남편의 말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활짝 웃으려고 표정도 다시 지어 보았다. 그러나 차에서 내리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 하나 마중 나와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어머니를 불렀고, 한참 뒤 어느 귀퉁이에서 어머니가 천천히 걸어오셨다.

“왔나?”

단 한마디. 어머니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셨고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대단히 반겨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중국인 며느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p.23)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가야 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고, 독서와 운동 등 여러 활동을 통해 자신을 찾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은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저자가 자신을 사랑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에세이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독자들에게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제안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깨달음을 통해 긍정성을 향해 나가도록 격려한다. 사회적 편견과 도전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사람, 자기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한국으로 시집간 아랫집 김 씨네 딸이 술주정뱅이를 만나서 맞고 산다더라, 건넛집 박 씨네 딸은 다리가 불편한 남편을 만나서 고생한다더라”는 이야기들이 조선족 사회에 퍼져 있었지만, 남편의 서글서글한 미소와 유쾌한 성격에 이끌려 한국으로 들어온다.

한국에서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같은 말을 쓰지만 현격히 억양이 다른 사투리, 더욱이 북한 사람들이 쓰는 사투리라서 자칫 오해받기도 십상이다. 

저자는 “태영아! 밖에서는 중국말 하지 마. 사람들이 무시해”라는 오빠들의 말처럼, 처음에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한 아픔을 겪어야 했다. 20대 초반 또래들이 전공 서적을 팔에 끼고 캠퍼스를 누빌 때, 저자는 아이를 업고 있었다. 자격지심이 생겼고, 비교에서 오는 불행의 후폭풍을 견뎌야 했다. 30대가 되어서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자동차 사이드미러 조립원, 섬유회사 원단 검사원, 공연단 행정업무 담당자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40대에 들어섰고, 마흔세 살이 된 지금, 1,553세대 규모 아파트의 경리가 되었다. 작가는 우여곡절 많은 과정을 통해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두려움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로 바뀌는 변화를 경험했다.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실 국적은 큰 의미가 없다. 더욱이 세계화가 진전된 지 30년 이상이 흘렀는데 우리는 남북 분단 상태라 그런지, 한민족이란 단일민족 강조 때문인지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아직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어쩌면 잦은 외침에 의해 수많은 세월 피해를 받은 민족으로서의 피해의식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진보했다. 90년대 이전에는 우리도 외국을 마음대로 여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데다 법적으로도 해외여행이 그리 쉽지 않았다. 당연히 외국의 문물을 보고 느끼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거기에 국수적 느낌이 국민 전체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는 IMF라는 초유의 금융 위기 상황으로 귀결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국수주의나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데 일조를 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책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는 중국 동포로서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이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완전히 개방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은 저자가 대한민국에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저자는 자신이 살기 위해 적응해야 했고, 적응하는 과정은 다른 외국인보다 훨씬 잇점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꾸준하고 부단한 노력으로 이루어냈다. 지금은 자신을 비난하던 단계에서 이젠 스스로를를 사랑하게 됐다. 원하고 바라던 것을 이루어낸 자긍심과도 일맥상통한 심경이다. 저자는 그동안 ‘무너져도 다시, 쓰러져도 다시’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살다 보니 길이 생겼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그 여정에 내가 있었다’라는 작가의 당찬 말이 아름답다. 또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어떤 역경도 헤칠 수 있을 것이란 공감도 간다.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돌진할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이 저자를 지탱하고 있는 원동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나를 믿고 사랑하며 잘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살면서 부딪히는 실패와 고난 때문에 우울하고 비참할 때, 주어진 것보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부러워하며 억울해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인생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탈북민, 중국 동포 등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말이다. 저자는 단일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대한민국에서 며느리로 산다는 것,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직접 경험한 일들을 진솔하게 이 책에 담았다.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열정과 쉼 없는 노력이 스스로를 키우는 밑바탕이 되었고, 결국 '나다운 나' '자랑스러운 나'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 책은 저자의 진솔한 기록을 바탕으로 주위의 한국인들도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에세이지만 성장 소설처럼 스토리가 읽히는 것이 흥미롭다. 진실의 짧은 조각들을 꿰맞추니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된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 있다. 남의 노력을 '재미있다'로 표현한 것은 무례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독자는 저자의 노력이 우리 국민들에게 외국인 차별을 없애는 데 영감을 주기 때문에 한 표현이다. 양해를 구한다. 이 책은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사람들에게도 명쾌한 답을 전해줄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가 무너지고 힘들어하는 자신에게 해줄 말을 몇 개 인용해 여기에 적는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비교하지 마. 너만의 속도로 가면 돼.”

“실수해도 괜찮아. 세상 무너질 일 아니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완벽해지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돼.”

“오늘도 고생했어.”(p.182~183)



이 책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나는 조선족입니다〉, 2부 〈이방인으로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 3부 〈무너져도 다시, 쓰러져도 다시〉, 4부 〈나를 사랑하기 위한 연습〉 등이다. 각 부는 7~8개의 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합쳐 200페이지에 조금 못 미치는 작은 책이다. 그러나 진솔하고도 노력의 결정체로 만든 언어는 한 문장 한 문장 힘과 무게감이 있어 천천히 읽을수록 저자의 진심이 전해져 오는 듯한 느낌으로 가슴속이 가득 채워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아다」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두려움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삶은 혼자서 가는 여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썼다. 그는 「나는 이제 이방인이 아니다」란 제목의 〈에필로그〉를 통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고, 나다움을 찾아가면서 삶이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한국인들이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기보다 저자 스스로 외국인이라는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울타리를 넘지 못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힘들어 주저앉던 날, 상처받아 움츠려들던 날, 두려움에 도망쳤던 날, 날카롭게 스스로 비난하며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던 날, 이런 날들을 극복하며 지금의 내가 되었다."(p.193)


저자 : 김태영


여전히 세상이 궁금하고, 또 하고 싶은 것이 많은 40대.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며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필요한 용기를 독서와 경험을 통해 얻어가고 있다. 여러 직업을 경험하며 아파트 경리가 되었다. 가장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주저함이 없다. 더 넓은 세상을 비상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중이다. 공저 『언니들, 인생을 리셋하다』,『한 번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인스타 @taeyeong_0211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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