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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과 김종성
김종성.정성갑 지음 / 브.레드(b.read) / 2024년 7월
평점 :
'대우 김우중 회장' 하면 우리 산업화 시대 재벌 그룹으로 도약하고, 서울역 앞 대우빌딩 사옥이 대표적 이미지로 떠오른다. 5성급 호텔인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하 힐튼 호텔)도 대우 김우중 회장과 관련이 깊다. 당시 대우의 사장이던 김우중과 건축가 김종성의 합작품이다. 이 호텔은 우리 힘으로 지은 최초의 대형 호텔이라는 의미가 깊다. 1983년 12월 문을 열고 2022년 12월 31일 폐장까지 40년 동안 남산 자락의 랜드마크였다. 힐튼 호텔은 약 40년간 수출 한국의 비즈니스를 뒷받침한 장소이자 역사적으로 주요한 대형 이벤트가 열린 공간이었다. 개관 첫해 국제의원연맹회의(IPU)가 열렸고,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방송사인 NBC방송 본부가 차려졌다. 1992년에는 당시 영국 찰스 왕세자 내외의 공식 방한을 기념하는 관련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이 책 『힐튼과 김종성』은 힐튼 호텔이 만들어진 시대적, 정치적 배경과 건축적, 문화적 가치를 당시 현장의 사람들과 설계자인 김종성 건축가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중심으로 저자 정성갑과 건축가 김종성이 함께 집필했다. 힐튼 호텔 로비에 자연광이 드는 아트리움이 있었던 이유, 연말이면 그곳에서 자선 기차가 달리게 된 사연 등 그동안 힐튼 호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당시 건축가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의 애정을 담아 전한다.
책에 따르면 1980년까지 서울의 특급호텔은 대부분 일본인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졌지만 힐튼 호텔은 20세기 대표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제자인 한국인 1세대 건축가 김종성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이 호텔은 1986년 서울시 건축상 금상을 받았다. 김종성 건축가는 힐튼 호텔 상징이던 로비(아트리움)에 대해 "메인 로비에 들어와 낙차를 이용해 서쪽으로 파고 내려가면서 거대하고 우아한 공간을 만나도록 디자인했다"고 회고했다. 또 "호텔에 들어왔을 때 모든 사람이 우아하고 세련된 공간에서 환대를 받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IMF 금융위기로 대우그룹이 와해되면서 대우개발 소속이던 힐튼 호텔은 1999년 싱가포르계 CDL호텔코리아에 팔리며 2004년 밀레니엄 힐튼 서울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후 CDL이 20여년간 운영한 호텔은 2021년 이지스자산운용에 다시 매각되며 철거될 운명에 놓였다. 이지스자산운용은 힐튼 호텔을 허물고 주변 건물을 추가 매입해 오피스·호텔 등으로 구성된 복합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2023년) 11월 수정된 힐튼 재개발사업 정비계획안에 따르면 호텔 로비의 계단과 기둥 등 일부만 보존될 것으로 알려졌다.
힐튼 호텔이 문을 닫은 후 가장 최근 출간된 이 책 『힐튼과 김종성』은 건설 당시 현장 소장, 시카고에서 설계 준비를 도운 담당자, 호텔 개관 당시의 매니저, 32년간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셰프, 동시대의 건축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아키비스트(기록 보관 담당자) 등이 전하는 힐튼 호텔에 관한 입체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공동 저자(이하 저자) 중 한 분인 22년차 에디터 정성갑이 만난 7명의 관계자들과 힐튼 호텔의 건축가 김종성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며 지식과 지혜를 펼쳐낸다.
특히 이 책에는 1983년 개장 당시 사진 자료를 비롯해 2022년 폐장 때의 무드를 담은 사진 자료, 설계 도면, 건축 스케치, 서신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수록해 힐튼 호텔의 4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건축가 김종성 :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조화〉 전시가 열린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아키비스트에 따르면 김종성 건축가가 기증한 자료는 양도 많고 보존 상태가 좋았다. 덕분에 미술관의 아카이브를 뒤져 의미 있는 이미지 자료들을 책에 풍성하게 담을 수 있었다고 전한다.
김포공항도 없던 시절 여의도를 활주로 삼아 미국으로 건너 가 미스 반데어로에라는 거장을 사사한 김종성은 힐튼 호텔에 왜 자연광이 들어오는 거대한 아트리움을 만들었을까? 힐튼 호텔 하면 떠오르는 녹색 대리석과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자선 열차가 등장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그가 남긴100여 점의 설계 중 힐튼 호텔을 손꼽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남김없이 이야기해 준다. 노장의 건축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일의 태도, 삶과 인생관도 엿보인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힐튼 호텔의 장면들〉, 2장 〈김종성 건축가에게 듣다〉, 3장 〈현장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야기〉, 4장 〈힐튼 호텔을 바라보며〉 등이다. 1장에는 힐튼 호텔의 독창성과 힐튼 호텔만의 디자인, 힐튼 호텔만이 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행사 등이 담겼다. 2장은 김종성 건축가의 인터뷰 내용이 주로 실렸으며 그의 '건축관'을 알 수 있다. 3장은 당시 건축에 참여했던 많은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의 「서문(책을 내며)」에는 김종성 건축가의 힐튼 호텔에 대한 강한 애착과 아릿한 추억을 느끼게 하는 짧은 글이 실렸다. "2023년 봄 힐튼 호텔의 운명이 대단히 비관적으로 예견될 때에 나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가동해서 힐튼 호텔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여러 가지 대안을 홍보하면서 힐튼 호텔의 보존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중략) 이 책이 독자의 손에 놓일 때에는 힐튼 호텔의 향방이 정해졌겠지만,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힐튼 호텔은 하나의 건축이고, 부동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 독자 개개인의 뇌리에 각인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고 썼다.
힐튼 호텔에 또 다른 애정을 보낸 사람은 건축 잡지 에디터이자 이 책의 저자 정성갑이다. 출판사 대표의 힐튼 호텔 책 프로젝트 제안에 저자는 조금은 머뭇거렸다고 털어놓는다. 이미 영업 종료 결정이 난 데다 건물 자체를 허문다고 하는데 무슨 기록물이나 문화재도 아닌 건물을 책으로 낸다는 것은 경영상의 이익은 없을 거란 계산이 있었을까. 그러나 저자도 결국 마음을 바꾼다. 저자는 '존중과 애정'을 이유로 들었다. "호텔 매각 소식을 처음 들었던 2021년부터 호텔을 자주 찾았다.(아마 백화점 바겐 세일하듯 영업과 행사 등을 종료일까지 계속 했던 것 같다) 아내와 데이트도 그곳에서 했고, 수영장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바캉스를 갈 때도 기쁜 마음으로 힐튼을 선택했다."
저자 정성갑은 「서문」에 이 때도 힐튼 호텔은 아름다웠고 풍요로웠다고 말한다. 지하부터 2층까지 8m 높이로 뻥 뚫린 아트리움이 특히 눈부셨다고 이용 소감을 말한다. 천장을 향해 웅장하게 뻗어 있는 황동 기둥, 양쪽으로 갈라지며 지하까지 길게 이어지는 크림색 대리석 계단, 그 아래 조명을 받으며 반짝이는 원형 분수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느끼고 있으면 더없이 고급스럽고 아늑하며 평화로운 공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만약 한국에도 벨 에포크 같은 시절이 있다면 힐튼이 개관한 지 얼마 안 돼 곳곳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던 시절이 아닐까 생각했다."(p.6~7)
앞서 언급한 대로 힐튼 호텔은 우리나라 우리 힘으로 지은 최초의 호텔이다. 건축가도 한국인, 건물주(동우개발 51%, 도요멘카 49%)도 국내 기업이다. 일부 수입 건축 재료를 제외하고는 우리 기술과 힘으로 세운 최초의 5성급 호텔이라는 점이 이 호텔의 보이지 않는 특장점이기도 하다. 당시 서울 시내에 있던 대형 호텔인 신라 호텔, 롯데 호텔, 프라자 호텔은 일본 건축가가, 하얏트 호텔은 미국에서 설계했다고 한다. 힐튼 호텔은 건축의 완성도가 높았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건축 기술은 세계 수준과 견줄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는 것이다.
김종성 건축가는 다소 놀랄 만한 호텔 건축 비하인드 스토리를 언급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그러니까 3공화국 때죠. 김우중 회장 아버지가 박 대통령 은사였는데 6.25전쟁 때 납치됐어요. 그래서 박통이 김우중을 도와주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스승의 아들이라 도움을 줬는데, 보니까 잘하거든. 그래서 중공업도 해라, 조선도 해라, 계속 시켰단 말이야. 당시에 지금의 서울스퀘어, 그 전 대우빌딩 자리에 교통센터를 짓다가 중단했어요. 누군가 도쿄역 같은 걸 상상하며 계획했지 싶어요. 콘크리트 뼈대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는데, 박통이 김 사장(당시 직함)에게 그걸 완공해 사옥으로 쓰되 뒤쪽 부지는 호텔을 하라고 했던 모양이야. 내가 19778년 5월 한국에 와서 보니 대우빌딩이 완공된 상태였어요. 모르긴 몰라도 어디 관에 들어갈 때마다 호텔 건설의 압박을 받았겠지. 호텔이 경제성이 있는 사업은 아니니 아마 울며 겨자 먹기로 했을 거라 생각해요."(p.15)
100년 후에도 질리지 않을 클래식, 김종성 건축가가 힐튼 호텔을 지으면서 세운 목표라고 한다. 김종성은 그런 의지로 수명이 긴 재료, 세월의 흔적으로 오히려 깊이감이 생기는 재료를 선택했다고 회고한다. 힐튼 호텔에는 브론즈, 트래버틴, 녹색 대리석, 오크 패널을 선택해 우아함과 풍요로움을 더할 수 있었다고 당시 계획을 되짚어 말한다.
김종성 건축가에 따르면 나무 패널은 인테리어에 흔하게 쓰는 재료다. 힐튼에서는 오크 패널을 썼다. 나무 패널만 쓰면 단조로운데, 꼭 녹색 대리석이 아니어도 나무 소재와 짙은 대리석을 같이 쓰면 서로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노출된 층의 두께, 즉 수평선의 띠와 기둥을 브론즈로 했다. 번쩍번쩍 광이 나게 마무리하지 않고 은은한 빛이 돌게 했다. 난간 손잡이 등도 자연스럽게 같은 재료를 썼다. 트레버틴은 로마 교외 지역인 티볼리에서 나는 돌로, 로마 시대부터 대부분의 건물을 트래버틴으로 감쌌다고 독자의 건축 상식에 하나의 지식을 얹어준다.
힐튼 호텔 건축이 우리 건축 기술 발전에 기여한 것 중의 하나는 '알루미늄 커튼 월'이다. 김종성 건축가는 구식 건물은 돌이나 벽돌이 내력벽 역할을 해 건물 무게를 받는 구조인데, 철근으로 기둥을 만들어 힘을 받게 하고 외벽은 마치 힘을 받지 않는 커튼처럼 이어져 있는 것을 재료와 상관없이 커튼 월이라고 알려준다. 당시 서울에서 영업하던 호텔은 전부 PC 패널을 사각형으로 오려내 알루미늄 유리창을 끼운 형태였다고 한다. 김종성은 힐튼 호텔 건축을 맡으면서, 20세기 말엽에 세계적으로 선호하던 금속으로 외피를 마감하는 것이 처음부터 세운 목표였다고 회고한다. 국제적 수준의 기술이 필요한 재료를 씀으로써 기술 발전도 이루고, 사람들이 한눈에 봐도 구식 건물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도록 커튼 월을 선택했다고 밝힌다.
힐튼 호텔이 다른 호텔과 차별화한 것은 이것들만 아니다. 호텔의 길목 역할을 하는 기능적인 로비를, 지하 2층에서 1층에 이르는 공간을 개방해 18m 높이의 층고를 확보하고 자연광이 드는 천창과 함께 분수를 설치해 마치 유럽의 정원처럼 설계했다. 이는 다분히 공용면적에 공공성을 부여하려는 건축가의 의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로비는 어느 호텔이나 있지만 롯데 호텔의 경우 객실 1,000개짜리 호텔인데 아트리움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한다. 이에 김종성 건축가는 통로가 되는 로비 공간에 아트리움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고 싶었다고 당시를 돌이켜 생각한다. 마침 지형이 경사가 졌기 때문에 지금 모습처럼 만들 수 있었지만, 만약 평지에 호텔을 지었더라도 건축적으로 아트리움 같은, 가슴이 탁 트이는 공간을 틀림없이 조성했을 것이라고 김종성은 밝히고 있다. 독자는 잘 몰랐지만, '아트리움'의 사전상 의미는 로마네스크 건축이 생기기 전, 그러니까 비잔틴 건축과 초기 기독교 건축양식에서 예배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 실외의 안마당을 뜻한다고 귀띔한다. 지난 50년 사이 모던 건축에서는 그것이 실내가 되거나 아래에서 위로 오라가는 형태가 되기도 하고, 같은 층이되 천창을 설치해 자연광이 들게 만들기도 했다고 김종성 건축가는 말한다. 우리 기술이 세계 수준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내비치기도 한다.
김종성 건축가는 1977년 김우중 사장을 만났다고 이 책에서 밝힌다. "이거 하시겠소?" 묻길래 "하겠습니다" 했다고 한다. 이후 설계안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나왔는데 당시 정부의 공식 건축 담론은 어떻게든 한국의 전통을 반영하는 거였다고 한다. 김종성 건축가는 "힐튼이 독립기념관도 아니고, 호텔이고 숙박시설인데 무슨 전통이냐"는 김종성 건축가의 반발로 결과적으로 전통과는 무관한 현대식 호텔 건축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김종성 건축가와의 인터뷰가 즐거웠던 이유에 대해 정성갑 에디터는 "그에게 인간적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적 매력'이라는 실체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느낌을 독자로서는 모르겠지만 정성갑 에디터는 외모적 말끔함, 막힘 없는 대화, 깔끔한 일 처리 등을 꼽고 있다. 몸에 밴 신사적인 태도도 멋졌다고 말한다. 마지막 미팅은 선생의 일정이 많아 조식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뉴욕에서 온 사모님(아내)도 함께했는데 김종성 선생이 아내를 바라보며 "시작하실까요?"라고 묻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느낌을 책에 적고 있다. 인터뷰가 여러 차례 호텔에서 이뤄졌는데 단 한 번도 대충 걸치고 나온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셔츠는 주름 하나 없이 빳빳하고, 신발은 일주일 전에 산 것처럼 깨끗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고급스럽고 우아함이 몸에 밴 신사라고 김종성 건축가의 품격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힐튼 호텔 외관은 비례에 집중한 미니멀한 모습이지만 로비는 또 다른 느낌이에요. 대리석 계단이 아래층을 향해 미끄러지듯 이어지고, 브론즈로 만든 난간 손잡이 라인도 무척 아름답지요. 천창으로는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오고요. 정인하 교수님의 연구에 따르면, 채광은 미스 반데어로에의 건축과 차별화되는 요소 중 하나였어요. 미스 반데어로에는 천창을 별로 안 썼는데 김종성 선생의 작업에는 넓고 환한 천창이 자주 보이지요. 경주의 우양미술관도 그렇고 육군사관학교 도서관도 그래요.(p.276)
저자 : 김종성
1935년 서울 태생. 경기고를 나와 1954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재학중 미국유학을 결심하고 1956년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교(IIT)에 입학해 1961년 건축학사를, 1964년 건축학 석사를 취득했다. 학부 졸업 후 미스반데어로에 사무실에 입사해 다수의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1966년 IIT 건축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1972년 부학장, 1978년 학장 서리를 역임했다. 힐튼호텔 설계를 계기로 1978년 귀국해 서울건축종합사무소를 만들고 이끌었다. 대표작으로 서울힐튼호텔 외에 육군사관학교 도서관, 서울올림픽 역도경기장, 경주 선재미술관(현 우양미술관), 아트선재센터, 서울역사박물관, SK서린빌딩 등이 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건축가 김종성: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조화’전을 개최했다. 문화훈장(2014년), 동탑산업훈장(2023년)을 수훈했다. 2019~23년 ‘건축가 김종성의 로마네스크 건축 포토에세이(Architect Jong-Soung Kimm's ROMANESQUE ARCHITECTURE Photo Essay)’ 5권을 출간했다.
저자 : 정성갑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는, 넉넉하고 아름다운 집 한 채를 갖는 것이 일생의 꿈. 10년간 잡지 〈럭셔리〉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국내외 유명 건축가를 인터뷰했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건축가가 지은 집에도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됐다. 내게 꼭 맞는 집을 만나고 싶다는 염원으로 아파트, 빌라, 한옥 등 다양한 주거 형태를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의 좌충우돌 소동과 애환은 책 〈집을 쫓는 모험〉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서울 서촌과 양평에 작은 삼층집과 오두막을 지으면서 집과 건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런 경험치를 동력 삼아 갤러리로얄과 함께하는 토크 프로그램 〈건축가의 집〉을 4년째 기획, 진행하고 있다. 토크 무대에는 신진부터 거장까지 많은 집 짓는 마음과 철학에 관해 들려주었다. 집을 채우는 사물과 작품에도 관심이 많아 지난 3년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발행한 잡지 〈공예+디자인〉을 만들었으며 갤러리 클립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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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