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쉬운 글의 힘
손소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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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Z세대들은 학교 문법상의 언어보다 인터넷에서 흔히 쓰이는 비문이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독자는 중년 세대로서 젊은 세대의 글쓰기를 접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인터넷 상에서 글쓰기를 읽고 난 느낌이다. 오프라인 책으로 발간되지 않은 것들은 한글로 써도 무슨 뜻인지 쉽게 알 수 없는 언어들이 마구 쓰이고 있다. 독자도 인터넷을 사용하기 때문에 타인이 써놓은 글을 한 번씩 읽다가 아연실색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게시물의 덧글에 쓴 글들을 읽어보면 몇 개 안 읽었는데도 수많은 오탈자, 외래어 남용, 비문 등이 너무 많이 쓰여서 황당하기도 하고, 우려되기도 한다. "이러다 한글 없어지는 것 아냐?" 하는 걱정도 여러 차례 했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 등장한 '인터넷 언어'에 대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욕이나 무지막지한 막말도 큰 문제지만 비문이 스스럼없이 사용되고 그것이 통용된다는 것이 더 문제다. 그들에게 펜을 쥐어주고 자기 소개글을 써보라 하면 어떻게 쓸까? 소름 끼치는 상상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독자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정화되겠지"라고 독자를 타이른다. 독자는 인터넷에서 서평 카페 이외에는 댓글을 달지 않는다. 자칫하다가는 '꼰대' '쉰세대'로 매도될 것 같아서다. 운동선수들에 덕담이나 응원 격려 감사를 쉽게 전하는 것도 할 수 없다. 이것도 세대간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언어가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하나의 빌미가 되겠다 싶다. 

인터넷 상이라도 학교 문법에 맞춰 글쓰기를 하는 곳은 아직도 많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이트에선 맞춤법이나 사전에 등재된 학교 문법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 수가, 비율이 점점 늘어난 것으로 느끼게 한다. 독자는 인터넷 상에선 덕담은 해도 비방은 하지 않는다. 최근 일본에서도 이 같은 글쓰기가 엄청나게 많아지면서 기성 세대의 걱정이 많아졌다고 쓴 일본의 글쓰기 책을 읽은 적도 있다. 인터넷 상의 글쓰기는 바로바로 생각나느 대로 쓰고 검토 한 번 없이 즉각 글을 올린다. 맞춤법이나 비문 등에 대한 인식이 훨씬 약해졌다는 진단이다.

일본 역시 인터넷 글쓰기가 난관에 부딪친 느낌이다. 특히 요즘 문해력이 화두라고 한다. 우리 역시 비슷한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한글 맞춤법이나 제대로 된 문장을 써야 한다는 글쓰기 책이 많이 쏟아져 그나마 앞날에 위안이 된다.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논술·서술형 문제 빈도수가 높아지고 있고, 당장 입시와 대학교육에서는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에 주목한다고 한다. 또 사회에서는 갖가지 글쓰기를 통해 개성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역량을 요구한다니 한글 글쓰기는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사회에서 다시 배운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언어는 습관이다. 잘못된 습관은 사회에서 여간 고치기 힘든 게 아니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면 맞춤법이 서투르다든지, 문장이 이해하기 어렵게 길게 쓴다면 지적받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는 글쓰기를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지만 어디서나 요구한다. 학교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야 평생 올바른 언어 생활을 할 수 있다. 

이 책 『짧고 쉬운 글의 힘』은 방송작가 손소영이 들려주는 임팩트 있는 글쓰기 비법을 담았다. SBS, KBS, EBS 등 여러 방송사에서 TV와 라디오를 넘나들며 예능부터 다큐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송작가로 활동한 저자가 독자들을 위해 작심하고 집필한 책이라고 한다. 한겨레 교육의 글쓰기 강의, 방송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글쓰기 지도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축적된 글쓰기 노하우를 전해준다. 「글의 설계와 구성」, 「백지와 싸우는 법」, 「단숨에 쉽게 읽히는 글」, 「살아 움직이는 글」, 「효과적인 필사법」, 「화룡점정, 제목 붙이기」, 「전략적 글, 자기소개서」, 「인공지능AI 시대의 글쓰기」 등 효과적인 글쓰기 비법이 망라되어 있다. 저자는 “글쓰기 강의와 첨삭지도를 하면서 확실하게 느낀 점은 글처럼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는 것도 없다는 겁니다. 꾸준히 열심히 계속 쓰다 보면 분명히 좋아지고 달라집니다.”라고 책에서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이 자신의 글쓰기 실력을 더욱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저자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글쓰기 원칙과 테크닉을 전하고자 집필했다고 〈서문〉을 통해 밝히고 있다. 책을 통해 독자들이 글쓰기를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으로 느끼게 되길 바란다는 취지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글쓰기의 기쁨과 글로 인한 치유의 경험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덧붙이고 있다. 저자는 글쓰기에 두려움이 생기고, 글쓰기를 시작하기 힘든 이유가 처음부터 한 번에 완벽한 글을 쓰려는 생각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아무리 뛰어난 작가도 처음부터 한 번에 완벽한 글을 써내는 일은 드물다는 것. 타고난 재능이 없더라고 쉽게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비법은 바로 이 중압감과 긴장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가볍게 끄적거리는 것부터 시작해 볼 것을 저자는 권유한다. 저자는 마음속에 있는 단어들이 흘러나오게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첫 단계라고 말한다. 나중에 제대로 다시 고쳐 나가면서 업그레이드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평온한 상태로 글을 우선 써볼 것을 주문한다. "글은 짧고 쉽게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은 세계 어느 언어를 사용하든 마찬가지다. 또 어떤 글이든 이 원칙은 글쓰기의 제1원칙이다. 누구나 독자로서 글을 읽을 때는 짧고 쉬운 글을 좋아한다. 모든 글은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 쓴다. 즉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란다. 글쓰기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독자로서 읽었을 때 짧고 쉽게 써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간혹 시중에 나와 있는 글쓰기 책들을 읽다보면 짧게 쉬운 글을 쓰라고 설명하는 저자들이 자신이 오히려 긴 글을 쓸 때가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신도 그럴 경우가 있다고도 말한다. "그런 부분을 만나면 오히려 자신의 글쓰기에 자신감과 위안을 얻는 계기로 활용할 것"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우리가 사회에서 소비하는 모든 콘텐츠의 근간은 '글'이라고 저자는 판단한다. 짧지만 강렬하고 울림이 있는 글이 바탕이 된다면 어떤 분야에도 자신있게 도전해 볼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2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글쓰기 비법'을 담았지만, 사실 글쓰기는 비법이나 왕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많이 읽고(多讀), 많이 생각하고(多思), 많이 쓰는(多作)이 최선이다.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이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이 3가지는 지금도 계속한다. 이를 통해 글쓰기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 정도(正道)다. 저자는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짧은 글, 쉬운 글, 일관성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책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27개 장의 모든 부분에 기본적으로 들어 있는 비법이다. 이것이 비법이자 기본 요건이기도 하다. 1장부터 5장까지는 '짧은 글'에 대한 설명이다. 

2장 「왜 짧은 글인가?」란 제목에서 저자는 알베르 카뮈의 말은 인용한다. "분명하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독자가 모이지만 모호하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비평가만 몰려들 뿐이다."(p.23) 저자는 이 글을 통해 지금은 짧고 쉬운 글이 주목받는 시대라고 말한다. 꼭 거창한 글이 아니더라도 짧은 글로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상대방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소통)에도 짧은 글이 효과적이고, 나 자신을 알릴 때도 유리하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대표적이다. 왜 짧은 글일까? 일단 읽는 사람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 기억하기도 쉽다. 또 가끔은 궁금하게 만들고 여운을 남긴다. 짧기 때문에 임팩트가 있고, 더 오래 각인된다는 주장이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짧은 글이 가진 장점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주술 호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학교 글쓰기, 학교 문법에서는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정확한 글쓰기의 기본임을 배우지만,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는 주어와 술어가 호응이 안 되더라도 말을 뜻이 전달되는 것이 많다.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할 때는 문제 없이 소통된다. 대화의 내용을 글로 쓰면 주술 관계가 호응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비문이다. 비문은 글을 쓸 때 문장이 뒤죽박죽된 문장을 일컫는 단어다. 대화를 그대로 글로 옮길 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디지털 문화로 빠르고 복잡해졌다. 시간은 다른 어떤 시대에 비해 가치가 크다. 이런 시대에 장황하게 구구절절 늘어지게 쓴 글이나 주술 호응이 안 되면 읽어도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매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천천히 읽지 않고, 마음의 여유마저 쫒기듯 거의 없다. 짧고 쉬운 글이 필요한 이유다.

7장 「단숨에 쉽게 읽히는 글」을 어떤 글일까? 책에 따르면 쉽게 잘 읽히는 글을 위해서는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써주는 게 좋다. 웬만하면 지시대명사도 자제한다. 너무 포괄적이거나 광범위한 표현 역시 명확하지 않아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정확성과 진실성을 갖춘 글, 신뢰할 만한 표현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공감을 얻는다. 그런 면에서 요즘 많은 사람이 습관처럼 사용하는 '같다'는 표현은 자체하는 편이 좋다. 독자들은 확신이 없는 말투보다는 정확하게 확인해본 다음에 나오는 확실한 표현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또 매끄럽게 잘 읽히는 글은 '간결체, 건조체, 우유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간결체라는 건 우리가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한 문장의 길이가 짧은 글이다. 간결체의 반대인 만연체는 문장의 길이가 장황하게 늘어진 긴 글을 말한다. 건조체는 화려한 수식어들을 최대한 줄이는 문체이다. 미사여구를 마구 나열하고 싶은 욕심을 벌이고 너무 주관적이거나 감상적인 어휘를 자제하는 게 비결이다. 화려체가 아닌 건조체가 짧은 글의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우유체는 우리가 평상시에 사용하는 대화체로, 부드러운 말을 뜻한다. 군인 말투라고 하는 '다, 나, 까' 어투가 딱딱한 강건체의 가장 쉬운 예다. 기자들이 뉴스에서 사용하는 리포팅도 강건체이다. "~하는 것이다. ~한 것이다. ~라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문장을 계속 마무리하는 것도 우유체가 아닌 강건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또 문장을 마치는 종결어미를 다양하게 번갈아가면서 써보는 것을 추천한다. 매번 똑같은 종결어미로 마무리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종결어미를 사용하는 게 읽기에도 편하고 자연스럽게 잘 읽힌다고 밝힌다. 신문 기자들이 어떤 중요한 담화를 발표할 때 "○○는 ~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밝혔다. 강조했다. 역설했다. 풀이했다 등으로 어미를 다양하게 사용하라는 주문이다.

8장 「짧은 글일수록 정확하고 바른 문장이 전달력을 높인다」의 제목도 짧은 글을 강조하는 말이다. 저자는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분 중에는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면서 문장 호응이 안 되고 문맥이 어색한 건 알겠는데 도대체 어디가 잘못되고 이상한 건지 몰라서 답답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힌다. 그래서인지 긴 글보다 짧은 글을 쓸 때 맞춤법에 부담을 덜 느끼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맞춤법에 대한 두려움으로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보다는 쉽고 편하게 시작하는 게 낫다고 한다. 하지만 짧은 글일수록 정확하고 바른 문장이 전달력을 높인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짧기 때문에 더더욱 그 안에 모든 걸 정확하게 담아서 한 번에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짧은 문장은 장황한 문장에 비해 주어와 술어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주술 호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읽는 사람에게도 눈에 더 잘 띄니까 맞춤법에 어긋난 것들이 금방 티가 난다는 이야기이다. 일단 맞춤법이 틀리거나 주술 호응이 안 되는 문장은 잘 읽히지 않는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글의 흐름을 방해하고 읽는 사람의 집중력을 흩어놓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맞춤법을 통해서 글쓴이의 글을 대하는 태도가 느껴져 신뢰가 떨어지면서 읽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맞춤법에 맞지 않거나 어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쓴 문장,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문장 등은 독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는 주장이다.

글쓰기는 전문 작가이든 일반인이든 사회 생활을 한다면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이다. 글쓰기는 능력의 유무를 막론하고 소통의 기본이다. 잘 쓰고, 못 쓰고는 다음의 문제다. 가까운 사람과는 직접 대화로 말하고, 또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는 전화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시간의 제약을 피할 수 없다. 시공간의 거리로 말미암아 말로써 제대로 의사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문자가 생겨났다. 문자는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전할 수도 있고, 뒷 세대 혹은 미래의 사람들에게도 의사를 전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말과 글을 통해 지식을 배운다. 또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등에 대해서도 교육 받는다. 거기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문자이고 글이다.


저자 : 손소영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 학사, 동 대학원 언론학 석사. sbs, kbs, ebs, kmtv, m.net, cbs, mbn 등 여러 방송사에서 TV와 라디오를 넘나들며 예능부터 다큐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그 다양한 경력 덕분에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에서 방송작가 지망생들을 가르치게 됐고, 방송을 만들면서 느꼈던 짜릿함과는 또 다른 보람을 느끼며 후배이자 제자를 양성해내는 기쁨을 알게 됐다. 한겨레교육의 글쓰기 강의를 시작으로, 외교부 국립외교원 직무연수, 서울시 육아종합지원센터 실무자 대상 글쓰기 교육을 진행했다. 방송작가로 보는 이에게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글쓰기를 하다, 지금은 읽는 이에게 직접 전달되는 글쓰기를 한다. 두 가지 다른 글쓰기의 경험으로부터 짧고 쉬운 글의 힘에 대해 느끼게 되었다. 강의와 신문 연재를 통해 짧고 쉬운 글로 충분한 글쓰기의 즐거움과 치유력을 알리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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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면 철학
양현길 지음 / 초록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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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기력(無氣力)이란 우리가 사는 동안 하는 일, 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을 때 사용하는 '의지의 상태'를 말한다. 사전적 뜻이지만, 이를 철학 분야로 옮겨 생각한다면 나만의 인생을 온전히 살지 못한 것 같은 느낌으로 혼란스러운 마음 상태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우리는 사는 동안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비교되거나, 또 어떤 일에서 배제될 때 분노와 함께 현실 인식을 하게 되면 비로소 의욕이 꺾이는 무기력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경우 누구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특히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짧고 강렬한 자극들에서 재미를 찾는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은 일시적인 회피일 뿐, 장기적으로는 무기력감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이 책 『사는 게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면 철학』의 저자 양현길은 지적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만 우울증 환자 100만 명 시대라고 한다. 또 10명 중 7명은 삶이 불행하다고 답변하는 시대다. 어떻게 하면 삶의 의미를 찾고 무기력에서 회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저자가 펜을 들었다.

인생의 불행, 무의미함, 공허함 등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를 ‘철학적인 관점’으로 다룬 이 책에는 오랜 시간 삶의 의미를 고찰하고 해석해온 철학자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내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길 원하는지 등 내 인생을 위한 고민에 대해 저자는 철학자들의 통찰을 전하며, 무의미에 관한 의미까지 성찰하게 한다. 저자는 오히려 이 책에서 무의미함이 자기 성찰과 성장을 위한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무의미함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더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외로움, 공허함, 괴로움, 무의미함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왜 느끼는지 알아야 한다. 저자는 이런 감정이 올라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으로 더 의미 있는 삶이라고 느낄 만한 일상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철학자들의 말을 빌려와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냈다. 더 큰 우울감이 찾아오거나 삶의 가치와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기 전에 내면의 자아가 목소리를 높이는 이 순간, 우리는 인생에서 중요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철학을 만날 때다!」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무의미 속에 숨어 있을지 모를 삶의 의미를 찾고 사소한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무의미와 무기력감은 목표만을 추구하는 집착에서 벗어나,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신호라고 해석한다. 우리는 스스로 이 신호를 받아들여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과 자유로워지는 방법,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책을 통해 인생에서 놓치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무기력감을 느낄 때 내 삶을 어느 방향으로 개척해 나갈지 성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나'(자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마다 철학자들이 건네는 질문에 대해 고찰해보고 그들이 말하는 삶의 의미를 곱씹어본다면 내가 원하는 방향의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제언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매일 반복되는 삶을 살아간다. 아침에 눈 뜨고, 밥 먹고, 일을 하고, 잠이 들고, 다시 눈을 뜬다. 그렇게 일주일, 한달, 1년이 변하지 않는 우리의 일상이다. 현대사회는 생계를 잇기 위해서는 자신이 잘하는 일을 선택해 평생 먹고 살기 위해 하면서 산다. 사회의 시스템이 그렇게 짜여졌다. 이처럼 변화없는 일상이 10년이 되면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다가온다. 열심히 살아서 하는 일도 어느덧 몸에 배고, 먹고 살기 위해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게도 느껴지고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주위를 아무리 돌아봐도 자신을 받아줄 조직은 별로 없다. 상실감도 생기지만 이미 주변 환경은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싱태다. 이 경우 누구나 삶에 대한 의욕은 점점 떨어진다.

저자는 이런 무기력을 느끼는 경우가 무척 많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원했던 일이 좌절되고, 하고 싶은 않은 일들로 일상이 채워지면 문제를 겪는다. 또 다른 사람은 욕망을 쫓느라 내면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놓칠 수도 있다. 삶에 공허함이 찾아오는 때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타인의 시선과 가치를 의식하며 살다가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살지 못한 것을 깨닫고 혼란을 겪으며 후회하게 되기도 한다.

문제는 앞만 보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뒤늦게 정신을 차릴 때쯤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런 상태에 빠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대부분 처음 사회에 발을 들여놓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시작하면 좋아하게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선택한 일에 빠져 정신없이 지낸다. 어쩌면 사회 조직이 그렇게 짜여 있는 것도 모르고 사회에 뛰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일부는 싫더라도 생계를 위해 뛰어들 수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든,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든, 결혼을 했든 이런 외적인 조건들과는 상관없이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이런 무의미함 속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감정은 외로움과 고립감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렇게 무기력함과 공허감이 몸을 지배하게 되는 것을 '실존적 공허의 상태'라고 저자는 말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수많은 즐길 거리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사회에서 이런 공허함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짧은 동영ㅅ아부터 다양한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게임도 기술의 발전으로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몰입감을 제공하고 컴퓨터를 굳이 켜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여행은 더 이상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고, 넘쳐나는 정보 덕분에 해외로도 쉽게 떠날 수 있다.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다면 관련 영상을 찾아보거나 마음만 먹으면 직접 현장에서 즐길 수도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 많은 즐길 거리가 삶의 공허함을 완전히 채우지는 못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현대인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수백억 대 자산가의 집은 어떤 모습인지, 연예인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플랫폼 서비스 덕분에 새로운 만남이 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다양성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정작 '나'를 찾기가 점점 어렵다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익명으로 활동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간편하게 만들어주지만 직접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점점 두려워지기도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책 『사는 게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면 철학』은 16명의 철학자가 서로 다른 시각으로 통찰한 삶의 진리를 담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과 능력주의에 빠진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만 뽑아 모두 16개 부(部)으로 구성됐다. 1부 「카뮈- 부조리 속 반항하는 인간이 되어라」, 2부 「윌리엄 제임스- 삶이 살 가치가 있다고 믿어라」, 3부 「쇼펜하우어-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경험을 즐겨라」, 4부 「아우렐리우스 -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라」, 5부 「석가모니- 고통도, 괴로움도 다 공(空)함을 깨달아라」, 6부 「칼 융- 잃어버린 나의 진짜 모습을 찾아라」, 7부 「『중용』- 적당하고 적절한 중간의 균형을 찾아라」, 8부 「니체- 나만의 색깔을 창조하면서 살아라」, 9부 「공자- 혼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나를 지켜라」, 10부 「몽테뉴- 죽음을 선물로 여기며 나답게 살아라」, 11부 「하이데거- 고유한 나, 본래의 나로 살아라」, 12부 「에리히 프롬- 외롭다면 창작하고 나를 사랑하라」, 13부 「칸트- 온전히 나의 의지로 채워진 시간을 가져라」, 14부 「비트겐슈타인-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실천하라」, 15부 「세네카- 원하는 뭔가를 갖기 위해 집착하지 마라」, 16부 「아리스토텔레스- 오직 그 활동에만 몰입해 관조하라」 등이다. 

책에 등장하는 16명의 철학자들과 철학·사상은 철학 에세이나 철학사 등을 한두 권 읽었다면 이름은 다 아는 인물들이다. 현재 우리에게 사유와 통찰을 통한 자신만의 철학 사상을 널리 알린 현자들이다. 1부에서 카뮈는 반복되는 일상과 능력주의에 빠진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치’가 주인이 되게 두지 않고,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 후회 없이 사는 방법에 대해 안내한다. 카뮈는 자신의 저서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일상-권태-무기력으로 이어지는 현대인의 삶을 조명한다. "아침에 일너나 전차를 타고 출근하고,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네 시간을 보낸다. 식사 후 다시 전차를 타고, 또 네 시간의 일을 하고 나면 저녁 식사와 수면이 기다린다. 월, 화, 수, 목, 금 그리고 토요일까지, 똑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하루하루는 대체로 문제없이 이어지지만,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왜?'라는 질문이 떠오르고, 놀라움과 함께 깊은 권태가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한다."(p.21)

저자는 현대의 삶은 무의미함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라고 말한다. 과거에 비하면 과학의 발전으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의 어떤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는 세상에 보편타당한 진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카뮈 철학에 접근해 들어간다. 이에 비해 중세시대의 유럽을 살펴보면, 모든 것은 신의 섭리로 이해할 수 있었고, 세상은 인간에게 매우 친절했다. 인간이란 언제나 신과 연결되어서 삶을 함께 살아갔다. 신이 굳건한 세계에서는 인간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중세는 우리가 아는 바대로 '신의 세상'이었다. 인생의 성공도 실패도 다 신의 뜻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의 부유한 귀족들은 때때로 신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성지 순례를 떠났다. 예루살렘, 로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등을 순례하는 것은 신에 대한 헌신과 감사의 표시였다. 자기가 부자가 된 것은 모두 신의 은총 덕분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재앙이 벌어졌을 때도 신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상황이라고 여겼다. 14세기 초반에 유럽은 심각한 기후 변화와 농업의 실패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이때 사람들은 굶주림과 기근이 신의 시험이라고 여겼으며, 교회에서는 대규모 기도회와 미사를 열어 신의 자비를 구했다.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성직자들은 백성에게 기도를 하도록 독려했고, 많은 사람들은 신의 축복을 간청하며 종교적인 신앙을 더욱 강화하도록 지도했다. 이러한 신앙의식은 사람들이 극심한 기근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도와주었다. 심지어 인간의 죽음조차도 신의 섭리로 설명이 가능했다. 신의 섭리에 따라서 살다 보면 천국과 지옥이라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김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확하고 분명한 논리다. 게다가 사후 세계에 대한 확고한 믿음 덕분에 지금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껴도 극복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겼다. 이렇게 과거에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죽음조차 모두 신의 뜻에 달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신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신에게 감사를 하면 되었다. 

과거와 달리 현대사회에서의 죽음이란 오히려 삶의 무의미함을 부추기는 도구가 되었다. 우리가 삶을 열심히 살았다고 해도 죽으면 모든 것에 대한 의미가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후 세계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만 있을 뿐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없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카뮈는 세상이 인간에게, 사람은 어떤 가치가 있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그 어떤 답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앞서 언급한 저서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카뮈가 말한다. "부조리는, 인간의 요구와 세계의 불합리한 침묵이 만났을 때 생겨난다. ··· 세계는 불안에 휩싸인 인간에게 아무 응답도 주지 않는다. ··· 인간은 계속해서 이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이 세상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상태가 바로 부조리다."

2부의 윌리엄 제임스는 크게 기대하면 그만큼 좌절도 크다고 말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작은 의미들을 발견한다면 삶에 대한 믿음은 자연스레 더욱 강해질 것이다. 3부에서 쇼펜하우어는 삶의 고통과 결핍이 욕망에서 온다고 말한다. 욕망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도록 권하면서 고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4부에서 아우렐리우스는 외부의 압박으로 인해 괴로울 때 그 상황 자체보다는 우리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지가 중요함을 말한다. 5부에서 석가모니는 불교의 핵심 주제인 괴로움에 대해 논하며, 괴로움은 욕망에 의한 허상이며, 괴로움을 없애기 위한 깨달음에 대해 설명한다. 6부에서 융은 페르소나, 즉 사회적 가면을 벗고 진정한 나를 찾아야 공허함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나의 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인식하고 포용해 현실적인 시선을 갖는 방법을 설명한다. 7부에서는 『중용』이 설파하는 균형의 중요성을 말한다. 8부에서 니체는 나만의 색깔을 찾아 스스로 가치를 만들기를 권한다. 창조적인 활동을 하고 나만의 것들을 쌓아간다면 삶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9부에서 공자는 우리가 마음을 넓게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나만의 기준이 확고해야 타인의 평가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10부에서 몽테뉴는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도록 해야 하며, 나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11부에서 하이데거 역시 죽음을 생각하며 내 삶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에 집중하도록 권한다.

12부에서 프롬은 외로움에 대해 다룬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사랑과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 혼자 있는 훈련을 하며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방법을 설명한다. 13부에서 칸트는 자유를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제한과 규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진짜 자유를 누리는 방법을 설명한다. 14부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문제가 있을 때 그 해결방법은 그것들의 무의미함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실된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을 안내한다. 15부에서 세네카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지키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내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과 불필요한 것들을 구분하고,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이끈다. 16부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정의를 설명하고 이성의 능력을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면서, 중용과 관조를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다.


저자 : 양현길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하여 심리, 철학 등 다양한 주제로 독서와 글쓰기를 10년 넘게 계속해 왔다. 영국 노팅엄 대학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전공으로 석사를 졸업했으며, 현재는 인공지능 기술 스타트업에서 사업전략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글쓰기 경험을 토대로 철학 전문 유튜브 채널 <양작가의 철학서재>를 운영하면서 구독자들에게 다양한 동서양 철학자들의 생각과 삶을 연결하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마음도 잘 퇴근했나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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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밑의 검은 제국 - 인간을 닮은 가장 작은 존재 개미에 관하여
동민수 지음 / 유노책주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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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개미를 연구한 책을 보면 독자는 '파브르'라는 프랑스의 곤충학자가 생각난다. 어렸을 때 여름방학 숙제에 '곤충 채집'이 들어 있었는데 잠자리, 나비 등을 잡아 개학하면서 과제물 박스를 들고 갔다. 그때는 아무도 개미를 곤충 채집에 이용하지는 않았다. 아마 너무 작아서 과제물로 제출하기는 부적절해서였을 것이다. 개학 첫날 선생님이 곤충 채집에 개미를 채집해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지적을 하자, 누군가 "선생님, 개미도 곤충이에요?" 하고 되물었다. 그때 선생님의 답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곤충학자 파브르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 주셨고, 개미가 곤충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생물의 분류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지만 우리가 알아듣기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파브르에 대한 선생님의 가르침은 독자 개인적으로는 충격이었다. 특히 개미 관찰과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는 이야기와 세계에서 처음으로 〈곤충기〉를 써서 위인이 되었다는 말씀이었다. 

누구나 어렸을 적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개미의 긴 행렬을 유심히 봤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독자는 간혹 개미집에 물을 부어 개미가 어떻게 되는지 보는 짓궂은 장난도 한 기억도 있다. 개미는 우리 주위에 흔히 존재했기 때문에 주목하거나 특별히 관찰할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상에 불편함을 주는 면만 부각될 뿐이고 조금은 '귀찮은 존재'였다. 특히 빵이나 먹을 것을 떨어뜨렸을 때 잠시 딴 일을 하고 우연히 내려다본 땅바닥에서 개미들이 몰려들어 이를 잘라 들고, 열 맞춰 집(개미 구명)으로 가던 모습은 대단해 보여서 신기한 듯 오랫동안 관찰했던 기억도 있긴 하다. 그리고 국어 시간에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를 읽었던 기억도 난다. 그때부터 개미는 부지런하고 베짱이는 게으르고 일하지 않으면서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는 상징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이 책 『내 발밑의 검은 제국』은 개미의 삶에 대한 개미 관찰 연구 기록이다. 저자 동민수는 개미 진화생물학 연구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개미의 삶의 방식이 인간과 놀랍도록 닮았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개미의 세계는매우 다채롭다. 이들을 단순히 작고, 까맣고, 모여 다니는 생명체로 정의하는 것은 이들의 놀랍도록 복잡한 생태와 다양한 생활 방식을 무시하는 일이다. 개미의 세계를 통해 우리는 진화, 적응, 협력의 힘을 다시 배운다.

'개미를 알수록 인간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개미』는 인간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베르베르는 20여 년간 개미를 관찰하고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미 사회와 인간 사회의 놀라운 유사성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개미들이 한 왕국을 건설하고, 다스리며, 성장시키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놀랍도록 닮았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 또한 개미 사회가 단순한 곤충의 이야기를 넘어 거울처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기 때문이라고 저자 동민수는 말한다. 개미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연구한 저자는 개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미를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신선한 통찰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밝힌다. 

저자의 관찰 연구에 따르면 개미들은 무리를 지어 살며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고 긴밀하게 연결된 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정작 우리는 개미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른다. 사실 개미는 너무 작아 일상 속에서 그들의 얼굴이나 사회 구조를 관찰할 기회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단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개미의 세계는 경이로움과 신비로 가득 차 있다. 발밑에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제국, 개미들의 사회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흥미로운 세계를 보여 준다. 

1cm도 되지 않는 개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사실 개미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생명체라고 저자는 개미 관찰로 발견한 많은 것들을 이 책에서 풀어내고 있다. 개미 사회는 철저한 역할 분담을 통해 모두가 특정 임무를 맡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개미는 먹이를 찾고 둥지를 유지하며, 병정개미는 집단을 보호하고, 여왕개미는 번식에 집중하는 등 명확한 역할이 주어진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는 마치 인간 사회에서 직업에 따라 다양한 역할이 나뉘어 사회가 유지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또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면모도 인간과 비슷하다. 위험이 닥쳤을 때 개미는 자신을 희생해 집단을 구하는데, 이는 마치 전쟁 중 자신의 생명을 던져 동료를 구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처음에는 잘 관찰되기 어렵지만 개미 사회도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다른 집단을 약탈하고, 여왕을 암살해 권력을 빼앗고, 다른 개미를 평생 노예로 부리기도 한다. 인간 사회처럼 개미 사회도 협력과 경쟁, 빛과 그림자가 함께 존재하는 다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연구 결과를 써내려 간다. 이 책 『내 발밑의 검은 제국』은 단순히 개미의 생태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닮은 개미의 세계를 가장 흥미로운 방식으로 소개한다. 열네 살 때부터 개미의 매력에 푹 빠진 저자는 일본 오키나와과학기술원, 독일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대학교, 프랑크푸르트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 등 여러 연구기관에서 개미를 연구하며 깊이 있는 지식을 쌓아 왔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지구를 움직이는 땅속 군주와의 만남-개미에 관한 오해와 진실〉, 2장 〈개미는 왜 멸종을 걱정하지 않을까?-진화하는 개미들〉, 3장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탄생한 거대 제국-체계를 만드는 개미들〉, 4장 〈승자는 상황도, 조건도 탓하지 않는다-전략적인 개미들〉, 5장 〈뭉치면 살 것이고 흩어지면 죽을 것이니-방어하는 개미들〉, 6장 〈속이고 배신하고 착취하는 약탈자들-권력을 쥔 개미들〉, 7장 〈결국 이타적인 존재만이 살아남는다-공생하는 개미들〉, 8장 〈광활한 지구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생존 전쟁-위협받는 개미, 위협하는 개미〉 등이다. 

1장에서는 부지런함의 상징인 개미가 사실은 워라밸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간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같이 우리가 몰랐던 개미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친다. 또한, 개미가 의학의 키맨이라는 이유부터 이들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이야기까지 개미 연구가 우리에게 안겨 줄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본다. 2장에서는 개미의 기원을 탐구하며, 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지구에 나타났는지를 다룬다. 수억 년 전 공룡이 지배하던 시절에도 이미 존재했던 개미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여러 차례 대멸종을 겪고도 살아남은 이들의 적응력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다시금 일깨운다.

3장은 손톱만 한 작은 개미들이 어떻게 거대한 군체를 이루고 제국을 세우듯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지를 다룬다. 생명이 싹트는 봄은 새로운 개미 왕국들이 탄생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때 여왕개미는 일명 ‘결혼비행’을 통해 짝짓기를 한 뒤, 날개를 떼어내고 일개미를 출산해 제국의 시작을 알린다. 개미들의 체계적인 조직력과 분업 체계를 보며, 마치 거대한 제국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듯한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4장에서는 사막의 열기 속에서 살아가는 사막개미, 군대식 생활을 하는 군대개미, 피를 빨아 생존하는 드라큘라개미 등 극한 환경에서도 생존하는 개미들의 치밀한 전략을 소개한다. 개미들의 놀라운 적응력은 변화무쌍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훈을 전해 준다. 5장은 개미들이 자신과 군체를 보호하기 위해 구사하는 다양한 전략들을 탐구한다. 강력한 턱과 독침은 물론, 위장술, 자폭 등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존 경쟁을 벌이는 개미들의 치열한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으니 놓치지 않길 바란다. 6장에서는 개미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룬다. 권력 다툼으로 여왕을 암살하거나, 적의 시체를 방패로 삼는 등 때로 인간 사회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들도 보인다. 이들의 생존 본능은 때로는 우리 사회의 이면과도 닮아 있다. 7장에서는 개미가 다른 생물과 어떻게 협력하고 공생하며 살아가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개미들은 여러 생물들과 협력하여 더 큰 생존 이점을 얻고, 유기적으로 얽힌 자연 속에서 공존하며 협력의 가치를 몸소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8장에서는 불청객들로 고통 받으면서도 다른 생물들에게 위협이 되는 개미의 양면성을 조명한다. 자연의 개미는 단순히 부지런하고 협력적인 생물 이상의 복잡한 존재로, 적응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며 자연의 생태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모든 상황, 모든 생명에게는 다양한 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되새겨 보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자연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조화를 이루는 개미들의 삶을 엿보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운영 방식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다. 작지만 강렬한 생명들이 만들어 내는 복잡한 세계를 탐험하며, 우리 역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개미들이 보여 주는 생존의 지혜를 통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협력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저자는 기대한다.

개인적으로 독자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와 비교하지 못할 만큼의 지능을 가진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단어인 줄 알았던 '집단 지성'이란 문구가 동물, 특히 작은 곤충에도 적용한 부분이다. ‘집단지성’이란 여러 사람이 의견을 공유하고, 각자의 능력을 쏟아 부으며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는 모습을 가리킨다. 이러한 집단지성의 중요성은 다양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다. 저자는 '집단 지성'이란 개념이 미국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가 개미 사회를 관찰하다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밝힌다. 개미는 매우 작은 곤충이지만, 수천에서 수백만 마리가 모이면 놀라운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개미는 물류 시스템, 인터넷 네트워크,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 여러 분야에서 참고할 정도로 길 찾기의 달인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들 문구와 관련된 부분을 이 책의 각 장에서 다루고 있기도 하다. 개미들은 먹이를 찾을 때 페로몬을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최적의 길을 찾아낸다. 개미가 먹이를 발견하면 페로몬을 분비해 다른 개미에게 길을 안내하고, 이를 따라가는 개미들이 더 많은 페로몬을 남겨 먹이로 향하는 최적의 경로가 만들어진다. 또한, 평균 44톤의 흙을 파내어 거대한 농장을 만들기도 한다. 철저한 역할 분담과 협력으로 복잡한 터널과 방을 만들고, 그 안에서 곰팡이를 재배해 먹이로 삼는다고 한다.

개미 사회가 인간 사회와 닮았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미는 효율적으로 먹이를 찾고, 집을 짓고,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을 세우며, 서로 간단한 신호를 주고받아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마치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서로 협력하며 인생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개미들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복잡한 사회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식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생존의 원칙을 몸소 실천하기에 우리에게도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 책은 지혜롭게 살아가는 개미들의 세계 속으로 우리를 안내해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저축해 부자가 되기 어려우니 가상화폐나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 개미 세계에도 목숨을 담보로 하여 다른 개미집을 통째로 노리는 이들이 있는데, 바로 기생성 개미들이다. 이들은 다른 개미에 기생하며 원래 잘 살고 있던 여왕개미를 죽이고 그 개미 군체의 여왕개미 행세를 하며 왕국을 통째로 접수한다. ‘살아남기’라는 하이 리턴을 위해 개미들은 목숨을 걸고 다른 개미집의 권력을 찬탈한다. 어떤 기생성 개미들은 다른 개미집을 공격해 그 개미집의 애벌레와 고치를 훔쳐와 자신들을 위해 대신 일해 줄 노예로 부린다. 우리의 시선으로 보기엔 참 잔혹하기 그지없다. 개미 사회를 들여다보면 놀랍고 때론 불편할 정도로 사람들의 어두웠던 역사와 닮아 보이기도 한다. 사회성 기생 개미들이 벌이는 잔혹한 드라마는 외딴 정글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희귀한 현상이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p.156) - 「노예 제도가 합법인 사회」 중에서


저자 : 동민수


개미 진화생물학 연구자. 중학생 때 개미의 매력에 푹 빠진 뒤로 북남미, 유럽,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개미의 생태를 관찰했다. 강원대학교에서 응용생물학을 전공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 P3(Prospective PhDPreview) 과정을 수료하고 일본 오키나와과학기술원(OIST) 생명복합다양성 실험실에서 연구인턴으로 근무했다. 현재 독일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대학교, 예나 계통진화박물관, 프랑크푸르트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에서 개미의 진화생물학을 공부하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연구소에서 곤충 CT를 분석하는 일도 하고 있다.

개미의 매력은 알면 알수록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점에 있다. 개미는 크기는 작지만 놀랍도록 복잡한 생태와 다양한 생활 방식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살며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난관에 부딪힐 때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농사와 목축을 하는 등 고도의 경제 활동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다투거나 속임수를 쓰고, 전쟁을 벌이거나 다른 개미를 노예로 부리기도 한다. 마치 인간 사회처럼 말이다. 『내 발밑의 검은 제국』 책에서는 개미 사회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내용을 선별해 소개하고자 했다. 개미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며, 그들의 행동과 생활 방식을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 사회와 닮은 이 작은 생명체의 놀라운 지혜를 통해 우리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저서로는 《부지런한 일꾼 개미》, 《한국개미사전》, 《한국개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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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진찰실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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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스피노자의 진찰실』은 표제어나 표지화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는 다른 소설 작품이다. 표지로 봐서는 철학 에세이나 행복한 일상을 다룬 에세이처럼 보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 소설 작품은 나가노현에서 지역 의료에 종사하는 현역 내과 의사인 작가인 나쓰카와 소스케의 최신작이다. 이 작품은 누계 340만 부가 팔린 밀리언셀러 시리즈의 작가이기도 한 저자가 출판사의 의뢰를 받은 때로부터 14년 만에 완성했다고 알려졌다. 현직 의사로서 바쁜 틈에 소설을 펴내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러나 '14년의 비밀'은 예상과는 다른 데 있다. 이번 소설은 오랜 기간 현역 의사로서 수많은 생명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깨달은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에 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소설에 대해 독자들에게 출간의 말을 전한다.

“의료가 소재입니다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수들의 갈급한 권력투쟁도 없고 의식이 돌아오라고 절규하며 심장마사지를 하는 긴박한 장면도 없습니다. 다만 기적이나 음모, 절규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제 능력이 허락하는 한 온 힘을 다해 썼습니다.”

이 작품은 출간 즉시 서점 관계자와 독자로부터 극찬 세례를 받았고 급기야 일본서점 대상 4위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독자들은 “많은 이가 읽었으면 하는 책”, “각자가 죽음을 대하는 법,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다” “초고령화 사회에 인간의 ‘마지막’이 그려진 소설” 등 감동을 쏟아냈다.


“대학 의국에 있을 때 그가 사용하던 책상 위에는 변변한 의학서적은 없었지만, 쓸데없이 어려운 철학책들은 수북이 쌓여 있었으니까.”

“철학책이요?”

“뭐였더라. 칸트, 플라톤, 흄, 스피노자…. 적어도 의사 책상으로는 보이지 않았지.”

“예사롭지 않은 독서 편력이군요. 광범위한 공부이고요.”

“그러고 보니 가쓰라기 편집장은 문학부 철학과 출신이라고 했던가?”

“네. 학창 시절에 제 나름대로 다양한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죠. 그러니까 데쓰로 선생이 플라톤이나 칸트와 같은 정통파 책을 읽었다면 이해하겠는데, 스피노자라니…. 참으로 흥미롭네요.”(p.74~75)

이 소설은 단순한 의료계 안팎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대하는 휴머니즘이 가득한 의사의 치료와 치료 과정의 이야기다. 또 환자와 의사의 공감, 불치의 병으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보여준 휴머니즘이 잘 드러난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모든 생명체처럼 언젠가는 죽는다. 지구 등 우주적 관점에선 '순간'에 불과하지만 한 인간에게 죽음은 짧지 않은 생애의 마지막이자 전부다. 환자와 의사는 이런 시각에서 공감한다. 죽음에 대한 지나친 무게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인간적 관점과 전체적 관점으로 보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는 모두 필멸의 존재로서 살아 있는 동안 생명에서 죽음으로 가는 과정 속에 처해 있다.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를 너무 무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원동력이다. 이 소설이 휴머니즘 가득한 의사의 시선과 환자의 마음으로 들어가고, 치료는 서로가 원하는 만큼 이뤄진다. 의사가 최선을 다하는 과정 하나하나는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실행됨을 독자들이 깨닫게 하는 소설이다. 이 의사의 책상에 독특하게도 스피노자의 책이 꽂혀 있다. 

이 소설 작품은 이 매력적인 주인공 마치 데쓰로와 함께 어느 순간 ‘소박하고 행복한 시간의 흐름 속에’ 빠져들게 한다. 출판사 측에서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 데쓰로의 말을 인용한 문장은 주인공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기적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어. 의사는 생명의 최후에 희망의 등불을 처방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교토의 지역 병원에서 일하는, 저자 나쓰카와 소스케와 같은 직업을 가진 내과 의사이다. 이름은 마치 데쓰로. 데쓰로는 저자의 분신처럼 빙의한 작품임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데쓰로는 환자를 치료하는 자신의 소신이 “설령 병이 낫지 않아도, 남겨진 시간이 짧아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어. 분명히 그럴 수 있다는 게 내 나름의 철학이거든. 그 행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계속 생각해.”라고 말한다. 데쓰로가 삶의 마지막을 앞둔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계속 질문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할 뿐이다. 스피노자를 즐겨 읽는 데쓰로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스피노자의 철학과 많이 닿아 있다.

스피노자는 독자들이 잘 알다시피 서양 철학자다. 그의 철학과 사상, 생애를 모른다고 이 책을 읽기 어렵거나 이해가 힘들지는 않다. '스피노자의 진찰실'이란 별명이 붙은 것은 주인공 데쓰로의 치료 과정에서 붙여진 별명이지 그의 삶이 스피노자와 같아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피노자 철학의 근원을 알아두는 것이 데쓰로의 치료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여기에 철학사전을 참고해 간단하게 설명한다. 스피노자는 유태인 상인의 아들로 네덜란드 철학자다. 영국의 베이컨, 프랑스의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신(新)시대를 환영하는 사상을 표현했다. 따라서 〈자연 지배〉와 〈인간 개조〉가 그의 사상의 중심이었다. 그의 철학은 한편으로는 범신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유물론적 주장으로도 해석된다. 관념론자들은 그를 범신론자로서 관념론적으로 해석하려 하지만, 스피노자의 기본 사상은 오히려 유물론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의 사상의 밑바탕이 되는 '신'(神)은 무한한 계속성을 가지며,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실체로 해석될 뿐 아니라 또 '자연'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유물론은 형이상학적이고, 동적이지 않고 정적이며, 또 발전에 대한 관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은 속성이 개체로서 규정되었다는 의미에서 '양태'로 간주된다.(철학사전, 2009)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인간의 의지로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다. ‘쓰나미나 지진을 없앨 수 없고, 환자 몸속에 생긴 췌장암을 없애는 것도 불가능’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노력하라는 말 속에 희망의 빛이 일렁거린다.

“이런 희망 없는 숙명론 같은 것을 제시하면서도 스피노자가 재미있는 점은 인간의 노력을 긍정한 데 있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노력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텐데, 그는 이렇게 말했거든. ‘그렇기에’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인공 데쓰로의 말처럼 이 소설에는 놀라운 기적도, 교수들의 권력투쟁도, 음모도 없다. 지역의 작은 병원을 무대로, 이런저런 질병으로 인해 고달픈 인생을 사는 보통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삶의 본질과 죽음의 의미를 따듯하고 상냥한 필치로 담아냈다. 특히 주인공이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노령의 환자와 그 가족에게 오직 병의 치료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남은 생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진료를 펼치는 모습은 진한 감동을 전한다. 또한 뛰어난 의술로 치료에 난관을 겪는 환자들을 살려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역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여러 죽음의 순간을 묘사하지만 신기하게도 읽는 이의 마음에는 따뜻함과 뭉클함이 차오른다.

주인공은 암 환자에게 힘내라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대신 ‘서두르지 말라’고 할 뿐이다. 생을 다하고 떠난 사람에게는 마지막으로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진심 어린 말을 건넨다. 어느새 읽는 이도 환자의 마음이 되어 어깨에 힘이 빠지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칫 신파적인 내용이 될 수 있지만 결곡한 문장에 아름다운 교토의 풍경까지 더해져 “소박하고 행복한 시간의 흐름 속에” 빠져들게 한다. 모처럼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똑같은 일상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고 싶다면 이 소설을 강력히 권유한다.

교토가 주 무대이기에 이야기 속 곳곳에 등장하는 일본의 옛 수도(우리의 경주 같은) 교토의 명물 화과자도 소개된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당장이라도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싶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으니 주의하시라는 편집진의 귀띔이다.

이 소설의 의뢰자이자 편집자 시노하라 이치로(미즈즈키 대표이사)는 출간 후 소감을 남긴다. “나쓰카와 씨에게 작품의 집필을 의뢰하고 나서, 14년의 세월을 거쳐 탄생한 것이 이번 작품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행복’이라는 깊고 큰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독자들에게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으로 전달됩니다. 굉장하면서도 뛰어난 한 의사가 환자나 동료와 진지하게 마주하는 모습을 그린, 최고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편집하는 과정에서 『스피노자의 진찰실』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이 작품을 출판할 수 있어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독자는 서평에서 소설의 줄거리를 세세하게 쓰면 오히려 스포일러가 된다는 원칙에 동의한다. 독자들의 '읽는 즐거움'을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영화를 보러 가면서 영화의 줄거리를 미리 듣고 가는 것처럼 '김 빠진 맥주'일 테니까. 줄거리를 간략하게 옮기는 데 한계가 있지만 최소한의 배경과 주제는 드러나야 하기 때문에 간략하게 서너 문장으로 압축해 본다. 

마치 데쓰로는 교토의 하라다 병원에서 일하는 내과의사이다. 싱글맘으로 아들을 키우던 여동생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다. 홀로 남겨진 조카를 돌보기 위해 촉망받던 실력 있는 의사 데쓰로는 격무에 시달리던 도심의 대학병원을 떠나 작은 동네 병원의 의사로 이직을 결심한다. 데쓰로의 실력을 아는 대학병원의 부교수 하나가키는 애제자인 여의사 미나미를 보내 그에게 연수를 받게 한다. 처음에 미나미는 죽음을 앞둔 환자를 대하는 데쓰로의 태도에 미심쩍은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데쓰로의 깊은 의중과 놀라운 실력을 목격하고 동경하는 마음을 품는다.

미나미와 함께 평소와 같이 죽음을 앞둔 고령 환자들을 회진하던 데쓰로에게 하나가키로부터 급한 전갈이 도착한다. 대학병원에서 치료하던 소년의 병세가 급하게 악화돼 한 시간 반 뒤에 수술을 해야 하는데 데쓰로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그는 대학병원 출입금지를 당한 상태라 신분을 감춘 채 비밀리에 수술을 도와야만 했다. 마침내 데쓰로는 수술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다른 의사들이 가득한 수술실에 들어선다.


데쓰로는 아키시카가 어떤 가혹한 일을 겪은 탓에 정신과에서 내과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나베시마가 말끝을 흐렸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른다. 물어볼 생각도 없고, 들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오히려 죽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데쓰로가 나지막하게 말문을 열었다. 하필 데쓰로의 말과 함께 종횡무진 활약하던 아키시카의 기체가 적의 직격탄을 맞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는 어깨를 약간 움츠렸지만 고개는 들지 않았다. 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게임에 몰두한다. 데쓰로도 화면을 응시한 채 계속 말을 이었다.

“환자분들의 마지막을 지킬 때마다 생각해요.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더 알고 싶어요. 죽음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최후의 시간이 다가온 환자에게 자신 있게 말하면서 안심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당신이란 사람은….”(p.181~182)

데쓰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움직이지 않았다. 여름과 가을이 녹아 하나로 섞인 계절의 틈새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친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자전거 벨 소리가 울렸다가 멀어져 갔다.

“나는 말이야, 미나미 선생.”

데쓰로가 고개를 바로 세우며 입을 열었다.

“의료라는 것에 큰 기대도 희망도 갖고 있지 않아.”

미나미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의사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의료의 힘이란 정말 미미한 것이라고 생각해. 인간은 덧없는 생물이고 세상은 끝까지 무자비하고 냉혹해. 나는 그 사실을 여동생의 임종을 지켰을 때 정말 뼈저리게 느꼈어.”

잠시 입을 다문 데쓰로는 깊은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무력감에 사로잡혀서도 안 돼. 그걸 가르쳐 준 것도 여동생이지. 세상에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산처럼 넘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다고 말이야.”(p.260~261)


저자 : 나쓰카와 소스케(なつかわ そうすけ, 夏川 草介)


197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신슈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한 후 의사로 일하고 있다. 2009년 『신의 카르테』로 제10회 쇼각칸문고 소설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이 작품은 2010년 서점대상 2위에 올랐고, 이어서 출간된 『신의 카르테 2』, 『신의 카르테 3』, 『신의 카르테 0』을 포함하여 전체 32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인기에 힘입어 2011년과 2014년에는 사쿠라이 쇼와 미야자키 아오이 주연으로 영화화되었으며, 2021년 도쿄TV에서 스페셜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었다. 『신의 카르테 4』가 출간되었으며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었다. 나쓰카와 소스케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합친 펜네임으로, 나쓰는 나쓰메 소세키, 카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스케는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소는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 「풀베개(草枕)」에서 따왔다. 단편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는 나쓰카와 소스케의 첫 번째 판타지 소설로 「은하철도 999」의 모티프가 되었던 『은하철도의 밤』의 21세기판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화제가 되었다. 그외 단편 『시작의 나무』 등이 있다.


역자 : 박수현


일본 와세다대학교 제1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회사생활이 힘드냐고 아들러가 물었다』, 『셰익스피어의 말』, 『잠 못들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 『혼자 공부하는 영어습관의 힘』, 『생각 하나 바꿨을 뿐인데》 외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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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위로 - 모국어는 나를 키웠고 외국어는 나를 해방시켰다
곽미성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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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언어의 위로』는 프랑스로 유학 간 저자 곽미성이 프랑스어를 체화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표제어로만 해석한다면 자칫 우리말로 우리나라에서 우리 삶을 위로하는 메시지가 담긴 것 같지만 사실은 저자의 프랑스어 '해방 일지'다. 또 모국어가 아닌 외국의 언어가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관한 저자의 내밀한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의미가 되지 못하는 이질적인 소리가 너무나 피로해서 수영장 물속으로 몇 시간씩이나 도망치던 초기 유학 생활의 이야기도 이 책에 담았다. 물속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안정감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모든 소리로부터 해방된 유일한 곳이니까. 이 시기 저자 자신에게 프랑스어는 '소음'이고 그들에게 저자의 프랑스어 역시 '소리'에 불과했을 때의 답답함과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도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저자가 모국어와 프랑스어를 오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 과정이 눈물겹게 느껴진 이유다. 책에 표현된 많은 부분이 '정말 힘들었겠다'라는 공감을 자아낸다. 

저자에 따르면 유학 생활에 적응하며 또 그들의 감성을 이해하면서부터는 자신의 일상이 훨씬 신선하게 다가온 시기도 있었다. 자신의 프랑스어가 더 이상 프랑스 사람들과의 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을 거쳐서다. 서로의 감성과 감정을 아낌없이 적소적재에 토해내기까지에는 많은 노력이 뒤따랐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와는 많이 다른 프랑스의 문화를 제대로 인지하면서부터 프랑스 사람들과 그들의 말로 감정을 주고받기까지 노력도 돋보인다. 이 때문에 출판사 소개글에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적이다."고 적어놓은 것으로 이해된다. 이 에세이집은 한 편 한 편이 짧은 에피소드처럼 엮이면서 전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수십 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저자의 눈에 서서히 들어온 프랑스 문화와 프랑스인에 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짧은 글과 생각의 외연을 한층 더 넓혀준다. 다른 삶을 꿈꾸는 이, 외국어라는 미지의 문 앞에 선 이,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이에게 이 책은 속 깊은 ‘언어의 위로’를 전한다.

독자는 외국 유학을 가본 적이 없다. 유학은 집안의 뒷받침이 없다면 쉽게 이루어지기 힘들다. 국비로 가는 것은 쉽게 기회가 오지도 않는다. 거기에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에게는 국비 유학생의 기회가 거의 없다. 독자가 대학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산업화에 내몰린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많이 풍요로워지긴 했지만 해외 여행마저도 쉽지 않았다. 국가나 기업에서 해외 업무가 불가피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반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해외에 나가는 돈마저도 제한적이었고, 사실상 오래 머물 수도 없는 돈 정도만 허락했다. 이것은 '해외여행 자유화'가 90년대 들어서야 이루어진 점을 보면 확실하다. 그런데 저자는 영화를 공부하려고 프랑스 유학을 갔다. 책의 내용으로 봐서는 집안이 넉넉해서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이루어낸 유학이 아니었을까 지레짐작해 본다. 초기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더구나 사고방식이 동양과 다르고, 관습도 다르니 언어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라는 짐작은 할 수 있다. 

외국에서의 삶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다. 그곳이 ‘프랑스’라면 더없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저자는 배낭여행으로 떠난 프랑스에서 덜컥 유학을 결심한다. 자신의 도피처였던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어떤 고생이든 감수하겠다는 다짐으로. 10대의 저자는 알지 못했다. 외국에서의 삶은, 더 정확히는 ‘삶의 질’은 외국어 능력에 달렸다는 것을. 프랑스어로 인해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도. 여행자가 아닌 유학생으로 돌아온 프랑스는 ‘현실’이었다. 

이후 프랑스 생활이 무려 24년. 이방인의 시간은 어느덧 한국에서 나고 자란 세월을 훌쩍 넘었다고 말한다. 생존을 위해 시급히 채워 넣어야 했던 프랑스어를 일상의 언어로 쓰게 된 지금, 저자는 고백한다. "외국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무엇보다 외국어는 모국어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다만 저자는 괴테의 문장을 가져와 외국어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 『언어의 위로』는 결과보다 ‘과정’에 시선을 두는 책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오랜 시간과 노력에 걸쳐 몸에 새길 때,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20여 년간 누적된 경험을 모은 저자의 글은 국제 연애, 외국어 공부 등을 다루는 짧은 영상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한다. 단 몇 줄로 정리되는 프랑스인과의 연애 장·단점, 프랑스어 완전 정복 노하우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최고의 외국어 공부법은 외국인과 사귀는 것이라는 농담 같은 말은 절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저자의 이야기는 아주 멀리 또 깊이 나아간다.

저자도 프랑스에 오래 있다 보니 연애도 있었으리라. “나는 (프랑스인 남자 친구) R이 자주 쓰는 단어들, 대강의 의미는 알지만 정확한 뜻은 모르던 단어들을 사전에서 찾아 확인하기 시작했다. 더 나다운, 더 내 마음과 닮은, 더 내 생각에 가까운 단어를 고민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이슈에 대해, 인물에 대해 그의 의견을 들으면, 반문하고, 확인하고, 이해하고, 내 생각을 전개했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독립하기 위한 일종의 투쟁이었다. 우리의 관계는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다른 쪽으로 기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갔다. 관계 속 나의 영토가 분리되고 확장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도 다시 치열해졌다. 우리의 관계도 그때부터 성숙해졌다고 나는 믿고 있다. 각자가 자신의 독립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어른의 관계. 나의 프랑스어도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정말 내 것인, 나의 외국어는 그렇게 말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p.79)

그런데 남자 친구를 알고 그와의 관계를 계속해 나가는 데 언어가 장벽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도 남녀가 연애할 때는 서로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이 다르기에 서로 양보하고 서로 맞춰가며 사귀는 일이 시급하다. 그런데 외국에서 생활하며 그곳의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것은 독자로서는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프랑스 생활의 토대 위에 쓰인 이 책은 프랑스어를 모르는 이들마저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직접 부딪치고 경험하며 알게 된 프랑스 특유의 문화와 화법을 곁들여 언어 너머의 풍경까지 생생하게 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낭만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의 진정한 낭만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에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 사람들은 내 심장(mon cœur), 내 보물(mon tresor), 내 벼룩(ma puce, 보호해 줘야 할 아주 작은 존재라는 의미) 같은 애칭으로 ‘천연덕스럽게’ 서로를 부른다. 한창 열애 중인 커플이나 신혼부부가 아닐지라도. 이 일은 서양인들이 흔히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긴 할 것 같다. 영화에서도 부부나 연인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애칭'을 쓰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족애를 그리는 영화는 행복하고 별 걱정이 없는 부부 사이에 애칭을 사용하다는 것을 많이 봐왔다. 저자가 결혼 후 시어머니가 시아버지에게 여전히 '새끼 고양이(minou)'라는 애칭을 사용한다니 조금은 오글거린다. 어떻게 부르든 그것은 그들의 생활 방식과 오랜 관습에 의해 특정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별로 어색할 것은 없다. 사실 우리 시대에도 '자기' '애기' 등 애칭을 사용하는 것을 자주 봤다.

아들, 그러니까 저자의 시동생쯤인가 보다. '벼룩'이라고 부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 새끼 고양이, 화장실 청소 좀 해”, “내 벼룩, 왜 이렇게 얼굴이 안 좋니? 저녁에 뭐 먹고 싶어?”(p.54) 확실히 오글거리고 그런 말을 사용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긴 하다. 우리도 친구 사이에 '바퀴벌레'라고 호칭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왜 바퀴벌레야? 하고 물으면 나름대로 다 이유를 댄다. 

저자는 그렇다고 프랑스어를 낭만의 언어로 속단하긴 이르다고 말한다. 긴 대기 끝에 만나게 된 은행 직원이 자신의 두 눈을 바라보며 건네는 말(이제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Je suis a vous!)을 듣고, 세금 연체나 보험료 인상을 알리는 고지서의 끝인사(당신을 읽을 날을 기다리며, 저의 각별한 감정을 수락해 주시길 간청합니다 Dans l’attente de vous lire, je vous prie d’agreer l’expression de mes sentiments distingues)를 읽으며 저자는 알게 된다. 프랑스 사람들은 별다른 감정을 담지 않고도 이토록 낭만 넘치는 말들을 한다니 확실히 낭만적이고 또 그들의 뜻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프랑스어라고 자긍심을 지나칠 정도로 갖고 있다는 말도 직접 프랑스에 여행 가서 들은 적이 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타국에서, 입을 뗄 때마다 의식적인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외국어를 해야 한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누구나 외국어를 처음 대할 때는 두려움이 있다. 관광 가서 그럴진대 저자는 공부를 목적으로 유학을 갔으니 어떻게든 말을 배워야 공부도 할 텐데... 어쩌면 수없이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저자가 언어를 대하는 태도는 "아니면 말고" 식이 결코 아니란 점에서 오랫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리란 생각이 든다. 사실 외국에선 말을 하지 못하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언어가 서툴러서 혹은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무수한 말들을 삼켰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일하려 온 취업 노동자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금세 알 수 있다. 저자라고 프랑스에 유학 갔으니 왜 그런 일을 당했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누구보다 노력을 기울인 탓에 지금은 프랑스인이 다 된 듯해 보이기도 한다. 일이런 서러운 현실에도 계속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삶의 고비마다 쓰러진 마음을 끌어 일으켜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도 한달음에 달려갈 수 없어 이미 재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라며 슬픔을 헤아려준 덴마크 문화원장. 퇴직 전 마지막 진료 날, “우리는 서로가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았군요”라는 인사를 전하며 15년간 이어온 인연을 실감케 해준 주치의. 이들이 진심으로 건넨 프랑스어가 완벽한 위로로 와닿았던 순간들이, 저자를 지탱해 온 것을 책을 통해 느끼고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결핍과 그리움은 모국어로 채운다. 출근 전 새벽마다 모국어로 글을 쓰고, “이미 몸과 마음속에 스며들어” 있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언어”인 모국어로 쓰인 책들을 읽으며. 두 언어에서 받은 위로로 저자는 꾸준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것이란 의지도 굳세다. 다른 삶을 꿈꾸며 기꺼이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언어의 위로’를 전하면서 굳센 의지는 빛으로 승화된다.

화법은 사회를 드러낸다. 프랑스에서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한 한국인 지인은, 아이의 한국어와 프랑스어 구사 방식을 보면서 두 언어의 차이를 크게 느낀다고 했다. 아이가 한국어로 말할 때는 목소리 톤도 높고 감정을 극적으로 발산하는 데 반해, 프랑스어로 말할 때는 목소리가 차분해지고 이성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유치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이가 프랑스어로 “나는 ~을 할 권리가 있어”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요즘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있는 나의 시아버지가 떠올랐는데, 최근 이런 질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사람들이 소리를 많이 지르더라. 실제로도 그러니?”(p.97~98)


옷차림과 스타일뿐만이 아니었다. ‘취향 평가’는 내 전공 분야인 영화에서도, 또 음악, 미술 등 모든 장르에서 계속됐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가 지도 교수로부터 “아니, 그런 도덕 교과서 같은 영화를 어떻게…”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프랑스 친구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가 “그 영혼 없는 모조품 같은 곡은 다시 안 들으면 안 되니?”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섬세한 이 도시의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졌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으나, 초라한 취향의 내게 이곳은 ‘춥고도 험한 곳’이었달까.(p.153)


저자 : 곽미성


영화 공부를 위해 파리에 온 이후로 스무 해 넘게 프랑스어를 쓰며 살고 있다. 파리 1대학과 7대학에서 영화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전공과 관련 없는 직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모국어로 글을 쓴다. 파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일은 걷기. 프롬나드(promenade), 플라네(flaner) 등 ‘산책’을 의미하는 모든 프랑스어 단어를 좋아한다. 지은 책으로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다른 삶』 『외로워서 배고픈 사람들의 식탁』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 옮긴 책으로 『파노라마』 『파리지엔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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