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
장윤정 지음 / 푸른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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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실제 촬영지가 어디인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탐구해야 할까? 현 시점에서 지역이나 건물 공간까지 형성된 역사적 배경까지 알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이를 학문적으로 접근해 발견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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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
장윤정 지음 / 푸른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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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책 『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는 표제어에 나타난 두 개의 단어만으로도 책의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스크린'과 '공간'이라는 단어들이다. 영화는 태생이 매스미디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영화는 문학에서 소설의 서사와 과학의 사진(필름)을 연결시켜 허구가 사실로(상상이 현실로) 바뀐 경험을 제공한다. 즉 소설 문학이 가진 상상적 허구를 마치 사실인 듯 형상화해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이 움직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로운데 이 움직이는 사진들이 현실의 공간과 만나게 되면 그야말로 영화 속 스토리가 사실로 인지돼 관람객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책의 독자들이 소설을 읽고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장소나 인물을 머릿속에 각인하며 스토리를 따라간다. 그러나 영화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힘들여 발휘할 필요가 없게 해준다. 영화가 처음 나타날 때는 영화관이 있어야 상영이 가능했다. 필름을 영사기에 넣고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물인 필름과 영사기를 각 가정에서 구비해 사용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 일상에서 매일 사용할 필요도 없는 물건이기도 하다. 영화는 태생부터 대중을 상대로 대량 전달 기능이 전제되어 있었다. 

더욱이 영화 제작 기법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영화 속 공간은 필요하다면 우주나 바닷속, 땅 속 등 실제 가지 않고서도 촬영이 가능한 구조물을 만들어 영화를 그럴 듯하게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데까지 이르게 됐다.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영화는 예술 분야보다 산업이 되기 시작했다. 거기다 영화 속 매시지를 담아 전달한다면 상업 이익보다 훨씬 큰 홍보도 가능하다는 데 영화의 매력은 날로 커졌다. 

영화가 발명된 지 150년 정도 될 시점에서도 여전히 영화는 커다란 대중 미디어 역할을 하고 있다. TV가 등장하면서 한때 위기를 맞았던 영화는 이제서야 콘텐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문학에 비해 독자의 상상력을 앗아가고 세뇌 시키는 영화는 예술성보다는 대중 전달 기능을 충분히 살려 산업화됐다. 이젠 영화 한 편 제작하는 데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게 예삿일이 된 시대다. 우리나라 영화도 이미 '천만 관객' 시대를 맞은 지 수십 년이 됐다.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도 충분히 수익이 보장되는 시대를 연 것이다.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 관객만 대상이 아니다. 콘텐츠에 따라서는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도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수상하는 시대다. 이는 오롯이 영화 관련된 분들만 혜택을 받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높이는 데도 한몫을 한다. 우리 고유의 문화는 아니지만 영화는 이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에도 당당히 한몫을 하고 있다. 이 책 『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는 영화 속 공간과 실제 공간이 어떻게 관람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품격은 물론 스토리의 진실성에 한층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지리적 공간에 대한 연구 논저의 하나로 출간됐다. 관객 중에서도 깊숙이 영화에 관계한 분들은 물론 영화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영화 속 공간 배경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 데 계기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영화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 시대는 미디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울 정도로 삶의 전 분야에서 미디어(대량 전달 매체)를 이용한다. 누구나 쉽게, 그것도 별도의 돈이나 시간이 필요 없다. 이미 신문이나 라디오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에서 영상으로 이루어진 뉴미디어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현대인들은 ‘미디어와 함께하는 삶’에 익숙해졌다.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미디어 속 데이터-영화, 드라마, 광고 등 공간의 재현을 바탕으로 하는 영상 데이터-는 다양한 매체로 축적되며, 절대적인 양을 무한히 늘려가고 있다. 무한 축적된 데이터를 찾기가 쉽지 않으리란 생각은 이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몇 개의 검색어만 입력하면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인터넷을 누비며 필요한 정보를 쉽게 손에 넣는 것이 당연한 시대다. 방법만 터득한다면 미디어 속에서 생겨난 지리적 궁금증 역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 속의 무심코 지나간 공간이 어떤 장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지리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호기심을 드러낸다. 저자 장윤정은 영화지리학을 오랫동안 공부해온 분이라고 한다. 사실 영화 입문자라도 되면 들어봤음직한 용어지만 영화계는 이미 널리 알려진 용어인 것 같다. 이 책은 영화와 영화 속 공간, 그리고 실제 공간이 어느 정도 역할과 기능을 하는지, 영화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는지, 또 공간의 이미지 확보에는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 논문에 가깝다. 저자는 영화에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영화 관람부(그런 동아리나 자치모임이 있나?)에 소속돼 한 달에 한 번씩 종로의 단성사나 피카디리 극장에서 영화를 보곤 했다니 진정 영화광이라 해도 괜찮을 듯 싶다.

그 시절을 거쳐 시간이 훌쩍 지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저자는 요즘 영상에 익숙해져 가는 아이들이 걱정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과거 경험했던 영화보다 지금의 영화가 폭력성, 선정성이 커졌기에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건강한 성장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아이들 사고에 매체가 영향을 주는지가 궁금해졌다고 한다. 영상을 요약하면서 아이들과 대화를 해왔다고 한다. 아이들은 가짜 뉴스와 유튜브의 무분별한 정보 사이에서 사실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영화처럼 개연성 있는 픽션은 가끔 현실과 혼동한 경우도 발견했다. 아직 초등학생이라 어리기도 하지만, 아이언맨이 만든 세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대역배우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스파이더맨에 푹 빠졌다. 그의 불운을 이겨낸 성장 스토리나 마블 책을 읽을 때도, 아이들은 궁금증이 생기면 마블 백과사전을 찾아 읽었다. 허구일지도 모를 상상의 세계를 탐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소설과 다르게 이미지를 전달하는 미디어의 영향이 염려되었다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여행을 다녀오면 아이들은 랜드마크를 기억하고,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같은 장소가 나올 때마다 기뻐했다. 영화 〈슈퍼소닉 2〉(2022)에 스페이스 나들이 배경으로 나오거나 〈인사이드 아웃〉(2015)에 금문교가 나오면, 여행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즐거워했다. 영화 속에서 미디어와 관련된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초등학교 역사 수어 시간에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손 들고 발표하는 것과 같은 기쁨을 주는 듯했다. 지리 정보나 역사 연표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 왜 그 장소가 선택되었는지, 어떤 장르의 영화가 내용과 장소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졌다.

이 책의 집필 동기와 취지는 생각해보면 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저자도 박사학위를 마친 지 11년이라는 시간이 쌓이는 동안 육아에 전념했기에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더해졌다고 말한다. 지리적 미디어 문해력이 넓은 세상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공간의 재현과 간접 경험이라는 개념을 통해 영화와 드라마를 볼 때 생겨나는 물음에 답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이 책은 〈서문(intro)〉과 〈맺음말(outro)〉 외에 4개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미디어 속 공간의 재현 경험〉, 2부 〈미디어 공간의 텍스트 생산〉, 3부 〈미디어 인지 공간과 지리적 미디어 문해력의 상호작용〉, 4부 〈지리학을 통해 본 미디어 속 상징 스팟: 촬영지가 왜 궁금할까요?〉 등이다. 책에 따르면 삶에서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록은 함께 나타난다. 영화에서도 시간의 흐름과 내용의 전개에 따라 장소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지리학에서는 오랫동안 장소에 대한 논의를 축적해 왔고, 이를 영화에 응용하여 영화에 나타난 장소를 살펴볼 수 있다. 영화에 표현된 장소는 실제 세계에서 영화의 특정 신(scene)과 관련된 촬영지가 함께 선택된다. 그 장소는 익히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곳으로 해당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의 삶(지역민, 관객, 여행자 등)이 있는 곳이다. 또한 영화에 나타난 공간들은 영화가 제작·편집·상영에 이르기까지 제작자에 의해 재현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즉 만들어진 이야기의 전개 결과로서 영화 속 장소는 영화와 관련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사라져 가고, 지역 극장보다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선호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인 2021년 서울 극장이 문을 닫은 것을 저자는 기억해 낸다. 이제는 복합 영화관이 영화를 선별하여 상영하고, 집에서는 OTT로 편하게 영화를 보는 시대다. 저자는 드라마의 양적인 성장과 확장된 채널을 통한 미디어 송출은 실제 장소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방영 이후 시청하면서 겪는 촬영 장소에 대한 논의는 물론, 미디어 관람자나 지역의 방문자 인식 변화 또한 지리학의 실존적 문제가 되어 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OTT의 성장과 함께 tvN을 포함한 종편 드라마의 진입과 그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ENA와 같은 신규 채널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는 배우와 감독-프로듀서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있다.

이 책은 1부에서 우리 영화 중 공간 재현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디어를 통한 경험은 특정 공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그 공간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며, 감정적 반응을 유발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디어 공간 재현은 미디어가 특정 장소, 사람, 사진 등을 어떻게 묘사하고 표현하는지를 분석하는 개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는 미디어 텍스트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특정한 방식으로 선택, 구성, 왜곡하는 과정을 통해 재현된다는 점에 주목한다는 것. 재현된 공간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소를 표현한 것이라 쉽게 이미지화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역사적 사건 중에서 왜 특정한 사건이 영화 소재로 선택되는지, 특정한 하나의 장소가 어떻게 전혀 다른 주제를 가진 영화들의 촬영지가 되었는지를 분석하면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답을 얻게 해 줄 것이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1부에서는 「동일한 장소, 영화마다 다른 관점」이란 주제에 따라 6·25 한국전쟁 중 벌어진 '인천상륙작전'을 그린 영화를 대상으로 인천을 살펴본다. 각 영화에서 어떤 관점으로 보고 제작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 중 전세를 역전시킨 변곡점으로 역사와 전사는 기록하고 있다. 동족상잔이라고도 하는 6·25 전쟁 가운데 인천상륙작전이 어떤 변곡점을 가져왔는지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잘 알 것이다. 저자는 1950년 9월 15일만을 영화화하기란 쉽지 않다고 전제한다. 전개 내용에 따라 이데올로기가 극명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선동의 의미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이데올로기 편향성이 반영된 영화들을 분석하기 위해서 포지셔널리티(위치성)를 제시한다. 포지셔널리티는 개인의 속성과 대상에 대한 해석에 주관적 편향성을 반영하여 형성된 편향성을 의미하기에, 제작자에서 비롯된 포지셔널리티를 분석하겠다는 말이다. 이러한 시도는 역사적 사건으로 알려진 장소의 미디어 공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저자는 인천상륙작전을 상륙군 관점, 방어군 관점, 첩보부대 관점으로 나뉘어 살펴보고 있다. 1965년에 상영된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참전 군인 편거영이 극본을 썼다. 또한 조긍하 감독은 〈인천상륙작전〉을 만들면서 고심했다고 한다. 남주인공 배우 신영균과의 인터뷰로 알 수 있듯이 당시 특수촬영을 할 수 없었던 실정이라 실탄을 쏘며 목숨을 걸고 촬영에 임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당시 유행했던 007류의 첩보영화 스타일로 긴박함이 느껴지고 극본가가 통신장병이었던 경험이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흑백영화이고 1960년대 우리나라의 야산은 벌거숭이였기에 마치 전쟁시기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1965년의 한국 정세는 냉전체제 아래에 있었다. 한국 정부는 한일회담과 베트남 파병을 한국, 미국, 일본의 반공전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명확한 대결구도를 선택했다. 그해 소려의 코시긴 수상이 북한을 방문하였고, 중국문화대혁명으로 중소 관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1965년의 경직된 분위기가 이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1965년에 한국전쟁 영화 13편이 개봉했다. 영화 〈남과 북〉, 〈나는 죽기 싫다〉를 이어, 휴전 후 처음으로 비무장지대에서 촬영한 반(反) 기록영화 〈비무장지대〉, 〈북에 고한다〉까지 제목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이어 「〈월미도〉에서 방어군 관점」이란 소제목을 통해 북한이 인천상륙작전을 어떤 관점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월미도〉란 영화를 찾았지만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센터에서는 이 자료가 없다고 한다. 북한에게는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단어는 인정할 수 없는 전환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 〈월미도〉가 제작된 시점은 김일성 생일 7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던 시기이다. 또 김정일은 『영화 예술론』(1973)을 책을 저술할 정도로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김씨 일가의 체제를 수비하는 데 북한 영화가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저자는 지적한다. 2016년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휴전일인 7월 27일에 개봉됐다. X-RAY 작전을 수행하다 전사하신 임병래 중위, 홍시욱 하사 외 15인의 대원들과 켈로 부대원에 관한 실화에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장학수라는 인물을 허구적으로 설정하여 이념적 대립이 종교, 사회, 계급 간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물어본다. 인천상륙작전이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은 것은 확실하지만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은 값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38선으로 나뉜 이념적 대립이 분쟁의 씨앗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팽팽했던 긴장 관계가 한반도에서 화약고를 터뜨린 것이다. 이후 70여 년이 지났고, 여전히 휴전 상황이다.

이와 함께 인천 외에도 한국전쟁에서 주요하게 다뤄진 영화 속 장소들이 있다. 3년 여 동안의 전쟁에서, 장소를 다루게 되면, 배경으로 전쟁 시점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작 당시의 쟁점을 파악해 볼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이러한 영화를 토대로 공간 재현의 경험 결과를 여섯 가지로 나눠 내놓았다. ① 싸움의 치열한 전장이다. ② 수도 서울이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3개월 간 북한군을 경험한다. 일부 문인들은 부역의 불가피성과 북한군 통치하의 체험을 생생히 전달한다. ③ 후방에서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부산이나 전쟁 초기 피난시기 대구 일대이다. 〈내가 마지막 본 흥남〉과 〈태극기 휘날리며〉가 대구를 표현한 영화이고 낙동강 전선 일대를 중점 표현한 영화 〈포화 속으로〉(2010),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2019) 등이 있었다. ④ 지리산 권역이다. 휴머니즘 반공 영화라 명명되는 빨치산 영화는 〈피아골〉(1955), 〈남부군〉(1990), 〈태백산맥〉(1994) 등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실향민이 잃어버린 공간이다. 〈내가 마지막 본 흥남〉(1984), 〈길소뜸〉(1985), 〈간 큰 가족〉(2005), 〈만남의 광장〉(2007) 등을 들 수 있다. ⑥ 인천상륙작전 이후 체류했던 북한지역이다. 〈원산공작〉(1976)은 첩보부대가 세균전을 준비해 원산 상륙을 단계에 걸쳐 시도한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평양에서 시가지전을 벌인다. 북한 영화 〈적구 도시에서〉(1966)는 중국 참전으로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기 전 연합군에 포위되었던 시기를 재현하며 도시에 잔류에 있었던 자유 진영을 보여 준다. 한국전쟁 영화는 진영 간 체제수호를 기저에 두고, 지배체제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해 왔다. 이는 주제 선택 시에 전쟁을 촬영할 만한 장소를 섭외하고, 허가를 받고,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전투장면을 재연할 때 환경을 훼손해 가면서 영화를 제작해 왔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에는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수많은 공간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다. 〈미나리〉〈도굴〉〈신과 함께: 인과 연〉〈도깨비〉〈슬기로운 감빵생활〉〈사랑의 불시착〉〈천문〉〈국제시장〉〈낭만닥터 김사부〉〈동백꽃 필 무렵〉〈오징어 게임〉뿐만 아니라 외국의 영화도 몇 편 소개된다. 


저자 : 장윤정


서울대 국토문제연구소에서 재직 중이다. 서울대 지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화를 통한 장소 이미지의 교류?북제주군 우도를 사례로」로 석사학위를, 「인천상륙작전 영화 속 장소 재현」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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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2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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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우리 역사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실학자로서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을 주장한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가 우리 최대의 실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개혁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약용을 떠올리면 오랜 시간 동안 겪어야 했던 귀양살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귀양살이는 그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주었지만, 최고의 실학자가 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고 '다산 연구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다산의 학문과 사상은 귀양살이라는 정치적 탄압까지도 학문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업적을 이뤄낸 인내와 성실, 그리고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성실'을 제일로 친 사람이었다. 그의 방대한 저작은 평생을 통하여 중단없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탄생한 것이다.

“사실에 의거해서 진리를 찾는 ‘실사구시’의 삶을” 살았던 다산 정약용은 “인민의 영혼을 일깨워주는 꼭두새벽의 쇠북 소리”이자 “잘못 흘러가고 있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아주는 관개 사업”이었다. 1권 「유배지 장기에서」란 제목의 장(章)에서 저자 한승원은 유배지에서 다산의 '관개 사업'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선비의 사업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잉잉거리면서 꽃을 찾아가서 꿀고 꽃가루를 머금어다가 통 속에 저장하고, 애벌레를 먹여 키우는 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 어여쁜 아가씨와 사랑에 깊이 빠지듯이, 책 저술하는 사업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가자. 금방 날이 저물고 바미 짧았고, 배고픔과 추위도 잊을 수 있었다. 사약에 대한 공포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1권, p.312) 

다산은 “‘세상을 올바르게 경영하는 지표’, 즉 가장 진실한 예”를 쓰고 싶어 했고, 이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신실한 의지였다. 남인이었던 정약용을 노론 세력으로부터 보호해주던 정조가 승하하자, 정약용은 한때 천주교에 이끌렸던 과거를 빌미로 경상도 장기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간 길고 고통스러운 유배 생활을 보낸다. “‘예가 아니면 말하지 않고 예가 아니면 보지 않고 예가 아니면 듣지 않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 자기 성찰에 투철한 참 선비 학자” 정약용은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귀양살이를 하게 된” “기구하고 신산한 운명을 어떻게 무엇으로 이겨냈을까.” 

저자 한승원은 정약용의 지난하고도 치열한 일생의 운명을 따라 짚으며 그에게서 “갇혀 사는 사람의 아프고 슬픈 절대 고독과, 그 고독을 이겨내려는 고귀한 분투와 꿈꾸기와 도학자의 여유”를 깨쳤고 정약용과 하나가 되어 그가 삶에서 품었던 꿈과 우정을 이 소설 작품을 통해 소생시킨다.

정약용의 가장 큰 후견인은 정조였다. 정조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큰 환란이 없었지만,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고난이 시작된다. 승승장구하던 정약용도 정조 사후에 완벽히 정계에서 배제되고 잊혀져 갔다. 사실 정약용은 관직에 나간 지 2년 만에 당색으로 비판된 것에 불만을 품었다가 해미에 유배되었으나 정조의 배려로 열흘 만에 풀려났다. 하지만, 정조가 승하한 이듬해 1801년(순조 1) 〈신유사화〉가 일어나면서 주변 인물들이 참화를 당했고, 손위 형인 정약종도 참수를 당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정약용은 그해 2월에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11월에는 강진으로 옮겨졌다. 18년 동안 긴 강진 유배생활의 시작이었다. 『다산시문집』 제4권에는 정조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노래한 정약용의 시가 전해진다.


운기(雲旗), 우개(羽蓋) 펄럭펄럭 세상 먼지 터는 걸까 홍화문(弘化) 앞에다 조장(祖帳)을 차리었네

열두 전거(?車)에다 채워둔 우상 말(塑馬)이 일시에 머리 들어 서쪽을 향하고 있네

영구 수레(龍?)가 밤 되어 노량(露梁) 사장 도착하니 일천 개 등촉들이 강사(絳紗) 장막 에워싸네

단청한 배 붉은 난간은 어제와 똑같은데 님의 넋은 어느새 우화관(于華館)으로 가셨을까

천 줄기 흐르는 눈물 의상(衣裳)에 가득하고 바람 속 은하수도 슬픔에 잠겼어라

성궐은 옛 모습 그대로 있건마는 서향각 배알을 각지기가 못하게 하네 - 『다산시문집』 제4권

유배 생활 처음에는 천주교도라고 하여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역사는 기술하고 있다. 천주교인이라는 소문으로 나자 모두 정약용을 모른 척했다. 유배지의 어려움 속에서도 승려 혜장 등과 교유하고, 제자들을 키우며 저술활동에 전념하였다. 담배 역시 유배의 시름을 덜어주는 벗이었다. 강진에 도착해서 처음 머무른 곳이 사의재(四宜齋)라는 동문 밖 주막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그곳에 기거하면서 예학 연구를 시작하였고, 이후 고성사의 보은산방과 목리의 이학래집으로 전전하면서 연구에 전념하였다. 

1808년 귤동의 〈다산초당〉에 자리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1,000여 권의 서적을 쌓아 놓고 유교 경전을 연구하였다. 그의 이른바 주석 학문인 경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 2권에는 정약용과 혜장의 만남 이후 그들이 나눈 『주역』에 관한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바야흐로 주역에 심취해 있는 혜장은 선배 학자들의 주역론을 열심히 찾아 읽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도와 낙서의 이론과 주자의 『역학계몽』도 읽은 듯, 그들의 이론을 자기 이론인 양 말하고 있었다. 무슨 책을 읽든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하고, 선배 학자들의 결함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하고, 자기만의 특이한 주장을 펼 줄 알아야 하는데, 혜장은 『주역』에 관한 한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었다.


"대개의 경우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르는 법인데, 그것은 그 도둑이 도둑질의 즐거움에 취해 있는 까닭이고, 취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도둑질을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자만에 빠져 있는 까닭이고, 아직 도둑의 도를 터득하지 못한 까닭이이고, 그 도둑의 성정이 주정적일 뿐, 이지적이고 창조적이지 못한 까닭이다. 이런 도둑질의 방법 여기저기에 허술한 점이 많으므로 쉽게 꼬투리가 잡히기 마련이다. 도둑으로서 도통하려면, 강희맹의 가르침을 익혀야 한다."(2권, p.147)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인 마현으로 돌아온 것은 1818년 가을, 그의 나이 57세 때였다. 57세에 해배되어 1836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고향인 마현에서 자신의 학문을 마무리하여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다. 해배되었다고는 하나 오랜 기간 지냈던 강진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자신이 지은 많은 저술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읽히도록 하기위해서였다. 초로의 나이에 더 이상 관직에 나갈 수 없었던 다산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저술들을 널리 소개하여 읽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곧 경세(經世)의 길이었다. 

이후 자신의 호를 다음 시대를 기다린다는 뜻의 ‘사암(俟菴)’을 즐겨 사용한 것 역시 그런 의미였다. 그는 〈자찬묘지명〉에서 자신의 저술에 대해 “육경과 사서는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고, 일표와 이서는 천하와 국가를 위함이니, 본말이 갖추어졌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육경과 사서에 관한 저술이 근본이라면, 『경세유표』와 『목민심서』·『흠흠신서』는 경세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었다. 해배 이후 학문적 교제를 했던 대상은 신작·김매순··홍길주·김정희(추사) 등 당시 저명한 노·소론계의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정권을 잡은 노·소론계였지만 고정된 정론이나 학설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들과의 토론을 통해 경전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경세관을 펼쳐 나갔다.

정약용이 가진 국가개혁의 목표는 부국강병이었다. 국가개혁사상이 집대성되어 있는 『경세유표』에서 그는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이 종합된 개혁사상을 전개하였다. 정약용의 개혁안은 장인영국(匠人營國)과 정전법을 중심으로 한 체국경야(體國經野)라 평가할 수 있다. 통치와 상업, 국방의 중심지로서의 도시건설(체국)과 정전법을 중심으로 한 토지개혁(경야)을 바탕으로 세제, 군제, 관제, 신분 및 과거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도를 고치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개혁안의 주요 골자이다. 『주례(周禮)』의 체국경야 체제를 기본 모형으로 삼아 조선후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상공업의 진흥을 통하여 부국강병을 꾀하고자 한 것이다.

이 소설 작품 『다산 1, 2』는 「떠나가는 나그네」라는 제목의 마지막 장에서 아들이 읽는 그의 유언장 내용이 소개되면서 기어코 독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대부분의 유배생활인 관료로서의 생활과 평상시의 인격, 그리고 집안 식구들에 대한 세세한 관심과 애정은 그가 남긴 500권의 장서에 담기지 않았지만 저자 한승원의 이 소설 작품은 포착해 낼 수 있다. 유언장의 주요 내용은 자신의 주검을 염하는 방법부터 순서까지 자세히 적혔고 이에 필요한 수의의 옷감까지 일일이 지정할 정도로 긴 시간 읽게 한다. 그만큼 평소에 예(禮)를 중시하고, 유교의 가르침을 따랐으며 일상을 어김없이 철저한 성격을 분명하게 묘사하는 저자의 속뜻이 담겼으리라고 추측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물론 어려운 한자어가 많이 섞여 있고 절차에 대한 무지로 독자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분위기만 보아도 독자들의 감동을 자아낼 정도로 저자 한승원이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란 추론까지 가능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산은 아들의 유언장 낭독을 하는 동안 숨을 거두며 육체에서 이탈한 혼이 천국에서 마중 나온 이들과 조우한다. 

한 무리의 하얀 도포 차림을 한 사람들은 이벽과 정약전·정약종·이가환·이승훈·황사영·김범우·윤유일 등이다. 이벽이 다산에게 한 말이 오랫동안 독자들의 뇌리에 남을 명장편을 연출한다. 

"정공의 뜻대로 되었습니다. 정공이 자리 잡은 새 세상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아래쪽에 강의 물너울을 거느린 거대한 천지 우주의 치마폭 같은 다산성의 세상 한복판입니다. 동암에는 서재가 있고, 서암에는 차실이 있습니다. 여기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산골짜기에 암자가 있는데, 암자의 주지가 곡차를 즐길 줄 아는 화통한 스님이랍니다. 이 초당에서 저술하며 사시다가 답답해지면, 암자의 주지하고 술 대작도 하시고, 밭도 일구시고, 저 아래로 내려가서 낚시질도 하시고······."(2권, p.307)


저자 : 한승원(韓勝源, 호 : 해산海山)


자신의 고향인 장흥, 바다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애환과 생명력, 한(恨)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온 작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교사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다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뒤 소설가와 시인으로 수많은 작품을 펴내며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김동리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 한국 문단에 큰 궤적을 남겼다. 소설가 한강, 한동림의 아버지이기도 하며 장흥 바닷가 해산토굴에서 집필중이다. 그의 작품들은 늘 고향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펼쳐진다. 그 바다는 역사적 상처와 개인의 욕망이 만나 꿈틀대는 곳이며, 새 생명을 길어내는 부활의 터전이다. 그는 지난 95년 서울을 등지고 전남 장흥 바닷가에 내려가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소설집 『앞산도 첩첩하고』 『안개바다』 『미망하는 새』 『폐촌』 『포구의 달』 『내 고향 남쪽바다』 『새터말 사람들』 『해변의 길손』 『희망 사진관』,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해일』 『동학제』 『아버지를 위하여』 『까마』 『시인의 잠』 『우리들의 돌탑』 『연꽃바다』 『해산 가는 길』 『꿈』 『사랑』 『화사』 『멍텅구리배』 『초의』 『흑산도 하늘길』 『추사』 『다산』 『원효』 『보리 닷 되』 『피플 붓다』 『항항포포』 『겨울잠, 봄꿈』 『사랑아, 피를 토하라』 『사람의 맨발』, 『달개비꽃 엄마』, 산문집 『허무의 바다에 외로운 등불 하나』 『키 작은 인간의 마을에서』 『푸른 산 흰 구름』 『이 세상을 다녀가는 것 가운데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 『바닷가 학교』 『차 한 잔의 깨달음』 『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 시집 『열애일기』 『사랑은 늘 혼자 깨어있게 하고』 『달 긷는 집』 『사랑하는 나그네 당신』 『이별 연습하는 시간』 『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 『꽃에 씌어 산다』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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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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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2』의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민족 역사상 두 분의 큰 인물을 만나게 된다. 한 명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고, 다른 한 명은 한국 현대문단사의 거목, 한승원이다. 한승원은 우리 시대의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이다. 이 책 『다산 1, 2』는 저자 한승원이 다산의 일대기를 소설로 지어낸 작품이다. 한승원은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들을 수상하고, 수많은 대표작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전남 장흥, 바다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애환과 생명력, 한(恨)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온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승원의 작품을 문학평론가들이 그렇게 일컬었다. 크게 잘못된 지적은 아니지만 평론의 일부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는다. 한승원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교사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다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뒤 소설가와 시인으로 수많은 작품을 펴내며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김동리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 한국 문단에 큰 궤적을 남겼다. 소설가 한강, 한동림의 아버지이기도 하며 장흥 바닷가 해산토굴에서 집필중이다.

그의 작품들은 늘 고향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펼쳐진다. 그 바다는 역사적 상처와 개인의 욕망이 만나 꿈틀대는 곳이며, 새 생명을 길어내는 부활의 터전이다. 그는 지난 1995년 서울을 등지고 전남 장흥 바닷가에 내려가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승원의 소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한'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당사자인 한승원은 이렇게 말한다. "제 소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한'이 아니라 '생명력'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는 독자들이 만들어놓은 '가면'을 거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승원은 토속적인 작가다' 하는 것도 게으른 평론가들이 만들어놓은 가면일 뿐이지요. 작가는 주어진 얼굴을 거부해야 합니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장편 『연꽃바다』를 쓸 때부터 제 작품세계는 크게 변했습니다. 생명주의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인데, 저는 그것을 휴머니즘에 대한 반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인간 본위의 휴머니즘이 우주에 저지른 해악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는 노장(老莊)이나 불교 사상에 있다고 봅니다."

한승원의 이 말은 한국문학의 근원이라고 일컬어지는 민족 정서의 원동력은 '한(恨)'라는 '조각의 전체화',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고, 소극적 받아들임이 아니라 적극적 생명력에 천착하는 문학이라는 반론이기도 하다.

이 소설 작품 『다산 1, 2』는 저자 한승원의 자신의 작품의 근원을 '생명력'으로 말하는 것과 동일 선상에 있다. 이번에 열림원에서 새롭게 출간된 『다산』은 추사 김정희를 다룬 『추사』, 다산의 제자 초의 스님을 다룬 『초의』에 이은 작품이자, 그가 평생에 걸쳐 좇아온 〈조선 천재 3부작〉의 완결판이다. 김형중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을 두고 “정약용의 일대기와 사상을 소설화”함으로써 “인물소설 쓰기가 하나의 거대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다산』은 정약용이 그랬던 것처럼 글쓰기를 필생의 업으로 삼은 대(大)작가 한승원의 광활하고도 심지 깊은 작품세계와 탄탄한 내공을 집약시킨 결정체이다. 이로 인해 “소설가는 흘러 다니는 말이나 기록(역사)의 행간에 서려 있는 숨은 그림 같은 서사, 그 출렁거리는 파도 같은 우주의 율동을 빨아먹고” 산다는 그의 말과 일치된다. 저자 한승원은 역사 속 숨어 있는 진실을 찾아내고자 하는 남다른 소설적 집요함으로 한 시대의 공기, 바람과 햇살, 심지어 역사적 인물의 숨결까지 살려내 이 소설에 담아냈다.

저자 한승원은 1939년 전라남도 장흥 출생으로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로, 같은 해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木船)」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63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중 동창생들인 이문구?조세희 등과 교유했다. 국민학교 교사를 거쳐 광양중학, 광주 춘태여고 교사를 지냈다. 교사 재직 시절에도 꾸준히 창작활동을 계속했으며 1980년 「그 바다 끓며 넘치며」로 한국소설문학상을, 1983년 「누이와 늑대」로 대한민국문학상을, 1983년 「포구의 달」로 한국문학작가상을 각각 수상했다.

한승원이 〈조선 천재 3부작〉으로 지목한 다산 정약용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조선시대 역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학자이자 관료이다. 그는 정조 사후 교리가 불충하고 요사스럽다는 천주교에 빠졌다는 이유로 둘째 형 정약전, 셋째 형 정약종과 함께 정치적 처벌 대상이었으며, 특히 정약종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 순교했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각각 흑산도와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이때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의 유배 기간 중 무려 500권의 책을 저술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인물로 밝혀진다. 그가 남긴 책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 분야를 다루었으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상이 담긴 〈조선비결〉이란 책이 독자들의 눈길을 끌 것이다. 〈조선비결〉이란 실제 존재하는 책은 아니지만 다산이 임종 시 "아직 세상에 알려질 때가 아니니 훗날 적절한 시기에 세상에 내놓으라"고 했다는 책이다.

책은 두 권으로 분책되어 발간됐으며 1권의 첫 장(章)의 제목은 금서(禁書)라는 「다산비결」이다. 첫 장이지만 차례 앞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서문〉의 역할을 한다. 저자가 자료 수집과 취재에 들어 「다산비결」에 대해 물었다. 아마 구전으로만 내려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고 있었기에 확인 차원에서 저자가 발품을 판 것으로 이해된다. 이 책은 호남 지방의 의식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필사되어 읽혀졌던 책으로 금서이다 보니 「다산비결」이라는 제목의 책은 전하지 않는다는 한 연구가는 『방례초본』(후에 『경세유표』로 개명)으로 추정한다고 알려 주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다산비결」을 은밀하게 돌려가며 읽던 그들이 1894년 임금을 싸고도는 간신배와 썩은 관료들을 징치하고 무너지는 나라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겠다고 일어선 동학군의 접주들이 되었다는 부분이다. 한 연구가가 방대한 분량의 『방례초본』과는 다른 것일 가능성을 추정하면서 핵심들만 간추려 엮은 책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 다른 연구가는 "그것은 『정감록』 비결보다 더 신묘한 예언을 무겁게 담은 책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는 점도 살펴볼 일이다. 

구태여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1권의 내용은 정조 재위 시에 다산은 정조의 총애를 받았기에, 정조와의 함께하던 시절의 이야기들, 친형제간들의 활동, 정조 사후 벌어진 천주교 대탄압으로 순교와 유배형을 당했던 정약용 가문의 멸문, 천주학, 다산의 조정 재직시 관료로서의 활약 등이 주로 서술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첫 장은 「다산비결」이다. 첫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거문고는 왜 신의 악기(神琴)인가

수많은 누에고치들의 순절 때문이네. 

그들의 몸을 비틀어 꼰 울음은 

혼의 선율이 되고 그 선율은 빛이 되고

찬란한 빛은 새가 되어

펄펄 하늘 한복판으로 날아가네.(1권, p.5)

거문고 여섯 개의 줄은 누에고치 2만여 개의 실오라기들을 겹겹으로 비틀어 만든 것이라고, 곡산의 한 거문고 장인이 말했다. 그 거문고의 아름답고 구슬픈 소리는 에밀레종 소리처럼 죽음의 고통을 비틀어 고아낸 혼의 빛인데, 그것은 이 땅의 기운이 뽕나무를 기르고, 누에가 천기를 호흡한 결과이다. 저자 한승원은 거문고 연주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 시가 떠올라 가슴이 아린다고 썼다. 18년 동안이나 강진에서 유배살이를 하신 정약용 선생이 남긴 500여 권의 혁혁한 저서들은 하나하나가 고통을 비틀어 곤 선율들이고 중천으로 날아가는 깃털 찬란한 혼의 새들이므로.라고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고향 마을의 재재종제가, 종조부모가 쓰시던 농 밑바닥에서 나왔다는 흘림체의 한글로 쓰인 책 한 권을 가지고 왔다고 밝힌다. 앞부분과 뒷부분이 닳고 닳아서 많이 떨어져 나가고 반쯤 부식된 책이었다. 그것을 펼쳐본 순간 나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 95세까지 사신 눈먼 종증조부를 떠올렸고, '아, 이것이 바로 그 문제의 다산비결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저자의 회고다. 어머니를 통해 종증조부가 동학군이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란다. 그 책 가운데 알아볼 수 있는 일부분을 요약해 책에 썼다.

······물은 배를 뜨게 하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물은 백성이고 임금은 배이다. 임금도 잘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징치하고 바꿀 수 있다. 

조선 땅에서 제일 못된 제도는 양반 제도이다. 조선 사람들이 복받고 살아가려면 양반 무리를 없애야 한다. 양반도 상사람과 똑같이 논밭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하고, 누에를 쳐야 하고, 닭이나 돼지나 소를 길러야 하고, 군인이 되어 바다나 국경을 지켜야 하고, 세금을 똑같이 물어야 한다. 부리던 종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살림을 차려주면서 내보내 독립시켜야 마땅하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 한승원은 정약용의 『경세유표』의 내용과 유사한, 한글로 쓰인 이 책이 나로 하여금 다산 정약용 선생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다. 일을 하고 먹는 밥이 성스럽다. 일하지 않고 먹는 밥은 추하다. 일이나 밥을 착취하는 벼슬아치는 도둑이다······.

1권은 모두 6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배지에서의 생활과 관련된 부분에서 불편함은 잠시지만 그래도 지내기에는 요즘의 감옥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정 지역을 벗어나 살지 못하는 것은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책을 쓰기로 한 다산에게는 크게 문제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오히려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다 보니 자식들이나 형들의 자제, 즉 조카들의 앞날이 걱정되었던 듯하다. 책 이곳 저곳에서 그런 마음을 표현하지만 가장 큰 걱정은 역시 가족들 걱정임을 알 수 있다. 

"금부도사와 나졸드이 그를 장기 관아에 넘겨주고 돌아간 순간부터, 정약용은 낯선 장기 땅에서 굶지 않을 궁리, 병들지 않고 살아 돌아갈 궁리, 고통스럽지 않게 시간을 태워먹을 궁리를 했다. 답답하면 청청 높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하늘이 말했다. '염려 마라. 궁하면 통한다. 가득 찬 달은 기울고, 기울어진 달은 다시 차게 된다. 모든 들어간 것들은 다시 나오게 된다.' 이불과 옷들을 짊어지고 온 하인 돌쇠 아비에게 금부도사를 따라가라고 일렀다. 근심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무사히 도착했음을 한시바삐 알리려는 것이었다. 장기 아전이 살도록 지정해준 집의 주인은 늙은 장교 성선봉이었다."(1권, p.310) 

유배지 장기에 도착한 첫날의 모습과 다산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유배지 장기에서」란 제목의 장(章)에 실린 내용이다.

유배지 근처에 〈죽림서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죽림서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라고 한다. 다산은 유배살이 짐 속에 넣어온 촛불 한 자루를 손에 들고 그곳을 지키는 사람과 대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밤에 찾았다. 정약용은 주자학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윤휴라는 사람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인 송시열을 소인으로 여기고 미워해 왔었다. 소인이라 여겨지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용납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그와 함께 소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마음을 열어 용서해주고 싶었다. 화해는 용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니까. 서원 안에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온 정약용입니다" 하고 말을 건네자, 서원을 지키는 노인들이 그를 문밖으로 밀어내면서 "여기가 어디라고 그 더러운 발을 디래놓는 기갸?" 하고 소리쳤다. 정약용은 얼굴에 웃음을 담고 '노장님들 왜 이러십니까? 송시열 선생에게 배례를 하고 싶어 왔습니다." 늙은 선비는 젊은 선비를 향해 소fl를 질렀다.

"퍼떡 문 닫아걸고, 소금 뿌려삐라." 정약용은 서원에서 쫒겨나 돌아오면서, 하늘을 향해 소처럼 웃었다.(p.316~317)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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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 - 클래식 음악을 시작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
안우성 지음 / 유노라이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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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音樂)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란 질문을 먼저 해본다. 이 서평의 첫머리에 적절한 질문은 아니겠지만 클래식의 초보자인 독자에게는 이 질문을 건너가는 것이 우선의 일이다. 부족한 한자 실력에도 굳이 한자를 찾아서 병기한 이유도 있다. 한자어 단어 '음악(音樂)'를 직역하면 '소리의 풍류' '즐거운 소리'쯤으로 풀이된다. 국어사전에는 "박자, 가락, 음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하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독자는 사실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독자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 좋아하지 않았지만, 듣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는 말이다. 특히 시끄러운 음악은 성격 상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조용한 음악은 듣다보면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좋은 경험을 갖고 있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음악' 하면 대중음악을 지칭한 것으로, '노래' 하면 대중가요를 지칭했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주 1시간씩 음악 시간이 정식 교과목에 들어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은 '당연히' 클래식이다. 음악 교과서도 있었다. 수록된 곡의 대부분은 서양음악이다. 국악은 별도로 악보까지 싣거나 또 가르치지도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음악을 이야기할 때는 대중음악,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클래식 음악으로 구분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이 무렵부터 노래를 잘못 부르는 독자에게 음악은 두 가지로 머릿속에 형성되었다. 대중음악은 부르는 노래, 클래식 음악은 듣는 노래다. 음악을 전공한 친구는 한 명도 없었기에 그 정도로 이해하고 대화에도 아무 지장이 없었다. 물론 대중 가요도 곡에 따라서는 매우 부드러운 선율과 가사가 많았다. 이른바 '발라드'라고 통칭되는 것이다. 발라드 음악은 지금 들어도 괜찮다. 

클래식은 대학 다닐 때 많이 들었지만 홀로 집에서 음반이나 디스크를 이용해 듣는 일은 별로 없었다. 친구들과 혹은 누군가를 만날 때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커피숍의 분위기가 좋아 자주 이용하는 정도였다. 클래식과 친해지기로는 10년 전쯤이다. 콘서트 티켓이 있다는 친구와 함께 예술의 전당에 갔을 때부터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콘서트 홀에서 관람했다. 클래식에 대한 독자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물론 10년쯤 되었지만 아직 클래식에 대해서는 '문외한' 혹은 '입문자'라고 말한다. 이후 기억으로는 오케스트라 공연은 못 갔지만 피아노와 현악기 연주회 등을 서너 차례 더 갔었다.

클래식과 특히 가깝게 된 것은 코로나 팬데믹부터이다. 직장에서의 근무가 재택 근무로 바뀌면서다. 물론 모든 일을 재택 근무로 하지는 않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재택'을 원칙으로 했기에 일주일 중 회사에 가는 것은 하루, 이틀뿐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시간이 이렇게 많이 남을지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했다. 막상 재택 근무가 실시될 때는 하루 서너 시간만 일하면 남은 시간은 거의 집에 있는 시간이었다. 외출도 자제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것이 오래되면서 답답함도 느낄 정도였다. 독자는 그동안 직장을 핑계로 미루었던 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독서고, 다음이 클래식 듣기였다. 이렇게 독자는 팬데믹 때문에 클래식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전공자나 음악계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르겠지만 독자로서는 클래식 듣기가 전부였다.

입문자인 독자로서는 클래식이 그저 평온한 마음이 들게 하는 정도면 만족이었다. 아예 하루종일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오년쯤 됐다. 이제 독자는 입문자라고 이야기한다. 초보자라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들어 좋은 음악은, 듣기만 해도 행복한 음악으로 바뀌어 가기 때문이다." 

이 책 『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의 표제어는 입문자에게 깊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동안 독서와 클래식 듣기를 꾸준히 해왔지만 한 사람의 곡을 집중적으로 듣거나(예를 들어 하루 종일 베토벤 음악만 듣는다든지) 클래식 관련 책도 작곡가 한 명의 책을 본 적이 없다. 독자가 몰라서 못 읽었는지 모르지만, 서양음악사, 혹은 테마로 보는 클래식, 또는 역사와 연관된 클래식 음악, 에피소드 중심의 화제거리 음악사 등이었다. 저자 안우성은 클래식 음악과 인문학의 접점을 모색해 가고 있는 음악 감독으로 소개된 분이다. 독일과 영국에서 켄트 나가노 등 세계적 지휘자와 함께 솔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 『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의 〈서문〉에서 "예술의 최종 목표는 결국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베토벤으로 클래식을 시작하기를 권한다."라고 첫 문장을 썼다. 

「당신의 인생은 베토벤을 듣기 전과 후로 나뉜다」란 제목의 〈서문〉에서 저자는 베토벤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되새기며 '음악은 감정의 폭발이다'는 말을 고스란히 느꼈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베토벤이 '음악의 성인(악성樂聖)'으로 불리는 것은 아홉 개의 위대한 교향곡과 피아노의 신약성경이라고 불리는 서른두 개의 피아노 소나타 등 환희로 가득 찬 열매을 일구었다는 점에서 붙여진 별칭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가난하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평민 신분으로 살아야 했던 열등감, 독신의 외로운 삶과 스물여섯 살에 갑자기 찾아온 음악가에겐 사형선고와도 같았던 귓병은 그를 평생 괴롭혔다. 하지만 베토벤은 고난과 불행 앞에 결코 무릎 꿇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모진 운명과 당당히 맞서 싸우며 죽는 날까지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았다"(p.6~7)

음악 소비층도, 그들을 대우해주는 계층도 모두 왕가나 귀족들이었기에 당시 작곡가들은 대부분 좋은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또 작곡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귀족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반인들은 음악을 평생 공부하고 생산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귀족도 아니기에 음악을 하기가 어려운 상태임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그들을 위해 작곡하지도 않았기에 그들의 취향에 맞춰 작곡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베토벤의 생애는 이 사실만으로도 평범하지 않고, 쉽지 않다. 250년 전 한 남자의 수난과 불행의 역사, 또 그것을 통해 보다 강하게 담금질된 베토벤의 정신 의지와 음악의 위대함은 지금 우리 옆에 있다. 부딪치고 넘어져 상처투성이인 사람들과 함께 베토벤의 음악을 나누고 싶은 저자 안우성의 바람으로 이 책은 집필됐다. 인생의 불행과 고뇌 속에서 일구어진 가장 위대하고 찬연한 음악에 독자들의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기대게 하고 싶은 저자의 노고에 독자로서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악 구성 형식으로 장을 악장(樂章)*으로 대신했다. 1장 〈내가 베토벤을 만나고 얻은 것들: 베토벤을 들어야 하는 이유〉, 2장 〈처음이 어려운 당신에게: 시작할 때 들으면 좋은 곡〉, 3장 〈인생이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곡〉, 4장 〈고난에 굴복하지 않는 법: 강인한 의지가 느껴지는 곡〉, 5장 〈끝나지 않은 음악, 끝나지 않은 인생: 진한 여운이 남는 곡〉 등이다. 

*악장: ① 조선 초기에 발생한 시가 형태의 하나. 나라의 제전(祭典)이나 연례(宴禮)와 같은 공식 행사 때 궁중 음악에 맞추어 불렀으며, 주로 조선 왕조의 개국과 번영을 송축하였다. 〈용비어천가〉, 〈문덕곡〉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② 소나타·교향곡·협주곡 따위에서, 여러 개의 독립된 소곡(小曲)들이 모여서 큰 악곡이 되는 경우 그 하나하나의 소곡. 베토벤 교향곡 제3악장.(독자 주)

저자가 독자들에게 베토벤을 소개하는 이유는 책의 표제어(『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와 일치한다. 1장의 제목 〈내가 베토벤을 만나고 얻은 것들: 베토벤을 들어야 하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이다. 1장은 저자가 베토벤을 만나고 얻었던 것들이 중심이 된다. 저자는 현대인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정신없이 살아간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이유를 밝히진 않지만 독자의 추론으로는 조선과 일제 강점기, 해방과 분단, 6·25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우리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20세기는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의 혼을 담은 나라가 세워진 후 가장 비참한 60년의 세월이 있다. 또 해방이 되었지만 분단된 나라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내전까지 치르고 폐허화된 대한민국에서 발전한다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을 시대가 있었다. 1960년 이전의 대한민국은 "시궁창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길 기다리는 상태"였다. 

민주화와 산업화로 나라 발전의 기틀을 잡아가는 일은 4·19 혁명 이후부터다. 뒤늦게 근대화에 뛰어든 4·19 혁명과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3공화국의 정권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인식을 같이한다.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3공화국은 산업화에 명운을 걸었지만 민주화는 함께 가기에 모순된 점이 있다고 믿었다. 부족한 정권의 명분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집권 체제와 경제 발전에 매진한다. 그러나 헌법에 의한 집권 기간이 끝나도록 산업화는 결코 만족할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에 옛 왕조 시대 못지 않은 '제왕적 대통령제'로 헌법을 바꾸는 등 장기 독재를 노리다 결국 나라를 다시 세우는 공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또 다른 군부 독재 정권에 나라를 넘겨 주고 만다. 

제3공화국은 그렇지만 산업화 추진으로 경제 발전에 매진해 어느 정도 성과를 일궈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때의 우리 노동자, 농민들의 노력은 저평가되었고, 재벌들의 배를 불리는 정책으로 자본주의 최대 약점인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가 고착화되어 갔다. 그래도 국민들의 경제적 수준은 고도 성장 속에 빠르게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때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현상이 '빨리 빨리'다. 뒤늦게 출발했으니 급한 마음에 뭐든지 빠르게 해야 하는 조바심이 있었다. 돈 버는 일은 무엇보다 '빨리 빨리' 해결해야 했다. 이런 문화는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이나 학교 등까지로도 퍼졌다. 하루 24시간 근무도 우리의 문화에서 비롯됐다. 교대제로 24시간 동안 일을 한다는 의미다. 이런 빨리 빨리 문화는 외국의 건설 현장에서도 빛을 발휘했다. 외국인들이 비웃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잠자는 시간은 물론 밥 먹는 시간에도 빨리 빨리는 돈 버는 데는 큰 효과를 냈다.

이미 산업화되고 첨단 산업으로 옮겨가는 선진국들은 우리의 목표였지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30년 이상의 전 국민의 노력으로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 대국의 위치로 올라선 예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지금에서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이 기간에 희생되고 가혹한 형벌을 견뎌낸 민주화 인사들의 불굴의 신념 또한 높이 사야 한다. 덕분에 우리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거의 같이 짧은 기간에 이룩해낸 나라로 세계에 인식되었다. 그러나 문화계는 이런 시민 의식이 결코 장기적 국가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문화를 이끌 만한 대표적 인물은 모두 정부의 탄압 대상이었던 시절에 재대로 기능하지 못했다.(여기까지 우리 현대사 부분은 독자의 평소 생각이고 독자 여러분께서는 오해 없으시길 양해를 구한다. 굳이 말하자면 저자의 베토벤 소개와 연관 지어 생각난 부분이다.)

“사람은 하루에 한 번은 노래를 듣고, 좋은 시를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봐야 한다”라고 괴테의 말을 인용한 저자의 언급대로 우리 인생에는 예술이 꼭 필요하다.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보고, 듣고, 느끼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새로운 감정을 마주한다. 형용할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이 흐르거나 온몸의 소름이 돋는 그 순간은 우리 인생의 새로운 조각이 된다. 그렇게 감정이, 더 나아가 나 자신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1장에서 저자는 초등학교 시절 〈운명〉 교향곡으로 베토벤을 처음 만났다고 밝힌다. 그때 마주한 웅장함과 두려움, 경이로움은 아직도 인생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순간이다. 아무 정보 없이 들은 음악에서 베토벤의 감정을 온전히 다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그때의 잊지 못할 순간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음악이 탄생한 배경부터 클래식이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순간, 솔리스트이자 음악 감독으로 활동 중인 저자가 직접 선별한 베토벤 베스트 연주 영상까지 책 한 권에 모두 모았다.

저자에 따르면 베토벤은 자신의 어린 시절 포부, 성장, 시련, 의지, 사랑을 음악에 담았다.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리며 〈엘리제를 위하여〉를 작곡했고, 유서를 쓸 정도로 힘들었을 시기에는 〈영웅〉을 쓰며 삶의 의지를 다잡았다. 이전의 작곡가들과는 다르게 귀의 즐거움만을 위한 음악이 아닌, 의미와 이야기를 담은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낭만주의 음악이 탄생한 계기가 되었다.

클래식은 사실 어렵기만 한 음악이 아니다. 위트 있고 단순한 음악도 많다. 만약 짧은 곡이 좋다면 〈잃어버린 동전에 대한 분노〉부터, 베토벤의 웅장함을 느끼고 싶다면 〈운명〉부터, 형식과 경계를 뛰어넘는 환희의 곡을 듣고 싶다면 〈합창〉부터 시작해 보자. 저자는 어느 곡을 들어도 베토벤에게, 더 나아가 클래식 음악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음악을 듣는 순간 밀려드는 감동과 경이로움이 나의 단조로운 일상을 가득 채워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이 클래식 음악 세계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저자는 베토벤의 작품이 타고난 재능에서 발휘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핍과 열등감, 고독한 운명에서 능력이 발휘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모든 순간은 음악이 되었고, 그렇게 인생이 담긴 그의 음악은 듣는 이에게 위로가, 때로는 용기가 된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베토벤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의 의도와는 약간 궤를 달리한다. 작곡가들도 사람이기에 이른바 '밥값'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베토벤의 아버지도 자신의 아들이 훗날 언젠가는 그의 할아버지처럼 궁정악장이 되길 소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베토벤에겐 안정적인 삶이나 사회적 지위보단 자유로운 삶이 중요했다. 오직 '자유와 진보'를 향한 예술을 위해, 예술가로서의 존엄성을 위해 일체의 속박 관계를 거부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난 더 이상 귀족들을 위해 작곡하지 않을거야.",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테니 당신들은 그저 귀만 기울이면 돼."라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1795년 3월 29일 빈에서의 데뷔 연주를 통해 베토벤은 이제 음악회는 소비자 중심에서 예술가 중심으로 재편되었음을 알렸고, 음악가 최초의 프리랜서 예술가의 출연을 선포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들으면서 읽는 베토벤〉라는 별도의 코너를 책 속 곳곳에 마련, QR코드를 통해 오케스트라 등 연주자들의 실제 연주 모습을 들려준다. 독자들의 책과 음악 읽기를 한층 도움이 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안우성


클래식 음악과 인문학의 접점을 모색해 가고 있는 음악 감독. 독일과 영국에서 켄트 나가노 등 세계적 지휘자와 함께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국립음악대학교 석사 과정,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후 독일, 이탈리아, 영국에서 오페라 《마술피리》, 《어린이와 마법》, 《비밀 결혼》 등에 주역으로 출연했고, 독일에서 다수의 오라토리오 독창자 로 협연했다. 움베르토 조르다노 국제 콩쿠르, 루체로 레몬카발로 국제 콩쿠르 등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했고, 영국 오페라센터에서 주관한 ‘영 아티스트’에 선발되었다. 독일 뮌헨국립오페라단 오펀스튜디오 전속 솔리스트, 독일 프라이 부르크오페라단 객원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저자는 삼성전자 임원 교육, 국민은행 독서클럽, 삼성금융연수원, 한국거래소 등 여러 단체에서 강연 활동을 이어 가며 일반인들에게 클래식은 어려운 음악이 아닌,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음악임을 강조한다. 특히 베토벤으로 클래식을 시작하기를 추천하는데, 베토벤 음악에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음악의 특징뿐만 아니라 감정과 이야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문화일보》에 클래식이 개인의 삶에 어떤 쓸모가 있는지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 왔으며, 저서로는《남자의 클래식》이 있다. JTBC <톡파원 25시>, KBS <예썰의 전당>, MBC 인문학 강연 <스미다> 등 다수의 방송에 클래식 전문가로 출연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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