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
제임스 리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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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난 항상 이곳에서의 마지막날을 꿈꿔. 하루 빨리 자유라는 걸 되찾고 싶어. 혼자서 목욕탕 가고, 마트 가고, 카페 창가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고..."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원한다. 또 국가라는 제도 하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자고, 놀고, 일하고 등의 살아가는 일을 자유롭게 하도록 법으로 보장한다. 특히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할 상황이라면 자신이 선택할 권리도 보장돼 있다. 단 법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를 보장하고 있다. 이 같은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법으로 범죄라고 규정하고 국가 공권력을 들여서도 못하게 하는데도 근절되지 법과 공권력의 사각지대가 있다.

이른바 관습이고, 사회의 필요악이라고 규정하며 실제로 도외시했던 성매매 행위가 그중의 하나다.

지금은 국가나 법에 의해 워낙 강력한 처벌이 따르기 때문에 예전처럼 내놓고 하는 매매 행위는 줄어든 듯 보이지만 점점 은밀한 거래로 숨어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은 ‘성매매특별법’ 제정 및 시행에 계기가 된 성매매업소 화재 사고 2건을 배경으로 하는 실화 소설이다.

1차 사고가 일어난 지 1년 6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일어난 2차 사고, 앞서 비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으로 전혀 개선된 점 없이 더 많은 희생자를 내고야 만 당시의 잔혹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 소설은 우리 사회가 성매매 여성에게 지우는 혐오와 편견이 어떠한 것인지를 똑바로 직시한다. 성매매 여성들은 선불금과 그에 따른 이자 등 금전적인 올가미에 걸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불어나는 빚을 감당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빚과 폭력, 감금 등 성매매의 폐단은 성매매 여성이 성매매에서 탈출하는 것을 극도로 어렵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이 소설은 경찰, 공권력, 지역사회와 성매매의 뿌리 깊은 유착을 숨김없이 보여주며 우리 사회가 왜 그동안 성매매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 소설은 취업 사기 등으로 성매매라는 올가미에 걸린 여성들의 사연을 알려줌으로써 성매매의 추악한 민낯을 보여준다.





여기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극복하기 힘든 가난으로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중퇴해야 했다. 또 다른 여성이 있다. 그녀는 처참한 가정폭력이 일상이었던 아동학대 피해자다. 그리고 또 다른 여성은 사랑했던 사람에게 임신한 채 버림받았다. 막을 길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며 임신중절 수술을 한 그녀는 육체에 남은 아픔보다도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스럽다.

친족 간 성폭력, 윤간 등 여성성이 무참히 말살된 범죄 피해를 당한 여성도 있다. 생각하기도 끔찍한 이 피해들을 중복해서 당한 여성들도 있다. 그리고 사회적 기반이 전혀 없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겪은 이 여성들은 끝내 성매매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최악의 늪에 빠지고 만다.

‘고등학교 중퇴의 가출소녀’라는 딱지가 붙은 소희가 살아가는 현실은 혹한의 겨울, 허허벌판에서 서늘한 바람을 맨몸으로 맞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살을 에는 바람은 그칠 줄 모르고 그녀를 티켓다방에서부터 전국의 여러 유흥업소를 거쳐 마침내 감금된 채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군산 개복동 성매매업소로 데려오고야 만다. 어느 날, 종일 소름 끼치는 시커먼 연기와 매캐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코앞의 동네, 완벽하게 똑같은 구조의 업소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 사고로 해당 업소의 성매매여성 5명이 안에 갇혀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한다. 업소의 모든 출입문에는 쇠창살과 이중 잠금장치가 설치되어 있어서 밖에서 누군가가 자물쇠를 열지 않는 이상 밖으로 나가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그녀들은 굳게 잠긴 문 앞에서 단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소희는 업소의 좁은 창문을 통해, 온 동네를 시커멓게 휘감은 매캐한 연기를 멍하니 바라본다.





이 소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성 구매자 남성들은 성매매여성들의 성을 하룻밤 샀다는 이유로 마치 그녀들의 인격까지 모조리 산 것처럼 행동한다. 이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폭력적 착취와 인권유린이 발생한다.

최근 ‘미투운동’이 일어나며 변화의 바람이 불었지만, 정치인, 사회 유명인사, 연예인에서부터 연인 관계에 있는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성 상품화와 왜곡된 성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 성매매여성의 탈성매매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형적인 성 산업의 구조는 소설의 배경이 된 화재 사고가 일어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바로 이 점이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어른의 머리와 가슴을 뜨끔하게 한다. 범죄의 악랄함, 잔혹성과 함께 미성년자 피해자들이 많아서 더욱 뜨거운 도마 위에 오른 ‘n번방 사건’ 또한 우리 교육현장의 성교육은 실패했고 이 사회의 성 문화는 뼛속 깊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점이 이 소설의 출발이다.






이 소설은 또 주인공 소희가 호주 원정 성매매를 하는 내용도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해외로까지 뻗어 나간 대한민국 성매매의 공고한 카르텔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성매매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논쟁을 떠나서 효과적인 성교육과 윤리의식이 뒷받침되는 올바른 성 문화를 세워나가는 일이 시급하다는 메시지를 소설은 전한다. 또한, 이 소설은 성매매로 인한 인권유린을 철저히 파헤침으로써 성매매가 인권 문제이자 사회 문제임을 외치고 있다.

이 소설에는 자신이 결정하고, 추구하는 삶의 궤도 위에 올라서기에는 상상 이상의 모욕과 두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여성이 등장한다.

등장인물 초희, 미희, 미애 그리고 주인공 소희 등 그들 모두, 자신을 삼킬듯한 아니 삼켜버린 잔인한 현실 속에서 도망쳤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은 결국 '성매매업소'였다. 아무리 전력으로 뛰어봤자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난공불락 그 자체였다.

자줏빛 붗빛 아래에 창가 앞에 한 개의 인형처럼 줄이어 앉아있는 성매매여성들. 그들의 현실이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벗어날 수 없는 감시와 잔혹함. 화재사건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녀들에게는 최소한의 자유조차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애초에 사회 속에서 사람이 아닌 인형 또는 쾌락적 장난감 정도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화학성 화장품을 진하게 바르고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그만큼 자신을 더욱 옥죄어오는 채무 그리고 압박. 그 안에서 소희는 지환에 이어 효석이라는 진정으로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남성을 만나지만 그들 역시 어느 순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우연한 기회를 얻어, 효석이 다니는 군산의 한 기업에 들른 겸 그곳 화장실로부터 전력으로 도망친다. 익산역으로 그리고 서울로 향하던 중 쓰러지고 들르게 된 대학병원, 그곳에서 마주하게 된 망가질대로 망가진 그리고 피폐해진 몸. 몸과 마음이 더 이상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될지언정 그녀의 신분은 늘 상품 또는 인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호주로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그녀를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불변이다. 철조망, 사슬 그 자체인 건물로부터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문앞의 조폭들로부터 단 한 순간도 벗어나지 못한 그녀들은 결국 죽음으로써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2층에서, 창가 앞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자줏빛 음탕한 그 창가 앞에서 늘 강요되는 그녀들에게 자유를 향한 가장 작은 보폭 한 걸음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그 잔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겠다는 작가의 굳은 의지를 제대로 느끼게 된다.





저자 : 제임스 리


제임스 리는 작가이자 여행칼럼니스트로서 현재까지 116개국 해외여행을 했으며, 호주 시드니 법대대학원 수료(SAB코스), 전 KOTRA 전문위원이다. 호주 시민권자로 십 수년간의 호주 이민 생활 끝에 눈으로 직접 본 시드니 카지노 한인 피살사건, 한인 이민 브로커 피살사건 등을 다룬 논픽션 소설 『불법체류자』 (2017년)를 출간하였고, 자전적 체험을 근간으로 한 소설 『1980화악산』(2018년)을 통해 군대 내의 뿌리 깊은 폭력과 부조리, 동성애 등을 다뤘다. 이처럼 작가는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한 문제를 들춰내 약자에 대한 폭력을 비판하며,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 외 인문서로서 『돈: 세계사를 움직인 은밀한 주인공』(2019년), 『소소하지만 확실한 세계사 상식』(e-book, 2018년), 『법을 알면 호주가 보인다』(e-book, 2016년 개정판), 『법을 알면 호주가 보인다』(2004년)가 있다.

방송활동으로는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라는 주제로 K-TV에 특별대담 초청 출연한 바 있으며, 현재 [법률저널]과 미주 [The Korean News]에 ‘제임스 리의 여행칼럼’을 수년 째 연재 중이다. 그 밖에 미래부, 법제처, 서울시, 충청남도, 광양만경제자유구역청, 지방행정연수원, 서울도시철도공사, 충북기업진흥원, 한양대, 부산대, 영남대, 한국산업기술대, 한국-호주 친선협회, 선농문화포럼, CEO 포럼 등 중앙부처 및 지자체에서의 강연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온라인 활동으로는 Daum 카페 『해외여행사랑-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 운영자로 활동 중이며, 페이스 북에서는 ‘리제임스’라는 아이디로 오늘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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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귀환 - 누구나 아는,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제이슨 바커 지음, 이지원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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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귀환』에 나오는 마르크스는 그간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던 위대한 사상가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강박성 성격장애가 있는 이들이 흔히 그러하듯 주변 사람이 엉뚱하고 미심쩍게 여기는 것에 몰두하며 세상을 부유한다. 그는 한 가지 생각에 빠져서 다른 것을 희생해버리는 유형의 인물이다. 그는 가족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쓰면서 자신의 삶과 모든 관계를 위험에 빠뜨린다.

소설에 나온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은 영화 〈기생충〉의 김씨 가족과도 비슷하다. 나날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투쟁, 고통스러운 사생활, 끊이지 않는 돈 걱정, 그리고 ‘품위’를 향한 욕망이 그렇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방세가 밀리고, 가진 것을 저당 잡히고, 자식들이 병들어 죽어가는 상황에도 고개를 똑바로 들고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끝내 포기하지 않으며, 직장을 구하고 정착하지도 않는다. 마르크스가 몰두한 단 한 가지는 바로 노동자와 자신의 가족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줄 『자본』의 집필이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마크르스를 영화 <기생충>의 김씨 가족과 닮았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힘들고 어려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가장이지만 품위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마르크스의 피나는 노력과 자신의 신념을 전파하려는

끝없는 도전은 어찌 보면 가진 자의 영역(신분 상승)에 들어가고자 했던 김씨 가족과 닮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내 예니의 말에서는 기생충의 김씨가 아닌 허생전에 나온 허생의 부인이 떠오른다. 둘 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말을 하지만 아내의 말에 두 남자는 다른 반응을 보인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그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20세기 최고의 사상가 중 한 명인 마르크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삶은 행복했을까? 그의 가족은 어땠을까?

이 소설을 읽고 조금은 그런 궁금증이 풀릴 수 있다.





마르크스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가 쓴 『자본론』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는 70~80년대 군부독재시대에는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다. 그래서 그가 쓴 책은 금서다'로 출판은 물론 읽기가 쉽지 않았다.

학생운동권에서 몰래 돌려 읽으며 독서토론서로 삼았을 뿐이다. 또 『자본론』을 제대로 읽은 사람들이라도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할 것이다. 독자도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공산당 선언』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은 적은 있지만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는 게 적확한 표현이다. 영미소설 『마르크스의 귀환』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의 가족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자본론』을 쓰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앵겔스와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그가 살았던 시대는 어떠했는지를 소설적 즐거움에 실어놓았다.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오해를 했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다시 되짚어보는 책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선택했는데 제이슨 바커 저자의 소설이라는 걸 알고 조금은 당황했다. 그러나 철학자로서 현대 철학을 소개하는 일이고, 마르크스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감독한 이력을 보고 소설에 대한 궁금증이 오히려 더 커졌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무엇을 그리고 싶었을까?





널리 알려진 인물이자 위대한 사상가인 카를 마르크스. 하지만 우리는 괴벽스러운 천재였던 그의 진짜 삶을 모른다.

『마르크스의 귀환』은 위대한 사상가의 삶을 조망하는 흔한 엄숙주의를 완전히 걷어낸 마르크스 일대기이다.

저자인 제이슨 바커는 철학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저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기념비적 통찰을 끌어낸 저작 『자본』을 완성해가는 한 인간의 집념과 그 여정을 허구를 곁들여 개성 강한 필치로 그려냈다. 슬라보예 지젝은 『마르크스의 귀환』을 ‘마르크스의 혁명 사상 핵심에 가닿은 걸출한 소설’로 평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마르크스가 이론적 성취에 이르는 과정을 예측 불가능한 방식의 서사로 구현해낸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소설이며, 심리 미스터리, 철학, 미적분학, 마르크스와 엥겔스 저작의 발췌와 결합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귀환』에 나오는 마르크스는 그간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던 위대한 사상가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강박성 성격장애가 있는 이들이 흔히 그러하듯 주변 사람이 엉뚱하고 미심쩍게 여기는 것에 몰두하며 세상을 부유한다. 그는 한 가지 생각에 빠져서 다른 것을 희생해버리는 유형의 인물이다. 그는 가족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쓰면서 자신의 삶과 모든 관계를 위험에 빠뜨린다.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소설에 나온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은 영화 〈기생충〉의 김씨 가족과도 비슷하다. 나날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투쟁, 고통스러운 사생활, 끊이지 않는 돈 걱정, 그리고 ‘품위’를 향한 욕망이 그렇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방세가 밀리고, 가진 것을 저당 잡히고, 자식들이 병들어 죽어가는 상황에도 고개를 똑바로 들고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끝내 포기하지 않으며, 직장을 구하고 정착하지도 않는다. 마르크스가 몰두한 단 한 가지는 바로 노동자와 자신의 가족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줄 『자본』의 집필이었다.





19세기, 억압과 악취로 찌든 런던에서 부르주아사회와 자본은 빠른 속도로 자신의 영향력을 증식하고 있었다. 자본은 모든 데 스며들고, 모든 곳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이를 침울하게 바라보던 마르크스의 고뇌는 21세기에 되살아난다. 『자본』을 쓰도록 추동한 19세기 영국 노동자의 참혹한 삶은 오늘날 재현되고 있다. 한국의 청년들은 피자 배달을 ‘업’으로 삼고, 노인들은 폐지를 줍도록 거리로 내몰린다.

그 어느 시대보다 양극화 현상이 세계적 차원에서 극심해지고 있다. 19세기 영국에서 거대 공장이 뿜어내는 유황 구름과 숨조차 쉴 수 없는 탁한 공기, 부유물로 뒤덮인 항구로 대변되는 환경 문제 역시 현재에 오롯이 되살아난다. 지구 가열로 인한 기후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이를 입증한다.

마르크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이들은 늘 있었다. 세상을 바꾸려는 광적인 몽상가 무리가 언제나 그와 함께했다. 현실, 또는 일상이라는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면서도 끝없이 ‘혁명’을 추구한 마르크스. 저자는 이러한 마르크스의 딜레마를 소설이라는 장르로 그려내며, 독자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꿈꿀 수 있는가?’ 『마르크스의 귀환』을 읽는 동안 독자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강렬한 열망, 다시 소환되는 혁명정신과 만나게 될 것이다.





만일 독자들이 소설로서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불평이 생긴다면 마르크스주의의 세계적 석학 캘리니코스의 저서들을 참조하면 된다. 캘리니코스(마르크스의 귀환에 대한 서평이라 다른 학자의 저서명은 생략함을 양해해주시길 바란다)의 책 서평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는 공장, 주택, 귀금속 등 갖가지 부를 모두 자본으로 본다. 그러나 세계적 마르크스주의 석학 캘리니코스는 마르크스가 자본을 전혀 다르게 규정했다고 지적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은 특정 사물이 아니다” 고 강조했다.

즉, 토지나 설비 등은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 요소들일 뿐이고 특정한 사회관계를 맺어야만 비로소 자본이 된다는 것이다. 자본은 두 가지 관계로 규정된다.

첫째는 자본과 임금노동의 관계다. 이 관계에서는 노동자에게서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착취가 일어난다. 이 적대적 관계 속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서로 의존하는 동시에 투쟁한다. 둘째는 자본가들 사이의 관계다. 이 관계는 특히 자본들 사이의 경쟁이라는 형태를 띤다. 즉, 자본가계급은 조화롭게 통합돼 있는 단일 집단이 아니다.

이렇듯 자본을 관계로 보면 오늘날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과 경제 위기와 전쟁이 끊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고, 자본주의를 극복할 혁명적 주체가 누구인지도 밝혀낼 수 있다. 심지어 토니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 데이비드 하비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자본의 본질이 착취와 경쟁이라는 두 가지 관계임을 이해하지 못해 자본주의 체제의 동역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실천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캘리니코스는 지적한다.





『마르크스의 귀환』의 저자 제이슨 바커는 한국어판 출간 이후 이택광 문화비평가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Q1.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마르크스의 삶에 공명한 부분이 있기 때문인가?

A. 12년 전 이 책을 쓰기 시작했기에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마르크스의 글은 영국 대학에 재학 중이던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마르크스의 삶을 소설로 쓰려고 한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나는 영국 서리에 있는 예술 디자인 대학에서 공부했는데, 동기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처음엔 마르크스의 삶이 시각적이고 영화적인 언어로 그려져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었다. 배우가 나오지 않아 전기 영화가 되는 걸 피할 수 있고, 사진 대신 그림으로 인물과 풍경을 만들어서 창조적 자유가 커졌다. 어쨌든 2010년 이 작업을 포기했다. 서랍 속에 각본을 넣어둔 채 6년간 쳐다보지 않았다. 다시 서랍을 열었을 때 이 이야기를 할 유일한 방법은 소설이었다. 마르크스에게 공감이 가는 이유는 뭘까? 그의 성격에서 나 자신을 많이 발견했다.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자질은 고집스러운 광신이다. 우리 모두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간은 마르크스처럼 사상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내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독자들은) 마르크스의 상황이 나빠질 낌새를 알아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완고한 고집스러움 때문에 고통스러워질 것이다. 비극에는 이상한 호소력이 있는데 이게 그 일부다. 재난이 막상 닥치면 외면하기 어렵다. 기차 사고를 지켜보게 되는 것과 같달까.





Q2. 『마르크스의 귀환』에는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 참고한 작가가 있는가?

A. 작업을 대비해 여러 다양한 소설을 읽었다.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마르크스의 캐릭터에 적용하려고 했던 황당하고 미덥지 못한 소설 속 화자도 있다. 조지 엘리엇의 『사일러스 마너(Silas Marner))』다. 영화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존 슐레진저의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Far From The Madding Crowd)〉는 물론이고 하디 소설도 있었다. 멋진 이야기다. 19세기 신문 자료 〈1849년 런던의 콜레라 유행(London’s cholera epidemic of 1849)〉도 2장 ‘무한에서 0까지’ 부분을 쓰는 데 도움이 됐다. 제임스 조이스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지인이 내 소설 속 예니(마르크스의 아내)가 『율리시스』의 몰리 블룸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의도한 건 아니다.

Q3. 21세기에 마르크스의 삶을 다룬 소설과 『자본』을 읽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A. 『자본』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미친 책이고, 엄청나게 흥분되는 책이다. 그러나 미완성이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30년이 지나도록 노력 중이다), 중독성이 있다. 좋은 소설처럼 때로는 그 안에서 길을 잃게 된다. 정글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표지판도 없고, 시야도 트이지 않고 움직이기도 어렵다. 피곤할 수도 있다. 『자본』을 읽은 내 경험이고 큰 도전이다. 21세기의 삶은 큰 도전을 수반할 것이다.





Q4. 패배자로 묘사하고 있지만, 실존적인 조건이 마르크스에게 오히려 비범한 삶을 추구하게 한다. 그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A. 소설 속의 마르크스는 ‘루저’라 할 수 있다. 좋은 지적이다. 마르크스가 1849년 런던에 도착했을 때 프랑스의 박해를 피해 떠나온 가난한 독일인 망명자였다는 걸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독일 망명 공동체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 마르크스는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 아주 소규모의 친구들에 둘러싸여 살았고, 경쟁자들이 있었지만 보통 신통치 않았다. 마르크스의 정치에는 그다지 ‘위대한’ 것이 없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후에 이야기한 위대한 정치 같은 것 말이다. 마르크스는 실패자였을까? 소설에서도 부분적으로 이 질문을 다룬다.

역사적으로 마르크스의 실패를 말하는 건 아직 이르다. 그의 성공 여부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세계는 지금 생태 위기의 대재앙에 직면해 있다. 기후 변화는 인류에게 실존적 위협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력하며 전적으로 경제의 지배 아래에 있어 이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우리는 환경을 구할 수 없다. 터무니없지만 생태 위기를 불러오는 형태의 일들로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중략)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다. 또 집단행동의 모든 힘을 앗아간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러한 세상을 상상해 보라고 요구한다.

우리 삶이 돈과 무관하고, 기업이 아닌 사람들이 세계의 주인이며, 공동의 부를 모든 이의 상호 이익을 위해 관리하는 세상 말이다. 그것이 마르크스의 성공 여부에 대한 테스트다. 노동자들이 그 꿈을 현실이 되게 하자.


저자 : 제이슨 바커


197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03년 웨일스의 카디프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을 영미권에 활발하게 소개했다. 2002년 발표한 『알랭 바디우 : 비판적 입문』으로 바디우에게 ‘내 작업의 정치적 궤적을 가장 잘 설명한 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영미권의 바디우 연구에 물꼬를 텄다. 이후 런던대학교, 미들섹스대학교, 런던커뮤니케이션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다큐멘터리 〈마르크스 재장전〉을 집필, 감독, 공동 제작했다. 이 작품에서는 슬라보예 지젝, 페터 슬로터다이크, 니나 파워, 알베르토 토스카노, 자크 랑시에르, 존 그레이,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등이 출연하여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의 부활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다. 2011년 9월에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2018년 『마르크스의 귀환』을 출간했고, 지젝은 이 책에 대해 ‘마르크스의 혁명 사상 핵심에 가닿은 걸출한 소설’로 평했다. 최근에는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 북리뷰》

《다이어크리틱스》 등의 신문과 잡지, 학술지에 글과 서평, 비평 등을 기고하며, 현재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에서 영화, 철학, 드라마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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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커버
아마릴리스 폭스 지음, 최지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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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봐야 할 일이 생기면 스타벅스에서 라떼를 사 마셔요. 그리고 24시간 후에 만나는 거예요“

CIA 최연소 여성 비밀요원의 영화보다 더 놀랍고 매혹적인 삶을 담은 『언더커버』가 국내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그녀가 카라치에서 미행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핵무기 테러를 막기 위해 혼자서 파키스탄 카라치의 뒷골목을 누빈다. 이유는 테러범들과의 협상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조력자와의 만남은 스타벅스 기프트카드를 건네며 시작되었다.

카드잔액을 체크해 라떼 금액이 빠지면 24시간 후에 접선이 이루어졌다. 혹은 특정한 카페 화장실 변기의 물탱크에 메모를 남겨 정보를 교류했다.

『언더커버』에서는 이처럼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흥미진진한 일화들을 전하고 있다. 이에 워싱턴포스트는 “CIA 요원들의 회고록 중에서도 가장 디테일하고 풍성하다!”라고 극찬한 반면, CIA에서는 이 책을 두고 지나치게 정보를 오픈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취하며 출간을 우려했다.





『언더커버』 저자 아마릴리스 폭스는 중국 상하이부터 파키스탄 카라치까지 세계 곳곳에 잠입해 10년간 예술품 사업가라는 위장된 신분으로 살았다.

테러를 막기 위한 포섭과 잠입, 협상이 끝없이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면 중국 스파이인 가정부가 있었다. 가족, 친구, 주변인들 누구에게도 그녀가 하는 일을 숨겨야 했다. 때로는 동료 요원에게조차.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1년간 옥스퍼드 대학 입학을 미룬다. 그녀는 버마로 가서 군부에 맞서는 이들의 투쟁을 돕는다. 그 과정에서 아웅 산 수치와 만나게 되고, 버마 국민들을 향한 그녀의 메시지를 언론사에 전달해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버마 정부로부터 신분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영국인 금융전문가와 위장결혼을 선택하는 대담함도 보여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저자는 미국 조지타운 대학원 재학 중, 테러범들의 은신처를 알아내는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이를 본 CIA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22살에 최연소 여성 비밀요원으로 선발되었다. 그 후 가장 위험하지만 모두가 선망하던 최정예 비밀작전에 투입되면서, 수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6개국의 테러조직을 추적했다.





정향유 한 병으로 테러를 막은 일화도 눈에 띈다. 테러집단 지도자의 아이가 천식으로 호흡이 힘겨워 보였고, 아마릴리스는 가방 속에 있던 정향유를 건넸다. “우리 딸도 가끔 호흡이 가빠질 때가 있어요. 이걸 써본 적이 있어요?” 다음날, 공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총구를 겨누었지만 아이를 둔 부모라는 순간적인 유대가 두 사람을 감쌌다.

“그러나 그 전쟁을 끝내는 길은 그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테러와 전쟁이 끔찍하고 용서할 수 없는 범죄라고 하면서, 그러나 그 전쟁을 끝내는 길은 그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최측근에게조차 비밀에 부쳐야 했던 가짜로 가득한 삶, 끝없이 이어지는 위장 속에서도 유일한 진실은 그럼에도 우리가 모두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품에서 느껴져 오는 아이의 심장박동 소리였다고 말한다. 『언더커버』는 영화보다 더 매혹적이고 첩보소설만큼 흥미진진하다. 긴박한 전개와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을 한 권이 될 것이다.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화제가 되었고, 「캡틴 마블」의 여성히어로 브리 라슨 주연의 애플TV 드라마화가 결정되며 연일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책 표지의 느낌은 '여성 비밀요원'이란 점과 '매혹적인 삶'이란 문구가 첩보원의 상징인 무술과 최신 무기를 잘 다루는 요원보다 '미인계'를 쓴 비밀요원인가? 하는 느낌이 든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마타하리처럼.

그러나 느낌은 희망이나 느낌일 뿐, 책을 펼치면서 '잘못 생각했네'라는 겸연쩍은 미소가 흐른다.

아마 독자가 나폴레온 솔로의 영국 첩보원 등과 책을 통해 나오는 옛날 첩보원을 머릿속의 편견을 지우지 않고 책을 펼쳤기 때문이리다. '역시 아날로그 세대임이 분명하네'라는 자성과 함께다.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첩보원이 아니라면 대단한 액션 가능한 첩보원? 여기에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기대했지만 조금은 느슨하다. 액션은 없고 작전 없는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 자주 나와서 그럴 것이다. 지루하지는 않다. 약간의 인내심을 갖고 읽어나가니 곧 훈련, 임무가 반복되어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 가족 이야기, 개인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만히 생각하니 에세이다. 에세이에서 비밀 첩보원의 대단한 활약상을 기대한 것이 선입견을 지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첩보원이 되기 전 만나 첩보원임을 밝히고 결혼한 앤서니나 농장 훈련을 졸업한 동료 첩보원 딘과의 결혼 생활 등이 일반 직장 생활인이나 다름없는 듯하다. 표지나 첩보원의 느낌과는 다른.





저자가 CIA를 사임한 결정적 이유는 조이 때문이었을 것 같다는 자연스런 추정도 해본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성격도 파악할 수 있고, 심리적 변화나 인생관 등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저자가 원하는 대로 살기를 바란다.

국가를 위한 일을 하고, 그 경험이나 노하우를 통해 제 2의 삶을 더 화려하게 살고 있는 비밀요원의 삶을 통해 미국이란 나라에서 여성의 삶이 부럽기조차 하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정보요원들의 삶과 비교도 해보면서 우리의 실정에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책을 읽어가면서 몇 가지 비밀요원다운 일을 하는 저자를 발견하면서 첩보원의 삶이 쉽지 않으리란 믿음에 더 무게가 간다.

첩보원을 누군가 따라 붙었다면 최대한 상대를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소개자를 통해 만난 소련제 잉여 군수품 조달업자와의 만남 장면에선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긴장감도 준다. 핵 테러와 관련돼 만난 사람에게 미행이 따라 붙으면서 작전을 중단하는 모습에선 '엘리트 비밀요원 맞네' 하며 인정하게 된다. 책을 읽다가 만나는 여러 가지 문구도 스릴 있고 으스스하다. 치밀하고 실전에 유용한 것이란 사실에 대테러 첩보원 생활이 얼마나 어려을지 짐작케 한다.

'오늘은 현장 답사, 작전일은 내일이다'

'상대가 원하는 건 국제 사회에서 관심을 끄는 것이다 - 테러 조직의 목적'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성, 술에 취해 있는 사람이 타겟으로 적합하다'





"10년간 미술품 사업가라는 위장 신분으로 세계 곳곳에 잠입하여 테러를 막는 임무를 수행하였고, 남편도 동료 요원이었지만 서로의 임무를 역시 숨겨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운 삶일지 상상이 쉽지 않다. 늘 가족과 함께 살면서 일하고 쉬고, 삶의 행복도 같이 느끼고 같이 슬퍼하기도 하는 보통사람의 삶과는 너무 다르다.

또 CIA 요원들도 임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는다. CIA 로비의 벽에 박힌 희생자를 기리는 별들이 늘 그런 사실을 상기시켜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건 다른 종류의 위험이었다.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는 건 무기가 아니라 위장신분이었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건 상대의 목숨이 아니라 신뢰였다."는 말은 국가 비밀 첩보원의 삶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해준다.


"20년간 벽장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위장신분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어. 하지만 단 한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하겠지. 그러니 밖으로 나가. 정보원을 포섭해. 테러 위협을 막아. 그러다보면 언젠가 물러나라는 통보를 받을거야.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며 빈둥거리는 것보다 그게 낫지."

"잘 기억해둬, 넘어질거면 앞으로 넘어지라고."






저자 : 아마릴리스 폭스


전 CIA 비밀요원이자 당시 최연소 여성 비밀요원이었다. 현재는 작가이자 평화운동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방송활동도 겸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국제법과 신학을 공부한 아마릴리스는 미국 조지타운 대학원에서 테러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이를 본 CIA가 그녀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결국 그녀는 22살에 CIA 비밀요원으로 선발되었다.

당시 최연소 여성 비밀요원이었다. 그 후 가장 위험하지만 모두가 선망하던 최정예 비밀작전에 투입되면서, 수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6개국의 테러집단을 추적했다.

대 테러 센터에서 알 카에다에 납치된 포로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대량살상무기가 테러범들에게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테러 조직 출신의 수감자들을 만나는 한편, 국제 암시장에서 무기상들로부터 생화학무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아마릴리스 폭스는 2010년 CIA에서 은퇴 후 CNN,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알자지라, BBC 등 세계적인 뉴스 매체에서 시사 문제를 분석해왔다. 또한 세계 각지를 돌며 다양한 행사와 대학 연단에서 평화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녀의 매혹적이고 놀라운 삶을 담은 책 『언더커버』를 원작으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 「캡틴 마블」의 여성히어로 브리 라슨이 주연을 맡은 기대작이다. 또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인 「중독의 비즈니스THE BUSINESS OF DRUGS」의 진행을 맡았다. 세 번의 결혼을 거쳐 현재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이자 법무장관이었던 로버트 케네디의 증손자인 로버트 주니어 3세와 결혼을 해 미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는 남편, 그리고 두 딸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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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아갑니다
박영희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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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르타주(Reportage)는 사회현상이나 사건을 충실히 기록하거나 서술하는 보고기사 또는 기록문학. 르포르타주란 원래 프랑스어로 탐방·보도·보고를 뜻하는 말이며, 약칭하여 '르포'라고도 한다. 흔히 논픽션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논픽션은 픽션의 상대어로서 좀더 포괄적인 개념이며, 르포르타주는 논픽션 중에서도 특히 저널리즘에 가까운 유형을 지칭한다.

르포르타주의 요소는 이미 계몽주의 시대의 여행기나 사회조사에서 나타나지만, 문화적인 중요성을 띠고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 배경에는 교통과 매스컴의 발달,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전지구적 관심의 확대,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에 입각한 혁명적 기록문학의 등장 등이 자리잡고 있다.

문학적 형상성에 대한 배려보다는 사실 자체를 직접 제시하는 데 주력하는 르포르타주는 심미적 가치나 예술성의 측면에서 본격문학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사건 자체에 대한 즉물적인 기록이 잘 다듬어진 예술적 허구보다 훨씬 더 박진감있는 흥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르포르타주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모두 중요한 사회적 사건을 대상으로 하며 치밀한 취재와 구성, 그리고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을 두루 갖추고 있다. [출처 : 문학비평용어사전]





르포문학의 본래 의미에 충실한 이 작품에서 독자들은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지만 미처 헤아리지 못한 그들의 직업적 애환을 만난다.

매연에 둘러싸여 일하면서 통행객들의 점잖지 못한 말투나 성희롱까 당해도 이에 항의하거나 성희롱으로 고발하기도 어렵다.

말로 하는 성폭력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업무인 것이다. 그래도 좁은 부스 안에서 고통스런 업무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오로지 '살기 위해서'다.

또 무급 근무를 이어가며 페업을 막았지만 누적 적자를 이유로 결국 폐업한 진주의료원에서 일한 의료 관계자 및 공중보건의 등도 우리가 예상치 못한 사회적 피해자들이다. 작가는 한때 호황으로 수출 역군으로 대우 받기도 한 조선소 목선제작 목수도 배가 이젠 일본산 플라스틱 선박으로 대체돼 선박수리공으로 일 있는 날만 바라보는 일당제 최저 대우를 받아도 감사하다며 일해야 하는 처지다. 페지값이 떨어져 하루 종일 일해서 몇 천원씩 받던 것도 이젠 1천~2천원에 불과하다.





저자 박영희는 이번에 낸 책 『그래도, 살아갑니다』에 사회 소외 계층에 초점을 맞추고, 이들의 직업적 특수성, 근로 환경, 임금 등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르포 문학의 주 테마인 사회 비주류 계층의 삶을 조명한 것이다.

그들이 소외 계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와 현실을 조목조목 직업별로 만나 현장 확인, 인터뷰, 국가의 대안 마련 등을 파고들었다.

전 국민의 노력을 밑바탕으로 우리 경제가 좋아지면서 국민소득도 크게 높아졌다. 우리는 개발도상국에서 이젠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정도에 이르렀다. 지난 1960년대부터 정확한 통계를 낸 이후 마이너스를 기록한 일은 한 번도 없을 뿐만 아니라 70년대 후반까지는 고속성장을 이뤘다. 국민소득 증가는 국민의 국가의 부강을 의미한다. 나라가 부자면 성장 과정에서 노력한 사람들이 분배의 보상을 해줘야 정의로운 국가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의 불평등 분배는 차치하고도 부자가 됐는데도 소외 계층은 대를 이어 비주류다. 신분 상승의 기회는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분배 차원에서의 저소득 소외 계층에 대한 복지 혜택을 늘려나가도 여전히 그늘진 내 이웃은 햇볕을 제대로 쬐지 못한다. 그래서 경제 성장 못지 않게 분배도 중요한 국가의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 시장경제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분배가 정의롭게 이뤄지지 않아 늘 사회 문제로 존재한다.





국민 소득 증가는 소비 증가를 불러온다. 소비 증가는 귀금속 등 주얼리의 시장도 커진다. 주얼리 등 사치품 시장은 규모화되고 기계화된다.

이 경우 주얼리 시장이 커질 때까지 노동력을 제공하고 적은 임금을 받아 삶을 유지하던 사람들은 일할 자리마저 위협받는다.

산업화의 그늘에서 묵묵히 일하던 사람들은 업종 전환을 하거나 비슷한 다른 저임금 일자리라도 있으면 감사해 하며 일하는 처지로 밀려난다. 이렇게 밀려난, 이젠 일하는 날보다 안 하는 날이 많은 귀금속 세공사의 이야기도 가슴을 찡하게 울려온다.

'페이 닥터', 얼마 전 아파트 한 주민의 갑질 폭행으로 극단적 결심을 한 아파트 경비원도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물론 일정 기간 근무하면 실업급여 등의 수급 혜택은 받을 수 있지만 갑질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전무한 상태. 정도가 심하거나 상해 이상의 피해를 당해야 고발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대개는 일을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한다.

이밖에도 사회 소외 계층이 일하는 곳은 대부분 인권 보장, 사회 보장 등은 아직 확보되지 못했다. 국가가 노력해 정책적으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완전히 실현되기까지는 사회적 차별이나 부당 대우 등을 감내해야 그나마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각자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래도, 살아갑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격월간지 『인권』의 ‘길에서 만난 세상’의 내용을 책으로 꾸몄다. ‘길에서 만난 세상’의 내용이 책으로 담긴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길에서 만난 세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앞서 살펴본 대로 팍팍하고 힘겨운 상황 속에서 누구보다 더 힘껏 삶을 이어 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린 탓이다. 작가는 취재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르포 형식으로 담았다. 이 책에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기간제 교사, 대리운전 기사, 지방 병원 간호사, 유기농 농사꾼, 지방 대학 청년들, 세공사, 선박 수리공, 경비원, 고려인, 장타령꾼 등 17편의 르포가 실렸다.

“사회적인 현실에 대해 주관을 섞지 않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르포인 만큼 그 삶들의 면면이 그야말로 생생하게 담겼다.

인생이 녹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래도, 살아갑니다』 속 사람들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보통의 다른 이들보다 더 힘들고 불안한 삶을 '버텨나간다'.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그리고 일상을 열심히, 절실하게 살아 낸다. 극히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잘사는 사람들도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결과다.

그런데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어떤 대목들에서는 우리 사회의 오류 혹은 미흡함이 엿보인다. 『그래도, 살아갑니다』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우리, 그리고 이웃과 나를 돌아보며 지금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한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몇 차례 돈을 떼인 적도 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고객(차주)은 현금이 없다면서 양주석 씨의 통장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물론 그 돈은 입금되지 않았다. 대구에 서 구미까지 장거리 대리운전을 뛴 날은 그보다 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휴게소에 차를 정차한 뒤 고객이 부탁한 담배를 사 왔더니, 그사이 차주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양주석 씨는 그날 대리운전비 5만 원과 일당벌이마저 접어야 했다.


“저는 유명 강사의 특강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같이 성공한 사람만 있고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는 거죠? 자신의 꿈조차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청년 세대에게 성공 사례만 잔뜩 나열하는 강연이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대기업 입사 서류전형에서 지방 대학생 서류가 나오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하잖아요. ‘지방대? 그거 한쪽으로 밀어 놔. 지방에서 배웠으면 얼마나 배웠겠어.’ 당부컨대 이 같은 장면과 대사는 자제하고 좀 더 신중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공 의료는 탁상공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말일세. 혹시 자네, 건강한 적자와 착한 적자라는 말 들어 봤나? 이 둘을 양손에 쥔 게 바로 공공 의료의 현실이네. 100세 시대에 정부만 바라보고 있는 고령 세대를 어찌할 것인가? 중년에서 노년으로 급속히 변해 가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좀 더 멀리 보자는 뜻이네.”





양재순 씨가 노령연금으로 받는 돈은 월 20만2,000원. 한 달 약값과 부식비로 들어가는 돈이 더 많다고 했다. “20만 원이면 적지요. 다음 달부터는 기름보일러도 돌려야 하고요.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괜한 소리했다가 이거라도 안 주면 콩나물 구경도 어렵게 되잖아요.”


세공을 비집고 들어온 액세서리(주얼리)시장도 광주 씨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다.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정밀세공을 위협하는 액세서리 시장은 그동안의 귀금속 시장을 한순간에 바꿔 놓았다. 수작업이 기계화를 따라갈 수 없는 현실 앞에 광주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경비 업무 중에서 제일 힘든 게 택배물 관리죠. 경비실이 비좁아 물건을 쌓아 둘 장소도 없을 뿐더러, 16개 택배 회사로부터 무더기로 택배물이 들어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칫 분실했다간 주민들과 두고두고 말썽거리가 되지 않겠어요.”


정씨 할아버지가 고물을 줍느라 보내는 시간은 하루 10시간. 이동거리는 20km 내외. 일과를 아침에 시작하는 직장인들과 달리 할아버지는 오후 4시부터 고물을 줍는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 무렵에 나가야 퇴근을 앞둔 사무실에서 신문을 내놓고, 상점과 약국에서 종이상자를 내놓기 때문이다.





“고려인들과 상담을 해 보면 안타까울 때가 참 많아요. 뿌리를 내릴 만하면 강제 추방을 당했잖아요. 고려인 1세대가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을 당했다면, 그다음 세대는 1990년대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갈 곳마저 잃어버렸다 할까요. 중앙아시아에서 소수민족 밀어내기가 노골화되자 몸을 피해 한국을 찾아온 거잖아요."


“졸업식 때 제일 비참하더군요. 3학년 담임을 맡고도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으니 이보다 비참한 현실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간제 교사는 겨울방학과 동시에 무급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발목을 다쳐 깁스를 하고 다닐 때였다. 연가를 내고 싶었지만 형탁 씨는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데다 자신은 유급휴가를 낼 정교사 신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간호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일컫는 은어가 있다.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태움’이다.

태움은 주로 대형 병원에서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를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데, 미래가 있는 직업일 거라고 입사한 선미 씨도 이미 거쳐 온 과정이다. 무려 1년 동안 영문도 모른 채 왕따만 당한 기분이었다.





저자 :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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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 《즐거운 세탁》 《팽이는 서고 싶다》 《해 뜨는 검은 땅》 《조카의 하늘》, 르포집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두만강 중학교》 《만주의 아이들》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내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보이지 않는 사람들》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길에서 만난 세상》(공저), 평전 《김경숙》 《고 마태오》(공저), 시론집 《오늘, 오래된 시집을 읽다》, 서간집 《영희가 서로에게》, 여행 에세이 《하얼빈 할빈 하르빈》 《만주를 가다》 《안중근과 걷다》(공저), 청소년 소설 《운동장이 없는 학교》 《대통령이 죽었다》를 펴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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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러 수용소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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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들어온 자여, 희망은 버려라!


소설에 언급되지는 않지만 '악플러 수용소'에 갇힌 사람과 아무 것도 모르는 예비독자들에겐 강렬한 충격을 준다.

폐쇄 공간에서 희망을 버리란 말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전국 각지에서 남녀 열한 명이 동시에 증발하는 일이 생긴다. 약에서 깨어난 듯 의식을 차린 그들이 갇힌 곳은 ‘온라인 범죄행위자 교정수용소’, 곧 악플러 수용소다. 이곳에서는 토끼 마스크를 쓴 사내의 소름 끼치는 관리가 시작되고, 도망치려 했거나 수용소 규정에 반하는 행동을 한 사람들은 여지없이 하나둘 죽음을 맞는다. 한편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주에 한 번씩 상호평가 댓글을 통해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조기 퇴소를 위한 게임을 시작한다.

조기 퇴소를 하는 족족 그들 앞에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사건들. 그리고 수용소 소장과 자살한 여배우와의 베일에 싸인 관계 등 독자를 사로잡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소설은 악플러들의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독자들의 의문도 풀린다.

여배우의 비밀도 조금씩 밝혀지면서 독자에게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풀어간다. 저자는 이를 위해 재미와 복선으로 시선을 잡고, 반전 및 여운으로 감동을 준다.





악플에 시달리며 소중한 목숨을 잃은 이들이 많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악플’을 주제로 하는 모 방송프로그램의 MC로 등장해 담담하게 자신을 이야기했던 여배우이자 가수를 기억할 것이다. 또한 두 아이의 엄마로 화려하게 드라마에 복귀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던 국민 여배우도 생각날 것이다. 이 두 사람 말고도 악플을 견디지 못하고 스러져간 연예인과, 더 많은 수의 보통사람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이 책에서 그들은 10대 학생, 20대 청년, 중년 여성ㆍ남성에 이르기까지 악플 이외에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이자 우리 주변의 이웃이다.

작가는 이들의 민낯을 ‘수용소 수감’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사회적 심각성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수용소 안에서는 복수성이 짙은 단순 ‘처벌’이 아닌, 피해자가 생전에 겪었던 용서와 응징 사이의 고뇌도 조명한다. 단순 고발성 풍자소설이 아니라 익플러에 대한 분명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그럴 수도 있다. 내 손으로 직접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실 누군가는 손가락 하나로 한 생명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 책의 본문에 들어가기 전 저자는 2차세계대전 때 수백 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주범 아이히만의 예를 든다.

책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나는 잘못이 없다. 내 손으로 죽인 게 아니니까.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근 악플러 범죄자들을 가려내기 위해 네이버에서는 문장 맥락까지 고려해 모욕적인 표현을 가려내는 AI 클린봇을 구축했다. 이렇게 악성 댓글 노출을 막는 다양한 시도가 전개되는 가운데, 이 소설은 악플로 오염된 우리 사회를 정화시키는 하나의 촉매제로 자리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저자에 공감할 것이다. 가상 공간에 숨어서 연예인이나 공인에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비난하는 악플러들. 이들은 정보화 사회를 통과해 4차 산업사회로 변화하는 사회의 그늘에서 댓글로 선량한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행위는 당연히 범죄행위임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변화하는 사회의 그늘을 지우는 법적 시스템을 미처 갖추지 못한 채 법은 악의 그늘에서 허우적대는 양상이다.





찰칵 찰칵 찰칵, 미친 듯이 눌러대는 셔터에 다소 까무잡잡하기로 소문난 유 대통령의 얼굴이 하얗게 분을 칠한 것처럼 번뜩였다.

환갑을 코앞에 둔 대통령은 백내장 초기에 노안까지 겹친 것치고는 제법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아니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정면 카메라를 또렷이 응시했다.

찰칵 찰칵 찰칵….

“정부는 오늘 2024년 1월 1일 12시를 기점으로 인터넷 악플러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 p.16


“일찍 집에 가고 싶으신 분은 레드볼을 획득해야겠죠? 또 그러려면 함께 방을 쓰는 수감자들에게 상호평가에서 많은 공감지수를 얻으시면 되겠고요. 한마디로 추천수를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이 해 안 되시는 분 계십니까? 없으시면….”

“저기요! 여기서 즉결처리라는 게 뭐죠?”

한 남자가 손을 들고 질문하자, 모여 앉은 죄수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즈, 즉결 처리라는 게 뭔지 알고 싶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즉시 처리한다는 거죠. 그것은…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 pp.60~61





어떻게 촬영을 마쳤는지도 모른다. 눈부신 조명 앞에서 디렉터가 원하는 대로 또 그동안 몸이 기억하는 대로 포즈를 잡으며 촬영을 한 것이 무려 네 시간이었고, 입은 옷은 총 열아홉 벌이었다. 그러는 동안 딱히 특정한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언제나 염두에는 오늘 뜬 기사에 달린 악플들이었다. 선배 연기자인 황민아는 아역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20년 차 배우였지만, 자신 역시 16살 때부터 연예계 물을 먹어 와서 십수 년 차인데 모를 리가 없다. 아까 본 악플들은 단지 자신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시기해서 단 게 아니라, 비난하기 위해 달았다는 것을.

- p.165


“악플 속에서 저는 창녀가 되었다가, 불효녀가 되었다가, 돈독에 오른 년이 되었다가, 가증스러운 광대가 되었다가,

관심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관종이 되기도 하죠.”

- p.311





“농담이고요. 사람들은 참 이상해요. 왜 별보다 별똥별을 좋아할까요? 평소에 머리 위에 별들이 저렇게 지천으로 빛나는데 거들떠도 안 봐요. 그런데 별똥별이 떨어진다 하면 그렇게들 좋아해요. 나쁘죠.”

“뭐가 나쁩니까.”

“그 별은 죽으러 가는데. 사람들은 왜 죽으러 가는 별한테 소원을 빌어요? 명복을 빌어야지.”

- pp.339~340


“저기요. 아저씨? 저 청소년이에요. 모르셨어요? 나 아직 생일 안 지났는데.”

- p.350


저자 : 고호


일꾼, 이야기꾼, 때로는 상상꾼. 그러나 정작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재미없는 무역회사에서 밥벌이를 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세계로는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와 『악플러 수용소』 등이 있으며, 지금도 꾸준히 또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소설 일부 내용과 독자들의 이해를 위한 게재는 독자들 입장에서 쓴 것이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다음은 저자 입장에서 이 소설을 소개해 본다.

악플러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게 된 인기 여배우 고혜나가 자살하기 전까지의 고뇌가 고스란히 작가의 손을 거쳐 독자들에게 느껴진다.

고혜나가 악플로 인해 서서히 멘탈이 무너져내리고 결국 죽음으로 비극적 생을 마감한다. 그 과정을 피해자 입장에서 절실하고 고통스럽게 묘사한 저자의 고충도 읽힌다. 저자의 마음도 충분히 고통스러웠을 거라고.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적가는 법에도 없는 '악플러 수용서'를 고안해 냈을까. 쉽게 쓰이지 않았을 작가의 열정에도 응원을 보낸다.

악플러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은 10대에서 50대까지 평범한 소시민들로 친근한 이면에 드러나게 되는 그들의 속마음이 여지없이 악플을 통해 표출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데 반성도 없이 당당한 모습에 더 화가 난다. 현실과 비슷해 더 공감할 수 있다.

악플러 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남여 세 명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이제 남은 생존자들은 무직 박기성, 간호조무사 오수정, 사법고시 준비생 장민환, 전업주부 신영자, 인테리어 자영업자 김광덕, 중학생 윤설. 이들은 두려움에 떨게 되고 서로 힘을 합치기로 하는데 상호평가를 통해 박기성이 레드볼을 가장 먼저 취득하게 된다. 전자팔찌 30년 부착하는 조건으로 퇴소를 하지만 또 다시 악플로 인해 결국 전자팔찌가 폭발해 죽는다. 전자팔찌도 무시무시한 장치였구나... 저자의 철두철미한 구상에 박수가 나온다.





레드볼을 받게 된 수감자들은 조기 퇴소를 하지만 끔찍한 사건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더이상 레드볼은 구명볼이 아닌 시한폭탄으로 이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이 대목에선 작가는 왜 법적으로 구현되지 않을 이 같은 보복을 범죄자들에게 가하는가. 독자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 법전의 형벌제도 취지를 떠올린다. 공감하는 독자들은 법적 당위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지 못한 법 체계가 문제라는 비난을 얹어 저자와 공감할 수 있다. 그들이 얼마나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지, '죽어 마땅한 죄'라고 인식하고 고대법까지 소환하며 저자와 독자는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 가운데 수용소 소장과 자살한 여배우 고혜나의 관계가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데... 반전이다. 이야기가 재미를 더해준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악플러들. 평범한 이웃이었던 이들이 한 사람을 벼랑끝으로 몰아 결국 죽음을 선택하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으로 아직까지도 악플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악플러 수용소를 보면서 악플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음 좋겠다는 점을 독자들은 이제 확실하게 인지한다.

고혜나에 대한 악플을 보면서도 당사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전해지는 충격은 보통 멘탈이 강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쉽게 지나칠 수 없을 정도란 생각이 비로소 들면서 악플로 인해 스러져간 많은 연예인들에게 미안한 느낌도 든다.

차제에 악플이 아닌 선플만 남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해 보며 읽은 잘 빚어진 도자기 한 점을 감상한 기분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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