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를 위해 헤어져요 - 1호 가족법 전문 변호사의 이혼사건 다이어리
조인섭 지음, 박은선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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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것도 아니고, 이혼할 생각도 없는 사람이 변호사의 '이혼사건 다이어리'를 왜 봐?"

그런 생각이어서 처음 이 책을 읽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웹툰이고, 인기가 좋았다니까 "어떤 내용인데?" 하는 정도의 호기심만으로 이 책에 관심을 뒀다.

그러나 책을 본 순간 약간 생각이 바뀌었다. 단순히 인기가 좋아 책을 펴낸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했다.

우리 나라 '1호 가족법 전문 변호사'란 명칭도 꽤 관심이 갔다.

그러나 정작 관심이 더 커졌던 이유는 최근 사회 관심사가 된 '아동학대'가 가족법의 테두리에서 출발했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더 잘 키우기 위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는 나의 큰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법에 의한 적절한 처벌은 법조인들이 할 일이지만 예방 차원에서 알아야 할 법 상식을 배우기 좋은 교재로 쓰일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조인섭 변호사가 전문이고, 전문지식을 이용해 피해자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이혼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가족간 갈등을 줄이는 데 최소한의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무조건 참고 인내하며 희생만을 강요하는 결혼이 우리 부모님 세대(70~80대)까지였다.

그때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미미하고, 사회 구조가 남성 위주였기 때문에 배우자(남편)와의 문제가 발생할 때도 무조건 참아야 했기에...

그러나 지금 30~40대만 하더라도 다르다.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이혼한 여성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이혼의 후유증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혼을 비롯한 가정 폭력, 아동 문제를 현장에서 오랜 시간 다뤄온 변호사의 글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한 면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법을 몰라 법의 피해를 보는 가슴 아픈 일은 더 이상 피해자에게 벌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저자의 의도에 깊이 공감한다.





“여기는 쿠키 없나요?”

미리보기 요청이 쇄도하던 〈조인섭 변호사의 이혼사건 다이어리〉!

17만 구독자가 추천하는 인기 인스타그램 웹툰 〈조인섭 변호사의 이혼사건 다이어리〉를 새롭게 엮은 『이제 나를 위해 헤어져요』가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됐다.

〈조인섭 변호사의 이혼사건 다이어리〉는 매 연재분마다 기상천외한 반전과 믿을 수 없는 실화 에피소드로 호기심을 자극했다.

미리보기 결제 코인을 의미하는 ‘쿠키’를 언급하며 “쿠키 없나요?” “현기증 나요, 빨리 다음 편 주세요”라고 장난스레 호소하던 독자들을 위해 미공개 에피소드가 담긴 에세이를 더하고, ‘몰래 찍은 증거는 불법 증거라서 법정에서는 무효다?’와 같이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질문에 대해 친절하게 답하는 코너도 마련했다.

『이제 나를 위해 헤어져요』는 〈조인섭 변호사의 이혼사건 다이어리〉를 보고 있던 독자들에게는 만화로 그릴 수 없었던 에피소드와 실용적인 상식을, 아직 만화를 보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사이다같은 반전 실화와 가슴 먹먹해지는 현실 이야기를 선물한다.





“변호사님, 저 잘한 걸까요?”

아직 망설이는 사람들,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들…

모두를 응원하는 이야기!

대한변협 1호 가족법 전문 변호사인 조인섭 작가가 대표변호사로서 운영하고 있는 로펌 ‘신세계로’는 이혼을 딛고 신세계로 향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혼이 터부시되고 피해자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시절부터 이혼, 상속, 가정폭력과 아동 문제를 다뤄온 조인섭 변호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혼도 행복을 찾아나가는 과정일 뿐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며, 오히려 응원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혼 이야기를 더 친근하게 전달하고, 일상에 도움이 되는 법적 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연재한 〈조인섭 변호사의 이혼사건 다이어리〉는 어느새 17만 독자가 구독하는 인기 연재 만화가 되었다.





밖에서 보면 알 수 없는 수많은 가정 문제들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이혼을 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나를 위해 헤어져요』는 오랜 시간 가정법원을 드나들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가족과 사랑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아 우리의 사랑과 가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이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결혼하지는 않는다. 사랑의 결실로서 결혼생활을 오래 이어가길 소망한다.

그러나, 사람 관계는 내 마음 같지 않다. 이 책은 우리에게 언제든 닥칠 수 있는 관계의 위기를 다룬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막상 만나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헤어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혼 사무실을 찾아오는 수많은 의뢰인들은 때때로 관계를 회복하고 고쳐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을 위한 선택을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나를 위해 헤어져야 할 순간이 오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랑과 우정, 인생에 대해 돌아보게 될 것이다."





연수원을 찾아온 선배가 가사, 아동 학대,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가족법 전문 사무실이 있다고 말해줬다.

그때 처음 들었던 분야였다. 가족법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사무실이 있다는 것이 신선했고, 법조인으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조금 다른 길, 이혼 전문 변호사」 중에서

과연 그것이 자녀들을 위한 면접교섭이었을까. 아니면 전혼 배우자를 괴롭히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그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자녀를 보면, 한없이 사랑스러운 아이일 텐데, 상대방에 대한 분노 때문에 상처를 줘야 할까.

- 「이혼하며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그러나 상대방의 진정한 사과나 반성 없는 소송 취하는 몇 년 혹은 몇 개월 뒤 다시 소송으로 진행되었다. 그럴 때면 ‘그때 변호사님이 취하를 말렸을 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거나 ‘정말 변할 줄 알았죠’라는 말을 듣곤 했다. 성격 차이로 인한 이혼소송은 서로 맞춰서 살 각오로 취하하는 것이니 그나마 회복의 여지가 있지만, 가정폭력은 폭력의 습벽이 변하지 않으므로 몇 개월 뒤 다시 폭력이 시작될 때가 잦았고, 부정행위를 저지른 상대방은 ‘한 번은 걸렸으니 다시는 안 걸린다’는 각오로 증거를 모두 인멸하며 부정행위를 일삼기도 했다.

- 「그 사람이 변할 줄 알았어요 라는 말」 중에서

Q. 배우자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아요. 배우자의 핸드폰 메신저 내용을 몰래 캡쳐하면 불법적인 증거물인가요? 합법적인 증거는 어떻게 얻나요?

A. 부정행위에 대한 증거는 다양합니다. 그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핸드폰 대화내용 캡쳐나 대화내용 녹음인데요. 남편의 핸드폰이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데, 패턴이나 비밀번호 등을 몰래 알아내어 풀고 대화내용을 확보한 것이라면 이는 불법증거로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이 될 수 있고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남편이 내연녀와 대화하는 것을 몰래 녹음했다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으며 이 또한 불법증거입니다.

그러나 이혼사건에서는 불법증거도 다른 증거와 함께 상대방의 부정행위를 입증하는 유효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다만, 상대방이 형사고소를 하면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증거를 확보하기 전 혹은 확보한 뒤 사용하기 전에 전문가와 상의를 한 다음 활용해야 합니다.

- 「알수록 쓸모 있는 생활 가족법 상식」 중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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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펜션
김제철 지음 / 작가와비평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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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그린펜션》은 두 개의 중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 김제철은 「그린펜션」, 「끝나지 않은 계절」 두 작품을 통해 역사를 생각하며 사는 삶을 강조한다.

깨어 있어 역사의 아픔을 각성하고 진실에 다가서는 게 집필 목적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회구성원들 서로의 화해와 용서를 통해 공동체적 삶의 평화를 기대하는 것이다.

소설이 끝난 후 '작가의 말'에 소설쓰기의 이유와 취지를 밝혔다.

"늘 역사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그 펜션은 슬픔과 아픔을 통한 각성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얼마나 주변의 진실을 묻고 살고 있는가.

한 집단이 내부적으로 갈등하면서 소멸의 길을 걷는 것은 당대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에 그 원인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 현장을 그리는 것이 작가의 몫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말'을 리뷰 첫머리에 올린 이유는 독자들이 글의 성격을 미리 짐작케 하기 위해서다.





"현대사에서 성천은 역사적으로 기억될 만한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두 가지 일이라면?"

"해방 직후 시월폭동과 육이오 때 성천전투입니다."

"시월폭동과 성천전투라...."

백경훈이 이지환의 말을 나직이 되뇌었다.

"혹시 시월폭동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이지환이 백경훈의 얼굴을 보며 슬척 물었다.

"얼핏 들어는 보았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해요." (p. 17)

"저는 시월사건의 폭력성을 정당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명백히 그 사건은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유혈참사였습니다.

다만 내부적으로 구조적 모순이 없었다면 그런 참사가 가능했을까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상존하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 어떤 계기로 폭력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게 아닌가 싶은 거지요."

"그러니까 그 어떤 계기란 게...?"

"당연히 좌익세력이 그 구조적 모순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 역할을 했겠죠. 그래서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에겐 스스로도 미처 몰랐던 폭력적 성향이 내재되어 있고 어떤 경우 그걸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 같아서요." (p. 39~40)





"학도병은 틈만 나면 중대장의 막내 사촌형을 죽이려고 기회를 노렸소.직접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아니지만 원수 무리의 동생이었고 또 스스로 적 치하에서 앞장서서 적을 도운 좌익이었으니까 얼마든지 죽여도 된다고 생각했던 거요."(p. 87)

"그렇지만 묘하잖소? 부잣집 사촌형은 좌익이었고 가난한 집 사촌동생은 우익이었소. 그러면서도 서로 아껴주고 따랐다는 게 신기하잖소?"

"그러네요."

"그땐 모두 뭐가 뭔지 제대로 몰랐소. 그래서 올바른 선택도 못했던 거요. 지금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모두 스물 남짓한 어린 사람들의 일이었소."

(p. 92)





역사적으로 우리는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민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도 경험했다.

6.25 한국전쟁 이후 남북으로 나뉜 우리 민족은 서로 다른 이념 체제 아래서 70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전쟁을 겪은 분들은 별로 남지 않았고,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됐던 독일도 통일되고, 갈라져 싸웠던 베트남도 통일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우린 아직도 휴전 상태일 뿐 전쟁중이다.

때문에 민족 동질성은 확인하지만 오고가지도, 서신마저도 왕래할 수 없는 아픔의 세월을 살고 있다.

소설 <그린펜션>은 바로 그런 우리 사회에 내재된 고통과 한국전쟁의 상흔에 대해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책에서는 성천이라는 작가가 만든 지명을 내세우고 있으며, 6.25 전쟁의 변곡점이 된 성천전투, 시월 폭동에 대해서 퍼즐을 맞춰가고 있다.

소설은 허구와 사실 사이의 경계에 있으면서, 좌익과 우익을 동시에 놓고 있다.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이념이 민족을 어떻게 분열시켰는지 ,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가늠하게 한다.

소설 속에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이들은 돌아가셨고, 30년이 지나 그 후손들이 다시 모에게 된다.

그 후손들은 서로 각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자리에 모여 그때의 상처와 고통을 기억하게 한다.





죽음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인간의 나약함과 잔혹함,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의 생명을 앗아가는 처참한 결과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가고 있다.

성천전투와 시월폭동의 진실은 비극이지만 역사적인 교훈을 남긴다.

전쟁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불과하지만 이후 개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전쟁은 전쟁의 당사자에게는 물론 그 후손에게도 고통이 이어지며,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보여주고 있다.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가 전쟁이 준 교훈을 망각하고 변질될 경우 엄청난 왜곡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는 전쟁은 특히 민족간의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이유를 형상화시켜 보여주고 있다는 게 이 소설의 매력이다.





두 번째 이야기 「끝나지 않은 계절」의 주인공 현수는 자신이 맡은 환자의 죽음에 의구심을 갖는다.

그 환자는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던 터라 모두는 그의 죽음을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박 회장이라는 그 환자의 복부에서 두어 군데 수상한 부종을 발견하면서 현수는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된다.

결국 현수는 한 동료에게 은밀하게 이 사실을 알리고 환자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이고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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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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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만한 자격을 갖춰서가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올 때 당신은 불가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와서 당신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랑이 들어오기 전에는 누구나 사랑할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랑했거나 사랑하고 있는 어떤 사람도 사랑할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어서 사랑했거나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은총이나 구원이 그런 것처럼 사랑은 자격의 문제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소설가 이승우와 첫 인연을 맺게 해준 장편소설 『사랑의 생애』 중 한 부분이다.

제목에서 말한 바로는 사랑 자체를 한 생명체로 본 것 같다. 작품은 추천인의 신뢰(꽤 유명한 작가인데 나와 친분이 있는 분으로 이승우의 작품을 읽을 만하다고 소개했다)를 깔고 읽기 시작한 소설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언젠가는 빠져들어야 함이 숙명인 것처럼 다가오는 제목 때문에 행복, 아픔과 상처, 고통, 그럼에도 다시 사랑이라는 정해진 순리를 밟아가는 이야기인 줄 알고 펼쳐들었다. 첫 페이지를 읽은 느낌은 전혀 달라 당황했다. 쉽게 이해되지 않은 글들이 이어졌다. 다시 천천히 읽어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내를 갖고 읽다 보니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일 뿐이고, 사랑이 그 안에서 제 목숨을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은 제목의 이 소설은 사랑에 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미묘하고 당황스러운 현상들을 탐사하며 그것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듯 써내려간 작품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하고 엇갈리고 끝내고 다시 시작하는, 어쩌면 더없이 평범해 보이는 과정을 통해 사랑의 근원과 속성, 그리고 그 위대한 위력을 성찰한다.





소설은 읽기 쉽게 써야 한다는 내 관념을 깨뜨린 작가 이승우. 그를 두고 누군가는 작가와 독자와의 신뢰를 말한다.

책의 내용을 보지 않아도, 표지에 현혹되지 않아도 저자 이름만으로 맺어지는 믿음 같은 것. 또 누군가는 그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고 했다.

유려하게 반복되며 힘들이지 않게 긴장되는 그의 문장들을 깜빡 놓칠까 불안해서다. 이런 독자들의 반응이라면 저자의 마음은 한 키 정도 느슨해질 법도 한데, 그의 글쓰기는 유독 더 냉엄하고 외려 더 혹독하다.

너무 어렵게 쓴다는 생각에도 읽고 나면 빠져들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 이승우 작가의 냉엄함과 혹독함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떤 연유로 그에게 달라붙어 그를 지독하게 ‘쓰는 자’로 만들었을까.

이 질문의 답은 이미 그의 많은 소설과 글 속에 있다.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동시에 ‘쓰는 자’의 태도도 읽는다.

쓰는 자의 굳은 마음, 작가로서 지켜야 할 윤리 같은 걸 소설 안에서 읽는다.

즉, 그는 작가로서 여전히 작가의 존재증명을 위해 끊임없이 쓰는 셈이다.

스물 셋에 등단해 40여 년을 한 가지 일에 매달렸던, 즉 ‘쓰는 자’의 삶을 택했던 그가 그 오랜 시간 글을 쓰면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그리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놓았다.

이 책은 에세이로 소설보다 오히려 쉽게 읽혀 반갑다. 그리고 소설가 이승우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표현될 수 없는 아픔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무조건적 무의지적으로 만들어낸 표현, 그것이 손을 뻗는 동작이고,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소설을 쓰는 것이다.” ― (p. 70)

더 이상 손쓸 수 없어 진통제가 필요치 않은 환자에게 최선의 처방이란 손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의료인들은 할 일이 없다. 다만 입을 다문 채 손을 잡을 뿐. 신음하는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있으면 고통은 서서히 물러갔다.

일본의 작가 엔도 슈사쿠의 경험담에서 비롯한 이 에피소드는 죽어가는 어느 한 환자에게 가만히 손을 잡아주는 간호사와 손을 맞잡음과 동시에 고통은 사라지고 평온을 되찾아가는 환자를 목격한 이야기이다.

이승우는 이 이야기를 소설쓰기와 연관 짓는다.

‘고통은 살아 있음의 유일한 방증’이 되기도 하지만 ‘타인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오만’이 될 수 있다는 데에 견주어 소설쓰기 또한 아픔을 표현해내는 것이고, 그러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오만을 경계하는 것이라는 견해로 나아간다.

이승우에게 소설쓰기란 그런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독자를 향해 손을 내미는 행위이자, 의도와 목적 없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어서 손을 잡는 것.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내민 손의 간절함을 피하지 못해 그 손을 잡는 문학, 자신은 그런 문학이 쓰이며 읽힌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든 문장은, 아무리 잘 쓴 문장도,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 그것이 문장의 속성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자신의 삶이 참여해서 하는 일종의 번역 작업이다.” ―(p. 54)

창작의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평범한 질문에 이승우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로 갈음한다.

“영감이란 약삭빠른 작가들이 예술적으로 추앙받기 위해 하는 나쁜 말.”

이 생각 건너편에는 작가가 신비스러운 어떤 존재라는 생각이 깔려 있고 작가는 단지 초자연적인 존재의 언어를 받아 적는 필기구에 지나지 않다고 말한다. 문학을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 허용된 특별한 재능으로 판단하는 것.

물론 이승우 자신도 창작자로서 글 쓸 때의 창작의 영감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 경험이 신비스러운 초자연적인 순간이 아닌, 글을 계속 쓰게 하는, 소설의 이야기가 계속 뻗어가게 하는 추동의 역할로써의 순간이라고 못 박는다. 행운이자 은혜라고 불리는 영감이건만, 글 쓰는 자에게 이 영감은 철저한 글쓰기의 에너지이자 동력일 뿐 큰 의미를 부여해선 안 된다고 경계한다.

또한 작가에게 영감은 누군가로부터 어딘가로부터 오는 게 아니다. 창작자 내부에서 불러일으켜지는 것이며 그 일으킴을 이해할 때 작가는 필기구를 멈추고 창작자의 이름을 얻게 된다고 조언한다.





“나는 타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나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나를 이루고 있는 타인들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p. 109)

남의 집 벽장에 1년 동안 숨어산 어느 여자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작가 에릭 파이의 작품 《나가사키》를 소개하며 이승우는 ‘나’를 결합하는 조건들, ‘나’를 만드는 조각들에 대한 깊은 사유를 우리들에게 전한다.

집 안에 아무도 모르게 숨어들어 은밀한 시간들을 훔친 여자보다 낯선 존재를 모르고 오랜 시간 동안 평범한 삶을 산 남자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주위에 혹은 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비슷한 말로 돌려 말하면, 사람을 이루는 것은 사람 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다,라고 말한다.

지금 하고 있는 당신의 생각은 당신만의 오롯한 생각일까? 또 우리 안에 우리가 입주를 허락한 생각이나 사람들만 있는 것일까? 유익하거나 필요한 생각이나 사람만 들어와 살고 있는 걸까?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아는 생각, 모르는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뿐 우리 내부에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가득하다.

저자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우리 안의 타인. 그 타인들이 우리의 됨됨이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기 때문에 늘 우리는 누가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정하는지 살피고 탐구해야 한다. 단순히 요약컨대, 자기를 들여다보는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과 같다.





“유혹과 위협 앞에서 때론 긴장하고 때로는 초연하게 써온 것이, 그처럼 아슬아슬한 것이 문학이었다.”

―(p. 218)

이승우는 말한다. 중요한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절실한 것을 쓴다고. 중요한 것은 나 아닌 무언가를 대표하려는 유혹에 빠뜨린다.

물론 작가의 사회적인 역할 수행에 대한 요구는 때론 정당하고 윤리적이다.

다만, 발언하려는 욕망으로 인해 무엇의 중요함이 도리어 훼손되기 일쑤다. 이승우는 쓰는 자의 태도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조건들을 열거한다.

작가는 중요한가를 묻지 말고 절실한가를 물어야 되며 내가 관여되지 않은 절실함들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절실한 것만 쓰려고 할 때 나는 나 아닌 누구, 혹은 무엇을 대표하려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작가는 휘둘리지 않게 된다.

이승우는 자기문학을 하려고 하는 창작자들에게 세 가지를 주문한다. 욕망의 억제, 세상과의 거리두기, 초연함.

그는 40여 년 동안 소설을 쓰면서 앞서 언급한 세 가지를 기준 삼아 글을 써왔다고 고백한다.

절실한 것들을 보여주려고 했고 절실하게 본 것들을 소설로 말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오랜 시간 층층이 모여 나의 문학이 된 것이라고 말이다.





표현될 수 없는 아픔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무조건적 무의지적으로 만들어낸 표현, 그것이 손을 뻗는 동작이고,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소설을 쓰는 것이다.

- (p.70)

의미는 읽는 순간(에야) 발생하는 일회적 사건이다. 이 불완전과 불충분을 보완하려면 더 많은 단어와 문장을 더해야 하고,

설령 그런다고 해도 완전한 재현에는 성공할 수 없다. 사물의 표현이 그럴진대 변화무쌍하고 신묘불측한 인간의 감정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 (p.54)





모든 문장은, 아무리 잘 쓴 문장도,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 그것이 문장의 속성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자신의 삶이 참여해서 하는 일종의 번역 작업이다.

- (p. 54)

나는 타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나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나를 이루고 있는 타인들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p.109)

유혹과 위협 앞에서 때론 긴장하고 때로는 초연하게 써온 것이, 그처럼 아슬아슬한 것이 문학이었다.

- (p. 218)

어쨌든 소설가의 삶, 그 속에 녹아든 애환과 희로애락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아 호기심으로 이 책을 펼쳤다면 소설가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철학을 담은 책으로 느껴졌다. 독자들은 몰입하여 사색하기를 바라는 분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권하고 싶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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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이도우 산문집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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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우 작가와의 인연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4년 발표된 이후 수많은 독자들의 뜨거운 지지와 입소문으로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던 작가의 롱 스테디셀러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내 눈에 띄었을 때 가슴에 쿵하는 느낌이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사서함 110호'란 단어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단어였다.

책을 사 단숨에 읽어내려갔고 작가의 감정과 큰 공감을 이뤘다.

내용 중 직장 내 연애를 했던 나의 추억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다음에 인용한 두 문단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부분이라 밑줄을 그어놨고, 책은 소중하게 간직됐다.





“요즘 항상 같이 지냈죠. 낮엔 일터에서 만나고, 퇴근하면 둘이 시간 보내고. 당신 원고 쓸 시간까지 뺏는 줄 알면서.

오늘 아침도 오피스텔을 나올 때부터… 진솔 씨 하고 싶었던 거, 하나는 같이 해주고 싶다 생각했어요. 그 다이어리에 적혀 있던 것 중에서.”

그는 조금 쓸쓸하게 웃었다. 그녀를 돌아보지 않은 채.

“솔직하게 말할게요. 사람이 사람을 아무리 사랑해도, 때로는 그 사랑을 위해 죽을 수도 있어도…

그래도 어느 순간은 내리는 눈이나 바람이나, 담 밑에 피는 꽃이나… 그런 게 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거.

그게 사랑보다 더 천국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거. 나, 그거 느끼거든요?

당신하고 설령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많이 슬프고 쓸쓸하겠지만 또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요.

세상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힘든 고통이니까 난 사절하고 싶어요.”





이후 소설가 이도우가 첫 산문집을 냈다는 출간소식을 들었다.

안 읽고는 배길 수 없는 심정에 소개글을 봤다. '오래도록 기억되는 쓸쓸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에 관한 이야기'란다.

제목도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다. 독자에게 속삭이듯 하는 약간은 쓸쓸한 말들이란다.

귀에 솔깃하다. 옛사랑에 대한 추억도 당장 소환됐다. 일부러 밤 시간을 택해 읽었다.

이도우 작가는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를 집필하며 “살아온 시간을 이 책에 다 쏟아 넣어 적어도 10년 안에는 이런 책을 또 쓸 수는 없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작가의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소설 외에 자신의 이야기를 쓴 적 없는 이도우 작가의 첫 산문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나에게 큰 선물로 다가왔다.





작가는 지나온 모든 시간 속의 이야기들을 놀랍도록 선명하게 기억한다.

1992년 어느 날 “작가는 다 기억했다가 자기 글에 쓰는 사람”임을 문득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쓸쓸한 날을 기록함으로써 미처 쓸쓸할 새도 없이 살아낸 날들을 기억해주자 다짐했기 때문일까.

덕분에 이도우 작가가 오래도록 기억해온 사람, 말, 글, 풍경, 그날의 마음들에 관한 세심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작가와 나의 공감이 있는데 어떻게 오래 전 일을 소소한 것까지 자세히 기록할 수 있을까.

더욱이 감정의 표현들은... 작가적 능력인가. 세상, 삶, 사랑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인가.

독자 입장에선 아무래도 뒤쪽에 더 무게를 둔다. 그래서인지 책 속 내용에 금세 빠져들 정도로 공감이 잘 된다.

‘굿나잇’ 하고 건네는 밤 인사를 좋아한다는 이도우 작가는 마치 독자들에게 ‘굿나잇’ 인사하듯 이 책을 써 내려갔다.

나뭇잎에 한 장씩 쓴 이야기가 누군가의 책갈피에 끼워졌다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편안히 귀 기울여 즐겁게 들어줄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러니 서로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듯 책장을 펼쳐 들어도 좋겠다.

내일 또 하루치의 고단함과 기쁨, 슬픔이 찾아오겠지만, 지금은 깊은 밤이고…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는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쓸쓸함은 기록되어야 한다’에서는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우연처럼 인연처럼 만나왔던 심상들을 기록하고 있다.

‘2장 평행사변형 모양의 슬픔’에서는 “기억 속에 잡다한 순간이 넘쳐나 때로는 괴롭다”는 고백과 더불어 뜻밖의 감동을 안겨주었던 옛 시간들을 그려낸다.

‘3장 거미줄 서재’에는 “소설을 읽지 않으면 한 겹의 인생을, 읽으면 여러 겹의 인생을 살게 될 것만 같다”는 작가의 ‘책덕후 고백’이 담겨 있으며, ‘4장 추억이 없는 따뜻한 곳’에서는 세상과 타인 사이에 친 울타리를 온화하고 부드러운 경계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작가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의 공진솔과 이건, 『잠옷을 입으렴』의 수안과 둘녕,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의 은섭과 해원을 탄생시키고, 써 내려가면서 겪었던 다양한 감정들을 처음으로 엿볼 수 있어 소설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마지막으로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인 ‘나뭇잎 소설’ 아홉 편을 수록하여 이도우 작가의 신작 소설을 애타게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짧지만 강렬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나뭇잎에 한 장씩 쓴 이야기가 누군가의 책갈피에 끼워졌다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도 상관없지 않을까.

이름 모를 굿나잇클럽 회원들에게 무전 같은 일지를 쓴 책방지기처럼, 나 또한 이 책의 글들을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독자들에게 전해본다.

편안히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이들이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지금은 깊은 밤이고…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

- 序_ 수많은 그 밤에 굿나잇(p.9)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게시판에 1년에 두어 번 혼자 들어가 볼 때가 있다.

버려진 것처럼 남겨진 제목들을 눌러 물끄러미 읽으며 비로소 깨닫는다.

쓸쓸함은 기록되어야 한다고. 기록하지 않은 날이 기록한 날보다는 훨씬 많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다면 그 많은 날은 쓸쓸하지 않았던 날들이니까.

미처 쓸쓸할 새도 없이 살아낸 비어 있는 날짜들을 기억해주기로 한다.

기록하지 않았던 이름표 없는 보통의 날들. 여리고 풋풋했던, 인생이 평탄하고 버드나무 말고는 아무도 눈물짓지 않았던, 베개 옆에 꿈이 있어 고마웠던 그날들을.

- 쓸쓸함은 기록되어야 한다(p. 22∼23)





무엇이든 고장 나면 빨리빨리 수리하는 사람과 한동안 내버려두는 사람이 있겠지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내버려두는 버릇에 핑계를 대는지도 모르지만, 고장 났으니 그래 좀 쉬어라 싶어집니다.

스물네 시간 환히 전등을 밝힌 편의점을 보면 때때로 셔터를 내려주고 싶고요. 1년에 한 번이라도, 아니 3년에 한 번이라도.

일생 한 번도 쉬지 않는 건 심장이 하는 일과 같을 텐데, 그러고 보면 우리의 ‘하트’는 얼마나 성실하고 고단한 걸까요. 처음 쉬는 순간이 모든 일을 끝낼 때라니 새삼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고마워, 속삭이고 싶습니다.

- 고장 난 시계(p. 58∼59)

그 소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중세에 태어났다면 연금술보다는 만병통치약을 만든다는 주술사에게 깜빡 속았을 것 같아. 평생 들판에서 풀을 뜯으며 조수 노릇을 했을지도 몰라. 이상하지. 연금술은 남자들의 마법이었고 만병통치약은 여자들의 마법이기도 했는데.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던 걸 보면, 금을 만드는 건 괜찮고 약을 만드는 건 안 되었나.

그럴 바엔 차라리 맥베스에 등장하는 황야의 진짜 마녀들이 되는 게 나았겠어. 그치?’

들을 수 있다면 둘녕이가 웃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같이 커다란 가마솥에 온갖 신묘한 것을 끓여 마법의 약을 만들고 싶다.

- 어떤 레시피(p. 80∼81)





수안은 내 말대로 눈을 감았어요. 나는 주문처럼 속삭였습니다.

그리운 기억은 만들면 돼.

무서운 기억은 지우면 돼.

다시 눈을 떴을 때 두 손은 깨끗하고 아무렇지 않아요. 아프지 않아, 그 아이는 말해요. 나는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늘 수안이에게 미안했거든요. 함께 있어주지 못했던 것이.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함께 있어요. 언제까지나.

- [나뭇잎 소설] 할머니의 소다 비누(p. 178∼179)

우리는 더 이상 빛나는 미래를 가진 크리스토퍼 로빈이 아니라 다 커버린, 그래서 헌드레드 에이커 숲에서 작고 몽땅한 벗들과 오손도손 살아야 하는 푸 곰돌이겠지만 대신 이런 말을 들려주리라.

굿 타임즈 네버 심드 소 굿- 좋은 시절일 땐 그걸 몰라. 그러니 참 좋은 날들이었고 지금도 좋은 나날이며, 앞으로도 그러리란 걸 알아주리라고.

우리 곁을 스쳐가는 아무렇지 않은 나날들이 좋은 날임을 잊지 않고 알아봐주면 되는 것이라고.

- 한 시절에 이별을 고한다는 것(p. 290)





그래서 나는 소설 속의 인물 은섭에게 이 말을 주고 싶었나 보다.

“그 말 그대로야. 항상 너한테는.”

은섭이 사랑하는 해원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많은 이였다.

해원은 겨울밤 뒷산 오두막으로 그를 찾으러 가다가 길을 잃는데, 은섭이 그녀를 찾아서 함께 산을 내려가려 하자 순간 오해한다.

그녀가 오두막에 가는 게 싫어서 그런 거냐고. 그의 공간에 들여놓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은섭은 해원을 감싸며 말한다. 지금 오두막은 춥고, 그게 유일한 이유라고. 그 말에 다른 뜻은 없다고.

은섭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캐릭터여서 고마웠다.

이 대사를 쓰고 싶어 두 사람이 숲의 오두막에서 함께 밤을 보내는 어쩌면 로맨틱할지도 모를 설정을 포기했다.

하룻밤 더 같이 있지 못하더라도 ‘그 말 그대로야’라는 말을 해원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 너에겐 그 말 그대로(p. 294∼295)

이전에 서점 인터뷰에서 기자분이 ‘평생 쓰고자 하는 인생의 주제’가 있냐고 물으셔서, 솔직히 테마까지는 모르겠고 그냥 이번 생은 온통 트리뷰트 인생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중얼거리는 인생일 거라고….

애정을 고백하기에도 모자란 날들. 잡다한 것들을 껴안고 사는 기억의 호더증후군 같기도 하지만, 언젠가 그 많던 싱아의 방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많은 것을 기억했다가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 아름다운 나그네여(p. 32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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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박종원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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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동화책 같지만 스릴러 장편소설이다.

로맨틱 스릴러로 분류되는 이 소설은 약 600페이지에 달하는 긴 분량이지만 막힘없이 읽힌다.

전개가 빠르고 긴장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스릴러가 맞은 것 같다.

읽을수록 궁금증이 배가돼 쉽게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박종원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이지만 문체도 간결하고 매끄러워 쉽게 읽히는 데 한몫 단단히 한다.

스릴러 소설이지만 작가가 일부러 분위기나 배경이 으스스하지도 않다.

그저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얘기를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거부감도 없다.





작가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춤과 음악, 그리고 사랑

인간의 삶이 시작되고 진화하면서

개인 간의 관계를 맺고

집단 무의식에 똬리를 튼 생명의 문화이다.

노래하며 춤을 통해

삶을 축복하거나 욕망의 몸짓을 표현했다.

심지어 슬픔과 고통을 삼켰다.

인간이 드러낼 수 있는, 어쩌면

가장 감성적인 표현이다.

때로는 사랑의 언어로 나타난다.





춤과 음악의 매력은

이러한 감정의 자유로움이다.

춤과 음악이 결혼이라면,

그것을 지속하고 꽃피우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순수하다.

관계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신의 축복인 사랑을

인간의 경계에서 구속하고 속박하는 것은

자연의 재앙처럼 늘 범죄의 원인이다.

인간은 광대한 대우주의 한 생명체에 불과하다.

찰나의 순간밖에 되지 않는다.

신의 영역은 금기이다. 하지만

대우주는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고 축복을 내렸다.

삶은 축복이고 현재는 축제이다!





길기도 하고 일상에서 연속된 긴장을 끌어낸다는 건 소설만 읽어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의 소설관과 이 소설을 탈고하기까지 산고가 만만치 않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라톤 경주를 하는 것이었다. 한 번이 아닌, 수십 번의 인고의 과정을 겪는 고통이자 희열이었다.

첫 작품으로 욕망의 몸짓인 춤과 표현의 언어인 음악을 무대로 초청하여 ‘로맨틱 스릴러 장편소설’을 썼다.

글은 재미있게 쓰고 싶었다. 무대는 행복의 바이러스를 쏟아내야 했다. 사랑은 축복이고 금기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경계이다.

번데기가 되고 완연한 나비가 되어 훨훨 창공을 나는 그날까지 책을 쓰고 싶다."




줄거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게 요약된다.

갑작스런 아내의 자살을 경험한 남자에게 춤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심리 표현은 조금 아쉽다.

객관성을 확보한 설득력이 약간 미흡하다. 물론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독자의 어설픈 평이다.

남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공존한다.

이른바 춤꾼들의 세계와 그들의 사랑, 그들의 숨겨진 비밀을 하나씩 풀어가는 작가의 능력은 뛰어나다.

보이는 것 이면에 감춰진 비밀은 궁금증으로 남아 이어지고, 개성 강한 인물들이 부딪치고 상처를 낸다.

이 가운데 사랑과 또 다른 감정들로 충돌을 일으킬 때 서서히 비밀이 밝혀진다.

작가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이 탁월해 보인다. 이 때문에 긴 소설이 쉽게 읽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시작으로 춤이 완성되는 동안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이면의 진실로 서서히 다가간다.

현재와 과거를 적절하게 오가며 배치한 소설의 탄탄한 구성 능력도 돋보인다.

그만큼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했을지 새삼 박수가 나온다.

자칫 책을 덮을 독자들을 다시 끌어들이는 작가의 능력이 스토리 전개와 탄탄한 구성력을 갖기 위해서는

디테일하고 객관적인 설득력을 갖는 요소들이 덧붙여져야 한다.





춤을 소재로 댄스 학원, 행사무대, 무대 뒤의 모습, 콜라텍, 카바레까지 다양한 춤의 공간에 대한 현장 묘사가 뛰어나다.

인물들이 자신의 감정을 춤과 동작으로 표출하는 묘사도 인상적이다. 작가가 춤에 상당한 조예가 있을 것으로 유추되기도 한다.

슬프고 쓸쓸한 느낌은 어쩌면 독자의 삶(그것이 우리들의 삶이라 해도 좋을)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 같아 진한 여운이 남는다.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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