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레스토랑 - 오지랖 엉뚱모녀의 굽신굽신 영업일기
변혜정.안백린 지음 / 파람북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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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불편한 레스토랑』은 비건(vegan)을 위한 식당을 개업해 운영하는 모녀가 쓴 에세이다. '비건'이란 동물성 식품(고기, 우유, 달걀 따위)을 전혀 먹지 않는 적극적인 개념의 채식주의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산화탄소를 대량 방출하는 소의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선진국들의 지구 환경에 대한 자각과 함께하는 채식 위주의 식품을 소비하는 것을 골자로 하기에 이전의 채식주의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다 청정한 삶을 추구하는 인류의 노력이란 의미에서는 비슷한 목적일 수 있다. 비건이란 말이 우리 사회에 들어온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설 무렵부터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환경과 관련된 삶을 추구하기 위한 말은 지난 세기부터 만들어져 우리 사회에 유입되었다. 독자의 기억으로는 웰빙(well-being)이란 개념이 가장 먼저일 듯싶다. '웰빙'이란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삶의 유형이나 문화를 통틀어 일컫는 개념으로 역시 선진국 진입의 발판을 마련한 우리나라에 지난 1990년대부터 우리 삶에 유입됐다. 곧이어 로하스(LOHAS,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란 개념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들어 왔다. '로하스'란 공동체 전체의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건강과 환경,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 등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생활패턴을 이르는 말이다.

이 책은 두 엉뚱한 모녀가 운영하는 오직 채소로만 가득한, 하지만 어디에도 채소의 느낌은 나지 않는 수상한 레스토랑 이야기다. 이 레스토랑은 〈보그〉, 〈코스모폴리탄〉, 〈뉴욕타임즈〉 등 외신에서도 모두 주목하는, 서울 대표 트렌드 맛집으로 소개돼 있다. 〈천년식향〉은 지구와 인간, 상생과 장사, 별남과 진지함, 그리고 화려함과 솔직함이 공존하는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고 한다. 이곳에서 두 저자(변혜정, 안백린)가 서버와 셰프로 경험한 일화들을 중심으로, 와인, 섹스, 그리고 무엇보다 고기로 대표되는 인간 욕망에 대한 해석을 다양성과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식품과 아무 관련이 없을 듯한 섹스(sex)는 이 레스토랑에서 개발한 스테이크(채소로 만든 고기)의 명칭을 〈Sex & Steak〉란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레스토랑에서 선보인 비건 문화에 대한 고민을, 환경문제와 가성비 문화의 대립 구도를, 고기도 먹고 싶고, 비건도 하고 싶은 이들은 물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위한 내용을 기록한 것들을 바탕으로 책으로 엮어냈다. 두 저자가 레스토랑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전직 공공기관의 장(長)이자 인문학자인 엄마가 서버, 의학도 딸이 셰프로 전직했다. 교수와 의학도가 왜 좋은 직업을 중단하고 레스토랑을 개업했는지는 천천히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두 저자 중 엄마는 '섹슈얼리티 인문학자'였다고 한다. 독자는 처음 듣는 말이지만 무슨 말인지는 금세 알아들을 만하다. 젠더, 여성문제 등을 위한 공공기관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문학 Ph.D.(섹슈얼리티 전공)였다고 하는 점도 모두 스테이크 이름에 반영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이 책 앞뒤 날개 부분에 적힌 두 저자의 이력에 따르면 엄마 변혜정은 앞서 소개한 이력 외에도 '내추럴 와인 소믈리에'이다. 또 여성학자로 불리울 만큼 여성 문제에 깊숙이 관여한 공공기관에 투신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청, 국가인권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여성 문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특히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유섹인)’,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의 NGO 활동을 통해 그의 이력은 점점 여성 문제 전문가로 활동 영역을 높여 왔다. 또 한 명의 저자의 학력도 범상치 않다. 영국의 두 명문 대학에서 의료생물학을 전공하고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른바 하이 소사이어티 삶이 가능한 두 모녀의 레스토랑 운영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의문은커녕 응원을 해야 할 입장으로 독자들은 바뀔 것이다. 책만 파던 이 두 모녀가 2020년 갑자기 셰프와 서버로 변신한 이유는 ‘제로 웨이스트(재사용품 사용 및 폐기물 방지)’의 기치 아래, 전형적인 파인 다이닝보다는 다양성과 비정형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오직 식물성 재료만을 사용하는 〈천년식향〉은 흔히 말하는 순수 비건 지향의 레스토랑으로 분류된다. 언뜻 보기에도 단순한 음식 장사는 아닌 것 같다.

 

 

더욱이 이 레스토랑 음식의 맛 자체는 의외라고 한다. 비건이라고 하면 초록색의 내추럴한 느낌, 사찰 음식처럼 정갈한 맛을 흔히 연상한다. 하지만 고기로 착각하게 만드는 식감, 과감한 향신료 사용과 강한 간이 가미된 음식으로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자칫 선호 고객이 한정될 우려가 있어 소믈리에답게 '와인 필수'라는 '레스토랑 정책'으로 와인과 함께 먹어야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낸다. 흔히 "보기에 좋은 떡이 맛있다"는 속담처럼 시각적으로도 육감적인 미각의 세계를 고객에게 선사한다. 주요 일간지와 여러 패션 잡지, 그리고 〈뉴욕타임즈〉 등 외신에까지 소개될 만큼, 이미 소문이 났다니 일부러 먹으로 가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하지만 서울 대표 맛집이자 2030 세대의 비건 트렌드를 상징하는 핫 레스토랑으로 이름났다. 가고 싶은 사람은 레스토랑 운영 정책과 여기서 소개되는 대표 메뉴 정도는 알고 가야 할 것이다.

‘맛’의 성공이 꼭 음식 장사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 사이엔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오래된 이야기다. 앞서 언급한 시각적 효과는 물론, 향과 맛이 어우러져야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모른 채 먹고 나서 맛을 평가하는 것보다 미리 어느 정도 사전 파악을 통해 분위기나 메뉴를 파악하고 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매스컴을 자주 탔던 것은 "지구 환경과 동물 보호를 위한 여러 가치 지향"을 언론에서 주목했기 때문이지만 이 가치 추구와 '채식'이라는 의학적으로도 중요한 이유를 뺄 수 없을 터. 이는 채소에서도 중요한 '신선도'에 집중한다. 다만 채소는 원가가 낮다는 편견, 채소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사회 분위기, 채소 요리에 들어가는 노동력의 경시 등은 레스토랑 경영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점이 안타깝다. 이러한 요인은 채식을 ‘비쌀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유기농 재료와 셰프의 손을 거친 발효 작업으로 오랜 시간 동안 조리된 고급 채식은 단지 조리만 가능하지, 경제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 된다. 따라서 원가는 올라가도 값은 올릴 수 없을 터, 사명감이나 가치 지양 의지가 없다면 버티기 힘들 정도의 자금 압박도 받지 않을까 독자로서 우려된다.

 


 

비건이라는 트렌드는 분명 현시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강렬한 것이지만, 그것의 ‘불편한’, 그리고 ‘다양한’ 성향도 영업에는 어려운 점으로 남는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강경한 동물권자 손님들은 식당의 모기조차 함부로 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2부 4장, p.82). 트러플이나 저스트 에그(식물성 계란) 등 특정한 재료도 관점에 따라 쓰거나 쓰지 말아야 할 것이 된다. 그리고 금욕적이거나 자연주의적 성향의 채식주의자들은 음식의 재료가 식물성이라도 그 지향이 고기와 비슷하거나 공장식의 생산과정을 거친 것이라면 극도로 경계한다. 대표적으로 대체육이 그렇다. 비건에 대한 다양한 편견들과 비건을 수행하는 다양한 입장들의 격차 속에서, 모녀의 비건 프로젝트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지금도 계속되는 것들도 있다. 이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두 저자는 판단하고 견뎌낼 각오를 다진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내리는 결론은 비건이라는 라이프스타일도 마치 젠더처럼 스펙트럼이라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젠더는 물고기처럼 분류될 수 없고 서로 우열을 가릴 수도 없는 무언가라는 결론을 냈던 것처럼. 비건의 삶에 우열은 없다. 그리고 비건을 지향하는 다이닝 바에도 정답은 없다.

그렇게 비건으로서의 가치를 추구하지만, 비건을 넘어서는 과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유기농, 발효 푸드를 요리하며, 탈-위계적 조직문화로 음식에 저마다의 색깔을 입히는 국내, 해외의 여러 개인, 단체, 업장들의 모습도 소개한다. 다양한 색감과 질감의 요리 사진들도 흥미 요소. 고정된 규범과 양식 대신 각자의 자유로움을 존중하는 문화. 지구 환경을 위해 고기는 먹지 않더라도, 고기라는 취향 자체에는 열린 태도.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이야기한다. 리뷰와 답글은 언제나 환영이다.

 

천년식향을 열기 전, 린은 ‘속세의 사찰’을 컨셉트로 연 ‘소식’에서 처음으로 당근 요리(‘토끼의 사찰’)를 개발했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로, 초기에는 심지어 아무도 안 시키는 메뉴였다. ‘당근이 어떻게 고기보다 맛있을 수 있겠어?’ 그러나 ‘소식’이 코스요리를 전문으로 하게 되면서 손님들은 어쩔 수 없이(?) 당근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린은 손님들의 놀라운 반응을 듣게 된다. 당근이 가장 맛있다! 결국 이 당근은 [뉴욕타임즈]에까지 소개되는 영광을 누렸다.

- 「고기 좋아하지만 비건도 하고 싶고」 중에서

 


 

고기를 안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비건 식당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독자로서는 이 책에 등장하는 단어와 내용의 여부 등 이해하지 못한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트러플, 멘보샤, 에가즘, 라비올리, 마리아주, 오마카세... 물론 책을 읽다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있지만 일반 식당이나 레스토랑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비건 식당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게 이유가 되겠지만, 고급 식당을 자주 가지 않는 게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식당을 이용할 때 불편한 사항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6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트렌드는 좋지만 뒷감당은 힘들고」, 2장 「돈도 좋지만 가치는 지키고 싶고」, 3장 「배부르고 싶지만 아름답게 즐기고 싶고」, 4장 「고기 좋아하지만 비건도 하고 싶고」, 5장 「내멋대로 하고 싶지만 평판은 무섭고」, 6장 「오지랖은 싫지만 왕은 되고 싶고?」 등이다. 1장에서는 사람들이 늘 궁금해하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을 하며 물었다. 아마 공부도 할 만큼 하고, 또 이른바 상류 사회에서 누리며 살 사람들이 왜 요리사며, 레스토랑 운영이며를 하면서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질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식당 주인은 늘 고객에게 '을'의 입장인데 비건 식당을 자처했느냐?는 질문으로 들린다. 2장은 가치와 모토로 삼는 비건 다이닝과, 자영업의 근본 목적인 돈 벌기 사이의 충돌 이야기다. 지구, 건강, 인권 등의 가치를 판매하면서 이윤까지 함께 고려하자니 매번 평행선을 달리는 느낌이라는 것이 두 저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벌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자신을 오히려 검열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게다가 사고와 언어로는 '가치 소비'를 주장한다고 해도 소비자로서 손해 본다고 느끼는 고객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을 터, 큰 고민을 안 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저자는 지금 이 순간의 타겟 집단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그나마 여기까지 오는 것은 이 책에 적힌 '지속 가능한 돈 벌기 십계명'에 따로 적어두었다.

3장은 음식이 무엇인지 고민해본 내용을 적고 있다. 돈 많은 사람이나 먹는다는 파인(fine) 다이닝, 정갈한 한정식도 아름다운 식사지만 팜투테이블의 귀한 재료로 만든, 나를 위한 한 끼 음식이 아름답다는 저자의 의지는 '자기 만족'만이라도 충분히 맛볼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4장은 천년식향에 오는 손님들의 이야기 속에서 구현됐다는 점을 기록하고 있다. 고기 맛을 알아야 '고기 같은' 채소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소신의 결과일 것이다. 저자는 비건 사업이 '미친 짓'이라는 이뉴는 그것이 고기를 선호하는 사회가 채소를 경시하고 노동력을 경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너무 나간 주장일까? 하며 우려는 하지만, 우리의 식문화도 차츰 변해갈 것으로 생각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듯싶다. 사람들의 식문화가 변화하면 비건으로 변화하기를 바란다는 저자들의 소박한 바람 때문으로 읽힌다.

 


 

5장의 내용은 흥미롭다. 이 장은 술과 섹스라는 욕망, 그리고 언뜻 저자 자신의 맘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아도 타인의 시선으로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그것들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앞서 언급한, 음식 이름에 'sex'란 예기치 않은 이름에 고객들의 불만도 있었던 듯하다. 술과는 거리가 멀어야 할 것 같은 여성으로, 게다가 그동안 학계에서 국내의 성폭력의 주범인 음주 문하를 열심히 비판해 오기도 한 당사자로서 술을 파는 것에 주변 지인들은 다들 놀랐다고 한다.(너무 당연한 상식적인 일이다) 와인을 팔면서 네이버에 천년식향이 '술집'으로 등록되고 동시에 자신은 '술을 파는 여자'가 되자 지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결국 천년식향은 업종을 와인바, 표기는 발효 바로 변경했다. 소주/막걸리/맥주/와인/위스키/코냑···. 술의 등급화에 따라 여성의 평판도 등급화가 된다는 사실도, 작부와 콜걸 따위로 여성의 급을 나누려 드는 현실과도 새삼 대면하게 됐지만, 그와 동시에 그런 대상화에서 '소믈리에'라는 직종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도 말한다. 원칙과 타협 사이에서 터득한 '정직한 홍보/평판 관리 십계명'을 따로 적어 두었다.

 

저자 : 변혜정

 

㈜천년식향의 서버 및 스토리텔러로, ‘Sex & Steak 연구소’ 소장으로, 와인 수입회사 ‘엠버&처빌’ 운영자로, 그리고 내추럴 와인 소믈리에로 활약 중인 문학 Ph.D.(섹슈얼리티 전공) 천년식향 오픈 전까지는 여성학자로, 젠더, 성평등, 인권 관련 전문가로 민·관·학을 넘나들며 활동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 충청북도청 여성정책관 등 ‘어쩌다 공무원’도 했으며, 경찰청, 국가인권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여러 자문역을 맡았고, 서강대, 이화여대 등에서 만난 M세대와 지금도 즐겁게 놀고 있다.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유섹인)’,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의 NGO 활동을 통해 상아탑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실들을 배우기도 했다.

2020년 ‘성희롱’에 대한 못다 한 이야기, 《누구나 다 아는 비밀은 비밀이 아니다 : 성희롱에 대한 열 한가지 오해와 진실》를 펴냈으며, 현재는 본격 요리 레시피북 《스토리가 있는 채소의 사치 : Pleasure & Danger》을 딸 안백린과 함께 마무리하는 중.

 

저자 : 안백린

 

㈜천년식향의 대표 겸 셰프. 원래는 의학도로, 영국 에딘버러대학교에서 의료생물학을 전공하고 더럼대학교에서 ‘정신건강, 식품-생명의 연결성’을 연구했다. 석사과정 중 현대인의 건강하지 못한 식생활과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받는 동물들을 놓고 고민하다, 인간이 음식을 먹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당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레스토랑에서 수련을 쌓았다. 2018년 사찰음식의 재해석, 속세의 사찰 ‘소식’을 친구들과 창업, 운영했다. 2020년에는 비건을 표방했다가, 현재는 비건을 표방하지 않는 발효 바 ‘천년식향’을 엄마 변혜정과 함께 이끌어가는 중이다. 요리하랴, 데코레이팅하랴, 연구하랴, 개발하랴, 강연하랴 바쁘지만 인간의 모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기회로 일상사를 삼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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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골드러시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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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평양골드러시』의 저자 고호는 『악플러 수용소』, 『과거여행사 히라이스』, 『노비 종친회』 등 사회 풍자적 시각을 견지하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부분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소설 작품을 주로 쓰는 작가다. 특히 추리·미스터리와 SF 문학으로 일컬어지는 저자의 작품에서는 작가 특유의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소설을 읽음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는 창의적 능력이 높은 것으로 독자는 생각하고 있다. 저자의 전작들은 독창적 시각으로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데서 비롯된다. 『악플러 수용소』는 인터넷에서 악플(악성 댓글, 악의적 댓글)로 사회적 문제가 자주 일어나는 바람에 이들 악플러를 가두어 두는 '악플러 수용소'라는 기상천외한 장치로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가했다. 또 조선시대까지 우리 사회에 존속했던 '노비'의 후손들이 종친회를 가지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쓴 소설 『노비 종친회』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왕조 시대의 유물인 노비 의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반증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아직 노비 의식이나 노비 트라우마로부터 일부 시민들의 의식에서 존속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책 『평양골드러시』는 특히 우리 현대사에 가장 아픈 부분이며, 한국전쟁 휴전(정전) 70년이 지나도록 금기시되는 북한 관련 이야기 중 단편적으로 보고 들은 소재들을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유기적으로 구성해냄으로써 구성 능력의 탁월함을 보여준다. 가보지도 않은 평양이나 북한 소식은 일반 독자들의 경우 대부분 TV나 신문 등에 출연한 탈북자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그러나 탈북자들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한 단계 걸러진 내용으로 특히 탈북민 자신이 개인적으로 겪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탈북 이전의 북한에서의 생활, 탈북 과정, 그리고 대한민국에서의 정착의 어려움 등이다. 이런 단편적 사실은 엄청 힘든 과정을 겪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북한 사회의 흐름이나 그들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소설 작가라 해서 특별히 북한 관련 정보나 에피소드를 특별히 전해주는 곳이 따로 있을 리 없다. 이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필요하다고 북한에 직접 가서 보고 들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소설로 옮겨 쓰기에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자칫 무리한 욕심을 냈다가는 본의 아닌 구설수나 필화 사건도 일어날 수 있다. 실제 이 소설에 나오는 소재나 에피소드는 일반 독자도 TV나 신문, 또는 탈북민 등을 통해 이미 밝혀진 내용이 주로 등장한다. 정치적 접근을 해야 할 때는 남북한 정상 회담이나 양쪽의 문화 교류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충분히 활용한다. 이처럼 취득한 단편적 소재들을 작가가 소설 상상력으로 그들의 의식이나 생활 방식에 접근한다. 직접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간접 지식을 활용한다. 특히 평양을 가야 해소될 궁금증은 다행히 지금까지 남북 정상 회담 3차례, 양측 문화 교류(스포츠, 공연 등) 때 많이 밝혀져 그것을 이용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들을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내느냐이다. 그것이 소설 상상력이다. 저자 고호는 그 점에 탁월함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경우 일제 강점기 이전인 조선시대부터 평양 지역 지주였던 아버지(주인공의 증조부)가 묻어놓은 금괴를 피난 오느라 챙겨오지 못한 것이 못내 한이라던 할머니가 등장한다. 더욱이 주인공 인찬은 경찰 공무원의 신분이다. 북한 평양에 묻어놓은 직접 북한으로 잠입하는 결심을 할 있는 위치가 아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돈(금괴)를 매개로 이용한다. 그것도 얼핏 계산해도 110억 원이 넘는 가치라고 추산한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부모를 대신해 우리 남매를 길러주신 할머니는 임종을 앞두고 손자인 인찬에게 당부를 한다. “니 증조부가 묻어둔 금괴를 찾아오너라.” 허황된 얘기라 생각했는데 웬걸? 장례를 치르면서 인찬은 금괴가 묻힌 정확한 주소를 발견한다. 그것은 흙수저 인찬에게 하늘이 주신, 아니 할머니가 주신 ‘기회’였다.

 


 

쥐꼬리만 한 월급, 은행 대출금, 구질구질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줄기 빛을 본 인찬은 동생 인지에게 함께 금괴를 찾으러 가자고 제안하고. 그렇게 남매는 현대판 ‘헨젤과 그레텔’이 되어 북한 땅에 잠입한다. 땅에 떨어진 과자가 아니라 땅에 묻힌 금괴를 찾으러 간다. 살 떨리는 검열과 감시 속에서 시작된 게임. 아니 게임이라기보다 모험이고 목숨을 담보로 한 극한의 모험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북한 사회는 폐쇄 사회라 마음대로 이주하거나 거주지를 옮길 수도 없고, 특히 평양 내로 잠입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망은 목숨을 걸고 모험을 감행한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여동생과 함께다. 정식으로 허가받을 수 없으니 중국을 통해 들어가는 일을 모색한다. 제한시간은 단 3일.

인간의 욕망은 간첩도 어렵다는 북한 사회 잠입을 통해 평양 모처에 있는 금괴를 찾아 무사히 빼내 올 수 있을까? 일반적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금괴를 묻었다는 시점으로부터 70년이 넘게 흘렀다. 그리고 남북으로 갈라진 이후 70년간 일반인 왕래가 없던 곳이다. 더욱이 옛 평양(일제 강점기에는 '평양부') 시내에 있던 집. 아무리 경제발전이 뒤진 북한이라 해도 70년 동안 평양이 옛 모습 그대로일 리 없다. 더욱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갈 때마다 가는 곳이 평양 시내 한가운데 있다는 주석궁, 인민궁전 등이 새로 들어선 곳이다. 절대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 리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 사는 사람이라면 대여섯 살 아이도 아는 사실 아닌가. 돈에 대한 욕망이 아무리 크더라도 감행하는 자체가 무리다. 고호 저자는 ‘보물찾기’라고 가볍게 처리한다. 으레 어린이들이 소풍 가서 선물이 적힌 쪽지를 찾는 것부터 떠올리듯이, ‘보물’을 찾는 모티프는 아주 고전적이며 스테디하다. 아이든 해적이든 ‘보물’을 찾는 행위 자체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본능적 도전의식과 원초적 모험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라도 먼저 보물을 찾는 사람이 보물을 차지할 수 있기에 엄청난 속도전과 위험이 수반되는 것도 당연지사다. 저자는 주인공이 금괴를 손에 넣기 위해 겪어야 하는 스펙타클하고 급박한 여정을 지금의 ‘북한’이라는 다소 생소한 배경을 토대로 박진감 넘치게 풀어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게임이 그렇듯이, 언제나 거기엔 협상과 배신이 있다. 평양의 보물찾기, 과연 남매는 무사히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책 『평양 골드러시』는 광복 직후 공산화되던 북한을 배경으로 증조부 세대, 피난 실향민이던 할머니 세대와 요즘 30대인 인찬의 세대까지를 아우르며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을 배경으로 한다. 동시에 서울에서 강릉, 신의주, 평양을 오가며 자유로운 시공간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금을 쫓는 남매의 탐욕과 모험 너머로 작품 곳곳에 나타난 북한의 모습은 가히 놀라움의 연속이다. 이 책은 실제 북한의 상황을 묘사한 듯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북한의 어둡고도 힘겨운 상황을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전달한다. 역시 '북한 전문 소설가'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어쩌면 전문가답게 북한 사투리(평양 사투리, 북한은 문화어라고 한다던가?)나 북한의 언어를 어느 정도 연구한 흔적이 보인다. 이런 것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자칫 내용이나 구성에 신경 쓰고, 표현에는 우리 표준어를 사용해도 되겠지만, 현장성을 강조하려면 아무래도 평양과 북한 표준어를 따로 공부했을 성싶다. 이 사투리와 언어들은 현장성과 생생한 표현을 위해 크게 한몫하지 않겠는가. 실제 책에 쓰인 북한 말의 풀이를 책 뒷 부분에 부록으로 따로 실어놓았다.

이 책은 3부 1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작품에서 부나 장의 구별이 별 의미가 없이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에서는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이고, 이해를 돕기 위해 평양말뿐 아니라 한 장 한 장 매우 간결한 문체의 글들이 독서 속도를 높이도록 간결하고, 때로는 대화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자칫 느슨하고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 독자들을 위해 단숨에 읽어내리도록 저자의 고도의 기법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이에 따라 금괴를 향한 주인공의 골드러시는 숨 가쁘게 전개되며, 평양행 기차에 올라탄 독자들은 보물찾기의 매력 속으로 쉴 새 없이 빨려들 수 있다.

 


 

"네놈 아비에게 첩으로 팔려 가는 순간에까지 널 마음속 깊이 좋아했으니까."

뜬금없는 소리에 말문이 막혔다. 나를 좋아했단다. 놈의 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종종 마주치던 삼태의 누이가 떠올랐다. 허리께까지 닿은 긴 댕기 머리를 살랑이며 물 양동이를 이고 가던 그이가, 내 쪽을 힐끔힐끔 보던 그이가. 나는 뭘 보냐며 쏘아붙이기도 하고, 때론 무심코 지나가기도 했다. 아버지의 첩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날엔 그이가 내 방 책상 위에 올려놓은 아카시아 꽃다발을 마당에 내동댕이쳐서 기어이 울리기도 했다. 그런데···

"널···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

"그러니 평생 죽은 내 누이에게 고마워해라. 이 반동분자 새끼야."

삼태는 내 코앞까지 갖다 대던 주먹을 맨땅에 내리쳤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그대로 돌아섰다. 마당을 나가면서 미친개처럼 고래고래 질러댔다.

그런데 왜 지금 손향의 얼굴에서 놈의 누이가 떠오르는 걸까? 오랜 시간 잊고 살았던 그 얼글이 왜 이토록 선명하게 그려지는 걸까. (중략)

"날래 드시래두요. 이러다 쓰러지시갔어요."

"참으로 고맙소. 우리 손자도 굶어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었더라면 동무 또래가 됐을 텐데···"

"손녀라고 생각하십쇼. 저두 할아바지라 여기갔슴다."(p.260~261)

 

 

이 책의 17장 「아주 오래된 이야기」는 북한 실정에 어두운 우리 독자들을 위한 마지막 장이자 서비스 장이기도 하다. 속도전처럼 전개되는 3일간의 일련의 과정에서 세부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할머니가 유언처럼 남겨 놓은 말의 실제와 평양 현장의 시간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얽히고설킨 문제의 풀이하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남겨 놓은 것이다. 소설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고 미심쩍은 부분이 없다고 생각한 독자들은 이 장을 읽지 않아도 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장의 필요성에 공감하리라고 본다. 할머니의 말이 사실로 밝혀지기까지의 과정을 크게 건너 뛴 내용이 속사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16장까지 모두 읽고 나서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얽힌 것이지?"라고 생각한다면 이 장은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해방과 남북 분단, 전쟁 후 냉전, 철조망으로 갈라진 채 따로 산 한반도의 한 민족.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꿰뚫은 분단 시대의 한민족. 100년의 한 많은 시기가 이 책 한 권에 담기에는 벅찼을까. 아니면 끊어져서는 안 될 한 민족을 인위적으로 갈라놓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을까? 가느다란 인연의 끈들이 다시 얽힌다. 사건의 무대가 평양이기에 주로 북한의 실정이 많이 담겨 있는 이 소설 작품에는 청봉노래단의 최고 가수 손향, 그리고 그의 아버지, 손향의 할아버지인 혁명전사 리삼태, 남북 간의 화해 무드에서 북한 공연단의 남한방문 공연 등. 독자들의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한마디로 엮을 수 있는 문장은 무엇일까? 독자의 능력으로는 표현해 낼 길이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사상과 이념의 갈등에서 비롯된 사람들의 한을 어떻게 풀까?"

 

저자 : 고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세계로는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와 『악플러 수용소』, 『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기다렸던 먹잇감이 제 발로 왔구나』, 『노비 종친회』 등이 있으며, 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녹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또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단법인 이효석문학선양회와 황토현 문학상, 의정부전국문학상, DMZ문학상 등에서 수상한 바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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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품고 슬퍼하다 - 임진왜란 전쟁에서 조선백성을 구한 사명대사의 활인검 이야기
이상훈 지음 / 여백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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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건국 20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는다. 전쟁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明)은 사대를 국시로 한 조선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건국한 이래 동쪽의 이민족 침략을 걱정할 필요 없이 북방 침략만 대비하면 되었기에 더 이상의 전쟁은 필요치 않았다. 우호 관계에 있는 조선을 무력으로 다스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동쪽의 적으로부터의 침략에 대비해야 할 힘을 북방 방어에 쏟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여진은 다른 나라를 쳐들어갈 여력이 없어 근근이 살아가는 상태여서 조선으로서는 군사를 동원해 방어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상태이었다. 수시로 식량을 약탈하려 왔던 왜구(日本)는 대마도의 완충 지역이 조선에 호의적이어서 크게 염려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은 나라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는 국경의 넘어오는 적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고, 국제 관계의 역학의 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임진왜란은 그렇게 발발한 것이다. 전국시대 중구난방 무사들의 전쟁터였던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 명분을 내세우기까지 군사력을 키우고 모으는 것조차 몰랐으니 말이다. 불교의 국가 고려로부터 정권을 빼앗은 조선은 유교의 나라, 성리학자들이 다스리는 나라로 나라의 쇄신을 기했고, 다행히 건국 200년이 다 되어 가도록 외부 침략으로부터 벗어나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안일한 자기 위안에 빠진 관리들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들은 언제나 전쟁에 노출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은 것일까. 일본 최초의 통일을 이룬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만족하지 않고, 여세를 몰아 조선 정벌을 시도한다. 당시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조선은 외부 적으로부터 침략 당할 경우 사대를 해온 명이 당연히 나서서 물리쳐줄 것을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국제 문제를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문무의 능력이 안정돼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이유가 어떻든 모두 조선 조정의 무능이 드러나는 데에는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역전의 용사라 하더라도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를 침략해 복속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의 항해술이나 조선술이 대규모 병력을 쉽게 원하는 지역에 이동시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조선의 가장 위협이 되는 일본의 침략을 받아 일방적으로 밀리며 임금마저 피난을 거듭해 결국 명나라로 피신, 망명을 생각해야 할 정도의 치욕적 수모를 겪은 것은 한 나라의 국방 정책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더욱이 왕마저 도망간다면 백성들은 어디를 믿고 살아야 하는가.

악귀 같은 왜군들에 짓밟히면서 샬륙되는 백성을 두고 도망간 왕의 나라는 세계사에도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전쟁에 패배한 패전의 논리일 뿐 백성들에게 위안도 되지 않고, 희망도 주지 못한다. 관리들은 왕의 피신을 돕고 따라가면서 백성들에게 저항하라 하면 평생 농사를 짓던 농민이 대부분인 조선의 백성들이 무슨 능력으로 전쟁에 참여하고 승리할 수 있겠는가. 성리학을 앞세운 관리들의 부재에 과거 고려 시대에 나라에 큰 역할을 했던 승려들이 나선 것은 그나마 백성들의 힘을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이 된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사명대사가 칼을 손에 쥔 것이다. 왕도 도망간 전쟁에 승려들을 모아 전투에 참여한 것이다. 이 책 『칼을 품고 슬퍼하다』는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임진왜란 당시 활약을 중심으로 소설로 다시 써낸 것이다. 역사 소설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각 개인의 심리와 전쟁터에서의 현장의 묘사가 생생하기에 저자의 글솜씨기 소설의 완성도에 기여하는 게 보통이다. 이 소설의 저자 이상훈은 역사 의식과 민초들의 삶을 대변하는 의식이 강한 작가로 이미 여러 소설을 써낸 베테랑 작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사명대사의 '위인전'을 역사 소설로 써낸 이유를 저자 자신의 고향과 사명대사의 출생지가 같다는 점을 들지만 본뜻은 아니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의 진정한 뜻은 사명대사가 신분의 귀천을 떠나 인간의 존엄을 아는 '승려'였기에 관심이 컸을 것이고,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교리를 가장 앞세우는 승려가 칼을 든 이유를 백성의 처참한 죽음과 비참한 모습을 목격한 이상 중생의 죽음과 아픔, 슬픔과 처참한 모습을 못 본 척하고 넘어갈 수 없는 중생에게 자비를 대하는 불교의 교리를 더 맞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생을 막기 위해 살생을 한다는 역설적 상황에 대한 사명대사의 고뇌를 소설에 그려냄으로써 사명대사의 전쟁 참여 명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저자의 생각도 이와 같았기에 이 소설이 탄생되었다고 독자는 믿는다. 소설 속에서 사명대사는 살생을 일삼는 무리(왜군)들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한다. 또 한편으론 죽은 백성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은 채, 부처님께 용서를 구하며 칼을 든다. 오직 백성들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명은 이렇듯 처절하게 임진왜란의 전면에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임진왜란을 판단할 때 조선이 전쟁 초기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력이 쇠약해진 것은 왜란이 일어난 선조대에 이르러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분석이다. 이미 훨씬 이전부터 쇠약의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 정치적으로는 연산군 이후 명종대에 이르는 4대 사화와 훈구·사림 세력간에 계속된 정쟁으로 인한 중앙 정계의 혼란, 사림 세력이 득세한 선조 즉위 이후 격화된 당쟁 등으로 정치의 정상적인 운영을 수행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고 사가들의 판단이 이미 있었다. 독자가 어렸을 때 읽은 위인전은 이 같은 내용이 없었지만 나중에 드라마나 TV 역사 프로그램, 역사 소설, 역사 해설서 등을 통해 알게 되었던 사실들로 미루어 이미 국력이 쇠약 상태로 들어가고 있는데도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운 정책에만 몰두했다는 것을 사가들은 짚어내고 있다.

 


 

이는 군사적으로도 조선 초기에 설치된 국방 체제가 붕괴되어 외침에 대비하기 위한 방책으로 군국기무를 장악하는 '비변사'라는 합의 기관을 설치했으나, 이것 또한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전쟁 대비를 주장하는 학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율곡 이이는 남왜북호(南倭北胡)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하여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 재정의 허약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회는 점점 해이해지고 문약(文弱)에 빠져 근본적인 국가 방책이 확립되지 못한 실정이었다고 한다.

이즈음 일본은 앞서 언급한 대로 격변하고 있었다. 새로운 형세가 전개되고 있었다. 15세기 후반 일본에는 유럽 상인들이 들어와 신흥 상업 도시가 발전되어 종래의 봉건적인 지배 형태가 위협받기 시작하였다. 마침 이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혼란기를 수습하고 전국시대를 통일, 봉건적인 지배권을 강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국내 통일에 성공한 도요토미는 오랜 기간의 싸움에서 얻은 제후들의 강력한 무력을 해외로 방출시켜, 국내의 통일과 안전을 도모하고 신흥 세력을 억제하려는 대륙 침략의 망상에 빠지게 되었다고 분석하는 사학자들도 많다.

이 소설 『칼을 품고 슬퍼하다(抱劒悲)』는 사명대사의 어린 시절, 천재 소년으로 불리던 응규의 첫사랑 이야기로 시작한다. 첫사랑 아랑과의 가슴 뛰는 사랑도 잠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아랑과 어릴 때 잃은 형제, 그리고 부모의 죽음까지 겪으며 고통스러워하던 사명은 승려의 길로 들어선다. 자신을 짝사랑하던 미옥을 끝내 뒤로한 채. 조선은 이미 유학을 숭상하는 나라였다. 그런 조선에서 승려의 길로 들어선 사명은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고 불교의 과거시험이라 할 수 있는 승과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한다. 그러나 승려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그의 학문의 깊이를 알아본 사대부들과 시문을 나누고 우정을 나눌 뿐.

 


 

그러던 중 임진왜란의 거친 물살이 조선을 덮친다. 내란을 잠재우기 위해 조선으로 눈을 돌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왜군은 잔인하게 미쳐 날뛰었다. 값으로 매겨져 왜군의 수익이 될, 코가 잘린 백성의 시신이 산을 이루고, 노예상들에게 팔기 위해 끌고 간 어린아이와 여인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곡식은 물론이거니와 서책들마저도 훑어갈 정도로 조선의 산하는 왜군들에 의해 피폐해져 갔다. 사명은 조국의 현실에 더이상 눈 감고 있을 수 없었다. 승군 대장으로 떨쳐 일어나 왜군과 맞섰다.

승장(僧將)으로서의 사명은 유학을 신봉하는 조선 사관들이 기록해 놓은 것보다 훨씬 뛰어난 전쟁 영웅이었다. 왜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의 목을 움츠러들게 한 “그대 목이 조선의 보배”라는 일갈처럼 사명의 활약상은 그야말로 종횡무진 눈부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 어떤 전투의 그 어떤 승리보다 참으로 값진 것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에 대한 사명의 측은지심이었다. 측은지심이란 맹자의 사람이 가져야 할 4가지 마음 중 하나로 불교로 보면 '자비'와 같은 마음이다.

오직 자신의 권세만을 누리려는 조선의 권력자들이 외면해 온 조선인 포로들을 위해 사명은 거침없이 적의 소굴로 들어간다. 일본의 많은 적들이 사명에게 글 한 줄을 얻기 위해 줄을 서고, 사명의 가르침을 받으려 머리를 조아렸다고 소설을 통해 저자는 강조한다. 사명은 무도한 일본의 적들에게 결국 문(文)이야말로 무(武)를 이기는 진리임을 설파하고, 그들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 했다. 그리고 끝내 일천오백 명에 달하는 조선 백성을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이상훈 작가의 결론이다. 사명대사는 살아 있는 부처에 다름 아니라는 것. 임진왜란에는 이순신만이 아니라 ‘사명’이라는 영웅도 존재했으며,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에겐 사명이 곧 살아 있는 부처님이었다는 것 말이다. 저자 이상훈은 고향이 같아서 사명대사에 대한 존경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명대사의 국민 사랑과 나라 사랑 정신을 존경하는 것이다. 이 소설이 이에 따라 집필되었다는 것은 책을 읽은 독자들은 비로소 인지하게 된다.

 


 

사명은 1605년 3월 27일 일본을 떠났다. 조선인 포로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도쿠가와 막부에서 제공한 범선 50척에 나누어 타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고향도, 부모도 보지 못한 채 왜군의 땅에서 노예처럼 살며 삶을 포기하려던 순간 사명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사명을 살아 있는 부처라며 존경했고, 사명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현해탄의 검푸른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p.426)

 

저자 : 이상훈

 

경남 밀양출생으로 마산고와 성균관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KBS 공채 피디로 방송에 입문, SBS 개국에 참여해 수많은 히트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채널A 제작본부장으로 채널A 개국을 진두지휘했다. 그 후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글을 발표했다. 일찍이 방송계의 전설적인 스타 피디로 알려졌으며, 방송프로그램 연출과 대본을 직접 집필해 작가로서의 능력을 인증받았다. 한국방송대상, 한국프로듀서 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보건복지부 장관상, 상록회 대상,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 류주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첫 에세이집 『고향생각』이 2십만 부 이상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이어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세요』,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 살고 싶다』, 『유머로 시작하라』 등의 책을 출간해 반향을 일으켰다. 2014년 첫 소설 『한복 입은 남자』가 국민적인 관심 속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지금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한복 입은 남자』는 현재 미국 메이저 OTT 회사에서 글로벌 콘텐츠로 드라마 제작이 추진되고 있다. 백제의 의자왕과 일본 여자 천황인 제명천황과의 사랑과 일본 탄생의 미스터리를 추적한 두 번째 소설 『제명공주』는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세 번째 소설 『김의 나라』는 역사소설의 최고 권위 있는 상으로 일컬어지는 제16회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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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만난 말들 - 프랑스어가 깨우는 생의 순간과 떨림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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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는 예술에 어울리고, 독어는 학술에 알맞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독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 제 2외국어를 선택할 때 들었던 말이다. 이 말은 선배들로부터 들은 말로서 막상 제 2외국어 선택을 하고 난 뒤에는 "~에 좋다"는 말보다 무척 "힘들었다"는 기억만 남았다. 불어는 배우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독자가 선택한 독일어는 선생님이 첫 시간부터 독어의 자랑보다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셨다. "독어는 딱딱하고 발음도 거칠며 외워야 할 것도 무척 많다. "영어는 웃고 들어가서 울고 나온다. 그러나 독어는 울고 들어가서 웃고 나올 수 있다."고 겁을 주셨다. 그러면서 겁 먹은 우리들에게 "여러분이 스스로 선택한 만큼 열심히만 해준다면 대입 외국어 선택시 독어를 선택해도 될 정도의 수준이 될 것"이라며 독어에 대한 자랑을 대신했다. 그리고 첫 시간부터 영어의 정관사 "the"는 하나뿐이지만(발음은 두 가지), 독어의 정관사는 성·수·격에 따라 변화를 하기 때문에 무려 16개라며 겁을 주었다. 이어 말없이 칠판에 칸을 만들어 16개의 변화를 적고, 모두 외워올 것을 지시했다. 다음 시간에 외울 것을 시켜 못 외운 학생들은 뺨과 회초리 맞을 준비를 하라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분명해 밝히셨다.(그때는 선생님의 학생들을 때리는 행위는 누구도 항의하지 못할 정도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교육 독려 방법이었다) 학생들은 누구든지 회초리가 무서워서라도 외워야 했다.

이뿐만 아니다. 영어의 부정관사 역시 두 개에 불과하지만 독어는 아홉 개로 변화한다며 따라 적으라고 칠판에 나열해 하나씩 짚어가며 발음을 하시고 우리에게는 따라 발음하기를 주문하셨다. 무척 엄하다고 소문난 선생님이다. 수업 시간 동안 학생에게 체벌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선배들도 조심하라고 주의를 줄 정도였다. 당시 독일어는 세계의 말 중에 가장 예외가 없는 언어로 학술적 사용에 적합하다는 선생님 말씀도 졸업하고 나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다행히 독자는 외우는 것을 잘 해서인지, 아니면 언어 감각이 좋아서인지 선생님이 주문한 것은 잘 외워서 매를 맞은 적은 없지만 못 외운 친구들이 체벌을 받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기억이 씁쓸하게 남아 있다. 가르칠 때 엄하게 하지 않으면 중간에 독일어를 포기하기 때문이라는 당시 독일어 선생님의 조언은 가르치는 데 진심이셨다는 점을 나중에 알게 됐다.

 


 

이 책 『파리에서 만난 말들』은 저자 목수정이 파리 유학 가서 배우고 경험한, 프랑스 언어의 성격과 특별한 단어가 왜 프랑스어에 끼어 있는지 나름대로 경험하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어에 대한 느낌을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하면서 특별한 단어들이 왜 프랑스에서 생겼는지를 설명해준다. 어원이 필요할 때는 지배를 받아온 로마 제국부터 라틴어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라틴어가 어원인 단어들이 많다는 점도 말한다. 불어뿐이겠는가? 독어, 영어, 심지어는 그리스어도 라틴어와 섞이며 변화를 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을 때 프랑스 지역은 〈갈리아〉라는 이름의 국가였다고 한다. 저자는 어원뿐만 아니라 우리 말과 사회에서의 발전과 차이를 보이는 점도 짚어낸다. 사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 국가를 형성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산이나 강 등 자연적인 지형에 의해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같은 언어를 사용했을 테니까. 그리고 두 나라의 중간 지역에서는 중간의 억양과, 더러는 뜻도 알 수 없는 다른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투리 사용의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다. 또 나라의 힘이 커지고 전쟁 등을 거치면 사용 언어가 바뀌는 중간 지역은 양쪽 말을 다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기도 한다.

프랑스 지역은 특혜의 경관과 풍요롭고 비옥한 토양으로 우선 식량 확보에 가장 유리했다. 그만큼 노리는 이웃 국가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 제국을 제외하고는 2차 세계대전까지는 어느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신들의 고유한 말과 풍속, 정치적 유산도 함께 번영해 부강한 나라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할 최적의 조건의 땅을 선조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다.

저자는 유학 간 때부터 20년간 파리지앵으로 살며 한국과 프랑스의 경계에서 글을 써왔다. 그간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파리의 생활 좌파들』 등에서 프랑스 사회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불행히 독자는 저자의 책을 처음 접하지만 이미 저자는 자유·평등·박애의 가치에 닻을 내리고 한국과 다른 논리로 굴러가는 프랑스 사회와 일상은 거울처럼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왔다고 한다.

 

 

저자가 이번에는 자신의 마음을 두드렸던 프랑스어 34개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을 펴낸 것이다. 『파리에서 만난 말들』이란 표제어로 프랑스 언어에 대한 경험과 사유가 또렷이 드러나는 명쾌한 글이라 독자가 읽기에도 무척 쉽게 읽히도록 매력적인 글솜씨가 드러난다. 저자가 왜 ‘말’에 주목했을까?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말은 각각의 공동체가 경험과 성찰을 통해 빚어낸 열매”로, 그 씨 속에는 공동체의 응집된 지혜와 경험, 철학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일상을 풍요롭게 살아가게 하는 태도부터 ‘혁명의 나라’를 이끌어온 끈끈한 공동체 정신까지, 프랑스어 34개가 펼치는 ‘말들의 풍경’을 통해 프랑스의 심층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자신이 겪은 프랑스 사람들의 정서 밑바닥을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은 언어에서 찾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 사실도 체득한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프랑스어 34개는 현재 프랑스 사회에서 새로 생긴 말도 있고, 멀리는 로마 제국 때부터로 거슬러 올라가 어원을 찾아내야 할 정도로 오래된 말도 있다. 그러나 로마 제국 때부터 써온 말이라 하더라도 다른 지역과 다르게 프랑스이기에 이런 말이 생겨났다고 생각되는 프랑스 언어의 독특함과 그 언어를 사용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감정, 정서,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말들이다. 이들 말은 오늘날 프랑스를 설명하기에 적절하다고 판단된 단어나 문구다. doucement(두스망: 부드럽게), envie(앙비: 욕망), scrupule(스크뤼퓔: 세심함), solidarite(솔리다리테: 연대), le doute(르 두트: 의심), apero(아페로: 식전주)……. 등을 열거한 단어들을 뜻과 발음 등을 들어보면 저자의 말에 설득력이 더해진다. 저자의 프랑스말에 대한 사랑과 사유를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인 저자는 프랑스 말에 깃든 삶과 정신, 문화와 미묘한 뉘앙스를 섬세히 살피며 한국 사회에서의 한국어를 대하는 우리들의 성찰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노력을 더하고 있어, 한국인인 독자로서도 읽다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인상 깊게 이 책을 읽었다.

 


 

한 나라의 현재 삶의 모습이나 그들의 감정을 읽어내는 데에는 현재 사용하는 일상 용어에서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저자는 첫 머리에 프랑스에서 일상 생활에서 여러 의미로 쓰이는 〈doucement(두스망: 부드럽게)〉를 소개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Bonjour(봉주르: 안녕하세요), Pardon(빠흐동: 실례합니다), apero(아페로: 식전주)와 함께 이 단어를 거친 현실에 베이거나 부딪히지 않고 유연하게 시대를 건너게 해주는 말로 꼽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뛰지 않는다. 조깅을 할 때를 제외하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필생의 과업인 양, 그들은 웬만해선 우아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법이 없다. 그들의 변치 않는 보폭은 세상의 중심은 우리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당신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고 웅변하는 듯하다."고 저자의 부드러운 감상을 드러낸다. 이 단어를 왜 처음에 내세웠는지 바로 다음 단락의 글을 읽으면 충분히 이해된다. "한국에서 서른 해를 살아내고 파리에 온 나는 모든 순간, 달렸다. 시간을 최대한 '쪼개 써야 한다'고 배워온 조국에서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전속력'으로 그 시간을 살아내려 했다. 나라가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재앙에 빠져 있는 동안 홀로 먼 나라에 유배 중이던 청년의 시간 속에 여유로움이 다리를 뻗을 자리는 없었다. (중략) 최단 시일 내에 프랑스어를 내 세포 속에 충만하게 채워 넣은 후, 얻고자 하는 지식에 다다르고 싶은 다급함은 내 몸을 언제나 최대치로 다그치고 있었다."(p.16)

일제 강점기와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 위에서 희망이라고는 풀 한 포기 찾기보다 어려운 이 땅에서 어찌어찌 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어우러져 얼마큼 살게 될 무렵 지나치게 빠르게 성장만 거듭한 탓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빨리빨리' 문화가 몸에 배어들었다.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남보다 뒤처진 것을 영원히 만회하지 못할 것 같은 조바심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그렇게 이룬 경제 성장과 군부독재로부터 벗어날 무렵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만 듣던, 구체적으로 뭐하는지도 모르는 IMF의 빚을 얻어 부채를 갚아야 할 정도로 나라의 창고는 텅 비어버렸다. 그런 문화에 길들여진 저자가 파리에 유학 가 하루빨리 프랑스어를 익히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오죽하면 유학을 유배라고 생각했을까 싶다. doucement(두스망)이란 단어를 가장 앞세운 이유일 것 같다. 우린 저자의 경험과, 앞세운 단어 'doucement' 속에 부드러움과 달콤한이 복합적으로 들어간 뜻에 담긴 말에서 프랑스인들의 낙천적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지식을 넘어 지혜를 읽어낼 수 있다.

 


 

저자가 프랑스말에서 느낌 감성은 우린 그의 글을 통해 읽고 이해하려 하고 있다. 그가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린 이 책의 글 전편에서 읽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 쓰이는 단어들 속에서도 저자가 프랑스말의 달콤함과 부드러움, 아름다움을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 삶의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 명석한 지혜를 자랑하기 위해 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프랑스처럼 여유와 낙천적 성격의 사람들임은 충분히 자랑할 만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이 책을 쓰고 싶었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말과 프랑스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서 어쩌면 우리 삶을 읽어내는 데서 이 책을 쓰고 싶었을 것이라는 독자의 판단도 그의 '나라 사랑'이 읽히는 대목에서 비롯된다. apero(아페로: 식전주)란 단어도 이 책의 목록에 들어가 있다.

이 단어는 우리 예전의 모습, 없으면 없는 대로 이웃과 나누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는 단어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이 단어는 서민들의 문화에서 써온 언어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오히려 생활에 여유가 있는 귀족들의 문화라고 저자는 밝힌다. 저자는 '아페로'가 귀족 계급에서 즐기던 문화이지만 일반 국민들이 함께 즐기는 것은 1970년대 이후, 즉 68혁명 이후 프랑스인들의 아페로를 즐기는 시간이 두드러지게 늘어났다는 사실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2022년에는 〈아페로 사전〉까지 발간됐다. 이는 아페로가 일반 국민의 문화로 완전히 정착되었다는 사실에 저자가 이 단어를 소개하는 취지가 배어 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1부 〈달콤한 인생을 주문하는 말〉, 2부 〈생각을 조각하는 말〉, 3부 〈풍요로운 공동체를 견인하는 말〉로 구성되었다. 1부 〈달콤한 인생을 주문하는 말〉에서는 ‘견디는’ 생존(survivre, 쉬르비브르)을 넘어 ‘누리는’ 삶(vivre, 살다)을 추구하는 프랑스인들의 일상을 프랑스어 14개를 통해 들여다본다. 2부 〈생각을 조각하는 말〉에서는 프랑스어 11개를 다루면서 ‘공화국’을 완성한 프랑스적 가치와,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정치적 차이에 대해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먼저 〈laicite(라이시테: 정교분리 원칙)-공화국을 완성한 네 번째 가치〉 장에서는 오늘날 프랑스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인 ‘정교분리 원칙’을 탐구한다. 1905년의 ‘정교분리법’이 의회에서 어떻게 통과됐는지, 그것이 얼마나 혁명적인 ‘사건’이었는지 알려주면서 정교분리 원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3부 〈풍요로운 공동체를 견인하는 말〉에서는 프랑스어 9개를 통해 모두의 권리를 위해 연대하고 뭉치는 프랑스의 끈끈한 공동체성을 살펴본다. 먼저 〈greve(그레브: 파업)-풍요를 분배하기 위한 시간〉 장에서는 ‘생존에서 삶’으로 프랑스인들을 도약하게 해준 단어인 ‘파업’의 역사를 세밀히 살핀다. 이를 통해 ‘그레브’가 얼마나 프랑스에서 중요한 말이자 가치이며, 왜 프랑스 공동체를 논할 때 첫째에 놓여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레브만큼 중요한 말인 solidarite(솔리다리테: 연대)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프랑스 정부나 지자체가 ‘평등’에 방점을 두며 만들어내는 모든 정책에는 ‘솔리다리테’란 말이 들어간다. 이는 정책에서 시혜적 뉘앙스가 아닌, 그것을 받는 사람도 주체로서 함께하는 것이란 의미를 강화시킨다. 이처럼 ‘연대’란 단어는 모두 평등하게, 굴곡 없이 모이게 해주는 말로서 공동체를 향한 프랑스 사회의 시선이 어떤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말에 담긴 프랑스 정신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파리에서 만난 말들』은 각박해져만 가는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함께 전한다. 그리고 오늘날 프랑스에서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위협받고 있는지를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생생히 증언한다.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사문화된 이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지 종교에 대한 원칙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과 신념에 어떻게 연결되는지까지 고찰한다.

 

저자 : 목수정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화 영역에서 일을 하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8대학 대학원에서 공연예술학 석사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 문화정책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08년 이후, 줄곧 파리에 거주하며 한국 사회 속 약자와 소수의 권리에 관해, 올바른 정치를 위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매체에서 글로써 전하고 있다. 뚜렷한 주관으로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목수정은 상대와 마주할 때면 누구보다 따듯하고 부드럽다. 삼시 세 끼를 제 손으로 챙기면서 밥하기의 수고로움과 그 안에 들어앉은 세상 작동을 배움 삼아 자신만의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기 때문이다. 『밥상의 말』은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제 2의 터전으로 살아나가는 저자가 두 밥상을 넘나들며 마주한 음식에 깃들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는 한국에서 대학까지의 교육과 사회생활을 경험한 저자가 프랑스에서 프랑스 남자와 함께 낳은 아이를 키우고 학교에 보내며 경험하고 관찰한 바를 기록한 이야기다. 어느새 중학교 2학년이 된 딸 칼리의 학교와 가정에서의 성장 과정을 차곡차곡 정리한 성장 기록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파리의 생활 좌파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야성의 사랑학』, 『월경독서』, 『아삭아삭 문화학교』, 『당신에게, 파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문화는 정치다』,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자발적 복종』, 『10대를 위한 빨간책』, 『부와 가난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세계인권선언』, 『초경부터 당당하자: 나, 오늘 생리해!』, 『에코 사이드』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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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 - 김진명 장편소설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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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전쟁 지옥으로 끌려들어갔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전쟁이 아닌 특별 군사작전 개시 명령을 선언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준비된 답변일 뿐이었다.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비나치화, 돈바스 지역의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전쟁을 개시한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분명히 밝혔는데도 이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도 내세웠다. 이후 2024년 임기가 만료되는 푸틴이 종신집권을 위한 치적을 쌓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병합하여 러시아의 지정학적 입지를 안정시킬 목적으로 개시한 전쟁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나토의 동진과 그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이 충돌한 것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2023년 5월 9일 푸틴 대통령이 전승절 연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식적으로 특별 군사 작전이 아닌 "전쟁"이라고 불렀다.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의 와중에서 서로 물러서지 않은 채 소규모 혹은 대규모 로켓포 공격과 진퇴를 거듭하는 10월 20일 현재 전쟁은 600일을 넘어섰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지원(무기 등)에 의존하며 버티던 우크라이나 군이 러시아 점령지로 진격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도 나왔다. 영국 BBC는 이날 현재 미국 전쟁연구소(ISW)의 발표를 인용, 우크라이나군이 남부 헤르손주(州)에서 드니프로 강을 건너 동쪽 러시아 점령지로 최대 4km 진격했다고 전했다. ISW는 러시아 소식통을 통해 “우크라이나 해군 보병 여단 2개 중대 규모로 추정되는 부대가 이달 17~18일에 드니프로 강을 건너 동쪽 제방에서 공격을 감행했다”며 “10월 18일에 공개된 위치 정보 영상에는 우크라이나군이 피샤니프카 북쪽을 넘어 포이마로 진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같은 보도에도 불구하고 양국간 전투는 지난 600일간 늘 있어온 터라 쉽사리 끝나지 않을 전쟁이라는 군사 전문가들의 예측은 여전히 세계 모든 나라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 점령지인 가자지구에서 우려할 만한 대규모 포격과 보복 공격이 잇따르면서 확전의 가능성마저 예고되고 있어 그야말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또다시 전쟁의 포화 속으로 빨려들어갈 위험성마저 내비치고 있다.

 


 

이 책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옛 소련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푸틴의 의도적이고 정치적 술수에 의해 시작된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전쟁을 멈추는 방법은 푸틴 정권의 붕괴를 자초하고 있다는 시각에서 집필된 소설이다. 저자 김진명은 소설 집필 이유를 “나는 전 세계인이 힘을 합쳐 푸틴의 핵 협박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신념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저자의 의도를 강력하게 내보였다.

이 책은 소설 작품이지만 전쟁은 사전에 막든지, 불법 침략일 경우 개전 초기에 침략자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해 제거해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에 따른 것으로 보아도 될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소설의 시작은 갑자기 선전포고도 없이 침략을 개시한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쪽의 도시 부차의 분위기부터 시작된다. 미하일은 생일을 맞아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러시아군의 칼에 찔려 의식을 잃고, 아내와 딸을 잃는다. 미하일은 러시아군이 시체를 파묻어놓은 구덩이들을 돌아다니며 아내와 딸의 시신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슬픔을 못 이기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조차 실패한 미하일은 어느 날 마을에서 자취를 감춰버린다.

침략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러시아의 핵 공격에 대비해 만들어진 극비 오퍼레이션 ‘네버어게인’이 작동되기 시작한다.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이 작전 팀의 일원인 스토니는 러시아인 여성 구호 활동가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푸틴과의 대결에 온 신경을 쏟고 있던 바이든은 러시아 여성을 미국이 구출한다는 것의 정치적 효과를 노려 구출 명령을 내린다. 스토니는 작전에 도움을 줄 사람을 한 명 떠올린다. 미국 해군사관학교 시절 동기 케빈 한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에티오피아 아둘랄라에서 주민들을 도우며 살고 있던 케빈 한은 기상천외한 계책으로 스토니를 돕고, 스토니의 보고를 받은 ‘네버어게인’은 케빈 한을 영입한다.

 

 

부차에서 사라졌던 미하일은 의외에 곳에서 다시 등장한다. 가족을 두고 혼자 살아남는 비극을 겪은 그는 한시바삐 죽어 가족들 곁으로 가고자 바흐무트 공방전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운다. 하지만 죽기는커녕 전쟁영웅이 되어버린 그는 연이은 전투 끝에 세 발의 총상을 입고 통합병원으로 강제 후송된다.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그는 병원에 숨겨져있는 치료용 마약을 훔치려 하나 번번이 실패한다. 그때 그의 눈앞에 한 환자가 나타나 마약 훔치는 것을 돕는다. 그는 바로 케빈 한이다. 두 사람은 그 뒤로도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쌓는다. 케빈은 미하일에게 전쟁 통에 사리사욕을 챙기는 친러 무기 암거래상이 갖고 있는 전설의 다이아몬드를 훔쳐 그 돈으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돕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작전을 위해 우크라이나인 범죄자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한편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전쟁 속에 서방 국가들을 상대로 내건 그 어떤 휴전 조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고뇌하기 시작한다. 이대로 물러나며 휴전을 한다면 성난 러시아 국민은 겁쟁이에게 완벽히 속았다고 생각할 테고, 자신의 권력도 종말을 맞을 것이다. 푸틴은 전쟁에 실패한 지도자들이 맞는 비참한 최후를 떠올리며 절치부심한다.

푸틴은 비밀리에 만난 시진핑이 휴전을 종용하던 겉모습과 달리 은밀히 핵을 쓰도록 부추기는 것을 듣고 마음이 동하기 시작한다. 실은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핵을 써 미국의 월등한 재래식 전력을 무력화시킬 방법이 필요하다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푸틴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한다. 미국 잠수함사령부에서는 다량의 핵탄두를 탑재한 전략핵잠수함 로드아일랜드를 흑해에 잠항시킨다. 이 작전의 핵심은 러시아 해군의 앞마당인 흑해에 침투한 로드아일랜드의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것만으로 응징 효과를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로드아일랜드는 러시아 측으로부터 추적을 받던 중 암초와 충돌하고 만다.

 


 

저자 김진명은 매일 전념을 다하여 『고구려』 집필에 매진해 왔다. 그가, 돌연 새로 쓴 작품을 가지고 갑자기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갑자기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이번에 내놓은 작품 표제어도 심상찮다.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이다. 저자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다룬 밀리언셀러 데뷔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충격적인 명성황후 시해의 실체를 그린 『황태자비 납치사건』, 한국인을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린 『하늘이여 땅이여』, 미천왕으로부터 광개토대왕에 이르는 뜨거운 역사를 다룬 김진명 필생의 역작 『고구려』 시리즈까지 굵직한 대형 작품들을 써 왔다. 저자는 그의 작품 속에서 사실을 바탕으로 완벽한 증거나 논리적인 설명으로 설득력을 얻는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TV의 시사평론을 담당하는 역할로 독자들에게 근황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방송가에서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은 지 시간이 흐르자 『고구려』 집필을 위해 칩거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주로 한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베스트셀러들을 발표해온 저자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외면할 수 없어서일까. 인류를 향해 평화와 자유에 관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읽힌다.

소설에서는 러시아군에게 아내와 딸을 희생당한 우크라이나 군인 ‘미하일’과 미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던 중 미국의 극비 작전 팀 네버어게인에 영입된 한국계 미국인 ‘케빈 한’이 주요 인물이다. 전쟁 이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던 두 사람이 단 하나의 미스터리한 사건에 얽히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인류의 현 상황에 대한 비유라고 이해된다. 푸틴의 핵 협박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과연 푸틴의 말처럼 핵의 사용까지 전쟁이 갈 것인가. 푸틴은 개전 초 국제 여론의 비난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이 계속 추진된다면 핵 공격도 가능하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현 전쟁의 추세로 볼 때는 도저히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에 뛰어든 두 사람, 미하일과 케빈 한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소설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과연 최악의 사태로 치닫게 될까.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원만한 해결책을 찾아낼까. 아니면 전쟁 책임자인 푸틴의 실패와 몰락을 막을 내릴까. 독자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전쟁의 해법을 알고 싶다면 당장 이 책을 펼쳐라고 먼저 읽은 독자로서 이 책을 권한다. 정치와 국제 외교, 전쟁과 인간의 비극, 개인의 욕심과 인류 공동의 의지의 상관 관계, 그리고 공동 번영의 길에 장애물로 놓여 있는 것은? 이 책에는 인류의 당면 문제와 최선의 해법이 담겨 있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문구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고 묵직하다. "스 노브임 고돔!"

 

“모르겠소? 모스크바 시민들 중 복수를 원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오. 제발 더 이상의 전쟁은 없었으면 하는 게 모두의 간절한 꿈이야. 모스크바 시민들은 오히려 몇십 배 큰 비극을 당한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소. 그게 러시아요. 그게 러시아 정신이란 말이야. 당신은 위대한 러시아라는 환상으로 국민을 마비시키고 자신의 더러운 탐욕만 채운 추악한 장사꾼이고.”(p.395)

 

저자 : 김진명(金辰明)

 

첫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발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시대의 첨예한 미스터리들을 통쾌하게 해결해주고, 일본·중국의 한반도 역사 왜곡을 치밀하게 지적하는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이다. 그의 소설들이 왜 하나같이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는지, 그의 작품을 읽어본 이들은 알고 있다. 뚜렷한 문제의식을 지닌 작가, 김진명. 그의 작품으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베스트셀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해, 철저한 고증으로 대한민국 국호 韓의 유래를 밝힌 『천년의금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어떤 역사 논리로 이루어졌는가를 명확히 규명한 국보급대작 『몽유도원』, 충격적인 명성황후 시해의 실체를 그린 『황태자비 납치사건』, 한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 『1026』, 한국인을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린 밀리언셀러 『하늘이여 땅이여』, 경이로운 수의 비밀을 다룬 『최후의 경전』,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 『카지노』, 북한 지도자 죽음의 미스터리를 담아낸 문제작 『신의 죽음』,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을 예견한 『삼성 컨스피러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둘러싼 한·미·중의 갈등을 다룬 『싸드』, 한자 속에 숨겨진 우리 역사와 치열한 정치적 메커니즘을 담은 『글자전쟁』 등이 있다. 대하역사소설 『고구려』를 집필 중이다. 현재 미천왕편, 고국원왕편, 소수림왕편, 고국양왕편,총 7권이 발간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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