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츠나구 2 - 인연이 이어주는 만남과 마음 사자 츠나구 2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오정화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 작품 『사자 츠나구 2』에 나오는 '츠나구'는 일본말을 모른 독자로서는 사람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츠나구는 한자 '사자(使者)'를 발음한 일본말로서, 한자를 보면 뜻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전 우리나라 인기 TV 프로그램 〈전설의 고향〉에 자주 등장하던 '저승사자'의 '사자'와 비슷한 뜻이다. 우리는 저승에서 염라대왕의 명령을 받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데리고 가는 심부름꾼이었다. 저승사자는 '저승(사람이 죽은 후 가는 세계)'에서 온 죽음의 사신(使臣)이다. 이 책에서는 죽은 자와 산 자를 만나게 해줄 수 있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한다. 일본에서 의미는 정확하게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지만 독자와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승사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산 자의 의뢰를 받아 죽은 자와 교섭하고 면회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츠나구의 일이다. 책에서 표현하기를 "아는 사람만 아는 존재"라고 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우리처럼 널리 쓰이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츠나구'의 어원이나 유래에 대해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민간에서 흘러다니는 우리의 '전설' 같은 존재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저자 츠지무라 미즈키는 전작 『사자 츠나구 1』을 출간해 일본 독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받으며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저자는 이미 2004년 데뷔작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로 제31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했고, 2011년 전작으로 제32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범죄를 테마로 한 소설집 『열쇠 없는 꿈을 꾸다』로 제147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18년 『거울 속 외딴 성』으로 제15회 서점대상 1위가 되며 장르를 넘어 일본 문학을 이끄는 중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 표제어에 나오는 ‘츠나구’는 ‘연결하다, 잇다’라는 뜻을 가진 일본말이라고 한다. 저자 츠지무라 미즈키는 단 한 번 산 자와 죽은 자를 만나게 해 주는 사자(使者)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바로 '츠나구'를 통해 일본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 소설은 ‘단 한 번이라도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런 간절한 마음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츠나구를 찾아가는 것이다. 간단하지만 엄격한 규칙도 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평생 보름달(만월)이 뜨는 단 하룻밤뿐이다. 죽은 자도 마찬가지로 단 한 번의 기회만 있다. 이로 인해 산 자의 요구가 있더라도 죽은 자는 만남을 거절할 수 있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가장 절실한 만남을 선택해야만 하도록 한 저자의 구상이다. 2011년에 출간된 『사자 츠나구 1』과 마찬가지로 다섯 편의 연작소설을 통해 네 번의 만남과 츠나구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독자들은 이 미스터리 판타지를 읽으며 가슴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진한 감동과 긴 여운을 얻을 수 있다.

저자의 다양한 작품 중에서도 2011년에 출간된 『사자 츠나구 1』은 유난히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독특한 스토리와 독창적 캐릭터 창조로 일약 일본의 중견 작가로 발돋움했고, 흥미로운 스토리로 일본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책의 츠나구로 나오는 이 책에 등장하는 오랜 세월 츠나구로 지낸 다정한 할머니로부터 그 역할을 물려받은 고등학생 시부야 아유미. 그 소녀의 눈을 통해 죽은 자와의 재회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과 하룻밤의 만남으로 발생한 파문과 같은 드라마를 그려낸 아름다운 연작 단편집이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사자 츠나구 2』는 『사자 츠나구 1』에 이은 대망의 후속작이다.

 


 

『사자 츠나구 2』의 작품 속 시간은 전작으로부터 7년 후의 이야기이며, 아유미는 작은 장난감 회사에 다니는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츠나구로서의 경험도 쌓아나가며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을 텐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좀처럼 아유미가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츠나구”라고 말하는 건방지고 어딘가 통달한 듯한 아역 배우 같은 이 여자아이는 도대체 누구일까? 작품 속 화자(話者)인 가미야 유즈루의 눈에 비친 '츠나구' 소녀는 어린 소녀로 보기에는 위화감이 들 정도로 묘사되고 있다. 배우인 유즈루의 약속 장소엔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가 등장한다. 아래쪽에 주름 장식이 달린 분홍색의 작은 가방을 맨 모습이 딱 그 나이의 아이답게 꾸민 모습으로 보인다. "내 팬이구나"라고 단정지으려는 유즈루가 "자, 갈까요?"라는 말에 아역 배우의 대사를 듣는 듯한 위화감이 들면서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

저자는 그 어린 소녀의 모습을 책에 묘사했다. "어른스러운 외모에 주눅 든 기색이 전혀 없는 또랑또랑하고 새까만 눈동자, 조그마한 얼굴, 날카로운 턱선과 얇은 눈썹. 갈색빛이 살짝 도는 보드라운 머릿결을 양 갈래로 나눠 리본으로 야무지게 묶고, 중앙으로 갈라진 앞머리 사이로는 동그란 이마가 두드러져 보였다."(p.8)

화자인 유즈루가 배우 초년병 시절 선배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우연히 들었던 '츠나구'의 존재를 떠올린다. 그가 이 단어를 화제에 올렸던 때는 동료들과 가진 공연 뒤풀이에서다. 선배가 말해준 '츠나구'의 무심코 말하다가 동료 여배우가 한 충고를 들었다. 그 이후로 츠나구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을 그만두었지만 설마 자신이 몇 년 후 소문을 더듬어가며 진심으로 츠나구를 찾는 상황이 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유즈루는 동료 여배우 미사를 사랑하고 그와 연애를 꿈꾼다. 그러나 미사는 냉정하기만 하고 배우의 일에 열심이다.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미사의 단짝이던 친구를 잃음으로써 미사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자신과의 연애를 꿈꾸던 유즈루는 언젠가 들었던 츠바구 이야기를 떠올리고 미사와 그 친구의 만남을 주선하려고 하지만 대신 만나는 것을 허락되지 않고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는 소녀 츠나구에게 한 번도 보고 싶지 않은 아버지를 선택한다. 결국 아버지와 재회하지만 세상을 떠난 그리운 사람과의 만남을 갈망해 재회한다 해도 상황이나 세상에는 아무런 변화는 없다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이해된다. ‘인연’을 강조하는 저자다. 첫 번째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는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이 떠오른다.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그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는 게 ‘사자 츠나구’이다. 할머니로부터 츠나구의 역할을 물려받은 시부야 아유미는 나무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며, 때때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연작 장편 소설로 1, 2편이 출간됐고 10건의 인연과 만남이 츠나구에 의해 이루어진다. 작품의 간격은 7년 후이지만 소설 속 배경은 수천 년에 이른다. 이를 연결하는 통로는 '츠나구'다. 츠나구는 원하는 사람에게 묻고 대상자가 원한다면 단 한 번 두 사람의 재회를 연결해 준다. 츠나구의 시간으로는 불과 7년이다. 삶의 세상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중요하지만 사후 세상은 시간이란 관념이 없다는 점도 독특한 구성으로 저자는 이뤄내고 있다. 『사자 츠나구 2』에서는 청년으로 성장한 아유미 앞에,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품은 의뢰인들이 나타난다. 「그 누구도 불행하지 않아」, 「고요함이 존재감을 드러내듯」, 「바다는 아무 일 없이 평온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것들」, 「다시 벚꽃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등이다.

어린 시절 헤어져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와 만나기로 결심한 젊은 배우.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에게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은퇴한 교사. 사고로 어린 딸을 잃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어머니. 그리운 사람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나이 지긋한 요리사 등이 등장한다. 한 명의 의뢰인이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평생에 단 한 번, 오직 한 명으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망자가 면회를 거절하면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면회 장소는 이 세상과 저세상을 잇는 길목에 있다는 고급 호텔의 방 하나, 면회 날짜는 면회 시간이 가장 긴 보름달이 뜨는 밤이다. 죽은 자는 살아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가 동이 틀 무렵 사라진다. 재회를 마치고 이른 아침 로비로 내려오는 의뢰인은, 어딘가 개운해 보이기도 하고, 얼굴 전체가 눈물로 범벅이 되기도 한다.

 


 

그날 밤,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남겨진 사람에게 힘을 줄 것이다. 츠나구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며, 아유미도 성장하고 있다. 사랑이 찾아온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 결말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일본 전국시대 전쟁 참전을 금지하면서 마을의 안녕을 지킨 농민 지도자를 만나려는 사메카와 고헤이, 바다에 빠져 숨진 딸 메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시게타 쇼이치와 미사토 부부, 유방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딸 에이코를 그리워하는 오가사와라 도키코의 만남을 주선하는 '츠나구' 아유미가 등장한다. 아유미의 작품 거북이 장난감 을 만드어 준 도리노 공방의 대장 도리노는 지병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고, 도리노의 외동딸 나오는 공방을 잇게 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한 아버지의 마음이 궁금하다. 일본 사람들의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을 통해 이어지는 삶의 모습이 담긴 전형적인 일본 사람들로 내세울 만한 대표적 성격을 갖는 인물들이다. 이들을 서로 연결되게 엮어낸 저자의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츠나구는 사람의 죽음을 다루는 임무를 맡는다. 세상을 떠난 누군가와 만나고 싶다는 의뢰인의 상실감을 오직 한 번밖에 이룰 수 없는 재회를 중개한다. 아유미에게 츠나구를 맡기고 돌아가신 아야코 할머니, 점술가 아키야마 가문의 당찬 꼬마 당주 안나 등 아유미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눈길을 끌기도 한다. 소데오카 아야코는 하치야 시게루의 오랜 만남 요청을 거절하지만 아유미는 아야코와 하치야의 만남을 주선하는데 성공하고, 하치야는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과 같은 시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한다. 인연과 시간의 흐름, 그리고 삶과 죽음이 우리 일상의 변화에 깊이 관여하는 메시지가 작품 속에서 은은히 퍼져나와 독자들의 가슴속에 조금씩 쌓여간다.

 


 

저자 : 츠지무라 미즈키(つじむら みづき,ツジムラ 深月)

 

1980년 2월 29일생. 야마나시 현에서 태어나 치바 대학교 교육학부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쓴 소설이 호러 소설일 정도로 어릴 때부터 호러와 미스터리를 좋아했다. 2004년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로 제31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2011년 『츠나구』로 제32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받았고, 2012년에는 범죄를 테마로 한 소설집 『열쇠 없는 꿈을 꾸다』로 제147회 나오키상을 수상, 2018년 『거울 속 외딴 성』으로 제15회 서점대상 1위가 되며 장르를 넘어 일본 문학을 이끄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난임 부부와 열다섯 살 미혼모라는 두 가족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긴 여운을 남기는 『아침이 온다』는 일본에서 드라마와 영화로까지 제작되었고, 영화는 2020년 칸 영화제에 초청되는 환영을 받았다. 그 외 저서로는 『얼음고래』 『테두리 없는 거울』 『어쩌다 너랑 가족』 등이 있다.

 

역자 : 오정화

 

서강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일본문화학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외식기업 기획자로 근무하였으나 일본어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 퇴사 후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의 길을 걷고 있다.

역서로는 『수학소녀의 비밀노트: 고마워 적분』,『숫자로 배우는 초보 수학』,『억만장자의 엄청난 습관』,『푸드테크 혁명』,『알아두면 쓸모 있는 모양 잡학사전』,『게으른 뇌에 행동 스위치를 켜라』,『처음 읽는 맛의 세계사』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토록 재미있는 미술사 도슨트 : 모더니즘 회화편 - 14명의 예술가로 읽는 근대 미술의 흐름
박신영 지음 / 길벗 / 2023년 10월
평점 :
절판



 

거장들이 그린 그림의 값이 왜 수천 억원을 호가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림 한 장이 그 정도로 귀하고 값진가? 그림에 문외한인 독자가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 불과 3년 남짓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직장인인 독자는 재택 근무가 가능해 일주일에 한두 번만 회사에 나가고 나머지는 집에서 업무 처리를 했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하고 매일 하던 회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소통에는 확실히 불편했다. 그러나 적응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 달도 안 되어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낼 때가 많았다. 직장 생활 하는 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손에 잡기 시작했다. 어차피 집 밖으로 나가 활동하는 것은 당분간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시간 땜질용'의 독서가 시작됐다. 그러나 일단 책을 잡고 흥미를 느끼면서 예전 독서에 열중했던 때의 '독서 세포'가 살아난 듯 여러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책 값이 평균 1만5,000원으로 뛰어 있었다. 책을 손에서 놓았을 때 책 한 권은 1만 원이 안 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물가 상승률로 생각해도 그리 크게 오른 것은 아니었다. 10년이 훨씬 넘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때부터 책의 평균가는 굉장히 뛰기 시작했다. 3년 여가 지난 지금은 웬만한 1만8,000원 안팎인 책이 대부분이다.

서평을 쓰면서 책값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책값이 부담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지도 않으니 책값을 탓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말일 터. 책의 편집이나 지질이 굉장히 좋아졌다. 책값을 인상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이 아닐까 싶다. 이 책 『이토록 재미있는 미술사 도슨트 : 모더니즘 회화편』은 그 점에 비춰보면 그림에 대한 해설서다. 앞서 돈 타령만 했기에 책값이 비싸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책값이 뛰면 출판계로서도 그리 득될 게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이 책은 책값이 비교적 싸게 내용에 충실을 기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그림 감상을 위한 해설서이니 컬러 사진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출판물이 그림을 흑백으로 내기에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 책은 독자가 판단하기에 그림 감상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문외한도 모두 읽고 보고 즐길 수 있는 책이다.

 


 

그림을 출판물에 담아 컬러 그대로 보여주는 일은 그림 해설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이 취하고 있다. 어쩌면 거의 모든 책들이 흑백으로 인쇄해도 그림에 관한 책은 어려울 것이다. 특히 선을 중시하는 동양 미술에 비해 서양 미술은 '색의 예술'이라고 했다. 그림에 담겨 있는 내용보다 색의 사용, 표현 방법, 기법, 심지어 붓 터치까지 모두 상세히 나타나는 서양 미술의 특성상 컬러 인쇄본이 아니라면 소화하기 힘든 분야다. 이 책 역시 컬러판이다. 수많은 사진이지만 흑백으로 인쇄된 부분은 활자밖에 없다. 표제어에 붙은 대로 이 책은 서양 미술의 〈모더니즘 회화〉를 다루고 있다.

르네상스 이후의 그림을 일컫는다. 근대에 들어서기 전 화가들은 신 중심의 그림을 그렸다. 세상이 신의 세상이었기에 당연하다. 그러나 신의 세상이라는 중세는 종교 개혁과 함께 일대 전기를 맞는다. 인류 역사에서는 이를 문예부흥(르네상스)로 부른다. 르네상스 직후까지의 미술은 고전주의라고 칭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전주의란 신을 중심으로 한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고 맞춰졌다. 즉 기독교가 서양의 주력 종교로 들어선 것은 로마시대다. 기독교 초창기에 기독교를 박해했던 로마 제국은 300년이 지난 후 기독교를 공식 인정하고 로마 제국 역시 국교로 채택됐다. 이후 로마 제국 영향권에 있던 모든 나라들은 기독교도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기독교는 막강한 정치·외교·국제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의 경제 생활이나 국가간 전쟁에서도 최상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 교황청은 권력의 절정기를 맞이했다. 이슬람이 뒤늦게 생겨나 기독교를 위협할 정도의 종교 세력을 키우자 교황청은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중세 후기 200년이 넘는 기간 전쟁에 휩싸인다. 이때 그림들은 대부분 원근법도 없는 신의 세상을 그렸다. 그림이 필요한 곳은 큰 건축물이다. 일반 시민의 가정에서 그림을 걸 만한 장소가 따로 없는 한 그림을 걸 수도 없다. 더욱이 왕과 귀족들의 성이나 성당 등 큰 건축물이 아니고서는 그림에 대한 이해도 낮았기에 그림의 가치를 아예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문예부흥 직후까지 그려진 그림들은 중세의 그림 원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고 이를 '클래식', 즉 〈고전주의〉라고 후세 사가들이 이름 붙였다.

 

 

세계적인 명화들은 르네상스 이후부터 태어난다. 그전에는 있다해도 건축물에 직접 그린 것이 대부분이어서 사고 팔 개인 소장물이 아니었다. 문예부흥이 세계사적 의미에서나 인류사적 의미에서 큰 변곡점을 가져 왔다. 당연히 예술도, 예술가도 세상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시도한다. 신을 앞세운 세상이 '인간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보기에 아름답고 찬란하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간혹 어떤 그림들을 보면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그리기도 하고, 선을 향한 지극한 마음이 드러나는 그림도 있다. 예술가들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밥을 굶어가면서도 그림을 그린 사람은 그리 흔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화가들에게 가장 지원을 많이 해준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가가 유명하다. 이 가문은 피렌체 공국을 직접 다스리기도 했다. 메디치는 피렌체의 화가들을 중심으로 그림을 직접 주문했다. 이어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 근처의 거장들은 대거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모여든다. 먹고 사는 게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초대된 화가들은 대개 이름 난 화가는 메디치가의 초대를 받기 위해 꽤 열심히 이탈리아로 모이기도 하고 드나들기도 했다. 그들은 왕가나 영웅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사진이 없던 시절이어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모더니즘〉으로 불리는 새로운 사조가 들어서기 전까지의 화가들의 화풍을 〈고전주의〉라고 구분한다. 우리가 책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본 대부분의 명화는 고전주의 작품과 모더니즘 작품이 대부분이다. 특히 모더니즘 작품들은 나름대로 스토리를 담고 있다. 때문에 명화의 탄생도 그저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모더니즘 회화(근대 미술)의 작품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커다란 흐름과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저자 박신영은 말한다. 익히 알고 있는 유명 예술가이지만 그가 어떤 고민과 과정을 통해 이런 그림을 완성했는지, 이 작품이 미술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까지 알고 나면 그 속에 담긴 진짜 이야기와 가치를 알 수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이로 인해 그림 해설서이기도 하고, 독자들 입장에서는 그림 감상으로 풍성한 이야기를 듣고 즐길 수 있다.

 


 

역사 속 근대와 현대의 구분은 뒤에 사가들이 구분한 것이다. 대개 건축물의 변화, 그림, 문예, 음악 등 예술 분야에서 크게 차이를 보인다.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내용들이 차이가 있고, 그들이 보는 현실은 각 시대마다 다르다. 이를 사조(思潮)라고 한다. 사조란 한자 풀이 그대로다. '생각의 흐름'을 말한다. 철학이나 역사는 물론 우리 인간의 삶을 창작으로 연결한 미술 사조, 음악 사조, 문예 사조 등도 사조로 나뉘어 표현한다. 인류 역사 중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시대나 장소에서 그 시대와 장소에 공통되는 정신이 등장하여 문학과 예술이 영향을 받게 된다. 17세기 말 서유럽 사회를 기점으로 세계가 이런 주류를 탔다고 한다. 이 시기에 복고의식의 한 표현으로 나타난 문예활동이 〈고전주의〉로, 이후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실존주의〉로 이어져 갔다. 문예사조의 이야기가 그렇듯 철학이나 사상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역사의 발전 과정에 따라 대표적 단어들로 앞에 붙여 사용한다. 이를 테면 앞서 언급한 대로 〈고전주의〉는 물론 뒤를 잇는 〈모더니즘〉이란 말에 '근대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등이 모더니즘 계열이고 추상화로 옮겨가는 길목이다. 이후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초현실주의〉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 미술〉로 발전되어 간다. 거장들의 그림을 이 사조별로 나누는 것은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이고 역사나 철학, 사상과도 관련이 돼 있다. 뒤에 붙여진 이름이지 당시 화가들이 규정한 말은 아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미술 작품을 보는 즐거움은 한층 더한다. 명화와 예술가의 더 깊숙한 이야기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충실히 설명을 해주는 책이 이 책 『이토록 재미있는 미술사 도슨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최소한 문예부흥 이후 들어선 근대 미술의 흐름과 현대 미술로 넘어가는 과정, 그리고 추상화가 대세였던 현대 미술까지의 이해에 명확한 지식 '한 숟갈' 더 먹는 셈이다. 이 책이 명확한 해답이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예술가와 작품들을 미술사의 흐름에 따라 한 줄의 구슬처럼 꿰어주는 즐거움이 이 책에 녹아 있다는 점이 독자의 믿음에 부응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이면 어렵고 난해하게만 느껴지던 모더니즘 회화를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을 듣는 것처럼 따라가며 감상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저자에 따르면 모네와 고흐의 인상주의부터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까지 19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그려진 그림들을 미술사에서는 모더니즘 회화라고 한다. 이 시기의 시작점은 시민혁명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대혁명을 꼽는다. 역사나 정치적 변동은 물론 세상을 바꾼 일대 사건이다. 특히 사람들은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며 살아기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분위기는 당연히 미술에도 전이되었다. 예술가들도 각자 하고 싶은 미술을 마음껏 창작하다 보니 이런저런 다양한 형식이 등장했다. 이것을 모더니즘 회화의 다양성이라고 말한다. 결국 다양성은 백성에서 시민으로, 피지배계층에서 자유인으로 바뀐 근대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고전 회화가 권력자의 실내에서 곱게 키운 한 송이 꽃이라면, 모더니즘 회화는 넓은 들판에서 제멋대로 피어난 수많은 들꽃으로 저자는 표현한다.

책에서 나타나는 순서대로 보자면 고전주의-인상주의-표현주의-야수주의-입체주의-추상미술-추상표현주의 등으로 저자는 말하고 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까지 170년 안팎의 기간에 거침없이, 자유롭게, 자신을 그리고 삶의 모습을 담아냈다. 또 풍경에도 자신이 인식한 느낌대로 그리는 것에서 시작해 일반 사람들은 무엇을 그린 것인지도 모를 의식의 흐름까지 표현해냄으로써 예술, 특히 그림은 치열한 예술혼을 보여준다. 역동적인 역사의 변곡점마다 좋은 시절과 불행의 기간을 겪으며 그들의 예술은 한층 현대적으로 이동하는 힘의 원동력을 얻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룬 화가는 모두 14명에 불과하다. 서양 미술의 거장들로 표현되는 많은 화가들 중 사조의 흐름을 주도한 인물들만 뽑아 모더니즘 회화의 특징과 거장의 그림을 함께 표현하자니 모두 다루기에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변곡점마다 사조를 이끈 주역과 그들의 그림, 그리고 삶의 모습까지도 일일이 파악해 펴낸 이 한 권의 책에는 무엇보다 값진 거장들의 삶의 모습이 담겨 가치를 더해 준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미술 해설서답게 각 장을 '전시실'로 표현하고 있다. 모더니즘 회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5개 전시실은 각 전시실을 채운 화가들이 살았던 당시의 우리의 삶의 모습과 닮아 있는 그림들이 가득하고, 현재 진행 중인 현대 미술 전시실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1전시실 「고전의 끝, 새로운 시작」에는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의 작품들이 펼쳐져 있다. 이들 거장들은 〈고전주의〉의 틀을 깨고, 〈사실주의〉적 표현 기법과 그림의 대상들로 모더니즘의 출현을 알린 화가들이다. 사회에서 인간 삶의 모습을 통해 부조리와 부정, 돈과 권력의 추악함 등을 표현해냄으로써 인간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들이 많다. 이들 중 드가는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역동적으로 표현하며 무대 뒤의 '스폰서'들의 교활한 성매매를 고발하기도 한다.

2전시실 「인상주의의 세 갈림길」에선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의 작품과 화가들의 삶이 기록돼 있다. 특히 고흐의 그림은 시대를 앞서갔을까?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한 '영혼의 화가'로 불리는 고흐는 자신의 생전에 그림이 한 점, 그것도 아주 싼 값에 팔린 게 전부이다. 궁핍한 생활일 수밖에 없고,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연명하며 정신병원에서의 투병생활 중에도 그림에의 열정은 누구 못지 않아 독창적인 화풍을 보여준다. 독자가 가장 글의 맨 앞에 꺼낸 수천억 원의 그림은 바로 고흐의 그림 이야기다. 3전시실 「색과 형태의 붕괴」에는 에드바르트 뭉크(표현주의), 앙리 마티스(야수주의), 파블로 피카소(입체주의)가 등장한다. 이들의 미술사적 위치와 그림들은 읽고도 믿기 어려운 많은 이야기들이 남겨져 있다. 또 4전시실 「돋아난 새싹, 새로운 미술의 탄생」에는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이 등장한다. 각각 최초의 추상화, 초현실주의 화가로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다. 5전시실 「모더니즘 회화의 종말」에는 잭슨 플록과 바넷 뉴먼, 마크 로스코 등 3명의 화가가 등장한다.

저자는 에필로그 〈나가며〉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과 그들이 이룬 미술사적 업적의 공통점은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과정과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석가모니가 젊은 시절 병든 사람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출가했다. 속세로 내려가 사랑도 해보고, 쾌락도 느껴보고, 슬픔도 겪어보고, 고뇌도 해보며 삶에서 느끼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답을 구하려 했던 것처럼 예술가들도 '회화의 답'을 찾으려 했다는 것. 이로써 모더니즘 회화의 발전 과정은 수많은 질문에 대한 예술가들의 고민과 방황의 흔적이라는 것, 결국 답을 찾았지만 이마저 도달할 수 없는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전 세계의 질서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수많은 식민지들을 거느리며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유럽은 히틀러에 의해 잿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새롭게 재편할 또 다른 거인이 등장했으니, 바로 미국입니다.(p.280)

 

색면추상 예술가들은 미술사에서 지금까지 숭고를 표현해온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근원적인 숭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형태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p.303)

 

저자 : 박신영

 

인문 교양의 끝판왕, 미술을 사람들에게 쉽게 소개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며 2019년부터 팟캐스트 <후려치는 미술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브런치를 통해 꾸준히 미술사를 소개하는 글을 게재하고 있다. 미술을 제대로 즐기려면 반드시 ‘미술과 얽혀 있는 시대’를 같이 봐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미 문화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미술이 더 이상 저 멀리 있는 고급 교양이 아닌, 대중적인 인문 교양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 중이다.

팟캐스트 후려치는 미술사

브런치 @appiusview

인스타그램 easymisulsa

유튜브 후치미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록 - 평생을 수치심과 싸워온 우리의 이야기
로라 베이츠 지음, 황가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지나치게 여자를 탓한다. 성폭력범이 오히려 여성을 탓하기도 한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여성이 아니라 사회다.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한 여성 운동가의 진심 어린 주장, 여성으로서 정당한 요구가 이 책에 적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록 - 평생을 수치심과 싸워온 우리의 이야기
로라 베이츠 지음, 황가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성폭력 범죄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적 시론이 신문과 방송에 자주 언급된다. 2023년 대한민국 사회는 법 처벌 수위를 강력하게 올리고 있는데도 비웃기라도 하듯 성폭력 사건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서 자주 오르내린다. 성폭력 범죄 유형도 새로워지고 잔인해졌다. 성폭력이 무분별해지고 있다는 비판적 시선을 피할 수 없을 정도다. '데이트 폭력'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이고, 성폭행의 수위마저 높아지고 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살해마저 서슴지 않는다. 여성이 마치 '적'으로 보인 것처럼 잔인하게 대하는 데는 몸서리처질 정도다. 독자가 정확한 집계는 알고 있지 못하지만 뉴스에 나오는 빈도나 검찰이나 경찰에서 성폭력범들은 법정 최고형으로 무거운 처벌을 내린다고 강경 대응책을 내놓는데도 성폭력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2023년 7월, 대한민국 정부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강화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스토킹 살해는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살인 등 중범죄로 이어지기 쉬운 스토킹 범죄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피해자 보호 조치를 ‘피해자 스스로 판단하도록’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 『목록』의 저자는 저명한 영국의 페미니스트 로라 베이츠다. 이 책의 출간을 서두르던 그가 퇴고를 거듭하고 있을 때(두 번째 퇴고와 세 번째 퇴고의 중간 시기쯤인 2021년 9월) 영국 그리니치에 살던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살해된 여성은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펍으로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가는 도중이었다. 범인은 얼마 안 돼 잡혔는데 30대 남성이었다. 그 남성은 길 가던 여자를 강간한 후 죽였다. 저자는 그 사건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 책 출간을 앞두고 퇴고하는 사이에 '서비나 네사'가 죽었다. 이 책이 출간될 때쯤에는 또 다른 여자의 이름이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남자가 그녀를 탓할 것이다. 이것은 독립 사건이 아니다.”

비슷한 일은 대한민국에서도 불과 한 달 전에도 일어났다. 보도에 따르면 2023년 8월 17일, 서울 시내 한 등산로에서 출근 중이던 여성이 30대 남성으로부터 폭행과 성폭행 당하고 살해됐다. 대낮에 일어난 일이었고 범행 동기는 “강간이 하고 싶어서”였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었났다. ‘그러니까 왜 여자가 혼자 운동을 하러 거기에 갔냐’ ‘당시에 무슨 옷을 입었냐’ 등 피해자를 향한 도를 넘는 2차 가해도 계속됐다고 보도는 이어졌다.

 


 

저자는 이를 두고 '강간 신화'(강간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믿음)는 현재 우리 사회에 여전히 진행 중이이라고 말한다. 영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어쩌면 그렇게 성폭력 양상이 똑같을까 생각해보면 섬찟하기까지 하다. 저자 베이츠는 지난 2012년 여성들이 자신이 겪은 성차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일상 속 성차별 프로젝트’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50명 정도가 사연을 올릴까 예상했지만,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10만 개가 되며 화제의 중심에 올랐고, 오늘날에는 2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로라 베이츠는 선두에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디지털 혁신 분야에서 영국 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온 온갖 불평등 이야기들, 성차별적인 농담,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직장 내 차별, 성추행 등의 사건이 이 책에서 말하는 각자의 ‘목록’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일상화된 불평등의 원인을 사회의 제도적·구조적 시스템에서 찾고자 한다. 그 누구보다 평등을 지향해야 할 교육, 경찰, 사법, 정치, 언론이 어떤 식으로 여자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그들의 입을 막고 좌절하게 하는지를 엄격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이에 따라 이 책 『목록』은 여자로 살아가며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의 기록인 동시에 더 이상 그것이 개인의 일상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선언'이다.

이 책에서 저자의 주장은 명확하다. 여자가 입고 있던 옷도, 몇 시에 어디를 갔는지도,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것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많은 경우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계급 차별, 장애인 차별, 트랜스젠더 혐오, 무슬림 혐오 등의 편견과 얽혀 있기도 하다. 특히 사회적 편견이라는 점에서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관습과 사회 제도로 성차별과 성폭력을 너무나 관대하게 바라본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또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우리 사회는 모두에게 평등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가?라는 묵직한 성찰을 제안한다. 이미 우리나라 한 여성 국회의원도 “시스템을 바꿀 이유와 힘은 이미 우리에게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연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 책을 집어 들어야 하는 이유다.

 


 

전 세계적으로 거의 매일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하지만 대개 우리는 그 여자들의 이름조차 모른다. 언론에 머리기사라도 한 줄 실리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회는 이를 ‘극히 드문’, ‘물 흐리는 미꾸라지가 저지른’, ‘비극적인’ 일로 치부하고 사건들의 상호 연결성을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시스템 차원의 해결책을 논외로 만들어버린다. 그리하여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의 원인과 예방과 해결책은 또다시 여자의 몫이 된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하고 여자를 비난하는 일은 안전하고 쉽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여자들이라면 시스템을 바꿀 필요도, 누군가가 책임 질 필요도, 제도를 개혁하고 구조적 문제를 뿌리 뽑을 필요도 없다. 그 결과 여자들은 괴롭힘, 폭행, 강간, 살해에서 벗어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영국에서 세라 에버라드라는 여성이 실종된 후, 경찰은 집집마다 방문해서 절대 여성 혼자 외출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들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여자들이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의 집을 방문해서 범인을 밝혀낼 때까지 외출하지 말라고 경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통계적으로 범인은 남성일 확률이 압도적이다.)

이 책에는 여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긴 대처법 목록이 실려 있다.(p.106~108) ① 길을 걷다가 남자 무리가 있으면 반대편으로 가기 ② 혼자 살지 않는 척하려고 남자 목소리 녹음해두기 ③ 여자친구들과 헤어진 후에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자 보내기 ④ 술집에서 손으로 술잔 위를 덮고 누가 내 술에 약을 타지 않는지 매의 눈으로 감시하기 ⑤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벽에 서 있기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온다. 독자는 이런 일들이 21세기 선진국 수백만~수천만 명이 모여 사는 대도시에서 해야할 여자들의 일이라고 믿기 어렵다. 여자들은 자신의 무의식적인 습관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에게는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라는 점이, 여자들이 이렇게 불편하게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여러 권의 페미니즘 책을 쓴 로라 베이츠는 자신의 어렸을 적 경험과 사회적 관습이 얼마나 성차별이 보편화되었는지, 여성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규정지으려 하는지를 이 책에서 강조한다. 또 이 관습과 인식들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을 사례를 들어 지적한다.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책에 쓰인 것도 열거하는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들은 개인적인 '목록'이 되고, 이는 성차별 금지 인식과 성인식, 성감수성을 높이고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올 가장 좋은 요소가 된다는 것이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밑바탕이 된다. 저자 베이츠는 페미니스트 활동가, 작가, 강연자. 방송에서 남자 패널과 피 튀기며 토론하고,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 열심히 뛰었다고 한다. 자신도 역시 성차별을 겪은 순간은 있었다고 담담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정확하게는 ‘있었다’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목록이 자신이 살아온 동안 내내 뒤따랐다고 주장한다.

그러다 비슷한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점과 점을 연결했다. 이로써 ’단편적 경험 사례들이 모여 목소리에 힘을 실을 만큼 강력한 자료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비로소 이 사건들이 우연히 벌어진 독립사건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그간 일상에서 흔하게 겪었지만 무시하려 애썼던 목록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의 삶이 공포, 학대, 괴롭힘, 차별로 얼룩지는 것이 정당한 걸까? 그래서 여자들에게 목록에 대해 물어보았다. 대부분은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아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평범한 일상이니까요.” 자포자기하거나 그냥 일상으로 인식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확하고 또렷한 목소리를 낸다.

"우리가 제일 먼저 취해야 할 가장 작고 간단하고 시급한 저항의 행동은 목록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앉아서 생각하고 써라. 스스로 느껴라. 행인들의 무관심 혹은 당신이 사랑하고 믿는 사람들의 일축으로 인해 잊고 잃어버리고 도둑맞은 순간들이 더욱더 많이 있음을 깨닫고 분노해라. 그 순간을 되찾아라. 각각의 경험이 더 큰 이야기의 일부임을 깨달아라."(p.28)

 


 

이처럼 주장하는 저자 역시 자신의 어렸을 때부터 마흔아홉 살까지 자신에게 가해진 이야깃거리가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는 많은 여자들이 용감하게 공개한 것 같은 끔찍한 성폭력은 아니고 그저 평생 남자들에게 괴롭힘당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런 일들은 그렇게 인식하는 순간부터 묻히기 시작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자신보다 "어린 여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고 말을 꺼낸다. 자신이 모든 것을 말없이 참아서, 대부분 신고하지 않아서, 나에게 일어난 일을 소리 내어 외치지 않아서 사회 시스템이 이 지경이 된 데 일조했다는 방관자로서 후회를 내비친다. 침묵을 지킨 탓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했다고 자신을 성찰하고 앞으로는 참지 않고 철저하게 기록하며 매일 목록을 작성하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변화된 내일을 위해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다.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상이어서는 안 된다고,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제는 알게 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야기들이 모일수록 다양한 억압의 형태 간에 겹치는 부분, 즉 ‘교차성’이 명백해진다. 여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사과하는 듯한, 의구심 가득한 말투를 사용했다. 여자들은 스스로를 믿지 않도록, 목록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도록 체계적으로 훈련받아 왔다. 이것이 바로 아주 오랫동안 가부장으로 대표되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사회 시스템을 통해 구축해놓은 억압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장(章)의 구분 없이 10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목록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서인가 싶다. 책의 소제목은 그 장의 성격을 나타내는 제목만으로도 구별이 되기에 굳이 장의 순서를 구분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10개의 핵심 단어와 문구로 구분되어 있다. 「목록」, 「시초」, 「가부장제? 무슨 가부장제?」, 「'독립 사건'」,「미꾸라지」, 「피해자를 심판대에 올리기」, 「정치와 특권」, 「대중매체의 여성혐오」, 「점과 점 연결하기」, 「여자가 아니라 시스템을 고쳐라」 등이다.

 


 

"우리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시급한 저항의 행동은 우선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차별은 없다고 말하는 누군가의 세계를 부수기 위해서, 연대하고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목록이 필요하다. 그러니 당신의 목록을 만들어라.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당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목록을."

 

저자 : 로라 베이츠(Laura Bates)

 

영국의 페미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여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 사례를 들어보자는 취지로 2012년 ‘일상 속 성차별 프로젝트 Everyday Sexism Project’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2015년 전 세계 각지에서 도착한 사연은 10만 건에 이르렀고, 현재 2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냈다. 이 작업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케임브리지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며 정기적으로 〈가디언〉, 〈텔레그래프〉 등에 글을 썼다. 일상 속 성차별 프로젝트를 통해 모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첫 책 《일상 속의 성차별》을 비롯해 여러 권의 페미니즘 책을 썼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영국 언론상을 수상했다. 〈코스모폴리탄〉, 〈레드〉, 〈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되었으며, BBC에서 다양한 분야의 여성 개혁가를 뽑는 ‘우먼스 아워 파워 리스트 2014’ 10인에 선정되었다. 젠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과 긴밀히 협력하는 등 다방면으로 힘쓰고 있다.

 

역자 : 황가한

 

서울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과 언론정보학을 복수전공 한 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영번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현대적 사랑의 박물관』, 『보라색 히비스커스』(2019 올해의 청소년 교양 도서), 『아메리카나』, 『제로 K』,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2018 세종도서 교양 부문), 『엄마는 페미니스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소유 (양장) - 무소유 삶을 살다 가신 성철·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메시지
김세중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 『무소유』는 성철 스님의 열반 30주년을 기리는 뜻으로 펴냈다. 특히 성철 스님은 평소 삶 자체가 무소유의 삶이었다고 인구에 자주 회자됐다. 그의 무소유의 삶의 일화가 담긴 책과 『무소유』 책을 써서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법정 스님의 이야기가 절반씩 실려 있다. 특히 표지 사진은 두 스님이 함께 찍힌 일이 별로 없지만 언론에 이름이나 얼굴을 알리기를 별로 반기지 않았던 성철 스님 조계정 종정에 오르고서도 취임 법회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종정수락법어만 남겼다는 것. 당시 종정 취임식을 취재하던 중앙일보 장남원 기자가 표지 사진을 찍은 주인공인데 새 종정이 취임식장에 나오지 않고 해인사에 머무른다는 말을 듣고서 다른 기자들과 함께 성철 스님을 만나러 갔다. 신임 종정은 '3,000배를 해야 만난다'는 엉뚱한 제의를 했다. 대통령도, 재벌도 3,000배를 하지 못하면 만나지 못한다고 하니 사진을 찍어야 하는 기자로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장남원 기자에 따르면 몇몇 기자가 도전에 나섰지만 500배를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은 되돌아갔고, 유일하게 자신만 끝까지 도전했다. 신입 기자로서 사진을 갖고 돌아가야 할 막중한 책임감 때문이다. 1,500배를 넘겼을 무렵 성철 스님이 직접 찾아와 그만해도 된다고, 사진을 찍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비로소 이 사진을 찍어 남겼다.

특히 성철(1912년 생, 1935년 출가) 스님과 법정(1932년 생, 1954년 출가) 스님은 속세의 나이로 치자면 20년 차이가 난다. 불문으로 출가한 것도 마찬가지로 20년의 차이가 있다. 표지 사진은 절묘한 타이밍에 두 분이 함께 해인사에 계실 때 종정 사진을 필요한 언론사 기자 시절에 찍은 것으로, 이 사진은 성철 스님의 최초 사진이라고 장남원 작가는 밝혔다. 당시 작가가 사진 기자 시절 성철 스님의 사진을 독점적으로 찍게 된 에피소드는 책 마지막 〈에필로그〉에 소개되어 있다. 표지사진을 찍은 장남원 작가는 얼마 전 인기 드라마 〈우영우〉에 나오는 고래의 사진작가로 화제를 모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3,000배를 하고 성철 스님을 만나러 간 자리에 스님과 중생들과의 사이에 다리가 되어 주시겠다고 오신 법정 스님이 계셨다고 털어놓는다. "두 분 스님의 사진을 먼저 찍고 나가서 성철 스님의 사진을 따로 찍었다."(p.301)

 

 

이 책은 성철 스님의 열반 30주년을 기리며 두 분 스님의 삶에 녹아있는 무소유의 정신과 철학을 정리한 책으로, 저자 김세중의 『무소유』 출간 30만 부 돌파를 기념하기 위해 『무소유 향기』를 합본하여 고급 양장본으로 새로 편집하여 펴냈다고 출판사 측은 밝혔다. 저자는 합본 출간 소감을 "무소유의 화두를 던지시고 실제 그러한 삶을 살면서 불교계를 떠나 모든 이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침을 주신 이 시대의 스승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 우리도 이분들의 삶의 철학인 무소유의 삶을 좇아서 정신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맑고 향기로운 인생의 행복을 찾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의미를 해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성철 스님은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생은 사람만이 아니라 돌멩이, 꽃, 강아지, 구름, 바다, 별 등 지상과 하늘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뜻한다. 나뭇잎 하나에서 우주를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지상에 만물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 것이고, 그러한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떤 것이든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 세상에 분란이란 없을 것이라고 성철 스님은 우리에게 전했다.

또 법정 스님은 말의 의미가 잘 여물 수 있도록 자신을 고독하게 비워 내야 한다고 깨우쳤다. 스님은 자신의 종교에서까지 자유로워져 어느 하나에도 얽매이지 않고 텅 비워 냈을 때 진리를 구할 수 있으며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순수하게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 법어를 대중들에게 깨닫게 했다.

 


 

저자 김세중은 두 스님의 가르침과 법어, 생전의 삶의 실천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 많은 내용을 독자들에게 누구보다 잘 전달해주는 역할에 충실한 분이라고 한다. 오래 섬기고 가르침을 받으며, 두 분의 가르침의 의미를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이해하기 쉽게 전해온 분이다. 특히 저자는 광주 MBC 퇴직 후 대학 강단에서 인문학을 강의하고, 인문학 저서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꾸준한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과의 특별한 인연도 있겠지만 부처의 가르침을 오랜 수행과 승려로서의 삶을 직접 실천하신 분들이기에 더욱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성찰과 불교에서의 배움을 독자들에게 잘 전달해 왔다. 그의 불교에 대한 사유가 유난히 깊은 것은 두 분에 대한 존경심에서 시작됐겠지만 두 분의 삶 자체가 조금도 빈틈 없이 깨달음을 대중들에게 전달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2부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무소유〉, 2부 〈무소유의 향기〉이고, 1부에 1장 「무소유의 행복」, 2장 「인생의 아름다움」, 3장 「색즉시공의 진리」, 4장 「사회의 구원을 위하여」, 5장 「만남은 시간으로 깊어집니다」에 이어 2부 6장 「지혜가 고요에 깃들었음을 기뻐하십시오」, 7장 「하나로 연결된 우리입니다」, 8장 「삼독(三毒)을 버리면 평화가 있습니다」, 9장 「행복은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10장 「해탈의 길」 등 두 분 스님의 가르침과 법어, 법문, 생활, 에피소드 등 모든 것을 저자가 해석(해석이 어려운 것은 주석)했다. 그의 불교에 대한 사유와 함께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겼다.

저자는 이 책 두 분 삶과 가르침과 오랜 사색 끝에 '비움'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을 덧붙이기도 했다. "비움은 어쩌면 삶의 틈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고한 삶의 형태를 지탱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한구석 빈틈없이 꽉 막혀 채우기만 한다면 그 삶의 형태는 지속적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삶의 틈새로부터 얻고 비우며 정화된다. 가을이 되어 맛있게 익은 감나무의 감 몇 개를 까치 몫으로 남겨 두던 우리 옛 선조들의 마음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삶의 여유였을 것이다."

 


 

두 분 스님의 삶에서 진하게 우러나온 지혜와 무소유는 그래서 우리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온다. 특히 현대를 사는 우리는 디지털 시대로 엄청난 속도 경쟁의 세상에 살고 있으며 머릿속은 더 복잡해지고 끝없는 정보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 이 혼탁한 세상은 스스로를 맑게 정화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움'과 '무소유'는 우리들에게 언제나 화두다. 복잡하고 빠를수록 우리 머릿속은 스트레스가 가득 차기 때문이다. 두 스님의 진리가 담겨 있는 이 책이 이 혼탁한 세상을 비집고 빠져나갈 수 있는 틈새이자 지름길이 되길 바란다는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은 두 분 스님의 가르침에 향기로운 해석으로 우리의 영혼과 정신을 맑고 순수하게 되돌아가는 데 큰 힘을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책에 따르면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는 말이다. 성철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란 물질에 탐닉하면 양심이 흐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종교든지, 물질보다 정신을 높이 여깁니다. 부처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호사스러운 왕궁을 버리고 다 해진 옷에 맨발로 바리때 하나 들고 여기저기 빌어먹으면서 수도하고 교화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교화의 길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철저한 무소유의 삶에서 때 묻지 않은 정신이 살아난 것입니다."

법정 스님 역시 한평생 자신에게 엄격하고, 검소하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소유와 관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하셨던 스님의 유언장에는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리석은 탓으로 제가 저지른 허물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겠습니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롭게’ 재단에 주어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토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법정 스님은 상좌에게 "인연이 있어 신뢰와 믿음으로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한다. 괴팍한 나의 성품으로 남긴 상처들은 마지막 여행길에 모두 거두어 가려 하니 무심한 강물에 흘려보내 주면 고맙겠다. 내가 떠나는 경우 내 이름으로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말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茶毘)하여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이렇게 법정 스님은 유언에서까지 우리에게 무소유의 가르침을 주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스님이 젊었을 때는 유신 치하였는데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함께 유신철폐 개헌서명운동에 참여했다가, 어느 날 송광사 불일암으로 내려가 수도에만 전념했다고 전한다. 스님은 훗날 송광사 불일암으로 들어간 이유를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박해를 받다 보니 증오심이 생겨요. 순수한 마음에서 이탈하는 게 괴롭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는 말도 전한다. 이렇게 법정 스님은 마음까지도 불순한 것이 들어오는 것을 경계했다고 풀어주고 있다. 법정 스님은 진리를 구하는 방식 그대로 생전에 종교를 초월하여 많은 분과 교우했다. 이해인 수녀는 세상을 떠나신 스님의 영면을 기원하면서 이렇게 추모의 글을 썼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신 스님의 설법과 글들로

수많은 중생이 위로받으며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행복해하였습니다.

법정 스님! 스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자비의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시고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둥근달로 떠오르십시오."

 


 

우리는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몇몇 성인들이 알려주고 간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석가, 예수, 마호메트를 이야기한다. 이들은 종교는 달랐지만 하나같이 진정한 삶은 물질적 이득에 있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성인은 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씀을 말로 따라 하기는 쉬워도 몸으로 실천하기는 힘들다고 일반 대중들은 생각한다. "그래, 신과 보통 사람은 다른 거야"하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 법정 스님이 입적하시면서 새롭게 무소유에 대한 화두가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비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정작 실천으로 보여준 이들이 없었는데, 법정 스님이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실상 법정 스님보다 더 가난하게 사셨으며 보다 앞서 무소유를 실천한 스님은 성철 스님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저자에 따르면 성철 스님은 우리 곁에서 성인처럼 살다 갔다. 스님은 평생을 고무신과 수백 번 꿰맨 두루마기 한 벌로 살다 갔다. 스님은 일체의 물욕을 부정하고 참선 수행을 했고, 불교에 속하면서도 불교의 교리만 고집하지 않고 오히려 타 종교와의 대화에도 힘썼다. 자기만 옳다는 독선과 아집을 부정한 것이다. 이와 함께 현대의 물질 중심주의를 질타했다. 참된 삶은 오히려 가난을 벗 삼는 정신에 있는 것이지, 맛나고 빛난 옷을 입으며 으리으리한 저택에 사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다.

성철 스님이 남긴 수많은 말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성철 스님 자신이 몸소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스님은 자기 자신을 위해 절을 하지 말고 남을 위해 3,000배 절을 하라고 했다. 스님은 가난을 평생의 벗으로 삼아 이 세상의 빛이 된 것이다. 스님은 평소 자신을 찾지 말라 했고, 대통령이 찾아와도 만나지 않았다는 점은 앞서 언급한 대로다. 어찌 보면 사람들하고는 별 인연이 없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님이 입적하던 날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성철 스님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을 보여주었다. 평생을 무소유로 일관한 스님의 정신에 모든 사람들이 진심으로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 것이다.

 


 

무소유의 화두를 던지고 몸소 실천한 두 분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이 한 권의 책이 두 분 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널리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저자는 기대하고 있다. 여기, 고무신 한 켤레와 두루마기 한 벌이 놓여 있다. 이제 우리 차례이다. ‘무소유의 삶’ 말이다. 저자의 말이 무겁게, 그러나 진실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무소유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이로움을 준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법정 스님이 말씀하시길 행복의 조건은 우리의 주변에 늘 있다 하셨습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보게 된 작은 풀잎에도, 엄마 등에서 방긋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의 얼굴에도 우리의 행복이 깃들여져 있다고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언젠가 법정 스님이 미술관을 가시게 되었는데, 200여 호가 넘게 전시된 작품들 모두 거대하여 작은 소품을 만나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일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거대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을 느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법정 스님은 거대한 것에 뒤지지 않게 작은 것 또한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 큰 것만을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변에 무수히 널려 있는 소소한 행복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p.269)

 

저자 : 김세중

 

조선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KAIST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하였다. 광주MBC 퇴직 후 중국으로 건너가 협서중의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였다. 귀국하여 사단법인 한국평생교육 기구에서 연수부장과 한국청소년진흥원 이사를 거쳐 한국청소년신문 기획실장 및 총괄본부장을 역임하고 전남대, 관동대, 경기대, 국민대 등에 출강하기도 했다. 『독서와 논술』 『교양의 즐거움』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 『긍정의 삶』 『달라이 라마 지혜의 모든 것』 『지혜의 칼』 『무소유』 『고전 카페』 등 여러 권의 인문 서적 및 고전을 통한 자기 계발서 등을 기획하고 집필하였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