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YE 살겠다 - 난치성 눈 질환, 이젠 한방으로 치료해요
하미경 지음 / 마루그래픽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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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란 말은 예부터 속담으로 전해 내려온 말이다. 사람에게 눈이 중요한 이유를 굳이 의학을 동원해 표현하지 않아도 누구든지 다 아는 사실이다. 눈은 '보는' 역할을 하는, 인간 신체 중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 정보 인지 기능을 담당한다. '보다'라는 것은 단순히 사물의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보다'는 세계의 어떤 언어에서도 사용되지만 의미는 다중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저자 하미경은 '보다'에는 인간과 세계, 나아가 우주에 대한 이해가 깔렸다고 말한다. "우리 조만간 보자"라는 말에서처럼, 어떤 대상을 보는 것은 만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한 번도 보지(만나지) 않은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보다'라는 것은 '알다(이해하다, 깨닫다)'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초등학교만 다녀도 아는, 영어 문장 "I know"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쓰는 표현이지만, "I see"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쓴다.

한의사인 저자는 '본다'라는 것은 의료 행위와도 연관이 깊다고 말한다. 환자를 보고(만남),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문진), 환자의 몸 상태를 봄(진찰)으로써 그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눈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눈이 우리 몸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진단지표'라는 점이다. "眼爲臟腑之精(눈에는 오장육부의 정기가 드러난다)" 말을 소개한다. 이 말은 『동의보감』에 나온 말로서 "눈에는 오장육부의 정기가 드러난다"라는 뜻이라고 밝힌다. 예전 우리 한의학에서는 눈의 상태를 보고 의사가 환자의 신체 어느 부위가 아픈지 알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눈에 드러난다는 뜻이다. 『동의보감』에서 눈과 관련된 내용은 〈외형편〉의 「안문(眼門」에 속하는데, 위 인용구절은 「안문」 첫머리에 등장한다는 것. 즉 눈을 보면 오장은 물론 몸 전반의 건강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는 설명이라고 전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오장육부의 정기가 모두 눈으로 올라가 눈을 이루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각급 학교에서는 양의학을 기준으로 질병과 치료를 가르치고 배운다. 대학 이전에는 응급 상황에 대한 치료를 가르친다. 이때도 예전의 우리 한의학이 끼어들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 질병과 치료는 대부분 서양 의학을 기준으로 짜여 있다. 한의학을 공부하려면 한의과대학에 들어가서 배우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제약회사의 약들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양의학에서 사용하는 치료제를 개발 판매한다. 수입의약품 역시 모두 서양의학을 기준으로 한다. 그래도 다행히 사회에서 잘 알아주지도 않는 한의사를 꿈꾸는 사람은 많은 듯하다. 한의과대학과 한의학 관련 공부하는 학과가 대학에서 적지 않게 설치되어 있는 것 같다. 한의학은 서양의학과 치료 체계가 다르다.

우리 한의학(韓醫學)은 중국의 한의학(漢醫學)과 또 다르며 우리 한의학에서는 조선 중기 허준의 『동의보감』과 조선 후기 이제마가 창시한 의학이론인 〈四象醫學〉을 잇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같은 질환도 환자의 신체가 사상-태양(太陽)·태음(太陰)·소양(少陽)·소음(少陰)-으로 분류되어 체질에 따라 처방도 달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때는 한글보다는 한자를 사용했고, 책의 저자나 의사들도 모두 한자로 처방을 내리는 등 한자 전용으로 일반 국민들은 이해하지도 잘 알지도 못한 채 의사의 처분에 따른 때문에 일반 국민들과의 신분적 격차를 두고 있어 일반 국민들과는 유리될 수밖에 없었다. 대체로 중인들로 이루어진 한의사도 양반 계급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임금의 건강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어의(御醫)가 아니고서는 신분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조선시대에는 사회의 신분제도에 갇혀 일반 국민과 중인계급의 의사의 소통도, 또 의사들과 양반들의 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의학은 멀어진 것 아닌가 싶다.

 


 

이 책 『EYE 살겠다』는 한의학에서의 눈 질환과 치료에 중점을 둔 한의학 치료서다. 저자 하미경은 한의사로서 전작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요』의 출간 후 독자들로부터 치료에 큰 도움이 됐고 귀에 관한 질환에 대한 의학 상식을 꽤 높일 수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현직 한의사로서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바쁜 시간을 쪼개고 눈 질환 관련 한의학서를 펴내는 데 힘을 돋우워 준 독자들에게 감사도 전할 겸 책을 내게 되었다고 〈프롤로그〉를 통해 밝히고 있다. 전작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로서는 이 책이 눈 질환에 대한 한의학 치료라는 점을 알고 몹시 낯설었지만 옛날 우리 조상들도 눈 질환이 없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치료받았나도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었다. 사실 눈이 나빠지거나 안질환에 걸렸을 때 당연히 서양 의학의 '안과'를 찾았기에 말이다. 또 안과의 중요성은 한의학보다도 일찍 인식한 게 아닐까 생각도 든다. 안과를 따로 진료과목을 둔 것은 중요성이 인식됐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물론 일반 독자로서는 어떻게 안과 의사와 일반 다른 과 의사들이 구분되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사실 눈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눈의 기능 중 하나인 시력에만 신경을 쓰지 각종 안과 질환에 대해서는 막상 닥쳐야 겨우 안과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로 지금의 노년이 되어서야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 백내장, 녹내장 등이 안과의 주 치료 질환이었다.

이 책은 한의사가 썼지만 서양 의학에 대한 지식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으며 서양 의학이 언급될 때 가끔씩 설명하는 경우 서양 의학과 한의학의 다른 점을 매우 자세하고 상세하다. 독자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한의과대학에서도 서양 의학의 일부를 받아들인다고 하던데 서양 의학을 필요할 경우 공부하는 것 아닌가 싶다. 저자의 설명이 구체적이고 양의사가 지적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비교 분석할 때도 서양의학의 좋은 점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2장(章) 「눈 질환에 대한 한의학적 관점과 진단」 첫 항목에서 '서양의학은 눈 질환을 어떻게 다룰까?'를 살펴보면 서양의학에 대한 상식 이상의 지식을 배우고 연구한 것이 드러난다.

 

 

이 책은 독자가 안과 질환을 한의원에서 치료한다고 해서 치료법이 궁금했기 때문이지만 사실 호기심 측면이 강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의원에서 눈을 치료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기에 호기심이 먼저 발동한 것이다. 이 책은 독자의 호기심과 치료법이 궁금한 독자들이 많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책을 집필한 것으로 독자는 판단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내용뿐만 아니라 4장으로 이루어진 내용 전반에서 눈 치료에서 서양 의학과의 비교 분석을 시도하고 있고, 우수성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진단법도 다르고, 따라서 치료법도 다르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서양 의학은 진단명에 따라 치료가 시작된다. 서양의학이 '병명'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질병을 철저하게 해부학적 관점에서 대하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은 눈 질환을 어디까지나 '눈'만의 문제로 본다. 다른 장기나 조직과의 연계성을 접어두고, '눈'만 파고드는 것이다. 녹내장의 진단이 나오면, 즉각 안압을 낮추기 위한 조치들을 취한다. 이렇게 서양의학에서 내리는 처방은 당장의 증상들을 가라읹히는 데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안압이 높아졌다면, 혹은 높지 않은 안압에도 시신경이 손상됐다면 그런 사태를 야기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시신경이 약해서일수도 있고, 눈 속에서 어떤 균형이 깨짐으로써 안압의 상승이라는 결과가 나타났을 수도 있다. 혹은 신체의 특정 부위의 불균형으로 인해 눈까지 악영향이 미쳤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그에 대한 치료는 눈과 몸의 깨진 균형의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렇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그에 맞춰 치료를 하는 것은, 질병을 전인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가능한 것이다. 녹내장의 경우 최근 젊은 층을 비롯하여 많이 증가된 원인으로 근거리 작업 시간 증가, 만성 스트레스, 경추 부위 긴장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까지 고려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한의학이다. 위와 같은 경우는 임상적으로 대개 간기울결(肝氣鬱結)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에 눈 자체의 순환 장애에 초점을 두고 이런 정체된 상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행기(行氣) 행수(行水) 등과 같은 한의학적 방법으로 신체 전반을 보고 치료한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눈의 구조와 시력」, 2장 「눈 질환에 대한 한의학적 관점과 진단」, 3장 「눈 질환별 증상과 원인, 치료법과 사례」, 4장 〈‘빛과소리 하성한의원’의 구체적인 치료법〉 등이다. 특히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차이점은 물론 치료법도 다른 점을 각장에서 비교하며 각 의학의 장단점을 말하고 있지만 대체로 앞서 언급한 '해부학적 관점'과 '전인적 관찰'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2장 '한의학에서는 눈을 어떻게 보고 고칠까"에서는 눈 건강은 한의학에서 '간(肝)'과 '신(腎)'에 달려 있다고 본다. 여기서 '신'은 '콩팥'에 해당한다. 한의학에서 눈 질환은 전신질환의 일종으로 본다고 저자는 밝힌다. 오장육부의 정기와 모든 경락에 비토(脾土)를 거쳐 눈으로 올라가므로, 눈은 신체의 각 장부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본다. 눈은 오장육부 중에서도 특히 '간'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눈은 간의 구멍'이라고 했다. 간장의 건강상태가 눈에 바로 드러나며, 그 기능이 눈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간장이 기능이 활발한면 눈에 정기가 감돌아, 눈이 밝아지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 반대로 간장의 기능이 쇠약해지면, 눈이 침침해지고 눈빛이 흐려지고 어지럼증이 생긴다. 또한 한의학에서는 간과 신은 근원이 같은 장기로 본다. 즉, 간장의 기능과 신장의 기능은 서로 연결돼 있어서, 눈 건강을 살필 때는 간장의 기능은 물론 신장의 기능 또한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의학에서는 간장과 신장 그리고 심장에 생긴 '화(火)'로 말미암아 발생한다고 전하고 있다. 『동의보감』 〈외형편〉 「안문」에는 "眼病無寒(눈병에는 한증이 없다)", "眼無火不病(눈병은 화 없이 생긱지 않는다)"고 기술돼 있다. 오장육부에서 생겨 위로 올라간 화(火), 즉 열(熱)은 눈을 건조하게 만든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충혈(充血)이나 안구건조증을 유발한다. 심한 경우 안압이 상승해, 녹내장 등 심각한 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눈 질환이 허증(虛證)이라는 진단은 어떻게 나왔을까? 오장육부에 열이 나는 원인으로는 우선 풍열(風熱)과 스트레스가 있는데, 이 중 스트레스는 심장을 약화시키는 '심허(心虛)'를 유발한다. 또하 간의 혈 부족인 혈허(血虛)와, 신장의 기능 약화인 신허(腎虛) 또한 오장육부에 열을 일으킨다. 따라서 눈 질환은 열증이며, 또 그 열을 일으키는 것은 허증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것이다.

 


 

이 책은 3장에서 한의학에서 치료하는 눈 질환의 종류를 열거하고, 치료방법을 실었다. 이에 따르면 한의학에서도 눈 질환을 자세하게 분류에 치료함을 알 수 있다. 또 3장에서는 직접 치료 사례를 함께 게재함으로써 한의학의 눈 치료를 소개하고 저자가 한의사로서 연구하고 경험한 많은 환자들에게 치료를 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빛을 잃어가는 많은 환자들에게 빛을 주는 그야말로 밝은세상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에 독자돌서 의사들의 질환 치료 노력에 경탄하고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독자는 이 책을 추천하는 말 대신 하고 싶다. 양쪽 의학계의 협업이 잘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더 밝은 세상을 갖는 시대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 한의원에서의 치료를 통해 확인한 사실들을 가감없이 담고자 하였고, 난치성 눈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희망의 불꽃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네, 한의원에서는 눈도 진료합니다.”, “한방요법은 난치성 눈 질환의 완치에 훌륭하게 기여합니다.” 저자의 자신감 있는 답변은 눈 질환에 더 없이 크게 노출돼 있는 시대에 큰 진전을 예고하는 느낌이어서 기분까지 밝아진다.

눈은 서양 의학에서도 가장 공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정교하게 분화된 부위이다. 눈은 청진기로 진단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시력 측정에서부터 정밀기계, 즉 서양 과학기술의 산물이 동원되는 것은 서양의학의 진전이자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한방 의학은 오래 전부터 눈에 큰 관심을 갖고 치료법을 수천 년간 연구해 왔다. 현존하는 중국 최고(最古)의 의서 『황제내경』, 그리고 한의학의 교과서 격인 허준의 『동의보감』도 눈 건강의 이치와 눈 질환의 치료법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또 허준이 『동의보감』 집필 시 참고했으며, 일본 의사들이 일부러 조선에 와서 읽고 갔다는 『의방유취』에도 눈 질환 치료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남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히 누리는 권리이지만 눈 질환자에게는 빛을 되찾는, 간절히 원하는 치료가 눈 질환 치료다. 저자는 난치성 눈 질환을 연구하는 한 사람의 한의사로서 그 누군가에게 '제 2의 눈'이 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잠을 줄이고, 식사시간을 단축해서라도 귀와 함께 눈까지 난치질환을 한의학으로 극복해 내고자 연구와 치료를 겸하는 고된 노력하는 한 사람으로 보람을 찾는다고도 한다. 눈 질환 중에서도 저자가 특히 더 관심을 기울였던 부분은 어른들에서는 시력 상실을 예고한 녹내장과 망막 질환이고, 어린이들에서는 시력 저하를 유발하는 고도근시와 약시였다고 경험을 통해 알았다.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한방치료가 난치성 눈 질환 치료에도 매우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썼다는 사실은 이 시대의 명의로서 존경 받아 마땅하다.

 

"모든 것은 저절로 나빠질 수는 있어도 저절로 좋아지는 법은 없습니다. (···) 전인적인 한방 치료로 되찾은 눈 건강도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다시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 빛을 되찾은 많은 환자들의 입에서 안도와 감탄의 느낌표를 받았습니다. 그 느낌표는 이 일을 계속할 힘으로 작용했습니다. (···) 이제는 느낌표는 마침표로 바꿀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p.269~270)

 

저자 : 하미경

 

빛과소리 하성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학 박사, 경희대학교 前 외래교수. SBS 좋은 아침 [녹내장], KBS 생생정보 [황반변성], 채널A 김현욱의 굿모닝 [황반변성], TV조선 특집 다큐 [눈의 비밀 황반병성], MBC 생방송 좋은 아침 [눈건강, 녹내장]. 난치성 눈, 귀 질환 소아시력 치료 시스템 한방부분 ISO인증, 눈 건강 개선 한약 조성물 및 이를 이용한 제재 특허등록(제10-1652507), 시력 개선 약침 특허(제10-1728946), 눈 건강 개선 약침 엑기스 및 제조법 미국 국제 특허 출원(15/178907). 저서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요』, 『난치성 눈 질환 한방으로 치료한다』, 『한국의 명의 40』(공저), 『한방 베스트 닥터』(공저), 『안경이 싫어하는 깜둘 빡』 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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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세계사를 바꾼 전쟁의 신 지도로 읽는다
김정준 지음 / 이다미디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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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는 말은 누구의 말인지 모르지만 독자는 인용하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인류는 역사 이전부터 전쟁을 벌여왔고, 유사 이래 크고 작은 전쟁이 지구 상에서 그친 날이 없다는 것이 이유다. 사실 그들의 주장대로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지금도 지구상 어디선가는 전쟁을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전쟁이란 인류 삶의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사람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대한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전쟁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은 누구와 경쟁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생존을 위해서는 다르다. 이 경우 생존을 위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때문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인간 삶의 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전쟁은 나라와 나라간의 갈등을 해소되지 않을 때 벌어지는 것으로 우리는 배웠고, 그런 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왜 전쟁을 하고 있는가? "생존을 위해서"일까? 이념 때문인가? 러-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2년이 다 돼 가는데 왜 전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그들은 왜 지금 전쟁 중인가?

이 질문은 궁금해서가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를 자세하게 분석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다. 양국은 인접국끼리 그렇듯 예부터 서로 다툼이 있어 왔다고 한다. 과거에는 식량 문제이거나 지배욕에 의해 분쟁이 났다면 지금은 이념과 정치 사상 문제로 벌어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간 냉전이 끝나면서 많은 나라들이 민주주의-자본주의와 공산주의-사회주의로 갈라졌다. 이념이 세계를 양분한 것이다. 이른바 '냉전'의 시대다. 그것도 공산주의 체제의 종주국인 구 소련의 붕괴로 적잖은 나라들이 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를 선언하고 서방 측에 가담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이다. 부와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던 것이란 명분을 앞세웠다. 이에 일부 구 소련 체제의 나라들은 그대로 공산주의-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며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맺고 있다. 부와 자유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고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문제이다. 우크라이나도 새 대통령(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이 몇 년 전 당선되면서 서방의 나토 가입을 서둘렀다.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기를 소망했다.

 


 

지배 당사국이었던 러시아는 당연히 반대하지만 이제 과거 구 소련 체제처럼 일방적 지시는 통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그것을 원한다면 그렇게 가는 것이 대통령으로서는 당연히 따라야 할 의무이다. 우크라이나는 비옥하고 넓은 땅으로 곡창지대로 유명했다고 한다. 힘을 잃은 러시아에서도 이를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해서라도' 저지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유럽의 여러 나라와 세계의 패권국이 우크라이나의 선택을 지지하는 이상 전쟁이 불가피한 형국으로 사태는 진전됐다. 결국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는 등 전면 침공을 감행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전쟁의 국면은 교착 상태로 빠진 채 간헐적인 침략과 설욕 공습 등이 이어지고 있다. 마땅한 해결책도 없어 보인다.

러시아로서도 물러갈 수 있는 명분도 없고 현 대통령인 푸틴의 지배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태다. 권력욕이 강한 푸틴의 양보를 받기도 어렵다. 와중에 곡물가는 뛰고 에너지 값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 전쟁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의 생존을 위한 것처럼 보이자만 욕망의 갈등도 포함돼 있다고 분석하는 사람이 있다. 원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종전은 힘들어진다. 인간의 소유욕과 지배욕 등은 생물체로서 가진 욕망 이상의 욕망이다. '생존과 자유'의 문제로 생각했던 것이 파고들어가면 욕망의 문제였다. 공산주의 체제는 국가의 철저한 통제와 억압으로 유지된다. 권력자들의 이념과 사상이 다르고, 이질적인 문화가 교류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인류 문명이 발달하지만 전쟁도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이 책 『지도로 읽는다 세계사를 바꾼 전쟁의 신』이 쓰여진 취지와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책 한 권이면 세계 역사는 물론 역사를 바꾼 위인들의 업적과 전쟁의 명분, 세계 역사에 미친 영향 등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자의 상상력도 가미했다. 역사적 상상력이란 결과에 이르는 동안 두드러지게 기록을 남기지 않은 부분에 대한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말하기 때문에 문학적 상상력과는 조금은 다르겠지만 스토리에 윤활유 역할을 할 만큼 기분 좋은 문학적 소재이다.

 

 

저자 김정준은 인류의 역사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교역의 역사였고,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전쟁의 역사였다고 이 책에서 주장한다. 인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쟁이라는 최후의 수단에 의지하기 때문에 인간과 전쟁은 역사의 영원한 테마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표제어로 '전쟁사'로 쓰지 않고 '전쟁의 신'이라 이름 지은 것도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주역은 인간(장군)들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시작하는 글〉에서 밝힌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거나,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하는 제국을 창업해 역사의 주역으로 남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즉 전쟁을 일으킨 데는 명분이 있고, 그 명분의 주축에 있는 인물들이 세계사 주역들이다. 세계사의 변곡점에서 인구에 회자하는 전쟁과 전투를 통해 극적인 명승부를 펼쳤다. 이로써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주인공들이 인류 역사를 전쟁으로 이끈 주역들이라고 말한다. '주역', '전쟁의 신'이라고 기술하는 것은 아마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전투를 수반하게 된다. 역사적인 전투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명장들이 수만 또는 수십만 명의 군사를 동원해 개인과 국가의 명운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이 책에 소개하는 전쟁과 전투는 역사의 물줄기를 가르고, 한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결전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23명이다. 유사 이래 큰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시대를 뛰어넘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른바 '전쟁의 신'이다.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세계사를 배우거나 역사에 관한 책을 읽을 때 한 번씩은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이고, 조금 더 관심 있는 독자라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잘 알 만한 인물들이다.

 


 

알렉산더, 카이사르, 나폴레옹 등 서양 역사의 주역이고 칭기스칸, 광개토대왕, 오다 노부나가 등 머리에 각인들의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집필의 취지에 따라 인물의 이름을 앞세우고 그들의 업적을 부제로 사용해 찾아보기도 쉽게 구성했다. 책은 3장(章)으로 이뤄져 시대별로 구분했으며 동서양의 구분을 따로 두지 않았다. 인물들이 남긴 업적에는 크고 작음을 비교할 필요가 없는 탓이리라.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거나 개혁한 전쟁의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가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역사의 변곡점을 만드는 명장과 명전투에 주목한 것은 드라마가 있는 전쟁사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쟁은 대개 일어난 곳에서 다시 일어나는 법이다. 지도를 통해서 역사를 공부하면 지정학적 맥락에서 세계사를 보는 시각을 기를 수가 있다. 지리, 인물, 사건을 변화무쌍한 시대 상황에 따라 해석해내는 힘이 바로 역사적 통찰력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돋보이는 점은 전쟁 중심의 재미있는 역사책을 만들기 위해 입체적인 시각 자료를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역사의 대전환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컬러 지도와 도해, 도판을 풍부하게 제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처럼 시공을 염두에 두고 전쟁사를 읽으면 훨씬 재밌고 이해도 빠르다. 이로써 저자는 독자에게 읽는 역사가 아니라 '보는 역사'를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다. 왕조와 국가를 창업하는 제왕과 황제의 활약상은 당시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삼아 각각의 전투와 연결해 지도 위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면 당연히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장기기억장치에 저장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인간의 두뇌의 기억법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덧붙여 각 진영의 명장들이 펼치는 전략과 전술, 신형무기의 등장에 따른 전투 스타일의 변천 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 복잡다단한 전투 장면에 나오는 전술과 전투 대형의 특징을 단계별 도해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장군, 제왕, 황제 등 개인과 국가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한 전쟁 영웅들의 서사는 언제나 드라마틱하다. 역사 기술은 그들을 중심으로 기록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특히 우리가 흔히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반전의 주인공은 늘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 서술 상 이를 기전체(紀傳體)라고 하는데, 인물의 연대기라고 볼 수 있는 인물 중심의 역사서술방식이다. 군주의 업적을 다룬 기(紀)와 여러 분야에서 유명했던 인물의 전기인 전(傳)을 담고 있어서 기전체라 일컫는다고 학교 다닐 때 배운 바 있다. 군주(왕) 중심적이기에 정사(正史)의 경우 반드시 기전체로 편찬해야 했고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왕조실록〉과 〈삼국사기〉가 대표적이다. 그들이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는 전쟁터를 일생의 무대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세계사의 주역인 영웅의 일대기와 그들이 치른 역사적인 전투를 중심으로 서술해 드라마가 있는 전쟁사라 할 만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흥미로운 것은 세계사의 뼈대를 이루는 명장과 명전투를 통해 역사의 드라마틱한 현장을 직관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유럽 지중해 주변과 중국 황하 중원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부족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제국으로 발전해왔다. 유럽에서는 B.C. 6세기경 오리엔트 지역에서 먼저 지역적 통합이 이루어지고, 비로소 B.C. 1세기에 로마 제국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B.C. 8세기경부터 시작한 550년간의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B.C. 221년에 진 제국이 천하를 통일했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이 가운데 이 책의 가장 먼저 나오는 인물은 오리엔트 세계에서 키루스 2세가 페르시아 제국을 통일한 부분이다. 이 이야기는 묘하게도 페르시아 역사가가 아닌 그리스 역사가가 기록으로 남겼다. 뒤이어 알렉산더 대왕이 유럽과 오리엔트, 그리고 아프리카 일부를 연결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때 페르시아의 수도는 물론 모든 유적과 유물을 불태워 버렸기 때문에 자신들의 역사가 남지 않았다고 한다.

 


 

유럽 중심의 역사 기술은 로마로부터 시작된다. 세 차례의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의 한니발 부자를 패퇴시킨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했다. 이후 갈리아(프랑스) 지역을 정복한 카이사르가 닦은 제정의 길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완성되었다. 로마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우리나라 사람도 로마 제국의 번영 이유와 이후 서양 대부분의 국가가 로마 문화권으로 예속되었고, 그들은 그렇게 로마 제국에 흡수되었다.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엔 서로가 로마의 후예들이라고 자처하고 나선 점을 볼 때 로마의 통치가 잘 이뤄진 것일까? 궁금하긴 하지만 로마가 유럽 대륙의 진정한 지배자란 사실을 인정하는 듯하다. 로마는 사실 그리스 문명을 따라 했다. 자신들이 무력으로 차지한 제국의 영토 안에서는 철저히 로마식으로 변형시켰다. 그러나 원형은 모두 그리스 문명이다. 다만 군사적·정치적 의미만 조금 변형됐다. 제국 건설 당시 로마는 그리스인은 노예라도 최상급으로 두고, 지식이나 여러 기술을 그들로부터 배웠다고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 자녀 교육을 모두 그리스인이었다고도 말하고 있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이 책에 로마 제국의 인물은 두 사람(스키피오, 카이사르)만 다루고 있지만 위인이 없어서이기보다는 연대나 지역의 배분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생각된다. 특히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과 정적을 물리치고 독재자 황제로 군림한 것이 서양인들의 눈으로도 역사적으로 나쁘지 않은 일이라는 인식이 깊게 배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궁금한 독자들은 이 책의 행간을 읽어보면 해답을 얻으리라고 생각된다. 저자 김정준의 노련한 글쓰기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만큼 로마 제국은 서양인들에게 '강한 나라'의 원형을 보여준 것이란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등 우리가 자주 듣고 쓰기도 하는 말이 모두 로마 제국의 인상을 심어주기에 적절한 표현으로 기록됐기에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진 것으로 짐작한다.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세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 23명 중 독자에게 조금은 낯선 인물도 한두 명 등장한다. '아틸라'와 '하인츠 구데리안'이다. 전자는 훈족을 이끈 '신의 채찍'으로 불리운 장군으로 유럽과 로마를 짓밟은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로마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나라나 인물이 없던 시대 그가 보인 전공은 눈부시지만 계승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사의 한 귀퉁이에서 조용히 숨만 쉬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한 사람의 비운의 장군은 2차 세계대전의 독일군 전차부대의 신화를 만들어낸 주역이다. 독자도 이 사람의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차부대를 이끌었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사실 독자는 '독일 전차군단'의 신화는 롬멜의 뛰어난 전공 때문으로 알고 있었다. '사막의 여우'로 불리며, 아프리카 격전지에서 연합군을 궤멸시킬 정도로 강력한 독일 전차군단의 위용을 보여주었던 장군 아닌가.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전차의 강력한 힘을 믿고 전차부대를 창설한 이도 구데리안이고 히틀러의 총애를 받은 사람도 구데리안 장군이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기갑전의 선구자'라고 소개한다. 사단급 기갑부대로 프랑스로 연합군을 보냈던 영국군이 덩케르크를 통해 철수해야 했고, 소련 침공 당시 모스크바까지 함락할 기세를 올렸지만 추운 날씨를 걱정해 전차부대의 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작전을 오래 끌 수 있는 곳을 피하고 쉽게 밀고 올라갈 길을 택한 작전을 제시했지만 히틀러의 주장대로 했다가 실패를 한 것이 결국은 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바꿔놓은 것이란 사실도 이 책에 적혀 있다. 지금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수도 카이우를 고집한 히틀러의 속내가 무엇인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소련 침공 실패는 결국 독일 패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저자 : 김정준

 

중·고교 학창 시절부터 학과 공부보다는 역사 공부에 더 진심이었다. 다양한 역사책을 읽기 위해 익힌 외국어 덕분에 세계사의 넓고 깊은 바다를 마음껏 항해할 수 있었다. 세계사를 연구하는 동안 이질적인 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인류 문명이 발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류의 역사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교역의 역사였고,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전쟁의 역사였다.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역사의 변곡점을 만드는 명장과 명전투에 주목한 것은 드라마가 있는 전쟁사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전투 장면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전술과 병기까지 상세하게 도해로 설명해 놓았다.

전쟁은 대개 일어난 곳에서 다시 일어나는 법이다. 지도를 통해서 역사를 공부하면 지정학적 맥락에서 세계사를 보는 시각을 기를 수 있다. 지리, 인물, 사건을 변화무쌍한 시대 상황에 따라 해석해내는 힘이 바로 역사적 통찰력이다. 오랜 세월 세계사의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 겪었던 숱한 경험들이 《지도로 읽는다 세계사를 바꾼 전쟁의 신》이란 책으로 묶여 나왔다. 다시 닻과 돛을 올린 채 만선의 꿈을 안고 먼바다로 나설 것이다. 새 기항지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늘 가슴설레는 일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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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격차의 해소 격차의 해소 시리즈 2
알렉스 퀴글리 지음, 김진희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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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이 책 『어휘 격차의 해소』를 선택한 이유는 표제어가 지칭하는 '어휘력' 때문이다. 독자가 최근 이 책 저 책을 읽으며 '어휘력 부족'을 느꼈다. 요즘 한참 대두되는 문해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휘력 부족 탓인가 해서다. 이 책의 표제어처럼 '어휘 격차'를 줄이거나, 독자 자신의 어휘력을 늘리기 위한 방법이 책에 담겨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저자 알렉스 퀴글리는 15년 이상의 영어 교사와 학교장의 경력을 갖고, 지금은 EEF(Education Endowment Foundation)에서 교사들의 연구 자료 이용을 지원하고 있다. 저자의 책에 추천을 하는 분들의 면면과 추천사를 보더라도 오랫동안 영어를 연구하고 영향력 있는 귿을 많이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제프 바톤 영국 학교 및 대학 지도자 협회 사무총장은 추천사를 통해 "수년 동안 문해력에 전념하면서 문해력 발달에 단어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하고, 우리는 어휘를 통해 세상을 읽어내고, 자신을 더욱 명확하게 표현하며, 자신감·통찰력·직관력을 갖게 된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힌다. 이 책은 빈부 격차의 해소와 사회적 이동성 문제의 해결은 단어가 관건이 될 것이란 점을 깨달았다며 이 책의 탁월한 제안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또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케이트 네이션 실험 심리학 교수는 "알렉스 퀴글리는 교실 관찰 사례와 학문적 연구 성과를 전문적으로 엮어내어 단어 빈곤 문제를 왜 해결해야 하는지, 이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해 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한국어임을 감안해 역자 김진희가 〈역자 서문〉을 썼다. 역자에 따르면 삶이라는 긴 여정에서 경험하는 모든 순간들은 저마다의 감정과 사유를 동반한다. 언어로 담는 감정과 사유는 경험하는 순간 그것에 적확한 단어로 나타내지 못하면 간직하지 못하고 이내 소멸되고 만다. (···) 어떤 사람의 말과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치다. 한국인인 독자는 역자 서문에서 독자가 목적하는 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온갖 이미지와 영상이 범람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역자는 전제한다. 이로 인해 읽고 쓰는 양은 많아졌고 정보의 편의성과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역설적이게도 깊이 있게 사유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감정을 찾는 일에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고 역자는 지적한다. 최근 언론에서 청소년이 '심심한 사과'. '사흘' 등의 단어를 모르는 심각성에 대해 수차례 보도한 사실을 적시하고,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일찍이 학생의 어휘력 저하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는 반응이라는 말을 꺼낸다. 교과서의 등장하는 어휘의 상당수를 이해하지 못하여 교과서를 읽지 못하고 학업 실패를 겪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안타까운 교실 모습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어휘력 저하 문제는 더 이상 촌극으로 넘길 수 없는 사태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학생의 어휘력 부족은 학생들의 기초 학력 부진과 직결되며, 유감스럽게도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학생의 어휘력 문제를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서는 안 되며, 이제 교육적인 개입과 노력을 보여야 할 때라고 역자는 판단하고 있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했다. 이 책이 저자 알렉스 퀴글리가 교실 속 문해력 격차에 대한 문제 의식 속에 펴낸 것이라고 밝히는 이유가 되는 명언이다. 독자가 어휘력 부족을 느낀 점과 이 책이 집필된 이유가 다시 한 번 확인되는 순간이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어휘 격차의 해소: 문제점과 해결책」, 2장 「교사라면 누구나 읽기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 3장 「단어란 과연 무엇인가? 당신의 뿌리를 아는 것이다」, 4장 「학술 어휘란 무엇인가?」, 5장 「어휘력과 ‘학문 문해력’의 개발」, 6장 「맞춤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7장 「어휘 격차의 해소를 위한 실천 전략」, 8장 '어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총체적 학교 전략'인 「다음 단계」 등이다. 이어 〈부록〉으로 「라틴어 차용어 또는 라틴어 공통 어근이 있는 영어 단어 목록」, 「인체, 사람, 집단과 관련된 라틴어 어근」,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영어 단어 100개」, 「에이브릴 콕스헤드(Avril Coxhead)의 ‘학술 단어 목록’ 총 570개」를 덧붙였다.

 


 

저자는 "당신은 얼마나 많은 단어를 알고 있는가?"란 단어로 책의 첫 문장을 시작한다. 저으기 당황스럽다. 책을 몇 권 읽었느냐?란 질문을 받았을 때와 비슷한 당혹감이 든다. 한 번도 헤아려본 적도 없고 헤아려보려 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은 언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사고를 확장하며 서로 소통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어휘는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빈곤층일수록 어휘 지식의 결핍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있었다고 말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풍부한 단어는 삶의 지위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모든 아이들이 어휘력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의 성패를 결정짓는 학생 간 어휘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해 왔다. 이 책은 그 탐구의 결실로서, 교실 속 학생들이 겪는 어휘 격차 문제를 조명하여 학교 교육과정에 꼭 필요한 실질적 조언을 제공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의 첫 질문에 당황했지만 저자의 말을 듣고 나니 문득 사전의 단어 수가 몇 개나 들어 있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일일이 세어서 확인할 수 없으니 우연히 읽은 책에서 그 단초를 발견할 때가 생각난다. 우리말 사용과 한자어 사용 등에 관한 책이었다. 그 책에서 우리말사전에 등재된 단어가 40만 개쯤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가운데 약 "70%에 가까운 단어가 한자어이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어떤 사전이냐에 따라 어휘 수가 결정되겠지만 우리말사전이란 표현으로 봐서 '대사전'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 알렉스 퀴글리는 영어 사전에 등재된 단어 수를 밝힌다. 100만 개를 넘는다는 것이다. 옥스포드 대사전 기준인지는 저자가 밝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단어는 문명이 발전될수록, 사용연도가 길어질수록 많아진다는 점에 비춰볼 때 가능한 수치라는 느낌이 든다. 단어의 총 개수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수와 우리가 아는,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의 수가 아닐까? 독자의 생각에 답하듯이 저자 역시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이 책을 읽는 독자(교사 정도를 말하는 것으로, 일반인을 포함한 숫자로 독자는 파악함)가 보유한 평균적인 어휘가 대략 5만에서 6만 개의 단어라면 놀라울 것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특히 일상에서 사용하는 어휘 능력은 학업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교실 안에는 ‘단어 빈곤’ 학생과 ‘단어 부자’ 학생이 공존한다고 밝힌다. 이 책은 1장 「어휘 격차의 해소: 문제점과 해결책」에서 어휘 격차를 지닌 학생들의 어휘 개발을 위해 노력한 교사의 실천 사례를 제시하는 것을 넘어 모든 교사에게 유용한 학습 도구, 교육용 자원, 교실 활동 등을 총망라하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주제를 단계적으로 확장하며 어휘 교육 전문가가 갖추어야 할 지식들을 전하고 있다. 단어의 어원, 용법, 역사, 맞춤법 등에 대한 이론을 소개한 뒤 실천 전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모색한다.

대부분의 어휘 학습이 학교 밖에서 우연히 그리고 은연중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한다. 어휘력은 무의식적이고 잠재적으로 발달 능력이라는 점에서 아동의 신체적 발달과 닮아 있다고 저자는 밝힌다. 교사는 아동의 어휘력 발달을 위한 노력에 가치를 두는 것만으로도 교실에 존재하는 어휘 격차를 해소하는 첫 걸음을 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E. D. 허쉬의 『단어 부자』에도 잘 나타나 있다고 인용한다. "어휘량은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능력뿐만 아니라 과학·역사·예술 등의 일반 지식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교육적 성과 및 역량을 보여주는 간편한 척도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1970년부터 30년 동안 꾸준하게 진행한 '영국의 한 코호트 연구'에서 다양한 사회 집단에 속한 5세 아동 수천 명의 어휘 능력을 비교 분석한 내용을 설명해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제한적인 어휘력 수준의 5세 아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독해 부진이 될 가능성이 더욱 높고, 실직자가 될 확률 또한 높으며 심지어는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까지 겪을 것으로 예측하였다.(p.26)

 


 

2장 「교사라면 누구나 읽기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에서는 '효과적인 읽기 교육을 위한 5대 요소'에 대해 말하고 있다. 2000년 미국에서 독서 전문가 위원회가 효과적인 읽기 교육을 위해 가용 자료를 통해 고안한 것이다. 이 고안은 오늘날까지 많은 나라에서 강력하고 유익한 교육용 모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① 음소 인식 ② 파닉스 ③ 유창성 ④ 어휘 ⑤ 이해 등이다. 설명에 따르면 음소 인식은 말소리를 '알파벳 원리'로 번역하여 특정한 소리(음소)를 문자(자소)에 대응시키는 능력으로 읽기의 기반이 된다. 파닉스는 다양한 소리와 문자의 관계와 까다로운 변형을 통해 소리와 문자가 서로 어떻게 대응되는지 인식하도록 가르치는 언어지도법이다. 파닉스를 먼저 가르치는 것이 조기 읽기 능력을 개발하는 데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음으로 유창성이다. 아이들은 단어와 의미 사이의 '빠른 연결'이 가능하다고 한다. 즉, 짧은 순간에 단어를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개 학교에서 접하는 난해한 학술 어휘를 짧은 시간에 인지하려면 수많은 반복적인 노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어휘에 대한 설명도 있다. 읽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해력, 즉 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일부 아이들은 능숙하게 해독하지만 특수한 어휘 지식이 부족하고 글의 배경지식에 있어 상당한 공백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례로 아동은 'cracking(균열)'이라는 단어를 해독하고 일반적인 용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화학에서의 'cracking(분해)'이라는 단어는 매우 특수한 의미(큰 탄화수소가 작은 탄화수소로 분해되는 과정과 관련이 있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면 심층적인 어휘 지식이 더 필요하다. 이 책을 읽는 숙련된 독자들-비과학자-도 이 정도의 깊이 있는 단어 지식은 모를 수도 있다. 이에 '명시적인 지도법'으로 난해한 학술 어휘를 배우면 그 어휘의 복잡한 의미를 처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글 이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어휘 지식은 뛰어난 독해력의 핵심이며 동시에 이해력은 어휘 개발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읽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글의 이해라는 것이다. 글의 이해를 위해서는 또 하나, 어순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장에서 독자의 눈을 가장 끌었던 부분은 '유능한 독자는 어떻게 읽는가?'이다. 저자는 읽기는 매우 복잡한 행위이므로 잘못된 방향으로 빠질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만일 '5대 요소' 중 하나라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아이는 자신이 읽는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역동적인 교실 안에서는 단어 지식과 배경지식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으며, 그 격차는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어휘가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유능한 독자의 습관적 행위부터 알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한다. 독자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이야기여서 여기에 적는다.(번호는 독자가 임의로 붙였음)

① 단어를 유창하게 해독하고, 의미를 신속하게 대응시키며, 배경지식과 연결한다.

② 폭넓고 깊은 어휘 지식을 가지고 있다.

③ 글 이해하기 위해 방대한 배경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④ 빠르고 정확하며 적절한 표현으로 읽는다.

⑤ 더 많은 노력과 끈기를 갖고 오래도록 읽는다.

⑥ 책을 많이 읽고 어휘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단어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더 많은 배경지식을 얻는다.

⑦ 글 구조에 대한 견고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제목처럼 글 구조를 드러내는 특징을 찾아 지식을 기억하기 쉽게 도식화하여 정리한다.

⑧ 예측이나 요약과 같은 이해 전략을 자동으로 활용한다.

⑨ 끊임없이 자신의 이해 과정을 점검하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한다.

 

저자 : 알렉스 퀴글리(Alex Quigley)

1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전직 영어 교사이자 학교장으로, 현재는 EEF(Education Endowment Foundation, 교육기금협회)에서 교사들의 연구 자료 이용을 지원하고 있다. 트위터(@HuntingEnglish)와 블로그(www.theconfidentteacher.com)에서 정기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어휘 격차의 해소(Closing the Vocabulary Gap)』, 『자신감 있는 교사(The Confident Teacher)』 등이 있다.

 

역자 : 김진희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졸업(교육학 박사).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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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런 하루가 있을 수도 있는 거지
이정영 지음 / 북스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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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그냥 그런 하루가 있을 수도 있는 거지』는 저자 이정영의 첫 번째 에세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설픔보다는 원숙하고 농익은 감성이 돋보인다. 첫 번째 책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 표현과 스토리텔링을 입혀 주제를 이끌어내는 솜씨가 탁월한다. 저자는 책을 처음 펴냈지만 이미 인스타에서는 검증된 작가라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처럼 '계절'에 집중해 왔다. 우리 삶이 이어지듯 계절은 순환한다. 우리 삶과 계절이 불가분의 관계인 것처럼 우주의 섭리로서 생각한다면 한 가지다. 이 에세이 속의 모든 이야기는 ‘계절’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이어진다. 책 한 권을 '계절'로 채우기는 벅찰 것 같은데 저자는 아무렇지 않게 써냈다. 그것도 글쓰기에 대한 꾸준함과 탁월한 솜씨는 삶과 계절처럼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한 가지다. 문학과 감성이 그렇듯이. 요즘 문학, 특히 소설에서는 판타지나 SF가 대세라고 한다. 큰 서점 베스트셀러 진열대에는 늘 판타지 소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학의 세계적 흐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독자는 중년을 넘어선 나이에 SF시대가 반갑지만은 않다. 아직 아날로그 감성에 훨씬 매력을 느끼고, 여유와 그리움이 묻어 있는 글을 좋아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독자의 취향을 한껏 맞춰 높여준다. 저자는 「그리움이 소생하는 계절」이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자신의 성격을 밝힌다. "사람의 성격은 자신이 태어났을 시기의 계절과 닮았다는 말이 있다. (···) 포근한 기류 속에서 소생이라는 단어와 함께 세상에 기를 펴는 데 한창인 4월. 따스한 봄의 성정을 물려받은 나"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생명은 우리가 살아온 삶이 기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나는 그것을 다른 언어로 그리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움은 마치 기억 속에 잔존하는 대상을 여전히 살아 숨 쉴 수 있게 해주고, 내 마음속 한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과도 같게끔 느껴진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외향적 스타일의 사람은 아닌 듯하다. 앞서서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것도 별로 재미가 없고, 어떤 일을 앞장서서 좌중을 리드하는 것도 본래의 성격에 없는 듯하다. 그렇게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대개 그렇듯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몰입하거나 집중하는 데는 대단한 열정을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성격 유형의 판단을 해보지 않아도 저자가 어떤 사람일 것이다라는 추측은 쉽다. 그의 글에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성격을 나타내는 단어나 문장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솔직한 표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은유나 강렬한 대조보다는 서서히 시간을 두고 모습을 드러내고, 오랜 시간 들여 갈고 다듬는 자연을 닮아서일까? 누군가 저자에게 흙 내음이 베인 토마토의 겉껍질 같은 향이 난다고 말한 적이 있나 보다. 누구나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고, 누구나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에 대한 비유는 분명 칭찬하는 말일 듯하다. 듣는 이로 부끄러웠다고 하니까. 그 지인이 "옛정이 떠오르는 따스함"이라고 했단다. 그 말을 전하면서 정답게 지내던 한때의 보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난다고 저자는 적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상한 게 아니고 그리운 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사실 이 에세이를 읽다 보면 저자는 "여유를 잃어가는 세상 속에서도 타인을 향해 시선을 돌리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완벽히 이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이타적이기를 늘 노력하지만), 따뜻함을 지향하며 그가 지닌 온기를 전하려고 노력한다. 이 때문에 성격과 계절이 닮았다고 하는 말에 설득력을 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인스타그램에서 계절을 향한 자신의 시선과 진솔한 감정을 기록해 오면서 인기를 한몸에 받은 것 같다. 독자로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작가라서 그의 인스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이 에세이에 쓰인 그의 글이 인스타에서도 쓰인 소재나 주제가 거의 같을 것이란 생각에서 감히 그의 인스타 팬들은 계절의 감성과 그리움의 향수를 좋아하는 팬들일 것이라고 독자는 추측한다.

 


 

이 책은 저자가 좋아하는 '계절'에 따라 나뉘어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우리가 말하는 순서는 의미가 없다. 순환하는 것이니 먼저나 나중이 없이 일정한 주기를 갖고 영원히 순환한다. 그 중의 우리 삶 속에서 변화를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사계절'이다. 어떤 계절이 맨 먼저 나오느냐는 따질 필요도 없다. 책이니까 맨 처음 나오는 장(章)이 있고 마지막에 나오는 장이 있을 뿐이다. 할 수 없이 '첫 번째 계절', '두 번째 계절' 식으로 나누었을 뿐이다. 첫 번째 계절에 나오는 「마른 잎에 마음을 담은 하루」란 제목을 보고서야 가을이라는 계절을 짐작한다. '마른 잎' 때문이다. 이때의 마른 잎은 '가을'의 은유가 될 수 있다. 사실 마른 잎은 그 자체의 뉘앙스가 낙엽이 되고, 겨울에 접어드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글 「망원동」은 서울의 한 동네 이름이다. 아마 저자가 사는 동네일 듯하다. 그 마을에 이모와 함께 산다. 김장 김치와 감자탕을 나눠 주시던 ‘망원동’ 이모님, 그걸 받기만 하자니 머쓱하여 고등어 몇 마리와 함께 귀가하던 지난 겨울날. 이 에세이 첫 번째 글은 "2021년 10월 17일. 달력에 '이사하는 날'이라고 적혀 있다. 생각해 보니 망원동으로 이사를 온 지도 일 년이 훌쩍 지났다. 낡고 오래된 건물, 그 옥상 한가운데 놓인 작은 옥탑방." 무심한 듯 적어내려 가며 독자들에게 집의 현황과 저자의 현재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어나는 사건도 없다. 그저 이모의 도움으로 따뜻한 음식을 가져다 주고 김장을 담그면 김치 몇 포기 건네 주기도 하는 소소한 생활의 정이 담긴 이야기다. 감사에 보답하려고 고등어 몇 마리 사서 드리니 옛날 이모들이 그렇듯 "다음부터 이런 거 사들고 오지 말라"며 등짝 몇 대 때린다.

이처럼 저자는 뭐든 지나간 시절들이 좋았다. 현재를 깊이 있게 보내며 어제의 순간들을 흐뭇하게 회상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느 날과 같이 오늘도 낡아 가는 정취가 가득한 이곳에서 소박한 온정을 베푸는 일을 선물처럼 여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풍족하진 못하더라도 풍부하게 채워진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다.

 


 

가을이면 누가 뭐래도 '낙엽'이 상징성을 띤다. 낙엽은 나뭇가지에 붙어 봄과 여름 내내 인간에게는 그림자를 드리워 시원함을 선물하고 나무에게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 할일을 다한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마지막 온힘을 다해 자신을 한껏 칭찬하듯 붉은색, 노란색 등 단풍으로 치장한다. 그것은 인간에게 가을에 받는 최고의 선물이다. 이때쯤이면 해가 저물면서 이른 추위가 찾아온다. 저자는 두꺼워져 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니 집에 혼자 있을 겨울이가 떠오른다. 저자는 잡다한 생각을 이만 집어넣기로 하고, 서둘러 집으로 되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퇴근 시간이라 승객들로 북적이는 이 작은 공간 한가운데서 손잡이 하나를 붙잡고 창밖을 바라본다. 하늘에 남아 있던 빛마저도 순식간에 사라져 간다. 도로 위해 즐비한 자동차들은 이리저리 움직이질 못하는데 가을 하늘을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내일을 맞이하려 한다. 고양이의 하루도 이런 느낌으로 흘러가려나. 녀석은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현관문을 열고 돌아가면 평소처럼 왜 이제 돌아왔냐는 잔소리를 건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겨울이는 고양이다.

누구에게나 일상이듯 차분한 분위기에 저자의 마음을 따라나서기 쉽다. 그렇게 따라나선 길에서 우리는 따듯한 햇살에 미소가 스르륵 번지기도 하고, 어떤 날의 공허한 공기에 헛헛함을 느끼기도 한다. 계절을 보내다 보면, 오늘의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분위기와 풍경을 두 눈에 담으려 노력하는 사람도 보이고, 지나간 계절을 향해 내뱉는 아쉬운 탄성도 이따금 들린다. 하나의 계절이 홀연히 모습을 감춰도 아쉬움을 덜어낼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이 계절이 끝없이 돌고 돌아 다시 우리 곁을 찾아온다는 사실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듯이 오늘의 만남과 작별이 있기에 내일의 기대와 함께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나간 하루에 대한 아쉬움 대신 지금의 이 계절의 움직임을 오롯이 담아 저마다의 계절이 전하는 고요하고도 덤덤한 위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오롯이 읽힌다.

 


 

덧붙여 '가랑눈'이 내리는 날 밤, 저자의 단상(斷想)을 하나 소개한다. 가지에서부터 멀어지며 흩날리던 그 작은 눈송이가 뺨에 닿자 곧바로 녹아 흘러내린다. 눈송이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계절의 끝과 시작이 공존한 터라 추위는 많이 사그라들었음을 느끼는 날 밤이다. 어쩌면 그때 바라본 눈이 이번 겨울의 마지막 눈일 수도 있겠지 싶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비중이 이전보단 많아졌다는 걸 체감한다.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 대던 날들 속의 고통스러운 감촉도 이제는 적당히 무뎌졌다. 겨울이 지나간다. 머지않아 꽃이 개화하겠고, 거리에는 봄의 생기를 잔뜩 머금은 새 생명이 피어오를 것 같다. 나는 또 어떤 새로운 마음을 품어 보게 될까. 겨울을 가장 아끼는 만큼 보내 주는 데에도 아쉬움이 크지만, 새롭게 할 일을 찾아 나서기 위해선 또 한 번의 계절을 맞이하는 게 옳은 거라 여기기로 했다.

나는 그래도 머물러 있기보다 나아가는 방식을 좋아해 왔다. 배움을 토대로 살아가는 삶은 늘 내게 원동이었으니, 앞으로도 언제든지 그러한 삶을 추구하고자 노력하려 한다. 항상 새해가 밝으면 친구들과 올해도 열심히 해 보자는 말을 해 오곤 했다. 아마 이번에도 그럴 거다. 모두가 한때와 같이 가까운 거리에서 지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언제라도 찾아가면 반갑게 맞이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유대가 돈독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얼마든지 내 할 일에 묵묵히 집중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새롭게 주어지는 사계를 또다시 용기 있게 관통해 나갈 것이다."

누군가 내게 무엇에서 위로를 얻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람에게서 얻는다고 대답하려 한다. 사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절대로 혼자서 살아가지 못하지만, 그 생각이 앞으로도 변함없으면 좋겠다. 생을 다할 때까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p.115~116)

 


 

저자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에 대해 먼저 나서서 이끌고 해내기보다는, 그 이면에서 티 나지 않게 활약하는 걸 선호했다고 봄의 길목에서 다시 한 번 고백한다. 큰일을 하거나 주목을 받는 데에는 여전히 관심이 없다는 말도 한다. 대신 작을 일들에 초첨을 두고 고요함 등에 귀를 기울이는 건 한결같이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름 없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하던 것. 그것은 저자가 유년부터 지금까지 키위 혼 다정한 꿈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마니또'를 좋아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누군가의 주변을 알 듯 말 듯 맴돌며 언제나 지켜보고 도울 수 있다는 게 저자에게는 즐거움이었던 듯하다. 사물함 속에 몰래 간식거리들을 넣어 주거나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미리 챙겨 주기도 했다고 한다. 가끔은 덕분에 즐거웠고, 내일 또 만나자는 말을 편지지 대신 알림장에 적어 두고는 그 페이지를 찢어서 가방 속에 몰래 넣기도 했었다. 저자의 선한 성격,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배어 나온다.

성격이란 게 한 번 굳어지면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다. 저자는 오늘까지도 조금 먼발치에서 누군가를 챙겨 주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때처럼 한 사람만을 위해 몰래 행동하는 것은 아니고, 미숙하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챙기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다. "모두가 잘사는 것의 정답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정답이라고 믿는 구석에 한걸음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굳게 믿고 있다.

 

저자 : 이정영

 

남들보다 잊는 속도가 빠른 사람. 그래서 그날의 세세한 감정과 시선을 기록하는 사람.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하지만 곧 다가올 내일의 감정을 기대하는 사람.

앞으로도 많은 것을 품고 흘려보내며,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사람.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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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신 날
김혜정 지음 / 델피노 / 2023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 『눈이 부신 날』에는 모두 아홉 편의 단편 소설이 들어 있다. 표제어는 다른 소설집이 그렇듯이 책 속의 한 작품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다. '눈이 부신 날'. 눈이 부신 날은 대개 우리 삶에서 예상치 못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는 날을 표현할 때 자주 쓴다. 이 소설집은 저자 김혜정의 첫 번째 작품집이라고 한다. 기획해서 쓴 것으로 읽힌다. 아홉 편의 작품 모두에서 눈 부신 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동안 눈 부신 날은 한두 번쯤 일어나는 게 보통 아닐까? 이 말은 더 생각해 보면 누구든지 자신에게 눈 부신 날은 한두 번쯤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만 당사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눈이 부신 날이라 기억할지, 아니면 평범한 일상의 하루로 기억할지 다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눈이 부신 날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앞날이 즐거움과 행복감으로 충만할 것이란 예견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그리고 사모하던 이성과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든지, 자신이 하는 일의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뤄낸다든지이다. 더러는 복권 당첨날을 눈 부신 날로 기억할 수도 있다. 오랫동안 꿈꾸던 일이 일어나면 눈 부신 날로 기억하기 알맞을 것이다.

표제어로 쓰인 작품 「눈이 부신 날」에는 배우가 되기를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지혜'(예명: 성이린)가 4년 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유명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는 과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에게 어렸을 때부터 친구로 함께 성장한 남자 규호의 끊임없는 독려와 우정이 있었다. 규호는 이 소설의 화자(話者)이자 성이린 배우의 오늘이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운 무대 설치업체 엔지니어다. 그는 영화배우 시상식 무대의 설치 작업을 하면서 성이린과의 과거를 추억한다. 그의 기억 속의 지혜는 아름다운 친구로서, 사랑하는 연인이 되기를 꿈꿔왔다. 마침내 성이린의 영화 〈눈이 부신 날〉에서 신인상을 받는 날까지 무대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나타나지 않는다. 성이린이 수상 소감에서 자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도와준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덧붙이는 마지막 인삿말이 규호에게 '눈이 부신 날'이 된다. "그리고···. 지금의 배우 성이린이 아닌, 오랜 시절 아무것도 아니었던 '박지혜'를 믿어준 그 친구에게도 지금의 감동을 전해주고 싶습니다."(p.113)

 

 

이 책에는 오늘의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 훤해진 정수리를 보고 대머리가 될까 걱정하던 새신랑 정훈(「뿔」), 지방대를 졸업하고 취업 전쟁을 치르느라 자신의 취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선아 (「아티스트」), 바람이 난 남자친구랑 6년 연애를 뒤로한 채 파혼한 가은(「옳고 편안하게」), 무대 뒤에서 일하는 무대 설치 기사 규호(「눈이 부신 날」), 5년 만에 뇌종양 재발 판정을 받은 누리(「1%의 로봇」), 두통을 달고 사는, 식품회사 소비자 상담실 전화상담원 민아(「사랑한다는 말」), 남자친구의 친구들로부터 귀머거리라고 차별받던 청각 장애인(「내가 헤비메탈을 듣는 방법」)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주위이고, 그들은 곧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눈이 부신 날』의 소설 아홉 편은 각기 다른 색깔로, 완곡하게 때로는 그 누구보다 파격적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세상의 냉소와 질타에 괜스레 쪼그라들던 마음을 멀리 던져버리고 지금의 자신을 자랑스럽고 특별하게 여기고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기적이고 눈 부신 날일지 모른다. 이 책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꽤나 선명하다. 저마다 다르게 태어난 개성과 다양성을 지닌 사람들이 자기를 잃어버린 줄도 모른 채 새롭고 좋아 보이는 다른 이의 모습을 추앙하며 똑같이 달려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저자는 아프게 찌르고 있다. 대단하지 않은 ‘나’라고 하더라도 ‘나’를 잃어버리지 않게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들이다.

저자 김혜정은 교통사고로 11살에 척수 장애를 얻어 지체 장애 1급이 되었다고 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저자는 자신의 장애가 불행과 불편 그 어디쯤 존재한다 여기고 오늘도 보조기구에 의지한 채 한 글자 한 글자 바위에 새기듯 작품을 써 내린다. 이 때문에 세상을 보는 시각이 따뜻하되 독립적이고, 남다른 부드러운 인간애가 넘친다. 또 상상은 근사하고 끝이 없으며 또 치밀하고도 단단하다.

 


 

이 작품집을 통해 선보인 소설들은 하나같이 따뜻한 성품을 지녔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고, 친구이고, 선량한 시민이다. 때문에 적어도 이 소설집에는 경쟁 사회에서 난무하는 배신과 아귀다툼, 생존이라는 이름의 무한 경쟁과 끝간 데 없이 치닫는 폭력성, 또 환락과 유희의 그림자는 없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소민적 삶 속에서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사하는 인간들이다. 따뜻한 시선의 저자이기에 기술적인 그런 멋들어진 수식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시종일관 정직하고 슴슴한 말투로 일상을 그려낸다. 섬세하고 따뜻하다. 이 시선은 저자 특유의 차별화된 필터로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일깨우고 있다. 물론 「바람이 지나가면」, 「1%의 로봇」, 「우주의 휴식」과 같은 예상치 못한 소재와 플롯들로 무장한 작품들은 장편소설이 아닌 소설집을 읽는 재미 또한 제공한다.

저자의 인생관이 무엇인지 몰라도 글에 씌어진 바로는 돈보다 앞서는 것이 개인의 건강한 행복이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인간애가 전 작품을 통해 잔잔하게 흐름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다. 간결한 표현은 독자의 맑은 정신을 돕고, 깨끗한 영혼에 동화된다. 이것이 저자의 작품이 잘 읽히는 비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자신의 삶이 결코 녹록치 않았을 것이란 예상은 저자의 과거를 들추지 않아도 독자들은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 듣도 보도 못한 병명이 튀어나오고, 2060~70년대의 이야기를 앞당겨 펼쳐 놓아도 인간 자체의 본성이나 병에 대한 고통은 짙게 배어나온다.

「1%의 로봇」은 오늘날 상위 1%의 사람들의 앞날을 예견하듯하다. 돈과 기술로 영원히 살기 위해 사이보그를 거쳐 로봇이 된다. 2060~70년대라면 앞으로 40년 후의 이야기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신체의 일부를 영구 사용하도록 간단한 수술로 대치시켜가며 마지막엔 본성을 잃어버린 로봇이라는 의사로부터의 판정을 받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끔찍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참혹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현실을 그리듯이 담담히 표현해 낸다.

 


 

"저도 바뀌어버린 내가 놀라웠습니다. 이 모든 게 나를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빼내 준 첨단 의료기술 덕분이었어요."

이탈리아 이집트, 미국, 브라질, 이집트, 러시아.

저는 그곳에서 나와 같은 이유로 사이보그가 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병들고 다쳐서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몸을 버리고 사이보그로 살기를 택한 사람들. 그들은 유명관광지, 내가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커피나 브런치를 즐긴 카페, 거리 곳곳을 평범한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누비고 다녔어요."(p.157)

의학 박사이자 교수인 장누리 환자의 몸 일부분이 된 사이보그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그는 우선 사이보그 시스템은 기계라고 말한다. 성능이 뛰어나지만, 사람의 온전한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이보그 수술은 99%의 회복 성공률을 보이는 현대의학이 낳은 아주 성공적인 시스템이지만, 그 수술을 받은 환자들 중 1%는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 학회에 보고된 내용을 의사는 장누리에게 설명해준다. 의지대로 잠을 참거나,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섭취할 수 없게 된다는 부작용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능력을 점차 상실하게 된다는 말을 덧붙인다. 말 그대로 진짜 로봇이 된다고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그럼, 제가······, 그 1%가 된 건가요?"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저자가 상황을 표현하는 문장으로 이어간다. 환자 장누리의 상태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이유다. 교수는 쓰고 있던 안경을 쓱, 올리며 말했어요. 몸을 사이보그로 만드는 이 시대의 라식수술은 의료용 특수 안경을 10분 정도만 쓰고 있으면 기존의 각막에서 새로운 사이보그 각막으로 바꿀 수 있는 간단한 수술이었습니다. 그런 간단한 수술을 의사가 아직 받지 않고 불편한 안경을 계속 쓰고 있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는 거겠죠.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 넘쳐나는 세상에 대한 저자의 불안감이 드러난다. 사랑한다는 말이 진정으로 감정의 표현이 아닌 성희롱의 하나로 오용할 때 어떤 결과를 빚을까. 1인칭 소설로 이 작품에서 '나'가 주인공이고 화자이다. 작품 속 모든 사건과 분위기 설명은 '나'의 시선에 따라 기술된다. 이상한 것이 항상 보인다면 그것은 정말 이상한 걸까. 아니면, 그 이상한 것을 이제는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저 하늘을 바꿀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핑크색 하늘"을 두고 '나'의 고민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별빛마저 잠드는 밤부터 새벽까지. 나는 식품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처음은 양식재료 회사에 1년 계약직으로 일했고, 이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지는 2년 정도 되었다. 이곳에서 나는 소비자 상담실에서 전화를 통한 고객들 상담 업무를 맡고 있다. 소비자 상담실이라는 곳이 보통은 민원 상담실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제품이나 상품에 항의하는 전화가 많다. 때문에 칭찬을 받으며 상담을 마치는 일은 거의 없다. 종일 험악하고 싸늘한 이야기만 들으며 피하지도 못한 채 한 자리에 버티는 기분은 모두 잘 아는 스트레스 쌓이는 부서이다. 여러 가지 처방책을 갖고 하루하루 버티지만 일상이 쉽지 않은 임무다.

몸살기에 조퇴한 날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몸살로 열에 들뜬 눈이 잘못 비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비비고 몇 번이고 다시 하늘을 바라봐도 내가 본 것은 분명했다.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 하늘을.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며 쳐다본 하늘은 핑크색이었다.

"김민아 환자분, 링거 빼 드릴게요."

누군가 내 손목을 살며시 잡는 느낌이 느껴져 화들짝 놀라 손목을 급히 빼내자 "많이 놀라셨어요? 저는 간호사예요." 남자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설명했다. 자세히 보니, 남자는 아까 그 여자 간호사와 같은 하얀 옷차림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덩치가 큰 남자다. 링거를 빼고 스티커를 붙이는 등 간호사는 뒷마무리를 하고 있다. 애써 외면한 채 서둘러 가방을 챙겨 주사실을 나섰다. 그때, 내 뒤로 그 남자 간호사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예쁜 김민아 환자분! 사랑합니다!"

어머, 미쳤나 봐. 왜 저래? 물론 예쁘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잘 챙겨 먹고 기운 내라는, 나를 토닥여주는 말도 감사하다. 그런데, '사랑합니다'라니. 나를 언제 봤다고, 얼마나 봤다고 사랑한다고 하냐고! 이건 분명히 나를 희롱하는 거야!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휴대폰을 들었다. 병원에 전화해서 항의할까. 아니면, 112에 신고할까. 그러다가, 이내 머뭇거렸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 상담 전화의 인사는 '사랑합니다'라는 공통된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결국 그 사랑한다는 인사말은 상담원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다수의 고객들도 부담스러워 한다는 이유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로 바뀌었다. 그러나 고객들의 장난스럽거나 험악한 말투로 시비 걸듯 항의는 바뀌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인 영주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런데 이 친구로부터 온 카톡에는 예전과 다른 낯선 문구가 발견된다. - 고마워, 친구, 사랑해(하트 이모티콘). 전화를 걸었다. "근데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해!" 냅다 소리를 질렀다. 평소의 영주라면 너야말로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냐고 버럭 소리를 지를 거라고 생각했다. 잘해줘도 지랄이냐고, 짜증을 낼 터였다. "약 먹고 푹 쉬어. 우리 민아, 아파서 어떡해···."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첫사랑과 재회하고 "사랑해"라는 말을 들은 후 하늘은 다시 파랗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눈부시게 빛나는 하늘이었다. 분홍색이 아닌 하늘색.그 하늘 아래에서는 예전처럼 아무나 나를 붙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편안했다."(p.228)

 

저자 : 김혜정

 

11살 무렵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척수 장애를 얻어 1급 지체 장애 판정을 받았다. 홈스쿨링으로 검정고시를 봐 초중고를 마쳤고, 경희사이버대에서 일본학을 전공했다. 몸이 불편한 덕분에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선과 깊이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2014년 제12회 동서문학상에서 단편소설 「엘리베이터」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해 2021년 첫 소설집 「한밤의 태양」을 출간했다. 오늘도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필사적인 노력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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