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미학 - 미적 안목을 기르고 싶은 현대인을 위한 최소한의 디자인 미학 지식
최경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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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디자인 미학』의 표제어에는 '미학(美學)'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 미학이란 낱말은 우리말 어감으로도 좋고 한자어로 된 의미 또한 아름다운 낱말이다. 그러나 미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과는 다르게 철학에서 다루는 한 분야이다. 독자도 낱말에 이끌려 『미학이론』이란 책을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10분의 1도 못 읽고 손에서 책을 놓아야 했다. 너무 어려워서다. 이 때 독자가 구입한 책은 아도르노(Adorno, Theodor Wiesengrund)의 책이었다. 아도르노는 이미 1963년에 타계한 독일의 철학자였다. 독자가 철학이란 분야를 전혀 모르고 관심도 크게 두지 않다가 '미학'책을 '예술' 에 관한 책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아도르노는 독일 출신으로 철학, 사회학, 미학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연구 활동을 했던 사상가였다. 그의 사상과 논저는 그가 활동할 때 이미 대단한 영향력을 있을 정도로 진보적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철학사전』에 따르면 1931년 모교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사강사(私講師)로 일하면서 나치에 의해 추방되어 34년에 망명한 후 38년부터 미국에서 파시즘 연구를 진행했다. 미국에서도 『권위주의적 성격』(1947)과 호르크하이머와의 공저 『계몽의 변증법』(1947)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고 한다. 나치 독일이 패망한 후 1949년에 귀국해서 모교 교수가 되어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자로 활약하며, 비판 이론, '부정적 변증법'을 전개하고, 사회, 문화, 과학 연구의 인간 소외 및 물상화 등을 예리하게 비판한 유명 철학자였다. 독자가 철학과 미학 모두 완전 문외한이었기에 '뭣 모르고' 미학이론 책을 읽으려 시도했던 기억이 이 책을 표제어를 보니 또렷하게 떠올라서 여기에 적어본 말이다. 이 책의 표제어에 '미학'이란 낱말을 사용한 만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한 마음에서다.

이 책은 미학에 관한 책이 아니고 '디자인'에 관한 책이다. 저자 최경원은 「디자인 미학의 시대를 환영하며」란 제목의 〈머리말〉 첫 문장에 "디자인 미학이라는 말은 참 낭만적"이라고 적고 있다. 디자인이란 단어에 이미 아름다움이 담겨 있는데 거기에 미학이라는 말까지 더해졌으니 아름다움다움으로 충만해서 낭만적으로 들린다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의 발간에 역할을 한 것이 '디자인'과 '미학'이라는 단어가 조합해서 '낭만적'을 상상하게 하는 것 때문이라고 밝힌다. 이 두 낱말의 조합이 '낯선' 이유는 오랫동안 디자인에서는 아름다움보다는 쓰임새를 앞세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동안 미학은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인문학 영역이었다. 그래서 디자인 미학이라는 말은 디자인을 수사학적으로 묘사하거나 문학적으로 표현할 때나 썼지 디자인의 중요한 이론으로 진지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디자인 뒤에 미학이라는 말이 자주 따라다니고,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일상에서도 많이 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대중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알렉산더 고틀리프바 움가르텐이나 이마누엘 칸드를 중심으로 서양의 근대 미학이 나타나는 데 대중이 중심이 되는 근대사회의 출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처럼,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존재감이 급부상하면서 디자인에서 미학이 중요해졌다. 물론 그 뒤에는 사회적, 경제적인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자의 말대로 18~19세기 산업혁명과 식민지로부터 막대한 부를 쌓은 유럽의 풍요로운 사회에서 대중은 이전처럼 기업이나 디자이너가 만들어주는 대로 쓰려고 하지 않았다는 중요한 동기가 나타난다. 부유해진 대중은 단순히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찾는 것처럼, 경제적 여유가 생긴 대중은 자신의 미적 안목을 길러주고 지적 만족감을 충족시켜줄 디자인을 원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에서 기능성을 넘어서는 격조 높은 즐거움을 얻으려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디자인의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논리다. 이 변화를 모두 끌어안은 것이 바로 디자인 미학이라는 주장은 차근차근 논리적 단계를 밟아간다. 디자인 미학을 통해 기능주의에 의존하던 기존의 단순한 디자인 논리는 좀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생산을 중심으로 한 오래된 디자인관(觀)도 수용자(대중)를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점점 바뀌어갔다. 이 논리로 저자는 디자인을 창조하는 디자이너와 디자인을 감상하는 수용자 모두에게 디자인에 대한 깊은 통찰과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장(章)으로 나뉘어 있다. 1장 〈디자인에서의 미학, 미학에서의 디자인〉, 2장 〈미학의 체계 속에서 디자인〉, 3장 〈디자인의 미학적 구조〉 등이다. 저자는 세 개의 장에서 각각 주제에 맞는 내용의 세부 항목으로 나뉘어 설명과 논리적 단계를 높여간다. 각 세부 항목에서의 설명에는 실제 디자인 조형물 등 사용예를 들어가며 설득력을 높인다. 첫 장 세부 항목 「어색한 디자인 미학」에서, 앞서 언급한 단어 조합의 '낯선' 이유를 설명한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대단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이는 대중이 디자인 상품으로부터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답고 감각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갖기 때문이란 풀이다. 또 '미학'에 대해서는 어려워하면서도 지극한 인문학적 품격과 예술성에 대한 신비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떤 단어든 미학이란 단어를 뒤에 붙여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경우가 없는데, 정작 디자인에서는 좀 다르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디자인 종사자에게는 이 말은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 미학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아름다움을 전문적으로 추구하는 분야가 예술이다. 그래서 미학은 주로 예술 영역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데 디자인을 하는 많은 사람이 디자인은 예술과 거리가 먼 공업적 생산 활동이나 상품을 만드는 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질적 느낌을 갖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로 인해 디자인 종사자들이 예술이나 붙는 미학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부조리하다고 느낀다고 강조한다.

이 경우 왜 디자인 종사자들은 디자인이 예술 분야와 다르다고 생각할까? 하는 의문이 독자는 생긴다. 디자인 사학자 페니 스파크는 "금세기 들어 서유럽 사회에서 디자인을 창조하고 계속 지배해온 산업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디자인은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와 이중의 관계를 맺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는 말을 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디자인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산업적 체제 안의 국한된 활동이라고 못박았다는 의미다. 디자인 이론가 스티븐 베일리도 "디자인은 미술과 산업이 만날 때, 사람들이 대량생산된 제품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때 발생한다."고 했다. 베일리 역시 스파크와 같은 견해다. 이들의 디자인관은 예술과 어떠한 연관성도 찾을 수 없다. 산업 생산 내의 활동이나 그 결과물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에도 주위를 살펴보면 많은 디자인을 보면 그 말들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생필품, 전자제품 등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고 있는 공업적 생산품이 실용성을 충족시키는 물건 또는 이미지로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디자인에 관련된 일을 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 두 사람의 공감하고 이들의 이론을 배웠다. 만일 그 이론에 반대하는 학생이 있다면 선후배들로부터 어처구니없다는 눈총을 받기 일쑤라고 교육 현장도 지적한다. 예술이 무슨 범죄도 아니고, 아트사커 같은 말을 보면 스포츠도 예술이 되는 세상인다, 어떤 분야든 예술이 되어서 나쁠 것은 없는데도 묘하게도 디자인만은 예술이라는 뒷 말이 붙기를 꺼려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런 이유를 저자는 명쾌하게 설명한다. "디자인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예술을, 정확히 말하면 순수미술을 작가의 내면적 주관을 표현하는 고립적이고 이기적인 분야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주변 세상에는 관심이 전혀 없고 순전히 자신의 주관적인 예술 세계를 표현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매우 이기적이고 고립된 활동을 순수미술이라고 보는 것이다."(p.20)

기존의 디자이너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저자의 주장은 디자인 미학은 단순히 작품의 아름다움을 논하거나 작품의 외적인 부분을 평가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미학은 본래의 뜻처럼 ‘감성적 인식의 학(學)’을 가리킨다. 즉 미학은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곳 어디에나 존재하며,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모든 것이 미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디자인 미학은 극히 자연스러운 논점이고,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과 "예술과 완전히 다른 디자인"이 어우러져 서로를 보완해 대중들에게 어필되도록 해나가는 것이 예술을 하는 사람이나 디자인과 관련된 일에 종사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공통된 과제하는 인식이다.

 


 

2장 〈미학의 체계 속에서 디자인〉에서는 진정한 예술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조명한다. 저자는 설명을 위해 과학, 예술, 문화, 역사를 모두 동원해 하나씩 사례와 시대이 변천에 따른 예술이나 학문의 변화까지 연관시켜 재조명한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으로서의 디자인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 모든 학문과 예술 등 세상의 모든 것들과의 연결고리의 하나로서의 디자인의 영역과 역할을 찾으로는 시도로 독자는 이해한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등장으로 고전물리학이 설 자리를 잃었듯이, 예술 역시 시대에 따라 개념이 재정립되었다. 대중이 문화적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전근대시대에 문화나 예술은 소수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시민혁명으로 시민사회가 성립됨에 따라 예술가들은 귀족들이 향유하던 예술을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경제적 여유가 생긴 대중이 예술을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소비하면서 예술가는 작품을 창조하는 존재이고, 대중은 그저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작품에 내재된 창작자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존재라는 이분법적 구분 방식을 탈피하기 시작했다.

즉 일방적인 관계였던 창작자와 대중(수용자)이 쌍방적인 관계로 바뀐 것이다. 그 결과 예술가는 작품을 창작할 때 대중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게 되었고, 수용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제품들 가운데서 좋은 작품을 고르고 작품의 본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미적감각을 기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날수록 예술의 범주도 점차 확대됨에 따라 전통적인 미학관으로는 예술을 더 이상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게 되면서 새로운 미학관이 필요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 새로운 미학관을 정립하는 데 이정표가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예술미에서 주관주의 미는 아름다움이 대상의 특징이 아니라 경험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 보고, 미적대상을 파악하나느 주체의 태도나 작용 측면에서 미를 연구한다. 지오반노니의 조명디자인을 객관주의 미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름다움의 법칙 같은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디자이너가 장난으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완벽한 아름다움의 법칙으로 만들어진 예술이라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의 물질에 불과하다."(p.134~135)

 


 

3장 〈디자인의 미학적 구조〉에는 예술가 개인적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며, 정신 속에서 현실화될 수 있는 보편적 원형인 ‘이마고imago’를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지에 대해 시공간을 가로지른 여러 예술가의 고뇌가 담겨 있다. 저자는 알레산드로 멘디니, 자하 하디드, 이세이 미야케, 마르셀 반더스, 하이메 아욘, 잉고 마우러, 필립 스탁 등의 산업디자이너들을 통해 개인의 창작욕과 시대의 요구를 어떻게 융합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지에 대한 과정을 쉽고 밀도 있게 그려낸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생활양식에 부합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지향해야 할 바와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소양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저자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쟁의 상흔으로부터 빨리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원해 예술이라 부르는 모든 영역이 목적과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기능주의의 길을 걸었다고 전제한다. 디자인 역시 예술이 아니라 산업으로 취급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문제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들어와서도 그러한 인식은 여전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디자인을 산업이나 기술의 소산으로만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시대를 불문하고 디자인이 디자인으로서 존재하려면 ‘형태’와 ‘색’이라는 형식미를 갖추어야 하지만, 디자인의 외적인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단순히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기능성과 형식미를 탐미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시대정신과 역사적·전통적 가치관 등에 집중할 것을 요청한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유럽과 미국, 일본의 디자이너들은 자국의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예술 작품이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이를 작품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실례로 이탈리아 패션 명가 돌체앤가바나는 비잔틴제국의 문화적 유산을 패션에 적용했고, 일본의 건축가 단게 겐조는 요요기 국립경기장을 건축할 때 일본의 전통 건축양식을 뼈대로 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술가와 대중이 갖추어야 할 인문학적 소양이다. 먼저 예술가라면 뛰어난 심미안과 예술적 감각도 중요하지만 시대의 분위기를 읽어내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선 세기와 달리 오늘날에는 디자인을 소비하고 선택하는 주체가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대중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경영학적, 마케팅적 논리로 설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게다가 대중을 아우르려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으면서도 다른 창작자와 구별할 수 있는 고유한 개성과 감각이 담긴 디자인을 선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네덜란드의 산업디자이너 테요 레미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것은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불보와 담요를 오브제로 써서 ‘레그 체어’라는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 것은 물론 한 가족의 역사성을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펜스와 같이 대중에게 친숙한 사물들을 분해하고 재해석하면서 미학을 넘어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디자인을 담고 있다. 이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디자인의 앞날을 비추고 있다고 역설한다.

 

역사적 산물로서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단지 하나의 기능적인 대상, 프로젝트 산물에 그치지 않고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가면서 문화적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이러한 디자인은 지금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서 굳건하게 자리 잡으면서 역사적 성과를 입증하고 있다. 그래서 디자인을 단순히 디자이너가 창조한 개인적 작품이나 수용자 개인의 심미적 쾌감을 자아내는 오브제 정도로만 볼 수 없으며, 좀더 거시적이고 문화적인 시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p.254~255) - 「3장 「디자인의 미학적 구조」

 

저자 : 최경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국민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디자인학부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등에서 한국 문화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2010년에 현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하고, 한국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디자인 브랜드 ‘훗컬렉션’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의 비밀 우리 미술 이야기』(전3권) 『끌리는 디자인의 비밀』『Great Designer 10』『디자인 인문학』 『알레산드로 멘디니』『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Good Design』『디자인 읽는 CEO』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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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에서 보낸 소로의 시간 - 소로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32가지 참 지혜
김옥림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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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Walden)'은 미국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 시 외곽에 있는 작은 호수이다. 이곳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가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산 체험을 기록한 책 『월든』을 발간하면서 이름 없는 작은 호수에서 일약 세계의 주목을 받는 호수로 떠올랐다. 물론 책 발간 당시에는 지금처럼 잘 알려지지 않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특별할 것이 하나 없는 평범한 호수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소로는 1845년 7월 4일부터 1847년 9월 6일까지 2년 2개월 남짓 동안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한 소로의 정신적 자서전으로 널리 읽혔다. 대표적인 생태주의 텍스트라 이름 붙여도 좋은 이유는 저자 소로가 출판하기까지 무려 일곱 차례의 개작 과정을 거치는 동안, 소로 자신이 자연에 대한 관심을 심화하면서 생태주의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특히 1850년 이후의 개정 원고들에서 세밀하고 구체적인 자연 묘사가 집중적으로 늘어난 것은 그 무렵부터 소로의 필생의 과업이 실체적인 자연에 대한 탐구였음을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체적 자연 묘사의 증가가 중요한 이유는 생태주의적 사고의 발전은 무엇보다도 실체적 자연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소로가 『월든』에서 보여주는 생태주의적 성찰은 다양한 형태를 띠며 전개된다고 『월든』을 연구했던 생태·환경학자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저자 소로는 상업적 목적을 지닌 농업이 궁극적으로 자연에 끼치는 폐해에 대한 비판을 감추지 않은 생태학자이자 환경학자로서의 환경 보호와 보존을 위한 삶이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것이라는 직접 체험을 책에 담음으로써 월든은 환경 보존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소로는 책에서 “한때 농사가 신성한 예술”이었지만 “지금은 대규모 농장과 대량 수확만을 목표로 삼은 나머지 성급하고 생각 없이 농사를 짓고 있음”을 개탄하면서 그 결과로 수반되는 자연의 착취와 파괴를 경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소유를 실천하고 『무소유』란 책을 쓴 법정 스님이 열반할 때까지 곁에 두고 읽은 책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 책 『월든에서 보낸 소로의 시간』은 소로의 자연주의적인 삶과 철학이 담긴 책 『월든』에서 소로가 책에 담은 내용과 저자 김옥림의 사상과 철학을 가미해 그의 삶을 배우고자 하는 저자의 바람에서 쓰여졌다. 저자 김옥림은 200년 전 소로의 글은 은유로 가득한 시와 같고, 어떤 대목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독자들과의 교감을 통해 현대의 우리는 그가 자연과 교감하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소로의 철학과 사상을 좀 더 수월하게 이해시키고자 동서고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 학자와 정치가, 예술가 등이 했던 말도 함께 수록했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쓰고 비슷한 사상과 말을 남긴 위인들의 말과 글을 함께 실어 독자들과 『월든』을 함께 읽어가며 해설해주는 형식으로 책을 펴냄으로써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현재의 자신이 실천해야 할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아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밝히고 있다. 200년 전에 태어난 소로는 오늘날 이 지구가 황폐화되고, 인간이 자유와 평화를 잃고 위험에 처하리라는 것을 예감했을까? 그는 인간이 자연을 사랑하고 보존하며 간소하게, 더 간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선견지명이 지금의 시대에 소로를 더욱 위대한 사상가로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은 모두 4부(部)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절망하지 않는 지혜〉, 2부 〈소로가 월든 호수 숲속으로 간 까닭은〉, 3부 〈소로가 말하는 성공한 삶의 정의〉, 4부 〈자신이 상상해온 삶을 살려고 노력하라〉 등이다. 소로는 『월든』에서 자신이 살았던 장소와 삶의 목적, 독서, 삶의 소리, 고독, 콩밭, 마을, 호수, 베이커 농장, 더 높은 법칙, 동물 친구들, 따뜻한 집, 겨울 손님들, 겨울 동물들, 겨울 호수, 봄 등 월든 주변에서 살아가고 일어나는 일을 2년 2개월 동안의 체험을 자세히 풀어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 『월든에서 보낸 소로의 시간』은 4개 부에 각각 8개의 장(章)으로 나누어 소로의 문장을 서두에 적고 이를 저자의 지식과 사유, 그리고 자연에의 동화의 경험 등을 추가해 독자들의 『월든』 텍스트 해석을 돕는다. 특히 『월든』 출간 전후의 사상가나 철학자, 예술가, 종교인들이 『월든』의 사상과 같은 말들을 배치시킴으로써 텍스트 이해에 완벽을 기하고 있다.

 


 

1부 8개 장 「절망하지 않는 지혜」, 「고착화된 편견을 버리기」, 「내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아가기」, 「철학자와 철학자적인 삶」, 「유행의 여신을 경계하라」, 「인간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협력의 의미」, 「부패한 선행」을 다룬다. 이는 소로의 『월든』을 분석해 내용에 따라 붙인 제목들이다. 2부, 3부, 4부도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 순서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저자가 비슷한 항목을 묶어 부(部)로 나누었음을 알 수 있다. 1부 첫 장의 「절망하지 않는 지혜」를 읽어보면 저자가 『월든』의 어떤 부분에 대한 해석을 하고 있는지 독자들이 쉽게 찾을 수도, 읽고 이해할 수도 쉽게 구분했다는 사실을 금세 알게 된다. 첫 장에서는 소로의 '경제생활'에서 인용한 문장을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소위 체념이라는 것은 고착된 절망에 불과하다. 우리는 절망의 도시를 떠나 절망의 시골로 들어가서, 밍크와 사향쥐의 용기에서 위안을 찾아야 한다. 진부하지만 무의식적인 절망은 인류의 경기와 오락이라고 불리는 것 밑에도 숨어 있다. 거기에 놀이는 전혀 없다. 놀이는 노동 뒤에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망적ㅇ니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한 특징이다." 첫 장의 첫 문장이다.

독자도 이렇게 쓰인 『월든』을 두 번이나 읽었지만 삶에 대해 쓴 것 같은데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번역상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읽어나갔을 뿐이다. 말 그대로 전부 읽었다는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겉으로만 읽은 탓이다. '수박 겉 핥기'였다는 말이다. 이제 저자 김옥림의 해석에 힘입어 드디어 정확한 뜻에 접근하게 된다. 저자는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인 키에르케고르를 인용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일컬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설파했다. 이는 '절망'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으로 절망이 인간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잘 알게 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처한 돌이킬 수 없는 일로 인해 절망함으로써 삶을 포기하고 목숨을 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절망이란 낱말은 '죽음'을 떠올릴 만큼 부정적이고 극단적이다."(p.16~17)

저자는 삶에 있어서 절대 가져서는 안 될 '어떤 일이 닥치든 절망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 위대한 운동선수(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100m 우승자 게일 디버스, 음악가 헨델이 절망적 상황을 딛고 어떻게 성공한 삶으로 바꾸었는지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은 독자들의 확실한 이해를 위해서임을 알 수 있다.

 

 

독자가 보기에는 『월든』은 자연주의적인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단지 저자가 지적한 대로 은유적 묘사와 당시 시대 상황의 비유적 표현이 많아 해독이 어려울 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 멋진 제목의 책 『월든에서 보낸 소로의 시간』은 이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디딤돌로서 잘 쓰인 책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2부 네 번째 장 「진실하게 살되 허위와 망상을 버려라」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먼저 앞서 보인 사례처럼 『월든』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오늘날 진실은 거짓된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허위와 망상은 건전한 진리로 여겨지고 있다. 인간이 진실만을 꾸준히 관찰하고 망상에 빠지지 않는다면, 인생은 우리가 아는 그런 것들에 비해 동화나 〈아라비안나이트〉처럼 흥미로울 것이다. 우리가 불가피한 것과 존재할 권리가 있는 것만 존중한다면 음악과 시가 길거리에 울려 퍼질 것이다. 또한 서두르지 않고 현명하게 살면, 위대하고 가치 있는 것만이 영원하고 절대적인 존재이며 사소한 두려움과 사소한 쾌락은 현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월든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p.128)

진실과 허위, 이는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늘 겪게 되는 '삶의 속성'이라는 말로 저자의 해석을 시작한다. 진실은 '참'이며 허위는 '거짓'이라는 명제는 상반되는 개념이지만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함께 해왔던 것이라는 말과 함께. 사람 중엔 진실을 벗어나 허위의 삶을 좇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로 인해 삶은 순탄치 않고 늘 바람에 이는 나뭇잎처럼 소요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진실은 흐르는 강물과 같이 일정하게 흘러가고 고요하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며 반문한다. 진실은 언제나 삶을 순탄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을 덧붙여 소로의 문장을 조화롭게 더듬어 나간다. 진실은 왜 사람을 평안하게 할까. 진실은 아름답게 꾸미지 않는 까닭이다. 자연에서의 삶은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며, 그 이유는 진실은 꾸미지 않기에 아름답다고 답하는 방법이다. 불교에서 선문답 같지만 화두가 있으면 말을 통해 진실에 접근해가는 방식은 저자의 논리적 방법으로 설득력을 갖는다. 제자백가 중 소로와 가장 가깝다면 노자가 아닐까. 저자는 스스럼없이 『도덕경』을 인용해 『월든』의 내용의 본질에 접근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라」라는 제목이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면 인생의 모든 법칙이 변할 것이다. 고독해도 더 이상 외롭지 않고 빈곤해도 더 이상 가난하지 않으면 연약해도 더 이상 약하지 않을 것이다." 소로가 한 말이다. 저자 김옥림은 공자 『논어』 「위정편」을 인용한다. 내 인생의 나를 주인으로 세우는 서른의 나이를 '이립(而立)'이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은 자기 나이 서른이면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른 전에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해석을 준비한다. 저자에 따르면 저절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각고면려(刻苦勉勵), 즉 고생을 무릅쓰고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진리를 잊고 노력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나라를 탓하고, 사회를 탓하고,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한다. 이는 매우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누워서 제 얼굴에 침 뱉는 것과 다름없다.

저자는 마지막 장이기도 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소로의 말에서 중요한 사실을 뽑아낸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면 인생의 모든 법칙이 변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만의 인생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면, 고독해도 외롭지 않고 가난해도 가난하지 않으며 연약해도 더 이상 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자신의 주인이 되면 자신의 일생을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컨트롤 할 수 있음을 뜻한다고 소로의 말을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더 나아가 자기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면서, 후회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잘 알게 하는 고사를 덧붙인다. 공자의 이야기다. 이처럼 삶의 법칙이나 마음을 다지는 원칙 등 정신에 관한 이야기는 에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모두 한마음이었던 것이다. 독자에게는 하나의 지혜와 하나의 사색거리가 생긴다. 이 책을 읽은 보람이다.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콩코드 남쪽에 있는 작은 호수 월든에서 소로는 2년 2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단돈 28불로 허름한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소박한 음식과 최소한의 물건으로 생활하며 소로가 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오히려 소로가 살던 당시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150여 년 전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시도했던 소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소로의 말과 글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진정으로 소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화두에 대해 여러 철학자와 사상가, 예술가, 문학가의 의견도 덧붙였다. 그럼으로써 소로의 생각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소로의 『월든』에 나오는 이 문장은 저자 김옥림이 깊은 사유를 거듭하게 했고 마침내 소로의 삶과 그의 책에 대한 이해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저자 김옥림은 ‘인간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자연이란 무엇인가, 성공한 삶이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 오늘날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하면 빛나게 만들고, 내적으로 부유하게 만들며, 사소한 행복을 찾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배우고 사유하고, 경험한 것은 물론 책을 통해 알게 된 지식까지, 모든 것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싶어 이 책을 쓴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그의 독자에 대한 열정에 감사드리고 더 열심히 배우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저자 : 김옥림(金玉林)

 

현재 시, 소설, 동화, 동시, 교양, 자기계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집필 활동을 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이다. 교육타임스 《교육과 사색》에 ‘명언으로 읽는 인생철학’을 연재하고 있다.

시집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따뜻한 별 하나 갖고 싶다》, 《꽃들의 반란》, 《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소설집 《달콤한 그녀》, 장편소설 《마리》, 《사랑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들》, 《탁동철》, 에세이 《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행복한 아침을 여는 책》, 《가끔은 삶이 아프고 외롭게 할 때》, 《허기진 삶을 채우는 생각 한 잔》, 《내 마음의 쉼표》, 《백년 후에 읽어도 좋을 잠언 315》, 《나는 당신이 참 좋습니다》, 《365일 마음산책》, 《법정 마음의 온도》, 《법정 행복한 삶》, 《법정 詩로 태어나다》, 《법정잠언집 365 너는 꽃이 되어라》, 《지금부터 내 인생을 살기로 했다》, 《힘들 땐 잠깐 쉬었다가도 괜찮아》, 《인생의 고난 앞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인문서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_통찰력편》,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_교양편》, 자기계발서 《명언의 탄생》, 《고전명언의 넓고 깊은 생각》, 《책사들의 설득력》, 《유대인 대화법》, 《철학자의 말》, 《고수의 소통법》, 《인생이 깊어질수록 다가오는 것들》, 《이건희 담대한 명언》,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청소년 교양서 《10대에 꼭 해야 할 32가지》, 《10대를 위한 성공습관》, 《열네 살의 하이파이브》 외 다수가 있다. 시세계 신인상(1993), 치악예술상(1995), 아동문예문학상(2001), 새벗문학상(2010), 순리문학상(2012)을 수상하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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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역사 첫걸음 - 인물열전 편
이영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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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위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떤 자질을 갖고 있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역사는 오늘을 위한 공부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가 자명하다. 이해하고 올바른 판단을 위한 공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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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역사 첫걸음 - 인물열전 편
이영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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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가장 쉬운 역사 첫걸음』을 처음 펼치는 순간 독자의 마음은 어렸을 적으로 돌아갔다. 독자 초등학교 시절은 책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도서관도 많지 않은 시절이라 책은 '귀한 물건'이었다. 책 안에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눈에 띄는 책은 일단 펼쳐 보았다. 대체로 교과서 같은 책이 많았고, 특별한 책은 위인전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과서에서 이름만 배웠던 인물들의 전기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아마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그나마 위인전을 많이 펴냈을 것으로 지금은 추정하고 있다. 그때는 교과서 이외의 책이라고는 〈전과〉나 〈수련장〉 정도의 학습 보조 역할의 책이 어린이들이 읽는 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절이었다. 그러나 우리 집엔 〈세계문학전집〉 50권짜리가 있었다. 아버지가 교사였기에 아마 할부로 들여놨을 것이다. 덕분에 독자는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우리 집에 와서 책을 읽다 가는 경우도 많았다.

독자 기억으로는 50권 중 1,2권은 그리스·로마 신화였고, 어린이용이다 보니 세계명작 중 동화에 가까운 소공녀와 작은아씨들도 있었다. 독자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로빈스 크루소』였다. 여름 방학 중이었는데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해 점심도 거른 채 한 권을 끝까지 읽고서야 손에서 책을 놓았다. 스토리 자체가 모험적이고 '무인도' 생활 생존기여서 신비하고 환상적 모험 이야기였다.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읽었다. 어머니에게 꾸중 듣다 아버지에게 일러바쳐서 결국 아버지도 엄하게 말리셨다. "책을 읽다 건강을 해친다면 안 된다"는 말씀이었다. 그 뒤로 독자는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책 읽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의 말씀이어서라기보다 그만큼 재밌는 책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더 이상 책을 안 사 주실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책 『가장 쉬운 역사 첫걸음』을 펼치자마자 기억이 떠올라서 잠시 넉두리 같은 말 양해를 구한다.

 


 

그때 전집에도 링컨의 전기가 있었던 것 같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노예해방)이라고 씌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전집에 『서유기』나 『에이브러함 링컨』은 있어도 우리 나라 위인은 없었다. 세계문학전집이어서 그랬을까? 어쩌면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위인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 『가장 쉬운 역사 첫걸음』은 역사서다. 역사에 대한 깊은 연구로 역사의 한 부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낸 책이 아니라 위인전처럼 16명의 국내외 위인들의 전기에 가깝다. 다만 역사서처럼 역사적 사실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위인들의 업적을 중심으로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세게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는지를 스토리텔링 식으로 기록했다.

'역사 속 위인 이야기'라는 말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취지에 "박제된 과거 사실들을 지식으로 채우기보다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들을 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역사 공부"라는 말이 이 책의 출간을 대신하는 충분한 설명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역사는 대체적으로 건조하고 딱딱하게 기술된다. 아마 사실을 객관적 판단에 의해 정설로 굳어진 내용을 정확하게 기술해야 하기에 대체적으로 딱딱한 기술법이 필요해서일 것 같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 현재는 미래의 교훈"이라는 말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로서 가장 적절한 말일 터다. 삶은 언제나 힘들다.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를 차곡차곡 기술해 놓은 것이 역사다. 인간을 떠난 역사는 의미가 없으며 아무도 읽을 사람이 없다. 당연히 인간의 일을 기록해 놓은 것이 역사이다. 현재의 힘든 일을 과거의 일에서 찾아보면 대체적으로 해결법이 나온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로서 충분하다. 미래는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예측하는 일은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 오늘 어떤 일을 해야할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역사에서 배운 현실 극복법을 이용하면 된다.

 


 

이 책은 과거의 일을 단순하게 열거한 '실록'으로서의 역사서는 아니라는 말은 앞서 언급한 대로다. 인물 중심으로 당시의 역사를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당연히 저자 이영의 역사관부터 세계관, 역사 공부, 인물 연구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있어야 올바른 해석이 가능하고, 그것은 우리 즉 인간을 위해 쓰임새가 있다. 결국 역사서는 올바른 기록으로 인류 발전에 큰 기여를 하는 책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이 책에도 약간의 결격 사유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당초 기록이 미비하거나 고의로 언급하지 않은 사실도 있을 수 있으며, 당연히 정사에는 기록하지 못할 부분도 있다. 이런 사실은 역사 연구자의 몫이다. 역사관에 의해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해석도 논리적으로 혹은 자연스러운 감수성에 의해 합리적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스토리텔링의 역사 서술은 '정확'보다는 '합리적 감성'에 의해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저자 이영은 〈머리말〉을 통해 자신이 배운 역사학개론 수업 시간의 지식을 밝힌다. "역사는 경험 공간과 기대 지평의 융합이다."(p.5) 저자를 가르쳤던 독일의 역사학자 라이하르트 코젤렉의 말이라고 전한다. 이 말에 대해 저자는 "역사는 과거의 경험을 체화해서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라고. 교훈적 역사 스토리텔링 방식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역사가들이 저자의 이 같은 역사 인식을 어떻게 생각하지 독자로서는 알 수 없지만 미래를 위한 역사 인식으로 최선의 방법이라는 데 독자는 동의한다. 이로 인해 저자는 역사 서술 방식이 What보다 How가 중요하다면 역사를 듣는 이도 What이 아닌 How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How로 듣는 방식이 '해석한다'고 할 수도 있다. 발화자나 기록자의 의도야 어찌 됐든 역사를 접하는 사람은 과거의 일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주장이다. 물론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독자가 저자의 역사 해석관에 공감하는 이유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역사로부터의 끌어낸 교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인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 방식을 사용했다고 밝힌다. 이뉴는 몰입도가 사건 중심보다 훨씬 높아서이다. 또 누구나 알 법한 16명의 인물들을 시대와 국가에 상관없이 선택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에 따라 독자들이 16명의 인물들을 통해 지헤와 교훈과 관점을 배우는 데 집중하기를 바라고 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저자의 한마디는 가슴속에 강렬하게 들어앉는다. "역사는 결코 방대한 지식의 양으로 누군가에게 자랑할 때 쓰이는 과시거리가 아닙니다. 역사적 지식을 많이 알고 있어도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말짱 도루묵인 걸요. 역사공부를 위한 첫걸음은 역사가 어떻게 내 사고와 삶을 윤택하게 해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이러한 고민과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나만의 해석을 내리고 또 타인과 그 해석을 공유해 보는 것도 좋은 역사공부가 될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개성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흥미진진하고 스펙터클한 역사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게임보다 재미있고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한 역사 공부, 이 책이 지향하는 역사관이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해할 수 있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오늘의 시대와 사회를 통찰하고 옳고 그름,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자 지향점이다. 이 책이 그 과제를 이루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의 맛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최소 한 번에 한 사람씩이라도 완전히 죽 내리읽을 것을 먼저 읽어본 독자로서 권유한다. 한 번에 내리읽어야 한 인물의 생애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떻게 처리했으며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가늠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시청처럼 띄엄띄엄 읽는다면 아무래도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머릿속에 각인시켜야 할 것들 놓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스토리텔링 방식의 역사 서술을 채택했고, 오랫동안 기억을 높이기 위해 인물 중심의 기술 방법을 택한 것이다. 사건 중심이 되면 사건 자체에 몰입돼 인물이 왜 그 사건에 부딪치게 되고 어떤 방법으로 해결했으며를 건너 뛴 채 업적만이 기억에 남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 책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모두 16명의 역사적 인물이 등장한다. 저자의 말대로 시대나 국적 구별 없이 열거했다. 저자의 말이 사실이고 진심이 담겼는지 독자들이 직접 읽으며 판단해보기를 권유한다. 첫 번째와 마지막에 실린 인물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독자가 기술된 내용을 토대로 짧게 살펴본다. 가장 먼저 소개된 인물은 우리 역사에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소개되는 '광개토대왕'이다. 이 장(章)의 제목은 「그는 다른 정복군주와 어떻게 다른가?」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했다는(사실은 그의 아들 장수왕때가 고구려 영토가 가장 넓었다고 한다) 사실은 우리가 배운 바와 같다. 그는 왜 세력이 한참 확대되고 드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을 꾀하지 않았을까? 중국이 너무 강해서? 대왕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 원래의 목표를 다 이루었기 때문에? 아니면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서? 동방예의지국이라서? 각종 궁금증이 생기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광개토대왕을 너무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나오는 주장이라고 설명한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고구려의 영토를 넓힌 것으로만 한정하여 생각한 데서 비롯된 편협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광개토대왕은 남의 나라나 이민족을 정벌하여 복종심키는 데만 급급한 여느 정복군주들과는 많이 달랐다. 광개토대왕의 전쟁과 업적, 그리고 그것이 아들 장수왕으로까지 이어지는 양상을 보면 '진정한 강대국'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특별한 국가관을 엿볼 수 있다."(p.13)

저자는 '특별한 국가관'을 전제로 이후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세부적으로 살핀다. 주변 고구려와 적으로 있었던 나라들, '연나라'와 '백제'이다. 그는 이미 연나라도, 백제도 전쟁을 통해 이미 승리를 거둔 후 완전히 고구려에 종속시키지 않고 전쟁의 재발 방지 목적의 최소한의 것만 취한 채 이전 자주국가로서의 지위를 그대로 두었다. 당초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고구려의 무기도 꾸준히 개발해 주변 국가에서 이미 인정해 준 터다. 그렇다고 모든 정복국가를 그대로 두지는 않았다. 여러 이민족에 둘러싸여 있는 고구려의 특성상 한쪽에 병력을 전력 투입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멀리 신라의 구원병 요청에 기마병 5만 명을 파견한다. 대단한 위세다. 기마병 5만이면 보병 50만에 맞먹는 병력이다. 후연과의 전쟁도 지난날 고구려가 연나라에 당한 치욕을 씻는 설욕전의 성격이었지 후연을 멸망시켜 복속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는 데 더 무게를 둔다. 저자는 여러 정황을 두루 살핀 뒤 그가 목표로 삼은 것은 영토가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이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에 따르면 광개토대왕은 영토를 무한정 넓혀 유일무이의 국가가 되는 것보다 여러 국가들이 공존하는 국제세계의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강한 국가를 원했다."(p.26)

 


 

마지막 장에 우리도 '노예 해방'의 미국 대통령으로 잘 알고 있는 링컨이다. 독자가 앞서 어렸을 때 위인전으로 읽었다는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이다. 저자는 제목으로 「현실과 정의 사이, 고집스러운 양심의 선택」이라고 붙였다. 다른 장에서도 모두 달린 해시태그로는 #남북전쟁 #시빌워 #노예제도 #메리토드 #공화당 #남부연맹 #노예해방선언 #게티즈버그연설 #로버트리 #율리시스그랜트 #존윌크스부스 #수정헌법제13조 를 채택했다. 링컨에 대한 책과 영화 등 여러 차례 읽고 보아서 이미 해시태그만 보아도 링컨이 떠오를 만큼 우리에게는 익숙하고 위대한 대통령이다. 우리에게 위대하다는 것은 인권 차원의 노예해방 선언을 했기 때문이고 다른 해시태그 내용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이 독리한 지 채 100년도 안 된 신생국가로서 유럽의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를 모색하는 처지였을 때이니만큼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이 썩 클 때의 이야기는 아니다. 노예 제도와 남북 전쟁은 사실 인과 관계도 없다. 다만 노예 해방을 말하는 링컨과 남부연합 기득권자들의 대립으로 남북 전쟁이 일어났을 뿐이다. 남부 기득권자들은 대부분 대규모 농장주들이며 이들은 노예 없이 농장을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을 우려해 링컨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관련 저자 이영은 "노예 해방 선언으로 그 어떠한 형태의 노예제도도 부정했던 링컨은 정치적 소신과 남북전쟁의 명분을 달성하려면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실질적인 정책과 법이 통과되어야 했다. '노예'라는 개념 자체를 미국에서 허용할 수 없다며 링컨은 헌법 수정을 요구했다. 북부 연방에는 노예제도를 찬성하지만 남부연맹엔 붙지 않은 경계주들이 있었다. 경계주 출신의 의원들은 당연히 노예제 폐지를 반대하고 있었고, 북부라고 해서 북부연방의 의회가 노예제 폐지에 합의를 도출한 것은 아니었다. 링컨은 온건파 정치인이었다. 링컨 개인적으로는 흑인들의 참정권도 보장하고 싶어 했지만 지나치게 과격한 정책을 밀고 나가다가는 노예제 폐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링컨은 반대파들을 설득하기 위해 점진적 노예제 폐지에만 집중했다. 링컨의 정치적 중재와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의원들의 끈질긴 투쟁 결과 1864년 4월 8일 헌법 수정안이 상원의회에서 통과되었고 1865년 1월 31일 하원의회에서도 통과되었다. 노예제에 관해 언급되어 있는 제13조를 수정하여 노예제 폐지를 미국인들이 가장 숭상하는 헌법에 명기하도록 한 것이다. "노예제도 또는 강제 노역 제도는 당사자가 정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면 미국 또는 그 관할 하에 속하는 어느 장소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미국 수정헌법 제13조)

 


 

역사학자들은 백년전쟁을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계기를 마련한 전쟁이라고 평가한다. 중세시대 프랑스는 ‘프랑스인’이라는 민족의식이 약했는데 영국과 백 년간 싸우며 민족의식을 각성했다. 잔 다르크가 성녀로 활약하면서 프랑스인들은 스스로 신의 은혜와 축복을 받은 공동체적 결속력을 다졌다. 잔 다르크 이전엔 경제권과 영토 빼앗기 싸움에 불과했던 귀족과 왕족들의 다툼이 그녀의 등장으로 ‘성전(聖戰)’으로 바뀌어 피지배층이라 할지라도 목숨 걸고 싸워야 할 명분이 생겼다. 잔 다르크 사후로도 샤를 7세의 프랑스가 계속 승기를 주도할 수 있었던 건 이미 잔 다르크가 많은 프랑스 영지들을 수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프랑스인들의 정신 속에 종교적 테두리로 감싼 민족의식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영지와 영토는 언제든 뺏겼다 빼앗겼다 할 수 있지만 뿌리 깊게 내린 정신적 무장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잔 다르크가 만들어 놓은 정신적 밑거름이 있어기에 샤를 7세의 군대 개혁과 유능한 지휘관들의 전술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p.335)

- 「성녀로, 마녀로, 민족의 아이콘으로, 잔 다르크」 중에서

 

저자 : 이영

 

고려대학교에서 사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옛날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기 위해 블로그, 브런치에 다양한 글들을 업로드하고 있으며 현재 구독자가 20만 명이 넘는 ‘역사돋보기’ 채널을 운영 중이다. 역사는 오감으로 체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직접 역사적 현장을 답사하기도 하며, 박제된 과거 사실들을 그저 지식으로 채우기보다는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들을 역사 속에서 찾으려는 해석적 관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프로그래밍을 담당하였고 최근에는 영상 제작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도전하고 있다. 역사를 소재로 경계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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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란 무엇인가 - 법과 제도로 본 돈의 흐름
정시몬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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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돈과 법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돈벌이‘를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어쩌면 인간 모두의 꿈일지도 모르지만 현실로 드러난 예는 많다. 과연 행복한 돈벌이는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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