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섬에 꽃비 내리거든
김인중.원경 지음 / 파람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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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신부님과 시인 스님의 예술로 어우러짐은 우리 문화의 격을 높이고, 맑고 순수한 영혼의 교감은 사회적으로도 선하고 큰 영향을 준다. 이 책은 이들의 만남과 기쁨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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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섬에 꽃비 내리거든
김인중.원경 지음 / 파람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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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간 화합이라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종교라는 게 믿음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바꾼다는 일이 쉽지 않으리란 추측은 쉽게 할 수는 있다. 더욱이 종교에 따라서는 자신 이외의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율도 있으니 타 종교와의 화합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종교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말라는 계율이 타 종교와의 화합을 막기 위해 전해오지는 않았을 듯하다. 더욱이 인류의 삶을 이끌어온 위대한 종교들을 나쁘다고 말할 입장은 못 된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는 버리지 않더라도 타 종교인들을 배척하거나 죄악시 하지 않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뿌리는 같다고 들었는데 무려 1,500년 가까운 세월을 서로 인정하지 않고, 전쟁을 벌이고... 죽고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으니 종교가 인간들의 삶을 평화롭게 이끌어야 하는 역할이 맞나 싶기도 하다. 비종교인인 독자가 보기에는 서로를 죽이는 데까지 이르러서야 바람직한 믿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는 가톨릭 신부와 불교의 스님이 예술로 화합하고 교감하는 본보기가 되는 아름다운 만남을 엮은 책이다. 그림 그리는 김인중 신부와 시 쓰는 원경 스님이 시화집을 냈다. 이는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예술로서는 하나됨을 보여주고 있어, 의미가 크다. 김인중 신부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서양 특히,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이미 세계적 예술가로 탄탄한 명성을 쌓고 특별한 이력도 갖고 있다고 한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수상과 이력을 쌓은 분이다. 원경 스님 역시 출가 후 조그마한 암자에서 수행하는 중이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예술하는 사람이나 해당 종교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분들이라 하니 독자의 예술과 종교에 대한 부족함을 탓해야 할 것 같다.

 


 

독자가 짧은 지식으로 '시화집'으로 표현했지만, 이미 화중시 시중화(畵中詩 詩中畵)라고 예부터 전해오는 그림과 글이 함께 있는 책이다. 동서고금의 많은 선인이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는’ 시와 그림의 일체를 찬양했다고 한다. 문학과 미술로 나뉘어졌지만 당초 이는 예술이라는 한 가지에서 태어나 다른 줄기로 뻗어간 차이일 뿐 뿌리나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적 측면에서는 서로 보완해주는 성격도 강하다. 예술가의 예술관이 서로 같다면 한데 어우러져 멋진 예술 작품의 가치를 높일 것 같다. 이 책을 보고 읽다보면 예술이라는 게 인간이 편의상 나눈 것일 뿐 뿌리가 같다는 게 저절로 이해된다. 예술의 다른 장르가 함께 어우러질 때 아름다움의 크기도 더욱 증폭될 것이란 말을 실감나게 해준다. 서로 보완해주고 상승 작용을 일으켜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는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출판사 측의 책 소개글에 따르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인 김인중 신부와 승려 시인 원경 스님이 종교 간의 화합과 사상적 융합으로 반목과 갈등으로 점철된 이 시대 속에서 자애의 덕목을 구현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 김인중 신부는 ‘꽃의 시인’ 원경 스님의 시 세계에 깊이 공감했고, 원경 스님은 ‘빛의 화가’ 김인중 신부의 구도자적 삶에 존경과 섬김으로 그림 곁에서 마음의 시를 썼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히 알려진 이해인 수녀의 찬사가 담겨 있다. 김인중 신부와의 자매적 우정이 담겨 있는 글이 곱기만 하다. 도종환 시인의 원경 스님을 향한 찬사도 아름답다.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은 추천의 글을 통해 “매우 희귀하며 아름다운 책이다. 종교, 예술, 출판의 영역을 떠나 우리 시대의 큰 자산이라 할 만하다”라고 평했다.

 


 

김인중 신부는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일찍이 국전과 민전을 휩쓸었으나 돌연 유럽으로 건너가 사제의 길을 걸었으며, 유럽에서는 사제였음에도 화가로서 이름이 알려진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라고 한다.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등과 이름을 나란히 하고 피카소와 세라믹 작품을 공동으로 전시할 정도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나, 귀국해 돌연 카이스트 초빙석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것까지 감안하면 그의 이력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대표적인 고딕 양식 건축물인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을 비롯해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설치된 성당과 일반 건물은 전 세계 45곳에 이른다고 하니 가히 예술가로서도 대단한 이름을 알렸다. 프랑스 혁명 이후 어떠한 전시회도 열리지 않았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품을 거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또한 그의 이력만큼이나 독특하다. 납선을 이용해 모자이크 방식으로 유리 조각을 이어가는 게 일반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방식인 데 반해, 그는 붓과 큰 나이프 등으로 판유리 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 780도로 구워낸다.

그의 작품은 비구상(그의 표현대로라면 추상화)이다. 존재의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은 시공을 초월해 모든 영혼을 달래는 데 의미가 있으며,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향해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므로 비가시적인 신비의 세계를 담아내기 위해서다. 개별 작품의 제목은 없다. ‘무제(無題)’가 제목일 순 있겠다. 자신의 작품은 가슴에 선뜻 다가오는 아름다운 노래처럼 어떠한 주장도 표방하지 않고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봉헌일 뿐이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글을 썼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2018년 타계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저자이며 미술사학자인 웬디 베케트 수녀는 “만일 천사들이 그림을 그린다면 그들의 예술은 틀림없이 김인중의 그림과 같을 것이다”라고 찬사를 보냈으며, 프랑스 미술사학자인 드니 쿠타뉴(Denis Coutagne)는 김인중과 세잔, 마티스, 피카소를 비교한 저서 『Kim En Joong artista della luce』에서, “김인중의 장엄하고 아름답고 신비한 독보적인 조형세계는 다른 거장 화가들에 버금가는 수준”이며, “세잔, 피카소를 잇는 빛의 예술가”라고 극찬했다.

그의 작품을 실물로 접한 원경 스님은 “상승하는 불꽃처럼 일렁이고 산곡에 내려앉은 새벽안개처럼 고요히 스미는가 하면 풀꽃을 건드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오묘하고 섬세한 선율을 보여준다. 때론 장엄하고, 때론 숭고하며, 때론 온화하다. 언뜻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의 시구처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 뭇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고 했다.

‘빛’이 김인중 신부와 가까이 있는 언어라면 ‘꽃’은 원경 스님이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이다. 2021년에 출간한 시집의 제목이 『그대, 꽃처럼』이기도 하거니와 그의 시편 곳곳에는 꽃이 피어나고 스러진다. 이에 대해 김인중 신부는 “경직된 남성들 사회에서 꽃이 화두에 오르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으니 스님은 ‘꽃의 대부’라고 생각하며, 그것만으로도 단순하고 깊은 시봉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이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인 것은 여러모로 합당하다 하겠다.

이 책에 수록하고 있는 원경 스님의 시편들은 대부분 김인중 신부의 작품을 대하고 떠오르는 이미지와 영감을 포착해 쓴 것이라고 한다. 팔순이 넘도록 고독과 고난의 수행을 이어온 수행자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화장세계(華藏世界)를 가슴에 품고 있는 그이기에 종교의 구분 따위는 한갓 실오라기에 지나지 않는다.

 


 

원경 스님의 시편들에는 꽃향 못지않게 그윽한 차향이 번진다. “지극한 차 맛과 참사람은 서로의 성품이 닮아있다. 찻잎의 푸른 생기를 좋아하여 그 싱그러움을 닮게 되고, 물의 맑은 기운을 좋아하게 되어 청정함을 닮게 되며, 천연의 맛을 우려내는 중도를 깨닫게 되니 그러는 사이 어느덧 거친 악취미의 경향은 자연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 차에 대한 그의 철학이다. 도종환 시인은 해설에서 “원경 스님에게는 차와 도가 둘이 아닙니다. 차를 마시는 일 그 자체가 도를 알아가는 일입니다”라고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그대 입김으로

나의 가슴에 숨결을 주오

 

천지의 바람으로도

가슴은 숨가빠 하나니

(중략)

그대여

바라옵건대

나의 천지가 되어

숨결을 주오

- 「그대 나에게 숨결을 주오」 부분

 


 

그대는

빛의 혼을 그리는데

 

그리움 그리움 그리다 그리다

화룡점정에 이르러

쓰러져 잠드시리

 

잠 못 드는 한밤의 꿈을 꾸다가

새벽에 드는 비울음처럼

그리 쓰러져 울다 잠들면

 

바람도 쓰다듬듯 달래며

새날을 맞으리

- 「혼빛」 전문

 


 

저자 : 김인중

 

1940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스위스 프리부르(Fribourg)대학교와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62년 국전에서 특선을, 1965년 제1회 민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파리 장 푸르니에(Jean Fournier) 화랑의 개인전 이후 전 세계에서 200여 회의 전시회를 개최해왔다. 1974년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줄곧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하다가 2022년 한국에 돌아와 현재 카이스트(KAIST) 초빙석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공훈 훈장인 오피시에(Legion d'Honneur Officier)를 수훈했으며, 2021년 12월 스위스 유력언론 르 마탱(Le Matin)은 김인중을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선정하고,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를 뛰어넘는 화가라고 평가했다.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가톨릭 아카데미 회원으로 추대됐으며, 프랑스 중부 도시인 앙베르에 시립 ‘김인중미술관’이, 이수아르시에 ‘김인중 상설전시관’이 설립됐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전시회가 열리지 않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개최했으며,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을 비롯해 독일과 이탈리아·스위스 등 전 세계 45개소에 작품이 설치돼 있다. 세계적인 미술사가 웬디 베케트 수녀는 “만일 천사가 그림을 그린다면 그의 그림과 같을 것”이라고, 프랑스 미술사학자인 드니 쿠타뉴는 김인중을 “세잔, 피카소를 잇는 빛의 예술가”라고 극찬했다. 2001년 KBS는 다큐인사이트 ‘천사의 시’ 편을 통해 김인중 신부의 삶을 소개했다.

 

저자 : 원경

 

어려서부터 사유적 성향이 짙어 ‘투쟁 없는 사랑과 자유의 삶’이 무엇인가 의문을 품다가 1982년에 출가의 길을 선택했다. 1984년 조계총림 21교구 승보종찰 송광사에서 현호 스님을 은사로 득도, 전통적 교육기관인 강원에서 사집을 수학했다. 1987년에 범어사에서 일타 대화상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고, 통도사 보광선원에서 선방 수행 후 제방 선원에서 성만했다. 1990년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하고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 LA 고려사 주지를 지냈으며 현재 북한산 심곡암 주지를 맡고 있다. 조계종 15대 중앙종회의원과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중앙승가대학 법인 처장을, 최근에는 조계종 사회부장직을 역임했다.

‘불심, 자연, 예술이 하나’ 되는 염원을 담은 산사음악회를 전국 사찰 최초로 시작해 새로운 문화적 반향을 일으켰다. 불우한 이웃의 배고픔을 해소해주기 위해 보리 스님이 21년 동안 운영해오던 탑골공원 무료급식소가 중단될 위기를 맞자 그 맥을 이어받아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사회복지원각(원각사 무료급식소)을 운영 중이다. ‘배고픔에는 휴일이 없다’는 슬로건 아래 연중무휴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외된 노인 계층을 위한 점심 한끼 봉사를 하고 있다. 시집 『그대, 꽃처럼』을 통해 문인협회 회원으로 등단하였으며, 산문집 『그대 진실로 행복을 원한다면 소중한 것부터 하세요』와 『밥 한술 온기 한술』을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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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슬 수집사, 묘연
루하서 지음 / 델피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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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밤이슬 수집사, 묘연』은 몽환적이며 교훈적이다. 저자 루하서는 우리의 전래동화 같은 순수한 감정으로 소설을 끌어간다. 삶과 죽음의 세계를 드나드는 인물로서 신비롭고 몽환적 분위기의 세상을 오가는 동물이라면 단연 고양이가 으뜸이다. 더욱이 고양이는 야생성을 유지하면서도 사람과는 친숙하다. 요즘 반려동물 붐에 고양이가 1위를 다투는 이유다. 묘연은 낮에는 고양이, 밤에는 사람으로 변하는 인물로 천사 같은 이미지로 저자가 창조한 캐릭터다. 묘연이 하는 일 역시 신비롭다. 고양이는 낯선 이에게 살갑지는 않지만 유연하고 악의적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기에 반려 동물에 안성맞춤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야생성을 잃지 않은 것이 신비로운 인물을 의인화할 때 적합한 이미지다. 밤에 하는 일은 '밤이슬 수집사'다. 조금은 엉뚱한 직업이지만 하는 일은 신비감과 교훈을 준다.

묘연은 죽음에 처한 인간들을 찾아가 그들에게서 밤이슬을 모은다. ‘밤이슬'은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과거와 내밀한 사연의 상징물이다. 묘연이 하는 일은 그것을 수집하는 일이다. '수집사'라는 직업 또한 저자의 해석이 붙는다. 모은다는 의미의 집(集), 집사 등 직업에 붙이는 사(士)면 '집사'다. 집사는 대체적으로 집안 일을 거드는 사람들이다. 외국의 귀족들은 큰 집안 일을 담당하는 '집사'라는 직업을 따로 두었으며,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일부 양반집에 집사가 있었던 것으로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대체로 문자를 조금 알고, 계산 등에 밝은 중인계급에서 뽑힌다고 들었다. 묘연은 집사들이 모여 사는 미다스 대저택의 우두머리 '수'(首) 집사이다.

 


 

이 작품은 저자의 전지적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주인공 이안은 아버지의 행방불명 이후 어려워진 생활로 비뚤어진 채 살아오다 홀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빚과 우울증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노신사. 그는 이안에게 3개월의 집사직을 조건으로 30억 원이라는 거금을 제안한다. 느닷없는 노신사의 출현과 사기인지 횡재인지 모를 수상한 거래를 자살을 시도했던 이안으로서는 미심쩍지만 마다할 이유가 없을 터, 수락한다. 이렇게 이안은 자살하려다 말고 미다스 저택의 신입 집사가 된다. 이안이 맡은 특별한 일은 묘연을 보필하는 것. 낮에는 고양이로 지내다 밤이 되면 묘령의 여인으로 변하는 ‘묘연’의 일을 수행하며 도울 것을 제안받았다.

간단한 일에 거금을 준다는 것이 꺼림칙하지만 저자가 삶과 죽음에 대해 사색하고 사유한 결과라고 생각되면 문제될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이젠 당초 제안한 대로 수집사 묘연의 일만 열심히 도우면 될 일이다. 저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통해 인간은 살아 있을 때는 미처 모르다가 죽음이 목전에 닥쳤을 때에야 느낄 수 있는 귀한 감정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한 인간의 죽음을 앞두고 과연 어떤 감정이 들까? 어떤 생각을 할까?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한다면 결코 가볍거나 소홀히 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공감이 간다. 많은 이들이 회환의 눈물도 흘릴 것이다. 잘못 살아온 후회도 할 것이다. 또 아직 못다 이룬 일에 대해 안타까운 감정의 회한도 있으리라. 그들의 눈물의 의미는?

 


 

이 책은 판타지적 요소로 무장하여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스토리를 이끌어 간다. 몽환적 판타지 소설로서 낮에는 고양이, 밤에는 사람으로 변하는 ‘묘연’이란 신묘한 인물이 중심이 된다. 표제어가 압축적이다. 책을 드는 순간부터 독자들은 삶과 죽음이 중첩되는 새로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게서 잠시도 떨어지기 힘들다. ‘밤이슬 수집사’들이 만나는 인물들은 이제 곧 저 세상으로 옮겨갈 사람이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게 뭘까? 궁금하지 않을 독자는 없을 것이다. 기발하면서도 감동적인 이 책이 탄생한 이유다. 기발한 직업뿐만 아니라 저자는 새로운 장치들도 개발했다. ‘미다스 대저택’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부자로 이름난 프리지아의 왕에서 빌려온 용어인 듯하다. 손 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화시킨다는 내용을 차용한 것 같다. 상징적 의미로. 또 이와 반대로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가는 ‘백로 징벌소’와 같은 설정은 저자가 이 소설을 구상할 때 많은 고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도 가능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만들어낸 단어들이 꽤 있다. 상징적이지만 '이슬'은 맑고 곱다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노신사(할아버지)가 이슬에 대해 이안에게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생은 때론 길고, 때론 짧기도 하지. 생이 길어서 후회가 되는 일도 있고, 짧은 생이라서 후회가 남기도 해. 그래서 사람들은 끝이라 생각한 순간에 살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이 떠오르게 되는 거야.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흘리는 후회의 눈물, 그것을 우리 집사들은 '이슬'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이슬을 얻어 오는 것이 '미다시 대저택' 집사의 일이다."(p.47)

 

 

'루인'이란 단어도 등장한다. 눈물 루(淚), 사람 인(人)'이라는 의미다. 글자 그대로 '눈물 흘리는 사람'을 뜻한다. 왜 루인이 등장할까? 당연히 이슬을 얻어 오는 집사들이 만날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2장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다 - 눈물 ‘루’, 사람 ‘인」에서 친절한 설명이 있다. 묘연을 따라나선 이안과 대화 중이다.

"혹시 자살 예정이라는 거 말고 자살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 수 있나요?"

"그건 왜 묻지?"

"여기까지 왔는데 루인이 죽는 건 말려야죠."

"이안 집사, 혹시 계약서 제대로 숙지 못했나?"

묘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읽긴 제도로 읽었는데···."

 

"그 정도의 나약한 의지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가!"

묘연은 냉철한 눈빛으로 엄격하게 말했다.

"우리는 매번 이렇게 죽음과 삶을 마주하게 될 거야. 그 경계선에서 삶을 선택하든, 죽음을 선택하든, 그건 오롯이 루인의 몫이다. 모든 사람을 우리가 살릴 순 없어. 사자들의 업무를 우리가 가로채는 건 저승과 이승의 암묵적인 협의를 깨는 일이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 집사들은 더 이상 이슬 수집 임무를 할 수 없게 된다."(p.87~88)

 


 

'천수록'도 재미 있는 표현이다. 원래 있는 단어인지, 저자가 만들어낸 말인지 독자는 알 수 없지만 뜻은 짐작이 간다. 특히 제목에 들어 있어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다는 뜻이다. 네 번째 장(章)의 제목이다.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 - 천수록」. 이안의 궁금증을 묘연이 설명해준다. 책에 따르면 세상에 있는 병은 수만 가지도 넘는다. 생각보다 병이란 건 예측이 어렵다. 2달 정도밖에 못 산다고 했던 시한부 환자가 2년이 넘도록 살기도 하고, 반대로 가볍게만 생각했던 병 때문에 하루아침에 돌연사하기도 한다. 병사 같은 경우에는 저승사자가 아닌 천수 선생님이 루인의 죽음을 관리한다.

"천수 선생님이요? 생전 처음 들어봐요. 저승사자는 워낙 많이 들어봤지만."

"예로부터 신선은 고통이나 질병이 없으며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로 전해 오지. 천수는 하늘 '천', 목숨 '수' 하늘이 부여한 수명이라는 뜻이다. 그 하늘이 부여한 수명을 정해 주시는 분이 천수 선생님이시고."(p.154)

묘연의 말대로라면 인간은 중간에 변수만 없다면 정해진 수명대로 삶을 살다가 떠난다. '천수를 누린다'는 말은 하늘이 정해준 만큼 생을 다하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병은 저승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운명에 예기치 않게 끼어든 불청객 같은 것이라고 묘연은 설명한다. 죽을병에 걸리는 것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발병을 하는 것이라서 다른 누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피하기 어렵다. 저승에서도 이 부분을 제일 난감하게 생각한다는 말도 묘연은 덧붙인다. 천수 선생님도 병은 이승에서의 돌발 상황이기에 모두 다 완치시킬 수 없다고 강조한다. 다만 천수 선생님이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친다고도 한다. 환자의 기준은 '살고자 하는 의지'와 약간의 '운'임도 말해준다. 즉, 병에 걸려 자신의 삶을 더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와, 또 하나 운은 이승의 '의사'라고 표현한다. 의사를 '이승의 신'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말한다.

 


 

새로운 단어가 하나 더 눈에 띈다. '백로 징벌소'다. 이안을 여기 데려온 할아버지 집사인 노신사가 백로 징벌소에 들어갔다. 업무 중 과실이어든지 중대 죄는 아니라고 한다. 그곳을 할아버지를 구하러 묘연과 이안이 간다. 책의 7장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 - 백로 징벌소」이다. 이곳은 죄를 지은 자들이 갇혀 있는 곳이다. 백로 어른이란 묘연의 부탁이라 특별히 지나갈 수 있는 혜택을 준다고 생색을 내듯 통과를 허락한다. 백로는 그곳의 지키는 총책임자인 것 같다. 분위기가 감옥인 만큼 안과 밖의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부로 들어서면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처럼 생긴 길이 나온다. 음산한 비명이 아우성처럼 계속해서 들린다. 처음 들어간 사람은 혼이 나갈 지경이다. 길 양쪽으로 방들이 이어져 있는데 모두 죄수들이 갇혀 있다. 할아버지가 갇혀 있는 곳은 10739번 방. 무려 10000번이 넘은 방까지 걸어들어갔다. 저자의 묘사 능력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결국은 묘연의 재능과 이안의 순수함이 합쳐져 탈출에 묘연이 크게 다쳤지만 성공한다. 이 대목에선 이안과 묘연의 인간적 감정, 사랑이 엿보인다.

 

긴 시간이 흘러서 묘연이 겨우 잠이 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조용히 처소를 나섰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실은… 너까지 잃게 될까 봐… 겁이 났어.”(p.259)

 

저자 : 루하서

 

하늘빛 바다가 보이는 고즈넉한 동네에서 태어났다. 현실에 순응하느라 천성에 맞지 않은 회계를 전공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을 이끄는 건 여전히 글이 전부라 늦게나마 작가가 되었다. 무수한 감정, 무한한 상상, 그리고 영원한 꿈을 담아 글을 쓴다. 필명은 일상에서 만나는 다정한 위로를 담았다.

가족, 글, 고양이. 가족 이름의 ‘하’, 글 ‘서’, 고양이 이름의 ‘루’ 또 하나는 눈물 ‘루’와 축하하는 글 ‘하서’라는 뜻도 있다.

소중한 추억 상자 속, 고이 담겨 있던 눈물의 페이지가 이제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축복을 전하는 한 권의 책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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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역사 - 울고 웃고, 상상하고 공감하다
존 서덜랜드 지음, 강경이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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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로빈슨 크루소』이란 소설 작품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사다준 50권짜리 〈세계문학전집〉에 들어 있는 책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50번 책에 매겨져 있는 번호 중 『로빈슨 크루소』는 15번째 책이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해 단 한 번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완전히 몰입했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도 걸렸다. 여름 방학 기간이어서 집에서 읽었는데 어머니가 점심 먹고 보라고 독촉했는데도 결국 다 읽고 난 뒤에야 손에서 책을 놓았다. 물론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나 거의 저녁 시간이 되어서 점심은 걸렸다. 그만큼 재밌었다. 사실 식사를 거르면서 책을 읽은 적은 그 이후로도 없다. 책의 제목도 『로빈슨 크루소』였고 소설 속 주인공이 노예상이었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그때는 무역상이라고 책 서두에 얼핏 나왔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이후 독자에게 가장 좋아하는 책, 소설로 남아 있다.

이 책 『문학의 역사』에서도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다. 독자의 관심이 끌리지 않을 수 없다. 문학의 역사를 다루는 책은 몇 권 건성으로 읽었지만 한결같이 문학의 기원이라고 그리스·로마 신화를 들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는 시다. 이 두 시는 강력한 두 세력,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벌어진 오랜 전쟁을 다룬다고 이 책은 설명을 시작한다. 고고학이 밝혀낸 역사적 사실이다. 책에 따르면 호메로스는 '신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을 창작했다. 시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모험을 한다. 한번은 그의 선원들과 함께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에게 붙잡혀 동굴에 갇힌다. 이 괴물의 외눈은 이마 가운데에 있다. 그는 배가 고프면 동굴에 붙잡힌 포로 한 명을, 주로 아침 식사로 잡아먹는다. 영웅들 중 가장 영리한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를 술에 취하게 한 뒤, 그의 눈을 찔러 장님으로 만들고 선원들과 함께 탈출한다. 이 신화의 진실은 외눈에 있다고 저자 존 서덜랜드는 말한다. '문제의 양면'을 볼 수 없거나 보지 않으려는 사람의 상징적 의미로 저자는 해석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조금은 원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신화는 그것이 창조된 시대만큼이나 오늘날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진실의 조각을 항상 품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서사시의 시작이 시대를 훨씬 거슬러올라가 BC 2,000년께 지어진 『길가메시』로 바뀌었다고 한다. 점토판의 글자를 해독해 밝혀진 사실이다. 그러나 서양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 인정하지 않고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최근 『길가메시』로 바뀌었다.

저자는 이 책을 모두 40장(章)으로 나뉘어 서술하고 있다. 『문학의 역사』라는 표제어 옆에 「울고 웃고, 상상하고 공감하다」라는 부제도 붙어 있다. 1장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독자가 가장 좋아하는 책 『로빈슨 크루소』가 나온다. 책 이야기는 아니지만 〈BBC 라디오〉의 최장수 인기 프로그램이자 BBC 월드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에서 청취할 수 있는 〈데저트 아일랜드 디스크〉에서 출연자들에게 묻는 두 가지의 고정 질문이 있다. 첫째, 사치품 하나를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와 또 하나의 질문은 성경 외에 단 한 권의 책을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라고 한다. 단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이미 섬에 있다. 아마 먼저 섬에 머물다 청산가리 알약을 선택한 조난자가 놓고 간 듯하다고 선택을 독자들에게 슬쩍 던진다.

이를 전제로 던진 질문은 책의 시작 문장을 설명하고 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고립되어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상황에서 책을 단 한 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는가?" 저자의 질문 속에 로빈슨 크루소가 연상된다. 유도를 위한 질문일까? 저자가 50년째 듣고 있는 이 방송의 초대 손님은 외로운 여생의 동반자로 위대한 문학 작품을 선택한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작가는 제인 오스틴이다. 수천 회에 이르는 방송에서 거의 모든 초대 손님은 자신이 이미 읽은 작품을 선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반응에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추출해낸다. 첫째, 우리는 분명 문학이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여긴다. 둘째, 문학을 '소비'한다고들 하지만 접시 위에 놓인 음식과 달리 우리가 소비한 뒤에도 문학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로빈슨 크루소』를 다루는 장이 아닌 곳에서도 자주 인용한다. 이유는 독자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영국 최초의 소설'이라는 점 때문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1719년 첫 출간 당시 독자들에게 허구가 아니라 실제 인물의 자전적 이야기로 다가갔다고 한다. 표지부터 저자 대니얼 디포의 이름 대신 '로빈슨 크루소'와 '자신이 직접 쓴'이라는 문구를 내세웠다고 저자는 밝힌다. 게다가 그처럼 섬에 고립된 선원의 실제 이야기가 몇 년 전 출간돼 인기를 끈 터, 영국 문학 최초의 소설 작품은 이처럼 사실주의의 특징 역시 보여줬다고 귀띰한다. 이 책 『문학의 역사』는 이런 소설이 자본주의와 나란히 등장한 것이 우연은 아니란 점을 강조하면서, 고립된 채 자신의 힘으로 재산을 일군 로빈슨 크루소는 이른바 '호모 이코노미쿠스'이기도 했다고 해석한다.

저자는 영국의 문학교수로 이미 수십 권의 저서로 명성을 쌓았다고 한다. 저자는 영문학 전공자가 아니라 일반인을 겨냥한 문학 이야기이자, 영국 중심의 문학사를 이 책 『문학의 역사』로 풀어냈다. 디포, 오스틴, 브론테, 디킨스, 울프 등 낯익은 작가는 물론 이름만 들어본 서사시 '베오울프'나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등도 그 특징을 뚜렷이 포착해 문학사적 의미를 알기 쉽게 전하고 있다. 모두 40개의 각 장은 개별 작가·작품만 아니라 문학이 무엇이고, 독자가 어떻게 달라졌으며, 영화의 각색은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 그리고 검열·문학상·저작권·베스트셀러 등을 주제로도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썼다.

영국과 미국의 비교도 재미있다. 18세기 초 최초의 저작권법이 생긴 영국과 달리 미국은 19세기 말에야 관련 국제협정에 가입했다. 그전까지 미국에서는 영국 등의 작품을 저자 허락없이 출판한 '해적판' 책들이 많았다. 또 미국이 19세기 말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을 도입한 반면 영국의 출판업계는 1970년대 중반까지도 이를 거부했다.

 


 

앞서 잠깐 살폈지만 문학의 역사에서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근원적인 질문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질문 속에는 문학을 둘러싼 수많은 궁금증과 논쟁이 내포되어 있다. 책에 따르면 문학의 기원부터 변화 과정, 역할, 가치 또는 효용성, 형태, 방식, 미래 등. 이들 중 한 가지만 선택해 서술하더라도 엄청난 분량의 글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문학의 세계는 드넓고, 복잡하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때문에 문학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흥미를 돋우는 유효적절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써내려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대 언어로 쓰인 서사시부터 최신 베스트셀러까지, 그리고 시대별 문학에 영향을 준 여러 분야의 사상적 흐름과 사건들, 작가의 성장 배경과 사적인 이야기, 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 등등을 꿰뚫어봐야 할 뿐만 아니라 주요 문학 작품을 직접 읽어 자신만의 관점을 명확히 정립해야만 문학의 역사를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면서 문학 관련 책을 스무 권 이상 저술하고 부커상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 저자 존 서덜랜드는 이 책에서 당대 문학의 전개 양상과 변화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한편 일반론적 관점에서의 접근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문학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연결 통로가 되어준다는 게 저자의 문학관이다. 따라서 저자는 최고의 문학은 세상을 단순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정신과 감수성을 확장시켜 복잡성을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한다. 문학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 작품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중요한 맥락을 짚어주는 문학의 역사를 개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오늘날 책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갖는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문학의 역사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 지점은 1789~1832년이다. 이유는 ‘낭만주의’다. 키츠, 워즈워스, 바이런, 콜리지, 셸리 등이 주도한 낭만주의는 프랑스 혁명과 동시에 일어났으며, ‘이데올로기’를 중심에 둔 최초의 문학 운동으로 여겨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문학이란 무엇이고, 문학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를 광범위하게 재정의하려 했다. 따라서 낭만주의는 문학을 쓰고 읽는 방법을 영원히 바꾸어놓은, 일대 혁명과도 같은 사조였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의 ‘변화’는 이 책의 기저에 놓인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20세기 이후의 문학은 장르의 세분화와 매체의 다양화, 국경 없는 세계문학, 독서 대중의 영향력 확대와 적극적인 참여 등으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문학 작품의 각색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더 가속화하고 있는데, 새롭게 해석되고 구성되는 영화나 드라마, 디지털 콘텐츠가 원작에 어떤 효과를 가져다주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몇백 년에 걸친 통신의 성장과 국제 무역, 특정 ‘세계어들’의 지배는 작가와 독자가 문학에 접근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작가는 전 세계의 독자를 위해 글을 쓰고 독자는 작가와의 대화, 독서 모임 등 새로운 소통의 길을 갈망하게 되었다. 한편 출판 산업은 문학 소비자인 독자의 취향을 최대한 알아내기 위해 정밀한 시장조사에 많은 비용을 들인다. 세계적인 주요 문학상이 문학의 발전과 독자들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상업화를 지향하는 대중문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번역본이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까지 완벽하게 담아낼 수 있는지 등도 흥미로운 논쟁거리다.

책에는 일부 미국 문학과 카프카 등의 부조리 문학, 남미의 마술적 사실주의, 현대의 판타지 문학이나 팬픽, 모옌이나 하루키 같은 아시아 작가들 얘기도 나온다. 시대는 바뀌고 필사본·인쇄본·전자책 등 형태도 달라질망정 문학의 힘과 대중의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저자의 낙관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이 책은 문학의 현재와 과거뿐만 아니라 문학의 미래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세 가지의 기본 조건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문학의 범람이라는 환경적 변화, 다감각으로 즐기는 문학의 향유 방식, 저자와 독자의 구분이 사라지고 인터넷 ‘팬픽’의 폭발적 성장과 같은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포장이다. 물론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그만큼 우리는 선택지가 많아졌고, 원하는 문학을 무한정 얻을 수 있다. 이것은 과연 문학에, 또는 우리에게 좋은 일일까?

변화는 피할 수 없다. 문학과, 문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과 문학 참여자들의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문학이 지닌 ‘유대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문학이 공동의 것인지도 탐색한다.

 

저자 : 존 서덜랜드(John Sutherland)

 

영국의 문학자이자 칼럼니스트, 작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근대 영문학 로드 노스클리프 명예교수로 다양한 레벨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가디언〉에 문학 서평을 쓰는 한편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쓰고 엮었다. 1999년과 2005년에는 부커상 심사위원을 맡았다. 지은 책으로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How to Read a Novel)』, 『당신이 알아야 할 50가지 문학 아이디어(50 Literature Ideas You Really Need to Know)』, 2013년에 출간되어 광범위한 찬사를 받은 『소설가들의 삶 : 294명의 삶으로 본 픽션의 역사(Lives of the Novelists: A History of Fiction in 294 Lives)』 등이 있다.

 

역자 : 강경이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좋은 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번역 공동체 모임인 펍헙번역그룹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철학이 필요한 순간』, 『절제의 기술』,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 『걸 스쿼드』, 『길고 긴 나무의 삶』, 『과식의 심리학』, 『천천히, 스미는』, 『그들이 사는 마을』, 『오래된 빛』, 『아테네의 변명』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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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조각 미술관
이스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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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마치 꿈속처럼 달콤하기도, 때로는 뱉어내고 싶은 악몽도 있지만 그 꿈속을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현실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일까. 이 소설에 그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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