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
이병일 지음 / 문학수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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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은 시인 이병일의 에세이집이다. 등단 이후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그의 문학은 시와 에세이 희곡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은 활동으로 숙성돼 왔다. 마치 맛있는 간장이 햇빛과 바람, 그리고 시간에 의해 발효되는 것처럼... 이제 그의 글 한 줄 한 줄은 영혼이 깃들어 있고, 언어는 햇빛이 비치면 '쨍' 소리나며 부설질 것 같은 잘 빚어진 도자기와 다르지 않다. 특히 자연의 생명력과 서정이 깃든 어휘는 순우리말로 표현돼 한층 멋스러움을 보여준다. 이런 그의 독창성 있는 어휘 사용은 저자 이병일의 특유의 감성과 함께 녹아 있는 시 〈녹명(鹿鳴)〉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녹명'이란 중국 고전 『시경』에 나오는 말로 사전식 풀이로는 '사슴의 울음소리'를 의미한다.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다른 배고픈 사슴을 부르기 위해 내는 울음소리란 시의 제목으로 완성됐다. 이 책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 4장(章) 〈살아 있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중 「나는 왜 동물의 언어에 집착하는가?」에서 저자 이병일은 자신의 시 〈녹명〉에 대한 언급을 한다.

 

저 흰빛의 아름다움에 눈멀지 않고 입술이 터지지 않는

나는, 눈밭을 무릎으로 밟고 무릎으로 넘어서는 마랄사슴이야

결코 죽지 않는 나는 발목이 닿지 않는 눈밭을 생각하는 중이야

그러나 벳구레의 갈비뼈들이 봄기운을 못 견디고 화해질 때

추위가 데리고 가지 못한 털가죽과 누런 이빨이 갈리는 중이야(p.223~224) - 〈녹명〉 부분

 

시인 이병일은 이 시에 대해 현대의 우리들이 이로운 정보와 먹을 것을 발견하면 숨기기 급급하고 혼자 먹기 바쁜데, 사슴은 오히려 울음소리를 높여서 "이리 와, 우리 같이 먹자"고 정을 나눈다는 점에 착안해 이 시를 완성시켰다고 말한다. 우리의 옛 서정을 사슴의 울음소리를 통해 형상화시킨 것이다.

 


 

“사소하고 시시한 아름다운 것에 매혹당하는 사람을 우리는 시인이라고 부른다”는 저자의 말로 이 에세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에는 저자가 자연과 일상에서 발견한 ‘사소하고 시시한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기억들과 단상들이 펼쳐져 있다.

책의 〈작가의 말〉을 통해 저자는 “작고 눈부신 동식물들, 눈에 보이지 않거나 아직 말해지지 않은 아름다움에 대한 엉뚱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며 “신통찮은 문장으로 아름다움이 사는 반대쪽까지 내다볼 심산이었으나 괜히 아는 척하다가 눈꼴사납게 될까 봐 차돌 같고 옹이 같은 눈으로 지구를 바라보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목숨 가진 것들의 안위를 살피는 질문이 ‘시’가 된다”(p.284)는 저자의 시론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알 수 있는 글편들을 통해 독자들은 사유와 감성의 진수를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이 에세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에는 저자 자신이 위로를 받은 대상뿐만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것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들과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저자가 말하는 “사소하고 시시한 아름다운 것”은 “여러 층위를 가진 빛이 있고 색이 있”는 ‘봄산’(p.10)일 수도 있고, “엎드린 자가 벽 너머를 생각하고 누워있는 자가 천장 너머를 보는” ‘시골집 방’(p.26)일 수도 있다. 또 “너무 깊어 아홉 자식의 눈물을 모아 쏟아부어도 다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아버지의 쇄골’(p.98)일 수도 있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칡소와 돼지를 키웠던 일, 사슴벌레와의 만남, 거미줄로 만든 잠자리채에 관한 추억들은 그 일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에게도 온기와 위안을 전한다.

꽃가루 날리는 버드나무는 불곰에 관한 상상으로 이어지고, 접붙이기에 대한 생각은 존재와 몽상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며, 시인 자신의 어린 시절과 대구를 이루는 어린 아들의 존재는 어른이 되어버린 시인을 자연과 연결해 준다. 자연과 일상에서 끌어낸 아름다움과 사유,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과 가축 또는 곤충, 벌집, 나무 같은 자연물에서 위로받은 소소한 기억들은 극적이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누구나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린다.

 


 

1장 〈숨은 위로 찾기〉에서 「팥」을 통해 팥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흰 얼굴과 붉은 얼굴을 가진 돌멩이인데, 그 돌멩이에겐 냄새와 감정이 있고, 목소리도 있다. 항상 주름으로 가득한 세상을 담고 있어 단단한 것인데, 그것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순간에 집중하는 힘을 주었다. 팥은 나를 지나 어디로 가는지 한 숟가락 떠서 씹지도 않고 목으로 넘겼는데,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건 위로였다. 목을 마르지 않게 하는 힘이었다. 어릴 적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팥죽에 대한 그리움과 팥의 의미를 함축해 보여준다.

“가장 은혜롭고 연약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주장이 없는 것들의 언어를 읽어내고 싶었다”(p.57~58)는 시인은 그러한 대상들 내부에 숨겨져 있는 저마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평소엔 보이지 않던 것들에 집중하면 아득한 환상이 보이는데 이런 상상들은 시인을 ‘나’이면서 동시에 ‘타자’가 되게 한다. 그리고 이 순간이 바로 시인에게 ‘회복의 순간’을 선사한다. 이는 이병일 시인 시세계의 중심을 이루는 ‘녹명 정신’과도 이어진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혼자만 잘사는 법을 배우는 데 익숙해진 각자도생의 시대에 시인은 굳이 ‘녹명’이란 말을 불러낸다. 은근히 녹명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치기도 한다.

3장 〈오래 달라붙어 있어도 좋을 감촉〉의 「자두와 마법에 걸린 사과나무를 생각함」이란 글에서 시인은 어릴 적 동네 자두나무에 관한 기억과 동화 〈마법에 걸린 사과나무〉 이야기, 성인이 된 후 지인의 자두나무밭에 들렀던 일을 차례차례 펼쳐놓는다. 자두 서리해 가는 아이들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쥐어뜯어 놓은 동네 아주머니와의 일화에 이어지는 동화 속 마음씨 좋은 사과나무 주인 이야기, 그리고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지인 자두밭에서의 경험은 시인의 녹명 정신이 어떻게 물꼬를 트게 되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책의 어디를 펼쳐도 시인 특유의 표현과 시적 형상화를 통해 독자들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냄으로써 감성과 아릿한 추억의 그리움을 극대화시킨다. 독자들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련한 추억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때로는 비슷한 경험의 기억을 떠올리며 조용히 지난 세월을 반추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앞서 잠깐씩 언급했지만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숨은 위로 찾기〉, 2장 〈내가 사랑하는 것들〉, 3장 〈오래 달라붙어 있어도 좋을 감촉〉, 4장 〈살아있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등이다. 1장의 각 제목에 등장하는 어휘들만 봐도 자연 속, 자연과 함께하는 삶,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을 생각나는 단어들로 꽉 차 있다. '봄산' '밤나무와 달항아리' '담장' '방' '수각화' '팥' '나무' '산벚나무' '풀피리' '버들피리' '사슴벌레' 등이 그것이다. 유일한 이색적 동물은 '기린'뿐이다. 그것도 시인 자신의 경험보다는 아이를 보살피던 아이와 자신의 기억에 의해 이 장에 등장한다.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대공원에서 봤던 기린에 대한 관찰에서 깨달음의 일부다. "기린의 힘은 일곱 개의 목뼈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중략) 기린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마음을 읽으면서 모가지에서 나오는 힘으로 기린이 걷는다는 것을 발견했죠."(p.48)

2장은 시인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물론 시인의 시적 대상이 주가 되겠지만)에 대한 이야기다. 「보리수나무」에서는 평생 산 가까이 붙어사는 부모님 덕에 시인은 시각, 청각, 촉각, 미각, 그리고 후각으로 자연과 동식물을 이해하고 소통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여기서 보리수나무는 일상적인 정경이지만 보리수나무를 관찰하면 다른 것이 보인다는 의미로 쓰인 것 같다.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홀연히 어떤 대상을 응시하고 의미 있는 어떤 순간을 포착할 때, 아름다운 인간이 된다고 믿는다. 보리수나무는 나무로만 머물지 않는다. 과거를 잊지 않되 현실에 몸담을 수 있으며 앞으로 해야 할 삶의 일이 무엇인지 고찰하게 해준다. 끝없는 일상에 대한 기억을 미각으로 말하기. 저 보리수나무는 어디에나 있겠지만 그 어디에도 물돌 같은 파리똥은 없을 것이다."(p.85) 2장에는 또 「나의 시론」이 두 편 나온다. 「나의 시론 1」에서는 ① 투명한 깊이 ② 거머리 시학 ③ 나의 시적 질료는 자연물이라는 번호를 붙인 작은 제목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시론 2」에서도 ① 무턱대고 걷는 산길 ②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③ 핏줄 도드라지는 자리, 시란 소제목도 있으니 역시 일독을 추천한다. 시인이 쓴 시에는 번호를 붙이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은 에세이에 자신의 시론임을 확인하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기억해 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을 것이다. 특히 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4장에서는 지구상에서 사라져 가는 동식물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지구의 미래를 고민한다. 시인으로서의 감수성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미래를 관통할 통찰력 있는 시인의 혜안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시인이 시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의미가 아니라 존재"라는 저자는 "목소리를 가진 것, 그리고 사물에게 목소리를 입혀주는 것이 시인이 하고자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서술과 사유를 통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놓는다. 「지구의 아름다움을 찾지 말자」란 글에서 저자는 ① 낮은 목소리 ② 소똥구리 ③ 뱀들 ④ 매 ⑤ 대마와 굼벵이가 사는 집 ⑥ 목청 혹은 석청 ⑦ 고비 ⑧ 산매화를 제시한다. 저자는 지구의 어딘가에서 삶으로부터 어긋난 것들이 진화하는 것만 같다고 말한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종 동식물이 성가시게 괴롭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저마다 필사적으로 제 목숨을 잘 지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직은 그것들을 되살려낼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친다. 더 늦지 말아야 할 것들이기에 굳이 이 책에서 적었으리라. 결국 시인은 죽어 있는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기도 하지만,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생명 회복은 우리들이 지금 나서야 할 때라고 부르짖는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마지막 글 「시, 그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은 저자의 시세계를 압축해 보여준다. "내가 찾는 시는 의미가 아니라 존재다. 목소리를 가진 것, 아니 사물에게 목소리를 입혀주는 것이다. 나는 존재를 통해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상하게 버들피리를 종일 불고 잠에 들면 내 몸이 잠시 버드나무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꽃가루 휘날리면서 물이며 개구리며 짐승이며 사람까지 다래끼 일으키게 하는, 그런 얄궂은 존재! 그날 논길을 돌아다니다가 밝은 개똥 냄새도 주목받을 때가 있는 것이다."(p.273)

"시 쓰는 운명은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닌 눈동자에 있다고 믿는다. 나의 눈을 밝게 하는 것은 죄 없는 사물이면서 세상으로부터 몸을 감추지 못한 생명이다. 나는 마냥 걸으면서 일순간, 목숨 가진 것들의 안위를 살피는 질문이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p.284)

 


 

살아있는 것들의 안부를 묻는 것은 우리 자신의 안부를 묻는 행위이기도 하다. 시인의 시뿐만 아니라, 첫 산문집인 이 책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 역시 이렇게 안위를 살피는 질문들로 가득하다. 먹을 것을 발견하고 혼자서 먹어 치우는 게 아니라 다른 존재까지 불러들이는 그 울음 자체가 위안을 건네듯,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모든 존재의 안위를 살피는 잔잔한 질문들은 지금의 각자도생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잔잔하면서도 은근히 강력한 위로와 용기를 준다.

 

달은 진흙머리였다가 온순한 맨발이었다가 물새의 얼굴이었다가 눈먼 고인돌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 달은 변신의 귀재였다. 오래 더럽혀져도 달은 노랗게 맑은 달이다. 달빛은 왜 자질구레한 것들을 좋아하는지 묻지 않았다. 어쩌면 영혼이라는 말은 저 달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달은 물질이 아니므로 삼키지는 말자.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저 빛이 미늘이다. 한 번 꿰이면 평생 노숙의 몸으로 살아야 한다. 물고기 아가미가 꽃잎같이 붉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p.193) - 「달밤에 반응하는 것들」 중에서

 

저자 : 이병일

 

1981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문학수첩』 신인상에 시,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옆구리의 발견』,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 『나무는 나무를』 등이 있으며 오늘의젊은예술가상, 송수권시문학상 젋은시인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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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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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은 20세기 천재 작가로 꼽히는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프랑수아즈 쿠아레, Francoise Quoirez)이 쓴 에세이집이다. 19세에 소설 『슬픔이여 안녕』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천재 작가'의 명성을 떨친 프랑수아즈 사강은 그 작품만큼이나 자유분방한 사생활로 유명했다. 두 번의 이혼과 도박, 자동차 경주, 약물 중독···. ‘부도덕’하다는 꼬리표를 얻으며 스캔들의 주인공으로도 구설에 자주 올랐던 사강은 이 에세이집을 통해 그녀의 특별한 취미들과 온 힘을 다해 사랑한 것들에 대한 회고를 담아냈다. 이 같은 테마로 에피소드를 풀어낸 이 책은 구설에 오른 많은 부분에 대해 진실로 해명하는 듯한 느낌도 주고 있지만, 문장과 글의 흐름 등을 통해 본 사강의 문학적 역량이 드러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다.

한마디로 이 책은 프랑수아즈 사강이 처음으로 고백한 그의 문학과 삶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도박과 자동차 경주에 대한 사랑, 문학적 영감을 얻은 문학 작품들, 연극, 영화 등 온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하고 열정을 쏟은 것들에 대한 회고와 당대 최고의 문화예술계 지성들과의 만남과 우정, 사랑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가 살던 시대에 비춰본다면 극적인 삶을 사는 한 여성이자 작가의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다. 사강은 1935년 프랑스 카자르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소르본 대학교를 중퇴하였다. 19세 때 발표한 장편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 작품으로 1954년 프랑스 문학비평상을 받았다.

어린 소녀가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자 문단과 세간에는 말이 많았다. 통속적인 연애소설 작가라는 비난의 시선도 적지 않았고, '운'이 좋아 당선이 되었다는 의혹도 받았다. 하지만 사강은 2년 뒤 두 번째 소설 『어떤 미소』를 발표해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 못지않은 수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이 에세이집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은 10개의 테마로 나뉘어 쓰였다.

 


 

구설에 오른 부분에 대한 해명적 성격도 있지만 그의 문학적 지향점과 주제를 선명하게 남기는 데 최선의 문장을 선보임으로써 그의 삶의 모습과 문학적 삶에 대해 진솔한 고백으로도 읽힌다. 전설로 남은 위대한 재즈 보컬리스트였지만 인종차별을 받으며 쓸쓸한 삶을 살다 간 빌리 홀리데이와의 만남, 문학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동성연애자로 비난의 시선을 받았던 테네시 윌리엄스와의 공연, 영화계의 상업적 현실과 타협하지 못했던 천재 영화감독 오손 웰스와의 추억, 말년에 시력을 잃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 장 폴 사르트르에 대한 깊은 사랑까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 세기 동안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고 시대정신이 제대로 반영된 작품을 자유롭게 썼다. 이로써 그의 자유분방하면서도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인인간 사강’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출간된 책은 소담출판사에서 국내 정식 라이선스 계약으로 〈2023년 리커버 개정판〉이다. 그의 대표작 『길모퉁이 카페』, 『마음의 파수꾼』, 『마음의 푸른 상흔』, 『어떤 미소』, 『한 달 후, 일 년 후』와 함께 세트로 묶인 개정판 도서로, 파스텔톤의 차분하고 세련된 표지가 인상적이다. 인생에 대한 환상을 벗어 버리고 담담한 시선으로 인간의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그린 사강의 작품들은,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감성과 섬세한 심리 묘사가 특징이다.

20세기 후반은 미-소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냉전시대라고 불리운다. 이 힘의 충돌은 유럽과 미국의 전후 세대들에겐 10대와 20대의 시대다. 그들은 이른바 제2차 세계대전의 논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꼰대 세대'에 대한 '이유 없는 반항'과 기존 세대에 대한 '저항 정신'이 중심 주제였다. 히피와 신세대로 일컬어지는 미국 문화는 '이유 없는 반항'은 제임스 딘이라는 걸출한 배우로 형상화되었고, 유럽에선 '68혁명'이라는 반체제 혁명이 대두되었다. 세계는 미-소를 중심으로 양분되었고, 팽팽한 긴장 속에 내부적으로는 기존 세력과 신세대 간의 끊임없는 충돌로 문학, 철학, 경제 문제가 사상적으로 대립되던 시대다.

 

 

이처럼 미-소간 패권 경쟁 속에서 전후 세대의 반항정신과 저항 정신이 80년 이전까지 지속됐다. 그들이 속한 세대의 주류들이 사회에서 느꼈던 허무주의와 고독감이 사강의 작품에는 그대로 배어 있다. 또 사강은 실제로 그런 사상과 철학의 삶을 살았던 작가이다. 오늘날 사강이 그들에게나 젊은 세대들에게 사랑 받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이유다. 1970~19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사강이다. 그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자유분방한 그의 삶과 문학이 오늘날의 젊은 감성과도 잘 맞기 때문일 것이다. 풍요로운 물질 문명과 자본주의 경제는 일부에겐 문명 발달의 전성기를 보여준다. 사강도 전후 프랑스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사강은 밤새 카지노에서 딴 돈으로 아침에 집을 한 채 장만하고, 스피드를 즐기다가 교통사고가 나기도 하고, 마약으로 법정에 서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녀의 자유분방한 삶과 불같은 열정, 당대 최고의 지성이던 사르트르를 비롯하여 각계 문화예술 인사들과의 만남과 사랑에 얽힌 이야기들은 사강 팬뿐 아니라, 삶에 열정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도 자극을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사강을 이야기하자면 『슬픔이여 안녕』을 빼놓을 수 없다. 19세에 쓴, 그것도 집필 기간이 불과 2~3개월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놀라운 천재 작가 이야기는 이후의 그의 삶을 관통해 흐른다. 어린(?) 나이에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전 세계에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그 뒤 수많은 소설과 희곡 등을 발표하여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가 된 사강은 작품 외에 사생활로도 유명했다. 유명했다기보다 구설수에 자주 올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는 모르지만 세기말적 삶을 살기도 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이혼과 도박, 자동차 경주, 약물중독 등 자유분방한 삶이 그의 작품 이곳저곳에서 그대로 배어 있다. 그녀의 삶은 ‘사강 스캔들’, '사강 신화'라는 말을 낳으며 그의 작품보다 더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5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저항 문필가 프랑수아 모리아크로부터 “첫 페이지부터 탁월한 문학성이 반짝이고 있다”는 극찬을 받은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은 아버지의 재혼이라는 사건 앞에서 자기 내면의 낯선 감정과 마주하게 된 10대 후반의 섬세한 심리를 더없이 치밀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내며 어느새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간명하고 예민한 필치로 보여 준다. “문학과 더불어, 단어와 더불어, 문학의 노예이자 대가인 이들과 더불어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었다. 문학과 함께 달리고,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문학을 향해 기어올라가야 했다. 그러니까 그것을, 조금 전 읽고서도 내가 결코 쓰지 못할,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같은 방향으로 달리지 않을 수 없는 그것을 향해.”(프랑수아즈 사강 〈작가의 말〉 중에서)

‘매혹적인 작은 괴물’, ‘문학계의 샤넬’, ‘열여덟 살 난 콜레트’. 사강을 수식하는 수많은 문구에서 알 수 있듯 사강은 등장과 동시에 자유로운 성, 속도감과 우아함을 동시에 갖춘 문장의 아이콘으로, 한 시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20세기 후반기를 열광시킨 이 작은 괴물은 말년까지도 쉼 없이 작품 세계를 연마하며 열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속도와 알코올, 도박과 약물에 탐닉하는 자유분방한 삶으로도 유명세를 치렀다.

특히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집약되는 사강의 삶은 소진과 탐닉으로만 이루어진 듯하지만, 사실 사강의 삶을 지탱한 것, 사강이 끝까지 고수한 것은 오로지 문학뿐이었다. 그리고 사강이 쓴 모든 작품들의 기원, 사강 문학의 성소가 바로 『슬픔이여 안녕』이다. 문학적 재능이 반짝이는 대담하고 섬세한 심리 묘사와 인간 본성에 관한 치밀한 성찰, 지극히 효율적인 구성, 독특한 인물들은 그 누구와도 다른 사강만의 문학 세계를 잘 보여 준다. 특히 ‘슬픔’이라는 삶에서 처음 마주하는 감정에 관한 성찰과, 그것을 받아들이며 어른의 세계로 입문하는 주인공의 내면에 관한 묘사에서 사강의 문학성은 빛을 발한다고 프랑스 평단은 기억하고 있다.

 


 

사강은 이 에세이집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에서 자신이 알았던 것, 자신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인정했던 것들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책의 〈머리말〉에는 "그러나 우리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이 이야기들에서 프랑수아즈 사강이 막상 자기 자신이 노출되는 일은 요령 있게 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떠벌리는 말들, 단순한 말들, 자연스럽고 정직하고 관대하고 감탄하게 하는 말들을 왜 두려워하겠는가?" 이는 아마도 편집자가 썼을 〈머리말〉에 사강이 구설에 오른 일들에 대한 해명 차원에서 쓴 글들이 발견되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이 책은 앞서 잠깐 말한 대로 모두 10개의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빌리 홀리데이」, 「도박」, 「테네시 윌리엄스」, 「스피드」, 「오손 웰스」, 「연극」, 「루돌프 누레예프」, 「생트로페」, 「장 폴 사르트르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독서」 등이다.

「도박」에서는 카지노 도박장에서 도박에 대해 갖게 되는 경이감에 대해 썼다. 집을 담보로 잡히고 도박 밑천을 마련하는가 하면 하룻밤새 몇억 원 상당의 인세를 날려 버리곤 파산하기도 했다. “도박이야말로 일종의 정신적인 정열”이라 했던 사강은 그렇게 많은 돈을 잃고도 “돈이란 본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태연히 말했다. 「스피드」에서는 실제로 목숨까지 잃을 뻔했던 자동차 경주에 대한 취미와 애정에 대해 예찬론을 펼치고 있다. 사랑해 마지않던 연극과, 희곡 집필, 연출가로서의 성공과 실패를 맛본 뒷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연극」, 그녀가 사랑했던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생트로페가 상업주의에 물들어 가는 모습에 대한 단상을 그린 「생트로페」, 지드, 카뮈, 랭보, 프루스트 등 문학에 눈을 뜨게 한 첫 작품부터, 문학적 영감을 준 작품들을 엿볼 수 있는 「독서」가 담겨 있다.

10편의 에세이 중 5편은 동시대의 문화 예술계의 저명인사들과의 만남과 우정, 사랑에 관한 기록이다. 「빌리 홀리데이」에서는 전설로 남은 위대한 재즈 보컬리스트였지만 인종차별을 받으며 쓸쓸한 삶을 살다 간 빌리 홀리데이와의 만남을 그렸고, 「테네시 윌리엄스」에서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극작가로, 문학적 성공을 거두고 현대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명성을 떨쳤지만 동성연애자로 배척받았던 테네시 윌리엄스와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의 작가 커슨 맥컬러스의 기이한 동거 생활을 적나라하게 소개했다. 그밖에 20세기 최고 영화로 추앙받는 영화 〈시민 케인〉의 배우이자 감독인 오손 웰스와의 추억이 담겨 있고, 러시아의 망명 무용가 루돌프 누레예프의 괴팍한 예술관을 묘사했다.

 


 

「장 폴 사르트르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에서는 금세기 최대의 지성 장 폴 사르트르의 말년, 시력을 잃은 그와의 교우를 그렸다.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변함없이 존경하는 분이 있다면 역시 사르트르다. 이 시대의 가장 지적이고 정직한 작가”라고 하며 존경을 담아 보낸 사랑의 편지가 담겨 있으며, 시력을 잃은 사르트르에게 장문의 편지를 자신의 음성으로 녹음해서 선물하는 등 감동 어린 사연이 담겨 있다.

사강 작품의 매력 중 하나는 문체에 있다. 냉소적이나 따뜻하고, 열정적이나 고독한 어조 속에서, 모호한 표현과 비유가 시적이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도발적이고 즉흥적인, 너무나도 열정적인 인간 사강을 만나지만, 한편으로는 그 기조에서 짙은 고독감도 느끼게 된다. “그녀의 고독감은 노곤하고 부드럽고, 이에 따르는 슬픔은 권태로우면서 아늑하며 아름답기조차” 하다. 인생에 대한 사탕발림 같은 환상을 벗어 버리고 냉정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인간의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그리고 있는 그녀의 소설과 실제 그녀의 삶이 많이 닮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설득보다는 매혹을 원했다”라는 그녀의 말대로, 이 에세이를 통해 그녀의 삶과 작품에 매혹되어 보길 바란다.

 

그것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시간이라는 모래시계를, 돈이 주는 중압감을, 사회가 가하는 ‘문어발식’ 속박을 잊게 한다. 도박을 할 때 돈은 결코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는 어떤 것, 장난감, 플라스틱 칩, 다시 말해 교환 가능한 본성을 지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되어버린다. 또한 진정한 도박사들은 심술궂고 인색하고 공격적인 경우가 매우 드물며, 너그러움을 그들 안에 간직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모든 소유를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모든 패배를 우연으로 간주하며 모든 승리를 하늘의 선물로 간주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p.43~44) - 「도박」 중에서

 


 

당신은 모든 것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명예로운 것으로 일컬어지는 노벨상을 거부했어요. 당신은 알제리 전쟁 때 거리에 내던져진 채 세 번이나 폭격을 맞았지만 눈썹 한 번 까딱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당신 마음에 드는 여자들에게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맡기도록 극단장들을 종용했지만, 그럼으로써 당신에게 사랑은 ‘영광의 찬란한 상실’일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호사스럽게 증명했어요. 요컨대 당신은 사랑했고, 썼고, 나누었어요. 당신은 당신이 주어야 할 모든 것을, 중요한 것을 사람들에게 줬어요. 동시에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제공한 중요한 모든 것을 거부했어요. 당신은 작가인 동시에 한 사람의 인간이었어요.(p.181) - 「장 폴 사르트르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중에서

 

저자 :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 본명 :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coise Quoirez))

 

설득보다는 매혹을 원했던 프랑스 최고의 감성, 유럽 문단의 매혹적인 작은 악마로 불리우는 그녀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coise Quoirez)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인 사강을 필명으로 삼았다. 그녀는 1935년 프랑스 카자르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소르본 대학교를 중퇴하였다. 19세 때 발표한 장편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 작품으로 1954년 프랑스 문학비평상을 받았다.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 모리악은 사강을 두고 “유럽 문단의 매혹적인 작은 악마”라 평했으며, “지나칠 정도로 재능을 타고난 소녀”라고 불렀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사강은 당시 ‘천재 소녀’로 불리우며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 뒤로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브람스를 좋아하세요...』,『신기한 구름』,『뜨거운 연애』 등과 희곡 『스웨덴의 성』,『바이올린은 때때로』,『발란틴의 연보랏빛 옷』등의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거치며 프랑수와즈 사강은 점점 황폐해져 갔다. 신경 쇠약, 노이로제, 수면제 과용, 정신병원 입원, 나날이 술로 지새우는 생활이 거듭되면서 도박장 출입이 잦아졌고 파산했다. 프랑스 도박장에는 5년간 출입 금지 선고를 받자 도버 해협을 건너 런던까지 도박 원정을 갈만큼 망가진 그녀는 결국 빚더미 속에 묻히게 된다. 하지만 50대에 두 번씩이나 마약복용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그녀 식의 당당한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4년 9월 24일, 노르망디에 있는 옹플뢰르 병원에서 심장병과 폐혈전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였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는 가장 훌륭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 중 한 사람을 잃었다”며 애도했다. 사강의 작품들은 인생에 대한 사탕발림 같은 환상을 벗어버리고 냉정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인간의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그리는 작가이다.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감성과 섬세한 심리묘사로 여전히 전 세계의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역자 : 최정수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오 자히르』 『마크툽』, 기 드 모파상의 『오를라』 『기 드 모파상-비곗덩어리 외 62편』,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 『어떤 미소』 『신기한 구름』 『잃어버린 옆모습』,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아모스 오즈의 『시골 생활 풍경』, 이 외에 『찰스 다윈?진화를 말하다』 『르 코르뷔지에의 동방여행』 『우리 기억 속의 색』 『딜레마?어느 유쾌한 도덕철학 실험 보고서』 『조지 오웰』 『미술관에 가기 전에』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 『노 시그널』 등 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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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려치는 안녕
전우진 지음 / 북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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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우리 일상에 만연한 사회 부조리를 응징하는 방법으로 ‘뺨 후려치기‘를 통해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가슴 묵직한 휴머니티가 담겨 있어 감동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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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려치는 안녕
전우진 지음 / 북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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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후려치는 안녕』은 사회 풍자 소설이다. 불법이나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기묘한 능력의 소유자가 죄를 짓는 사람, 부조리한 사회에 편승해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향해 회초리를 휘두르는 모습이 연출된다. 회초리는 '뺨을 후려치는' 행위로 상징된다. 표제어 '후려치는 안녕'이란 단어 조합이 조금은 어색하지만 '후려친다'는 의미에 방점을 찍으면 상징적 의미로서 부조리한 인간에게 휘두르는 회초리 역할로 알맞은 어휘이다. 보통 사람들은 뺨을 맞게 되면 아픔보다는 자존심에 상처나 분노하기 쉽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병삼에게 뺨을 맞는 사람은 즉시 뉘우치는 마음으로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왜 뺨을 맞고 화를 내지 않고 뉘우치게 되는지는 우리 삶의 모습에서 지워진 이야기다. 독자도 중학교 때까지는 선생님들의 구타(폭력)를 무서워했다. 중학교 때 영어선생님이 생각난다. 그 분은 학생들에게 〈오늘의 단어〉라고 매일 아침 등교 시간 전에 칠판 한 귀퉁이에 적어 놓으셨다. 학생들은 모두 외워야 했다. 다음날 아침이나, 혹은 영어 수업 시간 전에 외우지 못한 학생들은 호되게 뺨을 맞았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80년대까지는 선생님들의 폭력은 '사랑의 회초리'라고 용인되는 시대였다.

뺨을 맞는 일을 무척이나 무서워했지만 반발하거나 안 맞으려고 도망 가는 학생은 없었다. 학습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뺨을 때리거나 심지어는 군대에서처럼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는 것은 다반사였다. 매맞는 학생이 그때는 '공부 못하는 학생'이었다. 공부 못해서 선생님이 매를 때리는 일이 선생님의 의무 사항이라고 할 정도로 선생님들의 구타는 일상적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뺨을 후려치면 잘못을 뉘우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는 부분을 읽다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독자도 몇 번 맞은 적이 있다. 꼭 감은 눈앞에 별이 반짝이는 느낌을 처음으로 알았던 때이다. 분노보다는 잘못했다는 생각이 학생들에게는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게 하려는 선생님의 '사랑의 매'로 인식되었다.

 


 

이 책의 사회적 배경은 2023년 대한민국 서울이 주 무대다. 오늘날 뺨을 때린다면 어쩌면 선생님은 더 이상 선생님으로 교단에 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좀 심한 경우 폭행죄로 다스려질지도 모른다. 사회가 변한 것이다. 어떤 것이 더 좋냐고 물어본다면 학생 입장에서는 당연히 선생님의 회초리는 '만행'이 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병삼이 사회를 발전적으로 이끌려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졌을까. 성인도 아니고, 신(神)은 더구나 아닌데도 말이다. 병삼은 어릴 적 가정 환경이 매우 불우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낳은 직후 사망했고, 아버지는 매일 술 마시고 아들 병삼에게 술 심부름 시키고, 폭행은 물론 폭언을 일삼는, 주인공 병삼으로서는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아버지다. 그렇다고 병삼이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도 아니다. 불우한 환경으로 자라나면서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일하는 평범한 극빈층에 해당되는 신분일 따름이다.

그런데도 그가 뺨을 후려치면 맞은 사람은 왜 잘못을 뉘우치게 될까? 책에서는 그의 능력이 발휘되는 부분만 있지, 그가 어떻게 능력을 획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저자가 일부러 능력 획득 과정을 빼먹었을 것은 아닐 텐데... 우리 사회 모습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이 소설이 왜 주인공의 능력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지 않을까. 독자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전작에 기대어 본다. 저자 전우진은 제7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2020년) 당시 수상작은 『관통하는 마음』이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대사와 지문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듯 녹아 있는 구성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읽을수록 흡인력이 떨어지기는커녕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한국판 코니 윌리스’ ‘페이지 터너’라는 찬사와 함께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도 알려졌다. 당시 출판을 맡았던 출판사 측은 "50대 아줌마의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이렇게나 몰입할 만한 이야깃거리인가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독자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빠지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스토리가 지닌 힘을 보여주는 소설이다."라고 책을 소개했다.

 

 

그의 두 번째 이야기가 이 책 『후려치는 안녕』이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고, 대화나 연극의 지문에 해당하는 동작 설명, 배경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생략했다. 스토리 중심의 작품이기에 일반 소설처럼 풀어 쓴다면 500페이지도 훨씬 넘을 것이다. 그래도 막힘 없이 술술 읽힌다면 소설 전개가 독자들의 막힌 마음을 풀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전우진이 전작에서 호평받았던 장점들을 극대화해서 이 책 『후려치는 안녕』을 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우리 사회를 향한 시선이 더 날카로워진 것처럼 독자의 눈에는 비친다. 사회 부조리와 부조리한 사회를 만들어낸 인간 군상에 대한 회초리로서 역할을 하는 작품이기에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후려치다’란 말에는 정신이 들 정도로 세게 뺨 따위를 때리는 듯한 뉘앙스가 배어 있다. 따귀를 맞은 상대가 진실을 토해내는 능력을 지닌 한 남자를 주인공의 성격을 창조한 것으로 작품을 대할 수 있다. 교훈적이고 단순한 내용이라면 사실 이 소설이, 스토리가 우리에게 주는 카타르시스는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를 구성 능력으로 대치시킨다.

주인공 병삼의 능력에 의해 개과천선한 또 한 명의 남자, 현재의 부와 권력을 안겨준 근본을 사실 그 누구보다 경멸하고 우습게 보는 남자를 등장시켜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예측할 수 없는 사건 사고가 이어지게 한 것이다. 독자들은 읽을수록 인연인지 악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얽히고설킨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 인물들이 맞이하는 결말은 타인이나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결국 자신이 깨달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죄의 속성과 심판의 이유를 우리 내면에 배치시킴으로써 '신통한 능력' 역시 내면에서 생겨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특히 바로 내 옆에서 수다를 떠는 듯 입에 착 붙는 대사(인용부호 없이 단어 선택만으로 나열하다시피 전개해 나간다), 동네 편의점에서 볼 법한 리얼리티 넘치는 인물들이 현장감이 살려준다. 저자가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인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현장감이 넘친다.

 


 

주인공 병삼은 이 소설 무대에 어렸을 적 환경과 중간 성장 과정, 먹고 살기 위한 일에 대한 집착, 그러나 상류층이라고는 옆에 가보지도 못한 환경에서 걸직한 입담을 가진 극히 약하고 소외된 인간이지만, 이야기는 중년의 병삼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병삼은 친구 바울이 목사로 있는 작은 교회에서 셔틀버스 운전사로 일한다. 이렇다 할 꿈도 즐거움도, 옥신각신할 가족도 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인물이지만 사실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에게 따귀를 맞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속내를 줄줄 털어놓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절대자 앞에 선 죄 많은 인간처럼. 돈이 되는 능력도 아니고, 난동을 부리는 주취자를 조용히 시킬 때 가끔 쓸 만하긴 하지만 어쨌든 초능력입네 떠들고 다닐 정도조차 못 되는 그저 그런 능력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병삼은 한 남녀의 다툼에 휘말리고, 보다 못해 여자의 따귀를 후려치고 만다. 밑도 끝도 없는 손찌검으로 모두가 경악한 와중에 여자는 느닷없이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고 남자에게 사과한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 상대 남자는 강남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재일이다. 그는 병삼의 능력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깨닫고 그를 자신의 교회로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초능력이라 불릴 정도로 비범한 능력을 지녔지만, 당사자인 병삼과 그의 친구 바울은 유의미하게 사용할 방법을 모른다. 그 능력이 잔재주가 아닌 진짜 초능력, 돈이 되는 능력임을 알아본 사람은 누구보다 계산적이고 비범한 재일이다. 혈혈단신 병삼에게 믿음, 소망, 사랑 무엇 하나 없다고 판단한 재일은 그 능력을 손에 넣기 위해 한번 마셔보면 다시는 믹스커피로 돌아갈 수 없는 ‘파나마 게이샤 커피’로 병삼을 유혹한다. 또 곁에 붙잡아 두기 위해 그가 돌아갈 곳을 짓밟아 버린다. 그러나 재일에게는 없지만 병삼에게는 있는 것, 평생 재일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어떤 것 때문에 완벽했던 계획은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속도감 있는 전개로 단 한 순간도 눈을 돌릴 수 없는 페이지터너로서의 『후려치는 안녕』은 읽는 즐거움만큼이나 읽은 후 여운이 강하다.

 


 

이 소설은 중요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 않다. 주인공 손병삼은 한마음 교회 운전사이다. 잘못한 사람의 뺨을 후려쳐서,

후회하고 뉘우치게 하는 기묘한 능력의 소유자다. 한마음 교회 목사, 바울은 그의 친구이다. 피트니스 트레이너 '서보라'는 '트리메탈아민뇨증' 환자이기도 하다. 트리메탈아민뇨증은 생선 냄새 증후군이라는 유전적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이 질환은 소변, 땀 및 입에서 악취가 발생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희귀난치성 질환이라 아직 근본적인 치료약은 없는 병으로 알려졌다. 또 신사동 재일교회 담임목사 전재일은 병삼을 이용가치가 많은 사람임을 알고 그를 곁에 두기 위해 그의 거주지마저 없애버릴 정도로 집착이 강하다. 중부경찰서 방 소장, 교회 인물 한 장로, 우 권사 등이 나온다.

이 작품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부의 구별은 소설을 끌어가는 주체가 달리해 나뉘었다. 1부는 병삼, 2부는 바울의 관점에서 소설이 전개된다. 1부에 10개의 장(章)이 있고 2부에 12개의 장이 있어 모두 22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특이한 점은 마지막 장을 제외하고 21개 모든 장의 제목이 두 글자로 돼 있다. 저자의 의도에 대해선 알 수 없다. 소설을 즐기는 독자라면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할 만하니까 한 것이구나. 해도 되니까 한 거였어. 그래. 아버지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은 거잖아. 내가 왜 혜주 누나네 집 앞에서 뛰어내렸는지 묻지도 않으시는 것 보니까. 어머니도 자초지종을 아시는 것 같은데 가출도 안 하시고 이혼도 안 하시네. 하긴 어머니는 원래 그런 성격이니까. 그러니까 아버지랑 결혼도 한 거겠지.(p.304)

 

저자 : 전우진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쓴 첫 장편소설 『관통하는 마음』으로 제7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데뷔하였다. 동화 『예언의 고야』로 제29회 눈높이아동문학상 동화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며 동화작가로도 영역을 확장하였다. 『관통하는 마음』, 『후려치는 안녕』에 이어 초능력을 지녔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린 3부작의 마지막 권을 집필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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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8가지 법칙 - 너와 나, 우리를 사랑하는 이유
제이 셰티 지음, 이지연 옮김 / 다산초당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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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매일 조금씩 완성해 가는 행복이다.” 곁에 오래도록 머물며 내 삶을 성장시켜 줄 단단하고 성숙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법을 5,000년의 지혜 〈베다〉와 함께 영혼의 스승 제이 셰티가 우리에게 내민 처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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