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
장석주 지음 / 나무생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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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어렵다고 한다. 현대를 사는 오늘날 독자들에게 시가 왜 어려워졌을까? 시가 어려워진 것은 시인이 시를 어렵게 쓴 탓일까, 아니면 현대인들이 시를 읽지 않아 어렵게 느끼는 것일까? 혹시 모두 다 이유가 되는 것인가? 정확한 이유는 시를 잘 읽지 않는 독자가 알 수 없지만, 느낌은 확실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시를 잘 읽지 않는 독자의 얄팍한 상식으로는 시가 시인의 상상력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형상화되기 이전의 날것 그대로의 언어를 통해 나오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추측은 해본다. 같은 예술인 미술도 예전엔 실재 형상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을 미술이란 예술로 이해했고, 그것을 보는 사람도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미술이 시대를 거쳐 오면서 표현 방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 잘, 그리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에서 대상을 속을 들여다보는 화가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것은 문예부흥을 거치며 근대에 들어오며 추상적인 모습으로 변해 갔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표현해주는 것이 '예술'이다는 생각이 싹 트기 시작할 때부터 관람자들의 눈에 비친 형상이 무엇을 표현하는 것을 읽어내지 못할 정도여서 외면하고 어렵다고 판단해 버린 이유가 아니었을까?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시인의 마음을 형상화해 글로 썼다. 그 과정엔 '은유'와 '상징'이라는 비유로 형상화되면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독자들에게 '시는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은 아닐까?

위의 내용은 독자 개인의 단견에 불과하지만,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장석주가 이 책 『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에서 보여준 '시론'과 맥락은 통하는 데가 있다. 저자 장석주가 「시는 미래의 언어다」란 부제를 갖고 있는 이 책을 펴내면서 29편의 시를 선정해 시의 아름다움과 시대정신을 담은 날카로움 등을 분석하면서 오늘날 시의 역할과 기능을 설명하면서 드러난다. "무의식과 충동들, 시작도 끝도 없는 모호함들 속에 우리의 길이 있을까? 시에는 전복적 상상력으로 시대를 가로지르고, 공중을 떠도는 유언(流言)과 비어(蜚語)를 채집하며, 시대정신을 꿰뚫어 보고 표상을 찾는 숭고한 소명이 있다." 저자는 한 시대의 삭막함과 불행에 맞서며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힘과 용기를 주는 시편들을 뽑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삭막하고 절망으로 둘러싸인 시대, 시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행했을 것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시의 숭고한 사명을 되새기며 자기의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가는 스물아홉 편의 시, 시인과 함께 삶의 깊이와 방향을 다시 묻는다. "시가 어렵다"는 오늘날 시를 대하는 독자들의 태도에 변화를 줄 만한 이야기를 저자가 한 적이 있다. 전작 『은유의 힘』을 출간한 후 온라인 서점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서다. "시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시의 비밀을 좀 알려주고 싶었던 거예요. 시의 비밀을 은유라고 봤고요. 그 은유를 보면 시라는 수수께끼를 다 풀 수 있다고 힌트를 준 거죠. 사실 시는 은유의 덩어리거든요. 왜 은유를 쓰는지, 어떤 은유가 좋은 은유인지, 이런 것들을 정말 자유롭게 펼쳐놓았으니까요. 시를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시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주면 좋겠어요."(2017년 9월 〈예스24〉와의 인터뷰 중에서)

저자는 문학평론가로서 기회가 될 때마다 "시를 읽어야 우리 삶을 더 풍요로워지고 미래 발전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해 온 저자는 시인이자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는 독자들의 시 읽기를 권유하고, 한편으로는 시가 그렇게 씌여야 한다고 자신의 시론을 일관성 있게 펴왔다.

이 책도 그의 시론과 독자들의 시 읽기를 권장하는 차원에서 집필된 것으로 이해된다. "시대가 삭막할수록, 그리고 미래가 암울할수록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좋은 시는 외롭고 허기진 우리를 살게 하면서 삶의 의미와 방향을 가르쳐주는 이정표와 같다. 시는 먹을 수도 쓸 수도 없는 것이라지만, 그 어떤 것보다 집요한 관찰과 무수한 고뇌, 통찰로 한 글자 한 글자가 빚어지기에 지층을 뚫고 올라와 찰나를 증언한다.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이 멋진 안내자는 우리에게 해갈할 물을 주고, 여행의 목적과 방향을 알려준다."

 


 

이 책은 자본주의에 밀려 시의 효용을 불신하는 시대를 비판하며 다시 우리의 시 정신을 가다듬어 사회 변화에 발맞춰 재정립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의한 황금만능주의에 따라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데도 우리의 정신은 더 가난해지고 심지어 퇴보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시와 관계없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 대부분이 느끼는 그대로다. 저자는 물질 만능주의가 지난 세기 인류 문명을 이룩하고 발전시켜 온 시를 외면한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시 평론집 『지금은 시가 필요할 때』는 시의 효용을 다시 전면에 들고 나와 시가 이 시대와 개인을 어떻게 보살피고 새로운 길을 안내하는지 말하기 위해 출간됐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은 상상하고, 숙고하고, 꿈꾸는 능력으로 얻은 상징 능력으로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지의 지평으로 들어선다. 상징의 이해와 세계의 심연을 여는 키를 갖게 된 인간은 그만큼 더 유능해졌다.”라고 말하며 시의 유용함을 거듭 역설한다.

세계의 심연을 여는 키를 가진 인간이 얼마나 유능했는지는 역사가 증언해 주고 있다. 시는 하나에서 하나를 얻는 산수식이 아니다. 상징과 은유를 총동원해 인간의 정신을 깨우고 하나에서 열을 만들어내는 상상으로 세상을 확장하고 생동하는 기운을 가득 불어넣는다.

시의 능력을 설명하는 저자는 시의 '독창성'을 가장 우선으로 꼽는다. 문명의 기반은 상상력, 그중에서도 독창적인 상상력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메리 올리버 『마음 산책』을 인용한다. "인간은 독창성으로 이름을 떨친다. 독창성이야말로 우리 종(인간 호모사피엔스를 말하는 듯하다)의 트레이드마크다. 시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다. 낯선 것에서 낯선 것을 보는 능력, 의외성을 가진 이미지들, 무의식에서 솟는 돌연한 감정들, 다양한 울림을 가진 목소리들, 이제까지 없던 음악, 어디서 오는지 모를 에너지, 순진무구한 주문(呪文), 기다림과 숙고와 완전한 몰입, 이런 것이 없이는 시도 없다.

 

 

저자의 시론에는 분명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 '참여문학론'에 가까이 다가간다. 앞서 열거한 시의 기능, 시의 능력은 시인의 독창적인 상상력 없이는 분출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다. 시인이 현실을 외면하거나 힘에 부친다고 도피한다면, 시는 앞서 열거한 여러가지를 시를 통해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란 시에 대한 사랑과 순기능을 말하고 있다. 이런 성분 없이 나왔다면 시는 언어의 무덤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독설처럼 내뱉는다. 우리가 기다리는 시는 불행과 격투를 마다하지 않는 시, 낡은 사물이나 생각을 바꾸는 상상력으로 가득 찬 시, 청춘의 착란 속에서 빛나는 미래 비전을 담은 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저자 장석주는 「시가 나를 찾아왔다」란 제목의 〈들어가기〉를 통해 "놀랍도록 독창적인 상상에서 시작하는 시는 대체로 저 혼자 온다. 가늠할 수 없는 먼 곳에서 부재의 빛으로 오는 시는 스스로 발광체처럼 빛난다."고 썼다. 시를 쓰는 일은 개를 목욕시키는 일, 운동장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일, 심심함에 못 견뎌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는 일과 다르다고 못박는다. 그렇건만 시는 무위에 헌신하는 일, 아무 쓸모가 없는 아름다움을 구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한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진리를 훤히 밝히는 기투의 한 방식"(하이데거, 『숲길』)이라고 단언한다. 시는 자아 바깥으로 송출하는 말의 한 방식, 즉 나에게서 너에게로 건너가는 말이라는 점에서 세계와 대지를 비은폐 차원으로 "언어 속에서 스스로 생기"(하이데거, 앞의 책)한다. 시를 쓰는 이들은 자신과 제 경험을 탈취하여 언어 속으로 밀어넣는다. 그렇다고 언어 자체가 시는 아니다. 시는 언어를 넘어서서 이미지가 이끄는 대로 미지로 나아간다. 물론 이것은 누구의 강압도 없는 자발적인 행위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시편들은 대체로 한국 현대시로 분류되는 시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원류를 밝히듯이 우리가 잘 아는 시인들과 시를 설명하는 일을 〈들어가기〉에서 살펴본다. 김소월 〈진달래꽃〉이나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현대시인 이성복의 〈남해금산〉으로 이어지는 우리 서정시의 흐름 안에는 늘 '당신'이나 '님'이 있다고 말한다. '나'의 안에서 '님'은 늘 결핍과 부재의 흔적으로 생생하다. 그 결핍과 부재의 결과로 '나'는 삶의 보람을 거두는 일에 실패하면서 필연적으로 늘 슬픔과 허무로 주저앉는다. 사실을 말하자면 '당신'은 '나'의 바깥에 있는 존재이면서 '나'의 안에 들어와 있다. '나'는 '당신'을 품고, '당신'은 '나'를 품는다. '당신'과 '나'는 연동되어 움직인다. 이처럼 시와 시어를 살핀 저자는 참여시인으로 일컬어지는 김수영에 주목한다.

김수영은 시를 “세계의 개진”이라고 말하였다. 시가 세계를 쪼개고 그 안을 펼쳐 보여주는 것이란 뜻이다. 지금 이 시대, 길을 잃은 우리에게 시가 왜 필요한지를, 그리고 시인의 소명이 무엇인지 다시 일깨워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물질세계에서 물질로 이루어진 몸을 갖고 사물의 생리, 사물의 수량과 한도에 의지해 사는 삶을 비은폐의 차원으로 끄집어내는 펼쳐냄이다. 세계를 이루는 물성의 토대 위에 제 삶을 세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세계의 물질성과 그 있음을 의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물질세계와 상호 교섭하며 그것의 자장 안에서 존재한다. 김수영이 문제 삼은 것은 물질세계의 다양한 맥락들이다. 그가 열망한 것은 세계를 더 나은 세계로 바꾸는 일이다. 김수영이 자주 '결의하는 비애'와 '변혁하는 비애'를 노래한 것은 그 때문이다. 김수영에 이은 이승훈도 저자는 소개할 만한 한국 시단을 한 단계 끌어올린 시인의 대열로 올려놓는다. 이승훈은 '언어의 무의식'을 제 시의 영역으로 개척했다. 언어는 항상 의식에 앞선다. 우리는 언어 속에서 나타나고 언어를 통해서만 존재의 의미를 얻는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스물아홉 편의 시를 일일이 소개하기는 어렵다. 시 한 편과 저자의 해석을 여기에 적는다. 독자들이 시를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참고 사항이지만 독자도 시를 잘 모르기 때문에 무작위 선정이라는 점을 미리 밝히고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사실 어느 시,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저자의 시론과 시 이해 방법에는 차이가 없을 터이니 독자가 자격지심에 괜한 우려를 하고 있겠지만. 시인 정진규의 〈옛날 국수 가게〉란 시다.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널듯 국수만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마치 한국 모더니즘 시의 시대를 연 이상의 시 같다. 일체의 문장부호를 쓰지 않았다. 연과 연 사이를 가를 필요도 없이 짧다. 아름다움을 말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했다. 우선 저자의 지적대로 상징과 은유가 있는지 찾아본다. 햇볕, 가을날, 골목길, 국수 가게, 백합꽃, 꽃밭, 공짜 등 낯선 단어도 없다. 저자의 시 해석으로 눈길을 옮긴다. "만일 골목길이 없었다면 내 감정의 정원은 폐허나 다름없었을 테다. 우리 모두는 골목길의 돌봄 속에서 자라난 골목길의 수혜자다. "골목길은 느림과 온정과 공동체와 유년과 놀이와 아늑함과 따스함으로 구성된 일련의 의미 계열"에 속하고, "속도, 계산, 계약적 관계, 성인 세계, 사회적 생활, 황량함, 차가움으로 구성된 대립적 의미 계열"에 맞선다."(김흥중, 『사회학적 파상력』, 저자 주)고 인용을 덧대 설명한다.

서울의 많은 골목길은 도시 개발이라는 미명 속에서 덧없이 사라졌다. 골목길이 소멸한 뒤 그것은 추억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나는 오래전 골목길을 떠났고, 새로 도착한 장소는 암흑이 펼쳐지고, 모래바람이 쉬지 않고 부는 곳이었다. 분명한 것은 골목길을 떠나면서 인생의 황금시대가 끝났다는 사실이다. (이 시를 읽는 동안 독자는) 옛날과 골목길은 시간과 공간의 공간의 통합체로 우리의 기억에서 망각의 질료로 불꽃처럼 타오른다.(p.79~81)

 


 

시인은 상상한다, 불과 거품들, 물방울과 뱀, 바다와 소금, 행성과 별자리들, 흙의 향기, 과일의 진실을. 또 단맛과 쾌락을 상상하고, 그보다 더 많은 불가능과 전생과 영원 따위를 상상한다. 시인은 온갖 식물에 이름을 붙여 호명하며, “여름에 죽은 사람을” 생각한다. 야만의 도시에 살든, 기후 위기 시대에 살든 “마음껏 타오르는 색들, 오로라, 죽은 개”가 잠긴 물속 수도원을 상상한다. 내일이라는 추상을 처음 인지한 이도 시인이었을 테다. “언덕 너머에 진짜 언덕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 세계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를 꿈꾸는 사람이다. 시인은 커다란 나무와 그 나뭇가지 위에서 수천 마리의 새들이 날아오르는 상상을 펼친다.(p.243~244)

 

시인은 세계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를 꿈꾸는 사람이다. 움직임이 없는 것들에 움직임을 부여하고 소멸하고 굳어가는 세상에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으며, 볼품없는 것들에 노래와 향기를 심는 존재가 바로 그들이다. 『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에 수록된 김승희, 이기성, 이병일, 유진목, 이원, 유계영, 오은 등 스물아홉 분의 시편에서도 우리는 시인들의 상상과 고뇌, 그리고 창조자와 같은 놀라운 헌신과 능력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저자는 가벼운 평론이라 해도 좋고, 시담, 시 에세이라 불러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이 다양한 목소리에서 우리 독자들이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열린 세계’로 용기 있게 나아가기를 저자는 기대한다.

 

저자 : 장석주(張錫周)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시인, 에세이스트, 인문학 저술가. 그밖에 출판 편집자, 대학 강사, 방송 진행자, 강연 활동으로 밥벌이를 했다. 현재 아내와 반려묘 두 마리와 함께 파주에서 살고 있다. 1955년 1월 8일(음력),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다. 나이 스무 살이던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하고, 스물 넷이 되던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문학평론이 입상하면서 등단 절차를 마친다. ‘고려원’ 편집장을 거쳐 ‘청하’출판사를 직접 경영하는 동안 15년간을 출판 편집발행인으로 일한다.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학교, 명지전문대에서 강의를 하고, 국악방송에서 3년여 동안 [문화사랑방], [행복한 문학] 등의 진행자로도 활동한다. 2000년 여름에 서른여섯 해 동안의 서울생활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적한 시골에 집을 짓고 전업작가의 삶을 꾸리고 있다. 한 잡지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소장한 책만 2만 3,000여 권에 달하는 독서광 장석주는 대한민국 독서광들의 우상이다. 하지만 많이 읽고 많이 쓴다고 해서 안으로만 침잠하는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다. 스무 살에 시인으로 등단한 후 15년을 출판기획자로 살았지만 더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자 업을 접고 문학비평가와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다. 급변하는 세상과 거리를 둠으로써 보다 잘 소통하고 교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성에 있는 호숫가 옆 ‘수졸재’에 2만 권의 책을 모셔두고 닷새는 서울에 기거하며 방송 진행과 원고 집필에 몰두하고, 주말이면 안식을 취하는 그는 다양성의 시대에 만개하기 시작한 ‘마이너리티’들의 롤모델이다.”

저서로는 『몽해항로』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일요일과 나쁜 날씨』, 『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이상과 모던뽀이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일요일의 인문학』,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고독의 권유』, 『철학자의 사물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시간의 호젓한 만에서』,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공저) 등이 있다. 애지문학상, 질마재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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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재탄생 - 인류학, 사회과학, 심리학, 신경과학, 뇌과학까지 감정 연구의 역사와 미래
얀 플럼퍼 지음, 양윤희 옮김, 경희대학교 비폭력연구소 기획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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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감정의 재탄생』은 우리 인간의 '감정'이 변해온 과정을 탐구하기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감정을 연구해온 연구자와 학자들이 감정을 어떻게 해석했느냐의 변천사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탐구를 위해 책의 부제로 사용한 학문 분야가 나열돼 인류가 오랫동안 '감정'을 연구해 왔다는 사실이 명쾌하게 드러난다. 감정 연구에 관해 인류학, 사회과학, 심리학, 신경과학, 그리고 최근의 뇌과학까지 동원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 얀 플럼퍼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연구 과정과 자신이 밝혀낸 감정의 정의(定義)를 정립하고 있다. 저자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직책이 말해주듯 저자는 역사학자이다. 그렇다면 왜 책의 제목을 '감정의 역사'나 '감정사(感情史)라고 쓰지 않고 '재탄생'이라고 썼을까? 독자의 의문을 푸는 데는 이 책의 처음 몇 페이지를 읽으면 해결된다. 저자 얀 플럼퍼는 감정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재정립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 연구도 그렇듯 이 논저도 〈감정이란 무엇인가?〉란 의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즉 감정의 본질을 밝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 〈들어가는 말〉을 통해 '편도체'의 실체와 기능을 설명한다. 역사학자인 저자가 실제 편도체를 처음 보았는지, 아니면 '감정의 재탄생'을 쓰기에 단서 역할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 책을 쓸 수 있는 결정적 뇌속의 물체임은 분명한 듯하다.

"건포도만 한 어두침침한 타원형 반구가 약간 더 밝은 빛의 뇌 물질 속에 스며든 것이 편도체이다. 이것을 보자마자 편도체만 따로 떼어 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간이나 신장 같은 기관이 아니었다. 간이나 신장 같으면 몸통에서 자유자재로 떼어 내거나 붙이거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눈엔 마치 누군가 양배추를 가르듯 뇌를 절단한 후 그 속에 편도체를 박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한 학생이 폼알데하이드가 담긴 여러 개의 통 안에 잠겨 있는 수많은 뇌의 단면 중 유독 편도체가 잘 보이는 것을 찾아내어 조심스레 내게 들고 왔다. 2009년 12월 어느 날 이른 아침, 유럽에서 가장 큰 베를린 샤리테 해부학 연구소의 루돌프 연구실에서 일어났던 일이다."(p.15)

 


 

이 책을 쓰는 데, 뇌를 연구하는 데, 감정을 연구하는 데 '편도체'의 기능과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저자는 암시하고 있다. 편도체는 1819년 독일 해부학자 칼 프리디리히 부르다흐에 의해 명명되었고, 아몬드 형태의 모양 때문에, 그리스어 알몬드를 본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저자는 편도체의 중요성에 대해 대중적 지식을 알린 사람과 기능을 연구 발표한 수많은 학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저자가 굳이 언급한 것은 저자와 편도체의 관계, 즉 편도체가 자신이 연구하던 '군인들 사이 공포'에 관한 연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와 편도체의 역할이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일 터다. 저자는 이 편도체에 대한 연구 결과 "오늘날에는 신경생물학적 용어라는 옷을 차려 입지 않고서는 군인들이 느꼈던 공포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적용할 인류학적 상수란 없다."고 단언한다. 이 사유의 기저에는 시간이나 문화를 망라해서, 호모사피엔스부터 실험실의 쥐까지, 모든 동물이 느끼는 공포감의 중심에는 확실한 신경생물학적 단초가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19세기 이후 문화적 보편성과 시간을 초월하여 모든 종의 생물학과 심리학의 심층에 기본적으로 굳게 연결된 감정 연구의 한 기둥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제 편도체의 실체에 접근한다. 편도체란 무엇인가? 뇌에서 특별한 작용을 하는 활성화된 신경세포의 덩어리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드는 의문이 있다. 도대체 어떤 신경세포가 편도체에 속한단 말인가? 저자가 편도체를 처음 보았을 때 당황했던 기억도 끄집어낸다. 뇌 단면의 어두운 부분과 그것을 둘러싼 조금 엷은 빛깔 사이의 점진적인 침착으로 인해 명확한 구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욱이 학자들 사이에는 편도체의 기능에 대한 의견 불일치도 있었다. 편도체가 부정적인 감정에만 책임이 있다는 생각은 점점 소용없어졌다. 오늘날 실험실에서 밝혀진 바로는 편도체는 후각이라든가, 시각적 인지 작용, 재즈 음악가가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지 즉흥 연주를 하는지 알 수 있는 능력 등을 담당한다. 이와 함께 편도체의 신경세포 조직과의 연결은, 실험체인 설치류와 인간 사이에서 다르게 도출된다.(〈감정에 대한 연구에서 범해진 일곱 가지 실수〉 참조, Richard J. Davidson, 저자 주) 엄밀히 말해, 편도체에 대해서는 아직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것이 뇌의 각 반구에 한 개씩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들이 연결되는지, 별개의작업을 수행하는지는 통상적으로 신경생물학자들에게 열렬한 토론 주제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기존 연구자의 주장을 덧대어 강조한다.

 


 

이후 저자는 연구소를 떠날 때쯤 모든 생각이 편도체에 빠져 있음을 인정한다. 베를린의 옅은 겨울 태양 아래 서게 되자 그제야 어떤 직관이 찾아왔다고 저자는 표현한다.(p.18) 공포에 관한 인류학 연구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완전히 색다른 문제와 우연히 맞닥뜨렸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학은 어떤 특별한 신경해부학적 부위를 가진 일반적이고 독특한 공포의 매커니즘을 찾아온 것이 아니다. 다른 세대 혹은 다른 문화에서 공포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 차이에만 주목했다. 한 가지 예로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19세기 중반 영국의 침입을 받기 전까지 자기들끼리 종종 전쟁을 치렀는데, 만약 어떤 마오리족 전사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몸을 떠는 육체적 징후의 공포심을 보이면 사회적 규약인 타푸(tapu)를 어겨서 아투아(atua)라는 영신에 들려 그런 것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판단된 전사는 그런 신들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마오리족 중 사회적 위상이 가장 높은 여성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나가야 했다. 여성의 성기인 질은 전사가 아투아에서 자유로워지도록 하는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그가 떨지 않고 가랑이 사이를 통과할 수 있다면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져 전장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전사가 여전히 떤다면, 정화의식은 실패로 돌아간 것이기에 처벌받지 않는 대신 집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전사도 아투아에 들린 상태로는 전쟁터에 나가지 않기에 마우리족 병사들은 공포를 느끼지 않고 전쟁을 치렀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로써 마오리족 전사의 군인 공포의 원형은 신체 바깥에 있다는 것이 판명된다. 공포는 그의 '영혼', 그의 '정신', 그의 '뇌'가 아니라 타푸라는 이름의 초월 공간과 더 높은 존재에 기인한 것이다.

19세기 중반 이래로, 감정에 관한 학문적 논의는 상극인 특성들 주위를 선회했다. 즉 강함과 유연함, 본질주의와 비본질주의, 결정론과 비결정론, 보편적 혹은 문화적이라는 두 가지 양극을 중심으로 논의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 서로 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저자의 의문과 질문은 이어진다. 어떻게, 언제, 어디서 그런 것들이 창출되었을까? 그들 간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연구가 그저 초기 단계일 뿐이라는 자신의 결론을 이끌어낸다. 서기 2000년의 첫 10년 동안 신경과학자와 인문학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다학제적 회의에 참가했던 사람이라면 이러한 양극화가 얼마나 민감한지, 그리고 주위가 얼마나 빨리 잔인한 적으로 둘러싸이는지 알 것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감정의 역사는 이처럼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아직 새로운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그동안 확립되어 온 보편주의와 사회구성주의 사이의 양극화는 종종 주목되었다고 한다. 어떤 학자는 감정을 타고난 것으로 보는 반면 다른 학자는 감정을 사회적 구성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또 거기에 덧붙여 한 학자는 보편과 변수 사이 어느 곳에 경계를 긋느냐고 반론한다. 이제는 그동안 주장해온 다양한 감정에 대한 이론이 얽히고설킨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피터와 캐롤 스턴스 등 두 학자는 "문화에 기인한 일시성으로부터 동물의 향상성을 분류하는 도전을 이야기한다고 저자는 밝히며 뤼디거 슈넬의 말을 인용한다. 슈넬에 따르,면 "오늘날 감정에 대한 역사 연구는 기본적인 것과 상반된 두 가지 입장을 가진다. 하나는, 인간의 감정이 단지 표현 양식만 달랐을 뿐 수천 년 동안 서로 같은 상태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감정은 일반적으로 역사적 변화로 결정되는 각각의 고유한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슈넬은 또한 보편주의자와 진화론자가 한 진영에 있고, 구성주의자가 다른 진영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어 많은 질문들이 이어진다. 아르민 귄터는 "감정이 역사를 가졌는지, 아니면 인류학적 상수인지" 질문한다. 캐서린 루츠와 제프리 화이트는 "다수의 고전 이론 혹은 문학 속 가정에서 인식론적 긴장감이 발견된다"라고 결론 짓는다. 이들이 바로 보편주의와 상대주의에 포함되는 것이다. 사회구성주의와 보편주의라는 이항 대립이 발생하지 않는 곳조차 이러한 대립을 은연중에 명시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가 수많은 감정에 관한 연구나 연구자들의 이론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결국은 감정의 역사에 포함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런 수많은 이론이 새로운 이론으로 재정립(재탄생)되는 과정이라는 말을 증명하려는 듯이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일반적으로 보편주의와 사회구성주의 사이의 이러한 구분은 우리의 사유를 발전시키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슬쩍 말머리를 돌린다. 18세기나 19세기의 저술들은 얼핏 보기만 해도 이러한 구분이 신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증거로 내세운다. 그것은 자연 대 문화라는 또 다른 이분법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모든 것은 또 계몽주의와 더불어 변화했다.

 

 

18세기를 거치면서 감정 이론에 말을 보탠 사람들 중에 드디어 우리가 아는 샤람들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한다. 토머스 홉스, 존 로크와 장자크 루소 등이다. 이들은 '자연'을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명명되는 학자들이다. 그들에게 자연이란 사회가 존재하기 전 기간으로 정의된다. 또 자연은 멀리 떨어져 있어 유럽 민족이 아닌 자들을 묘사하는 '원시적인'이란 말로도 한정되었다. 계몽사상가들은 자연을 인간의 신체와 동일시하여 본질적이고 변하지 않는 본능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마직막으로 자연의 의미는 환경과 융합되었다. 그 결과 식물군과 동물군이 자연이 되었다. 자연을 몸으로 보는 것과 환경으로 보는 마지막 두 견해는 무엇보다도 종교 이전의 정당한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단순화 경로를 따라, 일말의 여지 없이, 우리가 '세속화'라 부르는 독특하고 절대적인 정당화 사례가 되었다. 자연은 단단한 기반을 이룬 절대물로 주조되어 새로운 궁극의 확실성이 된 것이다. 현대 자연과학이 전문화되고 제도화된 것과 마찬가지로 우생학으로의 풍속화가 이루어졌다. 자연과 문화의 대비는 과학적 방법의 토론으로 각인되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쓴 두 가지 목적을 밝히고 있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감정 역사에 관한 개론서이기에 그로 인해 역사에 관한 통상적인 지식의 총합이 될 거라는 점이다. 이런 종류의 개론서가 쓰기에 쉽지 않은 것은 역사란 모든 방면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은유적으로 말하면, 발사대에서 발사되는 로켓의 가속을 순간사진으로 포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정을 심리학, 민족학, 철학을 통해 살피는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역사로 보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너무나 먼 곳에서 출판되어 우리가 지식으로 흡수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더라도 감정 역사의 파편들은 여전히 그러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가 저자는 설명한다. 향후 이러한 재조사 작업을 통해서, 이 책은 최근 연구와 관련된 신화들을 말끔히 요약하고 정렬할 것이며, 방대한 인용문을 삽입하여, 자신만의 역사를 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감정에 관한 연대기를 연구하기에 좋은 기초 자료를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 책은 "단순한 개요서기보다는 빠르게 발전하는 연구 분야에 대한 일종의 개입"이라고 말한다. 각각의 장(章)들은 평이할 것인데 자료들의 요약에서 중립을 지킬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무론 동시에 저자의 견해는 가능한 투명하게 개진할 것임을 내비친다. 문학과 이미지 연구와 관련하여 인문학과 사회과학 일부에 저자의 비판이 할당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책은 오늘날 만연되어 있는 시경과하긍ㄹ 이용한 정치과학까지 다룬다. 다소의 반대 위험이 있고, 거부감도 있을지라도 중요한 혁신을 위해 거침없이 개입할 의지를 내비친다.

이 책은 4장(章)으로 나누어진다. 1장 「감정의 메타역사」, 2장 「인류학: 사회구성주의」, 3장 「생명과학: 보편주의」, 4장 「감정 연구의 역사적 전망」 등이다. 1장은 19세기 후반 감정사의 시작부터 감정에 대한 역사 연대기를 제시한다. 이러한 발달 과정은 감정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다른 과학 분야와 함께 사회적, 정치적 사건의 맥락에 놓일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감정의 역사조차도 어떤 메타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2장은 감정 논의의 목적을 사회구성주의자로 돌려 타문화 속에서는 다르게 취급되는 감정에 관한 우리의 이해, 즉 인류학을 다룬다. 3장에서는 감정 스펙트럼의 다른 끝인 보편주의자로 관심을 돌려 감정 연구에 관한 전반적 개괄을 제공한다. 19세기 말에 일어난 실험심리학, 특히 신경과학에 관한 최근 연구에 초점을 두고 풀어낸다. 여기서 저자는 심리학, 생리학, 의학, 신경과학 연관 분야에 '생명과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용어는 '생물학'이라는 제한된 의미를 좀 더 확장시키기 위해 1980년대 나온, 인지심리학, 뇌 연구, 컴퓨터를 기반으로 살아 있는 유기체를 다루는 신경학 연구를 소개한다. '생명과학'은 별개의 학문 사이에 존재하는 유동성을 나타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에 따라 4장은 감정 역사 연구에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관점을 열어놓는다. 이 책에서 2장의 사회구성주의와 3장의 보편주의는 뚜렷한 이원 구조를 이룬다. 이 둘의 대조는 느낌과 감정에 대한 기록된 모든 것에 너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이 둘의 통합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책 『감정의 재탄생』이 양자관계에 의문을 일으켜 궁극적으로 두 진여의 화해를 모색하는 것이 저자의 속마음일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번역자와 출판 편집자들의 소감을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짧고 명쾌하게 소개한 내용을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감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나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질문에 바로 명쾌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을 살펴보자. 감정은 타고나는가 아니면 양육이나 삶의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가? 심장과 뇌 가운데 어느 쪽이 감정에 더 중요한가?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는가? 이 책 『감정의 재탄생』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프로이트, 다윈, 에크먼, 레디, 르두, 다마지오와 같이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사상가와 학자들의 ‘감정’ 개념 및 연구를 비판적으로 추적해 나간다. 이 내용은 철학, 인류학, 사회학, 언어학, 예술사, 정치학부터 19세기 실험심리학에서 최신 신경과학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다루는 감정의 역사는 ‘메타역사’이며, ‘감정’ 개념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폭넓고 집요한 연구의 결과로 이 책은 국제 인문학상을 수상했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감정에 관한 다학제 자료를 헤쳐나가는 연구자들에게 생명줄을 던진” 최고의 입문서로 평가되고 있다.

 

저자 : 얀 플럼퍼(Jan Plamper)

독일의 역사학자이며, 아일랜드 리머릭 대학교의 역사학과 교수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감정의 역사, 감각의 역사, 러시아 역사, 이주의 역사 등이다. 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튀빙겐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베를린 막스 플랑크 연구소 감정사 센터 연구원, 2012년부터 2021년까지 골드스미스 런던 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했다. 『감정의 재탄생』과 『스탈린 컬트』는 여러 상을 받았고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 외 저서로 『우리는 모두 이주자: 다문화 독일의 역사』 『공포』 등이 있다.

 

역자 : 양윤희

포스트모더니즘 소설 분석으로 학위를 받고 20년간 문학 강의를 했다. 삶은 이야기들의 향연이라고 일깨워 주신 외조모와 그것을 생생하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일이라고 일러준 프루스트에게 사랑을 보낸다.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가고 황폐하게 하지만 거기에 틈을 내고 영원의 환상과 사유를 집어넣을 수 있는 보석보다 휘황한 문학이 있음을 기뻐한다.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반복충동과 포스트모던 소설』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서로는 『천 에이커의 땅에서Ⅰ, Ⅱ』(민음사), 『요술 부지깽이』(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1) 등이 있다. 2013년 단편소설 「순수와 오염」으로 문예감성 신인 문학상 수상하였고, 논문으로는 「롤리타: 나보코프의 서사욕망」, 「정신분석, 그 또 하나의 서사」 등이 있다. 평론으로 「사랑의 세 가지 진화 유형」, 「여성과 문학」, 「‘벌레 이야기’로 본 서사 욕망의 전복」 등이 있고, 수필 「도깨비와 인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방랑자들을 읽고」, 단편소설 「은총」을 썼다. 첫 장편소설 『두 달 뜨는 밤』을 썼다.

 

기획 : 경희대학교 비폭력연구소

2007년 설립된 경희대학교 부설 연구소이다. 현재까지 꾸준히 비폭력 주제 연구를 이어오고 있으며, 특히 집단감정?감정교육 연구 및 세미나 개최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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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떠나보내기 - 오늘이 아프지 않게, 내일이 흔들리지 않게
이승욱 지음 / 테라코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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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발생 직후 출판계가 들썩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회사는 재택 근무를 실시하고, 공연 등 야외 대중 집회 장소에서 열리는 예술 행사도 모두 연기됐다. 심지어는 친구를 만나는 장소인 커피전문점 등 요식업소마저 두 사람 이상 만나는 곳에서 영업에 제한을 두게 할 정도로 긴박했다.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반대 급부로 음식을 배달해 집에서 먹는 배달업체, 인터넷 쇼핑몰 등은 호황을 맞는 분위기로 들썩였다. 책을 만들어 파는 출판업계도 코로나 팬데믹의 반대급부를 받는 업계가 됐다. 독자도 재택 근무로 집에서의 개인 시간이 늘어났다. 한동안 책을 읽지 않은 것을 반성하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출판계에 따르면 일상의 소통 부재를 책에서 풀어내려는 독자들이 많아진 것으로 분석했다. 에세이나 명화 감상법, 영화나 공연을 책으로 해설하고 감상법 등을 내용으로 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거기에 기간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소통 부재로 인한 우울감이 커진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 심리학적 치료나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한 각종 책들이 많이 출간됐다. '코로나 블루'라고 명명된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한 일을 야외 활동을 할 수 없자 독서로 대체한 것이다.

이 책 『상처 떠나보내기』는 코로나 특수로 출판된 책은 아니다. 코로나 10년 앞서 번역 초판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이번엔 개정 증보판을 발간한 것이다. 정신적 문제가 있는 치료법과 치료 사례, 그리고 치료 과정 등을 정신분석 심리 상담 전문가인 저자 이승욱이 집필했다. 이 책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정신적 결함으로 고생하는 환자들 치료를 위한 지침서로서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어 독자들의 재출간 요구가 계속 이어진 까닭이다.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이 재출간으로 이어진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정신분석과 심리 치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모르고 있던 상처를 들춰내는 일이라 그 자체로도 도망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러나 환자와 분석가가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좀 더 알기 위해 힘을 모아 치료가 이어진다면 치료는 훨씬 빠르고 쉽게 진전된다. 이런 치료 과정보다 더 힘든 것은 험난한 과정을 책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 역시 내담자들, 즉 이 책의 주인공인 여섯 사람의 도움 없이는 어려웠을 것"라고 말한다. 이젠 그들도 상처를 떠나보냄으로써 삶을 회복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들은 또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혹시 마음에 둔 상처가 있다면 치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자신의 깊은 경험을 나누겠다고 마음을 내주었다. 그들의 이 같은 마음은 치료가 잘 된 훌륭한 사례이기도 한다.

 


 

표제어처럼 ‘가슴 깊은 곳의 상처를 극적으로 경험하고, 깊이 이해하고, 끝내는 받아들임으로써 떠나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담자들의 내밀하고도 고통스러운 정신분석 과정을 통해, 독자들도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상처의 원인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이유로 마음의 고통 때문에 심리서를 찾은 이들의 ‘인생 책’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분석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인 정신분석가 이승욱은 이번에 출간한 개정증보판에 깊은 우울, 관계에 대한 집착, 실체를 알 수 없는 분노, 극심한 절망,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무력감 등으로 힘들어하는 다섯 명의 기존 임상 사례 외에 불행한 어머니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애쓰다 지쳐 버린 딸의 새로운 사례를 추가했다.

『상처 떠나보내기』 출간 이후 10여 년간 만난 수많은 내담자 중 이 사례를 선택한 이유는, 안타깝지만 많은 사람이 부모의 어떤 행위와 태도 때문에 상처 입고 평생 고통을 감당하며 살고 있으며, 자신도 모르게 이 고통을 대물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재출간된 이번 개정증보판 『상처 떠나보내기』는 저자가 만난 여섯 사람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타인의 상처를 다룬 이 책이 이토록 오랫동안 읽히며 회자되는 이유는, 우리의 상처가 그들의 상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사회가 디지털 사회로 변화하면서 엄청난 정보가 기존의 생활 패턴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도록 빨라짐에 따른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스트레스가 기존 가슴 깊이 감추어진 마음의 상처를 건드리고 폭발적으로 휩싸이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책에 등장한 사례들이 독자와의 삶의 경험은 다르지만 책을 읽어 나가며 어느 대목에서 가슴속 깊이 묻혀 있던 아픈 기억이 소환되어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이 책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 책이 혼자 울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지켜 줄 것이며, 든든한 안내자가 되어 고통스러운 여정을 함께 해 줄 것이란 기대감이 큰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에는 모두 여섯 가지 사례가 등장한다. 사례 당 각 1장(章) 모두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자식이란 무엇인가」, 2장 「구원받기를 원하는 여자」, 3장 「레슬러의 사랑」, 4장 「누락된 자의 슬픔」, 5장 「스스로를 없앤 청년」, 6장 「마음이 가난한 자」 등이다. 저자 이승욱은 책의 앞 부분에서 「불완전함을 향한 즐거움」이란 제목의 〈서문〉을 통해 가장 최근의 분석 케이스인 첫 장의 지하 씨의 이야기부터 기존 다섯 사례에 대해 정신분석 결과를 통해 부드러운 제목으로 이름 붙여가며 내담자와의 친밀감을 우선 염두에 둔 것으로 추정된다. 첫 케이스 지하 씨의 경우 '마녀적 모녀 관계의 민낯'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저자에게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한번 더 불러보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2장 채영 씨의 이야기는 지하 씨 케이스와 어떤 연관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독자들이 연이어 읽기를 당부한다.

제니스 케이스는 지금으로부터 시간적으로 가장 멀리 있지만, 첫사랑은 다른 관계로 대체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내 마음에서는 최초의 경험이라고 저저는 밝힌다. 미영 씨 케이스는 매 세션을 기록한 분석가의 일지를 거의 빠짐없이 드러냈다. 분석가의 심정이 좀 더 세밀하게 보일 것 같다. 또 은철 씨는 상실에 관한 아주 깊은 얘기를 한 경험이었다.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비 오는 창가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성직자 케이스는, 못다 한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이 독신 수도자의 삶이 얼마나 신실한지 알기에 그에 대한 마음은 내내 기쁘다고 저자는 표현하고 있다. 독자들도 읽으면서 느끼겠지만 저자의 심리 상담과 정신 분석 과정은 내담자와 상담자, 분석자와 피험자 간의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한 흔적이 묻어난다. 심리 치료의 원칙인 것으로 느껴진다. 의사와 환자, 상담자와 내담자로 명확한 선을 긋기보다 서로 간의 마음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심리 치료의 원칙인 것으로 독자에게는 느껴진다.

 

 

저자는 이 같은 심리 치료 기법이나 정신분석의 태도는 정신적 불안이나 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일단 안정감을 주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요즘 엄마들을 보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불안하다. 이 불안이 아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패막이 될 수 있겠지만, 너무 과도하면 아이에게 많은 걸 좌절시킬 수 있다. 엄마들이 자신의 불안을 잘 자각하면 좋겠다. 자각하면 덜 불안할 수 있다. 또 아이 입장이 돼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설명한다.

육아책은 많이 봐도 문제, 너무 안 봐도 문제다. 적절하게 보고 부모와 아이에게 맞는 육아 노하우를 선택하는 태도가 현명하다. 정신분석가 이승욱이 근간에 펴낸 『천 일의 눈맞춤』은 ‘0~3세 아이를 위한 마음 육아’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왜 3세까지의 육아에 집중했냐”는 물음에 “태어나서 3년까지, 인간은 정신 구조의 기초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20년 동안 정신분석가로 훈련 받고 일하면서, 수많은 내담자를 만나던 중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성장기 때,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고통을 겪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부모와 전혀 관계 없는 일들로 고통을 호소했지만, 분석하다 보면 부모에 대한 애증과 원망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고 밝힌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대부분 부모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부모를 사랑하되 부모의 ‘욕망’으로부터는 자유로운 아이로 키우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육아 핵심은 세 가지다. “따뜻한 응시와 안정적인 수유, 엄마의 품.” 굉장히 평범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책을 읽다 보면 진짜 아이를 위한 육아가 무엇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뉴질랜드에서 정신분석을 전공하고 오클랜드의 정신병전문치료센터에서 정신분석가, 심리치료실장으로 일한 저자는 지금은 경복궁 옆 서촌에서 〈닛부타의 숲 정신분석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또 팟캐스트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를 통해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알기 쉽게 전하고 있다.

 


 

이 책은 매우 체계적으로 장을 나누고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애쓴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또 자칫 말의 성찬으로 들릴지 모르는 상담과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상자의 동의를 구한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내용 대부분이 철저히 기록에 의해 기술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적이며 구체적 표현으로 오는 데에서 오는 자칫 있을지도 모를 기억의 오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여섯 가지 이야기가 여섯 개의 장에 기술되지만 간단하게 한 줄 정도로 요약해, 먼저 읽은 독자 입장에서 서평을 읽는 독자들의 선택을 돕고자 한다.

 

① 어머니의 구원자가 되고 싶었던 지하 씨

어머니는 불행한 결혼 생활 속에서도 딸 지하 씨에게 만큼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가엾은 어머니의 구원자가 되고 싶었던 지하 씨는 열심히 공부해 완벽한 엘리트로 성장했다. 하지만 늘 채울 길 없는 공허를 느끼고 폭식과 그에 따른 자기 징벌 행위를 반복하는 섭식장애에 시달리는가 하면, 자기 삶에서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듯해 허망하다.

②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채영 씨

폭력적인 아버지와 가난한 가정 형편, 채영 씨의 유년은 비참했다. 그러나 유능한 남편을 만나 결혼한 그녀는 지금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아이들도 무탈하게 자라고 있으니 걱정할 일이 없다. 그런데 웬일인지 깊은 우울에 빠진 그녀, 5년 전부터 자살을 생각하게 되었다.

③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랐던 제니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온정적인 제니스가 원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뿐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번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100퍼센트를 주어도 그들은 진심을 몰라주고 튕겨내기만 한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울고 매달리고 화내다 마침내 자해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녀는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④ 조력자의 삶에서 보람을 찾으려 했던 미영 씨

미영 씨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뒤에서 묵묵히 일해 왔다. 어린 시절에는 힘든 어머니를 알아서 도왔고, 어려운 집안일도 스스로 처리했다. 결혼해서는 남편의 성공을 바라며 조력자를 자처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보람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지금 남아 있는 건 보람이 아니라 실체를 알 수 없는 분노뿐이다.

 


 

⑤ 한 번의 사고로 너무 큰 것을 상실한 은철 씨

은철 씨는 여행길에 운전 미숙으로 교통사고를 냈다. ‘미숙’의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이제 막 세상에 나가 한껏 젊음을 만끽해야 할 스물한 살 그는 두 다리의 기능을 잃었고 자유를 상실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장애인의 삶…. 느닷없이 닥친 사고로 그는 절망에 빠졌다.

⑥ 자신을 신께 바치고 숭고한 삶을 살아가려 했던 성직자

병든 어머니가 나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신께 자신을 바칠 테니 어머니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어머니가 나은 후, 그는 서원대로 성직자가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신께 인신공양하고 성직자로서 숭고한 삶을 살아왔지만, 지금은 자신이 무능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질 뿐이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마음속의 이야기들에 관해서다. 드러나 있지 않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대부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상처로 인해 우리 삶에 우울과 불안, 외로움, 분노, 공허, 무력감 등이 찾아올 때면 고통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고 저자는 심리상담이나 치유 경험 의 결과로 설명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 역시 무엇 때문에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모른 채, 이해받지 못하고 공감받지도 못한 채 괜찮은 척 견뎌 왔다는 것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정신분석을 통해 가슴 깊은 곳의 상처를 극적으로 경험하고, 깊이 이해하고, 끝내는 받아들임으로써 떠나보내는 힘겹고도 기쁜 여정을 시작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 경험을 소환하기도 하고, 꿈 해석, 카우치 분석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상처의 근원을 찾아가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고 강조한다. 만약 당신의 마음이 슬프고 우울하고 아프다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 고통의 근원을 찾아 용기 있게 발걸음을 내디뎠던 여섯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며, 가슴 깊고 오래된 상처를 떠나보내고 아프지 않은 오늘을, 흔들리지 않을 내일을 맞이하길 바란다.

 

저자 : 이승욱

 

〈팟캐스트 공공상담소〉 〈닛부타의숲정신분석클리닉〉 대표. 뉴질랜드에서 정신분석을 전공했고, 오클랜드의 정신병전문치료센터에서 정신분석가로, 심리치료실장으로 일했다. 귀국 후에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하자작업장학교의 교감직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경복궁 옆 서촌에서 ‘닛부타의 숲 정신분석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공공재로 사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다음 세대가 건강하게 잘 성장하도록 기여하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영유아 시기, 부모의 양육 방식과 그로 인한 경험이 건강한 자아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저술, 강연, 팟캐스트 등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소년』, 『대한민국 부모』(공저), 『상처 떠나보내기』, 『사랑에 서툰 아빠들에게』, 『포기하는 용기』, 『애완의 시대』(공저)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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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이헌영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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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가 됐지만 과거 산업화 시절 대한민국은 북한을 소재로 삼는 소설은 으레 '반공'이 주제였다. 같은 한민족이지만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자마자 국제적 힘의 논리에 따라 허리가 끊겼다. 임시 정부의 이름으로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인사들도 서로 다른 이념(민주주의와 공산주의)으로 나뉘었고, 각각의 정부를 세웠다. 이념 차이는 혈육마저 적으로 만들었다. '동족상잔'이라는 혈육간 전쟁도 겪었다. 치열한 3년 여의 전쟁 이후 서로간 반목은 정전 상태로 지속되었다. 이후 분단으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한민족이 감내해야 했다. 정전 이후 무려 70년이 지났지만 통일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분단이 고착화되어 가는 가운데에서 분단국 중 대한민국은 유일하게 '통일되어야 할 국가'로 남아 있는 상태다. 사실상 종전도 아니어서 한국전쟁은 정전 협정으로 우선 미봉했지만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남북으로 갈라진 지 70여 년이 흘러 통일을 염원했던 많은 사람이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시점이기도 하다. 통일의 기원이 가장 현실화될 때는 공산주의 종주국 구 소련의 붕괴시점이었으나, 독일도 이때 통일돼 이젠 안정된 나라가 됐고, 베트남은 우리보다 늦게 분단이 시작됐지만 전쟁에 이김으로써 통일을 맞았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가 지속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통일의 좋은 기회였던 구 소련 붕괴에 따른 양쪽의 적절한 대응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가져오지 못한 이유로 분단이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기는 하다. 한반도에 사는 한 피할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변화한 통일환경에 따른 새로운 통일 논의가 필요한 시기이라고 분석이 가능한 이유다. 과거의 통일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통일 논리가 필요하다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남북간 정상 회담이나 북한 방문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결국은 정치권의 뒷받침이 없이는 통일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만 더욱 높아진 상태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더욱이 21세기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세계 10대 강국에 들어섰지만 통일에 뒷받침이 돼 주는 데는 한계에 부닥친 형국이다.

 


 

이 책 『남북통일』은 표제어대로 대한민국과 북한과의 통일을 주제로 한 장편소설이다. 과거처럼 '반공'의 개념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이미 어렵다고 확인된 바, 새로운 통일 논리를 제시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통일 소설'의 새로운 관점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남북 통일을 위해 새로운 통일 논리가 장착된 소설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의 시도는 매우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저자 이헌영의 통일 논리는 이 소설이 처음은 아니다. 전작 『한 생각』에서 저자는 정관영이란 인물을 내세워 통일을 위한 아이디어로 ‘경제적 양극화의 해결책’을 마련하고, 대통령 선거제도를 개혁해 고질적인 정치 풍토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었다. 이 책 『남북통일』은 전작의 등장인물이 대부분 그대로 활동하며, 통일을 위한 논리를 맞춰 나간다. 저자가 통일의 캐릭터를 독창적으로 창조한 인물이다. 전작에서 정관영은 남한의 경제 양극화 해결에 주력했고, 선거제도 개혁을 했던 인물이다. 이번 작품에서 정관영은 남북통일을 위해 스스로 볼모를 자처하며, 전임 대통령 허장훈과 북한에 입국한다. 이는 전작과 이번 작품이 연작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70여 년 동안 서로를 타도해야 할 주적으로 삼아 일촉즉발의 긴장 상황을 끊임없이 연출해온 남과 북의 모습은 비단 소설이 아닌, 우리가 당면한 비극적인 현실이다. 거대한 장벽과도 같은 남과 북의 현실을 주인공이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소설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남북통일을 간절히 이루길 소망하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통일을 위한 길을 새로 개척, 제시하는 셈이다. 저자는 최근 남북관계 전망에 관련해 2022년 1분기부터 2023년 1분기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국민 통일 여론조사 결과에서 통일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내놓는다. 이 설문 조사 결과 남북관계가 나빠질 것(25.5%~34.9%)이라는 응답이 좋아질 것(16.6%~23.1%)이라는 응답을 앞서고 있다. 남북관계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답변이 일관되게 높게 나오는 현실에서 남북통일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접촉해 만나서 대화로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양쪽이 거부할 수 없는 논리로 풀어나가야 할 일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의 '통일 문학'으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소설로 읽히는 이유다.

 

 

남북통일은 우리 민족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숙원이며, 앞으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숙제다. 통일되는 그날까지 우리 민족이 반드시 넘어서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한 주인공 정관영이 이번에는 남북통일을 위해 평양에 입국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양에 들어간 주인공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통일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거는 모습을 보면, 남북통일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현실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현실을 축소한 이 소설을 보며, 소설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남북통일을 이룰 조각을 맞춰 보는 일도 이 소설을 의미 있게 해주는 하나의 요인이다.

이 책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통일 논리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의식이 밑바닥에 짙게 깔린 일이다. 최고의 통일 해법은 역시 무력보다는 협의와 평화적인 방법이어야 진정한 통일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설득력과 정당성을 동시에 획득하는 일이다. 이것이 주제가 되려면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현실과 사회·경제적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있어야 하고, 더불어 북한의 정치·경제·사회 현실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통해 독자들이 신뢰할 만한 방안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정보가 많아야 할 것이다. 즉 독자들의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는 과거 통일 소설보다는 사회적 여건이 굉장히 좋아진 것이 대한민국 현실이다. 반공이나 승공을 외칠 무렵에는 북한에 대한 정보는 일반인들의 거의 접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여지는 대로 북한을 이해했다. 이런 사실은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알지 못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통일 논리가 나올 수 없다. 대치와 반목만 연장될 도구로 이용될 뿐이다. 공산주의 사회의 변화가 적시였다는 것이 그래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론화, 정론화되지 못한 것은 적극적 통일 의지가 별로 없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그럼에도 북한을 접하는 우리의 정보는 훨씬 다양해지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에도 극비 사항을 제외하고는 신문이나 방송 보도에 거르지 않고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탈북민들의 엄청난 증가로 대한민국으로 온 탈북민의 숫자가 이미 3만5,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탈북민의 숫자는 타국으로 가거나 아직도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떠도는 숫자를 합치면 10배 가량인 30만 명을 웃돈다는 것이 대한민국 정보 당국의 공식적인 발표다. 대한민국으로 온 탈북민 중 일부는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나 사회 현실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한다. 시청자들이 놀랄 정도다. 조금 과장된 것이겠지 할 정도로 믿기지 않은 현실이다. 그들의 말을 듣다보면 세계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아직 존재하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 논리나 이성보다 감성과 혈육이라는 지극히 감정적인 태도로 북한 주민들을 동정하는 차원에서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을 각성시킨다. 그런 정부를 끌어가는 북한 당국자나 그들에게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현실이란 게 21세기 지구상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독자도 그들을 통일 협의나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느낌을 넘어서 '불가능한' 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정도면 대화나 협의를 통한 통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서로 적으로 대하는 상황에서 어떤 방식의 통일 논리도 내놓지 못할 수도 있다. 통일은 결과보다 그 자체, 그리고 과정이 중요하다. 무력에 의한 통일은 양쪽 다 원하지 않을 것이다. 또 무력에 의한 통일은 혼란을 수습하기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한 인간이 가진 이념과 사상이 종교적 신앙심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북한 주민들의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를 그냥 무력하다고만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더욱이 먹고 살 것이 없는 주민들에게 저항하지 않느냐고 따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소설에서 많은 부분이 그동안 북한 문제를 계속 접했던 사람에게는 쉬운 내용일지 모르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하거나 조금 과정된 것 아닌가? 하는 관례적 생각 정도에 그칠 수는 있으리라. 북한 당국자들의 대화나 그들의 태도 묘사, 그리고 무엇보다 머릿속의 생각들은 직접 함게 생활하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소설 작가가 꼭 경험해야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개념만 안다면 얼마든지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것이 소설 아닌가? 어쩌면 그래서 더 현실 같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정보나 첩보 당국자들도 꼭 확인해야만 알아내는 것이 있는 반면, 불확실한 첩보라도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전까지 추정해 들어가는 것도 상상력이긴 하다. 정보나 첩보를 다루는 사람들은 그렇게라도 하지만 일반인들은 현실은 물론 상상력도 부족할 수밖에 없으니 읽히는 소설을 쓰려면 저자로서 고충을 이해되기도 한다. 평양에서의 일정을 소화하기까지 소설 내용은 마치 눈앞에서 보이는 것처럼 치밀한 묘사가 이 책에 있고, 그들이 보여주는 태도 또한 자세히 기술된다. 다만 이런 요인들을 자세히 그럴 듯하게 엮어내는 것은 오로지 작가의 몫이기에 북한 사회를 소설로 그려내기에는 쉽지 않을 일이다. 그래도 저자의 통일에의 염원이나 희망은 문외한인 독자에게는 모두 현실로, 사실로 읽힌다. 다큐멘터리처럼 말이다. 이것이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것일까. 쉽지 않은 소재의 소설에 매달리는 저자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날이 왔다. 판문점으로 이어진 길엔 어마어마한 인파가 나와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흔들며 남북통일을 외쳤다. 김경희 대통령 일행이 지나갈 때는 함성이 하늘을 들어 올렸다. 남북의 기자는 물론 전 세계 언론사에서 몰려온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룬 가운데 김경희 대통령이 판문점에 도착했다. 곧이어 북한 김주형 위원장이 휠체어를 탄 채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김경희 대통령이 다가가 큰 키를 깊이 숙여 김주형 위원장과 가볍게 포옹하고 다시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아, 아! 위원장님 편치 않으신데 여기까지 오시느라… 반갑습니다. 힘드시죠?”

“아! 대통령님, 반갑습니다. 괜찮습니다. 견딜 만합니다.”(p.320)

 

저자 : 이헌영

 

현 이헌영패션 대표. 아이디어 소설 『한생각(2017)』을 발표했으며 2018년 한국예총 [예술세계] 신인상에 장편소설 『은미야 괜찮아 노래해!』가 당선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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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지혜
존 러벅 지음, 박일귀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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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아주 오래된 지혜』는 19세기 영국에서 나온 책이다. 요즘 말로 하면 에세이, 자기계발, 삶의 지혜 등으로 일컬어질 삶에 있어서 인간의 지혜로운 말을 담고 있다. 저자 존 러벅은 유년 시절 이웃으로 이사 온 다윈을 알게 되면서(1842) 그의 진화론에 깊은 감명을 받고 생물, 지질, 인종, 토속 등 여러 학문에 흥미를 가진 인물이다. 1848년 부친의 은행에 취직하여 훗날 은행장이 되었으며 일생을 은행가로 활약했다고 한다.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20세기의 지성으로 불리웠으며, 존 러벅은 인류학자, 고고학자였고 정치가이자 작가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19세기에 쓰인 이 책은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의 21세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시간의 숙성이 빛나는 책이다. 현재의 시간에 매몰되어 삶의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내막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아포리즘* 모음집 같은 이 책에서는 소크라테스부터 세네카, 벤저민 프랭클린, 베이컨, 몽테뉴, 뉴턴, 데카르트, 토마스 아 켐피스, 찰스 디킨스, 다윈, 에드먼드 버크 등 서양 지성사의 굵직한 인물들이 총동원되어 삶의 숭고한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이 언급하는 지혜, 절약, 놀이, 건강, 교육, 자기계발 등의 키워드가 얼핏 식상한 주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휴식을 취하듯 한 문장 한 문장 읽다 보면 그 메시지가 마음에 웅숭깊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끔은 전율이 일듯한 심미적 사유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 아포리즘(aphorism) :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금언 ·격언 ·경구 ·잠언 따위를 가리킨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명한 아포리즘은 히포크라테스의 『아포리즘』 첫머리에 나오는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이다. 또한 파스칼의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한 줄기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말도 널리 알려진 아포리즘의 한 예이다. 문예 또는 철학적인 아포리즘을 모은 책으로는 라 로슈푸코의 『잠언집』, 콜리지의 『내성(內省)의 안내』, 니체의 『서광(曙光)』 등이 있다. 아포리즘은 일견 ‘이언(俚言)’이나 ‘속담’ ‘처세훈’과 흡사하지만, 이언이나 속담은 널리 유포되어 사용되면서도 작자가 분명하지 않으나 아포리즘은 저자자의 독자적인 창작이며 또한 교훈적 가치보다도 순수한 이론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점이 ‘처세훈’과는 다르다.(두산백과)

 


 

이 책은 〈서문〉을 대신한, 「가장 중요한 질문: 인생은 많은 ‘일’보다 많은 ‘노력’을 원한다」란 제목의 1장(章) 서두에서 "인생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인생을 유지하는 데는 안간힘을 쓰지만 정작 인생을 잘 살아내기 위한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간단한 질문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리스의 의학자인 히포크라테스는 『아포리즘』 서문에 쓴 내용 중 하나를 예시문으로 제시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기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경험은 불확실하며, 판단은 어렵다."(p.8) 인생의 행복과 성공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주장이다.

또 '파멸'에 대해 "타인보다 자기 자신 때문에 파멸하는 사람이 더 많다"며 "파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시간이 가져오는 파멸이고, 또 하나는 인간이 가져오는 파멸이다"고 설명하면서, 이 가운데 인간이 가져온 파멸이 훨씬 끔찍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도 옛 현자들을 인용한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세네카는 인간의 가장 큰 적은 가슴속에 있다고 했다. 또한 프랑스의 철학자 라브뤼예르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 데 꽤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고 지적했다." 저자의 독서량과 이 책을 쓰기 위한 노력이 각별했음이 드러난다. 책의 번역자 박일귀는 "이 책을 발간할 당시 19세기 영국으로 돌아가 상상해보면 저자가 이처럼 많은 현자들과 지성인들을 인용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독서와 메모, 메모 상황의 분류 등을 위해 얼마나 열심이었나를 가늠하게 한다"고 저자의 지성을 칭송한다. 사실 요즘은 인터넷에서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원하는 자료가 무한할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상황을 상상하기도 어려운 시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가 수많은 현자들의 지혜와 지식을 총동원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독서량에 기인한 것이라고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저자의 시공을 초월한 탐독을 엿볼 수 있다는 번역자의 말에 독자는 공감한다.

 

 

이 책은 모두 14장으로 나뉘어 있다. 2장 「지혜: 삶의 연극에서 최선의 연기를 꿈꾸라」, 3장 「절약: 빚을 지는 것은 노예가 되는 것」, 4장 「놀이: 기쁘게 노래하고 노래하고 또 노래하라」, 5장 「건강: 왜 청명한 몸 상태를 꿈꾸지 않는가」, 6장 「교육: 성숙한 ‘오늘’을 위해 끊임없이 매진할 것」, 7장 「자기계발: 배움에의 갈망으로 빛나는 삶이어야」, 8장 「독서: 독서가 행복한 삶을 완성한다」, 9장 「인간관계: 좋은 인간관계보다 더한 축복은 없다」, 10장 「근면: 게으른 사자보다 일하는 개가 낫다」, 11장 「희망: 어두운 때를 지나야 밝은 빛이 솟나니」, 12장 「자비: 타인을 용서해야 스스로도 용서받는 법」, 13장 「인격: 진실을 가슴에 품고 고결한 삶으로 나아가라」, 14장 「평안과 행복: 온 우주가 보내는 웃음에 화답할 것」 등이다.

이 책은 앞서 말한 대로 19세기에 쓰여진 책으로서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는 않은 듯하다. 확실하지 않지만 이른바 고전으로 묶이는 책의 목록에서 찾아볼 수 없고, 이 책의 역자나 출판사 측도 고전이란 단어를 굳이 붙이지 않는다. 책의 목록에서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독자의 독서 부족으로 말할 수는 있지만, '삶의 지혜', '삶의 보석', ''삶의 지침서'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고전으로 분류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다른 몇 권의 고전을 읽는 것보다 오히려 공감과 감동이 컸다고 시인한다. 이를 역자의 표현을 빌자면 이 책의 목차를 보자면 너무나도 '정직'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기계발서의 느낌이라는 것. 역자 역시 아포리즘 모음집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저자가 책을 너무 쉽게 쓰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서양 사상사의 굵직한 인물들을 총동원한 것도 의심스러웠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번역 작업을 지속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 머물게 되고 비로소 "아, 이래서 고전을 읽어야 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고 밝힌다. 독자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옮긴 듯한 표현이다.

 


 

책 뒷 부분에 있는 〈옮긴이의 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새 ‘나’를 가득 채우는 ‘아포리즘’의 향연」이란 제목의 글이다. 독자는 '향연'이란 말에 주목한다. 당시 최고의 지성인이던 등장인물과 저서, 그들이 인류사에 미친 엄청난 영향들이 꼼꼼하게 적절한 주제의 장(章)의 제목 아래 수시로 쓰였으니 말이다. 이는 일부러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천천히 읽어가면 어느 독자든 공감할 부분이다. 이미 고인이 된 저자에게 서문을 써 달라고 할 수 없으니, 서문을 쓰려면 당연히 출판사 측(편집자)이나 번역자의 몫이 될 것이다. 역자는 책을 너무 쉽게 쓰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오히려 책 한 권을 너무 힘들여 쓴 것이 아닌가라는 존경심으로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역자에 따르면 저자는 당대의 지식인이었지만 지적 우월감에 빠져 있지도 않았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읽고 쓸 줄 아는 대중 독자들이 많아지면서 이들 눈높이에 맞춰 인생의 교훈을 전하려 했다. 어느 하나의 사상이나 주장에 경도되지 않고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너무 뜬구름 잡는 도덕이나 윤리에 치중하지도 않고 너무 세속적인 처세술만 전하지도 않는다. 이른바 '중용'의 미덕을 발휘했는데, 중용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맹탕이라는 말이 아니다. 시소의 중간에 서서 균형을 유지하듯, 이것에도 저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창조적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고급 기술이다. 한쪽에 치우치는 건 쉽지만 균형을 이루는 건 어렵다. '중용'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처세(the use life)의 핵심이기도 하다.

요즘 출판계에서는 가까운 과거의 책을 '클래식'으로 리커버해 부활시키는 흐름이 유행처럼 번진다고 역자는 한마디 보태고 있다. '하늘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처럼 고전의 부활은 환영할 만한 현상이자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쉴 새 없이 새로운 트랜드를 추구하는 시대에 한편으로는 변하지 않는 인생의 가치에 대한 목마름이 생길 수 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그 목마름을 채워주리라고 믿는다."(p.253~254)

 


 

이 책은 각 주제별로 장으로 나뉘어 현자들이 쓴 많은 책이 열거된다. 그 책에서 주제에 맞는 부분을 저자가 발췌해서 저자의 글을 흐름에 맞게 인용해 써놓았다. 역자도 언급했듯이 절반은 자신의 의견을, 글에 담았고, 글의 흐름과 주제를 뒷받침하는 현자들의 말(글)이 담겨 있다. 독자들은 읽어가기만 하면 된다. 쉽게 쓰여 있어 글의 이해가 빠르리라고 독자는 믿는다. 다만 인용되는 현자들과 책들은 어쩌면 오늘날 사람들이 다 읽어보진 못했을 것이다.(전공한 사람이나 일부 독자들은 읽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의 독서 경향이나 시대가 다름을 인정한다면 모든 책을 완독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독자의 판단이다.) 독자들은 자신이 가장 꼭 기억해두고 싶은 글이나 문장을 만난다면 책의 공간에 메모를 해둘 것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권유한다. 나중에 다시 읽을 기회가 있다면 확실히 암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이 읽어볼 만한 책이라기보다 어쩌면 꼭 읽어야 할 필수 독서 목록에 두어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삶에 대해 생각하거나 삶의 태도를 배우려거나 사색을 한다면 이 책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어느 한 곳도 허술하지 않고, 단어 하나하나에도 혼이 실린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글을 쓰려는 사람도 읽어둘 필요가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모두 열거할 수 없기에 13장 '인격'에 대한 글을 독자가 임의로 부분 발췌해 독자들이 책을 판단할 수 있는 기초로서 제공한다. "우리 모두가 위대한 시인이나 음악가, 예술가, 과학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구나 타고난 재능이 많은 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로 갖출 수 있는 성품들, 즉 성실, 평정심, 근면, 검소, 자비, 정직, 절약, 담대함, 관대함을 보여주라. 이렇게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많은데 왜 자신이 부족하고 무능하다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인가? 자신은 타고나지 못했다며 불평하고, 비열하게 굴고, 남에게 아첨하고, 신체 조건을 탓하고, 비위를 맞추고, 쓸데없이 과시하고, 불안해 하고 있는가? (중략)

나중에 부끄러울 일은 결코 하지 말라.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의견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양심이 말하는 의견이다. 세네카는 "양심이 편하면 인생은 끊임없는 향연처럼 기쁘다"고 말했다.(p.216)

 


 

오늘을 살찌우는 잘 숙성된 삶의 지혜가 가득한 이 책 『아주 오래된 지혜』는 씹을수록 맛이 나는, 진가가 빛나는 책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한 번뿐인 저마다의 삶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100% 인생사용설명서'이다. 즉 삶이라는 한 편의 연극에서 우리가 왜 최선의 연기를 다해야 하는지, 왜 배움에의 갈망으로 가득한 ‘지금 이 순간’을 꾸려야 하는지, 왜 타인을 용서하는 것이 스스로를 빛나게 하는 일인지 등을 지극히 따뜻하고 섬세한 언어로 속삭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특히 아포리즘 형식으로 기획한 저자의 노고가 지극하다. 예를 들어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고 믿는 저자는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 리히터의 말을 인용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된다. 우리의 자유의지는 절대자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무엇이 되길 간절히 원한다면 그대로 된다.” 그리고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자아를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기에 독일의 철학자이자 언어학자인 훔볼트를 언급한다. “모든 사람의 목표는 한결같고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가장 고귀하고 조화로운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다.” 여기에 요한 파울 리히터의 말을 덧붙여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자신의 능력을 계발”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이 부분은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의 말로 마무리한다. “나는 여태껏 나라는 존재보다 더 큰 기적이나 괴물을 본 적이 없다.”

어떤 현자는 여러 번 인용되기도 한다. 각 장에서 필요한 말을 현자가 이미 저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삶을 위해 필요한 인간의 노력이 미쳐야 할 곳이라면 종교나 나라를 가리지 않았고, 옛날이나 현재를 가리지 않았다. 1장 「가장 중요한 질문」에서 저자는 독일의 성직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증언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자기 자신을 제대로 관리할 때 얼마나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지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p.25) 토마스 아 켐피스는 11장 「희망」에서 다시 인용된다. "『그리스도를 본받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나온다.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 오고, 밤이 지나가면 아침이 오며, 거센 폭풍우가 지나가면 고요해진다."(p.196) 우리보다 앞서 이 세상을 살다 간 수많은 현자들의 뼈아픈 삶의 충고와 조언을 모은 『아주 오래된 지혜』를 머리맡에 두는 것이야말로 아주 간단하면서도 선명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좋은 책을 한 시간 동안 읽으면 한 시간 전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책을 읽은 기억은 우리가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밝고 행복한 생각의 창고로 남을 것이다."(p.141) - 8장 「독서: 독서가 행복한 삶을 완성한다」 중에서

 

저자 : 존 러벅(John Lubbock)

 

1834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 이웃으로 이사 온 다윈을 알게 되면서(1842) 그의 진화론에 깊은 감명을 받고 생물, 지질, 인종, 토속 등 여러 학문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1848년 부친의 은행에 취직하여 훗날 은행장이 되었으며 일생을 은행가로 활약했다. 공공사업에도 진력하였으며 런던대학 부총장, 런던상업회의 소장 등도 지냈다.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20세기의 지성, 존 러벅은 은행가, 인류학자, 고고학자였고 정치가이자 작가였다. 그는 누구보다 일찍 ‘잘 사는 법’에 대한 인생의 비밀을 깨달았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늘 학문과 예술에 마음이 끌렸으며 또한 자연과학과 고고학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많은 저서를 남겼다.

영국적 인류학의 기초를 이룩하고 곤충이나 식물, 동물의 형태에 관한 실험적 연구의 선구자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 시대’란 용어는 모두 그의 저서 『문명의 기원과 인류의 원시 상태』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말이다.

또 그의 독서 경험을 토대로 『명저 백선』을 펴냈는데 책 선정이 매우 뛰어나 동시대는 물론 후세에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저서로는 『인생의 즐거움』, 『평화와 행복』, 『명저백선』, 『문명의 기원과 인류의 원시상태』, 『선사 시대』, 『곤충의 기원과 변화』등이 있다.

 

역자 : 박일귀

 

중앙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았어요. 출판사 편집부에서 10년 넘게 일했고, 지금은 작가, 번역가,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어렵고 지루할 수 있는 교양 지식을 쉽게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일을 좋아해요. 지은 책으로는『1일 1페이지 365 한국사』(근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DK 타임라인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DK 나의 첫 지도책』, 『청소년을 위한 친절한 세계사』, 『청소년을 위한 친절한 서양미술사』, 『청소년을 위한 북유럽 신화』, 『그리스 신화밖에 모르는 당신에게』, 『처음 읽는 여성 철학사』 등 30여 종이 있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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