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 아직 늦지 않았을 오십에게 천년의 철학자들이 전하는 고전 수업
김범준 지음 / 빅피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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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다보면 삶이 삶이 안정되고 쉬워질 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수십 년을 살아도, 죽음을 앞두고서도 기대가 '만족'으로 바뀌지 않는다. 잘못 살아서일까? 후회와 반성도 해보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만족감을 표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게 인간의 삶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인생은 한 번뿐인 기회이기에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만족스러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만족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누군가 가르쳐만 준다면 그 방법으로 살아보고 싶은 것은 삶의 의지가 남았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누구일까?

이럴 때 지혜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찾으려면 지식으로는 한계에 금세 부딪친다. 그것은 해봐서 안다. 우리가 가진 지혜가 가르치는 '누군가'는 이 책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 등장하는 사람들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공자, 노자, 순자, 맹자, 묵자가 그들이다. 그 분들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인데···. 그들의 말과 가르침을 적어놓은 책들이 있다. 거기엔 인간이 지니고 살아가야 할 수많은 지혜가 가득 들어 있다. 이미 2,500년 전에 우리처럼 잠깐 살다 가신 분들이다. 그들의 가르침이 2,500년간 인간의 삶을 지배해왔다. 그들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를 썼고, 일부는 성공적인 삶을 마친다. 그러나 일부는 그렇지 못한다. 갈림길이 어딘가? 그들의 가르침이 옳다고 수긍하는 부분과 부정하는 부분이 갈림길이다. 그래서 그들의 가르침을 책을 다시 읽어보면 자신이 왜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는지, 어느 부분에서 가르침에 반했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그 책들을 '고전'이라 부른다. 대부분의 고전들은 인간의 삶의 방향과 사는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2,000년 이상 인류는 그들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해왔다. 이로 인해 21세기 인류의 삶은 화려할 정도로 풍요롭지 않은가?

 


 

이 책은 5명 위대한 사상가이자 철학자들이다. 한국 사람이기에 동양권의 사람들의 말로 해온 것일 뿐 서양 문화권에서도 2,500년 전부터 인간의 삶을 같은 방법으로 제시한 사람들이 있다. 당시에는 문명의 미발전으로 그쪽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를 몰랐고,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몰랐다. 때문에 각기 다른 생활 방식이지만 인간으로서의 관점으로 보면 같다. 때문에 가르침도 대동소이하다. 동서양의 문명이 부닥치며 낸 파열음은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것이지 그들의 가르침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동서양의 관점에서 가르침을 준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르치고, 길을 제시했다. 문명은 발전할수록 빠르게 변화한다. 그것은 삶의 경험에서 나온 지혜이다. 빠르고 복잡해진 세상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점점 더 많아진다. 변화에 대한 요구는 안주하려는 사람에게도, 부정하며 변화하려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 사실을 인정하려고 해도 사실 새로 도전하기란 쉽지 않고,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에는 책임져야 할 것이 많다.

이 책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어 버린 것은 아닐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배우려는 사람은 나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생의 중반부를 지나면서부터 속도와 방향을 재정비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공부는 따로 있다고도 말한다. 앞길이 막막할 때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걸으며 인생의 답을 제시한 철학자들에게 의지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저자 김범준은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그 일보다 적당한 일은 없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변화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습관과 방식대로 살려하면 지금까지 일군 결과를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다. 인생이란 호락호락하지 않다. 누군가의 조언을 구하고 싶지만 막상 그런 이를 찾기도 쉽지 않다. 이에 저자가 조심스럽게 내민 책이 이 책이다. 그들의 언어를 현대 우리 삶에 맞게 '새로 쓴 삶의 지침서'다.

 

 

이 책에 우리가 하고 있는 고민의 답을 제시한 철학자들이 있다. 누구도 가지 않던 길을 가고, 하지 않던 고민을 하며 수천 년간 인류의 스승으로 인정받아 온 그들에게 삶의 조언을 얻어 보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동서양 위대한 철학자들이 제시한 인간의 길은 같다. 분명 예전에 비해 사회나 우리 인간이 함께 일궈놓은 문명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이로 인해 누구나 문명의 혜택을 보면서 산다. 그런데 왜 나는 만족하지 못하는가? 삶에 대한 질문은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렇다고 끝이 없다고 삶의 질문마저 하지 않아야 하나? 변화에 대한 의지가 없는 사람은 당연히 질문도 없고 답도 없다.

이 책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는 '고전'이라 불리우며 우리 인간의 행복한 삶의 지혜를 저자의 관점에서 취사선택해 모아놓았다. 위대한 인물들의 중심 철학과 교훈이 들어 있다. 저자 김범준은 위대한 지적 거인들이 남긴 천년의 고전을 통해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고 마음을 지켜내는 오래된 지혜를 이 책을 통해 전한다. 특히 돈과 명예, 인간관계와 갈등, 욕심과 내려놓음 가운데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이들에게 비우고, 내려놓을수록 인생이 풍요로워진다는 가르침도 전한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힘과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이때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걸으며, 인생의 답을 제시한 철학자들에게 의지해 보자.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어려웠던 인생이 한결 쉬워질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입니다. 종교의 경전에 버금가는 삶의 지혜가 담긴 책들이고 책의 저자들입니다. 2,500년간 인간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는 지혜를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과 가르침으로 보다 아름답고 풍요롭게 살기 위한 노력을 거듭해왔고요. 담긴 책과 가르침을 제시해온 지향점을 제시하는공자, 노자, 순자, 맹자, 묵자와 같은 위대한 지적 거인들이 남긴 천년의 고전을 통해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고 마음을 지켜내는 오래된 지혜를 전한다. 배우는 사람은 결코 나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돈과 명예, 인간관계와 갈등, 욕심과 내려놓음 가운데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이들에게 비우고, 내려놓을수록 인생이 풍요로워진다고 전한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힘과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이때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걸으며, 인생의 답을 제시한 철학자들에게 의지해 보자.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어려웠던 인생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천년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삶의 기술'을 제시한다.

① 볼 때는 (사사로움에 흔들리지 말고) 명확히 봐야 한다.

② 들을 때는 분별해야 한다.

③ 얼굴빛을 부드럽고 온화하게 하여, 화를 내거나 사나운 기색이 없어야 한다.

④ 태도가 단정하고 씩씩해야 한다.

⑤ 말은 진실하게 해야 한다.

⑥ 일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⑦ 의심이 생기면 반드시 물어 모르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⑧ 분할 때는 화낸 뒤의 어려움을 생각한다.

⑨ 이득을 보거든 옳은 것인지를 생각한다.

 


 

사실 위 9가지는 동양의 사상계를 지배했던 공자가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자세에 대해 가르친 것을 제자가 우리말로 풀이해 정리했다. 원문과 정리를 찾으려면 이 책 3장 공자편을 찾아보면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공자가 최고의 철학자로 불리는 이유는 2,500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유효한 삶의 화두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 순자의 말을 통해 나이가 들수록 변해 가는 세상의 이치를 배워야 한다고 언급한다. 또 맹자와 공자의 언어로, 그토록 열망하던 돈과 명예로는 인생의 문제를 절반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묵자와 노자가 남긴 글을 빌려, 불필요한 것은 비우고 인생에 필요한 것만 채우는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 이처럼 이 책은 위대한 다섯 명의 현자들의 말과 가르침을 현대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정리했다. 특히 나이 들었다고 새로운 뭔가를 배우기를 꺼리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조언한다. "배우려는 사람은 나이 들지 않는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것 같고,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면 이들의 조언에 귀 기울여 보자.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어렵던 인생이 쉬워질 것이다."

출간 직후 〈채널예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40~50대 독자들을 중심으로, 동양 고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이 동양 고전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나이 듦이 과연 '의미'로서 작용할 것인지, '추함'으로 전락할 것인지에 대한 갈림길에서 '의미'있는 생애를 설계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은 이제 겨우 성숙한 지점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정작 육체는 쇠약해지는 시점에서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재설계하고자 동양 고전의 도움을 얻으려고 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답했다. 저자가 이 책을 낸 취지이기도 하다.

 


 

우리가 겪는 고통 대부분은 삶의 균형이 어긋남에서 시작됩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인가를 더 채우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의 그릇에 무엇인가를 더 얹어 내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진 욕망의 그릇에서 욕심을 한 스푼 덜어내는 방법이 우선돼야 합니다. 일종의 ‘포기’라는 용기가 바로 그것일 겁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것에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p.80) 〈맹자〉 「하지 않음이 있어야 비로소 무엇인가 할 수 있다」 중에서

 

저자 : 김범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한국기술교육대학교 테크노인력개발전문대학원에서 코칭과 리더십을 공부해 인적 자원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기업 상활동과 인권을 공부한 바 있다. 삼성그룹 및 LG그룹에서 산업 안전, 법인 영업 등의 업무를 했으며 현재는 한국생산성본부가 주관하는 경영 능력 시험(MAT)의 서비스 경영 분야(고객 심리, 서비스 세일즈 및 고객 상담) 출제 위원이기도 하다. LG그룹, 삼성그룹, 현대기아차그룹, KB금융그룹 등 기업과 서울시, 경기도, 한국과학기술원, 국방부, 서울대학교병원 등 공공 기관, 그리고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1,000시간 이상 강연했다. 특히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말투와 태도의 사례를 생생하게 전파하며 특강 현장에서 강사 평가가 최상위 평점을 독식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책에서도 직장, 학교 등에서의 소통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체감한 감정 조절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욱하지 않으면서 여유로운 대화를 통해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했다. 저서는 《오십에 읽는 장자》,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50의 품격은 말투로 완성된다》, 《예쁘게 말하는 네가 좋다》, 《어른의 국어력》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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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9-08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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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이야기 나비클럽 소설선
김형규 지음 / 나비클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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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부조리한 사회 구조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의식을 갖고, 자본 중심의 세상을 넘는 연대와 협력을 ‘지독하게‘ 강조한다. 리얼리즘과 접목한 SF 소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작가 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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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이야기 나비클럽 소설선
김형규 지음 / 나비클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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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거의 책을 안 읽고 지내는 바람에 출판 경향이나 독서 경향에 대해 거의 모른 채 지내왔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직장에 들어가면서부터 이 핑계 저 핑계로 독서를 미루다 책과 멀어젔다. 예전 같으면 약속 장소도 가급적 서점 근처로 많이 잡았는데 직장 생활 후부터는 회사 근처 아니면 번화한 밤거리 문화가 다양한 상업지구가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잘 읽었던 소설마저 집에 몇 권 없을 정도로 책과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회사 근무 방침이 바뀐 후로 많은 시간이 남아 여가를 즐기기를 원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열리지도 않았다. 모여서 운동하는 시스템도 모두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다운 받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나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할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 괴로워질 어쩌다 회사에서 나눠준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 잠도 청할 겸 읽다보니 재미가 괜찮았다. 한두 권 읽다보니 에전의 독서욕도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인터넷을 책을 구입하니 배송도 빠르고 책 구입 시스템도 편리해졌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렇게 몇 년을 책과 함께 지내다 보니 차츰 예전에 즐겨 읽었던 소설도 한두 권씩 사서 읽기 시작했다. 원래 책을 읽을 때 속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많은 책은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출판계 소식도 신문이나 인터넷을 찾아 접하게 되니 읽고 싶은 책이 정말 많았다. 잃어버린 신세계를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 이 책도 그런 연장선 상에서 선택된 책이다. 요즘 소설은 SF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젊은 작가들은 너도 나도 SF 소설을 즐겨 쓰는 것 같았다. 어쩌면 세계적 추세일 것이란 짐작은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동안 읽은 책을 보고 느낀 점이라서 여기에 한 줄 적어본 것이다.

 


 

이 책 『모든 것의 이야기』는 SF 분야의 소설도 들어 있지만 예전 산업화 시기에 국내에서 한참 인기를 끌었던 리얼리즘 색채가 강한 소설이란 점을 책 소개글에서 읽고 선택했던 터라 옛날 생각 많이 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산업화 시대 때는 노동자, 도시 소외계층에 대한 소재가 많았다.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많은 수익은 회사 측이 가져가는 우리의 산업 사회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어쩌면 직접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을 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은 동조하는 차원에서 그런 소설에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독자는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터라 조리 있게 설명하는 게 어렵지만 독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산업화와 리얼리즘 문학' 정도로 표현하면 독자의 입장을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 같다. 이랄까. 당시 리얼리즘 문학은 서구의 산업혁명 이후 나타난 문학사조라고 학교에서는 배웠다. 사회 현실, 부정의한 현실에 노동자나 소외계층의 권리는 무시된 채 강도 높은 노동만 강요하는 것이 지배층과 부유층에 대한 반발 의식이 커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노동자의 권리 인식,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등을 파헤쳐 문제를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많은 작가들이 리얼리즘 문학의 틀에 넣어 글로 발표함으로써 일부 작가는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의외로 독자들의 호응은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동 현장을, 소외 계층의 삶을 묘사한다고 그들이 소설을 읽을 정도로 시간들이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다. 독자층은 주로 대학생, 사무직 직장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요즘 시대라면 노동자의 권리,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적 구조 등은 당연히 정부의 몫이다. 그러나 정부는 잘살게 되기까지 모든 노동운동이나 노동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을 경계했다. 산업체 노동자와 도시 노동자들은 책 읽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야근이니 특근이니 하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고 월급 이외로 얼마간의 수당이 더 얹어서 주는 것이 전부였다. '복지'라는 단어는 아예 산업화 시대는 사전에서 지워졌을 정도다.

 


 

그 일을 문학이 대신한 것이다. 그것을 '참여 문학'이라고 일컬었다. 작가가 노동에 참여해서가 아니라 작가의 의식이 노동자의 권리나 소외 계층에 시선을 보내고, 그들이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이 그런 일을 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있었다. 이른바 '순수문학'이다. 문학은 문학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지, 현실이나 사회에 참여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은 문학을 도구로 노동 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란 부정적 견해가 만만찮게 있었다. 그렇게 우리 문단은 정반대의 시선을 가진 두 부류의 작가들로 구별되던 시대가 우리의 산업화 시대이다.

이 책의 저자 김형규에 대해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으로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저자 소개란에 변호사로서 소설을 쓰고 있다고 알게 됐다. 다재다능하고 박학다식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림동에서 노동변호사로 일했다고 하니 요즘 대림동은 중국 동포나 이주노동자가 많다고 들은 바 있어 그쪽 현장의 경험을 통해 글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순서에 따라 적어 보면 「모든 것의 이야기」, 「대림동에서, 실종」, 「가리봉의 선한 사람」, 「코로나 시대의 사랑」, 「구세군」 등이다. 저자 김형규는 지난해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았다고 하니 글솜씨를 인정받은 것 같다. 틈나는 대로 소설을 쓰고 여기 저기 발표를 하고 그동안 쓴 소설을 이번에 한데 묶어 책으로 냈다고 한다. 작가로서 첫 소설집이라고 한다. 처음 접하는 작가분이라 축하와 응원, 기대감을 함께 보내고 싶다. '장르문학의 문법'을 이용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아마 실험적 소설을 주로 쓰는 탓에 붙여진 명칭인가 싶다. 기성 작가 흉내내기보다는 훨씬 신예 작가다운 패기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의 작가정신에도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이 다섯 편의 소설들은 한국 사회의 ‘계급’ 문제를 응시하고,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체제 안에서 ‘환대받지 못한 자들’에게 드리운 외로움의 그림자를 걷어내고자 한다는 해설이 붙어 있다.

 


 

문학평론가 최성실이 그의 '첫' 작품집에 대해 〈작품 해설〉을 써서 책 뒤에 붙였다. 「화성에서 식물-되기, '증상'으로 살아가기」란 제목이다. 이에 따르면 저자 김형규의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로서 한 번 읽고 완전 이해가 어렸웠는데 문학평론가의 해설 조언을 들어보니 안갯속 부분이 아주 말끔하게 걷힌다. 최성실 평론가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버텨 나온 우리들이 함께 동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죽음과 질병이 '공기 중에'도 떠다니는 시간을 버텨오고 있다. 그 질병 때문에 같이 숨을 쉬면서 산다는 것, 그 공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더 고민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질병은 개인이 철저하게 대처하고 방어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공동'의 대응으로 해결해야 하는 공공의 적이다. 붕괴냐, 아니면 대전환이냐라는 급격한 사회적 변동의 물음 앞에서 랑시에르의 말처럼 "몫 없는 자들의 몫", 즉 공동에 참여할 수 없고, 참여가 가능하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 혹은 자신의 몫을 강(박)탈당한 자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p.259~260)

코로나 팬데믹이 그렇듯이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몫 없는 자"들이고, 그것은 원래 몫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몫을 강(박)탈당한 것이란 의미다. 즉, 보이지 않는 사회의 벽, 우리 국민들의 그들에 대한 인식, 또 상대적 부당한 대우 등을 겪고 있는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 정당한 몫을 줘야 할 사람은 우리 사회고, 우리의 인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는 "노동자, 소외 계층, 계급 문제로의 귀환, 김형규 소설은 여전히 등껍질로 달라붙어 있는 계층과 계급 등의문제를 정면에서 부각하고 있다."면서 "더 첨예해지고 복잡해지 자본의 논리로부터 문학적 상상력으로 놓쳐버린 그 무엇, 예컨대 세련된 착취 기제들 속에서 능력주의는 어떻게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지, 왜 자본계급에 더 주목해야 하는지*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그의 '첫' 칼날은 향해 있는 것이다.

* 디지털 시대에 '계급 정치'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노동계급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계급이다. 자본계급은 지금 시대의 당면과제들을 만들고 있으며, 특히 노동자 계끕 내에서의 분열을 조장하고, 피해자끼리 투쟁을 하게 한다.(이상 평론가 주)

 

 

“저 앞 다세대주택에서 사람 하나가 소리 없이 걸어 나온다. 빌라 현관에서도 한 사람이 걸어 나와 소리 없이 잰걸음으로 사라진다. 그 옆 단층집에서도, 맞은편 또 다른 다세대주택에서도 한 사람씩 나타나서 같은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중략)

다시 또 한 명이 유령처럼 내 곁을 지나쳐 간다. 숨소리마저 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더 큰 골목으로 나아간다.

나도 물결을 따라가 본다. 좁은 골목에서 흘러나온 시내가 다른 시내를 만나 개천을 이루고 10차선 도로의 인도에서 강물이 되어 전철역 입구를 향해 흘러간다.”(p.124) - 「대림동에서, 실종」 중에서

 

위 풍경은 90년대 난곡의 산동네와 평행이론처럼 닮은 21세기 대림동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새벽마다 흐름을 형성하면서 흘러가는 행렬들, 밤이면 수없이 많은 불빛들이 빛나는 이곳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타자화를 드러낸다. 이는 AI로 일자리를 잃은 무직자들이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게임세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구세군」의 배경인 근미래까지 나아간다. 우리는 매일 이 물결을 따라 흘러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거나 혹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삶은 죽음으로 흐르고, 당신과 내가 만나거나 헤어지고, 사랑하거나 서로 믿못하고 배신하거나 엇갈리며 그리워하거나, 두려움과 불안과 외로운 마음들의 흐름. 이 흐름을 사유하는 선 굵은 이야기를 저자는 들려준다. 이 책 『모든 것의 이야기』는 이 흐름의 밑바닥, 존재하지만 애써 보려 하지 않았던 것, 21세기에 이른 ‘계급’ 문제를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여자는 혼자다. 나도 혼자다. 여자는 거리의 소란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 변함없는 미소로 악수를 청한다. 그제야 여자가 미르에서 보았던 '12월 혁명'의 지도자인 것을 깨닫는자.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p.256) - 「구세군」 중에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랬습니다. 두려울 때마다 시공간의 무한함이나 빛의 속도 같은 것을 떠올렸습니다. (중략) 삶과 죽음에 대해 오래 생각하던 어느 날 당신과의 약속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세계와 사람에 대해 찬찬히 둘러보았고 우리는 머지않아 사라지지만 그 짧은 생 안에 아름다운 것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략) 당신과 내가 겪은 고통의 크기 자체는 어쩌지 못하더라도 당신과 내가 같은 고통을 겪었음을 서로 이해함으로써 고통이 남긴 흉터의 크기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p.275~277) 〈작가의 말〉 일부 발췌

 

저자 : 김형규

 

인간과 사회, 시공간과 빛의 속도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 대학에서 동양사를, 대학원에서 러시아 현대사와 시베리아의 역사를 공부했다. 여러 학교에서 강의했고 대책 없이 출판사를 만들어서 된통 고생한 시절도 있었다. 역사 분야의 책을 몇 권 짓거나 우리말로 옮겼다. 2021년 〈대림동 이야기〉로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았다. 현재 변호사로 일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법률문서에 치여 살면서도 늘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학부에서 동양사를, 대학원에서 러시아 현대사와 시베리아의 역사를 공부했다. 대학에서 강의했고, 여러 분야의 책을 기획, 편집, 집필, 번역하기도 했다. 2021년 〈대림동 이야기〉로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며 틈틈이 소설을 쓰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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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왕 루이 14세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사사키 마코토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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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왕'과 '절대군주'라는 이미지와 함께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을 한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루이 14세. 그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왕으로서 프랑스를 유럽의 중심 국가 반열에 올렸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당시 유럽에서 강대국에 끼지도 못한 채 주변국의 위치에 있던 프랑스를 재위 72년 동안 정치·군사·예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겨 유럽 중심국으로 끌어오렸다고 배운 기억이 있다. 특히 예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프랑스를 '예술의 나라'로 만든 기초를 닦았다고 알려져, 지금 프랑스 국민들에게도 프랑스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왕으로 각인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지어진 왕궁으로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는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서 주변 국가의 부러움을 샀다는 에피소드도 많다고 배운 기억이 독자의 기억속에 남아 있다.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싶다는 왕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실제로 어렸을 때부터 발레에 푹 빠져 있었던 적이 있고, 자신이 친정을 시작한 이후 예술에 대한 지속적 지원을 계속했다고 한다. 이 책 『태양왕 루이 14세』는 그에 대한 평전(評傳)으로 쓰였다. 아버지인 루이 13세가 자신이 4살 때 타계하자 왕위를 물려받은 후 어머니의 섭정이 계속되었다. 워낙 유명한 왕이라서인지 그에 대한 문학 작품이나 각종 예술에서 그의 생애나 업적을 다룬 예술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까지 수백 년 지났지만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세계 어디에서도 독창적인 별칭 '태양왕'과 '절대군주'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이 책의 저자 사사키 마코토는 그가 근대 국가로의 길을 연, 너무 이른 개혁가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루이 14세에 대한 최신 역사 연구의 성과를 담았다. 그에 대한 올바른 시선으로 판단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 신화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그의 모습을 여러 방면에서 들여다보고 분석했다. 72년여에 걸친 루이 14세의 치세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저자는 루이 14세와 프랑스 귀족들의 관계에도 주목하면서, 상호 영향이 프랑스 국가 운영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알아본다. 루이 14세의 의도와 성과에 유의하며 당시의 정치 및 사회와 같은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루이 14세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에 나선 이유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역사학에서 개인의 의사나 행동이 역사에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고, 이에 따라 위인의 업적이나 치세가 제대로 평가된 것인지, 아니면 왜곡이나 과장된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이다. 이 취지는 역사학에서 지금까지 의견이 정립되지 않았음을 귀띔하는 말이기도 하다. 즉 루이 14세가 개인이 능력을 발휘해 프랑스는 물론 유럽, 세계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니면 과장되어 신화적 요소를 강조한 것인지를 밝혀내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연구의 실마리가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루이 14세가 등장하지 않았어도 프랑스에서는 절대 왕정과 궁정 문화가 성립했을까에 대한 의문에서 연구를 시작했다는 말로 독자는 읽힌다. 저자는 그런 생각을 따르지 않지만 루이 14세라는 개인의 행동이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확실한 평가를 유보하는 듯한 태도다. 두 번째는 절대 왕정에 대한 평가 변화에 주목했다고 한다. 저자는 현대적 연구에서는 '관료제와 상비군으로 지지해온 강력한 왕권'이라는 해석은 더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절대 왕정은 '절대'적이지 않고 왕은 다양한 제약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관료제나 군대 등 절대 왕정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기구'에 대해서도 주목하며 절대 왕정의 새로운 이미지를 그려보고 그 안에서 루이 14세의 역할에 대해 이 책에서 연구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세 번째는 사실과 신화의 구별이다. 절대 왕정과 루이 14세의 역할에 대한 논쟁 속에서 루이 14세에 대한 다양한 신화가 형성되었다. 루이 14세만큼 이미지와 실상의 괴리가 큰 왕도 드물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이에 따라 신화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그의 모습을 이 책에서 그려내고자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의 세 가지 이유를 토대로 이 책은 루이 14세에 대한 평전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보적 판단의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신화나 허구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아직 역사적 평가에 대해 새로운 제시하는 안(案)으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저자는 이런 의문 때문에 최근의 역사학에서는 실태적 권력과는 별개로 왕의 권위가 문제화되었다고 전한다. 권위란 피치자로 하여금 왕권의 정통성을 수용하고 그 지배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으로, 권위의 생성 및 전달 시스템으로서의 각종 의례와 왕권의 표상에 관한 연구가 왕성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루이 14세는 동시대의 다른 어떤 군주보다도 이러한 권위 즉, 왕권의 이미지 형성에 힘썼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루이 14세의 예술 정책과 그 정수인 베르사유 궁전에 대해 다루며 루이 14세의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특히 베르사유 궁전을 중심으로 성립한 궁정 사회에서는 루이 14세를 중심으로 하나의 소우주가 형성되었으며 그것이 그의 권위를 생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현대에도 루이 14세의 이미지는 계속되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을 방문하면, 그 호화로움에 놀라고 그곳에서 펼쳐졌을 의례를 상상하며 화려한 궁정 문화를 떠올리게 된다. 루이 14세가 여전히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어린 왕 루이 14세」, 2장 「프롱드의 난」, 3장 「친정의 시작과 초기 개혁」, 4장 「대외 관계와 군대·전쟁」, 5장 「루이 14세의 예술 정책」, 6장 「베르사유 궁전」, 7장 「치세의 절정기」, 8장 「만년의 루이 14세」 등이다. 각 장의 제목으로만 보아도 루이 14세의 업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독자는 부르봉 왕조가 프랑스 절대 왕정을 이끈 명문 왕가임을 서술한 일본 학자 나카노 교코의 저서 『명화로 읽는 부르봉 역사』를 얼마 전에 읽은 적이 있다. 나카노 교코에 따르면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유럽은 각 나라별로 독립 국가로 자신들의 나라를 이루고 살았다. 속국의 시대를 거쳐 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각각 국가를 이룬 후 각자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로마 제국 후기에 들어 공인한 기독교가 유럽 대륙을 끈끈한 유대감을 갖도록 이끌었지만 각국의 결속력과 왕권의 부침에 따라 로마 제국 때의 결속력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이후 일부 국가는 이웃 나라와 국경 분쟁을 겪고 강세에 밀려 유럽 외곽이나 아프리카로 가지만 지금처럼 엄격한 선을 그어놓은 국경이라기보다 큰 강이나 산맥을 국경으로 삼은 자연 국경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또 동로마 제국이 로마 제국의 명맥을 잇는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에 16세기까지는 기독교의 막강한 영향력에서 유대 관계를 계속할 수 있었다. 특히 이슬람교의 새 종교 세력이 급격하게 확장되면서 200년에 걸친 종교 전쟁(십자군 전쟁)을 치르느라 유럽 문명은 2대 종교권으로 나뉘어 싸우는 형국이 지속됐다. 유럽의 이렇다할 절대 강국이 없는 탓에 유럽 각 국은 왕권을 강화시켜 강국을 이루는 데 더 전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강력한 군주가 등장해 이웃 나라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왕권을 휘두르는 가문이 등장한다. 합스부르크와 부르봉 왕조는 유럽 2대 가문으로서 실제 유럽을 지배하는 강력한 왕들을 배출한다. 특히 합스부르크는 교황(동로마 제국)을 비롯, 여러 나라의 왕과 왕비를 배출한 최대 가문으로 650년 이상 이어졌다. 부르봉 왕조는 프랑스의 가장 강력한 최강의 프랑스를 이끌 왕들을 배출해 명문가에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 절대 왕조를 이끈 '태양왕' 루이 14세 등 루이 왕조가 부르봉 가문 출신들이다. 사사키 마코토의 이 책 『태양왕 루이 14세』와 나카노 교코의 『명화로 읽는 부르봉 역사』에서 부르봉 왕조의 태양왕 루이 14세를 보는 관점이 비슷한 것으로 보여 독자가 여기에 잠깐 서술했다. 두 저자의 분석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중점 서술된 부분이 다소 다르지만 프랑스 루이 14세의 절대 왕정이 태어난 이유를 역사적 필요성에 의해 절대적 통치자가 생겼다는 시각은 같지 않나 생각이 든다.

책에 따르면 루이 14세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한 생활은 아닌 듯하다. 아버지인 루이 13세와 어머니 안 도트리슈(합스부르크 왕가)가 '늦둥이'를 얻었고, 루이 13세는 오랫동안 기대했던 왕태자가 출생한 지 불과 4살이 지날 무렵 결핵과 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뒤늦게 왕태자 루이 14세를 얻었지만 너무 어려 어머니가 섭정을 이어갔다. 루이 13세는 부인 안 도트리슈와 정략결혼이었을 뿐이지, 애틋한 연애 감정 등은 없었던 것 같다. 루이 13세는 더욱이 우울증에 동성애 경향이 있어 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독자 개인적 생각으로는 루이 14세는 친정을 시작한 후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하나씩 하나씩 달성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근 국가와의 끊임없는 전쟁에 직접 참여하고 승리를 거머쥐면서 왕권을 탄탄히 할 뿐 아니라 인근 강대국 스페인으로부터 영토를 빼앗아 편입하기 시작한다. 루이 14세의 유럽 제패의 꿈도 이 무렵 생긱지 않았나 싶다. 루이 14세는 당대 최고의 조각상 예술가들에게 의뢰해 옛 로마 제국의 황제들의 조각상을 자신의 왕궁에 수십 개씩 세웠으며, 예술 지원도 자신의 이미지 확대 강화를 위해 열정적으로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점이 저자 사사키 마코토가 이 평전을 새롭게 쓰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할 만하다. 그가 아니어도 프랑스 절대 왕정은 성립됐을지도 모른다는 연구 이유가 설득력을 갖게 되는 부분이다.

루이 14세는 어렸을 때 겪었던 프랑스 지방 귀족들이 일으킨 프롱드의 난으로 이 왕궁, 저 왕궁으로 피해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30년 전쟁과 인근 국가와의 패권 전쟁을 벌이는 것도 왕권 강화의 구실이 됐고, 그는 직접 각종 전쟁에 참여해 승리함으로써 전쟁에 지친 프랑스 민중들이 오히려 강력한 왕이 나타나 안정된 국가로 만들어주기를 원하는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저자가 앞서 언급한 〈프롤로그〉에서의 의문이 설득력을 갖게 디는 대목이다. 비로소 독자도 저자의 말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친정 이후 행위들이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로마 황제'를 꿈꾸며 이미지 강화를 추진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절대 군주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그런 시점으로 관찰하면 베르사유 궁전도 왕권 강화가 어느 정도 확립되었을 때를 이용, 유럽의 패권 국가로서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한 계획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도 독자의 시선이 미치게 된다. 왕궁의 규모 등도 무리한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지으려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의 아버지 사망 이후 약 20년간 나라를 쥐고 흔든 마자랭이 1661년에 죽음으로써 루이 14세는 본격적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이에 1년 앞서 스페인 왕실의 마리 테레즈와 혼인함으로써 강력한 스페인의 지원도 얻게 된 그는 프랑스 고등법원의 권한을 축소하고 왕족과 대귀족의 정치참여를 제한했으며, 지방에 지사를 파견하여 중앙집권을 강화했다. 그리고 시민과 상인계급, 말하자면 부르주아 출신들 중에서 비서관들을 발탁하여 철저히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총신들로 만들어 나갔다. 그 중 한 사람이 우리도 잘 아는 콜베르이다. 리슐리외나 마자랭처럼 카리스마적이지는 않으면서 실무에는 능했던 그는 재무총감, 조영총관 등을 맡으며 루이 14세가 한껏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여러 해 동안 충실히 보좌하게 된다. 그가 그 정도로 치밀한 계획을 자신의 심복들과 논의했을까 여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추정 가능한 일 아닌가?

 


 

'짐이 곧 국가다'란 발언도 지금은 후세의 각색이라고 여겨진다고 저자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루이의 프랑스를 근대 국가의 원형으로 보는 이해는 더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맺음말〉을 통해 확언하고 있다. 16세기 관료제의 진전과 함께 왕권의 힘이 커진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몇 가지 유보할 점이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첫 번째는 왕권의 경제력이 약했다는 것이다. 혁명에 이르기까지 왕권은 신민을 직접 파악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관료 수는 확실히 증가했지만 근대의 기준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다는 것. 왕권은 국내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오래 전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어온 단체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매개로 통치를 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특권이 부여된 단체를 사단이라고 칭하는데 당시 프랑스에는 귀족, 관직 보유자, 길드 촌락 공동체 등 다양한 사단이 존재했으며 왕권은 이들과 특권을 매개로 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각 사단을 왕권의 통치 범위 안에 편입시켰다는 사례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루이 14세가 콜베르나 르 텔리에 내각을 이용해 통치를 한 것도 문벌의 수장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후견·피후견인 관계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수법에 의한 통치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왕권은 각 사단의 특권을 인정함으로써 사단을 지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왕권은 오랜 관습 즉 '오래된 법' 에 의해 제한을 받았다는 반증이 된다.

17세기의 '절대 왕정'은 신장하는 왕권, 존속하는 신분제 사회, 기독교라는 상호 모순의 가능성이 있는 삼자에 의한 타협과 협조 위에 성립한 체제였다고 저자는 결론을 끌어내고 있다. 모순을 내재한 이 삼자의 미묘한 균형을 무리하게 설명한 것이 보쉬에였다. 그는 내란 등 혼란에 대한 강한 위구에서 국왕 권력(주권)의 절대성을 주권 신수설로 설명했으며 왕권은 교황이나 중간 단체와 같은 현세의 어떤 세력에도 종속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것이 자의적 통치(전제)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왕은 신의 법과 기존 공동체의 법(왕국 기본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루이 14세의 사적을 생각하면, 루이가 왕권 강화의 방향으로 선회한 것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루이 14세는 사망 직전 왕태자에게 신의 가호를 기원하는 의식을 행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 될 나의 아들아, 너는 신에 대한 의무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전쟁에 관해서는 나를 따르지 말고, 늘 이웃나라와의 평화를 유지하도록 힘쓰며, 신민을 풍요롭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라. 이런 것은 불행히도 내가 행하지 못한 일이다.."(p.315)

 

저자 : 사사키 마코토

 

1961년 일본 도쿄 출생으로, 도쿄 도립 대학교 대학원 인문과학 연구과 박사 과정 만기 퇴학. 현 고마자와 대학교 문학부 교수이다. 근세 프랑스사를 전공했다. 주요 저서로, 『루이 14세기의 전쟁과 예술―만들어진 왕권의 이미지』(2016년), 『증보 신판 도설 프랑스의 역사』(2016년), 『알기 쉬운 프랑스 근현대사』(공저, 2018년), 『알고 익히는 역사학 공부법』(공저, 2016년), 『역사와 군대』(공저, 2010년), 『근대 유럽의 탐구 12 군대』(공저, 2009년), 『국민 국가와 제국』(공저, 2005년),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공저, 1998년), 『프랑스 혁명과 유럽의 근대』(공저, 1996년) 등이 있다.

 

역자 : 김효진

 

외국의 다양한 문화와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독자의 눈으로 글을 옮기고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친절한 번역을 늘 마음에 새기며 현재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미국 흑인의 역사』, 『노예선의 세계사』, 『말의 세계사』, 『해적의 세계사』, 『로마 산책』, 『감자로 보는 세계사』, 『달은 대단하다』, 『중세 유럽의 레시피』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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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그림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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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상한 그림』은 표제어처럼 '그림'은 있지만 이상한 소설 작품은 아니다. 다만 그림을 제시하고 추리력과 기억력 등을 동원해 범죄 등 미스터리 사건을 풀어가는 소설이다. 분명 추리소설의 새로운 형식이다. 독자로서 새로울 뿐이지 저자 우케쓰는 이번 책이 두 번째 '그림 소설'이다. 일본어로 출간한 일본 소설이지만 세계 공용어인 그림이 추리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분명 세계 추리소설 독자들의 호평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원래 추리 소설이 범인이나 용의자의 심리, 제스처 등 세밀한 부분의 묘사가 많기 때문에 번역할 경우 맛이 좀 떨어지는 것을 독자들은 감안하고 읽는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이나 오류를 줄이는 데는 전 세계 공용 언어가 더 호소력이 클 것이다. 저자 우케쓰는 이 그림 소설로 출판계는 물론 독서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실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란 짐작도 독자로서 해본다. 크게 틀린 짐작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저자 우케쓰는 전작 『이상한 집』이 ‘65만 부’라는 경이로운 판매고와 함께 ‘2021년 일본 호러 미스터리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고 한다. 단숨에 일본 문학계의 스타로 떠오른 것이다. 이 두 번째 장편소설 『이상한 그림』에서 저자는 여러 그림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다. 오컬트 동아리원이 우연히 발견한 블로그에 숨겨진 비밀에서 시작되는 이번 작품은 미스터리를 푸는 데서 오는 쾌감을 넘어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깊은 울림까지 전한다. 이 책도 출간 전부터 일본 출판계가 들썩였다고 한다. 이상한 추리소설이나 이상한 그림만 화제가 된 게 아니다. 이례적인 연속 흥행에도 불구하고 우케쓰는는 베일에 싸여 있다는 것. 세상에는 자신을 감춘 채 활동하는 복면 작가가 있지만 우케쓰야말로 진정한 복면 작가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원래 유명 오컬트 콘텐츠 크리에이터 겸 유튜버로 '인터넷계의 에도가와 란포'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에도가와 란포(1894~1965)는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이자 평론가로서 전설적 추리작가로 명성을 날렸던 분이다. 에도가와 란포는 필명이며, 미국의 문호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일본탐정작가클럽(이후 일본추리작가협회)을 창설해 초대이사장을 지냈으며,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작가다.

 


 

저자 우케쓰가 그의 인기를 이어받은 듯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서 독자가 꺼낸 말이다.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인기를 끌었다고 해서 독자의 궁금증이 더했기 때문이다. 저자 우케쓰는 영상 콘텐츠 전문가이고 하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목구비도 불분명한 흰색 가면과 온몸을 감싼 검은 타이츠 차림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목소리마저 변조하여 신원은커녕 성별조차 알 수 없다. 채널 구독자 수가 90만 명이 넘고 또 소설 및 드라마 영역에서도 활동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우케쓰가 펴낸 두 권의 소설은 가독성 넘치는 문장은 물론 다양한 이미지와 도표를 통해 흥미로운 영상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해서 더 흥미를 끌고 인기도 높아진 것으로 이해된다. 한마디로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동시에 선사했으니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작과의 비교는 독자가 전작을 못 읽었기 때문에 출판사 측의 책 출간 소식에서 인용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우케쓰는 두 번째 소설 『이상한 그림』에서 인간의 심연을 파헤치는 도구로 그림을 선택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그린 그림들을 중심으로 심리 분석과 본격 추리가 진행되는데, 사건에 깊숙이 관련된 인물들의 목소리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전작보다 직관적이고 독자 몰입도 또한 강하다. 이는 일본 내 두 작품의 리뷰, 판매 속도가 증명한다. 우케쓰가 쓰는 소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글자를 읽고 있음에도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읽는 맛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림 미스터리’라고도 부르는데, 보는 것 이상의 읽는 재미가 확실한 ‘신개념 소설’임은 분명하다. 독서량이 많은 독자, 미스터리 마니아는 물론이고 처음 미스터리에 입문하는 신규 독자들도 모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책을 펼치자마자 "그럼 이제 그림 한 장을 보여 드릴게요."란 한 줄만 써놓았다. 다음 문장은 책장을 넘겨야 나온다. 한 장의 그림(왼쪽)과 함께 한 페이지의 문장이 나란히 나온다. 글자는 그림에 대한 설명이다.

 

대학교 강의실 칠판에 그림 한 장이 붙여졌다.

심리학자 하기오 도미코는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은 학생 여러분 앞에서 강의하고 있지만, 저는 예전에 심리상담사로 일하며 수많은 분께 상담을 해드렸습니다. 이 그림은 제가 심리상담사로 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에 담당한 여자아이가 그린 그림을 복사한 겁니다. 이름은 'A코'라고 할까요? A코는 열한 살 때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충격적인 말에 당연히 학생들이 술렁거린다. 다욱이 여자아기가 열한 살 때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책으로 읽어서 실감이 안 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을 보면 열한 살 아이가 그렸을 만하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그림일기 쓰는 수준?(그림 실력에 따라 이보다 잘 그린 사람도, 못 그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심리상담사로서 어머니를 살해한 아이의 그림에 대해 설명을 덧붙인다. 그는 A코의 정신분석을 위해 대상자가 그린 그림으로 심리를 파악하는 분석 기법인 '그림 테스트'를 실시했고, 내면을 파악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되묻는다. "여러분, 이 그림을 보고 뭔가 이상한 점을 못 느끼겠어요?"

 


 

화자는 그림에 그려져 있는 소녀, 집, 나무 등에 대한 심리 분석상의 이야기를 하나씩 설명한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하고 귀여운 그림으로 보이겠죠. 핮히만 군데군데 아주 묘한 부분이 있답니다. 일단 한복판에 그려진 여자아이의 '입'을 자세히 보세요. (얼굴의 입을 중심의 부분만 클로즈업 그림 사진)

모양이 분명치 않고 좀 지저분하죠. A코는 입을 잘 못 그리겠는지 몇 번이나 지우개로 지우고 선을 다시 그었습니다. 다른 부분은 한번에 깔끔하게 선을 그었는데, 왜 입만 몇 번이나 실패했을까요? 여기서 A코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A코는 어머니에게 학대받았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화내지 않도록 집에서는 항상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비위를 맞추었다고 해요. 속으로는 무서우면서도 겉으로는 늘 가짜 웃음을 지어야 했던 거죠. '잘 웃지 못하면 얻어맞는다.'······ 당시 느꼈던 기분이 되살아나 긴장한 나머지 손이 떨려 입을 잘 그릴 수 없었던 거예요. A코의 비통한 심정은 그림 속 왼편에 서 있는 집에서도 잘 나타나요. (집 그림 부분만 클로즈업)

이 집, 문이 없죠. 문이 없으면 안에 못 들어갑니다. 그래요. 이 집은 A코의 마음 그 자체예요. '내 마음속에 아무도 들여놓기 싫다.' 혼자 틀어박혀 있고 싶다' 같은 도피 욕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림 속 나무를 잘 보세요. (나무 가지와 잎사귀가 감싸고 있는 부분 클로즈업)

나뭇가지가 가시처럼 뾰족하죠. 이런 모양의 나뭇가지는 범죄자가 그린 그림에서 자주 보입니다. '해코지하겠다', '찔러버리겠다' 같은 사나운 공격성이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심리상담사는 이러한 정보를 종합해 대상자의 상태를 적절하게 진단해야 합니다."

심리상담사의 이름은 하기오. 하기오는 A코가 그린 한 장의 그림을 더 꺼내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보호 본능이 있고, 모성애가 강한 경향이 있어요. '나보다 약한 존재를 지키고 싶다', '안전한 곳에 살게 해주고 싶다' 같은 마음이 표출된 거죠. (중략) "현재 A코는 행복한 어머니로 살고 있다."고 전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책의 프롤로그에 불과하다. 이 책이 이런 식으로 기술되어 있고, 그림과 함께 글을 읽고 추리하면서 읽으면 된다.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범인을 찾내는 단서가 주로 그림에 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랑은 심리 추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책은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각각의 사건을 다루는 단편 소설이지만 한데 묶었다. 같은 주제라기보다 형식상 같은 그림 이야기이다. 소설이지만 각각 다른 내용의 소설들이라 장(章)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1장 「바람 속에 서 있는 여자 그림」, 2장 「집을 뒤덮은 안개 그림」, 3장 「미술 교사의 마지막 그림」, 4장 「문조를 보호하는 나무」 등이다. 1장에서는 사랑하는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블로그가 소재로 채택되었다. 블로그의 주인공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이를 낳던 도중 아내가 사망하고, 몇 년이 흘러 아내가 남긴 그림들의 진실을 깨달은 남편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블로그를 중단하고 만다. 우연히 블로그를 발견한 오컬트 동아리원 구리하라와 사사키는 이 그림들에 무시무시한 비밀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블로그에 숨겨진 소름 끼치는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면서 마침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추리 과정을 도식화하여 정리하고, 대화 위주로 사건을 진행하는 등 구성 면에서도 파격적이다. 육아일기인 줄 알았던 블로그에 나오는 그림들의 섬뜩한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 때는 섬뜩하기도 하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기발한 발상의 저자의 글 구성 능력이 기막힌 반전들까지 담아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그림이 함께 실려서인지 글의 분량은 짧지만 반전이 매우 강렬하다. 해당 장의 수수께끼는 장의 결말에서 완전히 풀림으로써 독립적인 완결성을 갖춘다. 책 마지막에서는 네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데 개개의 그림들에 숨겨진 진실과 허를 찌르는 진실에 독자는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몰입감 높은 스토리에 정신없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도 독자들이 ‘나라면 어땠을까’,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림과 이야기의 속성을 꿰뚫는 저자의 노련함 덕분일 것이다.

 


 

저자 : 우케쓰(雨穴)

 

호러·오컬트 콘텐츠 크리에이터. 일본의 웹 사이트 ‘오모코로’와 유튜브 채널 ‘雨穴’에 다양한 오컬트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다. 2022년 10월 현재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 65만 명, 누적 조회 수 7,000만 뷰를 기록하였다. 특히 ‘이상한 집’ 영상은 1,000만 뷰를 돌파하였고, 한국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부동산 미스터리 일본의 이상한 집’으로 알려지며 화제가 되었다. ‘이상한 집’은 소설로 만들어져 30만 부 이상 판매되며 2021년 일본 호러 미스터리 1위에 올랐고, 영화화가 결정되었다. 또한 TV도쿄의 호러 드라마 〈뭔가 이상해何かおかしい〉의 원안을 맡고, 두 번째 저작 《이상한 그림》을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유튜브 채널 雨穴(Uketsu)

트위터 @uketsuHAKONIWA

인스타그램 @uketsu_

 

역자 : 김은모

 

일본 문학 번역가. 1982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일본어를 공부하던 도중 일본 미스터리의 깊은 바다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테후테후장에 어서 오세요』,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여자 친구』를 비롯하여 아시베 다쿠의 고바야시 히로키의 『Q&A』, 미치오 슈스케의 『투명 카멜레온』, 『달과 게』, 『기담을 파는 가게』, 이사카 고타로의 『화이트 래빗』, 『후가는 유가』 야쿠마루 가쿠의 『우죄』,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 『클라라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 지넨 미키토의 병동 시리즈 『가면병동』, 『시한병동』,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 짓는 사람』, 『프리즘』, 미야베 미유키의 『비탄의 문 1, 2』,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 『마안갑의 살인』을 비롯하여,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의 ‘하야미 삼남매’ 시리즈, 『지나가는 녹색 바람』, 『검찰 측 죄인』, 『달과 게』, 『성스러운 검은 밤』, 『열대야』, 『밀실살인게임』, 『사이언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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