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연주 - 연주 불안을 겪는 음악가에게 전하는 마음의 지혜
케니 워너 지음, 이혜주 옮김 / 현익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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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음악 애호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음악, 특히 클래식을 좋아해 매일 듣고 가끔씩 콘서트도 다닐 정도로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연주를 해볼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멀고 험한 길이라고 해서 어렸을 때부터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이후부터는 하루도 클래식을 듣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자주 접하고 감상한다. 이젠 일을 할 때도 클래식을 조용히 흐르도록 할 때도 많다. 이 책 『완전한 연주』도 매일 듣는 클래식 감상에 도움을 얻기 위해 선택했다. 주로 음악인, 연주자를 위한 책이라고 책 소개글도에도 적혀 있다. 그러나 그 소개글에는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을 뿐이며, 연주자이 연습이나 성숙 단계에서 흔히 겪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반 감상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적 표현으로 쉽게 이해시켜 준다. 다만 연주자들의 연주 불안을 탈출하는 연습 단계 및 심화 단계는 일반 감상자들은 그냥 건너뛰어도 상관없다고 명기돼 있다.

그런데 '연주 불안'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본다. 자주 듣는 클래식 방송이나 음악 관련 책에서도 한 번쯤 나와야 할 이 단어를 왜 독자가 처음 들었을까. 이 책에는 「연주 불안을 겪는 음악가에게 전하는 마음의 지혜」라는 부제도 붙어 있다.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인 듯하다.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두려움, 낮은 자기가치감(자존감?) 등. 음악인이나 연주자들이라면 으레 거치는 과정처럼 많은 난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 책은 그 점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음악인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어려움'이라는 말과 함께 극복의 과정을 세부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대중 앞에 서는 연주자가 되려면 실수 없이 완벽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강박과, 실력을 높이기 위해선 꼭 거쳐야 할 것 같은 방대한 연습량에 쉽게 압도되기 마련이라는 말은 쉽게 공감이 간다. 그러나 수많은 어워드를 수상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30개 이상의 음반을 발매한 작곡가로 버클리 음대의 교수이자 예술 감독으로 학생들을 지도해 온 저자 케니 워너 역시 음악가로서 많은 고뇌를 거쳐야 했다고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또 자신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여겼고, 실력자들의 연주를 질투하면서 지독한 자기 혐오에 빠지곤 했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음악가로서 경험했던 어려움들을 진솔하게 나누며, 음악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탁월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저자 케니 워너가 고안한 단계적 마음 훈련법 코스는 세계 최다 그래미상 수상자를 배출한 버클리 음대의 정규 커리큘럽으로 들어가 있다고 한다. 출판사 측에서는 1,000개가 넘는 음악가들의 리뷰들이 이 책의 음악적 가르침을 지지한다고 소개한다. 자아를 내려놓고 연주에 몰두하도록 돕는 케니 워너의 코칭이 실제 자신의 연주법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완전한 연주』는 연주 불안을 경험한 모든 분야의 음악가에게 필독서로 이미 입증됐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더 나아가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어느 분야에서든 진정한 의미의 숙달을 이루길 원한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을 바꿀 만한 힘을 가진 유의미한 깨달음을 선사한다는 소개글은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음악을 전공으로 하지도 않고, 악기라고는 어렸을 때 학교에서 모든 학생에게 가르치는 피리나 하모니카 몇 번 불어본 게 전부인 독자로서는 연주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예술인들이 '연주 불안'이라는 난관이 닥친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그들의 연주 못지않게 노력이 돋보인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책에서 소개하는 훈련법은 각각 다른 수준을 지닌 사람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와준다고 밝힌다. 자신의 현 상태를 객관적 방법으로 단계를 결정해 다음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좋은 연주 실력을 갖췄으나 모종의 이유로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전제한다. 제대로 스윙을 해대고 연주에 있어 수행해야 할 것들을 다 하지만, 여전히 청중의 가슴에 남는 것이 없다. 이러한 유형의 연주자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갇혀 그저 용인될 만한 적법한 재즈 스타일의 멜로디를 따라 음악의 접근 방식을 구성하고 계획하기 때문에, 그 음악에 달콤한 꿀이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에게도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이들 역시 의식적인 마음에 지배당하고 있어 '창의력이 흐르게 한다'는 것이 도통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 이러한 방식이 처음에는 낯설 수 있지만, 종래에는 해방감을 선사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은 음악에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훈련법을 소개해준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가 연주자의 훈련법의 결과를 믿고 있으며, 이들 받아들이는 연주자들, 클래식 음악가들 역시 자신이 위대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건조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여긴다고 밝힌다. 이는 마치 신을 사랑하지 않는 성직자의 모습과 같다는 비유적 표현을 통해 훈련이 필요한 연주자들에게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음악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도 저자의 훈련 취지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어렴풋이 짐작케 해준다. 관습은 지키지만 진정한 감정이 뒤따르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은유적 표현을 하나 더 추가 설명한다. "램프가 켜지지 않은 음악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따분하다."(p.12)

저자의 주장은 명확하다. 더 깊은 경험을 원하는 갈망은 더 나은 연주자가 되고 싶은 강렬한 충동과 함께 온다. 이 두 가지는 보통 상충한다. 진정한 음악적 깊이는 연주를 더잘하는 것보다 연주를 더 '유기적'으로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위대한 전문 연주자 중에도 낮은 자존감과 온갖 부정적인 환상에 고통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이러한 사람들이 음악을 계속하든지, 하지 않든지 간에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문외한인 독자가 보기에는 연주자 이전에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리고 음악인이 되기 위해서는 음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한편 자신이 스스로 높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로도 들린다.

이 책은 또 전문 연주자들을 위해 예술성과 숙달의 본질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고 설명한다. 이미 아는 것을 어떻게 하면 힘들이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깊이의 숙달까지 닿을 수 있는 등을 숙고할 것이란 이야기도 덧붙인다. 저자는 이 책의 성격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음악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연주할 때 긴장과 위축을 경험하는 음악가들을 위한 것이다." 이 말은 이 책의 출간 취지이기도 하다.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길 잃은 음악가들」, 2장 「연주 불안」, 3장 「힘들이지 않는 숙달」, 4장 「단계적 연습」, 5장 「마에스트로 마인드」 등이다. 1장에서는 '자아 놓아주기'와 '역기능적 소년', '우리는 왜 연주하는가?'와 '제한적 목표를 넘어서'라는 세부항목으로 나뉘어 있다. 작은 항목들의 제목만 듣고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면 그는 음악이든, 아니든 분명 음악이란 무엇인가?나 어떻게 해야 잘하는 연주인가?라는 기본적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수준의 음악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소년 시절부터 연주를 해오면서 많은 스승도 있었고 훌륭한 음악가들로부 영향을 받았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평생 갈 확신"을 얻었다고 밝힌다. 자아를 내려놓고 음악만을 힘들이지 않고 연주하는 것이 음악가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깨달음을 통해 자신이 연주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음을, 그리고 타인을 위한 봉사와 자아를 굴복시키라는 영적인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상을 추구함으로써 나는 유한한 자신의 의식이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고, 비로소 더 나은 연주자가 될 수 있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음악 '본연의 목적' 등에 대해 기술하고 있지만 진정 이 장(章)에서 하고 싶은 말은 다음의 문장에 들어 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진정한 음악가이자 예술가라면 음악을 그만두지 말아야 할 진짜 이유는 3가지뿐이다. 첫째, 음악을 하는 것이 즐겁고 음악을 너무나 사랑한다. 둘째,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깊은 욕구가 있다. 셋째, 다른 직업에 도전하기 위해 재교육을 받기에는 너무 게으르거나, 겁이 많거나, 역기능적이다. 앞의 두 가지 이유 중 하나, 혹은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면 당신에게는 특별한 돌봄이 필요하다."

 


 

2장 「연주 불안」에서는 '두려움에 근거한' 연주, 연습, 교육, 감상, 작곡 등 5개 부문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는 지금 음악인, 연주자가 되기 위해 노력을 쏟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이 집중돼 있다. 연주나 연습, 교육과 감상, 그리고 작곡 등으로 나뉘어 있지만 모두 공통적인 부분 즉, '두려움에 근거한' 것들에 대한 조언이다. 저자는 '두려움'은 마음에서 비롯되지만 '보편적 지성'이나 '초월적 존재' 혹은 '집단 무의식'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두려움은 우리의 '좁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단언한다. 어떤 이들은 이 좁은 마음을 자아라고 부른다. 무엇이 자아이고 아닌지에 대한 프로이트와 프로이트 이후 학설은 잠깐 제쳐놓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여기서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은 '제한된 나'에 대한 의미라는 것이다. 자아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서로에게서 분리된 존재임을 인식한다. 분리는 비교와 경쟁을 불러온다. 여기서 '저 친구는 나보다 어려', '나보다 재능이 많아' 등의 생각이 시작된다.

사실 자신의 음악적 기량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보다 자신을 전적으로 책망하는 것을 더 마음 편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보통 첫 음을 내기도 전에 허무감에 패배하고 만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연주자라고 믿는다.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점들을 직면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들의 연주는 양극단을 오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은 잘한 연주는 진짜 자기 실력이고 못한 연주는 우연한 사건이라고 합리화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고치고 고려해야 할 문제를 직면하는 일을 피한다. 이러한 두 부류의 연주자들 모두 연주의 결점을 지적하면 상처를 입는다. 결점에 감정을 너무 많이 결부시켜 놓았기 때문에, 후자의 음악가들은 결점을 무시하려고 하고 전자는 결점을 자신이 실력이 없다는 증거로 삼는다. 그리고 이들의 실력은 여러 해 동안, 혹은 영원히 형성되지 않는다.

 


 

4장에서는 저자 케니 워너가 직접 고안한 4단계로 이루어진 '마음 훈련법'이 기술되어 있다. 음악가들이 연주 불안을 극복하고, 경직된 음악에서 벗어나서 음악적 자유를 만끽하며 내면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수준까지 도약하도록 돕는 훈련이다. 1단계에서는 명상을 활용하여 악기에 접근하는 방법을 훈련한다. 몸의 모든 긴장을 풀고 악기와 내면 공간을 연결하는 연습이다. 보컬을 포함하여, 악기별로 각각 다른 접근법이 기술되어 있어서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읽어도 좋다. 2단계에서는 내면 공간에 최대한 길게 머무르면서 자유롭게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익힌다. 3단계에서는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연주를 관찰자로서 지켜보며, 무엇을 제대로 알고,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을 거친다. 4단계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숙달로 나아가는 연습을 한다. 어려운 부분들을 따로 떼서 어떠한 방식으로 연습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연주를 잘하려고 애쓰는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음악에 몰두할 때, 위대한 음악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쉬운 이야기 같지만, 연주할 때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 이러한 상태에 들어가는 일에는 자아를 내려놓고 연주하기 위해 철저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음악적 테크닉을 익히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연주 기술을 익혔다 하더라도, 심리적인 요소가 해결되지 못하면 결코 청중의 마음을 두드리는 완전함에 닿을 수 없다. 델로니어스 몽크는 천재로 불리는 재즈계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다. 당대에는 분명 몽크보다 더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많았다. 델로니어스 몽크가 외경의 대상이 된 진짜 이유는 스스로를 천재로 허락한 ‘거만함’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저자가 판단하기에 몽크의 마음은 그를 제약하지 않았고, 영혼은 그를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몽크의 모든 음에는 ‘이것이 진리다’라는 신념이 깔려 있었다고 말한다. 조금 결이 다른 연주의 빌 에반스는 곡의 최소한만을 연습하는 연주자였다. 최소한의 시간이 아니라 곡에서 최소한의 부분을 연습한다는 의미로, 어느 한 부분에 집중하여 그것을 이해하고, 그 부분으로 가능한 모든 변주를 탐구하며, 다른 여러 조로 옮겨서 연습하는 것이다. 이처럼 연주의 경지에 이르는 데에는 기존의 연주 방식과 다른 차별화된 과정이 필요하다. 케니 워너는 ‘연습만이 살길’이나 ‘무조건 실수 없이 완벽하게’라는 통념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접근을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나는 건반을 누를 때 어떤 소리가 나도 이렇게 말한다. “이건 내가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소리야.” 자신의 악기를 가지고 똑같이 해보라. 음 하나를 연주하고, 그 소리를 평가하기 전에 선언한다. (중략) 우리의 창의성에 가장 도움이 되는 신념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이 연주하는 모든 음이 들어본 중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생각할 때 본인이 훨씬 자유롭고 강력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p.125)

 

저자 : 케니 워너(Kenny Werner)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음악교육자이다. 4살에 공연을 시작하고 11살에는 텔레비전에 출연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음악에 뛰어난 소질이 있었다. 그는 디지 길레스피, 베티 버클리, 투츠 틸레만스, 찰스 밍거스, 마리안 맥파틀랜드, 바비 맥퍼린, 루 롤스, 미셀 르그랑, 군터 슐러, 빌 프리셀, 팻 매스니, 엘빈 존스 등 전설적인 음악가들과 함께 공연했다. 최근까지 안토니오 산체스, 브라이언 블레이드, 존 파티투치 등이 속한 5인조 그룹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30개 이상의 음반을 발매하였으며, 수많은 주요 국제 재즈 오케스트라와 교향악단을 이끌었다. 2010년 《No Begining No End》라는 앨범으로 구겐하임 펠로십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외에도 여러 NEA 재즈 마스터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책은 15만 부 이상 팔리며 전 세계 뮤지션들의 바이블이 되었다. 버클리 음악대학 교수이자 원서의 제목을 딴 버클리음대 소속 교육기관인 Effortless Mastery Institute의 예술 감독으로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음악적 숙달을 위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그의 독창적이고도 효과적인 음악교육법을 세계의 유명 음악 유튜버들도 극찬하며 다루어 왔다.

 

역자 : 이혜주

 

영남대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대학원에서 기악과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번역에 뜻을 품고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번역학과 한영전공 졸업하였으며,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페니텐샤-정복당한 이들의 고행 그리고 저항』,『힘들이지 않는 숙달(출간예정)』등이 있으며. 월간지 「춤:in」을 번역하였다. 또한 「매거진B」 및 「매거진F」 영문판 홈페이지를 번역하였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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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베오녹스 Beo Nox
이설 지음 / 좋은땅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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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년, 미래 사회의 인류는 유전공학 기술의 발전으로 불로불사를 이룬다. 모든 인간에게 골고루 혜택이 주어지지 않고 부유한 특권층 ‘칸델라’에게만 주어진다. 가난한 피지배계층은 여전히 제한된 수명으로 지배계층의 삶을 위해 노동을 해야 한다. 과학 기술이 인류에게 유토피아를 가져다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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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녹스 Beo Nox
이설 지음 / 좋은땅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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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베오 녹스』는 '행복한 꿈'이라는 대명사로 불리워지는 중독 물질을 소재로 다룬다. 때는 2202년, 고도로 발달된 미래 사회가 배경이다. 이 시대에는 발달된 유전 공학 기술이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눴다. 저자 이설은 〈프롤로그〉를 통해 "영생을 누리며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면서 사는 부유한 특권층 '칸델라'와 유한한 수명과 가난에 시달리는 피지배계층 '큐비'로 구분되어 있는 시대"라고 밝힌다. 이 소설은 표제어로 쓰인, 인간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베오 녹스'(Beo Nox)의 탄생과 목적 그리고 그와 관련된 거대한 음모를 다룬다. 지배 집단은 이미 부자들이고 불멸의 삶이다. 영원히 사는 것이다. 이 특권층을 ‘칸델라’라 이름 붙인다. 유한한 수명을 가진 피지배계층 ‘큐비’와 구분된다. 주인공 스칼렛은 의대에 다니며 아픈 엄마를 돌본다. 어느 날, 우연히 총리의 둘째 아들 제이크와 만나게 되고 교수의 추천으로 총리의 큰아들 노아의 치료를 맡게 된다. 그녀는 총리의 가족들과 얽히게 되면서 점차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소설 안에서 칸델라와 큐비는 사는 지역, 음식, 문화 등 모든 것이 철저하게 구별된다. 영생을 누리면서 부를 축적하는 칸델라에 비해 큐비는 가난을 대물림하며 점차 두 계급 사이의 격차와 갈등은 심각해진다. 저자 이설은 현대 사회 체제 및 자본주의 경제의 빈부격차 문제를 조망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미래에 특정 권력층만이 과학 문명의 특권을 독점할 때, 집단 이기주의를 넘어 피지배계층을 착취 및 말살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 소설로 읽혀지는 이유다.

저자는 이 소설 『베오녹스 Beo Nox』를 통해 인간은 신이 아니며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으로 대할 때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설을 통해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와 삶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독자들은 지금의 사회가 발전하면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누적될 경우 200년 이후의 지구 인류의 삶을 디스토피아로 설정한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베오녹스 Beo Nox』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일반적인 SF소설에서 보여지는 상상에 의한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를 그리지만 않는다. 공학적 측면으로 발달된 과학과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비판적 시선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아마 저자가 공학자 출신이기 때문에 훨씬 기술 공학적 측면에 대한 많은 사유가 있었으리라 생각되기도 한다. 특히 어려운 반도체 이론이나 과학과 기술의 전문 용어들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도 저자의 지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창의력과 전문성을 모두 확보하고 있다. 독자들에게는 매우 신선한 SF소설, 동떨어진 미래 공간이 아닌 현대 사회와 연결된 우리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밑바탕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소설 내용으로 일일이 모두를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어 주석을 달아놓은 것마저 SF가 어려운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배려로 생각된다.

특히 AI, 클라우드 및 해킹 관련 부분에서도 연구자료를 참조한 저자의 노력과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SF 소설의 근간인 인간의 가치와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광대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거대한 음모에 맞서는 메인 스토리를 중심으로 정치, 종교, 철학, 러브스토리, 액션 및 판타지적 요소들을 스토리 안에 잘 버무려 녹여내고 있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다르고 새로운 '블록버스터 SF'의 탄생의 시작점이 될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계기로 소설 독자들이 기대하는 SF소설의 새로운 장르로 발전되기를 기대해 본다.

 


 

소설의 시작은 우리가 미래 사회를 조망하는 그림이나 삽화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 그대로다. 2202년 10월 12일 화요일 저녁 8시, 대도시의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에어 모빌리티와 드론 택시들은 지상과 상공을 각각 푸른 네온 트랙길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북잡한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연방 최고위원회 빌딩 안에서는 위원장 K가 회의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다.

"복제 휴머노이드의 완제품이 2203년까지 총 1억 개의 생산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T가 말했다.

"T, 그렇다면 이제 큐비들의 노동력이 전혀 필요 없게 된다는 말입니까?"

"노동력뿐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큐비들의 인구 증가로 인해 고갈 위기에 처한 식량 자원 문제를 휴머노이드로 자원을 대체함으로써 파미드의 생산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식량 자원 부족 때문에 그동안 포기해 왔던 토지개발도 드디어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들은 인간형 로봇으로 일컬어지는 '휴머노이드' 생산으로 내년 중에 1억 개가 보급되는 점에 관해 회의를 하고 있다. 당연히 사회 피지배계층이 해온 일을 로봇형 인간들이 대신하게 됨에 따라 큐비의 일과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을 예상하고 큐비 처리에 대해서도 논의를 할 것이다.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큐비들은 이제 더 이상 존재의 이유가 없습니다."(p.9)

 

 

칸델라와 큐비로 지칭되는 두 종류의 인간들은 사는 지역도 다르기 때문에 2202년의 시대는 두 가지 세상에 각기 다른 두 가지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 지역 구분이 지금의 나라별 구별이라기보다 아마 한 도시 안에서 지역적으로 다른 차별적 공간을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지역의 미국 미시간 주가 중심이지만 미국의 예전 인종차별의 모습 그대로 지속된다면 미래 사회엔 칸델라와 큐비로 구분될 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섬뜩하기까지 하다. 언젠가 보았던 프랑스 파리가 무대인 〈13구역〉이 연상되기도 한다. 특권층 칸델라들의 수명은 발달된 유전 공학을 이용해 '영원'으로 바뀌었고, 피지배계층의 큐비들은 건강과 행복, 꿈과 식량 등을 위해 오직 지배계층이 필요한 것들의 생산에만 매달려야 한다. 칸델라들의 의식주 해결을 위해 그들이 하기 싫어 하는 3D 업종에서 생계와 목숨을 이어가는 노동에 종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큐비들도 인간이라 먹어야 할 것이다. 그것을 로봇으로 대체하면 큐비들의 일자리는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많은 큐비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당연히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연방최고위원회(국가정책 결정)에서는 큐비들을 '해충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칸델라들의 일상을 그린 부분을 보면 지금 미국 상류 사회의 일상과 비슷하다. 특별한 서비스로 하고 싶은 일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칸델라들은 최고급 시설의 연구소 등에서 일하는 게 법칙이라고 저자는 묘사한다. 또 칸델라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적에 따른 '룩스'를 받기 위해 일한다. 레벨이 높은 칸델라들은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통하여 모든 정보를 공유하였으며 룩스에 따라 그들 사이에도 명백한 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칸델라들 중 최고 레벨의 룩스를 가진 이는 'LK-10'으로 칸델라의 레벨은 총 1~10등급까지 'LK'라는 표식과 함께 왼손 엄지손가락과 검지 사이의 손등 위에 마크되어 있다. 그 레벨 인식칩은 모든 곳에서 신분증과 지불 수단을 대신한다.

 


 

이 책은 소설 작품이지만 중심 테마 이외의 소재가 되는 각종 기술이나 전문적 용어를 서평에 쓰기가 어려울 정도로 비밀스러운 작업이 많다. 그 비밀스러운 작업은 지극히 비인간적(?) 계획이나 프로젝트이고 전문 용어도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줄거리마저도 쉽게 쓰기 어렵다. 스포일러가 되기 십상이다. 두 가지 종류의 인간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살아가는 이유 등이 다르다. 또 지배계층이라도 자신들이 정한 정도에 따라 10단계로 계급이 나누어진다. 그들에게 인간적인 행위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배계층이라고 해도 피지배계층을 위해 일하는 사람, 간혹 영웅이나 위인이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은 있다. 아직까지 인간으로서의 이성과 감성, 그리고 특성 등을 고루 갖춘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이들과 재배계층과의 갈등이 충분히 생길 수 있고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칠지는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에서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이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이 소설을 통해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를 막는 저자의 속마음을 그대로 담아낸 것으로 이 소설이 보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베오 녹스의 시작」이라는 장(章)에서 베오 녹스의 탄생을 알린다. 베오 녹스는 국가 차원이 아니라 한 글로벌 기업에서 진행된 큐비들이 현혹될 만한 제품이다. 이 글로벌 기업 Silva는 모든 엘리트 칸델라들이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싶어하는 최고의 AI 일류 기업이다. Silva는 AI 기업형 기반 시스템은 물론이고 칸델라와 큐비들의 모든 생활형 가전과 자동차, 통신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사업을 확장시켜 왔다. Silva의 CEO 제프리 번디는 최고위원회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으며 그들이 원하는 모든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제프리는 LK-10레벨로 칸델라 중에 최고 등급이었으며 이는 전체 칸델라 중 상위 0.01%를 의미했다. 큰 키에 금발 머리, 완벽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주변에는 가족도 친구도 가까이하지 않아 그 누구도 그의 사생활에 관해서 아는 사람이 없다. 루모 시태 본사 건물 제일 위층에 그의 방으로 앞서 소개한 연방최고위원회 T가 들어온다.

"지난주에 Beo Nox가 최종 테스트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요청하신 대로 대부분의 큐비들이 모두 현혹될 수밖에 없는 최고의 장치입니다. 여기 1차 인체 테스트 결과입니다."

이들은 지금 모든 큐비들을 중독 상태를 유발할 수 있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신물질 Beo Nox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저자 이설은 〈에필로그〉를 통해 이 소설 작품에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현대의 모습을 투영시켰다고 말한다. 현대의 빈부 격차로 인한 계층 간의 갈등 문제를 미래 사회에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미레에 특정 권력층만이 과학 문명의 특권을 독점할 때, 집단 이기주의를 넘어 피지배계층을 착취 및 말살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작품의 의도이기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지금은 신의 영역인 인류의 수명을 미래에 인간이 유전자 조작으로 그 경계선을 넘게 된다면, 일부 부유층에게만 영생이라는 특권이 주어질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만일 미래에 이러한 일들이 생긴다면 계층 간의 갈등은 더욱 극심해질 것이며 이러한 갈등 해결의 시발점은 특권층 안에 있는 사람들의 선한 의지와 피지배계층 사람들의 정의를 위한 투쟁과 합심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p.434)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저자 : 이설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전자공학과 학부 및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USC), Biomedical Engineering(의공학) 대학원 졸업.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논문 연구 중, 시뮬레이션 작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SF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반도체 이론을 미래 인간 사회에 투영하여 2202년 빛과 어둠의 세계로 초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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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희순
권은혁 지음 / 좋은땅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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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신의 언어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누군가에게 평생 소녀로 남고 싶다는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그리고 오늘도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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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희순
권은혁 지음 / 좋은땅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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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요즘 시를 잘 읽지 않는다. 아마 나이듦에 따라 감성이 무뎌진 탓 아닐까 생각해서 회피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어쩌다 시를 읽어도 예전처럼 촘촘히 읽지도 못한다. 생소한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일부러 채택한 단어가 아닌데도 예전처럼 은유나 상징어에 대한 감수성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인 것 같다. 아주 단순한 제목의 이 시집은 느낌이 많이 달랐다. 어려운 단어도 없는 데다 일상적인 단어마다 옛 추억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은 남자 이름이다. 표제어 '소녀 희순'은 시인의 엄마이다. 저자 소개란을 읽어보고서야 알았다. 처음엔 처음 보는 시인의 이름이라 별 생각 없이 읽었다. 분명 시어로 쓰인 단어들이 독자의 어릴 적과 결혼할 때까지의 감성을 건드리는 단어들로 가득하다. 시인이 여자임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었고, 그래서 그런 인식 아래 읽어나갔다. 습관대로 〈들어가며〉부터 읽기 시작했다. 첫 말이 "나는 엄마다."이다. 이젠 시인이 여자라고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이어지는 말, "사랑하는 남편과 날 닮은 아이들. / 내 꿈은 우리 네 식구 오순도순 평범하게 사는 것 그뿐이었다." 책 머리에 쓰는 '소박한 꿈(오순도순 평범하게 사는 것)'이 무너졌다고 한다. 무슨 일이 생겼다.

읽어보면 무슨 일인지 알 것 같다. 마지막 줄에 가면 "내가 되고 싶다. / 미치도록 소녀이고 싶다."이다. 소녀 때의 힘들었지만 아련한 추억은 곧 이은 시들에서 나타난다. 이 소녀의 이름이 '희순'이고 시의 화자(話者)다. 지금은 결혼하고 자녀도 낳고, 집에 무슨 일이 생겨 남편을 날마다 보고 싶다며 그리며 산다. 어렸을 때 소녀 희순이 엄마 희순이 되고, 그 자녀가 결혼하고... 할머니가 다 된 엄마 희순은 자꾸 옛 생각을 더듬는다. 그 옛날이 독자가 어렸을 때 겪었던 많은 부분이 평행이론처럼 맞아 떨어진다. 소녀 희순은 육남매 중 둘째다. 어쩌면 집안이 어려워 부모가 모두 생활 전선에 뛰어든 바람에 제대로 보살필 수 없어 외할머니 댁에 의탁한 듯하다.

 


 

외할머니께 팔려 가던 날, 어머니는 나에게 당부했다. "할머니께 미움받지 말고, 시간이 날 때마다 마당에 나가 잡초라도 뽑으렴."

나는 가족들이 보고 싶은 날이면 잡초를 몽땅 뽑았다. 하지만 잡초는 나의 외로움과 같아, 아무리 뿌리를 뽑아도 내일이면 또 다른 싹을 틔웠다.

- 「잡초」 중에서

 

아버지는 형제 중 가장 공부를 잘했던 나와 미술에 꿈을 가진 넷째 동생을 서울 친구분 댁으로 유학 보냈다.

(중략)

한 날은 하교 후 세탁소 문을 열었는데, 그날은 아주머니가 잣이 박혀 있는 새빨간 배추김치를 안주로 둘둘 말고 있었다. 내가 그 김치를 얼마나 집중해서 봤는지, 고춧가루 크기가 '아주머니 몸뚱아리만큼 크구나' 생각하며 군침을 삼켰던 기억이 난다.

아주머니는 김장김치를 했다며, 일 층 집 안 거실 냉장고에 많이 두었으니 언제든지 꺼내 먹으라 했다.

 

며칠 후, 두 분은 저녁 늦게 외출을 하셨다. 이때만을 기다린 나와 동생은 방에 나뒹굴던, 일부러 버리지 않고 있던 검정 비닐봉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마치 도둑이 된 것처럼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일 층으로 향했다.

주인댁 집 문이 열리고, 부잣집 금고처럼 보이는 영롱한 냉장고가 보였다. 그때부터 김치의 짜릿한 향이 나와 동생을 미친 듯이 설레게 했다.

- 「서울 유학」 중에서

 

 

상황이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비슷한 시절을 건너온 독자에게는 감성이 많이 닳아진 만큼 추억이 곱게 포개져 있었나 보다. 이 두 편의 시를 읽고서도 눈물이 핑 돌 만큼 짙은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대부분 못 살았을 시절이라 집안에 냉장고가 웬말, 흑백TV를 안방에 설치한 것이 독자가 태어나서 우리 집의 가장 큰일로 생각되었을 때다. 까맣게 잊었던 추억들이 하나씩 하나씩 배어나온다.

이 시집은 이렇게 1부를 통해 가족 관계와 어렸을 적 가족들과의 추억 등이 잘 버무러져 독자의 감성을 건드린다. 세월이 지나고 소녀도 자라고 '사랑'을 앓았을 터, 그때의 심상도 시에 나타난다. 무슨 연애를 어떻게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사랑을 했을까만 독자의 관심사가 된다. 사랑은 모두 모두 다른 색, 다른 형태를 띠고 있으니까.

 

언제부턴가 난 당신을 알았고

언제부턴가 난 당신을 그렸습니다

(중략)

언제부턴가 난 당신이 보고파졌고

언제부턴가 난 당신이 좋았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꿈속에서 당신을 만났고

아름다운 색도 칠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시작인 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 「사랑의 시작」 중에서

 


 

사랑은 각기 다른 색으로 각기 다른 형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사랑은 어려운지 모르겠다. 실제 연애할 때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판단이 안 설 때도 종종 있다. 안 보면 보고 싶으니까 사랑이다고 한 말도 있다. 받은 것 없어도 한없이 주고만 싶은 게 사랑이라고 말한 사람도 주위에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아직도 사랑이 뭔지 정확하게 표현이 안 된다. 독자나 시인이나 그 점에서만은 같은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평범했다.

유달리 잘하는 것도 없고, 그저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이었다.

손재주가 좋거나 말을 유창하게 잘하지도 못했다.

일탈하거나 어디서 나서는 사람도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다.

당신을 생각하는 일 외엔 소질이 없다.

- 「당신을 생각하는 일 외에 소질이 없다」 전문(全文)

 


 

2부의 마지막 시엔 시인의 '사랑'에 대한 경험과 사유에 대해 아낌없이 풀어썼다. 마치 사랑이란 문학적 표현 같기도 하고, 철학적 사유의 결과을 말하는 것 같다. 소설로 읽어도 어려운 사랑을 시의 형식을 빌어 써놓으니 두 번을 내리 읽어도 말뜻은 알겠지만 맞고 틀리고의 개념마저 사라진다. 어쩌면 시인처럼 절절한 사랑을 못했던 것 아닌가 하는 때늦은 후회감이 들 정도로 '너무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을 '듣는 사람마저 헷갈리게 적었다. 사랑의 정의(定義)에 대한 말 같기도 하고, 경험을 핑계로 문학과 철학에 비유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신과 종교를 끄집어내고... 독자에게도 사랑은 여전히 어렵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수백수천 년 전부터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려왔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우리는 사랑에대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의를 내릴 수는 없었다.

 

셰익스피어는 「비너스와 아도니스」라는 서사시에서 사랑에 대하여 설명했다. '사랑하는 아도니스가 죽었으니 사랑의 신, 나 비너스는 다음과 같은 저주의 예언을 하노라(이하 생략)'

셰익스피어는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그렸고, 시공을 초월해 사랑은 똑같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도 사랑을 정의할 수는 없었다. /

어떤 이에게 사랑은 봄비처럼 따뜻한 것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칼바람이다. 우주와 신비와 자연은 비교적 수백 년 전보다 많이 입증되고 조금은 이해가 되지만 사랑에 관해선 그렇지 못했다. 사랑만큼 이해하기 힘든 것이 또 있을까? /

사랑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이유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와 표현만으로는 사랑을 모두 표출할 수 없다. /

사랑은 자신만의 종교를 갖는다. 전 세계 모든 종교를 망라하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사랑'이다. 평생에 걸쳐 종교를 통해 배우는 것, 가르치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이렇듯 신이 종교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은 오로지 사랑이다. 모든 인간이 사랑에대해 깨닫는다면 이 세상 모든 종교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수천 년이 지나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신을 이해할 수 없듯이.

- 「신의 언어, 사랑」 중에서

 


 

4부에 가서도 시인의 사부곡(思夫曲)은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살아 있는 한 계속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시인은 셰익스피어도, 어떤 철학자도 정의 내리지 못하는 사랑의 정의를 이미 마음속으로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의 웃은 얼굴이 기억나지 않으면

그만 울어도 된다 했는데

내게는 너무도 가까운 기억입니다

(중략)

과거는 가깝고 미래는 먼 것이라던데

몇 시간 후인 내일보다'

이십 년 전이 더 가까운 것은

너무합니다

- 「어느 시인의 말」 중에서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시집은 둘째라 항상 언니의 물건을 받아 사용해야 했던 희순 씨에게 아버지가 사 준 빨간 구두, “네 엄마 보고 싶지?”라고 물었던 아버지의 말에서 묻어 나오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집에 오는 길에 식을까 봐 품 안에 소중히 숨겨 온 치킨 등 제각기 다른 형태로 표현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된다. 『소녀 희순』은 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읜 희순 씨는 자신을 소녀라 불러 주는 이를 잃은 상실감에 아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 간다. 이는 아마 두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희순 씨는 ‘사랑’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들을 주워 먹으며 두 아이들이 스스로 컸다고 말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랑이었음을 안다.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해 간다. 사랑은 신의 언어이기 때문에 아마 인간인 우리는 평생을 사랑에 대해 정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누군가에게 평생 소녀로 남고 싶다는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저자 : 권은혁

 

소녀의 아들.

2016년 제32집 《내성의 맥》 〈봄〉으로 등단.

문화관광협회 이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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