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용기 100 - 일본 최고 전문의가 전하는 잡동사니, 뒤엉킨 사고, 인간관계 정리 습관
고바야시 히로유키 지음, 이지현 옮김 / 더페이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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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현대 사회가 인간에게 과중한 스트레스를 주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하나는 인구가 많아지고, 산업이 발달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인간의 뇌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혼란을 겪는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만하다. 또 하나는 속도가 빨라진 점이다. 인간이 채 깨닫기도 전에 정보는 사라진다. 눈앞의 정보가 빠르게 사라진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일 수 있으나 디지털 문화로 방대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니 눈앞에 있던 것들이 떠밀려 자취를 감춘다. 쉽게 비유하자면 디지털의 속도는 빛처럼 빠르지만 우리가 인식하고 취하는 속도는 여전히 예전과 같다. 물론 개인차를 무시한 평균 인식의 속도를 말한다. 

이 책 『버리는 용기 100』은 도서관식 책 분류로 말하자면 자기계발서다. 현대인들은 너무 빠르고 복잡한 사회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기에 아직 익숙지 못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수많은 정보는 디지털로 변환돼 빛의 속도로 취할 수도, 놓칠 수도 있다. 인간의 두뇌 신경계의 신경전달은 어느 정도의 속도인지는 독자는 모르지만 빛의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으리라. 특히 이 책의 저자 고바야시 히로유키는 일본의 신경전문의라고 한다. 30년간 면역과 신경 분야에 천착해온 연구와 현장 치료 경험이 풍부한 일본에서도 내로라 하는 의사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는 의사(과학자)답게 현대인의 스트레스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스트레스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 사회의 정보 홍수 속에서 자신의 삶에 필요한 정보만을 가려 알고, 쓸데없는 것이나 삶과 관련 없는 정보는 버려야 한다. 세상에 모든 정보를 인간의 뇌가 감당할 수 없을 테니 필요한 것만 선택해 저장 창고에 넣어두어야 할 것이다.

이때 방해되는 것이 인간의 소유욕인 것으로 저자는 집중하는 것 같다. 현대 인류는 누구나 매일 넘치는 물건과 정보 속에서 살아가며, 불필요한 것들로 인해 삶이 어지러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필요한 물건을 찾느라 허둥대거나 복잡한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등 하루하루의 삶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반복해서 받는다면, 그 원인은 어쩌면 ‘버릴 용기’가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늘어난 물건과 인간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쌓아두기만 한다면 우리 몸을 관장하는 자율신경의 균형은 깨지고 몸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지고 만다. 오랜 연구와 치료 경험으로 얻어낸 스트레스 축적의 원인이다.

이 책은 단순하게 물건이나 주변 환경을 정리하자는 책이 아니다. 물건은 물론 습관, 사고방식, 인간관계까지, 인생 곳곳에 쌓인 ‘군더더기’를 과감히 덜어내는 법을 알려 주기 위해 집필됐다. 이 용기 있는 법을 익히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인생의 답이 보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 고바야시 히로유키는 자율신경 연구의 권위자로서, 이 책을 통해 스트레스와 혼란을 과학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모두 5장(章) 100개 항목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주변 물건을 버린다〉, 2장 〈생활 습관을 버린다〉, 3장 〈기존의 사고방식과 버릇을 버린다〉, 4장 〈식사에 대한 상식을 버린다〉, 5장 〈인간관계를 버린다〉 등이다. 1장에서는 방 안을 지배하는 ‘물건의 폭군’들과 결별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1년 내내 옷장에 방치된 옷들, 쌓아 둔 서류, 그리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만 차지하는 자질구레한 소품들까지. 버리기 아까워 집에 쌓아두면 쓸데없는 물건들로 인해 앞으로 미래의 삶을 방해한다. 이런 것들을 찾아내 과감히 정리할 것을 저자는 요구한다. 과감히 정리하면 생각보다 훨씬 큰 여유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13개 항목을 두고 한 가지씩 설명해 나간다. 각 장의 마지막엔 「현명하게 버리기 위한 Check point」란 난을 별도로 마련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2장은 생활 습관에 초점을 맞춘 27개 항목을 다룬다. 땀에 젖어 출근하거나, 스마트폰에 사로잡혀 늦게 자고 피곤한 하루를 맞는 당신. 이런 습관이야말로 자율신경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엘리베이터 타지 않기’ 같은 사소한 실천부터 SNS와 작별하기까지, 작은 변화가 당신의 하루를 얼마나 편안하게 만들어 줄지 직접 체험해 볼 것을 권유한다.

편하게 얻은 정보나 지식은 금세 사라진다. 어렵게 경험하고 많은 시간을 들여 고난을 극복해낸 정보나 기억은 오래 간다. 이런 원리는 누구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인간의 기억 장치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나뉘어 있는데 장기 기억으로 옮겨져야 비로소 자신의 지식이 되고 정보가 된다. 단기 기억에 머물 때 다시 한 번 반복하거나 새로운 자극의 경험을 얻는다면 장기 기억으로 옮겨갈 것이다.

3장은 고정관념과 사고방식을 다룬다. ‘주말엔 쉬어야 한다’, ‘다음 일정을 생각해야 한다’와 같은 관념은 당신을 지치게 만드는 함정일지도 모른다. 이 장을 통해 ‘생각 비우기’를 배우면, 걱정과 망설임 대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을 것이다. 고정관념이나 사고방식은 사실 장기 기억장치에 저장된 지식이나 정보일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점이 확인되면 지워야 한다. 장기 기억에서 지워내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노력은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확인해 재주입해야 한다. 고정관념이나 사고방식은 이미 습관화되어 있는 것들이다. 아무 생각없이 방치한다면 다음 문제가 닥칠 때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다. 

25번째 항목은 「뭐든지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하는 습관을 버려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책에 따르면 최근에는 메모, 기록, 스케줄 관리 등을 스마트폰으로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부피가 적고 생각난 것을 바로 적을 수 있는 점은 분명 편리하다. 의료 현장에서도 진료차트를 종이가 아닌 컴퓨터 파일로 전환하는 병원이 늘고 있는 등 문서 전자화의 움직임이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나 또한 디지털 기기의 메모 기능이 편리해서 일상에서 태블릿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일은 종이에 직접 써서 남기려고 노력한다. 수첩이나 작은 메모 용지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고 집이나 연구실 책상에는 바로 뽑아서 쓸 수 있는 메모지를 상비하고 있다. 손으로 뭔가를 쓰는 행위, 즉 '수기'의 최대 장점은 기억하기 쉽고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또한 손을 움직이고 나중에 자신의 필적을 다시 훑어보는 자극을 통해서 뇌가 활성화되어 자율신경의 안정화를 기대할 수 있다.

인간은 '언어로 생각하는 동물'이라 수기로 자신의 생각이나 업무를 가시화하여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다. 문자로 옮기면서 사고하는 습관을 기르면 예상 밖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차분한 자세로 대처할 수 있다. 

내가 실천하고 있는 방법은 '세븐 라인즈(Seven Lines)'라는 것이다. 원래 의사가 진료차트를 작성할 때 사용하는 기술로, 사건이나 과제의 배경에 따라 중요도가 높은 순서대로 일곱 개의 항목을 적는 방식이다. 이렇게 적으면 어떤 문제의 전체적인 상황은 물론 위험성까지 폭넓게 검토할 수 있어서 직장이나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접목하여 만일의 사태에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다.(p.86~87)

4장은 식탁 위로 시선을 옮긴다. 현대인이 식생활에서 가장 많이 겪는 스트레스는 아마도 몸무게일 것이다. 식사는 우리 몸의 균형과 면역, 활동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은 상당한 노력으로 천천히 과학적으로 발전해 왔다. 즉 몸에 필요한 영양소, 에너지 축적, 기초대사량, 근육 연구 등 다각적으로 접근해 과학적으로 시스템을 분석하고 필요한 양과 영양소를 밝혀냈다. 그리고 적절한 급식의 양과 영양을 알아내는 데도 성공했다. 옛말에 과유불급(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이란 말이 있는데 그야말로 우리가 먹는 음식처럼 잘 들어맞는 것도 없을 듯하다. 음식은 많이 먹을수록 좋은 게 아니라 적절한 양 이상을 먹으면 오히려 탈이 난다. 그러다 보니 다이어트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지 이미 100년 이상이 지났다. 또 일에 쫒겨 급하게 때우는 점심, 과도한 다이어트, 무리한 건강보조제 섭취 등 잘못된 식습관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과학적 정설이라 이제는 다이어트에 돈을 써야 할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4장에서는 식사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간단한 원칙들을 익히면, 식탁의 즐거움과 건강 모두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모두 11개의 항목이 마련되어 있다. 특별히 어려울 것도 복잡하지도 않는다. 탐식의 수준만 아니라면 누구든지 실천해 습관화할 수 있다. 한 예로 「아침을 거르는 식생활을 관둬라」(71항)가 독자에게 가장 인상적이다. 현대인의 생활은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다. 직장에서 늦게 끝나는 것도 이유지만, 퇴근 후 시간이 짧기에 자신만의 여유 시간을 즐기기가 쉽지 않다. 회식이나 술 좌석 등이 따로 잡히면 지나친 시간을 잡아 먹고 다음날 출근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소 달라졌지만 직장에서의 회식은 근무 연장으로 받아들여졌고, 빠진다는 것은 동료와의 화합에 방해가 된다는 의식이었다. 자리가 늦어지면 스트레스는 과중하게 쌓이고 누적될수록 건강에는 적신호다. 또 일부는 살을 뺀다는 이유로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것은 식사 시간을 건너 뛰어 다음 식사까지 안 먹는다면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혈액이 두뇌로 돌지 않아 머리가 멍해지고, 자율신경의 균형은 엉망진창이 된다는 것이다. 고정관념이나 식습관으로 굳어지면 건강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계할 것을 요청한다. 특히 아침밥을 잘 챙겨 먹으면 '삶에 여유가 생긴다'고도 말한다.

마지막 5장은 인간관계 정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누군가 날 좋아해 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버리고,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면 자신과 잘 맞는 매력적인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인 관계', '인간 관계'는 사회 생활 하는 동안 누구나 느끼지만 결코 쉽지 않다. 각자가 다른 환경과 다른 사고방식으로 살아온 때문에 성격도 각자 다르다. 그러나 협력해서 성과를 내야 거기서 얻은 수익으로 식구들과 함께 먹고 산다는 원리는 모두 같다. 그 수익을 최대한으로 높이려면 당연히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고, 또 동료들과는 한몸처럼 하모니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이른바 팀워크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잘 이루어진다면 힘들 일은 없다. 그러나 세상 일은 절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법이 결코 없다. 결국은 모든 사람과의 원만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대인관계를 성공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관계를 맺지 말거나 이미 깊숙이 들어온 관계라면 과감하게 버릴 것을 주문한다. 물론 이 버림을 실천하려면 사실 자신의 수양이 먼저다. 

이를 테면 저자가 경계할 것을 요청하는 것은 69항목 「분노를 억누르는 것을 관둬라」라고 정면 배치되는 요구도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노의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의사이기 때문에 분노의 감정은 자율신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다. 그러나 분노의 감정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분노의 감정은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기게도 하니 말이다. 다만 저자는 이 책에서 복받쳐 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다른 감정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노의 감정을 무리해서 억누르는 것은 자신의 속마음을 억누르는 것이고 이는 큰 스트레스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마주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한 예로 일기에 그날에 느낀 분노의 감정에 대해서 쓰는 일이다. 분노를 느낀 순간과 시간 차를 두고 일기를 쓰면 객관적으로 그때의 상황을 분석할 수 있다. 이처럼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분석하면 자기 나름의 해결책도 찾을 수 있고 서서히 분노의 감정을 통제할 수도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의 한마디는 꽤 여운이 오래 남는다. "분노는 시간이 흐르면 잦아드는 감정입니다."(p.197) 우리 속담에도 '참을 인(忍)'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도 있잖은가?

저자는 이 책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불필요한 습관을 버리며, 스트레스를 주는 관계를 정리하면 삶이 한결 가벼워지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선명해진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특히 자신의 연구 분야인 자율신경의 균형을 도와 건강해진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버리는 삶은 누구나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쓸모없는 물건을 비우고 덜어내는 순간 삶이 깔끔해지고, 시간과 공간의 여유가 찾아온다고 주장한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도 정리하면 상대적으로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과의 진정한 유대감을 쌓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비움’은 결국 더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분명한 길이다.


사람은 효율성을 따지면 따질수록 그리고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효율적인 노선으로 헤매지 않고 편하게 환승’할 수 없는 것이 스트레스라면 차라리 이를 관두고 ‘일부러 걸어서 하는 환승’을 택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오히려 우연의 일치로 기다림 없이 환승이 잘 되었을 때 살짝 ‘나는 행운아다’라는 생각마저 들 수도 있습니다.(p.66~67)


저자 : 고바야시 히로유키(Hiroyuki Kobayashi, こばやし ひろゆき, 小林 弘幸)


준텐도대학 의학부 교수. 일본 스포츠협회 공인 스포츠 닥터. 준텐도대학 대학원 의학 연구과(소아외과) 박사. 런던대학 부속 영국 왕립 소아병원 외과, 트리니티대학 부속 소아연구센터, 아일랜드 국립 소아병원 외과에서 근무했고, 준텐도대학 소아외과학 강사·조교수를 역임했다. 일본 최초로 ‘변비 외과’를 개설했으며 자율신경 연구의 일인자로 운동선수를 지도하고 있다. 저서에『의사가 고안한 장수 된장국』『자율신경을 정돈하는 ‘포기’ 건강법』 등이 있다.


역자 : 이지현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직물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여자대학교로 교환 유학을 다녀왔다.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일번역과를 졸업했다. 현재 엔터스코리아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역서로는 『영업의 신 100법칙』, 『세상의 이치를 터놓고 말하다 : 괴짜 부자 사이토 히토리』, 『흘러넘치도록 사랑하라』, 『채소를 말리면 맛이 깊어진다』, 『Win의 거듭제곱』, 『칭찬이 아이를 망친다』, 『세계의 법교육』,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서점에 있다』, 『사람은 들키지만 않으면 악마도 된다』, 『스틸』, 『예수의 언어』, 『미루기 습관은 한 권의 노트로 없앤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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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치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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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고 강렬하게 빛났던 과거의 순간을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지기 전에 되살려 내는 일이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할까? 누구에게나 이런 저런 일이 있지만 선택한 순간만을 망각의 늪에서 끄집어낼 수 있을까? 작가는 독자들에게 삶의 순간을 돌아볼 여유를 되찾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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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치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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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책 『3월의 마치』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지만 불가능한 방법을 실행에 옮기면서 시작된다. 바로 과거의 나와 직접 대면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결코 쉽지 않고, 한편으론 불가능한 방법으로 생각되기 쉽다. 저자 정현아는 이를 위해 성공한 노년의 여성 배우 ‘이마치’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삶이라는 바다에서 무수한 파도를 넘으며 살아남은 ‘생존자’이기도 한 그녀는 세월이 남긴 깊고 묵직한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이마치에게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마지막 파도로 들이닥치고, 그녀는 과거의 시공간을 복원한 가상현실을 누비며 유실된 기억을 되찾고자 한다. 과연 이마치는 수많은 예전의 자신과 재회하며 삶의 강렬했던 순간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자연의 섭리처럼 밀려오는 상실과 망각의 물결을 막아내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기억까지 간직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피엔딩일까. 이 소설이 탐구하는 것은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 있을 것 같다.

이 소설 작품 『3월의 마치』는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가상의 무대 위로 우리를 초대한 뒤,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갖가지 고정관념을 벗어던지도록 유도한다. 독자는 특히 기억과 망각의 경계선에서 기억을 오롯이 되살려낼 수 있을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신의 영역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우선 망각이란 단어에 집중해본다. 망각을 생각하면 독자는 으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갖다 주자 제우스는 크게 화를 낸다. 제우스는 인간들이 문명에 이르는 데 없어서는 아니 될 불을 일찌감치 숨겨 버렸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올리브 가지를 꺾어 태양 마차에 가까이 다가가 이글거리는 불길에 나뭇가지를 내밀어 불을 붙였고, 땅에 내려와 이 불씨를 인간들에게 전해 주었다. 제우스는 화가 났지만 불을 도로 빼앗아 올 수는 없었다. 불을 도둑맞은 제우스는 복수를 결심하고 인간들에게 새로운 재난을 줄 궁리를 했다. 그리하여 제우스는 판도라라는 여성을 만들어 인간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제우스의 명을 받은, 손재간이 좋은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들었다. 아테나는 이 여성에게 눈처럼 눈부신 옷을 입혀 주고 베일을 씌워 주었다. 머리에는 화관을 씌워 주고 금빛 댕기를 매어 주었다. 신들의 전령 헤르메스는 이 여성에게 재치와 말재간을 주었으며, 사랑의 신인 아프로디테는 그녀에게 온갖 아름다움과 함께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교태를 선사했다. 그리하여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뜻의 판도라가 탄생했다.

제우스는 온갖 재앙이 담긴 상자 하나를 판도라에게 주면서 절대로 열어 보지 말라고 경고한 뒤, 판도라를 인간들에게 내려보냈다. 지금까지 이런 여자를 본 일이 없었던 인간들은 이 신기한 창조물을 놀랍게 바라보았다.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에게 다가갔다. ‘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주는 선물의 위험성을 미리 알았고, 동생에게 그 선물을 절대 받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반해 형의 충고를 잊어버리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판도라는 어느 날 제우스가 준 상자가 생각났다. 제우스의 경고를 잊지 않았지만 호기심이 두려움을 앞서 상자를 열어 보았다. 그 순간 상자 속에서 슬픔과 질병, 가난과 전쟁, 증오와 시기 등 온갖 재난이 쏟아져 나오자, 놀란 판도라는 급히 뚜껑을 닫았다. 그리하여 상자 안에는 ‘희망’만이 남았다고 그리스 신화는 전한다. 인간에게는 그 희망만이 유일한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마지막으로 튀어나온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은 것 같다. 언젠가 독자가 읽은 신화에서는 '망각'이었다고 한다. 망각은 나쁜 것들에 속해 일찍 튀어나왔을 것이란 예상에는 맞지 않았지만 독자가 읽은 책에는 운명과 한(恨)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인간에게서 기억을 빼앗아가는 망각은 나쁜 것임에 틀림없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망각'이 없다는 인간은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이전까지 인간들은 어떤 고통도 모르고 지냈지만, 이때부터 인간은 영원히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 고통을 주는 것 중에 망각을 포함시킬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것 중에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인간은 생리학적으로 감각기관을 통해 인지한 것을 대부분 기억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만일 망각이 없다면 불쾌한 일, 원한, 미움, 증오, 시기심 등 온갖 감정을 일으키는 사실들을 잊지 않고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인류의 불행과 희망의 시작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그리스 신화는 말하지만 독자는 망각이 ‘판도라의 상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 기억에만 묻혀 산다면 인간은 미래를 위해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마치의 언니는 6월에 태어나서 '준', 3월에 태어난 이마치는 '마치'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화려한 배우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녀의 개인적인 삶은 외롭고 우울하다. 할리우드에 진출의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가지 않았고, 배우로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엔 항상 외롭고 우울했다.

소설의 시작은 60세 생일날 시작된다. 예순번째 생일은 평소보다 더 이질적이다. 배우로서 엄격히 관리해온 체중이 하룻밤 사이 크게 달라진 사실을 발견한다. 이마치의 일상에 감지되는 이상 신호는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몇 달 전 이사를 한 후로 기묘한 일들을 겪는 중이다. 갑작스럽게 기억력이 감퇴해 연기 경력에 차질이 생기더니, 혼자 사는 집에서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급기야 집안을 배회하는 유령을 목격하기에 이른다. 

"이마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몸무게를 쟀다. 그녀의 몸무게는 55킬로그램이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변함없이 그 몸무게를 유지했다. 그녀는 배우였다. (…) 생일날 아침 이마치는 평소대로 몸무게를 재고 깜짝 놀랐다. 59라는 숫자가 깜빡거리다가 사라졌다. 전날까지 분명 55킬로그램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몸무게가 늘 수도 있는 걸까?"(p,7~8) 

그녀는 평소와 다른 신체 변화와 이상한 환영들을 경험하며 점점 자신의 기억이 흐려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의사로부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며 점점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기억의 흐려짐과 함께 몸의 변화, 환영과 같은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나면서 삶이 무너져가는 공포가 밀려왔다. 그녀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 특별한 병원을 찾아간다. 뇌의학 클리닉을 찾아가 맞춤 제작된 VR 치료를 시작하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대면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그녀의 과거를 복원해 주었고, 마치는 잃어버린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배우로서 성공했던 순간뿐만 아니라, 사랑과 상실, 외로움과 고통이 스며든 삶을 마주하며 자신의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이마치는 저주가 깃든 듯한 그 집을 포기할 수 없다. 어려서 실종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수십 년째 지켜온 집이기 때문이다. 최근 재건축을 마친 그 집은 그녀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고급 아파트이기도 하다.

이마치는 거액을 들여서라도 일상을 되찾으려 뇌의학 클리닉을 찾아가고, 그녀의 기억을 기반으로 맞춤 제작된 VR을 활용한 치료를 받는다. VR을 제작하기 위해 클리닉을 수차례 방문한 끝에 마지막 미팅을 앞둔 그날, 이마치는 60세가 되었고 몸무게가 전날과 달라져버렸으며 클리닉에서는 미팅이 취소되는 등 어딘가 낯선 하루를 보낸다. 아파트로 돌아온 이마치는 연이어 악몽 같은 일을 맞닥뜨린다. 엘리베이터가 전부 고장나 꼭대기 층인 60층에 있는 자신의 집까지 계단으로 걸어올라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때 그녀는 삶의 큰 가르침을 하나 얻었다. 불가능하리만치 먼 길을 갈 때는 절대로 목표 지점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앞을 봐서도, 위를 봐서도 안 된다. 시선은 아래로, 발끝만 보면서 걷는 것이다. (…) 한없이 느리게 올라 마침내 30층을 통과했을 때 어떤 여자아이가 계단을 뛰어내려가면서 그녀의 어깨를 살짝 쳤다. 교복을 입은 긴 머리의 여자애였다. 이마치는 이상한 기시감에 여자애를 흘긋 바라보다가, 다시 계단을 올랐다. 숨이 가빠 고통스러운 느낌이 밀려왔다가 또 밀려가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60층에 도착했을 때, 다리에는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p.72~73)

가상현실 속에서 이마치는 아파트의 각 층을 오르내리며 자신의 과거를 하나씩 마주했다. 갓 태어난 자신, 어린 시절 학대당하던 자신, 젊은 시절 배우로서 빛나던 순간의 자신, 사랑하는 이를 잃고 절망했던 자신까지, 그녀는 과거의 모든 모습과 마주한다. 그들과 대화하며,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연민을 느끼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나고, 그녀는 그때 놓쳤던 따뜻한 순간들을 더욱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상처로 얼룩졌던 이마치는 점차 삶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고 있었다. 기억을 지켜내는 것만이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해피엔딩임을 깨닫게 해준다.

이마치는 점차 아파트의 구조를 파악해나간다. 한 층을 한 세대가 차지하고, 현관문을 열면 그 안에는 층수에 해당하는 나이의 이마치가 당시 거주했던 집에 살고 있다. 아들을 잃고 비통에 빠진 이마치, 커리어를 포기하고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던 이마치, 갓 데뷔해 천부적인 연기 능력을 인정받던 이마치, 모친에게 학대당하던 이마치, 그리고 갓 태어난 이마치······. 현재의 이마치는 과거의 이마치들을 만나 그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음을 꺼내놓는다. 또한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했던 자녀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증오스러웠던 어머니에게 복수하기도 하면서, 이마치는 전에 없던 충만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마치 자신조차 모르고 있던 과거의 비극적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마치의 전 생애가 담긴 세트장은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이마치가 되찾아가는 과거는 이마치의 기억과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녀 곁의 누군가가 이마치의 삶을 거짓으로 꾸미기도 하고, 때로는 이마치가 스스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왜곡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이라 여기곤 하는 기나긴 기억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삶이라는 것에 실체가 있기는 할까. 정한아는 삶이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매 순간을 채우는 행위와 감정과 고통 그 자체로만 감각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 순간순간의 고유한 경험이 합쳐져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닌 단 한 명의 인간을 완성한다고. 하지만 어떤 순간도 현재성을 잃고 빛바랜 후에는 더이상 삶을 휘두르지 못한다고. 그러니 과거에 더는 얽매이지 말라고. 현재의 강렬한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다보면 우리는 완성될 거라고. 그렇게 정한아가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려 건네는 말 앞에서 삶의 무게를 짊어진 우리의 어깨는 한결 가뿐해진다. 

“그냥 놔버려요. 당신이 가진 모든 기억. 당신이 인생이라고 붙들고 있는 것들. 별 대단치 않은 실패들, 성공들, 전부 다요.”(p.228)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인위적으로 기억을 되살리려 했던 이마치의 노력은 헛된 꿈이다. 더욱이 현재 우리 인간이 노력해 얻은 과학 지식의 한계가 아직 명백한데도 자신의 심리적 갈등이나 선택한 기억만 되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神)이 인간에게 내린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것까지는 인간으로서는 뛰어넘지 못하는 현실을 깨닫는 것일 뿐이라고 소설은 보여주려 한 것 아닐까. 저자 정한아는 작품 마지막 〈작가의 말〉에 단초가 될 만한 말을 남기고 있다. 

"킬리만자로에 오른 적이 있다. 스물다섯 살에 떠난 탄자니아 여행에서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단화만 신고 그 산에 올랐다. 수년간 체력을 단련하고, 전문 장비를 갖춰 등반에 도전한 사람들 틈에서 나는 어처구니없는 최약체였다. 다들 나를 가엾게 여겨 옷을 빌려주고, 먹을 것을 나눠주고, 낙오되지 않나 틈틈이 돌아봐주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아주 높은 곳에 오를 때는 발끝만 바라보고 걸어야 한다는 것도. 정상에 닿았을 때 발밑에 펼쳐진 풍경은 흡사 은총 같았다. 발톱 네 개가 빠졌는데, 고통을 느낄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이번 소설을 쓰면서 그때 생각을 자주 했다. 쓰고 지우고를 밥 먹듯 했는데, 그 모든 과정이 정말 녹록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끝내 소설을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당신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저 설산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거라고. 살아갈수록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여기 일곱번째 책을 보탠다. 대단치 않은 소설이라고 해도 완성하고 보면 언제나 큰 기쁨이 있다. 발톱 열 개가 다 빠져도 좋을 만큼. 살면서 그러한 기쁨을 누리는 것에 숨죽여 감사하고 싶다."(p.285~286)


저자 : 정한아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나 건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대산대학문학상을, 2007년 장편소설 『달의 바다』로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건국대 국문과 재학 중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한 그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작업실에 머물려 직장인과 똑같이 출퇴근 시간을 정해 놓고 글을 쓴다고 한다.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 『애니』, 『술과 바닐라』, 장편소설 『달의 바다』, 『리틀 시카고』, 『친밀한 이방인』 등이 있다.

그녀의 작품은 장르적인 요소를 반영하거나 실험적인 시도를 하기보다 전통적인 서사에 충실한 편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최근 젊은 작가들이 주로 가지고 있는 판타지나

SF 등의 상상력을 동원한다기 보다는 현실적인 소재 속에서 순진무구하고 명랑한 감수성과 산뜻한 문체를 통해 오히려 신비감을 자아내게한다. 문학동네작가상, 김용익소설문학상, 한무숙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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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 - 윤동주 전 시집과 반 고흐 그림 138점
윤동주 글,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스타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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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독자가 윤동주와 반 고흐의 콜라보 시화집을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의 기억을 좀 더 정확히 더듬어본다면 고흐의 아몬드나무 그림의 책 표지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그 책도 윤동주와 고흐의 시화집 형식을 띠었다. 그 책 표지에 선택된 아몬드꽃은 독자로서는 처음 본 것이라 기억에 더 남았던 것 같다. 우리가 간식용으로 먹는 게 그 아몬드나무의 열매이다. 반 고흐가 아몬드 나무를 즐겨 그렸다는 것도 나중에 책을 통해서 알았다. 아몬드는 땅콩처럼 생긴 편도나무 열매다. 왜 고흐가 아몬드나무와 꽃을 좋아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조카에게 선물로 준 그림이 아몬드나무를 그린 작품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추위에 잘 견디거나 혹은 자손 번성을 위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라는 표제어를 가진 이 책은 우리의 광복80주년이자 윤동주 시인이 서거한 지 8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특별 제작판이다. 올해 2025년이다. 국내외에서 윤동주 시인에 대한 추모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전한다. 특히 윤동주가 다녔던 일본의 도시샤대학에서는 ‘죽은 사람에 대한 명예학위 증정’이라는 예외 규정까지 만들어 학장단 회의에서 열여섯 분 전원 찬성으로 서거일인 2월 16일에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독자가 신경을 쓰지는 못했지만 이 서평을 쓴 날 기준으로 이미 행사는 끝났으리라). 고하라 가쓰히로 도시샤대학 총장은 “우리는 자유를 탄압하는 군부에서 윤동주를 지켜내지 못한 분함이 있다. 명예박사 학위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윤동주 시인은 80주년이 아니더라도 이미 한국, 일본, 중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의 수많은 단체에서 추모하는 세계적 시인이 되었다. 따라서 날이 갈수록 인기를 더해가는 윤동주 시인의 추모 열기는 올해인 2025년에 최고에 달할 것이다.

그림에서 자화상은 자기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말한다. 시인 윤동주는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시로 남겼다. 이 시는 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재학 때 쓴 시로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의 현실 속에서 부끄럽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처 보듯, 우물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통해 자아성찰의 상징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특히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독자의 기억으로는 생애 10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유명한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은 병원에서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책을 통해 들은 바 있다. 고흐는 걱정하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보다는 초상화가 내 상태를 더 잘 보여줄 거라고 믿는다."며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의 자화상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이에 굴복하지 않고 창작에 대한 열정이 그의 눈빛에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별'에 대한 갈망도 두 예술가의 영혼을 교차하게 만든다.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라는 절창을 남겼다. 고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나를 꿈꾸게 한다. 나는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 갈 수는 없는 것일까.”라고 쓴 별에 대한 글에서 두 사람이 닮아있는 것을 너무도 생생히 느끼게 한다.

이 시화집을 보면서 독자는 두 예술가의 모습을 그려본다. 시공간이 다르지만 저변에 흐르는 감성과 예술혼은 순수하고 맑다. 우리 민족 최대의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일제강점기는 윤동주의 출생과 서거와 겹쳐 있다. 당시 한국인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고 나라 없는 엘리트 지식인으로서의 부끄러움, 참담함을 넘어 참회록으로 점철돼 있다. 

일제 강점기 시집은 정음사에서 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년 초판, 1955년 증보판, 1979년 증보판 그리고 윤동주 탄생 100주년기념으로 전 작품이 담긴 스타북스의 2017년 출간된 『윤동주 전 시집』으로 나뉜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이에 따르면 윤동주의 시집은 그가 죽고 3년 뒤 1948년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윤동주 시집으로는 최초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는 윤동주가 후배인 정병욱에게 맡긴 19편과 릿교대학에서 친구인 강처중에게 편지와 함께 보낸 5편과 그 외 7편을 더 찾아 총 31편이 실려 출간 된 시집이다. 그 후 1955년 정음사에서 윤동주 서거 10주년을 기념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증보판이 나왔다. 증보판에는 초판본에 더해 시와 산문 62편이 추가되어 총 93편이 실렸다. 추가된 시와 산문은 1948년 12월 윤동주의 여동생 윤혜원이 서울로 남하하면서 고향집에 있던 오빠의 모든 원고와 즐겨보던 책 등 유품을 가지고 와서 공개된 작품들이다.(당시 윤혜원은 감시가 심해 사진 앨범은 가져오지 못했다. 잘못하면 감시원에 발각되어 소중한 원고까지 빼앗길까 봐 앨범은 나중에 찾을 계획으로 친척집에 보관해 둔 채로 왔는데 사정이 생겨 찾지 못했다. 윤혜원은 두고두고 이를 아쉬워하며 가슴 아파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79년 정음사의 마지막 증보판에는 윤혜원이 용정에서 가져온 시들과 새로 발견된 윤동주의 작품 중에서 그동안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수록을 보류했던 23편이 추가되어 116편이 되었다. 정음사가 없어지고 2017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미완성이거나 원고에서 삭제 표시한 시를 포함해 기존 윤동주 시집에 실리지 않은 작품 8편을 더해 124편 전 작품을 수록한 『윤동주 전 시집』이 탄생했다.

이번에 출간된 『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은 영혼과 정서가 가장 닮은 두 별이 시대를 넘어 한 공간에서 만나 감동을 주는 가장 아름다운 콜라보 에디션의 시화전 북이다. 따라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위로와 함께 격조 높은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정서가 닮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명작 중의 명작 138편을 시와 가장 잘 어울리게 디자인하여, 보는 즐거움과 함께 독자들의 영혼에도 별이 반짝일 것이다.

반 고흐는 얼마 전 3월 16일 끝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대표작 70여점이 전시됐다. 반 고흐 전시회는 우리나라에서 익숙하다. 그만큼 우리의 명화 애호가들에게 인기 있는 화가이고 작품이다. 짧은 생애, 그것도 빈곤과, 거의 정신적 이상 증상을 보이는 가운데 불태운 예술혼이 살아 있는 작품이어서 더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이번 전시는 반 고흐 전시답게 뜨거운 열기 속에 108일간 열렸다. 고흐는 살아생전에 그림이 팔리지 않아 고독과 빈곤 속에서 살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작품성이 인정돼 현재는 전 세계인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로 우뚝 서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작품은 천문학적 가치를 기록하며 경매장에서 팔렸다고 해서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2007년 '불멸의 화가 반 고흐', 2012년 '반 고흐 in 파리' 전시 이후 12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고흐 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책 『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에도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은 거의 모두가 실려 있다. 고흐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 영혼과 정서가 너무 닮은 윤동주와의 콜라보를 이룬 시화집이다. 두 천재의 시와 그림이 만나 시화전을 펼치는 내용으로 시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시가 된다. 이 책에는 윤동주의 전 작품 124편과 반 고흐의 그림 138편을 담았다. 두 사람의 작품 속에 담긴 별, 자화상, 고향, 해바라기, 그리움, 부끄러움, 그리고 희망과 자아성찰의 영혼은 너무 닮아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의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이 시화집에 실린 한 편, 한 점 감상하면서 두 사람이 너무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2장 〈흰 그림자〉, 3장 〈밤〉, 4장 〈팔복〉, 5장 〈산울림〉, 6장 〈식권〉, 7장 〈산문〉, 8장 〈나중에 발굴된 시〉 등이다. 각 장은 제목 앞에 '#' 표시를 한 것은 시나리오 장면처럼 시각화를 암시하는 듯해 편집의 묘를 보여주는 사례로 보인다. 〈프롤로그〉에는 윤동주의 시 「서시」와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바람」이 나란히 실려 완벽한 하모니를 보여준다. 함께 놓고 읽고 보고 감상하면 독자는 마치 파리의 밤 어딘가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쓴 윤동주의 싯구가 당장이라도 읊조릴 수 있을 것 같다.

고흐가 남프랑스 생레미의 「생폴 정신병원」을 그린 그림과 윤동주의 「병원」이 나란히 놓여 있다. 독자로서는 부끄럽게도 윤동주의 시에 「병원」이라는 제목의 시를 처음 알았다. 아를에서 귀를 자르는 사건 이후 반 고흐는 1889년 5월 3일 생레미의 생폴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곳에 입원해 있던 1년 동안 고흐는 자주 심각한 발작을 일으켰고, 발작이 멈추었을 때에는 또다시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1889년 가을과 겨울에 반 고흐는 생레미 정신병원의 실내와 정원을 그릴 수 있었는데, 이때 고흐에게 그림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존재를 지탱해 주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이었다고 후세 평자(評者)들은 말한다.

그림 앞쪽으로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옆에 남자가 한 명 있다. 뒤쪽으로는 병원 건물의 전경이 보이고, 병원 입구의 문앞에도 한 사람이 서 있다. 소나무와 땅의 거친 붓터치가 두드러져 보인다. 그림 왼쪽에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는 이미 단순한 나무가 아니고, 뒤편의 건물들과 그 위의 하늘도 눈에 보이는 대로의 사물이 아니다. 나무와 하늘, 집, 인간, 땅 등 모든 것들은 그림 속에서 하나의 움직임 속으로 끌려들어가면서 생명의 가장 원초적인 힘을 뿜어내고 있다. 


살구나무 그늘로 얼골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려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어 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어 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포기를 따 가슴에 꼽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그 자리에 누워본다.(P.30) -윤동주 「병원」 전문(全文)

시와 그림의 절묘한 조화는 분명 각기 다른 시공간의 사람들이지만 영혼이 통했을까. 이 시화집에 나온 시와 그림은 마치 시인과 화가가 한 시대, 같은 곳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시화집을 내기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하모니를 이룬다. 그것이 몇 편, 몇몇 그림에서 발견되더라도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이 책의 시와 그림은 마치 시인과 화가가 같은 사람이거나 동시대 같은 곳에서 사는 사람인 것처럼 조화롭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는 이미 우리에게는 유명한 시다. 일본 땅(남의 나라) 어느 하숙집 밤비가 속살거리며 내리는 다다미 방(육첩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자신의 소회를 적은 시로서 윤동주 문학의 특징 중 하나인 '참회'의 느낌을 담고 있다. 옆의 그림은 고흐가 아를에서 자신(「작업하러 가는 화가」)를 그려 자신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내주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각자의 영혼에는 이처럼 애절한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는 사실에 독자로서는 다시 한 번 놀란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은 남의 나라,//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한 줄 시를 적어 볼까,//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대학 노-트를 끼고/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들/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시 : 윤동주(尹東柱)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그림 : 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영혼의 화가’로 불리는 네덜란드 인상파 화가. 불꽃같은 열정과 격렬한 필치로 눈부신 색채를 표현했으며, 서양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반트 북쪽의 작은 마을에서 엄격한 칼뱅파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869년에서 1875년까지는 미술품 매매점의 점원으로 일했고, 1877년에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실패한 후 전업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881년 12월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1890년 7월 29일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모두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리고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다. 37년이라는 생애 동안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늘 고독했던 고흐는 그의 후원자이자 동반자였던 네 살 터울의 동생 테오와 1872년 8월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668통이나 되고 그 밖에 어머니, 여동생 윌, 동료 화가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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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의 뿌리를 찾아서, 민주주의가 경제다
이병훈 지음 / 굿모닝미디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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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 서울. 갑자기 TV에서 청천벽력의 말이 들려왔다.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TV 방송 계엄령 선포는 낯설었지만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전쟁이 났나 보다"라는 불안감을 억누른 채 알 만한 지인들에게 정확한 소식을 알아내기 위해 전화기에 매달렸다. 방송을 켜 놓은 채다. 늘 북한으로부터의 전쟁 위협에 시달려온 국민들은 '진짜 전쟁?' 하며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눈으로는 연신 TV를 주시했다. 

아까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는 TV 뉴스에서는 전쟁은커녕 어떤 조짐도 없었다. 그저 일상의 저녁이었다. 국가 비상 사태로 계엄령을 내릴 이유는 분명 없었다. 전쟁이 아니라면 이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질 낌새는 전혀 없었다. 아닌 밤중에 웬 계엄령? 지피는 데가 전혀 없었기에 어리둥절하고 불안한 마음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차분하게 가족들과 대화를 도란도란 나누거나, 아니면 혼자만의 시간을 조용히 즐기는 시민들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자정이 못된 시간이었기에 12월 유흥가나 식당 밀집지역엔 송년회 등으로 불야성이겠지만 일반 가정은 모두 잘 준비를 서두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시민들이 진위를 파악하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금 진정된 후 TV에서 다시 계엄령 선포 순간이 리플레이되어 나왔다. 이번에는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히 듣겠다고 귀를 쫑긋 집중했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유에는 북한의 남침 이야기가 없었다. 폭동 이야기도 없었다. TV는 선포문에는 적힌 '종북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한다고 격한 어투로 적시하고 있었다. 전쟁이 아니란 점에 우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숨을 돌린 후 "그렇다면 왜 계엄을 선포했을지" 궁금해졌다. TV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TV는 곧 이어 국회의사당으로 비추었다. 비상계엄 선포에 국회의원들과 시민들이 국회 진입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시민들과 섞인 전투복 차림의 경찰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그날의 비상계엄은 시작됐다. 비상계엄이란 단어를 들은 지 40년이 훌쩍 넘은 터라 아직도 실감하지 못한 시민들이 많았다.

TV 화면은 국회 본청 안과 밖을 번갈아 비추고 있었다. 국회 앞 광경을 TV가 방영하고 있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는 모습도 보였다.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가려는데 막는 경찰이 어딨느냐?는 어느 국회의원의 호통에 머쓱한 경찰의 모습도 TV에 잡혔다. 진입하려는 사람과 제지하는 공권력은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헬리콥터에서 내리는 군인들이 의사당 본청 건물로 진입하려는 듯 본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본청을 사수하던 국회 내 직원과 의원 보좌관 및 비서관들과의 몸싸움에 밀려 진입에 실패하자 건물 옆으로 돌던 계엄군은 급기야 유리창을 깨고 진입을 시도했다. 

국회의사당 본회의실에는 저지선을 뚫고 들어온 국회의원 상당수가 계엄 해제 의결을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며 삼삼오로 모인 채 계엄 해제 의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로 야당 의원들이지만 몇몇 여당 의원들도 보였다. 의결 정족수가 차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의사당 본회의실 쪽으로 뛰어들어가다 일단의 저지력에 맞섰다. 물리력으로 제지선을 뚫으려던 게엄군은 세 부족을 느꼈는지 다른 출입문을 찾는 듯 뒤로 물러났다. 막으려던 사람들은 소화기 분말을 분사하기도 했다. 국회는 자정을 넘긴 1시를 막 넘어설 무렵 계엄 해제를 의결하고 국회의장이 해제할 것을 선포했다. 즉시 해제 의결안은 대통령실로 보냈다.

그날의 기억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것은 이날 계엄 선포부터, 1호 포고령, 국회 의사당 해제 의결, 선거관리위원회 침탈 모습, 선관위 직원들에게 고압적 자세를 보이는 계엄군의 모습이 생중계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이 계엄 해제를 발표한 것은 새벽 4시 반쯤으로 기억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잤을 것이다. 계엄군의 진입 시도와 철수 등이 생중계되었다. 이후 국회는 여야 별로 조사단을 구성하고 계엄 선포 자초지종에 특별위원회 조사에 들어갔다. 많은 증인들이 불려나왔다. 대부분 계엄군의 장성들이었고, 실무 영관급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국회 특별조사단의 분위기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계엄 선포를 감싸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의 계엄 이유를 담화가 발표됐다. 짤막한 내용에 사과는 없었다. "밤에 국민들을 놀라게 한 점은 미안하다"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계엄령 선포 이유를 강변했다. 위헌 ·위법의 계엄령이 아니라 정당한 계엄령 선포였고, 야당의 정도를 넘치는 탄핵소추, 중요 정책 예산안 삭감 일괄 통과 등 거대 야당이 국정 운영을 방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국회를 통해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으로 보았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이는 계엄령 당시를 생중계로 지켜보았던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그렇다고 협상이나 협의도 하지 않고 군대를 동원해 물리력으로 야당 의원의 운영을 마비시키고, 일부 극렬(?) 의원들은 체포하려 했다니. 민주 국가에서 해서는 안 될, 그래서 헌법에도 적시한 위헌 행위가 분명한데도 계엄령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 고도의 통치 수단으로 말하고 있었다. 야당 의원들은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고 했다. 증거로 TV 중계한 내용과 포고령을 내밀었다. 뿐만 아니라 국회 운영을 침탈했고 국회의원을 체포하려 했으며, 헌번 기관인 선관위도 침탈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또 선관위는 부정선거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점검했으며 국회의원 체포는 지시한 적 없다고 발뺌했다. 

이건 무슨 소린가? 여당 의원들은 야당의 몽니와 국정 운영을 못하게 할 정도로 탄핵소추를 남발해 계엄의 원인을 야당 의원들의 횡포로 계엄령을 내렸다니. 이건 위헌·불법 행위임을 자인하는 것 아닌가. 협치의 대상인 야당을 종북 반국가 집단이라고 규정하고 정부 전복의 시도로 매도하다니. 아무리 앞뒤를 꿰맞춰도 잘 들어맞지 않는 궤변의 연속이다. 당연히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다. 이젠 탄핵 인용에 절차가 잘 이뤄지리라고 서서히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변수가 발생했다. 11차례의 변론기일을 마칠 때까지 민심을 거스리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가 발생했다. 구속 재판을 받언 윤석열 대통령에게 구속 취소 결정이 중앙지법에서 내려졌다. 즉시 항소권이 있는 검찰은 항고하지 않았고, 일주일 내에 항고하는 권한마저 포기했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다시 되살아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재대로 된 재판마저 기대하기 어려운 게 아닌가. 허술한 기소는 곧바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도 나오는 것 아닌가? 우려와 불안의 눈들이 일제히 윤석열 구치소 석방 모습에 쏠렸다.

국민들의 집회가 지지자 측과 탄핵 찬성 측으로 갈려 연일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극우가 주도하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도가 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의 막말뿐 아니라 여당 국회의원들이 "헌재를 때려부수자"는 있을 수 없는 지지 연설을 거듭하고 있다. 또 헌법재판관의 이름을 거론하며 비속어 등으로 인격 살인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들이 집회 현장에서 쏟아내는 막말은 언론에서도 스크린 처리를 하느라 애쓸 정도로 지나치다. 지난 구속영장 발부 때 서부지법으로 몰려간 폭도들의 난동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젠 그 분노는 헌재로 향하고 있다. 헌재의 평의가 예전에 비해 늦어지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는 대다수 국민들은 다시 혼란 속으로 몰리고 있다. 이번 주에는 평결을 끝낼 것이란 의견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지만 어떤 평결이든 상대적으로 판단하는 말만 난무할 뿐 국민들은 혼란스러운 만큼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특히 전례없는 경제 추락에 외교적 저평가, 많은 악재에 시달릴 게 뻔한데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일반 국민들의 생각일 터다. 어떻게 쌓아올린 경제이고, 국방이고, 외교인가. 폐허 위에서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에 매진한 결과다. 70년 세월을 말이다. 

이 책 『내란의 뿌리를 찾아서, 민주주의가 경제다』는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내란의 뿌리, 내란 숙주 세력을 파헤친다. ‘더 단단한 민주주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다. 책의 저자 이병훈은 윤석열 정부 2년 8개월, 수십 년 동안 쌓아 올린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 직전이라고 지적한다. 탄핵심판 변론기일이 끝나고 최종 평결만 남은 상태인데 내란은 형식적으로 종식된 듯 보이지만 내란 숙주 세력이 자행하고 있는 역사쿠데타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현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한 채 식민사관에 절어 있는 역사쿠데타 세력은 일제 강점기를 한국 근대화의 필수 과정으로 미화하고, 일제 통치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논리로 역사 왜곡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일본에 대한 저자세 외교를 꼬집는 대목이다. 이를 이끄는 세력은 바로 뉴라이트 세력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경제 부문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재임 중 경제 성장률은 1% 미만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부자 감세 정책을 밀어붙여 나라 살림은 빚더미에 앉았다는 것이다. 국가 채무는 1000조 원을 넘어섰다.(이 대목은 윤석열 정부 재임 중 쌓인 부채 전부는 아니라 누적 적자인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빚내서 나라 살림 막으려다 공적 기금을 마이너스 통장처럼 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부분은 독자로서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물가 상승률에 대해서는 '살인적'이란 표현에 동의한다. 독자는 그 시기를 지금 어렵게 넘기고 있는 소시민이기 때문이다. 이후 경제 문제, 특히 국민 경제 부분은 서민층에서 절감하고 있다. 실질임금이 줄어들었는데 최저임금은 찔끔 올랐다.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각 가정의 부채도 심각하게 늘었다.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출산율도 바닥 수준이다. 청년들은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 한국의 성장 엔진이 꺼져가고 있는가?

저자는 이 모든 원인이 정권 내내 ‘(가짜) 자유민주주의’라는 깡통을 소란스럽게 두드리며 철 지난 이념으로 이념전쟁을 일삼은 세력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12·3 내란의 뿌리를 캐내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산다. 민주주의가 경제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가 멸종을 직감하는 공룡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들의 목에 스스로 혁신자의 방울을 달아야 할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현재 국제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때임을 강조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사실 정치체제의 하나로 생겨나고 기능했지만 경제 부분에서도 서민들의 부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 그래야 나라가 강해지고 민주주의 목적에 가깝게 다가선다. 공산주의 원조이자 모국이었던 소련이 무너진 것은 민주주의와의 경제 제도 차이에서다. 노예 신분이나 다름없는 노동자·농민들에게 땅과 일자리를 공평하게 나눠주고 똑같이 분배해서 먹고 사는 사회라는 선전은 그럴 듯하다. 이 선전은 어쩌면 지금도 먹혀 들어가고 있을 정도로 솔깃한 이야기들 아닌가. 그러나 공산주의가 100년을 넘지 못하고 붕괴된 이유는 정치적 잘못이 아니라 경제 제도로서의 허점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 성장의 촉진제다. 민주주의가 단단할수록 통치의 투명성은 높아지고 부패가 설 자리는 좁아진다. ‘더 단단한 민주주의’가 작동할 때 정치가 투명해지고 기업 환경도 투명해진다.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 가능성도 높아진다. 보수 정권은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 타령을 해왔고 지금도 여전하다. 도대체 누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정한단 말인가. 매국적 극우 권력이 민주주의에 ‘자유’를 덧칠한다. 정권 안보를 위한 명분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념 상품으로 잘 포장되어 반대 세력 탄압용으로 유통되고 정당화된다. 극우 지지층은 그런 상품에 열광하며 수호해야 한다고 외친다. 반대 진영을 향해선 증오와 혐오의 애국심을 키운다. 반대 진영에겐 반국가세력이란 낙인 딱지가 붙는다. 이때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다. 한국 정치사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유보하고, 정적을 제거하고, 인권을 박탈하는 형태로 진행돼왔다. 극우사대주의 세력이 권력 중독에 빠질 때 내란은 불가피하다. ‘자유’를 입버릇처럼 말하던 자들이 ‘자유’를 가두는 일이 발생한다.

새로 등장하는 정치 지도자는 국민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고뇌하고 또 고뇌해야 할 것이다. 우리 헌법은 사회적 기본권인 ‘사회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명시적이다. 그래서 역대 보수 정권은 사회권을 국민에게 베푸는 시혜 정도로 여겼다. 이제는 우리 국민이 사회권을 직접 요구하고 요구한 만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더 많은 민주주의’일 것이다. 저자의 논리에 일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은 아마 독자가 처음부터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다. 대체적으로 독자에게 민주주의와 경제 부분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저자 : 이병훈


대학 시절에 독문학, 철학, 사회과학을 공부했으며, 20대 후반 《미제국주의 침략사》를 써냈다. 시민단체 ‘환경운동연합’이 발간하는 생태환경잡지 《함께 사는 길》의 기자로 활동한 후, 줄곧 인문사회과학 분야 출판사에서 편집장을 지내며 백여 종의 책을 기획 출간했다. 2017~2022년 네이버(주)로부터 <네이버 지식백과사전> 콘텐츠 제작을 의뢰받아 ‘세계 대학 사전’, ‘세계 기업 사전’ 부문의 공식 필자로 활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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