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만난 말들 - 프랑스어가 깨우는 생의 순간과 떨림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어는 예술에 어울리고, 독어는 학술에 알맞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독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 제 2외국어를 선택할 때 들었던 말이다. 이 말은 선배들로부터 들은 말로서 막상 제 2외국어 선택을 하고 난 뒤에는 "~에 좋다"는 말보다 무척 "힘들었다"는 기억만 남았다. 불어는 배우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독자가 선택한 독일어는 선생님이 첫 시간부터 독어의 자랑보다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셨다. "독어는 딱딱하고 발음도 거칠며 외워야 할 것도 무척 많다. "영어는 웃고 들어가서 울고 나온다. 그러나 독어는 울고 들어가서 웃고 나올 수 있다."고 겁을 주셨다. 그러면서 겁 먹은 우리들에게 "여러분이 스스로 선택한 만큼 열심히만 해준다면 대입 외국어 선택시 독어를 선택해도 될 정도의 수준이 될 것"이라며 독어에 대한 자랑을 대신했다. 그리고 첫 시간부터 영어의 정관사 "the"는 하나뿐이지만(발음은 두 가지), 독어의 정관사는 성·수·격에 따라 변화를 하기 때문에 무려 16개라며 겁을 주었다. 이어 말없이 칠판에 칸을 만들어 16개의 변화를 적고, 모두 외워올 것을 지시했다. 다음 시간에 외울 것을 시켜 못 외운 학생들은 뺨과 회초리 맞을 준비를 하라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분명해 밝히셨다.(그때는 선생님의 학생들을 때리는 행위는 누구도 항의하지 못할 정도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교육 독려 방법이었다) 학생들은 누구든지 회초리가 무서워서라도 외워야 했다.

이뿐만 아니다. 영어의 부정관사 역시 두 개에 불과하지만 독어는 아홉 개로 변화한다며 따라 적으라고 칠판에 나열해 하나씩 짚어가며 발음을 하시고 우리에게는 따라 발음하기를 주문하셨다. 무척 엄하다고 소문난 선생님이다. 수업 시간 동안 학생에게 체벌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선배들도 조심하라고 주의를 줄 정도였다. 당시 독일어는 세계의 말 중에 가장 예외가 없는 언어로 학술적 사용에 적합하다는 선생님 말씀도 졸업하고 나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다행히 독자는 외우는 것을 잘 해서인지, 아니면 언어 감각이 좋아서인지 선생님이 주문한 것은 잘 외워서 매를 맞은 적은 없지만 못 외운 친구들이 체벌을 받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기억이 씁쓸하게 남아 있다. 가르칠 때 엄하게 하지 않으면 중간에 독일어를 포기하기 때문이라는 당시 독일어 선생님의 조언은 가르치는 데 진심이셨다는 점을 나중에 알게 됐다.

 


 

이 책 『파리에서 만난 말들』은 저자 목수정이 파리 유학 가서 배우고 경험한, 프랑스 언어의 성격과 특별한 단어가 왜 프랑스어에 끼어 있는지 나름대로 경험하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어에 대한 느낌을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하면서 특별한 단어들이 왜 프랑스에서 생겼는지를 설명해준다. 어원이 필요할 때는 지배를 받아온 로마 제국부터 라틴어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라틴어가 어원인 단어들이 많다는 점도 말한다. 불어뿐이겠는가? 독어, 영어, 심지어는 그리스어도 라틴어와 섞이며 변화를 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을 때 프랑스 지역은 〈갈리아〉라는 이름의 국가였다고 한다. 저자는 어원뿐만 아니라 우리 말과 사회에서의 발전과 차이를 보이는 점도 짚어낸다. 사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 국가를 형성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산이나 강 등 자연적인 지형에 의해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같은 언어를 사용했을 테니까. 그리고 두 나라의 중간 지역에서는 중간의 억양과, 더러는 뜻도 알 수 없는 다른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투리 사용의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다. 또 나라의 힘이 커지고 전쟁 등을 거치면 사용 언어가 바뀌는 중간 지역은 양쪽 말을 다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기도 한다.

프랑스 지역은 특혜의 경관과 풍요롭고 비옥한 토양으로 우선 식량 확보에 가장 유리했다. 그만큼 노리는 이웃 국가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 제국을 제외하고는 2차 세계대전까지는 어느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신들의 고유한 말과 풍속, 정치적 유산도 함께 번영해 부강한 나라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할 최적의 조건의 땅을 선조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다.

저자는 유학 간 때부터 20년간 파리지앵으로 살며 한국과 프랑스의 경계에서 글을 써왔다. 그간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파리의 생활 좌파들』 등에서 프랑스 사회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불행히 독자는 저자의 책을 처음 접하지만 이미 저자는 자유·평등·박애의 가치에 닻을 내리고 한국과 다른 논리로 굴러가는 프랑스 사회와 일상은 거울처럼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왔다고 한다.

 

 

저자가 이번에는 자신의 마음을 두드렸던 프랑스어 34개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을 펴낸 것이다. 『파리에서 만난 말들』이란 표제어로 프랑스 언어에 대한 경험과 사유가 또렷이 드러나는 명쾌한 글이라 독자가 읽기에도 무척 쉽게 읽히도록 매력적인 글솜씨가 드러난다. 저자가 왜 ‘말’에 주목했을까?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말은 각각의 공동체가 경험과 성찰을 통해 빚어낸 열매”로, 그 씨 속에는 공동체의 응집된 지혜와 경험, 철학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일상을 풍요롭게 살아가게 하는 태도부터 ‘혁명의 나라’를 이끌어온 끈끈한 공동체 정신까지, 프랑스어 34개가 펼치는 ‘말들의 풍경’을 통해 프랑스의 심층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자신이 겪은 프랑스 사람들의 정서 밑바닥을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은 언어에서 찾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 사실도 체득한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프랑스어 34개는 현재 프랑스 사회에서 새로 생긴 말도 있고, 멀리는 로마 제국 때부터로 거슬러 올라가 어원을 찾아내야 할 정도로 오래된 말도 있다. 그러나 로마 제국 때부터 써온 말이라 하더라도 다른 지역과 다르게 프랑스이기에 이런 말이 생겨났다고 생각되는 프랑스 언어의 독특함과 그 언어를 사용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감정, 정서,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말들이다. 이들 말은 오늘날 프랑스를 설명하기에 적절하다고 판단된 단어나 문구다. doucement(두스망: 부드럽게), envie(앙비: 욕망), scrupule(스크뤼퓔: 세심함), solidarite(솔리다리테: 연대), le doute(르 두트: 의심), apero(아페로: 식전주)……. 등을 열거한 단어들을 뜻과 발음 등을 들어보면 저자의 말에 설득력이 더해진다. 저자의 프랑스말에 대한 사랑과 사유를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인 저자는 프랑스 말에 깃든 삶과 정신, 문화와 미묘한 뉘앙스를 섬세히 살피며 한국 사회에서의 한국어를 대하는 우리들의 성찰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노력을 더하고 있어, 한국인인 독자로서도 읽다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인상 깊게 이 책을 읽었다.

 


 

한 나라의 현재 삶의 모습이나 그들의 감정을 읽어내는 데에는 현재 사용하는 일상 용어에서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저자는 첫 머리에 프랑스에서 일상 생활에서 여러 의미로 쓰이는 〈doucement(두스망: 부드럽게)〉를 소개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Bonjour(봉주르: 안녕하세요), Pardon(빠흐동: 실례합니다), apero(아페로: 식전주)와 함께 이 단어를 거친 현실에 베이거나 부딪히지 않고 유연하게 시대를 건너게 해주는 말로 꼽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뛰지 않는다. 조깅을 할 때를 제외하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필생의 과업인 양, 그들은 웬만해선 우아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법이 없다. 그들의 변치 않는 보폭은 세상의 중심은 우리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당신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고 웅변하는 듯하다."고 저자의 부드러운 감상을 드러낸다. 이 단어를 왜 처음에 내세웠는지 바로 다음 단락의 글을 읽으면 충분히 이해된다. "한국에서 서른 해를 살아내고 파리에 온 나는 모든 순간, 달렸다. 시간을 최대한 '쪼개 써야 한다'고 배워온 조국에서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전속력'으로 그 시간을 살아내려 했다. 나라가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재앙에 빠져 있는 동안 홀로 먼 나라에 유배 중이던 청년의 시간 속에 여유로움이 다리를 뻗을 자리는 없었다. (중략) 최단 시일 내에 프랑스어를 내 세포 속에 충만하게 채워 넣은 후, 얻고자 하는 지식에 다다르고 싶은 다급함은 내 몸을 언제나 최대치로 다그치고 있었다."(p.16)

일제 강점기와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 위에서 희망이라고는 풀 한 포기 찾기보다 어려운 이 땅에서 어찌어찌 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어우러져 얼마큼 살게 될 무렵 지나치게 빠르게 성장만 거듭한 탓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빨리빨리' 문화가 몸에 배어들었다.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남보다 뒤처진 것을 영원히 만회하지 못할 것 같은 조바심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그렇게 이룬 경제 성장과 군부독재로부터 벗어날 무렵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만 듣던, 구체적으로 뭐하는지도 모르는 IMF의 빚을 얻어 부채를 갚아야 할 정도로 나라의 창고는 텅 비어버렸다. 그런 문화에 길들여진 저자가 파리에 유학 가 하루빨리 프랑스어를 익히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오죽하면 유학을 유배라고 생각했을까 싶다. doucement(두스망)이란 단어를 가장 앞세운 이유일 것 같다. 우린 저자의 경험과, 앞세운 단어 'doucement' 속에 부드러움과 달콤한이 복합적으로 들어간 뜻에 담긴 말에서 프랑스인들의 낙천적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지식을 넘어 지혜를 읽어낼 수 있다.

 


 

저자가 프랑스말에서 느낌 감성은 우린 그의 글을 통해 읽고 이해하려 하고 있다. 그가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린 이 책의 글 전편에서 읽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 쓰이는 단어들 속에서도 저자가 프랑스말의 달콤함과 부드러움, 아름다움을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 삶의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 명석한 지혜를 자랑하기 위해 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프랑스처럼 여유와 낙천적 성격의 사람들임은 충분히 자랑할 만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이 책을 쓰고 싶었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말과 프랑스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서 어쩌면 우리 삶을 읽어내는 데서 이 책을 쓰고 싶었을 것이라는 독자의 판단도 그의 '나라 사랑'이 읽히는 대목에서 비롯된다. apero(아페로: 식전주)란 단어도 이 책의 목록에 들어가 있다.

이 단어는 우리 예전의 모습, 없으면 없는 대로 이웃과 나누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는 단어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이 단어는 서민들의 문화에서 써온 언어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오히려 생활에 여유가 있는 귀족들의 문화라고 저자는 밝힌다. 저자는 '아페로'가 귀족 계급에서 즐기던 문화이지만 일반 국민들이 함께 즐기는 것은 1970년대 이후, 즉 68혁명 이후 프랑스인들의 아페로를 즐기는 시간이 두드러지게 늘어났다는 사실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2022년에는 〈아페로 사전〉까지 발간됐다. 이는 아페로가 일반 국민의 문화로 완전히 정착되었다는 사실에 저자가 이 단어를 소개하는 취지가 배어 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1부 〈달콤한 인생을 주문하는 말〉, 2부 〈생각을 조각하는 말〉, 3부 〈풍요로운 공동체를 견인하는 말〉로 구성되었다. 1부 〈달콤한 인생을 주문하는 말〉에서는 ‘견디는’ 생존(survivre, 쉬르비브르)을 넘어 ‘누리는’ 삶(vivre, 살다)을 추구하는 프랑스인들의 일상을 프랑스어 14개를 통해 들여다본다. 2부 〈생각을 조각하는 말〉에서는 프랑스어 11개를 다루면서 ‘공화국’을 완성한 프랑스적 가치와,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정치적 차이에 대해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먼저 〈laicite(라이시테: 정교분리 원칙)-공화국을 완성한 네 번째 가치〉 장에서는 오늘날 프랑스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인 ‘정교분리 원칙’을 탐구한다. 1905년의 ‘정교분리법’이 의회에서 어떻게 통과됐는지, 그것이 얼마나 혁명적인 ‘사건’이었는지 알려주면서 정교분리 원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3부 〈풍요로운 공동체를 견인하는 말〉에서는 프랑스어 9개를 통해 모두의 권리를 위해 연대하고 뭉치는 프랑스의 끈끈한 공동체성을 살펴본다. 먼저 〈greve(그레브: 파업)-풍요를 분배하기 위한 시간〉 장에서는 ‘생존에서 삶’으로 프랑스인들을 도약하게 해준 단어인 ‘파업’의 역사를 세밀히 살핀다. 이를 통해 ‘그레브’가 얼마나 프랑스에서 중요한 말이자 가치이며, 왜 프랑스 공동체를 논할 때 첫째에 놓여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레브만큼 중요한 말인 solidarite(솔리다리테: 연대)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프랑스 정부나 지자체가 ‘평등’에 방점을 두며 만들어내는 모든 정책에는 ‘솔리다리테’란 말이 들어간다. 이는 정책에서 시혜적 뉘앙스가 아닌, 그것을 받는 사람도 주체로서 함께하는 것이란 의미를 강화시킨다. 이처럼 ‘연대’란 단어는 모두 평등하게, 굴곡 없이 모이게 해주는 말로서 공동체를 향한 프랑스 사회의 시선이 어떤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말에 담긴 프랑스 정신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파리에서 만난 말들』은 각박해져만 가는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함께 전한다. 그리고 오늘날 프랑스에서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위협받고 있는지를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생생히 증언한다.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사문화된 이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지 종교에 대한 원칙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과 신념에 어떻게 연결되는지까지 고찰한다.

 

저자 : 목수정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화 영역에서 일을 하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8대학 대학원에서 공연예술학 석사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 문화정책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08년 이후, 줄곧 파리에 거주하며 한국 사회 속 약자와 소수의 권리에 관해, 올바른 정치를 위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매체에서 글로써 전하고 있다. 뚜렷한 주관으로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목수정은 상대와 마주할 때면 누구보다 따듯하고 부드럽다. 삼시 세 끼를 제 손으로 챙기면서 밥하기의 수고로움과 그 안에 들어앉은 세상 작동을 배움 삼아 자신만의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기 때문이다. 『밥상의 말』은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제 2의 터전으로 살아나가는 저자가 두 밥상을 넘나들며 마주한 음식에 깃들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는 한국에서 대학까지의 교육과 사회생활을 경험한 저자가 프랑스에서 프랑스 남자와 함께 낳은 아이를 키우고 학교에 보내며 경험하고 관찰한 바를 기록한 이야기다. 어느새 중학교 2학년이 된 딸 칼리의 학교와 가정에서의 성장 과정을 차곡차곡 정리한 성장 기록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파리의 생활 좌파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야성의 사랑학』, 『월경독서』, 『아삭아삭 문화학교』, 『당신에게, 파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문화는 정치다』,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자발적 복종』, 『10대를 위한 빨간책』, 『부와 가난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세계인권선언』, 『초경부터 당당하자: 나, 오늘 생리해!』, 『에코 사이드』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 - 김진명 장편소설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전쟁 지옥으로 끌려들어갔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전쟁이 아닌 특별 군사작전 개시 명령을 선언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준비된 답변일 뿐이었다.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비나치화, 돈바스 지역의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전쟁을 개시한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분명히 밝혔는데도 이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도 내세웠다. 이후 2024년 임기가 만료되는 푸틴이 종신집권을 위한 치적을 쌓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병합하여 러시아의 지정학적 입지를 안정시킬 목적으로 개시한 전쟁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나토의 동진과 그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이 충돌한 것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2023년 5월 9일 푸틴 대통령이 전승절 연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식적으로 특별 군사 작전이 아닌 "전쟁"이라고 불렀다.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의 와중에서 서로 물러서지 않은 채 소규모 혹은 대규모 로켓포 공격과 진퇴를 거듭하는 10월 20일 현재 전쟁은 600일을 넘어섰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지원(무기 등)에 의존하며 버티던 우크라이나 군이 러시아 점령지로 진격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도 나왔다. 영국 BBC는 이날 현재 미국 전쟁연구소(ISW)의 발표를 인용, 우크라이나군이 남부 헤르손주(州)에서 드니프로 강을 건너 동쪽 러시아 점령지로 최대 4km 진격했다고 전했다. ISW는 러시아 소식통을 통해 “우크라이나 해군 보병 여단 2개 중대 규모로 추정되는 부대가 이달 17~18일에 드니프로 강을 건너 동쪽 제방에서 공격을 감행했다”며 “10월 18일에 공개된 위치 정보 영상에는 우크라이나군이 피샤니프카 북쪽을 넘어 포이마로 진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같은 보도에도 불구하고 양국간 전투는 지난 600일간 늘 있어온 터라 쉽사리 끝나지 않을 전쟁이라는 군사 전문가들의 예측은 여전히 세계 모든 나라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 점령지인 가자지구에서 우려할 만한 대규모 포격과 보복 공격이 잇따르면서 확전의 가능성마저 예고되고 있어 그야말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또다시 전쟁의 포화 속으로 빨려들어갈 위험성마저 내비치고 있다.

 


 

이 책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옛 소련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푸틴의 의도적이고 정치적 술수에 의해 시작된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전쟁을 멈추는 방법은 푸틴 정권의 붕괴를 자초하고 있다는 시각에서 집필된 소설이다. 저자 김진명은 소설 집필 이유를 “나는 전 세계인이 힘을 합쳐 푸틴의 핵 협박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신념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저자의 의도를 강력하게 내보였다.

이 책은 소설 작품이지만 전쟁은 사전에 막든지, 불법 침략일 경우 개전 초기에 침략자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해 제거해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에 따른 것으로 보아도 될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소설의 시작은 갑자기 선전포고도 없이 침략을 개시한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쪽의 도시 부차의 분위기부터 시작된다. 미하일은 생일을 맞아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러시아군의 칼에 찔려 의식을 잃고, 아내와 딸을 잃는다. 미하일은 러시아군이 시체를 파묻어놓은 구덩이들을 돌아다니며 아내와 딸의 시신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슬픔을 못 이기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조차 실패한 미하일은 어느 날 마을에서 자취를 감춰버린다.

침략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러시아의 핵 공격에 대비해 만들어진 극비 오퍼레이션 ‘네버어게인’이 작동되기 시작한다.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이 작전 팀의 일원인 스토니는 러시아인 여성 구호 활동가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푸틴과의 대결에 온 신경을 쏟고 있던 바이든은 러시아 여성을 미국이 구출한다는 것의 정치적 효과를 노려 구출 명령을 내린다. 스토니는 작전에 도움을 줄 사람을 한 명 떠올린다. 미국 해군사관학교 시절 동기 케빈 한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에티오피아 아둘랄라에서 주민들을 도우며 살고 있던 케빈 한은 기상천외한 계책으로 스토니를 돕고, 스토니의 보고를 받은 ‘네버어게인’은 케빈 한을 영입한다.

 

 

부차에서 사라졌던 미하일은 의외에 곳에서 다시 등장한다. 가족을 두고 혼자 살아남는 비극을 겪은 그는 한시바삐 죽어 가족들 곁으로 가고자 바흐무트 공방전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운다. 하지만 죽기는커녕 전쟁영웅이 되어버린 그는 연이은 전투 끝에 세 발의 총상을 입고 통합병원으로 강제 후송된다.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그는 병원에 숨겨져있는 치료용 마약을 훔치려 하나 번번이 실패한다. 그때 그의 눈앞에 한 환자가 나타나 마약 훔치는 것을 돕는다. 그는 바로 케빈 한이다. 두 사람은 그 뒤로도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쌓는다. 케빈은 미하일에게 전쟁 통에 사리사욕을 챙기는 친러 무기 암거래상이 갖고 있는 전설의 다이아몬드를 훔쳐 그 돈으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돕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작전을 위해 우크라이나인 범죄자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한편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전쟁 속에 서방 국가들을 상대로 내건 그 어떤 휴전 조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고뇌하기 시작한다. 이대로 물러나며 휴전을 한다면 성난 러시아 국민은 겁쟁이에게 완벽히 속았다고 생각할 테고, 자신의 권력도 종말을 맞을 것이다. 푸틴은 전쟁에 실패한 지도자들이 맞는 비참한 최후를 떠올리며 절치부심한다.

푸틴은 비밀리에 만난 시진핑이 휴전을 종용하던 겉모습과 달리 은밀히 핵을 쓰도록 부추기는 것을 듣고 마음이 동하기 시작한다. 실은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핵을 써 미국의 월등한 재래식 전력을 무력화시킬 방법이 필요하다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푸틴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한다. 미국 잠수함사령부에서는 다량의 핵탄두를 탑재한 전략핵잠수함 로드아일랜드를 흑해에 잠항시킨다. 이 작전의 핵심은 러시아 해군의 앞마당인 흑해에 침투한 로드아일랜드의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것만으로 응징 효과를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로드아일랜드는 러시아 측으로부터 추적을 받던 중 암초와 충돌하고 만다.

 


 

저자 김진명은 매일 전념을 다하여 『고구려』 집필에 매진해 왔다. 그가, 돌연 새로 쓴 작품을 가지고 갑자기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갑자기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이번에 내놓은 작품 표제어도 심상찮다.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이다. 저자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다룬 밀리언셀러 데뷔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충격적인 명성황후 시해의 실체를 그린 『황태자비 납치사건』, 한국인을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린 『하늘이여 땅이여』, 미천왕으로부터 광개토대왕에 이르는 뜨거운 역사를 다룬 김진명 필생의 역작 『고구려』 시리즈까지 굵직한 대형 작품들을 써 왔다. 저자는 그의 작품 속에서 사실을 바탕으로 완벽한 증거나 논리적인 설명으로 설득력을 얻는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TV의 시사평론을 담당하는 역할로 독자들에게 근황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방송가에서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은 지 시간이 흐르자 『고구려』 집필을 위해 칩거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주로 한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베스트셀러들을 발표해온 저자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외면할 수 없어서일까. 인류를 향해 평화와 자유에 관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읽힌다.

소설에서는 러시아군에게 아내와 딸을 희생당한 우크라이나 군인 ‘미하일’과 미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던 중 미국의 극비 작전 팀 네버어게인에 영입된 한국계 미국인 ‘케빈 한’이 주요 인물이다. 전쟁 이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던 두 사람이 단 하나의 미스터리한 사건에 얽히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인류의 현 상황에 대한 비유라고 이해된다. 푸틴의 핵 협박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과연 푸틴의 말처럼 핵의 사용까지 전쟁이 갈 것인가. 푸틴은 개전 초 국제 여론의 비난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이 계속 추진된다면 핵 공격도 가능하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현 전쟁의 추세로 볼 때는 도저히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에 뛰어든 두 사람, 미하일과 케빈 한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소설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과연 최악의 사태로 치닫게 될까.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원만한 해결책을 찾아낼까. 아니면 전쟁 책임자인 푸틴의 실패와 몰락을 막을 내릴까. 독자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전쟁의 해법을 알고 싶다면 당장 이 책을 펼쳐라고 먼저 읽은 독자로서 이 책을 권한다. 정치와 국제 외교, 전쟁과 인간의 비극, 개인의 욕심과 인류 공동의 의지의 상관 관계, 그리고 공동 번영의 길에 장애물로 놓여 있는 것은? 이 책에는 인류의 당면 문제와 최선의 해법이 담겨 있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문구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고 묵직하다. "스 노브임 고돔!"

 

“모르겠소? 모스크바 시민들 중 복수를 원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오. 제발 더 이상의 전쟁은 없었으면 하는 게 모두의 간절한 꿈이야. 모스크바 시민들은 오히려 몇십 배 큰 비극을 당한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소. 그게 러시아요. 그게 러시아 정신이란 말이야. 당신은 위대한 러시아라는 환상으로 국민을 마비시키고 자신의 더러운 탐욕만 채운 추악한 장사꾼이고.”(p.395)

 

저자 : 김진명(金辰明)

 

첫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발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시대의 첨예한 미스터리들을 통쾌하게 해결해주고, 일본·중국의 한반도 역사 왜곡을 치밀하게 지적하는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이다. 그의 소설들이 왜 하나같이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는지, 그의 작품을 읽어본 이들은 알고 있다. 뚜렷한 문제의식을 지닌 작가, 김진명. 그의 작품으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베스트셀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해, 철저한 고증으로 대한민국 국호 韓의 유래를 밝힌 『천년의금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어떤 역사 논리로 이루어졌는가를 명확히 규명한 국보급대작 『몽유도원』, 충격적인 명성황후 시해의 실체를 그린 『황태자비 납치사건』, 한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 『1026』, 한국인을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린 밀리언셀러 『하늘이여 땅이여』, 경이로운 수의 비밀을 다룬 『최후의 경전』,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 『카지노』, 북한 지도자 죽음의 미스터리를 담아낸 문제작 『신의 죽음』,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을 예견한 『삼성 컨스피러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둘러싼 한·미·중의 갈등을 다룬 『싸드』, 한자 속에 숨겨진 우리 역사와 치열한 정치적 메커니즘을 담은 『글자전쟁』 등이 있다. 대하역사소설 『고구려』를 집필 중이다. 현재 미천왕편, 고국원왕편, 소수림왕편, 고국양왕편,총 7권이 발간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자 츠나구 2 - 인연이 이어주는 만남과 마음 사자 츠나구 2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오정화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 작품 『사자 츠나구 2』에 나오는 '츠나구'는 일본말을 모른 독자로서는 사람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츠나구는 한자 '사자(使者)'를 발음한 일본말로서, 한자를 보면 뜻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전 우리나라 인기 TV 프로그램 〈전설의 고향〉에 자주 등장하던 '저승사자'의 '사자'와 비슷한 뜻이다. 우리는 저승에서 염라대왕의 명령을 받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데리고 가는 심부름꾼이었다. 저승사자는 '저승(사람이 죽은 후 가는 세계)'에서 온 죽음의 사신(使臣)이다. 이 책에서는 죽은 자와 산 자를 만나게 해줄 수 있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한다. 일본에서 의미는 정확하게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지만 독자와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승사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산 자의 의뢰를 받아 죽은 자와 교섭하고 면회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츠나구의 일이다. 책에서 표현하기를 "아는 사람만 아는 존재"라고 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우리처럼 널리 쓰이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츠나구'의 어원이나 유래에 대해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민간에서 흘러다니는 우리의 '전설' 같은 존재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저자 츠지무라 미즈키는 전작 『사자 츠나구 1』을 출간해 일본 독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받으며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저자는 이미 2004년 데뷔작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로 제31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했고, 2011년 전작으로 제32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범죄를 테마로 한 소설집 『열쇠 없는 꿈을 꾸다』로 제147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18년 『거울 속 외딴 성』으로 제15회 서점대상 1위가 되며 장르를 넘어 일본 문학을 이끄는 중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 표제어에 나오는 ‘츠나구’는 ‘연결하다, 잇다’라는 뜻을 가진 일본말이라고 한다. 저자 츠지무라 미즈키는 단 한 번 산 자와 죽은 자를 만나게 해 주는 사자(使者)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바로 '츠나구'를 통해 일본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 소설은 ‘단 한 번이라도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런 간절한 마음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츠나구를 찾아가는 것이다. 간단하지만 엄격한 규칙도 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평생 보름달(만월)이 뜨는 단 하룻밤뿐이다. 죽은 자도 마찬가지로 단 한 번의 기회만 있다. 이로 인해 산 자의 요구가 있더라도 죽은 자는 만남을 거절할 수 있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가장 절실한 만남을 선택해야만 하도록 한 저자의 구상이다. 2011년에 출간된 『사자 츠나구 1』과 마찬가지로 다섯 편의 연작소설을 통해 네 번의 만남과 츠나구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독자들은 이 미스터리 판타지를 읽으며 가슴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진한 감동과 긴 여운을 얻을 수 있다.

저자의 다양한 작품 중에서도 2011년에 출간된 『사자 츠나구 1』은 유난히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독특한 스토리와 독창적 캐릭터 창조로 일약 일본의 중견 작가로 발돋움했고, 흥미로운 스토리로 일본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책의 츠나구로 나오는 이 책에 등장하는 오랜 세월 츠나구로 지낸 다정한 할머니로부터 그 역할을 물려받은 고등학생 시부야 아유미. 그 소녀의 눈을 통해 죽은 자와의 재회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과 하룻밤의 만남으로 발생한 파문과 같은 드라마를 그려낸 아름다운 연작 단편집이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사자 츠나구 2』는 『사자 츠나구 1』에 이은 대망의 후속작이다.

 


 

『사자 츠나구 2』의 작품 속 시간은 전작으로부터 7년 후의 이야기이며, 아유미는 작은 장난감 회사에 다니는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츠나구로서의 경험도 쌓아나가며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을 텐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좀처럼 아유미가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츠나구”라고 말하는 건방지고 어딘가 통달한 듯한 아역 배우 같은 이 여자아이는 도대체 누구일까? 작품 속 화자(話者)인 가미야 유즈루의 눈에 비친 '츠나구' 소녀는 어린 소녀로 보기에는 위화감이 들 정도로 묘사되고 있다. 배우인 유즈루의 약속 장소엔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가 등장한다. 아래쪽에 주름 장식이 달린 분홍색의 작은 가방을 맨 모습이 딱 그 나이의 아이답게 꾸민 모습으로 보인다. "내 팬이구나"라고 단정지으려는 유즈루가 "자, 갈까요?"라는 말에 아역 배우의 대사를 듣는 듯한 위화감이 들면서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

저자는 그 어린 소녀의 모습을 책에 묘사했다. "어른스러운 외모에 주눅 든 기색이 전혀 없는 또랑또랑하고 새까만 눈동자, 조그마한 얼굴, 날카로운 턱선과 얇은 눈썹. 갈색빛이 살짝 도는 보드라운 머릿결을 양 갈래로 나눠 리본으로 야무지게 묶고, 중앙으로 갈라진 앞머리 사이로는 동그란 이마가 두드러져 보였다."(p.8)

화자인 유즈루가 배우 초년병 시절 선배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우연히 들었던 '츠나구'의 존재를 떠올린다. 그가 이 단어를 화제에 올렸던 때는 동료들과 가진 공연 뒤풀이에서다. 선배가 말해준 '츠나구'의 무심코 말하다가 동료 여배우가 한 충고를 들었다. 그 이후로 츠나구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을 그만두었지만 설마 자신이 몇 년 후 소문을 더듬어가며 진심으로 츠나구를 찾는 상황이 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유즈루는 동료 여배우 미사를 사랑하고 그와 연애를 꿈꾼다. 그러나 미사는 냉정하기만 하고 배우의 일에 열심이다.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미사의 단짝이던 친구를 잃음으로써 미사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자신과의 연애를 꿈꾸던 유즈루는 언젠가 들었던 츠바구 이야기를 떠올리고 미사와 그 친구의 만남을 주선하려고 하지만 대신 만나는 것을 허락되지 않고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는 소녀 츠나구에게 한 번도 보고 싶지 않은 아버지를 선택한다. 결국 아버지와 재회하지만 세상을 떠난 그리운 사람과의 만남을 갈망해 재회한다 해도 상황이나 세상에는 아무런 변화는 없다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이해된다. ‘인연’을 강조하는 저자다. 첫 번째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는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이 떠오른다.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그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는 게 ‘사자 츠나구’이다. 할머니로부터 츠나구의 역할을 물려받은 시부야 아유미는 나무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며, 때때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연작 장편 소설로 1, 2편이 출간됐고 10건의 인연과 만남이 츠나구에 의해 이루어진다. 작품의 간격은 7년 후이지만 소설 속 배경은 수천 년에 이른다. 이를 연결하는 통로는 '츠나구'다. 츠나구는 원하는 사람에게 묻고 대상자가 원한다면 단 한 번 두 사람의 재회를 연결해 준다. 츠나구의 시간으로는 불과 7년이다. 삶의 세상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중요하지만 사후 세상은 시간이란 관념이 없다는 점도 독특한 구성으로 저자는 이뤄내고 있다. 『사자 츠나구 2』에서는 청년으로 성장한 아유미 앞에,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품은 의뢰인들이 나타난다. 「그 누구도 불행하지 않아」, 「고요함이 존재감을 드러내듯」, 「바다는 아무 일 없이 평온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것들」, 「다시 벚꽃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등이다.

어린 시절 헤어져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와 만나기로 결심한 젊은 배우.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에게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은퇴한 교사. 사고로 어린 딸을 잃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어머니. 그리운 사람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나이 지긋한 요리사 등이 등장한다. 한 명의 의뢰인이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평생에 단 한 번, 오직 한 명으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망자가 면회를 거절하면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면회 장소는 이 세상과 저세상을 잇는 길목에 있다는 고급 호텔의 방 하나, 면회 날짜는 면회 시간이 가장 긴 보름달이 뜨는 밤이다. 죽은 자는 살아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가 동이 틀 무렵 사라진다. 재회를 마치고 이른 아침 로비로 내려오는 의뢰인은, 어딘가 개운해 보이기도 하고, 얼굴 전체가 눈물로 범벅이 되기도 한다.

 


 

그날 밤,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남겨진 사람에게 힘을 줄 것이다. 츠나구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며, 아유미도 성장하고 있다. 사랑이 찾아온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 결말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일본 전국시대 전쟁 참전을 금지하면서 마을의 안녕을 지킨 농민 지도자를 만나려는 사메카와 고헤이, 바다에 빠져 숨진 딸 메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시게타 쇼이치와 미사토 부부, 유방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딸 에이코를 그리워하는 오가사와라 도키코의 만남을 주선하는 '츠나구' 아유미가 등장한다. 아유미의 작품 거북이 장난감 을 만드어 준 도리노 공방의 대장 도리노는 지병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고, 도리노의 외동딸 나오는 공방을 잇게 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한 아버지의 마음이 궁금하다. 일본 사람들의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을 통해 이어지는 삶의 모습이 담긴 전형적인 일본 사람들로 내세울 만한 대표적 성격을 갖는 인물들이다. 이들을 서로 연결되게 엮어낸 저자의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츠나구는 사람의 죽음을 다루는 임무를 맡는다. 세상을 떠난 누군가와 만나고 싶다는 의뢰인의 상실감을 오직 한 번밖에 이룰 수 없는 재회를 중개한다. 아유미에게 츠나구를 맡기고 돌아가신 아야코 할머니, 점술가 아키야마 가문의 당찬 꼬마 당주 안나 등 아유미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눈길을 끌기도 한다. 소데오카 아야코는 하치야 시게루의 오랜 만남 요청을 거절하지만 아유미는 아야코와 하치야의 만남을 주선하는데 성공하고, 하치야는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과 같은 시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한다. 인연과 시간의 흐름, 그리고 삶과 죽음이 우리 일상의 변화에 깊이 관여하는 메시지가 작품 속에서 은은히 퍼져나와 독자들의 가슴속에 조금씩 쌓여간다.

 


 

저자 : 츠지무라 미즈키(つじむら みづき,ツジムラ 深月)

 

1980년 2월 29일생. 야마나시 현에서 태어나 치바 대학교 교육학부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쓴 소설이 호러 소설일 정도로 어릴 때부터 호러와 미스터리를 좋아했다. 2004년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로 제31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2011년 『츠나구』로 제32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받았고, 2012년에는 범죄를 테마로 한 소설집 『열쇠 없는 꿈을 꾸다』로 제147회 나오키상을 수상, 2018년 『거울 속 외딴 성』으로 제15회 서점대상 1위가 되며 장르를 넘어 일본 문학을 이끄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난임 부부와 열다섯 살 미혼모라는 두 가족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긴 여운을 남기는 『아침이 온다』는 일본에서 드라마와 영화로까지 제작되었고, 영화는 2020년 칸 영화제에 초청되는 환영을 받았다. 그 외 저서로는 『얼음고래』 『테두리 없는 거울』 『어쩌다 너랑 가족』 등이 있다.

 

역자 : 오정화

 

서강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일본문화학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외식기업 기획자로 근무하였으나 일본어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 퇴사 후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의 길을 걷고 있다.

역서로는 『수학소녀의 비밀노트: 고마워 적분』,『숫자로 배우는 초보 수학』,『억만장자의 엄청난 습관』,『푸드테크 혁명』,『알아두면 쓸모 있는 모양 잡학사전』,『게으른 뇌에 행동 스위치를 켜라』,『처음 읽는 맛의 세계사』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토록 재미있는 미술사 도슨트 : 모더니즘 회화편 - 14명의 예술가로 읽는 근대 미술의 흐름
박신영 지음 / 길벗 / 2023년 10월
평점 :
절판



 

거장들이 그린 그림의 값이 왜 수천 억원을 호가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림 한 장이 그 정도로 귀하고 값진가? 그림에 문외한인 독자가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 불과 3년 남짓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직장인인 독자는 재택 근무가 가능해 일주일에 한두 번만 회사에 나가고 나머지는 집에서 업무 처리를 했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하고 매일 하던 회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소통에는 확실히 불편했다. 그러나 적응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 달도 안 되어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낼 때가 많았다. 직장 생활 하는 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손에 잡기 시작했다. 어차피 집 밖으로 나가 활동하는 것은 당분간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시간 땜질용'의 독서가 시작됐다. 그러나 일단 책을 잡고 흥미를 느끼면서 예전 독서에 열중했던 때의 '독서 세포'가 살아난 듯 여러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책 값이 평균 1만5,000원으로 뛰어 있었다. 책을 손에서 놓았을 때 책 한 권은 1만 원이 안 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물가 상승률로 생각해도 그리 크게 오른 것은 아니었다. 10년이 훨씬 넘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때부터 책의 평균가는 굉장히 뛰기 시작했다. 3년 여가 지난 지금은 웬만한 1만8,000원 안팎인 책이 대부분이다.

서평을 쓰면서 책값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책값이 부담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지도 않으니 책값을 탓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말일 터. 책의 편집이나 지질이 굉장히 좋아졌다. 책값을 인상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이 아닐까 싶다. 이 책 『이토록 재미있는 미술사 도슨트 : 모더니즘 회화편』은 그 점에 비춰보면 그림에 대한 해설서다. 앞서 돈 타령만 했기에 책값이 비싸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책값이 뛰면 출판계로서도 그리 득될 게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이 책은 책값이 비교적 싸게 내용에 충실을 기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그림 감상을 위한 해설서이니 컬러 사진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출판물이 그림을 흑백으로 내기에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 책은 독자가 판단하기에 그림 감상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문외한도 모두 읽고 보고 즐길 수 있는 책이다.

 


 

그림을 출판물에 담아 컬러 그대로 보여주는 일은 그림 해설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이 취하고 있다. 어쩌면 거의 모든 책들이 흑백으로 인쇄해도 그림에 관한 책은 어려울 것이다. 특히 선을 중시하는 동양 미술에 비해 서양 미술은 '색의 예술'이라고 했다. 그림에 담겨 있는 내용보다 색의 사용, 표현 방법, 기법, 심지어 붓 터치까지 모두 상세히 나타나는 서양 미술의 특성상 컬러 인쇄본이 아니라면 소화하기 힘든 분야다. 이 책 역시 컬러판이다. 수많은 사진이지만 흑백으로 인쇄된 부분은 활자밖에 없다. 표제어에 붙은 대로 이 책은 서양 미술의 〈모더니즘 회화〉를 다루고 있다.

르네상스 이후의 그림을 일컫는다. 근대에 들어서기 전 화가들은 신 중심의 그림을 그렸다. 세상이 신의 세상이었기에 당연하다. 그러나 신의 세상이라는 중세는 종교 개혁과 함께 일대 전기를 맞는다. 인류 역사에서는 이를 문예부흥(르네상스)로 부른다. 르네상스 직후까지의 미술은 고전주의라고 칭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전주의란 신을 중심으로 한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고 맞춰졌다. 즉 기독교가 서양의 주력 종교로 들어선 것은 로마시대다. 기독교 초창기에 기독교를 박해했던 로마 제국은 300년이 지난 후 기독교를 공식 인정하고 로마 제국 역시 국교로 채택됐다. 이후 로마 제국 영향권에 있던 모든 나라들은 기독교도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기독교는 막강한 정치·외교·국제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의 경제 생활이나 국가간 전쟁에서도 최상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 교황청은 권력의 절정기를 맞이했다. 이슬람이 뒤늦게 생겨나 기독교를 위협할 정도의 종교 세력을 키우자 교황청은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중세 후기 200년이 넘는 기간 전쟁에 휩싸인다. 이때 그림들은 대부분 원근법도 없는 신의 세상을 그렸다. 그림이 필요한 곳은 큰 건축물이다. 일반 시민의 가정에서 그림을 걸 만한 장소가 따로 없는 한 그림을 걸 수도 없다. 더욱이 왕과 귀족들의 성이나 성당 등 큰 건축물이 아니고서는 그림에 대한 이해도 낮았기에 그림의 가치를 아예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문예부흥 직후까지 그려진 그림들은 중세의 그림 원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고 이를 '클래식', 즉 〈고전주의〉라고 후세 사가들이 이름 붙였다.

 

 

세계적인 명화들은 르네상스 이후부터 태어난다. 그전에는 있다해도 건축물에 직접 그린 것이 대부분이어서 사고 팔 개인 소장물이 아니었다. 문예부흥이 세계사적 의미에서나 인류사적 의미에서 큰 변곡점을 가져 왔다. 당연히 예술도, 예술가도 세상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시도한다. 신을 앞세운 세상이 '인간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보기에 아름답고 찬란하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간혹 어떤 그림들을 보면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그리기도 하고, 선을 향한 지극한 마음이 드러나는 그림도 있다. 예술가들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밥을 굶어가면서도 그림을 그린 사람은 그리 흔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화가들에게 가장 지원을 많이 해준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가가 유명하다. 이 가문은 피렌체 공국을 직접 다스리기도 했다. 메디치는 피렌체의 화가들을 중심으로 그림을 직접 주문했다. 이어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 근처의 거장들은 대거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모여든다. 먹고 사는 게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초대된 화가들은 대개 이름 난 화가는 메디치가의 초대를 받기 위해 꽤 열심히 이탈리아로 모이기도 하고 드나들기도 했다. 그들은 왕가나 영웅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사진이 없던 시절이어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모더니즘〉으로 불리는 새로운 사조가 들어서기 전까지의 화가들의 화풍을 〈고전주의〉라고 구분한다. 우리가 책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본 대부분의 명화는 고전주의 작품과 모더니즘 작품이 대부분이다. 특히 모더니즘 작품들은 나름대로 스토리를 담고 있다. 때문에 명화의 탄생도 그저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모더니즘 회화(근대 미술)의 작품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커다란 흐름과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저자 박신영은 말한다. 익히 알고 있는 유명 예술가이지만 그가 어떤 고민과 과정을 통해 이런 그림을 완성했는지, 이 작품이 미술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까지 알고 나면 그 속에 담긴 진짜 이야기와 가치를 알 수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이로 인해 그림 해설서이기도 하고, 독자들 입장에서는 그림 감상으로 풍성한 이야기를 듣고 즐길 수 있다.

 


 

역사 속 근대와 현대의 구분은 뒤에 사가들이 구분한 것이다. 대개 건축물의 변화, 그림, 문예, 음악 등 예술 분야에서 크게 차이를 보인다.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내용들이 차이가 있고, 그들이 보는 현실은 각 시대마다 다르다. 이를 사조(思潮)라고 한다. 사조란 한자 풀이 그대로다. '생각의 흐름'을 말한다. 철학이나 역사는 물론 우리 인간의 삶을 창작으로 연결한 미술 사조, 음악 사조, 문예 사조 등도 사조로 나뉘어 표현한다. 인류 역사 중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시대나 장소에서 그 시대와 장소에 공통되는 정신이 등장하여 문학과 예술이 영향을 받게 된다. 17세기 말 서유럽 사회를 기점으로 세계가 이런 주류를 탔다고 한다. 이 시기에 복고의식의 한 표현으로 나타난 문예활동이 〈고전주의〉로, 이후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실존주의〉로 이어져 갔다. 문예사조의 이야기가 그렇듯 철학이나 사상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역사의 발전 과정에 따라 대표적 단어들로 앞에 붙여 사용한다. 이를 테면 앞서 언급한 대로 〈고전주의〉는 물론 뒤를 잇는 〈모더니즘〉이란 말에 '근대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등이 모더니즘 계열이고 추상화로 옮겨가는 길목이다. 이후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초현실주의〉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 미술〉로 발전되어 간다. 거장들의 그림을 이 사조별로 나누는 것은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이고 역사나 철학, 사상과도 관련이 돼 있다. 뒤에 붙여진 이름이지 당시 화가들이 규정한 말은 아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미술 작품을 보는 즐거움은 한층 더한다. 명화와 예술가의 더 깊숙한 이야기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충실히 설명을 해주는 책이 이 책 『이토록 재미있는 미술사 도슨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최소한 문예부흥 이후 들어선 근대 미술의 흐름과 현대 미술로 넘어가는 과정, 그리고 추상화가 대세였던 현대 미술까지의 이해에 명확한 지식 '한 숟갈' 더 먹는 셈이다. 이 책이 명확한 해답이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예술가와 작품들을 미술사의 흐름에 따라 한 줄의 구슬처럼 꿰어주는 즐거움이 이 책에 녹아 있다는 점이 독자의 믿음에 부응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이면 어렵고 난해하게만 느껴지던 모더니즘 회화를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을 듣는 것처럼 따라가며 감상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저자에 따르면 모네와 고흐의 인상주의부터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까지 19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그려진 그림들을 미술사에서는 모더니즘 회화라고 한다. 이 시기의 시작점은 시민혁명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대혁명을 꼽는다. 역사나 정치적 변동은 물론 세상을 바꾼 일대 사건이다. 특히 사람들은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며 살아기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분위기는 당연히 미술에도 전이되었다. 예술가들도 각자 하고 싶은 미술을 마음껏 창작하다 보니 이런저런 다양한 형식이 등장했다. 이것을 모더니즘 회화의 다양성이라고 말한다. 결국 다양성은 백성에서 시민으로, 피지배계층에서 자유인으로 바뀐 근대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고전 회화가 권력자의 실내에서 곱게 키운 한 송이 꽃이라면, 모더니즘 회화는 넓은 들판에서 제멋대로 피어난 수많은 들꽃으로 저자는 표현한다.

책에서 나타나는 순서대로 보자면 고전주의-인상주의-표현주의-야수주의-입체주의-추상미술-추상표현주의 등으로 저자는 말하고 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까지 170년 안팎의 기간에 거침없이, 자유롭게, 자신을 그리고 삶의 모습을 담아냈다. 또 풍경에도 자신이 인식한 느낌대로 그리는 것에서 시작해 일반 사람들은 무엇을 그린 것인지도 모를 의식의 흐름까지 표현해냄으로써 예술, 특히 그림은 치열한 예술혼을 보여준다. 역동적인 역사의 변곡점마다 좋은 시절과 불행의 기간을 겪으며 그들의 예술은 한층 현대적으로 이동하는 힘의 원동력을 얻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룬 화가는 모두 14명에 불과하다. 서양 미술의 거장들로 표현되는 많은 화가들 중 사조의 흐름을 주도한 인물들만 뽑아 모더니즘 회화의 특징과 거장의 그림을 함께 표현하자니 모두 다루기에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변곡점마다 사조를 이끈 주역과 그들의 그림, 그리고 삶의 모습까지도 일일이 파악해 펴낸 이 한 권의 책에는 무엇보다 값진 거장들의 삶의 모습이 담겨 가치를 더해 준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미술 해설서답게 각 장을 '전시실'로 표현하고 있다. 모더니즘 회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5개 전시실은 각 전시실을 채운 화가들이 살았던 당시의 우리의 삶의 모습과 닮아 있는 그림들이 가득하고, 현재 진행 중인 현대 미술 전시실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1전시실 「고전의 끝, 새로운 시작」에는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의 작품들이 펼쳐져 있다. 이들 거장들은 〈고전주의〉의 틀을 깨고, 〈사실주의〉적 표현 기법과 그림의 대상들로 모더니즘의 출현을 알린 화가들이다. 사회에서 인간 삶의 모습을 통해 부조리와 부정, 돈과 권력의 추악함 등을 표현해냄으로써 인간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들이 많다. 이들 중 드가는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역동적으로 표현하며 무대 뒤의 '스폰서'들의 교활한 성매매를 고발하기도 한다.

2전시실 「인상주의의 세 갈림길」에선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의 작품과 화가들의 삶이 기록돼 있다. 특히 고흐의 그림은 시대를 앞서갔을까?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한 '영혼의 화가'로 불리는 고흐는 자신의 생전에 그림이 한 점, 그것도 아주 싼 값에 팔린 게 전부이다. 궁핍한 생활일 수밖에 없고,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연명하며 정신병원에서의 투병생활 중에도 그림에의 열정은 누구 못지 않아 독창적인 화풍을 보여준다. 독자가 가장 글의 맨 앞에 꺼낸 수천억 원의 그림은 바로 고흐의 그림 이야기다. 3전시실 「색과 형태의 붕괴」에는 에드바르트 뭉크(표현주의), 앙리 마티스(야수주의), 파블로 피카소(입체주의)가 등장한다. 이들의 미술사적 위치와 그림들은 읽고도 믿기 어려운 많은 이야기들이 남겨져 있다. 또 4전시실 「돋아난 새싹, 새로운 미술의 탄생」에는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이 등장한다. 각각 최초의 추상화, 초현실주의 화가로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다. 5전시실 「모더니즘 회화의 종말」에는 잭슨 플록과 바넷 뉴먼, 마크 로스코 등 3명의 화가가 등장한다.

저자는 에필로그 〈나가며〉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과 그들이 이룬 미술사적 업적의 공통점은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과정과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석가모니가 젊은 시절 병든 사람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출가했다. 속세로 내려가 사랑도 해보고, 쾌락도 느껴보고, 슬픔도 겪어보고, 고뇌도 해보며 삶에서 느끼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답을 구하려 했던 것처럼 예술가들도 '회화의 답'을 찾으려 했다는 것. 이로써 모더니즘 회화의 발전 과정은 수많은 질문에 대한 예술가들의 고민과 방황의 흔적이라는 것, 결국 답을 찾았지만 이마저 도달할 수 없는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전 세계의 질서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수많은 식민지들을 거느리며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유럽은 히틀러에 의해 잿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새롭게 재편할 또 다른 거인이 등장했으니, 바로 미국입니다.(p.280)

 

색면추상 예술가들은 미술사에서 지금까지 숭고를 표현해온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근원적인 숭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형태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p.303)

 

저자 : 박신영

 

인문 교양의 끝판왕, 미술을 사람들에게 쉽게 소개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며 2019년부터 팟캐스트 <후려치는 미술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브런치를 통해 꾸준히 미술사를 소개하는 글을 게재하고 있다. 미술을 제대로 즐기려면 반드시 ‘미술과 얽혀 있는 시대’를 같이 봐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미 문화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미술이 더 이상 저 멀리 있는 고급 교양이 아닌, 대중적인 인문 교양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 중이다.

팟캐스트 후려치는 미술사

브런치 @appiusview

인스타그램 easymisulsa

유튜브 후치미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록 - 평생을 수치심과 싸워온 우리의 이야기
로라 베이츠 지음, 황가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지나치게 여자를 탓한다. 성폭력범이 오히려 여성을 탓하기도 한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여성이 아니라 사회다.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한 여성 운동가의 진심 어린 주장, 여성으로서 정당한 요구가 이 책에 적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