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밑의 검은 제국 - 인간을 닮은 가장 작은 존재 개미에 관하여
동민수 지음 / 유노책주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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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개미를 연구한 책을 보면 독자는 '파브르'라는 프랑스의 곤충학자가 생각난다. 어렸을 때 여름방학 숙제에 '곤충 채집'이 들어 있었는데 잠자리, 나비 등을 잡아 개학하면서 과제물 박스를 들고 갔다. 그때는 아무도 개미를 곤충 채집에 이용하지는 않았다. 아마 너무 작아서 과제물로 제출하기는 부적절해서였을 것이다. 개학 첫날 선생님이 곤충 채집에 개미를 채집해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지적을 하자, 누군가 "선생님, 개미도 곤충이에요?" 하고 되물었다. 그때 선생님의 답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곤충학자 파브르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 주셨고, 개미가 곤충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생물의 분류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지만 우리가 알아듣기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파브르에 대한 선생님의 가르침은 독자 개인적으로는 충격이었다. 특히 개미 관찰과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는 이야기와 세계에서 처음으로 〈곤충기〉를 써서 위인이 되었다는 말씀이었다. 

누구나 어렸을 적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개미의 긴 행렬을 유심히 봤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독자는 간혹 개미집에 물을 부어 개미가 어떻게 되는지 보는 짓궂은 장난도 한 기억도 있다. 개미는 우리 주위에 흔히 존재했기 때문에 주목하거나 특별히 관찰할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상에 불편함을 주는 면만 부각될 뿐이고 조금은 '귀찮은 존재'였다. 특히 빵이나 먹을 것을 떨어뜨렸을 때 잠시 딴 일을 하고 우연히 내려다본 땅바닥에서 개미들이 몰려들어 이를 잘라 들고, 열 맞춰 집(개미 구명)으로 가던 모습은 대단해 보여서 신기한 듯 오랫동안 관찰했던 기억도 있긴 하다. 그리고 국어 시간에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를 읽었던 기억도 난다. 그때부터 개미는 부지런하고 베짱이는 게으르고 일하지 않으면서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는 상징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이 책 『내 발밑의 검은 제국』은 개미의 삶에 대한 개미 관찰 연구 기록이다. 저자 동민수는 개미 진화생물학 연구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개미의 삶의 방식이 인간과 놀랍도록 닮았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개미의 세계는매우 다채롭다. 이들을 단순히 작고, 까맣고, 모여 다니는 생명체로 정의하는 것은 이들의 놀랍도록 복잡한 생태와 다양한 생활 방식을 무시하는 일이다. 개미의 세계를 통해 우리는 진화, 적응, 협력의 힘을 다시 배운다.

'개미를 알수록 인간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개미』는 인간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베르베르는 20여 년간 개미를 관찰하고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미 사회와 인간 사회의 놀라운 유사성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개미들이 한 왕국을 건설하고, 다스리며, 성장시키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놀랍도록 닮았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 또한 개미 사회가 단순한 곤충의 이야기를 넘어 거울처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기 때문이라고 저자 동민수는 말한다. 개미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연구한 저자는 개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미를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신선한 통찰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밝힌다. 

저자의 관찰 연구에 따르면 개미들은 무리를 지어 살며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고 긴밀하게 연결된 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정작 우리는 개미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른다. 사실 개미는 너무 작아 일상 속에서 그들의 얼굴이나 사회 구조를 관찰할 기회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단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개미의 세계는 경이로움과 신비로 가득 차 있다. 발밑에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제국, 개미들의 사회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흥미로운 세계를 보여 준다. 

1cm도 되지 않는 개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사실 개미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생명체라고 저자는 개미 관찰로 발견한 많은 것들을 이 책에서 풀어내고 있다. 개미 사회는 철저한 역할 분담을 통해 모두가 특정 임무를 맡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개미는 먹이를 찾고 둥지를 유지하며, 병정개미는 집단을 보호하고, 여왕개미는 번식에 집중하는 등 명확한 역할이 주어진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는 마치 인간 사회에서 직업에 따라 다양한 역할이 나뉘어 사회가 유지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또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면모도 인간과 비슷하다. 위험이 닥쳤을 때 개미는 자신을 희생해 집단을 구하는데, 이는 마치 전쟁 중 자신의 생명을 던져 동료를 구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처음에는 잘 관찰되기 어렵지만 개미 사회도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다른 집단을 약탈하고, 여왕을 암살해 권력을 빼앗고, 다른 개미를 평생 노예로 부리기도 한다. 인간 사회처럼 개미 사회도 협력과 경쟁, 빛과 그림자가 함께 존재하는 다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연구 결과를 써내려 간다. 이 책 『내 발밑의 검은 제국』은 단순히 개미의 생태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닮은 개미의 세계를 가장 흥미로운 방식으로 소개한다. 열네 살 때부터 개미의 매력에 푹 빠진 저자는 일본 오키나와과학기술원, 독일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대학교, 프랑크푸르트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 등 여러 연구기관에서 개미를 연구하며 깊이 있는 지식을 쌓아 왔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지구를 움직이는 땅속 군주와의 만남-개미에 관한 오해와 진실〉, 2장 〈개미는 왜 멸종을 걱정하지 않을까?-진화하는 개미들〉, 3장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탄생한 거대 제국-체계를 만드는 개미들〉, 4장 〈승자는 상황도, 조건도 탓하지 않는다-전략적인 개미들〉, 5장 〈뭉치면 살 것이고 흩어지면 죽을 것이니-방어하는 개미들〉, 6장 〈속이고 배신하고 착취하는 약탈자들-권력을 쥔 개미들〉, 7장 〈결국 이타적인 존재만이 살아남는다-공생하는 개미들〉, 8장 〈광활한 지구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생존 전쟁-위협받는 개미, 위협하는 개미〉 등이다. 

1장에서는 부지런함의 상징인 개미가 사실은 워라밸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간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같이 우리가 몰랐던 개미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친다. 또한, 개미가 의학의 키맨이라는 이유부터 이들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이야기까지 개미 연구가 우리에게 안겨 줄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본다. 2장에서는 개미의 기원을 탐구하며, 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지구에 나타났는지를 다룬다. 수억 년 전 공룡이 지배하던 시절에도 이미 존재했던 개미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여러 차례 대멸종을 겪고도 살아남은 이들의 적응력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다시금 일깨운다.

3장은 손톱만 한 작은 개미들이 어떻게 거대한 군체를 이루고 제국을 세우듯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지를 다룬다. 생명이 싹트는 봄은 새로운 개미 왕국들이 탄생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때 여왕개미는 일명 ‘결혼비행’을 통해 짝짓기를 한 뒤, 날개를 떼어내고 일개미를 출산해 제국의 시작을 알린다. 개미들의 체계적인 조직력과 분업 체계를 보며, 마치 거대한 제국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듯한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4장에서는 사막의 열기 속에서 살아가는 사막개미, 군대식 생활을 하는 군대개미, 피를 빨아 생존하는 드라큘라개미 등 극한 환경에서도 생존하는 개미들의 치밀한 전략을 소개한다. 개미들의 놀라운 적응력은 변화무쌍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훈을 전해 준다. 5장은 개미들이 자신과 군체를 보호하기 위해 구사하는 다양한 전략들을 탐구한다. 강력한 턱과 독침은 물론, 위장술, 자폭 등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존 경쟁을 벌이는 개미들의 치열한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으니 놓치지 않길 바란다. 6장에서는 개미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룬다. 권력 다툼으로 여왕을 암살하거나, 적의 시체를 방패로 삼는 등 때로 인간 사회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들도 보인다. 이들의 생존 본능은 때로는 우리 사회의 이면과도 닮아 있다. 7장에서는 개미가 다른 생물과 어떻게 협력하고 공생하며 살아가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개미들은 여러 생물들과 협력하여 더 큰 생존 이점을 얻고, 유기적으로 얽힌 자연 속에서 공존하며 협력의 가치를 몸소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8장에서는 불청객들로 고통 받으면서도 다른 생물들에게 위협이 되는 개미의 양면성을 조명한다. 자연의 개미는 단순히 부지런하고 협력적인 생물 이상의 복잡한 존재로, 적응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며 자연의 생태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모든 상황, 모든 생명에게는 다양한 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되새겨 보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자연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조화를 이루는 개미들의 삶을 엿보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운영 방식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다. 작지만 강렬한 생명들이 만들어 내는 복잡한 세계를 탐험하며, 우리 역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개미들이 보여 주는 생존의 지혜를 통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협력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저자는 기대한다.

개인적으로 독자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와 비교하지 못할 만큼의 지능을 가진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단어인 줄 알았던 '집단 지성'이란 문구가 동물, 특히 작은 곤충에도 적용한 부분이다. ‘집단지성’이란 여러 사람이 의견을 공유하고, 각자의 능력을 쏟아 부으며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는 모습을 가리킨다. 이러한 집단지성의 중요성은 다양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다. 저자는 '집단 지성'이란 개념이 미국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가 개미 사회를 관찰하다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밝힌다. 개미는 매우 작은 곤충이지만, 수천에서 수백만 마리가 모이면 놀라운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개미는 물류 시스템, 인터넷 네트워크,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 여러 분야에서 참고할 정도로 길 찾기의 달인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들 문구와 관련된 부분을 이 책의 각 장에서 다루고 있기도 하다. 개미들은 먹이를 찾을 때 페로몬을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최적의 길을 찾아낸다. 개미가 먹이를 발견하면 페로몬을 분비해 다른 개미에게 길을 안내하고, 이를 따라가는 개미들이 더 많은 페로몬을 남겨 먹이로 향하는 최적의 경로가 만들어진다. 또한, 평균 44톤의 흙을 파내어 거대한 농장을 만들기도 한다. 철저한 역할 분담과 협력으로 복잡한 터널과 방을 만들고, 그 안에서 곰팡이를 재배해 먹이로 삼는다고 한다.

개미 사회가 인간 사회와 닮았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미는 효율적으로 먹이를 찾고, 집을 짓고,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을 세우며, 서로 간단한 신호를 주고받아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마치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서로 협력하며 인생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개미들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복잡한 사회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식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생존의 원칙을 몸소 실천하기에 우리에게도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 책은 지혜롭게 살아가는 개미들의 세계 속으로 우리를 안내해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저축해 부자가 되기 어려우니 가상화폐나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 개미 세계에도 목숨을 담보로 하여 다른 개미집을 통째로 노리는 이들이 있는데, 바로 기생성 개미들이다. 이들은 다른 개미에 기생하며 원래 잘 살고 있던 여왕개미를 죽이고 그 개미 군체의 여왕개미 행세를 하며 왕국을 통째로 접수한다. ‘살아남기’라는 하이 리턴을 위해 개미들은 목숨을 걸고 다른 개미집의 권력을 찬탈한다. 어떤 기생성 개미들은 다른 개미집을 공격해 그 개미집의 애벌레와 고치를 훔쳐와 자신들을 위해 대신 일해 줄 노예로 부린다. 우리의 시선으로 보기엔 참 잔혹하기 그지없다. 개미 사회를 들여다보면 놀랍고 때론 불편할 정도로 사람들의 어두웠던 역사와 닮아 보이기도 한다. 사회성 기생 개미들이 벌이는 잔혹한 드라마는 외딴 정글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희귀한 현상이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p.156) - 「노예 제도가 합법인 사회」 중에서


저자 : 동민수


개미 진화생물학 연구자. 중학생 때 개미의 매력에 푹 빠진 뒤로 북남미, 유럽,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개미의 생태를 관찰했다. 강원대학교에서 응용생물학을 전공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 P3(Prospective PhDPreview) 과정을 수료하고 일본 오키나와과학기술원(OIST) 생명복합다양성 실험실에서 연구인턴으로 근무했다. 현재 독일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대학교, 예나 계통진화박물관, 프랑크푸르트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에서 개미의 진화생물학을 공부하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연구소에서 곤충 CT를 분석하는 일도 하고 있다.

개미의 매력은 알면 알수록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점에 있다. 개미는 크기는 작지만 놀랍도록 복잡한 생태와 다양한 생활 방식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살며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난관에 부딪힐 때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농사와 목축을 하는 등 고도의 경제 활동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다투거나 속임수를 쓰고, 전쟁을 벌이거나 다른 개미를 노예로 부리기도 한다. 마치 인간 사회처럼 말이다. 『내 발밑의 검은 제국』 책에서는 개미 사회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내용을 선별해 소개하고자 했다. 개미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며, 그들의 행동과 생활 방식을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 사회와 닮은 이 작은 생명체의 놀라운 지혜를 통해 우리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저서로는 《부지런한 일꾼 개미》, 《한국개미사전》, 《한국개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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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진찰실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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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스피노자의 진찰실』은 표제어나 표지화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는 다른 소설 작품이다. 표지로 봐서는 철학 에세이나 행복한 일상을 다룬 에세이처럼 보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 소설 작품은 나가노현에서 지역 의료에 종사하는 현역 내과 의사인 작가인 나쓰카와 소스케의 최신작이다. 이 작품은 누계 340만 부가 팔린 밀리언셀러 시리즈의 작가이기도 한 저자가 출판사의 의뢰를 받은 때로부터 14년 만에 완성했다고 알려졌다. 현직 의사로서 바쁜 틈에 소설을 펴내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러나 '14년의 비밀'은 예상과는 다른 데 있다. 이번 소설은 오랜 기간 현역 의사로서 수많은 생명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깨달은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에 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소설에 대해 독자들에게 출간의 말을 전한다.

“의료가 소재입니다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수들의 갈급한 권력투쟁도 없고 의식이 돌아오라고 절규하며 심장마사지를 하는 긴박한 장면도 없습니다. 다만 기적이나 음모, 절규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제 능력이 허락하는 한 온 힘을 다해 썼습니다.”

이 작품은 출간 즉시 서점 관계자와 독자로부터 극찬 세례를 받았고 급기야 일본서점 대상 4위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독자들은 “많은 이가 읽었으면 하는 책”, “각자가 죽음을 대하는 법,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다” “초고령화 사회에 인간의 ‘마지막’이 그려진 소설” 등 감동을 쏟아냈다.


“대학 의국에 있을 때 그가 사용하던 책상 위에는 변변한 의학서적은 없었지만, 쓸데없이 어려운 철학책들은 수북이 쌓여 있었으니까.”

“철학책이요?”

“뭐였더라. 칸트, 플라톤, 흄, 스피노자…. 적어도 의사 책상으로는 보이지 않았지.”

“예사롭지 않은 독서 편력이군요. 광범위한 공부이고요.”

“그러고 보니 가쓰라기 편집장은 문학부 철학과 출신이라고 했던가?”

“네. 학창 시절에 제 나름대로 다양한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죠. 그러니까 데쓰로 선생이 플라톤이나 칸트와 같은 정통파 책을 읽었다면 이해하겠는데, 스피노자라니…. 참으로 흥미롭네요.”(p.74~75)

이 소설은 단순한 의료계 안팎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대하는 휴머니즘이 가득한 의사의 치료와 치료 과정의 이야기다. 또 환자와 의사의 공감, 불치의 병으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보여준 휴머니즘이 잘 드러난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모든 생명체처럼 언젠가는 죽는다. 지구 등 우주적 관점에선 '순간'에 불과하지만 한 인간에게 죽음은 짧지 않은 생애의 마지막이자 전부다. 환자와 의사는 이런 시각에서 공감한다. 죽음에 대한 지나친 무게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인간적 관점과 전체적 관점으로 보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는 모두 필멸의 존재로서 살아 있는 동안 생명에서 죽음으로 가는 과정 속에 처해 있다.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를 너무 무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원동력이다. 이 소설이 휴머니즘 가득한 의사의 시선과 환자의 마음으로 들어가고, 치료는 서로가 원하는 만큼 이뤄진다. 의사가 최선을 다하는 과정 하나하나는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실행됨을 독자들이 깨닫게 하는 소설이다. 이 의사의 책상에 독특하게도 스피노자의 책이 꽂혀 있다. 

이 소설 작품은 이 매력적인 주인공 마치 데쓰로와 함께 어느 순간 ‘소박하고 행복한 시간의 흐름 속에’ 빠져들게 한다. 출판사 측에서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 데쓰로의 말을 인용한 문장은 주인공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기적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어. 의사는 생명의 최후에 희망의 등불을 처방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교토의 지역 병원에서 일하는, 저자 나쓰카와 소스케와 같은 직업을 가진 내과 의사이다. 이름은 마치 데쓰로. 데쓰로는 저자의 분신처럼 빙의한 작품임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데쓰로는 환자를 치료하는 자신의 소신이 “설령 병이 낫지 않아도, 남겨진 시간이 짧아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어. 분명히 그럴 수 있다는 게 내 나름의 철학이거든. 그 행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계속 생각해.”라고 말한다. 데쓰로가 삶의 마지막을 앞둔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계속 질문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할 뿐이다. 스피노자를 즐겨 읽는 데쓰로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스피노자의 철학과 많이 닿아 있다.

스피노자는 독자들이 잘 알다시피 서양 철학자다. 그의 철학과 사상, 생애를 모른다고 이 책을 읽기 어렵거나 이해가 힘들지는 않다. '스피노자의 진찰실'이란 별명이 붙은 것은 주인공 데쓰로의 치료 과정에서 붙여진 별명이지 그의 삶이 스피노자와 같아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피노자 철학의 근원을 알아두는 것이 데쓰로의 치료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여기에 철학사전을 참고해 간단하게 설명한다. 스피노자는 유태인 상인의 아들로 네덜란드 철학자다. 영국의 베이컨, 프랑스의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신(新)시대를 환영하는 사상을 표현했다. 따라서 〈자연 지배〉와 〈인간 개조〉가 그의 사상의 중심이었다. 그의 철학은 한편으로는 범신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유물론적 주장으로도 해석된다. 관념론자들은 그를 범신론자로서 관념론적으로 해석하려 하지만, 스피노자의 기본 사상은 오히려 유물론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의 사상의 밑바탕이 되는 '신'(神)은 무한한 계속성을 가지며,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실체로 해석될 뿐 아니라 또 '자연'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유물론은 형이상학적이고, 동적이지 않고 정적이며, 또 발전에 대한 관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은 속성이 개체로서 규정되었다는 의미에서 '양태'로 간주된다.(철학사전, 2009)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인간의 의지로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다. ‘쓰나미나 지진을 없앨 수 없고, 환자 몸속에 생긴 췌장암을 없애는 것도 불가능’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노력하라는 말 속에 희망의 빛이 일렁거린다.

“이런 희망 없는 숙명론 같은 것을 제시하면서도 스피노자가 재미있는 점은 인간의 노력을 긍정한 데 있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노력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텐데, 그는 이렇게 말했거든. ‘그렇기에’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인공 데쓰로의 말처럼 이 소설에는 놀라운 기적도, 교수들의 권력투쟁도, 음모도 없다. 지역의 작은 병원을 무대로, 이런저런 질병으로 인해 고달픈 인생을 사는 보통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삶의 본질과 죽음의 의미를 따듯하고 상냥한 필치로 담아냈다. 특히 주인공이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노령의 환자와 그 가족에게 오직 병의 치료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남은 생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진료를 펼치는 모습은 진한 감동을 전한다. 또한 뛰어난 의술로 치료에 난관을 겪는 환자들을 살려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역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여러 죽음의 순간을 묘사하지만 신기하게도 읽는 이의 마음에는 따뜻함과 뭉클함이 차오른다.

주인공은 암 환자에게 힘내라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대신 ‘서두르지 말라’고 할 뿐이다. 생을 다하고 떠난 사람에게는 마지막으로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진심 어린 말을 건넨다. 어느새 읽는 이도 환자의 마음이 되어 어깨에 힘이 빠지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칫 신파적인 내용이 될 수 있지만 결곡한 문장에 아름다운 교토의 풍경까지 더해져 “소박하고 행복한 시간의 흐름 속에” 빠져들게 한다. 모처럼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똑같은 일상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고 싶다면 이 소설을 강력히 권유한다.

교토가 주 무대이기에 이야기 속 곳곳에 등장하는 일본의 옛 수도(우리의 경주 같은) 교토의 명물 화과자도 소개된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당장이라도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싶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으니 주의하시라는 편집진의 귀띔이다.

이 소설의 의뢰자이자 편집자 시노하라 이치로(미즈즈키 대표이사)는 출간 후 소감을 남긴다. “나쓰카와 씨에게 작품의 집필을 의뢰하고 나서, 14년의 세월을 거쳐 탄생한 것이 이번 작품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행복’이라는 깊고 큰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독자들에게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으로 전달됩니다. 굉장하면서도 뛰어난 한 의사가 환자나 동료와 진지하게 마주하는 모습을 그린, 최고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편집하는 과정에서 『스피노자의 진찰실』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이 작품을 출판할 수 있어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독자는 서평에서 소설의 줄거리를 세세하게 쓰면 오히려 스포일러가 된다는 원칙에 동의한다. 독자들의 '읽는 즐거움'을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영화를 보러 가면서 영화의 줄거리를 미리 듣고 가는 것처럼 '김 빠진 맥주'일 테니까. 줄거리를 간략하게 옮기는 데 한계가 있지만 최소한의 배경과 주제는 드러나야 하기 때문에 간략하게 서너 문장으로 압축해 본다. 

마치 데쓰로는 교토의 하라다 병원에서 일하는 내과의사이다. 싱글맘으로 아들을 키우던 여동생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다. 홀로 남겨진 조카를 돌보기 위해 촉망받던 실력 있는 의사 데쓰로는 격무에 시달리던 도심의 대학병원을 떠나 작은 동네 병원의 의사로 이직을 결심한다. 데쓰로의 실력을 아는 대학병원의 부교수 하나가키는 애제자인 여의사 미나미를 보내 그에게 연수를 받게 한다. 처음에 미나미는 죽음을 앞둔 환자를 대하는 데쓰로의 태도에 미심쩍은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데쓰로의 깊은 의중과 놀라운 실력을 목격하고 동경하는 마음을 품는다.

미나미와 함께 평소와 같이 죽음을 앞둔 고령 환자들을 회진하던 데쓰로에게 하나가키로부터 급한 전갈이 도착한다. 대학병원에서 치료하던 소년의 병세가 급하게 악화돼 한 시간 반 뒤에 수술을 해야 하는데 데쓰로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그는 대학병원 출입금지를 당한 상태라 신분을 감춘 채 비밀리에 수술을 도와야만 했다. 마침내 데쓰로는 수술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다른 의사들이 가득한 수술실에 들어선다.


데쓰로는 아키시카가 어떤 가혹한 일을 겪은 탓에 정신과에서 내과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나베시마가 말끝을 흐렸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른다. 물어볼 생각도 없고, 들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오히려 죽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데쓰로가 나지막하게 말문을 열었다. 하필 데쓰로의 말과 함께 종횡무진 활약하던 아키시카의 기체가 적의 직격탄을 맞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는 어깨를 약간 움츠렸지만 고개는 들지 않았다. 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게임에 몰두한다. 데쓰로도 화면을 응시한 채 계속 말을 이었다.

“환자분들의 마지막을 지킬 때마다 생각해요.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더 알고 싶어요. 죽음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최후의 시간이 다가온 환자에게 자신 있게 말하면서 안심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당신이란 사람은….”(p.181~182)

데쓰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움직이지 않았다. 여름과 가을이 녹아 하나로 섞인 계절의 틈새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친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자전거 벨 소리가 울렸다가 멀어져 갔다.

“나는 말이야, 미나미 선생.”

데쓰로가 고개를 바로 세우며 입을 열었다.

“의료라는 것에 큰 기대도 희망도 갖고 있지 않아.”

미나미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의사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의료의 힘이란 정말 미미한 것이라고 생각해. 인간은 덧없는 생물이고 세상은 끝까지 무자비하고 냉혹해. 나는 그 사실을 여동생의 임종을 지켰을 때 정말 뼈저리게 느꼈어.”

잠시 입을 다문 데쓰로는 깊은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무력감에 사로잡혀서도 안 돼. 그걸 가르쳐 준 것도 여동생이지. 세상에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산처럼 넘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다고 말이야.”(p.260~261)


저자 : 나쓰카와 소스케(なつかわ そうすけ, 夏川 草介)


197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신슈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한 후 의사로 일하고 있다. 2009년 『신의 카르테』로 제10회 쇼각칸문고 소설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이 작품은 2010년 서점대상 2위에 올랐고, 이어서 출간된 『신의 카르테 2』, 『신의 카르테 3』, 『신의 카르테 0』을 포함하여 전체 32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인기에 힘입어 2011년과 2014년에는 사쿠라이 쇼와 미야자키 아오이 주연으로 영화화되었으며, 2021년 도쿄TV에서 스페셜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었다. 『신의 카르테 4』가 출간되었으며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었다. 나쓰카와 소스케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합친 펜네임으로, 나쓰는 나쓰메 소세키, 카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스케는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소는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 「풀베개(草枕)」에서 따왔다. 단편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는 나쓰카와 소스케의 첫 번째 판타지 소설로 「은하철도 999」의 모티프가 되었던 『은하철도의 밤』의 21세기판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화제가 되었다. 그외 단편 『시작의 나무』 등이 있다.


역자 : 박수현


일본 와세다대학교 제1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회사생활이 힘드냐고 아들러가 물었다』, 『셰익스피어의 말』, 『잠 못들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 『혼자 공부하는 영어습관의 힘』, 『생각 하나 바꿨을 뿐인데》 외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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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위로 - 모국어는 나를 키웠고 외국어는 나를 해방시켰다
곽미성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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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언어의 위로』는 프랑스로 유학 간 저자 곽미성이 프랑스어를 체화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표제어로만 해석한다면 자칫 우리말로 우리나라에서 우리 삶을 위로하는 메시지가 담긴 것 같지만 사실은 저자의 프랑스어 '해방 일지'다. 또 모국어가 아닌 외국의 언어가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관한 저자의 내밀한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의미가 되지 못하는 이질적인 소리가 너무나 피로해서 수영장 물속으로 몇 시간씩이나 도망치던 초기 유학 생활의 이야기도 이 책에 담았다. 물속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안정감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모든 소리로부터 해방된 유일한 곳이니까. 이 시기 저자 자신에게 프랑스어는 '소음'이고 그들에게 저자의 프랑스어 역시 '소리'에 불과했을 때의 답답함과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도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저자가 모국어와 프랑스어를 오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 과정이 눈물겹게 느껴진 이유다. 책에 표현된 많은 부분이 '정말 힘들었겠다'라는 공감을 자아낸다. 

저자에 따르면 유학 생활에 적응하며 또 그들의 감성을 이해하면서부터는 자신의 일상이 훨씬 신선하게 다가온 시기도 있었다. 자신의 프랑스어가 더 이상 프랑스 사람들과의 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을 거쳐서다. 서로의 감성과 감정을 아낌없이 적소적재에 토해내기까지에는 많은 노력이 뒤따랐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와는 많이 다른 프랑스의 문화를 제대로 인지하면서부터 프랑스 사람들과 그들의 말로 감정을 주고받기까지 노력도 돋보인다. 이 때문에 출판사 소개글에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적이다."고 적어놓은 것으로 이해된다. 이 에세이집은 한 편 한 편이 짧은 에피소드처럼 엮이면서 전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수십 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저자의 눈에 서서히 들어온 프랑스 문화와 프랑스인에 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짧은 글과 생각의 외연을 한층 더 넓혀준다. 다른 삶을 꿈꾸는 이, 외국어라는 미지의 문 앞에 선 이,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이에게 이 책은 속 깊은 ‘언어의 위로’를 전한다.

독자는 외국 유학을 가본 적이 없다. 유학은 집안의 뒷받침이 없다면 쉽게 이루어지기 힘들다. 국비로 가는 것은 쉽게 기회가 오지도 않는다. 거기에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에게는 국비 유학생의 기회가 거의 없다. 독자가 대학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산업화에 내몰린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많이 풍요로워지긴 했지만 해외 여행마저도 쉽지 않았다. 국가나 기업에서 해외 업무가 불가피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반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해외에 나가는 돈마저도 제한적이었고, 사실상 오래 머물 수도 없는 돈 정도만 허락했다. 이것은 '해외여행 자유화'가 90년대 들어서야 이루어진 점을 보면 확실하다. 그런데 저자는 영화를 공부하려고 프랑스 유학을 갔다. 책의 내용으로 봐서는 집안이 넉넉해서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이루어낸 유학이 아니었을까 지레짐작해 본다. 초기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더구나 사고방식이 동양과 다르고, 관습도 다르니 언어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라는 짐작은 할 수 있다. 

외국에서의 삶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다. 그곳이 ‘프랑스’라면 더없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저자는 배낭여행으로 떠난 프랑스에서 덜컥 유학을 결심한다. 자신의 도피처였던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어떤 고생이든 감수하겠다는 다짐으로. 10대의 저자는 알지 못했다. 외국에서의 삶은, 더 정확히는 ‘삶의 질’은 외국어 능력에 달렸다는 것을. 프랑스어로 인해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도. 여행자가 아닌 유학생으로 돌아온 프랑스는 ‘현실’이었다. 

이후 프랑스 생활이 무려 24년. 이방인의 시간은 어느덧 한국에서 나고 자란 세월을 훌쩍 넘었다고 말한다. 생존을 위해 시급히 채워 넣어야 했던 프랑스어를 일상의 언어로 쓰게 된 지금, 저자는 고백한다. "외국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무엇보다 외국어는 모국어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다만 저자는 괴테의 문장을 가져와 외국어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 『언어의 위로』는 결과보다 ‘과정’에 시선을 두는 책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오랜 시간과 노력에 걸쳐 몸에 새길 때,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20여 년간 누적된 경험을 모은 저자의 글은 국제 연애, 외국어 공부 등을 다루는 짧은 영상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한다. 단 몇 줄로 정리되는 프랑스인과의 연애 장·단점, 프랑스어 완전 정복 노하우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최고의 외국어 공부법은 외국인과 사귀는 것이라는 농담 같은 말은 절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저자의 이야기는 아주 멀리 또 깊이 나아간다.

저자도 프랑스에 오래 있다 보니 연애도 있었으리라. “나는 (프랑스인 남자 친구) R이 자주 쓰는 단어들, 대강의 의미는 알지만 정확한 뜻은 모르던 단어들을 사전에서 찾아 확인하기 시작했다. 더 나다운, 더 내 마음과 닮은, 더 내 생각에 가까운 단어를 고민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이슈에 대해, 인물에 대해 그의 의견을 들으면, 반문하고, 확인하고, 이해하고, 내 생각을 전개했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독립하기 위한 일종의 투쟁이었다. 우리의 관계는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다른 쪽으로 기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갔다. 관계 속 나의 영토가 분리되고 확장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도 다시 치열해졌다. 우리의 관계도 그때부터 성숙해졌다고 나는 믿고 있다. 각자가 자신의 독립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어른의 관계. 나의 프랑스어도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정말 내 것인, 나의 외국어는 그렇게 말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p.79)

그런데 남자 친구를 알고 그와의 관계를 계속해 나가는 데 언어가 장벽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도 남녀가 연애할 때는 서로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이 다르기에 서로 양보하고 서로 맞춰가며 사귀는 일이 시급하다. 그런데 외국에서 생활하며 그곳의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것은 독자로서는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프랑스 생활의 토대 위에 쓰인 이 책은 프랑스어를 모르는 이들마저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직접 부딪치고 경험하며 알게 된 프랑스 특유의 문화와 화법을 곁들여 언어 너머의 풍경까지 생생하게 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낭만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의 진정한 낭만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에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 사람들은 내 심장(mon cœur), 내 보물(mon tresor), 내 벼룩(ma puce, 보호해 줘야 할 아주 작은 존재라는 의미) 같은 애칭으로 ‘천연덕스럽게’ 서로를 부른다. 한창 열애 중인 커플이나 신혼부부가 아닐지라도. 이 일은 서양인들이 흔히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긴 할 것 같다. 영화에서도 부부나 연인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애칭'을 쓰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족애를 그리는 영화는 행복하고 별 걱정이 없는 부부 사이에 애칭을 사용하다는 것을 많이 봐왔다. 저자가 결혼 후 시어머니가 시아버지에게 여전히 '새끼 고양이(minou)'라는 애칭을 사용한다니 조금은 오글거린다. 어떻게 부르든 그것은 그들의 생활 방식과 오랜 관습에 의해 특정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별로 어색할 것은 없다. 사실 우리 시대에도 '자기' '애기' 등 애칭을 사용하는 것을 자주 봤다.

아들, 그러니까 저자의 시동생쯤인가 보다. '벼룩'이라고 부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 새끼 고양이, 화장실 청소 좀 해”, “내 벼룩, 왜 이렇게 얼굴이 안 좋니? 저녁에 뭐 먹고 싶어?”(p.54) 확실히 오글거리고 그런 말을 사용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긴 하다. 우리도 친구 사이에 '바퀴벌레'라고 호칭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왜 바퀴벌레야? 하고 물으면 나름대로 다 이유를 댄다. 

저자는 그렇다고 프랑스어를 낭만의 언어로 속단하긴 이르다고 말한다. 긴 대기 끝에 만나게 된 은행 직원이 자신의 두 눈을 바라보며 건네는 말(이제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Je suis a vous!)을 듣고, 세금 연체나 보험료 인상을 알리는 고지서의 끝인사(당신을 읽을 날을 기다리며, 저의 각별한 감정을 수락해 주시길 간청합니다 Dans l’attente de vous lire, je vous prie d’agreer l’expression de mes sentiments distingues)를 읽으며 저자는 알게 된다. 프랑스 사람들은 별다른 감정을 담지 않고도 이토록 낭만 넘치는 말들을 한다니 확실히 낭만적이고 또 그들의 뜻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프랑스어라고 자긍심을 지나칠 정도로 갖고 있다는 말도 직접 프랑스에 여행 가서 들은 적이 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타국에서, 입을 뗄 때마다 의식적인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외국어를 해야 한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누구나 외국어를 처음 대할 때는 두려움이 있다. 관광 가서 그럴진대 저자는 공부를 목적으로 유학을 갔으니 어떻게든 말을 배워야 공부도 할 텐데... 어쩌면 수없이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저자가 언어를 대하는 태도는 "아니면 말고" 식이 결코 아니란 점에서 오랫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리란 생각이 든다. 사실 외국에선 말을 하지 못하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언어가 서툴러서 혹은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무수한 말들을 삼켰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일하려 온 취업 노동자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금세 알 수 있다. 저자라고 프랑스에 유학 갔으니 왜 그런 일을 당했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누구보다 노력을 기울인 탓에 지금은 프랑스인이 다 된 듯해 보이기도 한다. 일이런 서러운 현실에도 계속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삶의 고비마다 쓰러진 마음을 끌어 일으켜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도 한달음에 달려갈 수 없어 이미 재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라며 슬픔을 헤아려준 덴마크 문화원장. 퇴직 전 마지막 진료 날, “우리는 서로가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았군요”라는 인사를 전하며 15년간 이어온 인연을 실감케 해준 주치의. 이들이 진심으로 건넨 프랑스어가 완벽한 위로로 와닿았던 순간들이, 저자를 지탱해 온 것을 책을 통해 느끼고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결핍과 그리움은 모국어로 채운다. 출근 전 새벽마다 모국어로 글을 쓰고, “이미 몸과 마음속에 스며들어” 있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언어”인 모국어로 쓰인 책들을 읽으며. 두 언어에서 받은 위로로 저자는 꾸준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것이란 의지도 굳세다. 다른 삶을 꿈꾸며 기꺼이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언어의 위로’를 전하면서 굳센 의지는 빛으로 승화된다.

화법은 사회를 드러낸다. 프랑스에서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한 한국인 지인은, 아이의 한국어와 프랑스어 구사 방식을 보면서 두 언어의 차이를 크게 느낀다고 했다. 아이가 한국어로 말할 때는 목소리 톤도 높고 감정을 극적으로 발산하는 데 반해, 프랑스어로 말할 때는 목소리가 차분해지고 이성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유치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이가 프랑스어로 “나는 ~을 할 권리가 있어”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요즘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있는 나의 시아버지가 떠올랐는데, 최근 이런 질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사람들이 소리를 많이 지르더라. 실제로도 그러니?”(p.97~98)


옷차림과 스타일뿐만이 아니었다. ‘취향 평가’는 내 전공 분야인 영화에서도, 또 음악, 미술 등 모든 장르에서 계속됐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가 지도 교수로부터 “아니, 그런 도덕 교과서 같은 영화를 어떻게…”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프랑스 친구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가 “그 영혼 없는 모조품 같은 곡은 다시 안 들으면 안 되니?”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섬세한 이 도시의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졌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으나, 초라한 취향의 내게 이곳은 ‘춥고도 험한 곳’이었달까.(p.153)


저자 : 곽미성


영화 공부를 위해 파리에 온 이후로 스무 해 넘게 프랑스어를 쓰며 살고 있다. 파리 1대학과 7대학에서 영화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전공과 관련 없는 직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모국어로 글을 쓴다. 파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일은 걷기. 프롬나드(promenade), 플라네(flaner) 등 ‘산책’을 의미하는 모든 프랑스어 단어를 좋아한다. 지은 책으로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다른 삶』 『외로워서 배고픈 사람들의 식탁』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 옮긴 책으로 『파노라마』 『파리지엔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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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게 두오! : 괴테 시 필사집 쓰는 기쁨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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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를 울게 두오!: 괴테 시 필사집』은 세계의 대문호 괴테의 시를 한 자 한 자 눌러 써가며 익히도록 한다. 시집 필사는 문학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작가 수업 시절에 해본 경험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글과 문체를 갈고 닦아야 할 귀중한 시간에 왜 남의 싯귀나 문장을 필사했을까. 

아침 저녁 기온으로 봐선 딱 겨울이다. 지구 북반구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겨울은 움츠리고 가진 것을 모두 버리는 계절이다.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이 지나고 기온도 영하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얼마 전 붉디 붉었던 잎파리들이 낙엽져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마침내 가지만 남긴 채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를 온몸의 받아 안으며 계절을 버틴다. 동물들은 물론 사람들도 따뜻한 곳을 찾아들면 밖에서의 하루 활동을 마감한다. 그렇지만 날씨가 춥다고 자연의 이치가 냉혹한 계절만은 아니다. 겨울만 이겨낸다면 나무들은 새잎이 돋아나고 꽃을 피우고 무성한 잎파리들을 다시 키워내 저마다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것은 아름다운 새봄이 온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기후 변화로 이상 기온이 우리의 일상을 흐트려 놓기는 하지만 순응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인간은 이미 터득했다. 가을에 수확한 풍요로운 먹거리로 저장해 놓고 오손도손 가족이 함께 먹는 즐거움은 부푼 행복감을 안겨준다. 

겨울에 아랫목에 누워 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은 시처럼 아름답게 변한다. 대체로 그렇다. 감명 받은 시에서도,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시를 읽는 마음은 순수함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시에서 받은 감동은 오래 지속되나보다. 이 책의 표제어가 된 「나를 울게 두오!」는 대문호 괴테의 시의 제목이다. 시에 쓴 싯구로 제목이 되었고 책의 표제어가 되었다. 이 제목으로 인해 아름다운 싯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하고,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지 충분히 추정할 만하다.

나를 울게 두오!

끝없는 사막에서 밤에 에워싸여 울게 두오.

낙타들이 쉬고, 몰이꾼도 쉬고

아르메니아인 조용히 앉아 돈을 헤아릴 때

나, 그 곁에서 먼 길을 헤아리네.

나와 줄라이카를 갈라놓는 먼 길,

그 길을 더 길게 늘리는 야속한 굽이굽이 자꾸 되풀이되네

나를 울게 두오!(P.276, 이하 생략)


책의 〈추천사〉를 쓴 장석주 시인은 이 시를 읽으면 언젠가 파주 출판단지 안에 있는 한 디자인 회사 건물의 '울기 좋은 방'을 떠올린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그 건물에 있는 방 이름이란다. 천창으로 파란 하늘이 보이는 그 작은 방은 장식도 기물도 없이 텅 빈 채로 손님을 맞는다고 한다. 단순 소박한 그 방에 들어선 순간 시인은 울고 피어졌다. 무릎을 꿇은 채 엉엉 울고 나면 가슴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이 씻겨 나갈 것만 같았다고 털어놓는다. 괴테의 말처럼 울고 싶을 때 우는 건 수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자기감정을 속이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선량한 사람일 것이라고 시인은 읊조린다. 밤의 사막 한가운데서 혼자 우는 사람이 그렇듯이. 시인은 그렇게 어느 호젓한 저녁, '울기 좋은 방'을 떠올리며 「나를 울게 두오!」를 읽는다. 쓰러진 자에게 일어설 용기를, 복잡한 감정을 단순하게 만들 영감을 주는 시에 진실로 감사하며!

이 책은 괴테의 시 100편이 독자들의 필사를 기다리며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 괴테가 누구인가. 우리 독자들은 그의 시를 한두 편 읽어보지 않은 이들은 드물다. 그만큼 괴테의 명성이 자자해서겠지만 그의 싯구는 격언으로도 많이 쓰이는 아포리즘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무심코 쓰는 격언이나 싯귀가 괴테의 시에서 인용한 아포리즘이란 걸 발견하면 슬며시 입가에 웃음을 짓는다. 이를테면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고"(「라인강과 마인강」),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서 그럴 것이다. 

역자 배명자도 여담이라고 가벼운 말을 건넨다. "눈물 젖은 빵"을 "눈물 젖은 밥"으로 바꿔야 하낟. 잠깐 고민했었다고 고백한다. 아마 번역자로서 더 적합한 단어 찾기, 혹은 독자에게 더 적절한 단어로 바꿔 전달해야 하는 번역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역자의 고민도 잠깐 '눈물 젖은 빵'은 이미 관용구로 굳어졌다고 그대로 쓰기로 했단다.

역자는 이 책의 시 중에는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고 귀띔한다. 시 「보물 찾는 이」에는 "내 영혼을 가져가라! 피로 계약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면서 피로 서명하는 장면과 연결된다고 독자들에게 슬쩍 내민다.


텅 빈 주머니와 병든 가슴으로 

긴 세월 힘들게 버텨왔다네

가난은 가장 큰 고난

부유는 가장 큰 재산

나, 고난을 끝내려 보물을 찾아 떠났지

"내 영혼을 가져가라!"

피로 계약했네(p.134, 이하 생략)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2판에 붙인 시」는 '2판'이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1판이 큰 인기를 끌면서 자살하는 젊은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2판 앞머리에 이런 시를 넣은 것이다.

보라, 그의 정신이 무덤에서 그대에게 손짓한다

사내답게 살라고, 나를 따르지 말라고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2판에 붙인 시」 중에서


인류의 스승으로 꼽을 만한 독일 문학의 거장은 누구인가? 우리는 가장 먼저 괴테를 떠올릴 수 있다. 아마도 그와 견줄 만한 위대한 작가는 찾기 힘들 테다. "우리들의 정신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 존재, 영원에서 영원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활동"이라고 굳게 믿은 작가! 괴테에게 문학이란 창공에서 빛나는 태양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문단은 시인 장석주가 〈추천사〉에 쓴 첫 단락의 문장들이다. 장석주 시인에 따르면 괴테는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족함이 없은 환경 속에서 모국어는 물론이거니와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 다양한 언어를 익히며 성장했다. 더 큰 행운은 성서와 히브리어, 이디시어를 익히면서 더 너른 교양과 지식을 쌓을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대대로 물려받은 집안의 장서들과 다양한 언어 습득은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세련된 취향과 예술적 영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부러운 마음을 전한다.

괴테에겐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향한 열정과 호기심, 명석한 분별력, 좋은 영향력을 제 것으로 취하는 재능이 넘쳤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가 명석함에 더해서 예술의 소양을 키우는 데 보탬이 되는 천혜의 환경을 만난 것은 그의 축복이라고 한다. 일찍이 철학, 음악, 미술 등에 걸쳐 고루 교양과 지식을 갈고닦으며 천부적 재능을 꽃피울 날을 기다렸다. 그의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25세 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써내며 유럽 전체에 명성을 떨친 뒤, 반세기가 넘는 세월에 걸친 노력 끝에 『파우스트』라는 대작을 완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고 그의 약력을 소개한다.

시인은 소년 시절에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괴테의 시는 「휴식」이란 시라고 밝힌다. 아쉽게도 이 책에는 빠져서 여기 소개하지 못한다. 시인은 괴테의 시에서 심장 떨리는 벅찬 기쁨을 맛보고, 고전의 향기와 웅장한 영혼의 울림을 느끼며, 비로소 괴테를 소설가로만 알던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괴테는 타고난 직관과 상상력으로 만물에서 시적인 영감을 구한 사람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일곱 살에서 인생의 만년까지 겪은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을 시에 온전하게 녹여내는 창작을 쉰 적이 없었다. 괴테의 서정성 짙은 시들을 가사로 삼은 슈베르트와 모차르트의 가곡들이 당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시성(詩聖)이라는 면류관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입증한다고 강조한다. 시인은 괴테의 "당신이 그리워/한밤중에 흐느껴 울었지요"(「헛된 위안」 p.212)이라는 시 구절을 읽으며 깔짝 놀란다. 인간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존재라는 것, 괴테같이 위대한 인간조차 한밤중에 흐느낀 적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놀라움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리움이란 아무 조건을 붙이지 않은 자기 증여의 내밀한 형식일 터다. 아울러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증거,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무작정 보낸 상태. 마음이 상대에게 가닿았는지 아닌지를 모르는 상태일 때 생기는 아스라한 감정이다. 

사랑하지 않은 자에겐 그리움이 깃들 여지도, 사랑의 상처가 생길 까닭도 없다. 그리움은 막막하고 마음에 고통의 자취를 남긴다. 그래서 괴테는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나의 아픔을 알리라!"(「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p.160)라고 썼을 거라고 말하며 탄식한다. 나는 언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울었던가?

이 책 『나를 울게 두오!: 괴테 시 필사집』은 바이마르 초창기부터 생애 끝자락까지 쓴 괴테의 시 가운데 100편을 선별하여 수록했다. 시마다 더욱 깊이 있게 숙독할 수 있도록 필사란을 마련하였기에 음미하고 마음을 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산다는 것에 대한 찬미, 첫사랑을 위한 노래, 고전의 아취, 인생 경험에서 길어낸 자양분을 머금은 아포리즘들로 이루어진 괴테 시집을 고요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필사하는 시간, 자신을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멋진 투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어떤 운명이라도 좋다! 오라, 운명이여, 몇 번이라도 좋다!” 괴테는 시를 통해 자칫 무르고 약해지기 쉬운 우리에게 운명에서 도망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라고 권한다. 이런 의연함이 더욱 간절한 요즘이라면, 무의식적인 정신의 풍부함을 만끽하면서도 그 자발성을 파괴하지 않고 거기에 성찰의 빛을 부여한, 독일 최고의 지성, 대문호 괴테의 시를 추천한다.


저자 :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위해 머물다가 헤르더를 알게 되면서 셰익스피어 문학에도 심취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 아픔을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44)을 써,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는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자 : 배명자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8년간 근무했다. 이후 대안교육에 관심을 가져 독일 뉘른베르크 발도르프 사범학교에서 유학했다. 현재 바른번역에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비투스』, 『호르몬과 건강의 비밀』, 『밤의 사색』 등 8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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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끝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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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소설 작품 『죄의 끝』은 세기말, 인류의 종말을 연상케하는 아포칼립스 세상 후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간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말 그대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이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150년 후 아메리카 대륙이 지리적 무대다. 2173년, 지구에 소행성 나이팅게일이 충돌하며 그 파편들로 전 세계는 초토화되고 만다. 정부는 피해를 받지 않은 지역을 「캔디선」으로 경계를 나누어 관리하고, 영하 40도의 혹한과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인해 캔디선 바깥의 사람들은 굶어 죽게 된다. 결국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을 감행하고, 살기 위해 식인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성한 존재에게 구원받길 원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을 구원할 식인의 신, 「블랙라이더」 너새니얼 헤일런이 탄생한다. 이 소설은 종말 이후 세계에서 신화가 되는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끔찍한 잉태의 순간에서부터 놀라운 대활약의 나날에 이르기까지 저자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상상력에 감탄을 거듭하며 읽다 보면 어느덧 결말에 이른다.

저자는 〈나오키상〉〈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일본 서점 대상〉〈와타나베 준이치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SF소설의 대가로 일컬어진다. 특히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 『류』에서 보여주듯 미래 세계의 역사를 다루는 솜씨가 빼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소설 『죄의 끝』 역시 출간 직후 "끔찍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시적인 정취를 잃지 않은 따뜻함이 돋보이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제11회 〈중앙공론문예상〉을 수상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성경의 많은 부분이 인용되는 점도 흥미롭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을 성경 이후의 세계로 그리려 하는 저자의 의도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민경욱 역자는 「잿빛 황야를 가로지르는 SF 묵시록」이라는 제목의 〈옮긴이의 말〉을 통해 "종말의 세계에 대만인 아버지와 라오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뉴저지주에 사는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되어 자란 네이선 발라드"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방황하던 자신의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쓴 글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전해지는 형식을 취한다. 액자소설 구성 형식이다. 너새니얼 헤일런의 일생을 취재하는 과정을 논픽션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신약성경의 구원자 예수는 신의 아들인가, 사람의 아들인가를 다루는 것과 비슷한 인물로 부각시키기 위함이라고 독자에게는 이해된다. 인류 멸망 이후 캔디선 내부에서 부흥하게 된 백성서파 교회는 혼란한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구세계의 범죄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킬러 「화이트라이더」를 캔디선 바깥으로 파견한다. 백성서파 교회의 네이선 발라드는, 살해 명단에 오른 너새니얼 헤일런을 화이트라이더와 함께 뒤쫓는다. 하지만 여정이 계속될수록, 캔디선 안에서는 끔찍한 살해범이라 알려진 너새니얼이 캔디선 바깥에서는 인류의 구원자로 칭송받는 이유를 직접 확인하면서 그에 관한 생각이 점차 바뀌게 된다. 과연 너새니얼은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러 지상에 도래한 ‘신의 사자’일까? 아니면 괴이한 논리를 펼치며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살인범’일까?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머니를 죽인 냉혹한 존속 살인범이 중남부 일대에서 구세주로 널리 숭배되었다."(p.11) 이 살인범은 죽은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그가 베푼 수많은 기적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고기를 나눠주어 500명의 배를 채웠다. 홀로 백성서파의 킬러들, 즉 화이트라이더를 차례로 처치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적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손을 대기만 하면 병자가 치유되었다. 동물과 대화할 수 있었다. 등등. 예수가 로마 제국 초기 세상에 등장할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앞서 설명한 대로 소설의 앞부분에 있는 〈서문〉에서 블랙라이더의 전설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 소설이 액자소설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야기의 화자는 화이트라이더 네이선 발라드이고, 소설의 주된 내용은 블랙라이더 너새니얼 헤일런의 활약하는 모습이다. 즉, 그들 사이에서 어떻게 구원자로 떠올랐으며 어떤 활약을 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네이선은 책을 출간한다. 책의 〈서문〉은 네이선이 출간간할 때 내용만으로 불충분하다고 생각해 책을 쓴 이유를 추가한 부분이다. 2175년 7월 뉴욕에서 책이 출간됐으며 이 책은 인류의 종말 전후의 과정을 저자 네이선 발라드가 취재하고 알고 있는 내용을 담아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서문에 따르면 네이선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개인적으로 받은 정신적 충격 때문이었다. 18년전 네이선은 18년 전 아내를 잃었다. 백성서파가 의뢰한 임무로 뉴욕을 떠나 있던 13개월 동안 아내 마리앤은 다름 아니라 그 백성서파의 목사에 의해 산 채로 등유를 뒤집어쓰고 불에 타 살해당했다. 교회의 연락을 받은 발라드는 빌 개럿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밤새 얼어붙은 뉴멕시코주의 황야를 달려 뉴욕까지 왔다. 그러나 지진과 눈보라, 이어진 습격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두 달 뒤에야 간신히 뉴욕에 도착하는 바람에 발라드는 아내의 시신을 보지도 못했다. 

네이선의 머릿속은 '복수'라는 두 글자로 가득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케네스 모리아는 이미 법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목사였던 그가 어떻게 가련한 여자들에게 독니를 드러냈을까? 네이선은 가톨릭 신자였다면 바닥이 푹 꺼지는 참회실 같은 소도구가 등장했을지도 모른다고 짐짓 말한다. 신부가 바닥의 버튼을 누르면 참회실 바닥이 덜컹 열리고 사냥감이 바닥 아래 감금실로 낙하하는 식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장치는 없었다. 모리아는 어설픈 수작 없이 여자들에게 접근했다. 즉 예배가 끝난 뒤 여성들을 불러내 수면제를 탄 홍차를 마셔 잠들게 한 후, 침대에 묶고 악마 같은 욕망을 채운 것이다. 열두 명의 여성이 그의 독니에 걸렸고 마리앤은 열한 번째 희생자였다. 마지막 피해자가 운 좋게 탈주에 성공한 덕에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책에는 모리아가 판사에게 털어놓은 이상 성욕은 말 그대로 엽기적이다. 그는 살아 있는 여성에게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침대에 묶인 여성들에게 불을 붙여 불덩이가 되어가는 육체를 바라보며 자위를 했다. 불길에 의해 정화된 여성들을 '신의 디저트'라고 불렀다. 그는 구치소 안에서 백성서파 신자들 손에 죽었는데 성기만 탄화되어 시커멓게 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네이선의 정신은 무너졌다. 격렬한 착란 상태를 거쳐 끝 모를 허무함에 사로잡혔다. 서문에는 네이선 자신의 착란 상태로 괴로워하는 모습이 여러 가지 증상을 보여주며 기술되어 있다. 이때 네이선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만약 마리앤이 케네스 모리아의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살해된 것이었다면 충격이 덜했을 것 같다고 되뇌인다. 〈뉴욕 타임스〉 기자로 일하는 오랜 친구 잭 매코믹이 그런 네이선을 보다 못해 캔디선 밖을 여행했던 경험을 책으로 써보라고 권유한다. 모든 창작 활동은 인간의 영혼을 구제한다면서. 

네이선의 복수심에는 이유가 있다. 구세계의 식인귀 대니 레번워스를 쫓아 1년 이상이나 캔디선(2175년 제롬 캔디가 설정한 전체 길이 900km에 달하는 구호선으로 동부 정부의 병력, 경제력, 인구 지지력을 바탕으로 해당 범위를 산출했다) 밖의 공기를 맡은 탓인지, 자신의 안에는 굶주림을 견디기 위한 희생은 우주의 커다란 진리의 일부로 자라있었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친 목사의 자아와 성욕을 채우기 위한 죽음은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부조리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네이선은 얼이 나간 상태로 10여 년을 지냈다.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은 채 심야를 배회하고, 싸움질에, 운 좋게 술이 생기면 있는 대로 다 마셔버렸다.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던 날들이었다.

즉각 잭의 조언을 따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에마 도슨과 만남 이후로 네이선은 잭의 제안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캔디선을 경비하는 주병(州兵)으로, 얼마 전 월경자와의 처절한 전투에서 연인을 잃었다. 두 사람은 우연히 단체 상담에 함께 참여했다가 자연스럽게 개인적으로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막 서른 살이 된 아름다운 여성으로, 발라드의 여행 얘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서로의 마음을 허락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발라드는 말한다. 발라드에 따르면 전 아내였던 마리앤과 지금 만난 여성 에마는 정반대 타입이다. 두 사람의 차이를 설명하는 발라드의 말도 매우 흥미롭다. "마리앤은 살랑살랑한 봄바람 같은 옷차림을 좋아했는데 에마는 늘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카고 바지에 카키색 밀리터리 재킷을 입었다. 마리앤과의 섹스는 배려로 가득하고 평온했는데 에마는 야생마 같았다."

네이선은 에피소드를 하나 덧붙여 소개한다. 에마와 이스트강 변을 걷고 있을 때 누군가 놓은 덧에 고양이 한 마리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이 다가가자 사경을 헤매는 고양이는 사력을 다해 오히려 위협적인 행동을 취했다. 뒷다리는 이미 시커멓게 괴사했고 허리까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에마는 조용히 고양이를 내려보다가 느닷없이 품에서 글록을 꺼내 고양이의 머리를 쐈다. 네이선은 이미 자신이 겪은 캔디선 밖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인육을 먹었다고 나쁜 사람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할 만큼 생각이 바뀌어 있다. 

네이선은 캔디선 내부에서 아사와 동사의 걱정 없이, 선악을 쉽게 재단하며 살아왔다. 네이선은 일개 범죄자에 불과했던 너새니얼이 어떻게 바깥 세계의 구원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칭송받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네이선은 처음으로 자신을 두르고 있던 알을 깨고 나와 캔디선 바깥의 현실을 똑똑히 목격한다. 동시에 악한 범죄자를 처단하는 일이 ‘선’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의 신념은 뿌리째 흔들린다.

이 책 『죄의 끝』은 멸망의 한가운데에 떨어진 주인공이 아닌, 한 발짝 떨어져 그들을 관찰하는 인물을 화자로 설정해 가상의 청자와의 간극을 극단적으로 좁혀 독자로 하여금 네이선에게 깊이 이입하게 한다. 네이선은 다른 어떤 것보다 생존이 중요해진 세상에서, 극한에 몰린 인류가 어떻게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냈는지 그 역사의 필연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투명하고 이성적인 시선은, 독자를 『죄의 끝』의 세상으로 깊이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작중 네이선의 고민은 곧 현재를 사는 우리의 고민과 같다.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는 과연 불변의 가치인가?’, ‘선악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하나의 물음을 낳는다. 대체 우리는 이 혼란한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믿으며 살아가야 할까? 이 작품을 읽고 독자는 캔디선 밖의 인육을 먹는 사람들이 구원받는 과정에서 인류 문명이 선한 가치관과 희망의 세계관을 갖고 제대로 발전해 왔는가를 묻는 저자의 숨은 의도가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소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인을 한 이들에게 너새니얼은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을 먹었으면 두 사람을 구하라.” 최소한의 인간성을 저버린 채 식인을 한 이들은 너새니얼의 이 한마디에 구원받게 된다. 자신의 죄의식을 덜기 위해, 아픈 사람을 치료하거나 아사하는 이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작품의 마지막에 다다라서, 붕괴한 세상의 끝에서 새로운 마을을 건립한 너새니얼은 또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이런 식으로 되었어도 우리는 그냥 우리로 있을 수밖에 없어.” 엉망이 된 세계에서 ‘구원과 희망’은 대단치 않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마음 한구석에 피어난 괴롭고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본다면, 구원의 불씨는 곧 거대한 희망의 불길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다만 올바른 방향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기는 어려울 뿐이다.


저자 : 히가시야마 아키라(ひがしやま あきら, 東山 彰良, 본명:王 震緖)


1968년 대만 태생. 다섯 살까지 타이베이에서 지낸 후 아홉 살 때 일본으로 왔다. 그때부터 후쿠오카 현에 거주하고 있다. 2002년 「터드 온 더 런」으로 제1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서 은상과 독자상을 수상했고, 2003년 이 작품을 고쳐 쓴 『도망작법』으로 데뷔했다. 이후 2009년 『길가』가 제11회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2013년에는 『블랙 라이더』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014년’ 3위와 제5회 ‘AXN 미스터리 싸우는 베스트 텐’ 1위를 동시에 차지하며 일본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2015년 『류流』로 “20년만에 한 번 나올 만한 걸작”이라는 최고의 호평와 함께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하며 “지금 일본에서 가장 세계에 근접한 작가”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이 밖에, 2016년에 『죄의 끝』으로 제11회 중앙공론문예상, 2017~2018년에 거쳐 『내가 죽인 사람 나를 죽인 사람』으로 오다사쿠노스케상, 요미우리문학상, 와타나베준이치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현재에도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역자 : 민경욱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 관련 회사에 근무하며 1999년부터 일본문화포털 ‘일본으로 가는 길’을 운영했으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전문번역가의 길을 걷고 있다. 또 일본 관련 블로그 ‘분카무라(www.tojapan.co.kr)’를 운영하며 일본문화 팬들과 교류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요시다 슈이치의 『거짓말의 거짓말』, 『첫사랑 온천』, 『여자는 두 번 떠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11문자 살인사건』, 『브루투스의 심장』, 『백마산장 살인사건』, 『아름다운 흉기』, 『몽환화』, 『미등록자』, 이케이도 준의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하늘을 나는 타이어』, 이사카 코타로의 『SOS 원숭이』, 『바이, 바이, 블랙버드』, 누마타 마호카루의 『유리고코로』,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야쿠마루 가쿠의 『데스 미션』,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내가 죽인 사람 나를 죽인 사람』 고바야시 야스미의 『분리된 기억의 세계』 신카이 마코토의 『날씨의 아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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