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살
이태제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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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푸른 살』은 지구의 근미래 즉, 곧 다가올 시대의 이야기다. 이 책에 설정된 세상에서는 누군가의 심중을 아무나 손쉽게 상대를 파악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외양만 봐도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착한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다. 한편으로 굉장히 합리적인 세상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세상은 '디스토피아'라 불리운다. 저자 이태제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게 되었던 어느 날, 나는 일기에 이런 말을 썼다. ‘미리 알 수 있게 사람들 얼굴에 낙인 같은 게 찍혀 있었으면 좋겠다. 착한 사람, 사랑해도 괜찮은 사람, 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을 사람····’ (중략) 하지만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나조차 나를 모르는데 누가 알까. 상대를 일단 처음부터 무조건 사랑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만큼 후유증이 클지라도."

이 작품은 ‘푸른 살’에 잠식된 인류의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펼쳐 보이는 동시에, 탈옥한 세 인디고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긴박함을 선사한다. 푸른 살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인간은 식물화하여 청나무로 변하게 된다. 무단으로 생장한 청나무를 처리하는 휴머노이드 ‘레미’와 눈앞에서 엄마가 청나무로 변하는 장면을 목격한 인간 아이 ‘동수’가 세 인디고에게 납치된다. 그리고 폭력성에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푸른 살 때문에 선한 의도를 가졌음에도 남들보다 커다란 푸른 살을 지닌 채 살아야 하는 인간 형사 ‘드레스덴’이 그들의 뒤를 추적한다. 그리고 드레스덴 앞에 세상으로부터 존재가 완전히 지워져버린,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사이보그 ‘한결’이 ‘아이버스터’를 검거하기 위한 협상가로 한국으로 파견된다.

 


 

이 책에 나오는 색깔은 '파란색'이다. 지구를 외계에서 보면 푸른 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행성이다. 때문에 지구를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2035년, 아프리카대륙 남단에 운석이 불시착하면서 지구에 사는 생명체 특히 인간의 운명이 바뀐다. 그 운석에 묻어온 외계생물체가 인간의 뇌에 기생하며 폭력의 자극에 노출될 때마다 마치 종양처럼 푸른 살이 커지게 된다. 그리고 60년 후, 푸른 살이 개인의 폭력성을 통제하는 생물학적 규제 수단으로 작용하며 폭력 범죄는 경이로운 속도로 세상으로부터 사라진다. 푸른 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이해된다.

앞서 언급한 '인디고'는 탈옥한 사람들처럼 온몸이 파란 살로 덥힌 사람들이다. 즉 범죄를 저질러 법에 의해 감옥에 가뒀지만 탈옥해 이들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소설의 극적 긴장감을 더한다. 인디고(indigo)란 원뜻은 일년생 초본식물인 쪽 또는 남(藍, 학명 persicaria tinctoria)의 영어 명칭이며, 그 어원은 원산지 인도에서 유래했다. 특유의 남색을 띠는 유기 화합물로서 식물이나 동물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 염료(natural dye)이다. 근대 이전에는 푸른빛을 띄는 염료가 없었기 때문에 귀중하게 취급되었다. 오늘날에는 화학 합성을 통해 대량 생산이 가능해서 값이 저렴해졌고, 특히 청바지의 염료로 많이 사용되는데 이외에도 비단이나 울 같은 동물성 직물의 염색에도 사용된다.(화학백과)

신화에 따르면 그리스·로마에서 선호되었던 색은 빨강, 검정, 노랑, 흰색이었고, 로마에서는 특히 청색을 기피했다. 로마인들은 청색을 어둡고 미개하며 세련되지 못한 색으로 인식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청색 의상은 품위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제국 초기에는 장례의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여성의 경우 정숙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심지어 무지개에서도 청색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중세 사회 역시 기독교에서도 검정, 흰색, 빨강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12세기 들어 색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중세의 고위 성직자 중 쉬제(1081~1151)가 생 드니 수도원을 재건축하면서 청색을 신성한 천상의 빛, 모든 창조물르 비추는 빛으로 등장한 이래 신성한 신의 색으로 탈바꿈하게 됐다고 한다.

 

 

'휴머노이드(humanoid)'는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모습을 갖춘 로봇을 가리키는 말이다. 머리·몸통·팔·다리 등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 로봇을 뜻하는 말로, 인간의 행동을 가장 잘 모방할 수 있는 로봇이다. 인간형 로봇이라고도 한다. 이 소설에서는 레미가 대표적인 등장인물이다. 이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은 2095년 22세기를 불과 몇 년 앞둔 시점이다. 특히 소설의 무대도 한반도 대한민국 경북에 존재하는 가상의 도시다. "레미는 도로변에서 잠시 트럭을 대고 차창을 열었다. 관자놀이에 달린 동그란 발광체가 햇빛을 받아 배터리 충전을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일식 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일식 영향권에 드는 때에는 온종일 일식에 관한 속보만 전해졌다." 이 소설의 처음 부분이다. 그리고 라디오 보도가 이어진다. "닷새 뒤인 2095년 11월 27일 오전 8시 18분경, 한반도의 금세기 마지막 금환일식이 벌어집니다. 한국을 비롯해 달의 본그림자가 통과할 예정인 동아시아 전역에서는 벌써 대규모 축제가 열리는 곳이 많습니다. 일식 범죄의 기승으로 최근 범죄율이 급증했습니다. 개인의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초월동아시아는 입국 제한 조치를 시행 중이빈다. 대상은 임시비자 소지자와 외국인 여행객이며 국가별로 예외 사항이 상이하니 외교부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입국 제한 조치는 일식이 완전히 끝나는 11월 27일 오전 10시에 해제되며···"(p.9~10)

금환일식(annular eclipse, 金環日蝕)은 독자들도 잘 아다시피 일식 때 태양의 가장자리 부분이 금가락지 모양으로 보이는 현상의 일식을 말하며, 금환식이라고도 한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어지고, 태양까지의 거리가 다소 가까워지면 달의 시지름이 태양의 시지름보다 상대적으로 작아지는데, 이때 달이 태양의 광구(光球)를 완전히 가리지 못하므로 본그림자가 지표에까지 닿지 못하여 일식현상이 생긴다. 재미있는 자연현상이지만 태양의 물리적 연구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천체물리학계의 설명이다.

 


 

지구의 모든 인간은 푸른 살에 감염된 후부터 태어나면서부터 푸른 살이 피부에 나타난다. 그러다 온몸이 파란 살이 되면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게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가상의 설정에 따라 일반 사람들이 온몸이 푸른 살인 사람을 거리에서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다. 십중팔구 탈옥자나 범죄를 위해 변장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레미는 휴머노이드다. 범죄자를 쫓거나 탈옥자들을 추적하는 경찰 역할의 인력이다.

두 개의 천체가 완전히 겹쳐져 푸른 살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금환일식이 147년 만에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그 시기에 맞춰 푸른 살에 강한 내성을 가진 인디고들이 국제교도소를 탈출하여 한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들 중에 10년 전 뇌파를 자극해 급속도로 푸른 살을 성장시켜 2억 명의 사람들을 죽게 만든 대학살자 ‘아이버스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시민들은 혼란에 빠진다.

드디어 금환일식이 예정된 날 오전 6시. "하늘은 매우 느리게 밝아오고 있었다. 금환일식까지는 이제 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사람들을 옭매고 있던 푸른 살이라는 쇠사슬이 곧 있으면 풀린다. 일식이 지속되는 그 몇 분간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드레스텐은 차창 너머 도심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형체가 없는 무언가가 드레스덴이 탄 경찰비행차 쪽으로 빠르게 몰려들고 있었다. 그것은 어둠이었다. 밤새도록 도시를 밝히던 빛이 저 멀리서부터 꺼지고 있었다. 건물의 불빛이 일렬로 세운 촛불이 꺼지듯 차례로 암전되었다. 가로등도 도미노처럼 꺼졌다. 도로 저편에 모습을 드러낸 미륵 유원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얼시의 상징과도 같은 지름 150미터짜리 대관람차의 조명들이 한순간에 빛을 잃었다. 회전목마, 롤로코스터 등 다른 놀이기구까지도···."(p.243)

 


 

아이버스터가 ‘대량 학살자’ ‘세기의 악마’라고 불리기보다 ‘아이버스터’라는 멋들어진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를 증오하는 사람들만큼이나 그를 추앙하는 자들이 많아서였다. 아이버스터는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을 죽인 자이기도 하지만, 미처 자신이 죽이지 못한 원수들에게 대신 복수를 해준 자이기도 했다. 가정폭력을 저지른 아버지, 바람을 피워 아내와 자식까지 버린 전 남편, 학창 시절 내내 따돌림을 주도한 동창생, 전 재산을 투자하자마자 사라진 사기꾼···.(p.97)

 

인디고들은 건물 하나를 불사르고, 이번엔 도로에서 무수한 희생자를 냈다. 다행인 점은 세 인디고 중 한 명이 죽었다는 것이고, 불행인 점은 그 외 나머지의 행방이 또다시 묘연해졌다는 것이었다. 드레스덴은 주먹으로 연이어 핸들을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어김없이 푸른 살이 발작했다. 그는 거의 이성을 잃고 고통에 몸부림쳤다.(p.135)

 

한결의 말이 맞다면 수색 로봇들은 언덕을 넘은 적이 없고, 마치 수색을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이전에 찍은 영상을 누군가가 절묘하게 이어 붙인 것이었다. 혹은 촬영된 부분을 의도적으로 잘라내고 이전에 찍은 영상으로 대체했을 수도 있었다.

‘우린 어디에나 존재한다.’

완전자유연대가 공개했던 선언문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p.154~155)

 


 

한얼시는 물론 세계가 주목한 대학살자 아이버스터의 공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젠 소설이 3부로 넘어간다. 이 소설은 간단한 얼개에 유기적으로 구성돼 긴장감을 높인다. 모두 3부로 이뤄져 있다. 1부 「케르베로스」, 2부 「인간에게 죽음을」, 3부 「인간에게 평화를」 등이다. 1부가 운석의 충돌로 '푸른 살'에 감염된 지구의 모든 사람들 중에 10년 전, 대학살을 주도했던 ‘아이버스터’는 또 다른 복수를 위해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대관람차가 있는 미륵 유원지로 향한다. 과연 인류는 눈앞에 닥친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두고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이 어지럽게 진행되며 인류의 종말을 보는 듯한 내용이 2부에서 펼쳐진다..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이종의 존재라는 대립항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과 선악의 의미까지 묻는 이 작품은, 디스토피아 장르물을 선호하는 독자층이 원하는 진중한 주제의식까지 갖췄다”(주원규 소설가)라는 점에서 놀라움을 자아낸는 평가를 받은 이 소설은 제 3부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과연 저자 이태제는 지구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깊은 사유로 이 소설을 집필했을 그의 미래관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새로운 SF 세계를 확장시키는 시금석이 될 만한 역작이다.

 

침대에 눕혀지며 드레스덴은 자신을 도와준 밤낚시꾼, 아니 의사인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 의사의 인상과 성품, 그리고 눈빛을 읽어보려 애썼다. 그것들은 푸른 살의 크기처럼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드레스덴의 눈이 정처 없이 헤맸다. 하지만 그는 이내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자신은 이제 푸른 살이 아닌 다른 것들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상대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듯이.(p.296~297)

 

저자 : 이태제

 

교직에서 일하며 틈틈이 소설을 쓰고 있다. 2022년에 장편소설 『푸른 살』로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대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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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 : 세 번의 봄 안전가옥 쇼-트 20
강화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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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관계는 생각할수록 오묘하다. 이 세상에 좋은 대인 관계가 많이 있지만 모녀처럼 특별한 관계는 없는 것 같다. 알면 알수록 사랑 이외의 아무것도 없지만 언제나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은 3대째 내려가는 모녀 관계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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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 : 세 번의 봄 안전가옥 쇼-트 20
강화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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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지 않고 책을 읽는 것. 쓰는 것. 계속 쓰는 것. 삶이 더 단순해졌으면 좋겠다."라고 「작가의 말」에 짧은 글을 남긴 이 책 『안진 : 세 번의 봄』의 저자 강화길은 여전히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한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지만 밖으로 꺼낸 말은 함축적이고 단순하다. 이 책 『안진: 세 번의 봄』은 장편소설 『다른 사람』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단편소설 「음복」으로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소설가 강화길의 신작 단편집이다. 출판사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로서는 스무 번째 책이다. 앤솔로지와 문예지에 발표했던 기수록 단편 「산책」 「비망」 「김은 밤들」이 실린 이번 단편집은, 안진이란 도시에서 펼쳐지는 세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작은 안진 3부작’인 셈이다.

저자는 세 번의 봄을 배경으로 안진이란 도시에서 펼쳐지는 세 편의 가족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중에서도 사랑과 미움이 범벅된 모녀의 이야기, 특유의 서늘하고 긴장감 넘치는 문장과 죽음과 삶을 아우르는 스릴러적 서사를 양손에 그러쥐고 치밀하게 자아냈다. 세 개의 단편은 울퉁불퉁하지만 서늘하고, 뾰족하고 긴장감 넘친다. 안진이라는 도시는 저자가 만든 가상의 도시이지만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신도시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그곳엔 길을 헤매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찾아 나서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사라졌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여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저자는 세 번의 봄을 지나, 네 번째 봄을 기다리고 있다. 화해도 아니고 봉함도 아닌 세 편의 소설 속 여자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저자는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무언가를 더 설명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인물들을 움직인다. 여자들을. 딸과 어머니들을 걷게 한다. 봄 가까이로 따로 때로는 함께.

 


 

「작가의 말」에 말을 끝맺기 전에 남길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듯 그답지 않게 긴 말을 쏟아냈다. "지난 주, 벚꽃이 피었다. 이 시기의 밤 산책을 좋아한다.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꽃잎들을 보고 있으면 무척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든다. 며칠 전 비가 내렸고, 꽃잎들이 많이 떨어졌다. 추위가 돌아왔다. 그래도 푸른 잎들이 돋아나고 있다. 3년 전, 아니 그보다도 전에,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도 못할 어느 무렵, 나는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쓰기 시작했다. 다른 소재의 단편소설을 쓰기도 했고, 장편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그 이야기들 역시 이 씨앗에서 피어난 다른 줄기의 열매라는 걸 잘 알고 있다."(p.111)

한 번 읽고 무언가 느낌이 있어 다시 한 번 더 읽었다. 보통 소설책엔 소설이 끝나고 작가들이 탈고의 느낌을 글로 몇 문장, 몇 단락 써서 후련한 느낌을 밝힐 때가 많다. 이 글도 그려려니 하고 읽다보니 문득 혹시 '자전적 소설'인가 하는 느낌이 슬며시 올라온다. 3년 전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기 시작해 3편의 소설을 썼다면 1년에 한 편꼴(?). 그러나 이내 저자는 중간에 다른 단편이나 장편소설도 썼다고 하니 적잖은 소설을 발표한 듯하다. 밤 산책(봄이 되면)이 좋아, 혼자 집 근처 산책을 즐기는 저자는 지난 3년 간 쓴 소설의 배양처가 이 소설집에 나온 분위기와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든다. 다른 글에도 이 책의 배경인 〈안진〉이란 도시가 배경이 되는지는 독자가 잘 모르겠지만 '씨앗'이란 의미를 확대 해석해 보면 분위기나 저자가 추구하는 소설 속 세상이 현실과 다를 수 없다는 걸 유추하기엔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


 

이 책 세 편의 단편 소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녀 관계다. 어머니와 딸, 상식적이고 일반적이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돈독하고 친밀한 관계다. 모녀지만 친구 사이처럼 보일 수도 있고, 때로는 스승과 제자처럼 보일 수도 있다. 또 언제나 자기 편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 사이다. 대부분의 모녀 관계는 절대 배신 당하지 않는다. '사랑' 이외엔 두 사람 사이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 소설들은 약간은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 때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모녀, 사제, 친구도 될 것 같은데 어딘가 뒤숭숭하고 잊을 줄로만 알았던 어떤 순간이 훅 떠올라 예상치 못한 기분으로 산책을 마친 것 같은(프로듀서의 말, p.116) 느낌의 분위기다. 출판사 〈안전가옥〉 이은진 스토리PD의 말처럼 "어쩌면 사실에 좀 더 가깝다고 믿는 모녀 관계란 이 작품이 보여주듯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이라든가, 애써 다른 감정으로 덮고 덮이면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복잡함을 지닌 '동성의 혈연관계'가" 아닐까 싶다. 이 PD는 이 감정을 "애틋하다고만 할 수 없는 우리의 관계를, 다르지만 마음 놓고 다룰 수 없었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표현에 독자는 공감한다.

"나는 다시 믿는다. 분명 보았다고. 텅 비어 있는 건물 뒤쪽의 철근 다리 위에 멍하니 서서, 눈앞에 펼쳐진 미래의 얼굴을 보았다고. 새카만 눈동자와 잔뜩 신이 난 듯한 입꼬리. 충만한 표정.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눈빛. 결코 자신의 마음을 아끼지 않는, 그래서 언제든 모두를 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편안한 얼굴. 그랬다. 그랬단다.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랐기에, 너 역시 엄마를 용서하지 않기 위해 온갖 핑계를 찾아낼 줄 알았는데,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먼저 상처를 주고, 믿지 않기 위해 먼저 믿음을 저버리는, 그러고서 그냥 모르는 척 살아가는, 사람의 역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랬는데."(p.41) - 「깊은 밤들」 중에서

 

 

첫 번째 소설 「깊은 밤들」은 "아홉 살 겨울, 정민은 엄마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보냈다. 내가 아니라, 나의 엄마에게 말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며칠 뒤,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다. 손녀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에 ‘건강하세요’가 ‘건강하새요’로 적혀 있었다는 것. 엄마는 'ㅔ'와 'ㅐ'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에 대해 계속 설명한다. 나는 엄마의 말을 자르며 말한다. “엄마. 나한테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그리고 택시도 잡히지 않는 늦은 밤, 나는 딸의 손을 잡고 결국 집을 나선다. 몇십 년 동안 엄마에게서 상처받은 채 가슴에 고여 있던 말을 오늘만은 해야 했다. 엄마가 내 딸에게만큼은 손도 대지 못하게 해야 했다.

어린 딸은 할머니가 알려준 길이라며 지름길로 나를 이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아이를 잃어버린다. 엄마 때문에. 「깊은 밤들」은 수십 년에 걸친 ‘엄마’와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끝내는 건, 아니 새롭게 시작하는 건 딸이자 손녀인 ‘아이’다. ‘모녀 삼대’의 이야기지만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이 소설에서 보아야 하는 건 ‘사실’보다는 ‘진실’이고, 지금 막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보다는, 지금까지 쭉 잃어버려 왔던 것들이다. 엄마를 미워하며 클 줄 알았던 딸은, 나 같은 인간이 될 줄 알았던 딸은, 그렇게 자라지 않았다. 그것이 주는 위안과 감동이 너무 커서, 우리는 모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깊은 밤으로 천천히 빠져들 수밖에 없다.

 

"아이가 먼저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함께 다리를 건넜다. 돌아가는 길이었고, 깊은 밤이었다."(p.41)

 


 

두 번째 소설 「비망(備忘)」에서 '그녀'는 이혼 후 딸을 혼자 키워야 했고, 위자료 때문에 전남편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으며, 직장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더불어 그녀는 부모의 이른 죽음, 40대 초반에 찾아온 갑상샘암이라는 느닷없는 폭발들을 맨몸으로 겪었다. 하지만 그 고비들은 그녀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다음 결혼식에는 뭘 입어야 하지? 재킷? 원피스? 그것이 그녀의 삶이었다. 가볍게 웃고, 떠들고, 새 옷을 사고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고, 예쁘다는 말을 듣고 좋아하고, 또 좋아하고… 그녀의 삶의 범위는 오직 아는 사람들과 아는 장소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딸은 말했다. “벽돌로 쌓은 성.” 그녀가 여행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건 당연했다.

〈비망(備忘)〉은 그런 그녀가, 지난 1년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지내온 그녀가, 집 밖으로 나와 살아생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난생처음 비행기를 보고, 체크인을 하고, 출국 심사를 받고, 딸을 이해하는 이야기다.

 

“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던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래. 난생처음. 그녀의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그랬다. 기대와 설렘이 밀려들었다. 흥분이 되었다. 그녀는 그 마음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이제 내가 곧 저걸 타겠구나. 하늘을 날아 보겠구나. 난생처음으로. 그래. 난생처음으로. 이것이야말로 새것이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 이렇게 간단했던가. 이렇게 쉬웠단 말인가. 무엇을 보아도 내키지 않던 작은 마음이, 어떤 의지와 힘도 남아 있지 않다고 굳게 믿었던 마음이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거대해질 수 있단 말인가.(p.74~75) - 「비망(備忘)」 중에서

 


 

세 번째 소설은 다슬기를 잡기엔 아직은 추운 4월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종숙 언니는 영애 씨에게 다슬기를 잡으러 가자고 말한다. 오랜만에 집에 오는 딸이 다슬기 수제비를 좋아한다고. 영애 씨의 마음이 움직인다. 지난가을 죽은 딸 얘기를 영애 씨가 아무리 말해도 종숙 언니만이 영애 씨를 똑같이 대해줬기 때문이다. 한참이나 물속을 들여다봤지만 다슬기는 없다. 그런데 영애 씨가 더 가지 말라고 말해도, 종숙 언니가 조금씩 더 깊은 물로 들어간다. 영애 씨가 팔목을 붙잡고 나가자고 말하는데도, 종숙 언니는 고집스레 물속의 어딘가를 응시한다. 그리고 그 순간, 영애 씨의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린다.

거대한 철문이 움직이는 듯한, 알 수 없는 존재가 지켜보는 기분. 머리 위에서. 두 사람은 함께 물속으로 떨어진다. 집에 가는 길에 종숙 언니는 말한다. 사실 오늘 딸이 집에 안 온다고. 영애 씨도 입을 연다. 사실 자기 딸도 자기를 싫어했다고. 죽기 전까지 계속 그랬다고. 「산책」의 화자는 영애 씨의 딸인 죽은 ‘나’다. ‘나’는 목소리로만 남은 채, 엄마 영애 씨와, 영애 씨의 친구인 종숙 언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사랑과 애증이 섞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떠나지 못하는 모녀의 이야기를.

 

아니, 그 사람은 영애 씨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집 안을 둘러보는 것 같았다. 배회하는 것 같았다. 우는 것 같았다. 웃는 것 같았다. 사실이었다. 나는 영애 씨의 주변을 떠돌았다. 그리고 떠올렸다. 내가 영애 씨에게 했던 말들. 내가 하지 않은 말들. 그래서 후회하는 말들. 계속 기억하는 말들. 사람들은 모두 다 엄마를 떠날 거야. 엄마와 멀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거야. 그래서 엄마는 결국 혼자 남을 거야. 그 누구도 곁에 있지 않을 거야.(p.107~108) - 「산책」 중에서

 

저자 : 강화길

 

1986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예술종합학교에서 서사창작 석사학위를, 동국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장편소설 『다른 사람』 『대불호텔의 유령』, 중편소설 『다정한 유전』 등을 펴냈다. 한겨레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젊은작가상 대상, 백신애문학상, 제45회 이상문학상 등을 받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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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필경사 바틀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허먼 멜빌 지음, 박경서 옮김 / 새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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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은 19세기 미국 낭만주의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모비딕Moby Dick』을 통해 미국의 대서사시를 완성했다. 이미 이전의 단편소설에서는 삶을 자본주의의 돈과 바꾸지 않겠다는 노동자들의 저항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단편소설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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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 지음, 박경서 옮김 / 새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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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필경사 바틀비』는 해양소설의 고전 『모비딕』으로 잘 알려진 허먼 멜빌의 단편소설집이다. 멜빌은 우리들에게 워낙 '흰고래' 『모비 딕』으로 많이 알려진 탓에 그가 단편소설을 썼다는 사실은 가려져 있었다. 독자도 그의 단편소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읽는다. 사실 『모비 딕』도 출간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의 두 다리를 앗아간 흰고래에 대한 복수심으로 시작된 이 소설이 지향하는 것은 민주주의, 리더쉽, 권력, 산업주의, 노동, 확장, 그리고 자연 등 미국의 모든 형상과 지위에 대한 위대한 고찰이란 뒤늦은 평가에 힘입었다고 이해된다. 피쿼드 호와 거기에 타고 있는 각양각색의 선원들은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 혁명적인 소설은 수많은 문학 작품과 전통에서 그 바탕을 빌려왔으며,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놀랄 만큼 자유롭게 오간다.

『모비 딕』 이전까지는 미국 문학사상 그 어느 누구도 이렇듯 강렬하고 야심만만한 작품을 시도한 적이 없었다. 『모비 딕』에서 독자는 난해한 형이상학과 고래의 거죽을 벗기는 기술, 소금물에 젖은 타는 듯한 드라마를 모두 맛볼 수 있다. 소설로서 소재와 주제, 문장력까지 모두 갖춘 위대한 작품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평가받아 붙여진 찬사다. 허먼 멜빌은 무역상을 하던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지만 13세 때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한다. 그때부터 멜빌은 은행이나 상점의 잔심부름, 농장일 등을 전전한다. 20세에 처음으로 상선의 선원이 되어 바다로 나간 그는 22세에 포경선을 타게 된다. 이때 항해를 하면서 얻은 경험은 그의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된다. 이후 포경선의 선원과 미 해군이 되어 5년 가까이 남태평양을 누볐다.(이하 저자 소개는 글 뒤에) 특히 이 소설은 대학 문턱도 못 밟아본 채 자신의 경험의 축적을 통해, 사유 끝에 쓴 소설이라 더욱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놀라움을 함께 선사했던 고전이다. 후세 사람들은 『모비 딕』은 비가(悲歌)이자 정치 비평이요, 백과사전이요, 모험담이라는 평가를 붙이고 그의 위대한 작품을 읽고 또 읽게 된 것이다.

 


 

위대한 작가 허먼 멜빌이 쓴 단편소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 『필경사 바틀비』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이 책 속 세 편의 소설은 그의 삶에서 사유해낸 자본주의의 허점을 제대로 짚어내는 소설들이다. 첫 작품은 표제어가 된 「필경사 바틀리」는 자본주의가 성숙하여 부와 명예가 최대의 삶의 조건이 되는 19세기 미국의 월가를 배경으로 한다.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한 필경사 바틀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화자(변호사)의 요청을 모두 거절하면서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왜 그랬을까. 19세기 중반의 미국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며 영리목적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있었다.

작품 속 변호사(화자)는 바틀비를 걱정하는 듯했지만, 실은 떨어지는 업무 효율성, 불복종에 화를 내고 있었다. 그리하여 바틀비는 노동은 물론이고 변호사의 권위까지 거부함으로써, 수동적이지만 자본주의적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다. 바틀비의 소극적 저항은 관습과 위선으로 가득 찬 변호사의 이기주의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져 그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필경사 바틀리」는 멜빌이 쓴 최초의 단편이라고 한다. 역자 박경서에 따르면 1853년 〈퍼트넘스 먼슬리 매거진〉 11월호와 12월호 두 차례에 걸쳐 연재됐다. 멜빌의 작품 중 가장 모호한 작품으로 이해하기가 만만찮다. 부제 〈A Story of Wall-street〉에 드러나듯이 이 작품은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거리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한다. 월가의 한 변호사가 화자(話者)로 등장해 자신이 살면서 가장 잊지 못할 어느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자인 변호사는 두 명의 필경사와 한 명의 사환을 두고 있었는데, 일이 많아져 필경사 한 명을 고용한다는 광고를 냈고, 바틀비가 찾아온다.

 


화화자인 변호사는 그때 바틀비의 모습을 '얼굴이 창백하리만치 말끔했고, 동정이 갈 만큼 예의가 발랐으며,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외로워 보였다."고 생생하게 기억한다. 바틀비는 처음에는 열심히 일을 했지만, 어느 날, 베낀 문서를 대조해 보자는 화자의 요청에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하며 거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틀비는 화자의 요청을 모두 거절하면서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사무실을 자신의 거처로 살고 있기도 했다. 화자는 바틀비를 설득해 보지만 헛수고일 뿐, 결국 그를 남겨 두고 사무실을 옮기지만 바틀비는 그곳에 계속 눌러앉아 있게 된다. 변호사는 바틀비에게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하는 등 도움을 주려 하지만 이것마저 모두 거절한다. 마침내 바틀비는 뉴욕시 교도소에 수용되어 죽게 된다.

사실 이 작품 줄거리를 처음 들어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읽고는 있지만 저자가 주인공인 바틀비에 대해 전혀 인물 정보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화자의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한 후 얼마간은 열심히 일을 하다가 갑자기 그저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고, 그러다 쫒겨나 쓸쓸히 죽어 갔다는 사실만 알려줄 뿐이다. 역자는 바틀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귀띔한다. 바틀비라는 인물에 대해, 그가 어떤 일을 하다 어떻게 결과로 나타났는가에 대한 일체의 것이 화자의 입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월가는 아직 증권거래소가 설립되기 전이지만 미국 자본주의의 중심지로서 상업, 금융업, 부동산업이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이런 도시에서 자본가들, 그들의 하수인 격인 변호사들, 그리고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수익을 쫓으며 삶을 영위하는 구조로 시스템화 돼 있었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얼핏 화자인 변호사는 신사로서, 바틀비를 측은하게 생각해 그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구현하는 바람직한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주식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당대의 거부 존 제이콥 애스터를 비롯한 자본가들의 사업 허가, 부동산 거래, 금융 거래 등과 관련된 법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자본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인물이다. 애스터로부터 신중하고 꼼꼼하다는 칭찬을 듣는 바, 대 자본주의적 현실주의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화자의 사무실은 자본주의 체제의 축소판이며 그를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인물'이라 간주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변호사 사무실로 눈을 돌려 본다. 고용주인 변호사는 그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필경사인 니퍼스와 터키가 '소화불량'과 '발작'을 겪고 있음에도 그의 사무실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이 제정신이 들 때는 일을 민첩하게 잘 처리하고 글씨를 깔끔하게 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호사는 그들이 정상적인 상태에 있을 때 그들의 효용 가치를 최대로 끌어내려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변호사는 19세기 미국의 자본주의 하에서 영리 목적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취급ㅁ하는 인간의 전형이 된다. 바틀비를 보는 관점 역시 동일하다. 바틀비는 처음부터 서류를 베껴 쓰는 일에 걸신이라도 들린 듯 서류를 단숨에 집어삼켰고,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양초 빛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류를" 베꼈다. 변호사는 바틀비가 비정상적으로 일에 몰두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갖기보다는 업무의 효율성과 성과에 만족한다.

그러다가 바틀비의 노동의 저항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줄기차게 "안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자신의 노동에 저항한다. 변호사는 바틀비의 행동을 '수동적 저항'의 병적인 집요함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바틀비는 노동은 물론이고 변호사의 권위까지 거부함으로써 수동적이지만 자본주의적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이유를 파고든다. 소설은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로 끝을 맺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소설이 쓰인 19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분분하다고 역자는 설명한다. 베일에 싸인 바틀비의 삶의 궤적만큼이나 명쾌한 해석을 내리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외로워 보이는’ 바틀비라는 문장이 가슴속으로 통째로 들어오면서 바틀비의 행위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번 아웃’이 아니었을까. 결코 전달되지 못할 ‘죽은 편지들’(죽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수합하고 불태워야 했던 전의 직장, 법정의 언어들을 하루 종일 365일 베껴 써야 하는, 또 하나의 죽은 노동인 현 직장을, 생명 있는 사람이 어떻게 견뎌 낼 수 있겠는가. 그러니 바틀비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고 싶어요!”라고 절규했을 것이다.

이어지는 단편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와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에서도 저자 멜빌이 주목하는 인물들은 자본가 등 지배층과 노동자 하인 등 피지배층의 이분법적 구도를 갖고 있다. 그리고 핵심어는 '노동'으로 집약된다. 즉 자본과 노동의 이분법으로 나뉘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대조적 장면과 인물들을 좇아가며 암담한 자본주의의 미래를 조명하고 있다.

멜빌의 소설에서 어떤 노동은 비참하지만, 돈으로 환산되어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을 거부한다. 바틀비와 메리머스크의 동질성이다. 반면에 폐에 켜켜이 쌓이는 분진을 의식하지 못하는 처녀들의 노동은 가엾다. 참담하다. 이처럼 멜빌은 자본주의가 무르익기 시작하는 19세기 미국 사회의 이면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저자 :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미국의 소설가. 1819년 무역상이던 아버지 앨런과 어머니 머라이어의 둘째아들로 뉴욕 파르 거리 6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지만 13세 때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한다. 그때부터 멜빌은 은행이나 상점의 잔심부름, 농장일 등을 전전한다. 20세에 처음으로 상선의 선원이 되어 바다로 나간 그는 22세에 포경선을 타게 된다. 이때 항해를 하면서 얻은 경험은 그의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된다. 이후 포경선의 선원과 미 해군이 되어 5년 가까이 남태평양을 누볐다.

포경선에서 탈주해 마르키즈 군도의 식인종과 함께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첫 작품 『타이피Typee』(1846)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바다 생활을 담은 『오무Omoo』 (1847)에 이어 발표한 『마디』(1849)에는 철학적 논의들을 담았지만 평단의 차디찬 반응에 멜빌은 다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바다에서의 모험으로 돌아가 『레드번』(1849), 『하얀 재킷』(1850)을 발표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바틀비, 월 스트리트의 한 필경사 이야기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1853)는 1856년 다른 중단편들과 함께 『회랑 이야기The Piazza Tales』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대표작 『모비 딕Moby Dick or The Whale』(1851)조차도 그 실험적인 형식으로 인해 혹평에 시달린다. 그는 작가로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뉴욕 세관의 감독관 자리를 얻어 근무했다. 그래서 소설 창작은 접고 시 창작에만 몰두했다. 남북 전쟁을 그린 『전쟁 시와 전쟁의 양상』, 종교적 장시 『클라렐』, 그리스와 이탈리아 여행의 인상을 담은 『티몰레온』이 그때의 시집들이다. 마지막 소설 『선원 빌리 버드 인사이드 스토리Billy Budd, Sailor: An inside story』를 원고로 남긴 채, 1891년 9월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모비 딕(백경)』은 캘비니즘적 그리스도교 사상에 의지하면서도 때로는 그 범주를 넘은 견해를 제시하여 인간심리의 착잡함을 비유적·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 역시 오늘날에 와서 더욱 각광받는 부분이 되었다. 근대적 합리성을 거부하는 철학적 사고, 풍부한 상징성이 뭍어나는 작품을 쓴 하먼 멜빌. 살아생전에는 단순한 해양 탐험 소설을 썼다과 평가되었을런지 모르지만 1920년대에 극적으로 재평가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친구 N. 호손과 더불어 인간과 인생에 비극적 통찰을 한 상징주의 철학적 작가로,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역자 : 박경서

영남대학교 동 대학원에서 조지 오웰 문학을 전공해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남대학교와 부산 가톨릭대학교에서 영문학 강의를 했으며, 번역과 문학 연구에 매진했다. 『코끼리를 쏘다』(실천문학사, 2003), 『1984년』(열린책들, 2009), 『동물 농장』(열린책들, 2009), 『버마 시절』(열린책들, 2010), 『영국식 살인의 쇠퇴』(은행나무, 2014) 등 오웰의 소설 및 수필집을 번역했으며, 『조지 오웰』(살림, 2005)을 저술했다. 그 외 다수의 번역서와 논문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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