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 - 당신이 지나친 미술사의 특별한 순간들
이원율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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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은 르네상스부터 현대의 팝아트까지 모두 23개의 미술사조를 다루는 한편, 각 사조의 ‘아버지’라 불릴 만한 선구적 예술가 23명을 작품과 함께 소개한다. 그런 면에서 표제어의 '사적'은 '私的'이 아니고 '史的'의 의미로 읽어야 할 것이다. 저자 이원율은 미술 간련 일을 하는 분이지만 최근의 '미술 열풍'이 말 그대로 한때의 유행처럼 퍼진 열풍일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코로나19로 인한 전시회 관람 불가 상태의 대리만족을 위해 미술 애호가나 그림 감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으로나마 전시회 부재 현상에서 나온 일시적 열풍으로 생각했던 듯하다. 사실 그 점은 독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발발 선언을 계기로 일상이 올스톱되는 답답함 속에서 안전한 탈출구로선 집으로 배송되어 오는 미술 관련 책을 읽고 보는 일이었으니. 특히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이건희 컬렉션’ ‘마우리치오 카텔란: WE’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등 굵직하고 의미 있는 전시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어 미술 열풍을 이어가고 있어 미술 애호가들의 기쁨과 즐거움은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열리는 이들 전시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열띤 ‘피켓팅’(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켓팅)을 해야 겨우 갈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이에 자신의 〈헤럴드 경제〉 최고의 인기 칼럼 시리즈 ‘후암동 미술관’에 연재한 글들을 첫 책으로 묶었다. 이렇게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은 독자들의 끊임없는 요청에 힘입어 탄생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화가의 대표작에 관한 단편적인 해석에서 멈추지 않고 그의 일생과 그 사조의 특징까지 전체를 아울러 조망한다. 목차를 따라가며 읽다 보면 어느새 미술 화풍의 흐름을 자연스레 외울 수 있고, 빈센트 반 고흐와 구스타프 클림트 중 누가 ‘선배’인지 더는 헷갈리지 않을 수 있다. 이름이 우리말로 비슷한 마네와 모네의 그림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제대로 된 생애 첫 미술사 수업’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안성맞춤일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이 책의 목표는 모든 독자를 마니아 단계로 이끄는 것이라고 장담한다. 유명한 그림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 이를 창조한 인기 있는 예술가의 파편적인 사연 소개에서 멈추지 않는 이유이다. 역사를 바꾼 가장 파격적인 그림에 관한 유기적 해석, 시대를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를 끈질기게 추적해 찾은 내용을 추가로 담았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를 통해 미술사의 흐름과 각 사조의 아름다움이 손에 잡히게끔 만만하게 엮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독자들은 한 작품을 보고 한 시대를 조망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술 공부에 첫걸음을 뗀 독자들은 '완전한 생애 첫 미술사 수업', 적당한 수준을 넘어 미술을 본격적으로 알고 싶어진 독자들은 '제대로 된 생애 첫 미술사 수업'이 되도록 기초와 심화 단계의 해석과 그림 감상에 더해 미술사조, 즉 미술사의 흐름을 직조해 넣었다는 말이다.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독자들은 왜 우리에게 미술이 필요할까? 왜 전시회에 가고, 미술에 정을 붙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까?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어찌 보면 무용한 지식일 뿐인데 말이다. 저자의 질문에 답해보는 여유를 갖기 바란다. 현 시점에서 이 책을 읽을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공부란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라는 말에서 차용한 “미술은 인생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라는 말로 종종 이와 같은 질문에 답한다고 한다. 로코코 양식을 접한 후 유럽의 골동품 가게를 둘러볼 때, 인상주의를 공부한 뒤 바닷가에서 해돋이를 볼 때, 표현주의를 이해한 다음 요동치는 별과 흔들리는 밀밭을 볼 때 등, 더 많은 순간을 더 풍부한 감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일상 속 장면들이 가슴 벅찰 만큼 뭉클해지는 순간이 생기고, 그로 인해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미술이 새로운 가치를 가지는 순간이다. 많은 사람이 인생에 ‘자신만의 그림’ 하나쯤은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뛰어난 예술작품을 보고 매혹되는 순간의 감정을 일컫는다. 〈헤럴드경제〉 기자이기도 한 이원율은 운명처럼 마주친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미술에 흠뻑 빠져들었다. 사회부와 정치부를 거친 기자가 무작정 미술과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스탕달 신드롬에 비견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이후로 저자는 무려 10년 동안 미술과 관련된 글을 써왔고, 이 책은 그 10년의 결과물이다. 일방적인 짝사랑에서 시작해 완성한 이 책을 두고 그가 미술에 대한 자신의 ‘러브레터’라고 칭한 것은 이 때문이다. 혹시 당신도 미술을 짝사랑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좀처럼 그림과 가까워질 수 없어 애만 태우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공부를 시작한 사람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저자가 미술 애호가에서 마니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 스탕달 신드롬 : 역사적으로 유명한 미술품이나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각종 정신적 충동이나 분열 증상.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성당에서 겪은 정신적 육체적 경험을 자신의 저서 『로마, 나폴리, 피렌체(Rome, Naples et Florence)』(1817)에서 묘사하였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 스탕달이라는 이름은 작가 마리 앙리 베일(Marie-Henri Beyle)의 필명으로 독일 작센안할트주(SaxonyAnhalt) 알트마르크 지역(Altmark region)에 위치한 도시인 ‘슈텐트할(Stendhal)’에서 따온 것이며, 『로마, 나폴리, 피렌체』를 출간하면서 처음으로 사용된 필명이다.(두산백과 참조)

 


 

이 책은 모두 2파트(부) 2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까지〉, 2부에서는 〈신인상주의부터 팝아트까지〉를 다룬다, 1장 「‘인간처럼 우는 천사가 있네?’ 인간의 눈을 가진 최초의 화가-르네상스 선구자: 조토 디 본도네」 2장 「벽을 파낸 게 아니라 그림입니다! 600년 전 그림에서 풍기는 3D의 향기-원근법 선구자: 마사초」 3장 「결혼식이야 약혼식이야? 중요한 건 도장이라고!-유화 선구자: 얀 반 에이크」 4장 「‘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 정말로 악마의 아들인가요?-초현실주의 선구자: 히에로니무스 보스」 5장 「아리따운 금발 여인, 누구 목을 베고 있는 거야?-바로크 선구자: 카라바조」 6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섬, 무거운 이야기는 두고 오세요!-로코코 선구자: 장 앙투안 바토」 7장 「시대의 선택을 받은 남자. 그 진심이 궁금해!-신고전주의 선구자: 자크 루이 다비드」 8장 「‘뗏목 위에 있던 게 정말 사람일까?’ 표류가 남긴 격정적인 낭만-낭만주의 선구자: 테오도르 제리코」 9장 「“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프랑스에서 가장 오만한 남자-사실주의 선구자: 귀스타브 쿠르베」, 10장 「“내가 화가가 될 상인가?” 조선의 얼굴 중 우리가 몰랐던 사실-사실주의 특별 편: 윤두서」, 11장 「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인상주의 선구자⑴: 에두아르 마네」 12장 「“실력도 없으면서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900억이라고요?-인상주의 선구자⑵: 클로드 모네」로 1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어 13장 「수백만 개의 점으로 완성한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신인상주의 선구자: 조르주 쇠라」 14장 「반 고흐 최애작? 별밤도 해바라기도 아닌 ‘이 사람들’-표현주의 선구자: 빈센트 반 고흐」 15장 「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고? 도대체 왜?-근대 회화 선구자: 폴 세잔」 16장 「‘생각하는 사람’ 진짜 정체, 남모를 사정도 있었다-근대 조각 선구자: 오귀스트 로댕」 17장 「금빛으로 빛나는 애절한 키스, 주인공은 누구일까?-분리파 선구자: 구스타프 클림트」 18장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 정글, 사실 꿈에서 본 겁니다!-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앙리 루소」 19장 「헐크색 피부를 갖게 된 이 여성, 그놈의 남편 때문에!-야수주의 선구자: 앙리 마티스」 20장 「화폭 위에 음악을 담은 잘생긴 법학 교수님-추상회화 선구자⑴: 바실리 칸딘스키」 21장 「“이건 나도 그리겠다!” 아니, 아마 그리다 도망칠걸?-추상회화 선구자⑵: 피터르 몬드리안」 22장 「스파게티 면발 아니야? 1,315억에 팔린 그림, 충격적 이유-액션페인팅 선구자: 잭슨 폴록」 23장 「몸 좋은 보디빌더, 거대 막대사탕 들고 ‘의문의 포즈’-팝아트 선구자: 리처드 해밀턴」 등이 2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독자는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라 어느 한 사람, 한 작품을 '최애 작품', '최애 작가'로 꼽을 수 없지만 직접 그림을 본 작가들 중 클림트의 그림을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순전히 직접 봤기 때문이지 작품의 경향이나 질, 가치 등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임을 밝힌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입맞춤, 클림트의 그림 〈키스〉는 정말 압도적 위압감마저 주었다. 황금색이 주는 위엄 때문일까. 독자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그래서 기억이 생생하고 클림트에 주목한 이유이다. 그의 이야기가 실린 미술 도서를 찾아 읽고, 그의 그림이 실린 책들도 한두 권 소장했다. 저자는 일반적인 해석 후에 꽤 사적(私的)인 질문으로 비하인드 스토리를 끌어낸다.

"〈키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또 "거장 피카소로 하여금 살롱전 참가를 포기하게 만든 화가는 누구일까?", "팝아트의 ‘팝’이란 글자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와 작품들에 관해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비하인드를 풀어 놓는다. 앞서 언급한 '사적'이란 의미가 '史的'에서 '私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독자의 흥미와 관심이 있다면 '史的'이든 '私的'이든 관계치 않는다는 태도다. 독자 위주의 글쓰기와 그림 해석, 책 설명 등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작가적 의무일 것이다. 이는 화가의 주요 작품, 유명한 작품에만 설명의 한계를 국한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신념에 의한 것일 터 존경할 만한 작가적 태도로 믿는다.

단편적인 해설이나 흥미 위주의 파편적인 사연 소개에서 멈추지 않고, 역사를 바꾼 가장 파격적인 그림에 관한 유기적인 해석, 시대를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를 끈질기게 추적해 찾은 내용도 곁들인다. 사회부 출신 기자다운 집요함과 꼼꼼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책에 따르면 원근법을 그림에 시도한 최초의 화가인 마사초는 “내 그림은 삶과 같았다. 나는 인물들의 움직임, 열정, 혼을 실었다.”라고 고백했다. 그의 말처럼 이 책 또한 미술사조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화가들의 삶과 혼, 열정과 끈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미술 지식뿐만이 아니다. 희망과 용기, 꿈과 열정 같은 감정들도 지식 끝에 자연스레 따라붙을 것이다. 저자는 각 미술사조의 선구자들은 각각 다른 성격을 가지고 다른 환경에서 살았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강조한다. 바로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그들 모두 자신의 작품이 비난과 조롱을 받아도, 주변인들이 등을 돌려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고개는 늘 앞을 향해 있었고, 검증된 과거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면 중간은 갈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쳤다. 기성 화단에는 욕을 먹고, 대중에겐 조롱받고, 살롱전에서는 낙선하고, 그림은 잘 팔리지 않는 온갖 수모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렇게 견디고 버텨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마네는 미술 역사상 가장 많은 욕을 먹은 화가였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로 문제작 2연타를 친 덕에 최고의 문제아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그는 끝내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이 된다. 또 세잔은 주변인들에게 놀림의 대상이었다. 재능 없는 미련한 둔재라며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는 결국 근대 화가들의 스승으로 위대한 예술가의 반열에 섰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루소는 40살을 넘기고서야 전업 화가로 활동했다. 모두가 그의 아집을 비웃었다. 그런 그는 피카소도 인정한, 최고의 4차원의 예술가로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마찬가지로 괴짜라고 손가락질 받던 쿠르베 품만 잡는다고 지적당한 모네, 야한 그림을 그린다고 비난받던 클림트 또한 진짜 혁명가, 빛의 마술사, 항금의 화가가 돼 미술사의 주역을 차지했다.

 

바토는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창시자입니다. 로코코 미술은 우아하고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이는 화풍입니다. 대표적인 장르가 「키테라섬의 순례」에서 파생한 ‘페트 갈랑트’입니다. 주요 소재는 우아한 차림새의 남녀, 사랑을 속삭이는 자세, 전원 풍경 같은 한가로운 배경, 섬세하고 럭셔리한 소품 등입니다. 지금도 골동품 가게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그림체입니다. 로코코 미술을 가장 직관적으로 표현한 게 “바토의 정원(그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라는 말일 겁니다. 그만큼 밝고, 가볍고, 유희적이기만 했다는 뜻입니다.(p.117)

 


 

한창 그림을 내지르던 루소가 한번은 사기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루소가 그때 재판관과 나눈 대화가 재미있습니다. “판사님! 제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제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러면 누가 제일 피해를 본다는 거요?” “예술이요. 예술 그 자체가 피해를 보게 됩니다!” 훗날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 된 점도 흥미롭습니다. 루소는 회화 무대를 현실에서 환상, 나아가 과거와 현재의 한 장면에서 다른 차원 내지 미래의 한 시점으로 넓히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아울러 루소의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 구성은 입체파와 추상회화, 단순화된 형태는 팝아트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p.374)

 

이 거장들이 벌인 일종의 ‘투쟁의 미술사’를 읽어내리다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게 무엇이든 자기 확신만 있다면 신념대로 밀고 나가도 된다고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렇듯 역사적 의미를 지닌 그림에서 내 인생과 닿아 있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면, 그 그림은 ‘사적인 그림’이 된다.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나만의 그림’을 찾아보자. 이전과는 다른 해상도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저자 : 이원율

 

〈헤럴드경제〉 기자이자 미술 스토리텔러. 2013년,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아 미술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미술 비전공자이기에 오히려 어떻게 표현해야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그림을 보고 이해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했다. 그 결과 누적 조회 수 700만 회 이상, 〈헤럴드경제〉 화제의 칼럼 ‘후암동 미술관’을 세상에 내놓았다. 사회부와 정치부를 거친 기자답게 집요하고 꼼꼼하게 사실을 되짚고 풍부하게 설명한 글로 화제를 모은 그의 칼럼에는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흥미롭게 읽게 된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없는데도 이해할 수 있다.” “토요일만 되면 기다려지는 기사.”라는 호평이 가득하다. “미술은 인생의 해상도를 높인다.”라는 말을 믿으며, 독자들에게 미술로 인해 풍부해지는 일상을 선물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 저서로는 《하룻밤 미술관》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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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스완
우치다 에이지 지음, 현승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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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스완〉은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다. 우치다 에이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우리에게는 ‘초난강’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일본의 탑배우 구사나기 츠요시와 이 영화 한편으로 최고의 스타덤에 오른 신예 핫토리 미사키가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2021년 제44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동명의 이 책 『미드나잇 스완』은 우치다 에이지 감독이 영화 개봉에 맞춰 동시 출간한 소설 작품이다. 물론 내용도 같다. '고독한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영화·출판계의 평에 따라 영화 못지않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주인공 ‘나기사’는 자신이 트렌스젠더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숨긴 채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트랜스젠더 바에서 쇼걸로 일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연락을 해온 엄마는 조카 ‘이치카’를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무작정 나기사가 있는 도쿄로 이치카를 올려 보낸다. 이치카는 엄마 `사오리`의 방치와 학대로 마음을 닫아버린 소녀이다. 당연히 남자인 줄 알고 삼촌을 찾은 이치카는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은 나기사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고, 나기사는 이치카에게 약간의 연민을 느낀다.

나기사를 찾아오기 전 히로시마에서 우연한 기회로 발레를 배웠던 이치카는,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기 위해 친구가 소개한 불법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경찰에 잡혀 간다. 사건의 전말을 들은 나기사는 이치카에게 발레에 소질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간 무심했던 자신을 책망한다. 나기사는 발레를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이치카를 응원하면서, 이치카를 위해 “엄마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가게 된다.

 


트랜스젠더 바에서 쇼걸로 일하는 트랜스젠더. 히로시마의 가족에게조차 이를 비밀로 하고 있다. 이치카와 같이 살게 되자, 아이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귀찮아한다. <사진=영화스틸컷>

 

이 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를 선보인 우치다 에이지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영화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영화 개봉과 동시에 책 출간을 한 것이다. 다양한 연기 변신을 통해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배우 쿠사나기 츠요시가 트랜스젠더 역할을 소화해 내며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개봉에 앞서 공개된 포스터에는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발레 연습을 하는 ‘이치카’(핫토리 미사키 분)의 우아한 모습과, ‘나기사’’(쿠사나기 츠요시 분)의 쓸쓸한 표정이 담긴 모습을 위아래로 배치했다. 이런 상반된 배치는 우아해 보이는 백조의 다리가 수면 아래에서 분주하듯, ‘이치카’의 꿈을 지켜내기 위해 헌신하는 ‘나기사’의 모습을 암시한다.

독자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영화 〈미드나잇 스완〉을 보질 못했다. 때문에 이야기의 연결이나 문장이 잘 이어져 나갈지 조금 우려를 했었다. 영화감독이 쓴 소설이라니 생략과 영상으로만 표현 가능한 것과 영상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책에서 어떻게 구현해낼지 궁금하기도 했다.

"소녀는 눈부신 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 좋았다." 책의 첫 문장이다. "어릴 적, 스케치북에 그렸던 태양은 늘 빨강 아니면 주황색으로 칠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본 후부터 소녀는 태양이 무서우리만치 티 없는 흰색임을 깨달았다."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이후 소녀의 행동에는 이상하리만큼 태양에 집착한다. 태양을 바라보던 소녀의 시선은 모래사장으로 향한다. 모래사장은 따가운 햇살을 반사하며 맹렬히 소녀의 눈을 찔렀다. 소녀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을 내렸는데도 빛에 찔린 눈이 띠끔거렸다. 눈을 감으면 유달리 소리가 더 잘 들렸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신나게 떠드는 아이들의 웃음, 괴성을 질러대는 남자들의 광란에 소녀는 입술을 더욱 굳게 깨물었다. 피 맛이 난다. 소녀는 더 꽉 제 살을 이로 깨물었다. 장면은 나기사로 옮겨간다. 검정이 묵직하게 녹아든 듯한 깊은 붉은 빛. 그 매니큐어 병을 나기사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줄곧 갖고 싶었던 명품 매니큐어였다. 몇 주를 고민한 끝에 겨우 구입한 물건이다. 주인공 나기사를 설명하는 문장은 길게 이어진다. 이 문장들은 나기사가 여유 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화장대 앞에 자리를 잡은 나기사는 거울 속의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자는 본격적으로 나기사의 외모와 성격 묘사를 표현한다. 마치 영상을 보는 듯이 눈에 선하게 세밀한 묘사가 나온다. "가늘고 길게 째진 눈과 뾰족한 턱. 나기사의 외모는 개성이 넘친다는 말을 손님에게서 자주 들었다. 미인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얼굴이라고." 이어지는 문장은 주인공 나기사가 여장이고 트렌스젠더임을 드러내고 있다. "남자였을 때 '미국 영화에 나오는 동양인 얼굴"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는 문장도 이어진다. 드디어 주인공의 정체가 드러난다. 손님을 접대하는 트렌스젠더. 예쁘장한 화장이나 의상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연한 색이 아닌 강렬한 색, 개중에서도 빨간색을 즐겨 입었다. 빨간색에 잘 어울리는 윤기 나는 긴 흑발은 나기사의 자랑거리였다.

거울의 라이트를 켜면 강한 빛에 잔주름과 눈 밑 다크서클이 날아가 아기 피부처럼 보인다. 처음 가게에서 근무를 시작했을 때는 정말이지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다. 이젠 마법의 효력이 다했음을. 세월은 확실하게 얼굴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얼굴뿐만 아니다. 손과 손가락에도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나기사는 천천히 매니큐어 뚜껑을 열었다. 효과가 떨어져 가는 마법은 그간 쌓아온 화장 기술과 값비싼 화장품이 보완해 주었다. 비싼 화장 도구가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한껏 가라앉은 기분을 들뜨게 하는 데는 제법 효과가 있었다. 매니큐어 브러시를 엄지손톱에 천천히 물질렀다. 색을 거듭할수록 빨강은 진해졌다. 나기사는 각 단계의 색을 즐기며 꼼꼼하게 발랐다. 완전히 손톱 매니큐어를 칠하는 데 몰입해 있는 나기사를 위협적인 목소리가 깨운다.

"에헤이, 무슨 잡담들을 하고 있어.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대기실 입구에 요코 마마가 장승처럼 서 있다.(p.10)

 


 

영화의 등장 인물들의 이모저모를 살피면 이 소설의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앞 부분이 배우의 이름이고 뒤가 역할의 이름이다. 독자 임의로 10명만 번호를 매겨 여기에 소개한다. 영화로 보든, 책으로 읽든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다. ① 핫토리 미사키-사쿠라다 이치카 역(마치 말없는 소녀의 코오트처럼 부모의 학대와 무관심 속에서 자란 중학생 소녀. 결국 히로시마를 떠나 도쿄의 삼촌에게 왔는데, 사진 속 남자였던 삼촌은 트랜스젠더였다. 발레를 하는 것에 동경심을 가지고 있다.) ② 미즈카와 아사미-사쿠라다 사오리 역 ③ 타구치 토모로오- 코 마마 역 ④ 마토부 세이-카타히라 미카 역 ⑤ 타나카 슌스케-미즈키(나기사의 동료) 역 ⑥ 요시무라 카이토-캔디(나기사의 동료) 역 ⑦ 사나다 레오-아키나(나기사의 동료) 역 ⑧ 우에노 린카-쿠와타 린 역 ⑨ 사토 에리코-쿠와타 마유미(린의 어머니) 역 ⑩ 히라야마 유스케-쿠와타 쇼지(린의 아버지) 역 등이다.

저자는 영업 대기 중인 나기사와 동료들과의 대화와 사업장 묘사로 나기사의 현재 위치나 신분, 그리고 일하는 곳의 분위기 등을 일목요연하게 한 명씩 등장시키며 대강의 성격 묘사를 마친다. 영화에서는 얼굴이 영상으로 보이기에 별로 자세히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을지 몰라도 책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심리묘사도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자신들의 과거사를 잡담처럼 이야기하며 울고 웃던 등장인물들은 "아무튼, 남자한테 빨아 먹히면 끝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은."이라는 나기사의 말을 끝으로 일제히 옷을 갈아 입는다. 아키나, 캔디도 화장을 고치고 의상을 가다듬으며 손님 앞에 나설 준비를 했다.

"이제 그만 울어."

나기사는 눈물을 닦고 아이라인을 예쁘게 다시 그린 아키나의 뺨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아키나는 사포시 웃으며 대답했다.

"응, 안 울게."

 


 

나기사와 이치카의 첫 만남도 문학적 표현이 다분히 들어가 있다. 그러나 나중에 나기사는 소녀 이치카의 발레리나로서의 성공을 위한 엄마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암시할 수 있는 만남이다. 처음 나기사가 이치카를 볼 때의 모습을 나기사의 심중 묘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싫은 타입이다." 약속 장소인 계단에 앉아 있는 소녀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나기사가 조금 늦었음에도 불안한 기색 없이 그저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마른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랗고 빨간 가방을 멘 모습이 마치 가출한 아이 같았다. 하긴, 법적으로도 돌봐줘야 할 범위에 있는 친척 아이이기는 하다. 게다가 어른으로서 지켜줘야 할 미성년자. 즉, 나기사가 보호해 줘야만 하는 어린 소녀다. 그러나 감싸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소녀는 가엾은 아이 그 자체였다. 언뜻 보기에도 학대를 받은 양, 독특한 어둠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나기사는 남의 동정을 받는 것도 싫었고, 자신에게 동정심을 들게 하는 일이나 사람도 싫었다. 나기사의 첫 마디는 무뚝뚝하다.

 

“닮았네.”

그것이 나기사가 소녀, 이치카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삐뚤어져 있던 중학교 시절의 사오리와 정말 꼭 닮아 있었다.

“닮았어, 엄마랑.”

한번 더 말을 건넸지만 이치카는 반응이 없었다. 안 들리나 싶어 한 발 다가가자, 이치카는 무표정 그대로 나기사를 올려다보았다. 나기사를 보는 눈에도 감정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기사는 왜인지 비난을 받는 듯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눈은 불쾌하기까지 했다.

“따라와.”

나기사는 짧은 한마디를 던진 다음, 이치카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걷기 시작했다.(pp.33~34)

 


 

두 사람의 만남이 마뜩찮은 것처럼 두 사람은 자주 의견 충돌과 엇박자의 마음으로 각자의 행동을 취하는 등 티격태격하지만 발레에 대한 집착은 무서우리만큼 강렬하다. 한 사람은 발레리나로서, 다른 한 사람은 최고의 발레리나를 키우는 보호자인 엄마처럼. 중간의 많은 이야기는 책을 직접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으로 돌리고 어느 정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지막 결승 무대에 선 장면을 조금 인용해 본다.

 

“68번, 사쿠라다 이치카. 〈백조의 호수〉 2막 중 오데트 바리에이션.”

안내방송이 들렸지만 이치카의 다리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바닥에 들러붙은 듯했다. 무대 입구에 선 미카는 당황했다.

“이치카, 이치카.”(pp.239~241)

 

저자 : 우치다 에이지

 

리우데자네이루 출생. 주간 플레이보이 기자를 거쳐 영화감독이 되었다. 2014년 영화 <그레이트 풀 데드>가 해외에서 주목받은 것을 계기로 <3류들의 사랑>이 대 히트를 기록했다. 도쿄국제영화제, 로테르담 영화제 등 50개 이상의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 영국과 독일 등에서도 개봉했고 이탈리아에서는 리메이크도 했다. 작가성을 앞세운 오리지널 각본을 중요시하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영화 제작을 하고 있다. 201...

 

역자 : 현승희

 

그림쟁이 번역가. 도쿄에서 만화를 전공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만화책을 원서로 읽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일본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일한 번역가이자 외서 기획자, 그리고 웹툰을 종이책으로 편집하는 단행본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원문이 지닌 뉘앙스와 분위기까지 우리말로 옮겨 표현하고자 노력중이다. 옮긴 책으로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보기왕이 온다』(코믹스판) 『고양이 서점』 『고양이 일기』 『어서 오세요, 멍냥 동물병원입니다』 등이 있으며, 편집작으로 『막내 황녀님』 『악역의 구원자』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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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죽이거나 - 나의 세렝게티
허철웅 지음 / 가디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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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평원의 법칙은 간단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이 역설이야말로 이 평원의 모든 존재가 감내해야 하는 숙명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남들이 먹다 버린 뼛조각 하나도 챙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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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죽이거나 - 나의 세렝게티
허철웅 지음 / 가디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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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국립공원(Serengeti National Park)은 탄자니아 세렝게티평원에 있는 국립공원을 이르는 말이다. 면적은 1만 4763㎢이며, 킬리만자로산(5895m) 서쪽, 사바나지대의 중심에 있는 탄자니아 최대의 국립공원이다. 세계 최대의 평원 수렵지역을 중심으로 사자·코끼리·들소·사바나얼룩말·검은꼬리누 등 약 300만 마리의 대형 포유류가 살고 있다. 강가의 숲에는 영장류의 하나인 동부흑백콜로버스가 살고 바나기 구릉지대에는 희귀종인 로운앤틸로프가 서식한다. 우기가 끝난 6월 초가 되면 150만 마리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검은꼬리누 무리가 공원의 남동부에서 북서부로 이동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우기가 지나면 황새·매·큰물떼새 등의 조류도 모여드는데, 현재까지 조사된 종의 수가 350여 종에 이른다. 사자는 2,000여 마리가 살고 있는데, 주로 화강암으로 된 울퉁불퉁한 바위언덕인 카피에서 머문다. 코끼리는 약 2,700마리, 사바나얼룩말은 약 6만 마리, 톰슨가젤 약 15만 마리, 마사이기린 약 8,000마리 등과 함께 6종류에 이르는 대머리독수리, 흰허리독수리 등이 서식한다. 1년 내내 개방되어 있으며 가장 좋은 관광철은 선선한 6∼12월, 또는 기온은 높지만 건조한 12∼3월 중순이다. 해발고도 1525m의 세로네라에는 수렵여행자를 위한 숙박시설이 있다. 1981년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두산백과)

이 책 『죽거나 죽이거나』는 세렝게티에서 펼쳐지는 포식자와 먹이동물의 이야기다. 먹고 먹히는 숨가쁜 생존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유일한 목적이 된 야생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저자 허철웅은 이들 동물들을 의인화해 그들의 시선과 그들의 인식으로, 생존을 이어가는 모습을 유기적 구성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 화자는 먹이동물인 누와 포식자인 사자가 벌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 책은 배경지가 세렝게티라는 생존 경쟁자들이 살아가는 그들만의 세상이지만 인간의 눈으로 볼 때뿐이지, 그들의 시선으로 따라가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된다. 이로써 이 소설은 단순히 동물의 세계를 다룬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천적 관계인 사자와 누를 의인화함으로써 그들에게 닥친 운명과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존재 방식을 아프리카의 세렝게티를 소설 공간으로 설정하여 이국적인 배경과 함께 독자의 상상력이 최대한 확장되도록 구성하였다.

전체적으로는 천적 관계에 속한 각 주인공의 영웅적 서사가 큰 뼈대이지만 여기에 자연과 운명, 삶과 죽음, 존재의 문제 등 무거운 주제가 세렝게티의 장대한 풍광 묘사와 잘 어우러져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각 장마다 사자와 누의 서사를 교차하고, 두 주인공이 조우하는 접점을 만들어서 극적인 긴장을 유지하는 치밀한 구성력에서는 저자의 문학적 내공에 감탄하게 된다. 무한의 생존투쟁 현장이 치밀하고 팽팽하게 묘사된 문장력은 독자를 단숨에 대자연 아프리카 초원 한복판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기대된다.

저자 허철웅이 세렝게티의 이국적인 배경과 동물 다큐 중에서 선호도가 가장 높은 천적 관계인 사자와 누를 주인공으로 장편을 써보겠다고 처음 달려든 게 1996년이라고 한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자마자 작정하고 매달렸음에도 27년 동안 헉헉대다가 5번을 뜯어고치는 산고 끝에 이 소설 『죽거나 죽이거나 - 나의 세렝게티』가 탄생된 점을 미루어 생존을 위한 저자의 각고의 노력이 문자마다에 박혀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가 이 소설을 탈고한 다음 첫 말이 “독자들이 보여줄 시선이 두렵고 낯설지만 코끝에 전해지는 공기는 참 상쾌하다.”였다고 한다. 많은 뉘앙스가 묻어 있는 이 말은 그의 특이한 이력을 보면 이해가 된다

 

 

등단하고 소설가로서의 삶을 꿈꾸던 그는 팔자에도 없는 정치 스캔들에 휘말려 17대 총선을 시작으로 약육강식의 끝판왕인 여의도에 터전을 잡아야 했다. 이후 정치선거 기획사, 독립 프리랜서로 30여 차례의 각종 선거 현장을 누비며 서식했다. 정치인들끼리 다투다 불쑥,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질 때, 글 대신 정치판에서 밥을 먹고 살고 있는 그로서는 “지들이 소설을 알긴 해?” 하고 속을 삭여야만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런 그에게 여의도는 삶과 죽음, 권력과 정치, 우정과 갈등, 애정과 이별 등이 펼쳐지는 리얼한 세렝게티였다.

사실 먹고 먹히는 치열한 싸움만 빼놓는다면 아프리카 초원은 풀을 뜯는 초식동물의 모습이 더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 잡아먹히는 희생이 뒤따라야 살 수 있는 포식자들의 생존 방식은 정치판과 빼다박듯이 흡사하다. 이때 상식 밖의 정치가 작동한다고 정계는 입을 모은다. 다른 목숨을 빼앗아야 살아갈 수 있는 육식동물의 세계는 힘에 의해 작동하는 비정한 약육강식의 법칙이 가혹하다는 말을 빗대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이 자연이 만들어놓은 ‘죽거나 죽이거나’ 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운명의 사슬이라 할지라도 저자는 ‘생명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서로 존중하는 세상이 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이 소설에 녹여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한마디로 ‘잡아먹는 자의 감사와 자비, 먹히는 자의 용서가 만날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정치판에서 통할 리 없는 소설가의 꿈은 결국 아프리카 생존경쟁의 장인 세렝게티에서 이루어질 것인가?

 


 

우리가 어렸을 때 즐겨 보던(일부는 지금도 즐겨볼 것이다) 〈동물의 왕국〉, 〈라이온 킹〉, 〈정글 북〉 등 낯익은 단어들이 떠오를 때면 화면 내레이션이 함께 주마등처럼 스친다. '먹고 먹히는 생존 경쟁의 장'. 그러나 포식동물은 살기 위해 죽이고, 먹이동물은 살기 위해 도망가는 곳이 세렝게티 현장이라면 이곳 세상은 마치 포식동물의 것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사자를 '동물의 왕', '백수의 왕'이라 일컫는 것일까. 이 상황을 인간의 눈으로 봐서는 정확한 모습을 파악해 낼 수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특히 저자의 상상력은 정치판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을 것이다. 그 경험은 이 소설을 쓰는 데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이 되었을 듯하다.

이 책은 모두 1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이 한두 단어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마다 동물의 시선으로 의인화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목만으로 어떤 동물의 시선의 장인지 파악할 수도 있다. 1장 「숙명」, 2장 「생존」, 3장 「천적」, 4장 「들불」, 5장 「사선(死線)을 넘어」, 6장 「전사의 사랑」, 7장 「망각의 풀밭」, 8장 「어머니의 자리」, 9장 「킬리만자로 수행단」 10장 「음차위 할망구」, 11장 「행군」, 12장 「해를 좇아 동쪽으로」, 13장 「세상의 끝, 킬리만자로」, 14장 「대정령(大精靈)」, 15장 「절망」, 16장 「귀환」, 17장 「불멸과 소멸」 등이다.

1장은 초식동물 호다루(용감한 자)이 세상에 처음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세상은 그저 환한 빛의 무더기였다. 어머니가 긴 혀로 질긴 양막을 걷어내고, 코와 입에 들러붙은 진액을 헤쳐 숨결을 불어넣자 세상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몸을 떨었다. 오오,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키 작은 관목들 너머 이름 모를 짐승들이 뿔을 허공으로 쳐올리며 질주했다. 바람이 지나가는 초록의 풀밭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춤을 추었다. 창공에는 구름 사이로 내리꽂히는 빛의 다발들이 기둥처럼 버텨 서서 하늘을 떠받쳤다. 발굽에 닿는 대지는 부드러웠고 몸을 훑는 바람이 감각을 일깨웠다. 길 닿는 곳마다 생명이 꿈틀거렸고 이 모든 것이 대지의 열기에 일렁이고 있었다. 그랬다. 내가 처음 본 세상은 너무나 다채롭고 아름다워서 꿈결 같았다."(p.12)

 


 

2장 「생존」에서는 사자 '다씸바'가 태어난다. "세상은 그저 어둠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냄새도, 촉감도, 소리도 없었다. 자극이 없었으므로 살아 있다는 것도 실감할 수 없었다. 어둠과 적막의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아, 그리고 어머니······. 처음으로 감각의 문을 열어준 건 어머니였다. 훅, 피비린내가 끼치는 혓바닥으로 내 몸을 핥는 이가 어머니라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어머니의 혀는 내 몸 구석구석에 와 닿았다. 어머니의 혀는 바위의 표면처럼 꺼칠했고 응윰부(nyumbu, 누)의 내장처럼 부드러웠으며 물소의 심장처럼 뜨거웠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살아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러나 눈앞은 늘 어둠뿐이었다. 어머니는 종종 오래도록 자리를 비웠다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 그동안 나는 죽은 듯이 누워 있거나 숨소리를 죽이며 잠들었다."(p.22)

사자 다씸바는 태어날 때부터 체취가 없이 태어났다. 사냥꾼으로서 이처럼 좋은 조건이 없을 터였다. 풀숲에 숨어 있다 먹이동물을 덮치려면 바람과 반대 방향으로 동물을 몰아가야 한다는 것은 포식자들의 불문율이다. 냄새로 적을 발견하는 초식동물 방어막을 선천적으로 하나 가지고 태어난 셈이다. 다씸바는 장성해 키불리(kivuli, 유령)란 별명을 얻는다. 귀신처럼 소리 없이 다가가 사냥을 하는 솜씨를 발휘할 수 있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가 어머니 자힐리(jahili, 잔혹한)의 말을 되새긴다. 사자로서의 삶이라 해서 먹이 사냥을 안 할 수는 없다. 먹이 사냥을 하지 못하면 사자는 죽음 앞에 놓인다. 사자 무리라고 해서 대신 먹이를 잡아다 앞에 놓아주지 않는다. 백수의 왕이라고 노력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사자가 안고 태어난 숙명이다. 사자 종족의 사냥감을 가리키며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었다. “저들은 우리보다 한 걸음만 빨리 달리면 살 수 있다. 우리는 저들보다 한 걸음이 더 빨라야 목숨을 이어갈 수 있지. 이 한 걸음을 위해서 저들은 저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쓰는 거다.”

 


 

동물의 세상처럼 인간의 세상도 다를 바 없다. 태어난 이상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 이겨야 살아 남는다. 그러나 인간의 경쟁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을 지켜 승리해야 진정한 승리일 것이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에서 규칙은 종종 무시되거나 아예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인간이 존엄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지만 승부의 세계에서는 언제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무조건 이겨야 살아 남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다면 승부를 위해 어떤 비규칙적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동물의 세계에서 생존 경쟁과 다를 바 없다. 더 문제인 것은 규칙을 어기고도 살아 남았다는 데만 도취된 나머지 비규칙을 조작하거나 은폐해 버리고 규칙에 맞췄다고 우긴다면 이것은 동물의 세상과 다름이 없다. 이 점을 보여주려 했을까? 저자의 가슴과 저자가 바라는 세상에는 아직 '공정'이라는 단어가 남아 있어서일까? 동물의 세계를 보면서 독자도 자아 성찰의 필요성을 느낀다. 나는?

 

저자 : 허철웅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경북대 전자공학과에서, 감히(?) 혁명과 시인을 꿈꾸다 제적됐다. 춘천에서 육군 통신병으로 만기 제대하고 2년만 문학공부를 하겠다며 영남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문학은 고사하고 학생운동에 푹 빠져 5년 만에 겨우 졸업했다. 상경해서 여러 출판사의 영업부장을 전전했다. 술집과 출판사와 서점을 쳇바퀴 돌며 틈틈이 소설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 글쟁이는 안 된다며 반대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뜬 다음 해 1996년, <대구매일신문>의 신춘문예에 단편 ‘탁류’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후로도 먹고사는 일에 쫓기다 2000년 제1회 MBC드라마문학상에 가작으로 입선했다. 입선작인 ‘나는 새들의 눈물을 보았다’가 《천일홍》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첫 책을 가졌다. 2002년 세상을 작파하겠다며 전북 고창 방장산 중턱의 임공사(현 미소사)로 들어가 3년 넘게 불목하니로 살았다. 토굴에서 공양간의 나물 반찬을 훔쳐 술안주 삼느라 세상은 작파하지도 못하고 글만 작파하고 말았다. 2004년, 분명히 팔자에도 없었을 정치판에 풀려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17대 총선에서 최재천 전 의원의 선거를 돕고, 보좌관으로 일했다. 정치선거 기획사, 독립 프리랜서로 30여 차례 각종 선거 현장을 누비며 여의도에서 서식해왔다. 추미애 전 의원의 보좌관을 거쳐 민주당 당대표실 정무조정부실장, 메시지실장을 지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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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은 노래한다
엘리 라킨 지음, 김현수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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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서는 오랜만에 읽는 미국 일반 가족의 문제점과 극복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홈 드라마' 같은 소설을 읽었습니다. 요즘 국내외를 막론하고 미스터리나 SF판타지 소설이 대세던데. 미국의 역사는 250년 정도, 이민의 역사는 500년도 안 될 정도로 짧다. 그런데도 오늘날 세계의 패권 국가로 발돋움한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많은 역할을 한 것이 '개척 정신'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은 신대륙 발견부터 이민자들이 들어오던 시대에는 유럽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아메리카 대륙 오른쪽, 미국의 동부였다. 뉴욕항을 중심으로 차츰 이민자들의 영역이 넓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1776년 독립 때만 하더라도, 불과 250년 전이다. 이때도 독자들이 잘 알다시피 독립전쟁에 참가한 주(州)가 13개밖에 안 됐다. 모두 미 동부지역이다. 독립전쟁에 승리, 정식으로 독립국가로 발족하면서 서부 개척의 시대에 돌입한다. 이때는 원주민(인디언)과의 갈등, 이민자끼리의 갈등(각자의 국적이 다르기 때문에), 아직 강력한 정부라고 할 수 없는 국가 운영 실태 등으로 이민자들이 직접 서쪽으로, 서쪽으로 개척의 삶이 이어졌다. 국방이나 치안 능력도 아직은 정부의 강력한 힘이 미치지 못했을 때 이민자들은 스스로 개척하고 목장을 만들고 땅을 일궈 식량도 직접 조달했다. 뿐만 아니라 외부의 적은 스스로 방어해내야 애써 일군 재산을 지킬 수 있었기에 나라의 틀을 제대로 갖출 때까지 그들의 희생은 컸다. 그러나 결국 서부 개척을 이룩해 내고 광활하고 비옥한 땅의 대륙 전체를 통합하고 20세기 들어서는 본격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면모를 키웠다.

미국의 이민사는 엄청난 눈물과 감동 없이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모든 것을 바쳐 지켜낸 성공한 사람들의 역사다. 그 과정에서 가족은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도 뿌리내렸다.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은 자신의 목숨보다 가족의 안위를 돌보는 책임감과 가족에 대한 인식은 각별하다.

 


 

이 책 『에이프릴은 노래한다』는 '가족'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 작품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누구나 ‘가족’을 가질 자격이 있지만 그것을 갖기 위해 싸우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 책 『에이프릴은 노래한다』는 그 ‘가족’을 갈망하는 우리 모두를 위하는 이야기며 희망, 유대감, 소속감, 그리고 우리를 치유하는 노래의 힘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만들어 가는 가족, 그리고 그 가족을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의 성격과 출생 배경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16세 가정이 해체된 나이 어린 소녀이다. 이름 또한 '4월'이라는 뜻의 메타포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4월이면 봄이고, 만물이 소생해 활기를 띠고 생명활동을 시작하는 때이다.

에이프릴의 여정은 ‘나의 자리’와 ‘나의 사람들’을 찾아 헤매며 꿋꿋하게 고단한 길을 걸어온 모든 아웃사이더를 위한 이야기다. ‘우리 집’에 왔다는 감각, 진정한 가족을 찾았다는 안도, 그 소속감과 안정을 얻기 위한 분투는 우리의 가슴에 깊은 공감과 위로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 엘리 라킨의 이 작품은 전작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와 마찬가지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가슴 저린 주인공의 고난 속에도 저자가 가진 포근하면서도 단단한 감성은 어김없이 잘 녹아 있다. 자극적인 이야기가 범람하는 요즘, 누구나 할 법한 고민을 서정적이면서 현실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바로 저자 엘리 라킨의 장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 온 상처를 극복하고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곳을 찾으려는 에이프릴의 여정이 독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고 이끌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누구나 '가족'에 대한 깊은 믿음과 애정이 한꺼번에 밀려올 것이다. 독자도 한동안 멍하니 '가족'을 생각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얻게 되는 가장 기본이 되는 관계? 그리고 가장 큰 사랑을 주는 사람들? 이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결혼과 출산을 통해 만들어진 가족 관계에 배려와 사랑이 결여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그리고 가족에게서 받아야 할 사랑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유대감과 자기 수용, 관계와 성장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는 데 어려움을 느끼기 쉽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 문제 가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일이라고 의학계는 인정하고 있다.

1994년 뉴욕의 리틀 리버, 열여섯 살인 에이프릴 사위키는 아빠가 포커 게임으로 따낸 모터 없는 캠핑카에서 혼자 살고 있다. 엄마는 에이프릴이 어릴 때 집을 나가 버렸고, 아빠는 애인의 집에서 머물며 애인의 아이에게 최고의 아빠인 척 구느라 친딸인 에이프릴은 내버려 둔 상태다. 고등학교도 다니지 않게 된 에이프릴은 아빠의 전 여자 친구였던 마고 아줌마의 식당에서 교대 근무를 하며 겨우 생활을 유지한다. 그녀는 마고 아줌마와 남자 친구인 매티를 제외하고는 마을의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지낸다. 흔히 결손 가정에서 보여지는 미성년자들의 행태다. 이 마을을 자기가 속한 고향으로 여기지 않으니 그 소외감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시간을 에이프릴은 혼자 기타를 치고 노래를 만들며 시간을 보낸다.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아줌마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그냥 나이만 먹은 거예요.”

“정말 그래, 그렇지 않니?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는 거야, 안 그래?”(pp.51~52)

 

 

그러던 어느 날 에이프릴은 이웃의 차를 ‘빌려’ 누구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오픈 마이크 나이트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마을을 나선다. 거기서 에이프릴은 가수이자 작곡가로서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는다. 작은 마을에 머물러 살기엔 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그러던 중 아빠와의 큰 싸움으로 뺨을 맞고 기타까지 망가지게 되자, 에이프릴은 캠핑카를 떠나 자신의 삶을 찾는 여행을 시작한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차를 몰던 에이프릴은 휴식을 위해 이타카에 잠시 멈춘다. 그 순간 에이프릴의 유일한 목표는 말 그대로 생존이었다. 그녀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타카를 헤매다 커피숍 ‘데카당스’에서 개성이 강한 친구들을 만나 난생처음 소속감와 위안을 느낀다. 이렇게 인생이 쉽게 풀릴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오히려 불안하기까지 하다. 에이프릴은 이타카에서 알게 된 이들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면 느낄수록 자기가 받은 것과 같은 상처를 그들에게 주고 말 것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단골이라고 했으면서 애덤은 오지 않았다. 혹시 단골이 아닌 거 아닐까? 실은 데카당스 사람들은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위험한 사람인거 아닐까? 아님, 혹시 내가 전화를 안 해서 언짢았나? 내가 차라리 캠핑장을 선택해서 기분이 나빴나? 나한테 명함을 줬다는 사실을 기억은 하는지 몰랐다.

내 근무 시간은 세 시까지였는데 나와 교대할 직원이 심리학 시험이 있어서 못 오겠다고 두 시 사십오 분에 연락을 했다.

"부잣집 년들은 하여간."(p.182)

 


 

자기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처음 얻은 안정과 소속감을 등지고 다시 길 위로 내달려야 하는 에이프릴. 그녀는 여행을 이어가며 자신의 마음의 고향이 어디인지, 또 무엇인지 점차 확고하게 알게 된다. 그 그리움과 갈망, 가슴 아픈 이별과 재회를 통해 결국 자신의 삶은 자신이 개척하는 것이며, 정체성은 누구에게서 태어나 어디에서 자라는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다.

저자 라킨은 "에이프릴에 관한 것을 생각하고 에이프릴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고 책의 뒷 부분 〈감사의 글〉을 통해 털어놓는다. "책 속의 인물들은 내 마음속에서 전화 한 통이면 만날 수 있는 오랜 친구 같은 존재가 됐다. 마치 내 책상에 쌓인 종이 무더기 아래, 그들의 전화번호를 끼적인 냅킨을 찾기만 한다면 우리 즐겁고 긴 수다를 떨 수 있을 것만 같달까. 그래서 좀 바보같이 들리리란 걸 알지만 내가 첫 번째로 감사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에이프릴 사와키다. 그녀는 내가 다른 무언가를 쓰고 있던 어느 날 내 머릿속에 홀연히 나타나 나의 모든 감정들을 새로운 이야기로 그려 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우주를 설명해 줬다."고 비유적 표현을 이용해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 만족과 감사를 표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에 대한 감사가 끝나고 비로소 현실의 인물들을 드러내며 마찬가지로 감사의 말을 잊지 않는다. 소설을 쓰는 내내 즐거움이었고, 소설을 읽고 조언해주고 감상평을 준 모든 사람들이 이 소설의 완성을 위해 도움을 준 것이란 말이다.

그가 이 소설을 오랜 기간에 걸쳐 쓰고 다듬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당연히 주인공 에이프릴의 삶의 태도일 것이다. 미국을 세계 최강국이자 패권국으로 끌어올린 정신, 그 정신이 에이프릴에게 투영돼 있음을 독자는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 수많은 유명 작가와 문학평론가, 또 책 리뷰어들이 찬사를 보낸 것을 들어보면 놀랍기 그지 없다.

“엘리 라킨은 부드럽고 여린 장면들을 증류시켜 본질로 압축하는 재주를 가졌다. 당신은 에이프릴과 끝없이 사랑에 빠질 것이고, 그녀가 떠날 때, 떠나는 이유를 다 알면서도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집’을 가질 자격이 있지만 그것을 갖기 위해 싸우는 건 두려운 일이다. 『에이프릴은 노래한다』는 그 ‘집’을 갈망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이야기이며 희망, 소속감 그리고 우리를 치유하는 노래의 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만들어 가는 가족, 그리고 그 가족을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컨트리 리빙」

“이 책의 모든 요소가 좋았다. 엘리 라킨은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선사하면서도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하는 최고의 주인공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 「뉴욕 타임스」

"『에이프릴은 노래한다』의 모든 점이 좋았다. 나이에 비해 훨씬 지혜로우면서 동시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순진한 주인공 에이프릴 사위키부터, 시대적 배경이 1994년이라 휴대폰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에 이르기까지. 엘리 라킨은 우리의 마음을 찢어 놓았다가도 곧 희망을 심어 주는 어리고, 가공되지 않은 진짜의 여자 주인공을 선사해 주었다." - 크리스 보잘리언(「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번역자 김현수도 「누군가를 진정으로 '안다'는 것의 의미」라는 제목의 〈옮긴의 말〉을 통해 작품 감상평을 한마디 보태고 있다. "(에이프릴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사람들의 선의를 이용하기도 하고, 때론 맹랑하다 싶은 짓들을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갈수록 이상하게 에이프릴을 응원하게 됐다. 그러니까 어느새 에이프릴이란 아이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에이프릴이 비난 받거나 공격당하면 마음이 아팠고, 간신히 마음 붙였던 곳에서 짐을 꾸려 다시 떠나는 장면을 읽을 때면 따뜻한 방 안에서도 마음이 스산했다."(p.700~701)

 


 

이들은 전부 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어디 사는지 알았고, 아빠가 나를 두고 떠난 것도 알았다. 그들도 나를 버렸다. 캠핑카에 혼자 사는 어린애가 쿠키와 우유가 먹고 싶어 놀러 오진 않을까 생각하는 대신 자기 자식들에게 나와 놀지 말라고 했다. 마치 내가 나의 존재 자체를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사람들. 내 부모가 이혼했고, 내 신발이 낡아 빠졌고, 내 머리가 지저분하고, 손톱 밑에 늘 때가 끼어 있었다는 이유로,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나의 수치스러움이 그들에게 옮기라도 할 것 같은 취급을 했다. 그들은 아빠가 그랬듯 기꺼이 나를 잊었다. 그래 놓고 다들 나타난 것이다.(p.633)

 

저자 : 엘리 라킨(Allie Larkin)

 

이타카 컬리지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세인트 존 피셔 컬리지에서 작문을 공부하며 첫 작품인 『기다려(STAY)』의 초고를 완성했다. 이후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글쓰기를 향한 갈망을 잊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첫 장편소설인 『기다려』와 그 다음 작품인 『나는 왜 당신이 될 수 없는가(Why Can’t I Be You)』가 큰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우뚝 섰다. 『나는 왜 당신이 될 수 없는가』는 곧 영상화될 예정이다.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Swmming for Sunlight』을 썼다. 현재 라킨은 남편 제레미와 겁 많고 충직한 저먼셰퍼드 스텔라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역자 : 김현수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번역대학원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글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것이 좋아 라디오 작가로 일하기도 했고, 글밥 아카데미 출판번역 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실버베이》, 《먹고 기도하고 먹어라》, 《나무처럼살아간다》, 《피터 래빗의 정원》, 《자기만의 방》,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미라클모닝》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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