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튀르키예 나의 첫 다문화 수업 10
알파고 시나씨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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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있는 그대로 튀르키예』는 이름만 들어도 친근감이 드는 나라 '튀르키예'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쉽게 쓰였다'와 고등학교 때 세계사 교과서을 읽는 듯한 느낌이어서 인상적이다. 터키는 어렸을 때 우리 모두가 아는 한국전쟁 참전국이다. 궁지에 몰렸던 우리를 도왔던 유엔군이었다. 미군에 이어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나라다. 우리 입장에서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슬람 국가라고 하면 모두 어색하고 싫어했던 분위기와 다르게 터키(튀르키예)에게는 친근감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터키는 영어식 발음이고 또 예전에 '터키탕'이라는 정체불명(?)의 목욕탕이 등장해 성행하다가 터키 대사관의 공식 항의를 받은 일도 있다. 매음을 하기 위한 변태 목욕탕을 이른 말이었기에 그랬다. 아직도 독자는 터키탕의 기원은 알지 못하지만 한때 원산지가 터키가 아니었음은 분명한 사실로 밝혀졌다.

튀르키예인들은 동양인 입장에서 보면 이국적인, 즉 서양인의 모습에 가깝다. 얼굴 생김새나 체격 등이 서양인과 더 닮았다. 피부색은 동양인과 서양인이 섞여 있는 듯 백인보다는 검고 흑인에 비해서는 희다. 그렇다고 동양인에 가깝긴 하지만 육안으로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 구별하기엔 차이가 약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들의 생김새는 서양인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 나라가 최근 자신들의 정식 발음대로 나라 이름을 '튀르키예'로 바뀌었다. 다른 점은 모르더라도 나라 이름만 듣게 되면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지는 나라가 바로 ‘튀르키예’다. 흔히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는 튀르키예는 우리나라와의 교류가 한국전쟁부터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이 책의 저자 알파고 시나씨는 두 나라의 우호 관계를 맺은 것은 한국전쟁 훨씬 이전인 고대 시대부터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 알파고 시나씨는 고국 튀르키예에서의 엘리트 코스를 뒤로 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할 만큼 한국을 사랑하는 귀화 한국인이다. 그는 튀르키예의 역사뿐 아니라 한국사 나아가 세계사까지 꿰뚫고 있는 역사 덕후이자 국제 문제가 터질 때마다 국제 정세를 통찰력 있게 전해주는 언론인이기도 하다. 청소년 시절을 튀르키예에서 보냈고 19년 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튀르키예 홍보 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 누구보다도 한국과 튀르키예에 애정을 갖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튀르키예에 대한 기본 정보뿐 아니라 튀르키예의 역사, 튀르키예 사람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미래까지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저자가 전해주는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는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 언급된 오스만제국 혹은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등과 같이 잘 알려진 관광지로서의 모습 정도로만 알고 있다. 저자는 튀르키예와 우리나라와의 비슷한 점을 설명해줌으로써 독자들이 튀르키예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좀더 쉽고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책에 따르면 튀르키예에도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와 같은 건국 신화, 오구즈 카간의 전설과 회색늑대 전설이 있다. 또 우리나라와 같이 뚜렷한 사계절이 존재하며 기후 또한 바다와 산맥의 영향을 받는다. 에게해 지역의 주요 도시 이즈미르는 군산과 비슷한 특성을 지녔으며 흑해 지역은 전라남도 보성과 비슷한 기후로 사람들의 성향 또한 비슷하다. 튀르키예 사람들의 모국어인 튀르키예어는 우랄 알타이어 계통에 속해 있어 한국어와 어법의 구조와 어순이 같아 우리가 배우기 쉽다. 튀르키예 부모의 높은 교육열뿐 아니라 명문 학교 입학을 위해 치열하게 입시 준비를 하고 있다는 튀르키예 청소년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튀르키예인이 역사에 정식으로 등장하는 때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흉노족들이 알타이산맥 중심으로 세력을 펼쳐가기 시작했던 시기다. 이 시기에 튀르키예 조상들도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흉노족이 멸망한 후 튀르키예인 조상들이 세운 돌궐 카간국은 200여 년 동안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했으며 셀주크 제국을 거쳐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러서는 200년 넘는 동안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했다. 그 시기 세상의 중심은 아시아 대륙의 아나톨리아반도와 유럽 대륙의 트리키아반도를 모두 장악했던 튀르키예였다. 튀르키예는 영토만 동서양에 걸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서양의 종교와 문화 또한 적극적으로 융화시킨 코스모폴리탄 성격을 지닌 나라이다.

1~2년 전 케이블 TV에서 오스만 제국 시대의 튀르키예의 술탄(황제보다는 이 표현을 사용한다고 했다) 슐레이만 시대의 여인들이 거주하는 궁궐 〈하렘〉에 대한 이야기였다. 슐레이만 술탄은 화면에 자주 등장하지만 노예 출신의 왕비(러시아 출신 포로) 때문이고 실제 원정을 나가거나 궁내에서 정사를 보는 장면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가 정치를 잘 했다고 역사가 판정하는 것으로는 수많은 원정을 통해 대제국을 건설했고, 따라서 나라의 부도 굉장했으리라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가끔씩 정사를 보는 장면에도 등장하지만 결코 혼자 독단적으로 정무를 처리하는 일보다는 재상이나 종교 지도자의 충고를 잘 듣고 판단해 명령을 내리는 등 합리적 왕이었다고 드라마는 표현하고 있다.

대항해 시대와 1,2차 세계대전,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리기는 했으나 튀르키예는 유서 깊은 유적지가 산재해 있는, 나라 자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문화 수도이자 스포츠 수도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과거의 영광만을 그리워하며 그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 세계의 패권이 미국 중심으로 이동됨을 파악하고 중립 외교에서 친미 외교로 전환했으며, 위에서부터의 개혁을 통해 민주화와 다당제 채택 및 튀르키예 공화국의 근간이 된 군부의 힘 또한 축소시키며 발 빠른 변화를 이루어나갔다. 미국 달러의 변동 상황에 직격탄을 맞는 환율, 빈번한 쿠데타를 야기하는 진보과 보수 세력의 정치적 충돌,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들과의 복잡한 외교 상황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해외에서 인정받는 건설업과 무역업, 뛰어난 기술력으로 바탕으로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려는 제조업에 대한 지원, 유럽연합 가입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 등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시대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튀르키예는 밝은 미래가 기대되는 나라이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이뤄져 있다. 1부 〈메르하바! 튀르키예〉, 2부 〈튀르키예 사람들의 이모저모〉, 3부 〈역사로 보는 튀르키예〉, 4부 〈문화로 보는 튀르키예〉, 5부 〈여기를 가면 튀르키예가 보인다〉 등이다. 1부의 제목에 쓰인 '메르하바(Merhaba)'는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삿말이다. 1부는 튀르키예의 자기소개서다. 앞서 언급한 국호의 변경, 두 개의 반도로 이뤄진 튀르키예 지형과 지리, 사계절의 기후, 흑해·지중해·에게해를 끼고 있는 천혜의 땅이다. 강수량도 농작물 재배에 부족함이 없으며 로마시대부터 함께 발전을 해온 나라다. 로마시대 유적지도 원형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는 곳도 많고, 이슬람의 최고 문명과 국력을 자랑하는 강대국이었을 때의 각종 건축물도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채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관광에도 부족함이 없다. 뿐만 아니라 특이한 지형이 잘 발달되어 동서양의 만나는 지리적 이점과 더불어 언제나 번성한 도시 이스탄불이 중심이 되어 발전돼 왔고, 1323년 신생 튀르키예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수도를 앙카라로 옮겨지면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만 담당하고 있다. 우리의 부산과 비슷한 모양새의 도시라고 한다.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문제는 종족 문제인 것 같다. 돌궐의 후손인 튀르크족이 70~75%로서 다수이지만 쿠르드족도 15~20%가 살고 있다고 한다. 쿠르드족은 예전부터 오스만 제국 영토 안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연합군에 점령당하고 이 과정에서 쿠르드족이 주로 살고 있는 지역이 분단되면서 약 3,000만~4,000만 명의 쿠르드족이 튀르키예를 비롯해 이라크, 시리아, 이란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이란계 민족인 쿠르드족은 생김새가 이란 사람과 비슷하지만 산악 지대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성향과 정서는 이란 사람에 비해 좀 더 강한 편이라고 한다. 이라크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한때 튀르키예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라크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과 격렬한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면서 자치권을 얻었다. 사담 후세인과의 전쟁 경험이 있는 이들은 지금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IS와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IS를 후퇴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워 국제적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현재 튀르키예에 사는 쿠르드족은 정치적으로 두 개의 세력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강경파 세력은 쿠르드족만의 자치권이나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튀르키예의 지방 자치 행정이 미흡하다고 여기고 쿠르드족만의 언어로 초등학교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실에 정치적으로 불만을 품고 있어 자주 갈등을 빚는다고 한다. 이밖에도 아랍계, 카프카스 지역, 발칸 반도 지역의 민족들이 일부 차지하고 삶을 이어가고 있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3부 튀르키예 역사 중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 내용이 가장 알고 싶었지만 내용이 다른 나라 교과서처럼 짧게 기술돼 있어 사뭇 아쉽다. 독자가 앞서 언급한 대로 술레이만 1세부터 시작되는 오스만 제국은 드라마(우리 KBS 대하사극처럼 튀르키예 대하사극)를 다루는 데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란 제목의 글이 너무 짧아 실감하기 어려웠다. "자신을 하늘 아래 유일한 왕이라고 믿었던 술레이만 1세는 오스만 제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만들었다. 그의 재위 시절 오스만 제국의 군대는 유럽 연합군을 두 시간 만에 격파시킬 정도로 강력했으며 그 자신은 프랑스나 헝가리 같은 나라의 왕위까지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p.130)

 


 

독자가 또 하나 관심을 두었던 부분은 러시아와의 관계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튀르키예는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러시아와 튀르키예 관계를 역사에서 찾아보는 것이 빠를 것이다란 판단에서다. 저자는 튀르키예 동부의 상징이자 러시아 제국이나 카프카스 지역의 영향을 받은 카르스는 '독특하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카르스에서 가장 먼저 방문해야 할 곳은 '아니(Ani)'이다. 카르스 외곽에 위치한 역사 유적지인 아니에 가면 어느 순간 시간 개념이 사라지고 몇백 년 전으로 가는 느낌을 받는다. (중략) 카르스 시내에서는 러시아 제국의 흔적을 볼 수 있다. 1800년대 말 오스만 제국과의 전투 끝에 카르스를 함락한 러시아 제국은 이곳에 시청 청사, 도서관, 그리고 성당들을 지었다. 그래서 40여 년 동안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은 카르스 곳곳에는 러시아 건축 스타일의 건물들이 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다시 튀르키예 공화국에 합류되었지만 러시아 제국 시절에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다."(p.239~240)

 

저자 : 알파고 시나씨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라랏 산은 성서 속 ‘노아의 방주’가 발견된 곳이다. 아라랏 산 인근의 으드르 시에서 태어난 알파고 시나씨는 열네 살이 되던 해 어머니의 품을 떠나 ‘성모 마리아가 마지막 생애를 보낸 고대 도시’ 에페소스에 있는 과학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2004년 기술대학 중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이스탄불 기술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부처와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동양에서 공부하고 싶어 한국에 왔다. 충남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부터 한국과 아시아 곳곳에서 외신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아시아엔AsiaN] 편집장을 맡고 있다. 굵직한 국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언론을 통해 한국인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내기도 하고, [소사이어티 게임], [비정상회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과 같은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언론인과 예능인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특히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출연하여 ‘덕후’에 가까운 한국 사랑과 ‘최고의 한국 역사 가이드’로 극찬받았다. 3.1 운동 100주년 기념 토크퍼포먼스 쇼 [백범 얼라이브]를 촬영했으며, 각종 매체에서 역사 관련 프로그램의 패널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본업인 언론 활동뿐만 아니라 방송 및 저작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코미디 공연도 하는 등 다재다능한 만능 재주꾼이다. 저서로는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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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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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는 『삼국지』의 내용을 신뢰할 수 있는 내용으로 본다. 『삼국지연의』는 어디까지나 소설로서 역사서를 바탕으로 하지만, 중국인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漢族)** 중심의 야사(野史) 작품이다. 정사인 『삼국지』는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 합계 65권으로 되어 있으나 표(表)나 지(志)는 포함되지 않았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위서에만 〈제기(帝紀)〉를 세우고, 촉서와 오서는 〈열전(列傳)〉의 체제를 취했으므로 후세의 역사가들로부터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 진수는 촉한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한이 멸망한 뒤 위나라의 조(祚)를 이은 진나라로 가서 저작랑(著作郞)이 되었으므로 자연 위나라의 역사를 중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후에 촉한을 정통으로 한 사서도 나타났다. 그러나 『삼국지』는 찬술한 내용은 매우 근엄하고 간결하여 정사 중의 명저라 일컬어진다. 다만 기사가 간략하고 인용한 사료도 지나치게 간략하여 누락된 것이 많았으므로 남북조시대 남조와 송(宋)의 문제(文帝, 407~453)는 429년에 배송지(裵松之, 372-451)에게 명하여 주(註)를 달게 하였다고 백과사전(두산백과)은 기술하고 있다. 『삼국지』에 함께 포함돼 기술되어 있는 배송지주(裵松之註: 裵註)가 그것이다. 이 배송지의 주는 본문의 말뜻을 주해하기보다는 누락된 사실을 수록하는 데 힘을 기울여, 어환의 『위략(魏略)』을 비롯한 하후담의 『위서(魏書)』 이하 당시의 사서와 제가(諸家)의 계보(系譜)·별전(別傳)·문집(文集) 등 140여 종의 인용문이 기재되어 있다. 이 각 저서는 그 후 대부분 흩어져 사라졌는데, 여기에 인용된 글들이 당시의 사실을 고증하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된다. 그 중에서도 어환의 『위략』은 특히 귀중한 사료가 많이 있어, 이것을 배송지가 인용한 주를 바탕으로 하고, 거기에 다른 문장을 추가하여, 청(淸)나라 때 장붕일(張鵬一)이 『위략집본(魏略輯本)』 25권을 편찬하였다.

 

**한족 : 중국과 타이완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민족집단을 말한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 진출해 있다. 2000년 기준 총인구 13억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민족집단이다.

 


 

또한 『위서』 〈동이전〉에는 부여·고구려·동옥저·읍루·예·마한·진한·변한·왜인 등의 〈전(傳)〉이 있어, 동방 민족에 관한 최고의 기록으로 동방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유일한 사료가 된다. 『삼국지』에 관하여는 후세에 많은 참고서가 만들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청나라 전대소(錢大昭)가 엮은 『삼국지변의』 3권과 양장거(梁章鉅)의 『삼국지방증』 30권 및 항세준(杭世駿)의 『삼국지보주)』 등이 저명하다. 최근의 것으로 1957년 베이징의 고적출판사에서 발간된 노필의 『삼국지집해』 65권, 보권 2권이 『삼국지』의 해설서로는 가장 상세하고 완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이며,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와 함께 중국 '4대기서'의 하나로 꼽힌다. 진수의 『삼국지』에 기술된 대로 위·촉·오 3국이 천하의 패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힘과 지혜의 다툼이 워낙 치열하게 펼쳐졌기에 일찍부터 중국인들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로 전해져 왔다. 당(唐) 시대에 이미 3국의 이야기가 야담으로 전해진 기록이 있으며, 송(宋) 시대에는 전문적인 이야기꾼인 '설화인'들의 이야기 대본인 '화본'으로 정리되고,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곽사구(禱四究)의 ‘설삼분’은 매우 유명했으며, 인종(仁宗, 1010~1063) 때에는 3국의 이야기를 공연하는 ‘피영희)’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元, 1271∼1368)의 영종(英宗, 재위 1320~1323) 때, 전래되던 화본들을 바탕으로 푸젠성(福建省) 젠양의 출판업자 우씨가 『전상삼국지평화』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3권으로 되어 있으며 위에 그림, 아래에 글을 넣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 시대에는 이를 바탕으로 많은 희곡이 만들어져 공연되었는데, 종사성(鍾嗣成)의 『녹귀부』에 따르면 그 수가 30~40종에 이르렀다.

 


 

『삼국지연의』는 한국에서도 조선 시대부터 매우 폭넓게 읽혔다. 『삼국지연의』는 이미 16세기 초에 조선에 전해져 1569년에는 국내에서 원문으로 간행되었다. 인조 때인 1627년(인조 5년)과 숙종 때에도 출간되었다. 『삼국지연의』를 번역하거나 번안한 작품들도 상당수 전해지는데, 이는 사대부만이 아니라 부녀자나 민간에서도 폭넓게 읽혔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시조나 소설, 속담 등에서도 『삼국지연의』의 영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삼국지연의』가 널리 읽히고 확산된 것은 이 작품이 충효와 의를 강조하는 조선의 유교적 지배이념과 일치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근대 이후에도 『삼국지연의』는 수많은 번역본을 낳으며 폭넓게 읽혔는데, 1904년 박문서관에서 최초로 근대적 활자본이 간행되었고, 1929년에는 양백화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연재하였다. 그리고 1945년에 박태원이 ‘모본’을 기초로 현대적 번역본을 출간한 뒤, 박종화, 김구용 등 수많은 작가들이 각기 다양한 번역본을 출간하였다. 현대에 와서 『삼국지연의』는 영화나 컴퓨터게임, 애니메이션 등으로도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우영이 만화로 신문에 연재한 작품이 1979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코에이는 1985년 ‘삼국지’라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였다. 그 밖에도 『삼국지연의』의 내용에 바탕을 두고 경영학이나 처세학 등을 논하는 책들도 오늘날까지 폭넓게 출간되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 미수교국으로 중국의 방문이 거의 없었기에 오늘날 『삼국지 기행』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여행 방문은 꿈도 꾸지 못할 상태였다. 1990년대 초반 한중 수교로 『삼국지』의 무대, 바로 그곳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이 책을 통해 도원결의의 무대가 되었던 장비의 고향 탁주, 제갈량이 유비의 삼고초려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융중, 조조가 천하를 호령했던 허창, 중원의 고도 낙양, 그리고 촉한과 운명을 함께 한 성도, 제갈량과 맹획의 '칠종칠금(七縱七擒)' 에피소드가 숨 쉬고 있는 대리와 곤명 등 『삼국지』 마니아들에게는 꿈과 같은 장소들이 역사적 고증과 다양한 현장 경험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특히 이 책의 여정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동일한 시간적 흐름에 따라 전개되기 때문에,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동양고전인 『삼국지』의 영웅들이 일세를 풍미한 주요 무대를 발로 뛰고 누비며 그들의 역사적 흔적을 흥미롭게 살핀 '지식기행'이다. 이제 정사 『삼국지』와 팩션(Faction) 『삼국지연의』가 어우러져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운 중원에서, 우리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영웅들의 흔적을 함께 확인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삼국지』가 팩션이 되는 과정에 개입한 나관중과 모종강, 그리고 그 외 여러 판본과 『배송지주』, 『세설신어』 등 관련 도서들을 탐독하며 열정에 걸맞게 『삼국지』의 현장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자신의 공부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고전과 현장이 즐겁게 만나는 공간을 구현해 냈다.

정사(正史)와 연의를 치열하게 비교하며 고증한 이 책을 통해 『삼국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감동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수십 번의 답사를 거치면서 담아낸 수천 장의 사진 가운데 추려낸 사진 자료와 현장 확인을 거쳐 밝혀낸 역사적 진실을 통해 독자들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문학과 역사가 함께 만나는 40장의 다채로운 공간에다 역사적 이면에 숨겨져 있던 지식을 맛깔스럽게 발굴해 낸 각 장의 박스를 통해 독자들은 고전의 감동을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다. 저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마련해 놓은 답사루트를 따라 『삼국지』 현장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그토록 알고 싶어 하고 닮으려 했던 영웅들의 발자취를 확인하는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 『삼국지 기행』은 2권 4부로 나뉘어 출간됐다. 앞서 언급한 대로 4부로 구성된 이 책 1, 2권은 역사적 사건(전쟁 연대순)을 따라 움직인다. 책의 구성 역시 연대 순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1부 〈중원이 곧 천하다〉, 2부 〈장강은 말없이 흐른다〉, 3부 〈용쟁호투의 역사와 전설〉, 4부 〈천하는 누구의 것인가〉로 나뉘어 있다. 1권 1부에서는 「관우의 등장」, 「도원결의」, 「동탁의 폭정」, 「호뢰관 전투」, 「비팡 여포」, 「조조와 유비의 만남」, 「원소의 관도대전 패배」, 「조조의 중원 통일」 등이 주요 내용을 이루고 이들 전쟁 유적지와 역사의 현장을 찾아 나선다. 2부에는 「조조, 승상이 되다」, 「유비, 천하 경영의 웅지를 펴다」, 「수어지교, 강호를 호령하다」, 「조자룡과 장익덕」, 「주유, 조조의 천하통일을 가로막다」, 「적벽대전」, 「형주, 경국지색」, 「유비, 딸 같은 부인을 얻다」 등으로 이어진다. 2권 3부에서는 「오나라 노숙, 유비와 손잡고 조조를 치다」, 「손권, 수성의 군주로 우뚝 서다」, 「양주의 맹장, 한수」, 「방통의 죽음, 촉한 멸망의 시작」, 「술고래 장비, 지혜로 엄안을 포섭하다」, 「두 영웅의 형주 사랑, 배반의 서곡」,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 「관우의 교만함에 형주를 잃다」, 「천하도 도원결의 다음일 뿐이다」 등 숨가쁘게 전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며 많은 사건과 많은 기록을 남긴다. 4부에서는 「유비의 유언」, 「조식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촉한 정권의 성립과 신구 세력의 조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 충신이 아니다」, 「읍참마속」, 「제갈량 북벌」, 「촉한의 멸망」, 「제갈량, 삼국지연의 최고의 주인공」, 「손씨 정권의 탄생, 발전 그리고 멸망」 등으로 이어지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2권에서는 저자의 일정 중 중요한 도시인 시안(西安)으로 향한다. 서안은 옛날의 장안이다. 중국 6대 고도의 하나이며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안은 1,100년 이상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도시였다. 모두 11개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는데, 당나라 때 가장 번성하였다. 이때 도시 이름이 장안이었다. 지금은 섬서성의 성도로서 과거의 영예를 이어가고 있다. 고도답게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대충만 본다고 해도 사나흘은 잡아야 한다. 그러나 삼국지 여행에서 서안은 볼 유적이 많지 않다.

 


 

지금의 성곽은 당시의 유적은 아니라고 한다. 명나라 때 다시 증축한 것이다. 10층 정도의 성곽이 아직도 튼튼하다. 그것은 벽돌을 만들 때 사용한 재료에 있었는데, 황토뿐 아니라 찹쌀, 쑥, 석회 등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찹쌀을 재료로 썼다는 것이 신기하다. 찹쌀 대신 아교풀을 씀직도 한데 말이다. 저자의 서안에서의 발길은 다소 느긋한 감이 있다. 입구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정상이다. 한나라 때의 성곽이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폐허가 된 채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폐허뿐인 성곽에 서니 저 멀리 황하가 구비 돌아 들어오는 것이 잘 보인다. 명대에는 황하 가까지로 성광을 중건하였는데, 현재도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황하 강변에는 옛 시대의 누각을 짓고 있는데 그 크기가 거대하다. 다음에 오면 또 하나의 관광지가 우뚝 서서 사람들을 줄 세우고 있으리라. 중국 당국의 관광 상품화의 방법이나 과정이 못마땅함을 슬그머니 드러내기도 한다. 산 정상의 옛 성곽은 '황성 옛터'가 되어 사람도 잊고 역사도 버린 채 세파에 흩어지고 있는데, 산 아래 황하 강변에는 돈 냄새를 맡은 자본이 새로운 동관을 꿈꾸며 황사 속에서도 분주하다. 원나라 때의 관리로 섬서성에 큰 가뭄이 들자 이재민을 구제하고자 동관을 지나던 장양호가 지었다는 시 「산파양」이 새삼 의미 깊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저자의 가슴에도 폐허의 황도가 가슴 아프고 애잔한 백성들의 삶에 지친 모습이 떠오르나 보다.

 

첩첩 산봉우리 모여들고

성난 파도 밀려드는

산 넘어 강 건너 동관 가는 길

장안을 바라보매

떠나지 못하는 마음

슬프도다! 진한의 옛터를 둘러보니

영화롭던 궁궐은 흙더미가 되었구나

잘살아도 백성은 고생이요

못살아도 백성이 고생이라네(2권, p.92)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제갈량을 『삼국지연의』 최고의 주인공으로 꼽는다. 저자는 제갈량은 현실감각이 뛰어난 재상이었으며 역사가 진수도 이를 인정해서 '천하를 다스리는 이치를 깨달은 뛰어난 인재로서 관중, 소하와 비교할 만하다고 썼다고 전한다. 그러나 매년 대군을 움직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임기응변의 계략이 그의 장점은 될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평한 것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유비가 이를 잘 알았던 것일까. 천하삼분지계의 필수 과제인 익주를 공략할 때도 제갈량 대신 법정과 방통이 참여했다. 유비가 삼고초려하고 수어지교라며 제갈량을 떠받든 것과 비교하면 왠지 어색하다고 지적한다.

"『삼국지연의』는 일명 '제갈량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전편에 묘사된 제갈량의 다재다능함이 사실을 넘어 신기에 가깝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촉한 정통론의 입장에서 쓰인 연의는 유비와 제갈량을 최고의 인물로 형상화하였다. 특히 유비 참모로서의 제갈량은 등장부터 관심과 기대를 한몸에 받도록 하였다. 이후 모든 전투와 계략은 신출귀몰한 제갈량에 의해서 진행된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병사했을 때 독자들은 소설이 끝났다고 느낀다. 지혜의 화신으로 과장된 제갈량의 마력을 독자들이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유비는 적벽대전 이후 형주를 차지했을 때나, 익주를 차지하고 나서도 제갈량에게 조세와 군비의 충실에만 전념토록 하였다. 고조 유방의 승상이었던 소하의 일을 맡긴 것이다. 소하는 실무형 경제 관료였다. 유비도 공명을 그렇게 생각하였다. 공명은 유비의 생각을 정확히 읽고 충실히 보필하였다. 송나라 학자 유문표가 이를 정확히 간파하였다. "제갈량은 그가 시무에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만, 대의에 밝다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또한 유비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만, 한나라 황실에 충성을 다한다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공명은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견주면서 유비를 모셨다. 이는 공명이 유비를 난세의 패자로 만들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표출한 것이지, 한 황실을 부흥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라고 저자 역시 판단하는 듯하다. 유비가 내세우는 대의 역시 유비 자신의 정권 창출을 위한 계략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 또한 제갈량의 이러한 속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유비는 제갈량과 16년간 동고동락했다.(2권, p.434)

 


 

저자는 〈에필로그〉 「절절한 이야기 서린 장강 삼협을 보다」를 통해 중국에서 보기 드물게 맑은 강물이 흐르는 소삼협에서의 풍광을 보며 북위 때 지리학자인 곽도원이 장강 삼협을 여행하며 남긴 글을 전한다. "삼협에서 장장 칠백리. 양족 언덕에는 준봉이 연이어져 끊긴 곳이 없고, 첩첩 바위산이 하늘과 해를 가려, 한낮이나 한밤중이 아니면 해도 달도 볼 수 없도다." 저자의 회상과 현장에서의 감회가 남다르다. 어찌 역사와 환경이 지도자에 따라 바뀌는 현장에서 의미심장한 생각이 따르지 않겠는가 싶다. "역도원이 삼협을 본 지 1,500년, 삼협댐의 완공으로 수면이 높아졌어도 구당협의 봉우리들은 한 치의 변함도 없이 하늘을 가릴 듯 솟아있다. 기암괴석과 암벽이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강폭이 좁아 강물은 우렛소리 울리며 소용돌이 치니 일만의 기마병이 내달리는 것 같다. 최고의 실력자가 조정하지 않으면 배는 좌초와 전복되기 일쑤라니, 가히 위험천만한 길이 아니고 무엇이랴."(2권, p.456~457)

 

저자 : 허우범(許又範)

 

작가.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초빙교수. 독서와 여행을 통해 오늘의 시대와 삶을 반추하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20여 년에 걸쳐 중국 전역의 삼국지 현장을 답사하였다. 또한 실크로드에도 천착하여 서안에서 로마까지의 육로를 답사하였고 몇 년 전부터는 바닷길을 답사하고 있다. 저서로 『삼국지 기행』, 『동서양 문명의 길, 실크로드』, 『황해로드』(공저) 등이 있다.

우리 역사에서의 국경과 강토에 관한 부분은 저자의 주된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된 저서로는 『여말선초의 서북 국경과 위화도』, 『고려 시대 서북계 이해』(공저)가 있으며, 위화도의 실체와 역사적 비밀을 파헤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위화도는 가짜다』를 준비 중에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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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1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1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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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의 현장을 둘러보며 정리한 답사기로, 작품 속 영웅들이 활약을 펼쳤던 중국 곳곳을 소개하며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전한다. 저자는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을 살펴보며 『삼국지』를 보다 입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인식하게 해주며, 역사적 고증과 다양한 현장경험을 통해 신뢰할 만한 자료들을 확보해 이 책을 썼다. 저자가 오랜 시간 연구하며 직접 발로 뛰는 취재를 마다않는 열정이 어우러져 완성된 풍부한 콘텐츠들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삼국지연의』에 가미된,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이야기들을 철저히 살피고 정사(正史)와 '연의'를 비교해 실어 독자들이 좀 더 진실에 가까운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 저자는 직접 돌아본 각 지역들을 차근히 더듬어 가는데 그곳을 배경으로 벌어진 삼국지 속 이야기를 들려주고 인상 깊은 구절을 함께 실어 작품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또한 삼국지에서 그려진 특정 장소나 등장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그림이나 다리, 석상 등도 사진으로 기록해 현장감을 더하였다. 저자도 밝히듯이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는 엄연히 다르다. 삼국지는 역사서이며 진(晉)나라의 학자 진수(陳壽, 233∼297)가 편찬한 것으로, 『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린다. 또 삼국지연의는 중국의 위, 촉, 오 세 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14세기에 나관중이 장회소설*의 형식으로 편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오늘날에는 17세기 모종강이 다듬은 ‘모본(毛本)’이 정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칫 혼동하기 쉽기에 저자 역시 책의 시작 부분에서 이를 명확히 가름하고 있다.

 

*장회소설 : 중국 소설의 한 체제로서 내용이 일관되고 긴 이야기를 토막으로 회(回)를 나누어 서술한 소설을 말한다. 형식은 매 회마다 그 이야기 내용을 간추려 제목을 붙인다.

 


 

이 책 『삼국지 기행』은 최초의 『삼국지』 현장 답사기였던 초판이 나온 지 10여 년 만에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초판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과 현장에 대한 이야기들을 추가로 담아낸 증보판이다. 초판 이후 답사한 내용들을 추가로 정리하고 현장 확인을 위해 다시 찾은 중국은 10년 안팎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악인의 대명사로 미움 받는 조조가 영웅으로 부활하였고, 폐허나 다름없던 유적지들도 대대적으로 복원돼 있었다. 장강의 삼협댐이 완성되어 장비묘는 옮겨지고 백제성은 섬이 돼 버렸으며, 중국 전역에 산재한 삼국지 관련 유적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새롭게 복원되었으나 유적의 복원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 허우범은 확인해 주고 있다. 이번 증보판에서는 무엇보다 삼국지 유적의 변천사에 중점을 두었으며, 독자들이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현재의 사진과 과거 초판 사진을 함께 제시하여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화하였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증보판에서 저자 허우범은 「독자들과 약속한 삼국지 현장 보고」란 제목의 '증보판을 내면서'란 글을 통해 앞서 언급한 대로 조조가 영웅으로 탈바꿈한 사실을 가장 먼저 꼽았다. 저자는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국력을 바탕으로 폐허나 다름없던 주요 유적지들이 대대적으로 복원됐다"고 전한다. 조조의 고향에서조차 유비와 제갈량을 이야기하며 조조는 아예 말도 꺼내지 않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영웅 조조'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관광객을 맞는다고 한다. 관우 숭배사상의 산물인,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한 동상은 불법과 부패로 철거되는 수모를 겪었으며, 장강의 삼협댐이 완성됨에 따라 관광객 유치를 위한 방편에만 치중된 것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씁쓸하게 회고하기도 한다.

 


 

『삼국지』를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영웅들의 활약에 빠져 밤잠을 설치게 된다. 그리고 평생 그 책의 팬이 되어 영웅 가운데 누군가를 자신과 동일시한다. 『삼국지』는 그만큼 우리의 꿈이고 현실이며 인생이다. 하지만 영웅들이 뛰놀던 현장에 직접 가서 그들의 숨결과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싶어도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역사적 상상력에 만족했었다. 여기서 『삼국지』는 소설 『삼국지연의』를 말한다.

『삼국지』의 분량은 중국의 '4대 기서'로 올라갈 만큼 엄청난 분량이다. 전쟁이 소재이자 주제인 이 소설이다보니 한 권으로 유적지나 현장을 제대로 답사한다는 것은 기간도 기간이지만 지역적으로도 넓은 지역이라 기행조차도 적은 분량으로 소화하기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모 신문사에서 13개월에 걸쳐 연재할 계획으로 기획된 기행이다. 아무리 줄이고, 편집을 통해 책 두 권으로 펴낸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기획과 연재에 감사를 먼저 표하고 싶다. 삼국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래저래 많이 읽히는 고전에 속한다. 중국 내 전쟁 이야기가 우리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이유는 소설적 구성 때문이리라. 소설은 등장 인물의 성격을 꾸며내기에 좋고, 다소 과장해도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것이니만큼 별 거부감 없이 읽히니까. 특히 우리와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5,000년 간의 관계가 있지 않은가? 이 서평도 앞에 소개글이 길어진 것도 『삼국지 기행』뿐 아니라 『삼국지연의』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함이다. 『삼국지연의』를 번역, 번안한 모든 책이 그렇듯 이 책 『삼국지연의』는 도원결의가 첫 부분이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소설 주요 인물을 내세우기 좋은 형식이고 구성이다. 『삼국지 기행』 1권은 도원결의부터 유비가 손 부인을 얻는 이야기까지를 다룬다. 도원결의를 통해 관우와 장비를 만나고, 동탁과 여포, 원소와 조조, 조조의 시대를 넘어 적벽대전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격전지를 저자가 직접 돌아다닌다.

 


 

도원결의와 적벽대전은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에게는 굉장한 극적 장면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삼국지의 장엄한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도원결의와 제갈공명의 지략이 돋보이는 적벽대전은 영상화할 때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도원결의는 화사한 복숭아밭이라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의(義)'를 표상하는 결의의 장소로도 은유된다.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한 장소는 북경에서 서남쪽으로 64km 지점에 자리한 하북성의 탁주라고 한다.

"탁주에 들어서자 '천하제일주'라고 쓴 패루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소설의 주인공인 유비와 장비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관우와 함께 의형제를 맺고 구국의 군사를 일으킨 곳이기에 하늘 아래 제일 자랑스러운 것이리라."(1권, p.71)

탁주를 거쳐 저자는 조조의 중원 통일 후 군사적 시위였을까. 하도로 오기 위해 산해관을 거쳐 발해만을 따라 회군한다. 빠른 길이기도 하였지만 조조에게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고 저자는 짚어낸다. 그것은 무엇일까? 갈석산에 올라 시 한 수를 짓기 위함이었다. 시인 조조가 시 한 수를 짓는데 굳이 갈석산에 올라야만 했겠는가? 하지만 이 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라고 한다. 중국의 위대한 황제들이 오른 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산에 올라 개선가를 지음으로써 조조 또한 그들과 다름없는 황제의 자부심을 느끼고 암시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에 따르면 조조가 오환을 물리친 유성은 현재 요녕성 조양시다. 조조는 이곳에서 민심을 다스리고 회군했는데, 발해만 쪽으로 내려오다 올랐다는 갈석산은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창여현 북서부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은 695m의 높지 않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역대 제왕들이 그러하듯이 발해만을 굽어보는 평야 지대에 불쑥 솟아 있는 것이 마치 천하에 위암감을 주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전황도시에는 만리장성의 동쪽 출발점인 산해관이 있다. 만리장성은 발해와 이어지는데 바다와 맞닿은 곳에 노륭두라는 망대가 있다.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대대적인 중건 작업을 벌여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라는 표지석이 우뚝하다고 저자는 전한다. 이처럼 만리장성 동쪽 끝은 산해관이 분명한데도, 중국의 동북공정은 압록강변의 단동시 호산산성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우기고 있다고도 말한다. 중국의 역사 왜곡은 비단 『삼국지연의』에서만의 일은 아니란 것을 주장하는 저자의 심중을 헤아리게 해준다.

〈적벽대전〉은 이 책의 2부 21장에 「노을인가, 핏빛인가」란 제목으로 404페이지부터 427페이지까지 전투의 내용과 유적지 사진, 적벽대전을 표현한 각종 문학 작품과 시, 관련 인물들의 말은 물론 전투 양상을 그린 〈적벽대전도〉도 그려서 상세하게 설명한다. 특히 「적벽대전에서 패할 수밖에 없던 조조」라는 별도의 3페이지를 할애해 당시의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조조가 적벽으로 전진을 명령할 즈음, 가후는 조조에게 형주를 수습하고 회유 정책의 강동의 신하를 복종하게 하라고 권유하였고, 조조가 이 말을 듣고 강릉에서 군사들로 하여금 남방 환경에 적응하며 충분히 쉽게 한 후, 이듬해 봄에 오나라로 진군하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배송지가 「가후전」의 주석에서 조조의 패배를 다음과 같이 썼다고 소개하면서다. "적벽에서의 패배는 조조의 운이 그런 것이다. 실제로 역병이 돌아 등등하던 기세가 한풀 꺾였고, 때마침 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불길을 북돋았다. 진실로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니, 어찌 사람을 탓하겠는가?"

하지만 패배의 근본 원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조조의 교만과 적에 대한 무시에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솔직한 지적이다. 조조는 너무도 들뜬 나머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초보적인 전술을 무시했기에 치욕을 당한 것이다.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고, 교만과 무시는 스스로를 망친다는 역사의 준엄한 가르침을 우리는 오늘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2권에 나오지만 형주에서 관우의 교만도 그의 패배로 이어지고 형주를 내어주고 결국은 스스로도 죽음을 맞는다. 형주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저자는 1권의 마지막에 형주를 찾는다. 주유는 적벽대전 승리의 여세를 몰아 조인이 지키고 있는 남군을 공략하였다. 그런데 유비군이 남군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위기를 느낀 주유가 유비를 만나 담판을 지었다. 유비는 주유와의 면담에서 제갈량이 알여준 대로 말은 했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니 섭섭했다고 한다. 자신의 야망은 천하를 차지하는 것이련만, 이를 펼칠 기반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동가식서가숙한 지가 얼마인가. 그 사이 설움도 많이 받았고 목숨마저 위태로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무찌르고 형주를 터전으로 삼아 본격적인 시동을 걸 때가 왔는데, 용중 대책을 설파한 제갈량의 마음이 그새 바뀌었다는 말인가라면 장탄식을 하는 듯하다. 형주를 10년 만에 다시 찾은 저자는 "견고하고 웅장한 성벽에 형강을 해자로 삼은 형주의 모습은 그 옛날 철옹성의 위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고 적었다. 형주성은 삼국 시대의 많은 유적지 가운데 그 형태를 가장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고 한다. 성을 찬찬히 돌아보니 성벽은 시대별로 보수되어 온 흔적이 역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성의 축조 방식은 시기마다 다르다. 관우가 형주를 지키던 때는 흙으로 성벽을 쌓았다. 오랜 시대가 지나면서 요충지 형주를 차지한 자들이 성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보수하여 왔는데, 명나라 때 지금처럼 벽돌로 성벽을 쌓았고, 청나라 초기에 다시 중건한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성 안에는 이를 알아볼 수 있게 안내해 놓았는데 시대별로 이 성의 세파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시대에도 형주성이 중요하였음을, 서로 다른 벽돌이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저자는 기술한다.

 


 

책에 따르면 형주성에서 중요한 문은 동문이다. 동문은 수로가 통하는 문으로 공안문이라고도 하는데, 예전에 유비가 이곳으로 상륙하여 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성문은 모두 옹성을 갖추고 있다. 옹성이란 성벽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방어용의 작은 성을 말한다. 형주성은 모두 6개의 성문이 있는데 모두 옹성을 갖추고 있다. 적들이 용케 해자를 건너왔다고 하여도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인 옹성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벽은 커다란 석재를 기초로 하여 흑벽돌을 쌓았는데, 벽돌의 틈마다 석탄과 찹쌀로 만든 접착제를 넣어 마치 쇠처럼 단단하다고 한다.

저자는 "성문 누각인 빈양루에 오르니 형주성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 일정한 높이의 성벽이 높고 낮은 지형을 오르내리며 둘러쌓았는데, 마치 기다란 럭비공 모양이다. 성 안을 내려다보니 현대에 지어진 가옥들로 빼곡하다. 에전에는 제갈량을 기리는 무후사와 손권의 오왕묘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 없다."고 쓰고 있다. 오직 형주성과 성벽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래서 돌아서는 발길들을 잡으려고 했던가. 진양루 안에는 촉의 주인공들 상을 만들어 놓았다. 유비와 제갈량, 관우와 장비 그리고 조의 조각상이다. 형주는 삼국의 군주인 조조, 유비, 손권이 모두 차지한 곳이다. 아울러 관우, 조인, 주유도 형주를 지킨 장수들이다. 영웅호걸들이 모두 형주를 놓고 치열하게 각축을 벌였고, 세 영웅 중에서 최종 승자는 손권이었다. 그런데 빈양루에 와서 보니 최종 승자는 유비이다. 이는 중국인들이 그만큼 유비를 좋아한다는 반증인 것이다. (중략)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은 형주성에는 거대한 관우상이 들어섰다."(1권, p.453~45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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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있어요 - 세상에 혼자라고 느껴질 때, 우리를 위로해 주는 것들
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안해린 옮김 / 불광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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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慰勞, comfort)라는 단어가 절실한 때가 요즘인가 싶다. 위로란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을 이르는 사전적 풀이로만으로도 충분히 삶에 지친 우리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슬픔'이 기독교가 성경에서 규정하는 '7대 죄악'이외의 죄악에 '슬픔'이 있었다고 한다. 성서에 등장하는 7대 죄악은 ‘탐식’, ‘탐욕’, ‘태만’, ‘욕정’, ‘교만’, ‘시기’, ‘분노’를 이른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서를 연구하다 '슬픔'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현이라 보고 오히려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라고 해서 슬픔은 제외됐다고 들은 바 있다. 슬픔과 위로는 서로 잘 맞는, 궁합이 잘 맞는 단어이다. 성서에서도 '위로'를 언급한다.

"괴로움을 씻어주고 마음을 즐겁게 함. 낙심하고 절망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그 마음에 새 힘을 주고 격려함(대하 32:6). 참된 위로는 위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친히(욥 15:11; 시 86:17), 그리스도를 통해(사 61:1-3; 고후 1:5), 혹은 성령을 통해 주시는 위로이다(요 14:16-17; 행 9:31). 특히 ‘위로’를 뜻하는 헬라어 ‘파라클레시스’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다’로서, 이는 성령을 가리키는 ‘보혜사’(파라클레토스)와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이다. 즉, ‘위로’라는 말 속에 곁으로 불러 보살피고 권면하시는 성령의 자상하고 부드러운 성품이 잘 담겨 있다(고후 1:6). 신약성경에서는 같은 원어가 ‘권면’(빌 2:1; 히 13:22)으로도 번역된다. 그리고 ‘위로자’란 그 처지를 불쌍히 여길 뿐 아니라 그 처한 비극에서 구원해 줄 자를 뜻한다(전 4:1)."(라이프성경사전)

우리 삶에서 슬픈 감정을 느낄 때는 무수히 많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날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강인한 의지로 극복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 책 『내가 여기 있어요』의 저자 크리스토프 앙드레는 누구나 위로가 필요한 때가 있다고 말한다.

 


 

책을 펴낸 출판사 측에 따르면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위로’를 치면 가장 먼저 뜨는 자동완성 검색어는 ‘위로가 되는 글귀’다. 시에서, 소설에서, 유명인의 말에서 위로가 되는 글귀를 찾은 누군가는 위로가 듣고 싶었던 사람일까, 위로를 하고 싶었던 사람일까. ‘싸구려’니, ‘허울뿐’이니 하며 그 가치가 절하되고 어지간한 위로의 말은 내 사정도 모르는 참견으로 여겨지는 시대에도 사람들은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와 나 자신의 괴로움을 덜어낼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런데 정말 ‘위로’가 무엇인지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폐암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녀오며 위로의 중요성을 느낀 저자, 크리스토프 앙드레는 다음의 모든 것은 위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단정짓지 않되, 괴로움에 세상과 멀어지지 않게 언제든 내가 여기 있으면서 돕겠노라 말해주는 것. 슬픔과 비탄에 잠식되지 않도록 한 번씩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 부드럽게 어깨를 다독이는 손. 판단하지 않고 경청하는 태도. 속세의 희로애락과 무관하게 제 속도대로 꽃이 피고 지고 녹음이 우거졌다가 낙엽이 지고, 눈이 쌓였다가 녹아가는 자연의 무심함. 감탄을 자아내는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과 공감이 되는 이야기의 보편성. 시, 명상, 종교…. 당장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더라도,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저자는 슬픔과 고통의 원인과 증세가 다양한 만큼, 위로의 근원 역시 무수히 많아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 책이 위로에 관한 책에 머무르지 않고 부디 위로하는 책이 되기를’ 기원하는 그의 말대로 『내가 여기 있어요』는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에게도, 위로를 주고 싶은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는 가이드이자 위로의 원천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이렇게 우리 모두 알지만 애써 외면하던 진실(요즘 말로는 '불편한 진실')을 대놓고 드러낸다. 그가 말하는 ‘피할 수 없는 세 가지’인 고통, 노화, 죽음은 그 표현대로 인간의 삶에서 어쩔 도리 없이 마주칠 괴로움의 원천이다. 그러나 무기력하게 홀로 괴로움을 감내할 필요는 없다.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이는 끝없는 슬픔에 우리가 잠식되지 않도록 잡아주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울과 불안 장애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비록 눈에 띄는 차도가 없더라도 계속해서 의사를 찾아오도록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내가 여기 있어요』는 그 해답을 관계에서 비롯한 위로에서 찾는다. 저자가 말하는 위로는 온유함과 형제애가 담긴, 일시적인 위안을 초월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위로는 해결책이 없는 삶의 시련이라는 폭풍우와 공존하는 방법이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막막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괴로운 시간에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또 거기 있어 주는 타인의 존재감, 이해와 공감으로 묵묵히 곁을 지키는 위로는 운명의 붉은 실처럼 우리의 삶 내내 이어진다.

우리는 고통받고, 늙고, 죽는다.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위로는 현실을 바꿀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괴로운 감정을 경감시키고 삶의 의욕을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란 저자의 주장이다. "위로는 마법의 묘약이 아니라 어둠 속을 파고드는 빛이다. 이 빛은 우리로 하여금 다가올 세상의 형태를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게 해주어 세상이 살만하다고, 그저 살만할 뿐이라고 알려준다."(p.28)

제대로 위로하려면 슬픔이 정당한지 판단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단지 한숨짓고 눈물 흘리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이를 진정시키고자 노력해야 한다. 고통이 작아 보인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눈물 흘리는 이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p.49)

 

 

독자는 가까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삶의 어려움을 털어놓았을 때, 괴로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을 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당황한 경험이 있다. 평소 위로를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솔직하게 자신의 연약함을 말해준 신뢰에 고마우면서도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허둥지둥하다가 급한 대로 ‘괜찮을 거야’, ‘힘내’라고 뱉고 보면 그렇게 ‘영혼 없는’ 위로도 없어 보인다. 그럴 때 자신이 세상 초라한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때까지 나이 헛먹었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이런 영혼 없는 위로가 무관심이나 성가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다만 사무치는 공감이나, 때로는 경험한 적 없어 가늠할 수 없는 타인의 슬픔에 동요한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 뿐이다. ‘당신의 고통에 나도 마음이 아프다, 현실적인 도움을 줄 방법이 없어 몇 마디 말만 건네기가 겸연쩍다’고 건조하게 위로하기가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타인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을 때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실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 그의 진심 어린 공감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어쩌면 우리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서 힘들어’라고 친구나 가족에게 말할 때 (물론 마법처럼 해결책이 나온다면 참 좋겠지만) 그저 차분히 경청하고 나의 감정을 이해해주길 원한다. 고통에 공감하고, 언제라도 얘길 들어주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곁에 있어줄 것을 알리는 표현은 거창할 필요도, 무작정 긍정적일 필요도 없다. 위로는 현실을 바꿀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괴로운 감정을 경감시키는 데 목표를 둔다. 저자의 주장에 독자의 공감이 실린다. 또 위로의 참뜻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저자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신과 의사로서 그가 만나 온 다양한 사람들과의 일화, 편지글과 문학 작품, 인터뷰를 선별해 좋은 위로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죽음을 앞두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두 친구의 모습을 그리는 빅토르 위고의 글, 감옥에 갇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편지, 마리 노엘, 말레르브,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가 부드럽게 보여주는 섬세한 고통까지. 이를 통해 독자들은 위로를 구하는 사람이 느낄 괴로움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취해야 할 적절한 자세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깨닫게 된다.

슬프고 괴로울 일이 다양한 만큼 우리를 위로하는 것들 역시 하나가 아니다. 사람만이 구원인 것도 아니다. 6장에서는 수많은 위로의 길이 소개된다. 자연, 걷기, 음악, 소설, 글쓰기, 명상, 운명과 믿음, 종교와 환상에 이르기까지 위로가 될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자연을 바라보며 지금 느껴지는 슬픔보다 더 넓은 세상에 속해 있음을 깨닫고, 곁을 지켜주는 반려동물의 다정함을 느끼고,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며 기분 전환을 한다. 예술은 어떨까? 아름다운 그림을 보거나, 내 기분에 맞는 슬픈 음악이든 활기를 일으키는 즐거운 음악이든 노래를 듣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는 사람은 무척 많다. 앞서 말했듯 시와 소설을 통해 타인의 괴로움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공감하거나, 비슷한 상황에서의 적절한 대응 방법을 배울 수도 있다. 고통을 글로 쓰면서 슬픔과 대면하고, 명상을 하며 나와 내 주변을 차분히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커다란 괴로움의 덩어리를 잘게 분해한다. 이토록 다양한 위로의 근원 앞에서 어떤 방향을 선택할지는 우리 몫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모두 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위로」, 2장 「비탄」, 3장 「우리를 위로하는 것: 관계의 회복」, 4장 「타인을 위로하기」, 5장 「위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6장 「위로의 길」, 7장 「슬픔과 위로의 유산」 등이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독자를 평온한 마음으로 이끌었으며, 때론 감동, 때론 공감하게 했다. 그만큼 절실하게 쓰여졌으며, 자신의 진심을 다해 썼다는 반증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7개 장 하나하나의 저자의 경험과 사유, 그리고 위로할 때의 마음가짐이 그대로 드러나듯 책을 썼다. 그래서 펜으로 썼다기보다 온몸과 영혼의 다해 썼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첫 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위로의 정의'부터 말한다. 마치 과학자가 새로운 발명을 한 이후 새로운 가설과 가제를 서두에 두는 것처럼(눈문처럼) 책을 구성했다. "위로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다. 위로의 목적은 해결책처럼 현실을 바꾸고자 함이 아니라 고통의 감정을 경감시키는 것이다. 위로받는 것은 엄밀히 말해 상황을 변화시키는, 또는 변화시킬 수 있게 하는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다. 위로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시련’보다 마음이 아픈 ‘사람’에 집중한다."(p.21)

이어 저자는 위로는 때로 불가사의한 과정을 거치고 종종 불분명한 결과를 가져오는 '연금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앞으로 이 책에서 다룰 위로의 여정에는 4가지 필수요소가 항상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 4가지가 〈애정〉, 〈관심〉, 〈행동〉, 〈수용〉이다. 애정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든 형태의 위로는 비탄에 잠긴 이를 향한 애정의 표현이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 관심에 대해서는 위로하는 주체는 우리의 관심을 고통에서 돌려놓는다. 일시적이고 표면적이고 미약할지언정, 그 효과는 긍정적이다. 고통을 중단시키는 것은 할 수만 있다면 좋은 일이며, 숨을 돌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이와 함께 괴로워하는 이가 삶의 생기를 되찾을 수 있게 하려면 말과 조언보다 주로 행동, 특히 함께 공유하는 행동을 제안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수용에 대해서는 시련을 수용함은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지 시련에 굴복하거나 즐기게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회복의 과정에 인정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인정은 위로의 결과이자 이로움이지, 정면에서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라고 언급한다. 결국 위로하는 사람은 위로받는 이를 온화하게 이끌어 수용의 단계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지향한다고 덧붙인다.

 


 

회복력이든, 맞서고 살아낼 의지든, 우리 존재의 위대한 자원은 바로 사랑이다. 받은 사랑, 준 사랑, 받을 사랑, 줄 사랑…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시련에 맞서는 모든 힘의 원천은 사랑과 그것이 주는 위로라고 할 수 있다.(p.225)

 

저자 : 크리스토프 앙드레(Christophe Andre)

 

프랑스 파리 생트안 대학병원 정신과 의사이자 긍정심리학 전문가. 불안증 및 우울증과 같은 정서 장애 치료를 전문으로 하였으며, 그중에서도 최근 몇 년간은 마음챙김 명상과 긍정심리학을 활용한 재발 방지 분야에 힘썼다. 2000년대 초반 심리치료에 명상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 가운데 하나로, 프랑스 인지행동치료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파리 제10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는 프랑스 공영 라디오 채널 ‘프랑스 앵테르(RFI)’에서 매주 명상과 마음챙김 관련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2006년 펴낸 『나라서 참 다행이다』가 프랑스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불안을 넘어설 용기』, 『나답게 살아갈 용기』, 『새로운 뇌 사용법: 나를 치유하는 뇌』 등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 공저로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 『나를 살리는 관계』, 『내 마음이 왜 이래』, 『상처받지 않는 삶』 등이 있다.

 

역자 : 안해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불과 국제회의통역을 전공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몽테뉴의 수상록》, 《몬테소리와 함께하는 사계절》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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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기억책 -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 최원형의 사라지는 사계에 대한 기록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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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배운 '나라 사랑' 문구 중 "사계절이 뚜렷하고 화려한 금수강산"이 한반도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그런데 불과 수십 년만에 우리 한반도의 사계가 사라질 지경이라니 기후 변화 정말 무섭다. 인류의 미래에 암담한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그만큼 급박하게 기후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한반도는 온대 지방에 자리잡고 있어 해양성 기후와 다르지만 사계가 뚜렷하다는 장점도 크다. 또 강수량이나 기온 등도 적절해 일년 단위로 생계를 잇는 농사를 짓기에도 안성맞춤인 지역이다. 한마디로 조상들로부터 매우 좋은 조건의 땅을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살아가기에도 온대 지방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모든 장점과 혜택이 없어지려 하고 있다.

이 책 『사계절 기억책』은 기후변화와 과도한 개발로 봄날의 아까시나무 향과 한여름의 매미가 사라지고 있는 현장에 대한 기록이다. 개발로 망가진 환경을 보존하려는 생각보다 사라져가는 생명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는 게 당초 의도다. 기록하고 또 그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개발이나 인간 편익을 위한 무자비한 환경 파괴 행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 최원형은 한반도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 기록은 생태계 변화의 역사가 되고 지구 위기의 리포트가 된다. 저자는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란 별명을 갖고 있다. 저자의 기록은 기후위기의 시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생명과 생명의 만남이다. 또 무해한 자연의 위로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산과 바다, 강과 하천, 갯벌과 습지 등 곳곳을 누비며 수많은 목숨붙이를 만난 저자는 그들의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를 직접 그린 100여 점의 세밀화와 함께 이 책을 통해 선보인다. 무심코 스쳐 지나온 이웃한 동식물은 물론 순천만 흑두루미, 파주 공릉천 수원청개구리, 제주 사려니숲 긴꼬리딱새처럼 쉽게 만날 수 없는 낯선 생명들까지, 마치 눈앞에 있듯 생생한 자연이 펼쳐진다.

저자는 책에서 지구상에 700여 마리밖에 생존하지 않는다는 넓적부리도요, 육식 산업의 발전과 함께 멸종한 소똥구리, 수족관에서 지내다 제주 앞바다에 방사된 남방큰돌고래 ‘비봉이’, 밀렵으로 사실상 기능적 멸종 상태가 된 코뿔소, 동물원을 탈출해 도로를 누볐던 얼룩말 ‘세로’ 등 인간의 욕심으로 고통받거나 사라져가는 자연의 존재들에도 주목한다. 자연 속 크고 작은 생명들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깊은 유대감으로 그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을 거란 믿음에서다. 기후위기와 멸종위기라는 말이 숱하게 들려오는 시대, 기억하고 지켜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저자는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저자가 그리기를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고 한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한 손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으면 두 손이 자유로우니 가뜩이나 산만한 나는 노는 손을 가만두지 못했다. 평소에는 낙서에 그치는데 그날따라 책상 앞에 붙여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상모솔새 그림이었다. 나는 책상 위해 펼쳐놓은 다이어리에 상모솔새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새를 그린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중략) 색연필로 색칠까지 마치고 나니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새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새를 그려보고 싶었나 보다."(p.8~9)

 


 

저자는 생태·환경·에너지 전문가로서 작가로서의 글 쓰는 일과 강연을 한다.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 『착한 소비는 없다』 등 다수의 책을 펴내며 분야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저자가 이번에는 어느 책에서도 선보인 적 없는 100여 점의 세밀화와 함께 첫 자연 에세이를 펴냈다. 꽃과 나무부터 잡초라 불리는 식물까지, 익숙한 포유류와 조류부터 생소한 곤충과 양서류까지. 그간 인식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자연이 마치 눈앞에 있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모이대를 찾아온 직박구리와 사과를 나눠 먹는 순간, 풋고추 구멍 속에서 담배나방 애벌레를 꺼낸 순간, 분갈이를 하던 화분에서 지렁이를 발견한 순간까지, 저자에게 자연이란 손끝 발끝이 닿는 모든 순간에 있다. 저자는 숲에서도 도시에서도 크기가 다르지만 목숨의 무게는 같은 저마다의 생명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했다. 이 책은 강아지와 고양이의 종은 구별해도 오늘 가로수 위에서 노래를 부른 새의 이름은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도시 숲 자연주의자의 수상록이다.

“도시가 콘크리트 숲이라고 해도 사실 풀이며 새며 곳곳에 스며든 생명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p.73)”고 말하는 저자는 산과 바다, 강과 하천, 갯벌과 습지 등 곳곳을 누비며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목숨붙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순천만 흑두루미, 파주 공릉천 수원청개구리, 제주 사려니숲 긴꼬리딱새…. 자연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자만이 마주할 수 있는 광경이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기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생명과 생명의 만남을 지켜보며 '기적'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삶에서 매 순간 기적 아닌 때가 있기나 했을까?란 사유적 말도 풀어낸다. 다만 기적을 기적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욕망의 더께에 가려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우려의 마음도 슬그머니 꺼내놓는다. 제자리에서 묵묵히 자기의 소임을 다하는 존재들과 그들을 온기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는 저자의 모습에서 인위적 세상에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아주 ‘무해한’ 자연의 위로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자연을 관찰하면서 보고 배운 지혜로 "자연은 배움의 보고 그 자체다"고 강조한다. 어디를 들여다봐도 넘치는 생명과 진화의 신비를 엿볼 수 있고, 세상살이의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도시에 사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자연의 지혜를 흥미로운 이야기와 생동감 넘치는 그림으로 전하는 것도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라 그림이 말이나 글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길에서 밟히면서도 널리 씨앗을 퍼트릴 수 있게 진화한 질경이부터 칼바람을 피할 수 있게 작은 방석처럼 잎을 펼치고 겨울을 나는 여러해살이풀들, ‘소리 없이 땅을 일구는 농부’라 불리는 지렁이, 온갖 재료로 자기만의 효율적인 둥지를 짓고 사는 세상 제일가는 건축가 새까지, 다양한 생물종이 품은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연에 순응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동식물을 통해 인간 동물이 나아갈 길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날 수 있도록 새는 몸을 변화시키며 진화했다. 몸무게를 줄이려 이빨을 포기했고 뼈를 비웠으며 때로 먼 길을 이동할 때면 몸속 장기마저 최소화한다. 비우고 덜어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새를 보며 배운다.”(p.197)

지금껏 인류는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 파괴를 비롯한 수많은 문제를 야기해왔다. 간척 사업은 갯벌 생태계의 죽음을 불러왔고 서식지에 들어선 도로 때문에 개구리는 알을 낳으러 가는 길에 로드킬을 당한다. 육식 산업의 발전으로 소똥구리는 우리 땅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과거의 성찰에서 한 발 나아가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데 그치는 대신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책이라 할 수도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환경 보존', '기후 변화 대응' 등 수많은 환경보호 캐치프레이즈보다 직관적이고 강한 느낌을 받는 그림 그리기를 지속하는 이유가 된다.

 


 

이 책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900일 동안 포위되면서도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씨앗(종자)을 끝까지 지켜낸 바빌로프 연구소 이야기도 있다. 새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전깃줄을 없애며 철새들의 광활한 안식처가 되어준 순천시 이야기도 나온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어떻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이 밖에도 콘크리트 배수로에 사는 개구리들을 위한 ‘개구리 사다리’, 도토리를 숲에 사는 동물들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의 ‘도토리 수호대’, 겨울철 식량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새들을 위한 ‘버드피더’ 등 미래의 희망이 되어줄 지구 공동 생활자들의 갖가지 노력이 소개된다.

"전깃줄은 경관을 해친다. 그뿐만 아니라 흑두루미나 독수리처럼 큰 새들은 전깃줄에 걸려 날개를 다치기도 한다. 생존에 필수인 날개를 다친 새는 결국 도태되니 새들에게 전깃줄은 위협일 수밖에 없다. 새들을 위해 이런 전깃줄을 없앤 첫 지역이 순천시다. 2009년 4월 순천시는 순천만 주변 농경지에 있는 전봇대를 뽑아버리고 그 들판에 흑두루미 모양으로 벼를 심어 경관 농업을 시작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전기가 필요한데 전봇대를 뽑자고 하니 농민들이 순순히 동의했을 리 없다. 한국전력조차 전봇대 철거를 거부하자 순천시와 순천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설득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전봇대가 사라진 59헥타르에 이르는 들판은 철새 보호구역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방식으로 농사지어 수확한 벼를 흑두루미 먹이로 공급한다. 흑두루미뿐만 아니라 찾아오는 어떤 새든 와서 쉴 수 있도록 무논 습지를 확보해서 새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순천 시민들은 새들이 겨우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불빛 차단 울타리와 차량 차단막을 설치하여 잠자리며 먹이터를 마련해주었다."(p.26~27)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다. 1장 「입춘을 품은 겨울」, 2장 「제비가 보인다, 봄」, 3장 「능소화가 핀 여름」, 4장 「감나무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 5장 「야생의 생명과 연대하는 가을」 등이다. 모두 사계절에 따라 순환하는 우리 인간과 삶의 모습이 같다. 어떤 일 하나 인간과 다를 바 없음을 관찰을 통해 저자는 기록한다. 특히 사라져 가는 자연과 그 속의 생명체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의 모습 등은 아련하고 애잔한 향수도 불러일으킨다. 최소한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자연과 생명들을 아끼고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을 지향해야 함을 말없이 그림으로 보여준다.

독자가 어렸을 때 길가에서 흔히 발견되던 질경이에 대한 저자의 관찰과 사유는 많은 성찰을 하게 해준다. 〈밟히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숙명을 안은 풀〉로 특징을 적은 저자는 질경이에 대한 풀이를 문학적 혹은 철학적 사유의 일단을 보여준다. "내게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들길 산책을 즐길 때라 답할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살랑이는 바람 한 줄기가 함께하는 들길 산책은 말로 형언키 어려운 행복감이 밀려온다. 귀소하는 새 떼가 내 머리 위로 날아간다면 금상첨화다. 행복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세포 하나하나가 알아차리는 시간이다. 그 길에 만나는 풀이 질경이다. (중략) 밟혀서 완전히 짓이겨지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을 질경이는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다. 꽃자루에 작은 흰 꽃이 피고 검은 씨앗이 맺히는데 바닥에 엎드려도 루페 없인 구분이 어렵다. 이 씨앗에는 젤리 같은 물질이 있어 물에 닿으면 부풀어 오르며 접착력이 생긴다. 이런 씨앗의 특성 덕에 질경이는 길에 살면서 지나가는 나그네의 신발 바닥, 마차 바퀴 그리고 21세기에는 자동차 타이어에 묻어 먼 곳까지 이동하며 영역을 넓혀나간다. 질경이 생김새 하나하나에 자손을 퍼뜨리려는 진화의 흔적이 묻어 있는 걸 알고 나니 질경이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 풀이란 생각이 든다."(p.83~84)

 


 

"다람쥐나 어치 같은 동물들은 도토리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모아서 자기가 기억할 수 있는 장소에 숨겨놓는다. 겨우내 꺼내 먹을 식량을 저장하며 겨울을 준비하는 건데, 도토리를 가져가 땅에 숨기는 동물들의 이런 행동은 참나무 입장에서도 좋다. 나무 아래로 떨어진 도토리가 설령 싹을 틔운다고 해도 큰 나무 아래서 다른 나무가 제대로 자라긴 쉽지 않으니 가능하면 멀리 떨어지는 게 자손을 퍼뜨리기에도 유리하다. (중략) 숨겨놓은 도토리를 동물이 다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니 잊히는 바람에 용케 살아남은 도토리는 적당한 깊이에 묻혀 있다가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싹을 올리며 큰 참나무가 된다. 그리고 어치와 다람쥐는 도토리를 잘 묻어준 수고의 대가를 가을에 도토리로 되돌려받는다."(p.217~219)

 

저자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가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밀어버리고 들어선 공간이니 “새들을 위해 모이를 챙기는 일은 내 의무이자 공간 사용료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도 기후위기의 희망으로 생명과 생명 간 연대에 주목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지구를 위한 선한 행동이 모여 내일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글·그림 : 최원형

 

우연히 자작나무 한 그루에 반해 따라 들어간 여름 숲에서 아름답게 노래하는 큰유리새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자기 목소리와 자리를 갖지 못한 존재들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뭇 생명과 조화로운 삶이 세대에 걸쳐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자연을 눈 가까이 불러들이고 싶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으로 더 많은 더 넓은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린 모든 것들은 순환하는 하나의 세상입니다. 오래오래 보고 싶은 것들이고요. 크고 작은 목숨붙이들과 마음을 나누며, 내일도 그릴 겁니다.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잡지사 기자와 EBS, KBS 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생태·에너지·기후변화와 관련해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시민 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 《왜요, 기후가 어떤데요?》, 《라면을 먹으면 숲이 사라져》, 《착한 소비는 없다》,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대》, 《최원형의 청소년 소비 특강》 등이 있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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