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숲을 거닐다 - '괜찮아 잘될거야!'라고 외치는 100가지 행복여행
송준석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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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마음의 숲을 거닐다』를 읽으려는 독자들은 〈행복〉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자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행복〉이 누구나에게나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을 알지만 행복하기 위한 깊은 사색이나 노력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엔 정치 사상 중에서도 현세의 행복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전적 체계에서도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은 궁극의 목적이었다. 기독교는 현세의 행복을 상대화하였지만 중세의 '공통선'이라는 발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자의 행복을 배려하는 것은 정치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 때 행복을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고전적인 정치사상에서는 혼의 내부에 서열을 정하여 감각적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절제하고 혼의 상위부분(지성, 신앙)을 충족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봤다. 그 점에서는 쾌락주의라고 비난받았던 에피크로스파도 마찬가지이며 욕망에 현혹되지 않는 아타락시아(ataraxia: 마음의 평정부동平靜不動의 상태)의 경지로 정치에서 물러서 개인주의적인 태도로 결과를 되돌렸다고 『21세기 정치학대사전』은 기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근대의 정치사상과 행복의 관계는 양극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행복이 혼 내부의 서열과의 관계를 상실하고 쾌락으로 환원됨으로써 평준화 및 양화(量化)되어 계산 가능한 것이 된다. 벤담(Jeremy Bentham)의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입법의 원리로 한다. 다른 하나의 극에 있는 것은 칸트(Immanuel Kant)의 입장이다. 칸트는 전제 계몽군주가 국민의 행복을 이유로 한 개입을 정당화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행복은 후천적인 것에 불과하며 도덕이나 법의 규정 근거가 될 수 없다. 19세기의 위대한 공리주의자 J. S. 밀(John Stuart Mill)은 벤담의 원리를 수정하고 행복에 다시 질적인 상위(相違)를 도입한다.

 


 

이 책 『마음의 숲을 거닐다』는 한마디로 '행복'의 책이다.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읽는 책이다.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읽는 책이다. 행복한 사람들이 읽는 책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꼭 읽어볼 것을, 먼저 읽어본 독자가 감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 송준석은 생명살림운동과 문화예술메세나 운동에 참여하면서 이미 세 권의 책을 낸 분이다. 첫 번째 책 『오늘도 인생을 색칠한다』에서 성공을, 『기쁨이의 속삭임』에서 사랑을, 『우리들의 잃어버린 선물』에서 희망을 독자들에게 선사한 적이 있다. 네 번째 책에서 저자는 삶의 가장 큰 가치인 행복을 노래한다. 여기에는 저자가 배운 지식, 살아오면서 경험한 가장 큰 가치에 대한 지혜와 책을 통해 얻은 영감을 한데 버무려 행복의 실을 뽑아 직조해낸 '행복 교과서'이다. 그는 이 책에서 〈행복〉이란 공통의 가치에 대해 100개의 질문과 사색을 직조해냈다.

영화 〈명량〉 〈한산〉 〈노량〉의 연출자 김한민 감독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명예와 경제적 성취란 것이 결코 행복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여실히 느끼고 체험했던 장본인"이라고 행복에 대한 솔직한 체험과 저자와의 인연에 대해 언급한다. 『마음의 숲을 거닐다』는 저자 송준석이 쓴 네 번째 책이자 삶을 축복으로 만드는 행복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은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열 분의 젊은 화가들의 따뜻한 그림을 글과 함께 배치하여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독자들은 책 읽는 즐거움과 그림을 감상하는 마음이 어우러져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정성 들여 만든 책이라는 느낌이다.

 


 

저자는 이 책 '프롤로그'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삶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표현한 이후에 존경하는 김태길 교수를 비롯하여 여러 학자들이 건강, 교육, 부, 자아실현, 출세 등을 행복에 대한 객관적 증거로 들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도 한때 행복한 공직생활 등의 강의에 객관적 지표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런 기준은 필요하긴 하지만 개인차가 있고 어느 선에서 만족하고, 만족해야 하는지 분명한 기준이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밝힌다.

저자는 또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행복을 ‘인간답게 살았을 때 내게 책임을 다했을 때 주어지는 느낌이나 정신적 보람’이라고 다소 주관적이고 추상적 개념으로 정리하고 있다.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방해하거나 물질적 조건이 필요치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탈 벤 샤하르도 〈해피어〉에서 행복은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만족감으로 주관적이라고 했다는 점에 공감을 표시한다. 저자도 행복은 조건화된 객관적인 현상지표라기보다는 주관적인 관념이라 생각하고 이를 더 선호한다는 것. 배부른 뒤에 허전함일 수도 있지만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적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하며, 저자는 이 주제에서 나름의 삶 속에서 겪은 여러 가지 경험을 토대로 행복을 중구난방 식으로 성찰하여 정리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는 10장(章)에 걸쳐 모두 100개의 〈행복〉에 관한 담론이 제시되지만 어디서부터 읽을지, 어떤 것을 먼저 읽을지는 독자들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각각의 담론이 모두 〈행복〉에 관한 것이고 독립적인 주제인 까닭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행복이란 향수와 같습니다」, 2장 「행복은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3장 「진정한 휴식은 행복의 원천입니다」, 4장 「자신을 알아준 친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5장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면 행복합니다」, 6장 「삶 자체를 선택하고 즐겨야 행복합니다」, 7장 「행복은 죽음을 잘 준비한 자의 몫입니다」, 8장 「비움은 곧 충만이고 행복입니다」, 9장 「용서는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10장 「타인을 행복하게 하면 자신도 행복합니다」 등이다. 모든 장의 제목에 〈행복〉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은 저자의 의도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살면서 가장 최고의 가치를 〈행복〉에 두는 저자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행복을 찾는 이유, 행복을 느끼는 이유, 행복의 정의, 행복에 필요한 것들, 행복하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들 등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사유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김한민 감독은 추천사를 통해 저자와의 인연과 나름의 행복에 대하여 소신을 밝힌다. "2014년 여름 영화 명량이 소위 초대박이 나고 내가 느낀 참 정서는 큰 기쁨과 행복감보다 큰 우울과 불행감이었습니다.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지속적인 신경통이었습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곳이 어느 단식학교였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송준석 교수님을 만났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나는 그때 교수님과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비로소 명예와 경제적 성취란 것이 결코 행복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여실히 느끼고 체험했던 장본인입니다. 이 책은 그때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온 송준석 교수님의 저서들 중에서 본격적인 행복론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 ‘마음의 숲을 거닐다’와 함께 행복을 찾아, 마음의 여행을 떠나시는 건 어떠세요?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서도 행복이란 과연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어떤 앎과 깨우침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지 차분히 음미하는 멋진 시간을 가져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아무쪼록 모두 행복하십시오."

 


 

저자는 행복의 요건에서 물질의 풍요나 쾌락을 배제한다. 경험으로 느낀 바에 따라 결핍의 욕구인 세속적 쾌락이 행복을 채워주지는 못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탈세속적 차원에서 "만족을 아는 자가 가장 많은 것을 가진 자다(법구경)"라는 말처럼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의 행복,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베풂의 행복 또한 중요한 행복이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동말레시아의 바자우족에게는 부족함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해조류 아갈아갈을 채취하며 낡은 바다 위 집에서 사는 민족의 해맑은 미소는 행복 그 자체임을 보고 느꼈다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을 나누는 것도 커다란 행복이란 점을 강조한다.

이와 함께 기준이 없는 막연한 비교는 행복을 방해한다고 언급한다. 결핍과 부족을 느끼게 할 뿐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다. 자신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고, 부족한 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경시하고 하찮게 여기며 스스로 믿지 않는 것은 행복의 방해요소로 생각하는 것이다. '잔인함은 자신의 약점으로부터 나온다'는 세네카의 말처럼 자신의 장점과 긍정성을 볼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는 자아존중감이 행복의 큰 요인 중 하나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불안〉하면 행복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저자는 "자기가 기대하는 사건이 예측 불가능할 경우에 온다. 완벽한 예측은 있을 수 없듯이 인간은 원래 불안한 존재이다. 불안하면 행복할 수 없다. 따라서 완벽하지 않고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 차림하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자신의 뜻대로 모든 일이 되지도 않으며 나날의 삶에 부딪히는 어려움과 번뇌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단지 나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감사하면 행복이 싹트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이 밖에도 〈감사〉를 모르고 사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만들어 준 사람에게 감사를 드리고 천천히 음미하는 것도 행복이다는 행복으로 다가서는 한 방법이 〈감사〉임을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목마를 때 마시는 한잔의 물이 몸을 상쾌하게 하는 감격과 감동을 주는 계기가 되듯이 우리의 일상에는 행복이 도처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수없이 많은 행복한 순간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소소한 행복의 즐거움을 아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있는데 아니 행복할 수 있는가? 라며 해맑게 웃는 자연에서 홀로 사는 사람들은 느리게 살더라도 여유 있게 즐기는 행복이 필요한 시대다. ‘걷다보면 해결된다.’는 말이 주는 교훈을 한번쯤 되새겨보자.

저자는 “현재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눈을 가진 낙관론자는 삶이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디슨이 말했듯이 똑 같은 일도 생각하기에 따라 지옥도 되고 천국도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일체유심조’입니다. 탈 벤 샤하르의 말처럼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나름의 긍정적 의미가 있습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입니다. 고통과 시련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행복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삶의 축복인 행복은 이렇듯 항시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나날을 고치고 수리하는 고통과 애씀이 병행하는 ‘보통의 삶이 바로 행복을 저축하는 것’이라 생각하십시오. 한 대도 안 맞고 권투에서 이길 수 없듯이, 자유의지, 자기 통제력과 같은 약간의 힘듦이 있는 과정을 거쳐야 자신만의 독창성과 즐거움을 동반하는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모든 일에는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듯이 삶에서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성공이라면 성공도 행복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지위와 수입을 보장한다고 해도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거나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맡지 않는 것이 좋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직업이라도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천직에 감사하는 마음이 즉 행복한 삶의 요인이다. 일에 이끌려 다니는 사람보다는 이끌고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자신의 일이 하찮게 여겨지더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펠리치타(행복)’ 노래를 흥겹게 부르며 신나게 하루를 시작하시길 바라며, 이 글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사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천국의 열쇠」와 「성채」의 저자 크로닌은 근원적인 사랑으로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며 하느님의 이웃사랑 정신을 실천하는 삶을 그린 소설로 큰 감동을 줍니다. 삶이 기대대로 평탄하지는 않고, 많은 좌절을 겪고 방황도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행의 과정을 지내고 나면 축복이 다가옵니다. 이때 우리는 신에 기도하며 방향을 묻고 경건해집니다. 성숙하고 진지해지는 과정이지요.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처럼 시련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진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p.229)

 

저자 : 송준석

 

고려대학교 교육학과(학사·석사·박사) 졸업 후 전남도립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를 거쳐 지금은 공연음악과에서 인문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한국교류분석상담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사)광주전남생태유아공동체 고문, (사)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상임이사,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감사, 한국영유아교육학회 부회장, 갤러리 엠파시 대표로서 미력하나마 생명살림운동과 문화예술메세나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정년 후에도 대중과 소통하는 글을 쓰며 상담센터와 갤러리 운영을 통해 자신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건강하고 맑게 하는 일을 소명으로 삼고자 합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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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 - 영혼에 새겨진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상흔을 치유하는 법
리즈 부르보 지음, 박선영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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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핀 꽃은 없다"는 말은 누군가의 입에서 나와 지금은 격언처럼 들린다. 뿐만 아니라 비슷하게 패러디할 때도 자주 쓰인다. '아프지 않은 사랑은 없다",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등 패러디가 명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꿈은 좌절되기 일쑤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떠나며, 행복한 순간은 찰나에 그친다는 걸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는 깨닫는다. 맹자는 일찌기 2300년 전에 "고난은 마음의 근육을 키워준다. 어른이 단단한 까닭은 겪어온 무수한 고난을 주름에 갈무리했기 때문이다"는 말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상처를 통과하는 일이며, 상처는 우리를 깊이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킨다는 이 책 『모든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는 저자 리즈 부르보의 말과 결이 같다. 이때 문제는 상처 난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치명적인 상처를 받은 뒤, 같은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자신을 보호할 두꺼운 가면을 만들어 쓴다. 그러고는 그 뒤에 숨어 상처를 더 깊고 아프게 하는 방향으로 욕구를 채우려 애쓴다. 심리상담가로서의 리즈 부르보의 말이다.

저자 리즈 부르보는 영혼을 뒤흔드는 결정적 ‘상처’와 ‘가면’을 크게 5가지 범주로 분류해냈다. 더불어 42년 동안 수백만 명의 환자를 치유한 경험을 토대로 유형별 습관이나 말버릇, 태도는 물론 체형에 대해서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그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근본적인 상처는 어디서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치유하는지 이 책을 통해 세심하게 담아낸다. 저자는 '다섯 가지 상처 진정한 자신과 행복을 찾아주는 프랑스식 상처 치유법'을 담은 책 『다섯 가지 상처』를 이미 발간,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이 책은 한층 심화된 상처에 대한 심리상담을 통해 더욱 구체적이고 세밀한 치유법을 찾아내고 있다.

 


 

저자 리즈 부르보는 캐나다 퀘백 주를 시작으로 Listen to Your Body School을 22개국에 설립, 세계에서 가장 큰 ‘자기성장학교’로 발전시킨 유명한 심리상담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녀는 35년간 수백만 명을 치유해오면서 상처에 대한 24권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으며 450만 부의 판매 기록을 세웠다. 『다섯 가지 상처』는 그런 저자가 그동안 얻은 마음의 ‘상처’와 ‘가면’에 관한 깊은 통찰을 기존에 본 적 없는 흥미로운 형태로 담아내었다. 과거의 경험에서 생기는 이 다섯 가지 상처들은 존재 깊은 곳에 쌓이며 삶에 대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그 경험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될 때까지, 즉 자신을 용서하고 타인을 용서하기까지 어떤 이는 수차례, 또 다른 이는 몇 번이고 그 경험을 되풀이하게 된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상처의 경험과 고통이 어디에서 시작되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소개하는데, 버릇과 습관, 말투와 행동, 몸의 형태를 통해 드러나는 상처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심리적인 문제들을 상세히 풀어나간다. 출간 즉시 캐나다 역대 베스트셀러의 기록을 갱신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다섯 가지 상처』는 아마존 프랑스에서 5년 연속 심리 분야 1위, 최장기 밀리언셀러이자 현재 프랑스가 가장 사랑한 심리 치유서로서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에게 지금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저자는 수십 년 동안 임상에서 직접 환자를 대면하며,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하는 형태가 유형별로 나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했다고 하자. 사람에 따라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이런 친구는 필요 없어. 손절할 거야. 연락처도 차단하고 SNS 팔로도 취소해야지.” → 거부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나는 외톨이야, 누가 좀 챙겨줘.” → 버림받음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이런 취급을 받는 게 틀림없어. 속상하니 맛있는 거라도 먹자.” → 모욕

“무슨 일로 취소하는데? 왜 그걸 예상하지 못해서 내게 피해를 주지? 나에 대한 모독이야.” → 배신

“미쳤군!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건데, 어떻게 어길 수 있지? 이런 애를 믿은 내가 바보야!” → 부당함

 

저자는 이처럼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다섯 가지 이유를 분류했다. 이 책은 이른바 '과학적인 증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내용도 있다고 저자는 밝힌다. 하지만 오랜 기간 임상을 통해 확인한 이 이야기들을 무턱대고 의심하지 말고 당신의 일상 속에서 직접 확인할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지금껏 당신을 괴롭히던 상처와 가면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신과 행복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같은 상황에도 분노의 방향성은 제각각이다. 저자는 두드러지는 반응을 유형별로 묶고, 특정 상처로 인한 반사적 사고가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는지 풍부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영혼에 깊게 새겨진 치명적 상처가 건드려지면, 사람들은 더는 아프지 않기 위해 재빨리 가면을 쓴다고 한다. ‘거부’당한 상처가 가장 아픈 사람은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도피하는 사람’의 가면을 쓴다. 일단 그 자리에서 도망가는 방법으로 아픔을 피하는 것이다. ‘버림받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은 ‘의존하는 사람’의 가면으로 스스로를 보호한다. 받아들이기 벅찬 일이 생기면 피해자임을 강조하고 자신을 불쌍히 여기도록 유도한다. 다시는 버림받지 않으려고 무의식적으로 관계에 기대는 것이다. ‘모욕’의 상처는 수치심과 연관이 깊다. 그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면 극도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 생각하는 ‘마조히스트’의 가면을 쓴다.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기에 굴욕적으로 헌신하려 하는데, 이는 사실 친절을 이용해 상대를 조종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행위다.

‘배신’의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의 경우 ‘지배하는 사람’의 가면으로 아픔을 떨쳐버리려 한다. 자신은 유능하고 합리적인 사람임을 내세우며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을 답답해한다. 상황을 통제하면 배신당하지 않을 거라 여기고 타인을 몰아붙이는 것이다. ‘부당함’의 상처를 지닌 사람은 불평등하다고 판단될 때마다 ‘완고한 사람’의 가면을 덧쓴다. 심지어 본인이 이득을 보는 상황조차 부정적으로 바라보곤 한다. 완벽주의자이므로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보이며, 그 분노는 대부분 자신을 향한다. 타인이 잘못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곁에 둔 자신이 멍청했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공격한다.

 


 

단순한 예시로는 상처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사람도 많다. 저자는 이럴 때는 주저하지 말고 몸을 보라고 조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몸은 마음의 답안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에 생긴 이상에 대해 아주 ‘논리적’인 이유를 찾으려 애쓴다. ‘내가 비만인 건 너무 많이 먹어서야. 부끄럽게도’, ‘등과 어깨가 자꾸 굽어서 아주 노인이 따로 없네. 자세가 글러먹었나?’. 그러나 저자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바로 당신의 마음속 상처가 신체적 특징과 특정 질병을 끌어올 수 있다는 가정 말이다. 몸이 마음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는 수없이 많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실제로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어깨를 펴면 자신감이 차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 또한 몸에 강렬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아직 해결되지 않은 심리적 상처가 있을 경우, 신체는 침묵하는 입을 대변하여 온몸으로 상처를 발설한다.

예를 들어 ‘거부’의 상처로 ‘도피하는 사람’은 언제든 세상에서 사라질 준비가 된 것처럼 몸이 오그라들어 있고 왜소하다. 마르고 힘이 없으며 존재감이 없는 게 특징인데, 모두에게서 도망치려는 마음이 체형으로 표출된 것이다. 이들은 피부병으로 타인의 접촉을 거부하고, 설사로 음식을 거부하며, 갖가지 알레르기로 세상에 대한 거부 반응을 나타낸다. 또한 ‘모욕’의 상처로 ‘마조히스트’의 가면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를 벌주기 위해 비만을 자처한다. 뚱뚱한 몸은 즉각적으로 수치심을 유발하는데, 수치심과 모욕감 자체가 그들에게는 최고의 벌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몸은 두뇌보다 정직하게 심리적 외상을 투영한다. 따라서 본인만의 독특한 체형, 어떻게 해도 바로잡아지지 않는 신체적 특징이나 질병이 있다면, 그것이 어떤 상처를 드러내는 것인지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상처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면 체형은 흐트러지고 건강은 계속 나빠질 뿐, 결코 낫지 않는다.

 


 

이 책은 따스하고 수용적인 언어로 쓰였으며 매 장(章)마다 풍부한 사례가 붙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 버거운 책이다. 그동안 모른 척했던 내밀하고 깊은 상처를 눈앞에서 목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처받은 모든 순간, 그 상처를 택하고 내 삶에 끌어들인 장본인이 나라는 점을 인정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독자의 말처럼, 상처의 순간을 돌아보는 것, 그것을 누군가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고 나의 선택이었음을 인지하는 것에는 각오가 필요하다. 하지만 치유의 첫걸음은 가면을 걷어내고 상처를 직시하는 것이다. 일단 상처의 형태와 가면의 종류를 인지하면, 그 다음부터는 익숙한 상처가 건드려지는 것에 가면을 들어 과민반응하지 않게 된다. 이런 인식이 반복되면 차츰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처가 가능해진다. ‘이 책만큼 나를 쉽게 설명한 책은 없었다’는 어느 독자의 서평처럼, 당신도 이 책에서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보며 자신이 왜 같은 상처를 반복해서 받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신이 두려움과 미움, 악순환에 갇혀 있던 관계의 프레임을 깨고, 자신과 타인을 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저자는 단언한다.

매번 되풀이되는 문제가 있는가? 이번에는 상처받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또 다시 같은 이유로 상처받았는가? 그렇다면 치유되지 않은 오래된 상처가 자신을 봐달라고 강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더는 외면하지 말고 그동안 미처 몰랐던 ‘상처받은 나’를 발견하기 바란다. 상처를 응시하고 보듬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앞날을 향해 나아갈 힘이 생길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완고한 사람’에게 선물은 빚이나 마찬가지다. 받은만큼 돌려주지 않으면 ‘부당’하다고 느끼므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안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선물을 거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누군가 식사 대접을 하면 자기도 보답을 해야 하므로 일일이 기억하기 번거로워 아예 대접받기를 피한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다음번에 반드시 대접하겠다고 결심한다.(p.209)

 


 

상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나아가 당신이 자아에게 만들도록 허락한 가면, 즉 상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면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상처를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또한 자아가 당신을 지키기 위해 가면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런 다음에야 지금껏 살아남도록 도와준 가면을 만들고, 이제는 그것을 벗을 용기를 낸 자신에게 고마워할 수 있다.(p.263)

 

저자 : 리즈 부르보(Lise Bourbeau)

 

캐나다를 시작으로 28개국에 설립, 10개 언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Listen To Your Body School’을 세계에서 가장 큰‘자기 성장 학교’로 발전시킨 리즈 부르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심리상담가이다. 그녀는 42년간 수백만 명을 치유해오면서 상처에 대한 27권의 베스트셀러를 집필, 720만 부의 판매 기록을 세우며 현재도 세계 각국에서 열정적으로 워크숍과 강연 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 책만큼 나를 쉽게 설명한 책은 없었다’는 어느 아마존 독자의 서평처럼 『모든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는 상담가로 일하며 얻은 ‘상처’와 ‘가면’에 대한 깊은 통찰을 기존에 본 적 없던 흥미로운 형태로 담아냈다. 이 책은 세계 18개국에 출간, 총 228만 부 이상 판매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고, 프랑스에서는 ‘최고의 심리 치유서’라는 찬사와 함께 심리학 분야 밀리언셀러로 20년 가까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역자 : 박선영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책이 좋아 책 만드는 일을 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언어정보학을 공부했다. 서울디지털대학교, 메가스터디 엠베스트 등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소중한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좋은 책들을 정성껏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뇌 과학자 아빠의 기막힌 넛지 육아』, 『13억분의 1의 남자』, 『말해서는 안 되는 너무 잔혹한 진실』, 『미미와 리리의 철학모험』, 『향연』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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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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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성실한 천재〉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소설은 쓰는 것마다 한국에서도 밀리언셀러라고 불리울 만큼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특히 한국에서의 인기는 저자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형서점의 인터뷰나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도서전 참가 등 한국 방문도 잦아졌다. 그가 한국 독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를 저자 자신도 모르듯 아마 우리나라 독자들도 모를 것 같다. 그가 낸 책이 한두 권이 아닌데 모든 책을 다 읽고 평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개인적으로 독자는 처음 그의 책을 읽었을 때 해박한 지식에 놀랐다. 『개미』란 작품이었고, 10년도 넘은 것 같다. 이후 서점에 가면 늘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 판매대에 자리하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쓰기에 이토록 10여년 간 한국에서는 늘 베스트셀러 '탑10'에 그의 책이 올라 있을까? 그의 책을 즐겨 읽는 독자도 정확히 헤아려본 적이 없다.

그의 창작의 시간을 이 책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에서 알 수 있게 됐다. 이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자신의 삶과 글쓰기의 모든 비밀을 담아낸 첫 자전적 에세이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해박한 지식에 놀라고, 얼마나 열심히 쓰는지에 놀랐던 독자들의 궁금증을 이 책에서 읽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만으로도 이 책은 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를 것을 점칠 수 있었다. 독보적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은 물론 하루 일상까지 15분 단위로 나눠서 정확하게 지킨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 책은 한계를 모르는 베르베르의 상상력의 원천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 방대한 양의 작품 세계를 어떻게 창조해 왔는지를 알게 해주는 단초를 제공한다. 그의 특유의 유쾌한 필치는 에세이 읽는 맛을 한층 더 깊게 해줄 것으로 독자는 단언한다. 이 책은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들 중 독자들로부타 가장 많이, 직접 받은 질문을 중심으로 저자가 성실하게 답변해주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베르베르의 창작의 일상이나 상상력의 세계가 '천재'와 '경이'로서는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을 비로소 깨닫게 해준다. 그가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온갖 해로운 것이 튀어나왔다는데 '망각'은 없었나보다라고 생각하게 했던 베르베르다. 우리는 전 세계 3천만 부 판매, 35개 언어 출간이라는 경이로운 기록 아래 감춰진 〈인간 베르베르〉를 만나 삶과 글쓰기에 관한 가장 진솔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듣게 된다.

책에 따르면 첫 단편소설 「벼룩의 추억」을 쓴 유년기부터 학교 신문 『오젠의 수프』를 창간한 청소년기와 목숨 걸고 마냥 개미 떼를 취재한 청년기, 120여 차례의 개작과 수없는 퇴짜 끝에 『개미』로 데뷔한 신인 시절을 거쳐 매년 발표하는 책마다 폭발적으로 사랑받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한 그의 삶은 곧 소설이 되고 소설은 곧 삶이 되었다.

이 책은 지금의 그를 만든 지난날의 내밀한 기록이자 〈베르베르 월드〉를 속속들이 보여 주는 친절한 안내서이다. 또 그의 영감의 원천과 창작 과정을 숨김없이 공유하는 참고서이기도 하다. 사소한 경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붙잡아 독창적인 소설로 빚어내는 타고난 작가, 스스로 세운 엄격한 규칙에 따라 하루도 빠짐없이 써나가는 〈성실한 천재〉의 모든 비밀이 책 안에 가득 담겼다.

 


 

저자는 스물두 장의 타로 카드를 하나씩 소개하면서 각 챕터의 문을 열어 다섯 살 무렵부터 오늘날까지의 이야기를 풀어 간다. 에세이로서는 독창적인 구성이다. 맨 처음 등장하는 것은 성장 서사의 시작과 끝을 모두 뜻하는 〈바보〉 카드다. 독자는 타로 카드나 그 외에 점성술과 관련된 카드 등을 일절 모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신뢰에 의존한다. 그러나 불안감은 없다. 그가 30년 간 글을 써오면서 가장 강력한 믿음이 '신뢰'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카드 속 인물은 모험을 끝맺으면서, 혹은 다시 시작하면서 봇짐을 메고 길을 떠난다. 그 모습은 데뷔 3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지점을 지나 새로이 출발점에 선 저자 자신과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독자만의 생각이지는 않을 듯하다.

이 책에서 그가 들려주는 다채로운 여정 속 인물과 사건은 모두 그의 소설과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전미연 역자에 따르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오롯이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을 중심으로 펼쳐질 수 있을까?"라는 탄성이 연속적으로 튀어나온다. 베르베르와 인연이 깊거나 스쳐 지나듯 만난 다양한 존재들, 이를테면 뉴욕 거리의 사기꾼, 엉뚱한 영매 친구 모니크, 제멋대로인 반려 고양이 도미노는 저마다 소설 속 등장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고등학생 때 탐독한 아이작 아시모프에게서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는 관점을, 스무 살 때 빠져든 필립 K. 딕에게서 광기의 힘을, 신인 시절 접한 스티븐 킹에게서 서스펜스를 쌓아 올리는 기술을 흡수했다고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지켜보며 겪은 충격과 여름 캠프에서 만난 친구 자크와의 유체 이탈 경험, 기자 시절에 임사 체험을 취재하며 수집한 정보는 『타나토노트』가 되고, 둘째 아들 뱅자맹을 돌보느라 잠 못 들던 수많은 밤은 『잠』이 된다. 베르베르는 삶이 곧 소설이 된다.

 


 

그뿐 아니라 베르베르에게는 소설이 곧 삶이다. 매년 10월 새 책을 발표하기 위해 그는 글쓰기를 중심으로 엄격하게 짜인 일과를 수십 년째 지속해 왔다. 아침 8시부터 12시 30분까지 '무조건 하루 열 장'. 오후 3시부터 6시까지는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조사하거나 소설 이외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6시부터 7시까지는 단편소설을 썼다. 그렇게 한 시간 한 시간이 쌓여 어느덧 수만 시간을 이루고, 원고 한 장 한 장이 모여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끝없는 창조력을 갖춘 타고난 이야기꾼이 한결같이 끈기 있게 글을 써온 결과다.

그런 그조차도 글쓰기의 지난함을 토로한다. "여전히 내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다. 새 책을 쓸 때마다 극도의 부담과 위험을 느낀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서사를 새로 짠 다음 글을 써서 버전 L을 완성했다. 새 버전에는 독자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는, 눈에 띄는 〈노란 테니스공〉 하나가 들어갔다."(p.467) 그렇지만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에 별수 없이 〈서스펜스를 창조하는 시계공〉 같은 소설가의 작업을 이어 간다. 장장 12년에 걸쳐 수없이 출판을 거절당하면서도 개작을 거듭한 끝에 결국 『개미』라는 걸작을 세상에 내놓은 베르베르다운 행보다. 어쩌면 그의 진정한 재능은 누가 뭐라든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는 것, 도무지 결승선이 보이지 않아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수십 년을 써온 베르베르는 이제 자신 있게 말한다. "의심과 당혹감과 도저히 마침표를 못 찍을 것 같은 자신감의 결여는 창작 과정의 일부다."(p.467) 저자가 말한 〈노란 테니스공〉이란 "독자들이 쉬지 않고 책장을 넘기다 마지막에 "와우!" 하는 탄성과 함께 책을 덮게 할 강력한 엔진을 찾아내는 것뿐이다. 〈노란 테니스공〉 하나를 이야기 속에 넣는 것, "그게 단 하나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저자는 귀띔한다.

 

 

베르베르는 〈21변 아르카나: 세계〉를 마지막 장(章)으로 내세운다. 카드 속에는 "알몸의 여인이 월계관 속에서 춤춘다. 그녀를 둘러싼 천사와 독수리, 사자, 말은 각각 공기와 불, 흙, 물을 상징한다. 그녀의 왼손에는 1번 아르카나인 마술사가 든 막대기와 똑같은 막대기가 들려 있다. 이는 사람과 사물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기 위한 측정의 도구다. 그녀가 오른손에 든 주머니에는 알이 하나 들어 있다. 이는 성취를 뜻한다." 카드의 모습과 상징을 설명한다. 이어 "그녀는 한 발을 들고 서 있다. 얼핏 매달린 남자 아르카나와 비슷한 자세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매달린 남자가 어쩔 수 없이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다면 그녀는 신나게 춤추고 있다. 미소가 가득한 그녀의 시선은 왼쪽, 다시 말해 과거를 향해 있다. 지난 삶을 다 이해했고 맺힌 매듭을 모두 풀었다는 뜻이다. 이제부터 그녀는 자유로운 존재다."(p.461)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타로 카드에서 보여지는 〈세계〉에 대한 설명이다. 자세히 봐야 보인다. 그냥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많은 것이 다르다. 베르베르의 세계는 '자세한 관찰'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암시하는 듯하다. 암시라기보다 은유라고 해야 할 듯하다. 카드 속 인물은 더 풍요로워진 내면의 세계를 품고 춤추듯 자유롭게 써 나가는 베르베르 자신을 그리며 쓴 것으로 본다면 독자의 베르베르의 이해가 도(道)가 넘은 것일까? 이 책을 마무리하며 베르베르는 독자들 앞에서 다짐한다. "글을 쓸 힘이 있는 한, 내 책을 읽어 줄 독자가 존재하는 한 계속 쓸 생각이다. 내 삶의 소설이 결말에 이르러 이 책의 첫 문장처럼 "다 끝났어, 넌 죽은 목숨이야" 하고 끝을 알려 줄 때까지."(p.470)

저자는 다시 헨리 제임스의 단편소설 「융단 속의 무늬」(1896년)를 읽은 이야기를 덧붙인다. 기자이자 문학 비평가인 화자(話者)는 유명 작가인 휴 베레커와 얘기를 나누다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무리 자신의 책을 다 읽고 이해했다고 믿으며 비평을 쓴 평론가일지라도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필연적으로 놓칠 수밖에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융단 속의 무늬」에 비유하며 자신의 〈비밀〉이라고 한다. 그때부터 화자는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인도에까지 가서 조사를 벌이던 두 친구 중 하나가 어느 날 화자에게 〈유레카!〉라고 적힌 전보를 보내온다. 융단 속에 감춰진 무늬를 드디어 찾았다는 것이다. "해냈어, 내가 찾아냈어. 거대하면서도 단순한 것이었어. 그걸 알아내는 과정은 그야말로 대단한 경험이었어. 내가 여기로 오면 자초지종을 다 설명해 줄게." 하지만 그 친구는 화자에게 발견한 진실을 알려주기도 전에 죽음을 맞는다. 왜 저자 베르베르는 「융단 속의 무늬」 소설 이야기를 꺼냈을까. 바로 이 이야기를 독자에게 알리고 싶은 것이다. "읽다 보니 노란 테니스공 얘기가 헨리 제임스가 쓴 이 단편에서 유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p.458) 베르베르는 어쨌든 숫자 30과 깊은 인연(30년 동안 30개 언어로 번역되며 3천만, 즉 30 곱하기 1백만 독자에게 읽힌 서른 권의 소설)을 맺게 된 지금, 자신의 작품 세계의 피라미드를 이루는 그 서른 장의 벽돌 속에 하나의 〈융단 속의 무늬〉가 들어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아직도 독자들이 궁금해 할까봐 사족이지만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궁금해할 독자들에게 몇 가지 단서를 귀띔해 주자면, 병정개미 103683호의 숫자, 파피용호에 탑승한 승객의 수, 그리고 당연히 등장인물들의 성(姓)이 그것이다. 〈나의〉 철학의 돌을 구성하는 재료들. 어때요? 소설 서른 권에 감춰진 〈노란 테니스공〉을 찾아낼 수 있겠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까지나 기대를 가득 안고 물어봐도 좋을 것이다.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모든 것은 기억이다. 지금 여든다섯 살인 어머니 셀린은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나 또한 모든 기억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필립 K. 딕이 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주인공이 한 말처럼 "눈물이 빗물에 섞이듯 이 모든 순간이 시간 속에 희석될까 봐" 두렵다. 그동안 내가 독자들에게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가 벌써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그토록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나 보다.(p.468)- 「예순 살.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기도 하며,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등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 소설가이다. 일곱 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타고난 글쟁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96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났다. 「별들의 전쟁」세대에 속하기도 하는 그는 고등학교 때는 만화와 시나리오에 탐닉하면서 『만화 신문』을 발행하였고, 이후 올더스 헉슬리와 H.G. 웰즈를 사숙하면서 소설과 과학을 익혔다. 1979년 툴루주 제1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하고 국립 언론 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과학 잡지에 개미에 관한 평론을 발표해 오다 드디어 1991년 1백 20번에 가까운 개작을 거친 『개미(Les Fourmis)』를 발표,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떠올랐다. 『개미』는 베르베르가 개미를 관찰하기 시작한 열두 살 무렵부터 시작된 소설로 무려 20여 년의 연구와 관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가는 개미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해 12년 동안 컴퓨터와 씨름하면서 수없이 고쳐썼다. 그는 직접 집안에 개미집을 들여다 놓고 개미를 기르며 그들의 생태를 관찰한 것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마냥개미를 탐구하러 갔다가 개미떼의 공격을 받고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베르나르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눈높이, 예를 들면 개미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상을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현실을 새로운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300만 년 밖에 되지 않는 인간의 오만함을 1억만년이 넘는 시간동안 살아남아온 개미들의 눈에 빗대 경고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거대한 잡동사니의 창고이면서 그의 보물 상자이기도 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은 개미들의 문명에서 영감을 받고 만들어진 것으로, 박물학과 형이상학, 공학과 마술, 수학과 신비 신학, 현대의 서사시와 고대의 의례가 어우러진 독특한 작품 형식을 선보인다. 2008년 11월에 출간된 독특한 개성으로 세계를 빚어내는 신들의 이야기 『신』은 집필 기간 9년에 달하는 베르베르 생애 최고의 대작으로, 베르베르가 작품 활동 초기부터 끊임없이 천착해 온 '영혼의 진화'라는 주제가 마침내 그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기록된 승리자의 역사이며, 진정한 역사의 증인이 있다면 그 답은 단 하나 '신'일 것이란 가정에서 출발한다. 한국에서는 『우리는 신』, 『신들의 숨결』, 『신들의 신비』를 묶어서 6권으로 출간하고 있다.

베르베르는 현재 파리에서 살며 왕성한 창작력으로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08년 10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소설집 『파라다이스 Paradis sur mesure』와 『카산드라의 거울』 등의 작품으로 꾸준히 한국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역자 : 전미연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했다. 파리 제3대학 통번역대학원(ESIT) 번역 과정과 오타와 통번역대학원(STI) 번역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사랑하기 때문에』, 『그 후에』, 『천사의 부름』, 『종이 여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 『죽음』, 『고양이』, 『잠』, 『파피용』, 『제3인류』(공역), 『만화 타나토노트』, 로맹 사르두의 『최후의 알리바이』, 『크리스마스 1초 전』, 『크리스마스를 구해 줘』, 아멜리 노통브의 『두려움과 떨림』,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배고픔의 자서전』, 엠마뉘엘 카레르의 『리모노프』, 『나 아닌 다른 삶』, 『콧수염』, 『겨울 아이』, 카롤 마르티네즈의 『꿰맨 심장』, 폴 콕스의 『예술의 역사』, 발렝탕 뮈소의 『완벽한 계획』, 다비드 카라의 『새벽의 흔적』, 알렉시 제니외의 『22세기 세계』(공역) 등이 있다. [작은 철학자 시리즈]의 어린이 철학책을 여러 권 번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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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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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투명인간』의 역자 이정서는 "젊은 시절, ‘투명인간’의 파멸을 기대하며 읽었던 소설"이란 표현을 썼지만 독자에게는 "한없는 상상력의 날개를 활짝 펴준", 히어로의 등장이었다. 독자가 어렸을 때 이 책 『투명인간』을 직접 읽지는 않았지만 '동네 형'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독자로서는 투명인간이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날이었다. 이후 독자는 스스로 투명인간이 되어 상상의 나라를 자주 날아다녔다. 소년기의 독자의 한때는 그렇게 '투명인간'이 지배했었다. 동네 형이 소설 번역본을 직접 읽었는지, 어디서 들은 것인지 그것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투명인간 존재 자체였다.

『투명인간』은 그러했다. 당시 우리 출판계가 열악했던 때라 아마 저작권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당시에는 저작권 문제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외국에서 인기 있던 출판물을 몰래 번역해 출판해도 저작권법 위반으로 걸려들 위험이 없었다. 이른바 '해적판'의 출현이다. 외국의 인기 출판물은 그렇게 여러 개의 출판사가 동시에 출판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이야 정식으로 출판 계약을 체결하고 저작물 권한자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 동의는 계약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판매 부수에 따른 인세 지급 등을 말한다. 이 책 『투명인간』은 발표 당시인 19세기, 영국과 미국의 문화는 상당 부분 달랐기 때문에, 미국에서 출간된 『투명인간』은 영국 오리지널 판과 여러 부분이 달랐다고 역자는 말한다. 편집자 주인지 역자 주인지 모르겠지만, 영국 오리지널 판에는 전혀 없는 각주가 미국 판에는 53개가 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번역자 이정서의 말이다. "영어를 영어로 번역해낼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껏 해본 적이 없다. 예컨대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을 한국어로 다시 번역한다?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투명인간』을 읽으며, 영어를 영어로, 한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북한에서 출간된 서적을 한국에서 출간하려면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에 번역에 버금가는 작업이 필요하겠기 때문이다."

역자는 책의 번역 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털어놓는다. "각주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 펭귄북스 판은 원작의 많은 구절을 임의로 삭제했다. 그래서 ‘투명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까지도 곡해하게 만들었다. 같은 편집자로서 편집자의 역할(번역자도 마찬가지)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현저하게 달랐다. 소설의 전체 맥락을 왜곡할 만큼 심각했다."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누군가 〈유쾌한 크리켓 선수들〉에서 침대 시트 한 장을 가져왔다. 사람들은 그를 시트로 덮고 그 집으로 운반했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불이 켜진 그 집 침실의 낡은 침대 위에서 투명인간의 기묘한 실험은 막을 내렸다."(김석희 옮김, 『투명인간』, 열린책들. p.248)

"누군가가 〈즐거운 크리켓터스〉에서 시트 하나를 가져와서 그를 덮었고, 사람들은 가게 안으로 그를 옮겼다. 그리고 거기엔 모든 인간 중 처음으로 자신을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었던 그리핀이, 불도 켜지 않은 침실의 지저분하고 허름한 침대 위에, 무지하고 흥분한 사람들 무리에 둘러싸여, 깨어지고 상처 입고, 배신당하고 동정받지 못한 채로 놓여 있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재능 있는 물리학자 그리핀은 자신의 낯설고 가공할 생애를 끝없는 참사로 끝마쳤던 것이다."(이정서 번역, p.286)

 


 

역자는 책의 맨 앞의 〈옮긴이의 말〉과 뒷 부분의 「영국의 투명인간과 미국의 투명인간」이란 제목의 〈역자 해설〉을 통해 미국 판과 영국 오리지널 판의 차이를 명시하지 않은 국내의 기존 번역서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역자도 젊은 시절, 투명인간 ‘그리핀’의 파멸을 내심 기대하며 조마조마하게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고 한다. ‘욕심에 눈이 먼 미치광이 과학자’ 정도로 읽었던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당시 읽은 소설과 지금 번역하며 다시 읽은 소설의 간극을 분명히 느낀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 또한 기존 책의 독자였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비로소, 『투명인간』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과학 철학소설’에 더욱 가깝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독자들도 알게 되길 바란다." 번역서는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p.300)

“(투명인간을 쓴 허버드 조지) 웰스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세계와 사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1984』를 쓴 조지 오웰의 이 말에는 『투명인간』의 저자 허버트 조지 웰스를 향한 감탄과 존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SF 소설의 창시자’라 불리며 문학은 물론, 과학과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웰스는 무한한 상상력 속에서 인류가 가야 할 길을 깊이 고민하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투명인간』은 그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상상력을 과학적 이론에 근거하여 풀어낸 작품으로, 주인공 그리핀은 근현대 들어 창작물에 등장하는 최초의 ‘투명인간’이다. 1897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영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의 호기심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엄청난 판매 성과를 올렸고, 네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상상력을 극대화한 SF 소설이라는 단순한 평가를 넘어, 억압된 욕망을 분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중성, 소외된 인간의 고독과 공포, 나와는 다른 존재를 ‘사냥’하는 인간의 잔인성을 은유적으로 그려낸 희대의 문제작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투명인간』은 과학 소설의 철학적 측면을 살펴보고 오직 상상력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처럼 여겨지는 주제에 대한 문화적 비판을 제공했다. 어린 시절, 흥미 위주의 요약본으로 더 많이 읽혔던 『투명인간』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을 시간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 소개된 『투명인간』은 미국 펭귄북스 판본인데, 미국 판본은 영국 오리지널 판본과 여러 곳에서 차이를 보인다. 여기에는 같은 영어라 해도 두 나라간 문화적 차이에서 달라진 고어(古語)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있었고, 미국 편집자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전개의 오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작품의 마지막 부분이다. 조지 웰스는 내레이터의 입을 통해 ‘세계에 둘도 없는 가장 재능 있는 물리학자’ 그리핀(투명인간)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애도하는 뉘앙스로 작품을 끝냈다. 하지만 미국 판에서는 이 부분을 절반으로 뚝 잘라, 마치 한 못된 사내의 광란의 소동이었던 것처럼 작품을 끝내고 있다. 결국 대부분 미국 판을 원저로 알고 번역한 국내 번역본은 미국판의 오류까지 고스란히 답습한 셈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차이가 결국 『투명인간』이라는 책에 대한 기본 소개마저 다르게 나타나는 결과로 이어졌던 셈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역자 해설에 소개되어 있다.

역자에 따르면 그냥 눈으로 원서를 읽는 것과 정확한 문장을 만들어 번역하는 일은 큰 차이가 있다. 웰스의 문장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번역을 끝냈는데, 정말이지 갈수록 이 독특한 내용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번역을 끝내고 무심코 비교해본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기이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혹시 몰라서 비교해본 결과 내가 원본으로 삼은 책과 처음 영국에서 출판된 원본의 결말 문단이 현저히 달랐다.

 


 

1890년대 말 서구 유럽은 '과학 전성시대'에 돌입한다. 『투명인간』은 웰스가 집중적으로 발표한 SF소설 중 『타임머신』과 함께 대표작에 속한다. 1897년 6-8월에 걸쳐 피어슨즈 위클리(Pearson's Weekly)에 연재되었고, 같은 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고 〈위키미디어 커먼즈〉는 전한다. 이에 따르면 웰스의 초기 작품들은, 이후 1900년대 들어서면서 정치, 전쟁, 종교, 역사 등 인간사회 제문제를 다루는 중후기 저작과 장르는 다르지만, 문명의 맹점과 인간 본성의 취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의 비판 정신이 초기에 확립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웰스는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허구의 '투명인간'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몸 전체가 완전히 투명해진 인간은 망막에 사물의 상이 맺힐 수 없으므로 사물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이 소설의 과학적 근거가 빈약함을 지적하는 평자도 있다. 하지만 제20장에 망막만 빼고 투명해진 고양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웰스의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는 그러한 단편적 비판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초인의 자유와 윤리와 인간 정체성, 제어 불가능한 힘 앞에서 느끼는 공포, 권력의 광기 등 이 작품에 담긴 주제는 이후 끊임없이 작가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영향을 주었다. 줄거리는 과학자가 등장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다소 황당하기도 하지만 소설적 구성은 확실하게 갖추었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도 크다고 평론가들은 평가했다. 이후 웰스는 과학소설의 창시자 그룹에 속할 정도의 고전 문학가의 반열에 올랐다. 물론 『타임머신』과 함께다.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은 붕대로 가린 이방인이 영국 웨스트 서식스의 작은 시골 마을 아이핑에 나타난다. 여관방에 틀어박혀 화학 실험으로 시간을 보내며, 오직 밤에만 외출하는 그의 기행은 얼마 안 되어 온 마을의 화젯거리가 되고 만다. 어느 날 주인공은 여관 주인 내외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키게 되어 도망친다. 투명인간은 토머스 마블이라는 부랑자를 발견하여 자신의 조수로 삼고 과학실험노트와 훔친 돈을 맡기지만 이내 배신당하고 만다. 이후 우연히 대학 동창 켐프 박사의 집에 숨어들게 된 주인공은 자신이 그리핀임을 밝히고 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학자로서 투명인간이 되고자 행했던 실험들, 투명인간이 되어서 겪는 일상의 어려움, 몸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과 좌절,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를 이용해 '공포 시대'를 실현하려는 야심 등을 털어놓으면서 그리핀은 옛 동창을 공모자로 삼고자 한다. 하지만 그리핀을 위험인물이라 판단한 켐프 박사는 경찰과 협력하여 그리핀의 체포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쫒기는 와중에도 배신한 켐프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던 그리핀은 우여곡절 끝에 거리의 군중에게 붙들려 구타당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핀의 몸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이전의 일상적 상태로 돌아온다.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섯 명 정도로 볼 수 있다. 그리핀(Griffin)이 주인공이다. 투명인간이다. 그리핀이라는 이름은 소설 중반에 가서야 언급된다. 또 과학자인 켐프 박사(Dr. Kemp)는 그리핀의 대학 동창으로 포트 버독에 산다. 투명인간이 되어 찾아온 친구의 긴 이야기를 들어 주지만, 결국 경찰과 함께 그리핀을 체포하려 한다. 토머스 마블(Thomas Marvel)은 부랑자처럼 사는 남자이다. 그리핀의 조수가 되지만 배신한다. 이 밖에 홀 부부(Mr. and Mrs. Hall)는 시골마을 아이핑의 여관 주인 부부다. 수상한 투숙객이 투명인간이란 사실을 마을 사람 중 처음으로 알게 된다. 애다이 총경(Col. Adye)은 포트 버독 경찰서장으로 보이지 않는 도망자 그리핀을 체포하고자 전력을 다한다.

 

“문들 닫아, 창문도 닫아, 전부 닫아라! 투명인간이 오고 있다.” 즉시 그 집은 비명과 지시하는 소리, 당황해서 내달리는 발소리로 가득 찼다. 그는 스스로 열려 있는 프랑스식 창문을 닫기 위해 베란다로 달려갔다. 그가 그러고 있는 동안 켐프의 머리와 어깨, 그리고 무릎이 정원 울타리 가장자리에 나타났다. 다음 순간 켐프가 아스파라거스를 헤집고, 그 집 테니스장을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었다.

“당신은 들어올 수 없소.” 힐러스 씨가 빗장을 채우면서 말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저자가 당신을 쫓는 거라면 당신은 들어올 수 없소.”(p.278)

 


 

저자 :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과학 소설(SF)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이자 문명 비평가이다. ‘타임머신’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작가로, 과학 소설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역사, 정치, 사회에 대한 여러 장르에도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1866년 영국 켄트주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파산으로 학업을 그만두고 포목점과 약국의 수습 점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미드허스트 문법학교의 보조 교사로 채용된 데 이어 사우스켄싱턴 과학사범학교에 국비 장학생으로 입학하며 뒤늦게 학업에 정진하지만 생물학과 동물학 외의 다른 과목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해 과정 도중 학교를 떠난다. 이후 다시 공부를 시작해 런던대학을 졸업한 후 유니버시티 코레스폰던스 칼리지에서 생물학 강사로 재직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학창 시절 『사이언스 스쿨 저널』에 연재한 단편소설 「크로닉 아르고 호」를 퇴고하여 『타임머신』으로 출간하였다. 『타임머신』의 큰 성공 이후 『모로 박사의 섬』, 『투명 인간』, 『우주 전쟁』, 『세계사 대계』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SF의 창시자’로 자리매김하였다. 이와 동시에 정치학과 사회문제 분야까지 두루 아우르는 글을 저술했으며 당대 최고의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다룬 2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역자 : 이정서

 

소설가이며 번역가이다. 의역이 오랜 관행이 된 번역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여, 2014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직역했다. 쉼표, 마침표까지 원문장 구조를 그대로 살린 번역이 원작과 원저자의 생각을 바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였다. 그의 주장은 의역에 익숙해 있는 기존 번역관에는 낯선 것이었다. 이후 그는 여전히 직역을 주장하며 『어린 왕자』를 불어·영어·한국어로 비교하고, 그간 통념에 사로잡혀 있던 여러 개념들, 즉 『어린 왕자』에서의 ‘시간 개념’, ‘존칭 개념’ 등을 바로잡아 ‘어린 왕자’를 새로 번역해냈다.

그간 지은 책으로는 『카뮈로부터 온 편지』,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어린 왕자로부터 온 편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이방인』, 『어린 왕자』,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 『1984』, 『위대한 개츠비』, 『투명인간』, 『동물농장』, 『킬리만자로의 눈』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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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 경제학의 아버지, 신화가 된 사상가
니콜라스 필립슨 지음, 배지혜 옮김, 김광수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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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는 독자에게 『국부론』을 쓴 경제학자, '보이지 않는 손'으로 기억된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형성된다는 이론을 폈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형성된다고 말했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만 '보이지 않는 손'이란 용어는 애덤 스미스가 정작 『국부론』에서는 한 번 정도 언급했을 뿐, 사실은 『도덕감정론』에서 처음 쓴 말이라고 한다. 이 책 『애덤 스미스』는 그의 탄생 300주년에 맞춰 전기 작가 니콜라스 필립슨이 썼다. ‘현대 경제학의 창시자’ ‘성서 이래 가장 위대한 책 『국부론』의 저자’ 등 애덤 스미스를 수식하는 말들은 화려하지만 정작 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라는 점에서 이 책의 출판 이유가 있다고 한다. 저자 필립슨은 애덤 스미스에 대한 자료를 오랜 노력 끝에 집대성해 그의 전 생애와 사상을 본격적으로 다룬 평전으로 이 책을 펴냈다. 저자는 이를 위해 그동안 감춰졌던 애덤 스미스의 삶의 궤적을 꼼꼼하게 따라간다.

저자는 경제학자이자 도덕철학자인 애덤 스미스의 다양한 면모와 사상을 생생하게 서술해 오해했거나 몰랐던 애덤 스미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썼다고 출간 취지를 밝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는 자유로운 경제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자본시장의 차가움보다 인간의 따뜻한 도덕심을 강조했던 사상가였다. 이 책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데이비드 흄과의 만남,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남긴 강의 노트,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그의 전 생애를 살펴보고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속 사상을 면밀히 추적한다.

 


 

저자는 애덤 스미스와 그의 저서를 아는 것은 단순히 한 시대의 위인과 고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기본 개념과 핵심, 사회과학의 틀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 바로 근대 경제학의 출발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자신이 죽은 뒤 출간되지 않은 저서와 논문을 없애라는 유언을 했고, 이 때문에 대중들이 그를 이해할 단서가 많이 부족했다. 이는 그와 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랜 노력과 추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당시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의 노트까지 확보해 가면서 애덤 스미스에 관한 것이라면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유언에 따라 그를 알 수 있는, 또 그에 대해 쓸 수 있는 자료들이 부족했다는 의미다. 저자는 그의 저서나 유작 등의 확보에는 거듭 실패해 당시 영국 등 유럽의 사회 분위기와 사상, 철학 등을 모조리 뒤져가며 자료를 보충했다고도 한다. 지난한 작업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상가나 철학자들이 말하듯이 18세기 유럽은 계몽주의 시대였다.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 계몽주의자들은 새로운 사회를 꿈꿨다. 이들은 왕의 권력이 신에게서 받은 것이란 왕권신수설을 부정하고 절대왕정에 도전했다. 영국의 존 로크,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 등이 대표적 계몽주의 사상가였다. 특히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됐다. 섬나라 영국의 사정은 대륙의 프랑스와 크게 달랐다. 영국은 〈명예혁명〉이란 온건한 방법으로 전제군주제와 결별하고 의회의 권한을 강화했다. 의회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확산의 혜택을 모든 영국인이 고르게 받은 것도 아니었다. 브리튼 섬 남부의 잉글랜드와 그 외 지역의 격차는 그때도 컸고 지금도 여전히 크다.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태어난 스코틀랜드도 비주류에 속한 지역이었다.

 


 

스미스 가문은 종교적으로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집안이었다. 지역 갈등이 심한 영국은 종교 갈등 역시 극심했다고 한다. 영국에서 종교는 스미스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종교개혁 이후에 나온 개신교란 점은 같아도, 영국 사회 주류인 국교회(성공회)와 비교하면 비주류에 속했다. 현재는 '주류 경제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스미스는 생전에는 출신 지역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비주류 지식인'이었던 셈이다. 이 책의 저자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에서 수십년간 역사학을 가르쳤다. 애덤 스미스에 천착해 오랜 세월 자료를 집대성하는 데 시간을 들일 만큼 애덤 스미스에 관심이 유난히 컸던 것도 이유가 되었으리라 독자로서 짐작케 한다. 돈 많은 중산층이 대개 그렇듯이 스미스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스미스는 열네 살 때부터 9년 간 대학을 다녔다고 한다. 첫 3년은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대, 이후 6년은 잉글랜드의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했다. 스미스의 옥스퍼드 생활이 어땠는지는 거의 기록이 없다. 다만 스미스처럼 스코틀랜드 출신이면서 장로교도인 학생에게 옥스퍼드는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스미스는 스물세 살 때 옥스퍼드에서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다. 그에게 필요한 건 후원자와 일자리,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교우 관계였다. 이 세 가지를 모두 해결해준 사람이 데이비드 흄과 그의 사촌 헨리 홈이었다. 스미스는 3년간 에든버러대에서 수사학과 법학을 강의한 데 이어 글래스고대에서 논리학과 도덕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를 맡는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처럼 스미스는 경제학 연구에 일생을 바친 사람은 아니다. 스미스의 주 전공은 철학, 그중에서도 도덕철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도덕적 감정’(moral sentiments)에 대한 그의 생각을 총정리한 책이 『도덕감정론』이다. 서른여섯 살에 초판을 낸 이후 죽기 전까지 여섯 번이나 고쳐 쓸 만큼 애정을 쏟았다.

 


 

『도덕감정론』으로 명성을 얻은 스미스는 파격적 연봉을 제안받고 귀족 자녀의 가정교사를 맡았다. 이렇게 대학교수를 그만둔 그는 제자와 함께 유럽 대륙으로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스위스·독일을 여행한 스미스는 당시로선 진보적 사상인 계몽주의에 흠뻑 빠졌다. 아직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기 전이었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를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났던 스미스는 "흉상까지 모셔놓을 정도로 볼테르를 존경했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스미스는 쉰세 살에 『국부론』을 출간했다. 그는 책에서 보수 기득권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상주의를 강력히 비판했다. 대신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과 자유무역을 강조했다. 후대 경제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란 말은 두꺼운 책에서 단 한 번만 나온다.

스미스는 예순일곱 살에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자신의 강의 노트와 개인 편지 등을 대부분 폐기했다. 그래서 스미스의 사생활을 알 수 있는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남은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되,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정치·사회적 배경 속에서 스미스의 생애를 재구성한다. 저자의 꼼꼼한 자료 수집과 분석은 높이 살 만해도, 근대 산업혁명 시기 영국 역사와 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독자라면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21세기 한국 독자에겐 300년 전 먼 나라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애덤 스미스의 연습용 서명. 에피쿠로스의 '로마사 요약'이라는 책의 여백에 남아 있다. '로마사 요약'은 18세기초 진보적 교육기관에서 교과서로 쓰였는데, 서명을 연습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애덤 스미스는 이 책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론 머스크는 『국부론』을 최고의 책으로 꼽았다. 반면 빌 게이츠는 우리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만 봐서는 안 되며 인간의 도덕심도 함께 살펴야 한다며 『도덕감정론』을 반드시 읽어야 할 인생의 책으로 꼽았다. 워런 버핏은 자신의 투자 철학이 애덤 스미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애덤 스미스 탄생 이후 수세기가 지난 지금도 경제학자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인 기업가와 투자자들 역시 여전히 그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애덤 스미스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더 크고, 그의 가르침은 여전히 필요하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 책 『애덤 스미스』의 저자 니콜라스 필립슨은 『국부론』과 스미스의 저서,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는가는 자본주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와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애덤 스미스는 파벌적 자유주의, 큰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자유무역의 이점, 분업의 경제적 효과를 이야기해 오늘날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경제학의 기본적인 개념인 상품가격, 이윤, 지대 등 역시 스미스의 이론 덕분에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빈부격차, 독과점 기업의 횡포 등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날 때 애덤 스미스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극단적 시장주의자 내지 노동자의 적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반면 모든 나라가 경제적 부가 금과 은에서 온다고 평가하던 때, 애덤 스미스는 '노동의 가치'에 주목한 인물이었으며, 자신의 묘지 비석에 『국부론』이 아닌 『도덕감정론』의 저자라고만 남겨지길 바랄 정도로 도덕성을 강조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탄생 300주년을 맞이한 지금, 그의 후손인 오늘날의 우리는 300년 전 살던 이들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만 경기 침체, 노동 불안정성 등 여전히 위태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그를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저자 : 니콜라스 필립슨(Nicholas Phillipson)

에든버러대학교 역사학과 명예 연구원이자 전기 작가로 활동했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연구하는 학자 중 최고로 꼽히며, 프린스턴대학교, 예일대학교, 뮌헨대학교, 툴사대학교 등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하는 [근대지성사]의 창립 편집자이며, 18세기 스코틀랜드 연구학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2018년 1월 24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역작이자 애덤 스미스의 평전인 이 책 《애덤 스미스》는 위대한 사상가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그 생애를 생생하게 이야기하며, 경제학자의 면모뿐만 아니라 역사, 윤리학, 미학 등을 탐구했던 지적인 철학자의 여정도 함께 다룬다. 또한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이 어떻게 쓰일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의 만남,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등에서 면밀히 찾고 있다. 자신이 죽으면 출간하지 않은 글들을 불태우라는 애덤 스미스의 유언에 따라 그가 직접 남긴 글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필립슨은 애덤 스미스가 글래스고대학교에서 강의했을 무렵 학생들이 남긴 강의 노트,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을 통해 그가 평생에 걸쳐 연구하고자 했던 주제와 구상한 상징적 개념들을 살피면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역자 : 배지혜

뉴욕 시립대 버룩칼리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유학 시절 재미있게 읽던 작품을 한국어로 옮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현재 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한 뒤 바른번역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쓰레기를 그만 버리기로 했다』, 『돈 없이도 돈 모으는 법』, 『시체와 폐허의 땅』 등이 있다.

 

감수 : 김광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글래스고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애덤 스미스의 형이상학과 과학”에 관한 연구로 1994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이후 현재까지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내 주요 저술로는 『애덤 스미스의 학문과 사상』(2005)과 『애덤 스미스: 정의가 번영을 이끈다』(2015), 공저로는 『정치경제학과 경제주의』(1997)와 『융합 인지과학의 프런티어』(2010)가 있다. 국내 주요 논문으로는 「맨더빌의 경제 및 사회분석과 자연관에 대한연구」 「데이비드 흄: 방법론, 경제분석 및 현대경제학에 대한공헌」 「더글라스 노스의 경제사 이론체계와 인지적 제도주의」 「애덤 스미스의 법과 경제」 「현대 과학철학 및 경제철학의 흐름과 스미스의 과학 방법론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해외 논문으로는 “Adam Smith’s Natural Theology and Its Method”(Review of Social Economy, 1997), “Adam Smith’s Theory of Economic History and Development”(European Journal of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 2009), “Adam Smith’s History of Astronomy and View of Science”(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2012), “Adam Smith’s and Douglass North’s Multidisciplinary Approach to Economic Development”(American Journal of Economics and Sociology, 2014), “Demand and Structural Change in Adam Smith’s Theory of Economic Progress”(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2015)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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