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편지 - 그저 너라서 좋았다
정탁 지음 / RISE(떠오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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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별 편지』에는 다양한 사랑과 이별이 그려져 있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항상 갑작스럽고 아프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사랑은 무엇이었고, 이별은 무엇을 남겼는지 한 번쯤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저자 정탁이 책에 담아둔 감정들에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우리는 삶 속에서 만남과 이별을 수없이 반복해서 경험한다. 그때마다 감정들은 서로 어긋나는 느낌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사랑과 이별의 모습은 그의 직접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상담해온 지인들의 이야기와 그의 사색 속에서 일어난 사랑의 장면들이 담겨 혼재돼 있다. 누구나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의 감정이 전부 같지는 않다. 그것은 사랑할 때도, 헤어질 때도, 그리고 헤어지고 난 다음에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다른 독립적이고도 독창적인 감정을 갖고 살며, 상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감정은 상황과 상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순간의 감정은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 남아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저자는 독자들을 자신이 사랑했던 시간과 공간으로 데려가며, 이곳에서 우리는 그날의 햇살과 바람, 연인들 사이의 침묵과 눈빛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저자의 희생적인 고백과 사랑과 이별의 탐구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것이며, 이별이 있더라도 모든 사랑은 아름답다는 것과 어쩌면 이별이 있기에 더 아름다웠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준다. 인연은 반드시 가장 적합한 타이밍에 만나게 되어 있고, 그 시간까지 기다릴 줄 아는 것도 성숙한 사랑의 방법이라는 작가의 말은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것이다.

 

 

이 책은 이별의 아픔으로 상처 입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다. 이별로 아픈 감정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우리가 마음껏 아파하도록, 그래서 더 깊은 잠에 들어 아침에는 모든 것이 새로운 하루를 맞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의 집필 취지이기도 하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누구나 쉽게 고백하기 어려운 표현으로 사랑의 순간을 되새긴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제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쓰다듬어주던 머리, 마주하던 눈, 맞추던 입술, 부둥켜안던 몸. 나는 어디 하나에 빠지지 않고 몸 구석 곳곳에 당신과의 추억이 깃들어 있어서 기억을 하나하나 잊으려고 하다 보니 저 자신을 잊게 될 지경입니다.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고 그렇게 그리워하며 살아갈 참입니다." 저자의 성격과 솔직함이 거침없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말들은 독자들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저자의 표현이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함'을 바탕으로 제기되기 때문이다. 또 이별의 순간에 정직함은 그가 타인에게 위로와 격려를 줄 때도 받는 입장에서는 훨씬 정감 있고 현실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별을 말하는 순간으로 들어가 본다. "나의 것이었던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니게 되는 순간을 겪는 거다. 살아가면서 겪는 상실 중 이별이 가장 즉각적이다. 뭐든 내 곁에서 천천히 사람지지만, 연인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렇기에 이별의 후유증이 가장 큰 법이고. 그녀 또한 많은 이별을 겪어왔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지만, 어떤 이별을 맞이하냐에 따라서 사람은 많이 면이 변하게 된다. 그녀의 낯선 차가움은 분명 상처받은 아픔으로부터 기인된 것이었다. 어떤 아픔인지 꼭 들어야만 그 아픔을 짐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아픔은 듣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p.35)

 


 

이 책은 4개 파트(PART)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그녀〉, 2부 〈이별〉, 3부 〈만남〉, 4부 〈사랑〉 등이다. 각 부마다 작은 항목의 장(章)을 두고 있다. 1부에는 「그녀」, 「새벽」, 「재능」, 「취미」, 「이상」, 「이별」, 「너 없이 너를 사랑하는 일」, 「하루」, 「그와 그녀」, 「내가 하고 싶은 사랑」 등 10개의 장으로 나눠 짧지만 깊은 사유가 펼쳐진다. 2부에도 「흔적을 지우는 일」, 「외로움」, 「청춘」, 「첫사랑」, 「이제 정말 이별할까요」, 「잘 가요」, 「당신은 꼭 잘 지내기를」, 「사랑은 타이밍이다」, 「첫사랑에게」, 「이별 편지」 등이 있다. 3부는 '만남'을 이야기한다. 「다툼」, 「용서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것」, 「따듯한 채색」, 「기억해내자」, 「가진 것을 전부 주고도 아쉬운 마음」, 「시간을 건너」, 「사랑은 원래 기다림이다」, 「나는 언제까지나 나로서 마주할 것」, 「정말로 사랑한다면」, 「시작, 다시」 등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4부에는 「결혼」, 「고백」, 「단점」, 「서로에게 나들이 가는 것」 등이 짧게 이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필로그〉를 통해 저자의 이별 편지가 끝난다. 책의 형식을 짚어본 것이지만 각 장에 사용된 단어들을 주욱 연결하다 보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고, 여러 감정이 혼재돼 있다.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몇 명의 사례로 이루어진 책이라는 것도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젠 당신의 소식조차 듣지 못하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지만 내 삶에 잠시나마 머물러줘서 고마웠습니다. 나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오직 당신입니다. 매일같이 내뱉던 사랑한다는 말을 이제는 과거형으로밖에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날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난 아직도 당신을 사랑했던 기억으로 사랑하니 슬픈 과거형으로라도 내뱉겠습니다. 정말 사랑했습니다. 진심입니다. 심장을 꺼내어 보여줄 수 있다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중략) 끝이 아니길 바라도, 결국 이별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렸던 그 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함께 보낸 시간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기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모두 당신과 함께라서 소중했습니다."((p.221~225)

 


 

이 책의 주제와 형식은 앞서 말한 대로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안 풀리는 의문이 있다. 이 책의 총괄적인 〈서론〉이 되는 말이다.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저자가 하는 말로 읽힌다. 역시 사랑과 이별, 특히 이별을 말하는 글입니다.

"사랑의 총량은 누구에게나 같습니다.

그걸 여러 사람에게 나눠서 쏟을지,

한 사람에게 온전히 쏟을지는

당신이 살아가는 형태에 따라서 변할 것입니다.

누구나 흠 없이 사랑하고 싶겠지만

우리 사실 그 어떤 사실보다도 사랑 때문에

울고 웃으며 성장해 나갑니다.

추억을 떠올리며 한산한 기운만 머금을

차디찬 밤 같은 날만 있지는 않겠지만

사랑에 몸을 내던질 준비를 했다면

그러한 시간도 견뎌낼 각오를 해야 합니다." (하략)

 


 

독자의 의문점 한마디를 보탠다. 이 책의 서두에, 4개 파트가 시작하는 맨 앞에 이 글들이 실려 있다. 사랑을 했다면 이별도 각오하고 버텨낼 내공도 있어야 한다는 말로 읽힌다. 그런데 "사랑의 총량은 누구에게나 같습니다."는 이 문장은 왜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하는, 특히 이별을 이야기하는 맨 앞에 두었을까 하는 의문점을 독자로서는 해석하지 못한다. 말 자체도 이해가 어렵고 이 문장을 책의 가장 앞에 둔 저자의 생각도 헤아리기 어렵다. '사랑의 총합은 누구에게나 같다'는 문장 자체가 어렵다. 누구의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인용 부호도 언급도 없으니 어떤 저명한 사람의 말은 아닌 것 같고, 저자의 판단인지 알기도 쉽지 않다. 독자는 이 문장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의 전제가 되는 중요한 문장이기에 더욱 오래 숙고했다. 그러나 결국 의문부호로 남았다.

비슷한 말을 배운 적은 있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의 법칙(물리학), 제로섬에서의 '총량의 합'(경제학). 사랑이나 이별이 물리학이나 경제학에서 다루는 물건 혹은 경제 현상의 법칙에 따른 것은 아닌데 왜 사랑의 총량은 같다고 했을까. 그것도 개인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같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서는 다음 문장을 읽으면 다소 의문은 풀린다. '그걸 여러 사람에게 나눠서 쏟을지, 한 사람에게 온전히 쏟을지는 당신이 살아가는 형태에 따라서 변할 것입니다'를 바탕으로 해석해본다. 한 사람이 가진 사랑의 총량은 같은데 그것을 여러 명의 연인에게 나눠서 써야할지, 한 사람에게 쏟아넣어야 할지는 각자 살아가는 형태에 따라 변한다? 사랑의 총량을 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물리학에서 에너지 총량은 인간이 측정 가능한 일정량의 '물건이나 물질'로부터 방출할 수 있는 에너지(힘)의 총량을 말한다. 또 이 에너지의 불변의 법칙은 에너지 100이 수 차례에 걸쳐 투입되어도 다른 특별한 이유 없이는 같은 양의 에너지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물리학의 법칙을 증명해내 '물리학'에서 채택된 법칙이다. 사랑도 감정으로 느낀다. 인간이나 다른 모든 생물은 같을 것이다. 우리 뇌속 감정뇌에서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잴 수는 없다. 잴 수 없기에 '열렬히', '많이' '하늘만큼' 등 부정확한 표현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총량이 같다는 말은, 더욱이 누구에게나 같다는 말은 이 책을 읽고 동의하지 못하는 유일한 말이다.

 


 

당신을 붙잡으면 당신은 물론 내 옆에 있어 줄 테지만, 나는 다시 사랑을 이어간다 해도 당신의 차가운 말투와 눈빛을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받아들였다. 당신과의 사랑을 언제까지나 나의 노력으로만 이어갈 수는 없었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은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숨길수록 상대방을 비참하게 만들 뿐. 그렇게 우리는 흔한 다른 연인들처럼 이별했다. 나를 진정 슬프게 한 것은 당신이 내 곁을 떠났다는 게 아니었다. - 「part 2. 이별」 중에서

 

그렇기에 결혼이란 참 기묘한 일이다. 연인이라는 이름으로는 허락되지 않던 것들이 허락되는 순간 우리는 색다른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온갖 다툼거리가 많았던 연인 시절과는 다르게, 이 사람만이 이 지구에서 유일한 나의 편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툼거리는 사소한 일이 되기도 한다. 밖으로 나가면 남인 세상, 유일하게 평생을 내 편을 들어주기로 약속한 이와 다투어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가장 든든한 아군을 얻는 일이 바로 결혼이기도 하다. 떠날까 하는 두려움이 사라져 소홀함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러니 반드시 그대를 떠나지 않기에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이와 평생을 약속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 「part 4. 사랑」 중에서

 

저자 : 정탁

 

우리 모두 이별을 합니다.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우리는 다시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이별한 나에게 쓰는 편지를 당신에게 부칩니다.

인스타그램 @epilogue_t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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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 - 한국경제 흑역사에서 배우는 오늘의 경제 교양
김정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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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는 부제 「한국경제 흑역사에서 배우는 오늘의 경제 교양」에서 보여진 것처럼 증권파동, 강남개발 등 우리 현대사에서 '흑역사'라고 사건 등을 되짚어 봄으로써 우리 미래 전망까지 가능하게 하는 경제 교양서이다. 저자 김정인은 우리나라 현대사 중에서 경제 부분의 사건의 뿌리나 유사한 사건을 연결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일반 사람들이 낯선 역사를 처음으로 공부하기에는 각종 사건·사고만 한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저자의 판단에서다.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현대사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불과 50년 만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완성하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는 등 화려한 이면에는 충격적인 사건·사고가 얼룩져 있다. 특히 정치와 경제의 유착 폐단의 고리가 쉽게 끊어지지 않아 수많은 사건이나 사고의 중심 인물이 된 사람도 많다. 이를 우리 경제의 흑역사라고 저자는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 온 국가에서 여러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은, 그 사회가 살아 움직이며 과거를 극복해 왔다는 증거이자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많은 사회였다는 의미라고 해석하는 저자의 경제 강의에 귀 기울여본다.

이 책은 5개 파트(PART)로 나뉘어 있다. 1부 〈부동산〉, 2부 〈노동과 복지〉, 3부 〈금융경제〉, 4부 〈정치와 경제〉, 5부 〈국제관계와 경제〉 등이다. 경제의 역사도 흐름이 있다. 이는 대부분 서양의 경제사 기술에 따르기 때문에 일반 경제사는 유명 경제학자의 이론에 따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등으로 나뉘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또는 이 이론들은 대부분 유명 학자나 학파의 이론에 의해 경제의 흐름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일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이는 대략 애덤스미스의 시대부터 약 300년 간의 경제사이다. 즉 서양도 경제사를 애덤 스미스 이후부터 정식 체계를 갖춘 경제학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 시점은 신대륙 발견 이후 미국의 독립과 영국의 대영제국의 쇠퇴, 식민지 시대의 종말 등 굵직굵직한 세계사적 사건들이 경제의 흐름을 좌지우지 했다. 이 때문에 서양경제사는 이 점을 중요하게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도 인류는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경제 활동을 해왔다. 〈호모 이코노미〉라고도 불리우는 이유다. 고대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의 생성과 화폐의 발명, 산업혁명 이후엔 노동이 경제 문제에 접합되었고, 금융 산업의 발전으로 〈금융경제〉란 말도 생겨났다. 경제가 대규모로 다루어지는(거시경제) 시점엔 자연스럽게 전문화가 따라감으로써 분화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으로서 국가 경제는 사실상 해방 직후 미군정이나 6·25 전쟁으로 거의 없었다고 본다면 실제로 이승만의 자유당 정부 시절부터를 시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승만 정부가 우리나라 경제에 특별히 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농지 개혁은 비교적 잘해서 업적으로 평가를 받았다는 글을 어떤 책인가에서 본 기억이 있다. 북한의 농지 개혁과 미군의 압력에 의해 농지 개혁은 초대 농림부 장관에 조봉암을 등용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업적으로 평가받을 일이 없고 독재를 연장하려다 결국 4·19에 의해 대통령직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망명하는 불행한 일을 연출하고 말았다.

이 책은 한국경제사 입문서로 우리나라의 경제를 희망적으로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저자가 집필했다고 밝힌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니만큼 한국경제 전반을 스치듯 다루고 있다. 각종 이슈가 세상을 시끄럽게 할 때마다 이 책을 펼치면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 일이니까 함께 천천히 짚어가보자는 독자들의 요구가 생길 것으로 저자는 판단하고 있다. 그만큼 좋은 일은 물론 나쁜 영향을 미친 일도 빠짐없이 다뤘다는 이야기다. 1부에서 다룬 부동산 문제는 성남시 개발 당시의 일이다. 이른바 〈8·10 성남민권운동〉이다. 개발 당시 분당은 엄청난 효과를 가져와 투기까지 겹쳐 말썽이 많았으나 2000년 들어서는 '천당 위의 분당'이라 할 만큼 강남 3구를 앞지를 정도로 아파트 값이 뛰었다. 2008년까지는 성남 아파트 가격이 서울 아파트 가격보다 평균적으로 높았다고 하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수도권 부존'으로 불리운 도시는 지역 정치인들이 부동산 비리나 조폭과 얽혔다는 의혹이 2000년대 들어 유독 많이 보도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소문이든 실제 상황이든 그럴 만한 배경이 있을 때 증폭되는 법이다. 이에 저자는 명백한 판교 개발 부정부패와 3,200억 원짜리 호화 청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성남의 빈민가 시절 역사인 광주대단지 사건까지 연결해 들어간다. 부동산 관련 정치인 부정부패는 서울 재개발 사업으로부터 시작된다. 책에 따르면 1970년대 부정부패 비리 없는 건설 현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건설사와 공무원이 열심히 예산을 빼돌리는 바람에 시민아파트는 날림으로 건설되고 심지어 서울 마포구의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이어진다. 또 아파트가 서울에 들어서기 시작하자 시유지나 사유지에 집을 짓고 무허가로 살던 철거민들을 대거 이주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광주대단지 사건은 꽤 독특한 시위이다. 우리나라 시위에서 찾아보기 힘든 폭력성을 띤 동시에 정치구호 없는 생존권 시위였다. 당시 보수 우익 세력은 광주대단지 사건을 폭력 난동이라고 불렀고, 진보 좌익 세력은 민중항쟁이라고 불렀다. 민주화운동 이외의 시위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싸우기도 시간이 모자라 〈8·10 성남민권운동〉이라는 공식 명칭도 성남시청 주도로 2021년에야 결정되었다.

시위 주동자들은 경찰서에 끌려가서 간첩으로 몰려 고문받기도 했지만 시위대의 요구는 시위 이후 모두 관철된다. ① 토지 가격을 평단 1,500원 이하로 인하해줄 것, ② 총대금을 10년 동안 매년 나눠 갚게 해줄 것, ③ 향후 5년간 각종 세금을 면제해 줄 것, ④ 영세민 취로사업 일자리를 제공해 줄 것, 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환경을 개선할 구호 대책을 세울 것 등이었다. 요구 조건에 따라 정부는 1974년과 1976년 성남에 산업공단 세 곳을 만든다. 서울 성수동에 있던 공장들이 많이 이전해왔다. 도시 자급자족을 위해 독자적인 산업단지를 세우려는 성남시의 노력은 이때부터 시작된 도시 특성이다.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반발해서 개선을 이뤄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1970년대와 1980년대 열악한 노동 환경도 참지 않는다. 이렇게 천당 위의 분당의 문제는 1960년대 정부의 저곡가 정책이 나비효과를 부르고 다시 나비효과를 불러서 오늘날의 성남이 탄생된 것이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고, 신도시와 구도시 시민들도 서로 다른 성향의 정치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현대사는 무척 빠르고 역동적으로 흘러왔다. 그만큼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지만, 또 그만큼 흑역사도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흑역사도 우리에게 미래를 통찰할 인사이트와 힘을 주었다는 점에서 빠짐없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가령 금융 비리를 해결하는 첫걸음이었던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은 강남 아파트 10만 채 해먹은 1982년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 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기 사건이 없었다면 조금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은행 거래를 시작할 때 신분증을 내고 내 이름으로 통장을 만드는 것이 금융실명제이다. 사실 이런 당연한 설명을 하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금융실명제는 당초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보통사람은 자신의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고 돈을 입출금하는데 누가 차명을 쓰고 무기명을 이용하느냐의 문제가 생긴다. 누가 그랬을까? 지금으로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금융실명제가 군사 작전 펼치듯 전격적으로 김영상 정부 최대의 업적으로 평가될 만큼 예상치 못하게 실시된 것. 차명이나 무기명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돈은 대부분 '검은 돈'이었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하다. 내가 내 마음대로 동생 명의로 통장을 만든다든가, 주민등록번호 확인 절차도 안 거치고 ‘아무도 저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닉네임만으로 주식 거래를 시작할 순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1993년 8월 12일까지는 이게 가능했다. (중략) 개혁이 기존 생태계를 파괴하는 만큼, 금융 시장 혼란으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는 당연했다. 하지만 금융실명제 반대론자의 주장은 과격한 면이 있었다. 게다가 혼란을 핑계로 비실명제 금융거래 관행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 도입에 어떻게 성공했을까? ① 비실명제를 이용한 장영자·이철희의 어음 사기 사건이 사회적으로 너무 큰 충격을 주었고(1982), ② 김영삼의 문민 정부는 그런 사건을 겪고도 부정부패에 절어 있는 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풀어주겠다는 약속으로 세워진 정부인 데다, ③ 대통령 본인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치밀한 타이밍을 계산해 단숨에 해치웠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에 비하면 가상화폐 그까짓 거〉 중에서(p.260, 265~266)

 


 

이 책의 본문에 등장하는 소제목만 봐도 내용이 막 궁금하고 당장 책을 펼쳐보고 싶어진다. 정리가 잘 돼 있다는 이야기다. 이 책 한 권이면 한국경제사와 한국경제와 얽히고설킨 정치, 주택, 금융, 노동 등 거의 모든 분야와 밀접하고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많은 정책들이 제 1의 목표 앞에 '고성장'이 가로막고 있었다. 환경 문제는 무차별하고 무계획한 개발에 밀려 문제 제기도 어려웠다. 노동 문제도 산업화 과정에서 당연히 피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산업화 과정에서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라고 몰아붙였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난 다음에는 정치 자금 규모도 턱없이 커졌다. 기업으로부터 찬조 받는 정치 자금의 부담은 오롯이 소비자 국민에게 돌아갔다. 기업 측에도 정치 자금만큼 세금을 빼주기도, 소비자 가격을 올리기도 하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정치 자금을 끌어들였다. 이런 이야기들이 흑역사 상에 드러나니 이 책을 읽을 때 지루하거나 어렵다운 생각보다 우리 경제사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경제사에 따로 입문할 필요없이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우리 경제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에는 저축은행에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 돈이 6조5,000억 원어치나 저금되어 있었다. 금융 사고 보호는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지만, 한번 사고가 나면 현실적으로 피해자 구제가 어렵다. 개인의 책임 문제와 금융상품 판매 구조의 부조리함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구조를 이길 방법은 없다고 봐도 좋다. 이에 따라 불합리한 구조와 관행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당장 손해 보는 사람은 나 자신인 만큼, 내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똑똑한 소비자가 돼야 한다. 물론 이렇게 속 편한 소리도 21세기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고, 1972년 8·3 사채동결조치 때는 그럴 수도 없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축은행의 탄생이 1972년이었다. 이제부터 기업이 서민들에게 사채를 빌려 쓰던 기이한 관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본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대리한테 돈을 빌려달라면?〉 중에서(p.347~348)

 


 

이렇게 시사 뒤에는 역사가 있다.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이 내린 ‘어제’의 결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이 되었으며, 우리의 ‘오늘’은 어떤 모습의 ‘내일’로 찾아올지 예감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경제사는 한 번쯤 펼쳐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들을 비교하고 연결하며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고 예측하게 한다. 가격이 오를 부동산을 고르는 법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명문고, 무장공비, 지하철 2호선 노선, 인구 과밀, 체비지, 경부고속도로 등으로 이어지며 강남의 탄생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식이다. 빚이 100억이면 부자일까, 거지일까 하는 질문으로 시작해 저축은행 뱅크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PF대출, 사채, 8·3 사채동결조치, 종금사와 ‘꺾기’ 관행까지 막힘 없이 술술 풀어가며 사금융과 제2금융권의 시작과 현재까지를 일목요연하게 들려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는 오늘의 한국 경제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재밌고 빠른 지적 여행의 길잡이이다.

 

저자 : 김정인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경제학 석사를 수료했다.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비플라이소프트 미디어빅데이터분석팀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금융·경제 전문 뉴미디어 ‘어피티’ CCO로서 금융·경제 정보를 선별하고 해석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KDI 연구원 시절, 미디어에 내보낼 경제정책 정보를 정리하며 각종 경제 현상에 재미를 느껴 경제학과에 편입해 경제 공부를 시작, 경제학 석사과정에까지 진학했다. 경제학이 재미있는 만큼 어렵기도 했기에 늘 고군분투하는 나날이었다. 미디어빅데이터 회사에서 근무하며 경제 공부를 쉬게 되었고,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어피티’에 흥미로운 경제 사건과 그 뒷이야기를 2년 동안 매주 연재하다 2021년에 ‘어피티’ 정식 구성원이 되었다. 경제 공부에 재미와 어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교과서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경제 이야기를 실생활 사례들로 쉽고, 재미있고, 뼈저릴 만큼 생생하게 전하는 것이 목표다. 지은 책으로 《오늘 배워 내일 써먹는 경제상식》, 《웰컴 투 어피티 제너레이션 2022》(공저)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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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 너무 먼 곳만 보느라 가까운 행복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조연경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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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행복'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나 자기계발서, 심리학 혹은 인문학 책까지 천천히 살펴보면 우리는 행복과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평생 돈만 쫓다가 행복과 거리가 멀어진 경우도 있고, 또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권력 등만을 위해 치열하게 도전만 거듭하던 사람도 많다. 옛말에 재물이나 명예는 자신의 건강한 몸 이후에 할 것을 경계하는 말이 있다. 원전이 어딘지 모르고 독자가 자주 쓰는 말 중에도 "재물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란 말도 고전을 읽다 알게 된 격언인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닥치면 반대로 쫓아다닌다. 지금이야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아직도 명예욕은 남아 가슴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다행히 나이가 들면서 재물욕은 거의 없어진 것만이라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몇 년 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중주척인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오포 세대'란 말이 유행어처럼 퍼졌다. 이것은 '삼포'에서 진전된 것이다. 이들이 포기한 것은 직장, 연애, 결혼 등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암담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심적 고통으로 이어지면서 '수저 계급론'으로 확산됐다. 그 암담한 미래에 우울감이 더해진다면 사회를 끌어가는 동력을 잃을 것이고, 사라진 동력 이후에는 삶의 포기로까지 이어질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이 점을 인식한 기성 세대가 나서지도 않고, 올바른 인식으로 전환시킬 노력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달리 방법이 었는 것인지, 그냥 '주어진 대로 살 것'을 강요하는 듯하다.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빌어 쓰자면 "희망을 잃은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가 딱 지금 우리 사회 분위기가 아닌가 우려스럽다. 그러나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나마 재능을 가진 예술인들은 크든 작든 청년 세대에게 희망마저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달하고 또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해보고 사라질 우리가 아니다'란 위로를 받고 활력을 얻기도 한다. 이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주는 메시지는 '행복'을 담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행복을 목표로 살아야지, 결코 부나 권력을 좇아서는 행복에 이를 수 없다는 제언이다. 사실 이런 말은 이전 사회부터 있었던 말이다. 우리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고 노력하면서 잃어왔다는 뜻이다. 다산 정약용의 책에도 다산을 연구하는 모임의 책에도 '행복'은 삶의 가장 최고의 목표이자 후손들에게 우선적으로 물려줘야 할 최고의 유산이라는 삶의 가르침이 나와 있다.

우리가 가난을 벗기 위해 들인 피와 땀이 행복으로 결실을 맺기 위한 것 아닌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서 되돌아보면 돈을 좇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행복과 맞바꾼 것이었다는 자괴감이 든다. 그리스 신화에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 튀어나온 것은 '희망'이라는 말도 있고, '망각'이란 말도 있다. 그만큼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책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의 저자 조연경은 행복은 우리 곁에 있으니 멀리까지 가서 찾지 말고, 먼 훗날의 행복을 기약한다고 오늘의 삶을 희생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저자는 저 멀리에 있어서 잡히지 않는, 언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행복을 찾아 지금, 여기서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명제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드라마 한 편을 써 내려가듯 우리 일상의 행복한 순간을 주워 글로 엮은 이 책에서 저자는 행복할 마음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고, 생각보다 우리의 인생은 훨씬 더 달달하고 고소하고 말랑말랑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행복한 사람들이 가진 사소한 습관부터 사람과 사랑을 통해서 오는 행복의 순간, 지금 바로 우리가 행복해져야 할 이유, 비울수록 더 풍성해지는 마음 작용법 등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우리가 행복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리면 사실 그렇게 대단하고 거창하지 않다. 이 책에는 아침에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을 때, 아메리카노 한잔과 달콤 쌉싸름한 티라미수 한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재래시장 한구석에 쌓여 있는 싱싱한 과일과 야채를 바라볼 때, 피곤에 지친 퇴근길에 문득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본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발견했을 때와 같이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순간들이 담겨 있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는데 우리는 왜 항상 저 멀리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어디에서나 행복을 발견하는 방법을 안다면 우리는 매일매일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책은 그 방법을 가장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내 이야기 같고, 또 내 주변의 이야기 같은 이 책이 너무 먼 곳만 보느라 가까운 행복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소곤소곤 말해줄 것이다. 지금, 여기 있는 행복을 누리라고. 아마 이 책을 덮고 나면 누구든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고, 행복의 문은 사방에 열려 있다.

 

"돈이 많다고 행복이 보장될까? 돈으로 좋은 물건을 많이 사는 게 행복은 아니다. 좋은 집도 멋진 차도 시간이 지나면 평범함으로 바뀐다. 그래서 처음 감격이 사라질 때 즈음이면 더 크고 좋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진다. 소유할수록 욕심이 커지고 행복은 곁을 떠난다. 매 순간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매 순간 돈을 버는 사람보다 더 부자다.(p.244)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행복은 의외로 쉽고 단순하다」, 2장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을 만든다」, 3장 「행복과 사랑은 단짝이다」, 4장 「행복은 적금이 아니라 신용카드다」, 5장 「행복의 기준과 부자의 기준은 다르다」 등이다. 각 장의 제목은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말을 하려는지를 쉽게 알 수 있도록 명확한 단문으로 구성돼 있다. 한눈에 그 뜻이 가슴으로 파고 든다. 혹시 독자들의 혼란으로 바로 이해되지 않을지 몰라 각 장의 제목에는 친절한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의 따뜻한 감성이 드러난다. 1장의 부제는 '행복한 사람들의 사소한 습관'이다. 1장은 〈사소한 습관〉 14개의 소항목을 두어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2장은 '행복은 사람을 통해서 온다'란 부제를 갖고 있다. 행복은 물질이나 돈, 권력, 명예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온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3장엔 '행복은 사랑이 있는 곳에 찾아온다'란 부제로써 〈사랑〉을 강조한다. 또 4장은 '바로 지금이 행복해야 할 시간이다'라며 〈바로 지금〉을 부각시킨다. 5장은 '비울수록 더 많이 채워지는 이상한 공식'이란 부제로 〈비움〉이 핵심어로 등장한다. 제목으로 살펴본다면 행복의 조건은 사소한 습관, 사람, 사랑, 지금, 비움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1장에는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이야기다. 영화의 시작은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초라한 카페가 나온다. 책에 따르면 여행 중 남편과 싸우고 혼자 떨어져 나온 여주인공 '야스민'은 우연히 황량한 사막에 세워진 카페를 발견한다. 야스민은 그 카페에서 잠시 머무르기로 한다. 카페의 여주인 '브렌다'는 생활력이 강하지만 무능한 남편과 말썽만 피우는 아이들 때문에 조금도 행복하지 않은 여자다. 쌈닭처럼 매일매일 소리 지르며 삶의 생기를 잊은 지 오래다. 커피가 없는 카페, 음악이 사라진 카페, 이러니 손님이 오는 게 이상할 정도다. 남편은 집을 나가고 피아노를 꿈으로 삼고 있는 아들은 피아노를 칠 때마다 그만두라고 소리치는 엄마 때문에 인생이 모래알처럼 쓰라리다. 두 딸도 사는 게 지겹다. 이런 카페 안에 뛰어든 야스민, 그 여자의 눈부신 긍정의 힘과 밝음 덕분에 마법 같은 일이 생긴다. 브렌다의 남편이 돌아오고, 아이들은 표정이 환해지고, 카페에는 춤과 노래 그리고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여주인 브렌다는 행복을 찾는다.

 


 

카페를 멋지게 리모델링한 것도 아니고 게으른 남편과 말썽꾸러기 아이들도 달라진 게 없다. 도대체 무엇이 브렌다를 그렇게 변화시켰을까? 저자는 브렌다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을 이유로 꼽는다. 브렌다는 긍정적인 야스민으로 인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무능한 남편은 착하고, 집안일은 나몰라라 피아노만 두드리는 한심한 아들은 피아노 연주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줄 아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멋진 청년이고, 사사건건 엄마와 부딪치는 큰딸은 아름답고 건강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어제까지는 브렌다를 불행하게 한 가족이 오늘은 브렌다를 미소 짓게 만든 것이다. 저자는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이와 같이 행복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그런데 우리는 돈, 건강, 풍요로운 식탁, 좋은 직장 등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그 속에 갇혀 살면서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억울해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조금만 시각을 달리한다면 삶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우리는 행복해진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해인 수녀의 〈1%의 행복〉이라는 시를 인용한다.

 

저울에 행복을 달면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단 1%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것입니다.

 


 

2장의 '정직한 법칙'에서 저자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떠나 파리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덴마크로 갈 계획인 슈바이처 박사의 일화를 소개한다.

"선생님, 어떻게 3등 칸에 타셨습니까?"

"예, 이 기차는 4등 칸이 없어서요."

그가 파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신문기자들이 취재를 하려고 그가 탄 기차 특등실로 몰려들었다. 그는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 칭호를 받은 귀족이다. 당연히 특등실에 탔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그곳에 없었다. 그는 병원을 세우고 당시 비참한 상태에 있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평생 헌신적으로 의료봉사를 한 분이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사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평생 안락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는 특등실처럼 편한 곳보다 3등 칸처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곳에 늘 있었다. 그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인용하며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을 하나 추가한다. "행복은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데 자신을 비치는 것이다."란 러셀의 말이다. 저자는 물론 누구나 슈바이처 박사처럼 될 수는 없다. 나를 헌신하면서 오직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기란 매우 어렵다는 점도 지적한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나의 말 한마디 또는 작은 행동이 타인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어떨까?라고 언급한다.

여기에 취업이 어려운 청년의 에피소드 하나를 덧붙인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그때 편의점 주인이 우유와 빵을 앞에 놔 주고 청년의 어깨를 몇 번 토닥인다. 청년 앞에 놓인 건 우유와 빵이 아니라 따뜻한 격려다. 청년을 허기를 채우면서 다시 희망을 본다.

 


 

책 출간 당시 계절은 아직 봄이 오지 않은 3월 어느 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슈바이처를 소개한 항목 마지막 단락에서 슬그머니 내놓는다. 이에 따르면 내 자신을 다 던지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겨우내 언 땅을 뚫고 연둣빛 새싹이 올라온 3월, 봄은 새로운 계절의 시작이다. 입학, 취직, 결혼 등 설렘과 기대가 있지만 두려움과 긴장도 있다. 낯선 곳, 새로운 사람들 틈에서 과연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심할 필요가 없다. 행복의 법칙은 의외로 정직하고 단순하다. 내가 원하는 걸, 내가 받고 싶은 걸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주면 된다. 우리 모두 '자신 있게 행복하기'로 봄을 열어보자.

 

저자 : 조연경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 MBC에서 희곡 [딩동댕]이 당선되어 MBC 드라마 [제3교실], KBS 드라마 [금방울 은방울], CBS 라디오 드라마 [우리 집은요] 등 다수의 드라마 작품을 썼다. 199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2년 CBS 방송문화대상, KBS 코미디 시트콤 대상, 라디오 방송 PD 주최 ‘따뜻한 작가상’을 수상했다.

공주영상정보대학 겸임교수와 조선일보 메트로 여성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신문 컬럼니스트, 문화센터 및 기업체 강의, TV 드라마 작가로 활동 중이다.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어 놓은 코로나 19와 불안정한 경제 상황으로 지치고 황폐해진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슈퍼마켓에 상품이 진열되어 있듯 우리 주변에 행복이 진열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란다. 행복은 공짜이고, 내가 집어 들기만 하면 된다. 이런 상상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행복은 의외로 쉽고 간단하다.

대표작으로는 미니시리즈 [아내가 있는 풍경], [사랑의 조건], [레테의 연가], [사랑과 전쟁] 등 30여 편의 TV 드라마와 [여인극장 술래잡기] 등 50여 편의 라디오 드라마가 있으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첼로』, 『사랑을 위한 몇 가지 변명』 등 22권의 작품집이 있다. 특히 『준비된 신혼이 아름답다』와 어른들을 위한 행복동화 『행복 줍기』가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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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선 단 한 끼도 대충 먹을 수 없어
바이구이(by92)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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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먹을 것을 탐낸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너무 많이 먹는 것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먹는 것에 대한 독자의 신조다. 그래서인지 아직 성인병을 염려한 적이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합쳐진 것이겠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성인병 걱정보다는 오히려 너무 안 먹어 건강이 걱정된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그렇다고 어렸을 때처럼 편식을 하는 편도 아니다. 음식의 맛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만들어줄 능력은 없어도 만들어진 음식의 맛에 대한 표현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독자가 음식으로 먹고 사는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지금보다 음식을 탐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음식에서 '미식'과 '절제'는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안다. 세계 3대 미항도, 세계 3대 요리도 듣고 가보고 먹어보았다. 이 정도면 한 세상 충분히 잘산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인지 미식가(美食家)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을 위한 이 책 『도쿄에선 단 한 끼도 대충 먹을 수 없어』를 읽고 생각이 변했다. 탐식이 아닌 만큼 미식을 탓할 필요도 없고, 나쁘다고 말할 것도 아니다란 확실한 인식을 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요리는 세계 3대 요리로 꼽히고 있다. 중국·프랑스와 함께 일본의 음식 문화는 그만큼 발전됐다고 봐야 하는 걸까?

이 책은 도쿄에서 유년기를 보낸 저자 바이구이가 도쿄 음식의 진가를 고급 요리가 아닌 가장 평범한 도쿄 사람들이 먹는 한 끼, ‘도쿄식 와쇼쿠’에서 찾는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다. 가볍게 아침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깃사텐 모닝세트’, 도쿄 직장인의 점심 메뉴 1순위 ‘라멘’, 흰밥에 제철 사시미를 올린 ‘가이센동’, 세계 어느 중화요리보다 독보적인 맛을 자랑하는 ‘도쿄 차이니스’, 일본인 입맛에 맞게 진화한 ‘와후 파스타’, 일본의 국민 케이크 ‘쇼트케이크’ 등 도쿄식 와쇼쿠를 충분히 경험해 볼 수 있는 85곳의 맛집 정보를 소개한다.

 


 

책에 따르면 도쿄는 2008년 미쉐린 가이드 평가에서 파리를 제치고 세계 1위를 획득한 이래 16년 연속 세계 1위를 유지하며 세계 제일의 미식 도시라는 타이틀을 장기간 거머쥐고 있다. 2013년에는 도쿄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한 끼인 ‘와쇼쿠(Washoku)’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미식의 세계에서 도쿄 음식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이 책에서 소개된 도쿄 미식의 세계 역시 익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넓고 다양하다고 저자는 밝힌다. 스시나 우동과 같은 일본 전통 요리는 물론, 탄탄멘, 마파두부, 파스타, 카레 등 외국에서 들어와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변신하며 와쇼쿠로 자리 잡은 음식들 역시 일본만의 ‘결’이 살아 있는 독보적인 맛을 자랑한다. 심지어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편의점 샌드위치나 맥도날드 등 세계 어느 도시에나 있는 프랜차이즈 식당의 공통 메뉴조차 도쿄에서는 특별한 맛으로 만날 수 있다.

저자는 방대한 도쿄 미식 정보를 집밥, 현지인만 아는 로컬 메뉴, 계절 음식, 주류, 면 요리, 수프, 외국 요리, 디저트 등 9가지 파트로 나누어, 각 음식에 담긴 이야기와 엄선한 이 책은 모두 85군데의 맛집 정보를 함께 소개한다. 규격화된 메뉴를 만드는 프랜차이즈 식당조차 완벽한 맛을 내는 이유, 인도의 커리가 와쇼쿠로 자리 잡은 이야기, 관광객에게는 덜 알려졌지만 도쿄 현지인에게 인정받는 스시 맛집 등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도쿄로 떠날 계획이 없는 독자처럼 이 책을 통해 도쿄 음식을 상상하며 느낄 수 있도록 책을 썼다. 이 책의 출간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음식 페이지만 펼쳐 그 음식의 역사와 문화, 맛집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음식은 ‘한 끼 때우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식가라면, 또 도쿄 여행에서 최소 하루 한 끼는 제대로 먹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진정한 미식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일본인의 식탁을 엿보다」란 소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일본요리의 특성, 도쿄의 전통 요리와 도쿄 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점의 요리의 특성을 설명한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저자는 요리 맛의 비결이 될 수도 있는 재료와 첨가제, 접대 방식, 음식 예절 등도 세세하게 담았다. 일본에서 오래 산 탓인지 저자의 글 솜씨는 간결한 것이 일본인들을 닮았다. 아니 어쩌면 글을 많이 써서 글 쓰는 요령이 좋다는 평가도 있을 듯하다. 독자가 느끼기에는 문체는 우리와 많이 닮았는데 글의 특성은 세밀한 것이 일본인의 특성(장점)과 비슷하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일본인의 식탁이 아무리 서구화되었다 하더라도 일본 고유의 요리가 '와쇼쿠(和食, 일본 요리)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와쇼쿠는 좁은 의미로는 가이세키 요리(懷石料理), 쇼진 요리(精進料理) 등 일본 전통 요리를 뜻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오래전 일본으로 건너와 토착화된 외국 요리까지 전부 포함하는 말"이라고 밝힌다.

저자는 또 일본 고유 요리는 세월과 함께 점점 영역을 넓혀왔지만 변하지 않는 와쇼쿠의 본질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린 조리법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독자의 문해력으로는 일본 요리는 재료의 맛을 살리는 데 최대 목표가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이 원칙은 돈부리모노(덮밥), 뎀뿌라(튀김), 가마메시(솥밥), 야키자카나(생선구이), 사시미(회), 스시(초밥) 등 모든 음식에 적용된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수많은 와쇼쿠 레시피에는 '재료의 맛과 우아미(천연의 재료에서 얻는 깊은 감칠맛)를 살린다'는 관용구적으로 따라 붙는다고 덧붙인다. 일부 사람들은 와쇼쿠를 두고 '뺄셈의 요리'라는 말도 넌지시 내놓는다. 이런저런 양념의 맛을 살리기 위해 기타 불필요한 맛을 최대한 배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불필요한 맛을 최대한 배제하기 때문이라는 것. 좋은 맛의 원천을 한 수 배운 느낌이다.

 

 

일본은 지형 탓에 지역별로 기후와 풍토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도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이유가 된다는 점도 부각한다. 계절마다 지역마다 다채로운 채소와 과일, 육류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란 점도 맛을 내는 좋은 조건이라는 말이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싱싱한 해산물을 거의 실시간으로 공급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자연 환경이 일본인이 중시하는 '원재료 맛을 살린' 산해진미의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지구과학자인 다쓰미 요시유키(고베대학 객원교수)의 책은 지구과학과 미식을 연계해서 일본의 맛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와쇼쿠의 핵심인 재료의 맛은 지진 및 분화와 맞바꾼 결과다. 화산 분화로 생긴 화산재가 스민 땅은 비옥해서 농작에 유리하다.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화산재토는 특히 배수성이 뛰어난다. 양배추, 파, 무 등의 농작물이 자라기에 최상의 토지이다. 실제로 화산재토가 대부분인 간토(關東) 평야(도쿄 및 주변 6개현에 걸친 일본 최대의 평야로 일본 농지의 4분의 1을 차지함)의 작물은 그 풍미가 유난히 좋다. 또한 근채류 농사에 적합한 적황색토가 있고, 수박, 토마토, 우엉, 시금치, 콩, 감자 등의 야채 농사에 최저인 사질토가 해안선을 따라 분포하는 등 다양한 성질의 토양을 두루 갖추고 있다.

저자는 와쇼쿠의 맛을 좌지우지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앞서 언급한 우아미라고 강조한다. 이 우아미의 원재료가 바로 다시(맛국물), 다시에는 다시마(곰부)로만 우린 곰부다시, 다시마와 가쓰오부시(가다랑어 살을 쪄서 말린 후 발효시킨 것)로 우린 다시, 다시마와 건표고 등으로 우린 다시가 있다. 이 다시마 베이스의 다시가 양념, 국물, 소스,가쿠시아지(숨겨진 밑간) 등 거의 모든 와쇼쿠의 맛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이 다시마에서 최상의 우아미를 우려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 물에 있다고 귀띔한다. 다시마의 성분을 추출하기에 가장 좋은 물이 연수인데, 일본의 물은 대부분 연수라는 것. 어찌 보면 우아미는 주어진 자연 조건에 순응하며 자연스럽게 얻게 된 맛이라는 설명이다.

 


 

이 책은 프롤로그를 밑바탕에 깔고 모두 9개 파트로 이뤄져 있다. 1부 〈도쿄 뒷골목에서 찾은 집밥〉, 2부 〈로컬들만 아는 도쿄의 소확행〉, 3부 〈진정한 미식가라면 놓치면 안 되는 계절 음식〉, 4부 〈도쿄에서는 이렇게 마십니다〉, 5부 〈면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반드시!〉, 6부 〈내 영혼을 위한 도쿄 수프〉, 7부 〈한 그릇에 담긴 맛의 소우주〉, 8부 〈이국에서 맛보는 또 다른 이국의 맛〉, 9부 〈섬세함에서 만나는 가장 달콤한 위로〉 등이다. 1부에서는 생선구이 집밥, 뎀뿌라, 카레라이스, 돈카츠, 햄버그스테이크, 마파두부 등을 잘하는 음식점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이 가운데 댐뿌라는 독자의 귀에도 매우 익숙한 발음이다.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튀김'을 이르는 일본 말이라고 알고 있다. 아주 어렸을 때 동네에서 조금만 튀김 집에서 '덴뿌라'라고 써놓은 걸 기억하고 있다. 이 책에서 뎀뿌라는 독자가 알고 있는 튀김의 일본 말 정도가 아닌 듯하다. 뎀뿌라는 도쿄의 향토 요리이자 소바, 스시와 함께 '데도 노 산미(도쿄를 대표하는 세 가지 요리)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족보 있는 음식 명칭이라 한다.

거의 주식으로 먹고, 간식으로도 빠지지 않는 이 뎀뿌라를 일본인이 언제부터 먹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는 저자는 전한다. 나라(奈良) 시대라는 설도 있고 16세기 즈음 포르투갈인 선교사가 서구의 프리터(Fritter, 걸쭉한 반죽에 저민 음식을 결합시키거나 걸쭉한 반죽을 입혀서 튀긴 것) 조리법을 일본에 전한 것이 처음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뎀뿌라라는 이름은 포르투갈 템페로(Tempero, 양념·조미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라는 설명이다. 아무튼 지금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뎀뿌라가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는 에도 시대(1603~1867) 중기쯤으로 본다고 저자는 단언하고 있다. 기름이 귀했던 시절 나라 시대까지만 해도 상류층 음식이었던 뎀뿌라는 에도 중기부터 대중에게 확산되었다는 가장 설득력 있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말이다. 물류가 원활해짐에 따라 각지의 생산물이 에도로 집중되었고, 재료과 기름을 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스시, 소바, 우나기(장어)처럼 뎀뿌라도 야타이(본래는 서서 먹는 이동식 작은 가게, 포장마차와 유사)에서 파는 대중음식이 되었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독자는 일본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일식은 많이 먹었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서양에서도 일식은 '비싸다'는 생각이 앞선다. 독자가 '많이 먹었다'는 표현도 엄밀하게 말하면 굳이 숫자를 세지 않았기에 대충 말한 것이다. 일본 음식에 대한 저자의 표현대로 '한 끼도 대충 먹을 수 없다면' 백 번은 넘은 것 같고, 천 번은 안 된 것 같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대부분은 일본 요리집이라는 표현보다는 우리 서울 등에서 흔히 표현하는 대로 '일식집'이 대부분이다. 이곳에는 식사하러 간 것보다 술 마시러 간 횟수가 대부분이어서 굳이 횟수를 셀 필요도, 셀 수도 없는 것이어서 제대로 짚기 어려워서 그냥 '많다'로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식집이라면 어디까지나 식사 예절 같은 것을 포함한 먹는 법 등이 있을 텐데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그런 것 따지지 않는 게 상례기에 처음에는 같이 간 사람을 따라하고, 10번쯤 넘어가면 '내 멋대로' 먹는 게 일반적이어서 일식 먹는 법(예절)을 익힐 필요도, 기회도 없었다. 저자가 독자의 고충을 알고 있다는 듯 책 중간중간에 〈더 알아보기〉를 통해 「스시 먹는 법」과 「스시 예절」을 명기해 놓았다. 먼저 「스시 먹는 법」 가운데 가장 궁금했던 순서다. 일식집에 가면 그걸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도 잘못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책에 따르면 스시의 구성과 순서를 전적으로 스시 장인에게 맡기는 '오마카세'가 아니라 하나하나 스스로 주문해야 하는 경우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어떤 순서로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 즉 정해진 순서가 없다는 말이다. 무엇을 먼저 먹고 무엇을 나중에 먹을지는 순전히 먹는 사람 마음이다. 단, 스시 장인들이 권하는 순서는 있다. 이 순서는 담백한 맛(광어, 도미 등 흰살생선)으로 시작해서 삶은 재로, 진한 맛(성게알 등) 순으로 먹고 마키즈시(김으로 만 초밥)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오오토로(참치뱃살)같이 기름진 맛으로 시작하면 기름기가 입안에 남아 미각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마키즈시는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흰살생선-참지-등 푸른 생선-오징어-달걀말이-조개류-새우-붕장어-마키즈시의 순서를 기억하면 좋다. 또한 맛이 진한 스시를 먹으면 반드시 오차, 가리(생강 초절임) 등으로 입안을 한 번 진정시켜 줘야 다음 스시의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시 예절」의 경우 저자가 책에 적시한 10개 항목을 독자 임의로 간추려 여기에 적는다. 특히 스스쇼쿠닌이 스시를 직접 쥐어 내주는, 카운터가 있는 스시야에서 알아두어야 할 예절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① 갈 때 진한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② 대화 도중에라도 스시는 스시쇼쿠닌이 쥐여 준 즉시 먹는다.

③ 젓가락이 엇나가서 네타(재료)와 샤리(밥)가 분리될 경우 따로따로 먹으면 실례이다. 이럴 때는 손으로 네타와 샤리를 합쳐 먹는 것이 좋다.

④ 스시 하나는 한 입에 다 먹는다.

⑤ 집시에 2관(貫, 스시를 세는 단위)을 담아 준 경우에도 일행과 나눠 먹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⑥ 간장은 샤리 위에 올려진 재료에 묻혀야 한다.

⑦ 군칸마키(초밥을 김으로 싸고 꼭대기에 성게나 연어 알 등을 얹은 것)에는 직접 간장으 묻히면 재료가 흩어지므로, 먼저 가리에 간장을 넉넉히 묻힌 다음 가레에 묻은 간장을 재료 위에 떨어뜨려 먹는다.

⑧ 간장에 와시비를 지나치게 푸는 것은 금물.

⑨ 젓가락 받침대가 없을 때는 젓가락을 간장 접시 위해 살짝 걸쳐 놓는다.

⑩ 식당에 지나치게 오래 머무는 것은 금물. 고급 스시라 해도 술을 마시면 2시간, 마시지 않으면 1시간 30분 정도 머무는 것이 예의다.

 

저자 : 바이구이(by92)

 

외신 기자, 보도국 소속 동시통역사, 인테리어 컨설턴트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언제나 함께했다. 출장, 여행에서도 미식은 빠뜨리지 않았다. 특히 청소년기를 도쿄에서 보낸 도쿄 디저트 마니아로서 언젠가 디저트 전문 숍을 차려, 일본 디저트 특유의 ‘결’을 가감 없이 서울에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파리와 밀라노, 뉴욕 등지의 디저트도 훌륭했지만, 일본 디저트, 더 나아가 일본 음식은 그 내면의 결이 확실히 달랐기 때문이다. 일본 음식이 품고 있는 내면과 이면의 이야기를 미식에 관심 있는 이들과 나누고, 또 같이 느끼고 싶었다. 수년 전 디저트 전문 숍 운영의 꿈이 실현되었고, 이제는 이야기를 전할 차례가 되었다. 모쪼록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맛의 즐거움을 깨닫고, 미식의 지평을 넓혀 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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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쟴 2023-06-2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미가 아니라 우마미예요~ 감칠맛
 
가슴 뛰는 대로 가면 돼 일단 떠나라 - 나 홀로 내 맘대로 세계여행
김별 지음 / 에이블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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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해외여행이라면 으레 패키지여행을 뜻했다. 불과 30여년 전 일이다. 그때는 세계화 시대에 맞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너도나도 해외여행이 꿈이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해외여행 경험이 없어서 정보도 부족하고 언어 문제로 해외여행에 대한 두려움마저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패키지 여행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됐다. 독자도 90년대 중반에 첫 해외여행을 갔었다. 유럽이었다. 처음 간 일이고, 지금처럼 해외여행 경험자마저 없으니 마땅히 계획을 세우긱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다들 선호하는 패키지 여행 이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 혼자 가는 게 아니라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을 정도다. 이때의 경험은 '빨리빨리'의 습관을 여전히 해외에서도 계속했다는 게 가장 기억에 남아 있었다. 유렵 여러 나라를 한 번 여행에 묶으려다보니 도시서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 외에는 해가 있을 시간에는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패키지 여행은 다른 경험을 개인적으로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라는 관광 가이드들은 하나같이 식사 시간도 아껴야 할 정도로 급박하게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적지 않은 여행비에 처음 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될수록 많은 곳을 들러 많은 것을 본다는 것이 우선 순위에 두었다. 여행사도 모객을 위해 그렇게 계획을 짤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해외여행 문화가 바뀌어도 엄청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도 중장년층 이상은 자유여행보다는 패키지여행을 선호한다고 한다. 영어라는 거대한 장벽과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웬만한 여행 고수가 아니면 장기 자유여행 스케줄 짜기가 만만치 않고 인터넷 등에서의 정보 수집도 아무래도 젊은 층에 비해 훨씬 뒤질 터이니 아예 패키지 여행을 좋아하는 원인일 것이다. 이에 비해 젊은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은 배낭여행이나 자유여행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언어도 되고 정보 수집도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이란 강력한 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 두려움 자체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 책 『일단 떠나라』의 저자 김별은 촘촘하게 스케줄을 짜지도 않고, 철저한 준비도 없이 첫 번째 목적지만 정한 채 항공권부터 끊는 과감한 행보를 보인다. 여행 전문가도 아니고, 장기 자유여행을 다녀본 적도 없는데도 말이다. 더욱이 환갑이 다 된 나이인 데다 여성이라니 조금 속된 표현으로 '무모한 여행' 아닌가 싶다. 장기 여행을 갈 경우 언어는 물론 체력, 경비, 두려움이 있을 텐데 '마음대로 청춘' 흉내를 내다니 책을 읽기 앞서 걱정부터 앞선다. 그러나 저자는 5개월 반 동안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움직였다. 유일하게 목적지를 정하고 간 곳이 처음 출발지인 다합이었는데 다합으로 간 이유도 남다르다. 물가 싸고 한국인 많은 그곳에서 적응기를 갖기 위함이었다. 20대 젊은이들조차 이런 방식의 여행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신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은 더 많은 즐거움과 깨달음을 준다는 점을 저자의 무모한 여행은 보여준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으니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사람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 느긋하게 풍경과 사람을 보고, 지루하면 언제든지 떠나는 ‘내 맘대로 여행’이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18개국 48개 도시 곳곳을 누비다 보면 ‘아, 이런 여행도 가능하구나’ ‘예습 없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다면 걱정일랑 접어두고 일단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힘들면 '놀멍쉬멍' 천천히 가면 된다. 그래도 두려움이 앞선다면 이 책의 부록 ‘어설프지만 따라해보면 여행이 엄청 쉬워지는 8가지 팁’을 읽어보기 바란다. 여행을 떠날 용기가 불끈 솟아오를 것 같은 저자의 서비스 부록이다.

 


 

장기 여행자보험 하나 들고 촘촘한 계획도 없이 나 홀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저자는 5개월 반 동안 세계 곳곳을 다니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즐겁게 지내며 건강하게 잘 다녀왔다고 말한다.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버킷리스트 첫 번째 자리했던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었기에 떠났고, 무리하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동네 산책하듯 매일매일 1만 보 이상 걸으며 내 몸에 맞게 즐긴 덕분이다. “어떤 매력적인 목적지가 나를 끌어당긴 게 아니라 떠날 때 되었기에 떠나야 한다는 당위성이 나를 움직였다”는 저자는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얘기한다. 타이밍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과감하게 떠나보는 것도 새출발 인생의 멋진 한 장면이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데인 셔우드를 인용한다. 셔우드는 '죽기 전에 꼭 해볼 일들'이란 시 속에서 "혼자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를 가장 먼저 꼽았다. 혼자 가면 전부를 보고, 둘이 가면 절반을 보고, 셋이 가면 더 적게 보고 온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혼자 가면 외롭고 힘들 것 같지만,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보다 시간의 밀도가 높다. 풍경을 봐도 더 몰입해서 보고, 음식을 먹을 때도 먹는 음식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할 때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준다고 응수한다. 무엇보다 혼자서 여행 계획을 짜고 실행하다 보면 여행 기술이 빠른 속도로 좋아진다고 강조한다.

혼자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실수를 하고 부족함도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행이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성공적이고 멋지며 폼 나야 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는 반문으로 대신한다. '내 눈에 안경이요, 내 발에 맞는 신발'처럼 하면 된다는 것. 맞는 말이다. 사람마다 여행하는 목적과 이유가 다를 수 있으니 어차피 여행의 정석이나 모범답안은 없을 터, 가장 좋은 여행은 자신에게 맞는 여행일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뭐든 내 마음대로 하면 되니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실수나 한계를 받아들이고 편하게 가다 보면 어느새 한 뼘 더 성장하게 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21일간 크루즈를 타고 지중해 투어를 한 덕분에 편안하게 장기간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장기 첫 해외여행이라면 크루즈를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한다. 저자는 여행 기간 중 크루즈를 타고 지중해를 한 바퀴 돌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항에서 출발해 되돌아 이탈리아 시칠리아까지 왔다. 유럽 여행의 대부분 지중해 연안 도시를 돌았다는 이야기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더 절실하게 느끼는 가장 큰 수확은 '바다'가 도시를 발전시키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굳이 대항해 시대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잘 아는 지중해는 그리스·로마를 탄생시킨 주 무대다. 이곳이 유럽 문명의 오늘을 만든, 가장 발전된 문화를 가진 서양의 자부심이다. 조금만 세부적으로 돌아가면 그리스는 도시국가라는 도시별로 작은 국가를 이루면서 시작됐다.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고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한 것으로 문화사는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가 한참 전성기일 때 이웃 이탈리아에도 식민지 도시 건설을 확대했다.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이 그리스 문화 영향권 안에 있었다. 로마가 제국으로 확대하기까지에도 가장 큰 힘은 지중해에서 출발한다.

저자가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배에서 내리듯 언젠가는 이 지구별에서 내릴 것이라는 단상을 남겼다. 상당히 인상적인 말을 남겨 잠깐 인용한다. "황금보다 비싼 지금으로 현재를 살며 '현존'하기, 그리고 시간은 개념일 뿐 어차피 없다라고 보며 '항상 여기'를 살다 가려 한다.(p.253) 저자는 여행 중간쯤 지치고 힘들 무렵 삼시세끼 먹여주고 재워주는 크루즈에 몸을 싣고 편안하게 기항지 투어를 해보라고 슬며시 제안한다. 힘도 비축하고 세계 각국의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는 장점도 제시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아 지루할 새가 없다는 것도 한몫 하는 것 같다. 크루즈 비용은 객실에 따라 가격대가 다양하니 잘 고르면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지중해의 경우 크루즈가 아니면 다니기 힘든 섬들이 많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5개월 반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나홀로 세계여행'을 한 셈이다. 저자는 다닌 여행지를 중심으로 이 책에서 사진과 글로 소개한다. 물론 세계 여행 특히 유럽 여행을 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크루즈 여행을 포함한 이 책의 내용을 지중해를 포함한 유럽의 여러 국가와 쌀국수로 대표되는 베트남, 타이 등 동남아시아 국가를 마지막으로 '대장정'을 마친다. 그간의 기록을 6개 파트로 나눠 이 책에 담았다. 각 파트에는 지역별, 도시별, 문화별, 특징적인 내용을 주로 기록했다. 6개 파트는 한 파트에 10여개 장(章)으로 나눠 제목과 함께 차례에 담았다. 각 장의 제목만 읽어도 독자들은 해당 지역과 도시 특징 등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이 책을 더욱 재밌게 읽는 방법은 아마 자신의 경험과 비교해가며 읽는 것이다. 만일 저자의 여행 경로와 겹치지 않는다면 TV나 책, 신문 등에서 얻은 지식과 비교해보는 것도 즐거움을 더하는 방법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수많은 사진은 오히려 글맛을 축소시키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좋은 사진만 골라 실은 것으로 보여 나쁘지는 않다. PART1 〈보다 멀리 북아프리카로〉, PART2 〈매력적인 남동유럽〉, PART3 〈추억의 프랑스, 이베리아반도〉, PART4 〈크루즈 타고 지중해 한 바퀴〉, PART5 〈신비하고 애틋한 모로코〉, PART6 〈쌀국수와 가족 상봉〉 등으로 니뉘어 있다.

독자는 유럽 지역에 위치한 〈조지아〉란 나라에 관심이 갔다. 최근에 본 TV 세계여행 프로그램에서 조지아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1990년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 중 하나로 유럽 대륙과 아시아 경계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러시아명인 〈그루지야〉로 불렸었다. 인구 약 400만 명의 작은 나라지만 기록에는 구약성경에도 언급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나라다. "물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속담이다. '김치' 하면 우리나라이듯이, 와인 하면 조지아라고 한단다. 수메르 점토판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니 지금으로부터 능히 5,000년 이상된 기록이다. 성경에서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은 지역이 아라라트 산 근처이고 아라라트산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로 알려지니 조지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일치한다.

 


 

조지아주에 많은 이야기가 쓰여 있지만 모두 소개하기에 어려워 국경을 맞댄 이웃 국가 아르메니아에서 글로 소개한 장(章)의 제목 몇 개만 예로 든다. 「성경에도 기록된 조지아 와인」, 「그을린 촛불 자국 가득한 교회」 「돈, 잘 쓰자」, 「절변과 유황온천을 갖춘 천연 요새」, 「편안함으로 맞이해준 아르메니아」, 「세반 호수에서 매운탕을 맛보다」, 「프랑스도 인정한 아르메니아 코냑」 등이다. 조지아에서의 저자가 좋은 와인 고르는 법에 대해 대답해준 말도 재밌다. "가장 좋은 와인은 내게 맞는 와인이고 가장 이쁜 여자는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죠." 예수님도 물론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했을 정도로, 와인은 인류가 만든 문명의 걸작품이 아닐까 싶다. 조지아인은 대부분 조지아 정교를 믿는다. 예수의 12사도 중 5명이 직접 조지아 땅에서 기독교를 포교했으며, 캅카스(영어명 코카서스) 지역에서는 아르메니아(301년)에 이어 두 번째로 326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했다. 이 나라에서는 종교가 국민들에게 단순한 신앙 그 이상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고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조지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교역지이자 교차로이다 보니 강대국에 에워싸인 각축장이었다. 기원전부터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몽골, 오스만튀르크까지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강국들에 차례로 지배당해왔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하면서 신앙을 중심으로 뭉쳤다. 근세 역사로 100년 넘게 러시아제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1918년 공화국을 수립했지만 불과 4년 만에 1922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됐다. 그후 70년간 끈질기게 분투해 결국 1991년에 독립했다. 듣고 보니 한반도 못지않게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작은 나라가 '유럽의 보석'이라고 불리며 매년 800만 명이나 되는 여행객이 찾아드는 비결은 무엇일까를 저자는 생각해본다. 역사상 여러 강국에 지배당했으나 그들의 정체성을 고수해온 정신력과 그를 보듬어 온 문화유산일까 아닐까 싶다. 이웃 나라 아르메니아도 비슷한 역사적 수난을 함께했다. 아르메니아는 우리나라 세종대왕처럼 아르메니아 알파벳을 만든 '마슈토즈'란 사람이 유명한 분이라고 한다. 마테나다란 고문서 박물관이 있는데 '마슈토츠 고문서관'이라고도 불리운다고 저자는 설명해준다. 조지아와 마찬가지로 강대국들의 지해를 여러 차례 겪으며 1920년 세르브 조약에 의해 독립이 인정되었지만 다시 1936년 12월 구 소련을 구성하는 연방공화국의 하나가 되었다. 구 소련의 해체에 따라 1991년 독립한 나라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파트에 가면 "장기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편안한 내 집과 따뜻한 가족이 그리워지게 마련"이라고 언급한다. 저자는 마지막 여정인 베트남에서 가족과 상봉해 2주간 베트남 곳곳을 함께 여행했다. 타국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덕분에 나만의 여행이 아닌 가족과 함께 마지막을 꽉 채운 따뜻한 여행이 되었다고도 말한다. 어쩌면 저자의 여행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란 예감이 든다. 알차고 비교적 수월하게(?) 마친 해외여행에서 그의 무모한 여행은 계속될 것이란 느낌을 받는다. 그가 책의 뒷 부분에 남긴 「감사의 글」에서 그 느낌이 더욱 강해진다.

 

'인생은 그냥 봄(Seeing)이다.

그래서 나는 이 봄, 저 봄 다 좋아한다.

지구별로 여행 온 우리 모두는 그렇게

일상이든 낯선 공간이든

그 속에서 해마다 봄을 맞이하며,

날마다 봄으로써 성장해간다.(p.350)

 

저자 : 김별

 

어렸을 적부터 꿈이 세계일주였다.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이제는 허락된 내 시간이 되어 떠났다. 철저한 준비와 촘촘한 계획 없이 일단 떠나온 나 홀로 여행이었지만, 늘 예상 밖의 즐거움과 발견의 기쁨을 얻었다. 기대 없는 곳에 더 큰 놀라움이 있다는 것처럼 그러한 경험들이 더욱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5개월 반 동안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18개국 48개 도시를 뚜벅이 걸음으로 채우며, 떠나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었던 내 인생 2막 모험 여행을 두루 다채롭게 했다. 느긋하게 무심한 듯 바라보는 이국의 풍경들과 낯선 길 위에서 다른 세상을 만나고 또 다른 나를 만났다. 1963년에 태어났다. 1985년 경북대학교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5년간 프랑스 툴루즈 대학에서 공부하며 석사학위(DEA)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마쳤다. 2020년에 30년간 몸담았던 교직에서 명예퇴직한 후 하고 싶은 일하며 세상 구경을 다니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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