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류 알파세대 - 이 시대 기업의 미래 트렌드를 좌우할 그들이 온다
노가영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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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알파벳의 첫 문자가 '알파(α)'다. 우리가 흔히 영어의 'A부터 Z까지'(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처음부터 끝까지)란 의미로 쓰일 때 첫 문자를 말한다. 그리스어 알파는 ‘으뜸’, ‘최상’이라는 의미로 자주 쓰여 왔다. 이 책 『새로운 인류 알파세대』에서 지칭하는 '알파세대'란 2010년 이후부터 2024년까지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포함한 말이다. 독자는 불과 15년 전쯤 알파걸(alpha girl)이란 말이 유행한 걸로 기억하고 있다. 당연히 새로운 세대의 소녀들이란 뜻을 포함해 당시의 알파(α)는 ‘으뜸’, ‘최상’이라는 의미에 더 비중을 두었다. 이에 따라 리더십과 뛰어난 학업성적, 활동성을 바탕으로 자신감과 성취욕이 넘치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 신조어였다. 알파걸이란 신조어는 2007년 아동·청소년 심리학자인 댄 킨들런(Dan Kindlon)이 펴낸 『알파걸: 신 미국소녀,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이해』라는 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댄 킨들런은 미국의 10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과거와는 다른 예비 엘리트 여성의 특징을 발견하고, 그런 특징을 갖춘 여학생들을 알파걸이라고 불렀다. 댄 킨들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알파걸들은 첫째, GPA 성적(4.0 만점)이 3.8 이상이고, 밴드·댄스·치어리딩·스포츠 등의 활동과 교내 신문·클럽 등에서 최소 한 곳 이상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또 공부 외의 활동에 1주일에 최소 10시간 이상 투여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주변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공부를 열심히 해 높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의지하는 편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미래에는 대학교육을 받은 후 좋은 직장에 다니고, 돈을 많이 벌고,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알파걸들은 그들의 할머니, 어머니 세대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운 덕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불평등을 겪지 않아도 되는 환경 속에서 자라고, 그들의 부모 역시 아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방법으로 딸들을 교육시킨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남자아이들과의 경쟁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건강하고, 긍정적이고 자신 있는 태도로 자신의 재능과 꿈을 키워나간다는 트렌드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 책 『새로운 인류 알파세대』에서 알파세대는 2010년대 초반에 호주의 미래학자이자 인구통계학자인 마크 매크린들이 처음으로 명명한 단어라고 저자 노가영은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25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의 25%에 달하게 되는 '포스트 Z세대'인 알파세대가 산업에 던지는 메시지를 면밀하게 분석했다. 저자는 이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해석하고 앞으로 그들이 주체가 될 사회를 어떻게 전망하고,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이 책에 담아 냈다. 알파세대는 IT기술과 SNS로 연결된 스크린에이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소비력을 지닌 '10포켓'의 골드키즈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 내가 세상의 중심인 만큼 타인의 취향 존중에 진심인 세대, 순간의 몰입과 전환이 가능한 휴먼 멀티모달, 왕성한 정보력을 지닌 업에이저···. 알파세대를 그저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하고 귀엽기만 한 아이들로 바라보기에는 집단으로 작용할 영향력과 파급력은 엄청나는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 세대와는 확연하게 다른 이 몬스터 세대를 제대로 파악해야 직장에서든 일상에서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책의 출간 취지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알파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파세대 부모의 대부분이 청소년기부터 IT기기를 능숙히 사용해온 밀레니얼세대라는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부모 밑에서 알파세대는 말을 배우고 글을 익히기 훨씬 전부터 스크린을 위아래 좌우로 넘기거나 클릭하는 법을 익혔다. 소셜미디어, IT디바이스와 한 몸인 알파세대는 그 어느 세대들보다 순식간에 트렌드의 시류에 편승한다. 양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해 이모, 고모, 삼촌, 외삼촌 등까지 8~10명의 친척과 지인들이 돈 지갑을 연다는 뜻의 신조어 ‘8포켓’, ‘10포켓’ 키즈로 불릴 정도의 경제적 영향력에 IT서비스까지 더해지며 그들은 자기중심적인 특징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질은 스스로가 콘텐츠가 될 수 있는 틱톡과 제페토 같은 소셜서비스를 만나 시너지가 난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알파세대는 타인의 시선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나의 호불호를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진심인 집단이다.

 

 

이 때문에 수동적으로 수집되는 데이터 외에도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온갖 TMI를 의식적으로 노출하며 라이프로깅 세계를 풍부하게 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라이프로깅은 개인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활발하게 산업적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특히 알파세대는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셀럽이라고 느낀다. 이에 따라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소신 있는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객체 대 객체가 모여 만드는 세련된 사회현상을 만들어낸다. 알파세대는 본인이 애정하는 셀럽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기성세대와는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 틱톡의 한 크리에이터가 받은 선물을 피드에 올리자 그 선물을 보낸 알파세대 팬은 댓글에 “드디어 도착했구나~ 넘 기뽀 내가 다음에도 보내줄겡”이라고 쓰는 식이다. 말투가 분명 사랑스럽고 공손하지만 반말로 소통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스타가 아닌 주변의 편안한 친구로 인지한다.

또 알파세대 팔로워들은 응원봉이나 액세서리 등 스스로 굿즈 상품을 제작하여 스타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틱톡 채널은 팬덤이 이렇게 많은데 왜 굿즈가 없지? 없으면 내가 만들지 뭐” 이런 마인드하고 한다. 알파세대 특유의 ‘내가 해버린다’는 기질이 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만들어서 굳이 스타에게 전달이 안 되어도 상관없다. 내가 만들어서 그냥 디지털 세상인 자신의 피드에 올리면 되는 것이다. ‘나의 스타는 보면 좋고 안 봐도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알파세대는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콘텐츠로 표현한다. 알파세대는 시간을 투자하여 굿즈를 만드는 내 노력과 정성 자체를 의미 있게 생각하며, 그 어떤 세대보다 과정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세대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프로세스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러한 알파세대의 특징은 단 한 명도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고 살아가는 취향 팬덤을 형성한다고 규정지어지기도 한다. 알파세대 크리에이터들은 ‘승자독식제’ 식의 스타가 모든 걸 차지하는 '빈익빈 부익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있다는 특징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매일 10번 이상 접속하는 유튜브,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나만의 디지털 언어로 피드를 생산하는 모두가 크리에이터이다. 나노 단위로 쪼개질 일상 크리에이터들이 산업에서 더욱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것이고 그 중심에 알파세대가 있다는 말은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기에 충분한 바탕이 된다. 알파세대는 사회라는 개념보다는 수천수만 개로 쪼개질 커뮤니티의 시대에서 살아가게 된다. 게다가 그 커뮤니티는 디지털 기반이기에 알파세대가 커뮤니티를 접하고 활용할 기회는 넘치게 열릴 것이다.

이로써 지금보다 세밀하게 쪼개질 세상에서 알파세대는 수십여 개의 커뮤니티에서 놀고 공부하고 일하고 취향을 공유하고 때론 경쟁하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며 미래를 설계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러한 커뮤니티를 끌어가는 사람을 소위 ‘커뮤니티 리더’라고 하는데,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커뮤니티 리더로 활동한 경험과 역량을 갖춘 개인을 그 어떤 인재보다 높이 평가하며 서로 모셔가려 할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한다. 최근의 시장 흐름을 보면 공통의 취향과 관심사에서 출발한 커뮤니티가 대형화되면서 스타트업이 되고 빅머니로 연결된다. 고작 ‘재미와 취향’ 따위에서 출발한 커뮤니티가 바야흐로 산업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오늘날의 알파세대는 ‘동네 친구’라는 개념이 약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유치원 때 친구가 초등학교 친구로, 또 중고등학교 친구까지로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특히 사립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집 코앞까지 오는 셔틀버스 때문에 동네라는 로컬성이 끈끈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 친구는 오히려 요일별로 나뉜다.

 


 

새대차를 인정하는 중년이라도 이런 특징들은 다른 세대가 아니라 '딴 세계'에 사는 사람인 것처럼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친구와 술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은 이제 고어사전에서나 찾아볼 것 같다. 책에 따르면 알파세대는 월요일은 태권도 친구, 화요일은 수학학원 친구, 수요일은 영어학원 친구로 부르고 베프보다는 ‘찐친’, ‘찐친케미’라는 표현이 일반적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SNS 다이렉트 메시지로 “오늘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묻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매일 다른 학원을 오가며 매번 다른 친구를 만나야 하는 알파세대 초등학생들의 경우 이소룡 마라탕에서 마라탕을 먹고 아마스빈에서 버블티를 마시고 인생네컷을 찍으면 하루 2만 원 정도는 가뿐히 쓴다. 방과 후 학교 앞 문방구에서 쫀드기를 사먹고 뽑기를 하고, 그 옆 분식집에서 몇 백 원짜리 떡볶이를 먹던 시대가 아니다. X세대, 밀레니얼 그리고 Z세대까지 모든 세대는 저마다의 유년기 놀이를 가지고 있다. 알파세대의 놀이인 마라탕과 버블티에는 취향에 따라 골라 먹고 마시는 선택권과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뿌듯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콤비네이션의 과정에서는 호기심과 재미까지 만족시키는 것이다. 알파세대의 일관적인 특징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알파세대의 인생에는 과거 기성세대처럼 일 년에 많아야 고작 열댓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유튜브를 시청한 알파세대는 하루에 최소 1시간만 시청해도 산술적으로는 350개 이상의 쇼츠를 보는 셈이다. 이들은 초반 몇 초 안에 새로운 설정과 캐릭터에 몰입하고 빠져나오는 데 지독하게 훈련된 아이들이다. 건너뛰기와 배속의 시대에 최적화된 이들은 매번 상황극에서 빠르게 몰입하고 익숙한 재미를 느낀다.

 


 

저자는 알파세대가 즐겨하는 ‘멤놀’이라는 놀이를 예로 든다. ‘멤놀’은 ‘멤버놀이’의 줄임말인데 특정 연예인(대부분 아이돌 가수이다)의 성격, 말투, 습관 등을 똑같이 따라하는 역할 놀이극이다. ‘모버실’이라는 콘텐츠는 여기서 한술 더 뜬다. 한층 더 진화된 상황극이라는 뜻이다. 모버실은 ‘모든 버전 실시간’의 줄임말이다. 초등학생 사이에서 유행하는 알록달록 슬라임을 손으로 조몰락거리면서 딱 그 영상 안에서만 통용되는 상황을 설계하고 가상의 실시간 대화를 주고받는다. 슬라임 콘텐츠에 실시간 대화가 결합된 새로운 장르이다. 알파세대는 자기만의 설정을 쉽게 설계하고 쉽게 빠져 나온다. 스크린 터치 몇 번으로 나와 남이 설정한 콘텐츠 상황에 들어가고, 또 바로 적응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긴 팬데믹을 버텨오면서 또래 친구들을 대면하기 어려우니 이것저것의 콘텐츠 상황극으로 가상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는 탓으로도 해석된다.

『새로운 인류 알파세대』는 가장 최근의 담론으로 국내 상황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반영하여 알파세대를 탐구하고 분석한 책이다. 나아가 알파세대가 이끌어가고 있는 그리고 이끌어갈 변화를 짚어주고 대처방안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2025년 전 세계 인구의 25%를 차지할, 부모, 조부모뿐 아니라 고모, 이모, 삼촌들의 금전적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10포켓, 골드키즈로 불리는 세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소비력을 지닌 세대이다. 매우 어린 나이에 그 어떤 세대들도 갖지 못한 소셜 영향력과 소비력을 모두 갖춘 알파세대. 우리는 그들의 언어와 생활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제 알파세대와 빠르게 소통하는 기업과 브랜드만이 지속성을 갖고 미래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다. 이 책이 그 시작이 되길 바란다.이 책이 기업과 개인 모두의 위치에서 각자의 ‘넥스트’를 준비하기 위한 유연한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고 책 출간 취지를 밝힌다.

 


 

최근의 시장 흐름을 보면 공통의 취향과 관심사에서 출발한 커뮤니티가 대형화되면서 스타트업이 되고 빅머니로 연결된다. 고작 ‘재미와 취향’ 따위에서 출발한 커뮤니티가 바야흐로 산업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구조는 사람들이 모이더니 요밀조밀 콘텐츠들이 생산되고 이후 커머스 플랫폼으로 확장해가는 경우이다. 무신사, 오늘의집, 당근마켓 등이 대표적이다.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용자에게 금전 보상을 제공하는 커뮤니티도 늘어나고 있다. 소셜 세상에선 ‘좋아요’와 ‘트래픽’이 돈으로 연결되므로 이러한 (비공식) 커뮤니티 리더들을 꽉 붙들어둬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움직임이 이러하자 커뮤니티 구축 컨설팅을 제공하는 이른바 ‘커뮤니티를 빌딩해주는 커뮤니티’도 생겨날 정도이다.(p.306~307)

 

저자 : 노가영

 

콘텐츠미디어 산업 전문가, 작가, 알파세대 부모. 마크유튜버 ‘깔수’를 사랑하고 체스 선수인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육아는 회사 어린이집과 시터의 도움을 받았으며, 작가가 된 지금은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내는 중이다. 거창한 교육관은 없지만, 유연성과 관용을 최우선으로 한다. 5살 즈음 오른발, 왼발 서로 다른 컬러의 컨버스 스니커즈를 신고 외출하려는 아이를 내버려뒀으며, 10살까지 손등에 그림을 그리고 노는 버릇을 훈계하지 않았다. 혼자 노는 외동아이만의 노는 법일 테고, 이러한 어린 날의 자잘한 자유들이 모여 인간의 유연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결국, 유연성과 관용을 갖춘 아이들이 2030-2040 시대가 필요로 할 ‘융합형 미래인재’가 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AI융합서비스들과 공존하며 살아갈 첫 번째 인류, 알파세대를 IT미디어 전문가로서 분석하고 지금 알파세대와 소통해야 할 기업과 브랜드, 교육기관, 부모를 위해 《새로운 인류 알파세대》집필을 시작했다.

성균관대학교 경영학부에서 산업심리학을 전공하고, CJ엔터테인먼트(현, CJ ENM)와 CJ CGV에서 콘텐츠 투자·유통으로 미디어산업에 발을 내딛었다. 이후 20여 년간 KT, SK텔레콤에서 미디어 전략과 콘텐츠 투자를 하며 IPTV와 OTT 사업 전략 리더로 성장했다. 현재는 디지털콘텐츠와 글로벌 미디어산업에서 K콘텐츠를 분석하고 이를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강연, 유튜브, TV, 라디오 등 다양한 채널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2017년 《유튜브 온리》를 시작으로, 2019년부터 매해 출판되는 미디어 트렌드서 《콘텐츠가 전부다》 시리즈가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일상이 된 시대에 본인의 미디어콘텐츠 전문성이 IT산업은 물론이고 급변하는 고객 소비행태와 함께하는 모든 브랜드 및 서비스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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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史記 100문 100답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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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권 52만 6,500자의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왜 궁형을 자청했는가? 그는 왜 방대한 역사 저술의 전범을 세운 사성(史聖)으로 추앙되는 사성으로 불리우는가? 그의 생애와 『사기』를 문답 형식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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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史記 100문 100답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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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동양의 고전'이라 하면 『논어』, 『사기』, 『삼국지』가 아닌가 한다. 이 가운데 논어는 학문의 시작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사기는 역사의 전범(典範)으로서의 가치 때문에, 삼국지는 흥미로운 인물과 스토리의 매력 때문에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해본다. 독자는 논어는 여러 차례 읽었고, 삼국지도 분재된 축약본을 여러 번 읽었지만, 사기는 단 한 차례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마 어렵기도 하고 방대한 분량 때문에 깊이 연구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일 것 같다는 생각이다. 가끔씩 인용되는 사기로서는 전체를 들여다볼 수 없고 저자 사마천의 특이한 이력 때문에 자주 언급이 됐기 때문이다.

이 책 『사마천 사기 100문 100답』은 사마천과 『사기』 전문가인 역사학자 김영수가 좀 더 쉽게 사마천과 사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문답 형식으로 풀어쓴 사마천과 사기 해설서이다. 저자는 「100문 100답 사연」이란 제목의 〈서문〉을 통해 책의 내용을 압축해 설명한다. "사마천은 역사가이다. 중국 사람들은 그를 역사학의 성인이란 뜻의 '사성(史聖)'이라 부른다.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 서한이란 왕조에서 태어나 국가 기록 등을 담당하는 태사령(太史令)이란 벼슬에 있으면서 중국 역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역사서인 『사기』를 완성하고 기원전 90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56세 무렵에 세상을 떠났다. …(중략)… 이 정도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이제부터 우리는 바로 역사가 사마천과 그가 남긴 『사기』라는 역사책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보고 이 역사가와 역사서가 중국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사마천이 살았던 나라는 5,000년 중국 역사 속에서 명멸해간 80여 개 왕조들 중 가장 번영을 누렸던 한(漢)이었다. 역사서에는 대개 서한(西漢)이라 부른다. 이 왕조가 기원전 202년 유방에 의해 건국되어 200년 가까이 지속됐다가 기원후 8년 왕망에게 잠깐 망했다가 25년 유수가 다시 회복하여 220년까지 역시 약 200년 동안 유지됐다.

 


 

저자는 한(漢)은 그 이름에서부터 오늘날 중국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왕조라고 말한다. 중국의 글ㄹ자와 말을 한자(漢字)나 한어(漢語)로 일컫는 것을 비롯하여 중국 민족 스스로를 한족(漢族)으로 부르는 것만 보아도 넉넉히 알 수 있다고 언급한다. 한은 오늘날 중국을 있게 만든 가장 가장 중요한 왕조였고 또 그만큼 많은 것을 남겼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책 『사마천 사기 100문 100답』은 〈사기〉, 〈사마천〉, 〈한성시〉의 3부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분량은 6 : 2.5 : 1.5 정도가 된다. 3부의 각 이야기들은 저자의 입장에서 중복을 피하려고 애를 썼지만 불가피하게 재등장해 중복되는 부분이 있음을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의 '옥에 티'로서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그러나 꾸며낸 이야기나 강조하기 위해 억지로 첨언한 것이 아니기에 큰 탓을 할 필요는 없으리라. 특히 이 책의 출판과정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서문〉에 귀띔)을 들어보면 그럴 수 있는 일이란 생각도 든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모두 3부, 100장(章)로 이뤄져 있다. 각 장에는 질문과 답변이 있다. 물론 사기나 사마천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문답법으로 다루었다. 각 부의 정식 제목은 〈130권 52만 6,500자의 『사기』, 어떤 책일까?〉, 2부 〈사마천, 위대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역사가〉, 3부 〈사성(史聖)이 잠들어 있는 곳을 찾아〉로 돼 있다. 1,2부는 사마천의 일생과 사기의 내용, 사기를 쓴 이유 등 사마천과 사기의 모든 것을 증명된 사실을 중심으로 해석 설명했다. 3부는 사마천의 고향이자 사마천이 묻힌 유적지를 찾은 저자의 탐방기를 남겼다. 저자가 〈서문〉의 마지막 부분에 남긴 *뱀의 다리(蛇足)라고 덧붙인 변명 형식의 글에서 코로나 여파 등으로 원고가 또 늘어진 점과 앞으로 '백문백답' 시리즈는 『중국지최(中國之最)』, 『삼국지』로 이어진다고 밝혀 기대를 갖는다.

 


 

각 부에는 각각 서문이 따로 시작된다. 1부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기』는 5,000년 중국 역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역사서로 꼽는다. 3,000년이란 시간을 다루고 있는 통사이자 한반도 넓이의 약 15배에 해당하는 약 3000만제곱킬로미터의 공간을 섭렵하는 당시로서는 전무후무한 세계사다. 『사기』는 객관적 사실만을 기록한 기록물이 아니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관통하여, 일가의 말씀을 이룬* 아주 주관적인 역사서이다. 사실의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추구하려 한 역사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서이다. 『사기』는 또 사마천이 발로 쓴 현장 보고서이자 그의 극한 고통이 수반된 비극적인 저술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기』는 슬픈 책이다. 이제부터 『사기』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아본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련 대목으로부터 궁금증을 풀어간다. 아울러 『사기』가 후대에 미친 영향에 대한 내용도 함께 살펴본다. 『사기』의 매력과 정신세계를 좀 더 깊이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구천인지제(究天人之際) 통고금지변(通古今之變) 성일가지언(成一家之言) : 저자 주

먼저 서한의 동한의 명칭 문제를 놓고 교과서에서의 혼돈을 질문한다. 이에 저자가 답변을 하며 바로잡고 있다. "사실 이 교과서의 해당 부분을 확인하고 좀 놀랐고 실망도 했다. 중국에서의 공식 호칭은 서한과 동한이 맞다. 우리도 한때 전한, 후한 이렇게 부른 적이있었는데 일본의 영향이 크다. 반고 이후의 역사가로 범엽이 편잔한 『후한서』의 영향이기도 한데 『전한서』가 있으면 모를까, 그런데 『전한서』라는 책은 없다. 중국의 공식 호칭에 따라 서한과 동한으로 쓰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 장(章)에서는 역사서 기술방법에 따른 부분도 다룬다. 본기의 '기(記)/와 열전의 '전(傳)', 두 글자를 합쳐 기전체라 한다. 핵심으로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기전체라는 역사 서술 체제가 사마천에 의해 창안되어 『사기』의 서술 체제가 디었고, 그 뒤 2,000년 동안 중국 공식 역사서의 기본적인 서술 체제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말하자면 『사기』의 기전체 체제가 2,000년 동안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비엣남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비엣남=베트남)

 


 

'사기의 다섯 체제'에 대한 문제도 1부에서 다뤘다. 『사기』의 형식상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기』는 전체 130권에 52만 6,500자로 이루어져 있다. 12권으로 이루어진 본기는 제왕을 중심으로 그 업적과 각 방면의 주요 사건을 기록한 체제다. 그래서 흔히 제왕들의 기록이라고 하는데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제왕이 아니었던 항우와 유방의 아내인 여태후도 본기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후대 보수적인 학자들에게 심한 욕을 먹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서한의 경우 제왕의 범주는 〈고조본기〉부터 〈효무본기〉까지의 기록이고, 〈진시황본기〉 역시 그 범주에 든다. 하지만 진시황 이전 시대는 나라별로 되어 있다. 〈하본기〉부터 〈진본기〉까지가 그렇다. 그런데 첫 권인 〈오제본기〉는 또 다르다. 다섯 제왕을 한꺼번에 기록했는데 이는 남아 있는 기록의 양 때문으로 보인다. 항우, 진시황, 여 태후, 그리고 한나라 제왕들에 관한 기록이 상대적으로 많고 진시황 이전 시대는 제왕을 따로 떼어 기록할 만큼 양이 풍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표는 흔히 연표라고 설명하는데 이 역시 딱 들어맞는 설명은 아니다. 1년 단위로 하는 연표도 있지만 한 달을 단위로 한 상세한 표도 있고, 저 멀리 상고시대는 년으로 남은 기록도 없기 때문에 세대별이라는 더 큰 단위로 남겼다. 아무튼 이 표는 사마천의 천재성이 번득이는 체제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다른 곳에서 기록하지 못한 인물이나 역사 사실들을 이 표를 통해 보충하여 이를 함께 살피면 보다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인물과 사건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8권으로 된 서는 대개 문화와 제도로 소개하는데, 그정도로 알고 있으면 된다. 30권으로 이루어진 세가는 흔히 제후나 왕들에 관한 기록으로 설명하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역시 충분치 않다. 본기와 마찬가지로 제후나 왕이 아닌 인물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춘추시대 유가를 창시한 공자와, 중국 역사상 최초의 농민 봉기군 우두머리였던 진승(陳勝)이 이 세가에 들어가 있다. 또 한나라 이전 시대인 춘추전국시대는 인물이 아닌 나라별로 되어 있다. 끝으로 130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70권의 열전이다. 대부분 인물들의 기록이라는 점은 맞지만 소신을 가지고 살았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왕자, 귀족, 공신, 관리, 개혁가, 유세가, 군인, 점쟁이, 의사, 상인, 코미디언 등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사기』의 백미로 불린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조선열전〉이다. 권115이며, 고조선 명망사 기록이다.

 


 

『사기』는 역사적 정설만 기록한 게 아니다. 서술 체제를 달리해 인물 중심의 서술에는 춘추시대 한 여성의 남성 편력, 섹스 스캔들도 나와 있다. 〈진기세가〉에 등장하는 하희(夏姬)라는 여성을 거쳐 간 여러 남자들의 행태, 그리고 그것이 남긴 후유증 등이 서술돼 있어 흥미를 자극한다. 요즘 말하면 드라마 각본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이에 따르면 중국사 5,000년을 통틀어 600명 가까운 제왕들이 존재했다. 춘추시대 제후들까지 넣으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제왕 559명 중에서 제 명에 죽지 못한 자들이 무려 3분의 1에 가깝다는 통계도 있다. 이들 3분 1의 제왕들의 사망 원인을 따져보면 여성이 개입된 경우가 적지 않다. 제명에 못 죽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나라를 잃은 제왕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경국지색이란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망국의 책임은 정작 여성이 짊어졌다. 춘추시대 정나라 목공의 딸로 태어난 귀한 신분의 하희라는 여성은 여러 남자를 망친 것은 물론 여러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희대의 요부, 요즘 하는 말로 '팜므 파탈'이었다. 이 대목에서 조선의 '어우동'이 떠오르기도 하낟. 일차적 책임은 그녀에게 홀린 남자들에게 있겠지만, 그 과정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이 스캔들을 기록한 『사기』의 내용을 따라가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사건이 하희가 시집간 진나라의 내부 문제를 벗어나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함으로써 당시 국제 정세의 미묘한 변화를 이 추문의 과정을 추적하면서 확인하는 묘미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절면한 필치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하희의 스캔들은 워낙 떠들썩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여러 군데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대의명분을 중시하던 춘추시대 초기와 대의명분이 변질되기 시작하는 춘추 후기인 오·월 시대를 완전히 구별 짓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남자들이 하희를 농락한 것이 아니라 하희가 남자들을 농락한 희대의 사건이었고, 대의명분보다는 실리를 위해서는 앞뒤를 가리지 않은 오월동주 시대와 조금 멀리는 전국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전주곡과도 같은 기가 막힌 섹스 스캔들이었다. 간단하게 말해 하희는 적어도 '네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일곱 남자의 혼을 뺀' 여성이었다. 기록에 남은 여성 가운데 하희만큼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여성은 없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을 '사성(史聖)'이라고 표현하고, 한편으론 '위대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역사가'로 불리워진다. 저자가 만든 조어가 아니라 실제 그의 고향이나 중국에서 그렇게 추앙되고 있는 것이다. 사마천은 보통 사람이라면 겪지 않을, 겪을 수 없는, 겪지 않아도 될 고난을 겪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이 저청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남아 역사서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고 하고 싶은 말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는 시대가 부여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었고 그런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그가 당한 고난과 고통에 비추어본다면 그는 모든 책임을 면제 받을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숨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러기에 그의 고귀한 정신과 업적은 위대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55년을 살았다. 47세 이후의 후반 10년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 '지옥 속'에서 그는 값지고 소중한 유산을 인류에게 남겼다. 그 유산은 그의 피를 먹고 태어났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구에 회자되는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소신과 신념에 의한 죽음을 절실하게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싶다. 저자가 2부 〈사마천, 위대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역사가〉의 〈서문〉에 남긴 말이다. 이 말의 숨은 뜻은 『사기』의 가치보다 『사기』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죽음이나 어떠한 형벌도 감내하한 사마천의 위대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웬만한 사람은 사마천이 어떤 형벌을 받아 목숨을 보전했는지 알 것이다. 저자는 사마천이 걸었던 길, 즉 삶과 죽음 그리고 사색의 길을 주목하며 그의 정신세계를 더듬는다. 이 장(章)은 그렇게 쓰여진 것이다. 시작 부분만 독자들에게 전한다. 사마천이 한무제로부터 받은 형은 역적 두둔죄 '사형'이었다. 저자는 궁형을 자청한 장면으로 돌아가본다. 시간순으로 중요한 대목만 언급한다. 때는 기원전 99년. 사마천의 나이 47세였다. 그래 5월 부제는 한 해 전인 기원전 100년 대완 정벌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이광리에게 3만의 기병을 주어 흉노를 공격하게 했다. 결과는 3만 기병 대부분을 잃는 처참한 패배였다. 무제는 음식을 거부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답답했던 무제는 사마천에게 의견을 물었다. 사마천은 황제의 노기를 조금이나마 가라앉히려고 충정으로 '항복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벼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패장을 두둔하려 했던 것은 다소 의아하다. 흉노 정벌을 위해 후발로 보낸 공손오란 자가 이릉이 흉노에게 군사 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보고를 올렸다. 무제는 사형을 선고했고, 사마천은 궁형을 자청함으로써 사형을 면했다.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궁형왕법(宮刑枉法),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것은 법을 잘못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한마디로 ‘억울하다!’는 것이다. 이 패방(牌坊, 패루牌樓라고도 한다. 우리의 홍살문과 비슷하다)에 그런 뜻이 숨겨져 있었구나! 모두들 무릎을 치면서 감탄했고 내 속에선 그 무엇이 치밀어 올랐다. 사마천의 고향 마을로 가는 입구에 버티고 선 ‘법왕행궁’ 패방은 그렇게 내 마음을 쥐어뜯어 놓았다. 하지만 누가 정말로 사마천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세웠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이것이 사마천과는 전혀 상관없는 유지이고, 또 멋대로 글자의 의미를 왜곡한 것이라도 해도 사마천이 당한 궁형의 억울함을 너무나 절묘하게 대변하고 기가 막히게 표현해준 것이 아닌가! 사마천 고향 마을 곳곳에 이런 기막힌 사연들이 남아 있었고, 이 패방 또한 단 네 글자를 통해 사마천의 억울함을 함축적이면서도 비통하게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p.427)

 

저자 : 김영수

 

김영수(金瑛洙)는 지난 30여 년 동안 사마천(司馬遷)과 『사기(史記)』, 그리고 중국을 연구하고 25년 동안 중국 현장을 150차례 이상 탐방해 온 사마천과 『사기』에 관한 당대 최고의 전문가이다. 저자는 지금도 사마천과 중국의 역사와 그 현장을 지속적으로 답사하며 미진한 부분을 계속 보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와 역서로는 『완역 사기』 시리즈를 비롯하여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1 : 사마천, 삶이 역사가 되다』 『절대역사서 사기 -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2』가 있고, 최근에는 『리더의 망치』 『리더의 역사 공부 - 사마천, 우리에게 우리를 묻는다』 『리더와 인재, 제대로 감별해야 한다』 『사기, 정치와 권력을 말하다』 『사마천 다이어리북 366』 『인간의 길』 『백전백승 경쟁전략 백전기략』 『삼십육계』 『알고 쓰자 고사성어』 등을 펴냈다. 이 밖에 『오십에 읽는 사기』 『제왕의 사람들』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제자백가의 경제를 말하다』 『사마천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기를 읽다』 『1일 1구』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 『백양柏楊 중국사 1, 2, 3』 등이 있다. 영산 원불교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집필과 강연을 병행하고 있다.

allchina21@naver.com

페이스북 _ Young Soo Kim

유튜브 _ 김영수의 ‘좀 알자, 중국’

블로그 - ‘김영수의 사기세계’

밴드 _ ‘좀 알자, 중국’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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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보자기
도광환 지음 / 자연경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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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미술-보자기』는 그림 감상에 대한 글이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그림 감상법이다. 저자 도광환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그렇다고 도슨트나 미술 평론가도 아니다. 미술이나 그림과 관련 있는 공통점을 굳이 말하자면 사진기자다. 사진도 예술 사진을 찍는 작가로서의 사진 전공자가 아니라 보도 사진으로 25년을 현장을 누빈 기자다. 여기 있는 글들은 사진기자의 '미술 감상문'이다. 저자는 "사진과 미술은 ‘이미지’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다른 점도 뚜렷하다. 찍는 일과 그리는 일, 기계적인 수단과 수공예적인 수단, 완성 시간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수많은 보도사진을 찍으며 ‘사진의 문법‘에 익숙한 사진기자가 왜 미술 감상에 몰입하고 책으로 출간했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연합뉴스 사진기자인 저자는 미술에 관해 무지함을 넘어 무식한 사람이었다고 털어놓는다. 201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우연히 레오나르도의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관람한 뒤 미술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후로 틈만 나면 미술 관련 서적은 물론 미학, 문학, 철학 책들을 탐독하며 심미안을 키워 나갔다. 저자는 1년 6개월 전, 지인의 권유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술이야기를 썼다. 이틀에 한 건꼴로 썼다고 한다. 예상 외로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미술이야기’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 연재물을 다시 편집한 뒤 묶은 책이 이 책 『미술-보자기』다. 보자기는 ‘보는 일, 자신을, 기억하는 힘’이라는 뜻의 머릿글자로 만든 조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나'를 찾아가는 미술이야기를 마치 보자기를 풀듯이 하나하나씩 독자들의 눈앞에 펼친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바는 미술사나 작가들의 화풍, 에피소드 등이 아니다. 작품마다 그가 느낀 사람들의 모습과 살아가는 이야기, 작가와 시대의 고민 등을 자신의 사유로 걸러 풀어나간다. 제목처럼 보자기에서 뭔가를 하나하나 꺼내듯이 톡톡 던지는 이야기들이다. ‘나는 누구인가’부터 시작해, ‘나를 둘러싼 사람들’, ‘나를 만든 정신과 물질’, ‘나와 예술적 사유’라는 대제목 아래 ‘자화상’, ‘가족’, ‘친구 및 이웃’, ‘엄마’, ‘여성’, ‘신화’, ‘종교’, ‘역사’, ‘도시’, ‘자연’, ‘상상’, ‘표현’, ‘최초’ 등으로 작품을 분류해 다시 117개의 소항목에서 222편의 작품들을 펼쳐 놓는다.

독자도 최근 미술 관련 서적을 꽤 많이 읽어봤지만 미술 교양서적 중 이렇게 많은 작품을 제시했던 책은 드물다. 감상문은 짧지만, 강한 울림이 있다. 작품의 수가 전혀 소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저자가 쓴 글들의 방향과 작품들이 가리키는 종착지는 결국 ‘나’다. ‘나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약속, 나를 찾는 일’로 끝난다. 저자는 미술 평론가 이진숙이 언급한 “이야기는 힘이 세다”라는 짧은 문장을 강조하며, 미술 작품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물론 이야기의 목표는 ‘나를 찾는 일’이다. 저자는 서문 「책을 내면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평면에 그려진 그림과 조각의 입체미를 통해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으로 얽힌 세상과 인간을 알고, 그 속에 서린 차별을 지워나가면서 종국엔 ‘나’를 더 알고 싶다. 나는 내가 소중하게 간수하는 ‘예술의 힘’을 믿는다. 그건 ‘자유와 해방으로 향하는 출구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1장 〈‘나’는 누구인가〉, 2장 〈‘나’를 둘러싼 사람들〉, 3장 〈‘나’를 만든 정신과 물질〉, 4장 〈‘나’와 예술적 사유〉, 5장 〈다시, ‘나’ 는 누구인가〉이다. 각 장은 각각의 「들어가며」란 별도의 서문을 갖고 있다. 각 장의 성격에 대한 개요다. 대부분 저자의 그림 감상이나 제시한 언어에 대한 사유의 말들이다. 저자는 서문 「책을 내면서」에서 자신만의 미술관(觀)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더한다. "시각 예술인 미술은 고유의 매력이 있다. 문학이나 음악에서처럼 비유적인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선이 있고, 색이 있고, 표정이 있다. 보이는 것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다. 또는 전해지는 이야기를 상상해서 그리기도 하며, 변혁을 꿈꾸는 이미지를 창출하기도 한다. 보이는 것을 보는 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는 일, 그것이 미술이다."(p.7)

저자의 미술관을 알기 위해 긴 서문을 읽어본다. 이 서문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저자의 미술관이다. 저자는 미술 감상의 방법을 두 가지로 나눈다. '보고 느끼는 일'과 '보고 읽는 일'이다. 저자는 미술 에세이스트 최혜진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가 막연히 정론이라고 여기는 관점도 어떤 누군가의 주관일 뿐이다. 전문가들로부터 선택된 것이다. 객관적인 시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에 대조적인 일본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나카노 교코는 그림이 그려진 배경이나 뒷이야기,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 즐거워진다면서, '보기'보다 '읽기'를 주문한다고 저자는 설명해준다. 저자는 배우는 자세로 두 사람의 말에 동조한다. 둘 다 일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신화화나 역사화, 초상화의 경우는 그려진 인물들이 누군지, 왜 그림에서 그런 행동이나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알고 나면 이해의 폭과 재미가 배가되는 게 사실이다. 반면 인상주의 작품들이나 추상화 등 현대 미술은 각 개인마다 느끼는 감성이 중요하므로 굳이 정해진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저 바라보는 일'이 더 소중하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미술은 보는 일이다. 그리고 감동하는 일이다. 그로부터 바꾸는 일이다. 아무 지식도 없이 접한 그림이 마음을 떨리게 할 수도 있고, 처음엔 스쳐 지나갔던 조각품이지만, 여러 배경을 알고 나서 작품 앞으로 다시 다가서면 한없이 바라보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래서 항상 작품을 보는 '나'를 중시하려고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 책은 각 장의 각 항목별 제목이 대부분 짧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는 1~3음절의 단어가 대부분이다. 이를 테면 1장 〈‘나’는 누구인가〉는 두 개의 소제목으로 분류된다. '나'에 대한 고찰과 자화상, '응축된 나를 담는 일'이다. 이 가운데 '나'에 대한 고찰에서 다섯 개의 단어가 등장한다. 「죽음」, 「참회」, 「성찰」, 「고독」, 「환희」이다. 모든 단어들이 함축적이며 오래 생각해도 실체에 접근하기 힘들다. 우리 삶은 그렇게 어렵게 이루어져 있나 보다. 또 자화상 부분에서는 「자부심」, 「방황」, 「고통」, 「운명」, 「불안」, 「자랑」, 「혼돈」이 이어진다. 각 항목마다 그림이 등장하며 저자의 사유를 담은 그림의 해석도 있다.

 


 

「죽음」 항목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삶에 대한 탐구를 위해 화가들은 '죽음'에 대한 문제부터 고찰했다. 누구나 죽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존재에게 가장 평등한 대면은 죽음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지만, 나 자신과 작별해야 하는 시간은 반드시 온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영국의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가인 E M 포스터의 말을 인용한다. "죽음 자체는 사람을 파괴하지만, 죽음에 대한 관념은 사람을 구원한다."

르네상스 시기, 독일의 한스 홀바인이 그린 〈그리스도의 죽음〉(1521)은 죽음을 대표하는 시선이 이전과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죽은 예수의 거무튀튀한 얼굴빛과 손과 발, 눈을 뜨고 입을 벌린 표정, 흐트러진 머리, 가녀린 몸, 살짝 돌린 고개 등이 성스럽거나 신비하지 않다. 디테일한 표현이 주변의 이웃이나 이름도 모르는 어떤 이의 죽음을 그린 것 같다. 관 속에 누운 사람이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면서, 종교와 세상을 바라보는 줏대가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오래 바라보기 쉽지 않다.

 


 

「고독」에서 저자는 20세기 초중반 미국 최고의 작가, 에드워드 호퍼가 줄곧 관통한 주제도 '고독'이었음을 밝힌다. 폭발적인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 관게의 중요성은 커지고 얽히지만,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된다고 말한다. 그의 그림 〈모닝 선〉이 제시된다. 밝은 햇살이 비치는 어느 침실, 한 여인이 침대 위에 앉아 바깥을 보고 있다. 표정 탓인지, 실내외 정경 탓인지 무척 쓸쓸하다. 방은 환하지만 그림의 분위기는 어둡다. 호퍼의 다른 작품을 보면 대부분 이런 고독이나 공허의 애수가 묻어 있다. 호퍼는 그림에 대한 세인의 평가와 관련해, 자신은 딱히 고독의 주제를 의도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호퍼 내면에, 우리 내부에 이미 잠복해 있는 응어리진 고독에 대한 확인으로 이해된다고 한다. 7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호퍼의 그림에 공감하는 이유는 여전히 공허와 고독이 우리 삶에 가까이 때문일 것이라고 감상문을 적는다.

「불안」 역시 저자는 포착해 낸다. 고갱은 추운 겨울 한 가운데 서 있다. 쓸쓸한 나무들이 냉담함을 더한다.(〈안녕하세요, 고갱 씨〉) 고흐와 결별한 뒤에도 고갱의 삶은 갈팡질팡했다. 말년에 이르러서야 투정이나 강박을 벗어던진 듯, 서양미술사에서 명징한 철학적 사유가 담긴 작품으로 인정받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완성했다. 실패와 좌절이 반복되고, 가족도 내팽겨 친 삶을 이어갔지만 고갱이 끝내 인류의 유산을 남길 수 있었던 건 자신 내부에 내재한 예술혼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고갱의 예술혼을 읽어낸다. 뒤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섰던 '초심'의 발현이었다는 것이다. 사후에는 '종합주의'라고 불리는 새 지평을 열었다. 기존 인상주의의 '주관성'이 오히려 대상을 해체시킨다고 여겨, 인상주의가 소홀히 한 색채의 단편들을 '객관화'시켜 강한 윤곽선이 만든 면으로 '종합'했다. 고난 속에서 예술혼을 잃지 않는 대표적인 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3장 〈‘나’를 만든 정신과 물질〉에서 저자는 「들어가며」를 통해 '이야기'에 대해 말한다. "세상에는 무한한 이야기가 있다. 공동체마다 사람마다 시대마다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는 정신이고 물질이며 삶이다. 문학도, 철학도, 과학도, 미술도, 음악도 모두 이야기다. 이야기가 쌓여서 문화가 된다. 고고학적 유물부터 문자, 문학, 그림, 음악 등이 이야기를 전한다. 사람들은 항상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간단하고 짧은 글이지만 의미는 '삶은 이야기'라고 응축시킬 수 있다. 저자의 「들어가며」란 글은 네덜란드의 기이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그린 기이한 그림, 〈세속과 쾌락의 정원〉에 맞춤한다. 저자는 이 그림을 죽음에 대한 경고, 즉 '메멘토 모리'에 대한 '기독교적 설화'임과 동시에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 앞에서 죽어나가는 공동체 민중들의 모습을 극단적인 은유와 상징으로 그려낸 것으로 해석한다.

 


 

신화는 그 자체가 이야기고 인간의 모든 감정이 신화 속에서 되살아났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인류가 살아온 만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기 실린 222편의 그림들 중에는 매우 유명하고 잘 알려진 그림들이 많지만 독자로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림도 꽤 있다. 저자가 그림을 먼저 선정하고 거기에 대한 해석이나 이야기를 곁들인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 그리고 '삶'이라는 명제에 맞춰 그림을 선택했다는 점이 뚜렷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특히 엄숙하고 장중한 신화 속 이야기 중에 웃음을 짓거나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림이 있어 여기에 저자의 이야기를 옮긴다. 17세기 이탈리아 볼로냐의 화가 귀도 레니의 〈술 마시는 바쿠스〉다. 책에 따르면 그는 대부분의 작품을 신화와 성경 속에서 찾아 그렸다. 신과 성인들을 차분하게 그린 그였지만, 이 그림에서는 진지함이나 엄숙함보다는 장난스러움이 앞선다. 음주하는 표정, 자세, 배뇨, 신체 묘사가 옆에 놓인 술통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바쿠스는 인간 세멜라와 신 제우스 사이에 태어난 존재다. 알크메네와 제우스 사이에 태어난 헤라클레스처럼 정실부인, 헤라의 분노를 샀다. 세멜레는 헤라의 계략에 타 죽고 만다. 제우스는 아기를 요정들에게 맡겨 키운다. 바쿠스가 술의 신이 된 건 장성해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그림처럼 '아기 바쿠스'는 은유다. 술은 인간에게 구원 혹은 도피 같은 물질이다.

 


 

수많은 그림 중에 기대하지 않던 한국화가 등장해 독자의 눈길을 끈다. 박수근처럼 이미 대단한 인기(그림값으로) 있는 화가지만, 현대 화가는 미술학도나 미술 전공자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한다. 우리 미술 교육의 문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비전공자인 독자의 민족적, 국가적 마인드에 의한 것이란 비난을 감당할 수 없기에 주장하지는 못하지만 감상 표현은 쓰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정영주의 〈사리지는 풍경〉 연작 중 한 작품이다. 빈곤과 연민, 결핍과 음습이 먼저 떠오른다는 저자와 달리 독자에게는 아늑함과 아날로그적 훈훈한 느낌의 감성이 앞선다. '달동네 작가'로 불린다는 정영주는 최근 〈어나더 월드〉라는 전시회도 열었다는 데 독자는 금시초문이다. 또 독자는 판자촌이나 산동네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중년의 세대여서 그런지 이런 그림이 오히려 더 감성을 자극한다. 직접 살지는 않았더라도 감성적으로 같은 시대를 살았단 이유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이라. 저자는 그림에서나마 주민들의 지친, 하지만 가족으로 향하는 경쾌한 귀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독자에게는 이 시절 골목길은 추억이고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이다. '가난했지만 행복한 시절'이라는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이 책에 실린 222편의 그림에 대해 다 설명할 수 없어 독자의 눈에 띈 몇 작품만 대상으로 서평을 썼다. 독자들의 양해 바라고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저자 : 도광환

 

1993년 연합통신(현재 연합뉴스) 사진기자로 입사해 약 25년 동안 수많은 현장에서 보도사진을 찍었다. 미술에 별 관심이 없었으나, 2014년 10월, 출장지였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벽화, <최후의 만찬>을 본 뒤 ‘영혼의 떨림’에 가까운 감동을 얻었다. 이후 미술 서적은 물론 미학,문학, 역사, 철학, 음악 등의 책들을 꾸준히 탐독했다. 현장을 떠난 뒤로는 연합뉴스 사진부장, DB부장, DB출판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합뉴스 ‘글로벌 코리아 본부’ 산하 ‘K컬처기획팀장’을 맡고 있다. 팀에서 운영하는 문화 아카데미인 <여행자학교> 강좌를 기획함과 동시에 ‘보도사진과 서양미술’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도 하고 있다. 팀 내 영문 기반 한류 문화 사이트인 ‘K-ODYSSEY.com’도 관리한다. 또한 연합뉴스에서 [미술로 보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한 편씩 미술칼럼을 쓰고 있다. 이 책을 쓴 계기가 된 페이스 북을 통해 글쓰기도 활발하게 하는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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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러시아 로마노프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4
나카노 교코 지음, 이유라 옮김 / 한경arte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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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부르봉 왕가가 있다면 러시아에도 로마노프 왕가가 있다. 세계 역사에는 이렇듯 한 가문이 수백 년씩 나라를 통치한 왕조가 많다. 중국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도 그렇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를 빼고는 대략 300년을 넘기지 못했다. 합스부르크 왕가만 650년을 지속했지만 서유럽 여러나라와 교황을 포함해서 자리가 많았기에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독자의 생각이다. 물론 가문의 유지하는 특별한 비결이나 특별한 인물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프랑스 부르봉 왕가가 앙리 4세, 루이 13세, 루이 14세로 이어지며 프랑스 왕정의 황금시대를 이뤘다. 러시아도 16113년 미하일 표도로비치 로마노프가 새로운 왕으로 선출됨으로써 로마노프 왕조의 통치가 시작됐고, 표트르 1세가 1721년 전 러시아의 황제(임페라토르)로 추대됨으로써 러시아 제국이 탄생됐다. 특히 예카테리나 2세 시기에는 서구화가 진척되어 러시아 사회는 더욱 개화되었고, 적극적인 해외 확장 정책으로 북아메리카 대륙까지 진출했다. 러시아 제국의 황금기였다.

이런 주변국의 왕조의 변천사는 이 책 『명화로 읽는 러시아 로마노프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명화를 통해 유럽 왕조의 역사를 소개하는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 네 번째 출간됐다.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명화로 읽는 부르봉 역사』,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의 후속작으로, 비극적 결말로도 널리 알려진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흥망성쇠를 명화와 함께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저자 나카노 교코는 이 책에서 로마노프가를 대표하는 인물이 그려진 명화를 선정해 소개하고, 명화 속 인물에 얽힌 사건과 시대 배경을 알려준다. 그리고 로마노프가 계보도와 연표를 함께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우며, 러시아사를 어려워하는 독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재미있고 친근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책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합스부르크, 부르봉, 로마노프만큼 세계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유럽 왕조는 없다.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유럽 역사의 실타래는 때로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때로는 나폴레옹을 매듭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때 로마노프가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해냈는지는 아쉽게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나폴레옹의 실각 뒤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가 있었으며, 예카테리나 대제는 루이 16세를 돕기 위해 오스트리아, 스웨덴, 에스파냐 등과 함께 반혁명파를 뒤에서 은밀히 지원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역사와 함께 명화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또한 합스부르크나 부르봉과는 상당히 다른 특유의 비밀스런 분위기를 가진 로마노프 왕조사에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원류가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스위스의 호족이었던 것처럼, 로마노프 가문의 시조도 사실 러시아 태생이 아니다. 14세기 초 프로이센 땅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독일 귀족 코빌라 가문이 아들 대에서 코시킨 가문으로 성을 바꾸고, 그 5대손인 로만 유리예비치가 자신의 이름 ‘로만’을 바탕 삼아 로마노프 가문으로 다시 변경한 것이 그 시초라고 저자는 말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로마노프 왕조의 첫 차르는 미하일 로마노프다. 그는 열일곱 번째 생일 전날인 1613년 7월 11일, 마지못해 왕좌에 앉았다. 자신이 왜 선택됐는지 알고 있었고 앞으로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 역시 절실히 느끼며 치른 대관식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시조 루돌프 1세가 55세에 신성로마 황제로 선택됐을 때와 매우 유사한 상황이었다.

 

 

저자는 루돌프와 미하일은 배후의 실세들에게 어차피 무능한 인간이고 꼭두각시 삼기에 적절하니 적당히 쓰다 버리면 된다며 업신여김을 당하면서도, 엄청난 끈기와 저력을 발휘하며 운명이 선사한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미하일은 왕위에 오른 뒤 러시아정교회와의 제정일치로 전제정치의 유지 및 강화를 꾀했으며, 그의 치세 32년 동안 농노제와 신분제가 승인되어 중앙집권이 강화됐다. 명실상부 근대국가로서의 초석을 다진 미하일 로마노프 이후 국민들은 로마노프가를 완전히 받아들여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로마노프 왕조가 러시아를 통치했다.

샤를 폰 슈토이벤의 〈표트르 대제의 소년 시절 일화〉(p.46)는 1682년 총병대가 일으킨 반란에서 살아남은 표트르 대제 모자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폭동의 한가운데서 죽음의 문턱에 선 여성과 소년. 왼쪽에는 호위병의 시체, 멀리 뒤쪽으로는 창과 검을 맞대며 싸우는 남자들이 보이며, 코앞에는 침입자가 다가오고 있다. 한편 여성의 의복을 통해 그녀가 고귀한 신분임을 알 수 있다. 흰색 바탕에 검은 점무늬가 있는 최고급 북방족제비의 겨울털 모피로 만든 가운, 반짝이는 황금빛의 왕관과 장식 띠를 걸친 그녀의 이름은 나탈리야 나리시키나로, 선대 차르인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의 후처다. 그녀는 아들 표트르를 필사적으로 감싸며 폭도를 쏘아보면서 벽에 걸린 이콘(성화 상)의 성모마리아와 어린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마치 계속해서 난동을 부린다면 신벌이 내릴 것이라고 질책하는 듯하다.

그림 속 주인공인 훗날의 표트르 1세(p.59,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에서 ‘대제(大帝)’로 불리는 단 두 명 중 한 명으로, 절대주의 왕정을 확립하고 서구화 정책과 함께 영토 확장 전쟁으로 러시아의 근대화를 가속화시켰다. 나머지 한 명은 예카테리나 2세(예카테리나 대제)로, 그녀는 독일 혈통이었으나 러시아인보다 더 러시아인 같다는 말을 들으며 법치주의 원칙을 도입하고 러시아를 유럽의 정치 무대에 완전히 편입시켰다.

 


 

그러나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로마노프 왕조도 니콜라이 2세 때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었다. 국민들의 전쟁에 대한 염증은 로마노프를 향한 증오로 바뀌었다. 그런 가운데 라스푸틴이 암살되고 혁명이 발발했으며, 노동자와 농민, 병사로 이루어진 평의회인 소비에트 임시집행위원회가 수립됐다. 이들은 니콜라이 2세에게 퇴위를 요구했는데, 왕권신수설을 믿고 로마노프의 빛나는 가계를 자랑하며 항상 상대방이 꿇어 엎드리는 데 익숙했던 황제가 자신의 얼굴을 마주 보고 직접 퇴위를 요구받는 치욕을 겪게 된 것이다. 이로써 로마노프 왕조 304년의 역사는 완전한 종언을 맞이했다.

저자 나카노 교코는 이렇게 17세기 미하일 로마노프부터 20세기 니콜라이 2세까지 명화와 함께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역사를 소개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역사 지식과 명화 속 숨은 정보를 알고 그림을 보면 자연스레 역사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이다.

특유의 명화 소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나카노 교코는 독특한 명화 감상법과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관점 및 유려한 스토리텔링으로 수많은 팬을 사로잡고 있다. 명화 속 배경의 역사적 사실, 화가의 개인사, 그림 속 인물과 얽힌 이야기 등 역사, 문화, 예술에 대한 저자의 폭넓은 배경지식은 일반 교양 독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특히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는 역사와 미술을 알기 쉽게 동시에 배운다는 매력적인 콘셉트로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나카노 교코의 현장감이 돋보이는 묘사는 소설의 한 장면 혹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한순간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어, 읽는 재미를 한층 더 부여한다. 그동안 역사와 미술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가가기 주저했더라도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유럽사의 흐름을 익히고, 미술에 대해 가져 왔던 선입견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러시아 역사는 친숙하지 않다. 유럽은 러시아를 아시아로 본 반면, 아시아는 러시아를 유럽으로 보았기 때문에 서로를 낯설게 생각했던 탓이 컸다. 우리에겐 지정학적으로 이웃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로마노프 왕조도 여느 왕조와 마찬가지로 투쟁과 반목이 있으며, 국가의 발전을 위해 고뇌하는 군주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다만 러시아 특유의 잔혹한 면도 볼 수 있는데 남동생이 누나를, 남편이 아내를 유폐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이룩한 피의 역사를 가감 없이 보여줘 더욱 궁금증을 자극한다. 또한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러시아의 명화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익하다.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러시아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미지의 나라가 아닌, 더 알고 싶은 나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은 모두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바실리 수리코프,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 2장 「샤를 폰 슈토이벤, 〈표트르 대제의 소년 시절 일화〉」, 3장 「니콜라이 게, 〈알렉세이 황태자를 심문하는 표트르 대제〉」, 4장 「샤를 앙드레 반 루, 〈엘리자베타 여제〉」, 5장 「콘스탄틴 플라비츠키, 〈타라카노바 황녀〉」, 6장 「비길리우스 에릭센, 〈예카테리나 2세의 초상〉」, 7장 「니콜라 투생 샤를레, 〈러시아에서의 철수〉」, 8장 「조지 다웨, 〈알렉산드르 1세〉」, 9장 「일리야 레핀,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 10장 「야마시타 린, 〈그리스도의 부활〉」, 11장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황제 니콜라이 2세〉」, 12장 「옐레나 클로카체바, 〈라스푸틴〉」 등이다. 대부분 왕과 왕의 가족, 재위시절 사건 등을 당시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이다. 러시아가 유럽 문화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때도 로마노프 왕조 때다.

 


 

독자는 이 가운데 러시아 역사를 세계적인 문명권으로 바꿔놓은 로마노프 왕가 두 사람의 치적을 중심으로 책을 통해 알아본다. 우선 표트르 대제다. 그는 서구를 모델로 한 개혁 정책에 박차를 가해 러시아의 근대화를 가속화했다. 그의 개혁은 국력 강화와 서구 문화 전파를 지향했으며, 동시에 절대주의 체제 확립에 초점이 맞춰졌다. 개혁 과정에서 러시아 사회 전반의 후진성이 개선되었으며, 귀족 계층을 중심으로 점차 새로운 가치 체계, 세계 인식, 미적 개념이 조성되었다. 또한 지속적인 군비 증강을 통해 오스만 제국,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영토를 확장했다. 1721년 10월 북방 전쟁의 승리 후 원로원에 의해 전 러시아 황제로 추대됨으로써 러시아 제국의 시대를 열었다.

'잔혹한 군주', "우리는 러시아인이 아니라 표트르인이라고 해야 한다" 등 대제로 추앙받은 그는 앞서 언급한 대로 어린 시절 쓰라린 기억도 있고 모스크바를 증오했다고 한다. 그는 대제로 추대된 후 바다를 향해 열려 있고 '유럽으로 난 창'의 역할을 담당할 제 2의 모스크바를 구상했다. 그가 후보지로 올린 곳은 핀란드어로 '습지'란 뜻을 가지고 있는 네바였다. 이곳은 네바강 하구의 삼각주, 습지대로서 발트해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대제로서 그의 힘은 새로운 수도 건설에 장애를 모두 걷어치울 정도로 막강했다. 모두가 불가하다는 도시 건설을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갔다. 유럽풍의 자유로운 도시, 낡은 러시아를 뿌리째 갈아엎은 도시, 절대군주의 위엄을 보일 수 있는 아름다운 궁전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가 탄생한 것이다. 건설 10년 세월에 걸쳐 무수한 사상자와 화재, 사건·사고 피해를 내고 마침내 완성됐다. 이 아름다운 물의 도시는 '북쪽의 베네치아'라 불리우며 2017년 러시아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기 전까지 수도의 역할을 수행했다. 상트는 '성(聖)', 페테르는 '사도 베드로', 부르크는 독일어로 '성벽 도시'를 말한다. '성 베드로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러시아의 마지막 여왕이다. 덴마크의 궁정화가 에릭센이 그린 예카테리나 2세의 초상화(p.121)를 살펴보자. 상당히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는 구도인데도 사실적인 필치 덕분에 여제의 키가 작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러시아 화가가 그린 예카테리나의 초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훗날 프랑스혁명을 피해 온 유럽을 전전하던 비제 르브룅(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로 잘 알려진 인기 여성 화가)은 페테르부르크에서 초빙해 예카테리나를 알현하게 되는데, 그때 예카테리나 2세의 첫인상을 이렇게 솔직하게 기록했다. "여제의 키가 너무 작아서 놀랐다." 예카테리나가 가진 거대 권력에 비해 그 소유자의 몸집이 너무 작아서 의외였던 것. 당시 고귀한 미녀라면 키가 어느 정도 이상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자는 드라마 〈예카테리나 대제〉를 본 적이 있는데 배우(마리나 알렉산드로바)가 정말 예뻐서 예카테리나 대제가 얼굴도 미녀였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초상화를 보고 그의 외모를 본 모습을 사람의 표현을 보니 환상이 깨졌다. 독자는 사실 합스부르크 엘리자베트 황후(『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표지 인물)를 오버랩하고 있었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로마노프 왕가가 배출한 여왕으로서 러시아를 세계의 패권국으로 올려놓았다. 드라마 〈예카테리나〉에서 마리나 알렉산드로바. <사진출처 : 드라마 제작사 스틸컷>

 

예카테리나 재위는 1763년부터 1796년까지 34년에 달한다. 장기집권이다. 튀르키예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영토는 확장됐고(소련시대와 거의 비슷하다), 유럽 선진국에도 존재감을 드러내게 되어 이 위대한 여제는 혁혁한 영광과 넘치는 보물에 둘러싸였다. 그러다 재위 후반이 되자, 러시아처럼 거대한 나라를 통솔하려면 강권적 군주제가 가장 적합하다고 대놓고 단언하기에 이른다. 계몽이니 자유니 하는 것들이 나라를 약하게 만든다는 그녀의 신념은 두 나라의 운명을 속속들이 살펴본 경험에 근거했을 것이다. 우선 이웃나라 폴란드가 있다. 이 비옥한 나라의 귀족들은 강력한 왕의 출현을 막기 위해 자기들끼리 권력 다툼을 하다 다른 나라에 병합되고 말았다. 또 다른 한 나라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 사후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며 절대왕권은커녕 공화정으로 가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재위기간 러시아 황제로서의 시각으로 사건들을 직접 보고 겪으며 위기감을 느꼈을 것으로 충분히 추정된다. 이 시대 왕족이 일체감을 느끼는 상대는 자국의 평민보다 오히려 타국의 왕족 쪽이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폭동의 한가운데, 죽음의 문턱에 선 여성과 소년. 왼쪽에는 호위병의 시체, 멀리 뒤쪽으로는 창과 검을 맞대며 싸우는 남자들, 코앞에 다가온 침입자……. 두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성의 의복이 고귀한 신분임을 알려준다. 흰색 바탕에 검은 점무늬가 있는 최고급 북방족제비의 겨울털 모피로 만든 가운, 왕관과 장식 띠는 반짝이는 황금빛. 그녀의 이름은 나탈리야 나리시키나. 선대 차르인 고(故)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의 후처다. 아들 표트르를 필사적으로 감싸며(하지만 이 10세 소년은 의연하게 공포에 맞서고 있다), 폭도를 쏘아보면서 벽에 걸린 이콘(성화 상)의 성모마리아와 어린 예수를 가리킨다. 그 눈은 계속해서 난동을 부린다면 신벌이 내릴 것이라고 질책하는 듯하다.(p.48)

- 「제2장 샤를 폰 슈토이벤, 〈표트르 대제의 소년 시절 일화〉」 중에서

 

저자 : 나카노 교코(なかの きょうこ, 中野 京子)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교에서 독일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와세다대학교에서 독일 문학과 서양 문화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독문학자이자 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무서운 그림》 시리즈, 《나카노 교코와 읽는 명화의 수수께끼》, 《명화와 함께 읽는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 《다리를 둘러싼 이야기》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등을 옮겼다. 월간 〈분게이슌주〉에 ‘나카노 교코의 명화가 말하는 서양사’를 연재했다.

국내에 출간된 저서로는 《무서운 그림》 시리즈, 《명화의 거짓말》 시리즈, 《나카노 교코의 서양기담》, 《욕망의 명화》, 《운명의 그림》, 《처음 가는 루브르》, 《내 생애 마지막 그림》, 《오페라처럼 살다》, 《명화로 보는 남자의 패션》, 《미술관 옆 카페에서 읽는 인상주의》, 《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 《세계의 다리를 읽다》, 《잔혹한 왕과 가련한 왕비》,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 등이 있다.

 

역자 : 이유라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일본학과 의류학을 전공하고 일본 리츠메이칸대학교 문학부에서 공부했다. 단편소설로 등단한 뒤 집단지성번역플랫폼 플리토(Flitto)의 B2B팀에서 근무했으며,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바른번역 소속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 빛나지 않는 달처럼, 원작의 빛을 가장 잘 전달하는 번역가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옮긴 책으로 《나에게 읽어주는 책》, 《매일매일 좋은 날》, 《계절에 따라 산다》, 《기독교로 읽는 세계사》, 《모두를 위한 세계사 인물사전》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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