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그 화려한 역설 - 69개의 표지비밀과 상금 5000만원의 비밀풀기 프로젝트, 개정판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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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자본주의 사회가 피워낸 성의 범람 현상이 중심축이다. 저자가 시공을 넘나들며 왜 현대 문명의 역설적인 현상을 지적하고 있는지, 또 미래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거라고 우려하는지를 젊은 세대의 삶을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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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그 화려한 역설 - 69개의 표지비밀과 상금 5000만원의 비밀풀기 프로젝트, 개정판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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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문명, 그 화려한 역설』은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인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의 개정판이다. 소설 속 주인공 모제는 형사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여자친구 유리를 찾기 위해 온 도시를 뒤지고 다닌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유리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동시에 450년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있던 재미동포 흉악범 이카로스가 탈옥한다. 그를 쫒는 형사 모제는 떠난 여인 유리의 환상을 지우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모제의 일상이 드러나는 잠깐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지금 12시간씩 이 교대 잠복근무를 하다가 5시간으로 바뀌었다. 사흘 후부터는 10시간, 5일이 지난 지금은 12시간씩 근무 중이다. 현재의 근무체계도 일주일이 지나면 24시간으로 바뀌게 된다. 그 대신 잠복조는 조회나 석회에도 참석하지 않고 승용차로 출근한다. 식사도 불규칙한 근무체계와 비슷한 방법으로 해결한다. 근무교대를 해주는 류대도 지쳤지만, 나도 이제 한계가 왔다. 이쯤 되면 만사가 귀찮고 무엇을 해도 짜증만 난다. 그런데다 몸은 늘어지고 의식은 점점 더 몽롱해져 간다."(p.59)

이 책은 소설 작품이다. 목차에 보면 〈제1부〉 1파트 - 19파트, 〈제2부〉 20파트 - 50파트, 〈제3부〉 51파트 - 69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부'와 '파트'로 구별돼 있지만 3부 69장(章)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이 소설의 이력은 다소 의아하고 모호하기도 하다. 「작가의 말」을 통해 저자 최인이 이 책의 탄생에 대해 간략하게 써놓았는데 여느 소설과 조금은 다른 태생 기록을 갖고 있다.

 


 

저자는 이 소설을 구상할 당시 20년이나 30년 후의 이야기를 써 보자 생각하고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20~30년 후의 이야기답게 가볍고 스피디하고 파격적인 표현으로 일관했다고 밝힌다. 소설을 읽어 보면 성관계 묘사가 다소 파격적이긴 하다. 간겷한 단문을 사용해 독자의 호흡도 잘 살릴 수 있다. 또 파트에서 파트로 넘어갈 때도 거리낌없이 넘나들고 있어 시공간의 다른 느낌을 준다. 이 책은 한 신문사에서 주최한 「1억원 고료 국제문학상」 당선작이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으로 선정할 때 묘사뿐 아니라 빠르고 참신하고 재미있다는 점에 있었다고 저자는 기억한다. 그러나 당선작으로 뽑힌 이유인 가볍고 스피디하고 파격적인 전개가 출판의 장애물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선작으로 확정한 2002년 당시 출판사들은 당선 이유를 이유로 출간을 거절했다. 결국 20~30년 후를 내다보고 쓴 소설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저자가 출판 거절 이유로 답변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다른 이유가 있는데 출판사들이 적절한 변명으로 둘러댄 것인가? 아니면 성 관계를 지나치게 파격적으로 묘사해서인가? 저자도 적절한 답변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독자로서는 더욱 궁금하긴 하다. 독자의 생각으로 "혹시?" 하는 부분은 소설인데도 해석하기 어려운 철학적 저서, 성경, 동양 고전, 찰학 이론, 문학이론서 등을 인용해서인가?란 점이다. 이 책은 저자가 말한 대로 69개 파트 시작 부분에 제목만 읽어도 머리가 아플 만한 명저들을 파트 수만큼 인용했다. 마치 파트의 제목처럼 어김없이 인용문이 먼저 시작하고 소설 본문이 뒤따르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그렇다고 출판 거절 이유가 될까? 독자들이 외면할 것 같아서? 즉 잘 안 팔릴 것 같아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독자도 갖고 있다. 소설은 우리 삶이나 인간의 감정을 모두 형상화해 알기 쉽게 전해주는 문학 서술 방식인데 철학 이론의 한 부분을 먼저 인용하고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을 하듯이 본문을 이어놓는다면 독자들이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으리란 생각은 출판을 모르는 독자도 들긴 한다. 아무튼 태어나기 어려운 이력을 지닌 채 일정기간(공모전 당선작이니만큼 출판권이 주최 신문사에 있을 것)이 지나고 출판권을 저자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저자는 당선작보다 더 좋은 소설을 쓰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결론 짓고, 9편의 장편을 추가로 쓰기에 이르렀다고 회고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최근 새로 쓴 9편의 소설도 탈고가 완료되었고,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만 남았다.(독자가 알기로는 몇 편인가 발표되었다) 드디어 저자는 그동안 틈나는 대로 수백 회 이상 탈고하고 이 작품을 출판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이 소설을 20년 이상 끌어안고 씨름한 것은, 파격적인 표현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문장을 갈고 다듬는 괄골요독(刮骨療毒)*의 과정과, 좋은 글을 위해 육신과 영혼을 아낌없이 바치는 사생취예(捨生取藝)**의 정신으로 일관했다고 덧붙인다.

 

* 괄골요독(刮骨療毒) : 뼈를 깎는 고통을 안고 독소를 씻어내다.

** 사생취예(捨生取藝) : 삶을 기꺼이 바쳐 예술을 얻는다.(이상 독자 주)

 


 

이 소설은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이 있다. 〈비밀풀기〉 현상 공모다. 현상 공모 내역을 보면 쉽지 않은 비밀인 듯하다. 문제가 표지에 있다는 점 외에는 어떤 힌트도 주어지지 않았다. 현상금의 파격일 뿐만 아니라 출판계에도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독자로서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현상금은 무려 5,000만 원. 책 표지에 69개의 비밀이 있으며, 이것을 푸는 첫 번째 독자에게 5,000만 원의 상금을 지급한다는 것. 이 개정판뿐만 아니라 초판본 구매자도 자격이 주어진다. 해답은 10~50자 이내로 쓸 것을 주문하고, 긴 문장이 필요한 경우 글자 수를 초과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답 앞에는 반드시 일련번호(1에서 69까지)를 붙일 것을 특별 요청한 것으로 보아 이 책의 69편으로 이루어진 것에 다소의 힌트가 되지 않나 싶다. 다만 독자의 추정일 뿐이다. 이처럼 상금액이나 비밀풀기 공모가 파격적이긴 하지만 독자로서는 '특전'에 더 시선이 간다. "연인이나 커플, 부부가 도전할 경우 비밀 3개를 면제해 줍니다."

다른 대부분의 장의 서문처럼 들어가는 인용문(고딕처리)이 첫 장(파트)에는 인용하지 않고 저자의 지론을 써놓은 듯하다. 인용문이란 아무런 표식도 없기 때문이다. 소설 형식의 문체라기보다 논저나 사상서 같은 느낌이다.

"사회적 분열과 해체기의 인간들은 하나의 극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사랑 면에서는 쾌락이나 금욕을, 감정 면에서는 충동이나 절제를, 행동 면에서는 방종이나 겸손을, 생할 면에서는 파격이나 관례를, 이념 면에서는 극좌나 극우를, 그러나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행과 불행, 선과 악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은 가치관과 이념은 물론이고 진실과 진리까지도 표묘(??)*** 속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p.11)

 

*** 표묘(??) : 끝없이 넓거나 멀어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어렴풋함.(저자 주)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급진적인 현대문명과 왜곡된 자본주의에 대한 묵시록적 기록이란 출판사 측 소개글처럼 '문명의 역설'에 주목된다. 특히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서구사상과 서구문명이 다다른 막다른 골목을 냉정한 눈으로 지켜보며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 무거운 주제의식을 가벼우면서 재미있고 스피디하게 다루는 방법을 선택했다. 즉 적의 칼로 적을 제압하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의 전략이 엿보인다. 조금 어렵게 썼지만 서양 문명의 빛나는 발전 속의 그늘지고 어두운 문화를 지적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소설 속의 세계는 가볍고 경쾌하고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춤추고 노래하고 술 마시고 섹스하며, 사소한 것에 탐닉하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젊은 인물들이 소설을 끌고 간다. 이 책에 섹스가 자주 묘사되는 이유이다.

'모제'와 '집주'와 '이카로스'는 상징으로 가득 찬 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는 세 명의 인물이다. 또한 형사 모제(27세)는 풍요와 자유의 얼굴을 한 신세대 문화의 전형적인 수혜자이다. 그는 21세기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자유분방한 형사이다. 모제는 삶에 대한 집착도 목적도 없다. 순간을 즐기고 소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팝송, 패스트푸드, 양주, 자유로움, 바, 나이트클럽, 섹스 등이 모제를 나타낼 수 있는 기호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고 만다. 지난밤을 디나와 섹스로 지새웠다는 걸 밝힐 순 없다. 다미에게 나는 오빠이면서 아빠 같은 존재니까.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p.23)

 


 

새로운 세대의 형사답게 모제 주변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든 가리지 않고 섹스를 즐기는 새로이 등장한 새로운 세대이다. 여자친구 유리(24세), 편한 친구 파라(27세), 술집 호스티스 디나(22세), 마담 지바(37세), 친구 동생 마리(20세), 화교 나래(20세), 번역작가 미사(35세), 꽃집을 경영하는 피여나(24세), 가출 학생 다미(16세)가 그들이다. 그들 중 유리는 이 혼탁한 도시문명에서 발견하기 힘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여자이다. 그런 유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소설은 현재형 문장 특유의 빠른 속도감과 풍요한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기표들에 대한 산뜻한 묘사로 쉽게 읽히는 미덕을 지녔다. 작가는 이렇게 화려하고 산뜻한 포장지 속에 비수를 숨겨 놓았다. 그 비수는 작고 둔중하면서도 날카롭다. 서구사상사와 문명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창조해낸 인물과 사건들은 하나같이 상징적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진지하다. 그러나 전혀 무겁지 않다. 빠르게 읽히는 문체와 기발한 이야기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최인의 소설은 늘 그렇듯 흥미롭고 재미있고 반전의 묘미가 있다. 그리고 시대의 아픔과 상처와 모순을 지적하고 세련되게 아우른다. 달콤하고 세련된 문장을 선물상자 속에 포장한, 한마디로 경쾌한 신세대형 소설이다, 라는 평이 말해준다.

"허다한 전설에 있어서 동물과의 친교와 동물의 언어 이해는 낙원적 징후를 보여준다. 태초에, 즉 신화적 시대에는 사람은 동물과 평화스럽게 살았으며 동물의 언어를 이해했다. 성서에 나오는 인간타락의 전승에 비교될 원초적 파국이 오기 전까지 인간은 오늘날과 같은 삶, 즉 죽어야 하며 성적이고, 자신을 양육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며, 동물과 대적관계에 놓인 것 등과 같은 생활을 하지 않았다.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중에서(p.152)

 


 

독자 역시 저자의 의식 흐름을 따라가기 벅차다. 소설에 사용되는 용어뿐만 아니라 각종 세계적 명저에 대한 저자의 탐구나 열정에 미치지 못한 원인이 클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에 대한 주제가 확실한 소설이니만큼 읽어가는 데는 큰 문제를 겪지 않는다. 더욱이 독자로서는 저자의 전작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를 이미 읽고서 저자의 소설 형식에 낯설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신세대'란 용어는 쓰지 않지만, 신세대든 MZ세대든 이 소설에서는 상관없다. 시대의 청춘을 가리키는 용어는 계속 바뀌어도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여기 문명, 그 화려한 역설 속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겨보면 즉각 알게 될 것이다. 어느덧 각각의 인물들에게 몰입되어 자칫 ‘화려해 보이는’ 그들의 미래를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 모든 것이 역설적이고 불투명하고 모순적일지라도.

이번 개정판에서는 초판본의 본문, 표지 등 220개의 비밀을 69개로 대폭 줄여, 어렵게 느껴지던 비밀 풀기의 난이도를 낮췄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가벼움 속에 진지함과 깊이감을 숨기고 있는 이 소설은 결국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죽음과 무덤이 있는 곳에서만이 부활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펼친다면 이제 감탄하며 책장을 넘기는 일만 남았다. 지금까지의 소설 읽기와는 다소 다른 느낌의 소설 읽기를 시도한 작품이다.

 

저자 : 최인(崔仁鎬)

 

본명은 최인호다. 경기도 여주시 명성황후탄강구리에서 태어났다.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비어 있는 방」으로 등단했으며 2002년 『문명, 그 화려한 역설』로 1억 원 고료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2019년 12년간 ‘최인소설교실’을 운영했다. 인천지방경찰청에서 13년 근무했으며 파출소장과 형사반장을 역임하였다. 저서 『안개 속에서 춤을 추다』, 『킬리만자로 카페』, 『뒤로 가는 버스』, 『장미와 칼날』, 『크리스마스 전야』, 『그 바다엔 낙타가 산다』, 『인베이더』, 『그들 그리고』,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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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게 나이 든다는 것 - 행복한 나이 듦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김옥림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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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를 맞았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열풍이 불었던 때가 불과 10년 전쯤인가? 얼마 전 우리나라도 〈100세 시대〉의 정부 '공식 선언'(?)이 있었다. 정부가 나서서 공식 선언했다고 보기보다는 통계에 의한 평균 수명 발표였을 터다. 국민들 사이에선 이보다 좋은 뉴스가 없었을 터다. 더욱이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처절한 고생 끝에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지 불과 몇 해만에 '장수국'에도 오를 만큼 국민 체력이나 건강 상태가 좋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0세 시대〉 열풍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코로나 팬데믹이란 전 세계적 재앙이 닥친 데도 이유가 있겠으나 인구의 초고령화와 저출산이 겹치면서 인구 절벽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거시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생산 인구는 줄고, 소비 인력이 늘어난 셈이다. 만일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국가가 부담하는 사회보장 제도가 뒤흔들 우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란 국민적 환호가 국민적 우려로 바뀌고 만 것 아닌가 하는 자조적 발언도 심심찮게 들리는 요즘이다.

이 책 『품위 있게 나이 든다는 것』는 은퇴 후 노년 생활의 품위를 지속시키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모색해 제시한 책이다. 물론 자기계발서로 읽히지만 사실은 노후가 경제 문제를 빼놓고서는 거론조차 어려울 자본주의 사회임을 감안한다면 경제 문제 이외의 다른 분야의 대비책이 될 수밖에 없는 한계점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제 문제는 구태여 끌어내 공론화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일 터다. 자칫 세대간 갈등이 깊다는 요즘 갈등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할 수도 있기에 개인으로서 노후의 경제 문제를 거론하기에는 더욱 어렵다. 저자 김옥림은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품위 있게 나이 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인식하도록 이 책을 썼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퇴직하고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면 인생이 끝난 것처럼 공연히 우울해지기도 하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의욕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한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을 더 사랑하고, 더 위해주고, 더 격려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 『품위 있게 나이 든다는 것』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활기차고 품위 있게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과 사례를 소개한다. 자존감을 기르는 법, 멋지고 유쾌한 발상을 하는 사고법, 노년층을 위한 공부법, 고독력을 기르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법, 인생을 보람 있게 보내는 법, 돈독한 부부 사이를 만드는 법, 똑똑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법 등 실생활에 당장 적용하며 하나하나 실천해 본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다채롭고 행복한 노년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크게 다섯 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인생에 연습이란 없다, 인생은 실전이다」, 2장 「낡은 마인드를 새롭게 리모델링하기」, 3장 「인간관계를 새롭게 재정비하기」, 4장 「더 많이 함께하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기」, 5장 「생각은 녹슬지 않게, 몸은 삐걱거리지 않게」 등이다. 각 장에는 다시 세부적인 실천 항목이나 실천 과정의 문제점, 실천 방법, 실천 사례, 실패 사례 등 각 장에 적절한 필요한 항목을 세부적으로 나눠 설명하고 요약해준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건강한 육체를 만들고 녹슬지 않는 정신을 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살기보다는 더 의욕적으로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꿈을 향해 달려나가도 괜찮다. 해 보고 싶었던 것들, 이루고 싶었던 것들에 주저 말고 도전하라. 반드시 성공하지 않더라도 시도했다는 사실만으로 후회를 남기지 않게 될 것이다. 나이가 노인 나이라고 모두가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집안에 틀어박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중환자 코스프레는 더 이상 바람직한 일도 아니고, 오히려 사회 분위기에 뒤처지는 낙오자의 씁쓸한 삶의 행로가 남을 뿐이다.

 


 

이럴 때 "브라보!"라는 환호성이 자주 필요하다. "삶은 으레 죽음을 향한 행진곡일 뿐이다"는 퇴행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는 노년 생활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각인해야 한다. 만일 지금까지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다면 당장 혁명적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습관을 바꿔야 할 일이다.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비참한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부터라도(나이가 몇 세든지) 영원한 청춘이듯 즐겁게 오늘을 사는 멋진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은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인생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흘러간 강물과 같다. 성공한 인생이란, 많은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누리고, 이름을 내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년을 보내며 자신이 행복하고 생에 후회가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이다.

이 책은 적극적인 변화를 원하고 행복한 삶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때로는 현자들이 남긴 말이고, 때로는 앞선 사람들의 삶의 행로를 더듬기도 한다. 가끔은 실패해 비참한 사람들의 일도 오르내릴 수 있다. 실패해서 얻은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저자가 이를 위해 쓴 이 책의 부제를 「행복한 나이 듦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라고 붙인 이유이다. 부제처럼 이 책에는 행복한 노년 생활을 품위 있게 살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의 목록만 챙겨도 훌륭한 삶의 지침서가 될 수도 있다. 오랫동안 자기계발서와 문학이론서, 글쓰기 책 등에 주력해온 저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들을 이 책에 모두 모았다. 저자의 사유와 경험, 삶의 태도와 삶에 대한 열정 등을 읽다보면 영감은 물론 삶에 대한 통찰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영원한 청춘이듯 즐겁게 오늘을 사는 내가 되기」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자존감'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은 사는 동안 누구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물론 사람으로서 가진 자존감을 갖고 산다. 그것을 얼마나 높이느냐는 개인의 선택이고 삶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지만 어쩌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완전히 자존감이 없다면 그는 이미 죽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생계를 위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존감이 떨어질 수는 있어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인간으로서 마지막까지 자존감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며, 그 자존감이 없어지지 않는 만큼 사람으로서의 언행은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후회없는 삶을 위한 7가지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그 첫째가 바로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자존감을 사랑하고 존중하면 자신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다. 둘째, 낡은 마인드를 새롭게 리모델링해야 한다. 셋째,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 인생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은 열정을 불태워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넷째,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 지적으로 늙어간다는 것은 스스로를 대접하는 것과 같다. 나이가 들어 지성미를 갖는다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멋진 일이다. 다섯째, 사랑하는 이들과 더 많이 함께하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라.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여섯째, 똑똑하게 문화생활을 즐겨라. 문화는 창의적인 생각을 드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매우 유익한 삶의 비타민이다. 일곱째, 못다 이룬 꿈을 위해 남을 열정을 불태워라. 못 이룬 꿈을 이루는 것은 신나고 감사한 일이다. 혹여, 꿈을 이루지 못해도 열정을 바쳐 시도했기에 후회는 남지 않는 법이다.

 


 

특히 노년기에 접어드는 시기에는 정신과 육체가 건강해야 더 생산적이고 창의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정신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독서가 필수이다. 독서를 하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의 근육을 키워줌으로써 창의성을 길러준다. 창의성을 가진 사람은 무엇이든 창의적으로 생각하려고 해 생각이 젊고 아이디어가 뛰어나다. 또 독서는 치매 예방에도 매우 효과적이다. 그리고 육체를 건강하게 하려면 매일 꾸준하게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일주일에 3일을 30분씩만 운동을 하면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되어 피로를 없애주고, 근육을 탄탄하게 하여 건강한 몸으로 활기차게 노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젊고 멋지게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보자면 첫째, 자존감을 기르는 7가지 둘째, 나를 위해 사는 멋지고 유쾌한 발상 10가지 셋째, 노년층을 위한 공부법 5가지 넷째, 고독력을 기르는 6가지 다섯째,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는 5가지 여섯째, 연인 같은 부부, 친구 같은 부부로 사는 7가지 일곱째, 똑똑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10가지 등 실로 다채롭고 다양하다. 실제 실천을 전제로 한 방법들만 제시한 것이기에 굉장히 많아 심적으로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들 제시된 방법은 하나씩 하나씩 몸에 익히도록 습관화하면 모두 실천 가능한 방법들이다. 즉, 실제 실천 불가능한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이들 방법 역시 시작이 중요한 이유가 시작이 어렵지 하나씩 실천해 나간다면 방법이 어려운 게 아니다. 또 모든 방법이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어 A-1 방법을 열심히 실천하다보면 B-2 방법이 저절로 완성될 수도 있는 유기적 관계다. 좋은 감정들은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고, 나쁜 감정들은 서로에게 악한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 책의 모든 장의 모든 방법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서로 연관성을 갖고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에 실천을 시작하면 습관화하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워낙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기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기에 저자가 참고서 기술 방식으로 번호를 매기거나 서수 서술 방식첫째, 둘째 순서식)으로 정리해 놓았지만 모두 외워 각인시키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너무 여러 가지가 있어서 한꺼번에 시도한다면 순서가 뒤죽박죽 되면서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독자가 시도하는 방법을 제시해 본다.

이 책의 〈똑똑한 문화 생활 즐기기 10가지〉가 서술되어 있다.(p.302~304) 독자가 임의로 번호를 매겨 간략하게 정리해 여기에 적는다. ① 고궁이나 인사동 등 문화유적지 등에서 정기적으로 무료 공연을 한다. 이를 즐기는 방법도 일시만 정확하게 챙겨 놓으면 얼마든지 관람이 가능하다. ② 각 도시마다 미술 전시과과 문화센터가 있다. 이곳 역시 정기 전시회가 열리고 무심코 방문해도 늘 볼거리들이 있다. ③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값싸고 수준 높은 패키지 문화상품이 있다. 형편대로 이용해도 좋다. ④ 가끔은 기차여행을 즐기는 것도 좋다. 철도공사에 알아보면 다양한 기차 여행 상품이 있다. ⑤ 각 문화 단체에서 작가와 함께하는 문학기행 이용도 괜찮다. ⑥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마다 연극단체가 있다. 저비용으로 연극도 즐길 수 있다. ⑦ 각 지자체마다 도서관, 여성문화센터, 평생교육정보관 등에서 다양한 강좌가 열린다. 원하는 강좌가 있으면 가서 듣는 것도 좋다. ⑧ 도서관에 가면 다양한 분야의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시간만 내면 언제든지 독서를 즐길 수 있다. ⑨ 문학동아리, 미술동아리, 연극동아리, 사물놀이패 등에 참여해 직접 해보는 것도 큰 의미를 준다. ⑩ 만일 음악에 재능이 있다면 음악모임에 참여해 활동을 하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열 가지 제시된 방법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 선택적으르로 실천 가능한 것들이다. 여기에 3장 「인간관계를 새롭게 재정비하기」의 〈고독력을 기르는 6가지〉(p.142)와는 자연스럽고 유기적 연관성을 갖고 있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고독력을 기르는 6가지〉

① 자신을 혼자 두지 마라. 친구나 아니면 지인과 어울리며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라.

② 취미생활을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라. 취미생활을 하다 보면 고독력을 기를 수 있다.

③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외로움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④ 부부끼리 대화를 자주 하라.

⑤ 독서습관을 기르는 것도 고독력을 이기는 좋은 방법이다.

⑥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에 힘써라.

 

저자 : 김옥림(金玉林)

 

현재 시, 소설, 동화, 동시, 교양, 자기계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집필 활동을 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이다. 교육타임스 《교육과 사색》에 ‘명언으로 읽는 인생철학’을 연재하고 있다. 시집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따뜻한 별 하나 갖고 싶다》, 《꽃들의 반란》, 《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소설집 《달콤한 그녀》, 장편소설 《마리》, 《사랑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들》, 《탁동철》, 에세이 《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행복한 아침을 여는 책》, 《가끔은 삶이 아프고 외롭게 할 때》, 《허기진 삶을 채우는 생각 한 잔》, 《내 마음의 쉼표》, 《백년 후에 읽어도 좋을 잠언 315》, 《나는 당신이 참 좋습니다》, 《365일 마음산책》, 《법정 마음의 온도》, 《법정 행복한 삶》, 《법정 詩로 태어나다》, 《법정잠언집 365 너는 꽃이 되어라》, 《지금부터 내 인생을 살기로 했다》, 《힘들 땐 잠깐 쉬었다가도 괜찮아》, 《인생의 고난 앞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인문서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_통찰력편》,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_교양편》, 자기계발서 《명언의 탄생》, 《고전명언의 넓고 깊은 생각》, 《책사들의 설득력》, 《유대인 대화법》, 《철학자의 말》, 《고수의 소통법》, 《인생이 깊어질수록 다가오는 것들》, 《이건희 담대한 명언》,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청소년 교양서 《10대에 꼭 해야 할 32가지》, 《10대를 위한 성공습관》, 《열네 살의 하이파이브》 외 다수가 있다. 시세계 신인상(1993), 치악예술상(1995), 아동문예문학상(2001), 새벗문학상(2010), 순리문학상(2012)을 수상하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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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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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소설 독자들도 다 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그들은 많은 작품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과 인연을 맺고 굉장한 작품들을 선뵈며 한국 독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물론 최근(?)엔 히가시노 게이고가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당연히 그의 작품들이 워낙 출중한 데다 추리소설 미스터리 분야에서 단연 돋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 소설의 흐름은 SF 판타지와 미스터리 소설로 옮겨가고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전통적 문학의 중심에서 탁월한 작가로 평가받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스터리 부문에서 놀라운 작품을 쉴새 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의 작품 발표를 보면 놀랍기만 하다. 독자가 문학평론가도 아니기에 정확하게 책 발간 일자를 순서별로 집계한 것을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저자 소개에 따르면 첫 작품 출간 이후 20년이 조금 넘는 작가 생활 동안 35편을 발표했다. 1년에 두 권 가까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그를 가리켜 '미스터리의 제왕'이라고도 말한다. 그렇게 작품을 쏟아내는 것도 놀랍지만 작품의 소재가 매번 새로운 것이란 점도 독자들에게 어필할 요인이다. 이책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는 장편소설이라기보다 중단편 연작에 더 가까울 듯하다.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중·단편, 혹은 장편 등의 갈림은 이미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작품의 길이에 매달리지 않는 작가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전작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에 이은 〈블랙 쇼맨〉 시리즈 후속작으로 사건 전개나 대화, 심리묘사 등이 더 압축적으로 스피드하게 전개된다. 어쩌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SF에 비해 시간 제약을 거부하는 아날로그 작가로서의 의사 표현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해본다. 물론 독자 혼자서.

 


 

이 작품은 세 여자의 이야기이다. 「맨션의 여자」, 「위기의 여자」, 「환상의 여자」. 이 작품은 전작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에서 새롭게 선보인 히어로 블랙 쇼맨, 그리고 사건이 해결되는 공간 〈트랩 핸드〉가 또다시 등장해 마술 같은 재미를 더한다. 도쿄의 후미진 골목에 위치해 간판도 없이 운영되는 바 〈트랩 핸드〉, 공통으로 나오는 장소, 〈트랩 핸드〉(TRAPHAND)는 칵테일바다. 세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여자들은 트랩핸드의 주인인 다케시의 도움을 받거나 다케시가 그들의 사건에 조금씩 개입하면서 해결된다.

줄거리를 다 말하면 스포로서 독자들의 흥미를 반감시킬 우려가 있다. 〈트랩 핸드〉 그곳에는 눈썰미부터 말솜씨까지 남다른 마스터 가미오 다케시가 있다. 그가 고객의 사연에 맞춰 만들어주는 한잔의 술을 들이켜며 손님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그에게 털어놓으면서 하루의 찌꺼기를 씻어내기도 한다. 부족한 것 없는 귀부인이 이사할 집의 리모델링을 위해 젊은 건축사에게 의뢰를 맡긴다. 코로나19로 입은 실적의 타격을 단숨에 만회할 기회인 만큼 그는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갖은 애를 쓴다. 이 여성은 막대한 돈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는데, 대체 왜 이리 안목이 형편없는 걸까?

가미오 마요가 그녀의 리모델링 상담을 맡게 되는데 그녀의 삼촌이 운영하는 트랩핸드에서 그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한다. 일련의 과정에서 삼촌과 마요는 수상한 사실을 알아내고 그와 더불어 불청객이 중간에 사사건건 간섭하며 무언가 요구하며 우에마쓰 가즈미를 괴롭힌다. 이 책은 〈트랩 핸드〉 주인인 다케시의 능청스러움과 뻔뻔함이 이야기 전개의 핵심이다. 어느 이야기에서든 그는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잘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 「맨션의 여자」

 


 

「위기의 여자」는 세 가지 이야기 중 가장 짧다. 결혼 사이트에서 만난 남녀가 다케시의 〈트랩 핸드〉에 오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트랩 핸드〉에서 첫 데이트를 하는 남녀 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사귈까 말까 아슬아슬한 순간에 진실이 드러난다. 결혼 상대를 찾아주는 마스터, 다케시의 색다른 추리가 돋보이는 단편이 이어진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나이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거든요.”

기요카와는 자조하듯 웃었다. 마흔다섯 살, 결혼 이 력 없음. 그의 프로필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마스터가 셰이커를 흔들기 시작했다. 셱셱, 기분 좋은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기요카와가 겉옷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손으로 몇 번 조작하더니 나미 쪽으로 화면을 내밀었다. “대충 찍은 거라 별로 잘 나온 사진은 아니지만 이런 느낌입니다.”

도로에 인접한 건물을 대각선 방향에서 찍은 사진이 화면에 떴다. 직사각형의 하얀 이층집이었는데 길에서 현관까지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건물을 둘러싼 화단이 푸르렀다.(p.131)

 

"원래 파란 빛깔을 띤 음료라면 섞어도 알아채기 어렵죠. 블루 하와이는 그런 음료의 대표격이고요."(p,145)

 


 

마지막 단편 「환상의 여자」는 이야기 중간에 등장하는 사진 속 여자가 책 제목으로 채택된 것 같다. 다카토 도모야는 치과 의사지만 재즈를 사랑한다. 재즈를 사랑해 밤에는 뮤지션으로 활동하지만 아내는 그것을 못마땅해하고 결국은 별거를 하게 된다. 도모야는 그렇게 유즈키라는 여자와 사귀게 되지만 어느 날 뜻밖의 교통사고로 죽어버린다. 하지만 유즈키는 그를 잊지 못하고 하루하루 절망 속에서 살아가던 중 그녀는 도모야와 어떤 여자의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유즈키가 그녀가 누군지 알아내려고 하면서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스토리 전개는 잔잔하지만 긴장감과 스릴은 팽팽하다.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간결한 필치가 긴장감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건 개요를 짐작할 수 있는 일들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손 안에 있으면 미스터리 스릴러로 바뀌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큰 그림을 저자가 이미 그려놓고 어디에서 긴장감을 주고, 어디에서 슬쩍 풀어주고... 자유자재로 밀당을 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구성력과 한 문장도 버릴 수 없는 글들이 유기적으로 구성돼 조금의 틈도 없는 잘 짜여진 미스터리 극이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미스터리 제왕'이란 별칭도 가능하리라.

 

"블러디 메리. 야마모토 씨가 이 칵테일을 주문한 이유를 저는 알 것 같습니다. 피를 흘릴 각오가 돼 있던 거죠. 친구를 위해서라면, 설령 자신이 상처받는다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아닙니까?"

뭉클한 뭔가가 유즈키의 가슴에 솟아올랐다(p.228)

 

 

「환상의 여자」는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합성할 수 있는 신기술 ‘딥페이크’가 돋보이는 미스터리다. 짐짓 치정극을 예측했던 독자들은 허를 찔릴지도 모르니 결말을 단정 짓지 말 것을 독자들에게 미리 당부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매특허가 유감없이 발휘된 이 책은 저자의 제안에 따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 독자들에게 선보인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그를 안 지 불과 3년밖에 안 되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 된 독자로서는 영광이고, 한국 팬들의 마음마저 뿌듯하다.

가족의 스토킹을 멈추고 싶은 미망인, 평생을 함께할 상대로 오늘 저녁 처음 만난 사람을 감별해달라는 손님, 죽어버린 연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죽은 남편의 유산을 물 쓰듯 한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돈만 밝히는 속내를 간파당할까 봐,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했었다는 과거가 들춰질까 봐 이들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 실상 자신을 갉아먹는 현실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원해 돈에 의해서든, 사랑을 이뤄서든 각자의 인생에 새로운 출구를 찾지만, 주위 시선이 여전히 매서워 번번이 망설일 뿐이다. 견딜 수 없다면 태세를 전환하는 게 상책. 다시 태어나고 싶을 만큼 간절한 이들의 열망에 화답하기 위해 다케시가 등판한다.

짐짓 타인의 사정에는 관심 없다는 듯 손님을 응대하지만, 절망에 빠진 이들이 보내는 SOS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리고 물심양면 도와준다. 그는 각종 칵테일을 능숙하게 만들어 이들에게 내어주며 위로하는 것은 물론, 화려한 손짓 하나로 결말을 바꿔치기하고, 생면부지의 사람이 꾸민 음모를 밝혀낼 정도로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다. 속도감 있게 수수께끼를 해결하며 속임수는 속임수로 갚아주는 다케시의 일침에 이야기의 재미는 한껏 달아오른다.

 


 

1985년 데뷔해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를 지켜온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가 구축해온 입지는 독보적이다. 그의 공식 출간 기록을 보면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서너 편의 책을 써왔다고 할 정도의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그의 새 원고를 받기 위해 일본 출판계 담당자들은 지금도 순서를 정해 기다리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그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판권 경쟁이 치열하다. 매년 스스로 전성기를 갱신한다고 할 만큼 변함없이 독자들의 성원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본격 미스터리를 비롯해 서스펜스, SF 심지어 감동적인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에도 능통한 그는 ‘과연 한 사람이 쓰는 게 맞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색다른 방식으로 집필해왔다. 문장은 명료하고, 속도감 있게 읽히되, 절대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끔 촘촘히 조형해온 그의 작품 세계는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각종 촌극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선과 악을 엄정한 도덕적 잣대로 판별하는 데서 벗어나,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비극의 원형을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내는 데에 능통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분량은 가볍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주제 의식을 담아 살인이 일어나지 않아도 크고 작은 일들에 휘말리는 인간의 일상사를 특별하게 풀어내는 그의 필력에 독자들은 어김없이 탄복하게 될 것이다.

 

"블러디 메리."

"오늘 밤은 나도 피를 흘리자. 그리고 이걸로 끝은 내자. 내일부터 다시 태어나는 거다."

"알겠습니다."

가미오가 정중히 대답했다.(p.229)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ひがしの けいご, 東野 圭吾)

 

일본 추리소설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추리소설 분야에서 특히 인정받고 있는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능력을 가진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작품은 치밀한 구성과 대담한 상상력,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로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 독자를 잠시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히가시노 게이고는 첫 작품 발표 이후 20년이 조금 넘는 작가 생활 동안 35편이라는 많은 작품들을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소재, 치밀한 구성과 날카로운 문장으로 매 작품마다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1958년 2월 4일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과적 지식을 바탕으로 기발한 트릭과 반전이 빛나는 본격 추리소설부터 서스펜스, 미스터리 색채가 강한 판타지 소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장르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이 중 상당수의 작품이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에도가와 란포 상은 그 해의 가장 우수한 추리 작품에 수여되는 상으로 데뷔작이자 수상작인 『방과후』로 화려하게 등단한 그는 일본 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이지만, 유독 한국에서 그 명성과 실력에 맞는 인지도를 쌓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1999년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비밀』을 계기로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도 가까워지게 되었다. 엄마의 영혼이 딸에게 빙의된다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었다. 이 작품은 청순한 이미지로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히로스에 료코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그의 소설은 치밀한 구성과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독자를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빙의나 의료 사고 등 녹록치 않은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당대 첨예한 사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추리소설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소설을 쓰고 있다. 늘 새로운 소재와 치밀한 구성, 생생한 문장으로 매번 높은 평가를 받는 저력 있는 작가인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답게 작품 중 19편이 영화와 드라마로 다시 독자들과 관객들을 만났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히며, 전세계적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방황하는 칼날』, 『흑소소설』, 『독소소설』, 『괴소소설』, 『레몬』, 『환야』, 『11문자 살인사건』, 『게임의 이름은 유괴』, 『호숫가 살인사건』, 『브루투스의 심장』, 『한여름의 방정식』, 『몽환화』, 『그 무렵 누군가』, 『가면 산장 살인 사건』, 『인어가 잠든 집』, 『살인의 문』, 『백야행』, 『기린의 날개』, 『한여름의 방정식』, 『신참자』,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다잉 아이』,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학생가의 살인』, 『오사카 소년 탐정단』, 『천공의 벌』, 『붉은 손가락』 등이 있다. 『방과 후』, 『쿄코의 꿈』, 『거울의 안』, 『기묘한 이야기』, 『숙명』, 『백야행』, 『갈릴레오』등 지금까지 20편이 넘는 작품들이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비밀』, 『변신』, 『편지』,『용의자 X의 헌신』, 『더 시크릿』등 10여편이 영화로 제작되는 등,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역자 : 최고은

 

도쿄대학교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일본 전후 문학을 중심으로 공부하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무라타 사야카의 『소멸세계』, 기리노 나쓰오의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인형 탐정』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의 『서브머린』, 『칠드런』,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 요네자와 호노부의 『부러진 용골』, 미치오 슈스케의 『스켈리튼 키』, 요코야마 히데오의 『64』, 『그림자밟기』,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 모리무라 세이치의 [증명] 시리즈를 비롯해 『인사이트 밀』, 『절규성 살인사건』, 『46번째 밀실』 『도미노』, 『덧없는 양들의 축연』, 『거대 투자 은행』, 『소녀지옥』, 『침묵의 거리에서 1, 2』, 『말레이 철도의 비밀』, 『백년법 상,하』, 『골든애플』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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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인 1
제인도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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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로 잠깐 대리기사를 했을 뿐인데... 살인사건에 휘말린 남자. 기업 경영권 싸움은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오로지 목표를 향한 집념과 잔혹함만이 살아남는다. 약하지만 성실한 남자는 적자생존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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