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뇌 안에 - 타인 공감에 지친 이들을 위한 책
장동선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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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SNS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번 '공감'을 표현하고 또는 말하며 산다. 공감이라는 말은 한 SNS에서 '좋아요'로 표현되기도 하고, '엄치척' 모양의 그림으로 자신의 의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공감'이 차고도 넘치는 세상이다. 과연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과의 제대로 된 공감을 나누고 있을까? 공감이란 감정을 말하는데 감정을 '옳고 그름'으로 표시하지 못하는데 제대로 공감하는지 알아볼 수나 있을까? 비슷한 표현으로 '좋아요' 이외에 '동감'도 있고, '동의'도 있다. 독자는 이 책에서 주제로 논의되고 있는 공감에 대한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책을 읽고 싶어 백과사전의 뜻을 빌려본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공감(Empathy, 共感)이란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을 말한다. 1909년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티치너(Edward B. Titchener)가 도입한 용어로, ‘감정이입’을 뜻하는 독일어 'Einfuhlung'의 번역어이다. 요한 헤르더(Johann Herder), 노발리스(Novalis)와 같은 18~19세기 철학자들은 자연이나 예술 작품에 대한 감정이입을 주로 다루었다. 그러나 '감정이입'은 '공감'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개념으로, 근대 과학이 자연을 해부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다루는 태도에 반발하여 나온 테제였다. 독일의 철학자 로베르트 피셔(Robert Vischer)는 그리스어 'empatheia'를 근거로 'Einfuhlung'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자신의 논문에서 처음 사용하였으며, 이 개념이 철학적으로 분석할 만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심리학자 테오도어 립스(Theodor Lipps)는 '공감'이야말로 미적 대상을 감상하는 데 꼭 필요한 역할을 맡을 뿐만 아니라, 의식을 지닌 생명체로 서로를 인식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고 주장하였다. 20세기 초 '공감'은 해석학(hermeneutics)에서 특히 행위, 예술 작품, 문헌 등의 의미와 의의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방법으로 채택되어, 이해(Verstehen)라는 개념과 깊은 연관을 맺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이 현재 어떠한 마음 상태에 있는지는 알기 쉽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거나 무엇을 인식하는지는 자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가진 심적 상태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를 심리철학에서는 '타자 마음의 문제'(The Problem of Other Minds)라고 한다. 심리학자 립스는 '타자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내 마음이 상대방의 마음을 모방하는 것, 곧 '공감'에 있다고 보았다. 립스의 이러한 생각은 1980년대의 모사이론가(Simulation Theory)들이 받아들였다. 모사이론은 타자의 마음을 이해할 때 지각적 차원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타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은 우선 타자의 입장이나 상황으로 나 자신을 투사한 후 나의 심적 상태가 어떠할지를 상상한다. 이후 내 심적 상태를 유비추리를 통해 타자에게 투사한다. 이는 공감이라는 심리적 능력을 중점적으로 하여, 다른 행위자를 인과적으로 해석·설명·예측하는 것이다.

인간의 어떤 도덕적 행위가 옳거나 그를 수 있다는 규범성이 어디에서부터 도출되는지에 대한 철학적 설명은 '공감'을 통해 제시되기도 한다. 규범적인 규칙들은 행위자가 따라야만 하는 의무를 표현하는데, 이 규칙은 또한 행위자의 의도와 동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순수이성을 통해 사유된 도덕 규칙을 따르는 의무적 행위만이 윤리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자연적 능력을 통해 행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기적이지 않은 도덕적 동기라고 반박한 바 있다. 현대에 들어 공감과 도덕 발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는 발달심리학자 마틴 호프만(Martin Hoffman)으로, '공감'이란 이타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생물학적인 성향이기 때문에 인간이 도덕 행위자로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고 보았다.

 


 

또 동감(sympathy, 同感)은 타인의 사고나 감정을 자기의 내부로 옮겨 넣어, 타인의 체험과 동질의 심리적 과정을 만드는 일. 일체화나 동일화와는 다르며, 주위 사람들이나 현상, 즉 동감대상과 자기(동감자) 사이에 차별이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대상과 자기의 심리적인 동일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동감의 일종에 ‘동정’이 있다. 이것은 18세기 이래 영국의 D.흄이나 J.A.스미스 등에 의하여 근대사회의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원리로서 채택되어 왔는데, 엄격한 의미에서 동정과 동감은 구별되어야 한다. 동정은 타인의 사고 ·감정을 승인하고 상대에게 적극적인 감정을 지니는 것으로, 거기에는 보다 깊은 인간관계가 엿보인다. 그러나 동감은 무생물에 대한 경우에도 체험하는 것으로, 저물어 가는 가을빛이 서글프게 보이거나, 빛나는 한여름의 태양이 힘차게 보이는 것 등이 그것이다. T.립스는 도덕적인 행위나 미적 감정도 동감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밖에 동의(同意)란 타인의 행위에 대하여 인허(認許) 내지 긍인(肯認)하는 의사표시다. 승인과 비슷하나 동의는 사전의 의사표시이고, 승인은 사후의 의사표시인 점에서 구별된다. 법률상 행위자의 단독행위로는 완전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키지 않고 그것을 보완하는 타인의 의사표시를 요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동의라고 한다. ① 공법상의 대표적 예는 헌법 제60조에서 대통령의 중요 조약체결이나 선전포고 등에 관하여는 국회의 동의를 요하게 하고 있는 것과 같다. 행정법상으로는 인가 ·허가 ·승인 ·인허 ·인증 등의 용어를 쓰고 있는 경우에, 성질상 동의에 해당하는 것이 많다. 예컨대 법인설립의 인가, 사업양도의 인가 등이다. ② 사법상으로는 민법상 미성년자나 한정치산자 등 행위무능력자가 재산적 법률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법정대리인이나 후견인의 동의를 얻게 하고(5 ·10조), 미성년자가 혼인을 하려면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과 같다(808조).

 

 

우리 사회는 불평등과 양극화, 사회적 갈등이 점차 심해지면서 ‘공감’이라는 키워드는 어느 때보다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공감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그 주목도에 비해 공감은 쉽게 오해되거나 공허하게 남용되기 일쑤라고 이 책 『행복은 뇌 안에』는 지적한다. 책의 공동 저자 장동선, 박보혜, 김학진, 조지선, 조천호 등 5명이 이에 대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각자 다른 분야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공감'을 다룬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공감을 편협하게 그리고 맹목적으로 중시함으로써 오히려 폐쇄적인 공동체를 만들기도 하며, 동시에 어떤 이들은 공감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혐오와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런 문제의식 아래 2021년 개최된 티앤씨재단의 ‘우공이산’ 콘퍼런스 내용을 엮은 결과물이다. 이들 다섯 저자는 각자의 전문적인 분야에서 공감을 연구하고 통찰했다. 뇌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심지어 기후과학까지, 그들의 전문성에 힘입어 공감은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된다. 저자들은 공감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정보를 전해주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의미 있게 공감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기도 하며, 우리 삶에서 실제로 어떻게 공감을 다루어야 하는지 그 길을 일러주기도 한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서는 이유다. 이 책은 공감에 관한 과학책이기도 하고 자기계발서 혹은 심리 안내서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책을 읽고나면 좀더 풍성하게 공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로 진행된 Q&A와 저자들 간 대담이 수록되어 있는 것 또한 이 책을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는 않게 만드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뇌과학자 장동선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공감의 뇌과학적 원리를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과학적으로 공감은 뇌의 진화 과정 속에서 생존을 위한 도구로서 발달해온 능력이다. 자연의 적대적인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옛날부터 인간은 다른 개체를 잘 살피는 능력을 길러왔다. 특히 사회를 이루면서부터는 단순히 타인을 살피는 것 이상으로 타인의 생각과 감정까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공감이다. 뇌과학적으로 타인에 공감하는 활동을 가능케 하는 건 거울신경세포로, 이 세포는 타인의 감정과 행동을 ‘시뮬레이션’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농구 선수들은 농구공이 슛 하는 사람의 손을 떠나는 순간을 딱 0.5초 정도만 끊어 보고서도 슛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p.26) 몸에 새겨진 경험으로 미루어 타인의 슛 동작을 자기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조지선은 거울신경세포 외에도 ‘마음 이론’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는 공감을 위한 사전 장치를 소개한다. 마음 이론은 다른 사람의 상태를 추론하고 행동을 예측하는 인지적 능력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타인의 숨겨져 있는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저마다 마음의 작동 원리에 관한 ‘이론’을 품고 사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우리가 쉴 때도 사람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인간이 타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존재임을 드러내는 요소다. 조지선 교수는 공감이 인간에게 이롭기 때문에 뇌가 이렇게 설계되어왔다는 점, 공감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공감을 더 잘할수록 집단에서 인정받고 발전할 여지가 많아진다. 물론 타고나는 것 이상으로 공감능력을 계발할 수도 있는데, 조지선 교수는 ‘유재석 따라하기’ ‘협상 전문가 따라하기’ 등 독자가 따라하기 쉽고 내용도 간단한 공감능력 계발법을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점도 있다. 의외의 사실은, 공감이 자기중심적인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사회신경과학자 김학진은 최신 뇌과학을 통해 공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인간이 타인의 감정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 해도, 결국 자신의 상태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연구에 따르면 운동을 한 직후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타인도 갈증을 느낄 거라고 더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자기 경험과 상태에 따라 공감 방식은 달라지며, 이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이 생겨나는 원인이 된다. 공감의 자기중심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감정을 잘 인식해야 한다. 자기 감정을 인식함으로써 ‘감정 목록’이 정교하고 풍부해진 사람들은 공감을 위해 사용할 재료도 더 많아진다. 타인과 깊이 공감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에게로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공감교육자 박보혜도 비슷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타인에게 공감하려면 ‘자기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느낌’과 ‘생각’을 구분해야 한다. ‘느낌’은 내 욕구가 총족되었는지 아닌지를 알리는 신호다. 이는 그저 중립적인 메시지일 뿐, 판단이 한 차례 들어간 ‘생각’과는 다르다. 이 차이를 파악하고 느낌을 섬세하게 바라보아야만 자기 ‘욕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스스로와 가까워지고 나면 타인의 내면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여기서 공감의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공감은 내면에서 외부로, 자기에서 타인에게로 끊임없이 확장된다.(p.74~75) 박보혜가 인용한 마셜 로젠버그의 말처럼, “내면의 평화를 만드는 일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인 것이다.

 


 

다섯 저자 중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조천호 교수의 글은 독자에게는 인상적이다. 공감과 기후위기가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감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에 모두에게 필요한 자질임을 알게 된다. 텀블러나 에코백을 쓰고 일회용품은 줄이는 등 ‘개인의 선한 감수성’을 발휘하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실제로 닥쳐온 지금, 그것만으로는 상황을 개선시키기 어렵다. 무엇보다 변화를 실현해낼 정치체를 구성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연대하고 집단을 꾸려야 한다. 바로 여기서 공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후위기에 취약한 지구 반대편 사람들, 실제로 기후위기의 피해를 입기 시작할 다음 세대, 기후위기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제대로 된 공감이 이루어져야만 구심력 있는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p.196)

이렇듯 이 책에서 공감은 개인의 자질이나 능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섯 저자는 저마다 조금씩은 다른 방법으로 공감을 이야기하지만, 하나같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바로 공감이 관건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공감은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인 것이다. 한 사람의 행위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다. 결국 좀더 행복한 사회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상상하는 것이 공감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그간 너무도 쉽게 소비되어왔던 공감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다시금 제대로 들여다봄으로써 과거와는 다른 세계로 나아갈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장동선

 

뇌과학 박사. 궁금한뇌연구소 대표.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성장했다. 독일 콘스탄츠대학교와 미국 럿거스대학교 인지과학연구센터에서 석사를 마친 뒤, 막스플랑크 바이오사이버네틱스연구소와 튀빙겐대학교에서 인간 인지 및 행동 연구로 사회인지신경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 독일 과학교육부 주관 과학 강연 대회 ‘사이언스 슬램’에서 우승하여 이름을 알렸고, 독일 공영 방송 NDR, ZDF 등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과, 한국 tvN 〈알쓸신잡〉 시즌2에 출연하면서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입지를 다졌다. 현재 유튜브 채널 〈장동선의 궁금한 뇌〉에서 뇌와 과학 기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펼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뇌는 춤추고 싶다》 등이 있다.

 

저자 : 박보혜

 

(주)앤파씨 대표이자 공감교육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으며, 플로브 CCO, 마리몬드 브랜드 스토리 실장을 거쳐 현재 한양대학교에서 사회혁신공감실습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저자 :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석사학위를, 위스콘신주립대에서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fMRI를 사용해 인간의 경제적, 사회적 의사결정과 관련된 뇌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으며,‘공정성 판단’과‘이타적 선택’의 신경학적 기제를 밝히는 연구들을 진행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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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 FIKA(피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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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요산요수(樂山樂水)란 말을 좋아한다.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다'라는 뜻인데, '즐거울 락(樂)' 자가 '즐길 요'로 읽힌다는 것을 처음 책에서 배웠을 때부터 요산요수란 말 자체를 좋아했다. 산수의 경치를 좋아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공자의 『논어(論語)』에서 유래되었다. 『논어』의 〈옹야(雍也)〉에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밝아 물이 흐르듯 막힘이 없으므로 물을 좋아한다고 한 것이다. 또한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며, 그러한 것들을 즐기며 산다. 이에 비하여 어진 사람은 의리를 중히 여겨 그 중후함이 산과 같으므로 산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또 어진 사람은 대부분 고요한 성격이며, 집착하는 것이 없어 오래 산다는 것이다. 요산요수의 원래의 뜻은 이와 같으나, 오늘날에는 보통 산수의 경치를 좋아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실제 독자는 바다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지자는 아니다.

이 책 『모든 삶은 흐른다』는 프랑스의 철학자 로랑스 드빌레르가 쓴 인문에세이다. 이 책의 전편이 바다이야기다. 저자는 낯선 ‘인생’을 제대로 ‘항해’하려면 바다를 이해하라고 조언한다. 바다가 우리의 삶과 가장 흡사한 자연이기 때문이다. 고난과 역경, 환희와 기쁨,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바다가 던지는 철학적 사유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때때로 삶이 곡예를 하는 듯해도, 저 멀리 삶이 몰아치듯 떠밀려와도, 삶으로부터 잠시 물러나더라도 좌절하거나 주저할 필요는 없다. 잠시도 쉬지 않고 물결치는 바다처럼 삶도 자연스럽게 물결치며 흐를 뿐이다. 그러한 “삶을 직접 조종하는 선장이 되는 것”, 이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선서일 것이다. 이 책은 출간 후 프랑스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국내 첫 번역본인 이 책은 추천사의 면모를 살펴보더라도 이 책에 담긴 삶의 지혜와 바다에 대한 은유로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삶은 등산보다 항해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산을 타다 발을 헛디뎌 넘어질 순 있지만 산이 스스로 너울거리며 나를 흔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다는 다르다. 바다는 파도를 억지로 막거나 바꾸려 하지 않는다. “파도처럼 인생에도 게으름과 탄생, 상실과 풍요, 회의와 확신이 나름의 속도로” 밀려온다. 프랑스 철학자 드빌레르는 파도처럼 우리 삶에 다가오는 모든 것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라고 주문한다. 파도는 때로 내 동반자가 되어줄 수도 있으니까. 이 책은 흐르는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이라는 유일한 섬이 되는 길을 안내한다. 삶은 내가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흘러가며 살아지는 것이다."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이 자연과학자로서의 소감을 썼다.

또 "'바다는 우리에게 삶을 빛내는 예술을 가르친다', '삶이란 바다처럼 다양한 색을 띤다'는 저자의 생각이 바다와 연결된 여러 상징들을 통해서 아름다운 표현으로 펼쳐지는 책이다. 인생과 바다에 대해서 어쩌면 이렇게까지 깊고 넓고 새로운 통찰을 할 수 있을까? 내내 감탄하면서 책을 읽다 보면 우리도 어느새 인생철학자가 되어 또 하나의 섬이 되고, 바다가 되는 기쁨을 체험하게 된다. 이를 소중한 보물로 받아 안고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지는 마음.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라 여겨진다. 자연과 사물,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배우면서.라는 추천사를 이해인(시인, 수녀)이 예술가로서의 평을 남겼다.

이와 함께 "30년간 마음 전문가로 살면서 이런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책이다. 마음 관리는 결국 마음과의 소통 기술이다. 우리의 마음은 ‘꿈’ 같은 은유, 상징의 메타포 소통을 한다. 마음을 관리하는 팁이 논리적으로 정리된 내용보다 『모든 삶은 흐른다』 이 책에 담긴, 바다에 마음을 너무나 잘 블랜딩하고 메타포 가득한 칵테일 한 잔에 우리의 마음은 쉼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안 읽으면 마음에 손해를 볼 책이다."는 소감을 윤대현(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피력했다.

 

 

그 어느 때보다 본질에 집중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요즘이다. 우리에게 '무한함'과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자연이 있다. 잔잔하면서도 거칠고, 당장 와 닿을 것 같으면서도 금세 멀어지는, 고요하되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바다’가 바로 그것이다. 바다의 물결만큼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없고, 대륙을 둘러싼 바다만큼 커다란 생명줄은 없다. 선원들의 용기, 변함없이 밝은 등대의 불빛, 계속 헤엄치는 상어의 힘, 한시도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거친 파도까지. 살아 숨 쉬는 철학인 바다는 존재 그 자체로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주며, 깊은 지혜와 생각지도 못한 인생철학을 가르쳐준다. 이 책을 펼치면 누구든지 바다가 보고 싶어질 것이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삶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라든지, 거창한 사색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마음이 심란할 때 바다를 보면 그냥 모든 마음의 일렁임을 가라앉혀 주기 때문이다.

사는 동안 누구에게나 철학은 필요하다. 철학을 한다는 건 삶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육지의 관점에서만 철학과 인생을 이야기해온 게 대부분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땅' '산'이 삶의 풍요를 가져다 주고, 삶의 절제를 가르쳐 준다는 동양 사상, 동양 철학의 기초로 삼고 살아왔다.

지구의 70퍼센트가 바다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은 채 오로지 육지만 들여다본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제는 바다로 나갈 것을 인도한다. 바다의 물결만큼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없고, 대륙을 둘러싼 바다만큼 커다란 생명줄은 없다. 선원들의 용기, 변함없이 밝은 등대의 불빛, 계속 헤엄치는 상어의 힘, 한시도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거친 파도까지. 살아 숨 쉬는 철학인 바다는 존재 그 자체로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주며, 깊은 지혜와 생각지도 못한 인생철학을 가르쳐준다. 저자가 바다에서 얻어낸 통찰의 일부이다.

 


 

이 책 『모든 삶은 흐른다』는 바다와 삶을 철학적으로 풀어내어 우리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자연적 존재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프랑스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France Inter(프랑스 공영 방송)는 "우리 내면의 폭풍에 대한 은유로 바다를 보여주는 책"이라는 평가했고, France culture(프랑스 공영 라디오)는 "우리가 무엇이든 철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인생철학은 단호하고 심플하다. 바다처럼 사는 것이다. 현재에 집중하고, 삶의 모든 순간을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두되 흐름에 휩쓸려가지 말고 나 자신을 굳건하게 지키며, 그 안에서 삶이 내게 주는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저자 로랑스 드빌레르는 낯선 ‘인생’을 제대로 ‘항해’하려면 바다를 이해하라고 조언한다. 바다가 우리의 삶과 가장 흡사한 자연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해가 뜨는 곳이자 지는 곳이고, 생이 시작되는 곳이자 끝나는 곳이며,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하는 곳이다. 비를 그대로 흡수하며 다 포용하고 받아들일 것 같지만 때때로 거칠게 뱉어내어 경고를 주는 곳, 한결같지만 한결같지 않은 곳, 지구상 어디든 다 연결되어 있지만 가는 곳마다 다른 빛깔로 자신을 내보이는 곳. 저자는 이 모든 게 인생과 닮았다고 말한다.

또 고난과 역경이 있는 만큼 환희와 기쁨이 있고,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고, 단 하루도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우리의 인생이고 그것은 바다를 닮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때때로 오르락내리락하며 힘들게 하지만 결국 지나고 보면 다 괜찮아지고 잔잔해진다. 인생에서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으나, 그렇다고 모든 것에 큰 의미를 두며 휘둘릴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이 바다처럼 자연스럽게 물결치며 오고 간다. 그런 시간들 앞에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바다와 삶을 어울리게 조합해 모두 3장으로 구성됐다. 1장 「곡예와 같은 삶을 지나다」, 2장 「저 멀리 삶이 밀려오다」, 3장 「삶으로부터 잠시 물러나다」 등이다. 삶은 멀리서 보면 한 덩어리 같고, 가까이서 보면 조각 모음이다. ‘삶’이라고 하면 대부분 평생, 생애 전체를 이야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늘 하루가 삶의 전부이며, 생애 전체를 보면 어느 한 조각이 삶의 전부일 때도 있다. 하지만 산다는 건 조각을 살아도, 전체를 살아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좁디좁은 냇물에서 시작된 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로 간다면, 과연 드넓은 바다만 인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빗방울도, 아무도 모르는 산속 물웅덩이도 모두 삶의 조각이자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찰나의 삶이어도 그 안에 모든 삶이 담겨 있다.

고난과 역경이 삶의 전체를 휘감아도, 들뜨고 환희로 가득한 순간들도 그 모든 순간이 인생이다. 잠시 눈 감고 싶을 만큼 힘들다 해도 그것이 삶이 아닐 리 없다. 그러니 때때로 삶이 곡예를 하는 듯해도, 저 멀리 삶이 몰아치듯 떠밀려와도, 삶으로부터 잠시 물러나더라도 좌절하거나 주저할 필요는 없다. 잠시도 쉬지 않고 물결치는 바다처럼 삶도 자연스럽게 물결치며 흐를 뿐이다. 그러한 “삶을 직접 조종하는 선장이 되는 것”, 이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선서일 것이다.

이 책은 작지만 강렬한 은유로 주는 메시지는 강하다. 또 얇지만 우주의 원리를 담을 만큼 크다. 우주의 원리와 바다의 존재는 하나다. 바다로부터 우주 원리를 끌어내고, 우주 원리로부터 인간 삶의 지혜를 통찰한다.

 


 

인간의 현자들이 바다를 경원하다 삶의 지혜를 찾아냈다. 바다는 정복할 대상은 아니지만 또 다른 삶을 찾아내는 용기와 희망을 주고 길을 열어준다. 현자들은 수많은 사유를 수천 년간 거듭해오며 바다의 침묵과 일렁임으로부터 선물과 불행을 배웠다. 저자는 바다의 파도와 일렁임으로부터 난파선으로 사색을 옮기며 인생의 메타포를 찾아낸다. "항상 우리 자신이 약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별을 경험하면 더 이상 우리가 있을 곳과 우리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 채 방황한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은 바다에 파도가 치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사소한 것들로 인해 나쁘게 평가하거나 심각한 타격을 입기도 한다. 바다가 선사하는 불행처럼 어떤 것도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그렇다면 위험이 닥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의 바다에 사색은 인생 깊숙한 곳까지, 막다른 골목까지 몰린 상태에서도 계속된다. '도망'과 '준비', 그리고 '신중'과 '신뢰'로 일렬로 늘어선 바다의 메타포를 찾는다. 바다에서 위험으로부터는 '도망'이 최선이다. 분명하게 말하면 '줄행랑치는 것'이다. 도망치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피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용기이기도 하다. 바다가 나를 집어삼키려고 할 때 맞선다고 이길 수 있을까? (중략) 인생에 고난은 언제나 찾아온다. 그때 나의 생을 살리는 건 신중함의 기술이다. 신중함은 두려워하는 마음도, 소심한 마음도 아니다. 신중함 자체가 하나의 무기가 됟ㄴ다. 예측불가능한 것 투성이어도 예측하는 능력,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그 상황에서도 미리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신중함이다. (중략) 인생이란 한순간이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있기에 우리에게 숨겨진 자원, 특히 신뢰의 자원을 발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신중함과 신뢰는 함께 간다."(p.80~82)

 


 

저자 : 로랑스 드빌레르(Laurence Devillairs)

 

“인생을 제대로 배우려면 바다로 가라”고 말하는 프랑스 최고의 철학과 교수. 그동안 박식하면서도 대중적인 철학 도서를 다수 집필하며, 사는 동안 누구에게나 철학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왔다. 그동안 파스칼, 데카르트 등 인물 철학에 관한 도서를 집필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자연이 주는 철학적인 가르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철학을 한다는 건 삶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저자는 철학을 아는 삶이 우리를 얼마나 이롭게 하는지를 이야기하며 프랑스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철학과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알려온 저자는 오래전부터 바다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파도와 때에 맞춰 밀려오고 물러나는 밀물과 썰물 등 바다의 생태에서 우리의 삶과 유사한 모습을 발견하면서 바다가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자연이라고 생각했다.

삶이란 이미 그 자체로 가치 있다. 바다가 존재만으로 완벽한 것처럼 말이다. 때때로 고난과 역경이 삶의 전체를 휘감아도, 들뜨고 환희로 가득한 순간들도, 그 모든 순간이 인생이다. 잠시 눈 감고 싶을 만큼 힘들다고 해도 그것이 삶이 아닐 리 없다. 저자는 잠시도 쉬지 않고 물결치는 바다처럼 삶도 그렇게 물결치며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철학과 삶, 바다라는 테마를 한데 녹여 프랑스 현지 언론에서 극찬을 받은 『모든 삶은 흐른다』가 국내 독자들에게도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역자 : 이주영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한국외국어통번역대학원 한불과에서 번역을 전공했다. 출판번역가 모임 바른번역의 회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일본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 들어와 현지화된 프랑스 문화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한불상공회의소 잡지 『꼬레 아페르』를 번역하면서 프랑스-한국-일본을 연결하는 비즈니스에 대해 즐겁게 알아가고 있다. 프랑스 시사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서는 일본 관련 기사 번역을 담당하고 있다. 『모두 제자리』, 『인간증발-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완두』, 『코딱지 마을의 손가락 침입소동』, 『커다란 일을 하고 싶어요』 등의 프랑스 도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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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 - 현대 요리책의 시초가 된 일라이저 액턴의 맛있는 인생
애너벨 앱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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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은 요리책에 관한 소재를 다룬 소설이다. 이 책의 저자 애너벨 앱스는 영국 최초의 현대 요리책인 일라이저 액턴의 삶과 요리, 요리책 발간을 담담하게 소설로 써내려 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일라이저는 실존 인물이고 1835년 영국. 런던이 무대이다. 당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란 별칭을 얻은 대영제국 시대였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해 영국 런던에는 막대한 부가 쌓여 있었다고 한다. 이는 역사적 팩트로서도 확인된다. 특히 산업혁명이 이미 시작된 런던의 부(富)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는 점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인쇄술도 이미 15세기에 금속활자본을 찍어냈으니(우리보다는 늦지만) 책으로 요리 레시피를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터, 당시까지 현대 요리책이 없었다는 사실은 의아하다. '며느리도 안 가르쳐준다'는 요리법이어서인가.

이 책은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은 영국 현대 요리책을 처음으로 펴낸 일라이저 액턴이란 인물의 전기처럼 쓰였다. 이 소설 저자 애너벨 앱스에 따르면 이때는 요리책을 어떻게 쓰는지 아무도 몰랐다. 이 소설은 요리책이 쓰여진 것을 재밌는 상상력을 더한 픽션이지만 지금의 요리 레시피 책의 시초를 소재로 삼은 것은 분명하다. 저자는 일라이저의 요리 레시피 책이 쓰여진 후 많은 요리사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고 말한다. 특히 당시 요리책 집필자인 일라이저 액턴은 실존 인물이고,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앤 커비라는 인물과 함께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등 픽션을 가미했다고 밝힌다. 당시 일라이저 액텬은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시인으로 성공하진 못하고 현대 요리책이 성공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번 것은 상상력 범위 내의 일이다.

 


 

이 책의 저자 애너벨 앱스는 오늘날 최고의 역사소설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책의 뒷 부분에 「부록」으로 ① 작가 소개(애너벨 앱스를 만나다) ② 작가의 말 ③ 역사 속 이야기 ④ 등장인물과 공간적 배경 ⑤ 일라이저 액턴가의 레시피를 따로 첨부했다. 이에 따르면 앱스는 자신의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옛 요리책에서 일라이저 액턴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만났다. 앱스는 여성들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제약받은 시대에 통념의 벽을 무너뜨리는 독립적인 여성으로서, 그리고 시인이자 희곡 작가로서의 길을 걸은 일라이저의 삶이 남다르게 와닿은 데다 일라이저가 쓴 요리책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단연 발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일라이저 액턴이 레시피를 쓴 것은 거의 200년 가까이 지났지만 ‘젊은 가정주부’ 독자들에게 준 메시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되었다. 절약, 낭비 금지, 건강에 좋은 영양가 있는 음식, 간단한 조리법 익히기, 신선한 재료로 신중하게 조리하기, ‘다른 나라’에서 배우기, 모두가 먹을 수 있는 좋은 음식을 만드는 중요성 등은 19세기 중반 못지않게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의 집필이 시작되었다.

또 저자는 이 소설은 시인이자 선구적인 요리책 저자였던 일라이저 액턴의 생애와 그녀의 조수 앤 커비에 대한 서너 가지 사실에 기초한다고 밝히고 있다. 1835~1845년에 일라이저와 앤은 켄트 주 톤브리지에 살면서 최고의 현대 요리책을 펴냈다. 그 책은 당대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30년간 꾸준히 판매되었다. 일라이저는 후대의 요리사와 저자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었고 존경받았다. 영국에 요리 붐을 일으킨 1세대 요리사 델리아 스미스는 일라이저를 ‘영어권 최고의 요리책 저자’로, 음식 작가 빌 윌슨은 ‘위대하다’라고 평했으며 영국의 유명 요리 작가 엘리자베스 데이비드는 ‘의심할 바 없는 가장 위대한 영어 요리책’이라고 말했다.

 


 

일라이저 액턴의 요리책은 완성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1845년에 출판된 『현대 요리』는 몇 주 만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은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쓰인 최초의 요리책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일라이저의 가장 큰 혁신은 각 레시피의 재료를 나열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책은 최초로 정확히 측정된 재료의 목록을 담았으며, 이 개념은 이자벨라 비턴에 의해 확장되었고, 이제는 모든 요리책 작가가 규범처럼 따르고 있다. 『현대 요리』는 각 요리법에 재료의 목록을 포함시켰을 뿐만 아니라 조리 시간과 결과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관찰(Obs)’이라는 제목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비턴 부인이 일라이저의 레시피 중 3분의 1 이상을 표절했는가 하면, 일라이저가 생존해 있을 때에도 다른 이들이 도용을 일삼았다. 이에 그녀는 『현대 요리』 1855년판의 서문에서 ‘내 노고의 공과 이익을 냉혹하게도 타인들이 사취한다’고 비난했다.

일라이저의 이야기는 전례 없는 사회 변혁기에 펼쳐졌다. 초기 빅토리아 시대에 영국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산업혁명, 중산층의 부상, 거대한 부와 더불어 상상을 뛰어넘는 빈부의 격차,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촉발 등. 새로운 식재료가 시장에 넘쳐나고 중산층은 음식과 식사 시간을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또한 엄격한 청도교적 관습을 강요당하는 시대에 여성은 대부분 익명으로 남아 있었고 일라이저 같은 깨어 있는 여성만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애쓸 뿐이었다. 일라이저가 글을 쓴 시기에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분말 커스터드에서 수입 냉동육, 패스트푸드와 간편식이 등장했고, 그에 대한 반감(영양 부족에 대한)이 그녀의 요리책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소설은 더 풍요롭고 강렬한 맛이 나는 시대를 표현하고 서술의 흐름을 위해서, 일라이저가 요리책을 집필한 10년간 일어난 사건을 더 단기간으로 압축했다.

 


 

이 소설에서 또 하나의 축인 앤 커비는 일라이저와 10년간 매우 가깝게 지냈고 주방에서 함께 일했다. 그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고 별다른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현대 요리』 출판 이후 그녀가 갑자기 떠나버렸기 때문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1851년 인구조사에 ‘왕립 그리니치 병원’의 약제사인 홀아비의 하인으로 런던에 거주한다는 기록은 남아 있다. 따라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앤의 이야기는 그 기록을 일부 차용했을 뿐 대부분은 허구라고 저자 앱스는 밝히고 있다.

이 소설은 30대 중반의 숙녀 일라이저와 사춘기의 하녀 앤이 번갈아가며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이 소설은 다른 한 축으로 여성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시대적 통념에서 벗어나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 속에 빼곡히 박힌 여러 식재료와 입맛을 다시게 하는 요리들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일라이저와 앤을 둘러싼 이들과 남에게 쉽사리 내보일 수 없는 비밀들이,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레시피의 요리와 대비되면서 소박하고 대중적인 맛으로 와닿는다. 일라이저와 앤이 만들어가는 요리책 또한 일반 가정에서 구하기 쉬운 식재료로 정확히 계량하여 만들 수 있는 영양가 높은 음식 레시피를 목표로 삼고 여성의 자유와 독립적 지위, 창의적인 요리의 즐거움, 다양한 요리와 어우러지는 시와 삶에 대한 열정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단순히 요리(먹거리)를 즐기는 것을 일부 왕족이나 귀족, 또 신흥 계급만이 지닌 특권이라는 인식을 깨뜨리기 위해 요리책을 냈다는 견해는 역사 사실에서도, 이 책에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아 독자들의 상상력으로 대체될 것 같다.

 


 

소설에서 인용되는, 일라이저가 쓴 시들은 자신 속에 내재한 슬픔과 사랑의 고통을 여실히 보여주며 하나하나의 요리가 때론 든든한 위안이 되고 때론 극복의 과정으로 뜨겁게 달구어진다. 이는 저자 앱스의 소설 구성 능력에 따른 것이지 얼라이저의 시가 탁월한 문학적 소양을 말해주는 도구는 아니다. 아무튼 소설 속 인물 일라이저는 첫 시집의 성공에 한껏 기대하며 출판사를 찾아갔지만 시는 숙녀의 영역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요리책 집필을 요구받는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가 접한 아버지의 부도 소식과 뿔뿔이 흩어지게 된 가족들, 이사 후 어머니와 하숙집을 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요리책 집필, 그리고 집안과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늙은 남자와의 결혼, 이후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와 깊은 상념들. 아마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나 싶다.

정신병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전쟁터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10대 소녀 앤 커비는 미스 일라이저의 주방 하녀로 일하게 되면서 가난에 짓눌린 자신의 인생에서 가녀린 희망의 끈을 발견하고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며 성장해간다. 런던의 사교 클럽 주방에서 일하는 오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품게 된 요리사의 꿈, 신분을 뛰어넘은 일라이저와의 우정, 다채로운 레시피를 실험하면서 쌓아가는 요리 실력,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시련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더욱 굳건해지는 마음자세, 그리고 일라이저와 헤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함께 만든 요리책으로 이어지는 두 사람만의 각별한 관계 등은 소설적 구성에 힘입어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두 여성의 이야기가 유연하게 버무려지는 묘미 외에도 이 소설에서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신분과 배경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여성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시대에 두 여성이 주방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자신의 성취를 이루어나갔는지, 전통적인 요리책의 틀을 깨뜨리고 일반인을 위한 요리책을 어떻게 만들어갔는지 등이다. 또한 이 책은 저자 앱스가 당대의 시대상과 주방의 모습을 감각적이고 밀도 있게 그려냄으로써 어느덧 따뜻하고 정감 넘치고 두 여성의 손맛이 흘러넘치는 주방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소설 속에서도 귀띔하지만 당시 유럽의 귀부인들은 주방엔 얼씬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유모에게, 주방은 요리사에게 맡기고, 자신을 가꾸며 사교모임에 준비하느라 신경이나 썼을까 싶다. 여성 역시 남편의 소유물로 대우받고, 남편의 지위에 따라 여성의 삶도 결정되는 시대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어 점 때문에 일라이저 액턴은 그 당시의 통념을 다 깨부수는 여성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독자는 보고 있다. 더욱이 귀족 중에서도 예술을 사랑하고 문학을 알고, 멋과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영국의 특권층에 대항하기 위해 결국 요리책 속에 그녀의 시를 끼워 넣는 시도를 감행하기도 한다. 동료이자 하녀인 앤 커비를 통해 영국의 비참하게 사는 삶에 대해 알게 되고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고 잘 대우해 준다. 힘없는 자를 대변해주고 가난한 자들에 관대한 것이 유럽 문화에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른바 '영국 신사' '프랑스 관용(톨레랑스)' 말이다. 물론 앤 커비에 대한 일라이저의 보살핌은 여성들끼리지만.

 


 

이 책은 제대로 된 낭비가 없는, 선율이 흐르는 요리책을 만드는 여정이 그려진다. 그와 더불어 영국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국의 상류층 부인들은 요리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삶이었다. 프랑스의 요리사를 집에 두는 집들 또한 있었다고 한다. 영국 음식의 도태를 가지고 오지 않았나라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액턴 일라이저는 부인들이 읽고 음식을 만드는 행복하고 창조적인 기쁨을 다시 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또한 로맨스적인 분위기도 나온다. 푹 빠지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그렇지만 가볍지 않다. 역사의 진실을 아우르고 있으며 실존 인물의 삶의 흔적을 상상력을 가미해 풍부하게 구성했다. 영국의 역사 속으로, 영국의 음식들이 궁금하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나름 두꺼운 책이었는데 챕터가 짧고 사건의 흐름이 빨라서 좋았다. 분개하는 순간, 안타까운 순간, 마음이 찡한 순간들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저자 : 애너벨 앱스(Annabel Abbs)

영국의 소설가이자 작가.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위를, 킹스턴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6년에 출간한 첫 소설 『조이스 걸(The Joyce Girl)』은 칼레도니아 문학상, 바스 소설상, 2016년 웨이버턴 굿 리드상 후보에 오르는 등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고 현재 희곡으로 각색되고 있다. 2018년에 출간한 두 번째 소설 『프리다(Frieda)』는 여러 일간지에 소개되고 <타임스>의 ‘올해의 소설’로 선정되었다. 또한 2021년에 출간한 『바람이 닿는 곳 : 선구적인 여성들의 길을 걷다(Windswept: Walking the Paths of Trailblazing Women)』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장거리를 걸으며 야생에서 위로를 찾은 여성 여덟 명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은 작가가 물려받은 옛 요리책에서 찾은 일라이저 액턴의 초기 판본들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현재 브라운 재단 회원으로 런던에 살면서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있다.

 

역자 : 공경희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번역TESOL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서울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했다. 소설, 비소설, 아동서까지 다양한 장르의 좋은 책들을 번역하며 현재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드니 쉘던의 『시간의 모래밭』으로 데뷔한 후, 『호밀밭의 파수꾼』, 『비밀의 화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파이 이야기』, 『우리는 사랑일까』, 『마시멜로 이야기』, 『타샤의 정원』, 『엔조』 등이 있으며, 에세이 『아직도 거기, 머물다』를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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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 - 대한민국 클래식 입문자&애호가들이 가장 사랑한 불멸의 명곡 28
최지환 지음 / 북라이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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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0년간 매혹적인 명강의로 클래식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저자가 클래식을 감상하는 새로운 방법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미술, 문학, 영화, 와인 등 독자들이 친숙한 분야를 접목시켜 불멸의 클래식 28곡에 가까이 다가가 온전히 감상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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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환 지음 / 북라이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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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의 저자 최지환의 클래식을 만난 순간은 독자와는 완전 다르다. 그러나 클래식을 만나는 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인지, 클래식에 빠진 지점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일 뿐이다. 독자는 클래식을 오랫동안 좋아하다가 빠지기 시작한 것은 관심을 가진 지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에 비해 저자는 클래식과 사랑에 빠진 첫 순간의 강렬했던 감정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독자는 클래식과의 인연은 대학 시절부터다. 그때는 팝송, 포크송 등이 유행하던 때이고 클래식은 음악대학 학생들이 하는 전유물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팝송 포크송만 대학 내내 듣고 부르고 한 것은 아니다. 학교 앞 다방 같은 곳에서 강의가 빈 시간 휴식 겸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은 어김없이 클래식을 하루종일 들려주었기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 클래식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직접 콘서트나 초청 공연에는 엄두도 못낼 때였다. 비싼 티켓 때문이다.

저자는 클래식을 한 번쯤 마음에 품어 본 사람이라면 저마다 클래식과 사랑에 빠지게 된 첫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클래식과 만남의 순간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낸다. "첫사랑처럼 온몸과 마음을 사로잡아 밤새 잠 못 들게 했던 그 운명 같던 만남…." 어느 날, 벼락같이 불현듯 내 삶에 들어와 설렘을 선사하기도 하고, 삶의 역경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해일처럼 덮치는 날엔 지친 마음을 위로받기도 한다.

 


 

저자는 "하지만 왜 사람들은 클래식을 어렵고 지루한 ‘엘리트 음악’이라고 생각할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자. 동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에 한 번쯤 홀렸던 적은 없는가? 클래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계〉를 한 번쯤 들어본 적은 없는가? 심지어 피부과나 서점, 백화점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클래식이다. 이처럼 우리는 클래식에 알게 모르게 자주 노출되지만, 클래식과 나의 그 스파크 튀는 접점을 찾지 못해 클래식과 사랑에 빠지지 못한 것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독자가 그랬다. 그냥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지 강렬한 감정의 흔들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이후에 클래식을 듣다가 감정이 복받쳐 오른 적은 한두 번 있었던 것 같다. 클래식 음반 컬렉터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 최지환은 클래식 음악이 마음을 두드렸던 그 순간을 「음악의 속삭임에 마음을 열고 영혼이 숨을 쉰다」란 제목의 '저자의 글'을 통해 이렇게 표현한다.

"그것은 아마 제 고교 시절 예고 없이 찾아왔던 진실의 순간에 대한 잊지 못할 경험 때문일 겁니다. 그날 오후 어머니는 늦은 점심을 준비하고 계셨고 저는 거실에서 클래식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1980년 12월부터 클래식 음악 전문 채널로 변모한 KBS 제1FM은 의욕적으로 좋은 연주들을 찾아서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날 방송에서는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중략) 음악이 끝나고 나서도 심장은 계속 쿵쾅거렸습니다. 그 위대한 지휘자의 이름은 푸르트벵글러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습니다."(p.6~7)

 


 

이 책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은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세상에 거리를 두며 한 번쯤 음악의 속삭임에 마음을 열어보라고 지친 영혼을 안내하는 책이다. 살면서 우리는 욕망을 '쉬지 않고 휘둘러야 하는 양날의 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잘 쓰면 효과가 두 배이지만 잘못하면 자기 손을 베기도 한다. 자꾸만 불안하고 조급해지는 이 시대에 더욱 클래식 같은 고전적인 영혼의 양식이 필요해지는 이유다. 지금이야말로 ‘음악의 힘’이 가장 필요한 때이다. 저자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공감이 간다. 저저의 말대로 "클래식이란 게 완전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있어도, 한번 알게 되면 마침내 사랑하게 되고 더 알고 싶어지기 마련"인가 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도 몇 년간 무의미하게 무의식적으로 접하다 어느 날 콘서트장에 직접 가서 감상하다가 울컥했으니, 저자의 지적은 독자를 두고 한 말처럼 신기하게 잘 들어맞는다. 클래식에 진심이거나 클래식을 모르는, 누구든지 클래식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은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사전 주의를 준다. 수많은 악보와 음악가, 곡 등 평소에 익숙지 못한 것에 관심을 갖고 앞으로 계속 친분 관계를 지속하려면 세부적인 것보다 전체를 조망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먼저 보아라는 격언과 비슷한 조언으로 들린다. 클래식이라는 음악은 사실 생겨난 지 30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곡가의 수도 50명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독자도 깜짝 놀랐다. 너무 많고 외국 이름들이라 쉽게 적응이 안 돼 외우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복잡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단순성에 깜짝 놀랐고, 그 단숨함이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했는지 새삼 경이롭다는 생각이다.

 

 

이유는 클래식 음악의 경우 한 곡에 많게는 수백 종이 넘는 연주 음반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베토벤 교향곡' 5번(우리가 흔히 운명교향곡이라고 말하는 교향곡)의 경우를 보더라도 국내에 들어온 음반의 종류가 300종이 넘는다는 것. 이 책을 눈으로 읽고 귀로 듣고 음악과 교감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5성급 호텔에서 잘 차려진 최고의 만찬을 먹은 것처럼 충만한 만족감이 들 것이라고 저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멜로디를 듣는 것 이상의 일이라고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소리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며, 그 희열과 감격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범위가 넓지 않는 클래식 음악을 교양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저자는 교양 수준의 공부로는 진짜 음악을 들으며 겪을 수 있는 신비로운 경험들, 감동, 위로, 환희를 제대로 만날 수 없다고 밝힌다. 요컨대 교양 이상의 클래식 수준이 마땅히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 예술가들처럼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는 실제 연습이나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단순히 '많이 들어라'고 조언한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은 음악을 듣는 일에 여가 시간을 다 쓸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저자는 오랜 기간 음악을 들으면서 깨달은 방법과 주변 분들을 가르치면서 찾아낸 '지름길'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고 언급한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클래식의 끌림에 매료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 내용의 일부를 살짝 내비치기도 한다. "가장쉽게 음악을 이해하는 방법은 음악 듣기를 일종의 소통으로 생각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분야를 통해 접근하는 일이라고 지름길의 방향을 제시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나만의 창'을 통해 음악을 접하면 클래식 음악 역시 보다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클래식을 온몸으로 느끼다」, 2장 「클래식을 그림처럼 보다」, 3장 「클래식을 이야기로 읽다」 등이다. 이를 묶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저자의 말대로 소통의 방식이 될 것이고, 독자의 이해로는 '3다(多) 전략'이다. 독자가 새로 표현은 '3다'는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이 느끼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독자만의 방식으로 표현했으니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저자는 앞서 작곡가 50명의 300년의 짧은 역사를 이야기했듯이 이 책에서 등장하는 클래식 곡은 모두 28편에 불과하다. 거의 대부분 독자도 작곡가는 물론 제목도 들어봤고, 일부는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곡들이다.

저자 최지환의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선별한 명연주들로 구성하였기에 기대할 만하다는 책 소개글도 독자의 느낌으로는 부족하다. 클래식 입문자라도, 혹은 애호가라도 그 매력에 충분히 빠져들 만한 보물 같은 선곡과 곡 중심의 감상 포인트, 전체를 감상하는 법 등을 각 곡마다 정확한 지점을 설명함으로써 클래식에 대한 이해를 곁들일 수 있도록 씌어졌다.

독자들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좋다. 알던 곡은 새롭게 들리고, 모르던 곡은 절로 들어보고 싶어지도록 다양한 매력의 곡들이 잘 차려진 만찬처럼 소개되어 있다. 그러니 끌리는 감정대로 찾아서 읽어보고 저자의 섬세한 감식안으로 선별한 QR코드를 통해 서로 다른 연주자별로 연주되는 불멸의 명곡을 비교 감상해 보길 추천한다. 깊이 있고 품격 있는 해설과 클래식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매혹적인 명강의를 한 권으로 만나볼 특별하고 독창적인 기회다.

 


 

저자에 따르면 음악은 감정적인 예술이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일상적인 삶이나 이성적 사고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초월적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클래식을 ‘소리로 쓰는 시’라고 하는 이유는 음악이 인간의 내면을 어루만지고 감싸 안으며 치료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가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과연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영역에 바로 ‘클래식’과 시가 있다. 클래식은 시와 같이 운율과 구절이 있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통해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감정적 성숙이 이루어지고 내면을 다스릴 수 있다면 인격적 성숙도 자연스레 따라오게 될 것이다. 클래식이 주는 가치는 그뿐만이 아니다. 두뇌가 안정되고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해지며 감성지수가 향상된다.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생활의 활력이 되고 삶이 윤택해진다. 무엇보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를 극복할 힘을 준다.

이 책이 다른 클래식 교양서와 차별화되는 네 가지 이유을 책에 차근차근 씌어 있다. 클래식 입문자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단계적이고 쉬운 말로 쓰였다. ① 먼저 문학, 미술, 서예, 영화, 와인, 건축 등 우리 주변의 친숙한 분야를 클래식 음악에 접목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낙엽이 뒹굴 때 듣는 제철 음악’, ‘음악에도 마리아주가 있다’ 등의 흥미로운 주제가 가득하다. ② 저자의 재미난 입담으로 어려운 클래식을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전장에 울려 퍼진 베토벤의 울부짖음’, ‘BTS 이전에 정경화가 있었다’, ‘텍사스 시골뜨기가 쓴 반전 드라마’ 등의 글이 대표적이다. ③ 클래식에 대한 색다른 관점과 통찰력으로 음악을 감각적으로 풀어간다. ‘고양이로 둔갑한 바로크의 호랑이’, ‘입안에 흙먼지가 씹혀야 제맛이다’를 추천한다. ④ 지금까지 클래식 교양서에서 금기시하고 피했던 주제를 다루며 신선한 문제 제기를 한다. ‘꼭 들어야 할 명반인가?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할 똥반인가?’, ‘꺼이꺼이 운다고 슬픈 것은 아니다’ 등의 글에서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주제를 거침없이 다루고 있다.

 


 

이처럼 알수록 멋진 클래식 28곡을 친절하고 다정하게 소개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음악이 들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미처 몰랐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오늘 하루, 시끄러운 세상과 분리되어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에 오롯이 집중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더욱이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이 아닌가. 클래식 듣기 좋은 계절이다.

 

"와인과 음식에만 마리아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 역시 시나 소설과 좋은 마리아주를 형성합니다. 그 상호작용은 음악의 감정을 더 선명하게 하고 글귀의 표현들을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중략) 김훈의 『자전거 여행』 「꽃 피는 해안선」의 마지막 구절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라는 자연의 법칙에 대한 다소 무심한 언급은 마지막까지 생상스 소나타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매년 목련꽃이 피고 지는 봄날이 오면 자연스레 레지날드 켈의 생상스 음반을 들으면서 마리아주를 느꼈던 그날의 감동을 되새깁니다. 음악의 마리아주는 문학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과 가능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늘 가까이하며 지내다 보면 여러분도 이렇듯 우연히 음악의 마리아주라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p.137~140)

 

저자 : 최지환

 

45년간 클래식 음악과 함께한 클래식 음반 컬렉터 겸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격월간지 <스테레오 뮤직>의 필진으로 활동하며 클래식 음반의 리뷰와 비평을 연재했다. 대표적 리뷰로는 피에르 앙타이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보로딘 4중주단 <차이콥스키: 현악 4중주 전곡>, 할리우드 현악 4중주단 <쇤베르크: 정화된 밤> 등이 있다. 또한 건축가, 디자이너 등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이 들리는 강의’를 10년째 진행해 오고 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스트라디움 공연장의 클래식 공연기획을 맡아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클래식 공연기획 커뮤니티 ‘M.Ora’의 음악 감독을 맡아 한국의 클래식 공연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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