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 그 높고 깊고 아득한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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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순례』는 작가 박범신의 등단 50주년을 맞아 펴낸 두 권의 에세이 중 한 권이다. 저자는 산문집 『두근거리는 고요』와 『순례』를 한꺼번에 냈다. 온전히 새로 쓴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쓴 것과 지금 펴내려는 책의 성격을 감안해 합쳐서 손색이 없고, 오히려 깔맞춤이 되니 민망함이 다소 덜어진다는 저자의 고백(〈글쓴이의 말〉)을 듣고 보니 사실이다. 「산타이고 가는 길」과 「폐암 일기」가 새로 쓴 글이고, 히말라야와 카일라스 순례기는 삼분의 1로 압축해 끼워 넣으니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을 쓰기 위한 전편처럼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글쓴이의 말〉에서 저자는 자신의 지향은 '두근거리는 고요', 혹은 고요한 파동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목숨이 애당처 거기에서 왔을 터, 지난날 순례 또한 언제나 그를 좇아 걷는 일이었을 거라 말한다. 더러 에푸수수한 적도 많았으리라고도 털어놓는다. 여기서 '에푸수수한'이란 '정돈되지 아니하여 어수선하고 엉성한'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그조차 살아서 짐 지고 갈 부끄러움이라고 여기고 모두 용서하고자 했다.

이 책은 저자의 뜻에 따라 앞 두 개의 장(章)은 기존 발표한 글을 압축한 것이고 뒤의 두 장은 새로 쓴 것이다. 이 책은 4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 「비우니 향기롭다」, 2장 「카일라스 가는 길」, 3장 「그 길에서 나는 세 번 울었다」, 4장 「새로운 순례길의 황홀한 초입에서」 등이다. 1, 2장엔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사색 편지〉, 〈영혼의 성소를 찾아서〉란 부제가 붙어 있고, 3, 4장엔 〈산티아고 순례〉, 〈폐암일기〉란 부제가 각각 제목을 받치고 부연 설명한다. 독자는 이 책 『순례』에서 쓴 시기가 다른 것을 통해 저자의 나이듦을 느낀다. 히말라야 순례기는 힘이 있고, 의지가 불쑥불쑥 드러나는 반면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용기보다는 희망을, 미래보다는 회한을 자주 드러냄을 본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경쟁, 자학적 수준에 도달한 정신적 분열, 효율성의 구호 아래 일사불란하게 서열화를 이룬 생명의 가치, 실패하면 죽는다는 불안…. 저자의 마음 상태가 그렇다고 쓰는 말 같지만 사실 독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대충 이렇다는 생각이다. 육체와 정신이 서로 다른 곳을 배회하니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지경이지만, 이것만은 알겠다. ‘산다는 게 이건 아니지’. 저자는 걸핏하면 짐을 쌌다. 짐은 헐거웠지만, 가슴은 열망으로 가득했다. 초월에 대한 열망이었고, 신성에 대한 열망이었으며, 순수에 대한 열망이었다. 매년 떠난 히말라야에서 고산증으로 정신이 가물거리기도 했고, 킬리만자로 허리에 엎드려 울기도 했고, 캅카스산맥 삼나무 그늘이나 시베리아 자작나무숲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잠든 적도 있었고, 산티아고로 향하는 멀고도 텅 빈 길에서는 또 여러 번 울었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히말라야든 킬리만자로든 피레네산맥이든, 그곳이 돌밭길이든 진창길이든 길은 모두 같았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소용이 없으니 빨리 가고 늦게 가는 것이 별반 차이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위아래가 없고 사람과 당나귀 사이에도 높고 낮음이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을 뿐이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걷는 것뿐이다. 두 다리 외의 어떤 이동수단도, 편리를 제공하는 물건도, 시중을 들어 줄 사람도 없으며 오직 내 앞에 놓인 길만이 나를 도울 뿐이다. 그러니 이 길 위에 흐르는 존재들은 몸은 고될지언정 불안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영혼은 분열하지 않는다.

 

 

저자는 순례는 사실 걷는 게 아니다고 단언한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아득바득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길 위에 올라선 채 길이 흐르는 대로 나를 가만히 맡겨두는 일이다. 돌아올 날을 완주의 성취를 기약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먼 곳에서 바람으로 떠돌다가 혹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영영 잃어버리더라도 주저하지 않는 것, 그것이 흐르는 길에 대한 예의이며 참 순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생도 그렇다. 인생도 결국 하나의 순례이니까. 열심히 살았다는 표현일 터다. 열심히 글을 썼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작가니까. 아등바등하지 않았지만 한날 한시도 허튼 일로 시간을 허투로 보내지 않았다는 자기 만족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저자는 순례길에서 또 다른 삶의 지혜를 얻어낸다. 어쩌면 진리일지도 모른다. "길 위에선 아무도 가면 뒤에 숨을 수 없고, 누구도 불안에 떨지 않는다." 자신이 본래 그 텅 빈 본성으로부터 걸어 나왔다는 충만감으로 마음속이 환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숨결을 정밀하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으며, 자신의 숨결이 본래의 자신과 일치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는 마치 자신 안에 깃든 신이 숨 쉬는 것만 같다. 살을 파고드는 배낭끈이 속살 자체가 되는 듯한 고통마저 신비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비로소 ‘고통은 업장을 쓸어내는 가장 커다란 빗자루’라는 말을, 뜨겁게 고통을 바친 순례자들의 비밀스런 축복을 알 것만 같다.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 순례길을 걷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온 사람은 거의 같은 느낌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폐렴을 얻었고 돌아와 폐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까지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이 그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묵묵히 병고의 순례길을 걸었다. 흩어진 마음을 모아 진심 어린 기도를 드리며…. 〈산티아고 순례길〉이 병을 얻는 길이 되고 말았지만 저자는 개의치 않는다. 물론 후회하지 않는다. 삶의 한 길이었고, 병을 얻은 것도 살다가 죽기 전까지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다.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해도 순례길을 후회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니고, 다른 순례길 혹은 아예 칩거했어도 결과는 죽음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순례길에서 얻은 삶의 지혜이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고 해도 사랑하는 이여, 나의 죽음을 결코 차갑게 여기지 마소서. 내가 태어날 때와 내가 죽을 때를 구별하지 마소서. 혹 슬플지라도 ‘환하고 따뜻한 슬픔’으로 나를 느끼소서. 내 평생 따뜻한 물로 흐르며 살기를 간구했으니, 갓 낳은 달걀을 두 손으로 쥐었을 때처럼, 탄생처럼, 죽음으로 떠나는 나의 영혼도 부디 따뜻한 파동으로 느끼소서.”

저자의 아내에 대한 심정을 글로 옮긴 것이다. 죽음에 초연하고 의연하지만 나를 사랑한, 내가 사랑한 아내에 대해서는 한없는 연민이 가는 모습이다. 꼭 아내가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누구에게나 같은 마음을 느끼리라 독자는 생각한다. 인간 박범신의 모습이니까. 어쩌면 사랑하는 아내는 물론 독자들에게도 마음을 전하는 글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저자의 말이 독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라는 독자의 추측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이 책 1장 「비우니 향기롭다」 중 다섯 번째 글 〈우유의 강을 건너면서〉에서 "작가이므로 그때 우리의 욕망은 모두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겠지만, 그러나 작가 생활 수십 년을 해왔는데도 솔직히 나는 좋은 소설이 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좋은 인생'이 뭔지 모르는 것처럼요. 아니, 글쓰기가 나의 정체성에 따른 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삶의 환경에 따른 우연의 발현으로 시작된 것인지도 나는 알지 못했습니다."며 익명의 K형에게 편지 형식을 글을 쓴다. 이어 저자는 작가로서 다루어야 하는 '인물'의 사유와 감정이 세계의 모든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야 나의 소설 쓰기는 시작됩니다. 고유성과 보편성의 두 마리 토끼를 한 손으로 잡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고유하다고 믿었던 것이 어떤 독자에게는 상투성으로 읽히고 내가 보편의 진리라고 암시했던 것이 어떤 독자에게 가짜 담론으로 치부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오해와 오류는 필연적이지요. 그 오류를 넘어서고자 더 많은 문장과 수사를 동원하고, 더 많은 수사를 동원하면 할수록 더 깊은 오해와 오류에 빠지는 오류의 반복이 내 작가 생활의 전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성찰한다.

이곳에서 저자는 사색을 통해 문장이불러오는 오해와 오류의 함정이 독자와 나 사이에 언제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고통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오해와 오류의 함정을 피해를 피해 그리운 당신들에게 갈 수 있을까요. 그런 길이 있기는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올려다보고 있는 저 설산들과 나 사이엔 아무런 오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설산들과 최상의 정직성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p.35)

 


 

저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길'에 대한 사유는 인상적이다. 저자가 본 길은 늘 두 갈래다. 세상이 가리켜 보여주는 보편적인 길을 눈치껏 살피면서 가장 무난한 길을 선택해 걸어갈 수도 있고 자신의 정체성에 따른 특별하고 고유한 길을 선택해 걸어갈 수도 있다는 게 저자의 시선이다. 보편적인 길을 따라 무난히 걸으면 안정적이지만 무미건조하고 쉽고, 정체성에 따른 고유한 길을 선택하면 존재의 의미는 얻을지 몰라도 위험하거나 세계로부터 유리돼 고독하다. 순례길에 들어선 지 한 달여, 길가 카페의 와이파이에 의지해 서울의 친구들 모임인 단톡방에 들렀는데 서울의 풍경에 아연실색한다. 도로를 점령한 시위대의 스크럼과 피켓들, 그리고 답답하게 차들이 정체된 거리들이 두서없이 저자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늘 봐왔던 풍경이라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으리라. 그런데 이곳(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들으니 '시위'라는 말 자체가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스크럼과 피켓의 풍경은 우리만 가진 긍정적 역동성의 한 상징인가, 아니면 불안한 미래의 현몽일까.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선 주말이면 사람들이 집단으로 도심으로 몰려나와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추는 모습을 흔히 연출하는데, 시위가 아니라 축제가 일상적이라는 데 이질감이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의 국민소득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유럽에선 겨우 중위 그룹에 속한다. 한때 제국으로서 세계를 경영했던 스페인 아닌가. 오늘날 스페인은 자학적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낙천적인 정서와 자유로움은 한껏 올라간 느낌이다. 저자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자주 만났던 회한은 '그것'이었다고 밝힌다. 욕망에 사로잡혀 원하지 않았던 소모적인 일에 낭비한 시간들. 남의 행복을 들여다보고 질투하는 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을 소비하는가. 내 중심의 잣대로 남을 재고, 남을 비판하는 데 복무한 시간은 또 얼마나 긴가. 단지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알량한 승리감에 따른 가짜 자부심을 얻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이나 잔짜 하고 싶은 말을 줄기차게 참거나 뒤로 미루면서.

 


 

어스레한 삶의 뒤란에서 당신 역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무엇인가를 떼어 내주며 살아왔다는 거, 알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늘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며 순하게 웃는 당신, 당신은 참 놀라운 사랑이에요.(p.306)

 

저자 : 박범신(朴範信)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78년까지 문예지 중심으로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ㆍ단편을 발표, 문제작가로 주목을 받았으며, 1979년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등을 발표, 베스트셀러가 되어 70~8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밀도 있게 그려낸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작품 중 70년대와 8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은 폭력의 구조적인 근원을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또한 도시와 고향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립구조를 통해 가치의 세계를 해부하려는 시도로 인해 대중작가라는 곱지 않은 평을 듣기도 했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93년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문학과 삶과 존재의 문제에 대한 겸허한 자기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사유의 공간으로 선택한 곳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멀게 느껴지던 히말라야였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를 여섯 차례 다녀왔으며 최근에는 킬리만자로 트레킹에서 해발 5895미터의 우후루 피크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1996년 유형과도 같은 오랜 고행의 시간 끝에 [문학동네] 가을호에 중편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재개한 후 자연과 생명에 관한 묘사, 영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 세계로 문학적 열정을 새로이 펼쳐보이고 있다. 명지대 교수, 상명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비우니 향기롭다』는 더욱 더 소유하고자 하는 물질 만능주의 현실에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안내서이다. 내면의 깊이가 더욱 확장된 저자가 히말라야에서 깨달은 바는 진정한 삶의 행복은 가지려는 마음보다 비우려는 마음에 있다는 것. 이는 바로 불교 철학의 '무소유'와 직결된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만 살아가는 기쁨이 더 줄어든 시대.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소설은 또 무엇인가. 젊음이란 무엇이며, 늙음이란 또 무엇인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풀어내는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은 최근에도 『비즈니스』, 『빈방』, 『외등』, 『힐링』,『소소한 풍경』등을 발표하며 꾸준히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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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 우린 애초에 고장 난 적이 없기에
알리사 지음 / RISE(떠오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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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는 제목이 엣날 민간에서 쓰는 격언처럼 느껴지지만 최근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가스라이팅'을 다룬 에세이다. 저자 알리사는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 그리고 연인에게서 극심한 가스라이팅을 경험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각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우울증과 공황발작까지 겪으며 수년이 지난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가스라이팅을 역이용해 진정한 나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러한 경험을 SNS에 공유해 4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가스라이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엄청나게 어렵지만 분명히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가스라이팅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와 그 경험을 공유하는 인플루언서로서 성공한 긴 여정을 이 책을 통해 공개한다.

저자는 직장에서 심각한 수준의 가스라이팅을 당해왔다. 상사가 지시한 일을 하면 항상 그게 잘못됐다고 지적하며 두 번, 세 번 반복해 일을 시켰고, 기억과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모든 일에 대해 불안하고 확신이 없어서 끊임없이 자신을 억압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인은 상사의 가스라이팅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식하고 나자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존감을 되찾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그러자 상사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터는 본색을 드러냈다.

 


 

우리는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넘쳐나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현대인의 사회적 삶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 속에서 개인은 인지도 하지 못한 사이 "직장 생활은 으레 그런 것" 하면서 넘기기 일쑤인 것이 상사와의 관계에서 두드러진다. 상사와 개인은 업무상 맺어진 관계이지만 거의 하루종일 한 공간에서 일한다. 설령 외근직이라도 결국은 같은 목표를 갖고, 같은 일을 하는 사이이기에 언제든지 마주한다. 둘의 사이는 대개 명령과 복종으로 이루어진다. 상사의 개인적 성격 때문이든 업무상 불가피한 일이든 한 공간에 있을 때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이어진다. 자칫 대립 관계로 발전하면 둘의 관계는 극도로 나빠질 수도 있다. 물론 '직장을 그만 두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삶의 바탕이 되는 직장을 상사 탓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가스라이팅은 이런 관계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가스라이팅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가스라이터는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스라이팅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했다.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가스라이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많은 사람이 가스라이팅의 징후를 알고 자신 같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면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 수 있도록 책을 썼다. 가스라이팅은 우리 정신을 공격해 영향을 미치며, 회복하는 데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한 심각한 문제다. 저자는 지금도 누군가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에게 거기서 벗어나라며, 용기를 내라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시사상식사전〉은 지적하고 있다. 사전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은 가정, 학교, 연인 등 주로 밀접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수평적이기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이뤄지게 된다. 거부, 반박, 전환, 경시, 망각, 부인 등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고, 이로써 타인에 대한 통제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정신적 학대의 한 유형으로, 친구·연인·가족 등 친밀한 관계는 물론 학교나 직장 등에서 주로 발생한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피해자의 자존감과 판단 능력을 잃게 만들고,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정신력이 약해진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 특히 가해자는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가스라이팅을 진행하기 때문에 피해자 대부분은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가스라이팅은 1938년 패트릭 해밀턴 작가가 연출한 스릴러 연극 〈가스등(Gas Light)〉에서 유래된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 용어이다. 이 연극은 잭이라는 남성이 자기 아내(벨라)를 억압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잭이 보석을 훔치기 위해 윗집의 부인을 살해하면서 시작된다. 이 보석을 찾기 위해서는 가스등을 켜야 했는데, 이렇게 하면 가스를 나눠 쓰던 다른 집의 불이 어두워져서 들킬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잭은 집안의 물건을 숨기고 부인인 벨라가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몰아간다. 잭이 보석을 찾기 위해 가스등을 켤 때마다 벨라가 있는 아래층은 어두워지고, 벨라가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잭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내를 탓하는 것은 물론 정신병자로까지 몰아세운다. 이에 아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인지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남편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

 

 

이 연극은 1940년 영국에서 먼저 영화화됐고, 1944년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를 통해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이 영화는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인 앨리스가 살해된 뒤 그녀의 유일한 상속녀인 조카 폴라가 청년 그레고리와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그레고리와 결혼한 폴라는 앨리스에게 물려받은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는데, 그레고리는 이후 갖가지 구실을 붙여 폴라의 외출을 막는 것은 물론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몰고가기 시작한다. 사실 그레고리의 정체는 앨리스의 살인범으로, 그는 앨리스가 지니고 있던 유명한 보석을 가로채기 위해 폴라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그레고리의 교묘한 속임수로 폴라는 자신이 사소한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남편의 시계를 훔치고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여기게 되고, 점점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되어간다.

그렇다면 가스라이팅은 이겨낼 수 없는 것일까? 저자는 '아니다'라고 답한다. 자신이 직접 직장에서와 남자친구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이젠 이를 벗어났다고 전제한다. 여러가지 극복 방법을 나름대로 병원 치료와는 별도로 홀로 감행했다. 이 책에도 나중에 방법을 친절히 그리고 개인적 특성에 맞게 실천해볼 것을 주문한다. 가스라이팅을 당한다고 인지하면 보통 상대방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다고 이야기를 하기 쉽다. 물론, 가해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기에 상대방이 원인인 건 맞다. 하지만 누군가가 "네가 그걸 어떻게 한다고 그래? 너한텐 그런 능력이 없어"라고 무시할 때, "맞아,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지"라고 포기하는 건 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때 저자가 제시하는 대응책은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을 할 때 "그 말이 맞아"라고 받아들이는 게 아닌, 상대방이 한 말에 반대로 행동을 하면 내 삶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가스라이터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2장 「세상으로부터 빼앗긴 나를 되찾는 방법」, 3장 「가스라이팅을 역이용해보자」, 4장 「가스라이팅으로 성공한 사람들」, 5장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간다는 것」 등이다. 저자는 책을 출간한 후 가진 예스24와 가진 인터뷰에서 "글을 쓰면서 하는 생각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나와 같은 경험을 하며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바라고, 두 번째는 이 책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1%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을 쓰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세상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들어야 했던 폭언과 가스라이팅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매뉴얼대로 살지 않아도 나만의 삶을 꾸려갈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저자는 내 삶을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알리고 싶었다 주장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이러한 메시지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꾸준히 책을 쓸 예정이며, 독자들과 더 가까이서 소통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도 꾸준하게 운영할 것이라고 밝힌다. 그 과정에서 어떤 노하우들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도 강의로 알리는 활동을 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가해자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저 사람은 나를 왜 이렇게 괴롭힐까?',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하든 당하는 피해자가 이해해 줄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그 에너지를 오히려 자신에게 집중시기라고 조언한다. 저자의 경우 가장 크게 도움받은 것은 '독서'와 '글쓰기'였다고 밝힌다.

 


 

저자는 〈가스라이팅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역시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저자는 "착하게 사는 것은 결코 좋은 삶이 아니다"라며 진짜 좋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를 존중하고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듯이 타인의 생각도 인정하고 수용해주는 사람이란 전제로 출발한다. 가스라이팅에 대처하는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① 나에 대한 확신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② 내가 가진 생각, 계획, 가치관에 대해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③ 가스라이팅 하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어야 한다. ④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어떤 결과를 얻든 모든 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의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뼈를 때린다.

"세상은 온통 방해꾼들 투성이다. 내가 잘되는 것보다 잘 안 되길 바라는 사람이 더 많다. 사람 본능이 그렇다. 나보다 빠르게 앞서 나가는 것을 100퍼센트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만은 없다. 이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받아 들이면 그 어떤 오지랖에 시달려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을 하는 것은 나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다. 자기보다 잘나가는 게 싫어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p.274~275)

이 책의 4장 「가스라이팅으로 성공한 사람들」에서 사례로 든 사람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삶의 영감을 주기에 독자로서도 감명 깊게 읽을 수 있었다. '흙수저에서 천억 부자로-페트릭 벳 데이비드,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는 걸 인정해-빌 게이츠, 나를 밀어주는 사람이 한 명은 꼭 있다-2천억 자산가 켈리 최,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되게 만드는 게 진짜다-스티브 잡스, 열정만으로 왜 안 돼? SNS 인플루언서 게리 바이너척, 나를 사랑한다면 그까짓 가스라이팅-오프라 윈프리 등이 등장해 가스라이팅 경험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과 과정, 그리고 극복한 후의 결과 등을 사료 조사를 통해 연구함으로써 가스라이터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실증예로도 사용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맞서 싸운 것이 가스라이팅을 역이용하는 방법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이겨내는 중이었지만, 이대로 하는 게 맞는 건지 확신이 필요했다. 이제는 정말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독하게 공부하고 변하기로 결심했다. 정말 가스라이팅을 당하고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인지, 노력만 하면 이겨낼 수 있는 것인지 좀 더 명확한 근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난 11개월 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하고도 이겨낸 사람들의 성공담을 공부했다. 그렇게 알게 된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넌 안 될 거야”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는 것,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게 시작했다는 것이다.(p.209~210)

 

저자 : 알리사

 

대학교 졸업 전부터 취업에 성공하여 10년 동안 남들처럼 평범하게 회사생활을 했다. 온전한 나를 찾기 위해 수차례의 이직 경험과 외국 거주 경험이 있다. 다양한 근무 환경 속에서 직장 내 가스라이팅을 겪으며 나를 잃어보고 나서야 내 삶의 기준을 만들게 되었고, 깨달은 정보를 세상에 공유하며 나답게 일하게 되었다. 하루 100페이지 독서 습관으로 1년도 안 되어 인생을 180도 변화시켜 백수에서 1인 사업가로 성장하는 중이다. 읽은 책에서 최소 1개의 문장씩은 무조건 실천하며 인생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현재는 매월 100명의 사람들과 습관 모임을 함께하며, 나다움 글쓰기 클래스를 운영 중이다. 인스타그램에서는 10년간의 직장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직장 내 괴롭힘, 가스라이팅, 공황장애)과 나다움, 실천 독서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며, 유튜브에서는 세상에 나의 스토리를 알리고 나답게 사는 법을 공유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유튜브 @bookstar_alyssa

블로그 https://blog.naver.com/unhoonwon

이메일 happy_alyssa@naver.com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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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 다시 돌아가 널 살리고 싶어
우대경 지음 / 델피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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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년의 나이가 된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들어가면 선생님으로부터 '효(孝)'에 대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효의 기본은 당연히 성공해 편안하게 잘 사는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로 늘 선생님의 훈시를 들었다. 그러나 '효'는 부모의 바람이지만 부모가 강요하듯이 직접 가르치지는 않는다. '몸과 마음을 다해 부모를 섬겨라' 하는 것이 유교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부터 이를 가르쳤다고 하니, 누구든지 부모에서 효도해야 한다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고, 마땅한 일이었다. 이는 사회 윤리로 자리잡고 법에서도 이를 감안한 많은 조항이 생겼다고도 들었다. 서양의 경우 '효'에 대해 우리처럼 선생들이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당연한 규범이고 의무로 생각지는 않은 것 같다. 서양에는 '효'라는 단어가 없다는 말도 들었다.

그렇다면 반대의 개념인 가장 큰 불효는 무엇일까? 불효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부모는 부모 앞에 먼저 죽는 일이라고 했다. 아니 그렇게 배웠다. 어려서 한학이나 천자문을 배울 때, 이를 테면 조선시대에는 몸, 머리카락, 피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먼저 죽는 것은 가정하기 싫을 정도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부모에게 가장 큰 슬픔을 안기는 일이다. 그래서 조선시대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야 학교에서 이런 효도니 충성이니 하는 삼강오륜을 따로 가르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 중심의 사회에서 너무 당연한 일이고,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 굳이 학교에서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일까?

 


 

이 책 『그날로 다시 돌아가 널 살리고 싶어』는 학교 폭력, 그중에서도 '범법 소년' '촉법 소년'의 범죄를 다룬다. ‘촉법 소년’은 형벌을 받을 범법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로, 형법 제9조에서 ‘14세가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형사책임능력이 없기 때문에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더라도 형사처벌을 하지 않고, 가정법원이 소년원으로 보내거나 보호관찰을 받게 하는 등 ‘보호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에서는 처분 규정도 두고 있는데, 촉법 소년은 ‘소년법’에 따라 소년보호재판을 받게 되며, 이를 통해 ‘보호처분’에 처해진다. 보호처분은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하여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자에게 감호 위탁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 ▷보호관찰관의 단기 및 장기 보호관찰 ▷아동복지시설이나 그 밖의 소년보호시설에 감호 위탁 ▷병원, 요양소 또는 의료재활소년원에 위탁 ▷1개월 이내의 소년원 송치 ▷단기 및 장기 소년원 송치 등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러한 소년의 보호처분은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또 소년법에서는 ‘19세 미만의 자'를 소년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소년범은 연령에 따라 범법 소년(만 10세 미만), 촉법 소년, 범죄 소년(14세 이상∼19세 미만) 등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만 10세 미만의 범법 소년의 경우 아직 어려서 일체의 법적 처벌이 내려지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이 연령 제한을 더 낮추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높아가는 것 같다. 이 소설은 14세 미만인 '촉법 소년의 살인'을 다룬다. 주인공 은서는 14년 촉법 소년에게 무자비한 행위로 아들을 잃는다. 살인자 문종오는 만 14세 미만의 촉법 소년으로서 어떠한 범죄를 저지르든지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한다. 이에 따라 은서의 아들 지혁을 죽이고도 처벌받지 않는다. 아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야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대부분 알 것이다. 평생이 지옥이지 않을까 싶다.

 


 

은서에게 살인자의 친구 형태가 찾아오고 낡은 일기장을 내민다. 거기에는 13개의 메모 형태의 짧은 일기(?)가 있고 그 일기를 읽을 때마다 그 순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살인자의 친구 성태의 모습으로. 그렇게 해서 아들을 죽인 문종오를 막기 위해 엄마 은서는 과거로 돌아간다. 일기장에는 모두 13개의 메모가 있는데 문종오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의 일기와 저지르던 날의 일기, 그리고 그 후의 일기로 이루어져 있다.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은서는 그때 그때 아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날로 돌아간다. 가장 쉬운 방법은 과거로 돌아가서 살인자를 아예 죽이는 일이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때마다 새하얀 빛이 나면서 현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매번 과거로 돌아는 가지만 상황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된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고통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저자 우대경은 창자를 끊어내는 듯한 아픔과 슬픔을 표현하는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말한다.

출판사 측은 부모를 잃은 사람을 이르는 '고아'라는 단어가 있는 데 반해, 자식을 잃은 부모를 이르는 말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라며, 가까운 단어 참척(慘慽)이란 표현을 찾아 설명한다. 그러나 '참척'도 자손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을 뜻할 뿐 자식을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단어 중 어떤 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 그 슬픔의 깊이가 얕음을 의미하지는 않을 터. 참척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하지 않아도 뚜렷이 공감할 수 있는 몇 가지 슬픔 중 하나이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말 그대로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일 것이다.

 


 

이 소설 작품에서는 이런 슬픔을 간직한 주인공을 소설의 전면에 내세운다. 그렇지만 작품은 온통 슬프고 아프기만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금방 손에 잡힐 것 같던 희망이 모래알처럼 흩어지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과 마주하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길을 만들고 희망을 이어가는 이야기다. 역경을 이겨낸 주인공의 복수를 더욱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악을 악으로 처단하지 않고, 악을 법으로 응징한다는 것.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한 범죄자에게 법을 이용해 마땅한 벌을 받게 만드는 서사는 실정법에 따라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저자는 이 책 초반부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지나가듯 복선을 슬쩍 내비친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찰나의 순간으로 은서가 모두 보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패를 다 보여준 셈인데, 구성의 묘라고 할까, 아니면 복선에 그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 읽고 난 후에 판단할 일이다. 처음에는 미스터리하게 보이던 일기장의 문장들과 설정들도 사건이 진행될수록 딱딱 맞아 떨어진다. 작가가 단순히 상상력만 발휘한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스토리 구성을 유기적으로 잘 맞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시공간에서는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를 다녀오는 등 시공간을 초월하는 일이 상상 속에서 빈번이 일어나지만 독자들의 설득력을 얻으려면 유기적 구성이 필수적이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일이나 사건은 우연으로는 가능하지만 필연이 동반되지 않으면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에는 실패할 터이니 저자의 구성력이 이를 만회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흥미와 카타르시스는 공감하는 독자들의 몫이지만. 어느 정도의 재미와 쾌감을 선사하는 것 같다. 소설 전개상 갈등 부분도 뚜렷하다. 은서는 어떻게든 돌아가서 죽음을 막고 복수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뜻대로 일이 진전되지는 않는다. 이로 인해 독자들의 시선을 더 잡아끄는 것으로 이해된다.

 


 

작가는 소년법을 악용한 촉법 소년의 살인이라는 무겁고 조심스러운 소재를 퍽 과감하고도 섬세하게 다뤘다는 게 출판사 편집진의 전언이다. 이에 따르면 아들을 잃은 엄마의 마음을 애절하고도 아련하게 새겼고, 소년법을 악용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은 고통이 지면을 통해 느껴질 정도로 실감 나게 표현했다. 끝내 통렬한 응징과 복수로 향하는 길을 더없이 통쾌하게 그렸다. 허투루 버릴 것 없는 대사와 치밀한 스토리는 수많은 복선을 내포하고 있어 내내 몰입하게 만들면서도, 작품 새새 따뜻함과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에 가서는 기어코 독자의 예상을 뒤집고 마는 반전을 선사해 책장을 덮을 때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게 한다. 이 소설은 장르소설의 실험적 정신, 판타지 문학의 즐거움과 환상적 느낌, 그리고 카타르시스가 있는 작품의 전개와 갈등, 반전, 결말의 완벽에 가까운 구성력으로 한층 돋보인다. 속도감 넘치는 전개, 예측불허의 반전, 매혹적인 상상력은 판타지 문학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이다.

이 소설은 촉법 소년에 대한 기준이 오래 전 제정된 채 이후 개정되지 않아 오늘날 촉법 소년의 연령을 더 낮추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에 시사하는 바 크다. 인터넷 등으로 너무나 많은, 아직은 배워야 할 게 훨씬 많은 아이들이 법의 허술한 부분을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악행을 하고 나서도 죄의식이 없다는 것은 여론에 힘을 실어주는 현상이다. 학교 폭력의 수위도 점점 올라가고, 연령도 크게 내려가 초등학교에서도 학교 폭력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은 사회가 그만큼 어지러워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렇다고 소수의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혹시 모를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내지 말아야 한다는 법의 정신을 함부로 폄훼할 수도 없는 입장이니 신중하게 고려해 적절한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론은 이미 농익은 것 같다.

 


 

이 소설이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 소설로 쓰였지만 우리 사회가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를 짚어내는 또 다른 취지가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독자 혼자 만의 생각은 아닐 터, 소년 범죄에 대해 사회 지도층의 신중한 고려를 촉구하는 의미로도 읽힌다. 소설 속 종오가 그렇듯이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미성숙한 상태의 아이들이 저지른 범죄라고 해서 오래된 법으로 사회 분위기를 설득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법을 악용한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의 범죄인데 이는 법의 처벌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만 적절한 대책이나 법 개정을 요청하는 이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게 독자의 생각이다.

 

에리는 그가 문종오임을 알았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서웠다. 너무 평범했기 때문이다. 사람 셋을 죽인 살인자는 좀 더 괴물 같을 줄만 알았다.(p.293)

“교활한 토끼는 굴을 여럿 가지고 있는 법이거든요.”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른 에리가 활짝 웃었다. 은서가 힘겹게 따라 웃으며 에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p.313)

 

저자 : 우대경

 

부산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낮에는 아이들과 뛰놀며 배우고, 밤이면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상상을 즐기고, 상상이 문장이 될 때 설렌다. 지은 책으로는 장편소설 『죽어도 죽지 마』 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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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킴의 거침없는 중국사 - 신화시대부터 청나라까지 영화처럼 읽는 중국 역사 이야기 썬킴의 거침없는 역사
썬킴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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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썬킴의 거침없는 중국사』는 중국의 역사를 이야기하듯이 말해준다. 흔히 말하는 '스토리텔링'의 중국사다. 스토리텔링이 되려면 말 그대로 극적인 부분들이 이어져 내려와야 한다. 이에 중국 역사는 스토리텔링으로 말하기에도 제 격이다. 왕조가 바뀔 때의 극적 전환은 물론 새 왕조가 들어서 번창하기까지 이야기가 풍부한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흥망은 고대국가부터 전쟁이 중심에 있다. 전쟁을 빼놓고는 옛 국가들의 흥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미건조할 뿐만 아니라 왕조 교체의 설득력 있는 공간을 빼놓은 셈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략 5,000년을 이어온 문명국가다. 신화시대부터 마지막 왕조 청나라까지 중국사를 한 권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정통 역사 서술로는 어려운 일이다. 이에 저자 선킴은 스토리텔링의 방법을 동원해 중국 역사를 한 권으로 정리했다. 한 권으로 정리가 가능했던 것은 어쩌면 저자의 화술(문장력)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그는 역사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을 이미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추천사를 쓴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흥미로우면서도 거침없이 역사의 장면들을 써 내려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세계사에 이어서 이번에는 중국사를 내놓았다. 광활한 영토와 오랜 역사를 보유한 중국 역사의 핵심 키워드는 분열과 통일이다. 저자는 이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면서 방대한 역사를 거침없고도 쉽게 정리해 나간다"고 평가했다. 또 탁재형 다큐멘터리 PD(여행 저널리스트)는 "이야기의 보물창고인 중국사에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그 방대함"이라고 전제하고, "맛있는 부위로만 쏙쏙 발라내어 소화하기 편하도록 맛있는 양념까지 쳐서 구워주는 조리기능장"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고 찬사를 보냈다.

 


 

우리나라도 중국 역사와 긍정과 부정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국경을 맞대고 5,000년간 이웃해 왔기에 때로는 밀월 관계를, 또 한때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다. 경쟁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 인연과 악연을 거듭하며 관계를 유지한 셈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한국사를 공부할 때 필연적으로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은 어쩌면 중국인보다 중국의 역사를 더 잘 아는 민족도 없을 것이란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사실 중국사를 별도로 배우는 사람은 사학자나 동양사학자, 그리고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 이외에는 별로 없을 것이다. 독자도 역사학을 공부하지 않을 사람으로 중국사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 역사를 공부할 때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중국에 대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한반도 역사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대륙의 나라로 이합집산의 역사를 갖고 있다할 만큼 어지러운 역사를 헤치고 오늘날까지 이어온 나라다. 나라 이름만 들어도 골치가 아프지 않은가? 다행히 우리가 오랫동안 한자를 써왔기에 그나마 익숙한 문자라서 이해도가 더 빠르겠지만 그 많은 나라의 이름과 역사를 일일이 기억하기엔 쉽지 않을 터다. 또 인구도 세계 최다의 나라인 만큼 역사상 중요한 사람의 이름만 외우는 것도 만만치 않고 결국 짜증나 그만 둔 사람도 많을 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저자 썬킴이 이 책을 썼다. 이 책이 들려주는 중국사는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완전히 색다른 스타일의 역사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쉽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설명해주기 때문에 더 친근감도 든다. 저자는 이 한 권의 책에 중국의 신화시대부터 청나라까지 쉼 없이 내달린다. 이보다 더 재밌는 중국사 책은 없을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중국사 책들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책을 보고 중국사를 공부했지요. 그러나 대부분이 솔직히 너무 어렵게 설명되어 있어요. 그렇기에 이 책은 중국사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 그리고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하시려는 분들을 위해 썼습니다. 이것 하나는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중국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우리와는 역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요.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요." 저자가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의 역사 꿰뚫기」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한 말이다.

저자는 이 책 한 권에 5,000년 중국사를 담으려 구성에도 신경을 많이 쓴 듯하다. 모두 6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 「신화의 시대」, 2장 「춘추전국시대」, 3장 「역사 속 초한지, 그리고 삼국지」, 4장 「분열의 중국 대륙」, 5장 「돈으로 산 평화 그리고 몽골의 원」, 6장 「명나라와 대퓩을 차지한 만주족」 등이다. 중국의 신화시대는 BC 170만~BC 8,000년에 해당된다. 말 그대로 신화의 시대이고 문자가 없어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았지만 인류 등장과 함께 중국의 역사는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처럼 구전으로 전해내려 온 것일뿐 엄밀한 의미의 역사에는 포함되지 못하지만 구전되어 온 내용을 나중에 문자로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특히 〈삼황오제〉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내려온 이야기지만 중국 사람들은 실제 인물로 믿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의 단군 신화처럼 말이다. 〈삼황오제〉 가운데 맨 뒤의 두 사람. 바로 '제요, 제순' 즉 '요임금, 순임금'이다. 이 두 임금이 다스린 중국이 중국 역사상 가장 평화로웠던 시대였다고 중국사에서는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태평성대를 두 임금의 이름을 따서 '요순시대'라고 한다. 저자는 물론 이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중국을 다스렸는지 그 자료와 증거는 없다고 밝힌다.

 


 

중국의 진정한 역사의 시작은 〈춘추전국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도 중국 건국 신화에 나오는 〈삼황오제〉에서 '황제'란 칭호가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황제란 칭호를 쓴 사람은 우리도 잘 아는 진시황이다. 진(秦)나라가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란 명칭을 사용했기 때문에 진시황(秦始皇), 시황제(始皇帝)라고도 한다. 진시황의 이름은 '영정'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진시황 이전에는 하(夏), 상(商), 주(周)나라가 명멸했다. 이들 나라는 기록에는 남겨져 있지만 통일 왕조는 아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시황에 이르러서야 중국의 첫 통일 왕조가 들어선 것이다. 하나라는 무려 470년 동안 지속됐으나 실제 존재했다는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왕위를 아들에게 넘기는 세습제가 처음으로 확립됐다는 의의를 갖고 있다. 상나라도 한자(漢子)의 어머니인 갑골문자를 만든 나라로서 중요성을 띤다.

기원전 1046년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가 등장했지만 주나라 첫 왕인 무왕이 죽고 아들 성이 왕으로 즉위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 삼촌인 주공(周公)이란 사람이 권력을 잡았지만 자신이 왕위를 차지하지 않고 조카가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역사에 인물을 남긴다. 우리의 조선시대 수양대군과 비슷한 처지였지만 180도 다른 행동을 하네요. 어린 조카인 왕이 성장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국정을 운영한 것이다. 이때 주위의 소국들은 주나라를 항상 넘봤지만 주공이란 인물은 훌륭한 장수이기도 해 쉽게 제압했던 모양이다. 주공은 인접 작은 반발 세력을 모두 무력으로 복속시킨 후 이 나라의 독립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의 세금을 바치는 식으로 다스리는 봉건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 인물이다. 친인척에게 나누어 주며 소국을 각각 다스리게 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제후국이라 한다. 서양의 영주 중심의 봉건제와 비슷하다.

 


 

저자는 춘추전국시대를 '헬 게이트(지옥문)'로 표시하는 기발함을 보인다. 제후국들이 점점 힘을 키워 주나라가 거의 멸망할 무렵부터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발호하여 전쟁을 통해 패권을 다투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야말로 전쟁으로 시작해서 전쟁으로 끝나는 수많은 제후국들이 세력을 다툰다. 당시 가장 노른자위는 역시 중국 대륙의 한복판인 곳으로 이를 '중원'이라고 했다. 강으로 사방으로 뚫여 있어 교통의 요지이고 끝없는 평원이 펼쳐지기 때문에 식량 공급이 풍부했기 때문이리라. 춘추전국시대란 〈춘추시대〉(BC 770~BC 403)와 〈전국시대〉(BC 403~BC 221)를 아우르는 말인데 주(周)와 진(晉)이 흥망과 관련되어 있다. 500년 간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다. 결국은 진(秦)이 통일 왕조를 세울 때까지 수십 개의 작은 나라들이 전란으로 일관된, 저자의 표현대로 '지옥문' 속으로 걸어들어간 셈이다. 그러나 전란 속에서도 학문은 끊임없이 장려되고 나라의 인재를 배출했으니 이를 '제자백가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우리가 잘 아는 공자 등 수많은 학설이 정립된 시기였다.

진시황은 중국 첫 통일 임금으로 '황제'라고 칭하고 엄청난 권력을 행사했다. 북방 횽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으며 학자들의 고언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전무후문한 분서갱유도 이때 일어났다. 권력이 최절정에 달한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하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으나 실제 진은 진시황이 통일한 지 11년 만에 갑자기 병사함으로써 진나라도 내리막길을 걷는다. 3대를 마지막으로 진은 건국 2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른바 소설 〈초한지〉와 〈삼국지〉의 시대로 다시 분열되고 만다. 이후 흉노족이 진나라 황제를 살해하고 진나라는 수도를 남경으로 옮겨 동진(東秦)으로 국호를 바꾸고 100년 정도 유지하다 멸망한다. 남북조 시대가 들어서 북위가 북부 중국을 통일한 후 위세를 떨쳤다(남북조 시대). 그러나 북위 역시 150년도 채 안 되어 양견이 통일 왕조 수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문제로 등극하지만 수나라 역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지나친 운하 건설로 국고마저 바닥나 30년 만에 다시 당나라에게 정복당한다.

 


 

당의 2대 황제 태종 이세민은 고구려 정복에는 실패했지만 내치는 잘한 왕으로 중국인들에게 평가받고 있다. 특히 간언하는 위징을 옆에 두고 그의 간언에 귀 기울이며 정치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 최대 전성기를 이뤄낸 것이다. 당시 당의 세력은 경제력 포함 서양의 로마 제국이 몰락하고 동로마 제국으로 간신히 명망을 유지하는 처지라 국력은 당의 국력과 경제력이 월등하게 앞섰다는 게 사학자들의 평가이기도 하다. 태종이 죽자 아들 고종이 뒤를 잇지만 선황의 후궁 무조를 자신의 후궁으로 내정하죠. 이때문에 당 궁궐은 여자들의 '질투의 장'으로 바뀌고, 무조는 결국 〈측천무후〉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황후나 후궁이 아닌 권력자로 황제로 복귀한 것이다. 중국 역사 내에서 전무후무한 여황제로 등극한다. 잔인한 성격이라서 정적이나 자신의 권력을 넘본다고 생각이 들면 아들마저 독살한 치명적인 여인이었다. 그러나 여황제로 등극할 때 그녀의 나이 67세.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속담이 증명이라 하듯 15년 만에 병석에 눕는다. 그래도 82세까지 살았으니 장수한 셈이다. 이후 당 현종과 양귀비는 중국 역사에서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결국은 나라를 망치는 길로 접어들어 '경국지색'이란 말이 나온다.

저자는 책 속에서 당의 멸망을 모티프로 하는 영화 〈황후화〉를 예로 들면서 '황소의 난'(875)에 의해 당나라가 쇠락의 길로 치닫는 것을 보여준다. 한때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당나라가 멸망한 시기는 공식적으로 907년의 일이다. 주전충이란 인물이 당이 망한 것은 부패한 관료들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당나라에서 한자리 했던 신하들을 모조리 죽여 강물에 던져버렸다. 이 시기 얼떨결에 황제가 되었다가 쫒겨난 당나라 마지막 황제 애종은 주전충이 독살함으로써 건국 290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후 몽골이 세운 원나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황제들이 들어서 중국 대륙을 호령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중국 속의 변방국으로 남게 된다. 중국의 표현대로 오랑캐가 중국을 침략해 일시적으로 중국 대륙을 지배했지만 모든 관습이나 정치제도, 경제 운용, 사람 삶의 관습 등을 모두 중국 대륙의 문화에 동화되거나 종속되어 잠시 권력을 행사했을 뿐 진정한 지배자는 아니었다는 것으로 오늘날 중국 사가들은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들 나라고, 그 국민이 자신들이라는 '중화(中華)' 사상 때문일까? 아니면 역사적 사실일까. 이 책은 거기까지 분석하고 의견을 내지는 않았지만 중국의 역사를 한 권의 재미 있는 이야기책으로 풀어낸 저자의 덕으로 많은 걸 알게 돼 감사를 표한다. 스토리텔링의 본 역사이어서인지 정사(正史)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을 오늘날 우리말로 풀어써 재미를 더욱 높였고, 역사의 흐름을 중심으로 제대로 잡아 기술했다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썬킴(Sun Kim)

 

지루하고 딱딱한 세계사도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사 스토리텔러. ‘역사는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역사 현장에 가서 보고 배우는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전 세계 유적지 탐방에 매진했다. 멕시코 아즈텍 문명 유적을 시작으로 인도, 스리랑카, 부탄, 티베트, 중국 등 전 세계를 휘저으며 역사 답사를 다녔다. 역사는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없애고 흐름만 알면 누구나 재미있게 느낄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 답사 경험을 살려 현장의 생생함을 강의에도 고스란히 녹이려고 노력했다.

역사 전공자도 아닌 그의 역사 콘텐츠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스토리텔링’ 능력 때문이다. ‘듣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재미있다’, ‘진작 들을 걸 후회한다’ 등 호평 일색의 후기를 증명하듯 그의 팟캐스트 <썬킴의 세계사 완전정복>은 네이버 오디오클립 1위, 누적 청취 수 3000만 회 돌파 등 대기록을 연이어 만들고 있다. 이외에도 채널 A <이제 만나러 갑니다>, SBS 러브FM 허지웅쇼 <히스토리 월드>, 이숙영의 러브FM <썬킴은 알고 있다>, EBS FM <썬킴의 조선왕조 실록홈즈>, 팟빵 매불쇼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 MBC 표준FM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역사 속 경제 이야기> 등 다수의 매체에서 역사 관련 패널로 세계사 알리기에 맹활약 중이다. 저서로는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가 있다.

인스타그램: @iamsunkim

페이스북: sun.kim.988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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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 - 소소하지만 의미 있게, 외롭지 않고 담담하게
무레 요코 지음, 손민수 옮김 / 리스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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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영화 〈카모메 식당〉을 감상하지 못했다. 영화는 좋아하지만 〈카모메 식당〉은 이상하게 볼 기회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원작도 못 읽었다. 때문에 작가 무레 요코도 잘 모른다. 독자는 물론 일본 책도 자주 읽는다. 주로 추리소설이나 옛날 근대 작가들의 작품이지만. 현대 작가들 중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레 요코와 그의 작품들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감독 이름 오기가미 나오코은 지인을 통해 들은 적도 있는데, 무레 요코만은 이름도, 작품도 기억에 없다. 이 책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 소개글에서 "나이 들어서도 ‘나’를 잃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지키며 살아가는 저자"라는 문장과 "다양한 취향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담은 에세이"라는 점만 한 번 읽었을 뿐이다.

문외한으로서 한 작가의 작품을 평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또 독자는 전문 평론가도 아니고 이 책을 처음 읽어본 독자로서 저명한 작가를 감히 평한다고 하면 그 자체가 모순이 될 터이다. 오로지 책을 읽은 느낌만 전달하는 역할만 할 것임을 미리 알린다. 처음 읽은 무레 요코는 그가 얼마나 다양하고 사소한 즐거움에 호기심을 갖고 탐닉하는지 풀어내고 있다. 아마 오랜 기간 자신이 즐기며 자주 했던 일이라면 '취향'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저자도 책 속에서 전 생애에 걸쳐 다져진 것임을 알린다. 플라스틱 제품 안 쓰기, 뜨개질, 손바느질, 고양이와 놀기, 녹화한 TV 시청, 요리책 읽기 등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애정만 갖고 있는 정도를 지나서 직접 실천하려는 것 또한 습관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특히 그가 새로 들인 습관 중 '물건 버리기'는 독자도 따라하고 싶다. 저자는 넘쳐나는 물건들에 둘러싸였던 삶에서 벗어나 드디어 오래된 물품을 버리고 비우는 행위를 통해 비록 추억의 물건은 사라지지만 기억과 애정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새롭게 얻은 이 지혜는, 그가 22년 넘게 함께한 고양이와 작별하고 27년간 지내왔던 익숙한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가장 담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은 취향의 긴 역사 속에서 작가가 집요하게 수집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확고하게 완성된 삶을 누리며 그것을 위해 불필요한 것을 끊임없이 비우고 있음을 기록한 책이란 점에 공감한다.

무레 요코의 소설을 영화화한 〈카모메 식당〉과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취향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며 지금까지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한 인기가 아니었으면 선뜻 영화화할 생각이나 했을까? 저자 무레 요코는 이들 책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소소하고도 농도 짙은 취향에 빠져들게 만들며, ‘나도 취향을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고 한다. 독자들을 세뇌하는 이 ‘취향의 힘’이 제대로 드러난 책이 바로 이 책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이다. 그가 2023년 첫 번째로 발간한 신간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취향의 시작은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 ‘남의 집 냉장고 엿보기’부터였다. 저 부엌의, 저 문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문을 열고 안에 들어있는 걸 보고 싶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그래서 친구 집에 가면 항상 냉장고 문을 열고 확인했다는 대목에서 저자의 독특한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뜨개질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에서도 저자의 오랜 취향이 드러난다. 책 중간에 어머니가 들려주는 ‘털실 푸는 사람’에 관한 일화가 등장하는데, 엉망으로 엉켜 있는 실을 몇 시간에 걸쳐 공들여 풀어낸 이야기는 좋아하는 것을 위해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상징한다.

이 밖에도 탈 플라스틱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조금은 불편한 삶을 선택하고, 시행착오 끝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요리를 완성하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찾아서 듣고, 관심 가는 TV 프로그램을 녹화해두었다가 시간 내서 감상하고, 고양이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과 음악, 게임 영상까지 찾아보며 유튜브를 즐기는 등,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왕성한 작가의 다양한 취향이 기록돼 있다. 이 다양한 취향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취향 있는 삶에 관한 작가의 태도와 소중한 삶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멈추지 않는 탐색과 호기심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좋아하기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삶, 그것이 바로 나이 들어서도 ‘나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인 셈이다. 책을 읽는 동안 깜박 있었던 사실이 있다. 저자가 작가라는 사실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작가가 27년간 살았던 익숙한 집을 떠나 새로운 거처로 옮기면서 추억이 깃든 물건들과 이별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특히 22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온 고양이와의 이별은 잔잔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따뜻하고 평화로운 위로를 선사한다. 이 대목은 저자의 지혜를 빌려 쓸모없는 물건 버리기를 위해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욕망에 따라 한없이 채우기만 하는 젊음의 욕망이 나이가 들면서 허망한 것이었음을, 또 겉모습에만 치중하며 살아온 독자 스스로의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된다.

저자가 녹화해두었다가 나중에 보게 되는 캐나다 방송 프로그램 ‘행복한 삶을 위한 다운사이징’에서는 추억과 애정은 간직하되 불필요한 물건들은 미련 없이 정리하는 비움의 삶이 그려진다. 작가는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추억이 담긴 물건에 둘러싸여 있고 싶은 것이다’라는 데 크게 공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유품을 처분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애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저자의 마음에서 '사랑'에 대한 마음의 표현을 평소 일상에서 자주 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비움의 실천을 통해 완성되는 자기만의 담백한 삶에서 저자는 비우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비로소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임을 에둘러 전하고 있다. 저자의 일상에서의 원숙한 삶의 지혜가 돋보이는 이유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자기만의 확고한 취향으로 완성된 컬러풀한 일상, 시간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추억의 힘을 믿으며 비우는 삶이 저자가 드러내놓지 않은 자기만의 삶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것이 저자 무레 요코가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의미 있는 메시지라고 독자는 읽어낸다. 책 날개에서 전하는 저자 무레 요코의 나이는 69세로 추정된다. 작가로서의 삶, 일반인으로서의 삶, 또 사회 지도자로서의 삶으로도 튀지는 않지만 내면의 내공을 쌓아 '자기만의 삶' '나만의 삶'을 살아온 원숙한 지혜가 깃든 저자의 단아한 모습이 눈앞에 그림처럼 나타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심지어 그의 작품마저 이 책이 처음인 독자로서 그의 모습을 선뜻 그려낼 수 있는 것도 그의 일상의 지혜가 녹아 있는 이 책의 힘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 마지막 장인 22장 「TV가 있는 생활로 돌아가다」에서 그가 쓴 귀절이 앞으로 독자의 삶에서도 매우 소중한 메시지가 될 것이기에 공감과 감사를 드리고 싶어서다. "필요 없는 물건들을 처분하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체력이 뒷받침되는 50대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데, 가족들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 마음대로 하지는 못 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필요한 물건의 적정량이 얼마만큼인지 늘 염두에 두고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가진 물건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방송을 보며) 든 생각은 많은 물건으로 인한 고민과 집의 크기와는 상관없다는 점이다. 매일 쓰지 않는 물건으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은 모두 같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상자더미에 묻혀 사는 것, 사용하지 않는 물건 때문에 오천만 엔 가까이나 지불한다는 것.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돌아보게 한다.(p.211)

 


 

자신의 생활에 수고로움을 더한다거나, 조금 귀찮아도 스스로 움직여 본다거나,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주변에서 도움을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옛사람들의 좋은 관습들이 조금씩이나마 되살아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울해지곤 했는데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긴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밝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p.154)

 

저자 : 무레 요코(むれ ようこ,群 ようこ)

1954년 도쿄에서 태어나 니혼대학교 예술학부를 졸업한 후 광고회사 등을 거쳐, 1978년 ‘책의 잡지사(本の雜誌社)’에 입사했다. 이때 지인의 권유로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1984년에 에세이 『오전 0시의 현미빵』을 발표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여성들의 소소한 일상을 경쾌하고 유머 넘치는 문장으로 표현하면서 ‘요코 중독’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카모메 식당』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은 삶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나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출간 당시 고양이와 음식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여성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인기에 힘입어 2013년 동명의 4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져 WOWOW TV를 통해 방영되었다. 그 밖의 작품으로 『무인양녀』, 『일하는 여자』, 『외톨이 여자』, 『미사코, 서른여덟살-』,『작가 소노미의 만만치 않은 생활』, 『개나리 장』, 『일하지 않습니다』, 『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 『구깃구깃 육체백과』,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 『나랑 안 맞네 그럼, 안 할래』, 『그렇게 중년이 된다』, 『지갑의 속삭임』, 『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등이 있다.

 

역자 : 손민수

상명대학교 일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어학원 강사 및 삼성전자, 삼성SDI 등 기업체 전문 통번역자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아이디어는 재능이 아니다>가 있다. 일본의 좋은 책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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