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어스 - 기만의 시대, 허위사실과 표현의 자유 Philos 시리즈 17
캐스 선스타인 지음, 김도원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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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라이어스』는 거짓(false), 가짜뉴스(fake news), 혐오표현(hate speech) 등에 관한 사회 비평서다. 주로 미국 사회에서 오늘날 드러나고 있는 사회 부조리의 근본과 근원을 찾아가는 길에서 찾아낸 단어들이다. 그 길에는 이뿐만 아니라 허위사실(falsehood)도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허위사실은 순식간에 퍼질 위험이 있는 데다, 개인의 명예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뒤흔들 수 있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란 탈을 쓰고 자칫 사회의 신뢰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만일 허위사실이 날뛰는 사회라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고, 누가 억제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사회의 안녕·질서를 흐트러뜨린다면 당연히 국가가 나서서 억제하고 제재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일반 사람들은 이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도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 같다. 헌법에서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와 허위사실은 어떤 상관 관계가 있을까? 있다면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하고, 억제하는 게 마땅한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 『라이어스』다.

저자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은 오늘날 가장 자주 인용되는 법학자이자, 우리가 잘 아는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이다. 선스타인은 전 세계 학계와 정계에서 혁신적인 사상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규제정보국 국장을 지냈고, 현재는 바이든 행정부의 규제정책 책임자로 합류했다고 한다. 저자는 창의적인 관점, 풍부한 연구물을 바탕으로 272쪽에 걸쳐 ‘표현의 자유’에 대해 면밀히 고찰한다. 저자는 허위사실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그것을 처벌, 검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는 것이라고 이 책에서 말한다. 처벌이나 검열이 오히려 허위사실에 땔감을 공급하는 상황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이 입장을 잘 이해해야 최악의 거짓말을 도려낼 방안을 찾을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 책은 해외 유수의 법학자 로버트 포스트(Robert Post), 프레더릭 샤워(Frederick Schauer), 유진 볼록(Eugene Volokh)이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어떤 관점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한 필수 교양을 담았다”라고 평하며 극찬했으며, 국내에서는 언론인이자 미디어학자 정준희, 사회학자 조효제, 변호사 차병직이 추천했다. 『라이어스』는 우리의 법이 ‘거짓’과 ‘허위사실’의 해악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시민으로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주제를 다룬다.

특히 이 책은 법학뿐만 아니라 철학, 윤리학, 경제학, 심리학을 포함한 폭넓은 분야의 연구물을 바탕으로 ‘표현의 자유’ 논쟁에 접근하며, 이를 보장하면서도 ‘거짓’이 초래하는 해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한다. 허위사실의 정도를 판별하기 위해 네 문제를 기본 틀로 설정하고, 헌법적 문제는 물론 소셜미디어 업체를 포함해 민간기관의 의무를 분석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기본 틀이 제기하는 네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① 발언자의 ‘의식 상태’는 어떤가?(거짓말인가, 합리적 실수인가) ② ‘해악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심각한가, 경미한가) ③ ‘해악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확실한가, 개연성이 낮은가) ④ ‘해악의 발생 시기’는 언제인가?(즉시인가, 먼 미래인가) 이 질문들에 세세한 네 가지 가능성을 조합해 256개 ‘경우의 수’를 도출하고, 흔히 접하는 사례에서부터 익숙하고 대표적인 미국의 판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안을 대입해 정부와 민간기관의 역할, 시민의 대처 방안에 대해 논한다.

나아가 인간이 왜 ‘진실 편향’에 빠지는지, 왜 ‘1차 정보’에 훨씬 주목하는지, 왜 ‘집단 극단화’ 경향을 보이는지 등 사람들이 허위사실을 쉽게 믿어 버릴 위험에 대해 지적하며, 현대 미디어 역동성에 관한 연구물과 기술의 발전(디프페이크, 합성 조작 영상 등)을 언급하며 그 심각성을 부각한다.

 

 

또 이 책은 공리주의적 관점(존 스튜어트 밀, 마르틴 루터, 하이에크)과 칸트주의적 관점(칸트, 코스가드)을 들어 ‘거짓’ 의 부당성을 다채롭게 해석하는 등 ‘표현의 자유’ 논의를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는 풍성한 자료를 제공한다. 저자는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어느’ 범위까지 보장할 것인가” “‘왜’ 보장해야 하는가”에 대해 섬세한 논의를 펼친다. “표현의 자유가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라면?”이라는 가정하에 “말하는 사람이 권력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게 중요하다”라고 언급한다. ‘위축효과’란 허위사실을 규제 또는 처벌하려는 노력이 그 과정에서 진실 또한 억누르는 효과를 말한다.

저자는 이에 따라 〈수정헌법〉 1조에 근거해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허위사실의 해악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위축효과가 가리키는 지점을 찾기 위해, 과거 미국 사회에서 논쟁적이었던 ‘표현의 자유’를 과하게 보장한 판례(‘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미국 대 앨버레즈 사건’ ‘브랜던버그 대 오하이오 사건’ ‘거츠 대 로버트 웰치 주식회사 사건’)를 예로 들며,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현대 기술의 발전으로 순식간에 퍼질 수 있는 ‘가짜뉴스’에 대한 위험성을 이 책에서 고발하면서도 논의의 과정에는 〈수정헌법〉 1조를 늘 염두에 두고 이를 독자에게 각인하듯 상기시킨다. 정준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 책을 평했다. “최악의 거짓말을 도려내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신실하게 옹호하는 모든 이들이 나서서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저자는 “허위사실은 설령 거짓말일 경우에도 검열이나 규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유로운 사회는 허위사실도 보호한다”라고 역설하며 공직자 또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진실 순찰대(truth police)’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표현의 자유’와 ‘허위사실’을 팽팽한 긴장 상태에 놓고 “어떤 거짓을 법으로 보호하지 말아야 하는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거짓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이끈다.

 


 

이 책 『라이어스』는 권력의 횡포를 견제하면서도 허위사실의 확산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위축효과를 찾기 위해, 표현의 자유 일반에 관한 기존의 주장을 검토하며 논의를 전개한다. 인간의 삶에서 진실과 거짓의 역할을 분석하며, ‘표현의 자유’와 동시에 ‘명예의 보호’ ‘공중보건’ ‘공공안전’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펼친다(1장 「거짓말과 허위사실」). 이 관점을 더욱 세밀히 분석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개념 틀(표)을 제시하며 허위사실이 일으키는 해악의 규모, 해악의 가능성 등을 따진다. 정부가 사용하는 수단에 대해서도 주목한다(2장 「논의의 기초」).

나아가 윤리적 측면에서 거짓말의 해악에 대한 공리주의적, 칸트적 관점을 구분해 표현의 자유를 검토한다(3장 「거짓말의 윤리학」). 실례로 〈미국 연방헌법〉의 현 상황, 거짓말과 허위사실에 관한 법원의 주요 판결을 논의하고(4장 「가짜 유공자」), “허위사실을 도대체 왜 보호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파고든다(5장 「진실」). 이 문제를 심리적, 경험적 문제로 옮겨 사람들이 왜 허위사실을 믿는지, 왜 그렇게 빠르게 타인에게 퍼지는지를 다양한 연구물을 기반으로 분석한다(6장 「가짜뉴스가 더 빠르다」). ‘명예훼손’ 문제를 짚으며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전통에 중대한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고(7장 「당신의 명예」),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좀 더 현대적 관점에서 해로운 표현을 다룬다(8장 「해악」). 업적 및 보건에 대한 허위 주장, 다른 사람에 대한 무고, 가짜 이미지를 만드는 첨단기술 사용 등이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공직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며, 방송국과 신문, 잡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이 허위사실의 폐해를 막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9장 「진실은 중요하다」). 공공기관이든 민간기관이든, 해당 표현에 대해 특정한 표시나 경고를 붙여 허위사실로 인한 폐해를 줄이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수단이 가능함을 제안한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명백한 허위이며 즉각 피해를 일으키는 진술이 퍼지는 것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허위사실이 심각한 해악을 초래할 위험이 있고, 표현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하면서도 그 해악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점을 정부가 증명할 수 있다면, 그 허위사실은 헌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이 책은 ‘표현의 자유’와 ‘공중보건’ ‘공공안전’ ‘명예’, 큰 범위에서의 ‘진실’을 팽팽한 긴장 상태에 놓고 논의를 심도 있게 끝까지 전개한다. 이 점에서 조효제 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치열한 문제의식, 정교한 분석법, 팽팽한 균형감각으로 논의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탱크 같은 지성이 우리를 압도한다!”

캐스 선스타인은 우리 시대 공론장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최적의 위축효과’라는 열쇳말로 풀며, 허위와 진실 모두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고려해 딱 맞는 수준의 억제 효과(deterrent effect)을 찾자고 한다. 그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캐스 선스타인은 다음 다섯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① 소셜미디어의 경고 및 공지를 이용한 해당 정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법 ② 매우 적은 액수의 명예훼손 배상액(화자의 입증책임 부담을 부과하는 방편) ③ 매체에 수정 또는 삭제를 요구할 권리 보장 ④ 매체가 그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명목상 배상책임 부과, 그에 걸맞은 법률제도의 개편 ⑤ 소셜미디어상 허위사실 또는 거짓이 뉴스피드에 드러나지 않게 하는 알고리즘 구축 등이다.

저자의 주요 의제는 검열과 규제가 능사가 아니라, 적절히 ‘반론(counter speech)’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 원칙에 따라 바로잡히는 진실에 대한 올곧은 믿음이 작동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특별하고 대담한 관점을 배울 수 있으며, 저자의 제안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는 선스타인 특유의 세밀한 분석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서 시민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혜안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참고점이 되어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책의 역자 김도원은 책 뒷 부분의 「옮긴이의 글」에서 "우리나라에서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정부 공직자에 대해 미국 언론은 성역 없는 비판에 나선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법적 기반은 연방 대법원의 그 유명한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판결이다. 고위공직자와 같은 공인이 언론보도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배상을 받아 내려면, 피해자는 해당 보도가 '현실적 악의'를 갖고 이뤄졌다고 증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런 증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언론사는 특별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정부나 권력자를 비판하면서 명예훼손 소송을 당할 걱정이 없다고 역자는 지적한다. 덕분에 국내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판결과 현실적 악의의 원칙은 모범 사례로 꼽혀 왔다는 것.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는 현실적 악의의 원칙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역자는 말한다.

이 책의 저자 캐스 선스타인이 대표적 인물이라고 역자는 언급한다. 역자는 현실적 악의의 원칙은 〈미국헌법〉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석한 결과이지만, 〈수정헌법〉 1조가 허위사실도 보호한다는 발상은 적어도 헌법 제정 당시에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역자는 설명한다.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판결은 들불처럼 번지던 민권운동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1960년대 나왔다는 시대적 맥락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우리나라와 다른 점에 대해 선스타인과 인식을 같이 하며 많은 공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읽힌다. 특히 번역자로서 우리와의 차이점을 특별히 「옮긴이의 글」에 쓰면서 이 책의 요점을 간략하게 해석해주는 배려에 독자로서 무한 감사를 느낀다. 특히 선스타인이 미국에서도 이미 아무런 헌법적 문제가 없이 다양한 허위사실을 규제, 처벌하고 있다고 지적한다고 말하고 표현의 자유는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며, 다른 모든 권리와 마찬가지로 그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저자의 기준으로 볼 때 이미 허위사실을 촘촘하게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명예훼손을 범죄로 규정해 형사처벌하는 몇 안 되는 나라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해당 발언이 허위가 아닌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처벌 대상이고, 그것이 진실이고 오직 공익을 위한 목적에서 공표했다는 점을 발언자가 입증해야 처벌을 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위헌으로 불가능하다고 한 '민주주의 수호법'도 우리나라에는 있고, 허위사실을 공표하면 '허위사실공표죄'로, 심지어 진실을 말하더라도 '후보자비방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가짜뉴스 문제가 덜하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역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대체로 허위사실은 확실히 매력적이고 생생하다. 왜냐하면 허위사실은 새롭고 흥미로우며 예상을 벗어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허위사실이 분노와 혐오를 비롯해 어떤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 경우, 머지않아 수많은 사람이 그 허위사실에 접하게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런 점이 진실 편향과 만나게 되면 상당한 문제가 일어난다. 만약 허위사실이 특히 더 퍼지기 쉽고, 사람들은 자신이 듣는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의 편향이 있다면, 사람들이 허위사실을 믿을 위험은 극적으로 커진다. 이는 허위사실을 보호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관한 밀의 생각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p.136)

 

저자 :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

 

세계적인 정책 전문가이자 탁월한 법학자. 하버드 로스쿨 교수로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법학자로 꼽힌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시카고 로스쿨과 정치학부 법학교수를 거쳐 하버드 로스쿨 교수를 지냈다. 2009~2012년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 규제정보국 국장으로 일하며 당시 대통령의 정책 고문으로서 행동경제학의 성과를 정부 정책에 활용했다. 2013~2014년에는 정보통신기술검토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백악관을 떠난 뒤에는 하버드 로스쿨에서 ‘행동경제학과 공공 정책 프로그램’을 창립해 이끌고 있다. 2018년 인문, 사회과학, 법학, 신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룩한 학자에게 수여하는 국제 연구 상인 홀베르그 상을 수상했고, 2020년 세계보건기구 ‘건강을 위한 행동 통찰력 및 과학에 대한 기술 자문 그룹’ 의장으로 임명되었다. 주요 저서로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베스트셀러 《넛지》(리처드 탈러와 공저), 《스타워즈로 본 세상》 《변화는 어떻게 촉발되는가》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등이 있다.

 

역자 : 김도원

 

YTN 기자로 2008년 입사해 법원과 검찰, 국회, 청와대 등을 취재했다. YTN 노동조합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을 맡아 언론의 자유와 그 한계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미국 듀크대학교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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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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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가 가진 역량을 대중에게 알린 작가” “과학 소설계에서 ‘연결’과 ‘확장’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작가” “상상력의 경계와 한계를 무너뜨린 작가” “미처 표현되어지지 않은 인간 존재의 답답함을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폭발시키는 작가” 등 배명훈 작가에 대한 한국 문단의 평가는 극찬의 일색이다. 이 작품 『미래과거시제』는 저자의 전작 『예술과 중력가속도』 이후 7년 만에 펴내는 세 번째 단독 소설집으로, 최근 3년간 팬데믹 시기를 통과하며 집중적으로 집필한 아홉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한국 문단의 중견 작가 곽재식은 이 책에 대해 “한국 SF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작가의 대표작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곽재식 작가는 책 뒷 부분에 실린 추천사를 통해 "한국 SF가 성장하여 문학의 주류에 다가오기까지 지난 10년 동안 배명훈 작가는 항상 그 선봉 중에서도 맨 앞 줄에 서 있었다"면서 "단어 하나하나가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재료로 제 몫을 하고 있고, 즐겁게 이어나가는 줄거리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현대 한국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통찰이 스며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2005년 데뷔 이후 현재까지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저자 배명훈의 이번 소설집은 이번 작품들에서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은 더욱 경이로워졌고,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깊어졌다. 고래상어 그림을 감상하러 바다 깊은 곳으로 떠났다가 함정에 빠진 돈 쓰는 로봇 마사로 이야기(「수요곡선의 수호자」), 비말 차단을 위해 파열음을 완전히 제거한 미래 세계(「차카타파의 열망으로」), 시간 여행을 둘러싼 한 연인의 사랑스러운 미스터리(「미래과거시제」), 판소리 형식으로 펼쳐지는 유일무이 요절복통 로봇 전투담(「임시 조종사」) 등이 갈고 닦은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깊은 애정이 드러난다. 또 종이처럼 2차원의 형태로 날아온 외계의 존재들(「접히는 신들」), 잠들어 있는 의식과 듀얼 가상현실이라는 구상(「알람이 울리면」)까지, 배명훈은 언어와 시간과 공간을 다양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꿈’과 ‘만약’의 세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여 상상과 성찰이 맞물린 읽기의 즐거움을 일깨운다. 이번 작품집은 배명훈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들은 물론 배명훈의 세계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각별하고도 뜻깊게 다가갈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독자는 사실 SF 소설을 많이 읽지 못했다. 소설 작품을 좋아하지만 '과학'이 들어감으로써 독자에게는 '서먹하고 어렵다'는 느낌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쏟아지는 SF 작품을 읽기 위해서라도 과학 공부를 더 해야 할 지경이다. 고등학교 때만 과학이나 수학을 착실히 공부했더라면 하는 뒤늦은 후회는 아무 필요가 없다. 물리학 등 과학 분야에 대한 기초 공부를 더 해야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사실 '해리포터 시리즈'도 영화로 나온 뒤에야 관심을 갖고 접근했지 책을 먼저 읽은 적도 없다. SF 소설에 등장하는 과학 용어나 원리를 읽을 때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할 정도로 문외한이었으니 쉽게 SF 소설이 다가오지 못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배명훈 저자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지만 그의 소설을 찾아 읽을 정도의 과학에 대한 무지는 SF 소설에 대한 '접근 불가'로 다가왔다. 읽어도 이해되지 않은 소설을 오랜 시간을 걸려 읽어내기 위해서는 기초적 과학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배명훈이 이번 소설집을 읽은 이후 독자는 마치 신문명에 눈 뜬 듯한 느끼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그동안 한국의 SF를 따로 읽은 것은 별로 없지만 외국이나 일본의 SF 작품은 여러 권 읽었다. 물론 얼마 되지 않은 최근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직장에서의 시간이 무척 많이 남았다. 집에서 일하는 날이 더 많았으니... 출퇴근 시간도 오롯이 남은 시기였다.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책을 다시 손에 들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어려웠지만 가벼운 읽을거리부터 찾아 꾸준히 읽어보니 예전의 다독의 습관이 다시 배어들기 시작했다. 내친 김에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는 서적을 훑어보다가 SF소설이 굉장히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미처 몰랐던 환상의 세계, 미래의 세계, 과거까지 모두 들여다볼 수 있다는 SF소설의 또다른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독창적인 이야기는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시간과 공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낯설고 어려웠지만 꾸준히 읽으면서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해 들어가니 굉장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이야기 속 시간은 과거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하며, 공간은 바다 깊은 곳이기도 하고 우주 저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수요곡선의 수호자」에서는 심해도시 건설 현장,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에서는 파열음이 사라진 어느 미래 시대의 대학교 격리 실습실, 「접히는 신들」에서는 화성을 향해 항해 중인 우주선, 「절반의 존재」에서는 사이보그와 더불어 일하는 세상이 펼쳐진다. 낯선 세계가 익숙한 세상으로 바뀌고, 모르던 세상이 머릿속에서 그려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저자 배명훈의 SF 소설은 그렇게 친해질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이 낯선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이처럼 친숙하다. 유희, 사로, 은경, 소희, 매희, 먼지, 하임 등 이름도 살가운 이들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우리와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위기와 돌발 상황에 부딪쳐 고민하기도 하고, 우연한 만남에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 채 옛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며,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아프게 감내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이들이 내밀어주는 손 덕분에 다른 세계로 가는 어떤 경계를 기꺼이 넘어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경계 너머의 세계로 떠나는 일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물론 저자의 상상력과 과학 지식, 글쓰기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어 온 내용이지만 전문 서적 읽을 때와는 다른 감동과 무한의 세계에 대한 경이감도 함께 다가왔다.

저자는 이미 독자들에게 낯선 세계와 친숙한 인물을 배합해내는 솜씨는 언제나 탁월했다고 한다. 독자만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 이번 작품들에서 저자의 지식과 상상력은 더욱 확대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확장뿐만 아니라 더욱 깊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판소리와의 접목이나 '격음' 발음 불가의 미래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쌓아나가면서도 놓치지 않은 한층 섬세한 정서 덕분이리라.

 


 

저자는 이번 소설 9편을 통해 기쁨에 숨겨진 슬픔, 만남에 예정되어 있는 이별, 경이로움에 이끌려 들어오는 기묘한 멜랑콜리 등도 함께 엮어 감정과 지식의 상관 관계, 그리고 그것이 우리 현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되짚어보게 한다. 이러한 두 겹의 감수성은 세계와 인물이 접속하는 첫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힘을 잃지 않고 이어지면서 몰입을 이끌어낸다. 배명훈 소설의 특징일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에서 보여준 말 다루는 자로서 정밀하게 수행한 언어 실험이다. 저자는 9편의 모든 작품 말미에 작품의 전사(前史) 또는 후일담을 담은 「작가 노트」가 실었는데, 그중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에 붙인 「작가 노트」에서 배명훈은 집필 당시를 회고하며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 영원히 바꾸어버리리라는 무시무시한 예측” 앞에서 말의 변화를 상상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탄생한 세계가 파열음이 사라진 어느 미래 시대의 한국이다.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는 제목과 달리 ‘ㅊ’ ‘ㅋ’ ‘ㅌ’ ‘ㅍ’ ‘ㄲ’ ‘ㄸ’ ‘ㅉ’ ‘ㅃ’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꽃’을 ‘곶’으로, ‘카타르시스’를 ‘가다르시스’로 발음하는 시대, 파열음의 발음을 상상하려면 해킹 기술을 익히는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시대이므로. 그런데 만약 파열음이 존재했던 시대의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가 있다면? 그 배우가 오래된 자료에서 ‘파열음’을 듣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평음의 소설’라는 부를 수 있을 법한 이 기발한 작품은 잔잔한 웃음을 내내 자아내면서도 말로 표상되는 세계에 대한 묵직한 성찰을 놓치지 않는다.

발음의 실험이 주는 경이로움이 끝날 무렵 시제, 즉 시간의 실험이 펼쳐진다. 「미래과거시제」에서는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세계에서 사용 가능한 시제가 등장한다.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살아가는 인물 은경이 ‘미래에서 온 시제’를 경험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미래에서 과거로 이동할 수 있는 인물 은신은 확정적으로 일어난 미래의 일을 말할 때 ‘았/었’ 대신 ‘암/엄’이라는 시제를 사용하는데, 이 쓰임이 튀르키예어 시제 연구와 연결되면서 해석되는 순간 우리는 맞물리는 서사에 감탄하는 동시에 시간과 언어가 지닌 불가분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오랜 시간 공들여 쓴 흔적이 역력한 「임시 조종사」는 고루 탁월한 이번 작품들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어렵게 로봇 조종술을 익혔지만 일자리가 없어 백수로 지내다 먼 타국의 부름을 받아 떠나는 인물 지하임의 요절복통 모험담이다. 재미가 보장된 이야기를 더욱 특별하게 하는 것은 판소리 형식이다. 작가는 근대소설의 이전의 언어에 천착해 말의 근원까지 낱낱이 풀어헤쳤다가 쌓아 올려 판소리 형식으로 창작했다고 술회한다. 한국문학사에서 유일무이한 과학소설이 아닐까. 아니리(장단 없이 말로 연기하는 사설)로 시작해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 중중모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분명 눈으로 읽고 있는데 귀로 듣고 있는 듯한 청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한편 낯선 형식과 대비되는 인물들의 친숙함이라는 장치는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덕분에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맛있는 음식에 이성을 잃는 사람들의 인연에 이끌려 마음이 따뜻해지고, 정치 상황에 대한 정확하고 냉철한 진단을 우리 사회에 대입해보게 되며, 두려운 마음을 감싸 안고 끝끝내 위기를 타개하는 인물들에게서 용기와 위로를 얻게 된다.

이 책의 실린 아홉 편의 작품이 ‘지금이 아닌 시간’과 ‘이곳이 아닌 저곳’을 견인하고 있음에도, 이야기를 통과하며 우리가 새삼 감각하게 되는 것은 ‘지금’과 ‘여기’다. 이를테면 서울에서 가장 높은 빌딩 꼭대기에 우주선이 정박하는 바람에 미지의 존재들과의 만남을 준비해야 하는 「인류의 대변자」 속 장면들은 현실 세계를 대하는 시야를 한껏 넓혀준다. 사고로 상반신을 잃은 사이보그가 온 힘을 다해 살아 있음을 증명해내는 「절반의 존재」는 존재와 비존재,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경계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알람이 울리면」에서 보여주는, 잠들어 있는 의식을 깨우는 가상현실의 듀얼 플롯은 물질적으로 굳건히 접속해 있는 것처럼 감각되는 세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독려한다. 지금의 현실, 지금의 언어를 넘어선 이 모든 지적인 탐험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야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삶을 잃지 않고 가꾸어내는 것, 또는 나와 너의 만남을 귀하게 여기는 것, 존재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들에서 “인연과 연결과 사랑에 대한 깊은 희망”을 읽어낸 정보라 작가와 “삶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도출해낸 권희철 평론가의 소감도 이러한 독해에 힘을 실어준다. 저자 역시 마지막 「작가 노트」에서 “우리는 여전히 진실이나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기록하고 있다. 오래전 떠나온 별을 만나듯 이 소설을 만난 우리에게 이보다 더한 울림이 있을까. 『미래과거시제』는 배명훈의 다양한 장점이 몇 년 사이 일어난 이슈들을 지나며 한껏 무르익은, 탁월함을 또 한 번 갱신한 작품집으로 다가올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의 철저함은 이 책의 표지 그림에 대한 설명도 곁들인다. 전작 『타워』 영어판과 『빙글빙글 우주군』 한국어판 및 영어판의 표지 일러스트를 그린 최지수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만다라 도안을 차용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 요소를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그려냈다고 저자는 감사를 표하고 있다. 작품을 읽고 난 다음 다시 그림을 보게 된다면, 「수요곡선의 수호자」에 등장하는 고래상어부터 「알람이 울리면」에 나오는 스케이트장까지, 그림에 녹아 있는 소설 속 다양한 요소들이 더욱 흥미진진하게 다가갈 것이라고 소개한다.

 

저자 : 배명훈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 ‘대학문학상’을 받았고 2005년 「스마트D」로 SF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환상문학웹진 [거울]을 통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으며, 3인 공동 창작집 『누군가를 만났어』를 비롯해 『판타스틱』 등에 단편을 수록한 바 있다. 201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주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로 평가받으며 한국문학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대한민국의 젊은 작가들 가운데 가장 행보가 주목되는 작가로서, 연작소설 『타워』는 그의 첫 소설집이다. 2010년에는 『안녕, 인공존재!』를 펴냈다. 『총통각하』(2012), 『예술과 중력 가속도』, 장편소설 『신의 궤도』(2011), 『은닉』(2012), 『맛집폭격』 『첫숨』 『고고심령학자』, 『빙글빙글 우주군』, SF동화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2011), 중편소설 『가마틀 스타일』 『청혼』, 단편 단행본 「춤추는 사신」, 「푸른파 피망」, 에세이 『SF 작가입니다』 등을 출간했다. 여러 앤솔러지에 참여하였는데, 앤솔러지 『놀이터는 24시』에 「수요 곡선의 수호자」를 수록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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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
장세아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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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는 저자의 장편소설로 고전 고딕 소설의 감성을 더한 한국형 고딕 스릴러 소설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아 영상화 등 2차 콘텐츠로의 확장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다. 스토리와 구성적인 면에서 탁월한 기량을 선보인 저자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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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
장세아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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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run·away)'란 ① 달아난, 가출한 ② 제멋대로 가는, 제어가 안 되는, 고삐 풀린 ③ 도망자, 가출자(특히 청소년)의 뜻을 지닌 영어다. 이 책 『런어웨이』는 동거중인 남자 현욱의 폭력에 시달리던 여주인공 재영이 우발적으로 현욱을 죽이고 도망자 신세가 되면서 시작된다. 제목과 함께 첫 문장 ‘인생을 리셋할 수 있을까?’는 묘하게 삶으로부터 도피 중인 한 여자와 어스름한 새벽 열차 안이라는 분위기로부터 비장함이 묻어난다. 저자 장세아는 「작가의 말」을 통해 "'어스름한 새벽 첫차 안, 화장실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는 초췌한 여자의 모습'. 모든 것은 그 이미지 하나에서 출발했다"고 밝힌다. 잠 못 들고 뒤척이는 밤, 머릿속을 이리저리 떠가는 생각들 가운데 유독 선명하게 떠오른 이미지였다고 말한다. 여자는 겁에 질려 있었으며, 손을 씻다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 뒤 떨리는 손으로 물을 끼얹는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쫒기던 참이었고, 어서 벗어나고 안달하고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꿈에서 빠져 나온 모습이긴 한데 여자의 이미지가 점점 강해지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또다시 기묘한 상황에 빠지고 만다. 저자가 소설의 인물(캐릭터) 창조를 위해 고민하던 모습을 설명하는 듯한 이 말들은 도망자 신세가 된 재영이 서울로 향하던 어스름한 새벽 첫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이 쪽지만 남긴 채 아이를 버리고 사라지는 장면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그 여자와 잠시 기차에서 나눴던 대화를 통해 그녀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고, 살길이 막막하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시댁'을 찾아 가는 중이었음을 알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쪽지에 남긴 집을 찾아 재영은 아기를 데려다 준다. 주소지로 찾아간 재영의 눈앞에는 어마어마한 대저택이 기다린다. 재영이 아기가 이 집의 손자라고 밝히자 그 집 사람들은 당연히 재영을 아기의 엄마로 착각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흥미진진한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가 펼쳐지면서 이야기 속 주인공은 물론, 독자들도 역시 손에서 책을 놓치 못하게 만든다. 이처럼 강한 흡입력을 가진 『런어웨이』는 고전 고딕 소설의 감성을 한국 정서에 맞게 풀어낸 K 고딕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작가의 말」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수록 일이 더 안 풀려서 절망하던 경험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문제 해결의 방법이 마냥 착하고 도덕적인 방법이 아니라 지극히 사악하고 현실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스토리와 캐릭터의 성향 등을 주도면밀하게 구상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도 곤경에 빠지거나 낯선 환경 속에 내던져질 경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느냐에 이 소설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저자의 말은 읽힌다. 저자의 의도는 이 세상에는 마냥 착하기만 한 사람도, 마냥 나쁘기만 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란 항변이라고 독자는 읽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인간의 욕망'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재영도, 효진도, 현욱과 수현 형제도, 형제의 아버지인 회장마저도 모두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을 열망했고, 그것을 갖기 위해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애를 쓰다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기 때문이다.

‘나 대신 아기를 꼭 데려다 달라’는 쪽지 속 그녀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대신 시가를 찾아간 재영은 처음엔 아름다운 서양식 저택의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그리고 그녀를 며느리로 오해하고 반겨 주는 식구들과 풍족한 집안 분위기에 흔들린 나머지 그만 자기가 아기 엄마라고 말해 버린다. 호화로운 환경, 편안한 생활, 다정하고 잘생긴 시동생까지··· 뜻밖의 행운에 도취된 재영은 자신의 처지를 잊고 부잣집 맏며느리 역할에 적응해 나간다. 그러나 번듯해 보이는 이 가족이 숨기고 있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씩 드러나는 추악한 비밀과 진실 앞에서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저자는 이 소설 『런어웨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갔던 인물은 의외로(?) 수현이었음을 고백한다. 하얗고 창백한 얼굴의 여리여리한 미청년. 이유 없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뿌리 깊은 애정 결핍 때문에 누군가에게 비틀린 방식으로 집착하는 찐한 인간(어떤 이유도 그의 행동에 결코 면죄부를 줄 수는 없겠지만). 저자는 또 마지막 장면, 수현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장면을 쓰던 밤을 잊을 수 없다는 말도 한다. 그 장면을 끝낸 뒤 왠지 울컥하는 바람에 깊은 밤 오랫동안 혼자 방 안을 서성이며 이 아련한 서글픔의 실체가 무엇인지 가만히 되짚어 보았다고 한다. 지금껏 저자가 창조한 가상의 등장인물에게 그 정도로 감정이입을 했던 적은 처음이어서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되뇌인다. 저자의 이같은 독백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인간의 욕망의 뒷편에 자리잡은 추악함, 욕망을 향하는 무절제한 집착, 욕망을 이루려다 실패했을 때의 좌절에 따른 잔인함 등을 고려하면 저자의 의도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독자의 생각이다.

교보 스토리 영상화 추진 프로젝트로서, 웹 소설를 포함해 다양한 장르의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장세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장세아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억압받는 인간의 강한 생명력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기구한 운명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이다. 또한 등장인물 모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등 누구도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입체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현실적인 흥미를 더한다.

 


 

등장인물을 살펴보면, 재영이 사랑했던 남자는 여자에게 고통만 주는 사람이었다. 동거중이긴 했지만 보육원에서 자란 재영에게는 유일한 사랑이었다. 잘 생기고 섬세했던 남자는 의처증이 심했고,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사건 당일도 남자에게 맞던 재영은 프라이팬으로 남자의 머리를 우발적으로 내리쳤고 남자는 죽었다. 재영은 도망쳤다. 역에 숨어 있다가 제일 먼저 떠나는 첫 기차에 올랐고 거기에서 아기를 안고 기차에 오른 여자를 만난다. 재영이 찾아간 아기의 집은 대저택인데다 주인인 할아버지는 몸이 성치 않지만 거부였다. 아기 아빠의 동생이라는 남자는 여자에게 형수라고 부르면서 살갑게 굴었다. 여자는 어차피 갈 곳도 없는 신세였다. 요새 같은 이 대저택에 숨어 있으면 시간을 벌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여자는 아기엄마가 되기로 하고 부잣집 며느리로 남기로 한다. 시동생이 된 남자는 친절했다. 다시 사랑의 마음이 솟아오를 정도로.

부잣집 며느리 노릇도 점점 재미가 붙었다. 하지만 자신이 죽인 남자가 발견되면 모든 게 끝이다. 여자는 살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죽은 남자가 사라졌다. 집은 깨끗했다. 누가 치웠을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기엄마가 나타났다. 시아버지의 간병인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오래전 그 집에서 간병인으로 일했던 여자는 어떻게 아이를 낳고 자신을 이 집으로 끌어들였을까. 이 집에서는 이해할 수없는 사건 사고가 연이어 벌어졌다고 한다. 자신과 살았던 장남이 집을 떠났고, 그의 어머니는 알레르기로 급사했다. 일하던 가정부는 도둑질을 하다가 쫓겨나고 이후 자살을 했다. 그 사고는 모두 우연이었을까. 여자는 오래전부터 자신들을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그리고 기차에서 만난 여자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이 모든 사고와 사건의 뒤에는 양의 탈을 쓴 악마가 있었다는 사실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을 중간에 멈출 수가 없을 만큼 압도적인 흡인력이 있다. 소시오패스의 악랄함과 사랑에 대한 갈망이 살인에 이르게 되는 스토리에 아마 독자들은 멈추지 못하고 빠르게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의 구성에 있어서도 꽤 안정적이고 유기적 관계를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작가로서 천부적 소질인지, 오랫동안 습작과 창작을 통해 획득한 재능인지 독자야 모르지만 훌륭한 구성과 스토리의 소설이라는 점에 크게 공감한다. 이 소설은 전반부는 재영, 후반부는 '효진'이라는 여자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어찌 보면 둘다 안타까운 피해자이고 가해자이다.

 

나는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가 침대로 걸어와서 내려다보는 것을 느끼면서도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다는 건 알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일들을 겪었는데.

그러니까 앞으로 나아가는 데 망설임 같은 건 없다.

멈출 생각은 없다.

그만한 각오가 없었다면 시작도 안 했지.(p.417)

 


 

그제야 내가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이 달랑 어린애 하나만 안고 찾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무슨 증표 같은 것도 없이, 아기 엄마의 이름이나 그 여자의 남편 이름도 모르고 무작정 찾아온 것이다.(p.33)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잘생기고 다정한 나의 연인 대신 또다시 괴물이 나타났다는 걸 깨닫는 순간, 모든 게 지긋지긋해졌다. 지금부터 벌어질 모든 일들이 여러 번 반복해서 돌려 본 영화처럼 익숙하게 머릿속을 흘러갔다. 어떻게 끝날지 너무 뻔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p.120)

 

이 손에 잡혀 있는 동안은 누구도 날 해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단단히 잡아야 한다.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까.(p.191)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시커먼 터널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뒤로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이 갇혀 있는 기분. 이 고통에 끝이란 게 있을까? 어느 한쪽이 사라져야 끝나는 게임일 텐데 그게 내가 될 확률이 크겠지.(p.194)

 

저자 : 장세아

 

명품 브랜드 홍보 담당자로 오래 일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북리뷰 채널 ‘취향타는 독서 처방전’을 운영 중이다. 웹 소설부터 유명 스타일리스트의 패션북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서로 다른 필명으로 쓰고 있다.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 출품했던 단편소설이 주목받아 교보문고 추천작으로 장편 『런어웨이』를 출간하게 되었다. 고전 고딕 소설의 감성을 더한 한국형 고딕 스릴러 『런어웨이』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아 영상화 등 2차 콘텐츠로의 확장을 추진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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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생활자 안전가옥 앤솔로지 10
최현수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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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색다른 생활을 꿈꾸지만 현재의 생활 또한 소중하다고 믿는 만큼 모험처럼 다른 일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두 가지 이상의 역할을 해내기 버거운데 다른 일을 더 얹기 싫어서다. 그러나 말 없이 묵묵히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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