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성의 1만 킬로미터 - 그들은 왜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는가?
이지성 지음 / 차이정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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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4만 명 시대의 뒤엔 ‘북한판 쉰들러‘ 수퍼맨 목사가 있었다. 또 수퍼맨 목사를 든든하게 후원해주는 이지성 작가가 함께했다. 이들의 5년 탈북로드 기록이 이 책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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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의 1만 킬로미터 - 그들은 왜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는가?
이지성 지음 / 차이정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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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 직전 귀순한 공군 장교를 시작으로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대한민국 땅을 밟은 탈북민의 역사는 어느덧 70년이 흘렀다는 기사를 몇 년 전 읽은 기억이 있다. 탈북민 수가 이미 3만 명을 돌파했다는 말은 훨씬 전 2015년에 이미 들은 바 있다. 지금쯤은 4만 명에 가까운 숫자일 것이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9월 기준 국내 거주 탈북민은 3만 3,718명이다. 탈북민은 어느덧 우리 일상 속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늘어났다. 지난 총선에서는 지역구 최초의 국회의원까지 배출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코리안드림’은 아직 머나먼 이야기라고 한다. 국내 적응에 실패해 다시 북으로 돌아가거나 제3국으로 떠나는 탈북민의 소식이 심상치 않게 들려온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 다시 월북을 하는 것인지는 독자로서는 모르지만 안타까운 심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독자가 안타까운 심정이 드는 이유는 탈북해 대한민국으로 온 사람들이 탈북 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목숨마저 잃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사선을 넘은 분들이 다시 월북하거나 다른 나라로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적응하기 어려웠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리라. 국내 종합편성 TV 채널이 탈북민들의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10년도 훨씬 넘은 일인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어느 방송이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두세 개의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다. 가끔씩 접했기 때문에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그들이 탈북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듣다보면 저절로 울컥 감정이 복받치기도 했다. 탈북 과정에서 들어가는 돈도 마련하기 어렵지만, 설령 마련했다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들 개개인이 겪은 일을 하나씩 소개할 때마다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겠다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이 책 『이지성의 1만 킬로미터』는 작가 이지성이 이름도 얼굴도 밝힐 수 없는, 이른바 〈수퍼맨〉의 탈북을 돕는 과정을 쓴 것이다. 저자 이지성은 이 이야기를 쓰기까지 5년 동안 취재를 위해 탈북을 돕기도 하고, 〈수퍼맨〉과 함께 행동하기도 했기에 이 책 제목처럼 단순 여정을 쓴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사선을 넘는 여정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중심은 저자가 아니라 〈수퍼맨〉이다. 그의 일은 바로 탈북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탈북인들은 북한을 떠나 중국과 라오스, 태국을 거쳐서 한국에 도착한다. 그 멀고도 험한 여정이 거의 1만 킬로미터에 달한다. 제목에 적은 대로다. 먼 여정이 생사가 엇갈리는 길이고, 물리적 거리만으로는 엄혹한 현실을 대체하기 힘들 터, 이 책으로라도 탈북 과정을 함께 해보기 위해 이 책을 선택했다. 안타깝게도 죽음을 각오한 탈출이지만, 대부분은 중국 공안과 북한 보위부의 철통 경계에 좌절하고 만다고 한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나서는 영웅들의 이야기도 이 책은 담고 있다.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북한의 쉰들러’라 불리는 〈수퍼맨〉 목사다. 그는 구출 과정에서 자신도 중국 공안에 8번 체포되고, 3번 감옥을 다녀왔다. 사실을 알게 된 세계 인권 단체들과 UN이 도우면서, 그는 30여 년 동안 무려 4,000 명 이상의 탈북인을 구출했다. 저자는 지난 5년 동안 수퍼맨 목사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탈북민 구출과 탈북로드 정비 비용, 그리고 한국에 탈북인 현실을 알리고 동참 후원을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저자의 전작 『꿈꾸는 다락방』 등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적잖은 수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수퍼맨 목사와 함께 중국 단둥과 라오스, 태국 현장으로 날아가 직접 탈북인의 구출을 도왔다. 발각 즉시 체포, 독사가 우글거리는 밀림, 북한의 감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극도의 경계심으로 녹다운이 된 저자는 자문하곤 했다. “도대체 나는 어쩌다 이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인가.” 소위 잘 나가는 작가에서 자유와 인권을 억압받는 이들을 구출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다가온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 『이지성의 1만 킬로미터』이다. 누구도 알 수 없는 3만3,000 탈북인들의 자유를 향한 행진과 숨겨진 진실을 담은 이 책은 너무나 생생해서 단숨에 읽힌다. 목숨을 건 탈북인들의 험난한 1만 킬로미터의 여정과 중국 공안과 북한 보위부의 무서운 추격, 그리고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탈북민을 돕거나 괴롭히는 브로커들 이야기가 이 책에 모두 담겼다. 여기에 탈북민을 돕는 한국의 인권, 선교 단체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해온 일부 단체들의 불편한 진실까지도 이 책은 다루고 있다. 저자의 예리한 통찰력은 그동안 거짓과 과장이 넘쳐나는 탈북 이야기들과 다르게 철저히 검증된 사실만을 포착, 진실만을 기록하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스며 있다.

한쪽 발목이 잘린 북한 여성을 들것에 실어 산을 넘고, 탈출에 성공한 스무 살 청년이 다시 북으로 가 죽음을 맞고, 아기를 등에 업은 채 3미터 철책을 맨손으로 넘은 엄마 등, 탈북인의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이고 존엄함을 지키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를 마주하게 한다. 저자는 말한다. “이들이 보여준 것은 탈출이 아니다. 자유를 향한 용기이다.”

 


 

이 책을 먼저 읽은 도희윤 대표(피랍탈북인권연대)의 말처럼, “이 책의 선한 영향력이 전 세계에 파도처럼 퍼져 다시 시작되려는 냉전시대가 따뜻한 생명의 이야기로 전환”되는 데 이 책이 작은 불쏘시개가 되기를 독자는 기대한다. 그동안 〈수퍼맨〉 목사와 저자의 탈북인 구출 프로젝트는 해외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이 책의 출간을 미리 알고 있었던 케이시 라티그 주니어 하버드대 친선대사는 탈고되자마자 바로 영문으로 번역, 현재 하버드대 교수들과 대학생들이 읽고 있다고 한다. 또 지난 4월에 열린 하버드 크림슨 150주년 행사에 초청되었으며, 이달에는 이스라엘의 명문대학인 히브리대, 하이파대, 텔아비브대에서 이 책을 기반으로 한 이지성 작가의 특강이 이어질 예정이라는 소식이다.

이 책은 모두 9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는 거절하지만 내 몸은 이미 메콩강을 향한다」, 2장 「모두가 안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3장 「삶을 바꾼 만남」, 4장 「의심하는 순간, 진실이 보인다」, 5장 「자유를 향한 행진」, 6장 「“꿈은 꿈대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다”」, 7장 「어떤 영적 광채」, 8장 「미리 온 인류 평화」, 9장 「미래를 향한 도전, 다시 시작이다」 등이다. 각 장의 앞뒤로 '프롤로그' 「마음의 이름을 불러주자」와 '에필로그' 「1만 킬로미터가 0킬로미터가 되는 그날까지」가 있다. 맨 마지막에는 '추천사'와 본문 주(註)를 '요약'한 일정 등이 담겼다. 탈북인들을 돕는 일에는 돈(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우선 탈북인 1인 당 수천 만 원까지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목숨 걸고 탈북을 돕는 일이 돈으로만 되지 않을 일이지만 높은 비용은 탈북의 한계에 부딪치게 하는 큰 요인 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탈북 과정에 필연적으로 끼어야 하는 '브로커'들의 비용이다. 그들도 목숨 걸고 하는 일이라 비용을 탓할 처지는 못 되지만 수천 만원을 지불할 수 있는 탈북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다.

 


 

책 1장에서 저자는 〈메콩강가에 선 두 남자〉라는 글에서 〈수퍼맨〉과 자신이 메콩강가에 서 있다. 물론 탈북민들을 무사히 넘겨 받기 위한 일이리라. 잠깐 〈수퍼맨〉의 정체를 소개한다. "또 메콩강이다. 무심히 흐르는 탁한 물 앞에서, 나는 멍한 얼굴로, 이 강을 아무 생각 없이 넘나들던 배낭여행자 시절을 떠올리고, 수퍼맨은 능숙한 얼굴로, 구출 경로를 살핀다. 그나저나! 나는 또 왜 이곳에 온 걸까. 나는 작년에 여기 탈북인들을 구출하다가 멀리 숲속에서 다른 곳을 보고 있던 경찰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호흡곤란 증세까지 겪지 않았던가. 그때 내가 현장에 맞지 않는 사람임을 절감하면서 앞으로 현장엔 절대로 오지 말자고 굳게 다짐하지 않았던가. 다시 그나저나! 나는 또 왜 수퍼맨과 이곳에 온 걸까.

수퍼맨은 베트남, 몽골 루트에 이어 여기 메콩강 루트를 최초로 만들고 이 루트를 통해서만 2,000명이 넘는 탈북인들에게 자유를 선물한 인물이다. 덕분에(?) 북한 보위부, 중국·라오스 공안, 태국·미얀마·캄보디아 경찰의 표적이 되었고, 마침내 태국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고, 치앙라이 법원으로부터 징역 9개월 형과 메콩강 접근 금지 4년을 선고받았다. 한마디로 수퍼맨은 메콩강과 접한 국경도시들을 관할하는 공안들과 경찰들에게 인지도가 높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영상이 한 편 돌아간다. 태국 형사들이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부터 우리 뒤를 따라붙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망원경으로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동남아의 맹주라고 불리는 태국 같은 국가가 이런 일에 공권력을 동원할 리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에서는 북한 인권 운동가가 공안의 기획 수사에 의해 체포되고 감옥으로 끌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장에서는 〈한국을 들썩인 두 가지 사건〉이란 글이 독자의 관심을 끈다. 이른바 '탈북인 살인사건'이다. 서울 송파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탈북인이 동거 중이던 다른 탈북인 세 명을 칼로 살해한 뒤 탈북 경로를 되밟아서 북한으로 도주했다. 당시에 범행 현장을 조사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 탈북인은 이상한 짓을 했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기에도 바빴을 시간에 굳이 세 탈북인의 시신에서 피를 잔뜩 빼서 방바닥을 피로 흥건하게 적셔 놓았다. 수사기관 관계자들과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이 괴이한 사건을 두고서 설왕설래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북한 정권을 잘 알고 있는 수퍼맨은 이렇게 단언했다.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인들 중 극히 일부는 간첩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북한 당국에 의해 체계적인 간첩 교육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탈북하다 붙잡혀서 강제 북송된 뒤 보위부에서 협박과 회유를 받아 간첩이 된다. 사실 간첩보다는 보위부 끄나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이런 류의 탈북인들은 평소에는 정상적인 탈북인들과 똑같이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북한으로부터 누구를 죽이라거나 무슨 사건을 저지른 뒤 북한으로 들어오라는 지령을 받는다. 만일 지령을 거부하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 친척들이 수용소로 끌려가고, 자신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다른 탈북인에게 살해당한다. 한마디로 지령을 따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번 사건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탈북 간첩이 저지른 전형적인 사례다. 북한 정권은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 탈북인 사회를 보이지 않게 통제하고 있다. 그런데 국제 사회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정부조차도 여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은 탈북 과정의 어려움, 목숨과 바꾸는 탈북 등으로 표현되는 여러 가지 탈북인들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또 실제 목숨을 잃는 사례도 여러 차례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탈북민 돕기를 사칭하는 돈벌이 '가짜 탈북 도움단체(종교 단체 포함)' 등을 소개한 부분도 여러 번 나온다. 독자에게는 한 줄 한 줄 눈물이 담기지만 이미 TV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은 바 있어 여기에 자세하게 소개하는 것을 생략한다. 다만 저자가 〈수퍼맨〉과 잠시 활동을 함께하는 일을 멈췄다가 마지막 장쯤에서 다시 그를 돕는 결심을 하고 다시 시작하면서 〈수퍼맨〉이 내놓은 「열가지 회복 프로젝트」가 인상적이어서 여기에 번호를 매겨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요점만 옮겨놓는다. ① 붕괴된 북한 내부 조직 재건 ② 북한의 고아원들과 양로원들 그리고 꽃제비들에게 식량과 생필품 등을 제공하는 프로젝트 시작 ③ 중국 일꾼 조직 복구 ④ 중국 공안의 첨단 감시 기법에 절대 노출되지 않는 기상천외한 탈북인 수송 작전 기획해 중국 일꾼 조직 훈련 ⑤ 중국 내 협력자 조직 복구 ⑥ 중국·라오스 국경지대 일꾼 조직 복구 ⑦ 메콩강 일꾼 조직 복구 ⑧ 태국에 새로운 선교사들과 선교관 건립 ⑨ 미얀마와 베트남 구출 루트 복구 ⑩ 러시아 구출 루트 건설, 선교사들과 선교관 건립.

 

저자 : 이지성

 

1993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교육, 자기계발,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른 권 넘는 책을 출간했다. 대표작으로 『꿈꾸는 다락방』, 『리딩으로 리드하라』, 『에이트』, 『에이트:씽크』, 『생각하는 인문학』, 『스무 살, 절대 지지 않기를』, 『일독』, 『이독』 등이 있다. 주요 저서들은 미국, 중국, 대만,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스무 살 3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주변에서 모두 무시하고 비웃을 때 도서관의 책들은 그 꿈을 응원해주었다. 꿈이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반드시 현실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로부터 14년 뒤, 꿈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인 R=VD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꿈꾸는 다락방』을 썼다.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읽히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꿈꾸었다. 그러자 놀라운 속도로 베스트셀러의 꿈이 이루어졌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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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_0419
달빛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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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 시작 부분이다. 여기에 4·19혁명의 이념이 들어가 있다. 불의에 항거해 분연히 들고 일어난 시민 정신을 담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큰 축의 하나로 4·19를 기린다는 의미다. 이 책 『#축제_0419』는 1960년 4월 19일에 벌어진 소시민의 봉기로서 한반도 역사에서 몇 안 되는 ‘혁명’으로 지칭된다고 저자 달빛은 밝히고 있다. 독자는 우선 저자가 표현한 대로 소시민의 봉기란 말에 주목해 본다. 〈소시민〉이란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용어인데 굳이 저자가 '소시민의 봉기'로 표현한 것은 그 시절에 가장 합당한 세력이라고 본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소시민〉이란 부르주아(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노동자)의 중간에 있는 소생산자나 영세 상인, 봉급생활자 등을 두루 일컫는 용어다. '중간계급'이라고도 한다. 이는 주로 사회구조를 계급적 구도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나온 개념이지만 현대에는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고 두산백과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이 책 『#축제_0419』는 해시태그를 통해 오늘의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1960년 4월 19일’에 대한 시도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저자는 소시민으로서 그 시절을 힘겹게 살아냈던 ‘장지유’란 인물을 통해 들여다보는 그날의 이야기와 4·19혁명을 ‘축제’라는 담론을 이끌어냄으로써 ‘4·19 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이라 표현해도 될 듯 싶다. 무엇보다 이를 엄숙하고 무겁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로 마무리해낸 것은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의 발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집안의 3대의 삶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있다. 우리 나라는 뼈아픈 일제강점기를 보내고 해방된 지 불과 5년 만에 6·25 전쟁을 맞는다. 이 전쟁은 한국인들간, 남북간 전쟁으로 이념의 차이에서 벌어진 것이다. '동족상잔', '골육상쟁'이란 표현이 드러내듯 우리 민족간 전쟁이다. 무려 3년 이상 한반도에 내전 상태에서 주변 강대국들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한반도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다. '국가 경제'란 표현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과 기아에 빠져든다.

허허벌판 속에 맞이한 휴전은 잠시 전쟁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남북으로 갈린 채 이념 대립의 소모전 양상으로 바뀐다. 그 속에서도 경제 발전을 이루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고, 지금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했으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대한민국을 되돌아보면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국민의 피땀과 사람밖에 없는 전쟁의 폐허에서 이렇듯이 민주주의를 완성시켜가고 경제적 자립을 넘어 당당한 나라로 만들어온 그 과정을 대한민국 국민 한 명 한 명에 가슴 깊이 뿌리박혀 있다. 어쩌면 유전자화돼 이제는 '강한 나라' 만들기의 교과서적 길을 걸어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소설은 그렇게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뒤돌아볼 수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 장지유는 일본인 어머니와 조선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는 일본인 며느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유가 자라면서 엄마가 일본인으로 집에서 쫓겨난 것을 알고 찾으러 가지만 재회도 잠시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지유는 홀로 남겨지고 17살에 연탄 공장에서 일을 한다. 서울대생인 세헌은 군대를 다녀온 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해 일용직 현장에서 막노동 일꾼으로 일한다. 그 일용직 현장도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하청을 받는 곳이었다. 세헌은 아버지를 떠나 독립하기 위해 미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일하다가 식당에서 일하던 엘을 만나 딸 민서를 낳지만 엘은 곧 죽는다. 엘은 죽기 전 친구인 나오코에게 딸 민서를 키워달라고 부탁한다.

당시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은 아니라 하지만, 그대로 서울에 자리를 잡은 채 ‘서울 사람’이 된다. 소설 속 또 다른 소시민인 현미도 마찬가지였다. 마산에서 상경해 외교부에서 일하며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한다. 그렇게 홀로 서울에 자리 잡은 현미는, 그의 인생 자체가 대한민국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랬던 현미에게 오늘이 공포로 돋아났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평소처럼 자고 일어났다. 가뿐하게 레지던스에서 하루를 시작했을 뿐인데 5년을 건너뛴 날짜가 컴퓨터에 나타났다. 어떻게 된 것일까? 사라진 5년.

 


 

현미는 자신을 치매라고 단정한다. 자칫 절망하거나 좌절할 만한데도 현미는 외교부에서 유리 천장을 뚫어내던 의지를 오늘에 투영하며 사라진 5년을 찾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그 5년의 추적을 통해 현미는 자신이 잊었거나 때론 비겁했거나 아니라면 외면했던 과거와 마주하며, 현미 자신이 바로 대한민국이었음을 자각한다. 그 중심에서 비로소 직면한 한 남자의 순애보가 현미에게 ‘과거가 아닌 오늘’을 선물한다.

실상은 비겁했지만, ‘정의’라는 이름과 ‘상식’이라는 일반론으로 자신을 포장했던 남자 세헌. 그가 살아왔던 서울대학교 학생 시절은 딱 세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운동권이거나 수긍하거나 아니라면 비겁하게 외면하거나. 세헌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1980년대의 현실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멋진 박스에 담긴 부유한 선물처럼 자신의 인생을 애지중지 넣으려 애썼다. 사실 멋진 인생일지도 모른다. 세헌의 인생, 이를 통해 작가가 규정한 1980년대의 지식인은 세 부류였다. 운동권이거나, 수긍하거나, 비겁하거나. 세헌은 바로 비겁자에 속한다. 현실을 외면하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 출세의 길을 택하는 부류를 말한다. 이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민서는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세대의 후손이다. 일본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를 둔 특이한 이력의 그가, 어머니의 가출로 가족에 대해 되돌아본다. 언제나 자신을 지지해줄 것 같던 엄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돈만 주면 되는 존재인 아빠. 늘 그럴 것 같았던 두 사람의 균열이 민서의 인생에도 파열을 가한다. 나에게 엄마는, 또 아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 끝에 한국으로 무작정 와버린 민서. 그녀에게 한국의 2000년대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소용돌이였다.

 


 

1980년대를 비겁하게 살아왔음을 자각하게 된 세헌, 처음 겪는 2000년대의 소용돌이를 마주한 민서. 이들의 엇갈림은 어떻게 2020년대에 안착하게 될까. 이들 개인의 역사는 그 자체가 이 땅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최근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가 이를 잘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역사라는 거대 담론은 결국 대척에 있을지 모를 개인의 소소하고 미진한 이야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역사가 사실에 입각한 기본적인 줄기라면, 소소하고 미진한 개인의 역사는 가지이자 잎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역사는 창작물로 꽃 피울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 『#축제_0419』는 미츠코, 지유, 현미, 세헌, 민서를 통해 다루어지는 개인의 이야기다. 이들의 사연이 모여 하나의 역사로 기능하는 서사를 만들어내며 4·19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파문이 커지면 파도가 되고 파도가 커지면 너울이 되며 너울은 결국 바다를 뒤집는다. 『#축제_0419』에서 1940년대와 1960년대, 1980년대, 2000년대, 그리고 2020년이라는 80년을 관통하고 살아온 개인을 반추해 미래를 짚어보는 일은 작은 파문에 불과할지 모른다. 비록 한 편의 소설일지라도 그 파문이 결국 바다를 뒤집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 소설이 한 개인에게 소소한 파문의 시작점이 된다면, 소설은 그로써 생명을 다해낸 것이 아닐까. 저자 달빛이 독자들에게 묻는 것 같다.

 


 

또 다른 인물 박현미는 친구 화숙이 소개해 준 레지던스에 있다. 레지던스에서 컴퓨터 수업을 받고 있지만 현미에겐 지난 5년 간의 기억이 없다. 그 기억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현미는 잃어버린 5년의 기억을 되찾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민서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인이다. 하지만 민서는 미국에서 오직 돈을 많이 벌어야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한국에 가면서 엄마에 대한 빈자리를 느끼고 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다.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민서는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된다. 『#축제_0419』는 장지유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그 가족이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유와 현미는 1960년 4월 19일을 겪은 세대로 아들과 손녀, 손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들에게 1960년 4월 19일은 인생에 있어 다시 없을 축제와도 같은 날이었다.

 

저자 : 달빛

 

20년을 아나키스트로 살았다. 그사이 현장 운동가, 영화사 직원, 변호사실 사무장, 출판 기획자, 작가 에이전트, 웹소설 플랫폼 관리자 등으로 지냈다.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다짐처럼 그리고 바람처럼, 단 하루도 글을 쓰지 않은 날이 없었다. 11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으며 14편의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 많은 일을 했고 많은 이들과 협업했다. 온전히 아나키스트로 사는 것과 관계를 이으며 사는 대척점에서, 2020년 한국인으로 ‘다시’ 살기를 택했다. 미래와 다음 세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유기견 만두와 만두 엄마를 만난 일은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음을 고백한다. 2020년 콘텐츠 회사를 설립했다. 독립영화 두 편을 제작, 감독했으며 개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0여 편 시나리오의 영화화와 기획한 드라마, 웹소설의 진행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기치로 내건 ‘콘텐츠가 꿈꾸는 행복한 세상’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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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사 1 - 송수한 대본집
송수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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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대행사』는 드라마 〈대행사〉 대본집이다. 드라마 〈대행사〉는 작가 송수한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대행사〉는 JTCB에서 지난 1월 7일부터 16회에 걸쳐 방영된 오피스 드라마다. '대행사'는 광고 대행사를 뜻하며 광고 기획부터 제작까지 광고의 전부를 맡아 해주는 곳이다. 이 때문에 광고 대행사에는 사람의 욕망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꾼들이 모여 있다고 한다. 욕망이 없다면 욕망을 만들어 내서라도 소비하게 만드는 곳이 바로 광고 대행사다. 이 드라마는 전 작품 〈재벌집 막내아들〉의 엄청난 흥행 후속으로 나오는 바람에 적잖은 우려가 있었다는 방송가 후문이다. 한 방송국에서 연이은 드라마 히트는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미신 같은 속설이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드라마 1, 2회 방영 때는 시청률 4%라는 저조한 실적으로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곧이어 대반전이 시작된다. 꾼 중의 꾼 ‘고아인’이 전쟁보다 치열하다는 광고 업계에서 ‘지방대, 흙수저, 여자’라는 한계를 차례차례 깨부수고 ‘VC그룹 최초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내용이 본격 시작되고서부터다. 이 드라마의 최종 시청률은 경이롭게도 16%까지 뛰어올랐다고 한다. 드라마 인기가 식기 전에 대본집이 선보인다.

저자(작가)는 ‘광고 업계 카피라이터 출신’ 송수한이다. 드라마 대본은 처음 썼다는데 광고업계의 실상을 워낙 잘 알고, 카피라이터 출신이어서인지 매회 명대사를 만들어 내며 드라마 팬들에게 ‘어록 제조기’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대본집에는 저자가 뽑은 ‘드라마 속 명대사’와 캐릭터 설정과 전사(前史)가 담긴 작가 제공 ‘기획안’, 방송에는 공개되지 않은 ‘또 하나의 엔딩’까지 함께 수록됐다. 독자들에게는 '종합선물세트'이다.

 


 

앞에서는 우아한 백조처럼 살지만 뒤에서는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대행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 연애질과 코미디로 뒤범벅된 대학교 동아리 수준의 오피스 드라마가 아닌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로워 보이는 프로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하이퍼리얼리즘 드라마이다. 정점에 서기 위해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의 일상과 타 업종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업계의 뒷 이야기 등을 통해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욕망이 혜성 간의 충돌처럼 폭발하며 성공과 좌절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등장인물에는 여주인공인 고아인 역에 이보영, 최창수 역에 조성하가 맡았으며, 강한나 역에 손나은, 박영우 역에 한준우, 조은정 역에 전혜진이 출연한다. 저자 송수한은 이 책 『대행사』 「프롤로그」에 이 드라마의 속내를 썼다.

 

남루한 복장의 소녀 앞에

명품 정장을 입은 남자가

백마를 타고 나타난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소녀가 수줍게 미소를 건네면

백마 탄 남자, 거만한 표정으로 소녀를 내려다본다.

그떼, 섬뜩한 기운을 느낀 백마가 리어링을 하자 소녀가 허리에서 장검을 뽑아 백마의 목을 단칼에 벤다.

공포에 질린 남자의 얼굴을 보고

해맑게 한마디 내뱉는 소녀.

"왜 다른 여자애들이랑은 달라서 놀랐니?"(p.10)

 


 

이 책은 드라마 대본집답게 「등장인물」을 책의 맨 앞에 위치시킨다. 등장인물의 성격은 그 드라마의 성패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리라. 이 드라마가 꽤 성공할 것이라는 예감은 어쩌면 저자 혼자뿐이었을지 모른다. 저자가 창출한 인물들이 어떤 캐릭터이고, 드라마 내에서 어떤 활약을 하는지, 드라마의 스토리에 어떻게 작용하고 스토리를 이끌지 등 모두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저자 혼자뿐이었으니까. 주요 등장인물을 대본집에 따라 살펴본다. 주인공 고아인은 미혼에 지방 국립대 졸업이다. 성공 지상주의자이고 '돈시오패스'로 VC기획 제작 2팀장이다. 실력으로는 훌륭했지만 학벌 부족으로 팀장까지가 한계인 줄 알았던 고아인이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VC 임원으로 발탁된다. 하지만 자신이 얼굴마담 임원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남자 주인공은 한국대 경제학과 공채 출신으로 VC기획 기획본부장이자 상무인 최창수로 배우 조성하가 연기했다. 냉정하고 수 싸움도 능한 그는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회사에서 승승장구한다. 차기 대표 자리를 위해 회장의 눈에 띄어야 했고 회장의 딸을 임원으로 출근시키기 위해 쓰고 버리기 좋은 카드로 고아인을 추천한다. 발바닥부터 올라온 주인공 고아인과,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사람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정치력 만랩인 최창수와의 사내 전쟁이 그려지며 특히 회장의 딸이 임원으로 들어오다보니 금수저와 흙수저의 대결 구도도 예상된다. 이 대결 구도를 만드는 과정이나 진행이 자연스러워 시청자들의 인기몰이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강한나는 28세로 VC그룹 재벌 3세다. SNS 스타 인플루언서이고, 단군 이래 재벌가 최강 미모를 자랑한다. VC기획 SNS본부장이다. "부모 덕에 사람 노릇하는 돌대가리들, 걔들이 사람이야? 울산바위지! 자수성가한 놈이랑 살 거니까 신경 꺼주세요."(p.18) 대사도 억양이나 내용 모두 시원시원하다. 재벌 3세답게 거침없는 부분과 안하무인 관점이 공존한다. 저자는 강한나를 '성공은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서양 격언을 동원해도 한나는 왕관은 쓰되 무게를 견딜 생각은 없다. "내가 왕이 되면 가벼운 왕관 만들어서 쓰면 되지, 왜 그걸 견뎌?" 강한나식 화법이다. 재벌가 역대급 미인이라는 평 덕분에 혼사가 줄을 잇지만 싹 다 거절했다. 남들이 왜 내 인생을 결정해!! 라고 말하지만, 사실 마음에 둔 남자가 있다. 문제는 그가 '머슴'이다.

'머슴'은 30대 중반의 VC그룹 본사 비서실 차장 박영우다. 출세를 위한 자신의 처지를 낮추는 전형적인 출세 지향적 인간이다. 그는 재벌 3세의 강한나에게 언제나 저자세뿐만 아니라 아첨이라 보일 정도의 아부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임은 분명하지만 유학시절부터 한나의 과외교사이며 오른팔이다. "한나 상무님은 상무님답게 앞장서서 1등 하세요. 저는 저답게 상무님 뒤에서 1등 머슴 할 테니까."라는 아부성 발언을 아끼지 않는다. 박영우는 성공을 위해 마음을 숨기는 스타일이다.

조은정은 VC기획 제작2팀 카피라이터다. 34세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동분서주 아주 바쁜 인물이다. "남들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하고 노래 불렀을 때 난 '텔레비전에 내 카피 나왔으면' 하고 노래 불렀다!"고 주장하는 돌격형 스타일이다. 극중에서는 약방 감초 같은 분위기 해결사다. 착하고, 예쁘고, 똑똑하고, 사랑받고 자라 구김살 없는 성격. 성인 남성보단 많고 먹방 유튜버보다는 적은 식사량을 가진 '육식러'다. 입만 열면 적재적소에 꽂히는 감각적인 개드립이 마구 튀어나오는 트렌디하고 말랑한 카피를 잘 쓰는 10년 차 카피라이터이다. 저자 자신의 재림이 아닌가 싶다.

 

 

저자 송수한은 대본집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이 대본집을 쓰기까지의 과정과 심정을 담담하게 기술한다. "몰락한 명문가의 자제들이 소설가니 극작가니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명문가인 적도 다행스럽게도 몰락한 적도 없기에 헛된 꿈 꾸지 말고 '월급 받으면서 사람 구실하고 살자' 싶어서 대학 졸업하고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한 십여 년. 밥 벌어먹고 사다가 40살이 코앞에 와 있던 어느 날 문득 '남은 인생은 이야기를 써서 먹고 살아볼까?' 하는 오래전에 푹 묵혀 두었던 생각이 들어서 한 달쯤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백날 천날 고민해 봐야 답 안 나올 거 같아서 '그래, 한 번 써보자' 싶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공모전에도 당선되고 또 어떻게 편성도 받고 또 또 어떻게 캐스팅도 하고 또 또 또 어떻게 온에어까지 하게 되어 이렇게 극본집 작가의 말까지 쓰고 있습니다." 구절구절 틀린 말은 없다. 그렇다고 본받아볼 만한 멋진 생각이나 치열한 열정의 과정도 없다. 없는 게 아니라 저자가 일부러 생략한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그래도 마지막 인삿말은 시청자들의 몫이라는 걸 아는 걸 보니 말이다. "여성 원탑물에 (하필이면 날카롭고 예민한) MZ 세대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오피스 장르(그것도 사내 정치) 거기에 러브라인도 없는 (한나+박차장 제외) 드라마를 주말 밤 10시 30분까지 기다리며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이 책 『대행사 1』은 16부작 중 1~8부까지가 담겼다. 9~16부는 『대행사 2』에 분재됐다. 1부 「백조는 물 밑에서 쉬지 않고 발버둥친다」, 2부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미친년처럼 행동한다」, 3부 「사자가 자세를 바꾸면 밀림이 긴장한다」, 4부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된다」, 5부 「밤에는 태양보다 촛불이 밝은 법」, 6부 「바보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라」, 7부 「배고픈 짐승에게 먹이를 주는 법」, 8부 「준비된 악당은 속도가 다르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드라마가 주인공 ‘고아인’이 ‘지방대, 흙수저’라는 자신의 한계를 깨부수고 VC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된다는 통쾌함이 인기의 원인이겠지만, 경쟁에서 열세에 있는 ‘언더독’이 질 것이 뻔한 싸움이라도 도망치지 않고, 처절하게 발버둥쳐서라도 살아남아 언젠가 승리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한 번쯤은 회심의 일격을 날려주기를 기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주말 밤 TV 앞에 시청자들이 모인 이유일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단순한 재미를 넘어 공감과 울림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또 매회 드라마 팬들의 심중을 꿰뚫던 『대행사』의 날카로운 카피와 명대사의 덕도 클 것으로 예측된다. ‘드라마보다 회화적이고 소설보다 글맛 있는’ 대본집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역시 송수한 작가의 오랜 카피라이터 생활을 통해 나온 ‘글맛’의 힘이 아니겠는가. 주말 저녁 팬들을 감탄케 했던 명대사와 드라마 방영 시에는 다 하지 못했던 캐릭터들의 숨은 이야기, 그리고 고아인의 또 다른 행보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팬들은 『대행사』의 상승세에 이끌려 가든가, 따라가든가, 그것도 아니면 비켜서서 선망의 눈초리로 지켜보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자 송수한이 대본집 『대행사』를 통해 털어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바로 〈관전 포인트〉다. 드라마 대본 작가가 TV 방영 전에 〈관전 포인트〉를 풀어놓을 수는 없을 터, 대본집에만 독자들을 위해 끼워넣은 것으로 읽힌다. 〈관전 포인트〉〉는 저자의 드라마 대본 쓰는 취지와 의도가 담겨 있기에 어쩌면 비밀스러운 이야기일 수 있다. 이 〈관전 포인트〉에 따르면 저자는 드라마 구도를 기득권(남성, 서울대) VS 비기득권(여성, 지방대)로 짰다. 낙하산 재벌 3세 딸 VS 자수성가 흙수저 여성의 갈등과 협업을 보여줌으로써 대결 구도의 선명성을 올리고, 때로는 타협과 협력을 하는 모양새를 보여줌으로써 현실성을 가미했다. 정치, 경제, 연예 등 전방위로 연계된 광고대행사의 뒷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앞에선 백조처럼 우아함을 보여주지만, 뒤에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대행사 사람들의 피말리는 삶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최초를 넘어 최고가 되는 것

처절하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는 것

나를 버리면서 나를 지키는 것이

목적인 그녀의 이야기가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을 터이니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빠져 살거나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한 분이라면

지금 당장

채널을 돌리시길···"이라며 과장된 엄포도 잃지 않는다.

 


 

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원동력은 누구나 동의하듯 고아인(이보영 분)이다. 고아인의 과거는 어둡고 초라하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7살부터 얻어먹은 눈칫밥으로 세상을 일찍 알았을 인물이다. 어렵게 공부해 한국대 경제학과 합격증을 받았지만 세상은 개인의 오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IMF로 아수라장이다. 지원받기로 예정된 장학금도 취소되고, 고모의 경제 사정도 여의치 않아 결국 전액 장학금의 지방 국립대에 입학한다. 광고계는 금융권에 비해 연봉도 높은 편이고 성차별도 적어서 승진 기회가 많다고 들은 고아인이 국내 1위의 광고대행사에 입사한다. 이후 아인은 19년간 감정 없는 기계처럼 일만 했다. 오직 숫자만이 그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돈과 성공에 미친 '돈시오패스'라는 오명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언제나 하이힐에 풀 착장을 했다. 복용하는 약의 종류는 늘어만 간다. 고아인 역에 이보영을 선택한 것은 연출자이지만 어쩌면 대본 작가에게도 물을지도 모른다. 독자가 잘 모르는 부분이어서 거론하기 힘들지만. 고아인 역의 이보영이 2021년 tvN 〈마인〉에서 서희수 역으로 나온 이후 1년 반이라는 휴식기를 가진 뒤 JTBC 〈대행사〉로 드라마에 복귀했다. 평소에 늘 하던 헤어스타일이 아닌 짧은 단발이라는 점부터 이미지 변신이 돋보인다.

"‘성공’이 〈대행사〉의 서사를 이끄는 키워드라면 ‘주체성’은 중심을 잡아주는 키워드이다." 이 말은 드라마 사전 인터뷰에서 저자가 했던 말인데, 그 당시에는 스포가 될 수 있어서 하지 못했던 중요한 말이다. 〈대행사〉를 주인공 중심으로 보면 ‘그냥 워커홀릭 고아인이 건강한 워커홀릭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건강한 워커홀릭. 이것이 〈대행사〉라는 드라마를 풀어내야만 하는 화두였습니다. 워커홀릭과 건강함이 한 문장 안에 존재할 수 있는 단어인가? 이건…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내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밝힌 저자의 언급에서 이보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저자 : 송수한

드라마 <대행사>로 데뷔.

ChatGPT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노력 중.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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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뇌 안에 - 타인 공감에 지친 이들을 위한 책
장동선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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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SNS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번 '공감'을 표현하고 또는 말하며 산다. 공감이라는 말은 한 SNS에서 '좋아요'로 표현되기도 하고, '엄치척' 모양의 그림으로 자신의 의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공감'이 차고도 넘치는 세상이다. 과연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과의 제대로 된 공감을 나누고 있을까? 공감이란 감정을 말하는데 감정을 '옳고 그름'으로 표시하지 못하는데 제대로 공감하는지 알아볼 수나 있을까? 비슷한 표현으로 '좋아요' 이외에 '동감'도 있고, '동의'도 있다. 독자는 이 책에서 주제로 논의되고 있는 공감에 대한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책을 읽고 싶어 백과사전의 뜻을 빌려본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공감(Empathy, 共感)이란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을 말한다. 1909년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티치너(Edward B. Titchener)가 도입한 용어로, ‘감정이입’을 뜻하는 독일어 'Einfuhlung'의 번역어이다. 요한 헤르더(Johann Herder), 노발리스(Novalis)와 같은 18~19세기 철학자들은 자연이나 예술 작품에 대한 감정이입을 주로 다루었다. 그러나 '감정이입'은 '공감'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개념으로, 근대 과학이 자연을 해부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다루는 태도에 반발하여 나온 테제였다. 독일의 철학자 로베르트 피셔(Robert Vischer)는 그리스어 'empatheia'를 근거로 'Einfuhlung'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자신의 논문에서 처음 사용하였으며, 이 개념이 철학적으로 분석할 만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심리학자 테오도어 립스(Theodor Lipps)는 '공감'이야말로 미적 대상을 감상하는 데 꼭 필요한 역할을 맡을 뿐만 아니라, 의식을 지닌 생명체로 서로를 인식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고 주장하였다. 20세기 초 '공감'은 해석학(hermeneutics)에서 특히 행위, 예술 작품, 문헌 등의 의미와 의의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방법으로 채택되어, 이해(Verstehen)라는 개념과 깊은 연관을 맺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이 현재 어떠한 마음 상태에 있는지는 알기 쉽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거나 무엇을 인식하는지는 자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가진 심적 상태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를 심리철학에서는 '타자 마음의 문제'(The Problem of Other Minds)라고 한다. 심리학자 립스는 '타자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내 마음이 상대방의 마음을 모방하는 것, 곧 '공감'에 있다고 보았다. 립스의 이러한 생각은 1980년대의 모사이론가(Simulation Theory)들이 받아들였다. 모사이론은 타자의 마음을 이해할 때 지각적 차원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타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은 우선 타자의 입장이나 상황으로 나 자신을 투사한 후 나의 심적 상태가 어떠할지를 상상한다. 이후 내 심적 상태를 유비추리를 통해 타자에게 투사한다. 이는 공감이라는 심리적 능력을 중점적으로 하여, 다른 행위자를 인과적으로 해석·설명·예측하는 것이다.

인간의 어떤 도덕적 행위가 옳거나 그를 수 있다는 규범성이 어디에서부터 도출되는지에 대한 철학적 설명은 '공감'을 통해 제시되기도 한다. 규범적인 규칙들은 행위자가 따라야만 하는 의무를 표현하는데, 이 규칙은 또한 행위자의 의도와 동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순수이성을 통해 사유된 도덕 규칙을 따르는 의무적 행위만이 윤리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자연적 능력을 통해 행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기적이지 않은 도덕적 동기라고 반박한 바 있다. 현대에 들어 공감과 도덕 발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는 발달심리학자 마틴 호프만(Martin Hoffman)으로, '공감'이란 이타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생물학적인 성향이기 때문에 인간이 도덕 행위자로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고 보았다.

 


 

또 동감(sympathy, 同感)은 타인의 사고나 감정을 자기의 내부로 옮겨 넣어, 타인의 체험과 동질의 심리적 과정을 만드는 일. 일체화나 동일화와는 다르며, 주위 사람들이나 현상, 즉 동감대상과 자기(동감자) 사이에 차별이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대상과 자기의 심리적인 동일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동감의 일종에 ‘동정’이 있다. 이것은 18세기 이래 영국의 D.흄이나 J.A.스미스 등에 의하여 근대사회의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원리로서 채택되어 왔는데, 엄격한 의미에서 동정과 동감은 구별되어야 한다. 동정은 타인의 사고 ·감정을 승인하고 상대에게 적극적인 감정을 지니는 것으로, 거기에는 보다 깊은 인간관계가 엿보인다. 그러나 동감은 무생물에 대한 경우에도 체험하는 것으로, 저물어 가는 가을빛이 서글프게 보이거나, 빛나는 한여름의 태양이 힘차게 보이는 것 등이 그것이다. T.립스는 도덕적인 행위나 미적 감정도 동감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밖에 동의(同意)란 타인의 행위에 대하여 인허(認許) 내지 긍인(肯認)하는 의사표시다. 승인과 비슷하나 동의는 사전의 의사표시이고, 승인은 사후의 의사표시인 점에서 구별된다. 법률상 행위자의 단독행위로는 완전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키지 않고 그것을 보완하는 타인의 의사표시를 요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동의라고 한다. ① 공법상의 대표적 예는 헌법 제60조에서 대통령의 중요 조약체결이나 선전포고 등에 관하여는 국회의 동의를 요하게 하고 있는 것과 같다. 행정법상으로는 인가 ·허가 ·승인 ·인허 ·인증 등의 용어를 쓰고 있는 경우에, 성질상 동의에 해당하는 것이 많다. 예컨대 법인설립의 인가, 사업양도의 인가 등이다. ② 사법상으로는 민법상 미성년자나 한정치산자 등 행위무능력자가 재산적 법률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법정대리인이나 후견인의 동의를 얻게 하고(5 ·10조), 미성년자가 혼인을 하려면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과 같다(808조).

 

 

우리 사회는 불평등과 양극화, 사회적 갈등이 점차 심해지면서 ‘공감’이라는 키워드는 어느 때보다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공감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그 주목도에 비해 공감은 쉽게 오해되거나 공허하게 남용되기 일쑤라고 이 책 『행복은 뇌 안에』는 지적한다. 책의 공동 저자 장동선, 박보혜, 김학진, 조지선, 조천호 등 5명이 이에 대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각자 다른 분야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공감'을 다룬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공감을 편협하게 그리고 맹목적으로 중시함으로써 오히려 폐쇄적인 공동체를 만들기도 하며, 동시에 어떤 이들은 공감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혐오와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런 문제의식 아래 2021년 개최된 티앤씨재단의 ‘우공이산’ 콘퍼런스 내용을 엮은 결과물이다. 이들 다섯 저자는 각자의 전문적인 분야에서 공감을 연구하고 통찰했다. 뇌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심지어 기후과학까지, 그들의 전문성에 힘입어 공감은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된다. 저자들은 공감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정보를 전해주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의미 있게 공감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기도 하며, 우리 삶에서 실제로 어떻게 공감을 다루어야 하는지 그 길을 일러주기도 한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서는 이유다. 이 책은 공감에 관한 과학책이기도 하고 자기계발서 혹은 심리 안내서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책을 읽고나면 좀더 풍성하게 공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로 진행된 Q&A와 저자들 간 대담이 수록되어 있는 것 또한 이 책을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는 않게 만드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뇌과학자 장동선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공감의 뇌과학적 원리를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과학적으로 공감은 뇌의 진화 과정 속에서 생존을 위한 도구로서 발달해온 능력이다. 자연의 적대적인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옛날부터 인간은 다른 개체를 잘 살피는 능력을 길러왔다. 특히 사회를 이루면서부터는 단순히 타인을 살피는 것 이상으로 타인의 생각과 감정까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공감이다. 뇌과학적으로 타인에 공감하는 활동을 가능케 하는 건 거울신경세포로, 이 세포는 타인의 감정과 행동을 ‘시뮬레이션’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농구 선수들은 농구공이 슛 하는 사람의 손을 떠나는 순간을 딱 0.5초 정도만 끊어 보고서도 슛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p.26) 몸에 새겨진 경험으로 미루어 타인의 슛 동작을 자기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조지선은 거울신경세포 외에도 ‘마음 이론’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는 공감을 위한 사전 장치를 소개한다. 마음 이론은 다른 사람의 상태를 추론하고 행동을 예측하는 인지적 능력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타인의 숨겨져 있는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저마다 마음의 작동 원리에 관한 ‘이론’을 품고 사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우리가 쉴 때도 사람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인간이 타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존재임을 드러내는 요소다. 조지선 교수는 공감이 인간에게 이롭기 때문에 뇌가 이렇게 설계되어왔다는 점, 공감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공감을 더 잘할수록 집단에서 인정받고 발전할 여지가 많아진다. 물론 타고나는 것 이상으로 공감능력을 계발할 수도 있는데, 조지선 교수는 ‘유재석 따라하기’ ‘협상 전문가 따라하기’ 등 독자가 따라하기 쉽고 내용도 간단한 공감능력 계발법을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점도 있다. 의외의 사실은, 공감이 자기중심적인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사회신경과학자 김학진은 최신 뇌과학을 통해 공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인간이 타인의 감정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 해도, 결국 자신의 상태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연구에 따르면 운동을 한 직후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타인도 갈증을 느낄 거라고 더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자기 경험과 상태에 따라 공감 방식은 달라지며, 이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이 생겨나는 원인이 된다. 공감의 자기중심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감정을 잘 인식해야 한다. 자기 감정을 인식함으로써 ‘감정 목록’이 정교하고 풍부해진 사람들은 공감을 위해 사용할 재료도 더 많아진다. 타인과 깊이 공감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에게로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공감교육자 박보혜도 비슷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타인에게 공감하려면 ‘자기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느낌’과 ‘생각’을 구분해야 한다. ‘느낌’은 내 욕구가 총족되었는지 아닌지를 알리는 신호다. 이는 그저 중립적인 메시지일 뿐, 판단이 한 차례 들어간 ‘생각’과는 다르다. 이 차이를 파악하고 느낌을 섬세하게 바라보아야만 자기 ‘욕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스스로와 가까워지고 나면 타인의 내면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여기서 공감의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공감은 내면에서 외부로, 자기에서 타인에게로 끊임없이 확장된다.(p.74~75) 박보혜가 인용한 마셜 로젠버그의 말처럼, “내면의 평화를 만드는 일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인 것이다.

 


 

다섯 저자 중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조천호 교수의 글은 독자에게는 인상적이다. 공감과 기후위기가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감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에 모두에게 필요한 자질임을 알게 된다. 텀블러나 에코백을 쓰고 일회용품은 줄이는 등 ‘개인의 선한 감수성’을 발휘하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실제로 닥쳐온 지금, 그것만으로는 상황을 개선시키기 어렵다. 무엇보다 변화를 실현해낼 정치체를 구성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연대하고 집단을 꾸려야 한다. 바로 여기서 공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후위기에 취약한 지구 반대편 사람들, 실제로 기후위기의 피해를 입기 시작할 다음 세대, 기후위기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제대로 된 공감이 이루어져야만 구심력 있는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p.196)

이렇듯 이 책에서 공감은 개인의 자질이나 능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섯 저자는 저마다 조금씩은 다른 방법으로 공감을 이야기하지만, 하나같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바로 공감이 관건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공감은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인 것이다. 한 사람의 행위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다. 결국 좀더 행복한 사회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상상하는 것이 공감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그간 너무도 쉽게 소비되어왔던 공감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다시금 제대로 들여다봄으로써 과거와는 다른 세계로 나아갈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장동선

 

뇌과학 박사. 궁금한뇌연구소 대표.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성장했다. 독일 콘스탄츠대학교와 미국 럿거스대학교 인지과학연구센터에서 석사를 마친 뒤, 막스플랑크 바이오사이버네틱스연구소와 튀빙겐대학교에서 인간 인지 및 행동 연구로 사회인지신경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 독일 과학교육부 주관 과학 강연 대회 ‘사이언스 슬램’에서 우승하여 이름을 알렸고, 독일 공영 방송 NDR, ZDF 등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과, 한국 tvN 〈알쓸신잡〉 시즌2에 출연하면서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입지를 다졌다. 현재 유튜브 채널 〈장동선의 궁금한 뇌〉에서 뇌와 과학 기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펼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뇌는 춤추고 싶다》 등이 있다.

 

저자 : 박보혜

 

(주)앤파씨 대표이자 공감교육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으며, 플로브 CCO, 마리몬드 브랜드 스토리 실장을 거쳐 현재 한양대학교에서 사회혁신공감실습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저자 :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석사학위를, 위스콘신주립대에서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fMRI를 사용해 인간의 경제적, 사회적 의사결정과 관련된 뇌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으며,‘공정성 판단’과‘이타적 선택’의 신경학적 기제를 밝히는 연구들을 진행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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