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저자 은유 추천
낸시 슬로님 애러니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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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은 자서전 쓰는 법을 이야기한다. 자서전이란 사전적 풀이만으로도 어떤 책을 가리키는 것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자서전(自敍傳, autobiography)은 한마디로 '자신의 생애를 기술한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자전(自傳)이라고도 한다. 자기를 말하는 일체의 모든 자료·일기·서간 등을 포함해 광의로 해석하는 수도 있다고 백과사전은 풀이한다. 뛰어난 자서전은 쓴 사람의 정신적 성장과 편력(遍歷)을 엿볼 수 있으며 생활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창작적인 요소가 가해진 것은 자서전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괴테의 『시(詩)와 진실』이 이에 속한다. 또 저자가 자기 자신보다도 그가 살아 온 환경이나 시대에 보다 더 중점을 두었을 때에는 '회상록' 또는 '회고록'이 된다. 자서전의 본질은, 이의 효시가 된 아우구스티누스나 루소의 『고백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적나라한 자기 내면의 토로이다. 널리 알려진 자서전의 걸작으로는 B.체르리니, D.흄, J.S.밀, B.프랭클린, 스탕달, 괴테, 하이네, G.상드, 샤토브리앙, 베를리오즈, 아나톨 프랑스, R.롤랑, 르나르, 지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고리키, 슈바이처 등의 자서전 또는 자전적 작품·회상록·일기 등을 들 수 있다고 두산백과사전은 기술하고 있다.

저자 낸시 슬로님 애러니는 평생 글을 쓰고 45년간 글쓰기 워크숍을 운영해왔으며, 16년간 아픈 아들을 간병하며 힘든 시간을 통과했다. 저자는 ‘자전적 에세이’ 쓰기의 의의부터 창작의 전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소개한다. 자전적 에세이를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글쓰기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글쓰기의 단서와 풍부한 일화, 구체적 조언과 지침이 망라되어 있다. 「자전적 에세이 쓰기 A to Z」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글을 쓰고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자전적 에세이 쓰기에 접근하는 관점, 구체적인 방법론, 사례, 길잡이를 만들 수 있었고,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자신이 직접 쓴 글을 자전적 에세이의 예화로 제시하며,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글쓰기를 통한 치유, 글쓰기가 주는 해방감을 이야기한다. 책은 자전적 에세이 쓰기 가이드북인 동시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전적 에세이이자 기나긴 애도의 글이다. 그동안 소설 및 실용문 글쓰기 책이 상당수 출간된 데 비해 자전적 에세이 글쓰기 책은 별로 없었는데, 이 책은 에세이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지도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자기 삶에 대한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잘 쓰기보다 고유의 목소리와 리듬과 언어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강조하고 그것을 찾도록 안내한다. 자기 삶을 재현하는 에세이는 소설이나 시처럼 잘 짜인 구성이나 세련된 형식보다 삶을 얼마나 정직하게 대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자신의 아들이 생후 9개월부터 당뇨병을 앓기 시작한 후 서른여덟 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전 과정을 자신의 돌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토대로 자신의 글쓰기가 치유의 행위였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남편과 함께 16년간 아들 댄을 돌보는 동안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쓰기로 했다. 글쓰기는 삶을 요약하거나 납작하게 압축하지 않는다. 저자는 자전적 에세이 쓰기를 통해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삶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괴로워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최근 의학계에서도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데, 자기 삶의 서사화가 문제 해결과 치유의 길을 열어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전적 에세이 쓰기가 자기 삶의 힐러가 되고자 하는 용기 있는 시도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동안 글쓰기를 안 했던 독자에게도 용기와 감동을 주었다. 꼭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진정으로 열심히 산다면 삶 자체가 글의 내용이 되고 훌륭한 책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이 책에서 발견한 것이다. 사실 학교 다닐 때 특히 초등학교 시절에는 누구나 일기 쓰라는 말을 선생님에게 듣고 실제 쓰기도 했을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방학 기간 일기를 써서 제출하라고 과제물로 내주기도 했다. 물론 매일 일기를 쓴 사람은 쉬운 과제물이지만 안 쓰고 있다가 방학이 끝나갈 무렵 한꺼번에 벼락치기로 써서 제출하다 들켜서 혼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다른 일이야 꾸며내 써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날씨를 잘못 적었다간 들통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컴퓨터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 책에서 저자가 69개 항목을 정해놓고 글쓰기, 특히 자서전에 알맞는 글쓰기를 설명한다. 글쓰기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이 많은 항목을 염두에 두고 글 쓸 일이 없을 테니 별 문제가 없겠지만, 글쓰기를 해보려는 사람이나 더 잘 쓰기 위해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지나치게 완벽한 글쓰기를 위한 책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 터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자서전을 쓸 경우 이 항목에 대해 평소 관심을 두고 연습을 거듭하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어 신경 쓰지 않아도 해결되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니까.

 


 

69개 항목 중 1항 「시작은···」은 '서문'에 해당한다. 일반적인 책 출간 때 내는 책의 개략적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 책을 왜 냈는지, 어떤 식의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도 이 항목에 해당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서문'을 따로 마련했다. 아들의 질병과 젊은 나이의 사망, 살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가 되는 슬픔은 '가족의 사망'이라는 설문조사도 있었듯이, 한 사람의 생애 중 가족의 슬픔은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참담한 심경의 일렁임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아들을 젊은 나이에 잃은 어머니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저자는 "내 부서진 마음을 달래준 것은 정신과 의사도, 처방약도, 위로를 건네는 친구도, 심지어 (내 남편처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배우자도 아닌 자전적 에세이 쓰기였다"고 술회한다. 저자는 이런 말도 서문에 남김으로써 글쓰기의 치유력이 얼마나 큰 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기도 한다. "그런 일들을 전부 글로 쓰지 않았다면, 나는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거의 대부분 잊어버렸을 것이다."

저자는 이어 수십 년 동안 글쓰기 워크숍을 운영하면서 수천 개도 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수천 개의 마음이 열리고, 수천 개의 머리가 맑항지고, 수천 개의 부서진 부위들이 회복하는 지켜봤다고 말한다. 이때 글쓰기에 어떤 힘이 있는지를 깨달았던 것 같다. 자신의 관점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지 진정으로 안다고 표현하는 저자에게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 치료제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진정한 자전적 에세이는 단순히 자신에게서 일어난 일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가 중요하다. 왜라는 질문을 파고들 때 당신의 이야기는 보편성을 얻는다. 그것이 우리가 자전적 에세이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p.15)

 


 

저자가 69개 항목을 장(章)을 나누지 않고 일렬로 기술했는지도 궁금하다. 얼핏 보기에 생각나는 대로 기술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번역의 미흡으로도 투사도 해본다. 그러나 같은 문장을 다시 한 번 더 읽어볼 때는 느낌이 달랐다. 느낌이 다르니 의미도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장을 나누지 않은 이유는 여기 모든 과정과 체득해야 할 것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란 제법 그럴 듯한 독자만의 해답도 떠오른다. 그렇지, 글쓰기를 단계적으로 배울 일은 아니겠지.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을 생각한다면 글쓰기 교본처럼 첫걸음부터 마지막 걸음까지 마치 마라토너처럼 단계적으로 가는 게 글이 아니라는 점을 몸에 배이게 하기 위해선 장을 나누는 것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토리텔링 식 기술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란 추측도 끼어들었다. 몇 개의 제목만 여기에 적어보면 「어떻게 시작하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쓰라」(6항), 「당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 대해 쓰라」(9항) 「독자가 책을 읽을 때 당신은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다」(15항), 「때로는 무언가가 부서질 때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17항), 「우연을 그냥 지나치지 마라」(19항), 「당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라」(29항)), 「고통스러운 부분을 건너뛸 수는 없다」(53항), 「때로는 의식의 전환을 위해 외부의 이야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54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라」(67항) 등이다.

제목을 문장으로 나열하는 것보다 단어나 문구로 정하는 것도 있다. 오히려 문장보다는 임팩트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3항), 「영혼의 과제」(8항), 「통찰」(16항), 「고독」(26항), 「관점」(27항), 「시각화」(41항), 「유머」(60항) 등이다. 「통찰」을 여기에 인용한다. "통찰을 얻었다면 무심히 넘기지 말자. 찰나의 광명, 완벽한 각성을 선사받은 거니까."(p.94) 저자는 통찰은 신성한 지혜의 선물이라고 전제한다. 그 귀중한 기회를 흘려보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의심하지도 말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통찰의 기회를 꼭 붙들지 않은면 금세 휘발하니까 꼭 붙들고 "나 아니면 누가 쓰겠어"라는 심정으로 쓸 것을 권유한다.

 


 

저자는 통찰이란 매우 귀중한 것이어서 만일 곧장 글로 옮기지 않으면 심오한 것이라고 미뤄뒀다간 그런 것조차도 잊어버리는 것이 사람이란 사실을 명심하고 절대 미루지 말 것을 조언한다. 저자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또 왜 다른 사람에게 글을 쓰라고 권유하는가 같은 질문도 자주 받는단다. 저자는 즉각 책에 옮겼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디에서 막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게다가 운이 좋으면 새로운 통찰을 얻어서 치유의 글로 나아갈 수도 있다."(p.95) 저자는 자신의 온라인 글쓰기 강좌에서 가장 최근에 낸 "나는 ~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다"란 주제의 글쓰기 시간을 가졌다고 예로 든다. 이때 자신도 같은 주제의 글을 쓴다고 한다. 저자가 쓴 글을 책에 예시로 적어놨다. 크리스마스 조명에 관한 글이다. 여기에 옮겨 적을 수 없으니 독자 여러분의 독서에 참고하기 바란다.

저자의 글쓰기 자문은 69항 「끝」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란 의미의 이 글에서 저자는 "마무리되지 않은 끝은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끝, 해결되지 않은 문제일 뿐이다. 모든 이야기가 완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 자전적 에세이의 대주제, 당신이 그 이야기를 쓰게 된 주된 이유는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들은 사기를 당한 기분이 될 것이라는 공포에 가까운 단어를 사용하며 대주제의 메시지를 완결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저자는 다시 한 번 언급한다. "당신이 거쳐온 길을 일일이 복기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했다. 그게 전부다. 그것이 핵심이다."(p.348)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들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기를 거부한다. 이야기 전달자인 우리는 빛을 향해 뻗어나가는 법을 배운 생존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작은 보라색 꽃이다. 자전적 에세이를 쓰면서 당신은 아주 작은 빛 조각을 향해 뻗어나간다.(p.234~235)

 

자전적 에세이를 쓸 때 고통스러운 부분을 건너뛸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또한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경험을 통해서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p.272)

 

저자 : 낸시 슬로님 애러니(Nancy Slonim Aronie)

메리워싱턴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자신이 거주하는 마서스비니어드 섬에서 칠마크 글쓰기 워크숍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칠마크 글쓰기 워크숍을 대표하는 프로그램 ‘마음으로부터 글쓰기’ 워크숍의 강사이기도 하다. 미국공영라디오의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뉴스 프로그램의 고정 논평가로 활동했고, 여러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게재했다. 하버드대학교를 비롯해 여러 기관에서 글쓰기를 가르쳤으며, 하버드대학교에서 가르친 3년간 매해 최우수 강의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컬럼비아대학교 의학대학원의 내러티브 의학 프로그램에서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역자 : 방진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국제학 대학원에서 국제무역 및 국제금융을 공부했다. 현재 펍헙 번역 그룹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당신에게 잘 자라고 말할 때』, 『모임을 예술로 만드는 법』, 『지도에 없는 마을』, 『소설 속 숨겨진 이야기』, 『그림책 쓰기의 모든 것』,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글쓰기 비법』, 『삶의 마지막 순간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들』,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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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보이는 런던의 뮤지엄
윤상인 지음 / 트래블코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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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뮤지엄은 무료다." 이 말은 독자로서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독자는 꽤 오래 전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많은 도시를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무료 개방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갔든 단체로 다녀왔든 대체로 일정에 박물관 혹은 미술관 관람이 한두 번씩 끼어 있었다. 그리고 일정대로 소화해 여러 미술관 등을 관람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무료 관람이란 없었다.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유지 관리비가 있을 터이니. 우리나라도 그렇다. 유료 관람이란 것을 이상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을 펼치고서야 런던 뮤지엄이 무료란 사실을 접하고 적잖게 놀랐다. 이유도 파격적이다. 문화가 대륙에 뒤졌던 영국이 대영제국을 이루고 산업혁명으로 세계 최대의 왕국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영국은 섬나라다. 거기에 유럽 대륙으로 치자면 변방이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 유럽 대륙의 문명의 중심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로마 제국에서도 영국까지 영토를 넓히려다 별로 쓸모도 없는 대륙의 끝을 정복하기에 어려워지자 더 이상 정복을 포기하고 성과 담을 쌓아 북쪽의 사람들이 더 이하로 내려오는 것을 막는 데 그쳤다. 이때부터 유럽 문명으로부터 뒤떨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책 『이제서야 보이는 런던의 뮤지엄』은 영국이 최근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의 예술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대륙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와 문명의 본류에 합류하기에는 불리했으나, 런던의 미술관과 박물관 '무료 개방'이라는 전례 없는 정책으로문화·문명의 역전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관람객이 없어서 공짜로 열어둔 게 아니다. 그 전통을 깨기 싫은 것일 게 분명하다.

 


 

저자 윤상인은 '어쩌다 미술해설사'가 됐다고 털어놓는다. 그에 따르면 학교 다닐 때 좋아했던 과목은 영어와 역사 그리고 지리였다. 세계지도를 보며 대한민국 밖의 세상이 너무 궁금했고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문화와 관습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결국 이러한 호기심은 세계여행을 꿈꾸게 했다. 20살에 떠난 세계여행은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이란을 거쳐 유럽으로 향했고 영국에 정착하였다. 영국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런던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예술의 전당, 롯데 콘서트홀 등에서 〈아르츠 콘서트〉를 진행 및 강의를 했다. 현재는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술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그가 런던에서 여행하던 중 화장실을 급하게 찾아야 했을 때 우연히 박물관을 발견했고, 그곳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돼 지금은 미술해설사로 활동중이다.

저자는 런던의 박물관이 무료인 이유를 알기 위해서 18세기로 시간을 돌려봐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 영국에선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의 상업적, 정치적, 군사적 위력은 기세등등했다. 그럴 만한 것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로 전 세계에 많은 식민지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국이 승기를 잡지 못한 영역이 있었다. 문화였다. 유럽 대륙에서 탄생한 문화가 섬나라 영국에 가장 늦게 전달되면서, 영국은 문화적으로 뒤처졌다. 그래서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고자 뮤지엄을 만들어 무료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순히 뮤지엄을 공짜로 열어두어서 얻은 결과는 아니다. 그렇다면 런던의 뮤지엄은 무엇이 다르길래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낸 걸까? 저자의 안내를 받아 런던의 뮤지엄으로 떠나보면 오늘의 영국을 읽을 수 있을 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 중의 하나는 독자는 유럽 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으면서도 아직 영국엔 못 가봤다는 사실이다. 이유야 그때그때마다 달랐겠지만 런던의 미술관이 무료 관람이라니 새삼 떠오른 영국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몰랐던 사실에 적잖게 놀랐기 때문이다. 저자는 런던 여행의 가성비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뮤지엄에 들르면 된다고 말한다. 유럽 도시의 여느 뮤지엄과 달리 런던의 뮤지엄은 대부분 무료로 열려 있다. 아무리 공짜여도 효용이 없으면 가성비가 떨어질 텐데, 그럴 리는 없다는 것. 런던의 뮤지엄은 ‘영감의 창고’와 마찬가지란다. 그렇다면 물가가 비싼 런던에서, 뮤지엄만큼은 공짜로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18세기 영국은 국제 사회의 주인공이었다. 하늘은 새들의 영역이며 사람은 사슴이나 말보다 빨리 달릴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인식은, 영국이 인류에 선물한 제트 엔진과 기차의 발명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산업 혁명 이후 세계 곳곳에 건설한 식민지, 그 식민지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동인도 회사, 아편 전쟁의 승리로 얻은 홍콩까지. 영국의 상업적, 정치적, 군사적 위력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다 싶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영국이 승기를 잡지 못한 영역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문화였다. 유럽 대륙에서 탄생한 문화가 섬나라 영국에 가장 늦게 전달되면서, 영국은 문화적 변방이라는 이미지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사에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나라, 문화적으로 뒤처진 나라라는 오명은 영국에 따라붙은 그림자였다. 변화가 일어난 건 그 무렵이었다.

 


 

역사가 증명하듯 경제 성장이 폭발하면 부가 쌓이면 최고의 관심은 문화로 옮겨 간다. 로마 제국의 이탈리아도 그랬고,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의 시대적 강국들이 그랬다. 경제적 부는 자연스레 영국인들의 지적 호기심에 불이 피워올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문화적 변방이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들이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계몽주의 사상과 맞물리며 영국에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탄생시켰다. 그러고는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었기에 뮤지엄을 무료로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료라고 해서 퀄리티가 떨어질 리 만무하다. V&A 뮤지엄에는 다비드 상을 포함해 대표적인 작품들이 공식적으로 복제되어 있어 여러 뮤지엄에 퍼져 있는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국립 미술관에서는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작품을 시대순으로 전시해 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월레스 컬렉션에서는 프랑스의 그 어느 미술관보다도 18세기 프랑스 주요 화가들의 회화와 장식 예술품, 고급 가구 등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은 V&A 뮤지엄, 국립 미술관, 월레스 컬렉션 등을 포함해 런던을 여행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11곳의 뮤지엄을 소개한다. 20여 년간 런던에서 뮤지엄 해설을 진행해온 저자가 공간적, 작품적, 역사적 관점을 넘나들며 뮤지엄에 대해 설명하기 때문에, 모르고 런던에 갔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들이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쯤에서 생기는 궁금증. 그렇다면 영국은 이러한 노력으로 문화적 변방에서 벗어났을까?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뮤지엄을 대중에게 활짝 열어둔 덕분에, 20세기 말과 21세기 현대 미술을 이끄는 많은 예술가가 영국에서 배출됐다. 이처럼 영감의 원천이 되고 심지어 대부분 공짜이니, 런던의 뮤지엄을 경험하는 게 런던 여행의 가성비를 끌어올리는 방법 중의 하나임은 분명할 듯하다.

 


 

이 책에서는 모두 11곳의 뮤지엄이 소개된다. 몰론 런던에 있는 미술관들이다. 1장에 1곳의 미술관에 대해 설명과 소장품, 미술관의 성격과 미술관의 주인 등이 자세하게 게재돼 있다. 저자가 미술해설사이니만큼 작품 해설은 기본이다. 미술관 내의 상징적 작품을 주로 해설하고 미술관 건립 당시 에피소드 등도 담았다. 또 이색적이고 독특한 미술관은 따로 설명한다. 1장 「V&A 뮤지엄」은 베낀 작품을 버젓이 전시하고도, 오리지널이 된 박물관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2장은 런던 한복판에 공짜로 펼쳐진 서양 미술 교과서란 별칭의 「국립 미술관」이 소개된다. 3장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프랑스를 런더너가 추억하는 방법이란 설명을 곁들인 「코톨드 갤러리」, 4장은 향락과 타락 사이에서 그네 타는 귀족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월레스 컬렉션」, 5장에서는 '태초의 문명인이 새겨 논 요즘 사람들을 위한 암호'라는 설명으로 「영국 박물관」을 안내한다.

이어 6장은 건축 천재의 이기적인 유언이 낳은, 1837년에 멈춰버린 집으로 알려진 「존 손 박물관」, 7장은 증기를 내뿜는 기차는 어떻게 영국 예술을 바꿨나?라는 질문으로 「테이트 브리튼」을 설명한다. 8장에서는 모던 작가의 아리송한 작품에는 뾰족한 메시지가 숨어 있다는 「테이트 모던」을 소개한다. 9장엔 놀랄 만한 가격의 비밀, 논란이 키워 낸 예술의 프리미엄이란 별칭의 「뉴포트 스트릿 갤러리」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10장은 예술과 광고의 경계를 부셔서 미래의 스타를 띄운다란 개념의 「사치 갤러리」를 담고 있으며, 마지막 11장은 도시의 풍경을 바꾸는 지붕 없는 갤러리 「스트릿 아트, 쇼디치」의 내용을 담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은 런던의 뮤지엄 관람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특히 런던의 뮤지엄이 무료로 개방된 원인에 집중하다 보면 역사뿐 아니라 역사가 주는 교훈까지 박물관을 통해 체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런던 여행의 가치를 더 높여줄 이 책은 영국 여행 전 꼭 미리 읽어두는 것을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마지막에 소개된 「스트릿 아트, 쇼디치」는 흔히 말하는 그래비티 미술관을 말한다. 오래전부터 쇼디치는 소외된 사람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장소라고 저자는 밝힌다. 책에 따르면 17세기 위그노라고 불렸던 프랑스 신교도들이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20세기엔 유대인들이 히틀러를 피하기 위해, 1950~60년대에는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브리티시 드림을 꿈꾸며 모여든 곳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온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 덕에, 쇼디치는 문화적으로 다양성을 띤 독특한 타운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 쇼디치에서 가장 유명한 길은 〈브릭 레인〉이다.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 정착할 당시 벽돌 공장을 비롯한 여러 공장이 많았던 탓에 브릭 레인이란 이름이 붙었다. 1킬로미터 정도 이어진 길에는 수십 개의 인도 커리집이 들어서 있고, 그 사이사이로 빈티지 숍과 나이트 클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길거리의 벽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작가의 그래피티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젊음의 열기와 예술가들의 열정이 솟아나는 곳이다.(p.258~259)

 

저자 : 윤상인

 

학창시절 제일 좋아했던 과목은 영어와 역사 그리고 지리였다. 세계지도를 보며 대한민국 밖의 세상이 너무 궁금했고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문화와 관습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결국 이러한 호기심은 세계여행을 꿈꾸게 했다. 20살에 떠난 세계여행은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이란을 거쳐 유럽으로 향했고 영국에 정착하였다. 영국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런던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예술의 전당, 롯데 콘서트홀 등에서 ‘아르츠 콘서트’를 진행 및 강의를 하였다. 현재는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술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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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떠나는 세계 지형 탐사
이우평 지음 / 푸른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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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우유니 소금사막 등 전 세계 다양한 지형을 담은 이 책은 독자들에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토록 아름다운 지구를 후손들에게 잘 보존해 물려줘야 한다는 환경 보호 인식을 가슴속 깊이 새기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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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떠나는 세계 지형 탐사
이우평 지음 / 푸른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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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아름답다. 물 맑고 산 좋은 금수강산이다. 어렸을 때 배웠던 말들이다. 이후 돌아다니면서 말로만 듣던 것을 직접 보고 확인한 바로는 한반도는 사람이 살기에 적절한 매우 아름다운 곳임에 틀림없다. 외국여행이 자유롭게 된 1990년대 들어 가본 몇 군데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지구 전제가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이라는 사실에 공감하게 됐다. 인류가 인공으로 만든 건축물이나 각종 구조물도 아름다운 곳이 많긴 하지만 대자연이 만들어낸 산과 바다, 특히 지형물은 상상하기 어려움과 놀라움과 신비스러움을 보여주었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살이라고 한다. 45억 년 지구는 폭발하고 뒤틀리고 솟아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지금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위 이야기는 독자 개인의 입장에서 본 우리 지구이고 인류 과학의 발전은 지구 밖에서 본 지구의 모습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항공기의 발전이다. 대기권 내이지만 비행기에서 본 지구의 모습도 이를 데 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산과 바다를 땅에서 바라본 것과 위에서 내려다본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이에 더하여 1968년 10월, 인간이 아폴로 우주선에 승선했다. 여러 차례의 테스트와 성공을 거친 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이 달 착륙에 성공했다. 암스트롱은 인간 최초로 달 표면에 우뚝 섰다.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도착한 우주인들도 기지국과의 통신에서도 달에 대한 설화 이야기를 한다. 달에 발을 내딛기 직전인 역사적인 순간, 기지국에서는 ‘남편한테 불사약을 훔쳐 달로 달아난 항아와 계수나무 아래 서 있는 토끼를 찾아보라’고 중국 설화를 인용하며 농담했고, 버즈 올드린은 ‘잘 찾아 보겠다’는 말로 응수했다고 한다. 이렇게 달과 계수나무, 방아 찧는 토끼의 환상은 깨졌지만 오히려 달에서 본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을 보고 갖게 되었다.

 


 

이 책 『세계 지형 탐사』는 전작 『한국 지형 산책』으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우리 땅 곳곳의 아름다운 자연과 특이한 지형을 소개한 이우평이 펴냈다. 저자 이우평은 이번에는 전 세계 대표 지형 56곳을 한 권에 담았다. 대상 지역이 지구 전체라서 약 700페이지에 이르는 대작이지만 그만큼 쏟은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랜드캐니언, 옐로스톤 국립공원, 아마존, 우유니 소금사막, 세븐시스터즈, 돌로미티, 치차이단샤, 파묵칼레, 나트론호, 울루루 등 여섯 대륙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지형들을 선별해, 각 지형의 현재 모습과 형성과정, 생태계 변화, 자연사적 가치 등을 최신 연구와 풍부한 이미지 자료를 토대로 알기 쉽게 소개한다. 45억 년 지구의 역사를 품은 다양한 지형에 관한 종합적인 안내서로, 지리·자연사에 관심 있는 독자뿐 아니라, 광활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모든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합다.

지구의 겉표면(지각)는 대륙과 바다로 이루어졌다고 배웠다. 땅에서 지하 30km까지를 지각이라 한다. 겉모습은 공처럼 원형에 가깝고 자전과 공전을 한다고도 배웠다. 달을 위성으로 두고 있으며 태양계에 속한 행성이다. 일년에 한 번 꼴로 태양의 주위를 돈다. 사계절과 해가 떠오르고 서쪽으로 지는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구의 위성 달도 바다의 흐름에 관여하는 등 제각각의 임무를 차질 없이 해내고 있다. 우주의 질서를 어기는 일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 만약 이 질서가 깨어진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대변화로 지구라는 거대한 땅덩이도 먼지 하나처럼 일시에 날아갈 수도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여기에 '만약'이란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인간이 상상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주의 탄생과 소멸은 만약에 의해 성립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전 세계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지구의 움직임에 의해 45억 년에 걸쳐 이루어진 결과가 현재의 모습이다. 직접 가본 사람들이 말로 제대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비경이 있고, 상대적으로 생물이라고는 전혀 살지 못할 것 같은 황폐한 곳에도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인간이 아름답다고 표현한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지도 모를 처음 보는 엄청난 모습에는 마땅히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있다. 사람의 힘은 물론 자연이 해낼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들이 지구 겉모습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 책은 지형·지질 경관의 미적 가치뿐 아니라 그 지형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자연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환경·생태적 가치는 무엇인지, 그곳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구경도 하고 지식도 얻고... 일석이조 독서의 즐거움을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우리는 지구의 겉모습, 지각이 5대양 6대주로 이루어졌다고 표현한다. 바다 위에 6개의 대륙이 떠 있는 형상이다. 바닷물도 대기권 안에서 끊임없이 순환하고, 대륙 역시 현재에도 움직이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판단한다. 지구의 45억 년 역사 중 100년도 채 못 사는 인간이 느끼기에는 기간 자체가 비교가 안 된다. 이 책은 각 대륙별로 모두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북아메리카〉, 2부 〈남아메리카〉, 3부 〈유럽〉, 4부 〈아시아〉, 5부 〈아프리카〉, 6부 〈오세아니아-대양〉 등이다. 1부에서는 옐로스톤 국립공원, 아치스 국립공원, 모뉴먼트밸리, 엔털로프캐니언, 그랜드캐니언, 더 웨이브, 브라이스캐니언, 데스밸리, 요세미티 국립공원, 하이트샌즈 국립공원, 스포티드 호수, 투크투야크툭 등이 소개된다. 이 서평에서는 가장 앞에 나온 옐로스톤 국립공원만 다룬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이하 옐로스톤)은 전체 면적이 약 9,000제곱킬로미터로 우리나라 경기도 면적과 비슷하다.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 면적의 3배가 넘을 정도로 광대하다. 옐로스톤강이 깎아 만든 평균 깊이 약 300m, 총길이 약 38km에 이르는 V자 대협곡이 발달했다. 이름은 계곡 일대의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융회암이 황 성분을 함유하여 노란색을 띤 데서 유래됐다. 이 지역을 저자는 「물과 열이 만들어 낸 간헐천과 온천의 집결지」란 제목으로 표현했다. 항공 사진인 듯한 이 지역의 모습을 본 순간 처음 본 독자로서는 압도감을 느꼈다. 화산지대에서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함에 정신을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다.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이런 색이 융화될 수 있는지 놀라움의 시작이다. 이곳은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옐로스톤의 상징인 그랜드 프리즈매틱 온천은 폭 90m, 깊이 50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온천이다. 프리즘처럼 다채로운 색상으로 밝고 선명하게 보인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이곳은 19세기 초 모피를 얻기 위해 로키산맥 고지대에 있는 미지의 땅에 들어간 수렵가들 사이에 '지옥의 솥뚜껑이 열리는 장소'를 발견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허풍쟁이로 치부했다. 그러나 훗날 탐험대에 의해 그 소문의 장소가 옐로스톤이며, 그곳은 열수(熱水, 마그마가 식어서 여러 가지 광물성분이 분리되어 나온 뒤에 남은 뜨거운 수용액으로, 유용한 많은 광물성분이 용해되어 있다)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는 간헐천과 들끓는 진흙탕, 그리고 수증기를 내뿜는 분기공(噴氣孔 화산의 화구 또는 화산가스가 분출하여 나오는 구멍)과 온천 등이 넘쳐나는 화산지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책에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지형 특성이 잘 드러난 「나이카동굴」, 「그레이트블루홀」, 「카나이마 국립공원」, 「카뇨 크리스탈레스」, 「렌소이스사구」, 「아마존강」, 「우유니 소금사막」 등이 소개되지만 독자의 눈에 가장 띈 부분은 브라질 해안사구인 '렌소이스사구'이다. '사막과 호수를 넘나는 아름다운 모래언덕으로 새하얀 사구들이 물결치듯 끝없이 이어진다. 렌소이스사구는 건기에는 물 한 방울 없는 메마른 사막 같지만 우기에는 엄청난 양의 빗물과 강물이 흘러들어 새하얀 사구들 사이로 에메랄드 빛깔의 수많은 호수가 생겨나는 곳이다. 해안에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사구가 이토록 아름다운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렌소이스사구의 모래가 다른 사구 지역의 모래와 달리 하얀색인 것은 모래가 석영질이기 때문이다. '렌소이스'라는 포르투갈어는 '침대보'를 뜻하는데, 이는 침대보가 하얀색인 데서 유래한 것이다. 사구들의 높이는 해발 10~30m로 가장 높은 곳은 약 70m, 길이는 20~70km에 이를 만큼 장대하다. 렌소이스사구의 수많은 모래는 육지와 바다 사이에서 암석이 순환되며 생겨난 것이다. 사구 지역을 흐르는 대표적인 두 하천인 프레기사스강과 파르나이바강에 의해 육지부에서 침식된 모래가 바다로 운반된 뒤, 이 모래들이 조류와 해류에 밀려 다시 해안에 퇴적되어 거대한 해빈(海濱, 바닷가의 오목하게 들어간 해안에 모래가 쌓인 해변의 백사장)을 이루었다. 이곳 해안은 수심 약 70m까지 대륙붕의 경사가 평균 0.06도로 거의 수평에 가깝고 밀물과 썰물의 차가 7~8m로 크다는 점이 거대한 해빈이 만들어지는 데 한몫했다. 해안으로부터 내륙 약 50km까지 사구들은 현생의 활성사구다. 해수면이 현재 수준을 유지한 약 6,000년 전 이후부터 쌓이기 시작한 사구의 면적은 1,000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이 책에는 각 대륙별로 간추린 경이로운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주 다닌 곳도 있고,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지역도 있다. 대륙별로 5~10곳씩 임의 선정해 기술했지만 책 서평으로 쓰기에는 단 한 곳도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절경과 빼어난 외관의 풍경이 있고, 기괴하고 지구가 아닌 듯한 모습의 이색적 경관도 있다. 이 책 서평의 입장에서 마지막 하나를 더 꼽자면 아프리카 「리차트 구조」를 선택한다. 사하라 사막에 새겨진 리차트 구조는 언형의 지형으로 크기와 규모가 지름이 50km에 이를 만큼 방대하기 때문에 고도 10km 이상 올라가야만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독자들이 〈세계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일주〉 등 TV 세계여행 프로그램에서 흔히 접할 수 없던 이유이기도 하다. 생긴 모습이 황소의 눈 같아서 '황소의 눈', 사람의 눈처럼 생기고 사하라사막에 있는 동그란 지형이어서 '사하라의 눈'이라 불리운다. 이외에도 '지구의 눈', '아프리카의 눈' 등의 별칭도 있다.

사하라사막 서부 모리타니에 위치한 라차트 구조는 지구의 수많은 지질구조 가운데 가장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드넓은 사막지대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원형 소용돌이 모양을 하고 있다. 우주에서는 보는 방향과 시간대에 따라 빛의 굴절에 의해 다양한 빛깔로 보이기도 한다니 입이 쩌억 벌어질 뿐이다. 이 라차트 구조는 1965년 미국 우주선 제미니 4호가 지구를 돌며 지표면을 촬영하면서부터 알려졌다고 한다. 이후 우주에서 그 모양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 지구로 귀환할 때 사하라사막을 통과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리적 랜드마크로 이용되었다. 이 지형은 늦게 발견되기도 했지만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참여해 각기 다른 이론을 제시하고 있어 아직 정설로 내세울 확실한 발생설은 없는 형편이다. 다만 캐나다 퀘백대학교 매턴 교수의 새로운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운데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괴레메 계곡의 암석기둥 곳곳에는 벌집 모양 같은 구멍이 수없이 뚫려 있다. 그 구멍들은 암벽에 굴을 파서 그 안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암굴 주거공간으로, 약 4,000년 전 이곳을 히타이트족이 지배할 당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암굴 거주공간을 만든 이유는 내륙의 초원 및 반건조 지역이어서 식생조건이 불리하여 목재가 귀했던 반면, 화산재가 굳어 형성된 응회암은 암질이 부드럽고 약하여 뾰족한 나무와 돌 등으로 쉽게 굴을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p.449)

 

저자 : 이우평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등학교, 공주사범대학교 지리교육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리교육과를 졸업하였다. 1994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지리를 가르치면서 우리 땅에 내재된 역사문화와 자연사적 참가치의 발견 그리고 삶터의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 왔다. 특히 우리 자연과 지형에 대한 활발한 조사 연구는 물론, 전 세계 지리학의 정보와 이슈들도 꾸준히 살펴 모아 왔다. 《독서평설》에 ‘우리 땅 밟기’, 《과학동아》에 ‘길 따라 바위 따라’, 《월간 산》에 ‘백두대간’, 《사람과 산》에 ‘한국의 명산 지질 여행’ 그리고 일간지에 ‘시베리아횡단철도’, ‘히말라야트래킹’, ‘미국서부지형지질’, ‘터키-이집트이슬람탐방’ 답사기 등의 생생한 연재로 지리 대중화에도 힘써 왔다. 『고교생을 위한 지리 용어사전』, 『지리교사 이우평의 한국 지형 산책 1, 2』, 『이우평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나라 지리 이야기』를 썼으며, 『초등 세계지리 생생 교과서』와 고등학교 교과서 『사회』, 『공통사회』, 『한국지리』, 『세계지리』, 대안교과서 『살아있는 지리 교과서 1, 2』 등을 함께 펴냈다. 현재 전국지리교사연합회 상임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인천 부광고등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메일: lwp0424@nate.com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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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고요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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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주년 산문집 ‘이야기하는 바람’ 박범신 작가의 높고 깊은 산문 미학에 심취할 수 있다. 일상에 대한 성찰과 인생에 대한 통찰, 고요 속에 일렁이는 문학에 대한 순정한 갈망이 날것 그대로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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