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의 향연
검은 비 지음 / 하움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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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빛과 어둠은 우주 만물의 살아가면서 가장 먼저 접하는 진리다.

빛은 밝고, 어둠은 그 반대쪽의 위치해 만물의 형상을 보이는 만큼 빚어낸다.

우주의 별이 밝게 빛나는 것도 따져보면 밝은 빛은 어둠에 의해 더욱 밝게 보인다. 어둠은 상대적으로 빛이 있기에 더욱 어둡다.

이를 보는 인간의 감정(느낌)도 빛과 어둠만큼의 크기로 갖는다.

다만 인간은 빛과 어둠을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감정도 언어로 표현 가능하다. 그래서 사계절도 보이는 만큼의 빛으로 가늠하고 언어로

표현해 낸다.

뿐만 아니라 긍정적 감정도, 부정적 감정도 언어로 표현해낸다.

이 책 『빛과 어둠의 향연』은 살아가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 시집이다.

행복, 슬픔, 분노, 좌절, 깨달음, 우울, 고통 등등….

마냥 예쁘기만 하고 감동적인 빛과 같은 글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는 쓸쓸하고 외롭고 슬픈 어둠의 글도

포함하고 있는 시집이다.

 


 

인간은 사람과 사람 간에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누구나 세상에 혼자 사는 사람은 없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기 위해 혼자 있는 것이지 혼자 있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다.

이별과 죽음도 마찬가지다. 만남이 있기에 헤어지는 것이고, 살아 있기에 죽음도 맞는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이별이라는 아픔을 겪게 된다.

살아가는 동안 한 번도 이별을 겪지 않았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과는 별개의 일인 것처럼,

먼 훗날에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저자 또한 그렇게 지내 왔지만 막상 그 이별이라는 시간이 한 걸음 다가오려 하자

많은 아픔과 시련을 겪었다.

그런 슬픔의 시간 속에서 갖가지 고민을 하다가, 어느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글귀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재미 삼아 그 글귀들을 종이에 옮겨 한 편의 시로 완성했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쓰다 보니 『빛과 어둠의 향연』 시집이 완성되었고

좀 더 많은 사람과 나눴으면 하는 바람으로 세상에 내어놓았다.

 


 

어느 철학자가 말했듯 모든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은 역경과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굳이 철학자의 이야기를 인용할 필요도 없이 인간은 그러한 삶의 모습이 진리라고 믿는다.

가끔 부정하고 싶을 때도 있고, 애써 잊으려 해도 때가 되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서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행복한 순간이 다가오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다시 느낀다. 이를 되풀이하는 것이 사람의 삶이다.

마치 따뜻한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쓸쓸한 가을이 지나면 혹독한 겨울이 오듯이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인생도 사계절이 있는 것이다.

시인은 수많은 역경을 꿋꿋이 헤쳐 나가며,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끝까지 잘 완주하길

독자들에게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적는다.

 

 

이 시집은 시인으로서는 첫 작품집이라고 한다.

원래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자 하지 않았기에 다른 직업을 갖고 있었다.

저자 이력에 따르면 제과 제빵 기술을 배워 조그만 빵집을 운영 중이다.

시를 쓰는 것은 '취미'라고 했다.

아마 감정의 굴곡을 표현할 필요가 있을 때 혼자서 조용히 글로 옮겨 적었나 보다.

혼자 있으면 빛과 어둠이 더욱 명징하게 보일 것이다.

밤하늘을 볼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라본다면

반짝이는 별빛에 집중해 그 별을 더욱 밝고 반짝이게 하는 어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칠흑처럼 어둠이 갖는 의미를 알아내기에는 소홀하다. 시인의 필명은 '검은 비'이다.

문득 왜 비가 검지? 하는 생각에 잠긴다. 어둠 속에 내리는 비를 그렇게 표현한 것 같긴 하다.

언어 감각으로 보자면 어둠 속에 내리는 비는 부정적 이미지의 단어가 겹치며

표현하기 어려운 부정적 감정의 표현으로 읽히기도 한다.

시인이 책을 출간한 후 출판사 측과 가진 인터뷰에서 "마냥 예쁘기만 하고 감동적인

빛과 같은 글뿐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는 쓸쓸하고 외롭고 슬픈 어둠의 글들도 포함하고 있는 시집"이라고 소개했다. 빛과 어둠은 서로의 반대되는 개념에서 비로서 화합한다.

빛과 어둠은 서로의 존재를 더욱 분명하게

인정해주는 보완재 역할로 대치되는 것이다.

 

 

인간이 역경을 역경으로만 대하면 그 너머에 있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죽음을 단순한 '끝'으로만 인식한다면 삶이 아름답게 느껴질 리 없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보완재가 되는 것을 아는 순간

삶과 죽음은 보완재로서 존재의 의미가 더 커진다.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빛과 어둠과 어울려 잔치를 한다는 뜻의

표제어 『빛과 어둠의 향연』도 그렇게 붙여진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앞선 인터뷰에서 저자는 그동안 인간의 가장 큰 이별인 죽음을 앞둔 어머니에

절절하고 아픈 가슴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다고 말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마음이었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직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병 간호를 하면서 점점 지쳐가고 악화되어 가는 병세에 절망감도 느꼈으리라는 예상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어려운 일에 닥칠 때 언어로 누구에게 표현해 내고자 하는 것은 답답함 때문이리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인간은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

누구나. 그때 글로 표현해 낸다는 것은

'언어적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인터뷰에서 시인은 시집을 펴내기까지의 심정에 대해 간략하게 표현한다.

"막상 그 이별이라는 시간이 한 걸음 다가오려 하자 심적으로 아주 많은 아픔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런 슬픔 속에서 갖가지 고민을 하다가, 어느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글귀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 글귀들을 종이에 적어 시를 써 보았습니다.

그렇게 한 수, 두 수 쓰다보니 창작시를 짓는 데 흥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제가 쓴 시들을 주변 지인들이나 가족, 친구들에게 보여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제가 쓴 시들을 좀 더 많은 사람과 나눴으면 하는 생각에 『빛과 어둠의 향연』이라는

시집을 집필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시인은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말 것을 독자들에게 당부한다.

그것은 삶의 한 조각이고 인간은 모두 그런 어둠 속에 있다

다시 빛을 찾아 미래로 향하는 여정을 하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의 삶은 그런 것이기에 살 가치가 있고,

살아야 할 의무도 있다는 생각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인연이란 그런 거지···

채워 주고··· 비워 주고···

그리고 살아갈 용기를 주는 거야···(p.29 「인연」 중에서)

 

 

멍하니 초점 잃은 두 눈으로

티끌 하나 없는 심심한 천장을 바라보며

꺼질 듯한 깊은 한숨을 토해 낸다···

 

하~~ 아~~~

홀로서기의 첫날 밤은

그렇게도 무던히도 길기만 하였다···(p.92 「홀로서기」 중에서)

 

저자 : 검은 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제과 제빵 기술을 배워

현재 인천에서 조그마한 빵집을 운영 중이다. 근래 시를 쓰는 취미가 생겨 가족들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보여 주곤 했는데, 좀 더 많은 사람과 글을 나누고자 단편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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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매직 아웃 1~2 세트 - 전2권 매직 아웃
사토 마도카 지음, 탄지 요코 그림, 이소담 옮김 / 길벗스쿨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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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학교 다닐 때 수학과 물리가 약했다. 다른 공부보다 덜 하거나 더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문제 풀이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대학 입시 위주의 공부 체계라 더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해서는 수학과 물리 공부를 하는 데 시간을 줄여야 했다. 효율적으로 전체 점수를 높이는 데 좋은 방법은 공부하는 시간을 재배정하는 것이 그때의 입시 위주 공부에서는 적절하다고 모두 권장하던 때였으니까.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역시 대학에서는 대학대로의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을 터, 나중에 수학이나 물리 공부를 더 하겠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직장에서나 개인적인 생활에서도 수학 물리는 접근이 쉽지 않았고, 사회 생활도 수학 물리 지식이 다소 부족해도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기에 그냥 지내왔다고 변명 아닌 변명도 해본다. 그래서 아직도 수학 물리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나 최근 특히 코로나 이후 부쩍 많이 출판되는 소설은 SF소설이었다.

어렸을 때를 제외하곤 과학 소설이란 것도 읽어보지 못한 터라 요즘 나오는 SF 소설은 엄청난 차원의 소설이라 이해하기 벅찼다. 자연스러운 결과였으리라.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독자는 점점 멀어지다 이젠 까마득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속마음으로 학교 다닐 때 수학 물리 공부를 열심히 안 한 벌칙으로 생각해도 되겠지만, 지식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면 배우면 될 일이다. 학교 다닐 때 수학 선생님 중의 한 분이 고등학교 수학이 도저히 못 따라 가겠다고 생각하면 중학 수준의 수학부터 차근차근 하라. 그대로 늦지 않다라고 학생들을 다독이며 학습 의욕을 북돋아준 분의 말씀대로 조금은 약한 과학 지식으로도 이해할 만한 소설을 찾다가 이 책 『매직 아웃』을 발견했다.

 


 

이 책은 사실 중학 이하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읽을 수 있는 '어린이용 과학 소설'쯤으로 쓴 것이다. 일본인 저자 사토 마도카가 쓴 책으로 책에서 쓴 용어나 과학 지식이 어린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과학 소설이라고 이해하고 읽었다. 정말 쉬웠다. 우선 용어가 어려운 것이 없었다. 거의 사전이나 다른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의 도움 없이도 읽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내용도 지구 전쟁이나 우주전쟁 같은 극한의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제목 자체도 매우 쉽다. 〈블랙 아웃〉이란 용어도 낯설지 않다. 굳이 과학 용어로 국한되어 있는 말도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대규모 정전 사태를 이르는 용어로, 주로 특정 지역이 모두 정전된 상태를 말한다. 전쟁 용어로도 사용은 한다고 들은 바 있다. 군사적으로 사용할 때는 본격적인 미사일 공격에 앞서서 한 발 또는 수 발의 핵 공격으로 적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무런 대책 없이 적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감행할 경우 적의 방어체계에 막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본격적인 미사일 공격이 실행되기 이전에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미사일을 발사하여 전파에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블랙 아웃〉이란 용어를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경우는 의학 분야가 아닐까. 술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나 술을 자신의 해독 능력을 많이 마시게 되면 블랙 아웃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독자도 경험이 있어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간다. 이른바 '필름 끊김'이다. 기억 상실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필름이 끊긴다는 것을 의학용어로 블랙아웃(Blackout)이라 한다. 기억을 입력, 저장, 출력하는 과정 중 입력과정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의학계에서 쓰고 있다. 이런 현상은 기억 전달 장치 자체의 고장보다는 입력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라는 데 의학계는 공동의 의견이다. 필름 끊기는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술을 끊어야 한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알코올성 치매 증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들은 바도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쓰이는 〈블랙 아웃〉은 정전 상태를 말한다. 누구나 마법의 재능을 갖고 태어나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나라, 에테르리아가 주 무대 배경이다. 이곳에서 아무 재능 없이 태어난 아니아는 사람들의 무시와 차별 속에서 스스로 공부하며 지식을 쌓아 왔다. 그런데 500년 만에 모든 마법이 사라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매직 아웃』이 일어나면서 에테르리아는 멸망의 위기에 놓인다.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아는 사람은 아니아뿐. 매직 아웃을 해결하기 위한 열네 살 소녀의 지혜롭고 담대한 여정이 시작된다. 이 책은 흥미 위주의 판타지를 넘어서서 독자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평등한 사회란 무엇인지, 과학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인간은 자연과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야 하는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안기는 작품이다. 『매직 아웃』』, 『나니아 연대기』처럼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본격 판타지 동화를 기다려 온 어린이에게 반가운 선물이 되어 줄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마법이 사라진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소녀의 용감한 모험이 『매직 아웃』 1, 2권에서 펼쳐진다. 3권은 곧 출간 예정이란다. 일본아동문학자협회상과 아동펜상을 받고 스무 권이 넘는 책을 펴낸 아동청소년문학 작가 사토 마도카가 5년 동안 공들여 쓴 3부작 판타지 동화다. 1권에서는 마법의 힘으로 모든 생활이 풍요롭게 유지되는 에테르리아에 모든 마법이 사라지면서 주인공 아니아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1권의 이야기가 에테르리아 안에서 펼쳐진다면, 2권은 아니아가 바다를 건너 외국으로 유학길에 오르면서 활약하는 무대가 더 넓어진다. 특히 2권에서는 1권에서 암시했던 아니아가 만날 운명의 상대가 등장하고 에테르리아를 지배하려는 외국 정부의 속셈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매력적이고 탄탄한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장대한 스토리를 기다려 온 어린이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에테르리아 사람들은 힘, 기술, 지식, 수호 등 열한 가지 재능 중 한 가지의 재능을 갖고 태어나며, 수행을 통해 각자의 재능을 갈고닦는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마법의 힘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타고난 재능에 따라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었던 이전과 달리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해내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재능과 관련 없는 새로운 일에 흥미를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해 방황하기도 한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에테르리아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직 아웃 이후에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에테르리아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린이 독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직업을 가진다면 재능과 흥미 중 어느 쪽을 더 우선시할지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저자는 새로운 땅, 낯선 문화 속에서 차별받지 않고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난민과 이주민 아이들을 자주 마주친다고 한다. 그런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 쓰게 된 작품이 『매직 아웃』이라고 밝힌다. 주인공 아니아 역시 마법의 힘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독서로 지식을 쌓아 온다. 그 덕분에 마법이 사라지는 재난이 닥쳤을 때 아니아는 엄청난 활약을 펼친다. 아니아는 그동안 쌓아 온 지식, 사람들의 반대에도 포기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해내겠다는 끈기로 에테르리아에 닥친 위기를 하나씩 해결한다. 아니아를 믿고 최선을 다해 도와준 가족, 친구, 이웃이 없었다면 에테르리아는 안정을 되찾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어렸을 때 읽었던 과학 만화의 내용이 언뜻 언뜻 떠올라 아름다운 기억으로 온 몸이 따스한 느낌도 든다.

 


 

에테르리아의 마법은 에테르리아인들이 믿는 신앙인 ‘대자연’이 내려 준 선물이다. 이 마법으로 사람들은 전기 에너지를 만들고, 아픈 사람을 낫게 하고, 날씨도 다스린다. 그러나 모두에게 이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개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에테르리아는 타고난 재능에 따라 신분이 정해지는 철저한 계급 사회여서 하층민의 자유는 보장받지 못했고, 나라 밖에서 마법의 힘이 필요한 곳이 있음에도 폐쇄적으로 자신들의 이익만 누려 왔다. 매직 아웃이 일어난 뒤 아니아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에테르리아는 재술이라는 큰 축복을 받았지만 재술에 너무 의지했는지도 몰라. 우리의 그릇된 자세를 바로잡게 하려고 이번 매직 아웃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어. 대자연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바로잡을 기회를 주신 것 아닐까?”(1권, p.143)

『매직 아웃』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의 가치를 일깨우면서 우리 주변을 되돌아보게 한다. 맑은 날씨, 풍족한 식량, 언제든 쓸 수 있는 물과 전기,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까지 일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법을 되돌리더라도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아니아는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걸음 더 용기를 낸다. 마지막 3권에는 에테르리아의 개혁을 꿈꾸는 아니아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될 예정이다.

이 책은 요즘 우리식으로 말하면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상으로 구분된다. 디지털 세계화된 에트르리아와 아날로그 아아 아니아의 삶이 겹치면서 우리 사회가 디지털 세상으로 막 바뀌기 시작한 세상처럼 혼란스럽기도 하고,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다른 감성을 철저히 분리시켜 발전해 나가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이 때문에 차별받는 사람들과 지배하는 사람들 사이에 만일 디지털이 일시에 무용지물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에 대한 저자의 상상력도 작용했을 것이다. 또 아무리 디지털화된 세상이라도 아날로그 식 재앙에는 속수무책인 점을 감안한다면 디지털 세계로 바뀌어 가는 변화를 촉구하는 저자의 뜻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저자 사토 마도카는 지금의 과학 기술이 옛 사람들이 보기에는 마법처럼 보일 것이라고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다. 휴대폰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저자는 설명한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만 해도 길을 걸으면서 저노하로 통화하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랍니다. 마법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고도로 발달한 미래의 과학 기술일지 모릅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마법 같은 것 없다는 점을 직시한다. 모든 문제는 우리의 힘으로 하나하나 해결해야 한다. 저자가 이탈리아에 살면서 어려웠던 점을 감안해 이 소설을 쓰려고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완성치 못하고 있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었났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또 많은 사람의 인생이 달라졌다. 이 책에서도 전력이 끊기는 문제를 다루지만 일본의 현실과 비슷한 내용이기도 하다고 털어놓는다.

앞서 언급한 대로 2권은 에테르리아 왕국 밖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가능했던 작은 섬나라에서 자란 소녀 아니아의 일행이 배를 타고 대륙 오베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아니아는 조국과의 다양한 차이점을 피부로 직접 느낀다. 에테르리아의 단점을 명확이 인식하고, 지금까지는 몰랐던 장점을 깨닫는다. 문화가 다른 땅에 가면 자신이 살던 곳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땅의 장단점도 잘 보일 것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자신이 이탈리아에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을 되살린다. 그 점이 이 소설 2권에 많이 반영됐다는 이야기로 이해된다. 처음에는 당연했던 것이 여기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고, 불편하고 화가 나는 일도 많았을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2권에서 아니아와 퓨리스도 다른 나라에서 많은 것을 보고 여러 사람과 만나며 성장한다. 그러나 오베리아 정부에서 아니아 일행을 초대한 데에는 에테르리아의 숨겨진 에너지를 알아내서 전 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음흉한 속셈이 있었다. 한편 아니아 일행은 오베리아에서 아니아와 똑같이 생긴 소녀를 마주치게 되는데, 수수께끼의 소녀는 매직 아웃을 해결하기 위한 운명의 상대일까, 오베리아 정부가 파 놓은 함정일까? 아니아는 재술을 잃은 에테르리아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또한 바꾸는 것이 과연 옳을까, 고민에 빠진다.

 


 

“태어난 순간의 재능이 무언지, 또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 일생이 결정된다니 너무하지 않니? 그런데도 예전의 재술 사회로 되돌아가는 게 좋을까……. 매직 아웃이 일어난 의미, 너랑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잘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2권, p.187)

 

저자 : 사토 마도카(さとう まどか,佐藤 まどか)

196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상업 디자이너로 활약하던 중 『물색 오리발』로 제22회 닛산 동화와 그림책 그랑프리 대상을 받으며 동화 작가로 등단했다. 대표 작품으로 『목각인형』, 『매직 아웃』 3부작, 『슈퍼 키즈』, 『리젝션』, 『내 고양이가 로봇이 되었어』, 『작은 판다』, 『만들어진 마음』, 『105도』, 『애드립』 등이 있고,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으로 『해님우산, 비우산, 구름우산』, 『물벼룩이 토독톡!』, 『좋아하는 건 의자입니다』가 있다.

 

그림 : 탄지 요코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 디자인과를 졸업했고, 현재 도쿄에서 살고 있다. 주로 책 삽화 작업을 하고, 주요 작품으로 〈축구 소년〉 〈소녀들의 블루〉 〈아리 핑클 여자의 규칙〉 〈맨 끝의 사가〉 시리즈와 《첫사랑 소믈리에》 《소년 소녀 비행클럽》 《꽃 사슬》 《라위니아》 《전학생과 환상의 나비》 《도련님 가신다》 《이코-안개의 성》 등이 있다.

 

역자 : 이소담

동국대학교에서 철학 공부를 하다가 일본어의 매력에 빠졌다. 읽는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책을 우리말로 아름답게 옮기는 것이 꿈이고 목표이다. 지은 책으로 『그깟 ‘덕질’이 우리를 살게 할 거야』가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아이 없는 부부와 고양이』를 비롯해 『최애, 타오르다』 『양과 강철의 숲』 『같이 걸어도 나 혼자』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십 년 가게』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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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졸리앵 지음, 성귀수 옮김 / 월요일의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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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가 ‘지극히 현실적인 행복 매뉴얼‘이라고 평가한 이 책은 100만 유럽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저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치유가 아니라, 상처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 일이다”라는 긍정 인식을 가진 저자에게 무한 감동의 응원 박수를 보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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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질문은 내려놓고 그냥 행복하라』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위한 인생 수업」이란 부제를 갖고 있다. 뇌성마비로 17년 동안 요양시설에서 생활해야 했지만, 저자 알렉상드르 졸리앙의〈내려놓음〉의 지혜를 유럽 독자들에게 전했다. 그가 책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 일상에서 느끼고 부딪치는 거의 모든 문제를 압축한 단어들에 대한 철학적 사유이다. 〈르몽드〉는 “지극히 현실적인 행복 매뉴얼”이라고 이 책을 평가했다. 스위스 철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온갖 장애로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없음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충만한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요양시설 속 사람들을 통해 저자는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하면 즐거울 수 있을까’를 묻는 깊은 지혜를 배우게 된다. 그는 선천적 뇌성마비로 3세부터 17년간 요양시설에서 생활해야 했다. 이곳에서 저자는 결핍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깨달은 모든 것들을 책을 통해 이야기하면서 유럽의 100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기독교인이면서 『금강경』을 읽고 좌선을 하면서 천주교 성인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붓다, 육조대사 혜능, 아리스토텔레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에픽테토스, 루미, 스피노자, 니체 등 종교와 시대를 뛰어넘는 철학자와 스승들의 지혜를 들려준다. 고통과 슬픔은 우리 안에 늘 자기 자리를 꿰차고 있기에 ‘채워넣음’보다 ‘비워냄’ 을 통해 영혼의 풍요로움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치유가 아니라 상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저자가 책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집착 없이 내려놓는 삶’의 자세이다. 이는 어려운 일이 닥쳐도 차분하고 의연하게 “별일 아니야”라고 말하며 삶을 직시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일어나지만, 그것들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한다. 또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때만큼이나 기쁨에 머물려고 할 때도 고통은 일어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저자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말고, 모든 질문을 내려놓은 채, 그냥 행복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장애나 결핍 같은 것들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속마음을 속이고 새로운 것을 사들인다. 저자는 서문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통해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게 무엇이 필요할까’를 묻는 대신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하면 즐거울 수 있을까’를 묻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채우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발버둥 치는 동안,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과정이 ‘결핍과 동거하는 법을 배우는 여정’이며, 이것이 곧 삶이라고 말한다. 뇌성마비 철학자가 전하는 ‘집착 없이 내려놓는 삶’에 대한 메시지는 가진 것을 잃을까 봐, 생각한 것을 잊을까 봐 늘 두려워하는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내려놓음……

세상을 까다롭게 보지 말고,

더는 삶과 드잡이하지 말며,

누군가가 되려고 애쓰지도 말고

어떤 아쉬움도, 안타까움도 없이

그냥 그대로

놓인 그대로의 인생을 직시하라.

 


 

이 책은 모두 21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일상에서 자주 쓰거나 일어나는 일 등에 대한 단어와 풀이가 있다. 각 장의 본문은 에피소드나 지혜를 얻기 위한 노력이 이어진다. 독자들은 천천히 읽기만 하면 저자가 얻은 지혜에 다가가는 법을 배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책에서 저자는 장의 구분을 했지만 순서를 정하고 거기에 따라 기사를 나열하지 않는다. 그냥 단어 하나 제시하고 거기에 대한 저자가 해석하거나 경험 에피소드를 풀어놓거나 혹은 설명을 하기도 한다. 모두 지혜에 접근하는 방법과 관련이 있다. 독자 편의상 가장 먼저 나온 장을 '1장'으로 기술한다. 1장 「내려놓기-나에 대한 꼬리표는 내가 아니다」에서 저자는 요양 시설에 있을 때 내려놓기를 강요하는 듯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 마치 학대처럼 느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떻게 지금은 내려놓기를 말할 수 있기까지 책 한 권의 영향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바로 《금강경》이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산스크리트어로는 생략(독자)하고 이 책의 구문 하나가 자주 등장하며 제 8장에 처음 나오는 대목이다. "소위 '붓다의 실재'라고 부르는 '붓다의 실재'에 관하여, 여래께서 이르시기를 이는 '붓다의 실재'가 아니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를 '붓다의 실재'라 부르니라 하시더라."란 글귀다.

이런 문장을 대할 때 보통 사람들은 웃어넘기든지, 괴이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독자는 '말장난(?)'이라는 무례한 생각도 든다. 불교 신자가 아니어서일까? 그러나 석가모니 붓다는 존경하고 있는데 그 유명한 《금강경》의 글귀를 말장난이라고 독자가 표현한 것은 저자의 마음에 접근하기 위해서니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이 글은 저자에게 장애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기꺼이 끌어안기까지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힌다. 거기, 인정할 그 무엇도 없다는 사실을 이 글은 말해주고 있었다고 저자는 받아들이고 있다. 저자에겐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에게 '애쓰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받아들여야만 한다'라고 강제적 뉘앙스는 분명 '힘들여 애쓸 것'을 요구한다. 《금강경》의 이 문구는 결국, 집착이 없는 삶의 자세를 말한다고 명징하게 강조한다.

 


 

3장 「조건 없는 사랑-과거의 모습에 가두지 않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에서 저자는 아낌없이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을 자신의 삶, 스스로의 육체를 위해 베풀어야 한다는 걸 실감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어떤 역에 나가 있었는데 그날따라 저자가 남의 시선에 유난히 민감했다고 한다. 무작정 핸드폰을 꺼내 베네딕토 수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짜고짜 불편한 심정을 쏟아부었다. '정상인이 되고 싶어 미치겠다'고 마구 퍼부어댔다는 것. 수사가 물었다. "만약 오귀스탱(저자의 아들)한테 장애가 있다면 그래도 그 아이를 사랑하겠나?" 저자는 대답했다.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그야 당연하죠!" 그러자 수사가 또 물었다. "그 아이를 돌보아 줄 텐가?" "여부가 있습니까!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보살펴줄 겁니다!" 그러자 수사가 말했다. "그럼, 오늘 당장, 지금 그 역에 있는 자네의 몸뚱어리를 자네 자식처럼 보살펴주게." 전화를 끊자마자 저자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토로한다.

자신의 몸뚱어리가 아껴주어야 할 아이라는 것을 갑자기 깨달은 것이다. 전에는 이 아이에게서 오직 즐거움과 이득만을 끄집어내려고 안달했을 뿐, 편히 쉬게 해준다거나 매일 녀석이 해내는 것을 존중해줄 생각은 전혀 안 했다고 고백한다. 몸뚱어리가 자신에게 남겨준 상처와 장애는 자신의 손으로 들고 갈 쟁반 위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그 역에서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겉으로 드러난 몸의 이미지는 결국 쟁반 위에 놓인 그 무엇이며, 저자는 그것을 들고 가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요컨대, 누군가 그 쟁반 위에 놓인 것을 비웃는다 해도 자신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저자는 조건 없는 사랑, 그것은 무작정 관용을 베푸는 것과는 다르다고 역설한다. 절대적인 관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에 전적인 온정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제 13장 「감사-집착하지 않고 매달리지 않으면서 모든 걸 누리는 지혜」에 시선을 옮겨본다. 저자는 13장의 시작을 블레즈 파스칼의 말을 인용한다. "양지바른 이 자리는 내가 임자야"라고 말하는 순간, 온 세상을 향한 침탈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치 탐욕을 경계하라는 문구처럼 보인다. 저자는 이렇게 풀어간다. "저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어떤 단어의 의미를 잠시 음미해봅니다. 바로 '연습'이라는 단어지요. 가령 '감사 연습'이라는 표현을 생각해보죠. 저는 행복이 쟁취를 통해서 얻어진다고 종종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 마음을 활짝 열고, 일상에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기쁨을 누리는 게 아닐까요." 저자는 기쁨이란 쟁취보다 받아들이는 행위를 통해 더 잘 얻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요컨대 삶이 베푸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우리의 능력은 바로 '감사 연습'을 통해 활짝 피어나는 것이란 생각이다.

저자는 앞서 파스칼의 아름다운 문장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다. 이 문장에 저자에게 감사하는 자세와 집착 없는 마음가짐으로 이끌어준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삶을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 아닌 당연히 제 것인 권리로 여기는 순간, 그리하여 "양지바른 이 자리는 내가 임자야"라고 말하는 순간, 고통은 물밀 듯 밀려드는 법이다. 삶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는, 이것 하나는 누구도 부정 못할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모든 걸 삶 자체에 맡기는 편이 낫다. 아이들은 물론 우리 자신, 친구들 모두의 건강도 당연히 주어져야 할 몫이기보다는 엄청난 선물로 여기는 게 좋다. 요컨대 감사란 그동안 받은 '선물'을 새롭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되새겨보는 자세를 뜻한다. 집착하지 않고, 매달리지 않으면서 모든 걸 더욱 충만하게 누리는 지혜가 그 안에 있다.

 

 

20장 「단순함-질문은 내려놓고 그냥 행복하라」는 이 책의 표제어로도 쓰였다. 앞선 장의 예에 따라 니체의 문장이 먼저 눈에 띈다. "단순한 삶이란 어려운 것이다. 그것을 누리려면 아주 지적인 사람들보다 더한 사고력과 창의력을 가져야만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단순하다는 것은 복잡한 현상이다. 벌거벗은 상태로 삶과 대면하는 것은 복잡한 일이다.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온갖 비교를 하며, 일어나지도 않을 상황을 기다리는가 하면, 영영 지나가버린 과거를 후회하느라 우리의 정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을 고생을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은 매사에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이다. 회한을 없애고 싶어 하는 마음조차 가지면 안 된다. 마음속에 회한이 스며들면, 그대로 두면 된다. 아무 문제 없다. 단순한 삶은 자기 인생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로 시작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우 현실에서 부닥치는 온갖 문제일까, 신체 경련일까, 정신적 건강일까?라고 되묻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라고 답한다. 언젠가 한 은둔 수도자를 만나 두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누다 그가 "단순함, 집착 버리기, 삶의 희열을 찾고 계신다고요? 그 모두 다 이미 당신은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니 질문은 그만 내려놓으십시오. 모든 걸 내려놓고, 그냥 행복하세요." 저자는 그 "행복하세요"라는 말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은둔 수도자의 말이 이 책의 표제어가 된 셈이다. 저자는 스스로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고 깨달은 것이다. 온갖 비법들만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수사님, 제 인생을 바꾸게 도와주세요! 이 모든 상처를 제게서 떨쳐내주세요!" 수사는 그런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꾸려 들지 말고 다시 시작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단순함이란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이상의 무엇이 수반되어야 가능하다. 받아들이되 무한한 호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 장 21장 「있는 그대로 소탈하게, 삶에 바짝 다가가 실존 속으로 돌아가라」는 어쩌면 이 책의 에필로그 역할을 한다. "우리의 탐구를 마무리하면서, 제가 행해온 선(禪) 수행을 특징 짓는 몇 가지 중요한 생각들을 한자리에 모아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제가 선을 접하게 된 것은,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인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당나귀 형제' 때문 아니, 덕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처한 육체의 현실은 보시다시피 감당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저는 당나귀 형제를 등진 채 툭하면 관념 속으로 줄행랑치는 성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좌선을 하는 간략히 소개하는 자리에 참석했는데, 그 앉아서 하는 명상(제게는 누워서 하는 명상이지만)을 시도해보니, 세상에! 온갖 철학적 개념들을 통해 그토록 추구해온 평안이 제 가슴 깊숙한 곳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자는 이 장에서 선(禪)에 대한 원리, 지침으로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자신을 오늘 여기까지 있게 한 것은 선에 대해 감사와 함께 독자들에게도 자신의 경험과 선을 통해 얻은 지혜를 나누고 싶은 의미에서다. 할 말이 많으리라고 독자도 예상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긴 말은 오히려 돕는 것이 아닌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하면서 세 가지로 요약해 선의 지침에 대해 말한다.

첫째가 선불교의 육조대사 혜능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밝힌다. 문맹이었던 그는 《육조단경》을 구술하면서 자신만의 수행법을 펼쳤다. 그중 한 문장이 저자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의 생각에 멈추는 순간 생각의 흐름 자체가 멈추고 만다. 이것을 바로 집착이라 부른다." 우리는 하루 종일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그대로 흘려보내야 한다. 둘째는 이 책에서 줄기차게 언급된 저자의 인생을 구원해준 《금강경》의 후렴 문구다. 앞서 독자도 언급한 바 있다. 집착 없는 삶의 자세를 갖는다는 것은 모두 이렇게 통하는 것 같다. 저자는 실제 우리가 안다고 믿는 모든 것은 그 실재를 고착시키는 꼬리표에 불과할 뿐이니, 삶을 그냥 놔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삶을 고정시키려는 욕심을 버리고, 삶과 더불어 그냥 춤추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셋째 지침은 운문 선승의 말에서 비롯됐다. "그대가 걸을 때는 그냥 걷고, 그대가 앉아 있을 때는 그냥 앉아 있어라. 무엇보다 서둘지 마라." 단순하고 즐거운 긍정의 묘미를 음미하라는 지침이다.

 


 

저자 : 알렉상드르 졸리앙(Alexandre Jollien)

 

1975년 스위스에서 트럭 운전사 아버지와 가정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탯줄이 목에 감겨 질식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이때 생긴 후유증으로 뇌성마비 장애를 갖게 되었다. 세 살 때부터 17년간 요양 시설에서 지내는 가운데 온갖 고통과 어려움이 그를 괴롭혔지만, 내면에 잠자고 있던 인식에 대한 강렬한 갈증으로 철학에 빠지게 되었다. 학문의 세계에 입문한 후 스위스 프리부르 문과대학에서 철학을,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철학과 고대 그리스어를 공부하면서 책을 펴내기 시작했다.

1999년 첫 책 《약자의 찬가》가 아카데미프랑세즈에서 수여하는 모타르상(문학창작 부문)과 2000년 몽티용 문학철학상을 수상했다. 그 후 《인간이라는 직업》 《자아의 구성》 《벌거벗은 철학자》 《기쁨의 철학》 《왜냐고 묻지 않는 삶》 등 남다른 삶의 궤적이 반영된 독창적인 사색을 주옥같은 글에 담아왔다. 《질문은 내려놓고 그냥 행복하라》는 그의 저서 중 대중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책으로, 그를 일약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역자 : 성귀수

 

시인, 번역가. 연세대학교 불문과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집 《정신의 무거운 실험과 무한히 가벼운 실험정신》, “내면일기” 《숭고한 노이로제》를 발표했다.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의 《침묵의 기술》,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왜냐고 묻지 않는 삶》, 아폴리네르의 《내 사랑의 그림자(루에게 바치는 시)》, 래그나 레드비어드의 《힘이 정의다》, 장 퇼레의 《자살가게》, 모리스 르블랑의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전10권), 피에르 수베스트르와 마르셀 알랭의 《팡토마스》(전5권),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공역), 조르주 바타유의 《불가능》, 베르나르 미니에의 《물의 살인》(전2권), 사뮈엘오귀스트 티소의 《읽고 쓰

는 사람의 건강》 등 백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2014년부터 사드 전집을 기획, 번역해오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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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MBTI - 명작 속에서 나를 발견하다
임수현 지음, 이슬아 그림 / 디페랑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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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수현이 보기에 MBTI는 철학 길잡이다. 이 책은 개성 넘치는 다양한 인물을 대상으로 삶의 의미를 모색해본다. 저자는 이 책에서 32개의 고전문학을 성격 유형별로 구분했다. 『데미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스인 조르바』 등 고전 속 인물들이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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