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어웨이
장세아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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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run·away)'란 ① 달아난, 가출한 ② 제멋대로 가는, 제어가 안 되는, 고삐 풀린 ③ 도망자, 가출자(특히 청소년)의 뜻을 지닌 영어다. 이 책 『런어웨이』는 동거중인 남자 현욱의 폭력에 시달리던 여주인공 재영이 우발적으로 현욱을 죽이고 도망자 신세가 되면서 시작된다. 제목과 함께 첫 문장 ‘인생을 리셋할 수 있을까?’는 묘하게 삶으로부터 도피 중인 한 여자와 어스름한 새벽 열차 안이라는 분위기로부터 비장함이 묻어난다. 저자 장세아는 「작가의 말」을 통해 "'어스름한 새벽 첫차 안, 화장실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는 초췌한 여자의 모습'. 모든 것은 그 이미지 하나에서 출발했다"고 밝힌다. 잠 못 들고 뒤척이는 밤, 머릿속을 이리저리 떠가는 생각들 가운데 유독 선명하게 떠오른 이미지였다고 말한다. 여자는 겁에 질려 있었으며, 손을 씻다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 뒤 떨리는 손으로 물을 끼얹는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쫒기던 참이었고, 어서 벗어나고 안달하고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꿈에서 빠져 나온 모습이긴 한데 여자의 이미지가 점점 강해지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또다시 기묘한 상황에 빠지고 만다. 저자가 소설의 인물(캐릭터) 창조를 위해 고민하던 모습을 설명하는 듯한 이 말들은 도망자 신세가 된 재영이 서울로 향하던 어스름한 새벽 첫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이 쪽지만 남긴 채 아이를 버리고 사라지는 장면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그 여자와 잠시 기차에서 나눴던 대화를 통해 그녀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고, 살길이 막막하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시댁'을 찾아 가는 중이었음을 알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쪽지에 남긴 집을 찾아 재영은 아기를 데려다 준다. 주소지로 찾아간 재영의 눈앞에는 어마어마한 대저택이 기다린다. 재영이 아기가 이 집의 손자라고 밝히자 그 집 사람들은 당연히 재영을 아기의 엄마로 착각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흥미진진한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가 펼쳐지면서 이야기 속 주인공은 물론, 독자들도 역시 손에서 책을 놓치 못하게 만든다. 이처럼 강한 흡입력을 가진 『런어웨이』는 고전 고딕 소설의 감성을 한국 정서에 맞게 풀어낸 K 고딕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작가의 말」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수록 일이 더 안 풀려서 절망하던 경험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문제 해결의 방법이 마냥 착하고 도덕적인 방법이 아니라 지극히 사악하고 현실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스토리와 캐릭터의 성향 등을 주도면밀하게 구상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도 곤경에 빠지거나 낯선 환경 속에 내던져질 경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느냐에 이 소설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저자의 말은 읽힌다. 저자의 의도는 이 세상에는 마냥 착하기만 한 사람도, 마냥 나쁘기만 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란 항변이라고 독자는 읽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인간의 욕망'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재영도, 효진도, 현욱과 수현 형제도, 형제의 아버지인 회장마저도 모두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을 열망했고, 그것을 갖기 위해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애를 쓰다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기 때문이다.

‘나 대신 아기를 꼭 데려다 달라’는 쪽지 속 그녀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대신 시가를 찾아간 재영은 처음엔 아름다운 서양식 저택의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그리고 그녀를 며느리로 오해하고 반겨 주는 식구들과 풍족한 집안 분위기에 흔들린 나머지 그만 자기가 아기 엄마라고 말해 버린다. 호화로운 환경, 편안한 생활, 다정하고 잘생긴 시동생까지··· 뜻밖의 행운에 도취된 재영은 자신의 처지를 잊고 부잣집 맏며느리 역할에 적응해 나간다. 그러나 번듯해 보이는 이 가족이 숨기고 있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씩 드러나는 추악한 비밀과 진실 앞에서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저자는 이 소설 『런어웨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갔던 인물은 의외로(?) 수현이었음을 고백한다. 하얗고 창백한 얼굴의 여리여리한 미청년. 이유 없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뿌리 깊은 애정 결핍 때문에 누군가에게 비틀린 방식으로 집착하는 찐한 인간(어떤 이유도 그의 행동에 결코 면죄부를 줄 수는 없겠지만). 저자는 또 마지막 장면, 수현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장면을 쓰던 밤을 잊을 수 없다는 말도 한다. 그 장면을 끝낸 뒤 왠지 울컥하는 바람에 깊은 밤 오랫동안 혼자 방 안을 서성이며 이 아련한 서글픔의 실체가 무엇인지 가만히 되짚어 보았다고 한다. 지금껏 저자가 창조한 가상의 등장인물에게 그 정도로 감정이입을 했던 적은 처음이어서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되뇌인다. 저자의 이같은 독백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인간의 욕망의 뒷편에 자리잡은 추악함, 욕망을 향하는 무절제한 집착, 욕망을 이루려다 실패했을 때의 좌절에 따른 잔인함 등을 고려하면 저자의 의도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독자의 생각이다.

교보 스토리 영상화 추진 프로젝트로서, 웹 소설를 포함해 다양한 장르의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장세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장세아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억압받는 인간의 강한 생명력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기구한 운명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이다. 또한 등장인물 모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등 누구도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입체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현실적인 흥미를 더한다.

 


 

등장인물을 살펴보면, 재영이 사랑했던 남자는 여자에게 고통만 주는 사람이었다. 동거중이긴 했지만 보육원에서 자란 재영에게는 유일한 사랑이었다. 잘 생기고 섬세했던 남자는 의처증이 심했고,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사건 당일도 남자에게 맞던 재영은 프라이팬으로 남자의 머리를 우발적으로 내리쳤고 남자는 죽었다. 재영은 도망쳤다. 역에 숨어 있다가 제일 먼저 떠나는 첫 기차에 올랐고 거기에서 아기를 안고 기차에 오른 여자를 만난다. 재영이 찾아간 아기의 집은 대저택인데다 주인인 할아버지는 몸이 성치 않지만 거부였다. 아기 아빠의 동생이라는 남자는 여자에게 형수라고 부르면서 살갑게 굴었다. 여자는 어차피 갈 곳도 없는 신세였다. 요새 같은 이 대저택에 숨어 있으면 시간을 벌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여자는 아기엄마가 되기로 하고 부잣집 며느리로 남기로 한다. 시동생이 된 남자는 친절했다. 다시 사랑의 마음이 솟아오를 정도로.

부잣집 며느리 노릇도 점점 재미가 붙었다. 하지만 자신이 죽인 남자가 발견되면 모든 게 끝이다. 여자는 살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죽은 남자가 사라졌다. 집은 깨끗했다. 누가 치웠을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기엄마가 나타났다. 시아버지의 간병인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오래전 그 집에서 간병인으로 일했던 여자는 어떻게 아이를 낳고 자신을 이 집으로 끌어들였을까. 이 집에서는 이해할 수없는 사건 사고가 연이어 벌어졌다고 한다. 자신과 살았던 장남이 집을 떠났고, 그의 어머니는 알레르기로 급사했다. 일하던 가정부는 도둑질을 하다가 쫓겨나고 이후 자살을 했다. 그 사고는 모두 우연이었을까. 여자는 오래전부터 자신들을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그리고 기차에서 만난 여자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이 모든 사고와 사건의 뒤에는 양의 탈을 쓴 악마가 있었다는 사실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을 중간에 멈출 수가 없을 만큼 압도적인 흡인력이 있다. 소시오패스의 악랄함과 사랑에 대한 갈망이 살인에 이르게 되는 스토리에 아마 독자들은 멈추지 못하고 빠르게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의 구성에 있어서도 꽤 안정적이고 유기적 관계를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작가로서 천부적 소질인지, 오랫동안 습작과 창작을 통해 획득한 재능인지 독자야 모르지만 훌륭한 구성과 스토리의 소설이라는 점에 크게 공감한다. 이 소설은 전반부는 재영, 후반부는 '효진'이라는 여자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어찌 보면 둘다 안타까운 피해자이고 가해자이다.

 

나는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가 침대로 걸어와서 내려다보는 것을 느끼면서도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다는 건 알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일들을 겪었는데.

그러니까 앞으로 나아가는 데 망설임 같은 건 없다.

멈출 생각은 없다.

그만한 각오가 없었다면 시작도 안 했지.(p.417)

 


 

그제야 내가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이 달랑 어린애 하나만 안고 찾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무슨 증표 같은 것도 없이, 아기 엄마의 이름이나 그 여자의 남편 이름도 모르고 무작정 찾아온 것이다.(p.33)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잘생기고 다정한 나의 연인 대신 또다시 괴물이 나타났다는 걸 깨닫는 순간, 모든 게 지긋지긋해졌다. 지금부터 벌어질 모든 일들이 여러 번 반복해서 돌려 본 영화처럼 익숙하게 머릿속을 흘러갔다. 어떻게 끝날지 너무 뻔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p.120)

 

이 손에 잡혀 있는 동안은 누구도 날 해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단단히 잡아야 한다.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까.(p.191)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시커먼 터널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뒤로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이 갇혀 있는 기분. 이 고통에 끝이란 게 있을까? 어느 한쪽이 사라져야 끝나는 게임일 텐데 그게 내가 될 확률이 크겠지.(p.194)

 

저자 : 장세아

 

명품 브랜드 홍보 담당자로 오래 일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북리뷰 채널 ‘취향타는 독서 처방전’을 운영 중이다. 웹 소설부터 유명 스타일리스트의 패션북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서로 다른 필명으로 쓰고 있다.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 출품했던 단편소설이 주목받아 교보문고 추천작으로 장편 『런어웨이』를 출간하게 되었다. 고전 고딕 소설의 감성을 더한 한국형 고딕 스릴러 『런어웨이』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아 영상화 등 2차 콘텐츠로의 확장을 추진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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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생활자 안전가옥 앤솔로지 10
최현수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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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색다른 생활을 꿈꾸지만 현재의 생활 또한 소중하다고 믿는 만큼 모험처럼 다른 일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두 가지 이상의 역할을 해내기 버거운데 다른 일을 더 얹기 싫어서다. 그러나 말 없이 묵묵히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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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생활자 안전가옥 앤솔로지 10
최현수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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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일상에서 페르소나(persona)란 단어를 자주 쓴다. 원래 ‘인격’ ‘위격(位格)’ 등의 뜻으로 쓰이는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본디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그것이 점차 인생이라는 연극의 배우인 인간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고 두산백과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이 단어는 점점 쓰임새가 확대돼 철학용어로는 이성적인 본성(本性)을 가진 개별적 존재자를 가리키며, 인간·천사·신 등이 페르소나로 불린다. 즉,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자유로이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주체를 말한다. 또 신학용어로는, 의지와 이성을 갖추고 있는 독립된 실체를 가리키며, 삼위일체의 신 곧, 제1 페르소나인 성부(聖父), 제2 페르소나인 성자, 제3 페르소나인 성령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의학, 심리학, 마케팅에서도 이 말을 차용해 쓴다고 하니 우리 일상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이중생활자가 페르소나를 쓴 우리 중의 한 명을 표현하지 않았나 싶어서 든 독자의 생각이다.

이 책 『이중생활자』는 비밀스럽고, 종잡을 수 없고, 아슬아슬해서 매력적인 캐릭터가 중심인 엔솔로지 소설집이다. 스토리 프로덕션 〈안전가옥〉과 종합 콘텐츠 플랫폼 〈왓챠〉가 함께 진행한 스토리 공모전에서 찾고자 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모두 200여 편의 응모작 가운데 심사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종 당선작 속의 주인공들은, 뜻밖의 정체에 흥미를 품은 독자들의 눈길을 마지막까지 붙잡는 각양각색의 활약상을 이 책에서 보여 준다.

스파이라는 전형적인 이중생활자가 등장하는 밀리터리 드라마 「열일곱, 여름, 전쟁」이 소설집의 문을 연다. 이 작품은 명국(明國)의 군인인 '영'은 비밀리에 암국(暗國)의 특수 용병 훈련소로 파견된다. 암국 전력의 핵심인 ‘데이터 디스펜서’들을 최대한 많이 죽이기 위해서다. 영은 자신의 몸속에 도시 하나를 없애 버릴 만큼 강력한 생체 폭탄이 실려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암국의 동갑내기들과 함께 군사 훈련을 받는다.

 


 

훈련소 규칙에 의해 암국의 소년 이비와 한 팀이 된 영은 그와 사사건건 대립하면서도 서서히 마음을 열어 가지만, 영에게 예정된 미래는 머잖아 이비의 목숨을 빼앗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 최연수가 썼다. 비정한 딜레마 앞에 선 17세 소년들의 마음결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며, 히어로이자 공무원인 교사와 히어로를 동경하는 아이의 파트너십이 돋보이는 판타지 「드림센스」는 꿈꾸는 모두를 밝은 에너지로 응원한다. 초등학교 6학년생 '설이'의 귀 뒤에는 더듬이가 있다. 더듬이가 생긴 뒤로 설이는 다른 사람의 꿈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설이가 갖게 된 능력을 알아차린 또 다른 감각자, 설이의 담임 화식조는 감각자들이 꿈을 먹는 자들인 ‘두억시니’에 맞서 오랜 세월 동안 싸워 왔음을 알려 준다. 두억시니는 밤에 꾸는 꿈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 기억에 감정을 담는 능력까지 앗아 간다. 게다가 자신을 막으려는 감각자를 공격해 죽이기도 한다. 화식조가 위험하다며 말리는데도, 자신이 마냥 평범하다고 생각해 온 설이는 모처럼 얻은 특별한 능력을 발휘해 사람들의 꿈을 지키려 한다. 작가 나혜림의 작품이다.

비밀스러운 공간의 노(老)주인이 이끌어 가는 미스터리 「부귀수산」은 전직 해녀 춘단은 양식장 겸 횟집 '부귀수산'을 운영하는데, 늦은 밤에는 특별한 손님을 받는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쳐야만 하는 그들이 숨기려는 물건을 건네면 춘단은 해녀다운 방식으로 물건을 감춘다. 어느 날 부귀수산을 찾아온 재연은 춘단에게 피가 묻은 음악 콩쿠르 트로피를 건네며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일주일만 숨겨 달라고 말한다. 재연의 모습에 오래전에 집을 떠난 딸을 떠올린 춘단은 트로피를 보관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춘단의 마음은 바로 이튿날부터 흔들리고 만다. 경찰에게서 걸려 온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작가 김해일이 썼다.

 

 

「부처핸접」은 엄마와 딸, 저지른 자와 숨기는 자, 죄와 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에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랩 하는 스님의 고군분투를 담은 오컬트 코미디다. 이 소설은 인간이 잃지 말아야 할 가치들을 경쾌하게 되짚는다. 설악산 근처의 작은 절인 학선사에 기거하고 있는 여승 지거(知去)는 랩 연습 중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주지 스님이 사채업자에게 빌린 5억 원을 강원랜드에서 탕진했기에 랩 경연 프로그램 〈샤워 미 더 머니〉의 우승 상금 5억 원을 노리게 된 것이다. 심사 위원 중 한 명은 템플스테이를 하러 학선사를 찾았던 무량이지만, 그는 가발과 비니 차림에 가명을 쓴 지거를 알아보지 못한다. 게다가 학선사의 기운이 좋다고 믿어 팀 회의를 열겠다며 거듭 찾아오기까지 한다. 정체를 숨기고 무량 팀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지거는 ‘악귀 때문에 절의 결계가 약해진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주지 스님의 치매 증세까지 감당해야 하는 신세다. 작가 전효원이 썼다.

마지막 작품은 세탁편의점 사장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서늘한 추적극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릴러 소설이다. 「단골손님」은 1949년생, 세탁편의점 주인인 '나'가 주인공이다. 나는 가까이 지내던 형을 만나러 갔다가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형의 집 뒤편에는 기이하게도 고양이들이 포개진 채 죽어 있었고, 고양이들의 송곳니는 모두 빠진 상태였다. 이튿날 손님들이 맡긴 옷의 주머니 속을 확인하던 나는 낯선 물건 안에 보관된 동물의 송곳니를 발견한다. 물건의 주인은 평소 점잖은 태도를 보여 온 단골 청년이었다. 호기심에 사로잡힌 내가 청년의 뒤를 밟기 시작하자, 청년은 내 예상대로 조용히 대응에 나선다. 이 소설은 삶의 쓸쓸한 순간들을 차분하게 응시한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주인공들을 떠나보내기가 못내 아쉬운 까닭은, 강렬한 캐릭터란 무릇 또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이산복이 썼다.

 


 

히어로의 대명사 격인 슈퍼맨은 어리숙한 기자 클라크 켄트와 동일 인물이다. 초등학생 탐정 에도가와 코난의 정체는 고등학생 탐정 쿠도 신이치다. 이들은 상반된 매력을 지닌 두 인물 사이를 오가며 다채로운 활약을 선보이고, 때때로 숨겨 온 모습을 들킬지도 모르는 위기에 휘말려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한다. 이중생활을 하는 마법 소녀, 스파이, 괴도 역시 비슷한 이유로 오랜 세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한 사람의 몸으로 두 개의 인생을 사는 이중생활자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또 다른 자신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동정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들은 왜 굳이 험난한 길을 걷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들에게 그토록 끌리는 것일까? 이 책 『이중생활자』의 수록작 속에서 해답을 구할 수도 있다.

이중생활자들은 세계의 이면을 본다. 군사 스파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적국의 용병 훈련소에 입소한 「열일곱, 여름, 전쟁」의 영은 약소국 국민들이 강대국의 점령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조국에 헌신한다는 강의를 듣는다. 침략에 저항한 대가로 강제 징용된 부모를 둔 영이 잠자코 듣기에는 무리가 있는 내용이다.

작가 최현수는 「작가 후기」를 통해 "이 이야기는 전쟁으로부터 무관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혹은 나도 모르게 이중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이아기이기도 하다. 처음엔 '이중생활자'는 특별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누구나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나?라고 우리 모두가 이중생활자인 것 같다. 이중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오롯한 자기 자신으로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너는 그 우유 배달부 같은 거야. 조금 다른 점이라면, 네가 우유를 배달하는 배달부이자 우유 그 자체라는 거지. 그 우유가 적어도 도시 하나를 날려 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지만 어떤 검역 시설도 잡아낼 수 없는 생체 폭탄이라는 점도, 그리고 그게 네 몸속을 흐르고 있다는 것도.”(p.12) - 「열일곱, 여름, 전쟁」 중에서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숨기기 때문에 '이중생활자'가 된다. 「드림센스」의 초등교사 화식조는 꿈을 먹는 자 ‘두억시니’에 대적할 수 있는 ‘감각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제자인 설이 감각자가 되었음을 알기 전까지는 자신의 힘에 대해 함구한다. 「부귀수산」의 춘단은 경찰이 수사 중인 강력 사건의 전말을 짐작하고 있지만 입을 다문다. 엄마와 딸 사이의 애증을 이해하기에 발휘된 직감이다. 일단 이해하고 나면 각자의 죄와 벌을 간단히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도 깨닫게 되고 만다. 「부처핸접」의 승려 지거는 자신이 출연하는 랩 경연 프로그램의 진정한 목적을 알아챈 뒤 위험을 대중에게 직접 알리는 대신 다른 길을 걷는다. 이는 본인의 능력을 내세우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한데, 『이중생활자』의 주인공들은 모두 과시와는 거리가 멀다. 「단골손님」의 주인공 ‘나’는 70대 노인으로, 죽지 못해 살아온 긴 시간에 대한 반동을 동력 삼아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게임의 설계자가 된다. 물정에 어두운 눈과 허술하고 느린 몸짓 안쪽에서 모험을 원하는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젊은이들은 모른다. 그러니 승산이 있는 것이다.

"젊은이가 나를 관찰하고 있듯이, 나 또한 집에 들어오면 저녁 식사를 준비하다가 도중에 TV 소리를 키워 놓고 샛문으로 나가 나만의 은신처에서 젊은이가 도사린 곳을 바라본다. 그도 나도 서로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공을 들였다. 젊은이가 관찰을 끝내고 돌아가는 시간은 일정했다. 그는 날마다 조금씩 대범해졌다.(p.332) - 「단골손님」 중에서

「단골손님」의 작가 이산복은 "독거노인이나 고독사, 동물학대 등 사회문제에 평소 관심이나 조예가 있었는지 물어오면 부끄러워진다. 나는 남들보다 아는 게 별로 없다. 다만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재미있길 바란다."는 「작가 후기」를 남겼다.

 


 

저자 : 최현수

이야기를 쓴다. 주로 소설과 희곡. 이야기가 필요한 이름들을 종이와 무대 위로 호명하기 위해 읽고 쓴다.

 

저자 : 나혜림

단편소설 「달의 뒷면에서」로 소설집 『항체의 딜레마』에 참여하였다. 장편소설 『클로버』로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자 : 김해일

바다 위로 작열하고 싶다. 읽는 이에게 들이닥치고 싶다. 영원하고 싶다. 안전가옥 앤솔로지 《이중생활자》의 〈부귀수산〉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저자 : 전효원

잘 벼려 낸 칼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으며, 손에서 칼을 내려놓은 동안에는 휴대폰과 엄지 두 개를 사용하여 글을 쓴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한두 가지 정도 담아 내는 이야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삼라만상에 다양한 관심을 두고 있어 이것저것 주워들은 것은 많지만, 어느 분야든 깊이 파지 않는 성격으로 심도 있는 지식은 부족한 편이다. 대자연 속에서의 휴식을 즐기지만 잠은 튼튼한 지붕 아래에서 자야 하는 모순적인 취향의 소유자이다.

 

저자 : 이산복

시나리오와 소설을 습작하며 1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은 작가 대접을 해 주었으나 사실상 육아빠로 지냈다. 막연한 앞날에 동기부여 결여로 무념무상하게 지내다 안전가옥의 선택을 받게 되었다. 생각지 못한 반전을 맞아 인생의 후반전을 도모하고자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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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교양
지식스쿨 지음 / 메이트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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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벌거벗은 교양』은 국가 등 단체의 기밀이었다가 해제됐거나, 누구나 알지만 굳이 거론해보지 않은 일들에 대한 묶음 지식들을 나열한다. 또 관점을 조금 달리 하거나 비틀 경우 보편적 지식이 특별한 지식이 될 수 있게 해준다. 책으로 출간되기 전 이미 구독자 29만 명에 누적 조회수 1억 회를 기록한 화제의 유튜브 채널인 지식스쿨에서 풀었던 보따리다. 그렇다고 단순 흥미거리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어쩌면 남들이 모르는 것을 혼자만 아는 이상 지식 욕구를 채워줄 뿐만 아니라 지식의 접근법에 대한 영감을 줄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 지식스쿨은 역사, 문화, 사회, 과학, 정치, 경제 등을 넘나드는 다양한 인문학적 교양지식을 TOP 10 형식으로 너무나 재미있고 유익하게 풀어주는 유튜브 채널이다.

이 책에 소개된 흥미진진한 35가지 주제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정확한 테이터를 기반으로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이해를 돕는 이미지까지 친절하게 전달하면서 재미를 더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키워주는 역사의 흔적과 사회마다 차이가 있는 문화적 차이를 각 주제마다 1위부터 10위까지의 순위로 분류해 서술했기에 입체적으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을 통해 빠르게 발전하면서 발생하는 사회 현상, 21세기의 과학적 지식, 심지어 복잡하게 얽힌 정치와 경제적 이슈까지 한눈에 읽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식스쿨 채널은 세상에 숨겨진 각종 정보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줄 방법을 기획하면서 탄생했다고 한다. 다양한 영상들은 호기심으로 시작되어 과거부터 현재까지 궁금했던 하나의 주제를 영상으로 풀어나간다. 그중 ‘TOP 10’ 컨셉의 콘텐츠는 호기심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숨겨진 세상의 지식을 모두와 공유하고자 하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기존의 나열식 방식이 아닌 순위로 구분해 설명하니 더 집중할 수 있고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커지면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그간 지식스쿨이 영상으로 만든 TOP 10 콘텐츠 중에서도 각별히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았던 것을 특별히 엄선해 묶었다. 복잡한 출퇴근 시간이나 화장실에서 가볍게 읽다 보면 어느덧 양질의 상식이 가득 쌓일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의 내용은 어디서나 쉽게 접하던 흔한 정보들이 아니라 그 어떤 교과서나 책에서도 미처 알려주지 않은 신박한 교양상식들로 가득해 읽어나가는 재미가 상당하다.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뚜렷하게 남아 있는 독특한 역사의 흔적」에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키워주는 역사의 흔적을 전해준다. 과거의 흔적들을 TOP 10으로 되짚으면 역사적 사실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이다. 나치 독일이 발명해 지금도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의 순위와 산업혁명 당시만 해도 일반적이었던 충격적인 관행의 순위가 TOP 10으로 정리되어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2장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세계의 문화 이슈」에서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 문화적 차이를 흥미롭게 알려준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각기 다른 문화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호기심과 재미를 안겨준다. 전 세계 과일 중 가장 이국적이고 특이한 과일과 세계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테마파크를 순위별로 알 수 있다.

3장 「전 세계의 관심을 모으는 사회 현상」에서는 전 세계의 관심을 모으는 사회 현상을 알려준다. 세계가 빠르게 변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지니게 된 사회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전 세계 국경 중 가장 이상하고 특이한 국경의 순위와 미국의 모든 주에서 영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의 순위를 TOP 10으로 확인할 수 있다. 4장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과학적 지식」에서는 21세기에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 과학적 지식을 TOP 10으로 정리하였다. 현실적으로 인류의 화성유인탐사가 어려운 이유의 순위와 달이 사라졌을 때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의 순위를 TOP 10으로 알아보자. 5장 「정치와 경제의 특이한 이슈」는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특이했던 이슈들을 TOP 10으로 정리하였다. 정치와 경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독특한 일들을 엄선한 것이다. 한때 가난에 허덕였지만 현재 부유해진 국가의 순위와 중립국이 되려 했지만 최종 지위를 상실해 실패한 국가의 순위를 알 수 있다. TOP 10으로 정리한 역사, 문화, 사회, 과학, 정치와 경제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질문들로부터 지적 호기심이 깨어나게 될 것이다.

 


 

독자들마다 관심과 관점이 달라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정리 정돈해준다는 의미에서 큰 가치를 지닌 이 책은 자칫 잘못된 정보를 올렸다가는 생명이 끊길 수 있다는 점에서 치열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독자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 잘못 알고 있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서평을 대신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은?이라는 질문의 주제는 우리 일상의 이야기에서 가끔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특히 군대 이야기하는 남자들 사이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으리라 믿는다. 독자는 학창 시절에 배운 교양 지식으로 칭기스칸의 몽골 제국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즉 직·간접적 지배라는 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칭기스칸은 말타는 실력(기동력과 민첩성) 웅혼한 기상으로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아시아-유럽에 이르는 대 영토를 장악했다. '정복했다'가 더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직접 지배했다는 의미에서 단연 세계 최대의 영토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간접 지배력까지 포함한다면 대영제국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유럽의 변방 섬나라인 잉글랜드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세계 식민지 건설에 나섰다. 당연히 수탈을 위한 것이고, 수탈한 물자나 각종 보물 등은 자국의 부강한 나라 건설로 이어진다. 대항해 시대 직후 벌어진 대영제국은 식민지를 포함한다면 단연 세계 최대의 나라이다. 또 이는 근대에 이루어진 일이라 지금도 영연방으로 남아 있는 나라가 많다. 이는 영연방의 나라들은 자주적인 독립국가로서 지위를 진작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피지배가 아닌 연대·유대의 성격으로 남아 있는 식민주의 시대의 잔재다. 대영제국은 1920년대 최대 규모를 보였고, 약 3,550만 제곱킬로미터의 영토 면적이다. 전 세계 영토의 36.35%라고 한다. 산업혁명까지 마친 대영제국의 국력은 하늘을 찌를 듯했던 것이다. 고대 로마 제국이 '팍스 로마나'를 외쳤듯이 '팍스 브리타니카'로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대영제국의 뒤를 몽골제국, 러시아제국, 청나라 순이다.

 


 

'전쟁은 과학을 낳고, 과학은 전쟁을 낳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기 개발은 기술 집약적이고 강력한 무기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이는 인류가 벌여온 크고 작은 승부에서 무기의 우수함과 강력함이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알려져 있기에 나온 말이다. 1차 세계대전은 많은 대량살상 무기가 등장한 반면 우리 생활에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신소재 등이 많이 등장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스테인리스강'이다. 책에 따르면 1800년대 후반에는 금속의 부식 방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에 여러 야금술사들이 특허를 시도했으면, 영국군도 총기에 더 알맞은 금속을 찾고 있었다. 총을 지속적으로 발사하게 되면 총신이 마찰과 열 때문에 변형되거나 부식됐기 때문이다. 1912년 영국군은 영국 셰필드 브라운 퍼스 연구소의 해리 브리얼리에게 더 강한 합금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던 중 그는 그동안 공장에서 총신에 어울리는 합금을 찾는 실험을 하다가 버린 고철 스크랩 사이에서 우연히 반짝이는 금속을 발견했다.

이 금속은 비가 오고 외부 습기에 노출된 지 오래됐음에도 금속이 부식되지 않은 원래 상태 그래도 있었다. 1913년 이 우연으로 스테인리스를 발견할 수 있었고, 영국군은 신속히 총신에 적용시키기 위해 이를 채택했다. 영국군의 무기는 성능에 있어서 다른 나라에 월등한 위치에 섰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다. 독일은 2차대전뿐만 아니라 1차대전도 일으킨 장본인이다. 유럽 전역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독일군은 1915년 4월 연합군을 상대로 독가스를 최초로 사용했다. 위력적이었고, 연합군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방독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최초에는 투명한 렌즈가 부착된 화학흡수 직물로 만든 조잡한 형태의 마스크였다. 더욱 확실한 방어가 필요했고, 지속된 개선 작업을 거쳐 1915년 호스가 연결된 대형 박스 형태의 호흡 보호구가 개발됐다. 1916년 2월부터 제작됐는데 전장에서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거듭 개선 작업이 이뤄졌고, 1916년 8월부터는 작은 크기로 제작됐다. 개선된 방독면은 1917년 1월에 영국군의 표준 방독면으로 자리 잡게 됐다.

 


 

전쟁이 큰 관심을 끌긴 하지만 문화적으로도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는 곳이 많다. 사막에서 사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물이 없다는 사막에서 그들이 살 수 있는 이유는 역시 '물' 때문이다. 누군가는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는 표현을 했고, 그 표현은 문학적 메타포를 머금고 명언 반열에 올랐다. 인간이 제 아무리 강인하다고 해도 물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이 책에서 '사막의 유일한 안식처'라고 표현한 오아시스 10곳도 소개하고 있다. Top으로 선정된 〈와카치나 오아시스〉는 잉카문명으로 잘 알려진 페루에 있는 오아시스다. 이 오아시스는 페루의 이카 지역에 있다. 주변이 모래 언덕으로 된 사막 한가운데에 지하수가 용천에 형성된 곳인데 오아시스 규모는 크지 않다. 이 때문에 오아시스 주변에 형성된 마을에는 인구 100명 정도로 적은 인구만이 거주한다. 오히려 관광객이 매년 수만 명이 몰리고 있다. 관광객들은 오아시스 주변에서 버기카를 타고 사막을 질주하는 버기 투어나 샌드 보딩 등을 즐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오아시스지만 이곳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하수 시추 및 사용의 증가로 인해 오아시스의 수량이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독자가 보기에는 아름다운 데다 규모도 만만치 않은 브라질 북동부에 위치한 〈렌소이스 마라넨지스 국립공원〉이다. 이곳은 사막이 흰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유명세를 탔다. 대부분 지역이 사막인 이곳은 바람에 의해 높이 40m의 모래 언덕이 형성되는데 이 모래 언덕이 놀라운 장면을 만든다고 한다. 매년 1월부터 6월까지 우기에 내리는 비가 모래 언덕 사이사이에 모아진 빗물은 수백 개의 오아시스 장면을 만들기 때문이다.<사진> 이렇게 모아진 빗물은 각각 길이 100m, 깊이 3m 정도의 규모를 보여주는데, 면적으로만 본다면 많을 때는 공원 전제 면적의 40%에 육박할 정도이다. 모래임에도 이렇게 물이 모아질 수 있는 것은 모래 아래에 바위층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건기가 되면 빠르게 증발해버려 다시 장마철을 기다려야 볼 수 있다.

 


 

이 책이 세계의 Top10을 다루다보니 잘 알려진 것은 이 책에서 배제돼 우리나라가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아쉬운 점이 있다. 조선업이나 컴퓨터 반도체, 휴대전화 수출 등을 따진다면 우리가 세계 Top10은 물론 1위에도 랭크될 만한 것이 많은데도 말이다. 그러나 찾아보면 자랑스러워 할 것이지만 누군가의 관점에 따라 매우 당당한 국민, 모범적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책의 소제목 '한때 가난에 허덕였지만 현재 부유해진 국가 Top10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자리하고 있다. 7위에 랭크된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 대단한 경제적 성장과 민주 국가로서의 위치도 굳건히 지켜 선진국은 물론 강대국 대열에 올라섰다.

저자에 따르면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가뜩이나 별게 없었던 한국 경제를 더욱 나락으로 몰고 갔다. 1961년부터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해 산업화의 초석을 다졌다. 국민의 자유가 억압됐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경제만 놓고 봤을 때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특히 한국의 대기업들은 정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으며 높은 성장을 이끌었는데, 이러한 결과 197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약 9%를, 1980년대에는 3저호황에 힘입어 평균 약 9.7%를 기록했다. 1990년대 말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경제의 체질 개선을 통해 현재는 선진국으로 올라선 상황이다. 2021년 기준 한국의 GDP는 3만5,196달러였는데, 이는 1960년 158달러에 비교했을 때 무려 222.7배 높은 수준이다.

1위에는 룩셈부르크가 선정됐다. 우리가 어렸을 때 서유럽 3소국으로 배웠던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중의 가장 작은 룩셈부르크가 영예의 1위다. 바다에 인접하지도 않은 이중내륙국인 룩셈부르크는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했다. 인구의 33% 정도가 해외로 이주했을 정도로 국민들의 삶은 형편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19세기 중반 척박해 보였던 영토에서 철광석이 발견되고 1876년 영국의 야금술이 도입되면서 룩셈부르크에서 가난은 옛말이 됐다. 유럽의 주요 철강생산국으로서 룩셈부르크의 경제는 급성장했다. 세계대전의 위기도 있었지만 철강산업은 20세기 초중반 룩셈부르크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2021년 룩셈부르크의 1인당 GDP는 무려 13만1,302달러에 이른다.

 


 

1919년부터 1921년까지 치러진 독립전쟁으로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국경이 폐쇄되면서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지만 경제는 1979년까지 영국의 법정 통화인 파운드 스털링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습니다. 게다가 아일랜드의 경제는 농업에 기반을 둔 터라 상당히 취약했습니다. 그럼에도 1932년에 보호주의를 도입해 더욱 침체됐는데, 이 때문에 1945년부터 1960년까지 유럽경제는 호황이었지만 아일랜드는 이에 편승하지 못했고, 오히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아일랜드를 떠났을 정도였습니다.(p.325)

 

세계에서 희토류를 가장 많이 매장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입니다. 중국의 희토류 매장량은 4,400만 톤입니다. 이는 전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36.6%의 비중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매장량의 비중을 넘어선 희토류의 생산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21년 중국이 생산한 희토류는 총 16만 8,000t이었는데, 이는 전 세계 생산량의 60%로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p.348)

 

저자 : 지식스쿨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7시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를 TOP 10 형식으로 제공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단순히 가십성 이슈보다는 진지한 이슈들을 알기 쉽게 다루고 있어 지식에 목말라 있던 이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스포츠채널에서 임원으로 재직하다 퇴사한 뒤 정보의 홍수 속에 사라져가는 주변의 모든 지식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유튜버로서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다. 한양대학교 졸업 후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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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고통 -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
이기병 지음 / 아몬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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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실재하는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인류의 미래를 내다본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의사 이기병은 인류학과 의학을 접목하면서 깨달았다. 향후 저자의 의학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더욱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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