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걸 배드 걸 스토리콜렉터 106
마이클 로보텀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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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굿 걸 배드 걸』은 “살인, 마약, 학대, 고문, 성폭력 등에 관한 몹시 어두운 이야기"〈뉴욕저널오브북스〉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벌어지는 정도로는 표현이 약한 듯하다. 연일 이런 보도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도될 정도로 어느 새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한 사회 문제이다. 저자 마이클 로보텀은 전작 『라이프 오어 데스』로 '흠잡을 데 없는' 스릴러 소설을 선보임으로써 영화감독 박찬욱이 차기작으로 제작 중이라 밝힌 바 있다. 『라이프~ 』는 2015년에 영미 범죄문학 최고 영예인 골드대거 상을 받은 바 있다. 저자는 이번 소설 『굿 걸 배드 걸』로 두 번째 골드대거 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로보텀은 스릴러 소설의 거장 반열에 올랐다. ‘대거 상’은 미국의 에드거 상과 함께 영미권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분야의 최고 권위의 상으로, 영국추리작가협회(CWA)가 매년 가장 뛰어난 범죄문학 작품을 선정하여 수여하고 있다.

런던 북부 참혹한 범죄가 벌어진 현장의 한 집 '비밀의 방'에서 어린 소녀가 발견된다. 굶주린 아이의 몰골은 형언할 수 없이 '고슴도치'로 표현될 정도로 처참하고 비참한 상태다. 소녀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는다. 이를 답답해하던 병원 간호사들이 임시로 붙여준 이름이 〈엔젤 페이스〉다. 이후 소녀는 이비 코맥이라는 이름으로 소년원에서 지낸다. 6년 후 소녀는 법적으로 성인임을 인정받아 소년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살붙이는커녕 친구도 없는 소녀가 소년원에서 벗어나려면 후견인이 있어야 한다. 소녀 이비에게 있을 리 없다. 더욱이 매사에 부정적이면서 독설을 입에 달고 살고 때로는 심각한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는 문제아다. 이처럼 상황이 불리한 이비에게 사이러스 헤이븐이라는 경찰 심리학자가 나타난다.

 


 

헤이븐은 이비의 후견인을 자처하고 소년원에서 그가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사실 이 소녀에게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능력이 하나 있다. 상대의 얼굴을 보면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 있는 능력이다. 사이러스는 이 비밀스러운 소녀에게 이끌려 후견인을 자처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그렇게 두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사이러스 헤이븐이 이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이가 ‘진실 마법사’, 즉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아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소년원 관계자의 제보 때문이다. 과거 자신의 형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당한 기억이 있는 헤이븐은 이비가 자신과 유사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여 아이를 도왔던 것이다. 소년원의 통제된 삶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중에 이비 코맥에게 후견인이 나타나 구원해준 셈이다. 법적으로 출생 기록이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이름과 나이를 밝히는 것도 거부하고 있기에 성인임을 증명할 방법도 없다. 이비는 고단한 법정 싸움을 통해 소년원에서 나오려 하지만 어린 이비에게 그럴 능력이 있을 리 없다. 기어이 좌절을 맞으려는 찰나에 헤이븐이 이비의 보증인이자 보호자(후견인)가 되기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게 참담한 학살의 기억이 묵묵한 더께같이 앉아 있는 낡은 저택에서 두 사람은 함께 살게 된다.

한편, 헤이븐과 이비가 사는 저택 근처의 오솔길에서 15세의 피겨스케이팅 유망주 조디 시핸이 숲속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임신한 채로 죽어간 소녀의 살해 용의자는 곧 체포되지만, 사이러스는 의구심을 품고 조디 시핸의 가족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다. 이비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해 그를 돕게 된다. 죽은 소녀는 조디 시핸으로, 피겨스케이팅 유망주이면서 예쁜 외모로 모두에게 사랑받던 지역의 유명 인사였다.

 

 

후두부의 상처, 연못 바깥에서 발견되었음에도 사인이 익사인 점, 그리고 머리카락에서 정액이 발견되었다는 점 등 사람들의 기대와 인기를 한 몸에 받던 15세 소녀의 비참한 죽음은 그야말로 의혹투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조디 시핸이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곧 용의자를 체포하지만, 사이러스는 밝혀지지 않은 진상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조디 시핸의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조사에 착수한다. 그러나 진실이 드러나기는커녕 온통 추악하고 의심스러운 의혹만이 짙어질 뿐이다. 모두가 용의자인 상황. 수사가 난관에 빠졌을 때, 이비 코맥은 자신의 ‘진실을 보는 능력’으로 사이러스를 도우려 하지만 도리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만다.

대표작 〈조 올로클린〉 시리즈에서 심리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을 이미 선보인 바 있는 저자 마이클 로보텀은 이 책 『굿 걸 배드 걸』로 새롭게 시작하는 〈사이러스 헤이븐〉 시리즈에서도 심리학자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동일한 직업을 가졌으며 ‘경찰의 수사를 돕는 심리학자’라는, 스릴러 소설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위치까지도 흡사한 캐릭터를 굳이 다시 만들어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인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사뭇 궁금하다. 이는 아마도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하려는 저자 로보텀의 야심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로보텀은 파킨슨병으로 서서히 부서져가는 육체와 뛰어난 심리학자의 명석한 정신이 이루는 대비가 절박감과 비극성을 더해주어 작품의 주제로까지 그것을 이어갔던 〈조 올로클린〉 시리즈를 집필하며, 주인공인 조 올로클린이 겪는 고통을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로 꾸준히 승화시켜왔다. 심리학자 사이러슨 헤이븐은 정신 질환이 있는 형이 부모님과 쌍둥이 동생들을 살해한 아픈 기억의 소유자다. 자신은 형이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켰을 때 마침 외부에 있었기에 살아 남았으나 지금도 과거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친구를 통해 이비 코맥을 만나고 소녀의 보호자가 되면서 그의 집에 이비이 함께 살게 된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이다.

 


 

이 책 뒷 부분에 있는 저자의 「작가의 말」과 역자 최필원의 「옮긴이의 말」, 그리고 이 책에 쏟아진 찬사와 평가를 토대로 작품 분석을 해본다. 마이클 로보텀의 대거 상 수상작 작풍들의 주요 인물, 특히 공통적으로 심리학자의 등장은 특유의 정서로써 저자 고유의 스릴러에 독특한 질감을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오기는 했어도, 다만 종(縱)이 아닌 횡(橫)의 방향으로 시리즈에 양감을 주기에는 난점이 따른다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는 로보텀의 스탠드얼론 작품에 대한 기존 시리즈 팬들의 입장에서 종종 나타나곤 하는 결여감의 호소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사이러스 헤이븐 시리즈에서 조 올로클린 시리즈의 숙명인 파멸로의 천천한 걸음이 아니라, 파국으로부터 시작된 존재들의 ‘구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근친살인의 현장에서 홀로 살아남은 과거를 가진 고독한 심리학자 사이러스 헤이븐과 잔인한 범죄 현장에서 참혹한 몰골로 발견되어 자신을 철저히 닫아버린 이비 코맥. 죽음과 어둠 속에서 기존의 자아는 멸실하고 전연 다른 이질적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을 통해서 구현한다.

그들이 각자의 능력을 사용하여 사건을 해결하고 갈등을 극복하면서 서로의 그늘을 보듬는 과정은 곧 온통 상처뿐인 피부를 뒤집어쓴 괴물들이 탐하는, 자기들만의 방식을 통한 구원일 것이다. 로보텀은 시리즈의 첫 작품인 『굿 걸 배드 걸』에서 그러한 고통스러운 구원의 서사를 거장의 솜씨로 훌륭하게 완성했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와는 먼 쌍둥이같이 대척점에서 짝을 이루게 되리라는 의심은, 『굿 걸 배드 걸』 안에서 나타나는 두 심리학자 간의 연결 고리로부터 마침내, 그러나 어렴풋이 드러난다. 마치 소설 안에서 안팎을 구별하거나 구분할 수 없는 그림자로 묘한 대구를 이루는 두 소녀 이비 코맥과 조디 시핸처럼 말이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와 사이러스 헤이븐 시리즈는 궁극적으로 마이클 로보텀의 스릴러 작품 세계를 확장함과 동시에 서로를 보완해주고, 또한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완전한 개별의 시리즈로서 독자들에게 선택의 기쁨을 선사한다.

 


 

야심 찬 새 시리즈의 시작인 『굿 걸, 배드 걸』이 영미 범죄문학의 최고 영예라 할 ‘골드대거 상’을 수상한 것은 그의 이야기를 이미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몹시 고무적이면서, 로보텀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훌륭한 이정표를 제시한 거대한 일이다. 하지만 아이는 정상이 되고 싶어 한다. 정상인으로서 세상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이비는 마치 파티에 한 번도 초대받지 못한 아이 같다. 창문에 얼굴을 갖다 붙이고 안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를 엿듣는, 신나는 게임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그리고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기를 내심 바라면서도 충동이 끓어오르면 주저 없이 그 집에 불을 지를 아이다.

골드대거라는 굵직한 상의 수상으로 최고 수준의 작품성이 두 작품 모두에 담보된 상태에서, 이번 신작은 스탠드얼론이었던 『라이프 오어 데스』와는 또 다른 재미를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또한 후속작인 『그녀가 착했을 때(When She was Good)』가 CWA에서 그해 최고의 스릴러 소설에 수여하는 〈이언 플레밍 대거 상〉을 수상하면서, 〈사이러스 헤이븐〉 시리즈는 마이클 로보텀의 새로운 프랜차이즈로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굿 걸 배드 걸』을 읽는 것은 현재 영미 범죄, 스릴러 문학의 현주소를 가늠해볼 수 있는 새로운 독서 경험이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그래서 심리학자가 됐어요?”

“사람들은 그렇게들 넘겨짚지.”

“그럼 정답을 들려줘요.”

“난 자기 분석을 좋아하지 않아.”

그 또한 거짓말일 것이다.

“조부모님은 내가 외과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지만 난 심리학을 선택했어. 그게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거든.”(p.500)

 


 

저자 : 마이클 로보텀(Michael Robotham)

 

CWA(영국추리작가협회)가 최고의 범죄소설에 수여하는 골드대거 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호주 제1의 범죄소설가. ‘호주의 에드거 상’으로 불리는 네드켈리 상을 수상한 바 있고 에드거 상, 배리 상, UN 스릴러 문학상, 남아프리카공화국 뵈커 상, 영국 ITV 스릴러 상 등 수많은 문학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의 작품은 50여 개국, 25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읽히고 있으며, 스티븐 킹, 리 차일드, 피터 제임스, 린우드 바클레이와 같은 세기의 거장들은 로보텀을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기도 했다. 호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로보텀은 1979년 시드니 〈선〉의 인턴으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우연히 악명 높은 탈옥수 레이먼드 데닝과 친구가 된 로보텀은 그의 행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에 매혹된다. 그 외에도 연쇄살인마, 은행 강도, 아동 유괴범 등을 뒤쫓으며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던 경험은 후에 로보텀이 범죄자의 심리를 섬뜩할 만치 정확하게 묘사하는 작가로 인정받는 밑거름이 되었다.

1990년대 영국으로 건너간 로보텀은 고스트라이터로 활약하며 여러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냈고, 유명 범죄심리학자와의 인터뷰를 계기로 마침내 자기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데뷔작이자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인 『용의자The Suspect』는 2003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하루 만에 21개국에 판권이 팔리며 그해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다.

2015년에 로보텀은 스탠드얼론 작품인 『라이프 오어 데스』로 스티븐 킹, J. K. 롤링 등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를 제치고 CWA 골드대거 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20년에는 사이러스 헤이븐이라는 심리학자를 처음으로 등장시킨 『굿 걸, 배드 걸』로 다시금 골드대거 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2021년, CWA가 최고의 스릴러소설에 수여하는 이언 플레밍 스틸대거 상을 후속작인 『그녀가 좋았을 때When She was Good』가 수상하면서 로보텀은 ‘조 올로클린’ 시리즈에 이어 새로운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편 『라이프 오어 데스』는 〈올드보이〉, 〈박쥐〉, 〈헤어질 결심〉 등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이 현재 영화화를 준비 중이다.

 

역자 : 최필원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현재 번역가와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장르문학 브랜드인 ‘모중석 스릴러 클럽’과 ‘메두사 컬렉션’을 기획했다. 옮긴 책으로는 제프리 디버의 『잠자는 인형』 『소녀의 무덤』, 매트 헤이그의 『시간을 멈추는 법』, 존 그리샴의 『브로커』, 『최후의 배심원』, 『관람석』, 할런 코벤의 『숲』, 『단 한 번의 시선』, 『결백』, 척 팔라닉의 『질식』, 『파이트 클럽』, 시드니 셀던의 『어두울 때는 덫을 놓지 않는다』, 『영원히 사라지다』, 제임스 패터슨의 『첫 번째 희생자』, 데니스 루헤인의 『미스틱 리버』, 살라 시무카의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로버트 러들럼의 『본 아이덴티티』, 배리 기포드의 『스타호텔 584호실』, 제프 롱의 『디센트』, 제임스 시겔의 『탈선』, 마이클 푼케의 『레버넌트』를 비롯해 『이미 죽다』,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폴링 엔젤』, 『안녕, 내 사랑』 『난징의 악마』, 『위치 앤 위저드』 시리즈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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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 - 악기로 마음을 두드리는 음악치료사의 기록 일하는 사람 12
구수정 지음 / 문학수첩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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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치료에 관한 개념은 미국에서 최초로 시도됐고, 이후 꾸준히 정신질환 및 요양원 등을 대상으로 음악 요법을 통해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다. 가족조차도 만나기 꺼리는 일부 환자들을 어루만지는 음악치료사들의 노력으로 정신과 치료는 더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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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 - 악기로 마음을 두드리는 음악치료사의 기록 일하는 사람 12
구수정 지음 / 문학수첩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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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치료(music therapy)란 치료적인 목적으로 정신과 신체 건강을 복원, 유지하며 향상시키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는 명시하고 있다. 독자는 이 책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를 읽으려다 음악 치료사인 저자가 썼다고 해서 처음으로 정확한 뜻을 파악하려고 앞서 밝힌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를 찾아보았다. 주위에 이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없고,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가끔 TV를 통해 〈노래교실〉 같은 곳에서 일반 주부들이나 노인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함께 부름으로써 힐링도 되고 삶의 활력도 북돋우는 것을 본 적은 있다. 그런 목적의 동호회나 〈노래교실〉에서 하는 일과 이 책의 저자 구수정 음악 치료사가 하는 일은 크게 다르다는 것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알게 됐다.

〈의학정보〉에 따르면 음악 치료는 즐거움만을 목적으로 하거나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과는 다른 개념으로, 어떤 필요를 파악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단계적인 과정을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음악 치료는 소수의 제한된 인원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행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기간을 필요로 하며, 음악 치료사는 장단기 치료의 목적을 내담자(client)와 의논하면서 진행한다. 병원의 정신의학과에서 공식적인 치료 행위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근대 음악 요법은 20세기 초 미국이 그 발상지이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정신병원의 격리된 병동에서 황폐한 삶을 살아가는 환자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만성 정신 질환자들은 때때로 찾아주는 독지가들의 위문을 통해서만 사회와 연결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자선적인 위문 음악 활동의 하나에 성 토마스 길드가 했던 ‘치료 음악회’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로부터 근대 음악 치료법의 큰 흐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음악 치료사로서 청진기 대신 악기를 가방에 넣고, 환부를 살펴보기보다 사람의 눈을 먼저 바라보며, “환자 분”이라고 크게 호명하는 대신 여러 번 그 사람의 이름을 읊조리는 것. 바로 ‘음악치료사’의 생활이자 일이다고 말한다. 의사는 아니기에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 치료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음악으로 정말 병이 나을 수 있는 것인지, 낫는다면 무엇을 낫게 하는지 등 음악 치료에 대해 모르는 일반 사람들이 가질 만한 당연한 의심일 터다. 저자 역시 상처 위에 바른 ‘빨간 약’처럼 병이 호전되는지 선명하게 보이지 않고, 처방전에는 기다란 의약품명 대신 〈반짝반짝 작은 별〉이 적혀 있으니, 음악치료사에 관해 잘 알지 못했다면 당연한 질문일 수 있다고 밝힌다. 문학수첩 ‘일하는 사람’ 시리즈의 열두 번째 책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는 이러한 물음에 대답한다. 이 책은 악기를 두드리듯 마음을 톡톡 건드리는 음악치료사의 생각과 생활을 담아냈다. 때론 슬프고, 때론 잠잠해지며, 때론 주체할 수 없이 신나는 음악치료실 속 기쁨과 슬픔이 지금 연주된다.

저자에 따르면 음악치료사의 보이지 않는 치료는 겉으로 살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한다. 음악은 귀를 통해 내시경도 닿지 않는 심장 한구석까지 닿아, 그곳에 들러붙은 우울과 불안을 조심스레 혹은 강렬하게 건드린다. 저자는 ‘세션’을 통해 ‘내담자’가 좋아했던 노래를 함께 불러주어, 현실에 치여 뭉툭해진 사람의 감정을 끌어낸다고 말한다. 또 답답함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징채를 쥐어주곤 “꽝!” 소리가 나도록 힘껏 징을 울리게 한다. 그리고 폐쇄 병동의 돌담을 지나 그보다 더 높은 마음의 벽을 지닌 이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안아주면서 그들이 쌓아왔던 단단한 마음의 벽을 허물어트린다. 음악치료사의 일이고, 보람이다.

 


 

저자가 직업과 관련한 책을 출간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저자는 전작 『가끔은 혼자이고 싶은 너에게』를 이미 출간한 바 있다. 『가끔은 혼자이고~ 』는 음악 치료사로서의 책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혼밥, 혼술에 이어, 요즘에는 혼자 영화 관람하는 것을 뜻하는 ‘혼영’이나 혼자 여행하는 것을 뜻하는 ‘혼행’이라는 말이 쓰일 정도로 급변한데 따른 안타까운 마음에서 위로와 위안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책을 썼다. 혼자 여행할 때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유익함도 강조하고, 바로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도 부각시켰던 것이다. 사실 일상에 치여 살다보면 정작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것을 제대로 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등 부적응하는 사람들을 위해 위안을 전하고 그것이 결국은 자신이 위안을 받은 데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가끔은 혼자이고~ 』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음악치료사가 잠시 일상을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보낸 기록이다.

이에 비해 이번 책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는 음악치료사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 만났던 많은 환자들 속에서 진실이 무엇인가를 알아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사유 등을 묶어 쭉 매일 써내려간 글 중에 독자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내용들만 묶어서 책으로 냈다. 음악을 전공했던 저자의 꿈은 '음악 치료사'가 아니었다. 긴 시간을 연주자로 살아왔던 저자는 자신이 가장 빛나기 직전의 시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손의 이상을 느낀다. 그리고 그 병으로 인해 더는 연주자로 지낼 수 없었고, 생활을 위해 다른 일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직업이 음악치료사다. 저자는 음악을 버리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돈을 벌기 위해 음악치료사 일을 가볍게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꿈이 부셔졌다고 해서 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때론 깨졌지만 반짝이는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꿈을 발견할 수도 있다."

 


 

특히 내담자 스스로도 외면했던 그의 안부를 매일매일 물어보고, 삶의 무게에 눌려 굽은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그의 유일한 관객이 되기를 자처하는 배역이 저자가 삶의 연극 마당에서 맡은 임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연주하고, 이야기를 경청하며,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따스함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는 역할.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함으로써 사람에 관해 골몰하고 알아가야 하는 직업. 저자는 오늘도 “축축하게 젖은 마음들을 정성스레 꺼내 따스한 볕에 쬐기 위해”(p.14) 악기를 챙긴다.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화음을 얹히는 음악치료사의 모습은 미처 들리지 않았던 아름다운 ‘사람 소리’를 다시 우리 귓가에 들리게 한다.

“음악치료사가 되었어도 여전히 음악은 완성되지 못한 나의 언어”(p.13)라는 저자의 고백은 직업적인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의 발언은 아니다. 세션을 주도할 정도로 노련한 음악치료사임에도 저자의 태도에는 직업에 대한 유의함이 묻어있다. 특수 학교에서의 음악치료가 망했다며 자책하거나 ‘연대감’ 항목이 낮게 나온 자신의 심리 검사 결과를 마주하고 직업에 끼칠 영향을 걱정하는 등 음악치료사로서의 저자의 모습은 단단히 매듭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저자는 무수한 사람을 만났음에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어떤 언어를 썼는지 곱씹어 보고 반성”(p.152)하면서 자신의 직업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되돌아본다. 또 완성됨으로 닫혀있지 않기에 “가끔은 예상치 못한 내담자의 포옹”이 주는 “위로”(p.48)가 마음의 틈새로 들어오곤 한다.

 

 

특히 내담자 스스로도 외면했던 그의 안부를 매일매일 물어보고, 삶의 무게에 눌려 굽은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그의 유일한 관객이 되기를 자처하는 배역이 저자가 삶의 연극 마당에서 맡은 임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연주하고, 이야기를 경청하며,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따스함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는 역할.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함으로써 사람에 관해 골몰하고 알아가야 하는 직업. 저자는 오늘도 “축축하게 젖은 마음들을 정성스레 꺼내 따스한 볕에 쬐기 위해”(p.14) 악기를 챙긴다.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화음을 얹히는 음악치료사의 모습은 미처 들리지 않았던 아름다운 ‘사람 소리’를 다시 우리 귓가에 들리게 한다.

“음악치료사가 되었어도 여전히 음악은 완성되지 못한 나의 언어”(p.13)라는 저자의 고백은 직업적인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의 발언은 아니다. 세션을 주도할 정도로 노련한 음악치료사임에도 저자의 태도에는 직업에 대한 유의함이 묻어있다. 특수 학교에서의 음악치료가 망했다며 자책하거나 ‘연대감’ 항목이 낮게 나온 자신의 심리 검사 결과를 마주하고 직업에 끼칠 영향을 걱정하는 등 음악치료사로서의 저자의 모습은 단단히 매듭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저자는 무수한 사람을 만났음에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어떤 언어를 썼는지 곱씹어 보고 반성”(p.152)하면서 자신의 직업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되돌아본다. 또 완성됨으로 닫혀있지 않기에 “가끔은 예상치 못한 내담자의 포옹”이 주는 “위로”(p.48)가 마음의 틈새로 들어오곤 한다.

 


 

맞잡은 손의 떨림은 때론 쥐고 있는 손을 더욱 꽉 붙잡게 한다. 저자에게 “음악치료사를 정규직으로 쓰는 병원, 센터, 요양원, 학교는 손에 꼽을 정도”(p.220)인 환경은 지금, 이곳의 사람을 보다 소중히 여기는 계기가 된다. 저자는 세션이 끝나고 내담자들이 건네는 “잘리지 마라”는 말에서 직업인으로서 음악치료사의 면면을 매만져 본다. 음악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은, 재계약에 대한 걱정과 비정규직에 관한 서러움을 감각하면서도 저자는 “사람이 하는 일”(p.228)의 다정함을 믿으며 불안해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끔 직장 혹은 생활에 관한 불안으로 현재의 소중함을 놓치곤 한다. ‘지금’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저자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음악은 끝내기 위해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고, 당장의 음악에 충실히 귀 기울여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리라고 기대한다.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 「실패해도 괜찮아」를 통해 “한 시절의 도화지를 넘기며 그때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p.244~245)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힌다. 연주자로서 빛나던 시기로 돌아가려고도, 음악치료사로서 좌충우돌을 겪었던 시절을 부정하려고도 하지 않으려는 자세다. 그렇게 저자의 음악은,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은 완성되지 않은 채로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온전한 완성을 욕심내지 않고 과정을 사랑하면서, 과정 중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눈빛을 주고 손을 건네는 저자의 세션은 언제까지나 ‘진행 중’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이 아무렇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음악치료를 공부하러 온 사람들은 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자기 상처가 없는 사람들이 타인의 아픔을 알아채고 공감하기란 쉽지 않지. 교수님은 치료사 스스로가 음악치료로 인한 정화 단계가 없다면 진정한 치유자가 되기 어렵다고 했다. 맞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건 썩 내키지 않는다.(p.218) - 「자기가 다 치유받고 싶은 사람」 중에서

 


 

원래 자신이 꿈꿨던 직업은 아니지만 음악치료사로 발을 내딛고,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경륜을 쌓아 올렸지만 사람 만나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저자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 부적응 상태의 입원 환자, 또는 삶의 활력마저 잃은 내담자 등이 대부분이지만 성심을 다하여 음악치료사의 역할을 수행하면 그들이 다시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오늘도 음악치료사의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리라. 저자가 「폐쇄 병동으로의 첫 실습」을 적은 내용이 매우 공감이 가고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재인식할 수 있다. 저자는 이때의 저자의 심정을 상세히 글로 적어(일지에 남기는 일은 음악치료사의 일이다. 몸짓, 표정은 물론 기분 상태, 심지어는 어느 단어에 어떤 표정으로 반응하는가도 일지에 기록해야 한다) 잘 모르는 폐쇄병동 내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낡고 오래된 건물, 하얀 칠이 벗겨진 창문에는 견고해 보이는 창살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마치 여기서는 한 번 들어오면 아무도 나갈 수 없다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바랜 복도를 지나 막다른 곳, 굳게 닫힌 정문 앞에 네 명의 음악치료사가 멈춰 섰다. "철컹!" 열쇠를 가진 간호사가 철문의 자물쇠를 열었다. 드디어 문이 열린다. 이 시대에 자물쇠라니, 누군가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곳,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때 리러 선생님이 말했다. "괜찮아요. 앞만 보고 가요." 복도에 들어서자 환자복을 입은 흐릿한 사람들이 모두 정지한 채 우리 일행을 쳐다봤다. "외부인이 들어왔다!" 갑자기 냉동고 문을 연 것마냥 뒷목이 서늘해졌다. 발걸음이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약에 취해 눈빛이 공허한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시간이 느려지면서 모든 장면이 멈춰졌다."(p.54~55)

세션이 끝날 때쯤이면 그들의 눈빛에 조금은 생기가 돈다. 마른 입술을 떼어 노래를 부르고 나면, 내 입가에도 웃음기가 묻어있다. 나도 그들도 따뜻하게 데워져 있다. 내가 왜 음악치료를 할까 생각해 보면, 이때 느꼈던 짧은 시간 동안의 변화를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매개로 마음에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p.59)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는 자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했던가. 어른은 아이처럼 단순하지 않고, 경험에 따른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지나온 세월과 개인의 서사를 단 몇 시간 안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또 워낙 삶에 치이고 닳은 사람들이 오게 되니까, 한마디로 정답이 없다. 나는 거짓말을 서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거짓말이 어떤 신호인지 읽어야 했다.(p.67) - 「켈리의 거짓말」 중에서

 

악기들을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해서 사람들을 만물과 연결해 주는 것도 우리 음악치료사의 일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악기들이 나의 세션에서 소리를 내고 있다. 다양한 소리가 다양한 사연과 만날 때, 그 진동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때 기분이 묘하면서도 뿌듯하다. 내 악기 가방에는 동생 부부가 가나에서 보내준 아프리칸 쉐이커, 아슬라투아가 짤랑거리고 있다. 이제 이 악기는 누구의 마음을 두드릴까.(p.114) - 「음악치료사의 악기 수집기」 중에서

 

저자 : 구수정

 

음악과 글쓰기, 두 가지가 적절히 조율된 음악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손의 감각을 잃기 전까지 20년 넘게 연주자로 살아왔다. 갑자기 텅 빈 시간을 어떻게든 살아내고자 애쓰던 때 글을 쓰면서 따스한 위로를 받았다. 소외되고 외로운 것에 마음이 가고,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낸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아픈 인생을 음악으로 토닥이는 한편, 치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첫 책으로 치유 에세이 《가끔은 혼자이고 싶은 너에게》를 썼다. 어쩌다 보니 음악 교육자로 살고 있으며, 보다 본질에 다가가고 싶은 욕망에 음악 연구자로도 활동 중이다. 음악 안에서 인생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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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아웃 특서 청소년문학 32
하은경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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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에 대한 동경은 어릴 때 특히, 여자아이들은 한 번쯤 가져보는 듯하다. 즐겁게 보여서일지도 모른다. 독자는 남자아이라서 전쟁놀이나 자동차 장난감 등에 더 매력을 느끼고 만화책도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을 주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동작은 예술로서의 가치가 엄청나게 높은 것은 확실하지만 직업으로서의 발레리나는 무척 힘든 것 같다. 우리가 예상하기로는 스포츠 선수들처럼 몸을 단련시키고 몸무게만 가볍게 유지한다면 누구나 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러나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공개되었을 때 놀라고 가슴이 저리는 존경심도 들었다. 유명한 발레리나가 되는 길이 얼마나 험한 길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발레리나가 무대에서 하는 어렵지만 가장 많이 하는 동작 중 하나가 '발끝으로 서기'이다. 토 슈즈가 아무리 좋아도 힘이 송곳처럼 곧추 세운 발가락 한 군데로 모일 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강수진의 발은 고통 그 자체를 드러내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독자에게는 했다.

이 소설 『턴아웃』도 발레 용어인 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발레 공연은 서너 번 갔지만 동작을 보고 어떤 동작인지 나타내는 용어까지는 몰랐다. 무용사전에는 '턴 아웃(turn out)'이 발과 다리를 엉덩이 관절(hip joint)에서부터 바깥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을 일컫는다고 풀이돼 있다. 미국 발레의 창시자 링컨 커스타인(Lincoln Kirstein)은 턴 아웃 동작이 발레의 가독성(legibility)을 더욱 높여주는 결정적인 특징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소설은 유전자 조작과 나노칩 시술이 성행하는 시대, 가까운 미래를 배경 시점으로 설정하고 있다. 발레리나의 과학 시술(?)을 금지하는 서울시립발레단의 제나, 제나와 절친한 사이였지만 재능의 차이를 느끼고 열등감과 질투에 빠진 소율이 주인공들이다. 두 사람이 꿈을 향해 각자 흔들리며 나아가던 어느 날, 죽은 수석 무용수 송라희가 나노칩 시술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의 핸드폰에서 의문의 파일이 발견된다. 이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언급되는 발레리나의 고통스러운 동작은 소설과 직간접적으로 이용되지만 주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청소년이 직접 뽑는 비룡소 제2회 틴 스토리킹 상을 수상하면서 전국 청소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하은경 작가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성장소설이다.

턴 아웃 동작 때의 고통, 그리고 무대에 서기까지의 발레리나들의 눈물 겨운 훈련과 노력 등이 군데군데 등장하지만 근미래를 다루면서 유전자 조작과 나노칩 시술이 성행하는 근미래 배경과 어울려 SF소설로 분류되는 것 같다. 어쩌면 작가의 당초 계획에서 벗어나지 않았을까 독자로서 추측해본다. 예술인들이 빚어내는 신선한 세계관 속 아름다운 예술작품 속에 경쟁의식과 첨단 기술이 들어가며 첨단 기술에 초점이 맞춰졌다기보다 과열된 경쟁 의식에서 비롯된 비극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사건들도 펼쳐진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뛰어난 친구에게 느끼는 열등감 등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가까운 미래에 맞닥뜨릴 과학시술(유전자 조작, 나노칩 시술 등)을 등장시킨 것은 주제를 흩어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진정한 예술에 대한 신념과 같은 생각할거리를 독자들에게 던지는 작품이라고 출판사 측 평을 보면 예술은 첨단 기술이 적어도 당분간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인간의 극한의 노력으로 얻어낸 산물이라는 점에서 첨단 기술이 끼어드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특히 인간의 고도의 정신 작업의 산물인 예술에 기계가 끼어든다면 그야말로 예술은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나친 경쟁 의식도 예술을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이겠지만, 인간 작업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본능에 가까운 경쟁의식을 없지는 않을 터다. 다만 선의의 경쟁을 유도해야 하는 것이지 승부를 해서 줄세우기 식의 성적을 매긴다면 이 역시 예술의 획일성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 할 사항이다. 예술에 '경쟁'이 끼어든다면 그것은 이제 예술보다는 기능으로 흐르기 쉽다는 사실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이 소설에서 조금 더 부각시켜 주기를 마음에서다. 저자가 이를 의식해서 조금 더 스토리를 열등감, 우월감, 경쟁의 승자에 대한 스포트 라이트를 비추는 관행부터 깨야 할 듯하다.

특히 대부분의 유럽 발레단이 발레리나의 유전자 조작이나 나노칩 시술을 허용하지만 한국은 이를 철저히 금지하는 얼마 남지 않은 나라 중 하나라는 설정은 예술 본연의 자세를 견지한다는 의미로 풀이되지 않은가. 그걸 마치 기계에 맡기듯이 방치한 유럽 발레단이 그만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소설 속 서울시립발레단이 유럽발레단에 비해 호평을 받는 부분도 조금 더 부각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시립발레단의 ‘제나’는 과학적 시술 없이도 그 어려운 턴아웃 동작마저 완벽하게 해내는, 발레리나로서의 재능을 타고난 아이다. 천문학자인 아빠처럼 광활하고 먼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인 엄마 ‘수연’의 집착과 밀착 코칭을 받으며 발레리나로서 날개를 펼쳐간다. 유전자 조작과 나노칩 시술이 성행하는 시대, 발레리나의 유전자 조작이나 나노칩 시술을 허용하지 않은 한국의 서울시립발레단이 발레리나 제나는 이를 철저히 금지하는 얼마 남지 않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런 서울시립발레단의 ‘제나’는 과학적 시술 없이도 그 어려운 턴아웃 동작마저 완벽하게 해내는, 발레리나로서의 재능을 타고난 아이다. 천문학자인 아빠처럼 광활하고 먼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인 엄마 ‘수연’의 집착과 밀착 코칭을 받으며 발레리나로서 날개를 펼쳐간다.

너무나 완벽한 제나의 능력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같은 발레단의 단원 ‘소율’은 어느 날 이상한 일을 겪게 된다. 같은 발레단의 ‘라희’가 죽기 얼마 전, 자신에게 의문의 파일 하나를 전달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제나의 메디컬테스트 기록이었다. 소율은 제나의 메디컬테스트 기록을 생명과학 연구원인 사촌 오빠에게 보내며 해독을 부탁한다. 〈지젤〉 오디션에서 주연 지젤 역을 제나에게 빼앗긴 소율은 곧 놀라운 사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제나는 숙련된 발레리나도 완벽하게 해내기 어려운 턴아웃을 흠잡을 데 없이 해내는 천재 발레리나지만, 마음속으로는 엄마의 강요로 선택한 발레가 아닌 별과 우주를 동경하고 있다. 제나와 달리 오직 발레만을 사랑하지만 타고난 재능과 환경의 차이로 영원히 2인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열등감에 괴로워하는 소율.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결국 똑같이 진심으로 원하는 꿈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십대들이이다. 두 사람은 부모에게 강요당한 꿈이 아닌, 남을 이기기 위한 꿈이 아닌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길을 찾아나간다. 이 여정 끝에는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과연 제나는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소율은 ‘제나를 이기기 위한’ 발레가 아닌,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발레를 향해 갈 수 있을까? 『턴아웃』은 하루하루 자신의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 또 자신이 누구인지 답을 찾아나가는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마치 발끝으로 땅을 딛고 높이 뛰어오르는 발레리나처럼.

"〈백조의 호수〉 3막이다. 제나는 숨을 크게 내쉬고 나서 무대로 뛰어들어갔다. 흑조 오딜이 왕자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장면이다. 홀릴 듯한 미소를 지으라고 서 단장이 수십 번 가까이 다그쳤던 장면이었다. 토슈즈를 신은 발끝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이물질이 들어 있는 것처럼 걸리적거린다.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푸에테 동작을 시작했다. 한쪽 다리로 중심을 잡은 채 다른 쪽 다리를 놀리며 서른두 번의 회전을 시도하는 순간이었다. 발끝이 아팠다. 유리 조각이 순식간에 엄지발가락 한 마디를 관통하더니 두 번째 마디를 푹 쑤셨다. 아프다……. 아프다……. 너무 아파 쓰러질 것 같다."(p.7~8)

 


 

저자는 「창작노트」에서 "이 글은 가까운 미래 청소년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전자 조작 시술이 만연한 사회, 예술에 대한 신념이 다른 소녀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할까. 문제는 최고의 발레리나 주인공 때문에 글을 쓰는 내내 고민에 빠졌다. 과학 시술로 이미 최고 발레리나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데, 굳이 다른 꿈을 찾으려고 할까? 그러나 발레리나의 꿈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나 타인의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꿈이라면, 그건 가짜일지도 모른다고. 과학의 힘을 빌어 맞춤형 아기가 태어나는 현실은 솔직히 좀 섬뜩하다. 그 맞춤형 아기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창조주를 원망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건 큰 축복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꼭 밀고 나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때로는 자신의 꿈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에 좌절할 때도 있겠지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행복한 자신과 마주할 거라고 믿는다."(p.230)

 

저자 : 하은경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다. 추리문학의 세계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고 뚜벅뚜벅 성실하게 걷고 있다. 장편동화 『안녕, 스퐁나무』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받았으며, 『추리왕 강세리』, 『마지막 책을 가진 아이』, 『백산의 책』, 『나는 조선의 가수』, 『나리초등학교 스캔들』, 『아버지를 구해야 해』, 『공주의 배냇저고리』(공저), 『달려라, 바퀴』(공저) 등을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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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하는 나날들 - 조현병에 맞서 마음의 현을 맞추는 어느 소설가의 기록
에즈메이 웨이준 왕 지음, 이유진 옮김 / 북트리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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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현병 환자 당사자가 자신에게 맞는 진단을 받기까지의 여정과 정신의학의 바이블이라 일컫는 DSM의 역할과 한계를 정신질환자의 시선에서 명확히 짚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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