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스펙트럼 안전가옥 FIC-PICK 5
배예람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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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성이 창작하고, 여성 인물이 주인공인 것에 더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소설 속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에도 주목한다.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인물과 그들이 연대하며 나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기존 여성 서사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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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스펙트럼 안전가옥 FIC-PICK 5
배예람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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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단편소설을 읽었다. 단편소설은 70~80년대가 전성시대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이다. 바쁘고 돈이 넉넉지 않아 독자들이 장편보다는 단편에 더 관심이 높았나 보다. 옛날에는 장편은 신문 연재로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장편소설은 신문사 주도로 연재돼 실었던 것 같다. 소설 한 편을 한 권에 내기에는 부담이 많은 데다 독자들도 사 읽기가 만만치 않았을 때라면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나라도 국민도 가난한 시절 책을 사보기 어려워서 신문 연재로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광수의 『무정』이나 심훈의 『상록수』도 신문 연재소설이었다가 연재가 끝난 후 인기가 높아 책으로 펴냈다고 들었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 시절에는 하루종일 일터에 시달리다 읽을 것을 갈구하는 독자들에게 장편소설은 여전히 사서 읽기가 부담스러웠던 같다고 생각도 해본다. 요즘 세대가 들으면 뭔 말도 안 되는 얘기냐 싶을 거다. 그때는 신문사에서도 신춘문예에 단편만 뽑았지 중·장편은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연재 소설이 신문에서 사라진 지 수십 년이 넘었으니(정확히는 모르지만) 요즘 세대로서는 상상하기 힘들긴 하겠다 싶다.

80~90년대 여성 해방의 시대로 일컬어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소설이란 장르 안에서 여성 서사는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을까? 지금은 여성 해방의 시대를 지나 여성 우월의 페미니즘 시대 아닌가. 실제로 사회 여러 부문에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두각을 나타내기도 하니 지금까지 우월한 위치에서 여성을 대하던 남성들이 할 말이 없긴 할 터다. 이 책 『우먼 인 스펙트럼』에서는 여성이 창작하고, 여성 인물이 주인공인 것에 더해, 우리는 소설 속 여성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에도 주목한다. 여자의 적(敵)은 여자라는 시각도 틀렸지만, 동시에 여성이라는 존재나 여성들간의 관계가 마냥 아름답고 완전하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보여줄 때가 됐다는 것이 지금 이 시대 여성들의 중론이다.

 


 

실제 여자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동경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그럼에도 지지하며 살아가는 복합적인 존재라고 이 책은 형상화해 보여 준다. 출판사 편집자의 말이지만 이는 남성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출판사 〈안전가옥〉의 옴니버스 픽션 시리즈 FIC-PICK의 다섯 번째 작품집이다. 이 소설작품들은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인물과 그들의 다양한 관계 맺기를 보여주며 기존 여성 서사의 스펙트럼을 넓힌다. 매력적인 작품세계로 한국 장르문학계의 든든한 축이 되고 있는 배예람, 이수현, 아밀, 김수륜, 진산 작가가 각기 다른 여성 인물의 이야기를 각자의 스타일로 깊이 있게 그려 냈다. 「수직의 사랑」, 「여우 구슬은 없어」, 「하나뿐인 춤」, 「누가 진짜 언니일까?」, 「협탐: 좁은 길의 꽃」 다섯 작품이다. 여러 장르의 토대 위에서 여성간 사랑, 우정, 연대를 탐색한다.

이 시리즈를 기획한 출판사 측에 따르면 미국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고안한 ‘벡델 테스트’ 결과 ‘첫째,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두 사람이 나올 것’, ‘둘째, 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 ‘셋째, 해당 대화 소재나 주제가 남자 캐릭터에 관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세 가지 항목으로 성 평등 관점에서 영화를 평가한다. 혹시 소설에도 이런 테스트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생각해본 결과의 소설 작품이 이 책이다. 소설집 『우먼 인 스펙트럼』에는 SF, 무협, 고딕스릴러, 판타지, 디스토피아라는 다섯 가지 장르를 통해 다섯 가지 여성-퀴어 이야기를 묶어낸 앤솔로지 소설이 한 권에 들어 있다. 소설이란 문학 장르는 우리 삶의 모든 모습이 담겨 있다. 물론 예술이란 것 자체가 우리의 삶이 가장 기본적인 주제이다. 예술의 시작도 자연과 인간의 삶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하지 않은가. 우리는 남녀를 구별하기 이전부터 인간이란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왔다.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없는 여성 서사를 읽는 재미는 언제나 남다르고 특별하다고 말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자아와 타인의 관계라면 자신 이외에는 타인이자 적이다. 인간 관계는 타인을 적이 아닌 내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그래서 변증법적 이론에서 보자면 우리의 삶은 자아와 비아의 투쟁의 모습이다. 이를 글로 표현하는 소설은 이런 모습을 반영하는 하나의 예술적 틀로서 존재하고 발전해 왔다. 이런 관점에서 첫 번째 작품 배예람의 단편 「수직의 사랑」은 환경오염이 극심한 가까운 미래의 세계를 배경으로, 상층민과 하층민으로 나뉜 채 혁명단과 인질로 만나게 되는 두 여성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야기의 중반부를 지나며 마침내 서로를 알아보고 기억해 낸 두 여성은 기쁨과 설렘, 그리움을 뒤로하고 당면한 죽음의 위기를 함께 극복해 간다.

오염된 땅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독가스로 인해 땅이 더는 안전한 장소가 아니다. 지금 우리 지구의 환경이 보여주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다.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해 설정한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환경 오염 상태로 언제 지구 생활은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태를 추정해 들어가면 인간은 물론 생물이 살기 어려운 지구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상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환경에에 사람들은 땅을 떠나 건물 안으로 도망친다. 많은 부를 가진 사람들이 오염된 대지를 피해 건물 위층에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부에 따라 사는 층이 구분된다. 최하층 시민인 ‘하영’은 유일한 이동 수단인 계단을 오르내리며 배달 일로 먹고 산다. 성인이 된 하영은 ‘혁명단’에 들어가게 되고, 전복을 꿈꾸며 최상층에 사는 국회의원의 딸을 납치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런데, 인질인 ‘상미’와 꼭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만 같다.

 


 

이수현의 단편 「여우 구슬은 없어」는 요괴 사냥꾼 ‘이선’과 요괴 ‘은화’의 기이한 인연을 보여준다. 세 여자의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랑, 집착, 배신! 이 삼각관계는 과연 어떻게 끝날지? 관심을 끈다. 요괴 사냥꾼과 연인인 ‘옌’과 함께 카멜레온 요괴를 처치하느라 지하에서 꼬박 일주일을 보내고 올라온 날, “요괴도 생명입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대형 전광판에 떠 있는 첫사랑 ‘여은화’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은화를 보러 간 ‘이선’은 광신도 테리리스트로부터 ‘은화’를 구해내고, 그 일을 계기로 경호 일까지 맡게 된다. 연인을 배신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이선’에게 ‘옌’은 ‘여은화’가 요괴라는 소문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처럼 생긴 요괴가 왜 있을까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은화가 휘적휘적 내젓는 손이 언뜻 반투명해 보였다.

“전설에는 요괴가 도를 닦으면 인간으로 변한다거나, 인간이 되고 싶어서 별짓을 다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지. 뭐라더라, 구미호였나?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람 간을 빼 먹는다고?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달아 놓고 그 능력으로 인간이 되려 한다고?”

소리 내어 웃지 않아도, 은화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세상 다시없이 얼빠진 소리라는 경멸이 전해졌다.

“인간이 모든 생물 중에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야 그런 이야기를 당연히 받아들였을지 모르지. 하지만 너희는 현대인이니 한번 생각해 보렴. 왜 굳이 다른 존재가 인간이 되고 싶어 할까.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면.”(p.121)

 


 

아밀의 단편 「하나뿐인 춤」은 졸업 무도회를 앞두고 남자 춤을 추는 걸 거부하는 카릴을 통해 성정체성의 혼란을 다룬다. 지구인이 아닌 다른 종족의 성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성적 고정관념을 뒤집어 보는 이 퀴어소설은 여성성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질문한다. 모든 라뮈스 성인 아이들은 무성(無性)의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나, 함께 사고하고, 행동하고, 성장하며 자란다. 그러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유전 형질이 달라지면서 여성과 남성으로 나뉜다. 열다섯 살부터 이미 감관이 퇴화하며 여성기가 생겨난 쌍둥이 동기 릴카와 다르게,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카릴은 남자로 분화하지 못했다. 남자 파트 춤이 서툴러서 성인식이나 마찬가지인 졸업 무도회에서 함께 춤을 출 파트너를 찾지 못한 카릴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여자 파트 춤을 연습하는데…… 카릴은 졸업 무도회를 잘 치를 수 있을까?

 

"남성용 정장을 입고 여자 춤을 추자. 처음 떠올렸던 아이디어는 그것이었다. 의상과 춤의 성별을 일부러 정반대로 해서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흩트리려는 의도였다. 원래는 드레스를 입고 남자 춤을 춰 줄 파트너도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졸업 무도회 무대에서 그런 과감한 시도를 해 줄 파트너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고민하던 카릴은 ‘그렇다면 파트너 없이 하지 뭐’라고 결정했고, 그러자 모든 것이 오히려 더 명쾌해졌다. 왜냐하면 노랫말 속에서 화자의 연인은 곁에 없었으니까. 그러니 카릴의 곁에 파트너가 없는 것은 노래의 의미에 고스란히 부합했다. 카릴은 드레스를 부여잡고 춤을 추며 연인의 빈자리를 그리워하고, 동시에 음악으로 말미암아 마치 연인과 함께 있는 것처럼 춤을 췄다. 그 역설을 춤으로 구현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연인과의 춤."(p.188)

 


 

김수륜의 단편 「누가 진짜 언니일까?」는 엄마의 재혼으로 새아버지의 집에서 살게 되면서 기이한 사건에 휘말리 '나' 의 이야기다. 새로운 가족인 의붓언니를 기대하며 집에 들어간 ‘나’는 서로 상대를 공격하는 언니들 사이에서 무서운 진실에 근접해간다. 진산의 단편 「협탐: 좁은 길의 꽃」은 여성의 연대가 무엇보다 빛나는 소설이다. 사건을 의뢰받은 탐정 ‘나’와 사건을 의뢰한 ‘무림천후’의 엇갈린 인연을 통해, 우정 그 이상의 감정을 유쾌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그려 낸다.

다시 출판사 측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모두에게 완벽한 이야기는 없듯이 『우먼 인 스펙트럼』 속 다섯 편의 소설도 누군가에겐 다소 아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이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퀴어들이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 책은 당당히 하고 있다. 당장은 부족할지 몰라도,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걸음으로서 이 이야기들은 특별하고 가치 있다. 누군가는 소설을 쓰는 행위로써, 또 누군가는 소설을 읽는 행위로써, 우리에게 필요한 그런 세상을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걸 『우먼 인 스펙트럼』이 보여준다고 믿는다."

안전가옥 이은진 스토리 PD는 책의 가장 뒷 부분에 「프로듀서의 말」에서 작가들의 개성과 출판사의 기획 의도가 잘 조화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있었다고 고백한다. 혹시 모를 부조화로 인해 출판이 무산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조바심에서 작가들과의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주인공이 소수자를 상징하는 은유로서만 존재하지는 않도록 하자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또 홀로 고민하는 주인공이 아닌, 행동하는 주인공이길 바랐다고도 밝힌다. 퀴어성을 꼭 진지하고 무거운 현실 속에서만 다뤄야 할가? 이 한 가지 의문에 답할 수 있기 위해 이 작품집은 기획됐고, 또 짧은 분량 안에서 작가들이 퀴어성을 주제로 하는 주제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이 작품집이 출판돼 나오면서 기우였다는 점을 털어놓는다.

 


 

저자 : 배예람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즐겨 쓴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내일 무엇을 쓸지 상상만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지독한 게으름뱅이. 게으름을 이겨 내고 한 줄이라도 쓰는 것이 매일매일의 목표. 2019년 안전가옥 앤솔로지 『대스타』에 수록된 「스타 이즈 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안온북스 ‘내러티브온’ 소설 편 『왜가리 클럽』에 수록된 「인어의 시간」을, 안전가옥 앤솔로지 『호러』에 수록된 「엔조이 시티전(傳)」을 썼다. 오래오래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저자 : 이수현

작가이자 번역가. 인류학을 공부했고, 주로 SF와 판타지 등의 상상 문학을 영어에서 한국어로 옮기는 일을 많이 했다. 소설가로서는 《환상 문학 단편선》, 《이웃집 슈퍼히어로》,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등의 앤솔로지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무속과 코스믹호러를 결합한 《외계 신장》, 민속 판타지 《서울에 수호신이 있었을 때》를 출간했다.

 

저자 : 김지현(아밀)

소설가이자 번역가, 에세이스트. ‘아밀’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김지현’이라는 본명으로 영미문학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단편 소설 「반드시 만화가만을 원해라」로 대산청소년문학상 동상을 수상했으며, 단편 소설 「로드킬」로 2018 SF 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우수상을, 중편 소설 「라비」로 2020 SF 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로드킬』, 산문집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등을 썼으며, 『그날 저녁의 불편함』, 『끝내주는 괴물들』, 『조반니의 방』, 『흉가』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저자 : 김수륜

슈퍼히어로 앤솔로지 《이웃집 슈퍼히어로》, 중단편선 《누나 노릇》, 환상문학총서 《거울 아니었던들》, 호러 앤솔로지 《괴이한 거울》에 작품을 수록했다. 경기도 시골에서 고양이들과 살며 낮에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쓴다.

 

저자 : 진산

아득한 옛적 1994년 하이텔 무림동 공모전 단편 무협 〈청산녹수〉로 무협소설 쓰기 시작. 이후 장편 무협과 로맨스, 판타지 및 게임과 생활 관련 에세이 등등을 써 왔다. 통신 연재, 대여점, 인터넷 소설, 웹소설 등의 시대를 여러 장르의 전업 작가로 쭉 살아온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 다양한 장르를 써 왔기 때문에 정체가 모호할 수도 있으나 장르를 벗어난 글을 쓰는 것이 목적은 아니며 장르 규범이라는 틀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찾는 걸 좋아한다. 이번 앤솔로지 역시 그런 마음으로 참여한 작업.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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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슬퍼할 것 - 그만 잊으라는 말 대신 꼭 듣고 싶은 한마디
하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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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의 뇌는 이성적 판단을 하는 부분과 감정을 느끼는 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살아가면서 희로애락애오욕이라는 '감정'을 모두 느끼며 살게 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질과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때문에 즐겁고 기쁜 감정이 많은 사람은 행복할 것이고, 반대로 슬프거나 분노를 많이 느끼는 삶은 불행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의 얼굴이 다르듯 뇌 안의 '감정뇌'도 똑같은 상황을 보고 경험하는 사람에 따라 감정의 폭이 다를 것이다. 그렇다고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지는 않기에 굳이 감정의 크기를 따질 필요는 없을 터다. 그런데도 어떤 일을 닥쳤을 때 우리는 가장 큰 슬픔을 느끼느냐는 여론 조사 결과가 한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이 설문조사는 슬픔을 느낄 때 인간은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어느 학자의 논문에 따른 것이라고 미리 밝히고 조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단연 압도적 1위는 '배우자의 죽음'이었다.

이는 사람의 삶 중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는 일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듯하다. 뿐만 아니라 조사결과 2, 3위 역시 가족이었다. 자식의 죽음과 부모님의 죽음이 각각 뒤를 이었다. 굳이 조사하지 않더라도 이 결과는 똑같이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좀더 깊게 생각해보면 배우자의 죽음보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더 슬퍼하고 주위 사람마저 더 공감과 위로가 많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독자 입장에서 직접 한 번도 느껴보지 맞이하지 못한 상황이라 그 슬픔의 크기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막연히 듣고, 책에서 읽은 것만으로는 슬픔의 크기를 상상하기에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배우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위로하는 법이 서투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경우 소리내어 울거나 그냥 앉아만 있어도 가서 위로하고 슬픔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유교를 통해 관습처럼 이어져온 부모님에 대한 '효'에 관한 문제여서 우리들에게 대체로 익숙하다. 그래서 부모님의 죽음으로 가장 슬퍼할 사람은 당연히 자녀일 것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배우자의 죽음에 맞닥뜨린 당사자가 엄청난 슬픔과 스트레스 상태에 있겠지만 어떻게 위로하고 함께 슬퍼해야 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만일 친구의 죽음에 부닥친다 해도 그 배우자를 위로하는 것에 익숙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배우자의 죽음이든 부모의 죽음이든 슬픔의 크기에 관계 없이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충격이고, 슬픔인 것은 분명하다. 누가 죽어야 가장 크게 우느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 『충분히 슬퍼할 것』은 저자 입장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있다. 너무 큰일이라 슬퍼하기는커녕 슬픈 마음인지조차 자신이 못 느낄 정도로 충격적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죽음을 부여잡고 언제까지나 슬픔에 잠겨 있는 것도 부모에 대한 도리는 아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유교적 관습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대처하는 방법에 익숙하기 때문에 조문을 가거나 위로의 말을 전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더 수월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 이유가 슬픔의 크기가 얼마나 컸기에 그럴까 하는 점에서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당사자는 위로가 될 것이다. 이 책 『충분히 슬퍼할 것』은 표현하지 못한 슬픔을 가슴 한편에 묻어둔 채 살아가는 당사자가 그것을 지켜본 우리에게 먼저 겪은 이가 전하는 깊은 공감과 따스한 위로가 담겨 있는 책이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단숨에 입소문을 타며 독립출판 독자들의 호평이 쏟아졌던 그림에세이가 올컬러 버전으로 정식 출간된 것이다.

 


 

이 책은 슬픔을 추스르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희망을 선사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상실 이후의 세계를 그림으로써 슬픔을 응축시키고 용해한 후 독자들에게 미리 삶의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쓰인 책이다. 책 속의 내용이 단편적인 에피소드이고 내용도 서로 다르지만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 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말없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그림의 행동이나 제스처만 보아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독자들에게는 기억이 있다. 조금씩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머니의 자식 사랑, 희생적인 삶이 없었다면 자신의 존재마저 없었을 터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지탱해 주던 존재를 잃는다는 건, 두 발을 딛고 서 있던 땅이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듯한 경험과도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평소의 나다움은 사라지고 자책과 후회 속에 상처를 곱씹는 동안 일상은 서서히 폐허가 된다고도 말한다.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한 더는 이전의 삶을 되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비탄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에세이는 떠나간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삶을 다시 살아가기 위해 충분히 슬퍼하기로 한 사람의 이야기다. 저자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 안겨 준 크나큰 슬픔을 소화해 내고, 천천히 일상을 회복할 힘을 기르고, 마침내 오롯이 홀로서기까지의 과정을 세밀히 펼쳐 보인다. 감정을 절제한 담담한 문체와 귀여운 그림체가 이야기를 끌어가기 때문에 어느 순간 몰입해 읽게 된다. 그러다 문득, 지금 내 삶에서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지 떠올리게 만든다. 세상에 하나뿐인 ‘의미 있는 타인’을 잃고 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저자에 따르면 어떤 종류의 상실을 겪었든,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갖지 못하면 삶의 다음 단계를 밟아 나가기 어렵다. 가슴속 상처를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한 이에게 그만 잊으라고, 바쁘게 살다 보면 괜찮아진다고, 섣불리 재촉하는 말을 해선 안 되는 이유다. 저자는 아무에게나 쉽게 꺼낼 수 없었던 내밀한 이야기들을 그림에세이로 엮은 이 책을 세상에 내보이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밝힌다. 현실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상실의 아픔을 명징하게 마주하며, 애도의 끝에서 무르익은 생각들을 바탕으로 쓴 책이기에 “충분히 슬퍼한 후 다시 살아가자”는 다짐이 묵직한 감동을 준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싶은 독자,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이별을 감당해야 했던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아파할 수밖에 없었던 독자,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독자, 그들 곁에서 위로할 방법을 찾는 독자,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 필요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차분히 어루만지는 책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실의 아픔과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을 딛고 일어선 용기와 삶에 대한 희망을 되찾기까지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책에 따르면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서 엄마가 사라졌다. 그날 이후 시간이 멈춰 버렸다. 슬픔에 표류한 채 그냥 흘러가는 삶이었다. 엄마는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법, 인생을 즐기는 법 등 살아나가면서 필요한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지만, 슬픔을 마주하는 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처음 겪는 일이기에 그 무게를 어떻게 감당하고 언제까지 슬퍼해도 될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오랜 시간 방황했다. 바쁘게 살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믿고 한동안 무심히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애써 억누른 감정은 이따금 불쑥 튀어나와 또다시 일상을 뒤집어놓곤 했다.

저자는 그러다 문득, 더 늦기 전에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사소하고 행복하고 괴로웠던 순간까지 모두 다, 글로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다독였다고 고백한다. 그러는 동안 슬픔은 서서히 물러나고 아름다웠던 지난날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혼자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다시 일어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만큼, 온몸으로 부딪히며 겪어 낸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답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는 게 저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떠나간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내 인생을 살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10년에 걸친 긴 애도의 끝에서 갈무리한 그림에세이 『충분히 슬퍼할 것』은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은 이 책의 성격에 대해 깔끔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떠나보내며 살아간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도 있는 법.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다양한 애도 반응을 긍정하고, 상실의 슬픔을 다스릴 줄 아는 것은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내기 위한 치유와 성장의 핵심이다. 이 책은 표현하지 못한 슬픔을 가슴속에 묻어둔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상처를 마주하고 단계적 애도를 계속해 나갈 때 조금씩 단단해지는 마음의 변화를 보여 준다. 사랑받았던 기억은 절망의 순간에도 자신을 지켜 내는 보호막이 되고, 심리상담가였던 엄마가 생전에 들려준 위로의 말들은 혼자 살아나가면서 힘들 때마다 앞길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된다. 감정의 물꼬가 터지도록 슬픔을 밖으로 쏟아 내며 표현하는 법,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며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마음의 구멍을 채워 줄 소소한 행복을 새롭게 발견해 가는 과정 등 일상을 회복해 나가는 데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다양한 방법들도 이 책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잠깐 같이 바람 쐬고 올래?”

“크게 소리 지르면 속이 후련해져.”

“내일부터 다시 힘내는 거야.”

내가 기운 없어 보이는 날, 엄마가 해 주던 말들. 그렇게 당신이 사랑했던 나를 사랑해 보기로 했다.

 


 

이 책의 출간에 부쳐 세 분의 작가들이 추천사를 썼다. 책 출간은 아마도 작가들의 공감을 사고 또 다시 삶에의 용기를 갖고 일어설 때까지의 과정에도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그들의 추천사 중 일부를 발췌해 독자들에게 미리 알려주는 일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우리는 아직 슬픔을 제대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남 앞에서 슬픔을 표현하면 뭔가 큰일이라도 날 듯이 두려워하는 우리들에게, 이 눈물겨운 책은 수줍게 속삭인다. 더 많이 슬퍼해도 괜찮아요. 더 오래, 더 깊이 슬퍼해도 괜찮습니다. 슬픔은 마침내 당신을 더욱 당신답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표현하지 못한 슬픔이 우리 마음을 안으로부터 찌르기 전에 글과 그림과 노래와 춤과 요리, 그 모든 적극적인 표현의 몸짓으로 슬픔을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의 심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침내 ‘참 나’와 만나게 될 테니까요. 슬픔을 제대로 표현할수록, 우리는 그 사람은 떠나도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까요. 슬픔을 잘 느끼는 사람일수록, 그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더 깊고 아름다운 사랑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니까요." - 정여울(『문학이 필요한 시간』,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저자)

 

"책장을 넘기는 동안, 한 슬픈 사람의 오래달리기를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더러 그가 넘어질 때면 숨죽여 응원하는 마음이 되곤 했는데 이상하지, 그러면서도 걱정은 되지 않았다. 사랑받은 기억이 끝내 그를 일으킬 것이므로. 어떤 사랑 앞에서 우리는 행복해질 의무가 있다. 그 사랑을 헛되이 만들지 않기 위해. 이것은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용기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먼저 슬펐던 사람이 다음에 올 슬픈 사람에게 남기는 긴 엽서이기도 하다. 충분히 슬퍼할 것. 그리고 다시 살아갈 것. 이 삶은 이제 떠난 사람이 남긴 사랑의 증명이기도 하므로." - 김신지(『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평일도 인생이니까』 저자)

 


 

"양념이 겉도는 깍두기, 오래된 노래방 녹음테이프, 토끼풀 반지 같은 소소한 것을 통해 저자는 엄마와 함께한 순간들을 구석구석 추억한다.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그려진 모녀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들을 미소 지으며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눈가가 시큰해진다. 그는 혼자 남겨졌다. 큰 슬픔 앞에 용기 있게 마주 선 그가 자기 자신과 만나고,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게 된다. 혼자 힘으로 어려울 때는 주변에서 건네는 손길을 붙잡으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감동을 준다. 슬픔을 딛고 비슷한 슬픔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은 따뜻한 공감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충분히 슬퍼할 것”이라고 소리 내어 말해 주어서, 애도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어서 고맙다. 슬픔에 표류하지 않고 당차게 헤엄쳐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안도의 숨을 내쉴 것 같다. 넘어졌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서는 힘이기에. 간절히 그리워하는 사람은 결국 내 곁에 있는 것이기에." - 엄유진(『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 『외계에서 온 펀자이씨』 저자)

 

저자 : 하리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어디서든 상상의 세계로 떠나곤 했다. 사회에 나와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내가 좋아서 그리던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현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다람쥐 캐릭터가 등장하는 일상툰을 연재하고 있다. 이 책을 마무리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된다. 오래 방황하는 동안 펜을 들고 그리다, 멈추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미 구멍 난 가슴에는 어떤 위로도 와닿지 않겠지만, 이런 길도 있다고 전하고 싶다. 그때의 나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냥 흘러가고 있을 누군가의 삶에 이 이야기가 닿았으면 한다.

인스타그램 @ha_ri_ha_ri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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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네 미국집 - 평범한 한국 엄마의 미국집 인테리어&살림법
스마일 엘리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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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은 미국 문화에 대해 대체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다. 우리와 정치·경제 체제가 같고, 대한민국 정부와는 일제 패망에 따른 해방부터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민주주의를 함께 지키고 유지하는 데 협력자 관계이기도 하다. 특히 군사적으로는 한국전쟁 때는 미군이 남한에 편에서 북한 침략에 맞서 싸웠기에 여러 가지 면에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6·25 이후에는 우리나라는 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고, 또 우리가 살아갈 길이기도 했다. 유무형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밑거름을 해주었던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도 자유와 민주를 지향하는 미국의 정신을 배웠고 심지어는 그들의 하층 문화도 우리나라에서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의 문화는 배울 점이 많았다. 그들이 내세우는 '개척정신'과 '청렴결백 추구'의 청교도 정신은 이제 기지개를 켜는 대한민국의 본보기가 될 수 있었다. 앞선 과학기술이나 학문 등은 미국을 따라가기 바빴다.

독자도 학교 다닐 때 다른 사람과 똑같이 배웠기에 미국에 대한 이미지는 좋았고, 선진 문화의 대표격으로 생각했다. 우리와는 다른 큰 집, 큰 땅, 큰 자동차 등은 지형적 영향이기에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세계 최부국이라는 이미지 속에서 청렴·결백의 정신은 본받을 만하다고 특별히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의 겉모습과 우리가 우리 나라 안에서 보고 배우고 생각했던 이미지는 조금씩 부정적 이미지가 가해지기 시작한 것은 한참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이 책 『엘리네 미국집』은 저자 스마일 엘리가 한국인이지만 남편의 직장 때문에 미국으로 이사간 후 살던 집에 대한 인테리어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어낸 것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미국의 일반 가정집 인테리어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도 가장 최근의 인테리어 경향을 저자의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들이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게 글과 사진을 곁들여 만들어낸 책이다. 영화나 미국 드라마를 통해 미국의 일반 가정집을 자주 접했지만 인테리어까지 짚어낼 정도로 독자의 눈이 예리하지 못해 이 책은 더 흥미를 갖게 한다. 미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가정집 인테리어 트렌드를 빼놓을 수 없다는 생각도 겹쳤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2023년 인테리어 키워드로 ‘컴포트 코어(Comfortcore)’를 꼽았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안정’과 ‘편안함’에 대한 갈망이 커지면서 인테리어도 유행을 넘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공간을 추구하게 된 것이라는 것. 이에 따라 이 책 『엘리네 미국집』은 미국집의 독특한 구조와 공간 활용 및 시즌별 장식을 통해 새로운 인테리어 인사이트를 주기 위해 펴낸 점이라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좁은 평수의 집이라도 공간을 넓고 색다르게 활용하여 더 안락한 공간으로 꾸밀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또 시즌별 장식을 바꾸는 미국집의 특성을 살려, 대대적인 공사보다는 간단한 인테리어 팁과 소품 변화, 리폼 등을 통해 집의 분위기를 쉽고 편하게 바꿀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덧붙인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한국인의 검소와 미적 감각도 느낄 수 있어 미국 주거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더불어 그들의 최근의 삶을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다는 부가 지식을 선사해준다. 저자는 또 살림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집을 치우기 쉽게 만드는 살림 체크리스트, 수납함 라벨링 등 시스템 살림법과 팁을 함께 수록해 다양한 독자층을 배려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예쁜 집'보다는 '살고 싶은 집'을, '꾸민 집'보다는 '살기 편안한 집'을 추구하는 저자의 집 인테리어 스타일이 책 곳곳에 배어 있어 독자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하나씩 배워갈 만하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살림 또한 인테리어의 일부분으로써, 자신에게 맞는 살림 환경과 루틴을 만드는 것이 아름다운 집을 온전히 누리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저자의 신념이 인테리어 책이 주는 화려함보다는 편안한 기분이 마음마저 느긋하고 여유 있게 해준다.

이 책은 「평범한 한국 엄마의 미국집 인테리어&살림법」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책을 펼치려면 화려하거나 예쁘거나 아름다운 집 인테리어를 기대하지 말라는 엄포(?)처럼 느껴지는 것은 독자만의 기우일까? 모두 8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역시 집의 구조보다는 용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테리어 책이 대부분 용도별로 구분되어 있다는 점은 다른 책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디테일한 부분보다는 용도상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디테일에 대한 부분이나 설명은 뒷 부분에 따로 묶어 처리했다. 이 부분은 필요한 사람만 읽어도 될 듯하다. 집 인테리어를 다룬 책을 보는 독자들은 대부분 설레는 마음이 있다. 사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인테리어를 자신의 취향대로 하는 것은 누구나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 때문에 직접 인테리어를 해볼 생각으로 책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내 포기한다. 인테리어 책에서 예쁘고 아름답고 화려한 것만 기대했기 때문일 터다. 이 책은 화려한 기대감을 전혀 허락치 않는다.

 


 

거실, 침실, 주방, 욕실 등이 집의 구조를 이루고, 대부분은 이에 얼마만큼의 면적으로 배치하느냐가 주택 문화를 결정짓는 요소라고 집문화 비평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 책은 8개의 파트로 이루어졌다. 1부 「살림, 삶을 살다」, 2부 「집, 우리를 닮다」, 3부 「거실」, 4부 「주방」, 5부 「욕실」, 6부 「침실과 아이방」, 7부 「현관 & 포치」, 8부 「특별한 날」 등이다. 저자는 퇴근 후 지친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보송보송한 욕실, 계절마다 바뀌는 나만의 홈카페, 주말 저녁 따뜻한 벽난로 옆에 배를 깔고 누워 감상하는 영화 한 편, 시즌별 장식과 테이블 스타일링으로 즐기는 홈파티 등을 염두에 두고 우리집 인테리어를 상상할 것을 주문한다. 무엇보다 편안한 휴식처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미국에서 첫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루게 된 한국 엄마 스마일 엘리는 한국과 다른 구조와 환경의 미국집에 살면서 다양한 시행착오 끝에 얻은 현실적이고 손쉬운 인테리어 법칙과 팁을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한국의 아파트나 주택에도 활용하고 응용해 볼 수 있는 인테리어 방법들을 통해 새로운 인테리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첫집의 실패 경험에서 두 번째 집은 좀더 나은 집으로 꾸며나가는 이야기를 하나씩 차분하게 밝혀가면서 독자들에게 살림과 인테리어를 한데 묶어 설명하고 있어 독자들의 호응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 좁은 평수의 집이 많은 한국의 주거 특성을 감안한 듯 평수와 인테리어와의 관계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용도별 뒷 부분에 시즌별로 장식을 바꾸는 미국식 인테리어의 특성을 따로 묶어낸 이유이다. 대대적인 공사보다는 간단한 인테리어 팁과 소품 변화, 리폼 등을 이용해 집의 분위기를 쉽고 편하게 바꿀 수 있는 비결은 역시 꾸준한 노력과 관심이라는 점이 다른 인테리어 책과 차별화된다. 공간의 특성을 살리고 그 공간을 돋보이게 해주는 미국식 인테리어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저자는 특히 실패에서 가장 큰 지혜를 얻는다는 미국식 격언에 맞게 프롤로그에 실패담을 썼다. 독자 호응도를 높이기에 알맞은 경험담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넘쳐 나는 예쁜 인테리어 사진과 집 리모델링 사진을 보며 따라도 해보았습니다. 가구와 조명과 소품을 똑같이 따라 샀는데도 왜인지 그 느낌이 나지 않았어요. 인테리어 센스가 없는 제 탓도 있었을 테지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떠올려 그때의 상황을 되짚어 보자면 문제는 집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테리어의 시작점조차 몰랐으니까요. 기초 화장을 얼마나 공들여 했느냐에 따라 피부 표현과 발색이 달라지고, 똑같은 아이새도, 블러시, 립스틱을 쓴다고 해도 모두 똑같은 얼굴, 똑같은 분위기를 낼 수 없는 것처럼 내 집의 공간과 색을 이해하고, 모든 공간의 정리 정돈이 된 후에 인테리어라는 메이크업을 해주어야 내 집이 빛이 나고 사랑스러운 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즉 꾸미기 전에 정리 정돈이 먼저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테리어의 시작은 정리 정돈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공간이 아름다워지는 아이디어와 함께 각 공간의 정리 정돈의 방법과 효율적이고도 쉽게 그것을 유지하는 살림 비법이 담겨 있습니다. 집은 저마다 다르지만, 각자의 공간에 맞게 활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되도록 공간별로 정리했답니다. 정리 정돈이 끝났다면 이젠 내 집에 예쁘게 메이크업해 줄 차례입니다. 인테리어 용품들을 구입하기 전에 알아 두면 좋을 소품 배치법, 색상 매치법, 큰돈 들이지 않고 직접 만들거나 기존의 소품을 재활용해서 분위기에 맞는 소품을 만드는 DIY 방법 등 제가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며 공부하고 터득한 실전 인테리어 공식을 정리했습니다. 절대적 공식은 아니지만 인테리어 새내기에게는 하나씩 대입해 볼 수 있는 하나의 기본 공식이 되어줄 거예요. 또 사진과 똑같은 제품, 또는 비슷한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제품 검색어도 수록했습니다." 경험이 쌓이고, 노력이 더해지면 전문가 못지 않은 인테리어 가능 수준이 된다는 점을 이웃집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저자는 독자에게 알려준다.

 


 

이 책은 거실, 주방, 욕실, 침실 등 4개의 공간을 별도로 다룬다.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용도별 집의 구조를 말한다. 용도별 인테리어 비법을 설명하기에 앞서 이 책은 앞의 세 파트를 살림과 집, 인테리어의 개념, 우리 삶과 인테리어 분위기 등의 개념 정리 정립에 중점을 두었다. 인테리어라는 구체적 방법도 추상적 개념에 대한 정리가 잘 되어야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그것은 건축에서도 마찬가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모든 모습과 학문이 그렇다. 1부 「살림, 삶을 살다」를 예로 들어본다. 살림과 삶이라는 말을 조금 더 생각해보면 모두 어원이 같은 듯하다. 이에 저자의 설명을 더해보면 확연히 우리 삶과 살림의 관계는 드러난다.

"살림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티는 많이 나지 않지만 매일 조금씩 집을 돌보는 일, 가끔을 지칠 때도 있지만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잘 정리 정돈된 깨끗한 집을 볼 때,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먹고, 다음날을 위한 에너지를 재충전할 때, 살림은 내 집의 안락함을 매일 조금씩 가꿔가는 것이라는 실감을 한다. 잘 해내기 위해 하루하루 힘을 쏟는다. 그리고 살림으로 인해 다시 힘을 얻는다."

 

저자 : 스마일 엘리

 

“스마일 엘리의 일상 시트콤”이라는 블로그에 미국 현지의 생활과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글을 쓰고, 미국집 인테리어, 살림 노하우와 잘 안 먹는 아이들을 위한 미국 유아식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저서로는 『엘리네 미국 유아식』이 있으며, 뉴욕?사우스캐롤라이나?노스캐롤라이나에 발행되는 한인 신문 「Korean Life」에 미국 생활기를 주제로 칼럼을 연재하는 중이다. 미국에 거주하며 안 먹는 아이 때문에 고민하다가 밥과 국, 반찬 중심의 한식 유아식에서 생각을 전환해 미국 유아식을 시도한 아이 둘의 엄마. 미국 유아식을 먹인 이후 음식 거부를 하던 아이의 식습관이 기적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같은 고민을 가진 엄마들에게 경험을 공유하고자 이 책을 썼다. 그녀의 노하우와 열정이 집약된 미국 유아식 레시피가 안 먹는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위안이 되어주고, 아이의 식사를 준비하는 부담과 스트레스를 덜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현재 3살, 6살 에너지 넘치는 두 아이를 키우며 “스마일 엘리의 일상 시트콤”이라는 블로그에 미국 현지의 생활과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글을 쓰고, 아이들을 위한 유아식 레시피와 잘 먹이는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뉴욕, 사우스 캐롤라이나, 노스 캐롤라이나에 발행되는 한인 신문 [Korean Life]에 ‘미국 생활기’를 주제로 칼럼을 연재하는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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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여자들 - 최고의 쌍년을 찾아라
멜라니 블레이크 지음, 이규범 외 옮김 / 프로방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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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는 TV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시청자의 가장 사랑받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TV는 '안방극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 TV방송국 개국 때부터 드라마는 역사를 같이 했다. 아마 뉴스와 스포츠 중계가 드라마와 함께 가장 인기를 끌던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연속극'이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제작 방영됐다. TV 연속극은 매일 저녁 온 식구가 모여 앉아 한 방에서 TV를 함께 관람하던 진풍경을 연출한 주역이었다고 한다. 60년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나이 드신 분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드라마 제목이 두 개나 독자의 기억에 남아 있다. 〈여로〉, 〈아씨〉다.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지 가늠이 될 정도다. 당시 미국 등 선진국의 드라마는 연속극이라는 명칭은 없었고, 대개 한 편의 영화처럼 단편만 방영했다는 말도 들은 기억이 있다. 당시 TV 드라마 비평가는 우리 국민의 정서(인내심) 때문에 매일 연속극이 가능했다고 분석했다고도 한다. 아무튼 드라마는 TV 시대를 이끌던 큰 역할을 했던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고, 그 인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일일연속극보다 주말 연속극으로 인기가 조금 변화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 일일연속극은 유지되고 있다.

이 책 『무자비한 여자들』은 TV 방송국을 둘러싸고 방송국에 관계하는 사람들 사이에 욕망에 얽힌 원한, 복수 등을 그린,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막장 드라마'를 글로 쓴 듯한 느낌을 주는 스릴러 소설이다. 스릴러지만 호러는 아니고, 원한과 복수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인간의 욕망으로 얽히는 인간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의 저자 멜라니 블레이크는 책의 시작인 「프롤로그」에서 자세히 소개된다. 서문을 작가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작가 소개로 사용되는 드문 경우의 하나인 셈이다. 이에 따르면 멜라니 블레이크의 첫 소설 『썬더 걸스(The Thunder Girls)』는 극본으로 각색되기 전에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었다. 멜라니는 정기적으로 중앙지에 칼럼을 썼고, 40시간이 넘는 신디케이션(방송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고 텔레비전 쇼 및 라디오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는 권리를 여러 텔레비전 방송국 및 라디오 방송국에 임대하는 관행) 텔레비전 방송을 공동제작했다. 그러나 멜라니는 연예계에서 ‘드라마의 여왕’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런던에 본부를 둔 멜라니의 연예 기획사는 흥행에 성공했던 드라마의 대표 여배우들과 계약을 맺고 있으며 현재 멜라니의 고객에는 전설적인 미국 드라마 ‘다이너스티(Dynasty)’와 ‘코로네이션 스트리트’, ‘이스트 엔더스’, ‘에머데일’, ‘홀리오크’ 에 출연했던 스타들이 있다. 진정한 내부자로서 저자 멜라니는 연예계의 모든 속사정을 보아왔다. 그리고 이제 멜라니는 이 소설을 통해 그 비밀들을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은 표제어부터 심상찮다. 번역서이니 원문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정도다. 혹시 호러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원제는 'Ruthless Women'이라고 한다. 단어뜻 그대로 '무자비한', '인정사정 없는'이라는 의미다. 그러니 제목은 직역한 셈이다. 무언가 스스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부제에 「최고의 쌍년을 찾아라」라는 문구를 버젓이 사용했다. 우리 출판문화에서는 욕설을 직접 표기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특히 생식기 표현이나 동물을 표현하는 것들은 대개 'X', 'XX', 'XX놈' 등으로 X로 표기하기도 한다. 우리식으로 이 책의 부제를 쓰려면 「최고의 XX을 찾아라」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대로 표기한 것을 보니 욕설로 사용되었다기보다 책의 내용 중의 문구를 그대로 옮기거나 응용한 듯하다.

 


 

이 책은 저자의 작가적 역량이 탁월한 능력에 의해 '뻔한 스토리'를 흥미롭게 전개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너무 뻔한 복수극의 전형이라는 점에서 작품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살 수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드라마 〈팔콘만〉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속극(드라마를 주마다 연속으로 이어 방송하기 때문에 연속극으로 표현한 것 같다)으로 작고 목가적인 섬에서 촬영되었다. 그러나 시청률이 떨어지자 방송국의 새 소유주인 아름답고 매혹적인 매들린 케인이 드라마를 1위로 되돌리기 위해 회의를 소집한다. 지금 일하고 있는 작가인 파라, 39년동안 드라마의 스타였던 캐서린, 프로듀서 아만다는 모두 〈팔콘만〉이라는 드라마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던 유능하고 열정 넘치는 여성들이다. 그러나 세 소유주는 남성중심적인 방송국에서는 파라 대신, 남성 작가에게 라이브 쇼 진행의 기회를 주고, 캐서린조차 드라마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한다. 작중 인물들은 남녀간의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질투와 복수심과 야심이 그들의 우정을 갈라놓을까? 아니면 더욱 결속시킬까? 이 점은 소설의 성패를 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독자들은 이 점에 주목해 읽어볼 것을 권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40년을 이끌어올 정도의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그동안의 인기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팔콘만〉은 최고의 전성기도 있었고, 드라마로 꽤 오랜 시간을 시청자들과 함께했지만 이젠 시청률이 반토막이 난 상태다. 프로듀서 아만다, 작가 파라, 배우 캐서린 역시도 드라마와 동시에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사람들이다. 새 소유주 케인의 남자 중용책에 따라 세 사람은 방송국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다. 회의를 거듭하면서 〈팔콘만〉을 살리기 위해 의견을 낸 결과, 상상하지도 못한 대책이 나온다. 그것은 최고의 악역 여자 캐릭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이 부제로 채택된 「최고의 쌍년을 찾아라」이란 슬로건이자 목표다.

 


 

이 책은 작중 인물들의 독특한 성격이 상승 작용을 한다. 저자의 글쓰기 역량이 탁월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또 자극적이고 외설적인 표현이 많아서 호흡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독자들은 손을 놓을 수가 없고 읽는 속도도 빨라진다. 소설에서의 외설적 표현 논란은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외설 표현을 받아들이는 정도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독자로서 쉽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눈살을 찌푸릴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과연 〈팔콘만〉은 그들의 노력으로 과거의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복수의 과정에서 보여주는 거침없는 표현, 다소 외설적인 정사 장면의 묘사 등은 이들 여성의 복수극에 맞춰져 읽기 거북하지 않다는 점이 작품의 우수성을 반증하기도 한다. 남성중용책을 내놓은 새 소유주와 방송국의 〈팔콘만〉 제작자들의 노력, 복수 심리 등이 저자의 스토리 전개에 따라 독자는 호흡이 거칠다 평온하다를 오가며 끝까지 내리 읽도록 잘 쓰인 소설이다.

이 책은 저자부터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여성인 여성 서사적 작품이다. 초반부터 위기의 세 주인공은 새 소유주가 발탁하려는 남성에 밀려 커리어가 중단되어야 할 위기를 겪는다. 그들이 대안으로 내세운 새로운 '쌍년' 캐릭터도 여성이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여성 캐릭터들이 소설을 막장으로 끌고 가는 듯하지만 자신의 자리와 권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점에서는 서양 여성들의 적극성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들의 욕망과 분투가 우리들의 정서와 관점으로만 본다면 보통의 상식을 넘어선 것도 있긴 하다. 우리 사회에서도 방송가의 이야기가 책으로도, 드라마로도 나와 여러 번 읽고 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과 우리의 작품들이 다른 것 중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역시 개인적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사생활과는 완전 별도의 문제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외설적 표현이나 사생활에서 사회적 정서의 차이와 수용성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독자나 시청자들 대부분은 TV 프로그램의 드러난 부분(지적이고 교양 있고 열정적인 전문직)만 보고 판단되는 대로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 소설이나 드라마의 사장부터 가장 낮은 직급의 방송사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더욱이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라면 그들의 성격이나 이력도 모른 채 배역(드라마의 경우)만 보고 그 사람의 인격을 투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조직의 유기적 관계, 승진과 좌천, 남녀 간의 사생활이 아무런 장애 없이 보여진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이 작품이 왜 '19금' 소설이란 말이 나오는지에 대해 이해할 만도 하다. 이른바 사생활의 남녀 관계는 타인이 간섭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문화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녀 간에도 주고받는 방법이 여전히 '섹스'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을 읽으며 받는 안타까운 느낌이다. 다만 이성간의 성이나 동성애도 표현에 거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배울 점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소설 일부 장면은 정상적이지 않은 섹스나 동성애의 사랑 이야기와 표현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출판물이라면 과연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기에 하는 말이다.

여성 서사적 작품인 만큼 이 책의 여성들은 대부분 '주도적' 성향의 사람들이다. 또 커리어 여성 특유의 자신만의 목표를 이루려는는 성취욕과 도전의식도 굉장히 높다. 게다가 목표 달성을 누군가가 도와주는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이는 새 소유주 매들린 케인도 마찬가지다. "난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바꾸어 주기만을 기다리면 안 되죠.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거저 얻는 겁니다." 그녀의 말보다 그런 의식의 소유자라는 점이 그녀의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전투구식의 욕망과 배신, 그리고 복수의 싸움은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고, 스스로의 양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결말로 이어져 책의 무게감을 더한다.

 


 

 

"서로의 몸을 몹시 흥분한 상태로 더듬고, 마침내 피부와 피부가 닿은 채로 혀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손끝을 어루만지고, 헐떡거리는 신음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을 때까지 그들은 단 하마디도 하지 않았다. 램프가 깜박거리더니 꺼졌다. 아만다는 눈을 감고 어둠에 굴복해 그를 더 깊숙이 끌어당겼다. "계속해 줘." 아만다는 댄의 귀에 대고 속삭이더니 깊이 키스했다. 아만다는 댄의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느끼며 두 손을 댄의 멋지고 단단한 엉덩이에 올려놓고 더 세게 밀었다. 폭죽 상자처럼 아만다는 속을 환하게 비추는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열의를 기울였다. 그들의 호흡은 거칠었고, 억제할 수 없는 흥분으로 헐떡거리며 일제히 절정으로 치달았다."(p.267)

 

저자 : 멜라니 블레이크

그녀의 첫 번째 책 The Thunder Girls는 2019년 여름 베스트셀러 1위가 되었고 소설을 각색한 연극은 권위 있는 Lowry Theatre에서 신작으로 흥행 기록을 세웠다. 그녀는 여전히 영국 텔레비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람 중 하나로 현재는 프로듀서, 작가 및 극작가로서 성공적으로 활동중이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MelanieBlakeUK에서 멜라니 블레이크를 팔로우하세요.

 

역자 : 이규범

N잡러, 개고양이 임상수의사 더하기 알파.

 

역자 : 손덕화

N잡러, 공무원수의사, 상담심리전문가, 유튜버&블로거(별과침묵), 옮긴책으로는 《위기와 기회사이》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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