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의 역습 - 금리는 어떻게 부의 질서를 뒤흔드는가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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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다.” 낮은 금리로 경제를 회복하고 개발한 뒤에는 피할 수 없는 위기가 온다. 이 책은 경제 위기 속에서 전 세계 언론과 금융계가 주목하는 빛나는 성과다. 금융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독서로 독자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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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의 역습 - 금리는 어떻게 부의 질서를 뒤흔드는가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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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다.” 낮은 금리로 경제를 회복하고 개발한 뒤에는 피할 수 없는 위기가 온다. 이 책은 경제 위기 속에서 전 세계 언론과 금융계가 주목하는 빛나는 성과다. 금융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독서로 독자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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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의 역습 - 금리는 어떻게 부의 질서를 뒤흔드는가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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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란 이자를 말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이자'라는 단어를 듣고 살아왔기 때문에 금리란 말이 조금 더 어색하다. 그러나 우리가 은행을 이용하는 한 금리와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놓인다. 금리가 경제의 핵심이고, 정부의 경제 정책의 기본적 대상임을 알기에는 훨씬 여러 해가 지난 고등학교 다닐 때다. 경제 과목을 배울 때라야 알게 됐다. 그러나 대학입시용 경제를 피상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깊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거의 암기식으로 금리를 이해했다. 특히 환율과 세계 금리를 배울 때는 피부로 와 닿지도 않았고 조금 복잡해 예전 방식대로 외우기에 바빴다. 독자는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은행과의 거래를 필수적인 것 이외에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자율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데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미국발 금리 인상은 예사롭지 않았다. 당연히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기를 여러 달 거듭하고, 해를 넘겨도 여전히 금리 인상의 압박에 우리나라가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도대체 금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금리가 오르고 내림에 따라 어떤 경제 정책이 뒤바뀌거나 흔들리는지 관심을 처음으로 갖게 됐다. 그만큼 금리가 우리 서민 경제에도 긴밀히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 책 『금리의 역습』은 독자 입장에서는 개인 가정의 살림살이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읽고 싶은 책이었다. 그러나 책 소개글은 쉽지 않았다. 독자로서는 마치 천자문도 못 뗀 사람이 과거에 응시한다는 심정이어서 혹시 중간에 읽기를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안은 채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은 예상보다 두껍고 금리의 역사부터 각종 금리에 관한 이론 등을 다루고 있어 개인적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부분이 있었지만 금리를 제대로 알기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는 저자 에드워드 챈슬러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차분하게 접근했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측 소개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금리는 경제의 핵심이다. 금리에 따라서 정부는 정책을 수립하고 기업은 사업을 계획한다. 가계의 소비와 투자, 저축도 금리의 영향을 받는다. 금리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과 사업, 투자는 수많은 기업과 가계를 위기에 빠뜨린다. 우리는 경제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금리를 배워야 하지만 기회가 부족했다. 금리는 정책 결정권자와 경제학자, 금융인들이 수많은 역사적 성공과 실패를 쌓으며 연구해온 결과물이기 때문에 맥락을 제대로 다루면서 공부해야 한다. 호황에는 금리를 높이고 불황에는 금리를 낮춘다는 단순한 상식만으로는 진짜 금리를 알 수 없다.

금리 인상 이후의 세계 경제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2022년 연준의 첫 자이언트 스텝 선언 이후 여러 경제 전문가가 꾸준히 분석하고 전망했지만 어떤 주장도 에드워드 챈슬러의 『금리의 역습』만큼 주목받지는 못했다. 각국 중앙은행을 조율하는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인 국제결제은행에서 경제의 향방을 제시하는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초일류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의 부문 총괄 사장이 극찬한 이 책의 인사이트로 미래 흐름에 발 빠르게 올라타자. 역시 목적은 최근 금리 인상의 압력에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흐름이 바뀌거나 뒤집힐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금리 인상률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마땅히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금리는 어떻게 부의 질서를 뒤흔드는가?" 제목으로 쓰인 '금리의 역습'이란 말의 속뜻은 우리가 금리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경제를 조정하는 일은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주식을 하고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쉽게 알아들을 말들을 독자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빠르고 무리하게 추진하는 금리 정책은 반드시 역풍을 맞아 오히려 경제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미 학교 다닐 때 들은 바는 있다. 그래서 그 말의 진정한 뜻을 알기에도 이 책은 독자로서 필독서라고 생각했다.

 


 

이 책 『금리의 역습』은 모두 3부 1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금리의 역사〉, 2부 〈금리정책이 만든 현재와 미래 경제〉, 3부 〈금리 정책〉이다. 1부에는 1장 「이자의 고향 바빌론」, 2장 「시간 판매자」, 3장 「금리 인하」, 4장 「키메라」, 5장 「영국도 2%는 견디지 못한다」, 6장 「위기와 처방전」으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다. 또 2부에서는 7장 「굿하트의 법칙」, 8장 「세속적 정체 논쟁」, 9장 「바젤의 까마귀」, 10장 「인위적 시장 환경」, 11장 「창업자 이익」, 12장 「크고 뚱뚱하고 추한 거품」, 13장 「당신의 어머니는 죽어야 한다」, 14장 「신용을 먹게 하라」, 15장 「불안의 가격」, 16장 「녹슬어가는 돈」이 설명돼 있다. 마지막 3부에는 17장 「만악의 뿌리」, 18장 「금융 억압의 중국적 특색」이 기술된다. 말 그대로 금리 이해에 필수적인 기본 정보와 초저금리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 등을 살펴볼 수도 있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시작하기 전 '5,000년간의 금리 변동'이라는 제목의 그래프를 하나 실었다. 저자가 책의 1장에서 말하는 "태초에 대출이 있었고, 대출에는 이자가 붙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최초의 거래는 물물교환이 아닌 신용 거래였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수레에 바퀴를 다는 방법을 발견하기 전부터 이미 대출에 이자를 부과했다"는 문장과 어울리는 그래프이다. 화폐 이전의 세상부터 대출과 이자가 있었다는 말이다.

책은 2008년 리먼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한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경제학자들은 금리를 역사상 유례 없는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렸고 중앙은행에서는 평온을 되찾았다며 자축했다. 실업률도 떨어졌고 제로금리의 눈에 보이는 효가가 가시화되었다. 당장은 낮은 금리로 기업투자가 촉진되리라 믿었지만 기업들은 실제로 투자를 줄였고 초저금리 대출로 인해 자본의 잘못된 분배도 일어났다. 초저금리는 차입 비용을 낮춰서 투자자가 과도한 리스크를 감수하도록 부여했지만 결국은 정부가 금리인하가 가져오게 될 미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문제점이 매우 큰 결과가 나왔다. 금리인하는 소비가 증가하고 저축이 감소한다. 저금리가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개인은 저축도 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되므로 종잣돈을 만드는 시간에도 오래 걸리는 등 실상으로 보면 금리인하가 미시적인 이익을 가져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시적인 결과는 개인과 정부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판명된다. 이러한 금리 하락은 연금에 대한 두려움도 크게 만든다. 금리 하락은 저축을 위축시키고 저축의 기대 수익률또한 감소시켜 은퇴를 앞둔 사람과 연금제공자들 모두에게 골칫거리를 안겨주게 된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2022년,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기준금리 인상은 가계와 기업에 고통을 줄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가 무엇이길래 수많은 가계와 기업에 고통을 주면서까지 인상을 강행했을까? 금리는 현대 경제의 호황과 불황 사이클에 깊숙하게 간섭하고 산업의 흥망성쇠를 이끄는 핵심이다. 금리에 따라서 정부는 정책을 수립하고 기업은 사업을 계획한다. 가계의 소비와 투자, 저축도 금리의 영향을 받는다. 금리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과 사업, 투자는 수많은 기업과 가계를 위기에 빠뜨린다. 우리는 경제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금리를 배워야 하지만 기회가 부족했다. 금리는 정책 결정권자와 경제학자, 금융인들이 수많은 역사적 성공과 실패 속에서 연구해온 결과물이기 때문에 맥락을 제대로 다루면서 공부해야 한다. 호황에는 금리를 높이고 불황에는 금리를 낮춘다는 단순한 상식만으로는 진짜 금리를 알 수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에드워드 챈슬러의 『금리의 역습』은 금리의 역사적 맥락, 고금리와 저금리의 시기별 경향성을 짚는 동시에 중요한 사상가와 연구자, 기업인을 소개하며 전 세계 언론과 금융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 책은 금리가 현실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주고 그 역사적 사례까지 제시한다. 각국 중앙은행의 관계를 조율하는 중앙은행인 국제결제은행에서 경제의 향방을 제시하는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초일류 은행 모건 스탠리의 부문 총괄 사장이 극찬한 『금리의 역습』의 인사이트로 미래 흐름에 발 빠르게 올라탈 것을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1930년대 초 ‘통화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경제학자 하이에크가 제시한 경제 위기의 치료책은 금리 인하가 아니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리를 끌어올려 저축을 장려하고 부실 투자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채권자들을 희생해서라도 예금자들과 주택 보유자들을 보호한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당시 미국의 접근법과는 거의 모든 측면에서 정반대였다.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다양한 자산의 가치가 치솟았다. 경제의 위기가 왔을 때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경제 활동을 진작했기 때문이다. 쉽게 풀린 돈은 사업의 온갖 곳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실리콘밸리였다. 그다음으로는 가상자산으로 향했다. 부동산시장도 넘치는 돈의 혜택을 입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앞선 자산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장 주목할 문제는 무역이다.

저자는 세계 무역에 위기가 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세계 무역은 분열과 전쟁의 화염 속에서 실험대에 올랐다. 이대로 세계 무역이 축소하고 분열한다면 대한민국과 같은 수출 중심 경제 체제를 갖춘 국가는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통화 정책을 소개하며 동아시아 국가의 정책도 분석한다. 중국은 강력하고 억압적인 금융 정책을 채택했다. 이는 한국과 연관이 있다. 한국도 강력한 금리 정책을 펼친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한국 정부는 국가 소유 은행을 통해 수출 기업과 독재자 마음에 드는 산업 분야에 마이너스 실질금리로 대출을 제공했다. 덩샤오핑 체제는 이 시기 한국과 같은 전략을 선택했던 것이다.

"덩샤오핑 개혁 시대, 베이징 당국은 아시아 이웃 나라의 정책을 그대로 베끼기로 했다. 수출과 대규모 투자에 의지하는 아시아 경제개발 모델을 기반으로 낙후된 아시아 경제가 서구 경쟁국들을 따라잡은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p.444)

 


 

이 책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적잖게 등장한다. 스코틀랜드인 존 로는 23살에 결투를 하다가 교수형을 선고받았지만 영향력 있는 거물들의 도움으로 탈옥해서 프랑스로 넘어간다. 20년 후, 그는 프랑스 중앙은행을 설립하며 총재직을 맡았고 아칸소 공작이라는 지위를 받았다. 영국 사법부로부터 도망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가 장차 프랑스 투자자의 피를 끓게 만들 저금리 통화 정책을 주장했고, 마침 프랑스 왕위를 물려받은 루이 15세의 섭정공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통화 정책의 결정권을 움켜쥔 존 로는 온 유럽에서 손꼽힐 정도로 어마어마했던 통화 정책을 설계했다. 그 핵심은 초저금리였다. 당연히 버블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존 로가 만든 버블은 유럽 역사에 남은 ‘미시시피 버블’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사건은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금리의 위력과 원리를 뼈아프게 전달한다. 존 로의 체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에드워드 챈슬러는 존 로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소개하며 금리 정책이 금융 자본주의에 속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거듭 강조한다. 우리 앞에 놓인 경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 책을 통해서 금리를 설계하는 자들이 어떠한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오늘날의 금리를 만들어냈는지 엿볼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경제의 변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통화 당국은 금리 인하와 인상은 일시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금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서민들은 정부의 정책 하나하나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금리가 인상된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숨이 막일 정도로 불안감을 느낀다. 은행이나 어떻게든 돈을 빌린 사람은 당장 자신들의 살림에 타격을 입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다시 회복할 때가 언제쯤인지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금리는 인하도 인상도 너무 쉽게 미봉책으로 사용하다가는 엄청난 경제 상황에 닥칠 수도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이 책에서 배운다. 물론 금리의 역사나 이후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나 이론도 배울 게 많다. 특히 금리 정책에 대한 정부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무능과 불안정은 의미가 다르다. 이 책은 무엇보다 금리의 흐름과 작용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준다.

 


 

"금융 안정성은 국내시장에 불안의 씨앗을 뿌리듯이 외환에도 마찬가지 영향을 끼친다. 보리오의 동료 경제학자 신현송의 경고대로 “정책이 불안정성을 약화시키는 기간이 길수록 급격한 반동 리스크도 커진다.” 신흥시장이 미국 통화 정책에 갈수록 취약성을 보이는 현상은 연준이 금리를 낮게 유지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달러 본위제의 위기는 더 큰 희생을 치르게 하고 위기의 지리적 범위도 커지고 있다. 보리오는 국제 통화 및 금융 체제 개혁이 시급하다고 시사했다."(p.438)

 

저자 : 에드워드 챈슬러

모두가 저금리에 열광할 때, 곧 찾아올 경제 위기를 예견해 미국과 영국에서 화제를 모았다. 세계 경제의 물밑에서 커지던 신용 거품을 먼저 알아채고 경고한 전작 《금융투기의 역사》는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주목할 책’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월스트리트 저널》 《파이낸셜 타임스》 《머니 위크》에 칼럼을 기고하며 금융의 원리와 경제의 향방을 제시했다. 저자의 주장대로 신용 거품은 결국 세계 경제 위기로 이어졌다. 마침내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자이언트 스텝을 선언했으며 전 세계의 중앙 은행은 새로운 금융 환경을 맞이했다. 《금리의 역습》은 세계 경제에 닥칠 다음 위기를 말하는 책으로서 세계적인 언론과 금융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역자 : 임상훈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료 번역가들과 ‘번역인’이라는 작업실을 꾸려 활동 중이다. 《재즈로 시작하는 음악여행》을 집필했고, 옮긴 책으로는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더 어글리: 추의 문화사》, 《10% 적은 민주주의》, 《트라우마 사전》, 《자본주의 대전환》, 《건축 다시 읽기》(공역)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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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의 약속 - 조선의 충신들
성해석 지음 / 북새바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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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충신으로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속에서 지조와 절개, 선왕과의 약속 등을 죽음으로써 지켜낸 선비정신을 보여준 성삼문의 일대기를 소설로 녹여냈다. 당시의 상황과 충신과 간신의 경계를 규명하는 저자의 의지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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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의 약속 - 조선의 충신들
성해석 지음 / 북새바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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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민이 주권을 가진 국가의 주인이다'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전 시대 즉,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했듯 왕정이었다. 왕이 나라의 주인이고, 왕이 직접 다스렸다는 의미다. 우리의 마지막 왕정은 조선이다. 조선시대에도 나름의 민주적 요소가 나라 정책에 반영되었지만 왕정은 어디까지나 나라의 권력은 왕으로부터 나온다. 조선은 불교 국가인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군사 쿠데타를 통해 태조 이성계가 정권을 잡고 수립된 왕정 국가다. 또 나라의 기본이념이 된 유교의 성리학자들로 대표되는 신하들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 충절의 지키는 유학자 출신이 대부분이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이른바 선비정신을 몸소 실천한 성삼문은 뛰어난 유학자이며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대표적 충신이다. 흔히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통해 알게 된 사육신 중의 한 명으로 성삼문을 이해했다면 소설 『성삼문의 약속』은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다. 『성삼문의 약속』은 주인공 성삼문이 뛰어난 학자로서 백성과 임금에 대한 충심을 고뇌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시대의 지식인으로 성장하면서 ‘학문’에 대한 진지한 의미를 탐구하고 멸시받던 백성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던 성삼문은, 집현전 학자로서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공을 세운다. 그는 조선시대 선배들의 탁상공론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관념을 통렬하게 깨치는 개혁적 인물로 그려져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 소설은 성삼문을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의 뜨거운 열정과 우리 선조들의 충(忠) 사상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주요 사건에 따른 인물 간의 갈등과 대립을 긴장감 있게 전개해가면서 글의 재미를 더해, 전 연령층이 부담 없이 읽으며 공감을 나누고 인물을 통해 역사를 읽는 안목도 더불어 키우게 된다. 태조부터 이어온 왕위는 적장자 원칙에도 불구하고 3대 태종이 왕위를 이어받을 때도 사실상 '왕자의 난'이라는 왕위 찬탈에 가까웠다. 이는 물론 적자들이 있음에도 서자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태조의 판단으로 태종이 반기를 듦으로써 왕위 찬탈로 전해져 오지만 많은 논란이 지금까지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후 적자는 아니지만 3남 세종이 정식으로 세자를 통해 왕위에 올랐다.

세종은 특유의 애민 정신을 바탕으로 적지 않은 기간(1418~1450, 32년) 많은 업적을 쌓아 조선의 기틀을 바로잡았던 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어 적장자인 문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2년 4개월 만에(재위 1450∼1452) 병사하고 어린 단종(재위 1452~1455)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한국사 전체에서 가장 비극적인 운명의 국왕이었다고 말할 만하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첨예한 권력 투쟁은 대부분 건국 초기에 빈발한다. 조선이 개국한 지 꼭 60년 만에 11세의 어린 나이로 등극한 왕은 권력의 공백이 빚어낸 투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세종의 둘째아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독자는 직접 확인한 바 없으나 수양대군이 왕(세조)이 된 후 그의 사후에 쓰인 세조실록은 세조 위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소설 작품의 제목에 쓰인 '약속'은 문종과 성삼문, 집현전 학사들과의 약속이다. 자신이 병약해 오래 왕위에 있지 못할 것을 우려해 이들에게 어린 아들(단종)을 지키고 보좌해줄 것을 한 약속을 의미한다.

 

 

이 소설은 단종 즉위 후부터 세조가 왕이 된 직후까지의 과정을 저자 성해석의 상상력을 이용해 극화한 내용이다. 물론 성삼문이라는 조선 초기 충절의 선비정신을 지켜낸 사육신(死六臣)으로 그의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생애를 조명한다. 성삼문은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르자 이듬해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 발각되어 능지처참을 당했다. 역적죄에 해당하기에 그의 가문은 어쩌면 거의 멸문지화를 당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한번 옳다고 여긴 신념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지키려고 했던 조선 선비의 대표적 충신이다. 그의 곧고 맑은 지조야말로 조선 선비들의 의리 정신을 보여주는 거울이 아닐 수 없다고 후세에 평가를 받는 이유다. 성삼문은 충청도 홍주 노은동(현재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외가에서 출생했다. 자는 근보(謹甫) 또는 눌옹(訥翁)이며, 매화나 대나무와 같은 강직한 군자의 기질을 흠모하여 호를 매죽헌(梅竹軒)이라 했다. 본관은 창녕이며, 부친은 도총관을 지낸 성승(成勝)이다. 어머니는 현감 박첨(朴?)의 딸이다. 그가 태어난 홍주 노은동은 고려 말의 명장이었던 최영 장군이 출생한 곳이기도 하다.

영웅이 탄생할 때 흔히 갖춰지는 탄생설화가 있듯이 성삼문도 태어날 때 공중에서 ‘낳았느냐?’ 하는 세 번의 소리가 있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의 이름인 ‘삼문(三問)’의 유래이기도 한데, 문헌으로 전하는 내용은 아니고 구전 설화에 가깝다. 이 설화를 소설은 그의 탄생에서 다루고 있다. 성삼문은 1435년 18살 되던 해에 생원시에 합격했고, 3년 뒤인 21살 때에 하위지(河緯地)와 함께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집현전 학사로 발탁됐다. 안평대군을 통해 그의 학문과 인품 됨됨이를 전해 들은 세종이 직접 집현전 학사로 발탁했다. 이때 성삼문과 함께 집현전 학사로 발탁된 인물은 박팽년(朴彭年), 신숙주(申叔舟),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이석형(李石亨) 등이다. 성삼문은 이들과 함께 집현전에서 학문연구에 전념하였다. 이후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으면서 수찬·직집현전으로 관직이 올라갔다.

 


 

성삼문은 세종 때에 신숙주 등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왕명으로 〈훈민정음〉을 편찬했다. 〈훈민정음〉은 1448년 간행한 『동국정운』과 함께 통일된 한자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 나라의 바른 음’이란 뜻을 담고 있다. 25살 때에는 박팽년, 신숙주, 이개, 하위지, 이석형 등과 함께 삼각산 진관사에 휴가를 받아 독서에 열중하기도 했다. 이 부분 역시 이 소설에서 역사의 한 장면으로 다루고 있다. 이를 사가독서(賜暇讀書)라 하는데, 집현전 학사들에게 준 특별한 혜택이었다. 집현전 시절 성삼문은 세종의 명을 받고 훈민정음 창제를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1443년(세종 25) 세종이 훈민정음 28자를 만들 때, 정인지, 신숙주, 최항, 박팽년, 이개 등과 더불어 성삼문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성삼문은 1445년(세종 27) 신숙주와 함께 요동을 13차례나 왕래하면서 그 곳에 유배와 있던 명나라 학자 황찬(黃瓚)으로부터 음운학을 배워왔다. 1447년 그의 나이 30살 때에 신숙주, 최항, 박팽년, 이개, 강희안 등과 함께 한국 한자음을 정리한 〈동국정운〉을 편찬하는데, 수차례에 걸친 요동방문의 결과물이었다. 안평대군과 성삼문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 간의 교류 또한 유명하다. 성삼문은 박팽년, 신숙주 등과 함께 안평대군의 정원에 있는 진풍경을 시제로 하여 〈비해당 사십팔영〉과 그 서문을 짓기도 했다. 문종이 재위 2년 4개월 만에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성삼문은 성리학적 정치윤리에 충실하여 어린 임금을 보필했다. 그러나 1453년(단종 원년) 왕위를 탐내던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를 죽이고 아울러 집현전 신하들에게는 정난공신의 칭호를 내려 주었다. 공신의 칭호를 성삼문은 부끄럽게 여기고 이를 사양하는 상소를 올렸다. 수양대군이 정치적 야심을 키우는 사이 성삼문은 1454년에 집현전부제학이 되고, 이어서 예조참의를 거쳐, 1455년에 예방승지 자리에 올라 단종을 가까이서 보필했다.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잃고 다시 아버지마저 잃은 어린 단종은 위협에 못 이겨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당시 단종의 옥새를 수양대군에게 전달하는 임무는 예방승지로 있었던 성삼문이 맡았다. 양위식을 담당한 성삼문은 옥새를 끌어안고 대성통곡했다. 세조가 울고 있는 그를 한참 동안이나 차갑게 노려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집현전 출신의 젊은 관료들과 단종 및 문종의 처가 식구들을 중심으로 단종 복위 움직임이 조심스럽게 이뤄지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성삼문과 박팽년이었다. 승정원에 근무했던 성삼문은 나름대로 세조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고 명나라 사신이 한양에 도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1456년 6월 1일에 거사를 이루기로 했다. “성삼문과 박팽년이 말하기를 6월 1일 연회장의 운검(雲劒)으로 성승과 유응부가 임명되었다. 이날 연회가 시작되면 바로 거사하자. 우선 성문을 닫고 세조와 그 오른팔들을 죽이면, 상왕을 복위하기는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거사는 채 이루기도 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성삼문과 함께 단종복위를 도모하던 김질이 단종 복위계획 사실을 누설해 버린 것이다. 김질을 통해 진상을 파악한 세조는 성삼문을 불러들여 결박했다. 성삼문의 뒤를 이어 함께 거사를 도모했던 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박정 등이 끌려와 심문을 받았다.

“너희들이 어찌하여 나를 배반하는가.”

“옛 임금을 복위하려 했을 뿐이다. 천하에 누가 자기 임금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있는가. 어찌 이를 모반이라 말하는가. 나의 마음은 나라 사람이 다 안다. 나으리가 남의 나라를 빼앗았고, 나의 군주가 폐위당하는 것을 보고 견딜 수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다. 나으리가 평소 걸핏하면 주공을 지칭하는데, 주공도 이런 일이 있었소? 삼문이 이렇게 하는 것은 하늘에 태양이 둘이 없고 백성은 군주가 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대동야승』 중에서)

성삼문의 말에 화가 난 세조는 “지난 번 옥새를 가져올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나를 배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다그쳤다. 성삼문은 “때를 기다려 뒤를 기다렸을 뿐이다.”고 답했다.

 


 

성삼문은 부당하게 폐위된 단종의 왕위를 다시 찾고자 했다. 신하에게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고 백성에게도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는 단종의 신하로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

“너는 나의 녹을 먹지 아니 하였는가? 녹을 먹고도 배반을 하였으므로 명분은 상왕을 복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스스로 정권을 차지하려는 것이 아닌가?”

“상왕께서 계신데 나으리가 어찌 나를 신하라고 하십니까? 또 나으리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으니, 만약 나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내 가산을 몰수하여 헤아려 보십시오” (남효온, ?육신전? 중에서)

성삼문의 당찬 말에 화가 치민 세조는 쇠를 달구어 다리를 뚫게 하고 팔을 자르게 했다. 극심한 고문에도 성삼문은 얼굴빛을 바꾸지 않고 “다시 달구어 오게 하라. 나으리의 형벌이 참으로 독하다.”고 태연히 말할 뿐이었다. 성삼문은 세조, 즉 수양대군을 자신의 군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녹봉으로 받은 것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보관했으며, 세조를 향해 나으리라는 호칭으로 군신관계가 결코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그에게 있어 세조는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불의한 인간이자 역모자일뿐이었다. 실제로도 그가 죽은 뒤에 가산을 빼앗아 보니 1455년 즉 세조 즉위년부터 받은 녹봉을 별도로 한 곳에 쌓아두고 ‘어느 달의 녹’이라고 기록해 놓았으며 집안에는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오직 거적자리만 있을 뿐이었다고 전한다. 성삼문이 한창 고문을 받고 있을 때 오랜 벗이자 동료였던 신숙주가 세조 옆에 있었다. 그를 본 성삼문이 노려보며 말했다.

“옛날에 너와 함께 집현전에 있을 때 영릉(세종의 능호)께서 원손을 안고 뜰을 거닐면서 세월이 흐른 뒤에 너희들이 이 아이를 잘 생각하라는 당부가 아직 귓전에 남았는데, 네가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호통을 들은 세조는 신숙주를 피신시켰다. 성삼문은 거사를 앞두고 “신숙주는 나와 서로 좋은 사이지만, 죽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비록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는 좋은 벗이었지만, 세종의 당부를 잊었을 뿐 아니라 불의의 편에 선 신숙주의 처세는 신의를 져 버린 것이므로 성삼문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혹독한 고문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세조의 불의를 꾸짖고 세종과 문종, 그리고 단종을 향한 신하의 충성을 지킨 성삼문. 세조가 성삼문에게 함께 공모한 자를 물었을 때 그는 “박팽년 등과 우리 아버지뿐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 세조가 공모한 자를 재차 물으니 “우리 아버지도 숨기지 않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는가”라고 말할 뿐이었다.

당시 그에게는 대여섯 살쯤 되는 딸이 있었는데, 수레를 따르며 울며 뛰었다. 성삼문이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내 자식은 다 죽을 것이고, 너는 딸이니까 살 것이다”라며 달랬다. 집안의 종이 울며 술을 올리자 몸을 굽혀서 마시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인물한국사』에 「죽음으로 매화의 지조와 대나무의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 기록된 성삼문은 형장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시를 낭낭하게 읊었다.(p.335~336)

 

목숨을 재촉하는 북소리 둥둥 울리는데(擊鼓催人命)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는 지려는구나.(回頭日欲斜)

저승에는 주막집 하나 없다 하니(黃泉無一店)

오늘밤은 뉘 집에서 묵으려나.(今夜宿誰家)

 

저자 : 성해석

 

전남 여수 출생. 성균관대학교졸업, 한려대학교 사회복지경영학 박사를 졸업했다. 현대문예동부작가회 회장이었고 2010년 현대문예 시, 2011년 현대문예 수필로 등단했다. 2011년 ‘나의 꿈 우리들의 꿈’, 2017년 ‘새벽녘’ 수필집을 발간했다. 대통령 개인표창 2회, 단체표창 1회, 향군대휘장, 풀뿌리혁신의원상, 국제라이온스국제봉사상외 다수를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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