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디예요? - 나만 알고 싶은 산, 바다, 공원, 카페, 문화재 여행지
이예찬(차니포토) 지음 / 영진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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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처음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의 감동과 즐거움을 되새기기엔 사진보다 좋은 것은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그래서 이젠 사진 찍기에 좀더 신경을 쓰고 시간도 할애한다. 사실 사진 전문가가 아니기에 사진의 중요성보다는 기록에 방점을 둔 사진만 찍었으므로 사진이 예술이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사진 예술의 훌륭한 작품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사진 작가로서의 사진 찍기는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흔히 여행지나 심심해서 찍는 사진과는 확연히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던가.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좀더 예술성 짙은 사진이 좋을 것이다. 이 책 『여기 어디예요?』는 사진 찍기 위해 여행한다는 사진작가 이예찬(차니포토)의 국내여행 안내서를 겸하고 있다.

이 책은 차니포토의 나만 알고 싶은 ‘산, 바다, 공원, 카페, 문화재’를 소개한다. 계절별 추천하는 여행지, 장소의 명칭과 위치, 운영 시간, 추천 대상 등 상세 정보를 담았다. 그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촬영하며 얻은 노하우와 장소마다 ‘알고 가면 좋을 정보’까지 알려주는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의 여행에 초대한다. 차니포토는 이 책을 읽을 독자를 상상하며, 사소한 부분까지 함께 고심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당당하게 “이 책만 들고 떠나요”라고 이야기한다. 『여기 어디예요?』와 함께하면 추억이 쌓인다고 말한다.

 


 

이 책은 언제 찾아도 훌륭한 국내 여행지만 엄선했다. 동시에, 유독 아름다운 시기까지 고려했다. 봄이면 특히 낭만적인 공간이 있고, 여름에만 만발하는 꽃과 가을이면 볼 수 있는 별이 있다. 또한, 겨울이 되어야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소가 있다. 차니포토는 장소를 계절마다 소개하며, 누구와 함께할 때 더욱 즐거운지, 어떤 구도로 촬영하면 좋을지까지 이야기한다. 『여기 어디예요?』를 통해 독자가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공유했다.

저자는 사진 찍는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여행은 사진만을 위해 떠났다고 밝힌다. 찍어 보고 싶은 사진이 있어서 그 여행지를 가기도 하고, 간 김에 짧은 시간 안에 근처의 여러 카페를 돌기도 한다고 털어놓는다. 또는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해서 시간에 따른 색감을 사진 속에 짙게 담아 보기도 한단다. 누군가는 저자에게 "그게 일이지 여행이야?"라고 하는 분도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좋아하는 일이 좋아하는 여행 속으로 스며들었기에, 그 과정이 즐거웠고, 그래서 일이 아닌 여행이었다"고 답한다. 저자는 예쁜 장소에서 아름다운 사진이 나왔을 때, 그리고 그 사진을 많은 사람이 좋아해 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어느 사찰 공간의 동굴을 발견하고 장소에 맞는 구도를 연출하여 SNS에 사진과 정보를 공유한 적이 있는데, 이 콘텐츠로 인해 많은 사람이 해당 지역을 찾아가게 되었다며 자신이 연출한 구도 역시 인기를 얻었다고 슬쩍 덧붙인다. 이 순간 누군가의 현재를 기록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었다는 뿌듯함도 맛보았다고 강조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자신이 알아낸 장소, 혹은 이미 알려진 장소지만 자신만의 시선이 담긴 곳, 색다른 사진을 위한 촬영 팁 등을 공유하고 싶다고 책 출간 이유를 밝힌다. 이 책은 모두 12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에서 사진은 이처럼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일 것이다. 사계절보다는 더 세분할 수 있어 월별로 나눈 것으로 보인다. 독자는 이 책에 나오는 사진이 모두 아름답고 특별한 사진 예술의 시각이 담겼다고 생각되지만 서평에 모든 사진을 다 실을 수 없기에 대략 4개의 계절별 사진을 서평에 이용하려 한다. 또 많은 사진 중에 선택하기에는 독자의 예술적 시각이 부족한 탓에 대표성을 띌 수 없을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의 사계절을 대표하기에는 나쁘지 않을 듯해서 임의로 선정해 저자의 글과 함께 소개해본다.

지금이 겨울이기에 겨울에 가장 멋진 사진을 하나 골라본다. 제주 「1100고지 습지」(p.236~239)이다. 책에 따르면 1100고지는 겨울 제주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은 눈이 내리는 곳이다. 눈이 많이 오면 그만큼 도로는 위험해서, 눈이 오는 즉시 도로가 통제된다. 하지만 제설 작업이 완료되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차를 타고 정상에 도착하면 겨울왕국 그 자체를 만나볼 수 있다. 이곳에서 유명한 사진 명소는 '사슴 동상'이다. 사슴이 보는 시선을 뒤에 서서 함께 응시하면 눈 쌓인 한라산의 장관을 볼 수 있다. 1100고지 습지는 사람들이 사진 찍는 곳이 거의 정해져 있지만, 올라가고 내려가는 길 자체도 아름답다. 차를 잠시 한편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저자는 귀띔한다. 온통 하얀색뿐인 곳이라 사진 찍으려면 흰색과 대비되는 색감의 옷이 좋다고 팁도 선사한다. 사진 찍는 기능적인 면도 〈자랑하고 싶은 사진〉이란 항목을 별도 마련 적시했다.

 


 

저자가 일년 열두 달 직접 가서 살펴보고 찍은 사진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이 책에는 봄 사진도 여러 개 담겨 있다. 이미 유명한 곳이지만 저자 역시 봄의 광양 「매화마을」을 안 갈 수가 없었을 것 같다. 매화는 3월 초순에서 중순에 개화한다. 이 곳에서는 이 매력적인 꽃을 질리도록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백설 같은 백매화가 마을을 뒤덮은 모습이 꼭 봄날의 눈 같다. 간간이 홍매화도 보이는데, 산딸기 같은 자태가 곱다. 꽃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 보면 곳곳이 다 명소다. 어디서 어떻게 찍어도 예쁜 곳이어서 최대한 많이 찍고 다양한 인생 사진을 남기기 좋다. 마을 안쪽 깊숙이 걸어 올라가면 아래로는 알록달록 매화꽃이 보이고 멀리는 섬진강이 보이는 환상적인 곳이다. 꼭 안쪽 깊숙이 들어가서 꽃과 인물과 섬진강까지 담아보는 걸 추천한다.

저자는 이 매화마을의 위치는 물론 '무료주차 가능'이란 정보도 빠지지 않고 챙겨넣었다. 〈알고 가면 좋을 정보〉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정보를 준다. "매화마을은 온화한 기온과 물안개로 인해 매실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곳이에요. 매실이 옹기 속에서 숙성되는 모습이 일렬로 정렬이 되어 있는데, 이것도 관광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또, 곳곳에서 매실을 판매하는 상인의 모습도 볼 수 있어요. 가족 단위로 간다면 근처에 있는 〈청매실농원〉에 들러서 매실 체험을 해보길 추천합니다. 갖가지 매실로 만든 제품도 구입할 수 있고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많으니 고려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p.52~55) 인근 구례의 「산수유마을」, 「지리산 치즈랜드」도 별도의 사진 관광지로 구성해 책에 담았다.

 


 

독자에게 여름에 가보고 싶은 곳을 선정해 보라 한다면 정선 「타임캡슐공원」에 가고 싶다. 이곳에서는 은하수가 보인다고 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수십 년 사는 동안 별을 본 일도 없는데 아직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곳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뛰게 한다. 「타임캡슐공원」이란 이름의 유래를 알고 보면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를 활용해 조성했기 때문이란다. 타임캡슐공원은 정선군민의 차별화된 상징적이고 개성적인 관광명소로 조성하고자, 2001년도 개봉되어 국내는 물론 중국, 홍콩, 일본 등 한류 열풍을 크게 일으켰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차태현과 전지현이 3년 후 다시 만날 약속을 기약하면서 타임캡슐을 소나무 밑에 묻었던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 ‘일명 새비재’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조성 경위야 어떻든 이곳은 은하수가 보인다고 해서 더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은하수를 보기 위한 조건이 까다로워 그리 많이 찾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은하수가 관측되는 시기는 여름인 7~8월에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알고 가면 좋을 정보〉와 〈은하수 촬영 방법〉을 별도의 난을 마련해 안내하고 있다. 우선 알고 가면 좋을 정보로 ① 달의 모양이 최대한 초승달에 가까울 때 갈 것을 추천한다. ② 하늘에 구름이 적은 날이 좋다. ③ 미세먼지가 적은 날이어야 한다. ④ 습도가 낮아야 한다를 꼽고 있어 까다롭긴 하다. 그러나 〈은하수 촬영 방법〉을 숙지하고 가면 두 번 다시 찍기 어려운 사진을 얻을 수도 있다는 즐거움과 설렘을 제공해준다. 은하수를 잘 촬영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 지식과 준비물이 필요하다. ① 삼각대 ② 타이머를 2초 이상 맞출 것 ③ 초점은 수동초점(MF)으로 설정하고 가장 밝은 별 기준으로 맞출 것 ④셔터 스피드 10초 / 조리개 최대 개방 / ISO 2500 기준으로 촬영해 보면서 밝은지 어두운지 파악 후 세팅값을 조절할 것 ⑤셔터 스피는 15초를 넘지 않게 할 것 등 까다롭지만 꼭 필요한 사항을 챙겨 안내하고 있다.

 


 

가을에 가볼 곳이고 독자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곳이 광주 「스멜츠」이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실내에서 단풍을 즐기기에 최적의 곳으로 독자는 선택했다. 아직 가보지도 못했고, 사실 처음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곳이다. 서울과 가까운 곳에 있지만 독자는 처음 알았다. 저자는 이곳을 소개하는 글에서 "이곳은 실내 공간에서 단풍을 느낄 수 있는 가페 중 유명하기로는 상위권인 카페"라고 썼다. 이곳에서의 감상을 저자는 가을의 감성에 어울리는 문장으로 이어갔다. "통유리로 보이는 단풍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마치 단풍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유리로 된 원형 테이블에 반사되는 단풍과 따뜻한 라테 한 잔의 조합은 그 어느 라떼보다도 고소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유리에 나오게 찍는 사진은 필수라고 생각해요. 돌아오는 가을, 이곳 스멜츠에서 여유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p.214)

이 곳 소개 역시 〈알고 가면 좋을 정보〉로 마무리한다. "사진을 찍은 공간은 2층입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찍고 싶으면 아침 일찍 가서 줄을 서야 가능합니다. 제가 갔던 날 기준 금요일 오전 9시 50분에 1등으로 도착해서 대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줄이 길어지더라고요. 마음에 드는 자리를 잡으려면 오픈 최소 한 시간 전에는 도착하는 걸 추천합니다."

다음은 인터뷰에서 저자가 책 속에 제공하진 못한 별도의 주의사항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여기 어디예요?』를 출간하고 예스24와 가진 인터뷰에서 독자들에게 한 가지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덧붙인다.

"책에서 소개해 드린 장소에 가더라도 제가 찍었던 사진과 같은 분위기를 낼 수 있다고 100% 장담하긴 힘들어요. 우선 날씨의 영향이 가장 클 거고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서도 달라져요. 어느 시간대에 방문하느냐에 따라서도 또 느낌이 달라지니 제가 찍은 사진은 '이 장소에서 이렇게 예쁜 사진을 찍을 수도 있구나!'라고 가볍게 참고만 해주세요. '그 구도 그대로 한 번 찍어 보자'라는 마음만 가지고 책을 들고 여행을 떠나 준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작가님의 사진을 보면 이미 알고 있는 장소이더라도 새로운 곳처럼 보입니다. 사진의 구도가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요. 구도를 잡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이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요. 피사체가 들어가는 경우와 풍경만 나오는 경우입니다. 인물이 들어갈 경우, 프레임 안에서 배경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 생각해요. 이 구도로 찍을 때 인물의 크기가 사진의 얼마만큼의 영역을 차지하면 가장 예쁘게 나올지 상상합니다. 풍경만 찍을 경우, 수평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촬영합니다. 물론, 후보정 작업에서 어느 정도는 수평 보정이 가능하지만, 그때 수정하게 되면 사진을 돌려서 잘라내는 거라, 사진이 온전히 나오지 않아서 손해 보는 부분이 있어요. 애초에 찍을 때부터 수평을 맞춰서 촬영해서 손실되는 부분을 최소화하는 편입니다."

 

Q) 겨울에는 핸드폰이나 카메라 등의 촬영 장비가 쉽게 얼거나 고장 날 수 있는데, 겨울철 장비를 잘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극한의 상황에 많이 노출시키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근데 사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국내에서 느낄 수 있는 추위의 온도에는 장비가 쉽게 망가지진 않아요. 그럼에도 촬영 장비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핸드폰의 경우 주머니에 핫팩과 같이 넣어 두거나 카메라의 경우 렌즈를 감쌀 수 있는 히팅 워머 등을 구매해서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저자 : 이예찬(차니포토)

 

SNS에서 차니포토가 업로드한 멋진 사진이 보이면 '여긴 어디일까?' 궁금해진다. 『여기 어디예요?』는 나만 알고 싶고, 나도 알고 싶은 장소를 정리해 두었다. 또한, 사진 작가인 저자가 오랜 기간 촬영하며 얻은 노하우와 '알고 가면 좋을 정보'를 독자를 위해 고심하여 담았다. 그렇기에 저자는 당당하게 "이 책만 들고 떠나요"라고 얘기한다. 『여기 어디예요?』는 언제 찾아도 훌륭한 국내 여행지를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나만의 사진으로 특별하게 기록할 수 있는 가이드가 되어 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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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존재 자체로 낙인이었어
오현세 지음 / 달콤한책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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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그 주변의 나라들을 보통 문화적 표현으로 '한자문화권'이라고 한다. 문자는 역사시대를 가름하는 분기점으로 흔히 사용된다. 유사 이전과 유사 이후를 따질 때도 문자로 당시의 삶의 모습이 담겨 있을 때를 사실상 역사적으로 가장 확실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특히 동북아와 동남아에서는 중국이 가장 먼저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한자문화권으로 통용되는 것이다. 우리도, 일본도, 베트남도 한자문화권으로 함께 묶이는 이유다. 사실 중국의 오늘날의 한자는 최초의 그림문자로부터 오늘날의 간자체까지 발전을 거듭해 왔다. 중국에서 사용된 최초의 문자는 5,000여년 전 상나라 때 사용된 갑골문자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갑골문을 만든 사람들은 남자들이었고, 그 남자들은 여(女) 자를 모든 부정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다고 이 책 『여자는 존재 자체로 낙인이었어』는 전한다. 왜 그랬을까?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 저자 오현세의 집념으로 마침내 고대사회에서 여자는 존재 자체가 낙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시대정신을 담은 글자, 그 속에서 울고 있는 여자들. 수천 년을 이어온 여자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과 여자의 위상은 현대에 들어서며 획기적으로 달라졌지만 여자를 낙인으로 취급했던 고대사회의 시각이 과연 현대인의 의식에서 완전히 지워졌을까? 저자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친근한 말투와 흥미로운 예화들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되짚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상호보완적인 존재임을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현대는 여성들의 위치가 제자리를 잡은 듯 보이지만 실상 사회에서는 공공연한 오랜 차별의 관습을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양에서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이처럼 여성의 종속성을 그대로 이어왔다. 남자들은 여자를 어떤 존재로 보고 있을까? 민주주의 발상지 서양에서도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된 것은 불과 100여 년 전 일이고, 그 이전에는 시민 취급도 받지 못했다.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이후로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존재라고 인식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지금 상황도 이런데 100여 년 전의 세상, 그리고 훨씬 더 오래전의 세상에서 여자들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다. 역사상 남자는 늘 여자보다 우월한 존재로 군림했기에,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를 지배하거나 아껴주거나 이용만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갑골문이다.

우리나라 자랑스러운 한국어에도 한자어의 비율이 50~70퍼센트에 이른다. 한글로 씌어지는 상당수의 말과 문자가 한자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가 쓰는 언어에 한자의 영향이 크다는 얘기다. 저자는 그 많은 한자어들 속에서 ‘여(女)’ 자에 주목했다. 10년 전 ‘독 독(毒)’ 자를 보다가 이 글자에 ‘어미 모(母)’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고, 그 이후 ‘여(女)’ 자가 들어간 한자에 좋은 의미가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는 수많은 자료와 책들과 인터넷을 뒤지며 연구를 계속한 끝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언어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그리고 지구상 거의 대부분의 언어처럼 한자를 만든 사람들도 남자다. 한자의 기원이 되는 갑골문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그림문자였던 갑골문이 그 글자를 만든 남자들의 생각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타(妥)’라는 한자의 뜻은 ‘온당하다’라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 글자를 만든 연유를 알면 ‘온당하다’는 의미에 담긴 남자의 시각을 꿰뚫어볼 수 있다. ‘妥’의 갑골문과 금문, 초계간백에는 여자(女) 위의 ‘손톱 조(爪)’가 여자의 머리채를 끌고 가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가는 여자, 노예 삼을 여자를 포로로 잡아가는 일이 온당하다고 말하는 글자인 것이다.

저자가 밝힌 것처럼 갑골문에서 사용된 여(女)라는 글자들은 여자의 존재 자체를 낙인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 시절 여자에 대한 남자의 인식은 그렇게 머물러 있었고, 언어는 면면히 이어지며 갑골문 이후 5,0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우리의 무의식에 알게 모르게 쌓여 있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남녀 갈등이 화두로 떠올랐다. 일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심지어 혐오감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남자들은 자신을 역차별의 희생양이라 하고, 여자들은 여성 차별이 여전한 현실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보편적인 명제와 함께 전통적인 성 역할이 사라지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해야 할 역사의 기로에 서 있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을 통해 여(女)라는 한자가 주로 좋지 못한 뜻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기록을 찾았다. 이에 대한 전설을 『회남자(淮南子)』에서 찾았다.

"어느 날 한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인물 창힐에게 여자 귀신들이 몰려와 항의를 했다. 왜 나쁜 뜻의 글자에 여자를 사용한 것이 그리 많느냐고. 그러면서 예를 들었다. 奸(간음할 간), 嫉(시기할 질), 妖(요망할 요), 妄(망령 망), 娼(창녀 창), 媚(아첨할 미), 姦(간사할 간), 奴(종 노) 등등. 말문이 막힌 창힐은 사과를 하고 여자를 이용한 좋은 글자를 만들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렇게 만든 글자들이 妥(편안할 타), 妙(묘할 묘), 嬌(아리따울 교), 姝(예쁠 주) 등이다.(p.18)

이 전설의 맞는지 여부에 대해 저자는 의문을 품었다. 과연 여자라는 글자가 좋은 뜻으로 쓰였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남자들의 머릿속에서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여자가 있어본 적이 없다. 여자는 누구랄 것도 없이 남자의 삶을 위한 노예이자 도구이며 남자를 유혹해 파탄으로 이끄는 존재일 뿐이라고 남자들이 믿었음을, 남자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나쁜 개념에 여(女)자를 낙인으로 사용했음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인식은 한자권 남자들만의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세상의 많은 남자들이 여전히 그런 인식으로 품고 있다. 허구라는 것이다. 이 인식의 허구를 확인한 것이 이 책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여(女)가 들어간 1,000여 개의 한자 중에서 창힐이 만들었다는 나쁜 글자, 좋은 글자는 물론 수천 년간 남녀를 세뇌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100여 개를 추렸다. 상용 여부는 염두에 두지 않고 오히려 사라진 글자, 벽자(僻字)들을 많이 다뤘다고 밝힌다.

 


 

저자는 동파문(東巴文)도 연구해 한자에서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여(女)자에 대한 쓰임새를 밝힌다. 이에 따르면 동파문은 중국 북부의 소수민족인 나시족이 7세기 무렵부터 사용해오고 있는 문자로 표의(表意)와 표음(表音) 성분을 겸비한 상형문자이다. 동파문은 2,223개의 글자가 있으나 일상에서는 1,300자 내외가 사용되고 있다. 세밀한 정감의 표현이 가능하고 복잡한 사건을 기록하고 시와 작문을 쓸 수 있으며 경전 등의 완전한 기록이 가능하다. 상당히 추상화된 한자에 비해 형태가 원시적이지만 사물의 본모습을 매우 흡사하게 담고 있다. 그림문자의 특징이 명확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문자로 그림문자의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할 수 있다.

동파문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순수 그림문자로 현대의 이모티콘과 놀랄 만치 흡사하다. 이 책(p.19~20)에 몇 가지 개념을 동파문과 현대의 이모티콘을 비교해 실었다. 〈플래티콘〉 사이트에서 가져온 이모티콘과 동파문을 함께 놓고 비교해본다. 선을 디지털 작업으로 처리한 것과 손으로 그렸다는 차이를 제외하면 똑같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독자가 보기에도 어떤 것을 동파문이 훨씬 더 실감이 난다. 동파문의 '보다'에는 '시선'이, '노래하는'에는 '소리'가, '사랑하다'에는 '꽃'이 그려져 있다. 현대의 이모티콘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그만큼 더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동파문이 널리 사용되지 못한 이유는 그림만으로 개념을 나타내는 데서 발생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극복한 것이 한자이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여자」, 2장 「여자의 위상」, 3장 「여자의 성정」, 4장 「여자의 조건」, 5장 「여자는 아름답다」, 6장 「여자는 추하다」 등이다. 여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글자를 만든 남자들이 여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왜 여자를 분류하느냐에 해당되는 구분은 아님을 미리 밝힌다. 한자는 그림문자가 아니라 회의문자이다. 시작은 그림이었지만 수만 자의 한자 중 사물의 모습을 본뜬 순수 그림문자는 불과 364개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변형된 그림과 부호, 기호, 비슷한 발음을 가진 글자들을 조합해 만들었다. 이 때문에 그림문자가 아니라 뜻글자, 즉 회의문자라고 불린다.(p.20)

책은 남녀의 구분을 한 그림과 글자 또는 표시, 부호 등을 견주어 가며 이 책의 취지인 글자가 여자를 열등하고 남자의 종속물로 인식하고 만들어져 왔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사람들의 의사 소통의 수단으로 남자와 여자를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란 의문으로부터 답을 구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동파문부터 살펴본다. 이 책 21~22페이지에 설명돼 있다. 이에 따르면 동파문에서 남녀를 생식기 모양으로 구별했고 옆에 발음을 나타내는 그림을 덧붙였다. 남녀를 구별함에 있어 오직 외형적인 차이만 고려했다. 오늘날 구분해 그리는 그림은 외형상 구분과 무형적 개념을 포함하는 것들 등 다양하다. 머리 모양과 옷차림, 신체적 특성과 점성술에서 유래한 부호로 표시한 것들이 모두 사용되고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남녀 차별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양상을 역사적 제자(製字) 배경, 문자의 역사, 변천과정, 당시의 시대상, 그림문자와 상형문자, 뜻글자로 진화하면서도 여자에 대한 속성과 인식을 그대로 유지된 채 흘러왔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든 역사는 갈등과 투쟁, 양보와 포용을 통해 발전해나간다.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소리를 높이는 것도 앞으로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다. 사람들의 인식이 흔들리고 변해가는 이 과도기를 슬기롭게 잘 통과하기만 한다면 남녀 모두 서로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바라는 평등 세상의 한 단면을 책을 통해 볼 수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갖는 일차적인 인식은 종족 번식을 위해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여자는 성적 대상이 됩니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제외되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모든 여자는 어머니이거나 장차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존재지만 남자에게 어머니는 오로지 자신의 어머니만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남의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닙니다. 여자일 뿐입니다. 남자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로 구분합니다. 이렇게 남자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어머니는 어떤 존재일까요? 선악의 판단 대상이 아닙니다. 지고지순한 존재입니다. 신성불가침입니다.(p.25)

 

저자 : 오현세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근화제약, ㈜우성해운에서 근무했으며 벤처기업인 ㈜드림테크를 창업, 게임기 ‘죠이맥스’, 국내 최초 닌텐도 호환 게임팩 ‘장두진 바둑 쌀롱’, PC버전 ‘김인 바둑 쌀롱’, 국내 최초 컴퓨터 리모컨 ‘드림키’를 개발 출시했다. 그 후 영화사(주)CCC에서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일하다 광고회사 ㈜씨네텍을 설립, 700여 편의 CF 및 홍보 영상을 감독, 제작했다. 월간지 《좋은 생각》에서 객원기자로 일했고, 일간지 《시민일보》에 칼럼니스트로 글을 썼다. 대학교와 직장 생활 때는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며 리드 기타를 맡았다. 생활체육 탁구 1부 선수로 뛰면서 서대문구 생활체육 탁구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일찍이 대중 월간지 《부부》에 만화를 연재했고, 2008년 법무부 주최 법질서 공모전에서 만화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바둑 사이트인 〈사이버오로〉에 칼럼을 쓰며 2015년 바둑 문학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합창단 지휘자와 지역문화회관 기타 강사로 활동 중이다. 이 책은 뒤늦게 심취하여 10여 년간 자료를 모으고 연구한 갑골문의 첫 번째 결과로 그 내용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간하게 되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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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란 무엇인가 - 행운과 불운에 관한 오류와 진실
스티븐 D. 헤일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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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란 무엇인가? 가끔 누구나 해보는 질문이다. 특히 중요한 시험이나 경기를 앞두고 '운이 따라주기를' 기대하는 심리가 누구에게나 있는 듯하다. 시험이나 경기는 사실 실력을 테스트하는 것이지 운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운도 있어야' 합격이나 승리를 따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듯하다. 사실 우리 삶을 운이 좌우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임할 때는 늘 운도 따라줄 것을 기대한다. 동양에서는 특히 사람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운세가 있고, 또 살아가면서 태생적으로 가진 운에 의해 많이 좌우되기도 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과연 그러할까? 예전에는 운명이나 운세 등이 삶을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전쟁을 하러 가는 사람들도 운이 많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믿고 있는 사례가 많다. 집단으로 함께하는 경쟁에는 개인의 운세가 아닌, 천운(天運)이 뒤따라야 한다고 믿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근대 서양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운은 비과학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어 사실적으로 배제했다. 지금 우린 근대 과학이 밝힌 운의 허상을 반신반의하면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이 책 『운이란 무엇인가』는 운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집필했다. 저자 스티븐 D. 헤일스는 별도의 머릿말 없이 바로 본론의 장(章)으로 들어간다. 1장 「라케시스의 제비뽑기와 운의 역사」에서 말 그대로 운의 역사를 파헤친다. 저자는 "운은 역사를 관통하여 사람들의 생각을 직조해온 황금의 실"이란 명제를 내세운다. 운이 신(神)과 도박꾼, 철학자와 신학자, 논리학자, 점성가, 황제, 과학자, 그리고 노예들을 하나로 이어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불운을 두려워하고 행운을 기대하면서 자신의 삶에 어떤 운명이 펼쳐질지 궁금해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장에서 저자는 우리의 운에 대한 생각을 거리낌없이 털어놓는다. "우리는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왔으며 지금까지 쭉 우리가 선택한 길만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는 자신의 실수가 아닌 불운을 탓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우리가 주변 세상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것조차 우리 자신의 기특한 노력이 아닌 그저 운이 좋아서인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주변 상황을 예측하고 통제하려 애쓰며,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내다보려 한다고 지적한다. 또 우리의 삶을 스스로 이해하고, 우연과 스스로의 성취를 구분하려 한다는 것. 이에 따라 인류는 새로운 신학, 철학 운동, 색다른 수학 분야 등을 통해 무자비한 운을 이해하고자 온갖 애를 썼지만, 큰 소득 없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나는 우리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워왔음을 입증하겠다고 못박는다. 즉 운은 우리 실체 없는 신화 속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히드라의 목을 자르면 새로운 목이 솟아나듯,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두 가지 문제가 다시 나타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밝힌다. 우리는 운을 정복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운은 무찌르고 말고 할 것이 없다고 한다. 운이란 끈덕지고 골치 아픈 환상에 불과하다. 운 같은 건 없다. 이 사실을 인지하면, 그와 관련하여 '실재'하는 현상, 즉 기회나 인생의 부침에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리고 그에 더해 운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운이란 우리 자신의 행위이며,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우리 자신의 관점이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고집스럽게 끌어안고 있던 먼지 쌓인 묵은 개념을 머릿속에 씻어내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이다. 운을 놓아버리면, 세상 속에서 주체적으로 행위하는 존재로서의 우리 위치를 회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신화(고대 로마 신화)에서 로마인들은 우리네 인생에 자꾸 끼어드는 듯한 운을 일찌감치 감지하고 포르투나라는 여신으로 의인화했다. 포르투나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우리의 인생사를 가차 없이 주물렀고, 인간들은 그녀에게 굴복하거나 맞서 싸우거나 혹은 그녀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반면 근대 이후의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포르투나와의 악연을 끊기 위해 운이라는 미스터리한 개념을 설명하고 그 실체를 파악하게 도와줄 이론을 확립하려 했다고 저자는 책에서 밝히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운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가? 운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저자는 본다. 그러나 저자는 애초에 이 모두가 신화 속 괴물 같은 실체 없는 상대와의 전쟁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운이란 인지적 환상,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운을 설명하는 이론을 하나하나 파헤치고 반례를 통해 그 허점을 드러냄으로써 운이 실재하지 않는 허상이라고 주장한다.

신화에 이어 운에 관한 이론의 세 가지가 이 책에 등장한다. 확률 이론, 양상 이론, 통제 이론이다. 과연 이 이론들은 운의 실체를 드러내고, 우리가 이루어낸 성과에서 우리 자신의 실력과 운이 각각 얼마의 비율을 치지하는지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확률 이론에 따르면 발생 확률이 낮고 중요성을 띤 사건이 운과 관련되어 있다(즉 행운 혹은 불운이다). 복권 당첨은 발생 확률이 낮은 동시에 긍정적인 의미로 중요성을 띤 일이기에 행운이다. 반면 복권 낙첨은 발생 확률이 높으르로 운과 무관하다. 양상 이론은 양상적으로 취약한, 즉 아주 작은 변화로도 결과가 바뀔 수 있는 일이라면 운과 관련된 사건이 된다. 그러나 자연법칙처럼 양상적으로 견고한 사실은 운과 무관하다. 또 통제 이론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면 모두 운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복권 당첨도 낙첨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므로 각각 행운과 불운이 된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이론을 2장, 「운과 실력」, 3장 「양상 이론과 통제 이론」, 4장 「도덕적 운」, 5장 「지식과 우연한 발견」, 6장 「운의 비합리적 편향」 등으로 나눠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대부터 수학자들은 확률 이론으로 운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연은 신의 변덕이 아니라 수학 법칙에 좌우되므로, 운 또한 예측 가능한 법칙과 같다는 걸 증명하려 한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성공이나 실패에 운과 실력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 운과 실력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근세의 학자들은 수학이라는 살상 무기로 운을 정복하고 없애버리기 위해 확률 이론을 개발했지만 비선형적 상호작용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에서 궁극적 예측은 불가능했다. 누군가가 확률이 낮은 일에서 성공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실력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이나 뒷면이 연이어 나오는 경우처럼 무작위성이 드러나면 운과 실력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고득점 행진 기록을 세우고 있는 농구선수는 비범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아서 평소 이상의 성적을 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밖에도 확률 이론으로 운을 설명할 때 불거지는 문제로 준거 집합, 통계적 잡음, 규범적 요소 등이 있다.

가능성, 확률, 통계와 같은 것들은 기술적인 도구일 뿐 가치나 공적, 상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한다. 운에 관한 또 하나의 설명 방식인 양상 이론에서는 유의미하고 양상적으로 취약한 사건이 운과 관련된 것으로 간주된다. 까딱하면 잘못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수월하게 잘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운이 나쁜 것이다. 의미 없거나 양상적으로 견고한 사건은 운과 무관하다. 현실 세계에서 작은 변화 하나만 일어났다면 그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칭기즈 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오고타이 칸이 죽지 않았다면 수부타이의 몽골 전사들이 유럽 대륙을 짓밟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오늘날과 같은 유럽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양은 ‘순전히 운’으로 살아남은 것일까? 이것은 양상 이론은 가능 세계들 간의 거리를 본능적으로 측정하여 취약함과 견고함을 파악하는 방식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 이론은 세계 간의 거리를 결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으며 행운의 필연적 진리 같은 사례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세 번째 접근법인 통제 이론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사건을 운으로 상정한다. 하지만 어떤 사건에 대한 통제력을 직관적으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2012년 윔블던 대회에서 승산이 낮았던 루카스 로솔이 챔피언 라파엘 나달을 상대로 승리했다. 당시 로솔은 최고의 경기를 펼치기 위해 자신의 경기력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왜 그의 승리는 행운처럼 보일까? 이처럼 통제력의 실체는 모호하며 통제에 대한 우리의 직관은 신뢰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통시적 관점으로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의 일부로서 행운(혹은 불운)이라 판단되는 사건도 공시적 관점에서 보면 시간을 초월해 다른 사건들과는 무관해지고, 따라서 운과 무관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을 곧잘 겪는다. 선한 의지로 최선을 다해 도덕적 인생을 산다 해도 머피의 법칙 때문에 만사가 틀어진다. 어떤 행동의 옮고 그름을 따질 때는 그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요인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 도덕적 책임을 묻고 평가를 내리는 데 느닷없이 운이 끼어든다. 불운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식이다. 결국 또다시 운의 문제로 귀착되는 것이다.

윤리와 인식론의 많은 난제는 결과적 운과 태생적 운으로 설명된다. 우리 행동의 결과에 운이 끼어든다면,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해 얼마나 칭찬받거나 비난받아야 할까? 우리 삶의 행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의 범위, 도덕적 특권의 개념 등이 행운과 불운이라는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 도덕적 운의 심리적 원리를 설명해주는 방법으로 ‘사후 확신 편향’이 있으며, 사회적 운과 특권의 문제도 운 이론을 좀 더 넓게 확장시켜준다. 운은 지식 분야에서도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게티어 문제와 급진적 회의론 같은 결과적 운의 문제들, 그리고 오버턴 창문과 과학계의 우연한 발견과 관련된 상황적 운의 문제도 주목해서 읽어볼 만한 부분이다.

 


 

인류는 그동안 신학, 철학, 수학, 과학 등을 통해 운을 이해하고자 다채로운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여전히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흥미로운 여정이다. 플라톤 시대의 신화적 이야기부터 현대의 이론가까지 운의 역사를 일관하고, 운을 설명하고 그 역할을 밝히기 위한 이론과 논리를 다각도로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광범위한 영역에서 벌어지는 풍부한 사례를 통해 운이 정말로 실재하는지, 아니면 인지적 착각 또는 주관적 허상에 불과한지를 세세히 밝혀내고 있다.

이 책은 결론적으로 운은 인지적 착각이며, 우리의 운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확언한다. 플라톤이 이야기한 에르의 신화에서, 라케시스는 불운한 인생에 대한 책임은 그 삶을 선택한 자에게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서 운이 얼마나 작용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며, 운은 객관적인 속성이 아니라 우리가 주변 상황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 즉 주관적인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일의 결과 평가나 불확실한 미래에 덧씌워진 운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을 말끔히 걷어내고 모든 일에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이 책의 역자 이영아도 책의 마지막 부분 「옮긴이의 말」에서 "운을 이토록 이론적으로 철저히 파헤친 책이 또 있었나 싶다"고 저자의 노력과 예리한 분석에 공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학, 물리학, 스포츠, 정치, 경제, 역사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사례가 우리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는다. 옮긴이는 저자의 말을 인용해 "저자도 인정하듯, 운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논리적으로 이해하게 된 후에도 운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여운을 남긴다. 다만 우리가 행운아인가 불운아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순전히 우리 자신의 관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저자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결국 우리가 ‘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행운이 함께하길 기도하고, 서로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운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 대부분은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 되는 의례적인 말이다. ‘미신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하고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이다. 운의 종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운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잘못된 낡은 패러다임의 흔적으로 인지해야 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점액질형 인간이라고 부르거나(갈레노스의 4체액설), 모든 천체가 지구 둘레를 돈다고 주장하는(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로 말이다. 이런 이론들은 무해한 유물이 되어 우리 문화에 잔존해 있지만, 세상의 진리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p.311)

 

저자 : 스티븐 D. 헤일스(Steven D. Hales)

미국 펜실베이니아 블룸스버그 대학교 철학과 교수. 브라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주로 형이상학과 인식론, 대중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토리노 대학교, 에든버러 대학교, 런던 대학교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블룸스버그 대학교의 최고 강의상을 수상했으며 북미 인?무기물?질소 난연제협회(Pinfa-NA)의 경영 컨설턴트로도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것이 철학이다(This Is Philosophy)』, 『상대주의와 철학의 토대(Relativism and the Foundations of Philosophy)』, 『상대주의의 동반자(A Companion to Relativism)』, 『맥주와 철학(Beer & Philosophy)』 등이 있고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역자 : 이영아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사회교육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걸 온 더 트레인』, 『몹쓸 기억력』, 『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 『쌤통의 심리학』,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 『익명의 소녀』, 『라이프 프로젝트』, 『행복은 어떻게 설계되는가』, 『도둑맞은 인생』, 『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나에게』, 『쌤통의 심리학』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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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미스테리
디바제시카 지음 / 너와숲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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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추리소설을 좋아하지만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읽을 정도는 아니다. 예전에 책을 많이 읽을 때는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가 추리소설로 분류되어 무척 재밌게 읽었었다. 그 작품은 당시 김성종 작가를 우리나라 최고의 추리소설가로 만들어준 소설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러나 추리소설은 우리 소설사에 업적을 남길 만큼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독자는 기억한다. 독자 역시 그 이후 우리나라 작품보다 외국의 유명한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애거사 크리스티, 에드가 알렌 포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이후 직장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지 못한 시기를 거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책을 다시 손에 잡으면서 한두 권 추리소설을 접하면서 매우 흥미롭게 읽어왔다. 이번에는 일본의 추리작가로 명성이 높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 흠뻑 빠졌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일본에 이렇게 많은 추리소설 작가가 존재하는지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른바 베스트셀러 작가가 넘쳐나고 있었다. 매해 서너 권씩의 그들의 작품을 읽을 정도로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우리나라 추리소설 작가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 『토요미스테리』는 추리소설의 재미로 다가와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물론 이 책을 쓴 작가는 디바제시카란 필명의 한국인이지만 그가 창작한 소설이라기보다 기록과 사건의 기억을 통해 재구성한 작품이라 재미는 조금 떨어졌지만 한편으론 현실감이 더해 흥미로웠다.

 


 

이 책은 명실상부한 1세대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디바제시카를 더욱 독보적인 자리에 올려놓은 디바제시카 채널 속 〈토요미스테리〉 가운데 25가지 이야기를 뽑아 재구성했다. 〈토요미스테리〉는 전혀 헤아려지지 않는 표정에 나지막한 목소리까지 더해,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인기 유튜버 디바제시카의 이야기 구성력에 있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독자는 유튜버를 전혀 이용하지 않기에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토요미스테리〉는 최근 10년 동안에 224만 명이라는 구독자가 시청하고 있는 콘텐츠라니 놀랄 만하다. 미스터리는 그 자체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데, 여기에 디바제시카의 무표정한 얼굴과 음산한 목소리가 더욱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를 더해준다는데 기회가 있는 대로 한 번 들여다볼 생각이다.

독자는 모르는 일이지만 과거에도 공포나 미스터리를 주제로 하는 콘텐츠를 선보이는 1인 크리에이터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디바제시카처럼 진행자의 이야기로만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게 출판사 측의 전언이다. 거기에 적절한 음향과 자료 사진, 그리고 뉴스 전달자인 앵커처럼 차분하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디바제시카만의 이야기 전달 기법이 사람들에게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구독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다시 디바제시카는 스토리텔링북으로의 놀라운 데뷔를 단행했다. 지상 미스터리 쇼로 독자들을 초대한 것이다.

 


 

이 책에는 미국에서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랑스에 이어 한국과 일본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한눈을 팔 수 없는 기이한 이야기들이 담뿍 담겨 있다. 미스터리 팬이라면 결코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제목들이 우선 눈길을 끈다. 전문 추리·미스터리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극적 긴장감과 미스터리 부각 기술은 조금 떨어지는 것이란 선입견 때문인지 군데군데 조금은 덜 완벽한 구성이 엿보이지만 흘륭하고 섬뜩하기까지 한 삽화(일러스트)가 완벽하게 가려준다. 이 일러스트도 저자인 한재홍은 각 장에 삽입된, 등장인물의 광기 어린 표정과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표현으로 부족한 이야기에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저자 디바제시카의 차분한 스토리텔링 능력은 책 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한 사건을 다양한 방향에서 재조명하여 이미 알고 있던 사건도 뻔하지 않게 즐길 수 있다. 더불어 각 사건의 키워드를 영어 단어와 심리학 용어로 소개하여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건들, 비록 모든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는 않더라도 미스터리 에피소드가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토요미스테리〉는 사건의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진정성을 더해간다. 이미 수많은 시청자들이 즐겨 찾는 채널의 인기 있는 이야기를 엄선해 만든 이 책이 독자들에게 새로운 미스터리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리라 독자는 기대한다.

 


 

이 책의 서문에는 책 출간을 위한 저자의 취지와 도움을 준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저자는 2014년 시작한 〈토요미스테리〉가 햇수로 10년을 맞이했다고 밝히고, 자신이 직접 경험한 '미국 흉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국내외 범죄 사건, 공포 괴담, 쇼킹한 사건 사고, 역사적인 미스터리까지 소재가 다양화되고 전 세계로 범위를 넓히며 1200개가 넘는 스토리를 재구성해내는 등 그동안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저자는 얼마 전, 도대체 10년간 어떻게 동일한 콘텐츠 방향을 유지하며 채널을 성장시킬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지금도 여전히 소재를 선정하고 어떻게 하면 가장 생생한 대본을 만들지 고민하는 일을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덧 이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튜브 채널로 성장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저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스토리만 찾아 헤맸으나 이젠 즉각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더라도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해줄 수 있고,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들춰낼 수 있고, 소소한 감동까지 줄 수 있는 더 진정성 있는 〈토요미스테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책에는 10년을 되돌아보며, 꼭 다시 소개하고픈 스토리들을 모았다는 것. 특히 훨씬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를 더해 첫 번째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처음부터 아예 벌어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비극과 충격적인 스토리들은 그릇된 욕망을 추구한 인간, 위선의 가면을 쓴 인간, 분노를 통제하지 못한 인간 등이 출연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내면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며 어려움도 털어놓는다. 하지만 앞으로도 끊임없이 악의 축에 선 이들의 민낯을 파헤치며, 사건의 이면을 통해 ‘나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이 책의 목차에는 매우 자극적이긴 하지만 어차피 책으로 출간한 이상 좀더 진실에 가까운 제목으로 뽑기에 고민했고, 독자들이 제목만 보고 어떤 사건인지 알 수도 있지만 구체적 상황에 대해 자세히 모를 만한 내용을 극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좀더 시간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이 25개의 사건 중 「신혼부부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은 우리나라 사건을 다룬다. 독자의 기억으론 실제 TV를 통해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못 들은 것 같기도 한 사건이다. 2017년 4월 24일 우리나라에서 혼인신고를 마치고 일본 오사카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의 이야기다. 책에 따르면 비용상의 문제로 결혼식은 생략했지만, 양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성공한 두 사람은 이제 자신들의 앞에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들이 신혼여행을 떠난 다음날 신부 김나영(가명)의 부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딸이 일본 오사카에서 갑작스러운 발작과 마비 증세로 병원에 이송됐다가 결국 죽었다는 것이다. 사위 정경철(가명)은 국제전화비가 많이 나온다는 핑계를 대며, 이 중요한 소식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냈다. 신부의 부모는 어이없지만 오사카행 비행기를 탔다. 김나영의 죽음은 자살로 결론이 났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없고 몸에서 특별한 상처나 저항흔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체를 한국으로 가져오려면 전용비행기를 마련해야 하는 등 비용이 무척 많이 들기 때문에 현지에서 화장되었다. 신혼부부의 거주지인 세종경찰서에 같은 해 5월 4일 보험회사로부터 신고가 접수된다. 1억5,000만원의 보험금이 청구된 데 따른 것이었다. 여행자보험치고는 상당히 높은 보상금 때문이다. 이른바 '니코틴 살인 일기장'이 발견되고 이를 토대로 수사를 벌였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저자가 이 사건을 여기에 끼워넣은 이유는 '정황증거'가 채택돼 기소가 이루어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범행 과정을 이 서평에서 일일이 쓸 수는 없으니 독자들의 독서를 권유한다. 매우 자세하게 나와 있다. '증거 원칙주의'가 채택되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라는 면죄부를 줄 뻔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또 미국판 '고유정 사건'으로 불리우는 「조디 아리아스 사건」을 소개하면서 '인지부조화'란 심리학 용어를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현실을 파악하고 인지하는 능력이 상실된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인지부조화 증상을 겪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도 그 거짓이 진실이라 믿는다. 즉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사실을 자기 편한 대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진짜 현실과 현실을 거짓으로 만드는 인식의 불일치, '소시오패스'라고도 부르는 반사회적 부류의 인간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조디 아리아스는 바로 인지부조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그녀에게 불리해지자, 조디는 결국 2년 만에 자신이 트레버스를 죽였다고 자백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자신이 무죄라고 외쳤다. 트레버스가 사실은 변태적인 성도착이며 데이트 기간 내내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심지어 총으로 위협했으며, 툭하면 인신공격이나 음담패설을 일삼았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미성년자 음란 동영상을 시청하며 매춘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p.74)

 

저자 : 디바제시카

 

224만 구독자를 보유한 대형 유튜브 채널 <디바제시카>를 운영하며 미스터리, 사건사고 스토리텔링 분야에서 가장 독보적인 진행자로 인정받고 있다. 224만 구독자들을 매료시킨 그녀의 장점은 흡입력 있는 목소리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발음,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구성 등이다. 10대부터 60대까지 두터운 팬층을 자랑하며 유튜브 채널은 10년째 꾸준히 성장 중이다. 2019 <포브스 코리아>가 선정한 대한민국 파워 유튜버 30인에 선정된 바 있고, 성균관대에서 ‘컬처앤테크놀로지’, 세종사이버대학에서 ‘유튜버 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디바제시카의 미드나잇 잉글리쉬≫가 있으며, 2019년 ‘나만 뒤처진 것 같은 인생’이라는 단독 토크콘서트 개최를 비롯해 관공서나 기업체, 대학에서 인기 강연자로 활동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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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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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곧 죽음 위를 걷는 영혼의 그림자와 같다. 삶은 언제나 죽음을 밟고 서 있으며, 그 위를 걸어갈 수밖에 없다." 이 책에 수많은 격언 문구 중에 이 글이 독자의 마음을 특별히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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