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사회학적 읽기 - 우리는 왜 그 작품에 끌릴까
최샛별.김수정 지음 / 동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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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이 예술이 되고 어떤 것은 예술 작품에 끼지 못한다는 것은 누가 판별하는가? 예술 작품의 기준은 무엇인가? 예술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늘 고민했던 질문들이다. 각 시대마다 예술의 범주에 들 수 있는지 여부는 그 시대 예술가들의 총의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각 시대마다 나라마다 약간씩 다른 기준이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당대 그 지역의 기존 예술가들의 평가로 판별되는 것 같다. 이처럼 우리가 예술로 지칭하는 문학, 음악, 미술 등 오랜 역사를 갖는 예술은 어느 정도 정형화된 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예술을 누리는 사람들의 평가는 그 정형화된 틀 밖에서는 예술의 범주에 들어가기조차 어려운 장르도 있다. 이른바 고전음악에 대한 대중음악이 그랬고, 상업성 높은 영화는 예술 테두리에서 배제되기 십상이다.

이 책 『예술의 사회학적 읽기』는 사회학의 렌즈를 통해 본 예술을 이야기한다. 꽤 오랜 시간 우리나라의 아이돌 음악은 진정한 예술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고, 그 가수와 팬에게는 ‘딴따라’와 ‘빠순이’라는 비하하는 명칭이 붙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 아이돌 가수는 ‘아티스트’로 불리며, 팬덤은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존재로 주목받는다. ‘예술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뱅크시의 작품들은 그가 작품을 파괴하는 기행을 펼칠수록 오히려 값이 올라가고, 미국 팝아트의 거장 클래스 올덴버그의 거대 햄버거 조형물은 ‘작품’이 되었지만 고등학생들의 거대 케첩병 조형물은 해프닝에 그쳤다. 이 책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 작품이 예술이 되고 안 되고는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작품은 오로지 천재 예술가의 영감만으로 탄생할까? 이런 ‘예술 보는 눈’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자 주제이다.

 


 

앞서 던진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예술’과 ‘사회’를 함께 읽도록 제안한다. 그림,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문학 등 어떤 영역의 예술도 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하나의 작품에는 당대의 정치, 경제, 문화, 제도가 거울처럼 반영되어 있고, 그렇게 나온 작품 또한 사회를 변화시킨다. 예술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날 각광받는 대부분의 예술작품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협업으로 탄생하며, 그렇게 나온 작품이 ‘진짜 예술’로 인정받는 과정에도 사회적 힘이 작용한다. 심지어 어떤 작품이 ‘내 취향’이라는 느낌이 들더라도, 그 취향 또한 알고 보면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예술 관련 입문서들이 개별 작가와 작품, 장르나 기법, 역사 등에 초점을 둔다면, 이 책은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들을 드러냄으로써 색다른 방식으로 ‘예술 보는 눈’을 길러주기 위해 쓰였다고 이해된다. 공동저자 최샛별과 김수정은 인상파의 부상부터 BTS 열풍까지 여러 장르와 작품, 다양한 한국 사례들을 통해 예술작품들은 익숙하지만 ‘예술사회학’은 생소한 독자들, 미술관에 가면 왠지 모르게 위축되는 독자들도 예술에 흥미롭게 접근하도록 만들려고 이 책을 썼다. 예술사회학이란 학문은 우리 예술가는 물론 사회에서도 널리 알려진 학문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리 오래된 학문의 분야도 아니다. 예술사회학은 어떤 예술현상을 사회 현상의 하나로 간주하며, 특히 사회 내의 일정한 계급이나 집단과의 관련을 전제로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예술은 예술 내적인 여러가지 인자에 의해서 규정되나 동시에 표현이나 전달의 기능에 의해 사회에 작용하므로 이러한 예술과 사회와의 관련성에 대한 해명이나 규명은 예술학의 영역인 동시에 사회학적인 연구도 될 수 있다.

 


 

예술사회학(sociology of art)이란 예술의 창조나 대중에 의한 향수의 연구를 통해서 사회 기구의 인식을 목표로 하는 사회학의 한 부문이라고 백과사전엔 정의돼 있다. 세계미술용어사전에 따르면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경계로 하여 다소 그 양상을 달리한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예술의 생산과 수용에 미치는 사회적 규정 작용을 해명하는 것이 주요한 이론적 관심사였지만, 전후에는 훨씬 구체적으로 예술이 발휘하는 사회적 기능의 갖가지 모습이 학문적 조명을 받기에 이르렀다. 대체로 이러한 예술의 사회학적 연구에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의 구별에 관계없이, 기술의 발달이 물질적 생산량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교환되는 정보량도 비약적으로 증대시켜 결국에는 인간관계의 사회적 기초를 변혁시킴으로써 선진제국에 점차 대중사회를 성립시키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즉 기술문명이 낳은 사회적 모순들에 직면하여 전후의 미학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에 관계없이,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의 진보가 예술 그 자체의 성격을 변질시켜, 예컨대 대중예술과 같은 것이 사회생활 속에서 점차로 발언력을 강화해가고 있다는 사실도 예술사회학을 기대의 급선무로 간주하는 일부 미학자들의 동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텐느(Taine), 귀요(Guyau) 등이 예술사회학적 입장에 속하나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하우젠슈타인(Hausenstein)에 이르러 비로소 예술사회학이라는 명칭과 그 입장이 명확해졌다. 프리체 등이 이 분야에서 활약하였지만 이들은 도식주의적인 견지를 취했다 하여 비판받았다.

 


 

저자 역시 ‘걸작’의 조건은 무엇일까?로 접근을 시작한다. 범접할 수 없는 영감, 천재적인 발상, 세련된 기법, 높은 완성도 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사회학의 눈으로 보면 이 조건들은 상당 부분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지금껏 ‘예술 바깥의 일’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이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데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흔한 예로 우리는 영화를 ‘레드카펫’ 위 사람들의 작품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만, 영화 한 편이 완성되기까지는 감독과 배우 등 ‘핵심인력’뿐 아니라 섭외, 분장, 홍보 등을 맡는 ‘보조인력’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인상파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높은 명성은 생전에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화가 베르트 모리조의 ‘명성 관리’가 큰 역할을 했다. 수많은 화가 아내의 이름들이 그랬듯, 오늘날 모리조의 이름도 기억하는 이가 드물지만 말이다.

예술을 소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로맨스 소설은 흔히 가부장적 가치관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이 책에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로맨스 소설은 여성 독자들이 자기 시간을 갖도록 유도해 가부장제 질서에 균열을 내는 측면이 있다. 우리가 지극히 개인적인 호불호라고 믿는 소비의 ‘취향’조차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책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계급에 따라 그림을 선호하는 취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낸 부르디외의 연구를 비중 있게 소개하며 ‘인스타그램 속 미술관 사진’의 의미도 짚어본다. 이렇듯 예술과 사회를 결합해 읽는 예술사회학의 시도는 작품의 숨겨진 측면을 드러내며 색다른 작품 감상법을 제공한다.

 


 

예술과 사회가 맺는 ‘관계’의 눈으로 보면 아는 작품도 다르게 보인다. 저자들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당대 사회에 관해 많은 정보를 주는데(반영이론), 예를 들어 한국 근대문학 속 많은 주인공들이 결핵으로 죽어간 배경에는 당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그리고 작가들 자신도 피하지 못했던 결핵의 대규모 유행이 있었다. 여러 시대에 걸쳐 많은 화가들이 구약성서 속 인물 ‘유디트’를 성녀나 요부로만 묘사한 것 또한 미술계가 오랫동안 남성 화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왔음을 보여준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유명한 작품 〈마라의 죽음〉과 〈생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에서는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정치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작가의 실제 삶이 엿보인다.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을 넘어 변화시키기도 하는데(형성이론), 원작 소설이 영화로도 만들어진 〈도가니〉가 여론을 움직여 ‘도가니법’(성폭력범죄의처벌특례법 개정안) 제정을 이끌어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만화 〈아톰〉의 상상력이 일본에서 로봇 ‘아시모’의 개발에 큰 영향을 준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 또한 이러한 형성이론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데, 특히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경우 사회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대중문화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실제로 나치시대에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 등은 빼어난 영상미를 자랑하지만, 히틀러의 통치 전략으로 활용되면서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처럼 예술과 사회의 만남에 주목하는 것은 익숙한 작품들의 낯선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예술 자체에 대해서도 각자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끈다. 이는 장르나 기법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입문자들도 어렵지 않게 예술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이 책이 기존의 예술사회학 책들과 구분되는 점들 중 하나는 다양한 사례 인용에 있다고 한다. 기존 책들은 대부분 번역서라서 독자들이 한국 사례로 학습할 기회가 부족했는데, 이 책은 한국 드라마와 가수, 영화 등 우리가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사례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실제로 〈기생충〉과 〈아가씨〉 등의 영화뿐 아니라 〈SNL 코리아〉 등 TV 프로그램,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부터 하상욱 시인의 〈애니팡〉까지 여러 분야를 넘나든다. 이는 지은이가 14년 넘게 동명으로 대규모 대학 교양수업을 진행하면서 쌓은 노하우와 피드백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이 책은 예술이 사회를 반영한다는 생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이론부터 베버, 베커, 벤야민, 부르디외 등 다양한 사회학자들의 이론들을 소개한다. 핵심만 추려 본문 곳곳에 박스로 구분했기 때문에, 이론 설명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읽지 않고 건너뛰어도 큰 지장이 없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각 장마다 다양한 시각 자료가 배치되어 있으므로 작품 위주로 빠르게 살펴보는 읽기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는 인상파의 부상과 BTS 열풍 등의 주제를 예술, 사회, 생산, 분배, 소비의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입문 지식뿐 아니라 실전 적용 방법도 동시에 안내한다.

 

"히틀러는 정치를 종교적 속성의 아우라를 가진 예술과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정치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방지하고자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벤야민은 진품이 가진 아우라를 걷어내는 복제 기술의 또 다른 기능에 주목하며, 정치의 예술화에 대항하기 위해 예술의 정치화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과거의 예술과 달리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은 진품의 역사성과 일회성을 벗어나 있으며, 주술적·제의적 기능이 아닌 단순히 그 외형적 아름다움만을 표방하는 상품적 가치와 전시적 가치를 지니는데, 이로써 대중들은 예술작품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벤야민의 주장이다."(p.177)

 


 

저자 : 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예일대학교 사회학 박사. 한국문화사회학회 등재지 『문화와 사회』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그 외에도 『한국사회학』, 『사회과학연구논총』, 『문화경제연구』, 『여가학연구』등의 주요 학술지의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연구 관심 분야는 문화사회학, 예술사회학, 대중문화연구, 문화예술정책이며 현재 한국 사회의 문화 자본과 상징적 경계에 대한 연구, 세대문화연구, 한국 문화정책연구를 수행 중이다. 주요 저서 및 역서로는 『문화사회학으로 바라본 한국의 세대연대기: 세대간 문화경험과 문화갈등의 자화상』(2018 세종도서학술부문 우수도서-구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2019. 한국 연구재단 우수성과 50선 선정.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표창) 『문화사회학으로의 초대: 예술에서 사회학으로』(2004), 『현대문화론: 문화사회학자가 본 일본의 현대사회』(2004), 『문화분석: 피터 버거, 메리 더글라스, 미쉘 푸코, 위르겐 하버마스』(2003), 『만화! 문화사회학적 읽기』(2009, 공저), 『예술사회학: 순수예술에서 대중예술까지』(2010, 공역)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문화의 상징적 위계에 관한 조사: 한국사회의 고급문화는 무엇인가」(2014), 「한국사회의 문화자본은 존재하는가」(2006), 「불평등한 미래: 청소년의 ‘꿈’, 지위표식이 되다」(2020, 공동), 「Anything but Gugak and Trot: Symbolic Exclusion and Musical Dislike in South Korea」(2020, 공동 집필), 「A Cultural Map of South Korea, 2011」(2017, 공동) 등 90여 편의 저역서 및 논문을 저술하였다.

 

저자 : 김수정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국민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문화/예술사회학, 한류사회학, 문화예술교육 등을 가르치고 있다. 연구 관심 분야는 문화자본, 계급불평등, 세대문제, 대중문화, 문화정책 등이며 최근 논문으로는 「Anything but Gugak and Trot」(2020), 「불평등한 미래: 청소년의 꿈, 지위표식이 되다」(2020), 「한국 문화정책에서의 문화 개념에 관한 연구」(2020), 「1960~1980년대 한국 문화정책에 대한 재고찰」(2019), 「A Cultural Map of South Korea, 2011」(2017)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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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괜찮은 어른 -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내게 던지는 인생의 질문들
김혜민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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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지금보다 괜찮은 어른』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 책을 받아든 순간, '지금보다'라는 단어에 눈길이 더 간다. '괜찮은 어른'이란 정의도 정확히 모르는데 '지금보다 더'라니? 그러나 이 책을 펼쳐 들면 제목의 의미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요즘 우리 사회에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고들 한다. 갓 어른이 된 새싹 어른들의 “믿을 만한 어른이 없다, 닮고 싶은 어른이 없다”는 푸념에 어른으로서 응답하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특히 예전엔 '어른'이라는 단어의 뜻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일컬었다. 즉 성숙한 사람으로 책임감을 갖고 있는 성인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다. 그럼 '어른답다'는 건 당연히 책임감을 갖고 성숙한 사람답다쯤으로 해석해도 괜찮을 듯하다. 좋은 어른이란 무엇일까? 어른의 역할은 무엇일까? 생각이 깊어지는 질문이다.

저자 김혜민은 어른다운 어른, 좋은 어른,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 염치 있는 어른, 밥값 하는 어른을 말한다. YTN라디오 피디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 『지금보다 괜찮은 어른』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부끄러운 시대를 사는 지금, ‘어른의 태도’에 대해 말한다. 단절과 혐오가 깊어지는 시대에 어른으로서 자신과 타인, 공동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내가 속한 이 나라와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이 책은 시작됐다.

 


 

이 책은 염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염치가 있는 사람에게는 불편하지 않았던 사실이 불편해지고, 보이지 않았던 사람과 몰랐던 진실이 보이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에 연대와 환대라는 오지랖이 펼쳐지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저자의 말을 확인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단 한 가지도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깨닫는 것이 어른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태도다”라는 저자의 말에서 이 시대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는 말은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하는 긍정적인 성찰으로 수렴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함께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당신은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

저자가 말한 염치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으로 사전적 풀이를 넘어선 것으로 독자에게 읽힌다. 맹자가 말한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생각난다. 수오지심이란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맹자가 제시한 사단(四端) 중 하나이다. 사단이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있다. 맹자는 이것을 확장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가리키는 네 가지 덕성인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사덕(四德)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보았다. 맹자는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무수오지심 비인야)]'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수오지심은 의로움의 시작이다(羞惡之心 義之端也, 수오지심 의지단야)'라고 하여 사덕(四德) 중 하나인 의가 수오지심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저자가 말한 염치의 정의를 맹자에게서 찾아보았다.

 


 

40대인 저자는 여느 어른들이 그랬듯 20대에는 먹고살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해 정신없었고, 30대는 결혼, 출산, 육아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어느새 ‘불혹’이라 불리는 40대가 됐지만 여전히 어른이 어떤 사람인지, 어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과연 우리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었을까? 저자는 어른으로 살아온 20여 년을 돌이켜보니, 살면서 만나는 다양한 문제들의 답을 찾고, 내가 사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 어른이 되어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른’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의 단어이며, 나이가 주는 자격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갔는지가 주는 자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17년 가까이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질문과 의문을 던지고 받고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졌다. 좋은 생활인에 대해, 불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어른다움에 대해, 불평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모멸감을 이기는 태도에 대해, 나의 본질을 지키는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보고 듣고 말하고 기록했다. 그러다 보니 불편하지 않았던 사실이 불편해지고, 보이지 않았던 사람과 몰랐던 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고 미처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곳들이 하나둘 보이고, 이해되고, 공감하고, 나아가 함께 하게 되는 것을 어른이 돼가는 과정, ‘어른ing’라고 정의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어른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그는 사회에 대해 집중하고, 고민하고, 연대하기 위하여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애쓴다. 청년 문제를 비롯하여 서울시자살예방센터 등과 함께하는 자살 예방 활동, 자살자 가족들을 위한 활동도 그것이다. 고민 상담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20대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롤 모델 대신 페이스메이커가 되고자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을 사는 지금의 20대 어른들에게 희망을 가지란 말은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취업의 결과는 합/불 단 두 가지 밖에 없을지라도 취업의 과정은 여러 답이 있음을 얘기해 주려 한다. 서로를 격려하고 일으켜 세우는 것 역시 어른의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지 정말 알고 싶다면 오직 바라보는 것이다.” 저자는 영화 〈원더〉의 대사를 떠올리며 친절을 대하는 어른의 태도를 말한다. 어른이 될수록 선택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하고 있는데 그것은 좋은 선택이 좋은 인생을 끌고 오기 때문이라며, ‘친절함’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직업이 피디인 저자는 방송국에서 새로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어쩌면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이지만, 그는 할 수 있는 한 친절하고자 노력한다. 누군가에게 ‘능력 있는 피디’보다 ‘친절한 사람’이라고 기억되는 편이 훨씬 이득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내용과 거친 말로 항의 전화를 거는 청취자에게도 친절하면 성난 날이 금방 죽는다. 그 순간 친절을 선택하면 피곤한 일이 반으로 줄어든다.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행동이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더 우선이라는 말이기도 한데, 친절은 지혜로운 사람이 할 수 있는 인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생각해보면 숨이 턱 막히던 코로나 시절에 우리의 코끝을 찡하게 만든 것들은 대부분 친절한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요양병원에 혼자 있는 어르신 환자를 위해 무거운 방역복을 입고 고스톱을 쳐주던 의료인, 고생하는 의료진에게 남긴 메모 한 장, 많은 민원전화를 친절하게 받는 보건소 직원들, 어려움을 겪는 동네 가게를 찾아주던 손님들. 그 친절이 우리를 견디게 했다."(p.38)

친절하기 위해서는 경청하고 공감해야 하고, 너그러움을 가지고 참아주고, 마침내 도와줘야 한다. 친절은 이 모든 과정 이후에 얻을 수 있는 내면의 성과다. 살면서 생기는 모든 갈등은 경청, 공감, 너그러움을 행하지 못했거나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친절한 행동 한 가지로 인해 사람들은 경청, 공감, 도움, 너그러움, 끈기를 온전히 느끼게 된다. 『지금보다 괜찮은 어른』은 말한다. 누군가를 위해 넉넉한 어른이 되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지나친 경쟁과 반목, 냉소와 이기심 속에서 내가 선택한 친절함과 넉넉함이 우리를 함께 견디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 김혜민

 

YTN라디오 피디다. [뉴스 정면승부]를 만들고 있으며, [YTN라디오 생생경제]와 [김혜민의 이슈&피플]을 제작하고 진행했다. 인터뷰어로 살다 보니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질문과 의문을 던지고 받았다. 24시간 중 유일하게 앉아있는 시간은 방송할 때와 책 읽을 때, 책 쓸 때다. 보고 배운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열심히 보고 듣고 말하고 기록하다 보니, 보이지 않았던 사람과 몰랐던 진실이 보였다. 그리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에 연대와 환대라는 오지랖이 펼쳐지는 기적도 알게 됐다. 좋은 생활인, 좋은 부모, 좋은 어른,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른으로서 자신과 타인, 공동체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질문을 던질 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국무총리 표창(2022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2021년), 한국PD연합회 라디오 특집 부문 이달의 PD상(2020년), 한국기독언론인연합회 한국기독언론대상 생명사 부문 우수상(2018년), 한국자살예방협회 생명사랑대상 보도부문(2018년)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눈 떠보니 50』이 있다. "말이 많다. 산만하다. 시끄럽다.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 속에 남겨진 저에 대한 평가는 PD가 되기에 적합한 조건이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과 신뢰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이자 긍정주의자로 저를 성장시켰습니다. 끝없는 수다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최적화하여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바로 라디오 세상이었습니다. 종교방송인 극동방송 아나운서와 피디를 거쳐 현재는 보도전문방송 YTN 라디오에서 [생생경제]를 제작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라디오 부스 안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마음껏 만나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듣고, 묻고 싶은 질문을 마음껏 묻습니다. 그게 저의 업이고 낙이며, 삶의 목적입니다. 『눈 떠보니 50』은 라디오 세상에서 제가 보고 듣고 나눈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의 첫 번째 이야기 모음집입니다. 이 이야기가 나의 50대가 바뀔 것이란 희망을 주었듯, 당신의 50대 역시 바꿀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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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욕은 대개 부정적인 말로 쓰인다. 성경에도 욕심을 부정적 감정으로 본다. 성경에서는 욕심(慾心 , desire)을 무엇을 향한 절실한 바람이나 욕구(민 15:39)라고 풀이한다. 강렬한 성적인 욕망(롬 1:24; 딤후 3:6)도 포함된다. 마음을 거기에 두고 얻고자 하는 소원이나 집착(시 10:17)을 나쁜 것으로 판단한다.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마음(시 78:30; 막 4:19; 롬 6:12)이라는 것이다. 즉 성경에서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출 20:17; 민 11:4; 잠 1:19)는 것으로 성경 연구자들은 풀이하고 있다.

물욕이란 사전적 의미로도 재물을 탐하는 마음이다. 스스로 경계해야 할 마음가짐인 것은 분명하다. 저자도 “물욕은 소비의 기쁨과 죄책감 사이에서 나를 방황하게 하고, 줄어드는 잔고와 늘어나는 물건 사이에서 나를 갈등하게 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소비의 기쁨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버릴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 저자는 타협점을 찾는다. "과소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그런데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까 과소비는 아닌 걸로?!" 결론낸다. 저자에게도 물욕은 끊임없이 밀고 당겨야 할 ‘욕심’이고 자신의 정체성과도 관련지어서 이야기할 정도로 확실한 생각인 듯하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 욕망이 타인의 힐난의 대상이 되어도 될까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쇼핑을 좋아하는 것이, 브랜드 있는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비난받을 일일까라고 반문한다. 독자의 짧은 견해일지 모르지만 "물론 그렇지 않다". 자신이 일하고 벌어서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는 물건을 산다는 데 누가 비난할 수 있으랴. 그것은 시기이고 질투일 터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정당하게 번 재산은 타인의 침해로부터 보호받으며, 국가가 나서서 지켜주기로 약속한 시스템의 사회다. 자본주의 논리다. 저자의 능력대로 사서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는 일이라는 데 법적, 사회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저자도 끝없는 물욕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아마 도덕적 책임감이랄까, 윤리 의식 때문일까.

이 책 『오늘도 물욕과 밀당 중입니다』는 인간의 물욕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그림과 짧은 글로 표현해낸 에세이다. 아트디렉터로 일했으며 첫 책인 『딸하고 밀당 중입니다』로 독자의 큰 관심을 받은 저자 지모는, 이 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소재인 ‘물욕’에 대해 말한다. 자칭 타칭 ‘물욕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저자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이에 대해 무겁거나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는다.

 

 

위트 넘치는 그림과 재미 있고, 파편적인 짧은 글로 물욕에 얽힌 자신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가볍게 툭 던져놓을 뿐이다. 그럼에도 하나의 그림과 글 속에 물욕에 대한 저자의 가치관이 잘 함축되어 있고, 물욕을 향한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과 부당한 태도도 잘 녹아 있다. 이는 저자의 '명품 사랑'과 '소비 욕구'를 합리화하는 데 사용된다. 그렇기에 저자는 결론 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의 물욕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의 솔직담대한 성격을 독자도 인정하고 싶다. 이는 재물을 획득하기 위해 거짓말이나 폭력을 동반한다면 그것은 범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선호에 따라 명품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적 취향과 명품에 대한 저자의 선호다. 이는 범죄가 될 수 없고 개인의 취향으로 한다.

이래서인지 명품을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너무 쉽게 비난의 꼬리표가 붙지만, 타인의 삶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일 경우가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책에서는 자칫 정색하고 따지기 쉬운 ‘물욕’이라는 소재를,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천진한 시선으로 재치 있게 표현했다고 출판사 측도 소개한다. 그러나 물욕이 사회적 비판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비판하면 안 된다는 식의 의식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쓰는 크레파스로 사랑스럽게 그려낸 그림들과 개성 넘치는 캘리그라피로 써넣은 짧은 글귀들은,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과소비나 타물건의 비방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게 독자의 견해다.

 


 

이 책은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물욕이라는 욕망을 새삼 환기시키되, 이를 정색하고 진지하게 말하지 않는다. 재기발랄한 그림 한 장으로 물욕이 무엇인지를 함축해 보여준다. 자기 안의 물욕을 사람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표현한 그림과 글은,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 짓게 한다. 이 책에는 110여 장의 그림이 담겨 있다. 쇼핑할 때면 앞만 보고 내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경주마에 비유한 장면이나, 쇼핑의 즐거움을 쇼핑백 욕조에서 유유자적하는 인어공주로 표현한 장면 등, 모든 그림이 하나같이 너무나 천진하고 사랑스럽다. 특히 물욕이라는 모호한 욕망을 ‘물욕이’라는 캐릭터로 그려낸 장면들이 압권이다. 아울러 소비욕과 쇼핑욕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물욕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꾸밈없이 드러낸 짧은 글들도 아기자기한 재미를 준다. 이 책을 본 독자라면, 그동안 잊고 지냈거나, 내 안에서 끊임없이 싸워온 물욕이라는 욕망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는 저자가 물욕이란 점을 인정하고, 과소비나 분수를 지나치는 행위는 아니기에 비난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사회 공동체 전체가 물욕을 비난하다고 개인의 취향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는 타인에게 악 영향을 주는 글이 아니라면 이 책의 내용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100% 동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독자는 명품에 대해 '사랑한다'고 말할 만큼 명품을 이용해보지도 못했고, 저자의 솔직한 언급에 기대어 명품, 물욕 등은 진정성을 갖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게 하나쯤은 있다.

포기할 수 없는 그 하나 때문에 열심히 일하기도 하고, 살아가는 힘을 얻기도 하며,

관련된 지식과 경험이 깊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그리고 그것이 내겐 바로 물욕이라는 사실!”이라고 물욕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진정성 있게 설명한다. 저자가 거기서 행복을 느끼며, 그 행복을 누리려고 일벌처럼 바쁘게 일하는 것이라고 항변하듯 말한다. 항변하듯 하는 말은 안 했으면 싶다. 누구나 행복을 누리려고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늘 명품을 살 만할 정도로, 꼭 필요한 일에 사용할 정도로 충분한 보수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사실은 인류가 살아온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자본주의의 말이 등장한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 명품을 사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말도, 열심히 일하면 누구든지 명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스스로 좋아하면) 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무소유의 의미」란 제목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인용한다. 법정 스님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고귀한 것이다." 이 말은 법정 스님이 '무소유'가 뭔가에 대한 답변으로 알려져 널리 퍼진 것이다. 저자는 이 중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 비중은 둔다. 그리고 '풀소유'의 삶을 사는 자신과 다르면서도 깊이 파고 들어가 생각해보면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아니라 이면에 숨겨진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껍데기' 말고 '알맹이'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궤변이다. 소유욕으로 실은 화물이 배에 한 가득 찼는데 '조금만 더 함께하자'는 말과 함께 배 이름을 'owner ship)으로 표현한 것은 아전인수격이다.

 


 

물욕 : 재물을 탐내는 마음.

사전적 의미는 그렇지만, 물욕이라는 건 재물뿐만 아니라 내가 집착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집착이란 무엇일까?

집착 :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

마음이 확 쏠려 있고 그래서 도무지 잊지를 못하고 온 힘을 다해 매달리는 것, 그렇다면 결국 나는 집착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나에게 물욕이란 멈춤 없이 달리는 데 꼭 필요한 필수 에너지 같은 것이다.

 

저자 : 지모(한희경)

 

짧고 솔직한 글, 크레파스로 그린 다정하고 유쾌한 그림으로 독자에게 사랑받아온 그림 에세이 작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광고대행사의 아트디렉터로 일하며, 패션과 그림에 대한 자기만의 개성 넘치는 스타일을 완성해왔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물욕’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위트 넘치는 그림과 글로 재밌게 표현하며, 개인의 욕망이 타인의 무분별한 힐난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향해 솔직하고 과감한 생각을 보여준다. 문방구용 크레파스로 투박하게 그려낸 일러스트는 따뜻하면서도 천진한 느낌을 자아내며, 우리 마음속 순수함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저서로는 《딸하고 밀당 중입니다》가 있다.

instagram : jimo_project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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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소개서 - 45억 년을 살아온 행성의 뜨겁고 깊은 이야기 인싸이드 과학 4
니콜라 콜티스 외 지음, 도나티엔 마리 그림, 신용림 옮김 / 풀빛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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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구성과 본질을 초보자나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지진과 화산부터 지각과 기후, 판 구조론과 해저, 맨틀과 핵, 광물에 대한 지구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통해 지구 깊숙한 곳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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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소개서 - 45억 년을 살아온 행성의 뜨겁고 깊은 이야기 인싸이드 과학 4
니콜라 콜티스 외 지음, 도나티엔 마리 그림, 신용림 옮김 / 풀빛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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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5일 남태평양 퉁가 섬의 해저화산 '훈가 통가-훈가 하파이' 폭발 당시 발생한 화산 기둥이 57㎞까지 치솟아 역대 최고 규모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외신이 일제히 보도했다. 과학자들은 이번에 다중 위성 이미지로 높이를 측정하는 기술을 사용해 지난 1월 발생한 퉁가 화산의 폭발로 화산 기둥이 성층권을 넘어서 중간권에 속하는 57㎞ 높이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지에 발표됐다. 영국 국립우주연구원 소속으로 이번 연구를 주도한 사이먼 프라우드 박사는 “연기 기둥이 주로 물과 약간의 재, 이산화황이 혼합돼 구성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해저화산이 아닌 육상화산의 분출은 화산재와 이산화황이 더 많고 물이 적게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인상적인 것은 화산 폭발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일어났는지”라며, “30분 만에 57km 높이의 구름으로 변했다. 지상에서 보았을 때 어땠을지 상상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해당 논문의 공동 조자 앤드류 프라타 박사는 "나를 매료시킨 것은 우산 기둥 중앙에 있는 돔과 같은 구조였다. 나는 전에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북유럽의 섬나라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남서쪽으로 약 40km 떨어져 있는 파그라달스피아들(Fagradalsfjall) 지역의 화산도 폭발했다. 미국 IT매체 씨넷은 이 지역의 화산 폭발 모습을 1월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이 곳에서 화산이 분출된 것은 1240년 이후 처음으로, 약 800년 만의 일이다. 화산 폭발이 일어난 지 4시간 만에 화산 일대 사방 1km 지점은 용암으로 뒤덮였으나, 주변에 사람이 살지 않아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화산 분출은 많은 드론들이 동원돼 놀라운 사진과 영상들이 촬영됐다고 씨넷은 전했다. 씨넷은 드론으로 촬영된 영상 중 비욘 스테인백(Bjorn Steinbekk)의 촬영한 영상이 최고라고 소개했다.

 


 

위 두 건의 보도는 가장 최근의 화산 폭발 보도다. 두 곳의 위치가 가까운 데 있지는 않지만 지구가 늘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로 충분하다. 특히 퉁가 섬의 보도는 적잖은 우려를 내포하고 있다. 퉁가 섬이 기후변화를 가중시킬 염려와, 해저 화산은 쓰나미를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지구는 잠시도 쉼 없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다만 지구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이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고 현재까지는 정확한 지구 내 움직임을 관찰하거나 미리 알 수 없는 게 문제일 것이다. 지구의 인간이 달에 도착한 지 50년이 넘었고 최근에는 화성 거주가 가능한지 탐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뉴스도 있었다. 인간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지고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사는 지구 내부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발전을 이루지 못한 단계이다. 물론 지구 내부의 성분 분석을 통해 탐사가 쉽지 않고, 정확하게 관찰하기도 어려운 상태라는 점을 확인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지구에 대한 과학 연구가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지구 과학의 역사도 항공 우주의 역사 못지 않게 오랜 기간 과학자들이 연구했지만 아마 지구는 인간이 살기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연구나 탐사가 더디어졌을 것이란 예측은 가능하다. 평소 우리가 사는 지구는 고요하고 평온해 보인다. 땅과 바다, 하늘을 누비며 지구의 동식물들은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지축을 뒤흔드는 지진과 강력한 화산 폭발 등이 찾아올 때면 지구는 마치 웅크렸던 기지개를 켜는 것만 같다. 그때서야 우리는 어렴풋이 느낀다. “지구는 살아 있다.” 

 


 

이 책 『지구 소개서』는 살아 움직이는 지구에 대한 소개서이다. 이 소개서를 통해 지구는 표면적이고 단편적이었던 자신의 정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내면의 속 깊은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자신을 연구해 온 과학자들의 노력과 흥미로운 연구 성과도 함께 담고 있다. 맨틀의 하부에 약 35억년 전 생성된 넓은 잠재력 대륙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 지구 표면 환경의 변화와 생물 종의 멸종, 지구 내부 활동 사이의 연관성을 파헤치는 연구는 흥미진진하다. 물론 과학자들의 연구 대부분에는 같은 결말이 붙는다.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아직 미스터리한 행성 지구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여러 시도들을 담고 있다. 지구과학과 지질학적으로 지구의 구조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아직 더 파헤쳐야 할 지구 생명력의 비밀을 풀어낼 시스템을 찾아가는 과정 역시 담겨 있다. 이 책은 지구과학자, 연구 교수 등이 공동 집필했다. 지구 연구 분야에서도 여러 가지 로 나뉘어 있음을 독자들이 깨달을 수도 있다. 우리가 지구에 대한 관심과 접근, 분석과 탐색의 과정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구를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이끌어내는 데 큰 몫을 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지구를 이용만 할 것이 아니라 생물체로 인식해 병들지 않고, 스스로의 면역력으로 살아가는 데 인간이 나서야 한다는 데 초점을 모으고 있다. 지구 과학이 우리 인간이 하는 만큼 되돌려준다는 자연의 법칙에 존재한다는 점을 독자들이 예측할 수 있게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은 지구의 현재 상태와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 지구의 성격, 그리고 미래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인류의 삶과 종말과도 불가분의 관계임을 적시함으로써 지금 지구가 닥친 문제에 인간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깃들어 있다.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핵폭탄으로 시작된 지구 속 탐사」, 2장 「화산은 재앙일까, 축복일까」, 3장 「지구를 들여다보는 초음파, 지진」, 4장 「지각이 만들고 기후가 조각하다」, 5장 「판이라는 퍼즐로 맞춰진 해저 세계」, 6장 「움직이는 지구 관찰하기」, 7장 「껍데기를 벗겨 보니, 맨틀」, 8장 「지구의 심장, 핵 속으로!」, 9장 「생명의 흔적을 담고 있는 광물」, 10장 「우주 속의 지구」 등이다.

이 책은 '프롤로그' 「들어가며」를 통해 지금 지구 과학은 지구의 보이는 면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면까지 알게 되어, 우리의 행성을 말 그대로 재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지구의 중심으로 향하는 진정한 항해에 성공하면서, 지구 깊숙한 곳까지 관찰하고 다양한 가설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책은 놀랍게도 지구 과학의 폭발적인 발전이 핵폭탄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말한다. "우선 지구물리학의 연구 범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여러 탐지 방법이 개발되면서부터였다. 이에 따라 지구물리학자들이 지구 연구에 박차를 가하면서 소위 '지구의 분노'라 불리던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지진 또는 예측 가능한 사소한 현상을 포함해 모든 유형의 화산 활동부터 판 구조론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을 알아가면서 우리는 차츰 '모든 것이 움직여야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말을 이해하게 됐다고 밝힌다.

 


 

책에 따르면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핵폭탄을 만든 과학자 프랜시스 버치는 놀랍게도 지구물리학 교수였다. 그가 만든 핵폭탄은 지구에 커다란 재앙의 씨앗을 심어 줌과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인류가 지구 내부를 더 깊숙이 탐사하는 물꼬를 터 주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지진학자들은 지진의 위치와 지진파의 도달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지구 전체를 포괄하는 표준화된 관측소 네트워크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기회는 뜻밖에도 각국의 핵실험을 감시하던 세계 각지의 관측소에서 잡을 수 있었다. 최초의 핵 확산 금지 조약 덕분에, 이들 관측소에서 지진파 측정을 위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5억 년 이상을 살아온 행성 지구는 많은 내외부 변화를 겪으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고 아직도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지구 생태계의 막내인 인류가 나타나면서 지구는 또 다른 변화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최초로 지구를 인공적으로 진동시킨 핵이 등장하고, 인류세로 대표되는 인류의 흔적으로 기후가 변화하고 지각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 책 『지구 소개서』는 지구의 본질을 들여다보면서 인류로 인해 찾아올 커다란 변화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지구가 이루고 있는 완전한 균형을 제대로 이해할 때, 인류의 미래와 지구와의 공존을 지킬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구인이라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지구의 구성과 본질을 친절하게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지진과 화산부터 지각과 기후, 판 구조론과 해저, 맨틀과 핵, 광물에 대한 지구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통해 지구 깊숙한 곳으로 독자들을 초대하는 이 책은 지금도 움직이고, 갈라지고, 뒤틀리며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와 지구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완벽한 설명서이다.

 


 

판 구조론과 관련하여 대륙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첫 번째 확인은 우리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진 은하로부터 왔다. 천체는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 빛과 전자기파를 우주의 모든 방향으로 내뿜는다. 초장기선 전파간섭계라는 기술을 사용하여 은하에서 지구에 있는 2대의 망원경에 도달하는 빛의 시간차를 통해 두 지점간의 거리를 계산한다. 그러면 망원경 사이의 상대적인 거리를 mm 단위의 정밀도로 얻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지각 판에 설치한 안테나에서 이것을 여러 번 측정하면, 지각 판이 각자 이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p.126~127)

 

저자 : 니콜라 콜티스(Nicloas Coltice)

ENS(Ecole Normale Superieure) 고등사범학교 대학원의 교수이다. 그의 연구는 지구 깊은 곳의 역학과 우리가 살고 있는 표면과의 연관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저자 : 로망 졸리벳(Romain Jolivet)

ENS 콘퍼런스 의장이다. 위성 및 지진 관측 기술을 사용하여 지진을 연구한다. 왜, 언제, 어떻게 이런 현상이 촉발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주로 두 지진 사이의 조용했던 시간대에 중점을 두었다.

 

저자 : 장 아르튀르 올리브(Jean-Arthur Olive)

ENS 지질학 연구소의 CNRS 연구원이다. 그는 지각판 경계에서의 변형 물리학과 퇴적물, 열수 및 마그마 과정과의 상호 작용을 연구한다.

 

저자 : 알렉산더 슈브넬(Alexandre Schubnel)

ENS 지질 연구소 소속 교수이며 CNRS의 연구 책임자이다. 그는 최대 150km까지의 압력과 온도 조건을 재현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암석과 지진의 역학을 연구했다.

 

그림 : 도나티엔 마리(Donatien Mary)

스트라스부르 미술학과를 졸업한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조각가이다.

 

역자 : 신용림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한 후 통번역 활동을 해왔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마블 스튜디오 10주년 스페셜 매거진 2』, 『블랙 위도우 : 포에버 레드』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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