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 베이식 아트 2.0
제이콥 발테슈바 지음, 윤채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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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마크 로스코』는 한 위대한 화가의 작품집이기도 하고, 그의 일생을 기록한 전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 미술사 거장들을 만나볼 수 있는 베이식 아트 시리즈의 일환으로 출판됐다. 출판사에 따르면 베이식 아트 시리즈는 1985년 피카소 작품집을 시작으로 베스트셀러 아트북 컬렉션으로 거듭났다. 그 이후 간결하고 얇은 작가별 도서는 200여 종이 넘게 제작되었고, 20여 개 국어로 출간되었다. 이 시리즈는 뛰어난 제작 가치를 지님과 동시에 훌륭한 삽화와 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각각의 책이 지닌 주제 의식은 활력이 넘치면서도 어렵지 않아 가까이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2005년 첫 한국어판을 출간한 이후 15년 만에 새롭게 재출간되었다. 이번 〈베이식 아트 2.0〉 시리즈는 전보다 더 커진 판형과 도판으로 독자들에게 보다 생생한 작품 이미지를 전달한다.

마크 로스코(1903-1970)는 예술가의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옹호자였다. 작품 해설이나 구분에 반대한, 뉴욕에서 처음 형성된 추상표현주의 운동의 핵심 주역이었지만 로스코는 레이블*을 거부하고 ‘그림과 관람객 사이의 완전한 경험’을 주장했다.

*레이블은 라벨(label)이라고도 하며, 인쇄하여 상품에 붙여넣는 조각을 가리킨다. 종이, 중합체, 옷, 금속 등의 물질로 된 조각이다. 표찰이라고도 한다. 때로는 레터(letter)라 하여 포장에 첨부하거나 인쇄하는 경우도 있다. 레이블은 제품의 기원 제조업체(예: 브랜드 이름), 용도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포함하여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 중에는 영국]이나 미국에서의 음식 등에서 법에 의해 관리될 수 있다. ① 라벨의 효과적인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주목을 끌게 하고, ② 상품의 내용을 확신시켜 판매를 촉진하며, ③ 사용상의 주의사항을 표시하여 사용자에 편의를 제공하고 보호하는 수단이 되는 데 있다.

 


 

비유적인 작품들에 이어 로스코는 빨강, 노랑, 황토, 적갈색, 검정 및 녹색 등 대담한 색상으로 현재 그를 상징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 반짝거리고 생동감 있는 색 덩어리로 인간의 모습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상징적으로 표현하거나 모양을 넣었다고 강조한다. 이 강렬한 색채 형태는 인간의 모든 비극을 담고 있다. 그와 동시에 로스코는 작품의 표현 가능성에 대해 관객이 명시적으로 판단할 권한을 부여했다. 그는 “그림은 민감한 관찰자의 눈에서 확장되고 빨라진다”고 믿었다. 이 책은 로스코의 지적인 사고와 초기부터 가장 유명한 색채 분야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극적이고 친밀하며 혁명적인 작품의 영향력을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 제이콥 발테슈바는 박물관 전시 작가 및 비평가이자 독립 큐레이터다. 앤디 워홀 등 20세기 거장들에 대한 공부가 깊고 상당한 지식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르크 샤갈, 앤디 워홀 등 20세기 화가와 팝아티스트들에 대한 책을 다수 출간한 미술작가이기도 하다. 저자는 "로스코는 지식인이자 사상가이며 매우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음악과 문학을 사랑했고 철학, 특히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신화에 심취했다. 친구들은 로스코를 까다롭고 불안하며 성미가 급한 사람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성격이 급하긴 했어도 다정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로스코는 이후 추상표현주의자들로 알려진 미국인 미술가 운동의 주역이었다. 양차 대전 사이에 뉴욕에서 결성되어 뉴욕파라고 불린 이 그룹은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국제적 인정을 받았던 최초의 미국인 미술가 그룹이다. 로스코를 포함, 이 그룹에 속했던 많은 이들이 오늘날 전설이 되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 세계와 일생을 풀어낸다.

 


 

저자는 책에서 마크 로스코(1903~1970)는 추상회화의 본질과 형상에 혁명을 일으킨 미국인 화가 세대에 속한다고 구분한다. 로스코는 다양한 형상적 표현으로부터, 관람자가 회화와 맺는 적극적 관계에 뿌리를 둔 추상양식으로 이르는 양식적 발전은 회화에 있어서의 급진적 비전을 구체화했다. 로스코는 이러한 관계를 '회화와 관람자 간의 완전한 만남의 경험'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내 그림과 관람자 사이에 놓여서는 안 된다"라는 말에 따른 분석이라 한다. 저자는 로스코의 색 구성은 관람자를 내적 빛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이끌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주로 관람자의 경험 즉, 작품과 수용자의 언어적 이해를 넘어선 합일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로스코는 "어던 기호들로도 우리의 회화는 설명되지 않는다. 설명이란 회화와 관람자 간의 완전한 만남의 경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예술 감상이란 정신적 존재들 간의 진정한 결혼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결혼에서 초야를 치르지 않는 것이 무효선언의 근거가 되듯이 예술에서도 완전한 만남의 결여는 무효 선언의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는 점을 들어 평가한다.

저자는 19세기 후반 이래 현대미술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특히 파리 같은 활기찬 도시들이 현대미술 발전의 중심이 되었다고 밝힌다. 그러나 1차 대전, 2차 대전 이후부터 미국 미술이 점점 더 주도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미국이 떠오르면서 경제와 문화 등의 분야에서도 미국 주도적 흐름이 형성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로스코가 이 흐름에 존재하며 역할을 주도했고, 협력했다는 분석으로 보인다. 이른바 '뉴욕파'의 주역으로서 로스코가 활동한 것에 중점을 둔 것 같다. 실제로 1952년 근대미술관에서 열린 〈15인의 미국인전〉을 통해 뉴욕파는 국내외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로스코를 설명하기 위해 추상표현주의 등 미국의 현대미술에 대한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책에 따르면 추상표현주의라는 용어는 양식보다는 과정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행위에 의해 도출된 산물 즉, 예술작품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 그 자체의 작용으로부터 느끼는 것 즉,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운동의 주창자들에는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아돌프 고틀리브, 로버트 머더웰, 프란츠 클라인, 클리포드 스틸, 바넷 뉴먼 그리고 마크 로스코가 있다. 그들 모두는 유럽 미술 특히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 그리고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마송, 몬드리안, 탕기, 샤갈 같은 나치 시절에 미국으로 이주해 온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이 작가들의 작품이 시각적으로 같은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은 뉴욕 근대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로서 그 가운데는 모네의 후기작, 마티스, 칸딘스키, 마누엘 오로스코와 그 밖의 멕시코 벽화 작가들의 작품들이 있었다.

저자는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화가 일리엄 자이츠의 말을 들어 정의하고 있다. "그들은 완벽함보다는 표현을, 완성보다는 활력을, 휴식보다는 동요를, 알려진 것보다는 미지의 것을, 분명한 것보다는 베일에 싸인 것을, 사회보다 개인을, 외부적인 것보다는 내부적인 것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는 정해진 강령을 가진 단일한 운동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적 입장을 가진 느슨한 연합형태의 그룹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추상표현주의가 등장하기 전 1차 대전 이후 미국의 미술계에는 두 개의 흐름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지역주의라고 할 수 있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이다. 전자는 근면하게 일하는 시골 사람을, 후자의 작품은 대공황 시절의 미국 도시 생활을 반영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에 따라 45년에 걸친 마크 로스코의 활동 시기는 리얼리즘 시기(1924~1940), 초현실주의(1940~1946), 과도기(1946~1949), 고전주의 시기(1949~1970) 등으로 나뉘는데 이 모두를 그의 작품에 반영됐다고 저자는 확인한다.

 


 

이 책 『마크 로스코』는 모두 8개의 장(章)으로 나뉘어 구성됐다. 저자가 그의 일생과 작품 활동, 활동 무대, 작품 경향을 종합 분석해 시대를 구분한 데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1장 「드라마로서의 회화」, 2장 「러시아에서 오리건주 포틀랜드를 거쳐 뉴욕으로」, 3장 「마르쿠스 로트코비치, 마크 로스코가 되다:신화와 초현실주의」, 4장 「멀티폼-고전 회화에 이르는 길」, 5장 「로스코의 벽화와 팝아트의 대두」, 6장 「로스코 예배당과 테이트 미술관」, 7장 「로스코의 죽음과 유산」, 8장 「마크 로스코 삶과 작품」 등이다. 2장 「러시아에서 오리건주 포틀랜드를 거쳐 뉴욕으로」는 로스코가 러시아 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이 책과 두산백과에 따르면 로스코는 1903년 러시아의 드빈스크에서 마르쿠스 로스코비츠(Marcus Rothkowitz)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유대인으로 1913년 가족이 모두 미국 오리건주(州) 포틀랜드로 이민을 왔다. 1921년 예일대학교에 입학했으나 3년 만에 학업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한동안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들어가 맥스 웨버(Max Weber) 밑에서 공부했다. 웨버를 통해 컬러 페인팅 화가이자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밀턴 에이버리(Milton Avery)를 만났다. 에이버리는 로스코 회화의 초기 발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35년에 추상미술과 표현주의에 찬성하는 미술가 그룹인 ‘10인회’을 창립했다. 그리고 미국 미술가 협회와도 그룹전을 개최했다. 초기의 작품은 종이와 캔버스에 주로 인물과 풍경을 그렸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인 《지하철 Subway》 연작이나 《거리 풍경 Street Scene》에는 치밀한 기하학적 구도의 휘황찬란한 도시 풍경 속에 정신적으로 고립된 익명의 인간 군상들이 부유하고 있다. 그는 현대사회의 소통단절과 외로움이란 주제를 발전시켰고, 한 가지 주제를 다양한 소재로 변형해 그렸다. 비록 초기 구상회화이지만 이 작품들에서 이미 성숙기 회화의 특징인 수평과 수직의 구성과 색면 분할의 전조를 읽을 수 있다.

 


 

로스코는 유럽에서 나치의 영향력이 커지자 1938년 미국 시민권을 얻어 법적으로 완전한 미국인이 되었다. 1940년에는 이름도 마르쿠스 로스코비츠(Marcus Rothkowitz)에서 마크 로스코(Mark Rothko)로 개명했다. 이때부터 로스코의 예술은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후앙 미로(Joan Miro),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적 작품을 제작했다. 이 책은 그의 작품이 신화와 초현실주의 경향을 띠기 시작한 때가 로스코로 개명을 통해 미국인으로 거듭난 때와 함께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때부터 로스코의 예술은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후앙 미로(Joan Miro),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적 작품을 제작했다. 이 당시 그는 초월적 세계와 원시미술 및 고대미술 세계와의 교감에 매료되어 있었다.

1943년 이후 추상화가 클리포드 스틸(Clyfford Still)과의 우정은 로스코가 색면 회화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커다랗고 모호한 색면과 불분명한 경계선으로 이루어진 직사각형의 캔버스는 절망부터 환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의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1940년대 말에는 재현적인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고 오로지 물감이 캔버스 속으로 배어들게 하여 더 개성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로스코는 1950년에 뉴욕 화파의 일원이 되었고, 1954년부터는 시드니 재니스 화랑의 전속작가가 되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60년에는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며 당대 최고의 작가로 부상했다. 그러나 로스코는 자신의 사회적 명성에 대해 기꺼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미술적 진보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지 않았는지 두려워했다. 또한 예술이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극도로 불편해했다. 1964년 이후 로스코는 주로 어두운 색이 지배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말기 작품에서는 단 하나의 수평선으로 화면이 양분되는 등 구성이 더욱 단조로워지고 무거움과 우울함의 정조가 짙게 드리워졌다. 결국 그는 우울증과 건강의 악화로 1970년 2월 25일 뉴욕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확한 시점을 알 수는 없으나, 전쟁이 극심했던 시기에 로스코는 급격한 양식 전환을 꾀했다. 새로운 경향의 작품들은 친구 아돌프 고틀리브와 함께 작업하던 시기에 나왔다. 로스코는 어떤 것을 작품의 주제로 삼아야 할지에 대해 고틀리브와 끊임없이 토론을 벌였다. 이 두 화가는 미국 회화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확신했다. 또한 이들은 로스코가 지하철 그림 이후에도 피투라 메타피시카를 고수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했다. 토론에 자주 참석했던 바넷 뉴먼은 이들이 처했던 딜레마에 관해 훗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전쟁터가 되어버린 세상, 광기어린 세계대전의 대량 파괴 앞에 황폐해져가는 세상의 도덕적 위기를 감지했다..... 따라서 예전처럼 꽃이나 누워 있는 나신, 첼로 연주자 같은 것들을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p.32)

 

저자 : 제이콥 발테슈바

 

박물관 전시 작가 및 비평가이자 독립 큐레이터다.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와 뉴욕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마르크 샤갈, 알렉산더 칼더, 장 미셸 바스키아, 앤디 워홀 및 크리스토 자바체프의 작품에 관하여 수많은 책을 출간했다. 그는 뉴욕과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역자 : 윤채영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있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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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선사해준 사람
조조 모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살림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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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별을 선사해준 사람』은 표제어부터 매우 서정적이고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겨나온다. 20세기 초반 세계적 격동기를 지나 차츰 안정돼 가는 무렵 미국은 다시 한 번 대공황이라는 엄청난 시련에 부딪친다. 이 무렵 미국은 이미 강대국의 위치에 올라서 격랑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유럽 세계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발전에 본격 시동을 걸 무렵이다. 유럽에서는 제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쓸 때 미국 사회는 전승국인 데다 발전된 산업 기반으로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가던 때이기도 하다. 호사다마일까, 한바탕 전승국으로서의 유희를 끝낸 미국 사회에 예기치 못한 경제대공황이 불어닥친다. 이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경제부흥을 위해 내세운 '뉴딜 정책'으로 팔을 걷어부친 경제 재건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

이 소설은 숨 막히는 영국에서의 생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인공 앨리스는 잘생긴 미국인 청년 베넷과 결혼해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의 역동적인 재건 바람을 듣고 훨씬 자유롭고 역동적인 미국 사회를 동경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켄터키 또한 밀실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밖으로 드러난 풍요로운 땅, 검소한 생활, 국민이 강한 나라라는 정체성을 보여주고 되찾는 데는 짧지 않은 기간이 필요할 터였다. 1930년대 말 미국 대공황의 막바지로 접어들자 차츰 경제부흥에 성공이라는 확신이 들 무렵 미국 정부는 국민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이동 도서관’을 실히한다. 이 제도는 대통령 영부인이 주도하는 사업으로 도서관까지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말을 타고 외진 곳까지 가 직접 책을 빌려주는 책 대여 시스템이다.

 


 

전국적으로 실시된 이 사업은 잔혹한 현실과 새로운 희망이 싹트는 시기의 미국 켄터키주 동부의 탄광촌 깡시골까지 미친다. 어느 날 앨리스는 여성으로 구성된 사서 팀을 모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단번에 합류를 결정한다. 그리고 함께 뜻을 모은 다섯 명의 사서. 품속에 책을 넣은 채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켄터키의 풍경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사서.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서 펼쳐진다. 켄터키주 동부의 탄광촌 깡시골은 당시 만연했고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인종, 계급, 성별, 장애를 비롯한 인권과 관련된 갈등과 전반적으로 평등하지 못한 사회 인식 문제를 다각도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부인의 주도로 공공사업국에서 1935~1943년에 실시했던 ‘이동 도서관’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 이 다섯 명의 사서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당시 미국의 이야기다.

미국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시집온 영국인 앨리스 반 클리브, 베일리빌에서 안 좋은 쪽으로 명성을 떨쳤던 밀주업자의 딸 마저리 오헤어, 남자 형제만 있는 집안의 외동딸로 자란 베스 핀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이지 브레이디, 유색인 소피아 켄워스까지 각기 다른 성향과 배경을 가진 다섯 명의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성별, 집안 환경, 장애, 인종, 출신지 등 수많은 이유로 인해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로막힌다. 이 다섯 명의 사서 역시 본인들이 지닌 시대적 약점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본래의 자신을 잃어갔다. 이동 도서관을 통해 쌓아가는 사랑과 우정은 이들을 원하는 곳으로 안내하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심어준다.

 

 

이 시기의 미국 농촌에서는 지식의 바람이 불었다. 이동 도서관 사업은 배움의 기회가 현저히 적고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이가 태반인 산속 주민들을 문명의 앞에 한 걸음 다가서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바람은 켄터키주 베일리빌까지 불어와 ‘윤리적’이고 ‘보편적’인 규칙에 갇힌 삶을 살던 여성들의 닫힌 생각을 일깨워준다. 말을 타고 깊은 산속의 집집마다 직접 방문하여 책을 빌려주는 이동 도서관의 사서들은 마저리를 중심으로 앨리스, 베스, 이지로 구성되고 후에 소피아가 합류하여 이들을 지원한다. 처음에는 이웃의 방문조차 꺼리며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경계하던 산속 주민들은 점차 이 네 명의 여성 사서들의 진심과 정성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간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배운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격언이다. 배운 사람들은 캔터키 깡촌까지 찾아들 리 없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남녀평등, 인종 차별, 장애에 대한 인식, 노사 갈등,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비롯한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고충에서 보면 말 그대로 사회 사각지대다. 그러나 이들이 사각지대에 갇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것은 배우지 못해서이다. 그 무지는 모르는 것뿐만이 아닌 알려고 하지 않는 태도가 더 문제일 것이다. 주변을 위해, ‘나’를 위해 비난하거나 포기하기 전에 타인을 알고 ‘나’를 마주보려 노력한다면,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갈등이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 이 책은 주목한다.

 


 

다섯 명의 사서들도 각자 개성이 강하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오지만 기대와는 확연히 다른 결혼 생활에 실망한 앨리스. 부부관계를 갖지 않는 남편과 부부의 일에 너무 깊게 관여하고 보수적인 시아버지 사이에서 지쳐가던 그녀는 시댁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동 도서관 사업의 사서로 지원한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통하며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간다. 마저리는 마을에서 유명했던 폭력적인 밀주업자 아버지의 아래서 자라 보수적이고 신앙심 강한 마을에서 유독 자유롭고 자기주장이 강한 튀는 성격의 소유자다. 마을 이동 도서관 프로젝트의 주축으로 다른 사서들을 이끌고 사업을 진행하는 데 앞장선다. 그녀에겐 그녀와의 결혼을 원하는 오랜 연인 스벤이 있다. 서로 사랑하지만 결혼이라는 틀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던 마저리의 신념으로 인해 결혼하지 않고 연인의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세상에 오로지 자신의 생각과 신념만이 가득했던 마저리는 이 사업을 통해 겪는 모종의 사건들과 예기치 않은 출산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소통하며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 나간다.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 거칠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베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에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자신없는 태도로 일관했던 이지 역시 이동 도서관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일에 보람을 느끼고, 사서들끼리 우정을 나누면서 자신의 세상을 깨고 나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사서들을 지원하기 위해 중간에 합류한 유색인 소피아 역시 자신의 잘못이 아닌 그저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로 세상에 소극적이던 태도를 우정을 위한 용기로 바꿔나간다.

 


 

이렇듯 각기 다른 배경과 성향을 가진 다섯 명의 여성 사서들은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채 바보 같은 인형처럼 그저 예쁘게,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이동 도서관 사업을 통해 서로를 만나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잊고 있던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믿음을 키워 나간다. 또한 미래를 원하는 방향으로 개척해나가며 고난이 닥쳐와도 서로를 홀로 고통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우정과 애정을 보여준다. 이는 스스로가 알을 깨고 나오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무엇을 위해 맞서고, 무엇을 위해 희망하고 사랑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자신의 선택을 믿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여러 경직된 사회 문제들을 실제 역사적 배경에 빗대어 풀어나간 이 책은 이유도 모른 채 만연한 서로를 향한 증오의 목소리를 누르고 상처받은 개인에게 위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그들의 삶이 얼마나 잔인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사서들에게 도서관은 도서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들에게 도서관은 내면의 공허함, 의지, 생각, 주권, 의무, 책임, 투쟁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성장의 디딤돌이다. 평등을 잊은 사회 속에선 안전한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여성은 미소를 짓고 움직이지 않으며 소리 없이 그저 장식하는 존재가 아니다. 몸이 불편하다고 말을 탈 수 없는 것도 아니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같은 공간에 있지 못할 이유도 없으며 노동자는 노예나 소모품이 아니다. 누구나 원하는 것을 마음껏 이룰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누구도 그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 다름이 불쾌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조조 모예스의 좋은 이야기가 가져다주는 재미와 희망을 간절히 기다린 독자들에게 사랑, 혐오, 기쁨, 우정, 고통, 슬픔, 분노까지 모든 종류의 감정으로 가득 찬 이 책은 선물과도 같을 것이다. 또한 책 속의 눈부시게 용감하고 활기차고 영리한 여성들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 남성들이 우상화하던 여성이라는 존재를 추모하게 될 것이다.

 

“스벤, 내겐 아무것도 없어. 자유도 없고 존엄성도 없고 미래도 없어. 내게 남은 거라곤 이 애, 내 심장,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다른 삶을 살길 바라는 희망뿐이야. 그러니 날 사랑한다면, 내 부탁을 들어줘. 내 딸이 어린 시절에 감옥이나 찾아다니는 걸 바라지 않아. 당신과 아이가 매주, 매년, 주립 교도소에서 머리에는 이가 들끓고 구정물 냄새를 풍기면서 시들어가는 내 모습을 보는 걸 원하지 않아. 그런 모습을 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우리 애를 행복하게 해줘. 내 이야기를 할 때는 이 이야기 말고, 찰리를 타고 산속을 다니던 이야기를 해줘. 내가 사랑하는 일을 했던 이야기를.” (p.354)

 

저자 : 조조 모예스(JOJO MOYES)

런던에 있는 로열 홀로웨이 대학(RHBNC)에서 공부했고, 시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배웠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인디펜던트」에서 1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한 뒤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그녀는 전 세계적으로 1,400만 부 이상 팔린 『미 비포 유』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미 비포 유』는 동명의 영화로도 각색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첫 책인 『Sheltering Rain(비를 피하기)』 이후 『원 플러스 원』 『허니문 인 파리』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더 라스트 레터』 『스틸 미』 등의 소설을 썼는데, 모든 작품이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46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12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4,000부 이상 팔렸다. 로맨스의 여왕이라는 수식이 붙는 그는 로맨스 소설 협회상을 두 번 받았다. 최신작 『The Giver of Stars』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으며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역자 : 이나경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르네상스 로맨스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서로 『메리, 마리아, 마틸다』, 『어떤 강아지의 시간』, 스티븐 킹의 『샤이닝』, 『피버 피치』, 조조 모예스의 『애프터 유』, 제프리 디버의 『XO』, 제시 버튼의 『뮤즈』, 『살아요』, 『배반』, 『좋았던 7년』, 내가 혼자 달리는 이유』, 『세이디』, N. K. 제미신의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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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9 : 이아손 아르고스 코르키스 황금 양털 - 정재승 추천, 뇌과학을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로 신화읽기 그리스·로마 신화 9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정재승 추천 / 파랑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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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보편적이지만 용기는 그렇지 않다. 누구나 불안을 느끼지만, 모두가 그것을 이겨 낼 용기를 가진 것은 아니다. 용기는 삶에서 얻은 작은 성취들을 쌓으며 학습하고 배우는 것이다. 이 책에 용기를 낸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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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9 : 이아손 아르고스 코르키스 황금 양털 - 정재승 추천, 뇌과학을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로 신화읽기 그리스·로마 신화 9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정재승 추천 / 파랑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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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알기로는 그리스·로마 신화는 고대 그리스에서 발생해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신화이다. 제우스, 헤라, 디오니소스 등 그리스의 신들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으로 다가온다. 신화는 고대인의 상상 세계가 만들어 낸 이야기지만 수천 년이 지난 현대에도 ‘살아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그리스·로마 신화가 철학자와 역사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미술과 문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으며, 과학기술 분야의 용어가 될 정도로 서양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아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대부분은 로마로 건너와 그리스의 신들 이름을 로마식으로 바꾸고 내용을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그리스신화가 중심이고 주된 바탕이다. 서양에서는 로마라는 나라가 최초의 제국으로서 갖는 의미가 대단히 컸기 때문에 그리스·로마 신화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신화는 고대인의 상상 세계가 꾸며낸 신(神)들의 이야기지만, 수천 년이 지난 현대에도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표현이다. 엘리아데는 신화란 '창조를 서술하는 이야기'로 파악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신화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행위를 통해 하나의 실재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준다. 따라서 신화는 언제나 ‘창조’를 이야기한다”라고 주장한다. 즉, 신화는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시원(始原)을 이야기해 왔다. 이러한 신화 이야기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더욱 풍성해지고 복잡해졌다. 이 책 『그리스·로마 신화 9』는 '용기'를 선택해 저자가 다시 기술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이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인문학적 산물이다. 인간은 왜 신들의 영역을 문학적 작품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유구한 역사 속에서 반복하여 탐독해왔을까? 그리고 왜 입에서 입으로 그 이야기를 딸과 아들들에게 들려주어온 것일까요?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측에 따르면 아마도 완전함과 영원함을 추구하고 싶었던 인간의 마지막 염원의 영구적 표현이 바로 신화라고 판단한 데 따른다. 서양문화뿐만 아니라 동양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입으로 전해 문자로 기록하고 또다시 입으로 전달해온 살아있는 문화유산이 바로 신화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 전 세대를 아울러 끊임없는 학구적 영감을 불러일으켜온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가 추천한다. 정재승 교수는 인간을 이해하는 뇌과학의 12가지 인지적 키워드를 통해,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신화 읽기를 시작해보기를 권유한다. 여전히 청소년들에게는 잊지 못할 지식의 스펙트럼을 넓혀줄 것이고, 신화를 무심코 지나쳐온 성인들에게도 인문학적 품위를 재정비하는 행복한 경험을 열어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신화가 우리의 인지적 경험을 넓혀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재승 교수가 각 권마다 정성스러운 추천사 집필과 키워드 제시를 통해 이 작품을 직접 추천하는 것이다. 저자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Menelaos Stephanides)는 아테네에서 태어난 경제학을 공부했다. 이후 신화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설화를 발견하고 연구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지식으로, 『동화로 읽는 그리스』를 위해서 25년간 준비를 했다.

 


 

정재승 교수는 이 책의 추천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문화적 차이가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회에서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로마 신화를 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스·로마 신화가 젊은이들에게 어떤 미덕을 가르치기에, 시대를 막론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일까? 나는 그 해답이 ‘용기’에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그 자체로 용기에 관한 이야기이며, 젊은이들에게 ‘용기의 위대함’을 가르치는 이야기이다.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먼바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과연 우리가 거대한 풍랑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는 더욱더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불안해한다. 우리들의 사춘기는 바로 이런 ‘불안’으로 가득하다. 과연 나는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지, 넓은 세상에 나가 무슨 일을 하며 살게 될지 알 수 없기에 무척 불안하다. 가끔 허세를 부려 보기도 하지만, 이내 불안이 엄습해 온다. 나의 운명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되기만 한다. 또한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용기를 내어 불안을 이겨내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맞선, 그래서 바다 건너 먼 곳으로 떠나 풍랑을 헤쳐 나간 신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 책은 엄청난 부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황금 양털. 그것을 손에 넣으려고 많은 이들이 모험을 꿈꾸고 계획했으나 자신의 목숨을 걸기는 꺼렸다. 불을 내뿜는 무시무시한 용이 지키는 황금 양털은,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긴 시간 동안 그렇게도 간절히 원하는 꿈의 보물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이 불가능한 일을 성취한 자가 있다. 바로 이올코스의 영웅 이아손이다. 그는 수많은 영웅을 모아 원정대를 소집하고, 가장 훌륭한 기술자인 아르고스로 하여금 최고의 배 아르고선을 만들게 한다. 머나먼 코르키스로 가는 동안 원정대는 폭풍과 파도와 같은 자연재해에서부터 신들의 저주 혹은 유혹, 타인의 계략뿐만 아니라 사랑과 이별, 우정과 배신 등 어쩌면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일을 겪었다. 그리고 결국 길고 긴 모험을 마치고 황금 양털을 고국으로 가져갔다. 만약 이아손의 환향 뒤 마냥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로 끝났다면, 그리스·로마 신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오랜 세월 찾아 헤매던 귀한 보물을 손에 넣었으나 그 물건이 가져다준다던 진정한 부와 행복은 따라오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리스·로마 신화 제9권이 말하는 ‘진정한 용기’란 과연 무엇일까.

 


 

이제 이 책을 통해, 신이 아닌 ‘인간의 용기’를 변환시키는 일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그리스 신화에서 황금 양털을 획득하기 위해서 영웅 이아손이 기도한 원정에 참가한 일군의 영웅의 총칭으로 '아르고선의 승무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에 얽힌 모험담을 '아르고나우티카(아르고나우타이 이야기)'라고 하며, 호메로스조차 주지의 이야기로서 언급하는 오래된 전설로, 헬레니즘시대의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의 작품을 비롯해서 그외에 2편, 이 표제의 서사시가 전해지고 있다. 세부적인 것에 대해서는 많은 이설이 있다고 종교학대사전은 기술한다. 이에 따르면 데사리아의 이올코스의 영주 이아손은 이복형제인 펠리아스에게 왕위를 찬탈당했는데, 그 아들인 이아슨은 영웅의 교육자로서 명성높은 켄타우로스의 장 케이론에게 맡겨졌다. 성인이 된 이아손은 귀국 도중 헤라여신이 변장한 노파의 도하를 도와 한쪽 발의 샌들을 잃은 채의 모습으로 펠리아스왕의 앞에 나타나, 왕위 반환을 요구했다. '한쪽 발만 샌들을 신은 남자에게 왕위를 빼앗긴다'라는 과거의 신탁을 떠올린 왕은 당황해서 왕위 반환의 조건에 난제를 주었다.

그것은 왕의 종형인 프릭소스의 영을 기리기 위해서 흑해의 오지 코르키스국에 가서 금양털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원정을 결의한 이아손의 밑에는 헤라의 유도로 50명 정도의 영웅이 전 그리스에서 모여들었다. 조선공인 아르고스(Argos)는 아테네여신의 가호하에 50명의 자리를 가진 인류 최초의 대선을 만들고, 아테나도 유명한 제우스의 신탁소 도도나숲의 목재에서 사람말을 하는 불가사의한 나무조각을 만들어 뱃머리에 붙여서 아르고선('신속호'라는 뜻)이라고 이름붙였다. 승무원에는 대장인 이아손 외에 베레우스, 테세우스, 아도메토스, 오르페우스, 메레아그로스, 헤라클레스 등 트로이 전쟁의 영웅의 1~2세대 이전의 유명한 영웅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가는 길에 발생한 주된 일로서는 여자만의 섬 레무노스에서 환영받아서 오랫동안 체류한 것, 뮈시아에서는 헤라클레스가 데리고 온 힐라스가 요정에게 납치당해서 헤라클레스는 그를 찾아서 원정을 중단한 점, 흑해 입구의 난소 심프레가데스를 예언자 피네우스의 조언으로 극복했다는 것 등이 있다.

 


 

이아손이 골키스왕 아이에테스에게 황금 양털을 요구하자 왕은 몇 가지의 난제를 주었다. 청동의 발을 가지고, 입에서 불을 뿜는 목우에게 멍에를 씌어서 알레스신의 성지를 경작할 것. 거기에 왕이 주는 용의 이빨을 뿌리고, 태어나는 무장의 용사들을 격퇴할 것이었다. 두 가지 모두 이아손을 사랑한 왕녀 메디아의 마법의 약과 조언으로 끝마쳤으나, 왕은 금양 털을 주지 않았으므로, 이를 지키는 백 개의 눈을 가진 용을 역시 메디아의 조력으로 잠들게 해서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원정대는 메디아와 그 동생과 함께 귀향길에 올랐다. 부왕의 추격에서 피하기 위해서 메디아는 동생을 죽이고, 토막을 내서 바다에 던졌다. 귀로에 대해서도 『오디세이아』에 유사한 많은 해상모험담과 함께 여러 시대에서의 그리스인의 지리적 관심과 지식을 반영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그 대략적인 틀을 비롯해 개개의 에피소드에는 옛날 이야기적 색채가 농후한데, 초기 그리스인의 항해 경험, 특히 기원전 7세기에 흑해 연안에까지 이른 미레토스시의 식민 활동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또한 주인공 이아손과 메디아의 후일담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디아』에서 알 수 있다.

이 책의 첫 부분에 나오는 프릭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보이오티아의 왕 아타마스와 구름의 님프 네펠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헬레와는 쌍둥이 남매지간이다. 아버지 아타마스는 네펠레를 버리고 카드모스의 딸 이노와 다시 결혼하는데, 의붓어머니인 이노는 전 부인 네펠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을 미워해서 죽이려고 계략을 꾸몄다. 이노는 여자들에게 남자들 몰래 밀알 종자를 볶게 했고 이듬해 남자들은 그 씨를 뿌렸다. 곡식이 전혀 자라지 않게 되자 아타마스는 텔포이로 사람을 보내어 흉년을 벗어날 길을 묻게 하였는데 이노는 예언자를 미리 매수하여 프릭소스의 목을 희생제물로 바치면 기근이 멈출거라는 신탁을 내리게 만들었다.

 


 

백성들의 강요로 아타마스는 프릭소스를 죽이려고 제단에 세웠는데 네펠레가 프릭소스와 헬레를 구해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본 제우스가 헤르메스와 황금양을 보내서 프릭소스와 헬레를 구출하였다. 프릭소스와 헬레는 그 황금털의 양을 타고 바다를 건너 도망치는데 헬레가 어지럼증을 느껴서 바다에 빠져서 죽고 프릭소스는 콜키스로 무사히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프릭소스는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환대를 받았고, 자신의 딸 칼키오페와 결혼시켰다. 프릭소스는 자신의 도망을 도와준 황금의 숫양을 제우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고 황금양모는 아레스의 거룩한 숲의 참나무에 걸어놓고 보물로 지키게 하였다. 이 황금양의 전설이 나중에 아르고호의 전설의 기원이 된다. 프릭소스와 칼키오페 사이에서 아르고스, 멜라스, 프론티스, 퀴티소로스가 태어났다.

이 책의 주인공 이아손은 아르고호라는 커다란 배를 건조하여 그리스의 이름난 영웅들을 이끌고 갖가지 난관을 극복한 끝에 콜키스에 도착한다. 그러나 콜키스의 왕인 아이에테스는 그에게 입에서 불을 내뿜는 황소로 밭을 갈고, 거기에 용의 엄니를 뽑아 뿌리면 그가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낸다. 이아손은 아이에테스의 딸이며 마녀인 메디아의 도움으로 그 일을 해내고 황금의 양모피를 손에 넣은 뒤 메디아를 데리고 귀국한다. 그러나 그 동안에 펠리아스는 아이손을 죽였으며, 이를 안 이아손은 메디아의 힘을 빌려 펠리아스를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 그러나 왕을 죽인 두 사람이 그 나라에 그대로 머물 수는 없어 함께 코린트로 달아났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이아손과 메디아 사이에는 두 아들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날 코린트 국왕의 딸 글라우케와의 결혼 제안이 온다. 그와 결혼함으로써 얻게 될 코린트에서의 권력에 욕심이 난 이아손은 메디아를 버리고 글라우케와 결혼식을 올린다. 이에 격분한 메디아는 왕과 신부, 그리고 자기 두 아들까지 죽이고 멀리 달아나버린다. 실의에 빠진 이아손은 자살했다고도 하고 혹은 아르고호의 썩은 선재(船材)에 머리를 맞고 죽었다고도 한다. 이아손 이야기는 비극으로 마친다.

 


 

"이아손의 머리는 이런 질문들로 혼란스러웠다. 그는 아르고선의 뱃머리가 만들어 주는 그늘에 누웠다. 잠이 찾아왔다. 그가 자고 있는 동안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을 견디지 못한 헤라의 성상이 이아손 위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이리하여 수많은 위험을 이겨 낸 이아손은 어처구니없이 죽었다. 그의 수호자엿던 헤라는 드디어 자신이 사랑하던 영웅을 버렸다. 헤라가 죽이려고 한 것이었을까? 벌이어었을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p.322)

"많은 학자들은 황금 양털이라고 하는, 부와 풍요를 가져다 준다는 이 부적은 다름 아닌 금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르고선 대원들이 금을 잔뜩 싣고 왔는지 아닌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업적은 위대한 것이다. 그들은 용기와 의지의 바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괴물 등이 도사리는 새 길을 개척했다. 이들의 대담함으로 심플레가데스는 닫히지 않았으며 몇 세기 안에 그리스 배들은 흑해 연안의 코르키스에서 프랑스, 스페인의 해안까지 모두 개척하여 새로운 도시를 세웠다. 또 동쪽과 서쪽의 문화를 모두 가져오게 되었다."(p.323)

 

글 :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Menelaos Stephanides)

 

1923년 아테네에서 태어난 작가는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이 후 신화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설화를 발견하고 연구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지식으로, 『동화로 읽는 그리스』를 위해서 25년간 준비를 했다. 1989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어린이 문학상인 피에르 파올로 베르제리오상을 수상했다. 현재 수많은 그리스 설화를 통해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따뜻한 꿈을 전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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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사람들 - 사람을 얻고 쓰고 키우고 남기는 법
김영수 지음 / 유노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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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시대(기원전 770~기원전 221)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아우르는 말이며, 기원전 770년 주(周)왕조의 천도 후부터 기원전 221년 시황제(始皇帝)가 통일한 시기를 말한다. 550년간 지속했으며, 중국사상의 개화 결실의 시기였다. 이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라 하며 그 학파들을 백가라 부른다. 제자백가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다. 주나라가 견융족에 의해 도읍을 낙읍으로 옮기자 주 왕실이 약화되어 봉건제가 약화됨에 따라 각각의 제후국들은 철제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발전시키고 인재를 등용하여 주왕실에 반기를 들고 춘추전국시대의 패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전쟁 및 제자백가사상, 뛰어난 왕과 장군이 나타났던 시대이다. 특히 전국칠웅이라 불리는 진, 초, 제, 연, 조, 위, 한의 일곱나라가 일어나 서로 대립했다. 춘추전국시대때는 상공업이 많이 발전하였고, 철제로 된 물품을 상용하였으며, 남북조시대와는 달리 인재의 등용에 힘을 써서 안으로는 치안과 평화를, 밖으로는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을 지속했다.

이 책 『제왕의 사람들』에는 춘추전국시대라는 변화와 경쟁의 시대에서 사람을 잘 사용해 정상에 오른 제왕들과 자신의 주군을 최고의 자리에 올린 인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랫사람을 높여 열세를 뒤집고 제왕이 된 한고조, 공사를 구분해 후계자를 정한 요임금, 문무백관의 재능을 면밀히 관찰해 적재적소에 배치한 당 태종, 선의의 경쟁으로 성장한 명재상 소진과 장의, 한마디 조언으로 군주의 성찰과 변화를 이끌어 낸 충신 안영, 병사들에게 믿음을 준 춘추오패의 초 장왕, 원수를 용서해 내 사람으로 만든 청 태조 등의 일화는 모두 탁월한 인재 경영의 역사다. 국내 최고의 동양 고전학자이자 사마천의 《사기》 연구의 최고 권위자, 리더들의 인문 경영 멘토인 저자 김영수는 5,000년간 빛바래지 않은 용인의 기술, 즉 ‘사람을 얻고, 쓰고, 키우고, 남기는 방법’을 실제 영웅들의 일화 40가지를 들어 5장으로 정리했다.

 


 

앞서 언급한 이유로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중국 사회는 일대 변혁을 맞이한 것이다. 주나라 왕실이 쇠약해짐으로써 중앙집권체제는 무너지고, 각지에서 군웅이 할거했다. 사회는 극도의 혼란 속에 빠졌고, 인구의 증가, 민족의 대이동, 정전제도의 붕괴 등은 봉건체제를 파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후들의 세력 신장은 전쟁이 일어나는 계기가 됐다. 따라서 전통문화는 지배력을 상실하고, 새로운 사상의 태동을 요구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나라의 혈연 의식이 약화되었고 자연히 왕과 귀족들의 관계도 약화되었다. 귀족들은 춘추시대까지는 그럭저럭 주나라를 숭배하였으나 제후국 내부에서도 점점 하극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곧 주나라 역시 하극상을 당하기 시작하였다. 춘추전국 시대의 연이은 투쟁과 경쟁에서 위기감을 느낀 귀족들은 다투어 대규모 정복, 개간사업을 추진하였고 중국의 영토는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 시기 유가와 묵가는 개인의 신분적 세습을 반대하고 실력보단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개인보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중시하였다. 유교는 선한 사람이나 친한 사람, 위대하거나 고귀한 사람에 대한 차별적인 사랑을 주장하였고 묵가는 모든 사람에 대해 차별이 없는 겸애를 주장하였다. 법가와 병가는 부국강병을 위해서 권위와 형벌을 무기로 삼아 복종을 강요하였으며 능력보단 실력을 중시하였다. 군대에 있어서 법가는 법을 중시하고 병가는 자율성을 중시하였다. 도가는 자연이나 개인의 초월성을 추구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거나 불로불사를 시도했다. 유학자들은 귀족들에게 탄압을 당하였으나 백성들에게는 빠르게 전파되었다.

 


 

이 책 『제왕의 사람들』의 저자 김영수는 책 발간 후 〈채널예스〉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의 발간 취지를 밝혔다. "리더의 수준과 경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리더 자신의 리더십이고 또 하나는 그 리더와 함께 하는 인재이다. 리더와 인재는 각자 다른 사람이 아니다. 과거에는 리더와 인재가 신분과 제도로 정해진 봉건 사회였지만 지금은 리더가 인재이고, 인재가 리더인 시대이다. 다만, 리더와 함께하는 인재의 문제는 그 본질에서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제왕의 사람들』은 수천 년 중국사의 빼어난 사례들을 통해 이 문제를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본 책이다."

저자는 이 책 서문 「어떻게 사람을 얻고 쓰고 키우고 남길 것인가?」에서도 천하를 얻은 관중이 제시한 리더십 5단계(지인, 용인, 중용, 위임, 원소인)를 현대식으로 바꾸고 추가로 저자의 생각을 더해 다시 정리했다고 밝혔다. 저자는 이를 이 책 속에 역사적 사례 중심으로 녹여냈다. 저자가 말하는 5단계는 ① 인재를 모시는 방법인 득인법(得人法), ② 모셔 온 인재를 활용하는 방법인 용인법(用人法) ③ 인재를 보다 성숙하게 북돋우는 방법인 육인법(育人法) ④ 인재를 떠나지 않게 하는 방법인 유인법(留人法) ⑤ 이 모두를 총정리한 용인팔계명(用人八戒命)이다. 이 5단계가 이 책의 주제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장 「따르고 싶은 제왕의 자질을 갖추어라」에서는 리더가 도약에 필요한 사람을 얻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질을, 2장 「적절한 자리와 적당한 권력을 주어라」에서는 성공을 낳는 인재 쓰는 법을 알려 준다. 3장 「큰사람으로 자랄 환경을 조성하라」에서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발전을 위한 핵심 인재 키우는 법을 제시하며, 4장 「한결같이 진심을 보여라」에서는 인재 유출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끝까지 함께할 내 사람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마지막 5장 「제왕을 만든 사람 경영 불변의 법칙」에는 수권, 남과, 석원 등 5,000년을 관통하는 용인술 불변의 법칙 8가지를 담았다. 이를 통해 사람을 얻고, 쓰고, 키우고, 남기는 인재 경영 리더십의 초석을 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에 따르면 기술·경제·환경 등 전 세계적으로 모든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화한 시대, 미국 등 강대국과 삼성 등 대기업의 수장들은 혼란 속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핵심 경영 전략으로 ‘우수 인재 확보’를 들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혁신 기술과 제도의 원천은 사람이고, 이는 국가나 대기업, 신생 사업체 등 모든 조직에 통하는 경영사 불변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잘 사용하는 인재 경영 기술, 즉 용인의 능력은 대변환을 맞이한 현시대 리더들에게 더욱 필요한 자질이 되었다. 좋은 인재가 있어도 리더가 이를 잘 다루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책은 사람이 경쟁력인 시대에 인재 선발 및 사용과 육성, 인재 유출을 막는 방법을 고민하는 기업가와 CEO, 인사 전문가에게 실용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나아가 용인으로 전성기를 이룬 제왕들의 역사는 국가를 경영하는 정치인, 공직자에게 국가 발전의 기반이 될 인재 발탁과 활용에 필요한 인재관과 지혜를 제공할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의 권위자인 저자가 이 시대 리더와 사마천을 언급하는 것은 사마천이 리더여서가 아니라 리더의 자질 문제를 말할 때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 왕(리더)의 자질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사마천은 당대 최고의 인재였다. 그러나 리더에게 미움을 사서 반역죄에 몰려 사형을 선고받았다. 살아남아 필생의 업인 역사서를 완성하기 위해 사마천은 사형을 면할 수 있는 최악의, 그러나 거의 유일한 방법인 성기를 자르는 궁형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사마천은 권력자, 즉 리더와 리더의 자질이라는 문제를 깊게 성찰한다. 나아가 리더와 인재의 함수 관계를 치열하게 탐구했다. 이런 점에서 『사기』는 리더십의 교과서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런 점에 주목해 오래전부터 리더, 리더십, 인재 문제를 고민했고 관련 책도 썼다. 특히, 리더를 선택할 때마다 거의 주기적으로 그릇된 판단을 내려 국가적 차원으로 시련을 겪는 우리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출간했다. 독자분들이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을 우리 상황과 비교해 가며 읽어 주기를 바란다."

 

 

저자는 이 같은 취지에 따라 이 책의 1장 「따르고 싶은 제왕의 자질을 갖추어라」에 담아낸다. 부제로 〈도약에 필요한 인재를 얻는 법〉이란 친절한 설명도 붙였다. 리더십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따라 조금씩 자질과 자격이 다르게 표현되기는 하지만 굳건한 한 가지 포인트를 말하자면 포용력이다. 이는 리더의 자질을 논의할 때 봉건체제 하에서는 태어나는 것이라 표현할 수 있지만 지금은 신분계급의 차이 없이 사회 활동을 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리더의 자질을 오히려 폭을 넓히고, 대신 자질보다는 '과정'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리더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든 행위에서 판별할 수 있다는 또다른 표현이리라는 점에서 공감이 간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겪는 리더의 리더십 부재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덕'이라고 단언한다. 책에서 리더십 논의를 시작하며 자주 언급할 리더의 자질도 바로 이 덕이라고 한다. 덕은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각박하지 않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고 말한다. 정확한 정의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 리더들에게 가장 결여된 자질이 바로 덕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풀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각박하지 않음'은 나와 내 편은 물론 너와 상대편을 받아들일 줄 아는 포용을 전제로 한다. 그 사람이 인격상 특별한 하자가 없고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능력 있는 인재라면 내 사람이 아니더라도 과감하게 기용해 우대할 줄 알아야 덕 있는 리더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리더십에 대한 견해이다. 저자의 포용의 리더십은 다음과 같은 말로 설득력을 획득한다. "포용은 이념도 정파도 계층도 초월하는 인간의 귀중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한 차원 높은 행위이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덕목이이다."

 


 

 

포용력은 다음과 같은 저자의 설명으로 리더의 자질에 필요한 덕목이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역사상 각박하게 굴면서 성공한 리더는 거의 없었다. 반면 포용력을 가진 리더치고 실패한 리더는 거의 없었다. 아주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이치지만 행동으로 실천한 리더는 드문 편이다. 권력을 장악한 다음 한때 자신에 반대하거나 맞선 정적에게 포용력을 발휘한 리더는 특히 더욱 드물다. 바로 이 대목에서 리더의 자질론이 대두된다. 타고난 리더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각박함도 타고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포용력을 타고나지도 않을 것이다. 모두 자기 수양을 통해 기를 수 있는 후천적 자질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저자는 역사상 성공한 리더로 꼽히는 두 명의 사례를 통해 리더가 포용력을 발휘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서평으로 책 모두를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해서도 안 된다. 또 저자가 든 사례를 일일이 소개하는 일 역시 서평의 조건으로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누구 누구를 역사적 사례로 들었는지는 말할 필요가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그 첫째가 '웅치에게 상을 내려 반역을 막은 유방'이다. 주색이나 밝히며 소위 건달 생활을 하다가 얼떨결에 농민 봉기군의 우두머리가 되어 불과 7년 만에 황제가 된 인물이 있다. 유방은 역사상 리더들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인물로도 유명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두 번째 인물로는 '원수를 용서해 민심을 안정시킨 진 문공'이다. 춘추시대 초기 진나라의 공자 중이는 아버지 헌공이 젊은 첩에게 홀려 태자인 형을 비롯한 아들들을 죽이려 망명길에 올라 무려 19년 동안 외국을 전전한 끝에 61세의 나이로 최고 리더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문공은 19년의 망명 과정에서 아버지가 보낸 자객에게 암상당할 몇 차례의 위기와 굶어서 죽을 뻔한 고비를 남다른 인품과 포용력 그리고 낙관적 리더십으로 극복했다. 세세하게 알고 싶은 독자들은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저자가 찾아낸 사례들은 문헌을 통해 밝혀진 것들이라 고증이 따로 필요없으니 얼마나 손쉽게 지혜를 획득하는 일인지... 사람이 역사를 왜 공부하는지도 깨닫게 된다.

 


 

이 책의 8장이 독자의 눈길을 잡아끈다. 5,000년이라는 긴 역사에서 많은 제왕과 인재가 사람을 얻고 쓰고 키우고 남겨 정상에 올랐다. 놀랍게도 이들의 리더십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저자는 이를 용인술 8계명이라 부르고 소개한다. 첫째는 혼란의 시대에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고 시기를 놓치지 않은 개혁의 리더십, 둘째는 변화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고 정성으로 인재를 모신 인재 존중의 리더십, 셋째는 명령하지 않고 먼저 본을 보여 인재가 스스로 따르게 한 도덕의 리더십, 넷째는 사리사욕을 버리고 조직의 미래를 위해 판단하는 공사 구분의 리더십, 다섯째는 인재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믿고 권한을 위임하는 수권의 리더십, 여섯째는 잘못을 성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을 꾀하는 진화의 리더십, 일곱째는 잘한 일은 아랫사람에게, 못한 일은 내 탓으로 돌리는 남과의 리더십, 여덟째는 인재의 잘못을 끌어안고 함께 발전을 도모하는 석원의 리더십이다.

이 여덟 가지는 중국을 넘어 동서고금 모든 세대와 지역을 관통하는 인재 경영 리더십의 정수다. 부국강병, 태평성대를 이룩한 전 세계의 제왕 혹은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기업인이라면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반드시 실천한 원칙이다. 사람이 조직의 우열과 승패를 가르는 인재 경쟁의 시대다. 이 책은 급격한 정세 변화 속에서 안정적으로 국가를 경영해야 하는 정치인과 공직자, 경제와 기술 환경의 격변에 휘둘리지 않고 성장하고 싶은 기업인, 처음 사업을 시작한 CEO, 인재를 키우고 인재 유출을 막고 싶은 인사 전문가와 팀 리더 등 현시대의 모든 리더에게 ‘사람을 얻고, 쓰고, 키우고, 남기는’ 인재 경영의 실질적인 가르침을 전한다. 이는 조직의 목표 달성과 성과 도출,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발판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전국 시대 유가 사상가 맹자는 ‘덕으로 사람을 승복시켜라’는 뜻의 ‘이덕복인(以德服人)’을 제창하며 『맹자』에서 일찍이 천하를 다스리는 문제에 대해 앞 문장과 같이 적었다. 또 맹자와 순자는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라고 했다. 많은 사람의 희망이 향하는 곳, 인심이 가리키는 것을 갖추는 것이 천하를 얻는 근본적인 조건이다. 인심을 정복하는 방법이 바로 바른 길을 가는 ‘도(道)’와 사람 마음을 얻는 ‘덕(德)’, 즉 도덕(道德)이다.(p.279)

 

저자 : 김영수

 

지난 30여년 동안 사마천(司馬遷)과 《사기》 그리고 중국을 연구하고 25년 동안 중국 현장을 150차례 이상 탐방해 온 사마천과 《사기》에 관한 당대 최고의 전문가다. 저자는 지금도 사마천과 중국의 역사와 그 현장을 지속적으로 답사하며 미진한 부분을 계속 보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와 역서는 《완역 사기》 시리즈를 비롯하여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1 : 사마천, 삶이 역사가 되다》《절대 역사서 사기-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2》가 있고, 최근에는 《리더의 망치》《리더의 역사 공부-사마천, 우리에게 우리를 묻는다》 《리더와 인재, 제대로 감별해야 한다》《사기, 정치와 권력을 말하다》《사마천 다이어리북 366》《인간의 길》을 펴냈다. 이 밖에 《난세에 답하다》《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제자백가, 경제를 말하다》《사마천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사기를 읽다》《1일 1구》《태산보다 무거운 죽음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백양柏楊 중국사 1, 2, 3》 등이 있다.

편역자 연락처 : allchin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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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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