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우리 동네 한바퀴 - 우리의 시작은 북촌에서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이한솔 교사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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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들이 교사와 함께 엮은 이 시집은 서울 북촌이 품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더욱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동네 사랑의 순수함이 배어 있다. 또 좋은 이웃으로 함께 살기를 바라는 그들의 마음이 여과 없이 밝게 드러나 읽는 시마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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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동네 한바퀴 - 우리의 시작은 북촌에서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이한솔 교사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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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하면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서울 양반들이 살던 동네'를 떠올린다. 조선시대 이곳 북촌은 그야말로 양반들이 살던 마을이다. 당시 양반들은 궁궐(경복궁과 창덕궁) 인근에 사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문인들이 주로 살았다고 학교 때는 배운 적이 있다. 궁궐과 궁궐 앞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와 가깝다는 지리적 잇점일 것이다. 임금이 정사를 보는 궁과 대신들이 나랏일을 처리하는 육조(정부종합청사) 근처에 사는 것이 편리해서 형성된 마을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왕족도 벼슬을 하면 이 동네에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옥(기와집)이 즐비했을 거란 점이 쉽게 짐작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가 궁에 위치했기 때문에 예부터 벼슬 높았던 양반들은 그곳에 머물러 살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떠났겠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이곳은 한옥 밀집 형태를 잘 간직한 마을로 지속돼 왔다. 이제는 그곳이 민속적인 측면보다는 '관광' 목적이 큰 채로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이곳에 일제 때(1908) 기호학교(중앙고등학교)가 들어섰다. 1908년 을사·정미 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후 국권 상실 상태에서 설립 1년 후 유길준이 교장(융희학교로 개명)에 취임했다.

이듬해(1910)에는 중앙학교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 114년의 유서 깊은 학교다. 이 학교 출신 유명 인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학생과 교사, 교장까지 수없이 많고 우리나라 독립운동에도 가담한 인사가 많다. 동아일보 창간 사주 인촌 김성수도 이 학교 교장 출신이다.

 


 

아무튼 이 지역은 서울시의 '한옥 유지' 방침에 따라 개발은 물론 증·개축도 잘 허가가 나지 않은 채 한국을 대표하는 마을로 자리잡았다. 유서 깊은 마을 북촌은 모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관광지로서 변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 한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곳으로 홍보를 했기 때문이겠지만 이젠 외국인도 자주 찾는 필수 관광코스가 되었다. 이곳은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로 인해 기존 상인들은 비싼 임대료를 낼 수 없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난 모습이다. 북촌 계동이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각종 프랜차이즈가 입점하고,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키던 가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 이를 보며 북촌에 있는 중앙중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이 삶의 터전인 ‘마을’의 정체성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그래서 마을이 직면한 사회 현안 ‘젠트리피케이션’을 수업 주제로 삼았다.

이 책 『시와 함께하는 우리 동네 한바퀴』는 마을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과 함께 좋은 이웃으로 도와가며 살면서 마을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프로젝트에 따라 시작됐다. 중앙중학교는 학생들이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북촌을 돌아보길 바랐다. 마을결합형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마을을 답사하고, 북촌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게 스무 곳을 골라 가게 주인들을 인터뷰했다. 살아 숨 쉬는 북촌의 역사를 마주한 학생들은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 공간의 소중함을 느꼈다. 우리 동네의 소중함을 어떻게 알릴지 고민한 흔적을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 전원이 쓴 71편의 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 진학하여, 북촌이 처음인 학생들도 북촌에서의 시작(詩作) 활동을 통해 마을에 뿌리내리면서 이 책이 탄생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젠트리피케이션이란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유동 인구가 증가하여 외부 자본이 유입되면서 기존 상권이 밖으로 밀려나는 현상이다. 2022년 1학기 중앙중학교의 교과 융합 수업의 목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위기 속, 우리 동네의 가치와 정체성 찾기’였다. 해당 주제로 사회, 영어, 국어, 목공예 수업(자유학년제 예술 프로그램)까지 네 과목을 융합한 수업이 이루어졌다. 우선 사회 수업에서 학생들은 우리 동네를 ‘오래된 가게’와 ‘프랜차이즈’로 나누어보고, 마을의 정체성을 이루는 오래된 가게를 골라 지도로 만들어 ‘북촌 스탬프 투어’를 진행하기로 했다. 영어 수업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 동네의 가치를 알리고자 영어로 북촌의 가게를 소개하는 글을 썼다. 목공예 수업으로는 스탬프 투어에 쓸 가게 도장을 직접 만들어보았다. 국어 수업은 학생들이 가게를 방문하여 인터뷰하고, 그 공간을 소재로 삼아 시를 쓰도록 했다. 학생들이 나의 삶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삶 역시 시가 될 수 있음을 느끼길 바랐다. 학생들에게 ‘삶이 시가 되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마음의 힘이 생긴다면,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삶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다양한 교과 수업을 거쳐 학생들의 시선은 ‘나의 삶’에서 ‘타인의 삶’으로 옮겨갔다. 타인의 삶, 북촌에 오래 자리했던 가게 사람들의 삶을 두 눈에 담았다. 주민들이 마을을 아끼는 감정을 나누며 마을 공간이 갖는 소중한 가치에 공감했다. 이를 스스로 고민하며 시로 적어내는 과정에서 삶이 시가 되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학생들의 시를 쓰기까지의 진중한 고민과 가게를 인터뷰하며 느낀 점을 생생한 목소리로 만나볼 수 있다.

 


 

계동떡방앗간은 저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가게예요. 하지만 평소에는 방앗간에서 엄마가 사 오신 떡을 먹을 때 말고는 직접 가보거나 떡을 사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사장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계동떡방앗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사장님이 떡방앗간과 함께 살아온 시간에 대해 알게 되었지요. 계동길을 오가는 사람들도 이 이야기에 대해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계동떡방앗간이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소중한 공간이며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이 떡방앗간에 찾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습니다.(강여해 학생) - 「계동떡방앗간」 학생 시인 인터뷰 중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도 사장님의 말씀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사장님에게 계동은 삶의 터전이었다. 사실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처음 계동을 알게 된 우리들은 이곳을 ‘관광지’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계동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도 중앙중학교에서 3년 동안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이곳이 ‘나의 마을’로 느껴지게 될지 궁금해졌다. 비록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나의 학교가 있고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이곳이 ‘우리 동네’로 느껴지길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쳤다.(송태성 학생) 「카페공드리」 마을 가게 인터뷰 보고서 중에서

 

마을이 당면한 문제가 학생들의 시에 녹아들면서 북촌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세상에 알린다. 나아가 북촌의 가치를 품은 공간을 노래하며 직접 와서 만나보라 손짓한다.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의 마음은 북촌으로 이끌리고, 이들이 말하는 소중함을 함께 지켜주고 싶어진다. 이렇게 문학은 학생들의, 북촌 마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다. '우리 동네'를 구석구석 들여다보며 학생들은 익숙함 속에 잊고 지냈던 마을의 가치를 마주했다. 주민들의 마을에 대한 애정과 삶의 애환을 공유하면서 학생들에게도 북촌 마을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싹텄다. 모든 학생이 직접 북촌을 담은 시를 쓰면서 시를 매개로 학교와 마을은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19700401(제목)

 

본래 고향은 마산이었다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저 먹고 살아야 했다

서울로 가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거기도 똑같더라

어렵게 배운 게 세탁일이다

뿌리박은 곳이 계동이다

 

쉽게 시작한 건 아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눌러앉아 있다(p.211)

- 「백양세탁소」 (김이제 학생) 창작 시 중에서

 

이 시는 6.25 당시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 전전하다 계동의 세탁소에 정착한 주인의 사연을 표현한 작품이다. 제목으로 쓰인 〈19700401〉는 백양세탁소 주인이 북촌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해를 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서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고심한 끝에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손끝에서 여러 시가 태어났다.

 


 

이 책을 내기까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이끌어온 이한솔 교사가 발간 이후 인터뷰를 가졌다. 두 개의 질문 답변만 독자가 선정해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에 함께 싣는다.

 

-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지도하시며 가장 인상 깊었던 학생들의 반응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 우리 동네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 현안을 주제로 시 창작 수업을 하다 보니 학교 밖으로 나가는 활동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접 마을을 돌며 가게의 현황을 파악하고, 사장님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과정이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어려운 과제는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학생들의 눈빛은 학교 밖에서 더욱 빛났습니다. 교실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웃고 떠들면서도,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활동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학생들이 쓴 작품들을 책으로 엮으면서 수업 활동을 진행했던 당시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이번 책 출간을 통해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들 역시 자신의 빛나는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학생들은 시를 쓸 때 어떤 점에 가장 신경 쓰고, 또 힘들어했나요? 이러한 수업을 통해 달라진 점, 시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북촌에 대한 마음가짐에서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 학생들은 시를 쓸 때 '나'의 시각이 아닌, '인터뷰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학생들은 가게 사장님과 인터뷰를 했던 내용을 기반으로 시를 써야 했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고민이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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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이야기
최진석 지음 / 북루덴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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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 철학의 대가, 최진석의 진솔한 고백이 돋보이는 ‘삶’과 ‘철학’ 이야기. 그의 자전적 철학 에세이로서 이 책은 ‘나‘와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성찰로 우주에서 영원히 ‘빛나는 별‘로 가는 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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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이야기
최진석 지음 / 북루덴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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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는 일생 동안 노장 철학을 공부하고 연구해온 저자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이야기이다. '자전적'이란 표현은 저자가 자신과 '가족'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한 노자와 장자를 바탕으로 2022년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올해 육십갑자를 한 바퀴를 돌았다는 회갑 날, 저자는 자신이 태어난 전남 신안의 작은 섬, 장병도를 방문한다. 저자는 그곳에서 이제는 할머니가 된 아버지의 초등학교 제자를 만나 기억에도 없던 어릴 적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꺼낸 적 없는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를 비롯해 큰누나와의 이별까지 인간 최진석의 진솔한 자기 고백과 거기서 비롯된 깊은 철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평생에 걸쳐 ‘죽음’을 사유했던 저자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우리에게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고 영원한 삶을 살아가자고 따뜻하지만 냉철한 어조로 권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품었던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내가 자기 삶의 ‘별’로서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이자 찰나적인 삶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죽음’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나’라는 인간 존재가 한 마리 작은 물고기 곤(鯤)이 억겁의 축적을 통해 대붕(大鵬)으로 날아오르듯, 우주적 존재로서 자유롭고 영원한 비상을 꿈꾼 것이다. 저자는 세계를 ‘지적 탐구의 대상’이 아닌 철학적 사유와 실천을 통한 직접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실현해야 할 장(場)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국민소득으로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다른 여러 면에서 중진국의 한계에 갇힌 우리 사회를 냉철하게 진단하고 우리 자신이 사회를 변화시킬 역량을 갖춰 역사의 주체로서 선도국으로 건너갈 소명을 다하자고 역설한다.

 


 

저자가 처음 별을 봤다던 고등학교 1학년 때, 고향 집 마당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저자는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불현듯 ‘내가 언젠가 죽을 수도 있다’을 사실을 자각한다. 이때 자신의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사건으로 기억한다고 털어놓는다. 그것은 불혹이 넘도록 그를 따라다니던 죽음의 공포를 갖게 된 계기였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라진다'라는 자각심은 줄곧 저자가 죽음 너머의 ‘영원’을 갈구하는 원천이 된다. 그리고 그 갈망 끝에서 ‘인간이 존재 자체로 우뚝 설 때 별처럼 빛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별똥별’에서 시작된 죽음에 대한 탐구는 저자를 철학으로 이끌었고 그의 철학과 삶의 토대가 되었다.

저자는 책의 앞머리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기 삶의 정신적, 물질적 자양분이었음을 따뜻하면서도 애틋한 시선으로 돌아보고 어릴 적 한 조각 추억처럼 남은 큰누나의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을 한 몸처럼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죽음으로 향하되 영원과 절대 자유를 꿈꾼 저자는 노장 철학의 무위자연과 곤(鯤)이 대붕(大鵬이 되는 적후지공(積厚之功)의 경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성찰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후 ‘나’라는 존재에서 출발한 저자의 철학적 시선은 사회와 국가로 옮아간다. 윤동주의 「서시」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읽었고, 윤동주의 시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란 각오로 "나에게 주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결심을 굳힌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현상 유지와 앞선 나라의 이론과 시스템을 따라 하기에 바쁜 나머지, 사회의 문제를 개인적인 일로 치환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치열함이 부족했던 결과로 ‘종속’의 틀에 갇혀 버렸다고 진단한다.

 


 

우리는 철학을 공부할 때도 플라톤과 장자 등 철학자의 철학적 결과물인 이론만을 답습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론만을 되새김질하는 철학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기에 거기서 벗어나 철학자의 철학적 방법론과 사유의 높이 그 자체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와 반쪽의 역사만을 가진 채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룬 사람들은 '별'이 아니다. 다른 별이 빛나는 것을 따라 하고 다른 별이 빛나는 것을 바라보며 살았다. 별이 아닌 사람들이 별이 아닌 나라에서 같이 모여 살다가 어깨를 부대끼고 기대면서 승리의 역사를 써왔다. 이제는 우리가 별이 되어야 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남의 생각이나 물건 그리고 남의 제도를 따라 하면서 살았다. 남의 것을 가져다 썼다. 따라 하고 가져다 쓰면서 그것을 만든 사람들을 빛나는 별로 숭배하며 살았다. 이제는 끝내야 한다. 우리가 빛나는 별이 되어야 할 때가 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별처럼 살려 하고 별처럼 빛나려 하고 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침내 별 같은 나라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 사람들을 시민이라고 한다. 시민 이전에는 왕이 지배했다. 왕이 지배할 때는 왕이 빛났고 나머지 사람들은 단지 그림자로 존재했다. 그런데 그 빛나는 별에 박수만 치던 사람들이 노력해서 돈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왕이 사용하던 광장을 시장으로 바꿨으며, 시장에 살던 사람들은 역사의 책임자로 등장했다. 그 시장에 살던 사람들이 시민이다. 왕이 사용하던 광장을 시장으로 바꿔서 역사의 책임자로 등장한 존재들이다. 저자는 시민의 핵심은 역사에 대한 '책임성'을 강조한다.

 


 

저자가 가장 높은 사유의 단계라고 규정하는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하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낯설게 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일상적인 사건 속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은 ‘사과가 떨어진다’는 단순한 사건을 보고 ‘왜 그럴까?’라는 질문과 호기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거의 모든 철학서에 ‘철학은 경이에서 출발한다’라고 쓰여 있다. 그 말은 철학은 낯설게 하기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다”라고 적고 있다. 세상 만물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경이로움, 바로 거기서 철학은 시작된다는 인식이다.

낯설게 보기 위한 단초인 ‘호기심’이라는 작은 불꽃이 피어날 때, 인간은 비로소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거기서 새로운 지식과 이론이 생겨나 세계를 전략적으로 다루게 된다. 낯설게 보기라는 철학적 사유의 시작이 세계를 주체적으로 다루는 전략의 수립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철학적 사유의 시선을 갖자고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미 중진국 상위레벨에 도달했으면서도 선진국으로 나아갈 동력을 상실했다고 개탄한다. 그것은 새로운 단계에 걸맞은 전략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기득권 세력이 ‘성공의 덫’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건국 세력부터 산업화 세력, 민주화 세력은 여전히 자신들이 이룬 공을 차고앉아 기득권이 되어 국가의 미래에 대한 어젠다를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는 장자의 “공이 이루어지면, 그 공을 차고앉지 말아야 한다(功成而不居)”는 말을 빌려 성공의 기억에 갇힌 이들에게 성공의 기억과 현실 안주에서 벗어나라고 제안한다.

 


 

저자는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이 새 시대를 성공으로 이끈 비결로 말 잔등에 올라 세상을 도모할 수 없다는 육고의 충언을 받아들여 경전을 공부함으로써 새로운 비전을 가졌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은 그에 걸맞은 통치이념과 전략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수많은 학인(學人)이 외국에 나가 선진 학문과 문물을 배워왔다. 그럼에도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 고유의 것을 거의 갖지 못했다. 그것을 저자는 윤편의 일화를 들어 외국 문물의 껍데기만을 들여왔을 뿐 윤편의 손에서 비롯된 수레바퀴를 만드는 그 기술을 배워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학문적 성과나 결과만을 배울 뿐 과정을 중시하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저자는 윤편의 수레바퀴를 넘어 윤편의 손에서 비롯된 기술을 배우고 그것마저도 넘어서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일류국가, 선도국가로 나아가고 철학적 사유의 높이를 가지는 길이 될 것이다.

저자는 중국의 혼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설파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지금, 여기, 우리의 삶과 사회를 바꿔야 더 높은 단계로의 도약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철학이 이론을 넘어 진정한 철학이라 부를 수 있는 ‘실천하는 철학’으로 거듭나는 것이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 철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라 힘주어 말한다.

"공동체의 평화를 말하면서 정작 나라의 힘을 키우는 데 소홀하다가는 그 평화 한 조각도 자신의 땅 위에 세우지 못할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면서 부국강병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은 다 가짜다."(p.201)

 

 

이 책은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 〈별 헤는 마음〉, 2부 〈우주를 겨드랑이에 낀 채로〉, 3부 〈신의 있는 사람〉, 4부 〈건너가는 시선〉, 5부 〈정해진 마음 넘는 법〉이다. 1부에서는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내가 별이 되는 것이다. 이 순간의 삶 속에서 내가 영원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2부에서는 자유로운 단계는 없는 것을 꿈꾸는 단계라고 설명한다. 없는 것을 꿈꿀 때 인간은 도전, 용기, 모험적인 활동을 한다고 언급한다. 3부에서는 "참된 사람이 있고 나서야 참된 지식이 있다(유진인이후유진지, 有眞人而後有眞知)."고 말한다. 이어 4부에서는 공동체의 평화를 말하면서 정작 나라의 힘을 키우는 데 소홀하다가는 그 평화 한 조각도 자신의 땅 위에 세우지 못할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면서 부국강병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은 다 가짜다."고 일갈한다. 5부에서는 삶도 내 것이고 죽음도 내 것이며 영광도 내 것이고 치욕도 내 것이다. 내가 주인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 모든 것을 알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지식 수입국이라 말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 이유는 서구의 여러 사상이나 지식을 활용, 모방, 응용하는 데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지적인 수준은 성장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형식적인 혁신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도 서슴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사회에서 아직도 수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 경제적인 면에서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하지만, 문화적, 철학적으로 볼 때 여전히 중진국으로 남아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 따지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인, 한국 사회에는 논쟁과 혐오, 판단은 있지만, 사유는 없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는 이유다. 겉보기에는 사회적 진보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바닥 문화, 저문화를 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치를 깨닫고, 본질을 보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정서의 대전환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분노사회, 혐오사회, 인성교육이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이 책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노장사상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사유의 등대와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눈앞의 편리함을 위해 공공의 책임감을 포기하거나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경박함이 있다. 이런 경박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감당하며 인간으로서 품격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덕(德)이 있는 사람이다."(p.72)

 

저자 :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이다. 건명원(建明苑) 초대 원장을 지냈다. 1959년,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 곁의 작은 섬 장병도에서 태어나 함평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베이징대학교에서 당나라 초기 장자 해석을 연구한 『성현영의 ‘장자소’ 연구(成玄英的‘莊子疏’硏究)』(巴蜀書社, 2010)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가(道家) 철학자인 그는 원래 서양철학을 공부하려고 독일 유학을 계획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독일철학을 공부할 때는 미간을 찌푸리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책을 읽곤 했는데 우연히 책꽂이에서 발견한 장자를 읽으면서 재미에 푹 빠져 편안하게 즐겼다. 그래서 ‘공부를 하려면 재미있고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란 생각으로 동양철학으로 바꿨다. 게다가 유가(儒家)보다는 도가(道家) 책을 읽을 때 더 영감이 떠오르고 짜릿짜릿했다. 저자가 노장 철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이유다. 저자는 우리에게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주체적이고 욕망에 집중하며 살라고 권한다.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미래가 주체적이고 욕망하는 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은 책으로는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2021)』 『나 홀로 읽는 도덕경(2021)』 『탁월한 사유의 시선(2018)』 『경계에 흐르다(2017)』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2015)』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2001)』 등이 있고, 『장자철학(2021)』 『노장신론(1997)』 등을 해설하고 우리말로 옮겼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은 『聞老子之聲, 聽道德經解』(齊魯書社, 2013)으로 중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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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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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말(馬)‘이 주인공이다. 인간의 삶이 자연에서 분화하지 못해 서로 뒤엉켜있던 시원의 공간이다. 역사 이전의 이야기라고 봐야 할 듯하다. 말과 하나가 된 사람들의 무리, 서로를 침범하고 정복하던 야만의 시대지만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인간 모습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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