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에마뉘엘 토드 지음, 김종완.김화영 옮김 / 피플사이언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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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대한민국 통신사인 〈연합뉴스〉는 다음과 같은 긴급 뉴스를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1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에 따른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담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는 평화를 추구하는 데에 열려 있지만 러시아는 그렇지 않다"며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 잔인한 전쟁을 끝낼 의사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이 이어지는 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지속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18억5천만 달러(약 2조3천억원) 규모의 추가 군사 지원 방침을 밝혔다. 이는 미국이 지금껏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것 가운데 단일 지원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지원 패키지에는 패트리엇 미사일 포대가 포함될 것"이라며 "패트리엇 포대를 훈련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방어하는 또다른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는 1년 중 가장 춥고 어두운 시기에 의도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인프라를 파괴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겨울을 무기로 만들고 있으며, 사람들을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게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걸음마다 함께할 것"이라며 "우리는 전쟁이 이어지는 한 당신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거듭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일치하고 있음을 강조, "우리는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이 같은 단결에 매우 긍정적"이라고 단언했다. 전쟁 종식과 관련해선 "우리는 모두 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지만, 이는 푸틴이 정신을 차리고 군대를 물리는 옳은 일을 할 때에야만 가능하다"며 "그러나 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지원 약속은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밤새 백악관으로 날아와 전투복 차림으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지원 약속을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독자로서는 멀리 떨어진 중서유럽 북쪽 러시아와 국경을 인접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이라 2월 발발 때만 하더라도 관심은 대통령 선거와 팬데믹 상황에 관심이 더 쏠렸었다. 그러던 전쟁이 예상 외로 오래 끌고 우크라이나 임전 태세가 만만치 않다는 뉴스가 들릴 때까지도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 발발 시부터 이미 원자탄에 의한 대량 살상무기 사용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발표하자 독자는 깜짝 놀랐었다. 우크라이나에 미국이나 서유럽 어느 국가도 참전하지 않은데 왜 무리한 무기 사용까지 언급했나 우려되기도 했다.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NATO 가입을 위한 무기 등의 지원은 있지만 자신들의 군대를 파견하지 않는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눈치는 보였다. 그러나 가스 공급이 막히고 서유럽은 에너지 부족으로 추운 겨울을 지나는 동안 이 전쟁에 직접 개입할 의사는 없는 듯했다. 그 태도는 미국도 견지하는 듯하다. 정확한 정보도 없고, 국제 관계에 문외한으로서 더 이상의 전쟁 예측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전투는 연일 공습과 반격을 거듭한다는 이야기 외에는 별 다른 움직임이 없는 듯했으나 급기야 젤린스키 대통령의 미국 방문으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책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세계적인 역사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에마뉘엘 토드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관련해 날카로운 정세 예측을 한 글들을 엮은 것이다. 독자는 처음 접하는 분이지만 꽤 유명한 저작자인 것 같다. 저자는 “푸틴은 과거 소련과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동유럽 전체를 지배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문제로 푸틴과 교섭해 타협하는 융화적 태도는 결국 히틀러의 폭주를 허락한 1938년 뮌헨회담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이 얘기는 독자도 여러 번 들은 듯하다.

 


 

서방측 미디어는 연일 이렇게 보도를 이어나가고 있으나 과연 이와 같은 주장이 타당한가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는 답변 예측뿐만 아니라 근거를 제시하고 분석한 결과에 따른 예측이라 정확한 국제 관계의 역학 관계를 잘 아는 저작자로 이미 정평이 난 분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마뉘엘 토드는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오히려 근본적으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러시아가 명확하게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서방측의 처사가 이번 전쟁의 주된 원인이라 주장한다. 이 문제는 ‘미국의 뒷마당’에 소련이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해서 미소 간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까지 갔던 1962년의 쿠바 위기와 더 유사하다는 것.

저자에 따르면 본디 우크라이나 문제는 국경 수정이라고 하는 ‘지역적인 문제’였으나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무장화해 NATO의 ‘사실상’ 가입국으로 만든 데 핵심이 있으며, 이런 미국의 정책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문제가 ‘글로벌화=세계 전쟁화’됐다. 사람들은 세계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하지만, 저자는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고 판단한다. 우크라이나군이 강하게 저항할수록 러시아군은 공격적으로 격하게 대응하고, 이에 맞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력의 개입이 한층 커져서 전 세계가 꼬리를 물고 구렁텅이에 빠지는 악순환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아도 무시무시한데도 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의 시작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을까. 독자는 우선 우리 살기 바쁜데 하며 외면하다시피 한 개인적 잘못은 그렇다 치더라도 언론마저도 침묵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닥 반갑게 들리지 않는다.

 

 

에마뉘엘 토드는 또한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를 통해 서방측 미디어의 치우친 주장에 가려진 이면의 문제를 들추고, 나아가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파장, 향후 진행되는 세계정세, 전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세력 등 혼란스러운 현 상황에 대해 날카로운 진단과 견해를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소비에트연방 해체, 미국발 금융 위기, 아랍의 봄 등 문제적 예언을 속속 내놓았던 에마뉘엘 토드의 인사이트가 이번에도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독자는 사실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멀리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신경 쓸 정도로 생업 후의 에너지가 남아 도는 사람은 아니다. 더욱이 국제 문제 역학이나 군사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어서 뉴스를 통해 구경하듯 지켜보고 있는 상태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무신경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이 전쟁이 나비 효과를 일으켜 제3차 세계대전의 빌미가 될 우려를 안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로 지금처럼 ‘아마겟돈 위기’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고 언급했고, “우리는 역사적 경계에 있다. 앞으로 10년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동시에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미 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저자는 이에 더 이상의 확전 없이 끝내기를 바라는 말을 책에 담는다. 저자에 따르면 전례 없는 세계사적 위기. 지금 가장 필요한 자세는 열을 식히고,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으로 디스토피아로 치닫는 열차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류는 유례없는 위기에 빠졌다. 러시아가 며칠 만에 단기 결전으로 끝낼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장기화되고 있으며 소모전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인류는 끓는 물 속 개구리(boiling frog)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에 대한 경각심 없이 일방으로 치닫다가 돌이킬 수 없는 큰 위험에 맞닥뜨리지는 않을까.

 


 

현대 최고 지성으로 손꼽히는 에마뉘엘 토드는 이런 사태를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에서 일찍이 예견했다. 이 책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마자 일본에서 긴급 출간되어 이례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화제의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독보적으로 관련 분야 1위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이제야 번역 출간된 것이다. 저자인 에마뉘엘 토드는 세계적인 역사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 인구학자로, 과거에도 소비에트연방의 해체, 미국발 금융 위기, 아랍의 봄, 트럼프의 승리, 영국의 EU 탈퇴 등을 예측한 바 있다고 하니 그의 명성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이번 예측이 맞아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독자의 마음은 쉽게 다가가지 않는다. 그는 현 상황을 모노폴리 게임에 빠져들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이성 마비 상태라고 진단한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는 현실의 냉혹함을 모두가 외면하는 사이 우크라이나인과 국토는 점점 더 재기하기 힘든 진짜 아마겟돈의 상태에 빠지고 있다.

저자는 소련 붕괴 후 협정을 깨고 러시아의 군사적 세력권을 위협한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을 촉발한 결정적 도화선이라고 판단한다. 나아가 현재 사태를 ‘세계대전’이라고까지 주장하는 데는 우크라이나 뒤에 영국과 미국이라고 하는 거대한 힘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예상을 웃도는 저항은 바로 미국과 영국의 군사 지원의 성과라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상황에 대해 ‘강한 러시아가 약한 우크라이나를 공격한다’고 볼 수 있지만, 지정학적으로 더 큰 관점에서 보면 ‘약한 러시아가 강한 미국을 공격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사실상 미국과 러시아가 충돌하는 이상 ‘장기전’, ‘지구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다.

 


 

나라의 운명, 더 나아가 인류의 운명을 예측하는 일이 간단하거나 힘의 논리로만 정학하게 예측되지는 않을 터다. 힘 이외의 인류 삶의 모든 면에서의 충돌이라고 한다면 힘의 논리 이외의 다른 축도 제시해야 한다. 저자는 또 다른 한 축의 문제는 지정학적 사고와 전략적 사고가 완전히 사라지고 감정적으로만 흘러가는 서구 미디어의 태도라고 지적한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냉철한 논쟁과 분석이 사라지면서 이번 사태는 더 꼬이고 만다. 단순히 러시아를 악마화하는 이념만으로는 침공 이면에 연쇄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본질과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컨대 지금까지 왜 친러시아계 주민은 미디어에 일절 등장하지 않는지, 푸틴은 왜 극우 네오나치 세력 척결을 언급하는지, 우크라이나의 성명은 모두 진실한 반면에 러시아는 날조되었다는 전제로 시작하는지 등 여러 층위에서 논의할 수 있는 의문조차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을 ‘민주주의 vs. 전제주의의 싸움’으로 표현하며 나아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우리가 진정한 진리라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과 우크라이나발 정보에 전적으로 근거한 편협한 독선일 뿐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사실을 알려준다.”(일본 저널리스트 사이토 다카오) 이 책은 일방적으로 치닫는 현 위기 상황을 통찰하기 위한 대단히 무겁고 의미 깊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책은 두 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책의 표제어인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이고 2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인류학」으로 돼 있다. 글의 흐름이 제 3자적 입장을 견지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예측과 분석을 믿는 대로 따라간다. 물론 오랫동안 국제 정세나 국제 관계뿐만 아니라 인류학적 접근, 문화적 접근 등을 모두 고려해 분석한 것으로 보이긴 한다. 자칫 잘못 읽으면 러시아 측 편을 드는 듯한 느낌이고, 자칫하면 미국과 유럽 등에 경고하는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 책이 무게를 가진 이유이다.

 


 

저자 : 에마뉘엘 토드

1951년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 파리 국립인구학연구소(INED)의 연구원으로 사회학자, 인구학자, 역사인류학자이다. 파리정치대를 거쳐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족 시스템의 차이와 인구 동태에 주목하는 방법론의 최고 전문가. 일찍이 25세인 1976년 《최후의 몰락》을 통해 영아 사망률의 상승이라는 데이터를 근거로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를 예측한 최초의 학자이다. 그 후에도 계속 ‘문제적 예언’을 내놓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제국 이후》(2001)에서는 미국발 금융 위기를, 《문명의 융합》(2007)에서 아랍의 봄, 나아가 트럼프의 승리, 영국의 EU 탈퇴 등을 예언했다. 그의 주장이 ‘문제적 예언’으로 보이는 것은 출간 당시에는 반대가 대다수인 비주류에 속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간하는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역시 ‘일반 통념에 반하는 소수설’에 기반한다. 그 외에 《샤를리는 누구인가?》, 《유럽의 발견》, 《새로운 프랑스》, 《문명의 충돌이냐 문명의 화해냐(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역자 : 김종완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일본어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강원대학교에서 일본어 강사로 재직 중이다.

-현재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 일본어학과 출강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박사

-일본 와세다대학 일본어연구과 일본어교육 석사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전공 : 사회언어학, 담화분석 전공

 

역자 : 김화영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연구과 일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중앙대학교 BK21 신진연구원으로 연구를 수행했으며, 현재 수원과학대학교에서 호텔관광서비스과 조교수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논하다』(공저) 『일본근현대문학과 연애』(공저), 역서로는 『일본근현대여성문학선집2-요사노 아키코』 『일본근현대여성문학선집9-미야모토 유리코』 『유녀문화사』 『세이토』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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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에 숨은 사이코패스 - 정상의 가면을 쓴 그들의 이야기
이윤호 지음, 박진숙 그림 / 도도(도서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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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라는 용어를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정확한 뜻을 알게 됐다. 이전에는 잔혹한 범죄라는 의미가 없는 비상식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이코'라는 용어로 '정신질환자'를 지칭했었다. 물론 사이코와 사이코패스는 의미가 다르다. 사이코(psycho)는 사실 히치코콕의 영화 제목이다. '심리학'을 의미하는 psychology의 번역어인 듯하다. 아무한테나 이 용어를 쓰는 것은 금기시됐다. 일종의 욕설로 사용되던 단어이다. 이 용어가 이제는 대중 용어로 변모했다. 연쇄 살인 사건 등 대형 살인사건이 일어나거나 잔혹한 범행이 밝혀지면 으레 범인을 사이코패스라고 지칭한다. 특히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쏟아지면서 온 국민이 범죄 문제의 준전문가가 되면서 이 두 단어는 우리들 속에 깊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 책 『우리 속에 숨은 사이코패스』의 저자 이윤호는 대중문화가 전하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우리를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있으면서도 잘못된 편견을 심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우리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올바르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일반 사람들에게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정의하라고 하면 그들을 범죄자로 치부하면서 피해자의 고통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위험하고도 뒤틀린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 표본으로 한니발 렉터 같은 연쇄살인범을 내세운다. 연쇄살인범은 모두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일까? 이런 식의 개념화와 규정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이해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곤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평소에는 정신병질이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가 범행을 통하여서만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1920년대 독일의 쿠르트 슈나이더(Kurt Schneider)가 처음 소개한 개념으로 보통 반사회적 인격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발정·광신·자기현시·의지결여·폭발적 성격·무기력 등의 특징을 지닌다. 이들의 정신병질(Psychopathy)은 평소에는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가 범행을 통하여서만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 브르크하멜국립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밖에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고통에 무감각하므로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 받게 될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재범률도 높고 연쇄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일반 범죄자들보다 높다. 또 공격적 성향을 억제하는 분비물인 세로토닌이 부족하여 사소한 일에도 강한 공격적 성향을 드러낸다고 한다. 사이코패스는 이같은 유전적생물학적 요인에 사회환경적 요인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전인격적 병리현상으로 본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Robert D. Hare)가 PCL-R(Psychopathy Checklist-Revised)라고 부르는 사이코패스 진단방법을 개발하였는데, 40점을 최고점으로 하여 이에 근접할수록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다고 판단한다. 한국에서 연쇄살인을 저질러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유영철은 이 진단법에 따라 측정한 결과 34점을 기록하여 전형적 사이코패스로 판정받았는데, 일반인의 경우에는 15~16점을 기록한다고 한다.

 


 

또 소시오패스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며, 이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소시오패스의 예로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추적자〉에서 배우 김상중이 연기했던 인물 ‘강동윤’을 들 수 있다. 강동윤은 평소에는 너그럽고 관대한 모습을 보이다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비도덕적인 행동, 심지어 살인도 스스럼없이 저지른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고 후회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또 다른 예로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에 나오는 아들 케빈이다. 케빈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순한 양같이 행동하지만, 엄마 앞에서는 충동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현실에서는 히틀러나 후세인같은 독재자나, 일부 부패한 종교의 교주들이 소시오패스의 예라고 볼 수 있다.

소시오패스는 우리 가족 중에, 학교에, 혹은 직장에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 중에 존재할 수 있다. 실제로 소시오패스가 사이코패스에 비해 훨씬 많다고 알려져있는데, 전 인구의 4%정도가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즉 25명 중 1명). 심리학자 마샤 스타우트의 말을 빌자면, “그들은 우리의 일상속에 늘 함께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을 알아야 한다.” 일부학자들의 주장이 맞다면, 사이코패스는 생물학적, 유전적 원인에 의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며, 소시오패스는 ‘환경’ 에 의해 만들어진다. 즉 소시오패스는 유년기시절에 학대나 방임등을 겪으면서 자신에 대한 비뚤어진 생각과 타인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해, 우울, 분노, 불안등의 감정이 생기고, 이러한 감정들과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더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성공지향’을 우선시하는 사회분위기와 모든 것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해지면 소시오패스가 만들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이 책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본질이나 성향은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 충동성, 죄책감의 결여, 무책임 등으로 열거하고 있다. 특히 요즘 들어 개인주의를 권장하는 사회로 진입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사람과 상황을 조정하고 조작하는 소시오패스가 표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서양권보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많이 기록되지 않았다. 이는 유교적 이념이 강하고, 개인주의적보다 대인주의적 문화가 주를 이루면서 개인주의적 문화에서 태어난 사람들보다 도덕적 접점을 가질 확률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힌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팽만해지면서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확대되다 보니 우선 자신을 상위에 두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로지 나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더라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증가하는 이유가 오로지 개인주의의 탓으로 돌려야 할까? 사람의 인성은 생물학적이고 경험적인 상황의 산물로 그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가족 간의 불신으로 인한 아동 학대와 정서적 불안정 또한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여러 상황들이 맞물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증가하고 있고, 어느새 사회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물론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매우 희귀한 종자로 여기면서, 우리들과는 다른 사람으로 취급하면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다소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통념이다. 저자의 집필 이유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임상적 진단이 아니라 반사회적인격장애의 진단 범주에 속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정신질환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으로 이들의 범죄를 대할 때는 오히려 처벌보다는 치료 쪽의 형량으로 가볍게 처벌될 수 있어 오히려 악용하는 범죄자들이 더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악마’라고 치부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그들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반사회적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식별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미국의 경우 일반인의 약 1% 정도가 반사회적인격장애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기업인들 대상으로 조사하면 이 수치가 4%까지 올라간다. 교도소 수형자 다음으로 높은 수치라고도 한다. 소시오패스의 경우 전체 인구 중 3~5%에 해당한다고 전해진다. 이는 우리들 옆에, 혹은 뒤에 서 있는 누군가가 반사회적인격장애를 앓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범죄자가 되어 우리를 해칠까? 여기서 우리는 잘못된 통념 하나를 깨부숴야 한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범죄자가 되지 않듯, 모든 범죄가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또한 우리처럼 자신의 삶의 길을 걸어가는 한 사람일 수도 있다. 사이코패스 중에서도‘반사회적 사이코패스’가 있고, ‘친사회적 사이코패스’가 있다. 반사회적인격장애 성향과 관련된 해부학상 뇌의 패턴을 찾기 시작한 신경과학자 제임스 팰런은 자신의 뇌 영상을 보고 사이코패스라고 결론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부모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자신의 반사회적 성향을 극복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것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했다. 바로 ‘사랑’과 ‘자유의지’가 반사회적으로 될 수 있는 성향을 친사회적으로 바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친사회적 사이코패스가 되어 사회에 잘 융화될 수 있도록 올바른 시선으로 그들을 맞이할 필요가 있다.

 

"최근 네덜란드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반사회적인격장애가 문화적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와 미국에서 반사회적인격장애 특성을 보이는 7,450명의 범법자들에게서 몇 가지 핵심적인 기질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이 속한 문화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이다. 미국 범법자들을 대상으로 사이코패시 체크리스트(PCL-R)로 검사한 결과 냉혹함이 1차적인 행동이었으나 네덜란드 범법자들은 무책임함과 기생적 생활 유형이 지배적인 특성이었다는 것이다."(p.32)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좀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그들에 대해 연구한 결과 그들의 성향이나 인격을 측정하는 도구를 개발했다. 그중 사이코패스의 주요 진단 도구는 로버트 헤어가 고안한 사이코패시 체크리스트(PCL)다. 이를 개정하고 보완한 것이 사이코패시 체크리스트 개정판(PCL-R)이다. 사이코패시 체크리스트는 현재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반사회적인격장애 검사와 평가를 위한 최적 표준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로버트 헤어는 자신이 개발한 사이코패스 진단 도구가 현실에서 잘못 사용되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두려워했다. 그의 우려에도 그의 사이코패스 진단 도구는 활용 범위가 더욱 확산됐고, 범죄행위의 원인에 대한 우리들 생각 전환에 도움을 주었다.

이 책 『우리 속에 숨은 사이코패스』는 사이코패스를 진단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이코패스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 이 검사지를 수록했다. 질문 항목에는 범죄 이력이 포함됐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높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 또한 검사를 통해 점수가 높게 나왔다고 해서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반사회적 성향이 어느 정도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성향을 알아보는 선에서 이해하기 바란다. 나를 알아야 남을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고, 다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편견이나 오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범죄학자 이윤호 교수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본질과 그들과 함께 하는 우리들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들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나 기준으로 사회가 어지럽지 않았으면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썼다. 더 이상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하고도 상관있는 사람들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또한 우리조차도 그러한 성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저자 : 이윤호

 

대한민국 최고의 범죄학자인 이윤호 교수는 범죄 없는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꿈꾸며 당시 국내에서 유일했던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군 제대 후 범죄학을 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서 처음으로 경찰행정학과를 개설해 범죄학과 형사정책학 분야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미시간주립대학교의 형사사법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 1987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주요대학에서 범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지 취업을 권하는 은사 교수들의 고언을 뿌리치고 귀국하여 국내 최초로 개설된 경기대학교 교정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한 이래 교학2처장 등 보직을 수행하다 마음 한편에 항상 아쉬움으로 남았던 실무 경험을 쌓고자 최초의 민간전문가 개방형 임용을 통해 법무연수원 교정연수부장으로 근무했다.

그 후 학교의 대외협력처장을 거쳐 행정대학원장의 보임을 수행하던 중 모교인 동국대학교의 특별 초빙으로 경찰행정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입학처장, 사회과학대학장, 행정대학원장, 초대경찰사법대학장과 경찰사법대학원장을 역임하고, 대외적으로 국가경찰위원회 위원 그리고 대한범죄학회 초대회장, 한국경찰학회, 한국공안행정학회, 한국대테러정책학회 회장으로 봉사했다. 현재도 범죄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경찰청 최초로 등록된 사단법인 목멱사회과학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교수로서 많은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0년 8월 31일,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열정을 쏟아 부은 동국대학교를 은퇴하고, 고려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을 계속할 예정이다.

범죄학과 경찰학 그리고 피해자학과 관련한 100여 편의 연구보고서와 논문을 발표하고, 저서로 『범죄학』 『경찰학』 『교정학』『피해자학』『범죄심리학』 『현대사회와 범죄』 『범죄 그 진실과 오해』 『피해자학』 『한국형사사법정책론』 『청소년비행론』 등을 집필했고, 범죄의 대중화를 위해 『연쇄살인범, 그들은 누구인가』『세기와 세상을 풍미한 사기꾼들』 등을 출간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하루 한 줄, 행복에 물들다』 『인생프로파일링, 삶을 해부하다』 등을 출간했다. 옮긴 책으로는 『폭력의 해부』가 있다.

 

그림 : 박진숙

 

인생 2막을 열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조금씩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박진숙은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면서 얻은 느낌을 붓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이 실린 책으로는 『하루 한 줄, 행복에 물들다』 『연쇄살인범, 그들은 누구인가』 『세기와 세상을 풍미한 사기꾼들』 『인생프로파일링, 삶을 해부하다』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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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링 베이식 아트 2.0
알렉산드라 콜로사 지음, 김율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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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미술에 대한 독자의 지식은 거의 문외한에 가깝다. 서양 미술사를 봐도 대부분 유럽 중심의 미술사이고 마지막에 미국의 미술이 조금 기술되는 형식이라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미술은 근대 이후 현대 미술 중심이어서 그림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독자가 아는 미국의 미술가는 '앤디 워홀' 정도이니 스스로 생각해도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지만 미국의 미술 작품을 전혀 접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이 분석하고 있는 『키스 해링』도 미국 미술가다. 이 책은 그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한 책이다. 키스 해링의 작품은 독자 입장에서는 이미 우리나라 각종 상품에서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어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많이 보아왔다.

국내 최대의 화장품 업체에서 사은품으로 쇼핑백이나 파우치 등을 만들어 제작할 때 키스 해링의 작품을 넣어서 화장품을 구입하고 사은품으로 받은 기억이 있다. 바탕은 붉은색 바탕에 아기와 개를 각각 형상화해 넣은 작품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또 반대로 짙은 회색 바탕에 빨간 아기와 개 형상화 그림이 들어간 것도 있어 두 종류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독자는 기억하고 있다. 이 책에는 그 작품에 대한 설명도 실려 있다. "오늘날 해링의 초기 작품은 하나의 도상으로 양식화되어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연상시킨다. 빛나는 후광 속에서 기는 아기와 주둥이가 모난 개가 짖고 있는 그림을 예로 들 수 있다."(p.8)

 


 

이 책은 독일의 현대 미술 전시 큐레이터 알렉산드라 콜로사가 썼다. 이에 따르면 1980년대 뉴욕 미술계의 주요 인물인 키스 해링(1958-1990)은 거리 예술, 그래피티, 팝 감성, 만화 요소들을 혼합한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특유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두꺼운 검은 윤곽선, 밝은 색조, 역동적인 인물상, 공적인(때로는 불법적인) 개입, 조각상, 그리고 캔버스와 종이에 그린 작품들은 즉시 20세기 시각 문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뉴욕 지하철역에 그린 첫 분필 드로잉부터 유명한 “빛을 내는 아기” 심벌, 스와치 시계와 앱솔루트 보드카와의 협업까지, 해링의 작품은 1980년대 뉴욕의 비이성적인 노동 윤리의 상징이자, 사회·정치적으로 독특한 인식을 자아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밝고 장난기 넘치는 미학 뒤에서 인종차별, 자본주의, 종교적 근본주의와 뉴욕 게이 집단에서 에이즈가 갖는 영향력 등 크게 논란이 되는 사회정치적 문제를 작품에 담았으며, 1990년 에이즈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자신의 운명 또한 예고했다고 한다. 저자의 생동감 넘치는 작품 소개를 통해 우리는 활기찬 뉴욕이 배출한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인 키스 해링의 시각 예술 언어와 강한 정치적 신념을 살펴보며, 10년 가량 크게 주목받고 떠난 그의 역동적인 삶과 혁신 정신을 만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모두 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예술은 삶, 삶은 예술」, 2장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는 법」, 3장 「예술, 상업 그리고 어린이」, 4장 「성과 범죄」, 5장 「대단원」, 6장 「키스 해링(1958~1990) 삶과 작품」으로 돼 있다.

 


 

「예술은 삶, 삶은 예술」에서는 키스 해링의 어린 시절과 가정 환경, 미술에 입문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초기의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실려 있다. "해링은 자신의 개성과 예술을 하나의 작품으로 통합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있었다. 해링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선이다. 그의 작품에서 선은 대상의 본질에 충실하도록 형식적으로 축약된 것으로, 화면의 한정된 공간 안에 적절한 비율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선은 항상 연속적이며, 우연을 법칙을 따르고, 외곽선이 되어 형상을 이루고 결국에는 상징이 된다. 무엇보다도 관람자는 작가가 작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짧은 순간의 응시만으로 충분히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해링의 작품이 가지는 특별한 혜택은 이런 강렬한 그래픽 양식을거대한 상상의 세계와 결합한 작가의 능력이다."고 분석한다. 그의 탁월한 화가로서의 인식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작가로서의 역량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작품 속의 인물이나 형태는 연속적으로 변형되어 새로운 창조물로 변화하는데, 이는 소묘가이자 화가, 조각가로서 해링이 지닌 작가적 능력을 증명한다고 설명한다. 천부적이라기보다 노력의 결과이며, 끊임없는 예술적 열정에서 비롯된다고 본 것이다. "해링의 지속적 탐구는 작품의 변화하는 화면과 관련된 실험이 병행되었다. 작가가 선택한 화면이라면 어떤 것에도 벽이나 옷가지, 자동차나 비행선,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이 또는 캔버스, 가공되지 않은 면이나 비닐 등에서 해링만의 특징이 완벽하게 위력을 나타낸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강조한다. 해링의 선은 스케치나 습작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무의식성과 확신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책을 쓰기 전 해링의 예술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도 그럴 것이 해링의 작품 중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해링은 주변에서 본 것들을 모사하고 통합했으며, 당대의 민감한 쟁점에 대한 확고한 직관으로 미국 사회를 관찰했다. 왜냐하면 해링은 생산자인 동시에, 특정 세대 특정 생활방식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카툰과 만화를 보며 성장했기에, 미국인의 '본심'을 파악할 수 있는 예리한 감각을 개발하는 데 최고의 전제조건을 누린 셈이라고 말한다. 이로써 해링은 스파르타식 예술 수단으로, 텔레비전 매체의 노출된 지위라는 보편적인 양상을 지적하는 데 성공했다고 언급한다. 독자로서는 '스파르타식 예술 수단'이라는 표현에서 독서가 막힌다. 처음 듣는 용어다.

어쩔 수 없이 네이버 사전을 찾는다. 정확한 설명의 같은 말은 없다. 다만 '구원 수단으로서의 예술'(니체 『우상의 황혼』의 해제)이란 항목에서 "삶 의지를 부정하는 예술은 구원의 수단이다. 의지의 중단 없는 충족에 대한 추구와 그로 인한 고통으로부터의 구원 수단인 것이다. 하지만 이때의 구원은 '찰나'에 불과한 구원일 뿐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니체의 표현대로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수단을 찾고, 그 수단을 바로 금욕을 통한 의지욕구의 포기 및 자아의 불교적 포기에서 발견한다. 니체는 이것을 그리스도교적 사유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한다."란 해재가 적혀 있다고 기술돼 있다.

 


 

저자는 해링 작품의 하나인 성 주제를 강조한 드로잉은 해링의 예술과 삼이 얼마나 밀접한지를 보여주는 증명으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해링이 학생이었던 1979년 제작해 케니 스카프에 헌정한 작품은 그래프지에 그린 것으로 수많은 동일한 상징들로 뒤덮여 있다. 이 상징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 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남성의 성기로서 귀두 부분이 빨간 색연필로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징들은 종이의 가장자리 선에 맞추어져 서로 겹치거나 닿지 않게 나란히 배열되었다. 같은 해 해링은 같은 주제를 한 번 더 다루었다. 이번에는 검은 종이에 그린 대형 작품으로, 하얀색 초크로 세밀하게 그린 작은 남성 성기들은 압축된 평면성으로 장식 문양처럼 보인다.

저자는 또 해링의 작품의 주제 성향은 일반적이거나 사회비평적인 측면으로 제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춤과 같은 개인적 관심사의 기록으로도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춤과 음악은 해링에게 있어 창조의 필수 요소였다. 그는 작업실에서 일할 때, 볼륨을 최대한으로 올리고 힙합 음악을 듣곤 했다. 또한 해링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클럽인 파라다이스 개러지에 가는 것이 주말 의식의 하나일 정도로 매우 열정적인 춤꾼이기도 했다. 외국 여행을 갈 때면 가능한 한 토요일 저녁 시간에 맞춰 뉴욕으로 돌아오게 일정을 짰다. 작품의 춤추는 장면들은 이런 열정에 대한 증거이다. 해링의 작품들은 힙합, 브레이크 댄스, 일렉트릭 부기 정신에 대한 반영이다.

 


 

삶의 마지막 기간에, 해링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그 이상의 복잡한 것으로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는 상황의 심각한 변화에서 기인된 작품의 더 많은 요구들을 점점 더 감지했다. 해링은 작가 윌리엄 버로스의 작품을 학창시절부터 높이 평가했는데, 1987년에 그를 처음 알게 된 이후 교류를 이어왔다. 해링은 윌리엄 버로스와 두 가지 기획을 함께 진행했다. 해링은 『계시록』이라는 제목으로, 1988년에 출간된 버로스의 글에 10장의 실크스크린을 더해 화집을 제작했다.

 

저자 : 알렉산드라 콜로사

 

독일의 트리어에서 미술사와 독일 문학, 경영학을 공부하여 2003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뒤렌에서 자유기고가이자 현대미술 전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역자 : 김율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서양학과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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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외교 - 음식이 수놓은 세계사의 27가지 풍경
안문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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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 만찬으로 표현되는 식사 자리. 식탁을 함께하는 일은 외교에서도 필수적이라고 한다. 외교는 나라와 나라간의 필요한 일을 대화로 풀어가는 일이다. 범위를 좁혀보면 식구(食口, 가족)가 된다. '식구'란 문자 그대로 '밥을 같이 먹는 사람'쯤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나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우리는 가족, 또는 식구라고 표현한다. 아마 영어의 'family'도 어원을 따져보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회 생활하면서 비즈니스 중 가장 중요하고 빈번이 사용하는 일은 식사 자리이다. 사업 성공을 위한 협상 과정의 식사는 그만큼 중요하다. 이런 중요한 일을 나라와 나라간에 협상하는 게 외교일 것이다. 꼭 정상 간의 만남이 아니라도 외교관 간의 식사는 나라와 나라간의 이해 관계를 맞추거나 적당하게 나눠갖는 데 합의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많을 것이다.

특히 크고 중요한 문제이면 양 나라의 정상이 만나서 이에 관해 협상을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실무 접촉으로 미리 어느 정도 협상을 했기 때문에 정상간 만남은 하나의 보여주기식 '쇼'일 때도 있지만 중요한 협상을 끝맺지 않은 채 만찬에 초대하거나 국빈으로 만찬 자리를 마련할 때도 있다. 그만큼 식사 자리에는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고, 상대의 마음을 사기에는 최고의 기회인 것이다. 만찬이 성사되기 전부터 만찬 이후의 에피소드까지 나라간 정상이나 외교의 만찬 자리는 수많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 책 『식탁 위의 외교』는 음식이 실제 외교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세계사의 27가지 풍경을 통해 살핀다. 윈스턴 처칠, 이오시프 스탈린, 로널드 레이건, 시진핑, 버락 오바마 등 각국의 정상들이 실제 주요 협상에서 식탁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것을 통해 외교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음식과 식탁이 어떤 대목에서 어떤 맥락으로 외교의 윤활유가 되는지를 현장감 있게 설명해 준다. 또한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황에 맞지 않은 음식을 내놓는 것이 얼마나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도 역동적으로 묘사한다.

 


 

책에 나오는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외교 현장을 더욱 실감나고 흥미 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세계 외교와 현대 세계사를 알차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 안문석은 프롤로그 「음식은 외교의 윤활유다」에서 외교관이 외국의 대사로 발령받으면 제일 먼저 자신의 임무를 파악하고, 자신이 만나야 할 사람들의 리스트를 확보한다. 또 외교 파트너의 면면도 조사하고, 국제 이삿짐센터에도 연락하고, 주변에 이임인사도 하는 등 매우 분주하다고 한다. 그 준비 리스트에 절대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셰프를 잡는 일이란 점을 강조한다. 즉, 현지 대사의 관저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데 필요한 셰프를 확보해 모셔가는 일이라고 한다. 음식은 외교에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현지 도착한 후에는 외부 접대를 위한 식당을 미리 찾아둔다고 귀띔한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일단 긴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이고, 서로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면서 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훨씬 가깝게 만들어 준다. 사업의 세계에서도, 정치를 하는데에도 그래서 식사는 중요하다. 외국인을 만나 설명하고 설득하고 협상하는 일인 외교의 세계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역사와 문화를 달리하는 사람을 만나 자국의 이익을 실현하는 작업을 하는 데 식사를 같이 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드물다. 앞에 있는 음식을 두고 이야기하고, 그와 비슷한 자기 나라 음식을 설명하고, 그와 관련한 사연과 역사를 이야기해주고, 그와 관련되는 상대국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식사를 같이 하면서 술까지 한 잔 같이 하게 되면, "우리끼리 얘긴데···", "여기서만 하는 얘기지만···". 이런 식으로 대화는 길어질 수 있다."(p.6)

 


 

저자는 음식이 외교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역사에서도 보여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예나 지금이나 외교에는 음식이 붙어 다녔다는 것. 서양이나 동양에서나 외교 사절을 진수성찬으로 대접해 자국이 필요한 것을 얻어내려 했다는 말이다. 그 전통은 현대의 외교에 그대로 전해져 외교 현장에는 늘 음식 이야기가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그 전통은 현대의 외교에 그대로 전해져 외교 현장에는 늘 음식 이야기가 따라다닌다. 미국과 중국이 정상회담을 했는데, 주메뉴는 뭐였다, 그 음식에 얽힌 사연은 뭐다, 주최 측이 왜 그 음식을 준비했다 등등의 이야기가 늘 흘러나온다. 그만큼 외교 현장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입지는 분명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유명한 사례를 인용하는데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 국무 장관(우리의 외교부 장관)으로 일할 때 미국에서 유명한 요리사 80여 명을 '국가 요리사(State Chef)'로 임명해 중요한 손님을 맞이할 때 적절히 활용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들은 미국 국기아 국무부 문장이 수놓아진 감청색 요리복을 입고 국가 행사 때 최고의 음식을 준비했다. 해외에 파견되어 미국의 음식 문화를 알리는 역할도 했다는 것. 클린턴은 2012년 9월 이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요리는 가장 오래된 외교 수단"이라고 강조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 장관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상대국 관계자들과 나눈 가장 의미 있는 대화는 식사하면서 나눈 것이며, 음식을 나눔으로써 장벽을 뛰어넘어 서로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는 사실도 전한다.

 


 

저자에 따르면 프랑스의 신학자 자크베니뉴 보쉬에는 일찍이 17세기에 "한 나라의 통치는 식탁에서 이뤄진다"고 이야기했다. 루이 14세의 스승 역할을 하며 왕권신수설의 논리적 기반을 제공한 보쉬에는 왕의 절대 권력은 신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 강력한 왕권도 그냥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국가가 잘 운영되는 것은 아니고, 음식과 식사 시간을 잘 활용해 주변 인물을 잘 다뤄야 제대로 된 통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교에서도 국내 정치에서도 식탁의 중요성은 일찌감치, 그리고 충분히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외교 영역에서 공공 외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 나라가 상대국의 일반인을 상대로 우리의 매력을 홍보하는 것이 공공 외교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괜찮은 나라인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좋아하게 되면 국가 간의 관계도 그만큼 원만하게 운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공공 외교의 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저자는 이 같은 한 예로 K-팝을 세계에 홍보하고 K-드라마를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볼 수 있도록 선전하는 게 모두 중요한 공공 외교라고 말한다. 우리의 음식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드는 것 역시 공공 외교의 주요 부분이라는 것. 음식은 그대서 국가와 국가 사이 직접 협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나라 전체의 인상을 개선하고, 나라의 매력을 높여주는 데에서도 무궁무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집필 취지와 연결된다. 이 책은 음식이 실제 외교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를 많이 등장시킨다. 윈스턴 처칠, 이오시프 스탈린, 로널드 레이건, 시진핑 등 각국의 정상들이 실제 주요 협상에서 식탁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것을 통해 실제 외교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음식과 식탁이 어떤 대목에서 어떤 맥락으로 외교의 윤활유가 되는지 현장감 있게 설명한다. 이 책의 매력이자 집필 이유이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 「달콤한 외교」, 2장 「깊은 풍미의 외교」, 3장 「스토리가 있는 음식 외교」, 4장 「역발상 음식 외교」, 5장 「씁쓸한 외교」, 6장 「독한 맛 외교」이다. 각 장 음식의 맛에 비유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이채롭다. 또 외교의 성격과 외교의 결과 등에 따라 음식 맛으로 표현한 것은 독창적이다. 몇 개의 역사적인 음식 외교의 비하인드를 제목만 소개해본다. 1장에서 '패전국 프랑스를 승전국 지위로 올려준 카렘의 디저트'를 1장 「달콤한 외교」로 표현함으로써 성공적인 결과를 표현하는 말로 비유했다. 1792년 시작돼 20년이나 계속된 〈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은 결국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의 연합군에 패했으며 유럽의 새로운 질서를 정립하기 위한 회의가 소집되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렸다. 패전국 프랑스의 대표는 외교 장관 탈레랑이었따. 원래 이름은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인데, 짧게 탈레랑이라고 불렸다. 그는 프랑스 외교사에 당당히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풍운하 스타일의 걸출한 외교관이다. 전쟁 직후 유럽은 그야말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승전국과 패전국으로 갈렸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 형국이었다.

패전국의 외교 장관으로서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호재였다. 탈레랑은 오스트리아와 영국 대표들과 회동을 통해 의기투합했다. 비밀 조약을 체결하고 공동대응을 결의한 것이다. 나폴레옹이 점령했다가 내놓은 땅을 승전국이 서로 차지하려는 욕심의 틈을 갈라 패전국의 의무를 최소화하려 했떤 탈레랑의 외교력은 힘을 발휘했다고 한다. 당시 외교관들은 음식을 먹고 즐기는 미식가도 있었고, 대식가도 있었다. 음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탈레랑의 전략은 이들의 마음을 음식으로 사로잡은 것이다. 이 전략을 위해 탈레랑은 직접 세프를 데리고 갔는데 그가 바로 아투안 카렘이다. 요즘 말로 하면 '스타 셰프'다. 그의 요리 실력은 유럽에 소문날 정도라니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카렘은 '왕들의 요리사', '요리사의 왕'이라는 별명을 붙은 만큼 소스의 계보를 체계화하고 요리사 복장도 표준화할 정도로 요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요리사이다.

 


 

이 책에는 6장에 걸쳐 모두 27개의 외교 관련 음식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대상으로 구별해도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고 있다. 지역적으로 구분해도 동서양,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전 세계의 주요 외교 상에 이루어진 음식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대부분 성공적인 외교 상 결과를 가져온 것이고, 일부 실패한 외교는 5장 「씁쓸한 외교」와 6장 「독한 맛 외교」에 실려 있다. 이 외에도 각 개인마다 선호가 있을 만한 외교 상의 음식 이야기도 실려 있다. 외교에 관심 있는 독자든, 음식에 관심 있는 독자든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 독자의 느낌이다. 저자는 에필로그 「음식은 사람을 인간적으로 만들어준다」라는 글에서 외교 협상에서 실제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음식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저자가 실제로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해가면서 음식의 중요성은 더 실감했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외교 상의 음식은 매우 중요하다. 음식은 사회주의국가의 정상들에게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해 집권한 대통령들에게도 그렇게 중요한 것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이 때문에 최근에는 '음식 외교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밝힌다. 이들 음식 외교학자들은 음식이 실제 외교와 분쟁 해결의 장에서 어떤 매커니즘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지, 더 효과적인 외교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음식을 내놓아야 하는 것인지 등을 깊이 연구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음식 외교는 '매력 외교', '소프트파워 외교', 다른 말로 하면 '마음 사로잡기 외교'다.

 

저자 : 안문석

 

1965년 전북 진안에서 출생해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요크대학교(University of York)에서 정치학 석사, 영국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BS 통일부, 정치부, 국제부 기자를 거쳐 정치부 외교안보데스크를 지냈다. 2012년부터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북아 국제관계, 북한의 대외관계, 미국 외교정책 등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통일외교 방안 등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북한현대사 산책』 1~5권, 『오기섭 평전』, 『김정은의 고민』, 『외교의 거장들』, 『글로벌정치의 이해』, 『무정 평전』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The Sources of North Korean Conduct” (International Journal, 2020), “문재인 정부와 한미동맹―동맹의 지속성에 대한 고찰”(『한국동북아논총』, 2018) 등 한반도와 국제정치 관련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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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중입니다, 이 결혼에서 - 사랑과 결혼 그리고 삶이 던지는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는 기록
박진서 지음 / 앵글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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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누구에게나 삶 가운데 가장 큰일이다. 신중하고 신중해야 할 일이다. 조건은 사랑이다. 그 조건만 충족되면 나머지 문제는 크게 문제가 될 일이 없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 조건으로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이라는 것 이외에 많은 부수적 조건이 따른다. 집안이 문제 될 수도 있고, 조국이 문제 될 수도 있다. 종교도 결혼 조건에 포함될 때는 방해되기도 한다. 집단이나 사회의 문제 이외에도 결혼은 당사자 간의 문제에도 조건이 붙을 수 있다. 개인의 능력, 외모, 신체나 학력, 또는 건강과 성격 등 따질수록 많아지는 게 결혼의 조건이 된다. '사랑'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고, 결혼이 이루어지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위대하다고 한다. 결혼 생활은 이후의 문제다. 잘한 일인지, 잘못된 결혼인지는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에 의해 좌우된다.

인간은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문제에 부딪치고 때론 성공으로 기쁨과 행복감을 맛보기도 하지만 때론 실패함으로써 좌절을 겪기도 한다. 불운을 만나고 그 앞에서 속절없이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시간을 되돌리기를 바라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이 결혼일 때는 일생일대의 큰 문제가 된다. 이 책 『살아남는 중입니다, 이 결혼에서』의 저자 박진서 또한 그랬다. 불임, 예상치 못한 부채, 가난, 남편의 시각장애 그리고 자신의 자율신경 실조증. 이런 연이은 시련의 시작은 ‘결혼’이었기에 그 선택을 후회하고 숨통을 조이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남몰래 애를 끓였다.

 


 

이처럼 삶의 좌절을 느끼게 된 원인을 생각하다가 잘못된 결혼을 이유로 떠오르면 현대 사회는 자유롭게 '이혼'을 허용한다. 두 사람의 합의만 있으면 법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허락한다. 두 사람의 합의가 없더라도 법적인 조건에 합당하다면 한 사람의 요구만으로 이혼을 허용하기도 한다. 삶에 절망하고 결혼을 이혼을 바꾸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저자는 결혼생활을 끝내는 대신 어느 날부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불운을, 그 불운으로 비롯된 고행과 같은 나날을,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폭발과 마음의 소용돌이를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갔다.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세밀히 말하기 힘들지만 어디에든 털어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속내를 풀어헤쳤다.

저자는 남편과 함께하는 삶을 헌신, 희생이나 사랑 같은 말로 덧칠해 꾸미지 않는다. 혹자의 감상처럼 ‘습자지 하나 걸치지 않은 글쓰기’다. 그렇기에 절망하고 분노하고 자책하고 다시 추스르고 일어서는 현실의 인간, 즉 당신과 나의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각자의 이유로 불행한 우리 모두가 저자의 글에 공명하며 위로받게 된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꿈꾸지만, 늘 무지개처럼 잡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행복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독자들은 저자와 함께 울고 웃으며 어쩌면 저마다의 인생이 던지는 문제를 풀어나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이 책에서 기대한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결혼을 한 뒤 연이어 고난을 맞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 대부분은 결혼이 잘못되어 고난을 겪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낌없이 결혼을 버린다. 이혼의 이유를 묻는다면 '성격의 차이'로 혼인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이다. 정말 그럴까? 크든 작든 수많은 문제들이 엉켜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생일대의 큰일인 결혼 생활을 포기하기에는 섣부른 판단이 될 것이다. 문제는 불거진 문제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나름대로 신중하고 깊게 생각할 것이다. 이혼을 결심한 사람들은 어떤 이유든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아니면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말밖에 할 말이 더 있을까? 저자는 결혼생활 내내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남편 곁을 떠나지 못했다. 자신도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 채.

책에 따르면 결혼 후 혹시나 하고 찾은 병원에서 생각지도 못한 불임 판정을 받았고, 두 차례에 걸쳐 큰 빚을 지게 되었으며, 남편이 시력을 서서히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부채 청산을 위해 매일을 치열하게 살았지만, 어느 날 이유 없이 끔찍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저자 자신도 자율신경 실조증(자율신경계 이상으로 통증, 현기증, 피로 등 이상 자각 증상을 느끼는 질환) 판정을 받았다.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한꺼번에 닥쳐온다면, 도저히 두 사람이 함께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보통은 이혼을 생각할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했든 또 다른 이유가 있어 결혼했든 말이다.

 

 

고난을 맞은 사람들은 “내가 어쩌다 이렇게 살고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많은 경우 스스로를 책망하고 자기 선택을 후회하거나 탓하고 원망할 사람을 찾기도 한다. 반면에 상대에게서 잘못을 찾아내고 자신의 잘못은 못 보거나 안 보거나이다. 못 봤든 안 봤든은 문제가 되지 않을 상황이 된다. 저자 역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절친한 친구가 눈물을 보이며 “아까운 친구”라며 안타까워할 때, 저자 스스로도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출중해서 한때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아이였던 자신을, 자신의 인생을 아까워했다고 털어놓는다.

한때 저자는 TV에서 방영되는 〈효리네 민박〉과 같은 삶을 깊이 갈망하며 환경적 제약에 낙담했다. 그러다 자신의 낡고 허름한 아파트 베란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며 전원생활의 한 순간을 맛보는 듯한 평안을 느끼고 ‘효리처럼’이라는 열망을 잠재웠다. 저자는 말한다. 열망이 사라진 자리엔 깊은 상실감과 허탈함이 남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삶과 살아내야 하는 삶 사이의 간극을 아프지만 조금씩 좁혀나갈 수 있다고.

 


 

저자의 말대로 어쩌면 행복이라는 개념이 과대평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의 조건’이라는 말도 사실 실체가 없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고 말했지만, 행복도 불행도 그 기준은 천 명의 사람에게 천 개로 갈릴 수 있다. 삶에 대한 생각,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면 행복은 그리 찾기 어려운 것도 아닌 것이다. 불친절한 삶에도 저마다의 행복은 숨어 있기 마련이니까.

저자는 허탈함, 원망,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를 되짚는 사이 자신만의 행복과 작은 희망을 다시 발견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보듬고 치유하면서 깨닫게 된다. 인생이 기대를 배반하는 불운을 떠안겨도 불행하지 않게 살 수 있음을. 젊은 시절 한때 빛나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며, 또 누군들 지나온 자신의 인생이 아깝지 않을까? 저자는 이렇게 반문하며 현재의 삶을 다른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주어진 운명도 아닌, 자신이 만들어낸 것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기를 택한 것이다. 불운이 덮친 삶을 온몸으로 부딪으며 버텨왔기에, 오랜 시간 동안의 통렬한 반성과 성찰을 해왔기에, 그리고 이런 저자가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기에, 체념과 해탈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말들은 뜬구름 잡는 철학이 아닌 현실적 경험의 공유로 느껴진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그 울림이 미치는 깊이와 너비는 다를지라도 말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단번에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은 고단한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부부가 함께하는 의미를 찾고 진정한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고난 앞에서도 절망이 아닌 희망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천천히 가더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야 하는 게 인생이다. 우리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삶의 트랙 위에 서야 하고, 내일 무너진다 해도 오늘은 일어나야 한다. 때로 자기 앞에 놓인 이런 삶을 살아내기가 버거운 우리에게 이 책은 공감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며 생생한 위로를 전할 것이다.

 

저자 : 박진서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대학 졸업 후 모 국가기관에서 근무하던 중 문예 창작과에 편입하여 잠시 주류 문학을 맛보기도 했다. 그동안 많은 직업을 거쳐왔지만 글쓰기는 늘 돌아가고 싶은 고향 같은 것이었다. 더 젊은 날엔 글도 삶도 고통스럽게 해결해야 할 숙제로 여겼으나 지금은 답을 미리 알아버린 사람처럼 여유를 부릴 줄도 안다. 먼 길을 돌아 다시 고향에 온 듯,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글쓰기와 소소한 밥벌이를 이어가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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