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중입니다, 이 결혼에서 - 사랑과 결혼 그리고 삶이 던지는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는 기록
박진서 지음 / 앵글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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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누구에게나 삶 가운데 가장 큰일이다. 신중하고 신중해야 할 일이다. 조건은 사랑이다. 그 조건만 충족되면 나머지 문제는 크게 문제가 될 일이 없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 조건으로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이라는 것 이외에 많은 부수적 조건이 따른다. 집안이 문제 될 수도 있고, 조국이 문제 될 수도 있다. 종교도 결혼 조건에 포함될 때는 방해되기도 한다. 집단이나 사회의 문제 이외에도 결혼은 당사자 간의 문제에도 조건이 붙을 수 있다. 개인의 능력, 외모, 신체나 학력, 또는 건강과 성격 등 따질수록 많아지는 게 결혼의 조건이 된다. '사랑'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고, 결혼이 이루어지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위대하다고 한다. 결혼 생활은 이후의 문제다. 잘한 일인지, 잘못된 결혼인지는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에 의해 좌우된다.

인간은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문제에 부딪치고 때론 성공으로 기쁨과 행복감을 맛보기도 하지만 때론 실패함으로써 좌절을 겪기도 한다. 불운을 만나고 그 앞에서 속절없이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시간을 되돌리기를 바라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이 결혼일 때는 일생일대의 큰 문제가 된다. 이 책 『살아남는 중입니다, 이 결혼에서』의 저자 박진서 또한 그랬다. 불임, 예상치 못한 부채, 가난, 남편의 시각장애 그리고 자신의 자율신경 실조증. 이런 연이은 시련의 시작은 ‘결혼’이었기에 그 선택을 후회하고 숨통을 조이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남몰래 애를 끓였다.

 


 

이처럼 삶의 좌절을 느끼게 된 원인을 생각하다가 잘못된 결혼을 이유로 떠오르면 현대 사회는 자유롭게 '이혼'을 허용한다. 두 사람의 합의만 있으면 법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허락한다. 두 사람의 합의가 없더라도 법적인 조건에 합당하다면 한 사람의 요구만으로 이혼을 허용하기도 한다. 삶에 절망하고 결혼을 이혼을 바꾸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저자는 결혼생활을 끝내는 대신 어느 날부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불운을, 그 불운으로 비롯된 고행과 같은 나날을,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폭발과 마음의 소용돌이를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갔다.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세밀히 말하기 힘들지만 어디에든 털어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속내를 풀어헤쳤다.

저자는 남편과 함께하는 삶을 헌신, 희생이나 사랑 같은 말로 덧칠해 꾸미지 않는다. 혹자의 감상처럼 ‘습자지 하나 걸치지 않은 글쓰기’다. 그렇기에 절망하고 분노하고 자책하고 다시 추스르고 일어서는 현실의 인간, 즉 당신과 나의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각자의 이유로 불행한 우리 모두가 저자의 글에 공명하며 위로받게 된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꿈꾸지만, 늘 무지개처럼 잡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행복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독자들은 저자와 함께 울고 웃으며 어쩌면 저마다의 인생이 던지는 문제를 풀어나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이 책에서 기대한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결혼을 한 뒤 연이어 고난을 맞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 대부분은 결혼이 잘못되어 고난을 겪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낌없이 결혼을 버린다. 이혼의 이유를 묻는다면 '성격의 차이'로 혼인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이다. 정말 그럴까? 크든 작든 수많은 문제들이 엉켜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생일대의 큰일인 결혼 생활을 포기하기에는 섣부른 판단이 될 것이다. 문제는 불거진 문제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나름대로 신중하고 깊게 생각할 것이다. 이혼을 결심한 사람들은 어떤 이유든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아니면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말밖에 할 말이 더 있을까? 저자는 결혼생활 내내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남편 곁을 떠나지 못했다. 자신도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 채.

책에 따르면 결혼 후 혹시나 하고 찾은 병원에서 생각지도 못한 불임 판정을 받았고, 두 차례에 걸쳐 큰 빚을 지게 되었으며, 남편이 시력을 서서히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부채 청산을 위해 매일을 치열하게 살았지만, 어느 날 이유 없이 끔찍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저자 자신도 자율신경 실조증(자율신경계 이상으로 통증, 현기증, 피로 등 이상 자각 증상을 느끼는 질환) 판정을 받았다.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한꺼번에 닥쳐온다면, 도저히 두 사람이 함께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보통은 이혼을 생각할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했든 또 다른 이유가 있어 결혼했든 말이다.

 

 

고난을 맞은 사람들은 “내가 어쩌다 이렇게 살고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많은 경우 스스로를 책망하고 자기 선택을 후회하거나 탓하고 원망할 사람을 찾기도 한다. 반면에 상대에게서 잘못을 찾아내고 자신의 잘못은 못 보거나 안 보거나이다. 못 봤든 안 봤든은 문제가 되지 않을 상황이 된다. 저자 역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절친한 친구가 눈물을 보이며 “아까운 친구”라며 안타까워할 때, 저자 스스로도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출중해서 한때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아이였던 자신을, 자신의 인생을 아까워했다고 털어놓는다.

한때 저자는 TV에서 방영되는 〈효리네 민박〉과 같은 삶을 깊이 갈망하며 환경적 제약에 낙담했다. 그러다 자신의 낡고 허름한 아파트 베란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며 전원생활의 한 순간을 맛보는 듯한 평안을 느끼고 ‘효리처럼’이라는 열망을 잠재웠다. 저자는 말한다. 열망이 사라진 자리엔 깊은 상실감과 허탈함이 남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삶과 살아내야 하는 삶 사이의 간극을 아프지만 조금씩 좁혀나갈 수 있다고.

 


 

저자의 말대로 어쩌면 행복이라는 개념이 과대평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의 조건’이라는 말도 사실 실체가 없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고 말했지만, 행복도 불행도 그 기준은 천 명의 사람에게 천 개로 갈릴 수 있다. 삶에 대한 생각,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면 행복은 그리 찾기 어려운 것도 아닌 것이다. 불친절한 삶에도 저마다의 행복은 숨어 있기 마련이니까.

저자는 허탈함, 원망,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를 되짚는 사이 자신만의 행복과 작은 희망을 다시 발견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보듬고 치유하면서 깨닫게 된다. 인생이 기대를 배반하는 불운을 떠안겨도 불행하지 않게 살 수 있음을. 젊은 시절 한때 빛나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며, 또 누군들 지나온 자신의 인생이 아깝지 않을까? 저자는 이렇게 반문하며 현재의 삶을 다른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주어진 운명도 아닌, 자신이 만들어낸 것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기를 택한 것이다. 불운이 덮친 삶을 온몸으로 부딪으며 버텨왔기에, 오랜 시간 동안의 통렬한 반성과 성찰을 해왔기에, 그리고 이런 저자가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기에, 체념과 해탈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말들은 뜬구름 잡는 철학이 아닌 현실적 경험의 공유로 느껴진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그 울림이 미치는 깊이와 너비는 다를지라도 말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단번에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은 고단한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부부가 함께하는 의미를 찾고 진정한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고난 앞에서도 절망이 아닌 희망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천천히 가더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야 하는 게 인생이다. 우리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삶의 트랙 위에 서야 하고, 내일 무너진다 해도 오늘은 일어나야 한다. 때로 자기 앞에 놓인 이런 삶을 살아내기가 버거운 우리에게 이 책은 공감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며 생생한 위로를 전할 것이다.

 

저자 : 박진서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대학 졸업 후 모 국가기관에서 근무하던 중 문예 창작과에 편입하여 잠시 주류 문학을 맛보기도 했다. 그동안 많은 직업을 거쳐왔지만 글쓰기는 늘 돌아가고 싶은 고향 같은 것이었다. 더 젊은 날엔 글도 삶도 고통스럽게 해결해야 할 숙제로 여겼으나 지금은 답을 미리 알아버린 사람처럼 여유를 부릴 줄도 안다. 먼 길을 돌아 다시 고향에 온 듯,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글쓰기와 소소한 밥벌이를 이어가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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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얻는 지혜 (국내 최초 스페인어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6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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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람을 얻는 지혜』의 저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당시 스페인의 대표 철학자였다고 한다. 독자로서는 처음 읽은 책이지만 이 책은 성경의 잠언처럼 쓰여 이후 철학자들에게도 많은 영감과 지혜를 준 것으로 보인다. 그라시안이 활동했던 17세기 스페인 귀족 세계는 겉으로는 화려함을 과시했으나, 안으로는 속임수와 음모, 배신이 가득한 실정이었다. 정중한 궁정 행동 지침만 가득할 뿐, “지혜로우면서도 현실적인 선택”에 관한 실용적인 가르침은 부족했다. 그라시안은 많은 함정과 악한 행동을 미리 경고하면서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는 손에 잡히는 지혜를 전하고자 했다. 이 책은 인류 최고의 현인이나 철학자들이 앞다투어 그 진가를 인정했다.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불리며 자기 외에 모든 권위를 인정하길 거부했던 철학자 니체조차도 “이처럼 정교하고 세련된 인생 지침은 이제껏 만나지 못했다”라고 극찬했다. 또 지독한 염세주의자로 유명했던 쇼펜하우어마저도 “이 책은 평생 들고 다니며 읽어야 할 인생의 동반자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이 책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위해 수년간 스페인어를 따로 배울 정도로 진심을 보였다(지금까지 한국에서 보았던 버전은 모두 쇼펜하우어가 번역한 독일어판이나 심지어 영어판을 재번역한 중역이었다). 뿐만 아니다. 몽테뉴, 파스칼 같은 17~18세기 유럽의 기라성 같은 철학자와 사상가들도 예외 없이 이 책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고, 영어판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세계적으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말년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교회의 허가 없이 책을 출간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교수직에서 해임되었으며, 감금과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계속되는 처벌과 불이익으로 아픔을 겪다가 1658년 57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바로크 시대 유럽의 모럴리스트들은 성서에 나온 예시와 경구를 바탕으로 당연한 대답만 내놓았기에 결론도 뻔했다. 그러나 그라시안의 글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했기에 몇백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와닿는 부분이 많다. 이것은 그의 글이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과 삶의 중요한 원리들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지성 클래식이 46번째로 출간한 이 책 『사람을 얻는 지혜』는 국내 최초로 1647년판 스페인어 원서에서 직접 옮겼으며,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연구자들의 최신 연구결과를 반영했다. 본문을 생략하거나 편집하지 않고, 원문 순서 그대로, 텍스트 전체를 모두 소개하는 최초의 버전이라고 한다. 198개의 각주와 친절한 해제를 통해 당시의 사회·문화 및 종교적 배경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 300개 글의 맥락을 정확히 보여주는 제목을 달아 한눈에 텍스트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인간에게 전하는 사랑 가득한 노신부의 “지혜롭고 실용적인 300개의 통찰”을 선물로 받는다. 400년의 간격이 무색할 정도로 인생 명언으로 다가올 것으로 기대된다.

사람들은 왜 이 책에 그토록 열광했을까? 그리고 지금은 왜 그렇게 열광할까? 이것은 그의 글이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과 삶의 중요한 원리들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전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삶의 지혜들은 놀랍게도 매우 현대적이다. 수없이 쏟아지는 재편집본과 여러 언어의 번역본이 그 유효성을 확실히 증명한다. 그는 계급이나 직업의 한계와 엄격한 시간 구분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오늘날의 포스트 모던 시대까지 거침없이 넘어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면도날 같은 현실성과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실존의식(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발버둥)을 그대로 전달한다. 1~300번까지의 번호가 붙은 300개의 끊어지지 않는 하나의 단락으로 구성된다. 그가 말한 내용 일부를 압축해보면 다음과 같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본질적인 일에 집중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일을 해결하려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조언을 구할 줄 아는 것은 연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지혜롭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성공은 성취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주로 관계에 달려 있다." "모든 사람은 주어진 상황에서 완벽함을 추구해야 하는데, 지혜와 개인적인 성숙이 그 완전함의 일부이다. 행운은 자주 찾아오지만, 그것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라시안은 모든 성취가 의미 있는 삶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님을 깨닫고, 조화로운 지혜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래서 이 책의 시선은 생존의 고된 과제인 끝없는 선택 앞에서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며 성공하길 원하는 모든 사람을 향한다. 그렇게 그는 음모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의미 있는 삶과 성공하는 삶 사이의 중도를 보여주려고 했다.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엔 간편하고 쉽게 읽어낼 수 있지만, 검증된 지혜를 담고 있다. 저자가 수십 년 동안 스페인 상류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부자와 권력자들의 궁중 암투 속에서도 살아남아 깨달은 보석 같은 ‘날 것 그대로의 지혜’가 펄떡이며 살아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인간에게 전하는 사랑 가득한 노신부의 “지혜롭고 실용적인 300개의 통찰”을 선물로 받는 셈이다.

 


 

그라시안이 살았던 17세기 스페인 국민들의 삶이 녹록치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층민들은 빈곤에 허덕이고 대항해 시대를 개척해 쌓아올린 막대한 부는 오롯이 지배계층과 상인들의 몫이었던 것 같다. 스페인의 위대한 철학자라고 칭송받던 그라시안은 이 책을 통해 타락, 위선으로 가득한 세상이었음을 역설적으로 꼬집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의 집필 이유로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책의 곳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삭막한 세상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독자에게만 느껴지는 감정일 수 있다) 이 책의 목적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가?에 대해 저자의 철학이 담긴 글이다.

당시 스페인은 대항해 시대를 열고 유럽의 강력한 국가 중의 하나로 올라섰고, 엄청난 세력의 해군력으로 말 그대로 대서양의 지배권을 갖고 있을 정도로 막강했다. 이는 유럽의 변방으로만 치부되어온 스페인의 국력이 당당한 강대국으로 올라선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스페인(에스파냐)은 아메리카 대륙 발견의 결과 카를로스 1세, 펠리프 2세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펠리프 2세의 후반기에는 해외무역에서 영국이 대두하고, 국내의 정치와 경제도 쇠퇴하였다.

그러한 사회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들로부터 높이 평가받고 이로써 행복을 지켜나가기 위해 알아야 할 지혜로운 조언들을 그라시안은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이 책에는 철학적이고 미려하고 형이상학적인 말보다는,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말들로 가득하다. 17세기 유럽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며 칭송받았던 이 책이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최고의 인생 지침서로 여전히 손꼽히는 이유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는 공감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알아야 할 인생의 모든 지혜가 담겨 있다. 겉만 번지르르한 관념적인 인생 조언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실천 수칙들이 가득하다. 선명히 빛나는 밤하늘의 별처럼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으려면 좋은 사람이 아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통찰은 21세기의 독자들에게 더욱 큰 울림을 전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친구들과 동료들, 적수들, 상사들과 어울려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로운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길 바란다. 이 책은 많은 부분에서 중국 공자의 가르침에도 나오는 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인간 삶에 있어서는 고대든 현대든 원칙이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해내는 것도 이 책의 장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은 모두 8부로 구성된다. 1부 「인간의 위대함은 운이 아니라 미덕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미덕」, 2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현실을 인식하라: 현실」, 3부 「인생은 짧지만 잘 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5부 「지혜는 내면의 절제에서 나온다: 내면」,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7부 「인생의 진정한 공부를 마지막으로 미루지 말라: 온전함」, 8부 「5년마다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라: 성숙」으로 나뉜다. 책에 따르면 발타자르 그라시안(1601-1658)은 40세에 설교자로 큰 성공을 거둔 후에 출간한 『재능의 기술』(1641)을 더욱 깊고 폭넓게 확장한 책이 바로 『사람을 얻는 지혜』이다. 그는 예수회 신부였지만, 글 안에는 종교적 언급이 거의 없고 기독교 도덕 개념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저자가 생각한 근본적인 삶의 목표는 성공과 명성보다는, 개인의 성숙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근본을 지키면서도 실용적인 성공 전략을 놓치지 않았다. 저자는 많은 함정과 악한 행동을 미리 알아야 피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어리석은 사람이나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자신을 지킬 방법을 전하고자 했다.

 


 

역자 김유경은 책의 뒷 부분에 「끝없는 선택 앞에서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란 제목의 글로써 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한 '해제'를 실었다. 이에 따르면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상류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부자와 권력자들의 음모를 목격하면서 "정직하면 바보 되는 불합리한 세상"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는 모든 성취가 의미 있는 삶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님을 깨닫고, 조화로운 지혜를 찾으로고 애썼다. 그래서 이 책의 시선은 생존의 고된 과제인 끝없는 선택앞에서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며 성공하길 원하는 모든 사람을 향한다. 그렇게 그는 음모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의미 있는 삶과 성공하는 삶 사이의 중도를 보여주려고 했다.

이 책에서 그라시안은 숙명론적이지 않고, 최악의 상항에서도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는 예수회 신부였지만, 글 안에는 종교적 언급이 거의 없고 기독교 도덕 개념을 저항하지도 않는다. 이런 격언 형식은 성서의 여러 책 중에서 솔로몬이 기록한 『잠언』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 책은 라 로슈푸코, 라 브뤼에르, 몽테뉴, 파스칼, 라퐁텐 같은 17~18세기 프랑스 도덕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니체와 쇼펜하우어는 앞서 언급한 대로다. 그라시안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말 그대로 300개에 이르기 때문에 한두 문장으로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수많은 조언 중에서 성공과 성취가 의미 있는 삶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인관계와 개인의 성숙, 지식과 지혜의 습득 등이 동반돼야 비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란 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역자도 언뜻 보면 모순처럼 보이는 내용도 많다고 밝힌다. 하지만 그마저도 저자의 기본적인 의도를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이 책의 가치를 설명한다.

 


 

저자 : 발타자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an y Morales)

 

스페인 사라고사 지방, 칼라타유드 지역인 벨몬테에서 1601년에 태어났다. 아버지 프란시스코 그라시안 가르세스는 의사였고, 손위 형제들이 일찍 죽는 바람에 그가 장남이 되었다.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21세까지 2개의 철학 과정을 공부했고, 사라고사 대학에서 4개의 신학 과정을 이어간 후, 25세(1627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28세(1630년)까지는 인문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발렌시아의 수도원에서 3년간 수련기를 마쳤다. 40세에 설교자로 큰 성공을 거둔 후에 출간한 『재능의 기술』(Arte de ingenio, 1642년)을 더욱 깊고 폭넓게 확장한 책이 바로 『사람을 얻는 지혜』(Oraculo manual y arte de prudencia, 직역하면 “신탁 편람과 지혜의 기술”)이다. 그는 예수회 신부였지만, 글 안에는 종교적 언급이 거의 없고 기독교 도덕 개념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저자가 생각한 근본적인 삶의 목표는 성공과 명성보다는, 개인의 성숙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근본을 지키면서도 실용적인 성공 전략을 놓치지 않았다. 저자는 많은 함정과 악한 행동을 미리 알아야 피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어리석은 사람이나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자신을 지킬 방법을 전하고자 했다.

저자가 살던 17세기 전후, 스페인은 과거 150년간 유럽의 지배자로 군림하다가 서서히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30년 전쟁 개입으로 경제적 위기가 왔고, 포르투갈 및 카탈루냐의 반란, 전쟁 참패 등으로 서서히 힘을 잃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적으로는 황금시대였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대한 환멸과 덧없음, 종교적 희망, 죽음의 편재라는 특징이 바로크 문화라는 이름으로 전반에 드러나던 시기였다. 말년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교회의 허가 없이 책을 출간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교수직에서 해임되었으며, 감금과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계속되는 처벌과 불이익으로 아픔을 겪다가 1658년 5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역자 : 김유경

 

멕시코 ITESM 대학교와 스페인 카밀로호세셀라 대학교에서 조직심리학을 공부했다. 인사 업무를 하다가 지금은 출판기획과 번역을 하며 다양한 분야의 스페인어권 작품을 알리고 있다. 번역서로는 『언어의 뇌과학』, 『스토아적 삶의 권유』, 『어느 칠레 선생님의 물리학 산책』,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아이였다』, 『여자의 역사는 모두의 역사다』, 『가난포비아』, 『붉은 여왕』, 『마음 홈트』, 『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 『동물들의 인간 심판』, 『42가지 마음의 색깔2』, 『엄마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일까』, 『누가 내 이름을 이렇게 지었어?』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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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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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믿음이 병의 예후와 진행을 좌우하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과학을 맹목적으로 믿고 치료에 임한다면, 정확한 진단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성시킨다. 또 인간의 질환 치료에는 피지컬과 멘탈의 연결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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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100세 시대'라고 할 만큼 인류의 수명은 크게 늘었다. 인류 수명 확장에는 무엇보다 의학의 힘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누구나 다 안다. 과학 발전과 함께 서양 의학은 과학에 기대어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왔고, 치료할 수 없는 병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의학계는 발전해 왔다. 누구나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고, 의사가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고 진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의사는 진찰과 검진을 통해 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알맞는 약을 투입해 병의 치료에 다가선다. 한때 '걸리면 죽는다' 해서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암 역시 이제는 환자의 5% 이하로 사망률이 줄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희귀성 질환도 꾸준한 연구와 치료법의 발전에 힘입어 상당 부분 정복되었다고 뉴스는 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고령화로 인한 치매(알츠하이머 포함) 등 뇌신경계의 질병에 대한 치료는 아직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병의 진행을 늦추는 정도의 약만 개발된 상태라고 한다. 정신질환 등 뇌에 관한 질병은 아무래도 아직은 의학계가 정복하지 못한 '신의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는 형상이다.

이 책 『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는 고도로 발전된 현대 의학의 사각지대로 여겨지는 만성피로증후군, 신경성 두통, 불쑥 찾아오는 어지럼증, 매일 끊이지 않는 흉통 등의 치료법에 관한 이야기다. 현대 의학으로도 그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터라 이로 인해 환자의 불편한 심리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몸에 나타나는 고통도 더욱 심화된다는 것. 저자 엘러스테어 샌트하우스는 이 질병 등에 주목했다.

 


 

저자는 런던 종합병원의 정신과 의사로 20년 넘게 ‘원인 불명의 증상’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치료해 왔다. 현대 의학이라고 해서 모든 의사들이 모든 병을 다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고 연구한다면 치료가 가능한 환자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치료법은 '비과학적'이란 이유로 의료계가 제대로 주목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치료 경험과 환자들에 대한 상담 등을 통해 환자들의 마음속에 숨은 아픔을 치료하는 과정을 계속해 왔다고 한다. 이 치료의 경험에서 마음의 고통이 어떻게 몸으로 이어지는지, 무엇이 그 고통을 더욱 깊게 하는지,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의학적인 시선으로 예리하게 살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우리의 성격과 정신 건강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지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게 도와준다. 아울러 현대 의학의 기계적 진료에 지친 사람들에게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Head First : How the mind heals the body.' 원제로 보이는 영어가 표지에 실려 있다. 부족한 능력으로 번역을 해보자면 '머리가 먼저다 : 어떻게 마음이 몸을 치유하는가'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란 번역 제목은 오히려 눈에 띄지 않은 이유는 독자의 의학 지식 부족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추천평을 한창수 고려대학교 정신건강연구소장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아픈 경험이 있거나 마음을 다루는 일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고 썼다.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다.

 


 

누구나 그렇기도 하지만, 특히 이 책의 독자 대부분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몸이 아픈 적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또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이 한 가지인 사람도 있지만 두세 개씩 가진 사람도 많다. 다만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치료할 수 없다는 뜻이어서, 인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특히 극심한 고통이나 일상이 어려울 정도의 불편함이 있다면, 병원에 입원을 해서라도 치료에 응하겠지만 그 정도에는 못 미치게 아프다는 게 맹점이다. 조금씩 아프다말다를 반복하는 것도 적극적 치료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이 같은 증상이 없는 독자라면 이 책을 더 주의해서 읽을 것을 권유한다. 어쩌면 치료법이 없다는 뇌신경계나 원인불명으로 진단되는 경우 치료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을 쓴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는 런던 종합병원의 정신과 의사로, 20년 넘게 수천 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해왔다.

내과 의사 출신이었던 저자는 종합병원의 응급실을 거쳐 내과 진료소에서 근무하며, 몸이 아픈 사람들의 증상을 살피고 진단명에 따라 치료하고 처방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점차 신체검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으며 질병의 심리적 측면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정으로 그들의 몸과 마음 모두를 치유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저자는 종합병원의 정신과 진료소에서, 병원 내 각종 분과에서 증상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한 환자들의 정신을 감정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 일을 통해 건강은 신체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 양측이 모두 적용되며, 두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저자가 만났던 수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묶어낸 책으로, 종합병원 정신과를 찾아온 환자들이 겪었던 증상과 마음속에 숨은 아픔,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마음의 고통이 어떻게 몸으로 이어지는지, 무엇이 그 고통을 더욱 깊게 하는지,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의학적인 시선으로 예리하게 살핀다. “환자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고민하지 말고 그 병이 어떤 사람에게 생기는지 고민하라”고 말한 영국 의학자 윌리엄 오슬러의 말처럼, 이 책은 우리의 성격과 정신 건강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지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게 도와주는, 치유와 회복을 위한 첫걸음과도 같은 책이다.

저자가 속한 종합병원에서 정신과는 ‘원인 불명의 증상’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다. 환자들을 만나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마음 상태가 어떤지 당사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치료한 결과, 저자는 이런 환자들에게 신체의 상태를 점검하는 일 못지않게 내밀한 심리 치료가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환자 스스로도 모르던 마음속 결핍을 채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한 환자는 18개월 동안 심장외과, 류마티스내과, 신경과, 자율신경과, 소화기내과, 이비인후과까지 전문의 6명을 거치고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결국 정신과 진료소로 왔다. 업무도, 약혼도 미뤄두고 온갖 스캔과 검사에 몰두한 그에게 남은 것은 불안, 분노, 악화된 건강 상태. 저자는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눈 뒤, 그가 ‘불안장애’를 겪고 있으며 어지럼증은 불안장애에 흔히 따르는 과호흡 때문이라는 소견을 제시했고, 환자는 항불안제 복용 8주 만에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사실 능숙한 의사는 보통 메모를 힐끗 보기만 해도 환자가 호소하는 신체 건강 문제가 스트레스, 불행, 우울 등 온갖 심리적·사회적 요인에서 비롯되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복잡한 가족 관계, 경제적 압박, 기분 및 불안장애도 참고 사항에 기록된다. 하지만 그때쯤엔 이미 상황이 늦기 마련이다. 의사들은 이미 환자의 문제가 신체 질환이라는 판단하에 검사를 진행해왔고 환자도 그렇게 믿고 있다. 의사들이 발견할 가능성도 없는 신체 질환을 계속 찾으려고 했을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 전임자들이 그랬듯 환자와 나눠야 할 대화를 피하는 편이 쉽다. 환자의 신체 질환이라는 것이 사실은 심리적?사회적 압박의 결과일 가능성을 외면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p.54~55)

위 내용은 책에 쓰여 있는 그대로 인용했다. 독자가 판단하기에는 의학이 과학에 너무 얽매여 과학적으로 풀리지 않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심리적 요인들을 구태여 진단 명목에 넣지 않은 것을 지적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마음의 치유는 단순히 질병 치료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 태도를 좌우하고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것. 이 책은 저자가 만난 다양한 사연과 증상을 지닌 환자들의 이야기를 총 18장으로 나누어, 각 사례에 등장하는 환자들이 어떻게 마음을 마주하고 삶을 바꾸어 나갔는지 보여준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성피로나 신경성 두통 환자부터, 세상이 두려워 집에 틀어박힌 광장공포증 환자, 외모 강박으로 건강이 망가진 거식증 환자, 자신의 삶을 방치하다 병세가 악화된 당뇨 환자, 자기혐오와 우울로 먹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비만 환자, 심지어 보살핌을 받고 싶어 일부러 몸을 망가뜨렸던 환자까지, 각양각색의 이유로 종합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환자들이 가지고 있던 심리적 문제를 파악해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환자에게 적합한 방법을 제시해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매일 끔찍한 흉통을 앓았지만 신체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을 찾아내지 못한 한 환자는 납치 후 후유증으로 인한 불안장애가 통증의 원인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잦은 검사가 아닌, 항불안제 처방과 심리 상담이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또 당뇨를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현실에서 도피하느라 지병을 방치해 건강이 악화된 한 환자는,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저자가 던진 질의응답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내면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치료 과정을 밟은 환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신체적 고통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가꿀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책을 통해 환자의 심리 상태가 신체 상태에 대한 인식, 지속적인 건강관리, 더 나아가 삶을 유지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밝힌다. 이를테면 스트레스를 받은 후 두통을 느끼는 것은 심리적인 고통이 몸까지 전이되어 나타나는 현상 중 일상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일시적이고 가벼운 증상이더라도, 증상을 느끼는 당사자가 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증상과 고통이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 실제로 환자가 자신의 증상이 심각한 것 같다고 사전에 선입견을 가질 경우 더욱 아프다고 느끼는데, 이는 신경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을 뇌가 왜곡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통각 자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더라도, 뇌가 심각한 요인이 있을 거라고 단정하면 실제보다 통증을 더욱 과장되게 인식하는 것이다.(p.259)

 


 

특히 정신질환으로 분류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삶을 비관적으로 보는 환자는 신체의 통증을 더욱 심하게 느끼고 염려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도 밝혀낸다. 이런 환자들은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병세가 더욱 악화되기 쉽다. 실제로 우울증은 심장병과 뇌졸중의 발병 확률을 급격하게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p.294) 하지만 신체 질환과 우울증을 모두 갖고 있는 환자는 주변에서(심지어 의료진까지도) ‘우울증에 걸릴 만하다’며 우울증 치료를 방치하는 일이 잦아 질병을 빠르게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우울증 환자가 비관으로 더욱 자신의 질병을 방치하고, 병이 깊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기도 한다.

더욱이 우울증 환자가 심장마비를 겪고 나면 만성 질환과 사망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울증으로 인한 화학물질 분비 변화 때문이겠지만, 어쩌면 우울증이 개인의 사기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우울증 환자는 건강관리에 소홀하기 쉽다. 예를 들어 흡연을 계속하거나, 정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거나, 건강에 해로운 식사를 고집하거나, 후속 진료를 받을 의욕이 부족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모두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심장 질환 치료의 맥락에서 우울증 치료는 결코 심장약 복용만큼 강조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다. 꼭 우울증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환자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위축되었는지는 환자가 자신의 삶을 관리하는 큰 요인이 된다. 이에 저자는 심장마비 이후 회복 과정에 있는 환자들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 환자가 겪는 객관적인 불편함의 정도보다 환자 본인의 믿음이 건강을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기도 한다. 자신이 “병세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환자”는 재활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회활동을 유지하는 등 질이 높고 긍정적인 일상생활을 이어나갔다. 반면 “자신의 병이 치명적이라고 믿은 환자는 활동이 위축되고 정적인 생활을 유지했”으며, 심장마비 이후에는 적당한 신체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면서도 무력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확인되었다.

 


 

“환자의 믿음이 병의 예후와 진행을 좌우하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과학을 맹목적으로 믿고 치료에 임한다면, 정확한 진단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성시킨다. 또 인간의 질환 치료에는 피지컬과 멘탈의 연결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정신 치료에도 과학 이외의 요인도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심리·사회·정신·환경 등 인간 삶과 연결된 여러 요인을 병합 진단하는 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저자 :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Alastair Santhouse)

런던의 가이스 병원과 모즐리 병원의 정신과 의사.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한 후, 영국 왕립런던종합병원 대학원에서 의학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종합병원 내과에서 근무하던 중,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모즐리 병원 정신의학과로 전공 분야를 옮겼다. 이후 20년 넘게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며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영국 왕립정신과의사협회 자문조정정신의학 위원회 부위원장과 영국 왕립의료학회 정신의학과장을 지냈다.

《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는 ‘원인 불명의 증상’으로 종합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정신감정을 맡아온 저자가 그동안 만난 여러 환자들이 겪은 아픔, 증상, 그리고 그들이 털어놓은 마음속 이야기들을 묶어낸 책이다. 이 책은 각양각색의 사연을 지닌 환자들의 사례와 저자의 예리한 의학적 시선을 통해, 정신 건강이 신체 건강과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역자 : 신소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 및 번역가로 일해왔다.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야생의 위로』, 『우먼 디자인』, 『맨 인 스타일』, 『여행에 나이가 어딨어?』, 『첫사랑은 블루』, 『완벽한 커피 한 잔』, 『밴 라이프』, 『사랑은 오프비트』, 『세계 예술 지도』, 『피너츠 완전판』,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 등을 번역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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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황주리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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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고독했던 시절, 그때는 몰랐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답던 시절, 내 어깨를 어루만져준 영화 한 편으로부터 이 편지는 시작된다.” 전쟁과 어둠이 끝없이 계속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그래서 살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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