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 8인의 시인, 8인의 화가 : 천진하게 들끓는 시절을 추억하며
김연덕 외 지음 / 미술문화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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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한때 시와 소설을 TV에서의 광고와 드라마로 비유한 적이 있다. 물론 사석에서 한 말이고, CF의 한 장면에 대한 이야기에서 파생돼 나온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때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는 미술 에세이로서 시와 그림은 매우 닮은 점이 있다는 의미에서 갑자기 TV 광고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 시는 간결하고 언어로 시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문학 장르로서 어쩌면 가장 오래된 문학인지도 모르겠다.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문학은 서사시로서 긴 이야기를 시의 형식으로 썼기 때문이다. 시는 간결한 언어로 표현해야 하므로 상징과 은유 등 비유도 자주 사용되고, 갖은 문학적 수사 방법이 동원된다. 그래서 간혹은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의 카메라로 풍경을 찍는다면 사진보다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림의 시초도 사실은 자연이나 인물에 대한 묘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들었다. 그래서 그림을 자연 모방으로부터 시작된 예술이라고 한다. 이는 문학에서도 차용되는 논리다. 자연이나 화자의 느낌, 감정, 마음 등을 짧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생긴 장르기 때문이다. 문자가 없었을 때는 구전해야 했기에 간결한 것이 우선이었을 터, 마땅히 짧게 표현하다보니 시가 짧게 의미 전달을 위해 최소한의 단어만 사용하는 문학으로 발전되지 않았나 싶다. 문학 전공자들은 어떻게 배우는지 독자도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시와 그림의 조화라고 해도 될 것이고, 한편으론 화가가 표현하는 바를 시인이 글로 반추해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에세이다. 이 책의 8명의 저자들은 모두 시인들이다. 시인 중에서도 그림을 좋아하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겠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한결같이 그림을 좋아하고, 어떤 시인은 화가의 작품에 일가견을 갖고 있을 정도로 애호가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그림을 직접 그리는 분도 있다 하니 미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는 시인들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예스24 에세이 PD 이나영의 평가도 눈여겨볼 만하다. "8명의 시인들이 각자 친애하는 화가의 그림들을 글로 써낸 책이다. 시와 그림은 말을 줄여 한 이미지로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자의 시절을 관통한 그림들을 시인 각자의 언어로 추억하고, 조우하며 시와 그림이 접촉하는 순간, 엉겨 붙어 내게로 오는 순간을 느낀다."

시와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보자. 단순하게 구분하자면 한쪽은 글로 쓴 예술이고, 한쪽은 선과 색으로 그린 예술이다. 보다 엄밀한 설명도 가능하겠지만 그건 너무도 복잡하고 심오한 세계라 이쯤에서 넘어가 본다. 시와 그림은 자주 한데 엮인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을 줄임으로써 말해지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대상을 구체적으로도 추상적으로도 표현할 수 있지만, 어느 쪽이든 결국 읽고 감상하는 이의 관점에 따라 무한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아무래도 좋다. 시와 그림은 조용히 우리의 마음을 부수고 깨뜨리고 치유하고 복원한다는 점에서, 이토록 희미한 세상의 한 구석을 한결같이 예리하게 투사해 헤집어 놓는다는 점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이 책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는 이러한 시와 그림을 적나라하게 사랑하고 싶어서 기획된 책이다. 고유한 세계관과 예리하게 벼린 시어로 이미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단단히 각인된 시인 여덟 명이 한자리에 모여 그림을 논했다. 안희연 시인은 특정한 사조로 분류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신비로운 그림 세계를 구축한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를, 서윤후 시인은 뜨겁게 불타오르는 성정을 우키요에라는 불멸의 장르로 승화시킨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를, 오은 시인은 강렬한 색채를 자유분방하게 사용해 ‘야수주의’라는 사조의 시초가 된 프랑스의 거장 ‘앙리 마티스’를 좋아한다고 털어놓는다. 또 김연덕 시인은 간결하고 깔끔한 선과 색채로 천진하여 더욱 애달픈 연인 연작을 그려낸 프랑스 화가 ‘헤몽 페네’를 골랐다.

신미나 시인은 반 고흐가 존경한 화가이자 순박하고 꾸밈없는 농촌 생활을 화폭에 담은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를, 이현호 시인은 영조와 정조 시대에 활약하며 기인, 미치광이, 주객 등의 별칭으로 전국팔도에 이름을 떨친 조선 후기의 천재 화가 ‘최북’을, 최재원 시인은 풍성한 색채와 영롱한 빛 표현으로 독보적인 화풍을 개척한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 보나르’를, 박세미 시인은 오랜 시간 서로의 예술에 크고 작은 영감을 선사하며 우정을 나눈 한국의 동시대 화가 ‘이소화’를 각각 골랐다. 시인들은 저마다 다른 시선과 언어로 그림을 향유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고른 화가와 그 그림이 시인들의 한 시절을 예리하게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희연 시인에게 파울 클레는 최승자와 더불어 그의 이십 대를 정의하는 아이콘이었다. 그는 한때 “클레의 작품을 보고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혔고 그것을 언어화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나의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제목과 주석만 초라하게 남은 저 광활한 실패를 보라. 아마 시를 쓰면서 처음으로 마주한 장벽이 아니었을까. 모든 자극이 다 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 어떤 그림은 그 자체로 크고 넓어 언어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인이 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난 클레의 그림에는 허공을 바라보며 소리 지르는 여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듯 기우뚱한 전나무가, 겁을 집어먹은 듯 처연하게 눈물 한 방울 떨구고 있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 뒤 시인은 고백한다. “지금껏 써온 나의 시들이 상당 부분 클레에게 빚지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파울 클레에게 무한 존경과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내는 안희연은 시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아니, 시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청춘을 달려온 시인들에게 그림은 때론 위안을, 때론 공감을, 또 때론 조언을 해주었다고 털어놓는다. 시인이 되고 시집을 펴내며 마주한 고민의 시간과 다양한 인연들 속에서 아파한 이들에게 그림은 때론 사랑을, 때론 상실을, 또 때론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시인들의 한때가 짙게 묻은 그림을 보며 독자들은 시인이 품고 있는 기억의 한 구석을 그들과 공유하며, 그것이 산문으로 발화하는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게 된다. "클레는 달랐다. 클레의 그림 앞에선 침착하려 해도 휘저어졌다. 단순한데 깊고 골똘했다. 무엇보다 작품 안에서 추상의 역할이 분명하다는 점이 좋았다. 현실을 똑바로 옮겨내는 작업도 소중하지만 내게 보다 위안이 되는 그림은 물컵에 담긴 쇠젓가락처럼 신비로운 굴절이 일어나는 작품들이었다."(p.24)

 


 

또 서윤후 시인은 가쓰시카 호쿠사이를 두고 “이십 대의 방황 속에서 우정을 짙게 나눈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부르며 “마치 언젠가 소식이 끊겨버렸지만 한 시절의 깊은 우정을 나눴던 친구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고 추억한다. 시인은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속 성난 파도를 바라보며, 펄펄 끓어올랐던 호쿠사이의 정열과 갓 시인이 되어 조급하고 서투른 마음으로 안달했던 자신의 이십 대를 병치한다. 김연덕 시인에게 헤몽 페네는 열세 살에 처음 만나 “한낮의 서점에서, 잠깐의 순간에도 그의 연인들에 매혹”되게 만든 화가다. 시인은 “나는 오직 페네를 위해, 책에서 20페이지도 차지하지 않는 그 부분을 읽고 간직하기 위해 그것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의 그림은 거의 내가 들고 다니는 노트에 한 낙서 같았고 그게 낙서라면, 내가 태어나 보았던 낙서들 중 가장 이상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말하며 유년 시절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페네의 그림을 추억한다. 시인은 열세 살 꼬마에서 스물여덟이 되었고, 그 사이 시인에게 찾아온 사랑들의 “겉과 안은 여전히 아프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때, 페네가 그린 천진한 연인들은 다시 부활하여 시인과 조우한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인 시와 그림. 글과 색. 펜과 붓. 문장과 색채. 그리고 시인과 화가. 이 둘을 나란히 놓고 감상함으로써 우리는 두 개의 예술이 서로를 흡수하여 하나가 되는 합일의 예술을 목격한다. 어쩌면 글로 그림을, 그림으로 글을 100퍼센트 완벽히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능성의 결핍이 그들을 계속해서 책상과 이젤 앞에 앉히고, 끊임없이 쓰게 하고 그리게 하는 것 아닐까? 시인과 화가가 접촉한 순간은 한 편의 산문이 되어 지금 여기에 도착했다. 이 글은 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생경한 촉감을 남길 테다.

 


 

오은 시인은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마티스에 대한 꽤 깊은 조예가 드러난다. 시인은 마티스의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춤추는 기분이 든다고 고백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춤추자고 적극적으로 손 내미는 사람을 마주한 기분이라는 것. 몸을 움직이는 데 '젬병'인 시인조차 신체 곳곳에 분포한 신경이 반응한다. 발을 살짝 떼도 괜찮지 않을까.란 표현으로 몰입하는 그림임을 강조한다. 손을 슬쩍 머리 위로 올려도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란다. 시인은 마티스의 회화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 이 느낌이라고 말한다. 직전이 가져다주는 설렘과 아슬아슬함을, 한창때에 번져 나오는 흥분과 희열을 시인은 도무지 외면할 수 없다고 느낌을 말한다. 그러나 마티스의 회화는 결코 넘치는 법이 없다는 데 와선 흥분을 슬쩍 감추기도 한다. 신체는 캔버스에 스며든 듯 안정적이고 신체가 표현하는 동작은 날렵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자연스럽다는 시인의 표현으로 독자는 마치 진짜 춤을 추는 사람들 앞에서 감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은 시인의 마티스에 대한 애정은 그의 작품성을 알아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마티스의 작품에 대해 보고 또 보면서 많은 생각을 정리한 듯하다. 예술 작품을 오래 보면서 사유를 통해 자신이 표현하는 글까지 이끌어내는 데서 "역시 시인은 다르다"는 독자의 감탄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마티스는 회화 작업을 할 때 단순화를 중시했다. 무엇을 단순화한다는 것일까? 형태를? 색깔을? 입체감을? 사실상 모든 것이었다. 회화 작업을 할 때도 그는 스케치가 지닌 본래의 날렵한 미덕을 지키기 위해 붓을 들었다. 붓을 드는 일은 스케치를 채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덮어버리는 일이다. 연필선이 드러나는 작품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채색 작업은 원래의 구상을 뚜렷하게 하는 작업이기 대문이다. 구상이 뚜렷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처음의 의도는 희미해진다."(p.83)

 


 

시간이 지연될수록 나는 내 공간에 그녀의 그림을 걸게 될 순간을 더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소화의 얼굴을 본 시간보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이제 훨씬 더 많게 되었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애정이 더 깊어진 것처럼. 그녀의 그림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이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때, 그리고 그녀의 그림이 내 공간에 존재하게 될 때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웃게 된다. 이것이 작은 꽃의 기쁨.(p.240) - 「박세미 × 이소화」중에서

 

저자 : 김연덕

199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으며 2018 [대산대학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재와 사랑의 미래』가 있으며 곧 다가올 성탄절을 내 생일처럼 기다리고 있다. 겨울과 산책과 꽃을 사람처럼 사랑하는 사람.

 

저자 : 박세미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과 건축역사·이론·비평을 전공했다.

 

저자 : 서윤후

1990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09년 [현대시]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과 『휴가 저택』, 『소소소(小小小)』,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그리고 여행 산문집 『방과 후 지구』, 『햇빛세입자』, 만화 시편 『구체적 소년』 등을 펴냈다. 제19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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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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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는 예고편이 없다. ‘죽어감’이 길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서 서둘러 사라진다. 완화치료 의사 아나 아란치스가 전하는, 후회 없는 오늘을 위해 죽음 앞에서 그들이 하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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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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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죽음이 물었다』는 완화의료 전문의인 저자가 죽음을 곁에 둔 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을 지켜보며 느낀 성찰을 다뤘다. 독자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지만 완화의료란 삶의 끝자락에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 특히 통증을 완화시켜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고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돌봄의 의학이다. 지금까지 독자가 알고 있던 '호스피' 개념과 비슷한 의미로 이해된다. 저자는 누군가의 마지막 시간을 돌보는 의사로서 경험한 삶과 죽음의 모습,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완화의료의 현실에 대해 객관적이면서도 다정한 시선으로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죽음에 대해 말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아무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 죽음의 순간을 통해, 저자는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독자들에게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처럼 사는 삶을 택하지만 모두가 살아 있는 상태로 죽을 권리를 갖고 있다.” 독자들의 공감을 받기에 충분한 사유로 보인다.

저자는 오늘의 삶이 어떻게 죽음의 모습으로 투영되는지 알려주면서, 남은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기회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사실 죽음은 보편적인 단어인 동시에 무척 개인적인 단어이다. 누구나 한 번은 반드시 겪지만, 그 체험은 모두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급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을 앞에 두고 지나온 삶을 후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찬찬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끌어오다가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가족이나 친구, 가까운 지인의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는 것과,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죽음을 겪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특히 자신의 죽음에 대해 깊게 사유하는 일이 거의 없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개인적 상황의 미래를 예측하는 수준의 일이기에 아무런 사유적 결론을 끌어내지 못한다. 독자도 지금까지 죽음에 대해서 '죽음이란?'에 답할 정도로 깊은 사색을 해본 적이 없다. 죽기 전에 맞이할 노년에 대해서는 촘촘하고 끈질기게 이기적 결론을 끌어내고 대책을 세우지만, 죽음 이후에 대해서를 포함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것은 죽음과 죽음 이후는 인간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종교도 갖지 않았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종교가 없다는 이유로 삶과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종교 역시 인간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죽음 이후를 대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종교인이나 민간신앙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천당'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믿지 않는데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종교를 갖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즉 죽음은 아직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느껴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두렵고 무섭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고, 우리는 누구나 가족 구성원이나 친인척의 죽음, 또는 반려동물의 죽음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죽음을 경험해본 적이 있지만 살아 있는 생명이 끊어지는 것만이 죽음이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모든 존재적 상실 역시 죽음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관계이든, 직업이든, 확신이든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우리는 날마다 일상의 죽음을 경험하며 크고 작은 상실을 맞닥뜨린다는 저자의 죽음에 대한 성찰이다.

 


 

『죽음이 물었다』의 저자이자 브라질 완화의료 최고 권위자인 아나 아란치스는 이런 상실의 체험을 덜 고통스럽게 하고, 삶을 의미 있게 하기 위해 ‘바로 지금’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를 권한다. 저자는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섬세한 언어로 죽음을 통해 상실을 끌어안고, 더 나아가 사랑과 지혜로 가득한 삶을 위한 통찰을 전한다. 죽음은 자연스럽게 현실 세계의 유한성과 연결된다. 지금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아는 사람은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안다. 스스로를 최우선으로 돌보고 참된 사랑과 배려로 살아가며, 죽음과의 만남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완화의료 전문의로 오랜 시간 일하며 수많은 환자들을 지켜본 저자는 안온한 마지막을 보낸 환자들의 공통점으로 일상에 대한 충실한 태도를 꼽았다.

저자는 다가오는 주말이나 휴가, 혹은 은퇴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거나, 자식이나 연인을 위해 나를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인생의 주인으로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만족하는 자세만이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자기 삶에 만족하며 살아온 환자들은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러한 태도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는 결코 준비할 수 없으며, 삶을 살아가면서 계획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이 책은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돌봐온 의사의 체험기이지만, 저자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의 말대로 오늘 독자의 하루가 어땠는지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겨우 눈을 떠 아침을 맞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루를 보냈다. 어제도, 그리고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고 몸에 밴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저자는 성찰을 통해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유한다. 내가 주도하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그저 따라가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몸에 나쁜 음식을 사 먹고, 다닐 시간도 없는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고, 입지도 않을 옷을 사지는 않았는가? 삶에서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하는 부정적인 에너지로만 가득한 하루를 보내지는 않았는지 자문해봤을 때 자신 있게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는 “사람들은 결국 살아온 대로 죽는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가질 가망도 없다”라고 말하며, 좋은 삶이 있어야 좋은 죽음도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좋은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까지 무언가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노력해왔다. 학교에서 지식을 얻고, 사회에 나와 부와 명예를 얻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얻으려 애썼지만 무언가를 잃는 법에 대해서는 어떨까. 저자는 삶에서 얻어낸 것들을 온전히 누리며 살기 위해 잃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잃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잃을지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며, 자기 삶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내 삶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고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가능해진다. 고통의 체험에서 따라오는 좌절과 우울, 슬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긍정함으로써 새로운 단계로 용기 있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도록 해준다. 소중한 것은 지키고, 잃어야 하는 것은 기꺼이 잃는 삶, 고통을 새로운 출발의 도약으로 삼을 수 있는 삶, 스스로 성장하는 가치 있는 삶을 우리는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가치들을 함께 생각해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상실과 고통을 넘어서게 하는 힘은 불멸의 사랑에서 나온다는 저자의 조언과 격려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만의 해답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죽음까지도 인생의 일부임을 잊지 않고 현재를 되돌아보며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값지고 귀한 선물이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장(章)의 구별 없이 완화의료 의사이자 저자 아나 아란치스의 글이 담겨 있다. 각각의 글에는 저자의 의대 입학 때부터 자퇴, 다시 의학을 시작한 후 현재까지 배운 의학 지식, 치료 경험, 의사의 치료 태도,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태도 등을 종합해 현재의 완화의료 수준이 더 확장되고 깊이 있는 치료로서 발전해가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이는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 의사로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책임의식과 의료철학에서 비롯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나는 누구인가?」부터 「죽음 이후의 삶」까지 의사로서의 경험과 환자로서의 존엄성을 모두 만족시킬 만한 완화의료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다. 독자들은 이 책의 각 글마다 저자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 순간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더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죽음에는 예고편이 없다. '죽어감'이 길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서 서둘러 사자진다"(p.16)라는 저자의 말은 긴 여운을 남긴다.

 


 

나의 ‘돌봄 은하계’에서는 3퍼센트의 환자들만이 진정제를 필요로 한다. 아름다운 죽음을 돕는 이 작은 세계에서는 97퍼센트의 환자들이 영화의 한 장면보다 더 아름답고 강렬한 순간에 가장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곳에는 감독도, 배우도, 각본도 없다. 단 한 번의 리허설도 없다. 죽음에는 연습이 있을 수 없기에 모두가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결과적으로 삶 전체와 일맥상통하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사람들은 결국 살아온 대로 죽는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가질 가망도 없다.(p.78)

 

저자 : 아나 아란치스(Ana Claudia Quintana Arantes)

브라질 완화의료 최고 권위자. 상파울루주립대학병원에서 노인의학으로 레지던트 과정을 수련했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완화의료를 전공했다. 20여 년째 저작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완화의료가 올바르게 인식되도록 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2013년에 오래도록 금기시돼왔던 ‘죽음’이라는 주제를 전문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TEDx 강연이 큰 호응을 얻으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출간된 《죽음이 물었다》가 브라질에서만 50만 부 이상 판매되고 미국, 스페인, 중국 등 전 세계 10개국에서 출간되며 글로벌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2020년에 《죽음이 물었다》의 속편인 《아름다운 죽음 이야기》를, 2021년에는 《평생 가치 있는 삶을 위하여》를 연속 출간하면서 세계적 작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역자 : 민승남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제15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아룬다티 로이의 『지복의 성자』,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 『남편의 아름다움』, 이언 매큐언의 『스위트 투스』, 『넛셀』, 메리 올리버의 『천 개의 아침』, 『완벽한 날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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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에마뉘엘 토드 지음, 김종완.김화영 옮김 / 피플사이언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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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장기전으로 끌려갈 예측이 수없이 나오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제3차 세계대전‘의 시작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 러시아와 친러시아 국가들의 전면전으로 확산될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말 인류는 전쟁으로 종말을 맞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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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에마뉘엘 토드 지음, 김종완.김화영 옮김 / 피플사이언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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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대한민국 통신사인 〈연합뉴스〉는 다음과 같은 긴급 뉴스를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1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에 따른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담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는 평화를 추구하는 데에 열려 있지만 러시아는 그렇지 않다"며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 잔인한 전쟁을 끝낼 의사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이 이어지는 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지속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18억5천만 달러(약 2조3천억원) 규모의 추가 군사 지원 방침을 밝혔다. 이는 미국이 지금껏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것 가운데 단일 지원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지원 패키지에는 패트리엇 미사일 포대가 포함될 것"이라며 "패트리엇 포대를 훈련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방어하는 또다른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는 1년 중 가장 춥고 어두운 시기에 의도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인프라를 파괴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겨울을 무기로 만들고 있으며, 사람들을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게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걸음마다 함께할 것"이라며 "우리는 전쟁이 이어지는 한 당신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거듭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일치하고 있음을 강조, "우리는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이 같은 단결에 매우 긍정적"이라고 단언했다. 전쟁 종식과 관련해선 "우리는 모두 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지만, 이는 푸틴이 정신을 차리고 군대를 물리는 옳은 일을 할 때에야만 가능하다"며 "그러나 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지원 약속은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밤새 백악관으로 날아와 전투복 차림으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지원 약속을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독자로서는 멀리 떨어진 중서유럽 북쪽 러시아와 국경을 인접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이라 2월 발발 때만 하더라도 관심은 대통령 선거와 팬데믹 상황에 관심이 더 쏠렸었다. 그러던 전쟁이 예상 외로 오래 끌고 우크라이나 임전 태세가 만만치 않다는 뉴스가 들릴 때까지도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 발발 시부터 이미 원자탄에 의한 대량 살상무기 사용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발표하자 독자는 깜짝 놀랐었다. 우크라이나에 미국이나 서유럽 어느 국가도 참전하지 않은데 왜 무리한 무기 사용까지 언급했나 우려되기도 했다.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NATO 가입을 위한 무기 등의 지원은 있지만 자신들의 군대를 파견하지 않는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눈치는 보였다. 그러나 가스 공급이 막히고 서유럽은 에너지 부족으로 추운 겨울을 지나는 동안 이 전쟁에 직접 개입할 의사는 없는 듯했다. 그 태도는 미국도 견지하는 듯하다. 정확한 정보도 없고, 국제 관계에 문외한으로서 더 이상의 전쟁 예측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전투는 연일 공습과 반격을 거듭한다는 이야기 외에는 별 다른 움직임이 없는 듯했으나 급기야 젤린스키 대통령의 미국 방문으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책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세계적인 역사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에마뉘엘 토드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관련해 날카로운 정세 예측을 한 글들을 엮은 것이다. 독자는 처음 접하는 분이지만 꽤 유명한 저작자인 것 같다. 저자는 “푸틴은 과거 소련과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동유럽 전체를 지배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문제로 푸틴과 교섭해 타협하는 융화적 태도는 결국 히틀러의 폭주를 허락한 1938년 뮌헨회담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이 얘기는 독자도 여러 번 들은 듯하다.

 


 

서방측 미디어는 연일 이렇게 보도를 이어나가고 있으나 과연 이와 같은 주장이 타당한가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는 답변 예측뿐만 아니라 근거를 제시하고 분석한 결과에 따른 예측이라 정확한 국제 관계의 역학 관계를 잘 아는 저작자로 이미 정평이 난 분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마뉘엘 토드는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오히려 근본적으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러시아가 명확하게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서방측의 처사가 이번 전쟁의 주된 원인이라 주장한다. 이 문제는 ‘미국의 뒷마당’에 소련이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해서 미소 간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까지 갔던 1962년의 쿠바 위기와 더 유사하다는 것.

저자에 따르면 본디 우크라이나 문제는 국경 수정이라고 하는 ‘지역적인 문제’였으나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무장화해 NATO의 ‘사실상’ 가입국으로 만든 데 핵심이 있으며, 이런 미국의 정책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문제가 ‘글로벌화=세계 전쟁화’됐다. 사람들은 세계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하지만, 저자는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고 판단한다. 우크라이나군이 강하게 저항할수록 러시아군은 공격적으로 격하게 대응하고, 이에 맞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력의 개입이 한층 커져서 전 세계가 꼬리를 물고 구렁텅이에 빠지는 악순환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아도 무시무시한데도 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의 시작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을까. 독자는 우선 우리 살기 바쁜데 하며 외면하다시피 한 개인적 잘못은 그렇다 치더라도 언론마저도 침묵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닥 반갑게 들리지 않는다.

 

 

에마뉘엘 토드는 또한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를 통해 서방측 미디어의 치우친 주장에 가려진 이면의 문제를 들추고, 나아가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파장, 향후 진행되는 세계정세, 전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세력 등 혼란스러운 현 상황에 대해 날카로운 진단과 견해를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소비에트연방 해체, 미국발 금융 위기, 아랍의 봄 등 문제적 예언을 속속 내놓았던 에마뉘엘 토드의 인사이트가 이번에도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독자는 사실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멀리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신경 쓸 정도로 생업 후의 에너지가 남아 도는 사람은 아니다. 더욱이 국제 문제 역학이나 군사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어서 뉴스를 통해 구경하듯 지켜보고 있는 상태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무신경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이 전쟁이 나비 효과를 일으켜 제3차 세계대전의 빌미가 될 우려를 안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로 지금처럼 ‘아마겟돈 위기’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고 언급했고, “우리는 역사적 경계에 있다. 앞으로 10년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동시에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미 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저자는 이에 더 이상의 확전 없이 끝내기를 바라는 말을 책에 담는다. 저자에 따르면 전례 없는 세계사적 위기. 지금 가장 필요한 자세는 열을 식히고,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으로 디스토피아로 치닫는 열차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류는 유례없는 위기에 빠졌다. 러시아가 며칠 만에 단기 결전으로 끝낼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장기화되고 있으며 소모전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인류는 끓는 물 속 개구리(boiling frog)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에 대한 경각심 없이 일방으로 치닫다가 돌이킬 수 없는 큰 위험에 맞닥뜨리지는 않을까.

 


 

현대 최고 지성으로 손꼽히는 에마뉘엘 토드는 이런 사태를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에서 일찍이 예견했다. 이 책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마자 일본에서 긴급 출간되어 이례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화제의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독보적으로 관련 분야 1위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이제야 번역 출간된 것이다. 저자인 에마뉘엘 토드는 세계적인 역사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 인구학자로, 과거에도 소비에트연방의 해체, 미국발 금융 위기, 아랍의 봄, 트럼프의 승리, 영국의 EU 탈퇴 등을 예측한 바 있다고 하니 그의 명성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이번 예측이 맞아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독자의 마음은 쉽게 다가가지 않는다. 그는 현 상황을 모노폴리 게임에 빠져들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이성 마비 상태라고 진단한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는 현실의 냉혹함을 모두가 외면하는 사이 우크라이나인과 국토는 점점 더 재기하기 힘든 진짜 아마겟돈의 상태에 빠지고 있다.

저자는 소련 붕괴 후 협정을 깨고 러시아의 군사적 세력권을 위협한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을 촉발한 결정적 도화선이라고 판단한다. 나아가 현재 사태를 ‘세계대전’이라고까지 주장하는 데는 우크라이나 뒤에 영국과 미국이라고 하는 거대한 힘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예상을 웃도는 저항은 바로 미국과 영국의 군사 지원의 성과라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상황에 대해 ‘강한 러시아가 약한 우크라이나를 공격한다’고 볼 수 있지만, 지정학적으로 더 큰 관점에서 보면 ‘약한 러시아가 강한 미국을 공격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사실상 미국과 러시아가 충돌하는 이상 ‘장기전’, ‘지구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다.

 


 

나라의 운명, 더 나아가 인류의 운명을 예측하는 일이 간단하거나 힘의 논리로만 정학하게 예측되지는 않을 터다. 힘 이외의 인류 삶의 모든 면에서의 충돌이라고 한다면 힘의 논리 이외의 다른 축도 제시해야 한다. 저자는 또 다른 한 축의 문제는 지정학적 사고와 전략적 사고가 완전히 사라지고 감정적으로만 흘러가는 서구 미디어의 태도라고 지적한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냉철한 논쟁과 분석이 사라지면서 이번 사태는 더 꼬이고 만다. 단순히 러시아를 악마화하는 이념만으로는 침공 이면에 연쇄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본질과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컨대 지금까지 왜 친러시아계 주민은 미디어에 일절 등장하지 않는지, 푸틴은 왜 극우 네오나치 세력 척결을 언급하는지, 우크라이나의 성명은 모두 진실한 반면에 러시아는 날조되었다는 전제로 시작하는지 등 여러 층위에서 논의할 수 있는 의문조차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을 ‘민주주의 vs. 전제주의의 싸움’으로 표현하며 나아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우리가 진정한 진리라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과 우크라이나발 정보에 전적으로 근거한 편협한 독선일 뿐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사실을 알려준다.”(일본 저널리스트 사이토 다카오) 이 책은 일방적으로 치닫는 현 위기 상황을 통찰하기 위한 대단히 무겁고 의미 깊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책은 두 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책의 표제어인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이고 2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인류학」으로 돼 있다. 글의 흐름이 제 3자적 입장을 견지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예측과 분석을 믿는 대로 따라간다. 물론 오랫동안 국제 정세나 국제 관계뿐만 아니라 인류학적 접근, 문화적 접근 등을 모두 고려해 분석한 것으로 보이긴 한다. 자칫 잘못 읽으면 러시아 측 편을 드는 듯한 느낌이고, 자칫하면 미국과 유럽 등에 경고하는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 책이 무게를 가진 이유이다.

 


 

저자 : 에마뉘엘 토드

1951년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 파리 국립인구학연구소(INED)의 연구원으로 사회학자, 인구학자, 역사인류학자이다. 파리정치대를 거쳐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족 시스템의 차이와 인구 동태에 주목하는 방법론의 최고 전문가. 일찍이 25세인 1976년 《최후의 몰락》을 통해 영아 사망률의 상승이라는 데이터를 근거로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를 예측한 최초의 학자이다. 그 후에도 계속 ‘문제적 예언’을 내놓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제국 이후》(2001)에서는 미국발 금융 위기를, 《문명의 융합》(2007)에서 아랍의 봄, 나아가 트럼프의 승리, 영국의 EU 탈퇴 등을 예언했다. 그의 주장이 ‘문제적 예언’으로 보이는 것은 출간 당시에는 반대가 대다수인 비주류에 속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간하는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역시 ‘일반 통념에 반하는 소수설’에 기반한다. 그 외에 《샤를리는 누구인가?》, 《유럽의 발견》, 《새로운 프랑스》, 《문명의 충돌이냐 문명의 화해냐(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역자 : 김종완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일본어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강원대학교에서 일본어 강사로 재직 중이다.

-현재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 일본어학과 출강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박사

-일본 와세다대학 일본어연구과 일본어교육 석사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전공 : 사회언어학, 담화분석 전공

 

역자 : 김화영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연구과 일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중앙대학교 BK21 신진연구원으로 연구를 수행했으며, 현재 수원과학대학교에서 호텔관광서비스과 조교수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논하다』(공저) 『일본근현대문학과 연애』(공저), 역서로는 『일본근현대여성문학선집2-요사노 아키코』 『일본근현대여성문학선집9-미야모토 유리코』 『유녀문화사』 『세이토』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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