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황주리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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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고독했던 시절, 그때는 몰랐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답던 시절, 내 어깨를 어루만져준 영화 한 편으로부터 이 편지는 시작된다.” 전쟁과 어둠이 끝없이 계속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그래서 살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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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황주리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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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은 소설 작품이다. 글 쓰는 화가 황주리의 개성적인 그림이 곁들인 장편소설이다. 황주리는 일찍이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개척한 신구상주의 계열의 선두주자이다. 또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는 안목과 빼어난 문장으로 주목 받아온 작가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SNS를 통해 교류하는 두 인물의 편지들로 구성된다. 여성인 한국인 화가와 남성인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외과 의사가 그 주인공이며, 영화 〈바그다드 카페〉가 두 사람을 연결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촉매 역할을 하는 매우 신선하고 독창적인 형식의 소설이다.

두 인물 사이에 연정이 싹트긴 하지만, 이 소설은 일반적인 연애소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두 인물은 끊임없이 폭력으로 물든 세상을 관조하고,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탐색하며, 주변과 일상을 성찰한다. 그 과정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고독과 불안,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유려하고 심미적인 문장으로 드러난다. 소설을 지배하는 음울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적인 대화와 매혹적인 서간체가 빛을 발하는 소설이다. 낭만적 요소가 다분히 있어 읽기에는 다소 파괴적인 모습도 있지만 결코 세상을 해체하는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두 주인공은 서로를 끊임없이 갈망하지만 당초 이뤄지기 어려운 사랑임을 알고 있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낭만주의 요소가 다분하다. 영화 제목이 소설의 제목에 들어왔다. '바그다드 카페는 영화 속의 미국 라스베이거스 근처의 모하비사막 한가운데 모텔과 주유소를 겸한 허름한 카페이다.

 


 

이야기는 오래전 뉴욕의 한 화랑에서 스쳐 지났던 두 사람이 SNS에서 다시 만나 대화를 이어가며 전개된다. 화가와 의사라는 이질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서로를 신뢰하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촉매가 되었던 건 영화 〈바그다드 카페〉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게 되지만, 단 한 번도 만남도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아니, 애초에 두 사람은 만날 수 없는 존재였다. 독자는 소설 말미의 반전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순간 실체가 사라진 사람과의 사랑.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상상의 대상을 향한 끝나지 않는 편지이며, 사랑과 불안, 전쟁과 평화, 그리고 불멸의 이야기”임을 밝힌다. 몇 년 전 페이스북 친구 요청을 해온,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는 미국인 외과 의사라는 사람과 두 번쯤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쟁과 테러 분위기를 표현하는 어렵지 않은 그의 말들은 영어로 읽어도 실감났다. 저자는 그가 테러의 한가운데 있는 진짜 의사이고, 오래전 스치듯 본 적이 있는 누군가와 함께 뉴욕 맨해튼의 어느 극장에서 우연히 따로따로 앉아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동시에 보았다는 상상을 설정해 보았다고 설명한다. 이 소설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말이다. ‘불멸’은 실체의 ‘소멸’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구체적 대상이 사라진 사랑은 실재와 환상의 경계에 뿌연 안개로 남는다. 어쩌면 사랑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인지도.

 


 

오로지 SNS로 소통하는 두 주인공은 사랑의 감정을 품지만, 그 사랑에는 어떤 지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도, 이루고자 하는 성취의 욕망이 없다. 언젠간 두 사람이 설정해놓은 가상의 공간 ‘바그다드 카페’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지만, 그건 이생에서는 지켜질 수 없는 영혼의 약속 같은 것일 것이다.

다만 세상 곳곳에서 집단테러가 자행되고 이슬람 IS가 전 세계의 젊고 외로운 늑대들을 전쟁 속으로 유인하던 극도로 불안한 세상 속에서 두 주인공은 끝없이 자신의 내면에 고인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서로의 외로움을 위무한다. 그사이에 찾아드는 고요와 평화의 순간들, 그게 그들이 공유했던 사랑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인간성 진화의 불가능함에 대한 절규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사이사이에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희망과 치유에 대한 서사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귀띔한다. "세상은 늘 휴전 중이고,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인간성의 진화의 불가능에 대한 절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사이사이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희망과 치유의 편지들을 마치 내가 주인공이듯 절실하게 써 내려갔다. 편지를 주고받은 상상의 인물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 편지들로 인해 주인공 두 사람은 이 세상에 실제로 있었던 것만 같은 존재감을 지닌다."

 

 

작가, 특히 소설가들은 현실이 아닌 허구의 세상을 그린다. 소설 속에 일어나는 사건과 인물 또한 허구다. 그러나 단순한 거짓 세상이 아니라 작가의 머릿속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같다. 그들이 갈등하고 사건을 일으키는 것도 실제 현실의 인물이 하는 것과 똑같다. 이른바 리얼리티(사실성) 확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꾸면낸 인물과 사건들이 현실 속에서 실제 일어난 일처럼 독자들에게 알린다. 왜?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 살기 싫다는 메시지다. 그래서 작가의 거짓말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작가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목적은? 우리의 삶이 좀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인간'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허구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실 실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다. 다만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일들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종종 왜 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 아쉬워하죠. 하지만 어떤 만남도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지 않아요. 이르면 이른 대로 늦으면 늦은 대로 그때만이 누릴 수 있는 사랑의 계절이 있을 테지요.(p.50)

 

참을 수 없는 오열이 먹먹한 슬픔으로, 그 슬픔이 삭아 허망한 쓸쓸함으로 남은 떠나간 사람의 자리, 누군가 완전히 잊힌다는 건 그를 애도하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사라진다는 것이겠지요.(p.199)

 


 

그 길고 지루하고 끝이 없는 우리들 인생의 불안을 묘사한 ‘불안의 책’ 속에서 나는 많은 위안을 느꼈다는 걸 고백합니다. 몸과 마음을 지닌 모든 생물은 아프고 괴로운 가운데, 드물게 작은 행복들을 누리다가 결국 이승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단 하나의 진실을 위해 기도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아니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p.215)

 

저자 : 황주리

 

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서양화과,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뉴욕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32회의 국내외 개인전과 200여 회의 단체전에 참가했으며, 석남미술상(1986)과 선미술상(2000)을 수상했다. 화려한 원색과 열린 상상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회화세계를 구축한 신구상주의 계열의 가장 주목받는 화가다. 그에게 있어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그림이 그려지기를 기다리는 빈 캔버스다. 캔버스 외에도 안경과 돌과 오래된 목기 등에 그린 그림들과 화가의 시각으로 써 내려간 독특한 문구들은 사라지는 순간순간들을 지금 여기에 못 박아두는 ‘시간채집’이다.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통해 도시적 인간의 내면세계와 인간 상황을 시적 언어로 그려내며, 그림뿐 아니라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는 산문들과 그림소설까지, 그의 글들 또한 읽는 이들의 마음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저서로 산문집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등이 있고, 그림소설 『그리고 사랑은』 『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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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력 - 매혹하고 행동하고 저항하는 동물의 힘
남종영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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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경제의 축소판인 근대 ‘노동자’ 동물의 삶, “인간과 동물이 평등한 곳은 어디인가?” 카터가 침팬지 루시를 찾아가 포옹을 나누는 사진은 두 존재가 서로에게 느끼는 간절함을 잘 보여준다. 이 시공간은 인간과 동물의 차별적인 삶의 단면에 솟아오른 평평한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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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력 - 매혹하고 행동하고 저항하는 동물의 힘
남종영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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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인간 중심의 역사에서 잊힌 존재였다. 동물은 자연환경의 구성 요소에 불과하다고 여겨졌으며, 동물의 삶 또한 인간에 의해 빚어지는 수동적 결과물로 표시됐다. 동물권 논쟁이 점화할 때도 동물은 고통스러운 삶의 피해자로만 소환될 뿐이었다. 동물의 역사는 그게 전부일까? 사자의 눈으로, 고래의 시선으로, 침팬지의 마음으로 역사를 기록하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이 책 『동물권력』은 ‘동물이 인간 지배의 대상’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동물의 삶을 지구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했다. 독자로서는 동물에 대한 전례 없는 독서일 뿐만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 저자의 관점이 매우 놀랍기만 하다. 저자의 관점대로 이 책은 인간 대 동물이라는 이분법 구도 안에서 포착되지 않았던 동물의 '능동성'에 주목한다. 이는 인간이 '신의 대리인'으로서 지구의 모든 생물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뒤늦은 각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구 생태계가 인간 중심의 세상에서 망가지고 있다는 관점으로 보면 빠를수록 좋은 때이다.

저자 남종영은 인간은 뛰어난 지능과 정교한 손으로 매우 발전된 문명을 이루고, 모든 동식물의 지배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이의 결과물이 지구 생태계 파괴와 환경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지구 재앙에 대한 각성이라는 점에서 매우 적절하고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한다. 이제는 생태계를 위해서는 동물 및 식물과도 협력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매우 적절한 관점이라는 독자의 생각이다. 이에 따라 인간-동물의 역사를 다시 쓰는 셈이다. 바이러스 폭탄을 가지고 다녔던 탈옥수 원숭이 앨피부터 군인 194명을 구한 통신병 비둘기 셰르 아미, 사냥꾼에 의해 죽어 간 사자 세실, 임종을 예견한 고양이 오스카까지, 나름의 의식과 성격, 판단을 가지고 역사를 살아온 동물이 이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저자는 동물은 우리에게 유무형의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겉으로는 인간이 동물을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인간과 협력하고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기도 하며, 종국에는 세계를 구성하는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시시때때로 인간의 정치에 저항하며 세계를 위협하는 비인간 행위자의 면면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인간과 개는 어떻게 만났을까?” 책을 여는 것은 최초의 가축, 개에 대한 질문이다. 저자는 인류학자와 고생물학자 사이의 치열한 갑론을박에서 늑대와 개의 능동성을 강조한 대담한 이론 두 가지에 주목한다. 하나는 동물생태학자 코핑거 부부의 ‘스캐빈저 가설(scavenger hypothesis)’이고, 다른 하나는 고생물학자 팻 시프먼의 ‘늑대-개 가설’이다. 전자는 쉽게 말해 가축으로서의 운명은 인간이 아니라 늑대가 선택했다는 주장이며, 후자는 개와 맺은 동맹 덕분에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앞지르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코핑거 부부와 팻 시프먼의 가설이 생태계 행위자로서 동물의 능동성을 인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이야기한다. 가축화에는 두 상대, 즉 인간과 동물이 있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강조하는 한편, 인간의 몸과 동물의 몸은 동시에 진화한다는 점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가축의 기원, 나아가 동물의 역사를 논할 때 놓쳐 왔던 부분이다. 이 책을 인간-동물 관계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다룬다. 제목에서 보이듯 이 책은 가축화에 대한 전복적인 시선에서 출발한다.

 


 

책은 모두 5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길들임과 지배 사이」, 2부 「동물정치의 개막」, 3부 「동물 영웅 잔혹사」, 4부 「동물, 그 자체를 향해」, 5부 「앞으로 올 인간-동물 관계」로 구성됐다. 먼저 저자는 1부에서 동물이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서 협력하며 지구의 역사를 써 내려온 모습을 촘촘히 복원한다. 인간이 스스로를 동물로 여기던 수렵채집 시대부터 동물을 타자화하여 지배하기 시작한 신석기시대까지 다룬다. 100여 년 전 오스트레일리아 에덴 앞바다에서 이뤄진 ‘인간-범고래 공동 사냥’,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는 브라질 라구나 마을의 ‘인간-돌고래 공동 어업’ 등의 사례가 그렇게 이 책에 불려 나온다. 인간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빠진 ‘동물’이라는 퍼즐을 하나씩 끼워 맞추는 이 작업이 향하는 목표는 분명하다. 동물들의 누락된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만이 문명을 일구고 문화를 계승했다고 자부하는 관점이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도그마임을 일깨우며, 복잡한 그물로 얽혀 있는 생명의 역사를 복기해 나간다.

2부에서는 근대 이후 인간-동물의 관계를 다룬다. 인간이 동물을 상품화해 정치의 최하위 계급으로 복속시킨 이 시기의 적나라한 초상을 인간과 동물 간에 이뤄지는 지배·협상·저항의 틀, 이른바 ‘동물정치’의 관점에서 읽어 낸다. 산업화 이후 인간이 동물을 통치한 논리와 방식은 무엇일까? 인간의 지배는 동물의 삶과 죽음, 생활양식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이 같은 문제의식과 함께 소환된 동물의 삶은 그 자체가 자본주의경제의 축소판이다. 물자와 사람을 이동시키느라 산업 역군으로 혹사당한 역용마, 최초로 컨베이어시스템이 도입된 대규모 정육 단지 ‘유니언 스톡 야드’와 그 안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한 긴뿔소, 공장식 축산의 핵심을 이루는 밀집형 가축 사육 시설(CAFO, Concentrated Animal Feeding Operation)에서 대량생산 되는 소와 닭과 돼지의 실상 등을 밝히며, 저자는 지금껏 주목받지 못한 동물을 역사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되살려 낸다.

 


 

이 파트에서 저자는 인간의 일방적인 지배에 저항해 태업하고 파업하는 ‘노동자’ 동물의 정체성 또한 중요하게 다룬다. 이 책은 동물을 ‘의식 없는 기계’로 단정한 기존의 역사가 인간과 동물 사이의 미시적 정치학을 애써 무시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동물은 기계와 달리 ‘살아 있음’과 ‘행동 가능성’을 무기로 인간에 맞서 저항해 왔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전일적 지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고용주 인간’과 ‘노동자 동물’의 대립 구도가 선명히 드러난다. “노동자가 파업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기에 권력을 갖듯, 노동하는 동물도 말을 듣지 않을 수 있기에 권력이 있다.” 이렇게 지배의 틈새를 비집고 나온 동물의 고통스러운 얼굴과 몸짓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이들이 대리인으로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동물정치 또한 시작된다.

3부에는 동물 지배 체제 속에서 떠오른 동물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흔히 동물의 희생과 헌신은 세간에 미담으로 회자되지만, 동물 영웅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한 영웅’일 뿐이다. 사람을 살린 영웅으로 추앙받은 고릴라 빈티 주아, 총알을 맞고도 40킬로미터를 난 비둘기 전사 셰르 아미 등 몇몇 동물 영웅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져 보면 대답은 자명하다. “이들은 영웅이 되고 싶어 했을까?” ‘동물 영웅’ 담론에는 인간-동물 관계의 모순이 숨어 있으며, 그 모순 속에서 동물의 행동을 인간의 기준으로 재단했을 때의 위험성이 드러난다.

 

 

이 파트에서는 인간 중심적인 시선을 거둔 이 책의 방향키는 다른 곳으로 향한다. 범고래 틸리쿰, 그리고 사자 세실의 삶이다. 수족관에 감금된 동물, 보호구역에 사는 야생동물을 각각 대표하는 틸리쿰과 세실은 이 시대 야생동물 착취 체제의 두 경로를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일련의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틸리쿰은 수족관에 끌려가 세 건의 인명 사고에 연루됐으나 범고래쇼의 비윤리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돌고래 해방운동의 견인차가 되었으며, 세실은 사람에게 살해되었으나 그 죽음을 통해 선진국의 기만적인 환경주의를 폭로했다. 저자는 인간 중심의 역사에 새로운 갈림길을 제시한 두 동물의 생애를 전기적 서사로 재구성함으로써, 이들의 고유한 삶을 집단적 종의 ‘생태’로 일반화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4부와 5부에는 동물에게 덧씌워진 인간의 편견을 깨부수고 동물의 진짜 모습에 다가가고자 하는 학계와 사회운동 진영의 이야기를 담았다. 과학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동물의 새로운 면을 보여 주었지만, 시행착오도 많았다. 특히 1960~1970년대 교차 양육과 수화 교육 실험에 동원된 ‘말하는 유인원’들의 아픔은 과학적 이상주의에 내재된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냈다. 삶 자체를 실험으로 전락시켰던 과학의 자기 확신은 침팬지, 고릴라, 보노보, 오랑우탄 수십 마리를 반인반수의 괴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야생에서, 때로는 실험실에서 쌓아 간 과학자들의 지식은 어두운 심연에 있던 동물에 대한 앎을 조금씩 확장했다. 고래, 유인원 무리 속에서 이뤄진 현장 연구는 죽은 이에 대한 애도와 추모가 인간만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을 깼으며, ‘세기의 실험’으로 꼽히는 침팬지 거울 실험은 동물이 인간의 자의식과 비슷한 정신 작용을 한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는 비인간인격체(nonhuman person) 담론으로 이어지면서 동물권 운동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다.

 


 

마지막 파트 20장 「침팬지의 절망에 응답하기: 침팬지 루시와 사람 카터」에서 저자는 미국의 포스트휴머니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를 인용한다. 이에 따르면 도나 헤러웨이는 동물과의 윤리를 '응답-능력'에서 찾는다. 해러웨이는 종 차별을 전면적으로 철폐할 수 있다는 동물권론자의 전망에 대해 회의적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인간-동물 관계의 전면적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지구 내의 행위자는 각각의 필요와 욕망,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전체를 통괄하는 윤리는 애초에 없다. 따라서 해러웨이는 무언가를 한 번에 바꾸는 정치 기획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주목한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이 대면하는 동물과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부분적 회복을 도모하는 '관계적 윤리'가 현실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것 같다.

인간과 동물이 평등한 곳이 어딜까? 그곳에서 인간과 동물이 만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곳은 동물이 감금된 동물원도, 교차 양육되는 가정도 아니다. 사람 재니스 카터와 침팬지 루시는 침팬지의 섬에서 평등하게 만났다. 카터가 오랜만에 루시를 찾아가 포옹을 나누는 사진은 두 존재가 서로에게 느끼는 간절함을 잘 보여준다. 이 시공간은 인간과 동물의 차별적인 삶의 단면에 솟아오른 평평한 산이다. 저자의 주장이다.

인간중심주의를 뛰어넘은 인간-동물 관계를 전망해 보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인간과 동물이 평등하게 관계 맺기 위해서는 기존의 동물권 운동 또한 돌아봐야 한다. 동물복지의 향상이 20세기 동물권 운동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물을 단순히 피해자라는 정체성에 가둬 버린 것은 근대적 동물정치의 한계다. 저자는 ‘주폴리스(zoopolis)’, 즉 인간과 동물이 모두 속한 ‘동물정치 공동체’ 개념을 경유해 인간-동물 관계의 회복을 논하는 동시에, 도나 해러웨이의 ‘관계적 윤리’가 필요한 이유 또한 짚어 본다. “동물권을 위한 거시적인 기획도 중요하지만, 인간과 동물 개개의 관계에서 나오는 작은 행동 또한 역사를 바꾼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침팬지 루시의 요청에 응답했던 재니스 카터, 지리산반달곰 KM-53의 행동에 맞춰 정책을 조율한 사례에서 미약하게나마 변화의 씨앗이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식민주의는 원주민의 몸에도 흐르지만, 동물의 몸에도 흐른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과 아메리카들소와 늑대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원주민과 사자와의 관계를 분석하면 이들의 신체를 식민주의가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구 생태계의 지배계급은 원주민과 동물의 삶터를 점령하고, 그들을 계몽해야 할 야만으로 치부하며, 그들의 몸을 자신의 정치체제에 복속시킨다. (…) 아프리카 야생에 대한 지배는 식민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바뀌었다고 댄 브로킹턴은 말한다. 식민지 시절 닥치는 대로 사자를 잡아들였다면, 지금은 쿼터를 주고 사냥허가권을 판다. 보전의 외피를 둘러쓰고 이윤을 창출한다.(p.277~278)

- 「14장 사자는 지도를 볼 줄 모른다」 중에서

 

어떻게 보면, 찬텍은 괴물이었다. 인간도 아닌 오랑우탄도 아닌, 반인반수. 인류학계에 휘몰아친 1960~1970년대의 수화 연구 열풍은 이런 유인원을 열 마리 이상 탄생시켰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은 네댓 살만 되면 인간 어른보다 훨씬 센 힘을 갖는다. 화가 나서 생긴 약간의 완력에도 사람은 크게 다칠 수 있다. 그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과학자들은 그들을 집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버렸다. 말하는 유인원들은 어정쩡한 삶을 살다가 지금 연구실의 좁은 시멘트 방에서, 동물 보호소에서 아픈 과거를 삼키며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p.304)

- 「16장 말하고 싶지 않아, 그게 우리야」 중에서

 

저자 :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 있다. 캐나다 처칠에서 북극곰을 보고 환경 기자가 되었다. 기후변화로 북극, 적도, 남극에서 고통받는 사람과 동물을 그린 지구 종단 3부작과 서울대공원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고향 바다로 돌려보낸 계기가 된 기사가 인생 최고의 보람이었다. 영국 브리스틀대학교에서 인간-동물 관계를 공부했고, 인간의 동물 통치 체제, 생명 정치에 관심이 많다.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야생방사 프로젝트』, 『고래의 노래』, 『북극곰은 걷고 싶다』, 『지구가 뿔났다』 등을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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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1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E L 제임스 지음, 황소연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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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1, 2 『50가지 그림자 심연』 1, 2 『그림자』 1, 2 『심연』 1, 2 등 모두 8권과 이 책 『해방』 1, 2, 3을 합치면 모두 11권의 소설이다. 이 책들은 이른바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로 저자 E L 제임스가 썼다.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영화로 제작됐거나 지금도 제작되고 있다. 시리즈 첫 작품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이 시리즈는 미국에서 출간 석 달 만에 모두 5,000만 부가 판매되며 대중문화의 역사를 새로 쓴 로맨스 소설이다.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지만 표현상으로 외설과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한다.

이 책의 전자책은 아마존닷컴 역사상 100만 부 이상 판매된 최초의 전자책으로 기록되었으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는 전자책에서 종이책으로 흥행을 이어간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되었다. 영화 판권 역시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높은 금액으로 판매되어 큰 화제를 낳았다. 같은 언어권인 영국에서도 특히 여성들에게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책은 출간 즉시 총 530만 부가 팔리며,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책으로 기록되었다. 여성 취향의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출간되자마자 폭발적인 판매 부수를 기록한 이 시리즈는 아마존닷컴 종합순위 베스트셀러 및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를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작가 E L 제임스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집계한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작가’ 순위에서, ‘헝거 게임 시리즈’의 수잔 콜린스와 『인페르노』의 댄 브라운을 제치며 단숨에 1위를 차지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신드롬에 미국 출판계와 비평계는 당황했다고 한다. ‘호기심 왕성한 독자에 의해 반짝 인기만을 누릴 것’, ‘현실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 전업주부나 읽을 책’이라는 출판 당시 전망과 비판이 무색하게 이 책은 미국 전역, 모든 성인 연령의 여성이 읽는 ‘it book’이 됐다. 공공 도서관이 성인소설을 구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책을 비치하지 않기로 한 플로리다 도서관은 시민들의 강력한 항의로 당초의 입장을 번복, 수백 권을 들여놓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라스베이거스 한 도서관은 이례적으로 이 책만 235권을 비치했지만 대출 대기자가 800명에 이른다고 밝히는 등 미 전역에서 대출 대기자가 너무 많아 몸살을 앓을 지경이라고 한다. 종이책에 비해 전자책 판매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출간 초기와는 달리 지금은 대형 할인점에서 수백 권을 쌓아 놓고 판매하고 있으며 휴가지에서는 물론 지하철에서도 스스럼없이 내놓고 읽는 책이 되었다.

이 책의 인기에 힘입어 『오만과 편견』이나 『폭풍의 언덕』 같은 고전들도 성인소설로 각색되어 출간되기 시작하였고, 소설에 나오는 의류, 액세서리, 두 주인공 관계의 상징인 회색 넥타이, 향수, 란제리 등이 제작되기는 등 출판을 넘어 대중문화 산업 전반에 거대한 영향력을 미치며 하나의 현상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소비하고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데에 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 남자를 사랑이 구원한다. 세상을 모르던 여자가 사랑으로 인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사랑을 통해 결점을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위해 변화하는 이야기는 보편적인 울림이 있다. 수없이 반복되어도 여전히 읽히는 강력한 서사이고 누구나 그런 이야기를 원한다. ‘회색’에도 50가지 다른 톤의 색이 존재할 수 있듯이 똑같은 사랑 이야기에도 여러 가지 빛깔이 있다.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제각각 다른 색깔을 지닌 이야기들 중에서 약간 위험하고 도발적인 사랑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것이며 이는 3천만 독자들이 증명한 바 있다. 모든 이에게 같을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의미가 있는 사랑, 거기에는 온화하고 밝은 빛부터 어둡고 위험한 빛까지 다양한 색조가 존재한다.

 

 

이 책 『해방』(전3권)은 올해 출판사 시공사에서 ‘그레이 시리즈’로 출간됐다. 이 책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50가지 그림자-심연』, 『50가지 그림자-해방』의 최종 완결편이다. 남자 주인공 그레이의 입장에서 아나스타샤와 진정한 사랑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렸다. 여성 대상 로맨스 소설이자 할리퀸 장르에 포함되는 이 시리즈의 매력은 단순한 성적 묘사를 뛰어넘는 에로티시즘에 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보다 자극적이고 하드코어한 BDSM을 다루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지에서는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Mommy Porn)”라고 저평가 되었지만, 미국, 영국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해당 국가들의 도서관에서는 독자들의 적극적인 항의로 기존의 규율을 깨고 19금 소설을 구비해 대여해주는 역사를 썼다.

평범한 20대 여성이 백만장자와 사랑에 빠지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컴플렉스물이지만, 이걸 전형적이지 않게 만드는 요소는 백만장자의 BDSM 성적 취향에 있다. 서너 페이지에 한 번 꼴로 세세하게 등장하는 섹스 장면 묘사는 여성들의 마음을 자극했고, 실제 BDSM 플레이의 용어와 절차들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SM 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의 문화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또한 여성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드는 자극제로서의 역할도 함께하며 여성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책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이번 작품 『해방』은 ‘그레이의 50가지 시리즈’ 마지막을 장식한다. 크리스천의 시각에서 아나와 결혼으로 향하는 과정을 담아 한층 더 관능적이고, 로맨틱하다. 이번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두 캐릭터의 대비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없는 남자가 먼저 결심하게 된 결혼, 또한 그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점점 더 도발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 되어가는 아나스타샤 스틸. 서로에 대한 열정은 그 어느 시즌보다 농밀하고 뜨겁고 깊다. 작품 곳곳에 드러나는 그의 성숙해진 생각, 성찰, 꿈에 대한 이야기와 그를 옭아맸던 어두운 그림자들의 역사가 교차 형식으로 풀어지면서 독자들을 작품으로 끌어당긴다. 그는 자신이 남편으로서 완벽하지 않다는 아버지의 지적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워 갈등이 깊다. 한편, 크리스천에게 원한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 아나는 생명을 위협받고 헤어질 위기에 빠지게 된다.

 

"살그머니 침대를 빠져나왔다. 일어섰을 때 넥타이가 발에 밟혔다. 어젯밤 벌인 즐거운 놀이의 흔적이었다. 아나와의 황홀한 기억이 내 감각 안으로 침투했다. 머리 위로 들려 묶인 그녀의 두 손. 힘이 들어가 뻣뻣해진 그녀의 몸. 절정에 올라 침대 머리판의 연회색 널을 움켜쥐며 머리를 뒤로 젖히던 그녀의 모습.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정성껏 탐닉하던 내 혀. 악몽의 잔상보다 훨씬 더 즐거운 기억이었다. 나는 넥타이를 집어서 접은 뒤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p.57)

 


 

사랑의 힘을 믿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역사상 가장 짜릿한 로맨스 『해방』. 많은 사람들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소비하고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데에 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 남자를 사랑이 구원한다. 세상을 모르던 여자가 사랑으로 인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사랑을 통해 결점을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위해 변화하는 이야기는 보편적인 울림이 있다. 수없이 반복되어도 여전히 읽히는 강력한 서사이고 누구나 그런 이야기를 원한다. ‘회색’에도 50가지 다른 톤의 색이 존재할 수 있듯이 똑같은 사랑 이야기에도 여러 가지 빛깔이 있다.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제각각 다른 색깔을 지닌 이야기들 중에서 약간 위험하고 도발적인 사랑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것이며 이는 3천만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으로 증명되었다. 모든 이에게 같을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의미가 있는 사랑, 거기에는 온화하고 밝은 빛부터 어둡고 위험한 빛까지 다양한 색조가 존재한다.

 

"그럼 왜 망설이는 거냐고 묻는 거죠?" 내가 딱딱거렸다.

"크리스천, 나는 불안감의 정체를 드러내려는 겁니다."

"나는 그저 이걸 끝내고 싶을 뿐입니다." 나는 발끈해서 그에게 쏘아붙였다. 그의 통찰력 있는 발언을 기대했지만 플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분하고 신중한 표정으로 나를 계속 지켜보았다. 그는 나를 시험하는 중이었다.(p.275)

 


 

크리스천은 어린 시절의 악몽과 젊은 시절의 고통을 극복하고 자신을 구할 수 있을지, 그리고 아나가 크리스천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어도 크리스천을 사랑할 수 있을지, 아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크리스천에게 되돌아갈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의문이 독자들을 끊임없이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전 세계 수백만 독자를 뜨겁게 만든 매혹적인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된다.

출판사 측에서는 다음과 같은 책 소개글을 올렸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로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독자들을 매료시킨 EL 제임스. 작가는 이번 신작 『해방』을 통해 가장 어둡고 관능적인 크리스천 그레이의 세계를 펼친다. 『해방』은 출간 즉시 아마존 킨들과 오디오북 베스트셀러, 에디터의 선택 등의 자리에 올랐다. 한국보다 조금 더 일찍 출간된 영미권에서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해외 팬들이 “이전 작품들을 뛰어넘는 강렬함이 있다” “주인공들, 특히 크리스천 그레이가 성장했다” “E L 제임스는 이야기꾼으로서 완성된 듯하다”며 뜨거운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인터넷 웹소설의 형태로 시작된 이 소설이 높은 인기를 얻자, 표현 수위가 높다는 이유로 삭제되는 일도 있었다. 저자 E L 제임스는 시간이 지나 2011년 6월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꾸어 자비출판을 했다. 자비 출판을 하는 과정에서 작품은 성적 묘사에 집중된 자극적인 전개, 성인들의 에로티시즘이 더해진 소설로 바뀌었다. 출간 초기 영미권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어 이름을 서서히 알리게 되었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이후 랜덤하우스 빈티지가 이 소설의 판권을 사 첫 번째 시리즈인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출간되었다. 출간 석 달 만에 전 세계에서 3,000만 부가 팔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특히 100만부 출고 시점이 그 해리 포터보다도 빨라 세상에 놀라움을 주었다. 2014년에는 시리즈 전체를 합쳐서 1억 부를 돌파했고, 현재 1억 부 클럽에 가입되어 있다.

 


 

나는 그녀 위로 무너져 바닥에 쓰러졌고 그녀를 끌어당겨 내 품에 안았다. 그녀의 눈꺼풀에, 코에, 입에 키스했다. 그녀가 두 팔을 내 목에 감았다.

“1번 어땠어?” 내가 물었다.

“흠…….” 그녀가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흥얼거렸다.

나는 픽 웃었다. “나도 그래.”(p.113)

 

저자 : E L 제임스(E L James)

웨스트 런던 거주.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 어린 시절부터 독자들이 사랑에 빠질 만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꿈이었으나 가족과 일에 집중하기 위해 잠깐 미뤄두었다. 25년간 텔레비전 방송국 간부로 일하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서 집필한 첫 번째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133주 연속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50가지 그림자’ 3부작은 52개 언어로 번역되어 1억5천만 부 이상이 판매되는 등 세계적으로 ‘50가지 그림자 신드롬’을 낳았다. 2015년 개봉된 동명 영화는 역사상 가장 높은 오프닝 매출을 기록하였다.

‘50가지 그림자’ 3부작으로 E L 제임스는 2012년 [타임] 지에서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 중 한 명으로,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곧 선보일 영화 [50가지 그림자, 심연], [50가지 그림자, 해방]의 프로듀서로 활약하는 한편 새로운 러브스토리를 구상하고 있다.

 

역자 : 황소연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출판기획자를 거쳐 전문 번역가가 되었다. 옮긴 책으로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전집』,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 『케이크와 맥주』,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헤밍웨이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휴버트 셀비 주니어의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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