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면서 익히는 클래식 명곡 - 음악평론가 최은규가 고른 불멸의 클래식 명곡들
최은규 지음 / 메이트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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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클래식 해설‘로 이름나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평론가인 저자의 클래식 해설 책은 연주 음원까지 더해져 이 한 권이면 클래식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명곡을 듣는 귀가 열리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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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면서 익히는 클래식 명곡 - 음악평론가 최은규가 고른 불멸의 클래식 명곡들
최은규 지음 / 메이트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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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클래식을 듣게 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안개 속처럼 뿌옇고, 가슴속은 음표와 물음표가 혼재돼 있다. 클래식을 좋아해서 클래식 방송이나 CD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곡을 해석해주고 에피소드를 설명해주는 말을 들었지만 곡을 듣는 순간 뿌옇게 흐려져 잘 기억나지 않는다. 또 서양음악사 책을 보면 서양음악사의 흐름을 대체적으로 알게 되리라는 기대로 여러 권 읽었지만 홀로 되새겨보려 하면 혼란스럽고 읽었던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체계적으로 배우거나 기억력이 한참 좋을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읽지 않아서일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때 읽었던 문학 작품은 상대적으로 잘 기억나기 때문에 이런 생각도 해본다. 독자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책 『들으면서 익히는 클래식 명곡』의 저자 최은규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잔잔한 클래식 선율을 좋아하지만 클래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 이 책을 읽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의 말에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매일 저녁 8시에 방송을 통해 만나는 사이다.

저자는 "많이 들어본 음인데 곡명은 모른다. 왜 그럴까?"라고 질문을 던진 후 가사 없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선율, 어려운 곡명과 형식, 작품번호, 뜻 모를 악상기호 같은 진입장벽 때문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한다. 클래식도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재미와 감동이 배가된다는 것이다. 즉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도 그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 형식은 어떤지 등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또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음악작품의 중요한 주제 선율을 기억하지도 못한 채 음악을 듣는 것은 마치 소설의 등장인물 이름도 모르면서 소설을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자의 비유가 매우 적절하다고 공감한다. 저자는 이 때문에 이 책에서 400여 개 가까운 연주 클립들을 편집하는 막대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클래식 음악 감상서로서 이 책만의 가장 큰 장점은 명곡을 바로 들으면서 책을 입체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완성된다. '들으면서 익히는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클래식 음악평론가인 저자가 클래식 입문자는 물론 애호가들도 클래식 명곡을 흥미진진하게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줄 획기적인 책의 이름이 이렇게 탄생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매일 저녁 KBS 라디오 클래식 FM에서 〈FM 실황음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책에서 세계인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클래식 명곡들의 배경과 주제 등을 유려한 문체로 알려주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바로 들을 수 있는 400여 개 가까운 연주 클립들을 큐알 코드 형식으로 실었다. 이 책에는 각각의 명곡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전곡을 들을 수 있는 음원이 큐알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다. 어떤 악곡에서 제1주제가 무엇인지, 그 주제가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어떤 악기로 연주하는지 전곡에 대해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악곡의 주요 부분을 편집한 음원 큐알을 찍어 악장별, 주제별로 연주를 바로 들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주요 클래식 명곡들의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귀로도 직접 확인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많이 들어본’ 클래식 명곡들이 이제는 ‘잘 아는’ 클래식 명곡이 되고, 잘 알게 되면 클래식이 자연스레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 책은 클래식 입문자들이 클래식 명곡에 접근해가면 좋을 순서에 따라 크게 5부로 구성됐다. 목차의 순서대로 그냥 쭉 읽기만 해도 처음 클래식 명곡을 듣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클래식 음악용어에 익숙지 않은 이들을 위해 악곡의 주요 형식과 작곡기법의 핵심용어들, 음악작품에 자주 나오는 나타냄말들도 팁 형식으로 담겨 있다. 천재음악가들이 명곡을 작곡하게 된 배경이나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명곡들을 이해하게 하는 또 다른 재미다. 클래식을 몰라 주눅 든 사람에게도, 클래식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클래식을 보다 더 재밌게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1부 「악기 소리가 좋아 클래식에 빠지다」에서는 음악 사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악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바이올린과 첼로 등의 현악기는 물론 피아노와 하프시코드 등의 건반악기, 플루트와 오보에 등의 여러 관악기까지, 흔히 클래식 음악에서 접할 수 있는 악기들을 위주로 설명한다. 2부 「협주곡으로 입문하는 클래식」에서는 독주자의 화려한 기교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함께하는 협주곡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대표적인 협주곡 명곡과 작곡가 이야기를 들려줄 뿐 아니라 악곡의 주요 부분을 직접 들으며 협주곡의 형식과 주제에 대해서 익힐 수 있도록 구성했다. 3부 「짧은 관현악곡으로 오케스트라와 친해지기」에서는 아직은 교향곡 전곡 감상이 어려운 클래식 입문자들을 위해 비교적 길이가 짧은 서곡이나 모음곡 등의 관현악곡을 들려준다. 이제 막 협주곡으로 클래식에 익숙해진 이들이 오케스트라와 친해지는 데 도움을 줄 만한 내용이다.

 

 

이어 4부 「클래식의 웅장함을 전하는 교향곡」에서는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가장 대규모 작품인 교향곡에 대한 해설을 담았다. 교향곡 감상에 앞서 오케스트라의 구성과 악기편성에 대한 소개, 지휘자에 대한 이야기, 대표적인 교향곡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 등을 담았다. 5부 「클래식 감상의 종착지, 실내악」에서는 실내악의 정의와 악기편성, 그리고 처음에 들으면 좋을 만한 실내악곡들을 엄선해 해설을 실었다. 조금이라도 명확하게 뜻을 전달하기 위해 수식어를 붙였지만, 1장에서는 악기(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하프시코드), 2장에서는 협주곡, 3장에서는 관현악곡(오케스트라), 4장에서는 교향곡, 5장에서는 실내악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책의 앞 부분 '지은이의 말' 「클래식 명곡 듣는 귀를 열어드리겠습니다!」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되려면 여러 차례 반복해서 자꾸 들으면 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전제한다. 하지만 맹목적인 반복 청취만으로 과연 클래식 음악이 금방 좋아질까? 못 알아듣는 외국어를 반복해서 듣는다고 해서 그 뜻을 전부 깨치는 것이 아니듯 음악도 마찬가지다라고 비유를 통해 맹목적인 듣는 것만으로는 깨우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제1주제', '변화', '연주' 등을 머릿속에 떠올려 가면서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수없이 발견되는 큐알코드는 악곡의 주요 부분을 편집한 음원을 넣어 둠으로써 '들으면서 이해하는' 음악을 해설한다. 독자들은 특정 주제에 대한 설명한 글 옆에 있는 QR코드를 찍어 그 주제를 들을 수 있도록 했으므로 읽으면서 동시에 들을 수 있도록 꾸몄다. 빠른 시간 내에 클래식에 친숙해지는 방법을 복합 처방한 셈이다. 독자는 이 책을 읽고, 책상 위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즉각 사용할 생각이다.

 


 

바이올린 소리는 선율이 우리를 꿈의 세계로 안내하듯 감미롭다. 독자는 음악을 하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는 한 번씩 들었던 바이올린 소리가 매우 매력적이라고 느낀 적이 있다. 물론 당시 어른들은 바이올린 소리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깽깽이'라고 소리도 듣기 싫다고 했다. 우리 악기가 아니라고 해서였을까? 그런 것 같지 않다. 어쩌면 당시 음악 특히 서양음악을 하는 집은 꽤 부잣집이 많았는데 그래서 질투심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당시 어른들 귀에는 싫은 소리였지만 독자가 듣기에는 매우 감미로웠다. 음과 음이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연결이 만드는 조화였는지 모르지만 피아노 소리나 타악기 소리보다 훨씬 좋다고 느꼈다. 저자는 '맑은 소리'가 좋았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끌리는 소리가 있다는 저자는 그 소리가 악기 소리라면 그것이 음악 사랑의 출발점이 된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유연한 곡선미와 정교한 모양을 갖춘 바이올린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공예품이다. 바이올린의 가냘프고 섬세한 외양만 보면 그 소리가 그리 클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 작은 공예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는 기대 이상이다. 바이올린은 미세한 떨림부터 강렬한 톤에 이르기까지 놀랄 만큼 다양한 표현력을 갖추고 있다. 역사상 여러 위대한 음악가들이 바이올린을 위해 훌륭한 명곡들을 작곡한 것도 이 악기의 놀라운 표현력 덕분이리라. 그뿐인가. 바이올린은 여러 대의 악기들이 함께 연주해도 소리가 잘 어우러지므로 합주에도 매우 적합한 악기다. 아마도 바이올린이 없었다면 현악기군을 중심으로 하는 오케스트라가 발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누가 이토록 훌륭한 현악기를 발명해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6세기 즈음 이 아름다운 바이올린은 우리 앞에 나타났다.(P.20)

 


 

마지막 장(章)에서 저자가 〈실내악을 감상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들〉에 대해 적었다. 이에 따르면 '실내악'이란 말을 이탈리아어로 하면 'musica da camera'다. '카메라(camera)', 즉 방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가리킨다. 그럼 방에서 연주하면 모두 실내악이 되는 걸까? 여기서 '카메라'를 편의상 '방'으로 번역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생활공간으로서의 방이 아니다. '카메라'는 고위 귀족의 궁전에 마련된 홀을 뜻한다. 18세기 귀족의 자택을 배경으로 하는 영황에서 간혹 이와 비슷한 홀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높은 천장에 멋진 피아노나 혹은 하프시코드, 아름다운 의자들이 놓여 있고, 가발을 쓴 하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그런 멋진 방 말이다. 그렇게 멋지고 화려한 귀족 저택의 카메라에서 연주되는 음악이 바로 초기 실내악이다,

실내악은 작은 공간이라는 의미가 있는 만큼 심포니오케스트라 같은 대규모 연주자도 적절치 않고, 소리가 너무 강한 악기도 어울리지 않을 터다. 피아노나 하프시코드 같은 건반악기에 바이올린 등의 현악기들, 몇몇 목관악기 주자들이 10명이 넘지 않는 정도의 규모로 함께 연주하는 앙상블곡이 실내에 더욱 적합할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아름다운 공간에서 매혹적인 선율을 들으며 친교를 나누는 따스한 분위기 속에서 듣는 음악, 그것이 실내악이다. 그런데 초기의 실내악은 기악곡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성악이든 기악이든 작품의 형태는 다양했고, 연주자가 10명이 넘는 규모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연주자가 반드시 한 파트만 연주하지 않는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1760년 경에 하이든과 보케리니는 한 연주자가 고유의 한 파트를 연주하는 방식으로 현악 4중주곡들을 쓰기 시작하면서 근대적인 실내악에 대한 정의가 확립되었다.(p.390~391)

 


 

술이나 마약이 없이도 도달할 수 있는 도취의 세계, 타인의 위로 없이도 닿을 수 있는 치유의 세계! 탁월한 강의와 방송을 통해 이미 수많은 클래식 문외한을 열혈 애호가로 변신시킨 최은규 선생님은 클래식 음악이라는 이 마법의 세계를 엿보는 독자들을 단번에 성문 안으로 이끌어들인다. 악기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설명에 빠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이 독자들은 독주곡, 협주곡, 교향곡, 실내악에 이르는 클래식 음악의 여러 장르를 어느새 다 이해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이토록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낸 책이라니! 독자를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성장시켜가는 목차의 전개 방식도 대단히 매혹적이다. 입문자뿐 아니라 내공을 쌓은 애호가도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 이용숙 (음악평론가)

 

그 누구보다 음악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경험과 음악학자로서의 연구력을 갖춘 최은규 음악평론가의 글은 언제나 신뢰감을 준다. 그간의 축적된 역량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 책은 음악사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정확하고 명쾌하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음악감상도 함께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정통 클래식 애호가는 물론 처음 예술음악 세계에 입문하려는 초보자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 오희숙 (음악학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저자 : 최은규

 

바이올리니스트, 음악 칼럼니스트, 방송인.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1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와 성신여대에서 관현악 문헌을 강의했으며, 예술의전당 음악아카데미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클래식 대중강연을 진행하며 클래식 음악을 알리는 데 힘썼다. 연합뉴스 클래식음악 전문 객원기자를 역임하면서 음악평론 활동을 해왔고, 여러 매체에 클래식 음악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2018년부터 KBS 클래식FM의 〈FM실황음악〉과 〈실황특집중계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베토벤》 《교향곡》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52가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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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철학 고전 30권을 1권으로 읽는 책 위대한 고전
이준형 지음 / 빅피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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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을 읽을 때 먼저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렇게 배워왔다. 배우는 마음, 겸손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어렸을 때는 배운 대로 실천했고, 이제야 그 뜻을 알았다. 모두 삶을 위해 쓰여졌고, 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라고 선조로서, 후손들에게 전할 말을 책으로 남긴 것이다. 그것도 혼신의 힘을 다해 책을 썼고,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때는 동의하지 않았을지라도 후손들이 그 탁월함을 인정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손에 쥐어진다. “행동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라.” 이 말은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남긴 말이라고 한다. 이 문장처럼 생각과 행동을 몸소 실천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 책에 담긴 30명의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각자 삶의 문제에 맞서 사유하고 행동했으며, 끝내 그 답을 찾아 기록했다.

이 책 『위대한 철학 고전 30권을 1권으로 읽는 책』은 저자 이준형이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와 통찰을 모아 엮었다. 독자도 마찬가지지만 철학책은 매우 따분하고 생각은 많이 해야 하고... 이런 확증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도외시하기 십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후세의 삶을 위해 당대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깊은 사색과 연구 끝에 얻은 지혜를 받아들이는데 왜 싫어하는 걸까? 우선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다. 삶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말들이 모여 잔치하는 것처럼 단어들도 뜻이 모호한 게 많으니 쉽고 편리하게 사는 데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어필되지 않을 것이란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철학은 여전히 우리 삶의 지혜를 꾸준히 쏟아낸다. 서양 철학의 시작인 그리스 철학자들부터 현대 시점까지 알마나 많은 철학자들이 우리 삶을 지혜를 알아내기 위해 힘을 쏟았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들의 업적을 읽기만 해도 평생 다 읽지 못할 정도 아닐까.

 


 

이 책은 철학 고전 30권을 1권당 7~8페이지로 압축했다. 끝까지 읽기 어려운 고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여 철학이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이렇게 철학에 재미를 들이는 것이 그나마 철학에 다가가는 옳은 길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책을 통해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이 사회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삶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이 책을 통해 단지 생각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개인의 삶과 시대를 개선하기 위해 목소리를 낸 용기 있는 철학자들의 사유와 연구에 다가가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집필 이유다. 특히 여기 소개된 책들은 길고 긴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고전이다.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해주는 책부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변화를 시도한 책, 후대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 등 살면서 꼭 읽어봐야 할 책인 동시에 우리 삶을 바꿀지도 모를 고전을 담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신기하게도 과거의 철학자들이 겪은 문제들이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개인적인 내면의 고민은 물론이고 지도자의 부패, 언론의 변질, 사회 불평등 현상 같은 정치·경제·사회 문제까지, 수천 년간 반복되는 삶 곳곳의 숙제들이다. 이 문제들을 먼저 경험하고 고찰한 철학자들은 지금 내 삶에 필요한 답을 주고, 지금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해결책을 조언한다. 저자는 "철학은 그저 고전이 아닌 과거부터 현재까지 시대를 관통하고 미래를 내다보게 해주는 귀한 인생 수업이다"고 강조한다. 소크라테스부터 니체, 한나 아렌트, 미셸 푸코, 비트겐슈타인 등 위대한 30권의 고전을 통해 철학을 알고, 사유하고, 행동하면 그것은 곧 내 삶의 기술이 될 것이다. 행동하는 철학자들과 함께하는 여정은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인생의 긍정적 동기 부여를 얻는 계기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 이준형은 책의 '서문'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 각자 삶에서 ‘짜라’를 찾는 여정」에서 "여기 소개된 책 중 일부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며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 담긴 책이며, 또 일부는 읽는 이의 삶을 바꿀 만한 조언이 담긴 책이다"고 말한다. 철학 고전이 읽기 어려운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으로 쓰인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치밀하고 엄격한 논리 체계를 가진 탓에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는 점도 저자는 감안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어떤 경우든 철학 읽기를 포기하고 싶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이런 난점을 다소나마 해소하기 위해 이 책은 각각의 고전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즉 구성을 독특하게 바꿨다는 것.

첫 번째 부분에는 저자의 삶과 그 책을 쓴 배경을 적었고, 두 번째 부분에는 책의 요약을 담아두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에는 해당 고전이 철학사 혹은 인류사에 미친 영향을 설명했다. 이들 세 부분은 소제목으로 구분되어 있으니 독자들이 이를 참고하여 읽는다면 각각의 고전을 보다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저자는 믿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이 '서문'의 제목에 연관된 얘기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너는 당장 짜라를 읽어봐야겠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과 진로에 관해 얘기하다 들은 말이라고 한다. 그가 말한 '짜라'의 정체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그 말의 뜻을 그때는 백 퍼센트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됐다는 뜻이다. "너는 너로 살아야 한다."

 


 

이 책은 모두 5개의 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삶의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는 의미 있는 철학 명저」, 2장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변화를 시도한 용기 있는 철학 법칙」, 3장 「지금 우리 사회 문제에 답을 주는 통찰력 있는 철학 명저」, 4장 「후대 철학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 가치 있는 철학 명저」, 5장 「철학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불멸의 철학 명저」로 구성돼 있다. 서양 철학사처럼 연대순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대에 흐름에 따른 순서도 아니다. 저자가 임의대로 철학이란 학문이 갖고 있는 고유 특성에 따른 구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삶의 방향, 변화, 통찰력, 후세에 영향, 불멸의 명작 등이다. 개인적인 문제부터 사회적인 문제까지 철학자들은 어떤 목소리를 냈을까를 알아보기 쉽게 저자가 구분한 것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면 1장에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을 비롯한 6권의 고전을 소개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짜라투스츠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1975),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존 롤스의 『정의론』(1971) 그리고 파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1952) 등이 나온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철학에 입문했음을 밝힌다. 진정한 주체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서 ‘짜라’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았다고 이미 소개한 바 있으니 당연히 이 장에 소개될 터다.

 

 

변화를 시도한 용기 있는 철학 명저에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1792년 여성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쓴 페미니즘의 고전, 『여성의 권리 옹호』를 비롯한 5권의 책이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1848)을 비롯한 교육학의 고전 반열에 오른 장 자크 루소의 『에밀』(1762), 그리고 그네 데카르트의 『성찰』(1641)과 존 로크의 『통치론』(1689)을 소개하고 있다. 각각의 저서들이 지닌 의미는 물론 저자들의 철학사적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돼 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공산당 선언』에 주목했다. 이 책은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판은 물론 읽어서도 안 될 '금서'였다. 독자도 이런 책을 두 사람이 썼다는 사실만 알았지 한 번도 제도로 읽어본 적이 없다. 80년 이전까지는 정식 출판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책에 따르면 『공산당 선언』은 크게 4장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장인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계급 투쟁의 관점에서 역사를 되돌아보고,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두 계급의 등장과 충돌 그리고 앞으로 일어나게 될 변화를 살핀다. 지금까지 역사는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끊임없는 갈등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갈등의 근본적인 '경제'에 있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시대의 전환이 계급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한 변화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시대별로 대립하는 계급이 존재했는데, 고대 로마에서는 세습 귀족과 노예가 있었고, 중세 시대에는 봉건 영주와 농노가, 자신들의 시대에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특히 주목한 것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였다.

 


 

3장에서는 ‘통찰력 있는 철학 명저’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1532),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 변동』(1981),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1861),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1921), 그리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 등 6권의 고전이 제시된다. 4장에서는 가장 많은 8명의 철학자의 그들의 저작이 각각 1권씩 소개된다. '68혁명'의 불꽃을 품고 열린 새로운 철학의 가능성을 역설한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1975), 게오르크 헤겔의 『역사철학강의』(1837),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9), 바뤼흐 스피노자의 『에티카』(1677),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1714),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1927),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400년경),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1651)이 각각 소개된다.

이 가운데 『감시와 처벌』은 권력의 감옥 체제가 사회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셀 푸코는 특히 권력이 지식과 결탁하여 자신의 체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학교가 공장, 군대, 병원, 나아가 감옥과 유사한 모습을 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권력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학문만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학생들에게는 은연중에 권력의 가치관을 주입함으로써 모두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존재로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대학 다니던 시절 많이 들었던 말처럼 들려서 강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은 독자에게만 드는 것일까?

또 『역사철학강의』에서 헤겔은 인간의 사유가 의식에서 시작해 다양한 경험을 거치며 진보해 나아가는 과정을 ‘변증법’ 의 논리를 통해 설명한다. 그의 변증법은 정립과 반정립, 종합의 세 단계로 나타나며, 우리는 흔히 이 과정을 ‘정반합’이라 부른다. 나아가 헤겔은 정반합의 변증법을 역사의 흐름에 적용한다. 헤겔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역사가 이성적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설명하며, 역사를 이성적으로 진행시켜온 힘을 ‘세계정신’이라고 일컫는다.

 


 

마지막 5장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마누엘 칸트, 토마스아퀴나스 등 서양철학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철학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과 그들이 남긴 명저들이 함께 소개된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소크라테스 등 대철학자들이 왜 뒷장에 배치됐을까? 저자의 심경을 정확히 헤아릴 수 없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독자처럼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이름도 들어보고 대략 잘 아는 인물이고 그들의 저서 또한 유명해서 철학책을 한 번쯤 읽은 사람은 잘 아는 내용이어서일 것 같다. 또 몇 번이고 철학책을 읽으려 시도해본 독자들도 가장 잘 아는 부분일 테니까. 그리고 저자의 의지는 꽤 합리적 의지로서 설득력이 크다.

 

돈도 빽(?)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오로지 두 가지뿐이다. 처음부터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나거나, 꽤 괜찮은 재능을 멋지게 갈고닦으며 될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만약 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면 크게 문제없겠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가진 재능의 빈틈을 부지런해 채워야 한다. 사람들이 언제 그 재능을 알아봐줄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여기 그 불안의 시간을 참고 견디며 역사상 누구보다 위대한 철학자로 거듭난 사람이 있다. 바로 독일의 18세기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이다.(p.266)

 

저자 : 이준형

 

콘텐츠 파는 서비스 기획자. 고려대학교에서 철학과 환경생태공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지식콘텐츠 분야의 서비스를 만드는 IT 기업의 기획자 겸 PM으로 활동 중이다. 경제 주간지 <이코노믹리뷰>에서 ‘숨은 철학 찾기’라는 칼럼을 2년간 연재했고, ‘카카오 프로젝트 100’의 인기 프로젝트를 책으로 엮은 《하루 10분 인문학》과 브런치북 오디오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인 《첫술에 맛있는 철학》을 썼다. 유튜브 채널 ‘인문학 유치원’과 인문독서 서비스인 ‘언리드북’을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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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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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애정도 옅은 질투도 모두 한 뼘의 계절에서 배웠다. 사계절의 전환이 없었더라면 내 몫의 문장은 절반도 되지 않았을 거다." 저자가 계절에서 배운 것, 생각한 것 등이 이 한 문장으로 오롯이 전해져 오는 순간 전율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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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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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은 저자 가랑비메이커가 2018년부터 2022년간 계절을 산책하며 마주한 사유와 서사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에세이다. 이 책에는 제목처럼 겨울의 촉감과 봄의 색, 여름의 맛, 가을의 냄새가 짙게 남아 있다. 저자 가랑비메이커의 섬세한 문체와 예리한 시선은 어느 계절에 펼쳐보아도 ‘그 계절’의 장면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계절이 있는 사람이라면, 계절 산책자 가랑비가 안내하는 길목에서 수많은 이름들과 마주하고 헤어지게 될 것이다. 페이지를 넘겨 갈수록 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이 늘어갈 책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저자가 마음껏 산책하고 마주했던 사람과 장면들에 대한 것들에 대한 깊은 사유로 들어가기 전 독자로서는 그만 만난 사람과 장면이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계절에 대한 것만 썼을까도 궁금하고, 그가 만난 사람이 등장한다면 어떤 사람일까도 사뭇 궁금하다. 저자의 속내를 알 수 있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 격의 글에 '초대장'이라고 쓰고, 「사계절이라는,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독자들을 자신의 사유 세계로 초청한다. "언 땅에 부서진 재처럼 남은 메마른 풀과 잔뿌리를 밟으며 고요한 겨울을 지나면, 마른 나뭇가지와 컴컴하던 땅에도 푸른 새순이 돋는 봄이 내려앉는다. 겨우내 발등만 보며 걷던 습관은 해가 깊숙이 드는 봄이 오면 자연히 사라진다. 푸른 잔디와 굵어진 나무, 그 위에 내려앉은 작은 새들을 올려다보며 걷는 걸음은 나른한 봄기운에 취해 왈츠처럼 우아해지곤 한다."

 


 

책의 제목과 주제가 암시하듯 이 책은 '계절 예찬'이 먼저다. 저자의 사유의 세계가 계절 속이기도 하고, 계절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초대장'에서는 겨울에 이어 봄에 대한 축복의 메시지도 전한다. "겨울에서 봄, 움츠렸던 몸이 활처럼 펴지는 계절의 전환 앞에서 공연히 게을러진 나를 마주한다. 여전히 정리하지 못한 무채색의 겨울옷, 제때 먹지 못해 곪은 고구마와 귤, 대충 눌러쓴 모자 속 무성하게 자라난 머리······. 언제까지고 모르는 체하며 덮어둘 수 있을 줄 알았던 것들이 손기를 갈구하는 계절, 무거워진 몸을 일으키며 구석구석 나의 쓸모를 발견하는 일은 새 계절을 여는 첫 번째 스텝이다."

여름은 더위 속에서 게으른 저자에게 먹을 것을 스스로 마련해 요리하는 즐거움도 준다. "나른하던 공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여름에는 종일 무얼 먹을까 궁리한다. 먹지 못해 안달난 사람의 허기가 아닌, 도처에 널려 있는 탐스런 제철 과일과 채소를 어떻게 요리하면 좋을지 고심하는 세프의 마음이다." 또 주방일보다 청소를 좋아하는, 요리보다는 설거지를 좋아하는 저자에게도 여름은 제 손으로 맛을 내고 싶어지는 계절이라고 말한다. "불을 쓰지 않고도 툭툭 썰어낸 과일과 채소로 채운 접시를 비우고 주전자에 담긴 보리차를 쪼르륵 따라 마신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소매 끝으로 훔치는 일까지 건강한 식사가 되는 계절에는 유난히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타는 듯한 더위에 잔뜩 찡그렸다가도, 곁을 머무는 한 줌의 바람과 한 뼘의 그늘에 옅은 웃음이 번진다."

 


 

여름 한낮의 대화와 한밤의 산책으로 활기 넘치는 여름이 지나면 저자의 가을이 궁금해진다. 소리 없이 드리워진 사색의 시간, 여럿보다는 홀로 보내는 시간이 긴 가을은 냄새라는 짙은 흔적을 남긴다는 저자의 독백처럼 마음도 냄새로 가을을 맞이한다. 건조한 공기를 타고 선명하게 실려오는 흙과 나무 냄새, 갓 내린 커피 냄새, 섬유 유연제 냄새. 홀로 길을 거닐어도 가을의 냄새는 지난 시절과 사람들 속으로 저자를 당겨낸다고 한다.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대화를 주고받고 맞닿지 않아도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사색의 계절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고 금방 돌어서버린다고 쓸쓸한 마음을 달랜다. 어쩌면 다음 기다리는 계절에 더 마음이 쏠려 있는 것일까?

저자는 겨울을 한 해의 시작과 끝을 차지하는 욕심 많은 계절로 표현한다.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를 두르고 모자를 눌러써도 코끝과 손끝으로 전해지는 촉감은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다. 여린 살갗을 훑고 지나가는 찬바람, 우연히 스친 손끝에 스파크처럼 이는 정전기, 따듯한 머그잔을 뭄켜쥐었을 때 지문이 녹는 듯한 느낌.

"둔한 옷차림으로 종종거리는 계절이지만, 나에게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생의 감각이 민감하게 되살아나는 계절이다. 얼어붙은 핸드크림을 힘껏 짜고 문지르는 일, 밤새 한 땀 한 땀 짠 목도리를 마침내 목에 두르는 일, 차가운 귀를 감싸며 바보처럼 웃는 일, 주머니 밖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흔들며 걷는 일. 우리가 겨우내 하는 모든 일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독한 추위로부터 지지 않고 한 해의 끝부터 시작까지, 여기 생동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그리하여 겨울이 오면, 습관처럼 해오던 모든 일들이 살기 위한 것처럼 필사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고 저자는 치열한 삶의 온기를 느낀다. 느슨해졌던 일상을 조이는 차가운 생의 감각은 매일 홀로 쓰고 펴내는 저자에게는 유일한 감시자이자 동료라는 말에 독자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계절 맞이는 끝난 게 아니다. 매 해 순환하는 한 해의 느낌만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에는 다시 봄으로 가면서 더 구체적인 저자의 계절이 풍요로워진다. 나름대로 사계절이 분명한 곳에서 나고 자라며 당연하게 마주했던 변덕스러운 계절이 가난한 예술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감이 된다는 저자의 진술은 큰 공감을 준다. 낮에는 산책을 하고 밤에는 문장을 쓰는 단조로운 삶에 색과 향을 가미해준 계절의 목소리와 환절기는 어떻게 저자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또 멀어지게 했을가. 읽을수록 저자의 사유는 깊어지는 것 같아, 결국 저자의 속내를 알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인내로써 읽는다면 삶의 새로운 방법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자신감에 페이지를 연속 넘기게 한다.

이 책은 장(章)의 구분을 계절로 나누었다. 「겨울」로 시작해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이 된다. 계절에 순응하며 사는 저자이지만 계절의 순환에서 뭔가가 달라짐을 느끼고, 깊은 사유를 통해 예리한 필체로 담아낸다. "내리는 눈을 가만히 바라볼 때면 눈이 지닌 힘에 대해 생각해보고는 한다. 오래된 동네를 동화 속처럼 만들어버리는 로맨틱한 둔갑술에 대하여. 저 높은 하늘에서 대지 위로 안착하기 위해 지나와야 했을 긴 여정과 인내에 대하여. 미지근한 손바닥 위헤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눈의 모습에서는 겸손을 배우기도 한다.

 


 

겨울부터 또 겨울까지, 한 해 동안 저자가 마주한 계절과 만난 사람과, 계절의 사유를 각 계절에 맞춰 한 문장씩만 여기에 옮긴다. 저자의 마음과 사유를 잘 표현해놓았다고 독자가 느낀 것이니 다른 독자들과, 또 저자와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2022년 겨울의 문턱에서 지난 해 저자가 경험하고 느낀 감정의 순간들과 비슷한 문장을 골랐다.

 

그리운 적 없던 그를 떠올린 것은 틀림없이 눈 때문이었을 거다. 해묵은 기억들이 하얀 눈에 둘러싸여 둥글둥글 뭉툭해져서 마음 속으로 굴러들어왔을 거다. 지난 시절을 떠올려 보다 가만히 속으로 안부를 묻는다. 눈이 오는 날이면 여전히 그 노래와 그 영화를 보는지. - 「눈이 오면」 중에서

이방인과 주변인 사이를 오다가 보면 언젠가는 이름을 새기지 않아도 내 것인 것들이 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낙관적인 마음은, 오늘 아침 산책에서 입은 것이다. 목적 없는 아침 산책은 작고 나약한 고민의 터널을 지나며 몇 줄의 선명한 문장이 된다. 삐뚤빼뚤하게 쓰인 문장을 조용히 웅얼거리고 나서야 나의 긴 산책은 끝이 난다. - 「깨끗한 마음으로 쓰는 산책」 중에서

함께 웃고 울고 떠들던 여덟 번의 여름은 선명한데 마지막 메일과 문자를 나누었던 아홉 번째 여름은 희미하다. 마치 누군가 필름을 뚝 자른 것처럼 맺음 없이 남겨진 마지막 여름 끝에는 옅은 감정만이 잔부스러기처럼 남겨져 있다. 소란하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네 번째 여름을 맞았다. H는 지금 어떤 여름을 지나고 있을까. - 「소란하던 여름이 지나고」 중에서

하나의 책을 함께 읽는 일이, 어릴 적 교실 안에서 하나의 교과서를 짝과 나누어 보면 순간에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낡은 책들과 함께하는 계절에서 배웠다. (중략) 새 책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사적인 흔적을 읽는 일의 기쁨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나로 하여금 더 많은 문장을 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다. - 「흔적을 읽는 계절」 중에서

 


 

사계절의 순환이 없었더라면, 작업과 삶에는 긴장과 이완이라는 밀고 당기기도 없었을 것이란 저자의 말에 수긍한다. 무한정 늘어진 삶을 살거나 매초 스스로를 다그치기만 하며 현재의 기쁨과 슬픔의 맛을 알지 못했으리라고 혼잣말하는 이유도 알아챌 것 같다. 그리하여, 저자는 날마다 새로운 배움을 전해준 계절들을 지나며 문장들을 엮었다. 계절의 테두리가 아닌 계절의 한가운데를 거닐며 느꼈던 민낯의 감정과 감각을, 새로운 계절 속에 서있는 독자들에게 전한다. 가난한 애정도, 짙은 질투도 겨우 한 뼘의 계절에서 왔다. 못난 모습도, 가끔은 모두 계절의 몫으로 두어도 좋다. 조금 모자란 듯한 계절이 지나고 다시 새 계절이 오면 지금의 휘청이는 걸음은 단단한 지도가 될 것이다. 그제야 지난 계절을 돌아보며 헤아릴 수 있을 거다. 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들을.

 

저자 : 가랑비메이커

 

프리라이터(2015-)이자 출판사 문장과장면들 디렉터(2019-). 그럴듯한 이야기보다 삶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모두가 사랑할 만한 것들을 사랑한다면, 나 하나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을 사랑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낮고 고요한 공간과 평범한 사람들에 이끌린다. 작은 연못에서도 커다란 파도에 부딪히는 사람, 그리하여 세밀하고도 격정적인 내면과 시대적 흐름을 쓰고야 마는 사람이다.

단상집 시리즈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2015.독립출판),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2018.독립출판), 장면집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2019 개정), 고백집 『고요한 세계에 독백을 남길 때』(2019.독립출판)를 기획, 집필했다. 가족 에세이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2020)를 기획, 공동집필 했다. 책장과 극장사이를 머물기를 좋아하며 이따금 사진을 찍는다. 다양한 사람들과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라이빗한 모임을 진행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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