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프랑스 - 당신을 위한 특별한 초대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창용 지음 / 더블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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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도시, 파리'. 프랑스 파리는 자국 국민들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더 잘 아는 예술의 도시이다. 독자는 어렸을 때부터 파리가 예술의 도시란 말을 수없이 듣고 살았다. 어쩌면 프랑스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도 파리가 예술의 도시란 사실을 듣거나 알고 있을 것이다. 독자는 프랑스에 딱 한 번 간 적이 있다. 십여 년 전 일이라 파리의 구석구석을 잘 알지 못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을 포함해 파리 시내에만 여러 개의 유명 미술관이 있다고 들었다. 그 중 루브르를 제외하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미술관들이다. 이 책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는 프랑스 곳곳에 있는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이다. 단순히 미술관만 소개한다면 굳이 할 말도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프랑스에 가본 사람이라면 으레 한 번은 가보기 때문이다. 파리를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북이나 미술관, 박물관 등을 설명해주는 예술서적, 심지어 역사서에도 루브르 박물관은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해 오르세, 오랑주리, 로댕 미술관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술관을 돌아본다. 미술관 안에 있는 그림이나 조각 등 예술 작품은 물론 미술관의 유래나 역사적 사건 등을 묶어 서양미술사를 대신해도 될 정도로 잘 구성됐다. 저자 이창용은 「당신을 위한 특별한 초대」란 부제를 붙여 고대 그리스에서 르네상스를 거쳐 인상주의까지 서양 미술사조의 주요 흐름을 꿰뚫는 걸작들을 소개하고 해석해준다. 또 작품들에 얽힌 이야기 등은 이미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까지 촘촘하게 미술관을 읽어준다. 저자는 실제로 로마 바티칸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에서 도슨트로 활약했으니 전문 지식은 물론, 비하인드 스토리도 잘 알고 있을 터다. 이를 미술 기행서로 써서 읽어주는 느낌을 준다.

 


 

독자도 최근에 나온 미술 관련 서적을 알게 모르게 10권 정도는 읽은 것 같다. 모두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읽은 것이다. 또 이 책에 나오는 「모나리자」에 대한 기억은 별로 좋지 않다. 입장 전 30여분을 기다려 간신히 그림 쪽으로 다가가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다. 그래도 일정상 다른 일정이 잡혀 있지 않으니 기다려 보는 수밖에... 혼자 간 것도 아니니 일행들과 스케줄을 무시하고 혼자 다닐 수도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직접 본 「모나리자」는 의외로 크기가 작았다. 그것도 앞에는 가이드라인을 쳐놓고 가깝게 접근하는 것을 금했다. 사진마저 못 찍게 했다. 작품 훼손 방지를 위한 불가피한 방법이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뒤에 너무 많은 사람이 줄지어 서 있는 바람에 밀리듯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감상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냥 스쳐 지나간다는 표현이 딱 알맞을 것 같았다. 이후 여러 개의 작품을 일정에 맞춰 끝내야 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주마간산' 식의 관람이었다.

이렇게 모나리자와의 인연도 끝났다.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첫 인상도 흡족하지 못했다. 가이드 표현대로라면 일주일도 모자란다는 말에 그나마 들렀다는 사실만이 위안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직접 본 미술관과 예술 작품에 대해서는 더 애정이 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책도 루브르 박물관이 자랑하는「모나리자」에 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모나리자」의 눈, 코, 입과 특유의 미소에 얽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읽고 나면 「모나리자」가 왜 명작일 수밖에 없는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자크 루이 다비드가 남긴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프랑스 미술계를 발칵 뒤집은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올랭피아」에서는 관습이라는 틀에 박힌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새롭고 혁신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고자 한 마네의 용기를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가’에 대해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한다. 미술계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은 시대와 사회적 분위기, 유행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프랑스의 유명 미술관 순례를 통해 “바로 이것이다!” 싶은 최고의 작품을 스스로 정해볼 것을 권한다. ‘좋은 작품은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미술 감상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는 '프롤로그 「좋은 예술작품이라는 것은 뭘까?」라는 글에서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루브르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꺼낸다.(존칭어를 독자가 예삿말로 바꿈)

"루브르 박물관은 처음부터 박물관으로 건립된 곳은 아니었다. 이곳은 이전에 프랑스 왕과 왕비가 머무는 화려한 궁전이었다. 하지만 1789년 7월 14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그리고 나니 더 이상 그들이 머물던 궁전도 필요치 않게 됐다. 이후 혁명세력들은 루브르 궁전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부르봉 왕조가 소유하고 있던 수많은 예술작품을 국민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1793년 루브르 박물관이 그 서막을 열게 된다."

그 뒤 루브르에서는 '우리가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들의 가치가 얼마쯤이나 될까?' 궁금했던지 실제 작품들의 가치를 책정한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작품들의 가치를 책정한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그 경제적인 가치만 40조 원에 이른다는 「모나리자」. 당시 「모나리자」에 매겨진 가치는 과연 얼마였을가? 고작 9만 프랑에 불과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5만 프랑이면 파리 시내에 일반 주택을 한 채 구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지금과 비교하면 그리 큰 평가는 아니었던 듯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루브르 박물관이 자랑하는 대표 작품인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와 함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자크 루이 다비드, 페테르 파울 루벤스 등 출중한 화가들의 대표작과 화가의 일생에 관해 들려준다.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19세기 근대미술 작품이 전시된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장 프랑수아 밀레, 테오도르 루소, 구스타브 쿠르베를 비롯하여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에두아르 마네, 장 프레데릭 바지유,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르 드가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지베르니 정원과 오랑주리 미술관, 로댕 미술관에서는 클로드 모네와 오귀스트 로댕이 전 생애를 바쳐 집요하게 추구한 그들의 예술세계에 푹 빠져들 만큼 특유의 입담을 발휘한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도슨트, 서양미술사 전문 강사로서 다져온 저자의 남다른 노하우는 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저자는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보는 데는 최소 6시간에서 이틀 정도를 할애하라고 조언한다. 아울러 어떤 동선으로 돌아봐야 하는지, 빠트리지 않고 꼭 챙겨봐야 하는 작품은 무엇인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최소 4시간을 할애하여 고전주의부터 후기 인상주의 작품까지 빠짐없이 만나보라고 권한다. 지베르니 정원과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는 모네가 마지막 인생 12년과 맞바꾸어 선물한 삶의 여유와 위로를 느껴보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로댕 미술관은 파리에 있는 수많은 미술관 중 가장 편안하고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 미술관이 보유한 방대한 컬렉션과 함께 드넓은 정원이 매력이라고 귀띔한다.

 


 

이 책에 담긴 프랑스 미술 기행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풍성한 정보는 지금 당장 이 책 한 권을 달랑 들고 프랑스로 떠나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 이 책은 걸출한 화가들이 남긴 세기의 명작을 찾아 프랑스로 떠나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루브르 박물관과 프랑스의 주요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에 관해 잘 알려진 사실과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잘못 알려진 사실을 가감 없이 명쾌하게 전달한다. 우선「모나리자」가 왜 그처럼 유명한가에 대해 그림의 구도, 스푸마토 기법, 대기 원근법, 다빈치의 해부학적 지식을 근거로 든다. 또 마네의 대표작 「풀밭 위의 점심」이 왜 프랑스 부르주아 남성들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인지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불리는「칼레의 시민」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지를 놓고 로댕이 왜 그토록 깊이 고민했는지 이유를 듣고 나면 무릎을 치며 감탄할 수밖에 없다. 「밀로의 비너스」에 담긴 루브르 박물관의 애국 마케팅, 완벽하게 조작된 장면을 연출한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에 이르면 다시 한번 문제의 작품을 되돌아보게 된다. 「메두사의 뗏목」을 통해 정권의 무능과 부정부패를 고발한 테오도르 제리코, 우리가 잘 아는 인상파 화가들의 뒤를 부지런히 돌봐주면서도 정작 본인의 작품에 관해서는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던 바지유는 그들이 남긴 작품을 넘어 삶의 진정성을 전한다. 밀레의 「만종」을 둘러싼 근거 없는 소문에 대해 저자는 몇 가지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이 미술 분야이긴 하지만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는 낭설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저자가 고른 작품을 둘러싼 친절한 설명과 함께 주요 작품 이미지도 수록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설명을 뒷받침하는 참고 작품까지 담았다. 한 편, 한 편 작품에 얽힌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이 작품들을 보러 반드시 프랑스에 가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서기도 한다. 한데 그럴 필요 없다. 언젠가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아니어도 괜찮다. 내 방이든 지하철이든 한적한 카페 안이든 그 어떤 장소라도 상관없다. 찬찬히 시간을 들여 책 속에 안내된 그림과 텍스트에 푹 빠져 있다가 책장을 덮을 때쯤, 파리로 가는 항공권은 결코 끊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이 절로 감탄이 나오게 될 테니까.

 


 

작품 설명이 자세하고 새로운 해석도 있는 데다,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로잡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책의 출간은 독자에게도 뜻하지 않는 기쁨을 준다. 당시 부르주아와 돈 많고 권력 있는 귀족들의 상당수는 미술 작품을 그들의 관음증을 만족시켜 주는 물건쯤으로 여긴 사람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도 그렇지만 애드가 드가의 「발레 수업」이란 작품을 설명하면서 치부를 지적한다. 이 그림 화면 우측 상단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드러난다. 옷을 잘 차려입은 몇몇 중년여성들이 보인다. 과연 그녀들은 누구일까? 어린 발레리나들의 학부모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아닐 것이라고 저자는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탄생한 발레는 루이 14세 시절 프랑스에서 전성기를 맞이하고 그 뒤 그 중심지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간다. 더 이상 프랑스에서 발레는 귀족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난하고 가진 것이라고는 젊음과 미모밖에 없는 어린 여성들이 공연을 통해 부르주아들에게 자신을 선보이는 도구로 전락했다. 오죽하면 당시 '오페라 극장은 창관이다'는 말이 나돌았을까?

저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어린 발레리나들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교육비를 충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후원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돈 많은 부르주아들은 어린 그녀들을 후원하며 그녀와 암묵적인 거래를 이어갔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저 소녀들의 부모가 좋은 옷을 입고 수업에 참관하러 왔을까? 그건 아니다. 아마도 저 중년의 여성들은 어린 소녀와 후원자를 연결해주는 마담뚜가 아닐까 싶다. 또 다른 발레리나를 만나본다. 드가의 발레리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에뚜왈」(스타)이다. 불어로 '별'이라는 뜻으로, 발레 공연의 수석무용수를 지칭한다.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주인공이다. 춤추는 발레리나 뒤편으로는 또 다른 발레리나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듯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발레 공연 무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의 한 남성이 뒤편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발레는 부르주아를 위한 공연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비싼 입장권을 사거나 많은 후원을 한 소수의 인원에게는 공연뿐 아니라 발레리나들의 연습실과 탈의실까지도 드나들 수 있는 통행권이 주어졌다. 그들은 그렇게 무대 뒤편의 감춰진 은밀한 공간까지 탐닉하며 후원자를 찾는 어린 발레리나들을 물색했다. 어쩌면 저 무대 뒤편의 남성은 새로운 발레리나를 찾으러 이곳에 왔거나 자신이 후원하는 발레리나를 에뚜왈로 만들고 그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추측성 어투로 썼지만 저자의 해석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 가난한 예술가와 돈 많은 귀족들 사이에 암거래는 자연스러웠을 테니까.

드가가 1,500여점의 발레리나 작품을 전부 현장에서 목격하고 사실적으로 그렸던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귀띔한다. 가난한 화가가 발레리나의 탈의실까지 들어갈 돈도 없었을 것인데 어떻게 속속들이 그릴 수 있었을까. 저자는 드가가 이 문제를 카메라로 해결했다고 말한다. 당시 휴대용 카메라는 집 한 채 가격과 비슷한 고가였다고 한다.

독자는 모르는 사실을 많이 알게 된 이 책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한 가지 사실을 건져낸다. 수련의 모네의 수련 연작, 루앙 대성당 연작, 생라자르역 연작 등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고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의 작품에 대한 해설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1871년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뒤 프랑스는 바닥에 떨어진 애국심과 국가적 자긍심을 고취할 목적으로 다양한 공공사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칼레시는 백년전쟁 당시 도시를 구한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를 로댕에게 의뢰한다. 이렇게 탄생한 「칼레의 시민들」은 중세의 시인 프루아사르가 쓴 『연대기』에 등장하는, 프랑스와 영국 간에 벌어진 백년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347년 8월 3일은 칼레시의 치욕스러운 날로 기억되고 있다. 이 날은 11개월 동안의 길었던 항쟁을 끝내고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칼레시가 항복한 선언한 날이라고 한다. 침략자인 에드워드 3세는 시민들 스스로 뽑은 6명의 대표자가 처형에 사용될 포승줄로 목에 걸고 직접 성문 열쇠를 들고 나온다면 그들 이외의 시민들은 살려주겠다고 항복조건을 내건다. 이때 나선 6명의 영웅을 로댕이 작품에 담았다.

 


 

모네가 남겨준 다양한 수련 연작들은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요, 그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당연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수련 대장식화입니다. 이 작품은 모네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꼽히며 그의 말년 인생과 맞바꾼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만큼이나 모네는 이 작품을 위해 정신적 ? 육체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완성하게 됩니다. - 「모네의 가장 위대한 걸작 「수련 대장식화」」 중에서

 

로댕은 이들의 모습을 죽음도 초월한 신성한 영웅적인 모습으로 거짓되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영웅들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죽음 앞에 두렵고 떨려 눈물을 흘리고 당장 도망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노라고. 그래서 그들의 선택과 행동이 더 위대하고 값지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칼레의 시민」」 중에서

 

저자 : 이창용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부터 2년여간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2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바티칸 박물관전』 큐레이터를 맡았다. 2012년부터 6년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도슨트로 활약했다. JTBC 예능 프로그램 <톡파원 25시>, 시사교양 프로그램 <미술은 처음이라>,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림맛집 미?알?랭> 등에 출연하면서 미술사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강사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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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을 거쳐가면서 우리들의 건강에 대한 염려는 더 커졌다. 식객 허영만 화백은 “아무거나 먹지 말고 제철 건강한 맛을 맛나게, 제대로 즐기자!”라는 2023 새해 제안을 하며 캘린더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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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초등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만화'는 학습에 방해만 될 뿐 전혀 도움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됐다. 어린이들의 인성과 학습에 상상력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 대신 공상과 현실성 없는 상상력만 키운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위인전이나 동화 같은 책보다 표현이 자유롭고 다소 과장되기도 해서 어린이들의 감수성 발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때문에 만화책이 지금처럼 어엿한 출판물이 되기까지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만화 시장도 열악할 수밖에 없을 터 책 자체도 적잖이 허름하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불량 서적'으로 취급하기에 딱 알맞았다. 같은 이유로 만화가가 꿈인 어린이들은 희귀했다. 그때도 만화의 인기는 높았다. 글씨를 읽고 생각을 하는 것보다 그림만 봐도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으니 '공부'가 싫은 학생들조차도 만화를 읽는 것은 당연했을 것 같다. 사회적 인식은 만화 시장을 점차 억압했을 것이고, 만화가의 원고료도 열악했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일부 인기 만화가들도 있긴 했지만 '만화'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는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당연히 학부모들은 만화를 읽는 것은 공부를 하기 싫은 아이들이 보는 것으로 인식했고, 대부분 만화 출판물은 잘 사주지도 않았다. 꽤 비싼 전집류도 만화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만화에 대한 인식이 크게 나빴기 때문이다. 간혹 잡지가 있어 그 잡지에 연재만화 혹은 단편 만화가 실리긴 했다. 잡지에 실린 만화는 표현이나 과장의 수준이 훨씬 어린이 수준에 맞게 완화돼 있었다. 당연히 잡지사 측의 원고 자체 검열을 했기 때문이다.

공상이나 과장된 언행이 포함된 것은 잡지에 여간해선 실리지 않았다. 그나마 적은 판매부수가 학부모들이 좋지 않게 인식하고 있는 만화가 실리면 정기 독자 등의 숫자가 뚝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만화의 전성 시대를 연 것은, 독자의 기억으로는 만화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던 듯 싶다. 야구를 소재로한 만화인데 야구를 제대로 하지 못한(야구 선수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한) 선수들을 모아 팀을 꾸린 '외인구단'은 엄청난 훈련(지옥 훈련)을 거치고 수많은 훈련을 통해 경기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성공 가도를 걷는 만화다. 거기에는 야구선수와 소녀의 풋풋한 사랑도 끼어든다.

 

 

이 탁상달력의 그림을 그린 분도 만화가이다. 지금이야 만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매체로서의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예술가로 대우받지만 오래 전에는 힘든 만화가 시절을 거쳤을 것이다. 독자가 어렸을 때부터 그의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했다. 특히 영화 〈타짜〉로 큰 인기를 모았던 『48+1』 등 수많은 '히트작'으로 대한민국 만화계의 최상위 계층에 속할 정도다. 그는 '화백'으로 대우받으며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상태다. 그의 인기로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을 맡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른바 '유명세'를 탄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그의 그림 실력과 탄탄한 스토리로 그가 그린 만화마다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소설가 못지 않은 창작성이 돋보인 것이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맛집 가이드가 된 허영만 화백은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없지만 언제나 그의 이름만 들어도 소탈함이 배어나온다. 그가 이번에는 전국 방방곡곡 발품을 팔아 찾아낸 음식들을 그려 달력에 붙였다. 이 캘린더에는 허영만이 추천하는 월별 제철 식재료와 음식뿐만 아니라 24절기에 먹어야 할 맞춤 건강 음식도 소개되어 있다. 이벤트 Day에 먹어야 할 음식은 덤이다.

 

 

또한 『식객 허영만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캘린더』에는 계절에 맞는 음식 그림을 직접 컬러링 할 수 있도록 국민만화가 허영만이 밑그림을 그려 놓았다. 여러분은 각자의 입맛에 맞게 색을 칠하면서 먼저 눈으로 맛보고, 곧 허기짐과 군침 도는 입의 아우성을 참지 못할 것이다. 비싸다고 좋은 음식이 아니다. 제철에 맞는 건강한 맛을 제대로 맛있게 즐겨라. 허영만 화백의 음식에 대한 지론도 소탈하기 그지없다. 이 캘린더는 '식객과 함께 하는 2023년'으로 더 기다려진다. 어쩌면 식습관을 바꿀 기회가 될지 모른다. 왠지 더 행복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식객』, 『타짜』, 『각시탈』, 『날아라 슈퍼보드』 등 48년 동안 500여 편의 만화를 그려 ‘살아 있는 전설’로 우뚝 선 허영만 화백. 『식객 허영만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캘린더』에는 계절에 맞는 음식으로 건강한 한 해를 꿈꿔본다. 먼저 눈으로 맛보고, 곧 허기짐과 군침 도는 입의 아우성을 참지 못해 당장 나가 입을 달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캘린더와 함께 '건강 2023'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IMF가 왔을 때 아내와 함께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고생도 해 봤고, 또 누려도 봤으니까 힘든 시절이 와도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 세대는 가난을 경험해 봤으니까 그것이 그렇게 두렵지 않은데, 그때의 신세대들은 한 번도 생의 파도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 막연하게 가난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도 잘 넘기지 않았습니까? 요즘도 그때만큼 힘든 시절이지요. 다들 언제 목이 떨어질지 모르는 단두대에 올라가 있는 심정으로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인생의 고비는 누구에게나 옵니다. 모든 세대가 다 겪어온 어려움을 자신도 겪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어떤 고난도 결국은 끝난다는 희망을 버텨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과거를 되씹지 말고,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말고 숨 쉬고 있는 지금을 위해서 사십시오. 이 지금이 모여 인생이 되는 거니까요."

그가 관상을 소재로 그린 만화 『꼴』을 출간한 후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오랫동안 독자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의 인터뷰 속에 언뜻언뜻 비치는 말을 새겨 들으면 독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알 수도 있다.

"재미있게 그려야 독자도 재미있게 읽는 것 같습니다. 독자는 정직해요. 작가가 얼마만큼 작품에 공을 들이는지 느낄 수 있어요. 안 보는 듯하면서도 다 보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충 그리면 되지 뭐 그렇게 지독하게 취재하고 조사하느냐고 하는데, 세상의 누군가는 알고 있으니 절대로 게을리할수 없지요. 창작하는 사람의 자존심이기도 하고. 난 책을 낼 때 ‘과연 독자들이 내 만화를 읽어줄까, 재미있다고 해줄까.’ 불안한 심정이 듭니다. 그런 불안이 만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도 나름의 원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할 때는 사람이 송곳처럼 날카로워져서요. 안 그러려고 해도 그렇게 돼요. 그래서 집에 일거리를 가져가면 아내와 아이들이 긴장해요. 그래서 작품에 필요한 자료나 책도 집에서 읽지 않습니다."

 


 

그림 : 허영만(許英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만화가이자 식객. 허영만 화백은 2019년 5월 14일부터 지금까지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을 통해 전국의 숨겨진 맛집을 찾아다녔다. 그만의 맛집 기준은 첫째 ‘집밥 같은 백반’, 둘째 ‘비싸지 않은 가격’, 셋째 ‘그럼에도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맛’이다. 밥을 먹다가 어머니의 손맛이 절로 그리워질 만큼 마음을 파고드는 맛, 다양하고 풍성한 반찬과 제철 음식으로 신선하게 담은 넉넉한 한 상. 그중 소박하지만 확실한 한 끼를 선사하는 진짜 맛집을 골라 이 책에 담았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백반기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974년 공식 데뷔한 허영만 화백은 《각시탈》 《오! 한강》 《아스팔트 사나이》 《비트》 《미스터Q》 《날아라 슈퍼보드》 《타짜》 《식객》 등 수많은 화제작을 그리며 인기를 누렸다. 그의 만화는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어 흥행에도 성공했다. 4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화계의 중심에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단연코 우리나라 최고의 만화가이자 예술가로 손꼽힌다. 현재 유튜브 채널 <허영만의 내일 출근 안 해>를 운영하며 술과 맛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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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늘은 계속된다
베르나르 피보 지음, 배영란 옮김 / 생각의닻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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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그 시간 또한 하루하루 점점 줄어가며 조금만 손을 내밀어도 인생의 끝자락에 닿을 듯한 상황이 되면, 우리는 느리게 사는 삶의 매력을 만끽한다. 여든 다섯을 노작가의 다짐은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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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늘은 계속된다
베르나르 피보 지음, 배영란 옮김 / 생각의닻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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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그래도 오늘은 계속된다』는 소설이다. 제목은 마치 노년 생활의 평온한 행복을 적었을 것 같지만 실상 평온보다는 적막에 가깝다. 저자는 베르나르 피보로서 프랑스 문화계를 주름잡았던 인물이란다. 얼마 전까지 중견 출판사 대표로 있었다. 그의 지금 나이는 여든 둘. 주인공 기욤은 저자의 상황과 비슷하다. 자전 소설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현실에서 은퇴한 삶은 어느 나라든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하다. 대가족 제도도 무너진 지 오래고, 자녀들도 하나나 있든지 그나마 없는 사람도 많다. 선진국 프랑스는 수십 년 전부터 인구 절벽을 느낀 나라다. 자녀의 수가 부부당 1.0 이하로 떨어진 지 30~40년 됐다. 당연히 대가족 제도는 중세 봉건주의 시대나 있을 법하다. 우리나라도 그 뒤를 잇고 있으니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있을 수만 없으리라.

주인공 기욤이 곧 나의 미래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스토리가 더욱 독자에게 현실감을 준다. 주인공은 길고양이 한 마리와 연금생활자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뒷방으로 물러앉으니 여기저기 몸도 아프고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서로를 돌보고 약해진 마음을 우정으로 달래기 위해 기욤은 친구들과 ‘80대 파리청년회’ 모임을 이어간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소개팅 앱에서 만난 여자와 일흔의 나이에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나선 외눈박이 코코, 이야기가 늘어지고 재미 없어지면 언제나 화장실로 도망쳤다가 지병인 전립선을 화두로 던져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법무사 출신의 옥토, 부부가 서로 말꼬리 잡느라 혈안이 되어 으르렁대는 게르미용 부부, 댄디한 신사이자 유능한 번역자 남편과 은퇴한 파리시 공무원 아내 블라지크 부부, 아흔다섯의 나이가 무색하게 아직도 딸들과 쇼핑을 즐기는 ‘칼주름’ 노나까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여덟 명의 멤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식사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노인네들 사는 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무슨 소리. 늙어도 사는 건 다 똑같다. 여자에게 주책없이 들이대다가 퇴짜를 맞기도 하고, 내기에 져 문신을 새기기도 한다. 부부끼리 별거 아닌 일에 죽기 살기로 싸우고 치사하게 나이를 앞세우는 일도 허다하다. 간혹 넘어지거나 뾰루지라도 날라 치면 서로를 놀려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뿐인가? 질병과 외로움, 불안 때문인지 혼자 있을 때면 ‘또 다른 나’가 나타나 끝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는데 사실인가 싶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측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문단의 교황’이라고 불렸던 남자,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공쿠르 문학상 심사위원장이었던 이 장편소설의 저자 베르나르 피보는 자신의 실제 이야기와 지어낸 이야기를 적절히 뒤섞어 노년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호기심과 유머, 다정함까지 두루 갖춘 저자의 지혜와 통찰이 귀부 와인처럼 달콤하고 쌉쌀한 여운을 남긴다. 덤으로 행복한 노년을 누리기 위한 몇 가지 레시피와 작은 교훈도 함께 얻을 수 있다. 노인들에게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를 하면, 시시콜콜 아픈 곳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잔인한 나이 탓을 해댄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안부 인사는 짧게 끝나는 법이 없다. 80년 정도 살면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고 알약과 물약, 좌약까지 먹어야 할 약도 한 사발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을 것이기에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도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러니 예민하고 신경질적일 수밖에.

 


 

독자도 중년이다. 중년에 가장 걱정되는 게 노년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여야 할 텐데, 독자는 노후 대책을 시작도 해보지 않아서 돈 걱정이 가장 크다. 그러나 젊었을 때 못 벌던 돈을 지금에서야 나선다고 될 일이겠나 싶어 열심히 은행을 드나드는 수밖에 없어 한숨만 나온다. 그래서 노후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대안은 짜내지 못한데 걱정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니까. 근현대 사회엔 나이 드는 건 정말 짜증 나는 일이다. 암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죽을병’ 때문이 아니다. 마음은 예전 그대로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게 문제다.

노동하는 사람만 근력이 떨어지고 일상에 가끔씩 지장이 생길 정도로 에너지도 없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평생을 사무직에만 있었다고 해도 나이듦, 늙음을 피해갈 순 없다. 바지에 다리를 집어넣거나 단추를 채우거나, 신발 끈을 묶는 것처럼 평생 일상적으로 해온 동작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느릿느릿 움직여야만 할 때가 차츰 횟수가 늘어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도 할 수가 없다. 그러면 바로 실수를 연발한다. 양손에 서너 가지 물건을 한꺼번에 쥐고 있으면 십중팔구 그중 하나를 떨어뜨린다. 떨어진 물건이 신문이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신문을 줍겠다고 몸을 숙이는 순간 우유나 달걀을 놓쳐버려 일이 더 커진다. 바로 얼마 전까지 현직에서 힘과 권력을 가지고 휘두르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 모습은 정말 처량해서 봐줄 수가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인 것을.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친구들 대부분은 죽는 것보다 꼼짝 않고 지내며 재미난 일 하나 없이 위축된 삶을 사는 게 더 무섭다고 한다. 낮이나 밤이나 별 차이가 없어져 낮도 밤처럼 어둠이 가득한 세상이 될까 두려운 것이다.(p.42)

 

 

그렇다고 과거에 빠져 살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나이 들고 고약한 성미를 드러내던 윗세대 노인들을 보면서 나는 그러지 않겠노라 다짐했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역시 닥쳐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언젠가 큰일이 닥치면 용기가 부족할까 걱정된다. 몸이 심각하게 무너져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어지면, 과연 누군가에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까? 오랜 병치레로 생활이 무너지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도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성격이 점점 더 예민해져 가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걱정은 많아지고 몸은 말을 안 듣고 성격은 갈수록 예민해진다. 하지만 늙어서 좋은 것도 있다. 이젠 다른 사람 시선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하기 싫은 일 하면서 살기엔 내게 남은 시간이 진짜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낼 자유가 생겼다. 이제까지 사회인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짐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꿈꾸는 게 가능해졌다.

회고 절정, 노인이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웠던 (10대에서 20대까지의) 시절을 미화해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현상이다. 예쁘고 잘생겼던 시절, 꿈과 포부도 컸고 무엇보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젊음이 있었다. 어쩌면 그 시절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 때는’이 입에 붙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시간 보정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 문제는 노인네들이 그렇게 미화된 당시와 현재를 끝없이 비교하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느라 쓸데없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현재가 탐탁지 않으니 젊은 사람들과도 가까워질 수가 없다. 젊은 사람들도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다. 뭔지 모를 과거와 끊임없이 비교되는 게 달가울 리 없지 않은가.

 


 

독자처럼 중년에 들어서면 요즘 세상을 한탄하며 젊었을 때를 그리워한다. 심지어 청춘에 대한 예찬론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 동시대의 사람, 즉 같은 연령층이 들으면 공감하고 맞장구칠 일이지만 젊은 세대에게 그런 말을 했다간 '꼰대'로 몰린다. 꼰대로 몰리는 게 억울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꼰대처럼 보인다는 게 서럽다. 속마음은 아닌데 고지식하고 옛날 잣대만 들이민다고 오해받기 십상이다. 스스로 체력이나 나이듦의 한계로 속상한데 꼰대로 몰리기까지 한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정말 살기 어려운 시대였다. 밥을 못 먹어 끼니를 거르거나, 옷이 헤쳐도 새옷을 사기 어려워 기워입고 남에게 얻어 입었다. 지금 중년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아니 못 겪었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별천지이다.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일도 실제 일상에서는 거의 없다. 사실 지금의 중년 세대까지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가정보다 직장, 직장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시대였다. 산업화를 늦게 해서 그만큼 갑절 이상 노력했다. 적지 않은 부작용도 있었지만 하루 24시간을 일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지 않았던가. 세상에서 산업화를 우리만큼 단시일 내에 달성한 나라가 없다하지 않은가.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리는 민주화도 병행했다. 지금은 당연한 두 가지의 것을 우리처럼 50년 만에 한 나라는 없다. 우리 민족의 근면성과 단결심을 보여준 대목이다. 이들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서 살아가기 쉽다. 물질적으로 부족했어도 사람간의 정과 위로는 그때가 더 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의 시간이 더욱 생생하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해서 '꼰대' 소리를 듣게 된다.

 


 

저자 베르나르 피보는 이렇듯 노인이 빠지기 쉬운 ‘과거’보다는 ‘오늘’에 방점을 찍고 있다.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모두 현재를 살아간다. 여든둘이라고 다르지 않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오히려 더 소중하게 느낀다. 오늘이 ‘마지막 날’일지도 모르니까. 여든의 삶과 마흔의 삶, 아니 스무 살의 삶도 본질은 같다. 어느 연령대에 있든, 아무도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살아간다. 하지만 젊어서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앞을 향해 달려 나갈 뿐. 하지만 삶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삶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을 깨닫는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데 집중하게 된다. 끝이 보이지만, 하루하루 소중함을 깨닫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삶. 생의 끝자락에서 만날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이다. 저자는 죽을 때까지 꿈꾸기를 멈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숨 쉬고 있는 한 오늘은, 삶은 계속된다. 짧게 계획하고 기쁘게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라 격려한다.

오랜 시간 프랑스 ‘문단의 교황’이라 불리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던 남자, 세계 3대 문학상 공쿠르 문학상 종신 심사위원이자 2014년에서 2019년까지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저자, 하지만 이 모든 영광을 깨끗하게 내려놓은 남자, 장편소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의 저자 베르나르 피보다. 그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여든둘의 나이에 모든 직함과 일에서 물러나 집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좌절되었던 오랜 꿈을 꺼내들었다. 소설을 써보겠다는 젊은 시절의 꿈.

 

내 인생은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다.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내 앞에 남은 삶이 어느 정도일지에 연연하기보다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당장 내일을 준비하는 게 더 낫다. 인생의 마침표가 찍힐 날이 최대한 뒤로 미뤄지길 바라면서 잔소리 심한 내 쌍둥이 자아가 조언하는 대로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것이다.(p.295)

 


 

그리고 여든다섯이 되던 해 그의 첫 소설을 세상에 내놓는다. 은퇴한 노년의 삶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아도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하고 싶은 일에 모두 쏟아부을 수도, 낭비할 수도 있다. 이것은 기쁨인 동시에 고통이다. 그는 노년에 주어진 자유와 시간을 젊어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는 데 썼다. 대부분의 처녀작이 그러하듯 자신의 자전소설이다. 하지만 과거에 빠져 있지 않고 자신의 오늘을 돌아보고 다짐하는 이야기다. 고령의 몸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자신과 친구들의 일상을 통해 노년의 삶과 그 속에 숨은 묘미, 아직 젊은 사람은 모르는 어르신들의 고민까지 엿볼 수 있다. 노년의 지혜로 포장한 훈계를 늘어놓기보다 솔직한 투정과 반성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이채롭고 재미있다. 늙었다고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으면, 결국 시체처럼 누워만 있게 된다. 박차고 일어나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이야기하며 누려라. 오늘을 충실히 살아낸다면 노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저자가 스스로 증명하듯 말이다. 나이를 얼마나 먹었든, 그래도 오늘은 계속된다.

 

저자 : 베르나르 피보(Bernard Pivot)

1935년 리옹에서 태어난 언론인이자 평론가다. 프랑스의 유명한 문학 잡지 〈리어LiRE〉를 창간했고, TV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피Apostrophes〉를 진행했으며 프랑스어 받아쓰기 대회 〈디코 도르Dicos d’or〉를 기획하기도 했다. 일련의 활동들을 통해 그는 ‘프랑스어의 수호자’로 추앙받았으며 2014년부터 2019년까지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문학상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수십 년 전부터 최근까지 프랑스 문학과 출판, 문화계의 정점에 있었고 그의 명성과 인기는 독보적이다. 프랑스어 바로쓰기에 관한 책과 평론집을 여러 권 출간했지만, 여든다섯 나이에 첫 소설을 세상에 내놓는다.

 

역자 : 배영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순차 통역 및 번역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동 대학원에 출강하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핵심 서양미술사』 『브랜드와 아티스트, 공생의 법칙』 『책의 탄생』 『꿀벌과 철학자』 등이 있으며, 《고갱》전 《밀레》전 《모딜리아니》전 《르누아르》전 《오르세 미술관》전 등 주요 전시의 도록 작업을 진행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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